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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 3일 목요일

2009.01.16. 드뷔시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모음곡 /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 / 림스키-코르사코프 셰에라자드 - 라르스 포크트 / 정명훈 / 서울시향

2009년 1월 16일(금) 오후 7시 30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지휘자 : 정명훈
협연자 : Lars Vogt (Pf)

Debussy, "Pelleas et Melisande" Concert Suite (arranged by Erich Leinsdorf)
Mozart, Piano Concerto No. 21 in C major, K. 467
Rimsky-Korsakov, Symphonic Suite "Scheherazade" Op. 35



드뷔시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는 프랑스 말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도무지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이상한 음악처럼 들리곤 한다. 음악사에서 차지하는 자리가 커서 마니아라면 누구나 한 번쯤 도전해 보지만 이내 음반을 중고 장터에 내놓고, 그 음반이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신세가 되어 이곳저곳을 떠돌기 일쑤다. 그래서 이날 연주된 것과 같은 관현악 발췌곡도 나왔으나 드뷔시다운 어른어른하고 어슴푸레한 소리는 그대로이다. 그런데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음향이 묘하게 그와 어울리는 데가 있었다. 반쯤 잠에 빠진 듯 흐리멍덩한 느낌이 그럴싸했으며, 어찌 보면 지휘자가 원성 자자한 연주회장에서 장점을 이끌어내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저음 현 긁는 소리가 좀 더 살아났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으나 세종문화회관에서는 어렵지 싶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에서도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무려 라르스 포크트가 협연을 맡아도 세종 대극장 음향 한계는 어쩔 수 없는 듯했으나 맑고도 그윽한 소리를 이끌어내는 해석이 그럴싸하기도 했다. 더욱이 2악장에서 페달을 많이 쓰면서도 소리가 뭉치지 않게 잘 다듬은 대목이 매우 훌륭했다.

드뷔시모차르트에서 연주회장에 순응하는 연주를 들었다면 림스키-코르사코프 <셰에라자드>에서는 때때로 연주회장의 한계를 넘어서는 소리가 들려와 놀라웠다. 세종 대극장에서는 여간해서는 소리가 피부로 와 닿지 않아서 프레이징 따위를 머리로만 듣게 될 때가 잦은데 이날 참으로 오랜만에 화끈한 느낌을 받았다. 정명훈의 해석은 음반으로도 나와 있는 바스티유 오페라 연주와 크게 다르지 않았으며, 그 때문에 정명훈보다는 수석 연주자들이 독주 때 보여준 개인기에 더욱 눈길이 갔다.

악장 데니스 김이 들려준 독주는 '셰에라자드'라는 인물이 살아 숨 쉬는 듯해서 매우 인상 깊었다. 셰에라자드는 어떤 사람일까? 무서운 임금님 앞에서도 기죽지 않는 여장부? 임금님을 유혹하는 요녀? 마음 깊은 곳 상처를 달래는 어머니? 데니스 김이 그려낸 셰에라자드는 곳곳에서 두려움을 내비치지만 때로는 허세를 부릴 줄도 아는 순진하고도 용감한 소녀 같았다.

첫 독주는 요염함과 두려움과 허세가 넉넉한 루바토와 에스프레시보로 알맞게 버무려진 연주였고, 마디 94에서는 첫 음과 이어지는 셋잇단음 사이를 포르타토치고는 매우 뚜렷이 나누어 연주해서 마치 선생님 앞에서 두 손 모아 열심히 노래하는 듯했다. 3악장 마디 145에 나오는 스타카토 분산화음은 이야기 속 왕자와 공주를 셰에라자드 부부에 빗대어 말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데 이때 데니스 김은 A 음을 늘이고 나머지는 장식음처럼 휘리릭 재빨리 다루어 마치 마음속에 감춘 두려움이 드러나는 듯했으며, 그래서 이어지는 칸타빌레 선율은 더욱 애달팠다. 4악장 마디 29에서는 힘주어 연주하라는 지시를 매우 잘 살려 어느 때보다 활을 거칠게 썼다. 이때 첼로와 콘트라베이스는 매우 여리게 연주하게 되어 있으나 정명훈은 음반에서 했던 것처럼 매우 세게 연주해서 '짠!' 효과를 내도록 했다. 그런가 하면 마디 641에서는 마치 자장가처럼 매우 여리게 속삭이듯 했다.

목관악기 연주자들도 독주 때마다 눈부신 연주를 뽐냈으며, 그 가운데 오보에 수석 이미성이 가장 돋보였다. 글쓴이가 보기에 이미성은 악보에 있는 지시를 아주 작은 곳까지 꼼꼼하게 지키는 남다른 솜씨를 가졌으나 '모범생 연주'를 넘어서는 '끼'를 보여주지는 못하는 단점 또한 안고 있다. 그런데 이날 드디어 벽을 넘은 듯한 모습을 보여주어 몹시 반가웠으며, 그 때문에 옛날부터 글쓴이 마음을 사로잡은 클라리넷 수석 채재일보다도 더 인상 깊었다. 정명훈은 연주가 끝나고 악장에 이어 두 번째로 이미성을 일으켜 세웠다.

글쓴이가 가장 추겨 세우고 싶은 연주자는 트럼펫 수석 가레스 플라워스(Gareth Flowers)이다. 이 곡에서 트럼펫은 목관악기처럼 눈에 확 띄는 솔로 악구는 없으나 티 안 나게 하는 고생이 만만치 않으며, 그러면서도 작은 실수로도 곧잘 연주를 망쳐버릴 수 있어서 호른 못지않게 까다롭다. 이날 때때로 살짝 불안한 대목이 없지는 않았고 연주가 끝나고 지휘자가 일으켜 세웠을 때 금방 도로 앉아버린 일에 미루어 보면 연주자 자신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듣기에는 매우 야무진 연주였으며, 더욱이 4악장에서 빠른 음형이 계속 나오는 곳에서는 깜짝 놀랄 만큼 훌륭했다. 나는 정명훈이 아찔한 템포로 마구 달릴 때에도 트럼펫이 조금도 뒤처지지 않고 바짝 따라오리라고는 믿지 않았다. 이럴 수가! 이런 연주자가 있으면 베토벤 교향곡 7번을 해줘야 한다. 마침 올 10월 정기연주회 때 베토벤 교향곡 7번을 연주할 모양이니 기대가 된다.

호른과 트롬본 또한 다부진 연주를 들려주었으며 1악장 시작을 비롯해 여러 차례 나오는 부점 리듬을 날카롭게 다스린 대목이 매우 훌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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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철. 2009.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2009년 8월 31일 월요일

2008.08.12.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 드보르자크 교향곡 9번 - 프랑크 페터 침머만 / 정명훈 / 서울시향

2008년 8월 12일(화) 오후 7시 30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지휘자 : 정명훈
협연자 : 프랑크 페터 침머만 (바이올린)

Beethoven, Violin Concerto in D, Op. 61
Dvorak, Symphony No. 9 in e, Op. 95 "From the New World"



음식 재료를 여러 가지 많이 쓴다고 아무나 맛있는 음식을 만들지는 못한다. 그러나 여러 재료를 두루 잘 쓰는 요리사는 재료가 다양할수록 더 맛있는 음식을 잘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셈여림, 빠르고 느림, 거친 소리와 매끈한 소리 등 표현할 수 있는 재료가 많을수록 좋다.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한 프랑크 페터 치머만은 가지가지 재료를 적절히 쓰는 재주가 남달랐다. 이를테면 빠른 음형에서 윗활로 긁으면서 매끄러운 소리를 내다가도 다른 부분에서는 아랫활로 날카로운 소리를 내기도 했고, 때때로 발까지 굴러가며 힘차게 활을 그어댔으며 여린 소리는 또 매우 여리게 내서 뒤쪽에 앉은 사람은 잘 안 들리지 않았을까 싶었다. 연주회장이 세종문화화관이 아니라면 좋았으련만.

치머만의 연주가 딱딱했다는 의견이 더러 있던데,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음향 탓에 소리가 좀 메마르게 들리기도 했고 연주자가 독일 사람이라 그런지 잔꾀를 부리지 않고 정직하게 연주해서 무뚝뚝하다고 느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딱딱하다는 말은 너무 한쪽만 보고 한 말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런데 가만 보니 <SPO> 연주자 소개말에 이런 말이 있다.

"그는 매우 냉철하면서 객관적으로 음악을 대하는 연주자다. 감정보다는 이성을, 흥분하여 말하기보다는 논리적으로 표현하려 하고 디테일 또한 절대 대충 처리하는 법이 없다."

이 말은 치머만이 가슴이 아니라 머리로만 연주하는 메마른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라고 믿는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나는 이 말에 절대 동의하지 않는다. 저 말에서 '그'를 '브람스'로, '연주자'를 '작곡가'로 바꿔보면 어떨까? 작곡 기법을 따지자면 참말로 옳다. 브람스만큼 논리적으로 작곡한 사람도 드물다. 그러나 브람스 음악이 '머리로 듣는' 음악인가?

치머만은 브람스 같은 연주자다. 가지가지 재료를 적절히 쓰는 방법에는 치밀한 계산이 뒷받침하는 듯했지만, 그 소리에는 깊은 감성이 우러나왔다. 그에게 이성과 감성 가운데 어느 하나가 먼저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중용'이라는 말이 이토록 잘 어울리는 연주자가 또 있을까.

치머만이 들려준 연주는 다 좋았지만 딱 한 군데 내가 싫어하는 해석을 보여준 곳이 있었다. 3악장 마디 331에 나오는 F# 음을 너무 짧게 끊어버린 것이다. 이곳은 작품 전체의 절정에 해당하는 곳으로 D 장조 으뜸화음을 길게 늘인 'I-VI-I-ii-V-I'꼴 화성 진행을 되풀이하면서 마치 '승리의 팡파르'같은 분위기를 내되 그 고양감을 독주 바이올린 선율에 집중시켜 놓았다. 여기서 F# 음에 따라붙는 화음은 버금가온화음(VI)이고 앞 마디의 선율 D-C#-D-E-F#에 이어져 화성과 선율 모두 F# 음에 고양감을 실어주고 있다. 그러나 치머만은 이 중요한 음을 악보에서 지시한 것보다도 훨씬 짧게 지나가듯 연주했다. 소리를 좀 더 늘여서 오케스트라를 뚫고 나오는 금빛 반짝이는 소리를 들려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앙코르로 연주한 파가니니의 <신이여 왕을 지켜 주소서> 변주곡은 치머만의 왼손 테크닉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소름 끼치도록 잘 보여주었다. 하긴, 테크닉이 이쯤 되고 보면 감성적인 연주자라는 소리를 듣기 어렵기도 하겠다.

드보르자크 교향곡 9번은 '응원 교향곡'이라고도 불릴 만큼 4악장 제1 주제가 응원가로 자주 쓰이기도 하고 또 386세대에게는 '전대협 팡파르'로 기억되기도 한다. 이런 지나친 명성은 자칫 음악이 선정적으로 흐르게 할 위험이 있으며, 더군다나 이 작품에 자주 나타나는 민요풍 선율과 리듬을 잘못 살리면 자칫 촌스러워지기 쉽다. 정명훈은 템포를 제법 느리게 잡고 저음 현을 두드러지게 한 '거장풍' 해석으로 위험을 비켜갔다.

특히 1악장 도입부에서는 악보에 있는 메트로놈 지시보다 두 배 이상 느린 템포로 시작해 음형이 바뀔 때마다 조금씩 빨라지도록 했으며, 코다에 유난히 힘을 실어주고 템포도 바짝 조여서 마치 1악장 전체에 크레셴도와 아첼레란도를 준 것처럼 느껴지게 했다. 4악장 도입부에서도 느린 템포로 시작해 아첼레란도를 썼다.

1악장은 소나타 형식을 따르지만 제2 주제가 나오기 앞선 마디 91에서 플루트와 오보에가 연주하는 '사이비' 제2 주제가 나오는 점이 특이하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브루크너가 그렇게 한 것처럼 주제 셋을 거느린 별난 소나타 형식이라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전통적인 형식에 맞추어 보면 이 주제는 제2 주제가 될 수 없다. 이 작품이 e 단조를 따르므로 제2 주제는 e 단조의 관계장조인 G 장조라야 하지만 이 주제는 g 단조이기 때문이다. 정명훈은 진짜 제2 주제가 나오는 마디 149에서 템포를 크게 늦추어 제1 주제 및 '사이비' 제2 주제와 뚜렷이 구분하고 전통적인 형식미를 살렸다.

2악장에서는 잉글리시 호른 독주도 멋있었지만, 마디 54부터 나오는 콘트라베이스 피치카토와 마디 78부터 나오는 첼로 트레몰로를 주선율처럼 앞세운 것이 이날 연주 가운데 가장 멋있었다. 다만, 마디 107부터 109까지 세 번 나오는 모두쉼표(Generalpause)를 느린 템포에 비해 가볍게 다룬 것이 조금은 뜻밖이었다. 3악장이 끝나기 바로 앞서 나오는 모두쉼표 또한 과장없이 가볍게 처리했다. 3악장 템포는 악보 지시보다 빠른 편이었고 금관과 팀파니의 활약이 돋보였다.

4악장에서는 저 유명한 제1 주제도 좋았지만 제2 주제(마디 66) 클라리넷 선율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객원인지 단원인지 헷갈리는 이 연주자는(나중에 붙임: 서울시향 클라리넷 수석 ☞채재일) 얼마 전부터 시향 정기연주회에서 좋은 연주를 들려주고 있는데, 나는 이제 완전히 팬이 되어버렸다. 마디 320에서 곡을 끝맺기 전에 잠시 힘을 빼며 호른과 팀파니가 폭풍전야처럼 긴장감을 쌓아가는 것도 나무랄 데 없었다.

이 작품은 '신세계로부터'라는 표제가 말해주듯이 미국을 노골적으로 찬양한 작품이다. 그러나 정명훈은 앙코르로 헨델의 <왕궁의 불꽃놀이> 4악장 '환희'를 연주하기에 앞서 올림픽 출전 선수를 응원하는 말을 해서 드보르자크 교향곡 9번 또한 '응원 교향곡'으로 만들었다. 어쨌거나,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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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30일 일요일

2008.05.27. 랄로 스페인 교향곡 / 생상스 교향곡 3번 - 유진 우고르스키 / 폴 메이어 / 서울시향

2008년 5월 27일(화) 오후 7시 30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지휘자 : 폴 메이어
협연자 : 유진 우고르스키 (바이올린) / 이한나 (오르간)

Chabrier, España
Lalo, Symphonie espagnol
Saint-Saens, Symphony No. 3 in c minor, Op. 78 "Organ"



랄로의 <스페인 교향곡>은 제목과 달리 바이올린 협주곡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보통 협주곡과는 달리 독주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가 주거니 받거니 하기보다는 독주 바이올린이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달린다고 하는 게 더 옳다. 협연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도무지 쉴 틈도 없이 마구 달려야 하며 절대로 오케스트라에 뒤처지면 안 된다. 협연자는 선봉장이 되어야 한다. "나를 따르라!" 그런데 문제가 있다. 빨리 달려야 하는데 음표가 너무 많다. 빠른 음표가 끝도 없이 나온다. 3악장짜리가 아니라 5악장짜리라 갈 길이 먼데 막판으로 갈수록 더 까다롭다. 발 한 번 삐끗하면 꼴사납게 넘어지게 생겼다. 음악에 긴장감을 잔뜩 쌓아 놨다가 크게 터트리는 맛도 없이 그저 얌전히 생글거리다 끝나버리니 고생한 것을 관객이 알아주지도 않는다.

이번 연주회에서 협연을 맡은 유진 우고르스키는 이 까다로운 곡을 큰 실수 없이 차분히 잘 연주했다. 이것만으로도 크게 칭찬해 줄 만하다. 이 작품을 실연으로 이만큼 연주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커도 너무 큰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오케스트라에 파묻히지 않고 제 목소리를 낸 것도 대단하다. 그 때문인지 음 하나하나를 함부로 다루지 않고 꾹꾹 깊이 눌러 연주했다. 때때로 남다른 활놀림으로 색다른 맛을 내었고, 고음 현은 밝고 저음 현은 어둡게 하여 뚜렷한 음색 대비를 주기도 했다. 다만, 저음 현과 고음 현을 오가면서 음색이 차츰 바뀌지 않고 느닷없이 바뀌어 어색하게 들리곤 한 것은 옥에 티였다.

5악장에서 탬버린 대신 작은북(snare drum)을 쓴 것이 매우 참신했다. 악보 지시를 지키지 않은 것은 원칙적으로 좋지 않지만, 연주회장이 너무 커서 모든 악기 소리가 밋밋해지는 마당이라 오히려 작은북이 음악에 양념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 탬버린보다 더 크고 찰기 있는 소리로 마치 고수가 판소리꾼 이끌듯 흥을 돋웠다.

1악장 마디 253에서 플루트가 악보에서 지시한 것보다 더 나서서 독주 바이올린과 완전히 대등하게 주고받은 것도 재미있었다. 악보에는 독주 바이올린이 매우 세고 또렷하게(ff ben marcato) 연주하는 동안 플루트와 클라리넷이 나란히 매우 여리게 연주하도록 지시하고 있지만, 플루트가 좀 더 앞으로 나서주면 독주 바이올린과 선율이 얽히면서 감칠맛을 낼 수도 있다. 서울시향 플루트 주자는 이것을 더욱 과장하고 협연자는 살짝 뒤로 물러나서 플루트가 살짝 선율을 이끌어가기까지 했다. 지휘자 폴 메이어가 관악기 연주자라 일부러 그렇게 시켰을까?

생상스 교향곡 3번은 실연으로 좋은 연주를 듣기 쉽지 않은 작품이다. 바로 파이프 오르간 때문이다. 파이프 오르간은 원래 교회 음향에 어울리는 악기인데, 연주회장은 교회와는 음향이 많이 다르며 특히 잔향 시간이 짧다. 이런 까닭에 음반에 담을 때에는 파이프 오르간을 따로 녹음하곤 한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 있는 파이프 오르간은 전문가가 인정하는 매우 훌륭한 악기이지만 연주회장 잔향이 너무 짧아서 장난감 같은 소리를 냈다. 중저음에 비해 중고음이 너무 세다는 인상을 받기도 했는데 이것 또한 잔향 좋은 성당에서라면 알맞게 들렸을 듯싶다. 다만, 오르간이 아니면 낼 수 없는 극저음은 아주 좋았다. 특히 1악장에서 달콤한 화음에 극저음을 더한 오르간 소리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오르간은 역시 극저음이 제맛이다.

오르간 음량이 너무 커서 오케스트라 소리가 묻혀 버린 것도 불만이었다. 오르간을 연주한 이한나에게 물어봤더니 오르간 소리가 큰 게 낫다는 의견이 많아서 그렇게 했단다. 하긴, 잔향도 짧은 데다가 파이프가 연주회장 오른쪽에 있어서 오케스트라와 어울리지 못하고 따로 노는 마당이라면 차라리 오르간이 소리를 꽉 움켜쥐고 끌고 가버리는 게 나을 것 같다.

파이프와 콘솔이 멀리 떨어져 있고 그 사이를 오케스트라가 가로막고 있어서 오르간 주자가 박자 맞추는 데 애를 먹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오케스트라 소리가 커질수록 더 그랬는데, 건반을 눌러 소리가 날 때까지 시간이 꽤 많이 걸리는 것 같았다. 오르간 주자가 박자를 미리 계산해서 한참 먼저 건반을 눌러야 했다는 말이다. 콘솔이 파이프 가까이 있었다면 이 문제는 해결되었겠지만, 지휘자와 멀리 떨어져 의사전달에 어려움이 생길 테니 그것도 좋지 않다. 연습실이 따로 있어서 연주회 당일에서야 부랴부랴 오르간 특성에 적응해야 했다니 지휘자가 예비박을 주기도 곤란했을 터다. 시향 전용 연주회장이 있어서 연주회장과 연습실이 다르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사정이 이렇게 고약한 것을 생각하면 오르간 주자는 사실 박자를 매우 잘 맞췄다. 오르간 전문 연주자들은 박자감이 뛰어나기로 유명하다.

생상스 오르간 음악의 가장 큰 특징은 논 레가토(non legato), 즉 끊어치기다. 19세기 프랑스에는 이어치기가 크게 유행했는데, 생상스는 이것이 앞선 세대에 유행했던 과장된 끊어치기(détaché)에서 나온 반작용이며 좋지 않다고 보았다. 교향곡 3번은 오르간 곡이 아닌 오르간이 들어간 교향곡이므로 논 레가토를 너무 신경 쓸 필요는 없으며, 필요할 때는 오르간 대신 오케스트라가 끊어 연주하도록 악보에서 지시하고 있다. 그러나 2악장 마디 392 같은 곳에서는 오케스트라가 오르간 소리에 완전히 묻혀버렸기 때문에 오르간이 끊어 연주한 것이 매우 적절했다. 마디 419에서는 긴장감 넘치는 화성에 맑은 음색으로 너무 끊어 연주하니 뿅뿅거리는 소리가 되어버렸다. 잔향 탓이 크겠지만 음색을 좀 더 거칠게 만들어줬더라면 훨씬 나았을 것이다.

생상스는 빠른 음형을 논 레가토로 연주하는 솜씨가 매우 뛰어났다고 한다. 2악장 마에스토소 바로 뒤에 피아노 고음이 반짝반짝하는 음형(마디 384)도 원래는 오르간 논 레가토를 의도했다가 아예 피아노에 맡긴 것이 아닐까 싶은데, 실제로 잔향을 넉넉하게 잡고 녹음한 음반을 들어보면 오르간 소리처럼 들린다. 그런데 이날 피아노는 오르간 콘솔 가까이 있어서 파이프와는 멀리 떨어졌는데다가 오케스트라 소리에 묻혀서 잘 들리지도 않았던 점이 안타까웠다. 피아노를 오르간 파이프 가까이 두려면 콘트라베이스를 밀어내야 할 판이라 오케스트라 배치가 엉망이 될 테니 그것도 문제다.

만약에 연주회장이 명동 성당이었다면 어땠을까. 글쎄, 오케스트라가 곤란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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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16.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 교향곡 5번 - 미하일 시모냔 / 이고리 그루프만 / 서울시향

2008년 4월 16일(수) 오후 7시 30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지휘자 : 이고르 그루프만
협연자 : 미하일 시모냔(바이올린)

Shostakovich, Festive Overture
Tchaikovsky, Violin Concerto in D, Op. 35
Tchaikovsky, Symphony No. 5 in c, Op. 64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은 유명한 외국 연주회장의 1.5배에서 2배 규모로 연주회장치고는 비정상적으로 크다. 음향이 나쁘다는 원성이 큰 것도 주로 이 때문이다. 연주회장 음향은 연주자에게도 큰 영향을 주는데, 거대한 연주회장은 특히 협주곡을 연주할 때 협연자에게 크나큰 고난으로 다가온다. 이럴 때 협연자는 보통 셋 가운데 하나를 고른다. 큰 장소에 맞는 큰 소리를 내려고 무리하다가 크기만 할 뿐 듣기 싫은 소리를 내버리거나, 그 반대로 모기 소리가 나든 말든 평소대로 연주해버리거나, 또는 갑자기 아파서 연주를 할 수 없게 되거나. 그러나 솜씨 있는 목수는 연장 탓을 하지 않는다 했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은 연주자가 예술가로서 어떤 자세를 하고 있는지 알아볼 수 있는 좋은 시험대가 될 수도 있겠다.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한 미하일 시모냔은 어려움을 슬기롭게 이겨낸 훌륭한 연주자였다. 큰 소리를 내려고 활놀림을 힘차게 하면서도 연주를 망칠 만큼 무리하지는 않고 중용을 지키는 데 성공했다. 힘을 적게 들이면서 큰 소리를 내는 '보잉 내공'도 꽤 훌륭했다. 솜씨 좋은 연주자일수록 활이 현에 찰싹 달라붙는 듯 단단한 소리를 잘 내는데, 시모냔은 바로 이 '찰싹 달라붙는 소리'를 곧잘 냈다. 다만, 큰 소리 내는 데 신경 쓰는 만큼 군데군데 삐걱거리는 곳도 있었는데 이를테면 1악장 카덴차 직전에 음정이 꽤 크게 어긋났다.

1악장 템포를 느릿하게 잡아서 긴장감이 조금 떨어졌던 점이 아쉽기는 했지만, 사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연주회장 음향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거니와 템포를 조금 늦추면 실수 없이 큰 소리를 내기 쉽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은 1악장 독주 부분이 몹시 길고 쉬는 곳도 잘 없어서 마라톤 뛰듯이 페이스 조절을 하지 않으면 낭패를 보기 쉽다. 다만, 1악장 마지막에 D 음을 반복하며 긴장감을 높여갈 때에는 그래도 좀 더 빠르게 몰아쳤으면 하는 아쉬움을 버릴 수 없었다.

3악장 마디 565 또는 그 앞서 같은 음형이 나오는 마디 314에서는 관현악 합주로 이어지는 4분 음표에서 호흡이 끊기는 데다 그 간격도 일정하지 않고 절뚝거려서 오케스트라가 맞춰주느라 애를 먹었던 점이 옥에 티였다. 협연자가 활을 어떻게 쓰는가 살펴봤더니 활 아래쪽 1/3 부근에서 힘차게 긁어대다가 4분 음표에서 활 아래쪽 끝으로 폴짝 옮겨서 거의 풀 보잉(full bowing)을 한다. 이때 활을 옮기느라 호흡이 끊겼던 것이다. 상행 음형을 끝맺는 4분 음표를 과장해서 크레셴도 효과를 내려고 했던 모양으로 아마도 연주회장 음향을 생각해 좀 더 힘차게 연주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결국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많았다고 본다. 마디 565는 작품의 절정에 해당하는 곳인데 호흡이 끊긴 만큼 긴장감이 떨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도 오케스트라가 이때 썩 잘해주어서 그럭저럭 나쁘지 않게 연주를 끝맺을 수 있었다.

3악장에서는 군데군데 반복구를 생략하는 관습이 있는데, 이를테면 마디 71-82, 마디 259-270, 마디 420-427 등은 생략할 때가 잦다. 그런데 요즘은 또 생략 없이 그대로 연주하는 게 유행인 모양이다. 역사주의 연주가 널리 힘을 얻은 것과도 관련이 있을까 싶지만, 또 알고 보면 이 유행은 그보다 역사가 오래된 것 같다. 그런가 하면 음반 녹음을 하면서 다른 작품을 같이 넣고도 CD 용량을 넘어서지 않도록 연주시간을 줄이려는 목적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그런데 마하일 시모냔은 이날 반복구를 생략하고 연주했다. 왜 그랬을까?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 연주는 금관의 강력한 소리와 팀파니의 묵직한 두드림을 앞세워 커다란 연주회장에 걸맞았다. 지휘자 이고리 그루프만이 러시아 사람이라 그런지 금관 악기 음색이 더욱 거칠게 느껴졌는데, 그러면서도 므라빈스키처럼 주선율이 다른 모든 것을 먹어치우며 미쳐 날뛰는 게 아니라 저음을 제법 묵직하게 깔고 그것을 바탕으로 두터운 화음을 만들며 부선율을 놓치지 않는 등 뛰어난 균형감각을 보여주었다.

3악장에서 중간에 그로테스크한 면을 살리지 않고 세련되기만 하게 연주한 것은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이었다. 특히 마디 56 이후에 나오는 바순 독주에서는 마치 잔치에 갑자기 불청객이 끼어든 듯 낯설고 갑작스러운 느낌을 살리지 않고 그저 말끔하게 연주했다. 피아노(p)에서 포르테(f)로 재빨리 크레셴도를 하도록 악보에서 지시한 것을 지키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메조포르테 정도로 연주했으며 A# 음의 악센트도 살리지 않았다. 헤미올라(hemiola) 리듬 역시 매끄럽게만 연주해서 3박자 리듬의 단절에 따른 긴장감 상승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이 작품을 지배하는 정서는 '달콤한 절망과 거짓된 승리'라 할 수 있다. 많은 평론가가 지적하고 차이콥스키 자신도 인정한 것처럼 이 작품이 끝맺는 방식은 솔직하지 못하고 과장되었다. 차이콥스키는 고통을 이겨내려는 의지를 작품에 담아내지 못한 듯 보이며, 그래서 이 작품은 끝내 현실을 회피해버린 작곡가의 정신적 마스터베이션이다. 교향곡 6번에 끝없는 절망과 체념이 담긴 까닭도 이것으로 미루어 헤아릴 수 있다.

그런데 이날 서울시향의 연주는 사납게 몰아치면서도 감정의 기복은 지나치게 크지 않고 어느 정도 절제되고 안정되어 있었다. 피날레는 진짜 승리 또는 적어도 자신을 철저히 속이는 가짜 승리인 것처럼 느껴졌다. 병든 광기는 즐거운 축제가 되었다. 그것대로 듣기 좋았지만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금관이 그토록 사납게 울부짖었고 템포 또한 악보에 있는 메트로놈 지시와 크게 어긋나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느꼈을까? 고민 끝에 나는 연주회장 때문이라고 결론 내렸다. 연주회장 음향 특성에 따라 소리의 심리적인 거리가 매우 멀게 느껴져서 마치 강 건너 불구경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새로 짓는다던 시향 전용 연주회장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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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28일 금요일

2008.01.09. 쿠르타그 '스틸리' / 슈만 피아노 협주곡 /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 - 세르히오 티엠포 / 성시연 / 서울시향

2008년 1월 9일(수) 오후 7시 30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지휘자 : 성시연
협연자 : 세르히오 티엠포 Sergio Tiempo, 피아노

Kurtag, Stele
Schumann, Piano Concerto in a, Op. 54
Shostakovich, Symphony No. 5 in d, Op. 47



쿠르타그(Kurtág György; 1926-)의 <스틸리 Stele>는 버르토크와 베베른과 리게티를 합쳐놓은 듯한 텍스처와 낯설고 신비롭고 꿈처럼 몽롱한 음향이 인상깊은 작품이다. 서울시향의 연주를 들으면서 나는 마치 크게 앓다가 혼이 잠시 몸을 벗어나 흐느적거리며 떠돌아다니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높은 곳에 떠서 제 몸을 내려다보는 것처럼 끈적끈적하고 찝찝한 느낌에 몸서리치다 집 밖으로 나오면 떠들썩하게 돌아가는 세상과 그로부터 동떨어진 자신이 이상의 소설 <날개>의 한 장면처럼 어지럽다. "이때 뚜우 하고 정오 사이렌이 울었다. 사람들은 모두 네 활개를 펴고 닭처럼 푸드덕거리는 것 같고 온갖 유리와 강철과 대리석과 지폐와 잉크가 부글부글 끓고 수선을 떨고 하는 것 같은 찰나! 그야말로 현란을 극한 정오다." 마침내 뒤죽박죽 세상으로부터 눈과 귀를 닫아버리면 물속 깊은 곳을 천천히 흘러다니는 듯한 느낌에 편안해진다. 서울시향의 연주에서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곡 끝머리에서 되풀이되는 다섯잇단음의 물결 치는 듯한 느낌이 좀 자연스럽지 못했다는 것인데, 사실 그런 섬세한 음향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의 음향 환경에서는 기대하기 어렵기도 하다.

세르히오 티엠포가 협연한 슈만 피아노 협주곡은 처음부터 끝까지 파격 또 파격이었다. 첫 타건부터 톡톡 튀는 것이 심상치 않더니, 이어지는 독주에서는 셈여림 표시가 p인데 아예 ppp로 터무니 없이 여리게 연주하는 것을 듣고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 뒤로도 오케스트라가 나서지 않을 때마다 마치 연인이 속삭이듯 여리게 여리게 연주하는 솜씨가 남달랐다. 그냥 여린 소리와 여리면서도 멀리 퍼져 나가는 소리는 하늘과 땅 차이인데, 여리고 멀리 퍼지는 소리를 내려면 손가락을 오히려 크게 움직여야 한다더니 과연…. 그런데 티엠포는 큰 소리를 낼 때에도 비슷한 손놀림을 한다. 피아노 소리가 빠르고 가볍게 통통통 튀어오른다! 화음을 쿵쿵 두드려댈 때에는 갑자기 아찔한 빠르기로 달린다. 세상에, 이건 슈만이 아냐! 장난꾸러기처럼 종잡을 수 없는 다이내믹과 '제비 본색'으로 어르고 달래는 루바토는 차라리 감정 과잉 슈만을 놀리는 듯하다. 오케스트라는 피아노에 정신없이 끌려다니기만 한다. 제멋대로도 이런 제멋대로가 없으니 화를 내야 할지도 모르겠다. 만약 학생이 이렇게 연주했다면 틀림없이 선생님께 크게 꾸지람을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속 슈만 망령을 날려버리고 나니 티엠포의 연주에 설득당하고 만다. 그래, 슈만은 없었다. 오직 티엠포, 티엠포! 나 그대에게 불타는 팬심(fan心)을 바칠 테야요!

지휘자 성시연의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 해석은 특별히 모난 데 없이 무난했다. 템포는 대부분 악보의 메트로놈 지시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고, 악기 간 밸런스에도 무리가 없었다. 므라빈스키의 과장된 해석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답답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겠지만, 듣자 하니 이날 연주된 작품 모두 처음 지휘해본 것이라 악보에 충실한 것이 당연하다. 나는 앞서 티엠포의 장난질에 열광하고 말았지만 편법으로 정공법을 이기기는 어렵다.

다만, 4악장 시작 부분의 템포는 ♩= 115 정도로 악보에서 지시한 ♩= 88에 비해 너무 빨랐고, 아첼레란도를 거쳐 마디 11에 이르렀을 때에는 악보에서 지시한 ♩= 104가 아니라 거의 ♩= 140 가까이 되었다. 어떻게 보면 당장에라도 폭발할 듯한 분위기에 비해 악보에서 지시한 템포가 너무 느리다고 느낄 수 있으므로 성시연의 해석이 틀렸다고 볼 수만은 없다. 그러나 템포가 빨라진 만큼 앙상블이 흐트러졌으며, 특히 트럼펫이 힘들어했다는 점은 생각해볼 문제다. 3악장 마디 129와 마디 130 사이의 짧은 게네랄파우제(Generalpause)를 무시하고 넘어간 것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서울시향의 앙상블은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특히 1악장 앞부분에서 템포와 리듬이 흔들리면서 음악이 지루해지곤 했는데, 템포가 느리다고 풀어질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집중해서 얼음장 같은 긴장감을 내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그러나 피아노의 묵직한 스타카토 음형을 업고 호른이 전면에 나서면서 조금씩 분위기가 바뀌었다. 앙상블이 흐트러지는 것은 여전했지만 연주자들 사이에 묘한 열기가 생겨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마디 188에서는 심벌즈의 제대로 된 '한 방'과 함께 팀파니와 작은북이 신나게 두드려댔고, 트럼펫은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2악장에서는 단조로운 템포에 힘입어 앙상블도 꽤 좋았으며, 3악장에서 목놓아 울부짖는 듯한 현도 훌륭했다. 4악장에서는 앙상블은 가장 나빴지만 그것을 덮을 만한 열기로 연주회장을 압도했다. 곡을 끝맺는 큰북의 무시무시한 타격 일곱 번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북받쳐 오르는 흥분을 이끌어내었다.

나는 서울시향이 이토록 미쳐 날뛰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정명훈이 지휘할 때에는 집중력은 높아도 오히려 단원들이 너무 긴장한 듯한 느낌을 받곤 했지만, 성시연이 지휘하는 서울시향은 군데군데 삐걱거리기는 했어도 단원들이 뿜어내는 열기만큼은 정명훈 때보다 더했다. 물론 작품 특성 탓도 있을 것이다. 특히 마지막 코랄 팡파르는 '브라보'를 이끌어내는 보증수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지휘자의 역할이 작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성시연은 여자이고 나이도 어리다. 그가 주로 활동해온 유럽에서는 유색인종이다. 얕잡아 보이기 딱 좋은 처지에서 악단을 이끌어야 하는 어려움이 오죽할까. 그러나 그는 한 발 잘못 디디면 엉망진창이 되어버릴 위험을 살살 헤치고 단원들 스스로 음악에 몰입하게 하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줬다. 넓은 시야를 가지고 뼈대를 탄탄하게 살리는 솜씨도 돋보였다. 화려한 콩쿠르 입상 경력이 어떤 바탕에서 나왔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웃지 못할 일화 하나. 성시연이 국내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구스타프 말러 지휘 콩쿠르에서 1위 없는 2위에 입상하면서부터다. 그런데 이미 그보다 한 해 앞서 그가 게오르그 솔티 국제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했던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다. 마침 김선욱이 리즈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음악계가 온통 김선욱 소식으로 달아올랐기 때문이다. 김선욱은 뜻하지 않은 피해자 성시연에게 협주곡 협연으로 보상해야 한다. 아님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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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27일 목요일

2007.11.28. 브람스 하이든 주제에 의한 변주곡 / 독일 레퀴엠 - 정명훈 / 서울시향

2007년 11월 28일(수) 오후 7시 30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지휘자 : 정명훈
협연자 : 김영미(소프라노), 사무엘 윤(바리톤), 서울시합창단, 서울모테트합창단

Brahms, Variations on a Theme of Joseph Haydn, op. 56a (17')
Brahms, Ein deutsches Requiem (68')



브람스가 <하이든 주제에 의한 변주곡>을 작곡한 것은 교향곡 1번을 완성하기 3년 전인 1873년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작곡가 브람스가 완숙기에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분수령이라 할 수 있으며, 동시에 청년 시절부터 써오던 변주곡 시리즈를 끝맺는 '마지막 습작' 같은 곡이기도 하다. 이 둘 가운데 어느 쪽에 무게를 두느냐에 따라 해석 방향이 갈릴 수 있겠는데, 정명훈은 드물게 '습작'에 적지 않은 무게를 둔 것 같다. 그러한 의도는 첫 번째 변주부터 매우 뚜렷하게 나타났다. 템포를 ♩= 105 정도로 잡아 관습적인 템포(대략 ♩= 88)에 비해 빨라도 너무 빨랐던 것이다. 이에 따라 두텁고 어두운 화음을 강조하기보다는 비교적 가볍고 생기있는 '젊은 브람스'를 내세워 브람스에 대한 굳은 생각을 깨트리도록 관객을 도발하는 듯했다.

두 번째 변주부터는 점점 낯설지 않은 템포가 되었다가 나중에는 오히려 점점 느려져서 거대한 리타르단도(점점 느리게) 효과가 나타났다. 마지막 아홉 번째 변주에서는 다시 살짝 아첼레란도(점점 빠르게)를 사용하여 대칭을 이루도록 했는데, 이것은 마지막 변주가 저음 반복(ostinato)을 바탕으로 또 다른 변주곡 형태인 파사칼리아(passacaglia)를 이룬다는 점에서 설득력 있는 해석이다. 다만, 이러한 특징이 관객에게 얼마나 잘 전해졌는지는 의문이다. 비정상적으로 거대한 연주회장 탓에 소리가 뭉개지기 일쑤였는 데다가 변화무쌍한 템포에 단원들이 미처 충분히 자신감을 느끼지 못한 듯 리듬과 다이내믹이 그다지 또렷하지 못한 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휴식 시간 없이 이어진 <독일 레퀴엠>. 이 작품은 예배용 음악이 아니다. 원어 제목인 "Ein deutsches Requiem"에서도 드러나듯 라틴어가 아닌 독일어를 가사로 했을 뿐 아니라 경외서(The Apocryphia)에 나오는 글귀도 일부 가사로 썼으며, 무엇보다 내용 구성이 미사 전례를 따르지도 않고 예수의 속죄나 심판의 날을 준비하는 종말 신앙을 앞세워 드러내지도 않는다. 또 가사를 성서에서 따왔을 뿐 사실은 특정 종교를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부분도 없다. 요컨대 이 작품은 삶과 죽음에 대한 보편적인 고뇌를 담고 있으며, 죽은 사람보다는 산 사람을 달래는 곡이다. 이날 연주는 대규모 합창단을 앞세워 고통과 환희와 위안을 생생히 그려낸 한 편의 드라마였다. 2악장에서 팀파니가 이끌어내는 땅울림과 저 깊은 곳에서 북받쳐 오르는 합창의 흥분을 지나 6악장의 '죽음(Tod)'과 '지옥(Hölle)' 가사에 맺힌 절규와 사이 사이를 잇는 푸가토가 특히 좋았다. 마지막 7악장을 들으면서는 문득 김종철의 시구(詩句)를 떠올렸다. 느릿한 템포로 이완된 분위기가 '설레이는 神의 겨울, 그 길고 긴 먼 복도를 지내나와' '어머니 나라에 누운 듯' 편안했다.

합창단과 독창진이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훌륭했으며, 그 가운데 바리톤 사무엘 윤이 누구보다도 뛰어났다. 바그너 전문 가수답게 풍부한 성량, 깊고 안정된 음색, 나무랄 데 없는 딕션과 독일인보다 더 독일인다운 '그르릉' 소리, 독일어 무성음을 타악기처럼 활용하는 솜씨, 유럽 오페라 극장에서 잔뼈가 굵은 경험에 힘입은 배우 본능, 연주회장을 압도하는 제왕의 카리스마! 무엇보다 그는 관현악을 멋대로 끌고 가는 대신 음악의 흐름에 맞게 어우러질 줄 알았다. 이것은 오페라 아리아 한 가락 멋지게 부르는 데에만 익숙한 한국 가수들에게서 찾아보기 어려운 값진 능력이다. 이런 가수가 더 많이 나와서 베토벤 교향곡 9번을 연주한다면 그 얼마나 멋지겠는가! 재작년 성남 아트센터에서 있었던 구노의 <파우스트>에서 메피스토펠레로 나와 신들린 연기와 노래를 들려준 가수를 기억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바로 그가 이날 또 한 번 관객을 사로잡은 그 가수다. 사무엘 윤. 장담하건대 열 몇 해 안에 거물이 될 사람이니 그 이름을 꼭 기억해두기 바란다.

소프라노 김영미는 사무엘 윤에게 가려 빛이 바래버렸지만 사실은 나름대로 꽤 훌륭했다. 5악장 독창부는 고음으로 갈수록 음정과 리듬이 잘 맞지 않으면 듣기 싫은 소리가 되기 쉽지만, 김영미는 위험한 부분을 대부분 잘 처리했다. 사무엘 윤과 마찬가지로 '독창'이 아닌 '협연'을 할 줄 아는 가수였다는 점도 반가웠다. 다만, 초반에 고음에서 음정이 살짝 흔들린 것이나 5옥타브 B♭이 나오는 마디 56에서 잠시 템포를 떨어트린 것 등은 옥에 티였다. 목소리가 소녀처럼 맑고 가녀려서 마치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와 노래하는 듯했으나 성량이 좀 작은 듯해서 아쉽기도 했다. 말러의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 Des Knaben Wunderhorn> 중 "천상의 삶 Das himmlische Leben"(교향곡 4번 4악장이기도 함)에 무척 잘 어울릴 듯싶다.

합창단에게는 솔직히 말해 별로 기대하지 않았으나 웬걸, 생각보다 너무 잘해서 깜짝 놀랐다. 1악장 여린 음부터 감탄을 자아냈는데, 흔히 대규모 합창단이 메조포르테보다 여린 소리를 감당하지 못하는 것을 보아 왔기 때문이다. 이날 연주에서는 피아노까지는 꽤 안정적이었고 피아니시모도 나쁘지 않게 소화했다. 푸가에서도 성부 균형이 잘 맞았고, 지휘자의 지시에 반응하는 것도 재빨랐다. 물론 흠 잡으려면 얼마든지 잡을 수 있지만, 우리나라 합창단 사정이 어려운 것은 안 봐도 뻔한데 이렇게까지 해내다니 그저 기운을 북돋워주는 말만 해주고 싶다. 그리고 바라건대 합창단도 서울시향처럼 재단의 든든한 지원을 업고 선진화된 시스템으로 관리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상식 하나. 레퀴엠을 연주할 때에는 박수를 치지 않는 게 관례다. 장례식장에서 웃고 떠들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물론 <독일 레퀴엠>은 정식 미사 레퀴엠도 아닌데다 연주회장에서 연주가 끝났을 때 박수를 치지 않고 멀뚱멀뚱 있는 것도 이상하지만, 적어도 연주가 끝나자마자 요란한 박수가 터져 나오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다. 이날 정명훈은 마지막 잔향이 완전히 사라지고도 10초 이상 지휘봉을 내리지 않고 침묵을 '연주'했다. 이른바 '안다 박수'가 막판에 분위기를 깨는 일이 잦은 우리나라에서 흔치 않은 광경이었다. 연주자에게도 관객에게도 축복을, Selig s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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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철. 2007.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2009년 8월 25일 화요일

2007.08.19.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 / 브람스 교향곡 3번 - 김선욱 / 정명훈 / 서울시향

2007년 8월 19일(일) 오후 7시 30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지휘자 : 정명훈
협연자 : 김선욱, pf.

Brahms, Piano Concerto No. 1 in d minor, Op. 15
Brahms, Symphony No. 3 in F major, Op. 90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은 최초 구상이 교향곡이었다고 잘못 알려지곤 하는데, 원래는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였다. 다만, 수차례의 전면적 개정 과정에서 교향곡이 될 뻔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그 흔적이 작품 곳곳에 나타나 있다. 특히 1악장에 그러한 특징이 뚜렷한데, 일반적인 협주곡과는 달리 독주 악기에 대한 배려가 많이 부족해서 피아노 협연자에게는 연주하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다. 테크닉 문제를 떠나 우선 오케스트라의 거대한 음량에 맞서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세부 표현은 그다음 일이다.

피아니스트 김선욱은 강력한 타건으로 협주곡으로는 흔치 않은 대 편성으로 위압하는 서울시향과 팽팽히 맞섰으며, 그러면서도 정교한 테크닉과 섬세한 감성을 놓치지 않아 과연 유명세가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다. 1악장에서 다소 불안정한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의견도 더러 있었으나, 내 생각에는 이 정도면 이제 약관에 이른 연주자라 믿기 어려울 만큼 훌륭했다. 작품이 워낙 까다로우니만큼 이보다 더 잘한다면 차라리 대가라 불러야 할 것이다.

김선욱의 피아노는 단단했으며 확신에 차 있었다. 때때로 살짝 쇼팽을 연상시키면서도 밝은 톤을 잃지 않는 루바토를 드러내기도 했는데, 그러면서도 나이 어린 연주자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의식 과잉으로 유치해지는 일은 결코 없었다. 오케스트라와 교묘하게 줄다리기를 해가며 음악에 긴장감을 더해가는 솜씨가 특히 놀라웠는데, 이것은 혼자 연습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역시! 김선욱은 평소에 실내악 연주를 너무 좋아해서 주위에서 말릴 정도란다. 남다른 '앙상블 내공'을 쌓게 해준 것이 다름 아닌 실내악 연주일 테니 말릴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권장할 일이 아닐까.

서울시향의 연주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1악장 마디 66부터 비올라를 유난히 강조한 것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의 열악한 음향 환경이 뉘앙스를 제대로 살리지는 못했다. 마디 190에 아첼레란도를 쓴 것은 차분한 상태에서 재빨리 긴장감을 끌어올리기에는 좋았으나, 그 폭이 너무 커서 약간은 어색한 감이 있었다. (나중에 라디오로 들었던 22일 연주회에서는 아첼레란도의 폭을 약간 좁혀서 딱 적당했다.) 2악장은 4분 음표의 연속에 따르는 두터운 화성이 피아노와 상승작용을 하는 것이 매력적이지만, 서울시향은 투명한 현의 칸타빌레로 두터운 화성을 희석시키며 피아노와 미묘한 음색 대비를 이룬 것이 내 취향에는 맞지 않았다. 3악장이 특히 훌륭했으며, 기대했던 푸가토(마디 238) 역시 좋았다. 다만, 약간 더 욕심을 부리자면 악센트를 좀 더 분명하게 살렸으면 싶었다.

교향곡 3번은 '자유롭게 그러나 즐겁게(Frei aber Froh)'라는 모토에서 머리글자를 따온 것으로 알려진 F-A♭-F 모티프로 유명하다. 이와 관련한 자세한 사실관계는 학술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일단 이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전체 악곡의 조성 계획 또한 이 모티프와 무관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원 조성은 F 장조이며, 2악장과 3악장은 C 음을 으뜸음으로 하는 장·단조인데 여기서 C 음은 F 음의 딸림음(dominant)에 해당한다. 결국, 전체 악곡은 F-C-F의 구조로 되어 있으며, F-A♭-F라는 F 단조 화음에 생략된 5음인 C가 악곡의 전개에 중요한(dominant) 역할을 하는 것이다. 게다가 4악장에는 F-C-F라는 거시적인 구조가 다시 한 번 축약되어 있기도 해서 전체 악곡이 4악장을 향한 강한 추진력을 가진다.

정명훈의 해석은 이러한 목표지향적 구조를 매우 잘 드러내었으며, 그런 의도는 1악장에서부터 드러난다. 우선 템포가 꽤 빨랐고(시작 부분의 템포는 대략 ♩♩ = 85), 그런데도 1악장의 제시부 반복을 생략했다. 교향곡 1악장의 제시부 반복 생략은 19세기 작품을 연주할 때 흔히 있는 일이지만, 브람스 교향곡 3번과 같은 짤막한 곡에는 그런 경우가 흔치 않다.

2악장은 아기자기한 맛을 잘 살렸으며, 3악장은 감정의 낭비를 자제하여 4악장을 향한 방향성을 분명히 밝혔다. 유명한 3악장은 자칫 신파조가 될 위험이 있는데, 이것은 브람스답지 않을 뿐만 아니라 4악장의 무게감을 줄일 위험이 있어 좋지 않다. 서울시향은 첼로의 부점 리듬을 약간 무디게 연주했으며, 바이올린의 부선율을 적당히 살렸고, 목관 등의 투명한 음색을 놓치지 않아 신파조로 흐르지 않으면서도 지나치게 무표정하지는 않도록 중용의 묘를 보여주었다.

4악장의 재현부에 해당하는 마디 172 이후는 전체 조성 구조가 절정에 이르는 곳이라 할 수 있는데, F-C-F로 이어지는 조성 구조에서 F 장조로 마침내 해결되기 직전에 이제껏 쌓인 긴장이 선명한 f 단조에 의해 폭발하기 때문이다. 서울시향의 집중력 또한 이 부분에서 절정을 이루었으며, 객석에 전달된 긴장감은 연주회장의 열악한 음향으로 상당 부분 무뎌지고도 여전히 강력했다.

이날 연주에서는 모든 악기가 훌륭했지만, 그 가운데서도 강력한 집중력을 보여준 현의 역할이 컸다고 판단된다. 라디오 프랑스 오케스트라의 악장 출신인 스베틀린 루세브(Svetlin Roussev)가 서울시향의 악장을 맡은 것이 효과를 거두고 있기 때문일까.

4악장이 진정한 F 장조를 회복하는 것은 코다에 이르러서인데, 이미 f 단조 부분에서 모든 긴장을 폭발시켰으므로 일반적인 교향곡과는 달리 조용하게 끝난다. 그런데 곡이 차분히 끝나는 만큼 연주가 완전히 멈춘 뒤의 마지막 몇 초의 여운이 중요한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열광적인 '브라보'에 익숙한 관객이 그 몇 초를 견디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이날 연주에서는 고작 3-4초 정도의 여운을 바리톤 음성의 '브라보'가 깨트렸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아직 지휘자가 팔을 내리기 전이었다. 며칠 뒤에 예술의 전당에서 있었던 연주회에서는 아예 연주가 끝나자마자 이른바 '안다 박수'가 터져 나왔다고 한다. 앙코르로 베르디의 <운명의 힘> 서곡을 연주하기 전에 정명훈이 했던 말이 걸작이었다. "한국에서는 음악이 조용히 끝나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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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24일 월요일

2007.06.27. 브람스 이중협주곡 / 교향곡 2번 - 김수빈 / 지안 왕 / 정명훈 / 서울시향

2007년 6월 27일(수) 오후 8시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지휘자 : 정명훈
협연자 : 김수빈(vn), Jian Wang(vc)

Brahms: Double Concerto in a minor, Op. 102 (32')
Brahms: Symphony No. 2 in D major, Op. 73 (40')



정명훈이 지휘를 맡는 연주회에 대해 내가 개인적으로 품은 불만 한 가지는 대부분 연주회장이 세종문화회관이라는 것이다. 객석이 많은 만큼 수익성이 높다는 장점을 무시하기는 어렵겠지만, 연주회장의 음향이 열악한 만큼 마니아들의 반응도 차가운 법이라 세종문화회관에 너무 의존하는 것은 장기적으로는 수익에도 악영향을 끼치리라는 점 또한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이번 연주회가 드물게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것이 반갑다. 과연 소리 자체가 주는 감동의 깊이가 달랐다.

오케스트라의 전체적인 음량 또한 기대 이상으로 컸다. 이는 연주회장의 음향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정명훈 표 브람스'라서 더욱 그랬지 싶다. 이것은 협연자로서는 그다지 반가운 일만은 아닐 것인데, 지안 왕과 김수빈은 특히 1악장에서 오케스트라의 육중한 소리에 대적하려고 현과 활의 강력한 텐션을 만들어 내느라 고생하는 듯했다. 김수빈은 이 때문인지 아니면 평소 습관인지 유난히 풀 보잉(full bowing)을 자주 사용했고, 지켜보기에 불안할 만큼 뻣뻣한 자세를 자주 보였다. 그러나 겉보기와는 달리 연주는 상당히 훌륭했으며, 뒤로 갈수록 나아지는 모습을 보였다. 2악장에서의 서정미도 뛰어났고, 3악장에서는 바이올린과 첼로가 얽히고설키는 스타카토 음형에서 보여준 두 협연자의 정교한 앙상블이 백미였다.

3악장 첫머리에서 나는 지안 왕의 운지법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였는데, 레가토로 연주하면서 무려 5도 도약을 해야 하는 난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보기 위해서였다. 그는 무리한 '손가락 찢기' 대신에 현을 바꾸어 연주하는 속 편한 방법을 택했으며, 결과적으로 5도 도약은 논 레가토(non legato)가 되었다. 김수빈 역시 마찬가지로 논 레가토로 처리했다. 외람된 의견이지만 이 음형의 도발적인 매력을 살리려면 포르타멘토를 써서라도 현을 바꾸지 않고 최대한 레가토의 느낌을 살리는 것이 좋다고 본다. (이 경우 L-포르타멘토, 즉 도약을 먼저 한 다음 미끄러지는 방법이 적당하다.)

브람스 교향곡 2번에서는 국내 오케스트라의 고질적인 문제 가운데 하나인 악기군 간의 앙상블 문제가 상당히 해결된 듯해 보였다는 점이 놀라웠다. 서울시향은 특히 개인적으로 앙상블 난조를 예상했던 2악장 푸가토(마디 17) 부분에서 매우 깔끔한 연주를 들려주었으며, 그 가운데 호른의 역할이 유난히 돋보였다. 1악장 마디 137의 D조 호른과 마디 144의 E조 호른 역시 적당한 밸런스에 호른끼리 꼬이는 일도 없이 안정된 연주를 들려주었다. 이날따라 금관이 전반적으로 훌륭했으며, 객원으로 보이던 팀파니 주자의 깔끔한 연주도 기억에 남는다.

악기군 간의 앙상블이 좋으니 이제는 악기군 내의 앙상블에 더 욕심을 부릴 만하다. 특히 현악기군의 앙상블이 유럽 수준으로 발전하기를 희망해 본다. 이날 연주에서 아쉬웠던 부분으로는, 이를테면 3악장 트리오 부분에서 악센트가 두드러지지 않아 심심한 연주가 되어버렸다.

정명훈의 해석에서 인상적이었던 점은 1악장의 템포를 상당히 느리게 잡았다가 2악장부터 차츰 빠르게 함으로써 거대한 아첼레란도를 구현한 것이었다. 게다가 4악장 코다에서는 이음매마다 가속하여 곡이 끝날 무렵에는 ♩♩= 120 정도의 아찔한 템포로 광란의 토카타를 연출했다. 4악장 마디 118에서 E조 호른의 포르테를 제대로 살린 것도 색달랐다.

관객의 반응 또한 대단했다. 예전에는 정명훈의 이름값에 혹해 과장된 환호를 보내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으나, 이날 연주회에서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정명훈이 아닌 '음악'에 진심으로 감동한 듯한 우렁찬 박수가 연주회장을 뒤흔들었으며, 기립박수 등 과시적인 행동을 보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정명훈에게는 그것이 불만이었나 보다. 몇 번의 커튼콜에 화답하던 그가 갑자기 객석을 향해 기립 사인을 보냈던 것이다. 정명훈의 연주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관객 전원 기립 사태가 발생했다. 물론 나는 정명훈의 '정치적인' 제스처와 그 바탕의 자신감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는 그런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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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18. 라벨 팡파르 / 모차르트 신포니아 콘체르탄테 K364 / 라벨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 / 드뷔시 바다 - 미코 프랑크 / 서울시향

2007년 5월 18일(금) 오후 7시30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지휘자 : 미코 프랑크 Mikko Franck
협연자 : Gary Graffman(Pf), Roberto Diaz(Va), Elissa lee Koljonen(Vn)

Ravel: Fanfare
Mozart: Sinfonia Concertante, K364 (30')
Ravel: Concerto for Left Hand (19')
Debussy: La Mer (23')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은 연주회장으로는 너무 커서 좋은 소리를 기대하기 어렵다. 특히 모차르트 이전 시대의 소편성 작품은 이 연주회장에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 이날 연주회 첫 곡이 모차르트의 <코지 판 투테> 서곡에서 라벨의 <팡파르>로 갑자기 바뀐 것은 지휘자 미코 프랑크가 연주회장을 둘러보고는 이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 아닐까. 라벨의 <팡파르>는 금관과 타악기 위주의 매우 짧은 작품으로 '급한 불'을 끄기에 더없이 적절한 작품이었다. 지휘자는 영리했다.

그러나 모차르트의 <신포니아 콘체르탄테>의 경우 사전 이견 조율 없이 지휘자 마음대로 프로그램을 바꾸지는 못했을 터. 대신에 울림이 많은 연주회장에 맞게 템포를 느긋하게 잡았다. 독주자들은 음량을 충분히 확보하려고 현과 활의 텐션에 유난히 신경 쓴다는 인상을 받았으며, 그래서인지 미세한 보잉 실수가 잦았다. 엘리사 리 콜조넨은 바이올린의 까랑까랑한 음색을 적극적으로 살려 매우 섹시한 연주를 들려주었고, 비올리스트 로베르토 디아즈는 한발 양보해서 콜조넨을 부각시키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그런가 하면 두 연주자 모두 비슷한 루바토를 구사하여 역시나 이들이 부부 사이임을 자랑하는 듯했다.

라벨의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한 게리 그래프만은 80세를 바라보는 나이로 노익장을 과시했으나, 역시 나이를 속이지는 못하는 듯 음량이 거대한 연주회장을 감당하기에는 힘겨워 보였다. 다만, 음량이 부족한 것과 터치가 날렵하지 못한 것 등을 빼면 커다란 밑그림이나 악상의 자연스러운 흐름, 다양하고 적절한 음색 등은 그의 연륜이 빛을 발하는 부분이었다. 음악성은 거장인데 기술적인 부분이 따라주지 않으니, 얼핏 들으면 엉터리 연주이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대단한 깊이가 묻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피아노의 음량이 부족한 부분은 라벨의 화려한 관현악이 메워주었으며, 특히 스네어 드럼(snare drum)이 필요 이상으로 전면에 나선 것이 주효했다.

드뷔시의 <바다>에서는 앞서 스네어 드럼을 연주했던 타악기 수석 에드워드 최가 이번에는 글록켄슈필(Glockenspiel)을 연주했는데, 역시 딱 밉지 않을 만큼만 튀어서 음악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특히 2악장에서 울림이 지나치게 풍부한 연주회장의 음향 환경과 군데군데 앙상블 난조로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연주에 글록켄슈필의 활약이 유난히 돋보였다. 이것은 음색에 대한 탁월한 상상력과 더불어 뛰어난 밸런스 감각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생각되며, 그런 점에서 에드워드 최의 센스에 경의를 표한다.

지휘자 미코 프랑크는 젊은이다운 패기로 서울시향의 자잘한 실수에 아랑곳하지 않고 뚝심 있게 밀어붙이는 모습이 멋졌다. 연주회장의 음향 환경에 영리하게 적응한 것도 훌륭했다. 그러나 단원들 개개인의 기량을 합주력으로 온전히 이끌어내는 데에는 다소 미숙함을 보였으며, 현대적인 음색을 다채롭게 살리지도 못했다. 서울시향은 외국 유수 악단에 비해 아직은 지휘자의 역량에 따라 연주의 완성도에 커다란 기복을 보이는 연륜이 짧은 악단이다. 젊고 뛰어나지만 경험이 부족한 지휘자는 서울시향에는 그다지 맞지 않음을 이번 연주회로 알 수 있었다.

세종문화회관을 찾을 때마다 대극장의 열악한 음향 때문에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런데 시청 본관 건물을 시향의 연주회장으로 활용한다는 소식이 들리니 이보다 반가운 일이 없다. 아무쪼록 공사 초기부터 음향 전문가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여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부족함 없는 뛰어난 연주회장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나중에 붙임: 원고 보낸지 하루만에 계획 백지화 발표됨. 아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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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20일 목요일

2007.01.09. 브람스 대학축전서곡, 바이올린 협주곡, 교향곡 1번 - 카바코스 / 정명훈 / 서울시향

브람스 스페샬 관현악 시리즈 1
2007년 1월 9일 오후7시30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Brahms: Academic Festival Overture in c minor, Op.80(10')
Brahms: Violin Concerto in D Major, Op.77 (38')
Brahms: Symphony No.1 in c minor, Op.68 (45')
 
정명훈 지휘
Leonidas Kavakos (Vn.)



브람스에 대해 얘기하려면 그에 앞서 언급해야만 하는 작곡가가 있다. 베토벤! 그는 고전주의 양식을 완성한 사람이면서 스스로 그것을 해체하여 낭만주의 시대를 열어젖힌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그의 목표지향적 주제 발전 기법, 리듬과 화성에 담긴 역동적인 에너지, 고난과 역경을 이기고 "어둠에서 광명으로" 나아가려는 영웅적 정신은 후대 작곡가들이 추구해야 할 이상이 되었다. 그러나 그 이상은 넘어설 수 없는 장벽이기도 했다. 그 자체로 완벽한 것에는 새로운 것을 덧붙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낭만주의 음악의 분수령이었던 베토벤의 양식은 본격적인 낭만주의 정서와 맞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음악학자 달하우스(Karl Dahlhaus)에 따르면 이 아이러니를 해결하는 것이야말로 낭만주의 시대 작곡가들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였다. 슈베르트는 <미완성 교향곡>에서 베토벤적인 도입부(intro) 주제를 발전부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멘델스존은 <스코틀랜드 교향곡>에서 리트(Lied)적인 주제를 부분적으로 병치시키면서 대위법적인 효과를 노렸으며, 베를리오즈는 <환상교향곡>에서 온음계적 주제선율의 배경에 반음계적 시퀀스(동형진행)를 사용해 주제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았다. 그러나 이 모든 시도들은 근본적인 해답이 되지 못했으며, 마침내 모범답안을 내놓은 사람은 낭만주의라는 시류와 다소 거리를 두고 베토벤이라는 근본적인 화두로 고민한 브람스였다.

그는 베토벤의 주제 발전 기법을 극한까지 확장하여 단일 음정마저도 모티프(motif) 변형의 단위로 삼았고, 원 주제의 마디 구조와 화성, 리듬 등을 끊임없이 변형시켰으며, 이러한 기법을 전체 악곡의 진행 원리로 삼았다. 이렇게 변형된 모티프의 조각들은 베토벤보다 훨씬 촘촘한 그물망을 이루었으며, 나아가 전체 악곡의 구조를 지탱하는 정교한 논리가 되었다. 20세기 작곡가 쇤베르크가 "발전적 변주(developing variations)"라 부른 이 기법은 베토벤의 후계자를 자처하던 바그너(또는 리스트)의 기법보다도 세련된 것이었으며, 이로써 적어도 음악 형식에는 브람스야말로 베토벤의 진정한 후계자라는 데에 누구도 이의를 달 수 없게 되었다. (사견을 말하자면, 베토벤의 정신적 계승자는 바그너라 할 수 있다. 이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독자도 많겠지만, 이 글의 주제는 바그너가 아니므로 더 자세한 내용은 나중을 기약하기로 하자.)

베토벤과 브람스의 이러한 관계를 살펴볼 때, 기본기부터 확실히 쌓겠다며 작년 한 해 베토벤 교향곡 전곡을 연주한 정명훈과 서울시향이 다음 목표로 브람스를 택한 것은 필연적이라 할 수 있다. 정통 레퍼토리에 도전하는 서울시향의 자세는 베토벤을 정면으로 마주한 끝에 베토벤의 적통이라는 월계관을 거머쥔 브람스와 통하기도 한다.

대학축전 서곡은 폴란드 브로츠와프(Wrocław; 당시는 프로이센의 영토였으며 독일식 이름은 브레슬라우) 대학에서 브람스에게 수여한 명예박사 학위에 대한 답례로 작곡되었으며, 브람스가 괴팅겐(Göttingen)에서 배운 4곡의 학생가를 인용하고 있다. 대학축전 서곡은 브람스의 여느 작품과는 달리 유쾌한 분위기로 가득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브람스 시리즈를 여는 서곡의 역할로 제격이었다. 이날 연주에서는 브람스의 유머를 정명훈 특유의 세련된 감성으로 살려냈다. 마디 24에서 바이올린의 피치카토(현을 손끝으로 튕기는 연주법)를 솔로 바이올린으로 강조한 것도 흥미로웠고, 학생가 가운데 "신입생의 노래 Was kommt dort von der Höhe"가 인용된 마디 157에서 템포를 관습적인 수준보다 더 빠르게 변화시킨 것도 좋았으며, 여기서 목관과 현의 아기자기한 앙상블도 훌륭했다. 가장 좋았던 부분은 "신입생의 노래"와 또 다른 음악적 모티프의 조각들이 섞이면서 거대하게 부풀었다가 갑자기 멈추면서 약음기를 낀 호른이 우스꽝스러운 음색으로 '빼액' 하는 부분(마디 259)이었다. 몇몇 음반에서는 이 부분이 무표정하거나 심지어 화난 듯한 음색이어서 실망하곤 하는데, 이날 연주에서는 천박하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익살스러웠다. 이런 식의 유머는 이를테면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 제2막에서 꼬마가 "나팔이랑 말 사줘! Vo' la tromba, il cavallin!" 하면서 떼쓰는 장면과도 닮았다. 관악기의 리듬이 엇갈리는 부분(이를테면 마디 91 등)은 그 리듬을 기계적으로 살리면 우스꽝스럽게 들리기도 하는데, 다수의 녹음에서는 내림박에 확실한 주도권을 주지만 이날 연주에서는 이것을 그대로 살렸다. "기쁨의 노래 Gaudeamus igitur"가 인용된 부분에서도 마찬가지로 금관의 숨겨진 리듬을 살렸는데(특히 마디 387-390), 대부분의 녹음에서는 "기쁨의 노래"의 고양감을 높이도록 주선율을 강하게 부각시키기 때문에 이날 연주를 낯설게 느끼거나 심지어 서울시향의 금관 앙상블이 엉터리였다고 생각한 관객도 더러 있었을 것이다. 이 리듬을 특히 잘 살린 녹음으로는 아르농쿠르-베를린필의 것이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거대한 연주회장에서 낼 수 있는 음량의 한계를 절실히 드러내어 전용 연주회장의 마련이 시급함을 새삼 일깨우기도 했다. 특히 스타카토(한 음씩 끊음) 음형으로 큰 폭의 크레셴도(점점 세게)를 이루는 마디 41-45는 매우 실망스러웠다. 물론 음반에서 들을 수 있는 과장된 다이내믹에 익숙한 탓도 있겠고, 서울시향 현악기 주자들 실력이 유럽 일류 악단에 비하면 손색이 있기도 하겠지만, 적어도 여기서 힘이 많이 부족했던 것은 아니었다. 만약 그랬다면 "기쁨의 노래"에서 금관이 찬가처럼 부풀렸다가 현과 목관으로 선율을 넘겨주는 순간(마디 383) 전체 앙상블이 어이없이 힘을 잃고 말았을 것이다. 물론 이날 연주에서는 그런 일이 없었다. 이날 악기 편성은 호른을 한 대 추가한 것을 제외하면(호른 수석의 보조 역할) 악보의 지시를 정확하게 지켰다.

... 대략 여기까지 썼을 때 편집장님의 전화를 받았다. 먼저 보낸 베토벤 연주회 리뷰가 너무 길다면서 이번에는 원고지 15장 이내로 해달란다. 그때까지 써놓은 것을 보니 벌써 20장...;; 게다가 연주회 다음날이 원고 마감일이라니... OTL

결국 날림으로 쓴 게 아래 글이다. 정말이지 이따위로 쓰고 싶지는 않았다. 홈페이지에나마 쓰고 싶은 말 다 쓰려고도 생각했다가... 귀찮다. -_-; 다음 연주회나 준비해야겠다. 어, 근데 프로그램이 바뀌었잖아? OTL

브람스는 베토벤의 음악적 유산을 계승하면서도 시대의 변화에 맞는 새로움을 담아내야 하는 낭만주의 시대 작곡가들의 과제에 대해 일체의 편법을 거부하고 베토벤이라는 근본적인 화두로 고민했다. 그리고 마침내 베토벤의 적통이라는 월계관을 거머쥐었다. 이것은 기본기부터 확실히 쌓겠다며 정통 레퍼토리에 도전하고 있는 서울시향의 태도와도 통하며, 서울시향이 베토벤에 이어 브람스 시리즈를 택한 것은 이러한 음악사적 맥락을 생각할 때 거의 필연적이라 할 수 있다.

대학축전 서곡은 브람스의 여느 작품과는 달리 유쾌한 분위기로 가득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브람스 시리즈를 여는 서곡의 역할로 제격이었다. 이날 연주에서는 브람스의 음악적 유머를 정명훈 특유의 세련된 감성으로 살려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거대한 연주회장에서 낼 수 있는 음량의 한계를 절실히 드러내어 전용 연주회장의 마련이 시급함을 새삼 일깨우기도 했다. 특히 스타카토(한 음씩 끊음) 음형으로 큰 폭의 크레셴도(점점 세게)를 이루는 마디 41-45는 매우 실망스러웠다.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한 카바코스(Leonidas Kavakos)는 매끄럽게 다듬어진 음색과 특별히 모나지 않으면서도 참신한 프레이징(phrasing)을 들려주었다. 비브라토의 속도와 폭은 자연스럽고 적절하여 아름다운 음색을 만들어냈으며 트릴의 속도는 때때로 느린 편이었다. 그러나 힘없이 매끄럽기만 한 것도 아니어서 마르카토(강한 악센트로 끊어 연주함)의 '긁는 맛'을 세련미를 잃지 않는 범위 내에서 충분히 살렸고, 관현악 도입부의 템포가 느린 편이었는데도 독주를 시작하면서 날카로움을 잃지 않았다. 카덴차는 가장 널리 쓰이는 요아힘의 것이었고, 앙코르는 타레가(Francisco Tárrega)의 <알함브라의 추억>이었다. 이 곡은 원래 기타 독주곡으로 카바코스는 활을 현 위에서 여러 번 튕기는 이른바 리코셰(Ricochet; flying spiccato) 주법을 사용하며 정교한 테크닉을 과시했다.

교향곡 1번은 장중한 템포 속에 브람스의 좌절과 분노와 우수와 환희 등을 모두 담아내면서도 정명훈의 특유의 세련된 열정을 잃지 않았다. 템포가 빠른 곳과 느린 곳의 대비를 뚜렷이 살리면서도 이음매를 자연스럽게 처리하는 한편, 프레이즈마다 은근한 템포 변화를 주어 악곡 전체를 조망하는 유려하면서도 정교한 흐름을 만들어내었다.

브람스 교향곡 1번 해석의 가장 큰 지표가 되는 것은 1악장 도입부(intro)와 종결부(coda)의 템포다. 1악장 도입부의 나타냄 말(expression mark)은 "Un poco sostenuto 음을 조금 늘여서"이고, 제1주제가 시작되는 마디 38에서는 "Allegro 빠르게"가 되었다가 종결부 마디 495에서는 "Meno Allegro 덜 빠르게"가 된다. 결국 느림-빠름-느림의 대칭 구조가 되는데, 브람스는 원래 마디 495의 나타냄 말도 도입부와 같은 "Un poco sostenuto"라 했다가 당시 연주 관습으로 도입부의 템포가 너무 느려지곤 했던 탓에 1악장 처음과 끝을 정확히 같은 템포로 설정한 것은 "멍청한 실수"라 하면서 "Meno Allegro"로 고쳤다.

이날 연주에서는 ‘♪ = 75’ 정도의 템포로 시작하여 제1주제(마디 38 이후)에서는 대략 ‘♩. = 90’으로 변하며 오히려 템포가 빠른 편이 되었지만 자연스러운 이음매로 처음의 장중한 이미지를 잃어버리지 않았다. 반음계적 스타카토 하강 음형이 시작되는 마디 160에서는 ‘♩. = 100’ 정도로 더욱 빨라졌다. 1악장 종결부에서 현의 피치카토(현을 튕기는 연주법) 음형이 아르코(활로 긋는 연주법) 음형으로 변하는 마디 478에서 서서히 템포를 늦추어 "Meno Allegro"에서는 대략 ‘♪ = 110’이 되었다. 결국 ‘느림-빠름-느림’의 대칭 구조를 뚜렷이 살리면서도 "Meno Allegro"의 참뜻을 매우 잘 살렸다. 베토벤의 '운명' 리듬과 반음계적 음형이 점차 거대하게 확장되기 시작하는 마디 293에서 템포가 크게 느려졌다가 팀파니의 강력한 타격과 함께 폭발하는 마디 321까지 서서히 가속한 것도 참신했다.

2악장과 3악장의 템포 대비가 컸던 것도 신선했다. 2악장은 상당히 느렸는데, 그 탓에 오보에가 긴 호흡의 독주를 하는 마디 38에서 16분음 음형이 시작되기 전에 숨을 한 번 들이쉰 것은 옥에 티였다. 원래는 끊지 않고 연주해야 하지만, 레가토로 이어지는 부분만 네 마디가 넘고 이후로도 쉼표 없이 한 마디를 더 연주하면서 숨도 들이쉬지 않고 이어지는 소리를 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클라리넷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지만, 길게 늘어지는 F#(실제 음은 E♭) 음 중간에 아주 살짝 숨을 쉬고 다시 이었다가 16분음 음형으로 들어갔다. 이것이 더 자연스럽기는 했지만, 안타깝게도 오보에는 악기의 음색과 음악적 맥락 때문에 이런 트릭을 쓸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오보에 수석은 이날 가장 빛나는 연주를 해준 단원 가운데 하나였다.

3악장 시작은 ‘♩ = 90’ 정도로 상당히 빠른 템포를 사용했으며, 클라리넷의 반음계적 하행에 이어 8분음 대신 16분음이 전체 텍스처를 지배하기 시작하는 마디 45에서는 템포가 살짝 더 빨라지면서 속도감을 준 것이 참신했다.

4악장도 1악장과 마찬가지로 도입부, 특히 4악장 곳곳에 활용되는 이른바 ‘알프스 호른’ 모티프의 느린 템포와 주부(主部)의 비교적 빠른 템포를 뚜렷하게 대비시키면서도 이음매를 자연스럽게 처리하여 장중함 속에 폭발적 추진력을 담아냈다.

한편, 이번 연주회에서도 연주회장의 음향 문제가 심각함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베토벤 교향곡 8번과 9번 연주회 때보다는 소리가 많이 나아졌다고 느꼈다. 그것은 첫째로 베토벤보다는 브람스가 편성이 더 크고, 둘째로 베토벤 교향곡 9번과는 달리 순수 관현악곡이라 성악 파트와의 불균형 문제도 없었고, 셋째로 베토벤 교향곡 9번과는 달리 악보 가필(加筆) 여부에 따른 생소한 음향이 터무니없는 실수로 오해받는 일도 없었으며, 마지막으로 악장을 비롯한 몇몇 수석 단원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한불 수교 120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라디오 프랑스 등의 유수 악단의 단원이 일부 객원으로 이번 연주회에 참여한 모양인데, 그 가운데 팀파니 주자의 실력이 발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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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철. 2007.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2006.12.27. 베토벤 교향곡 8번, 9번 - 정명훈 / 서울시향

정명훈과 서울시향, 베토벤 심포니 싸이클4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베토벤 교향곡 제8, 9번
 
소프라노 유현아, 메조소프라노 양송미, 테너 정의근, 베이스 양희준, 연합합창단



※ 음악 용어는 국어사전에 나오는 것들은 필요하다고 판단한 부분만 원어 표기했습니다. 또 아스키 텍스트만으로는 점 4분 음표와 점 2분 음표의 표현이 불가능해서 편법을 썼습니다.
♩. = 점 4분 음표
♩♩. = 점 2분 음표
 


"오로지 예술과 학문만이 인간을 신의 경지로 들어올린다." "우리에게는 도덕규범이 그리고 우리 위에는 별이 빛나는 하늘이! 칸트!!"
- 베토벤
 
베토벤은 만인이 신 앞에 평등함을 굳게 믿었으며, 인류의 발전과 진보를 무한히 신뢰하는 당대의 가치관에 누구보다도 강한 영향을 받고 음악을 통해 그것을 실현하고자 노력했다. "고난을 거쳐 별들의 나라로 per aspera ad astra"라는 경구로 흔히 대변되는 이러한 정신은 베토벤에게 거인의 이미지를 부여하였고, 그 이미지는 19세기 후반부터 악기들이 현대적으로 개량되면서 더욱 거대하게 부풀려졌다. 악기 편성은 베토벤이 지시한 것보다 훨씬 큰 규모로 늘어났고, 템포는 느리고 장중해졌다.
 
그러나 그동안의 학술적 성과에 힘입어 작곡 당시의 악기와 관습을 되살리려는 이른바 '원전 연주'가 유행하면서 베토벤 해석의 패러다임도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베토벤이 지시한 악기 편성과 템포를 최대한 지키려는 노력이 나타났으며, 현대 악기를 사용하더라도 베토벤 당시 악기의 장점을 살리는 연주법이 시도되었다. 특히 1997년 베렌라이터(Bärenreiter) 출판사에서 이른바 "원전판" (Urtextausgabe; 이하 베렌라이터 판) 악보를 출판한 이후 이것은 새로운 대세로 굳어지는 추세이다. 원전판 악보란 무엇인가. 음악학자 홍정수의 설명을 빌리자면 원전, 즉 "작곡가가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관여한 기록물이나 출판물"을 바탕으로 "한 음악이 여러 악보들을 통해 전해 내려오면서 변질되는 과정을 밝혀내고 원래의 음악을 재구성"한 학술적 성과물인 이른바 "비평판(Kritische Ausgabe) 악보를 실용적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또한, 원전판은 "원 작곡가가 쓰지 않은, 후에 다른 사람들에 의해 첨가된 부분들을 원칙적으로 피한다. 그리고 원전과 다른 내용을 기록해야 할 경우에는 학술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 부분들만을 첨가한다."
 
정명훈과 서울시향의 베토벤 시리즈도 이러한 추세를 부분적으로 수용했다. 즉, 악보의 지시를 따라 소규모 오케스트라를 사용해 베토벤 시대의 투명하고 아기자기한 앙상블의 장점을 살리려 했다. 객석에서 관찰한 바에 따르면 교향곡 8번에서는 악보가 지시한 관악기 수를 정확하게 지켰고, 현악기 수도 그에 맞게 줄였다. 교향곡 9번에서는 목관 악기와 호른을 두 배로 늘인 듯하다. 그밖에 몇몇 부분에서 베렌라이터 판 이전 시대와는 달라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신 전통적인 베토벤 연주에 익숙한 관객이 낯설어할 만한 템포는 피했다. 반복 기호도 정확히 지키지는 않았는데, 교향곡 8번에서는 3악장 두 번째 미뉴에트에서 반복을 생략했고, 교향곡 9번에서는 2악장 트리오 직전의 반복을 생략했다.
 
그러나, 아아! 정명훈의 중용적인 해석과 서울시향의 잘 다듬어진 앙상블을 망쳐놓은 걸림돌이 있었으니, 바로 터무니없이 거대한 연주회장이었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은 외국 연주자들이 왔다가 다들 깜짝 놀랄 정도로 연주회장으로는 비정상적으로 크다. 어떤 가수는 세종문화회관을 보고서 목 상하겠다며 공연을 취소해버리기도 했단다. 세종문화회관 홈페이지에 따르면 대극장의 객석 수는 3,075석으로 외국 유수 공연장의 약 1.5배에서 2배 정도다. 이런 곳에서는 어지간한 대편성 오케스트라도 제 기능을 못하는데 19세기 초 규모의 소편성 오케스트라로 연주를 했으니, 그 결과는 원래 의도했을 "투명하고 아기자기한 앙상블"이 아니라 저 멀리서 아련하게 들려오는 '목욕탕 사운드'였다. 특히 여러 성부가 복잡하게 얽히는 부분, 이를테면 교향곡 9번 1악장 발전부 이중 푸가(double fugue; 마디 218 이후)는 모든 성부가 흐리멍덩하게 하나로 뭉쳐져서 듣고 있기 괴로울 지경이었다. 대편성을 사용하면 되지 않느냐고? 내가 정명훈이라면 낡은 해석을 고집하는 수구파 지휘자의 낙인을 찍히느니 다 관두고 서울시향을 떠나고 말겠다.
 
지금 서울시향에 가장 시급한 것은 제대로 된 전용 연주회장을 마련하는 것이다. '남의 집 살이'로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연주회 프로그램을 짤 수도 없고, 연습 때와는 전혀 다른 음향 환경에서 본 실력을 발휘할 수도 없다. 무엇보다 음향적으로 열악한 현재의 연습실에서 연습한다고 제대로 된 실력이 쌓일 리가 없다. (서울시향의 리허설을 참관해보고 하는 얘기다.) 서울시향은 개편 이후 비약적인 연주력 향상을 이루어내었고 지금도 꾸준히 발전하고 있지만, 장담하건대 그리 머지않아 정체가 온다. 세계 최고 수준의 악단을 만들겠다고? 미안하지만 제대로 된 전용 홀을 지을 때까지는 어림도 없다! 정명훈이 아니라 카라얀이 살아 돌아와 서울시향을 이끌어도 절대로 불가능하다. 축구 선수들이 잔디 구장은커녕 바닷가에서 연습하고 있는데 히딩크만 데려온다고 유럽 수준의 강팀이 되나?
 
사정이 이러니 이날 연주회는 솔직히 말해 별로 가슴에 와 닿지 않았다. 그러나 적어도 머리로는 정명훈의 해석과 서울시향의 앙상블이 뛰어남을 수긍할 수 있었다. 교향곡 8번에 대한 정명훈의 해석의 키워드는 우아함과 세련됨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은 주로 느긋한 템포 때문인데, 특히 미뉴에트(Menuet) 악장이 그랬다. 악보에 나타난 메트로놈 지시는 '♩= 126'인데, 이 템포는 실제로 미뉴에트 리듬에 맞춰 춤을 추기에는 너무 빠른 감이 있다. 베토벤은 작품 전체에 걸쳐 나타나는 음악적 유머의 하나로 이런 템포를 사용했을 수도 있고, 어쩌면 단지 교향곡 악장 구성의 관습을 따라 미뉴에트 악장을 넣었을 뿐일 수도 있다. 정명훈은 '♩= 100' 정도의 템포로 충분히 춤을 출 수 있을 만한 음악을 만들어내었다. 다른 악장도 마찬가지로 템포를 느리게 잡았고, 작품 속의 여러 가지 유머는 우아함을 잃지 않는 범위 내로 통제되었다. (여기서 음악적 유머란 이를테면 1악장 시작부터 종지형(終止形)을 사용했다는 것(노래 시작했다, 노래 끝났다!) 등이 있겠는데, 19세기 초 유럽의 유머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크게 문제 될 것은 없고 단지 작품의 밝고 즐거운 분위기를 느끼는 정도면 충분하다.) 정명훈의 템포 설정이 진부하다는 의견도 더러 있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도 교향곡 8번은 템포가 더 빠른 연주를 좋아한다. 그러나 만약 연주회장의 음향이 소편성 오케스트라의 장점과 서울시향의 세련된 프레이징을 뚜렷하게 살려주었더라면 누구나 이날 연주의 참맛을 알 수 있었으리라.
 
베토벤 교향곡 8번은 바이올린의 활 사용과 관련해서 특히 첫째 마디에 난점이 있다. 바이올린은 첫 세 음을 레가토, 즉 부드럽게 이어서 연주하고 다음 두 음을 스타카토, 즉 짧게 끊어서 연주하여 둘째 마디로 넘어간다. (여기서 '스타카토'는 바이올린 주법의 일종이 아닌 일반적인 의미로 사용했으며, 베렌라이터 판 악보에서는 스타카티시모, 즉 아주 짧게 연주하도록 고쳐졌다.) 그런데 셈여림 등의 음악적 맥락을 고려하면 활을 현 위에서 가볍게 튕기는 이른바 스피카토 등의 주법을 쓰기에 마땅치 않다. 내가 여러 음반을 확인해본 결과 모두 활을 현에서 떼지 않은 상태로 분절적인 느낌을 주는 이른바 데타셰 주법을 사용했지만 스타카토의 분절적 느낌은 모두 달랐다. (활을 현에서 떼는 특수한 데타셰도 있지만 얘기가 너무 복잡해지므로 넘어가자.) 여기서 결국 중요한 것은 보잉(bowing)의 방향 설정인데, 서울시향은 레가토 부분에 내림활을 쓰고 스타카토 부분에서 방향을 바꿔주는(내림-올림-내림) 무난한 보잉을 택했고 스타카토의 분절적인 느낌도 잘 살렸다. 그러나 이렇게 하면 한 가지 문제가 생기는데, 둘째 마디 첫 음이 올림활이 되는 것이다. 마디 첫 음은 내림활을 쓰는 것이 여러모로 유리하며, 특히 둘째 마디 첫 음은 앞서 말한 바 있는 음악적 유머로서의 종지형이므로 더더욱 내림활이 좋다. 어떤 음반에서는 여기서 올림활 특유의 소리가 커지는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서울시향은 둘째 마디 첫 음을 충분한 음가로 연주하지 않고 중간에 살짝 끊음으로써 난점을 교묘하게 피했다. 같은 패턴의 리듬이 사용된 마디 162와 1악장 끝인 마디 372에서도 같은 보잉을 사용했다. 이 부분의 보잉이 특이한 영상물로는 번스타인-빈필과 아바도-베를린필의 것이 있다.
 
교향곡 9번은 종악장 도입부의 이른바 '공포의 팡파르'가 음반으로 듣던 것과 너무 달라 당황한 관객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서울시향이 특별히 큰 실수를 한 것은 아니고 사실은 악보에 적힌 그대로 연주하면 그렇게 된다. 베토벤 당시의 트럼펫은 현대의 트럼펫과는 달라서 구조적으로 낼 수 없는 음이 많은데, 그 때문에 베토벤은 주요 선율을 목관 악기에 맡기고 트럼펫 등의 금관 악기는 단지 보조적인 역할만 하도록 했다. 이 때문에 목관 악기의 작은 음량을 금관 악기가 가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며, 결국 '공포의 팡파르'라 부르기에는 다소 밋밋한 소리가 된다. 악기가 현대적으로 개량된 뒤에는 트럼펫 파트를 가필(加筆)하는 것이 관행이 되었고, 금관 악기의 압도적인 음량을 앞세운 진정한 '공포의 팡파르'가 가능해졌다. 그러나 베렌라이터 판 악보의 영향으로 요즘은 이 부분을 원래대로 가필 없이 연주하는 경우가 많으며, 정명훈 역시 그렇게 했다. 사견으로는 다른 곳도 아닌 세종문화회관에서 가필 없이 연주한 것은 득보다 실이 많았다. 그나마 팀파니의 활약이 아니었으면 정말 심심한 연주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터키 행진곡 부분과 이어지는 테너의 독창도 베렌라이터 판 악보의 영향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곳의 메트로놈 지시는 원래 '♩. = 84'였다. 그러나 이것은 첫째로 행진곡이라기에는 지나치게 느린 템포이며, 둘째로 갑자기 느려진 템포가 4악장을 크게 양분해버림으로써 음악의 구조에 큰 결함을 가져온다는 점에서 심각한 오류라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대개는 악보의 지시보다 더 빠른 템포로 시작한 다음 가속을 하여 문제를 해결해 왔다. 초기 원전연주 음반에는 악보의 템포 지시를 그대로 지킴으로써 시행착오를 보이기도 했는데, 베렌라이터 판 악보에서는 '♩. = 84'를 '♩♩. = 84'의 오기로 보아 수정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했다. 한편, '♩♩. = 84'의 템포는 행진곡으로는 적당하지만 테너 독창으로는 너무 낯설게 들려서 이것을 충실히 지킨 가디너(Gardiner) 지휘의 연주는 논란이 되기도 한다. 이날 연주에서는 '♩♩. = 65' 정도의 템포를 사용했는데, 전반적인 템포 설정을 악보의 지시보다 느리게 잡았으므로 여기서 템포가 갑자기 크게 느려진 것도 아니었고, 행진곡으로도 무리가 없었으며, 이어지는 테너의 독창이 너무 빠르지도 않아 모든 면에서 중용을 지킨 템포였다. 이중 푸가(마디 655 이후)에서도 같은 템포를 사용하여 해석의 일관성을 유지했다. (이 부분의 메트로놈 지시는 '♩♩. = 84'로 베렌라이터 판 악보의 행진곡 부분에서 수정된 지시와 정확히 같다.)
 
이날 연주에서 해석이 가장 참신했던 부분은 3악장 마디 133에서 제2 바이올린을 강조한 것이었다. 이 부분은 원래 피아니시모(매우 여리게)로 연주해야 하지만 반대로 포르티시모(매우 세게)로 연주했다. 활의 사용도 상당히 거칠어서 눈을 감고 들으면 비올라 소리로 착각할 정도였다. 나는 교향곡 9번 3악장에서 베토벤에 대한 일반적인 이미지와는 차이가 있는 상처받은 가녀린 영혼을 느끼곤 하는데, 정명훈은 여기서도 비탄에 잠긴 영웅 베토벤의 모습을 발견한 듯하다. 1악장 종결구(코다)의 저음 오스티나토(basso ostinato)가 시작되는 마디 513에서 템포를 크게 늦춘 다음 1악장이 끝날 때까지 가속한 것도 좋은 아이디어였다.
 
베토벤 교향곡 9번은 교향곡에 합창을 도입한 최초의 작품이며, 바그너는 이것을 콜럼버스에 비유했다. 쉴러의 <환희의 송가 Ode „An die Freude“>가 가사로 사용된 이 작품이 오페라나 가곡이 아니라 교향곡이라는 사실은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려준다. 이 작품이 단순히 성악을 위한 작품이 아니라 교향곡을 형식적, 음향적으로 확장하고 음악적 표현력을 높이도록 가사가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근거로 음악학자 주대창은 (1) 음악의 전개와 시의 진행이 불일치하고, (2) 가사 내용을 충실하게 전달하기보다는 특정 단어, 이를테면 모든 사람들(alle Menschen), 환희(Freude), 형제들(Brüder) 등을 반복하거나 독립적 제창으로 사용하여 또렷하게 들리도록 함으로써 전체적인 의미를 승화적으로 전달하려 했으며, (3) 이러한 가사의 성격적 사용이 선율 주제의 음악적 처방과 맞물려 있는 등 성악을 기악적으로 사용했음을 지적한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전통적인 성악에 익숙한 한국의 가수들은 베토벤 교향곡 9번의 이러한 특성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연주회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좋은 발성을 위해 자의적으로 고쳐진 리듬과 템포, 흔들리는 음정 등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탈리아 오페라 등에서는 관현악이 가수들에게 맞춰줄 수 있기 때문에 이것이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베토벤의 "교향곡" 9번에서는 가수들이 주인공이 아니라 하나의 '악기'인 것이다. 특히 나는 베이스 양희준에게서 많은 아쉬움을 느꼈다. 그가 타고난 목소리만큼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부족함이 없을 만큼 탁월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번 연주회에서는 정명훈의 수완이 좋았는지 예전에 흔히 봐왔던 것보다는 꽤 나아지기는 했다는 것이 다행스러웠다. 독창자들이 무대 앞으로 나오지 않고 오케스트라와 섞여서 노래한 것도 음향적으로나 음악적으로나 훌륭한 선택이었다. 독창자들이 '주인공' 의식을 가지고 앞으로 나오겠다고 우기느라 정명훈과 갈등이 생기지는 않았는지 모르겠다. 독창진이 연주 도중에 입장하느라 오케스트라를 방해한 어처구니없는 모습을 보고 나니 정명훈과 독창진 사이에 일종의 타협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든다. 만약 정명훈이 모든 것을 양보했다면 4악장 전체가 망했을 것이다. 정명훈 선생님,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습니까. 차라리 공개 오디션으로 학생들에게 등용의 기회를 주었더라면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합창단은 소리가 우렁찬 것은 참 좋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좋았던 것은 그것뿐이었다. 음량 조절을 못해서 오케스트라 소리를 묻어버리기 일쑤였고, 피아니시모(매우 여리게)는 메조 포르테(약간 세게)가 되어버렸다. 화음이 썩 잘 맞지도 않았다. 한 마디로 서울시향과 같이 연주하기에는 수준이 맞지 않았다. 그리고 사실은 이것이 국내 합창단의 현주소인 것 같다. 아직은 먼 훗날의 일일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서울시향과 마찬가지로 재단 차원에서 합창단을 관리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우수한 합창 지휘자를 영입해야 함은 물론이다.
 
관객의 수준은 꽤 높았다. 다만, 교향곡 8번 1악장 종결구 직전 모든 악기가 여리고 부드럽게 가는 부분에서 누군가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벨 소리가 아니라 진동이어서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혹시나 진동 소리가 다른 사람에게 들리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렇지 않을 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에게 심각한 방해가 됨을 일깨워주고 싶다. 미국의 어느 연주회장에서는 연주회 시작 직전 방송으로 전화 벨 소리를 크게 들려주면서 전원을 끄기를 부탁하여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니 공연장 관계자 분들은 참고 바란다.
 
정명훈의 베토벤 해석은 전통과 새로운 패러다임 사이에서 중용을 보였고, 서울시향의 뛰어난 앙상블이 그것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연주회장의 음향은 이들에게 걸림돌이 되었으며 전용 연주회장의 마련이 시급함을 역설적으로 알려주었다. 성악진에도 많은 아쉬움이 있었다. 정명훈과 함께한 서울시향은 지난 일 년간 베토벤이라는 정통 레퍼토리로 악단의 기초를 다져왔다. 이제 베토벤에 이어 브람스로 그간 다져온 기초를 공고히 할 때다. 2007년에도 서울시향의 지속적인 발전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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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철. 2007.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2009년 8월 17일 월요일

2005.09.29. 《신들의 황혼》 - 게르기예프 / 마린스키 극장 오페라단

신들의 황혼 Götterdämmerung - 마린스키극장 오케스트라/오페라단
9월 29일(목) 저녁 5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지 휘 : 발레리 게르기예프 Valery Gergiev
연 출 : 발레리 게르기예프 Valery Gergiev
감 독 : 블라디미르 미르조예프 Vladimir Mirzoev
무대 디자인: 조시 티시핀 George Tsypin

브륀힐데 : 올가 세르게예바 Olga Sergeyeva
지크프리트 : 알렉세이 스테블리안코 Alexey Steblianko
군터 : 예뎀 우메로프 Edem Umerov
알베리히 : 빅토르 체르노모르츠예프 Viktor Chernomortsev
하겐 : 알렉세이 탄노비츠키 Alexei Tannovistsky
구트루네 : 발레리아 스텐키나 Valeria Stenkina
발트라우테 : 올가 사보바 Olga Savova
노른 1 : 루드밀라 카누니코바 Liudmila Kanunikova
노른 2 : 스베틀라나 볼코바 Svetlana Volkova
노른 3 : 타티아나 크라브초바 Tatiana Kravtsova
보클린데 : 마르가리타 알라베르디안 Margarita Alaverdian
벨군데 : 리아 셰브초바 Lia Shevtsova
플로스힐데 : 안나 키크나드제 Anna Kiknadze



<신들의 황혼>에서는 앞선 시리즈와는 달리 서막 및 1막부터 연주의 완성도가 높았다. 다른 '반지' 시리즈에 비해 현의 비중이 적은 편이라 다이내믹과 밸런스 사이의 트레이드-오프(trade off) 문제도 덜했다. (현의 음량 부족 문제에 대해서는 <라인의 황금> 편을 참고하라.) 연주자들의 집중력이 <발퀴레> 2막보다는 못했지만 전체적으로는 4부작 가운데 가장 뛰어난 연주였다고 생각한다. 다만, 1막부터 너무 열심히 한 탓인지 3막에서는 끝을 향해 갈수록 연주가 조금씩 불안정해졌던 것은 옥에 티였다.

템포는 빠른 편이었으며, 맹약 장면과 기비히 무사들이 군터를 환영하는 장면 등에서는 깜짝 놀랄 만큼 빠른 템포로 몰아붙였다. 이 부분의 템포를 빠르게 한 것은 나름대로 참신한 해석이었고, 또 러시아 지휘자 및 악단과 어울리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은 동시에 바그너 음악의 주요 특징 가운데 하나를 해치는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했다. 맹약 장면과 군터 환영 장면은 바그너 특유의 제의(祭儀) 장면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바그너의 작품은 그 자체가 제의적이기도 하지만, 작품 속의 제의 장면은 감상자에게 특별한 영적 고양감을 일으키곤 한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을 참고하라: 안인희, <게르만 신화·바그너·히틀러> (서울: 민음사 2003) 202-205쪽.) 음악으로 제의적 효과를 일으키기 위해 템포는 느린 것이 좋으며, 이 점에서 바그너식 제의의 정점에 선 작품은 바그너가 무대신성제전극(Bühnenweihfestspiel)이라고 불렀던 작품인 <파르지팔>이다. (1막에서 성배기사들의 행렬 장면과 성배 의식 장면을 들어보라.) 하겐이 기비히 무사들을 소집하는 장면과 그에 이어지는 합창도 전체적으로 훌륭했지만, 역시 제의적 요소를 살리는 데에는 실패했다. 지크프리트 장송행진곡과 브륀힐데 자살 장면("저기 라인 강가에 강한 장작들을 나를 위해 더미로 쌓아다오! Starke Scheite schichtet mir dort am Rande des Rheins zuhauf!" 이후부터 끝까지)도 마찬가지였다.

서막 전주곡 마디 6과 마디 14에서는 트럼펫의 음정이 엉뚱하게 들렸다. 악보를 완전히 숙지하고 있지는 않아서 무엇이 문제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는데, 지금 생각으로 가장 가능성이 큰 가설은 제1 트럼펫이 여린 음을 내지 않아 돌출되었다는 것이다. 마디 6에서 제1 트럼펫의 A(실음은 C) 음은 E 단조 6도 화음의 소프라노 성부에 중복된 근음(root)이다. 제2, 제3 트럼펫은 각각 화음의 5음과 3음을 연주하며, 베이스 성부의 근음은 제1 트롬본 등이 담당한다. 그런데 마디 6의 주선율은 화음의 5음인 G(실음 기준)에서 C을 거쳐 E이 된다. 결국, 제1 트럼펫의 C(실음)은 비화성음은 아니지만 주선율 차원에서는 마치 비정상적으로 긴 선행음(Anticipation)처럼 기능 했다. 즉, 제1 트럼펫이 두드러지면서 선율 음인 G을 누르고 전체 선율 윤곽을 망가트린 것이다. 마디 14 역시 동형진행이므로 마찬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그림 1. 서막 전주곡 마디 5-9.
New York: G. Schirmer, 1904. Plate 26809. 출처: http://www.dlib.indiana.edu


서막 마디 359에서는 리듬이 이상하게 들렸다. 사실은 연주자가 실수하거나 엉뚱한 루바토를 쓰지 않고 오히려 인템포로 연주했는데 왜 그렇게 들렸을까? 답은 템포에 있다. 다음을 들어보자.


그림 2. 서막 마디 358-361. © 2005 김원철.

© 2005 김원철


이것은 마디 327에 나오는 모티프의 변형이다.


그림 3. 서막 마디 327-329. ©1997-2002 by Fabrizio Calzaretti.

© 2005 김원철


그런데 마디 360의 셋잇단음 스타카토 부분을 강박에 배치하다 보니 원래 모티프와 리듬 윤곽이 다르게 들린다. 이 때문에 리듬이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이며, 마디 359의 변칙적인 리듬은 마치 연주자가 실수라도 한 것처럼 들리게 한다. 그러나 템포를 느리게 하면 덜 어색해진다. 다음은 <그림 2>에서 템포를 ♩= 120에서 ♩= 80으로 고친 것이다.


그림 4. 서막 마디 358-361. © 2005 김원철.

© 2005 김원철


이제 훨씬 자연스럽다. (찬가처럼 크게 부풀린 관현악 총주를 상상하라.) 이날 연주는 ♩= 120 정도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 100 이상으로 들렸다. 개인적으로는 ♩= 90 이하의 템포일 때 리듬이 어색하지 않게 들린다. 그 이상의 템포를 원할 경우 4분음 셋잇단 리듬에 루바토를 쓸 필요가 있다. 음반에서는 대개 템포와 상관 없이 루바토를 쓰고 있으며, 루바토를 쓰지 않은 녹음으로는 불레즈의 1979년 녹음이 있다. (그런데 사실은 이 녹음에서도 연주자가 완벽하게 기계적인 템포를 소화하지는 못했다.)

2막 전주곡은 바이올린과 비올라에 의한 리듬이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데, 그 리듬의 변칙성은 언뜻 들어서는 알아차리기 힘들지만 악보를 들여다 보면 사실은 매우 복잡함을 알 수 있다. 이날 연주에서는 '실수를 하나 안 하나 어디 두고 보자!' 하는 심정으로 특별히 주의 깊게 들었는데, 역시 연주회장의 극악한 음향 환경 때문에 현의 운궁이 또렷하게 전달되지도 않았다. 마지못해 내린 결론은 실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림 5. 2막 전주곡.
New York: G. Schirmer, 1904. Plate 26809. 출처: http://www.dlib.indiana.edu


2막 3장에서 하겐의 "호이호! 호이호호호! 기비히의 대장부들아. 일어들 나시오! Hoiho! Hoihohoho! Ihr Gibichsmannen, machet euch auf!"와 함께 연주되는 스티어호른(Stierhorn) 소리가 빠진 것도 아쉬웠다. (그러고 보니 <발퀴레> 때에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바그너는 하겐이 무대에서 C, 무대 뒤 왼쪽에서 D, 오른쪽에서 D로 불어서 입체적인 효과를 내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요즘 바이로이트에서는 그냥 오케스트라 피트 관악기 위치에서 트롬본이 연주한다고 한다. 스티어호른 두 대가 동시에 소리 낼 때에는 단2도 또는 장2도 음정으로 강력한 불협화음이 되는데, 그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해서는 역시 스티어호른을 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3막에서 지크프리트의 "깨우는 자가 왔소. 그가 입맞춤으로 당신을 깨우고 있소. Der Wecker kam; er küßt dich wach," 대목(마디 891-899)의 목관과 트럼펫에 의한 리듬은 여린 다이내믹 속에서도 죽어가는 지크프리트의 강렬한 흥분 상태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이 부분에서는 피아니시모에서부터 시작하는 섬세한 크레셴도와 데크레셴도가 필요한데, 역시 세종문화회관은 이것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 이 부분은 <지크프리트> 3막과도 링크되는데, 그날 연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림 6. 3막 마디 891-899.
New York: G. Schirmer, 1904. Plate 26809. 출처: http://www.dlib.indiana.edu


유명한 '지크프리트 장송행진곡'에서는 전체적으로 박진감 있게 잘했으나 몇몇 부분은 아쉬웠다. 마디 926에서 마디 927까지 현에 의해 피아노(p)에서 포르티시모(ff)로 세 단계를 거쳐 폭발적으로 일어나는 크레셴도도 약했고, 마디 960-962에서는 현이 호른 및 베이스 트럼펫과 안티폰(antiphon)처럼 주고받는데, 이때 현의 급박한 다이내믹 변화도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물론 일차적으로 연주회장 탓이다.) 마디 953에서 갑자기 터져 나오는 트럼펫의 포르테(f)와 이어지는 크레셴도는 말러의 이른바 '개파(Durchbruch)'를 예견하게 하는 갑작스럽고도 강렬한 국면 전환 효과를 불러오며, 숄티의 녹음에서는 특히 마디 956의 크레셴도를 매우 길게 늘이기도 했다. (라이브로 그렇게 할 수 있는 연주자가 있다면 그는 틀림없이 인간이 아니다.) 이날 연주에서는 그러한 다이내믹의 대비가 크지 않아서 극적 효과가 약했다. (원인은 연주회장의 극악한 음향과 트럼펫 주자의 기력 소진이 반반일 것으로 생각된다.)

마디 957부터는 트라이앵글과 테너 드럼(Rührtrommel) 등의 롤(roll)을 과장하면 현의 음량 부족에 의해 밸런스가 무너질 것을 걱정할 필요 없이 금관이 강력한 포르티시모를 마음껏 낼 수 있기 때문에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예상 밖으로 이날 연주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어쩌면 마디 953의 트럼펫 음량부터 지휘자의 의도가 작용했던 것일까? 이 부분에서 현 소리를 버리지 않은 것은 장단점이 있겠지만 극적인 효과는 어쨌든 부족했다.




그림 7. 3막 마디 935-967.
New York: G. Schirmer, 1904. Plate 26809. 출처: http://www.dlib.indiana.edu


마디 969에서는 서막 마디 359와 같은 템포 문제가 있었다. 마디 969-974에서는 대부분의 음반에서 적당히 루바토를 사용하고 있는 것을 들을 수 있는데, 이날 공연에서는 줄곧 인템포로 연주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림 8. 3막 마디 969-970. © 2005 김원철.

© 2005 김원철


마디 974 셋째 박에서는 일종의 착청(錯聽; '착시'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착청'도 있다.)을 만들어내야 한다. 서막 마디 360 넷째 박에서는 목관에 의해 유도되는 주선율의 옥타브 도약이 있지만, 같은 모티프로 링크되는 3막 마디 974에서는 그렇지 않다.


그림 9. 3막 마디 973-974. © 2005 김원철.

© 2005 김원철


그러나 이것은 다음과 같이 들려야 한다.


그림 10. 3막 마디 973-974에서 착청(錯聽) 효과에 의한 옥타브 도약을 반영한 것. © 2005 김원철.

© 2005 김원철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심벌즈가 팀파니와 테너 드럼(Rührtrommel)의 롤(roll)을 동반하여 일으키는 강력한 차폐 효과(masking effect)와 그에 이어지는 음고 복원 효과(pitch restoration effect)이다. '음고 복원 효과'란 '음소 복원 효과 (phonemic restoration effect)'를 변형시킨 것으로 내가 지어낸 말이다. 음소 복원 효과는 워렌(Richard M. Warren)이 1970년에 사이언스(Science)에 발표한 논문에서 유래한 용어로, 워렌은 피험자에게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녹음된 문장을 들려주었다:


The state governors met with their respective legislatures convening in the capital city.


여기에서 "legislatures"의 가운데 /s/ 소리는 삭제하고 대신에 기침 소리를 넣었다. 그러나 피험자들은 이것을 알아차릴 수 없었으며, 어떤 소리가 하나 빠졌다고 알려주어도 그 위치를 알지 못했다. 사라진 /s/ 음소는 지각 과정에서 '복원'된 것이다. 후속 실험에서는 제거된 음소(*eel) 대신에 복원된 음소가 문장의 맥락에 따라 다른 음소(wheel, heel, peel, meal 등)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마디 974에서 심벌즈 등의 소리가 충분히 크지 않으면 음고 복원 효과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데, 실제로 몇몇 음반에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날 연주에서는 심벌즈 등이 음고 복원 효과를 일으킬 만큼 충분히 컸다.

브륀힐데의 "저기 라인 강가에 강한 장작들을 나를 위해 더미로 쌓아다오! Starke Scheite schichtet mir dort am Rande des Rheins zuhauf!" 이후부터는 긴 호흡으로 피날레를 향해 서서히 나아가며 주술적인 효과를 일으킨다. 이날 연주에서는 다이내믹의 폭이 좁은 것이 역시 아쉬웠다. (원인은 연주회장의 음향 문제와 연주자들이 지친 것이 반반으로 판단된다.) 다만, 마디 1538부터 바이올린에 의해 연주되는 이른바 '구원(redemption; Liebeserlösung)'의 모티프는 연주회장의 음향 환경을 감안하면 매우 좋았다.



그림 11. 구원의 모티프 (<발퀴레> 3막).
출처: http://www.utexas.edu/courses/wagner/148.html


브륀힐데 역의 올가 세르게예바는 이번 '반지' 시리즈 가운데 최고의 브륀힐데였다. 몸매도 브륀힐데 치고는 매우 날씬한 편이었다. <발퀴레>에서의 브륀힐데와 지클린데 등도 그랬지만, 뛰어난 성량에 비해 몸매는 가냘픈 것이 참으로 신기하다. 음색은 귀네스 존스를 닮았다는 의견이 많았다. 극이 후반부로 가면서 고음 처리를 완벽하게 하지 못하고 실제보다 반음 정도 낮은 음을 낸 적이 있었던 것이나, 또는 2막의 이른바 '복수의 3중창'에서 갑작스런 저음 처리를 힘들어했던 것 등은 옥에 티였다. 특히 "그의 피로써 그가 속죄하기를! mit seinem Blut büß' er die Schuld!"에서는 가수와 오케스트라가 완전한 유니즌을 이룰 만큼 대사의 무게가 큰 부분이라 성량이 부족한 것이 몹시 아쉬웠다. <발퀴레>의 브륀힐데를 맡은 적이 있단다.

지크프리트 역의 알렉세이 스테블리안코는 테너 같지 않고 베이스나 바리톤 같았는데, 그것이 원래 목소리인지 이날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덕분에 군터로 변장했을 때에도 베이스-바리톤인 군터의 목소리를 일부러 흉내 낼 필요가 없었던 것이 재미있었다. (오히려 군터 역의 바리톤 예뎀 우메로프보다 낮게 들릴 때도 가끔 있었다.) 새 흉내는 발성은 뛰어났지만 굵은 목소리 때문에 연극적인 측면에서는 낙제점이었다. <신들의 황혼>의 지크프리트는 <지크프리트>의 지크프리트만큼 강력한 헬덴 테너일 필요는 없고 고음처리도 덜 필요하기 때문에 음역이 낮아도 큰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지크프리트>에서의 레오니드 자코자예프와 음색의 차이가 컸던 점은 좋지 않았다. 게다가 2막 후반부에서부터 지친 기색을 보이다가 3막에서는 목소리가 잠겨서 몇 번이나 기침을 했던 것은 애처로울 정도였다. 그런데 프로필을 보면 의외로 주역 가수인 것 같다. (역시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것일까?) 로엔그린 역을 맡은 적이 있단다.

군터 역의 예뎀 우메로프는 <라인의 황금>에서의 알베리히였는데, 알베리히보다는 군터에 어울렸다. (알베리히와 군터를 같은 가수가 소화한다는 것은 사실 넌센스다.) 군터 역할에 역량을 집중했더라면 더욱 뛰어난 가창을 들려줄 수도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니 아쉽다. "그의 피로써 그가 속죄하기를! mit seinem Blut büß' er die Schuld!"에서 브륀힐데와 마찬가지로 저음을 시원하게 처리하지 못했던 점은 옥에 티였다.

하겐 역의 알렉세이 탄노비츠키는 1976년생의 젊은 가수로 주역이 아닌 모양인데, 그 카리스마는 주연들을 압도할 정도였다. 다만, 뛰어난 연기력에 비해 음색의 사악한 맛은 부족했다. 커튼콜 때에는 공연 중의 카리스마를 무색하게 할 만큼 순한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열광적인 박수를 받자 매우 놀라는 것 같았다. 프로필에 따르면, 모스크바 차이코프스키 필하모닉 홀에서 있었던 베르디 레퀴엠 연주회에 대해 한 비평가는 "탄노비츠키의 아름답고 낭랑한 음색, 완벽할 정도로 깔끔하게 표현된 곡, 마치 홀린 듯한 관객들"이라고 평했다 한다. 바그너 경력은 없었던 모양이다.

알베리히 역의 빅토르 체르노모르츠예프는 <지크프리트>에서도 알베리히였는데, <지크프리트>에서 뛰어난 가창을 들려주었던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단역이라서 별다른 인상을 주지는 못했다. 구트루네 역의 발레리아 스텐키나는 훌륭했지만, 단역을 맡은 탓에 특별히 주목받지는 못했다. 쿤드리와 지클린데를 맡았던 적이 있단다. 음색이 지클린데 역에는 잘 어울릴 것 같지만, 쿤드리를 맡기에는 너무 가는 목소리가 아닐까 싶다. 발트라우테 역의 올가 사보바는 <발퀴레>의 브륀힐데였는데, 이번에는 반지를 라인의 처녀들에게 돌려주라며 브륀힐데를 야단치는 역할을 맡은 것이 재미있다. 좀 더 따끔하게 야단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점은 아쉽지만, 전체적으로 썩 잘했다.

첫 번째 노른 역의 루드밀라 카누니코바는 <발퀴레>의 슈베르틀라이테이다. 원래 단역 가수인 듯한데, 단역치고는 꽤 잘했다. 그런데 의외로 오르트루트 역을 맡은 적이 있단다. 두 번째 노른 역의 스베틀라나 볼코바는 <라인의 황금>과 <발퀴레>에서 프리카 역으로 강력한 카리스마를 보여준 가수인데, 이날에는 역할 비중이 좀 축소되어서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세 번째 노른 역의 타티아나 크라브초바는 <발퀴레>의 헬름비게인데, <발퀴레>에서 깔끔하고 강력한 '하이 C'를 들려주었던 것과는 달리 이날에는 좀 얌전해서 불만이었다. 특히 "끊어졌네! Es riß!"에서의 성량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라인 처녀들의 합창은 <라인의 황금> 때보다 별로 나아진 것이 없었고 딕션도 별로였다. 보클린데 역의 마르가리타 알라베르디안은 헬름비게와 <파르지팔>의 꽃처녀 역을 맡은 적이 있단다. 벨군데 역의 리아 셰브초바는 <라인의 황금>에서도 벨군데였으며, <발퀴레>에서는 게르힐데였다. 플로스힐데 역의 안나 키크나드제는 <발퀴레>의 그림게르데이다.

2막에서의 남성 합창은 지난 6월 13일에 있었던 간사이 니키카이 오페라단의 <탄호이저>와 비교하게 된다. 마린스키의 합창 수준은 매우 높았지만, 간사이 니키카이 오페라단에 비하면 한 수 아래였다. 주역 가수들의 기량은 마린스키 쪽이 월등했던 것을 보면 역시 일본은 합창이 강한 모양이다.

뒷얘기. '신비기인'의 좌석 위치를 확인해 두었다가 공연이 끝나고 나서 결국 말을 걸어보았다. 기억을 더듬어 재구성한 대화 내용은 다음과 같다.


김원철: 실례합니다.
신비녀: 안녕하세요?
김원철: 외람된 말씀이지만(과잉 정중 모드), 당신이 그 유명한 바그네리안...
신비녀: (말 끊으며) 맞아요. 당신은 한국인인가요 아니면 공연 보러 한국에 온 건가요?
김원철: 한국인입니다.
신비녀: 나 이곳이 너무 마음에 들어요. 정말 멋진 곳이로군요! 어쩌고저쩌고... (수다 모드로 돌변함.)
김원철: 그렇게 말씀하시니 기쁘군요.
신비녀: 그런데, 연주자 대기실이 어디인지 아세요?
김원철: 모르겠네요. 에, 그러니까, 바그너 공연을 보러 전 세계를 돌아다닌다는?
신비녀: 맞아요.
김원철: 존경합니다!


(...라고 한다는 것이 "I adore you!"라고 해버렸다. 남녀 사이에서 'adore'를 쓰면 사랑한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이런, 나이가 많아 보이던데... 그녀는 그냥 웃더라.)


신비녀: 어쩌고저쩌고... (계속 수다 모드)

김원철: 당신은 유명세에 비해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는데, 이름이라도 알 수 있을까요?
신비녀: 이번 공연에 대해 TV로 방송이 나갔다던데, 못 봤나 보죠?
김원철: 저는 TV를 안 보거든요.
신비녀: 이러쿵저러쿵... (이름은 안 가르쳐주면서 계속 수다)
김원철: 일본 공연에도 갈 건가요?
신비녀: 물론이죠.
김원철: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


이렇게 해서 <니벨룽의 반지> 한국 초연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게르기예프와 마린스키 극장 오케스트라는 연주회장의 열악한 음향 환경에서도 상당히 뛰어난 연주를 들려주었다. 물론 이번 공연에 대해 좋게만 평가할 수는 없다. 연주자들은 최상의 상태로 공연에 임했다 할 수 없으며 가수 기용의 적절함에 대해서도 의문이 남는다. 지휘자는, 저 탁월한 기본기를 빼버리고 작품에 대한 해석만 놓고 본다면, 대체로 악보에 충실하기는 했지만 불레즈처럼 확실한 주관을 가지고 차가운 해석을 한 것이 아니라 나이브(naive)하게 악보를 따라가기만 했다. 그럼에도 독일인이 아닌 러시아인이 바그너의 음악을 이만큼 완성도 있게 연주한 것은 대단하다. 무엇보다 이번 공연은 한국 초연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올해는 바그네리안에게 매우 뜻깊은 해이다. <탄호이저>가 원어로는 사실상 국내 초연되었고, <니벨룽의 반지> 국내 초연도 마침내 이루어졌다. '반지'를 자력으로 무대에 올리려는 움직임도 있다. 10월 20일에는 바이로이트에서 호평받고 있는 베이스 연광철이 <트리스탄과 이졸데> 중 마르케 왕의 모놀로그를 부를 예정이며, 10월 30일에는 왕년의 바그너 가수 귀네스 존스가 온다. 그리고 성배의 그 다음 계시는 12월 15일, <트리스탄과 이졸데> 2막이다.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를 주목하라!

2005년 10월 11일 씀.
2006년 1월 10일 고침.
 

정보공유라이선스

김원철. 2005.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2009년 8월 15일 토요일

2005.09.24. 《라인의 황금》 - 게르기예프 / 마린스키 극장 오페라단

라인의 황금 Das Rheingold - 마린스키극장 오케스트라/오페라단
2005년 9월 24일(토) 저녁 7시 30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지 휘 : 발레리 게르기예프 Valery Gergiev
연 출 : 발레리 게르기예프 Valery Gergiev
감 독 : 율리아 페브즈너 Yulia Pevzner
무대 디자인: 조시 티시핀 George Tsypin

보탄 : 예프게니 니키틴 Evgeny Nikitin
프리카 : 스베틀라나 볼코바 Svetlana Volkova
알베리히 : 예뎀 우메로프 Edem Umerov
로게 : 콘스탄틴 플루즈니코프 Konstantin Pluzhnikov
파졸트 : 바딤 크라베츠 Vadim Kravets
파프너 : 게네디 베주벤코프 Gennady Bezzubenkov
미메 : 니콜라이 가시예프 Nikolai Gassiev
도너 : 에드워드 장 Eduard Tsanga
프로 : 예프게니 아키모프 Evgeny Akimov
보클린데 : 잔나 돔브로브스카야 Zhanna Dombrovskaia
벨군데 : 리아 셰브초바 Lia Shevtsova
플로스힐데 : 나덴자다 세르뒤크 Nadezhda Serdiuk
프라이아 : 타티아나 보로디나 Tatiana Borodina
에르다 : 즐라타 불리체바 Zlata Bulycheva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후 러시아에서 바그너 음악을 처음으로 연주한 사람이다. 그런데 러시아가 나치로부터 입은 피해는 유태인 못지않은 것이라 이 때문에 러시아가 떠들썩했다고 한다. 이것은 우리가 쉽게 상상할 수 있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러시아는 자본주의 국가와는 달리 클래식 공연 문화가 대중 예술로서 확고한 입지를 유지하고 있으며, 심지어 연주회장에 대한 정부의 예산 축소에 따라 입장료를 인상한다는 발표가 나자 (그래 봐야 우리 기준으로는 터무니없이 싼 가격이란다.)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라며 대중 집회가 열린 적도 있다고 한다. 사정이 이러니 게르기예프는 자칫 '인민의 적'으로 몰릴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하고 바그너에 손댄 것이 된다. 이스라엘에서 바그너를 연주한 것이 '깜짝 이벤트'에 불과했던 바렌보임과는 달리 게르기예프는 러시아 악단을 이끌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바그너 공연을 하고 있으니 참으로 대단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2005년 9월, 그는 <니벨룽의 반지> 한국 초연이자 '반지' 4부작 각각의 한국 초연을 지휘한 사람이 되었다. 우려와는 달리 사람들의 반응은 좋았다. 공연 전부터 여러 곳에서 관련 강좌가 열렸고 많은 참여가 있었다. 클래식 관련 인터넷 게시판에서는 바그너와 관련한 문답과 토론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반지'를 쉽게 해설해 놓은 ☞ 박원철씨의 웹사이트는 공연 전후로 트래픽(traffic)이 폭주했다. 무엇보다, 표가 팔렸다. 그리고 마침내 공연 날짜는 다가왔다.

연주에 대한 감상을 쓰기에 앞서 공연장의 음향 환경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은 객석은 크고 오케스트라 피트는 작아서 음량 손실이 매우 크다. 일류 오케스트라도 이것을 극복할 수는 없다. 게르기예프와 마린스키극장 오케스트라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은 이미 예상한 바와도 같다. 지난 6월 11일부터 13일까지 있었던 간사이 니키카이 오페라단-서울시향의 <탄호이저>를 보고 내가 쓴 ☞ 감상문 가운데 일부를 인용한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의 오케스트라 피트는 기대했던 것보다 너무 작았다.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보다는 가로로 조금 더 넓은 것 같았지만 큰 차이는 없어 보였다. 이 때문에 오는 9월에 게르기예프가 마린스키극장 오페라단을 이끌고 와도 압도적인 스케일의 음향을 기대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노들섬에 짓는다는 새 오페라하우스가 유일한 희망이란 말인가. 제발 전시용에 그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오케스트라의 규모가 작을 때 음량 면에서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것은 무엇보다 현일 것이다. 바그너는 <탄호이저>를 오케스트레이션할 때 대규모 현악 파트를 염두에 두었으며, 극장의 현악 주자의 수를 정규인원보다 더 많이 둘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이번 공연에서 서울시향의 현은 부족한 인원을 감안하면 나쁘지 않은 음량을 내주었다. 12일 공연에서는 현이 금관과 합창 등에 묻혀 버리는 때가 종종 있었지만 13일에는 훨씬 나았다. 이것이 단순히 연주자들이 13일에 더욱 분발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극장 1층과 3층의 음향의 요술인지 나로서는 알 수 없다. 다만, 12일 2층에서 들었던 어떤 사람도 "좀 오버하자면 다이나믹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밋밋함의 연속이었"다고 평한 것을 보면 12일보다 13일의 연주가 더 좋았다는 내 느낌이 틀리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역시 소편성으로는 표현할 수 있는 다이내믹의 폭에 한계가 있었다. 이를테면, 서곡 마디 32에서부터 비올라-제2 바이올린-첼로-제1 바이올린-콘트라바스로 연이어 점층하는 셋잇단 리듬의 크레셴도는 그 폭이 충분히 크지 못했으며, 마디 37에서 마침내 트롬본이 이른바 ☞ '순례자의 합창' 모티프를 찬가처럼 크게 부풀려 연주할 때 현과 호른 등은 바이올린의 음량에 제약을 받아 제 힘을 내지 못했다. 2막 4장의 이른바 '입당행진곡' 부분에서는 무대 위에 배치된 12대의 트럼펫이 들려주는 압도적인 소리가 큰 매력이지만, 이번 공연에서는 역시 '절제'를 위해 트럼펫 주자들이 무대 뒤편으로 숨어 버리고는 멀리서 들려오는 듯한 연출을 했다.


2막 4장, 입당행진곡 중 트럼펫 팡파르. 그림을 누르면 미디 음악이 연주됩니다.

© 1997-2002 by Fabrizio Calzaretti.



이번 공연 팜플렛에 나타난 오케스트라 파트별 단원 수와 <라인의 황금> 악보에 명시된 연주자 수를 비교해 보면 문제가 좀 더 명확해진다. 관악기와 타악기는 특수 악기까지 생각하면 필요한 만큼 있는 것 같지만, 현악기 주자들의 수를 보면 제1 바이올린 1명과 제2 바이올린 6명, 비올라 3명, 첼로 3명, 콘트라바스 1명, 모두 14명의 연주자가 부족하다. 공간이 충분하다면 객원 주자를 쓸 수도 있겠지만, 그 좁은 공간에 악보에 지시된 대로 108명(호른 더블링과 프롬프터 등을 고려하면 110명 이상)이 들어갈 수 있을까? 1층에서는 오케스트라 피트를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3층에서 연주자 수를 세어 본 사람의 말에 따르면 80명이 채 안 되는 인원이 피트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고 한다. 오케스트라 피트의 크기 말고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의 객석 수가 바이로이트 축제극장 등의 유수 공연장에 비해 1.5~2배 정도 많다는 점도 문제이겠다. 한편, 객석의 규모와도 상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공연장의 주파수별 소리 전달 특성이 다른 것 같다. 즉 저음이 많이 깎여서 양감이 부족하게 느껴진다. 이런 사정을 모두 감안하면 이번 공연에서 현 소리는 꽤 큰 편이었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 더. 만약 숄티의 녹음을 기준으로 이번 공연에서의 음량에 대해 불만을 토로한다면 당신은 뭘 모르는 사람이다. 그런 과장된 소리는 실제 공연장에서는 들을 수 없다. 기준은 바이로이트 실황으로 해야 설득력이 있다.

어쨌거나 현의 절대적인 음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최대한 다이내믹을 살리기 위해서는 밸런스를 무시하고 금관과 타악기를 내세워 뿜빰거리던가, 또는 다이내믹을 희생시켜 정교하지만 밋밋한 연주를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게르기예프는 절충안을 택했다. 화성적으로 풍부한 울림이 필요한 곳에서는 다이내믹보다는 밸런스를 택했고, 강력한 다이내믹이 필요한 곳에서는 과감히 밸런스를 포기했다. 음악적 맥락에 따라 최적의 선택을 할 수만 있다면 이것이 최선의 책략일 것인데, 공연장의 음향 환경에 적응할 기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을 게르기예프와 단원들에게는 철저하게 임기응변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임기응변이 너무나 놀라운 것이었다. 게르기예프는 진정한 거장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라인의 황금>은 현의 비중이 매우 큰 작품이라 어쩔 수 없는 결점이 꽤 많았다. 전주곡에서는 점층 효과에 의한 유장한 맛이 부족하고 대신 어수선한 느낌을 주었다. 이후로도 1장 내내 이어지는 현에 의한 물살의 표현이나 기타 현의 역할이 두드러지는 곳에서 여지없이 음량의 한계를 드러냈다. 거인들이 등장할 때에는, 다이내믹을 살리는 것이 최대의 목표가 되어야 했기에 어쩔 수 없었겠지만, 베이스 트럼펫과 3대의 트롬본, 콘트라바스 트롬본의 4도 도약(편의상 '안티폰 antiphon'이라고 부르자.)이 주선율로부터 크게 돌출되어 선율 윤곽을 해쳤다. 현 소리는 작은 데다 '안티폰'에 대항할 금관은 콘트라바스 튜바 하나뿐이라 차라리 팀파니가 주선율마저 압도해 버리는 형국이었다.



'거인' 모티프. © 1997-2002 by Fabrizio Calzaretti.

그림 파일을 누르면 음악이 연주됩니다. 음악 출처: 박원철 홈페이지 © Decca


사소한 실수라고 보기에는 음악의 맥락상 비중이 만만치 않았던 곳도 있었다. 2장 첫 마디에서 테너 튜바의 음정 불안이 그랬고, 파졸트가 "당신의 창이 보호를 한다는 약속의 엄숙함이 모두 장난이란 말이오? Die dein Speer birgt, sind sie dir Spiel, des berat'nen Bundes Runen?  (한글 번역은 엄선애 교수의 것을 참고했음)" 할 때 "Speer(창)"와 동시에 나오는 ☞ '창'의 모티프에서 제1, 제3 호른과 제2, 제4 호른이 교차하는 "Spiel"과 "des" 사이(마디 넷째 박)의 음정 불안이 그랬다.


"Die dein Speer birgt, sind sie dir Spiel, des berat'nen Bundes Runen?"

© 1899 by B. Schott's Söhne, Mayence. 출처: http://www.dlib.indiana.edu


가수들의 수준은 기대 이상이었다. 솔직히 '러시아 사람이 독일 음악을 제대로 이해할까?' 하는 생각을 어느 정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가수들에 만족할 수 있었다. 물론 음반이 귀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불만스러운 부분도 많았겠지만, 실제 공연장에서 음반 수준의 연주를 바라는 것은 잘못이다. 전설의 명가수들은 이제는 존재하지 않고, 스튜디오 녹음 같은 최상의 컨디션은 실제 공연장에서는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보탄 역의 예프게니 니키틴은 단단한 목소리를 가진 젊은 신의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한스 호터의 보탄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영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꽤 잘했다고 할 수 있다. 굳이 다른 가수와 비교하자면 토마스 스튜어트나 ☞사무엘 윤과 비슷하다고 하겠는데, 토마스 스튜어트는 그렇다 치고 사무엘 윤이 예프게니 니키틴보다 한 수 위라고 말한다면 한국인을 너무 편애하는 것일까? 니키틴의 노래를 들으면서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의 네덜란드인의 아리아 가운데 "죽은 자들이 모두 일어날 때, 나는 소멸하리라. Wann alle Toten auferstehn, dann werde ich in Nichts vergehn." 하는 대목이 생각났는데, 프로필을 보니 실제로 네덜란드인 역을 맡은 적이 있단다.

알베리히 역의 예뎀 우메로프는 사악한 맛이 부족해서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는데, 개인적으로는 좋게 들었고 사악한 연기도 꽤 열심히 했다고 생각한다. 이번 공연에서 군터 역으로도 나왔다. <로엔그린>의 텔라문트 백작과 전령(팜플렛에는 '헤럴드의 왕'이라고 되어 있다. '왕의 전령(Der Heerrufer des Königs; The King's Herald)'의 오역으로 판단된다.)을 맡은 적이 있단다.

로게 역의 콘스탄틴 플루즈니코프는 실수가 좀 있었지만, 굉장한 열연을 했던 것이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프로필을 보니 로엔그린 역을 맡은 적이 있단다. 어릿광대 같은 연기를 하던 사람이 로엔그린의 나레이션(In fernem Land)을 부르는 것은 상상이 잘 안 된다. 성배의 가호를 받는 성기사가 아니라 촐싹대는 바람둥이가 아닐지?

파졸트 역의 바딤 크라베츠는 사랑을 갈구하는 거인을 매우 잘 표현했다. 그 빛나는 가창은 이날 최고의 가수라 부를 만했고, 마르티 탈벨라를 연상시킨다는 말도 나왔다. 파졸트 말고는 바그너 경력이 없다는데, 하겐 쪽으로 개발해 봐도 괜찮지 싶다. 파프너 역의 게네디 베주벤코프는 저음을 강조하여 파졸트와 음색의 구분을 이룬 것이 마음에 들었다.

도너 역의 에드워드 장(고려의 후예라고 하며 러시아식 발음은 '짱가'에 가깝다고 한다.)은 유명한 '헤다! 헤다! 헤도!' 대목을 잘해야 박수를 많이 받을 텐데, 아쉽게도 천둥과 번개의 신답지 않게 패기가 부족했다. 연출상의 결정적인 실수도 있었는데, 망치를 가지고 나오지 않은 것이다. 창이 보탄을 상징한다면 망치는 도너를 상징한다. 북유럽 신화에서 도너(토르)의 망치 '묠니르(Mjöllnir; '묘르닐'이라고도 하는데, 일본식 발음이 잘못 전해진 것으로 판단된다. 비슷한 예로 '궁니르'를 '궁그닐'이라고도 한다. 일본식 발음으로 고치면 각각 '묘루니루,' '궁구니루'가 된다.)'는 전장에서 수많은 거인족을 물리친 궁극의 병기로, <니벨룽의 반지>에서는 '반지'나 보탄(오딘)의 창 '궁니르(Gunnir)'만한 비중은 없지만 알고 보면 대단한 아이템이라 할 수 있다. 숄티 판에서는 일부러 망치(천둥) 소리를 따로 집어넣기도 했는데, 이날 공연에서는 악보에 표시된 팀파니 소리만으로 해결했고, 그마저 망치의 위력을 보여줄 만큼 음량이 크지는 않았다.

프리카 역의 스베틀라나 볼코바는 극중 비중이 그렇게 높지는 않았는데도 매우 인상깊었다. <발퀴레> 때에는 더욱 강력한 모습을 기대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르지팔>의 꽃처녀 역을 맡은 적이 있단다. 미메 역의 니콜라이 가시예프도 조연이라는 사실이 안타까울 만큼 훌륭했다. 로게를 맡은 적도 있단다. 프로 역의 예프게니 아키모프는 조연으로는 괜찮았지만 주연급은 아니었다. 이 사람이 <발퀴레>의 지크문트라는 잘못된 정보를 접하고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에서 키잡이 역을 맡은 적이 있단다. 프라이아 역의 타티아나 보로디나는 <로엔그린>에서 엘자를 맡은 적이 있단다. 에르다 역의 즐라타 불리체바는 부드럽고 깔끔한 음색이 영락없는 에르다였다. <지크프리트>의 에르다이기도 하다.

라인 처녀들의 합창에서는 화음의 밸런스가 영 안 맞았다. 제일 윗 성부를 맡은 보클린데는 목소리가 너무 컸고, 가운데 성부를 맡은 벨군데는 목소리가 너무 작았다. 보클린데 역의 잔나 돔브로브스카야는 <파르지팔>에서 꽃처녀를 맡은 적이 있단다. 벨군데 역의 리아 셰브초바는 이번 <발퀴레>에서 게르힐데를 맡았고, <파르지팔>의 꽃처녀와 <발퀴레>의 브륀힐데를 한 적도 있단다. (어째 좀 이상하다. 브륀힐데라니. 저 작은 목소리로? 팜플렛의 오류가 아닐까.) 플로스힐데 역의 나덴자다 세르뒤크는 <발퀴레>의 발트라우테이기도 하고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 브랑게네를 맡은 적도 있단다.

니벨룽족은 남자 어른이 여성 또는 어린이와 섞여 있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데, 이날 공연에서는 모두 어린이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이것은 시각적으로는 좋지만 알베리히의 위협에 따른 비명 소리가 이상해지는 단점이 있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김리의 목소리를 떠올려 보면 무슨 말인지 이해될 것이다.

연출 문제는 나에게는 워낙 관심 밖이라 별로 할 말은 없다. 대신 소박한 인상만 기록으로 남겨 두기로 한다. 무대 장식 등 겉으로 보이는 부분을 제외하면 대본에 나타난 지시에 충실한 고전적인 연출이었는데, 연출을 단지 음악을 보조하는 역할 정도로만 여기는 나로서는 이것이 썩 마음에 들었다. 흔히 그렇듯이 연출이 음악의 우위에 자리 잡아 음악 해석을 방해하는 것보다 이게 훨씬 낫지 않은가? 무대 세트는 여러 신화를 짜깁기했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그런 점에서 <신세기 에반게리온>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저 말 많았던 석상이 더더욱 그렇다. 라인 처녀들은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옷차림이 얌전해서 조금은 실망했다. 대신 푸른 빛을 내는 머리카락을 뒤집어 쓴 무용수들의 옷차림이 야했다. 푸른 빛 머리는 마치 해초(海草) 같았는데, 참 마음에 드는 장식이었다. 용을 표현한 아이디어는 대체로 호평을 받은 것 같은데, 나는 어째 부채춤이 생각나서 우습기만 했다. 거대한 '라인의 황금' 속에 프라이아가 들어간 것을 보고는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이 생각났다. 알베리히의 의상은 <날아라 슈퍼보드>에 나오는 사오정을 연상시켜서 좀 우습다고 생각했다.

© KBS 출처: http://www.kbs.co.kr/2tv/superboard/character.shtml


뒷얘기. 공연 시작 직전에 목발을 짚은 금발의 백인 여성과 세종문화회관 직원의 말다툼이 잠시 주의를 끌었는데, 다리 불편을 호소하면서 1층 C열 오른쪽 통로 쪽 빈자리에 앉으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그 여자가 R 등급 티켓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 결국 억지를 부려서 내 자리와 통로를 사이에 둔 자리에 앉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바그너 공연을 찾아 전 세계를 돌아다니기로 유명한 사람이란다. 이름이나 기타 신상 정보가 전혀 알려지지 않은 신비 기인이라고 하니 그런 줄 알았으면 말이라도 걸어볼 걸 그랬다.

2005년 10월 3일 씀.
2006년 1월 10일 고침.
 

정보공유라이선스

김원철. 2005.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2005.06.13. 《탄호이저》 - 간사이 니키카이 오페라단 / 서울시향

이 글은 2005년 6월 14일에 쓴 글이며, 누리꾼에게 ☞ '구제불능' 판정을 받았던 서울시향이 재단법인으로 거듭나면서 사실상 재창단되고 나서 처음으로 열렸던 공연을 보고 쓴 리뷰입니다. 당시 개혁안을 밀어붙인 사람은 다름 아닌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이었으며, 그 때문에 이 글에는 무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을 칭찬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익명의 관계자(?)에 따르면 이 글이 보고서에 인용되어 이름을 세 번 쓰려니 손발이 오그라드는 그분께 올라갔다고 합니다. 글을 읽기에 앞서 임산부와 노약자, 심장이나 복장이 약한 사람은 마음을 단단히 먹으시기를 권하지 않는다 하지 않을 수 없다기보다는 있지 않을까 싶다가도 아닌 듯하기도 하다 하기에는 뭣하지는 아니하여 지금 시방 장난치느냐면 바로 그렇습니다.



탄호이저 - 간사이 니키카이 오페라단 / 서울시향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지 휘 : 오카쓰, 슈야 OKATSU, Shuya
연 출 : 스즈끼, 게이스깨 SUZUKI, Keisuk
무대디자이너 : GRASSI, Italo
의상디자이너 : ALMERIGHI, Steve
조명디자이너 : MUROFUSHI, Ikuo
안 무 : 이시이 준 ISHI, Jun
무 대 감 독 : 오오구리, 대쓰야 OGURI, Tetsuya / 고이스미, 고지 KOIZUMI,Koji
총 감 독 : 다까다, 다다시 TAKADA,Tadashi
이 사 장 : 기까와다, 마고도 KIKAWADA,Makoto

6월 11일(토), 13일(월)
Tannhauser (Ten) 나리따, 가쓰미 Narita, Katsumi
Hermann (Bar)   기가와다, 기요시 KIKAWADA, Kiyoshi
Elisabeth (Sop)  기까하나, 유오꼬 KAKIHANA, Youko
Wolfram (Bar)    하지와라, 히로아끼 HAGIWARA, Hiroaki
Venus (Sop)      고니시,준꼬 KONSHI, Junko

6월 12일(일)
Tannhauser (Ten) 네기, 시게루 NEGI, Shigeru
Hermann (Bar)    기가와다, 마고도 KIKAWADA, Makoto
Elisabeth (Sop) 하다다, 히로미 HATADA, Hiromi
Wolfram (Bar)    후지무라, 마사도 FUJIMURA, Masato
Venus (Sop)      고니시,준꼬 KONSHI, Junko



처음이었다. 바그너의 오페라 전곡을 실연으로 감상한 것도 처음이었고, 예술의 전당 오페라하우스가 아닌 세종문화회관에서 오페라를 본 것도 처음이었고, 세종문화회관에서 3층이 아닌 1층에 앉아본 것도 처음이었다. 11일 공연을 보고 싶었지만 학회 날짜와 겹치는 바람에 12일 공연으로 일찌감치 R석을 예매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12일 출연진이 다른 날과 달랐다. 12일에 출연한 가수들은 베누스 역의 고니시 준꼬를 빼고 다들 바그너 경력이 일천한 2진 가수들이었고, 11일과 13일의 가수들이 진짜였던 것이다. 맙소사! 약이 올라 혼자 앓다가 결국 13일 공연을 3층에서 다시 보고 왔다. 원래는 13일에도 시간이 안 되는 것이었는데 운이 좋아서 여유가 생겼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의 오케스트라 피트는 기대했던 것보다 너무 작았다.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보다는 가로로 조금 더 넓은 것 같았지만 큰 차이는 없어 보였다. 이 때문에 오는 9월에 게르기예프가 키로프 오페라를 이끌고 와도 압도적인 스케일의 음향을 기대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노들섬에 짓는다는 새 오페라하우스가 유일한 희망이란 말인가. 제발 전시용에 그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오케스트라의 규모가 작을 때 음량 면에서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것은 무엇보다 현일 것이다. 바그너는 <탄호이저>를 오케스트레이션할 때 대규모 현악 파트를 염두에 두었으며, 극장의 현악 주자의 수를 정규인원보다 더 많이 둘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이번 공연에서 서울시향의 현은 부족한 인원을 감안하면 나쁘지 않은 음량을 내주었다. 12일 공연에서는 현이 금관과 합창 등에 묻혀 버리는 때가 종종 있었지만 13일에는 훨씬 나았다. 이것이 단순히 연주자들이 13일에 더욱 분발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극장 1층과 3층의 음향의 요술인지 나로서는 알 수 없다. 다만, 12일 2층에서 들었던 어떤 사람도 "좀 오버하자면 다이나믹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밋밋함의 연속이었"다고 평한 것을 보면 12일보다 13일의 연주가 더 좋았다는 내 느낌이 틀리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역시 소편성으로는 표현할 수 있는 다이내믹의 폭에 한계가 있었다. 이를테면, 서곡 마디 32에서부터 비올라-제2 바이올린-첼로-제1 바이올린-콘트라바스로 연이어 점층하는 셋잇단 리듬의 크레셴도는 그 폭이 충분히 크지 못했으며, 마디 37에서 마침내 트롬본이 이른바 ☞ '순례자의 합창' 모티프를 찬가처럼 크게 부풀려 연주할 때 현과 같은 리듬으로 힘을 보태는 호른 등은 바이올린의 음량에 제약을 받아 제 힘을 내지 못했다. 2막 4장의 이른바 '입당행진곡' 부분에서는 무대 위에 배치된 12대의 트럼펫이 들려주는 압도적인 소리가 큰 매력이지만, 이번 공연에서는 역시 '절제'를 위해 트럼펫 주자들이 무대 뒤편으로 숨어 버리고는 멀리서 들려오는 듯한 연출을 했다.


2막 4장, 입당행진곡 중 트럼펫 팡파르. 그림을 누르면 미디 음악이 연주됩니다. © 1997-2002 by Fabrizio Calzaretti.

<탄호이저>는 네 개의 판본이 있는데, 이 가운데 '드레스덴 판'이라 불리는 두 번째 개정판과 '파리 판'이라 불리는 네 번째 개정판이 흔히 사용된다. 팜플렛에 따르면 "간사이 니키카이는 1989년에는 드레스덴 판을 사용하였으나[역대 공연 연보에 따르면 이 오페라단은 이때 처음으로 <탄호이저>를 무대에 올렸으며 지난 5월 21일과 22일 공연이 두 번째였다. (팜플렛 43쪽.)] 이번에는 양치기 소년이 나오는 일부분만을 파리 판으로 할 뿐 나머지 부분은 전 공연과 같다." (33쪽.) 이 부분에서 드레스덴 판과의 차이는 파리 판에서 양치기가 노래를 하다 중간에("mein Auge begehrte zu schauen." 직후) 세 마디 동안 뿔피리(대본상으로 샬마이, 악보상으로는 잉글리쉬 호른)를 연주한다는 것이다.

지휘자 오카쓰 슈야는 프레이즈 사이사이를 살짝 늘여주는 등을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악보의 지시에 충실한 해석을 들려주었다. 특히 서곡 마디 145에서 바이올린과 플루트의 A# 음을 8분음이 아닌 16분음으로 대충 넘어가듯이 처리하는 녹음이 많아서 평소에 불만스럽게 생각하던 터였는데, 이번 공연에서는 악보대로 연주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내가 이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까닭은 이 부분의 리듬과 강약을 정확하게 지켜주어야 특유의 선동적인 느낌이 잘 살아나기 때문이다. 마디 145 첫 박 C# 음의 강세 표시는 세게 연주하라는 뜻이지 결코 길게 늘이라는 뜻이 아니다. 음가는 이미 바그너가 충분히 늘여놓았다.


서곡 마디 142-145. 그림을 누르면 미디 음악이 연주됩니다. © 1997-2002 by Fabrizio Calzaretti.

그러나 피날레의 템포는 지나치게 빨랐다. 서곡과 3막 순례자의 귀향 장면("Beglückt darf nun dich"), 그리고 피날레 합창("Der Gnade Heil")은 모두 ☞ '순례자의 합창' 모티프로 링크되어 있고, 그 템포는 메트로놈 템포 50으로 모두 동일하다. 그러나 내가 제대로 들었다면 지휘자는 세 부분 모두에서 바그너가 지시한 것보다 빠른 템포를 선택했다. 앞선 두 곳에서는 그렇다 쳐도 피날레에서만큼은 템포를 정확히 지켜야 제맛이 살아난다. 피날레의 템포 변화를 좀 더 살펴보자. 볼프람이 엘리자베트의 이름을 외치는 부분(리허설 번호 H)의 템포는 50, 탄호이저가 죽은 직후 젊은 순례자들의 합창이 시작되는 부분("Heil! Heil!")의 템포는 88, 마지막으로 다 함께 노래하는 부분("Der Gnade Heil")에서 템포는 다시 50으로 끝난다. 그러나 지휘자가 설정한 템포는 88이 되어야 할 곳에서 120 이상으로 들렸고, 마지막 부분에서도 60 이상으로 들렸다. 갑자기 크게 변한 템포는 단절감을 불러일으켜 피날레의 느낌을 강화시키기는 했지만, 지나치게 빠른 템포는 영적 고양감을 감소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깔끔한 것을 좋아하는 일본인 지휘자라서 바그너 식 왕자병 사운드에 닭살이 돋았던 것일까? 이상하다, 자민당과 나치는 통하지 않던가?

이번 공연에서 보여준 서울시향의 연주력은 깜짝 놀랄 만한 것이었다. 사실 이번 공연을 맡은 오케스트라가 간사이 니키카이 오페라단 전속이 아닌 서울시향이라는 사실 때문에 목돈을 투자하기에 망설여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서울시향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을 버릴 때가 된 것이다. 물론, 대편성일 때에도 마찬가지로 뛰어난 연주를 들려줄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서울시향은 이를 증명하라.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브루크너의 교향곡을 연주하여 입지를 확고히 하라. 마침 브루크너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 또는 옛 오명의 핵이 되어 버린 작품인 말러 교향곡 5번은 어떤가?

서곡 리허설 번호 G(마디 309)에서부터 시작하는, 바이올린이 크게 상행 도약 후 반음계적으로 하행하는 16분음 동형진행(이것이 이후 서곡이 끝나기 직전까지 100마디 이상 고집스럽게 지속된다!)은 바이올린 연주자라면 누구나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바그너에 대한 강한 적개심을 보이는 부분이며, 실제 연주를 들어보면 여기서 음형과 리듬과 강약이 흐트러지면서 전체 연주가 산만해지고 마는 것이 보통이다. (공교롭게도 이것이 리허설 번호 H(마디 379)에 이를 때까지는 텍스쳐의 전면에 노출되는 까닭에 적당히 뒤에 숨지도 못한다.) 그런데 서울시향은 놀랍게도 이것을 상당히 깔끔하게 연주해냈다. 국내 오케스트라가 이 부분을 이토록 훌륭하게 연주하는 것을 듣기는 처음이다. 2막 전주곡 마디 38에서부터 시작하는 바이올린과 비올라의 셋잇단음 스타카토 동형진행에서도 자칫 앙상블이 무너지기 쉬운데, 서울시향은 12일 공연에서는 다소 불안함을 보였지만 13일에는 훨씬 안정된 연주를 들려주었다.


서곡 마디 309-312. 그림을 누르면 미디 음악이 연주됩니다. © 김원철.


작은 실수도 전면에 노출되기 쉬운 트럼펫과 트롬본, 호른 등도 거짓말같이 안정된 소리를 내주었다. 특히 1막 4장 팡파르와 2막 '입당행진곡', 3막 전주곡 등에서 이들의 활약은 대단했다. 12일에는 입당행진곡에서 호른이 불안한 모습을 보였지만(악보대로 내추럴 호른을 썼기 때문인지 궁금하다. 모르기는 해도 그냥 밸브 호른을 써도 될 것 같은데, 이조 문제가 생각보다 까다로운 것일까?) 13일에는 나쁘지 않았다. 다만, 3막 전주곡의 찬가풍 섹션에서는 트럼펫과 트롬본이 좀 더 크게 부풀렸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목관의 치밀한 앙상블이 돋보인 3막 엘리자베트의 기도 장면은 특히 13일 공연 최고의 명장면이라 할 만했다. 탄호이저는 뿜빰거리기만 하는 작품이 아니며 이렇게 섬세한 대목도 있는 것이다.

최근 있었던 서울시향 재창단 과정에서 이명박 서울시장이 시향의 개혁에 큰 역할을 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와 시향 단원들 사이에 심각한 갈등이 생기기도 했고, 모 국회의원은 이 문제를 일반 노동문제로 파악하고 반대 성명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결국 약간의 타협을 거쳐 개혁을 단행했다. 나는 서울시향의 오디션 과정에 대해 자세한 내용을 알지 못한다. 그리고 문화라는 것은 누구 말마따나 건물 짓듯이 밀어붙인다고 육성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시향에 대한 서울시의 개혁이 적어도 껍데기뿐인 전시행정만은 아니었음을 서울시향은 연주로 말해주었다. 나는 정치인으로서의 이명박을 싫어한다. 그리고 그가 속한 정당은 더더욱 싫어한다. 그러나 내가 지지하는 정당에 음악애호가로서의 이해관계에 이토록 부합하는 정치인이 있었던가? 아무래도 나는 다음 대선 때 나의 정치적 이상과 음악 애호가로서의 실리를 놓고 고민하게 될 것 같다. 물론 나는 이상주의자에 가깝기는 하다.

간사이 니키카이 합창단은 과연 일본이 바그너 강국임을 보여주는 본보기라 할 만했다. (일본 바그너협회가 올해로 25주년이란다.) '입당행진곡'과 '순례자의 합창'에서는 전율을 느끼게 하였으며, 2막 노래경연대회 시작부터 탄호이저가 로마행을 외치는 부분까지의 집중력도 대단했다. 1막 3장과 4장에서의 중후한 남성합창도 빼놓을 수 없는 명장면을 이루었다. 옥에 티 하나를 말하자면, 테너 파트의 누군가는 때때로 독창자 수준의 비브라토를 억제하지 못하고 그대로 내버렸다. 그 바람에 주위 사람의 발성이 그에 동화되는 현상이 생기기도 했다. 비브라토는 음색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중 하나이며, 따라서 합창에서는 소리가 한 덩어리로 뭉치도록 하기 위해 가능한 비브라토를 억제하는 것이 기본이라 한다.

솔로 가수들에게는 사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마침 12일 공연 때 옆자리에 앉은 여자가 일본인인 것 같아서 엉터리 영어로 말을 걸었었다. '영어나 한국어 할 줄 아느냐? 일본 가수들이 바그너를 잘하느냐? 바이로이트 무대에 서본 사람은 있나?' 그녀의 대답은 이랬다. '가수들 노래 잘한다. 간사이 니키카이 오페라단 유명하다. 그런데 바이로이트가 뭐냐? 오늘 베누스 역으로 출연한 고니시 준코가 내 동생이다. 너는 음악 하는 사람이냐?' 별로 영양가 있는 대답은 아니었지만, 실제로 확인한 가수들의 수준은 생각보다 매우 높았다.

탄호이저 역의 나리따 가쓰미는 팜플렛에 따르면 탄호이저, 로엔그린, 지크문트, 발터 등 바그너 경력이 화려한 가수이다. 그의 강한 목소리는 과연 바그너 가수다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의 발성에 고음 쪽으로 치우치는 음고 비브라토가 짙게 묻어나오는 점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러한 비브라토는 음정을 흐릿하게 만들어버리며, 때때로는 정확하지 않은 음정을 지저분하게 가리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동양계 테너에게 강한 목소리와 폭이 큰 음고 비브라토는 트레이드-오프(trade off) 관계일까? 이와 유사한 발성을 하는 가수로 귀네스 존스가 있다. 3막 '로마 이야기'에서는 의외로 강렬함과 사악함이 부족한 목소리를 내었다. 딕션은 양호한 편이었으며, /n/ 발음과 /m/ 발음 등을 과장하여 부족한 점을 가린 것이 특징적이었다. 12일 공연에서의 네기 시게루는 나리따 가쓰미와 달리 깔끔하고 담백한 발성이 좋았지만, 바그너 가수가 아니라서 그런지 탄호이저치고는 목소리가 너무 물렀다. 그래도 '로마 이야기'에서 억지로 가장한 사악함은 어색하기는 했어도 나리따 가쓰미보다 차라리 듣기 좋았다. 딕션은 별로였고, 1막에서 베누스를 향해 "Göttin"이라고 외칠 때에는 일본어로 말하는 듯한 발음에 웃음이 나왔다.

헤르만 영주 역의 기카와다 기요시는 당장 바이로이트 무대에 서도 될 것 같은 탁월한 바그너 가수였다. 파프너, 구르네만츠 등의 배역을 맡은 바 있다는데 내가 듣기로 구르네만츠에 딱 어울리는 목소리였다. 어, 그런데 이 사람, 일본 바그너협회 회장이란다! 공연이 끝나고 가수들이 하나씩 무대로 나와 인사할 때 그에게 뭐라고 찬사를 보낼까 생각하다가 '브라보'와 함께 'Gurnemanz, Heil!'이라고 외쳤다. 12일 공연의 기카와다 마코토 역시 훌륭했다. 음색 또한 구르네만츠에 어울렸는데, 이름을 봐도 두 명의 헤르만은 형제 사이가 아닐까 싶다.

베누스 역의 고니시 준코는 바그너 가수가 귀했던 12일 공연에서는 탄호이저를 압도하고 주인공급으로 부각되었으나, 13일에는 다른 쟁쟁한 가수들에 밀려 다소 빛이 바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12일과 13일의 가수들의 수준 차이를 단적으로 느끼게 한 부분이라 하겠다.) 나리타 가쓰미와 유사한 음고 비브라토를 구사했지만 그 폭이 아주 크지는 않아서 양호했다. 고니시 준코는 <라인의 황금>에서 벨군데 역으로 데뷔했고, 쿤드리(팜플렛에는 "<퍼시발>에서 마법의 딸로 출연"했다고 되어있는데, 이것이 한 번에 이해되지 않아 갸우뚱했었다. 정황으로 보아 <파르지팔>의 쿤드리가 맞지 싶다.), <발퀴레> 중 브륀힐데, <살로메> 중 살로메 역을 맡은 바 있다고 한다. 내가 듣기로 쿤드리 역에 잘 어울리는 목소리였다. 드레스덴 판이 아닌 파리 판 <탄호이저>였다면 고니시 준코가 더욱 돋보였을 텐데 아쉽다. (파리 판 <탄호이저>는 1막 베누스의 독창 부분에서 화성적으로나 관현악법으로나 훨씬 두터운 <트리스탄과 이졸데> 이후의 양식이 나타나며, 그래서 파리 판의 베누스는 <파르지팔>의 쿤드리를 예견하게 한다. 그에 비하면 드레스덴 판의 베누스는 평범한 화성과 단출한 반주로 평면적인 성격을 보인다.) 한 가지 안타까웠던 것은, 12일 공연에서는 역시 사람들이 1막을 꽤 지루하게 느꼈던 것인지, 아니면 지각한 사람이 많아서였는지(2, 3층 사정이 어땠는지 모르겠다. 1층은 오히려 1막이 끝나고 이른바 '싸장님' '싸모님'들이 꽤 빠져나가고 없었다.), 그도 아니면 야한 의상 때문에 민망해서 그랬는지, 1막이 끝난 뒤에 객석의 반응이 영 시원찮았다는 것이다. 조연이 하나씩 나와서 인사를 하고 난 뒤에 주인공이랍시고 베누스가 나왔는데, 무대의 분위기는 당연히 '브라바'가 나와야 할 것 같았지만 객석이 워낙 '얌전'해서 내가 감히 '브라바'를 외칠 수가 없었다. 대신 13일 공연에서는 1막과 3막이 끝나고 한 번씩 '브라바'를 외쳐주었다.

엘리자베트 역의 가키하나 요코는 맑고 고운 음색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파르지팔>의 꽃처녀(팜플렛에는 '마법의 을녀1'이라고 되어 있다. '갑남을녀' 할 때 을녀?)를 맡은 적이 있단다. 3막 엘리자베트의 기도 장면에서 목관과 너무나 잘 어울렸던 목소리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2막에서 성난 기사들 앞을 막아서는 장면에서는 상당히 힘있는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객석으로부터 가장 열광적인 환호를 받은 가수가 아닐까 싶다. 12일 공연의 하타다 히로미도 배역에 잘 어울리는 목소리였다.

볼프람 역의 하기와라 히로아키는 경력을 보면 바그너 가수가 아닌 모양이지만, 조금 다듬으면 본격적으로 바그너를 해도 될 것 같다. 힘을 좀 더 키우면 보탄까지도 가능하지 않을까. 12일 공연의 후지무라 마사토는 암포르타스 역을 맡은 적이 있단다. 그래도 하기와라에 비하면 한 수 아래라고 느꼈다.

양치기 소년은 노회한 양치기의 목소리라 영 어색했다. 역시 일본에서도 보이 소프라노가 귀한 모양이다. 오카모토 스미는 팜플렛의 사진을 보면 꽤 귀엽게 생겼지만 목소리는 그다지 맑지 않았고 비브라토는 깊고 둔중했다. 그런데 연기는 또 어린아이 연기를 제대로 하니 민망한 부조화가 느껴졌다. 막이 내리고 인사를 하러 나올 때에도 폴짝 폴짝 뛰어나오는 것이 귀엽다기보다는 부담스러웠다. 네 명의 시동은 단역임에도 썩 훌륭했다. "Wolfram von Eschenbach, beginne!" 하는 대목이 너무나 맛깔스러워 아직까지도 귀에 맴돈다.

<탄호이저>를 국내 초연한 것은 1979년 국립오페라단이며 고(故) 홍연택 선생이 지휘를 맡았다 한다. 1974년에는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을, 1976년에는 <로엔그린>을 초연했으며, 세 작품 모두 한글로 번역해 공연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번이 네 번째로 바그너 오페라 전막을 공연한 것이며, 원어로는 초연인 셈이다. 다음 차례는 오는 9월, <니벨룽의 반지>다. 반지의 권능이 한국을 향했나니!

2005년 6월 14일 씀.
2005년 6월 15일 최종 수정.


정보공유라이선스

김원철. 2005.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2009년 6월 22일 월요일

연주회 실황 중계/녹화 방송 유감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어떤 클래식 음악 사이트에서 연주회 평이 호평과 악평으로 뚜렷하게 갈린 일이 있었다. 호평을 한 사람들은 연주회장에 직접 가서 들은 사람이었고 악평을 한 사람들은 TV 방송을 본 사람이었다. 호평을 한 사람이 모두 '막귀'였을까? 내가 알기로 그 가운데 지휘를 전공한 사람도 있으니 그렇게 믿기는 어렵다. 연주회장이 저 악명 높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이어서 실연을 들어도 호평이 나오기 어려우니 아무래도 방송에 문제가 있었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방송을 본 사람은 끝끝내 지휘자와 악단 탓이라고 우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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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는 것이 모두 진실은 아니다

그 뒤로 나는 무엇이 문제인지를 제법 오랫동안 따져 생각해 보았다. 나는 음향 엔지니어링 전문가가 아니라 깊이 파고들지는 못했으나 적어도 맥은 제대로 짚었다고 생각한다.

2008년 11월 6일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있었던 ☞서울시향 연주회. 첫 곡은 모차르트 ☞<구도자의 엄숙한 저녁기도 K. 339>였다. 이 곡은 비올라를 쓰지 않는 등 악기 편성이 특이한데, 이날 서울시향은 제2 바이올린을 무대 오른쪽으로 보내고 첼로를 가운데로 모았다. 제1 바이올린과 제2 바이올린을 떨어뜨려 놓으면 어지간한 합주력으로는 소리가 망가지기 일쑤인데, 서울시향이 훌륭하기도 했거니와 이날 소편성으로 연주해서 그런지 생각보다 앙상블이 매우 훌륭했다. 지휘자는 ☞정명훈이었다.

그러나 나는 집에 와서 라디오 중계방송 녹음을 다시 들어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악기 소리가 엉망진창으로 뒤섞이고 밸런스는 산으로 도망가버린 탓에 참고 들어주기 괴로웠기 때문이다. 그다음에 연주했던 ☞말러 교향곡 4번에서는 그럭저럭 들어줄 만했으니 내가 보기에 원인은 하나다. 음향 엔지니어가 작품과 악기 배치에 따라 알맞게 믹싱(mixing)을 하지 않고 '기본 설정' 그대로 내버려두었기 때문이다.

☞말러 교향곡 4번 또한 그럭저럭 참고 들어줄 만했을 뿐 소리를 잘 잡았다고 하기 어려웠다. 모든 악기 소리가 나무랄 데 없이 고르게 나지도 않았고, '언제나 그렇듯이' 클라리넷 소리가 혼자서 튄다거나 하는 일이 잦았다. 악기 소리가 고르지 않을 때 지휘자는 연주자에게 소리를 크게 또는 작게 내라고 말해주면 된다. 마이크와 믹서 따위로 소리를 잡아내는 음향 엔지니어는 믹서로 소리 크기를 바꿔주면 된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어떤 소리가 고른 소리인지 알려면 어느 대목에서 어느 악기가 얼마만 한 크기로 어떻게 연주하는지 엔지니어가 훤히 꿰고 있어야 한다. 멀티채널 녹음을 하면 나중에 편집이라도 할 수 있으나 중계방송이라면 소리가 나기에 앞서 믹싱을 해줘야 하니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엔지니어가 곡을 잘 모른다면?

밸런스 문제를 한 방에 해결할 방법이 있다. 마이크 두 개만으로 스테레오 사운드를 잡는 이른바 '원 포인트 마이킹'을 하면 된다. 그러나 이렇게 하면 마이크 위치와 연주회장 음향 사정에 따라 소리가 달라지는 등 여러 가지 걸리는 것들이 있어서 보통은 마이크를 여러 대 놓고 믹싱을 하게 된다. 마이크를 악기 가까이 두면 또렷한 소리를 잡을 수 있으나 다른 악기와 어우러지게 하기 어렵고 생동감이 줄어든다. 거꾸로 마이크를 멀리 두면 자연스러운 소리를 잡을 수 있으나 연주회장 음향에 따라 소리가 멍청해질 수 있고 위상 간섭이 일어나 소리를 갉아먹기도 한다. 그래서 엔지니어들은 보통 가까운 곳과 먼 곳에 모두 마이크를 놓고 믹서로 알맞게 섞는다고 한다.


결국 믹서 다루는 솜씨에 따라 소리가 크게 달라지는데, 우리나라 연주회 실황 중계/녹화 방송을 들어보면 마치 악기 가까이에만 마이크가 있는 듯이 들린다. 그래서 현악기가 아기자기하게 주고받는 대목에서는 썩 듣기 좋은 소리가 나기도 하지만 총주 때에는 밸런스가 꼬이고 생동감이 없어지곤 한다. 마이크 가까이 있는 연주자가 작은 실수라도 하면 그것이 크게 과장되기도 한다. 나란히 비교해 보지는 못했으나 내가 받은 느낌으로는 KBS 1FM 중계방송보다 MBC TV 녹화방송이 조금 더한 듯하다.

컴프레서(compressor)를 함부로 쓰는 일도 큰 문제다. 컴프레서란 쉽게 말해 다이내믹 레인지를 줄여서 작은 소리도 크게 들리게 하는 장치 또는 알고리듬이다. 음반 녹음을 할 때면 가정용 오디오에 알맞게 다이내믹 레인지를 줄이곤 하는데, 라디오는 전송 대역폭이 좁아서 다이내믹 레인지를 더 줄일 때가 잦다. 그런데 연주회 실황 방송에서는 해도 너무한다 싶을 만큼 다이내믹 레인지가 좁아서 문제이며, 대편성 관현악곡을 연주할 때에는 이것이 치명적이다. 컴프레서는 작품에 따라, 그리고 연주회장 음향에 따라 알맞게 써야 하며, 얼마만큼이 알맞은지 정답은 없다. 그러나 글쓴이가 보기에 우리나라 연주회 실황 방송에서는 '기본 설정'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는 듯하다.

2009년 3월 5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있었던 서울시향 연주회에서는 정명훈 지휘로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을 연주했다. 글쓴이는 ☞서울시향 월간지 <SPO>에 보낸 연주회 리뷰에서 이렇게 썼다.

"타악기는 너무 앞으로 나서지 않고 다른 악기 소리에 감칠맛을 더할 때가 잦았고, 이를테면 살로넨 녹음에서 큰북이 매우 큰 소리를 내는 1부 5곡 '적대관계에 있는 부족들의 의식' 마디 439에서도 악보에서 지시한 '메조포르테'를 넘어서지 않았다. 그러나 꼭 필요한 곳에서는 연주회장이 무너질 듯한 소리를 터트리기도 했다. 1부 마지막 네 마디에서는 큰북이 무시무시한 크레셴도를 들려주었고, 2부 3곡 '선택된 처녀에게 영광을'에 들어서기 바로 앞서 나오는 4분음 11연타 때에는 큰북과 팀파니가 현 소리를 누르고 마구 두드려댔다. 2부 끝 곡 '희생의 춤'에서는 타악기끼리 어질어질한 폴리리듬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KBS 1FM 라디오 중계방송이나 MBC TV 녹화방송에서는 무시무시한 타악기 소리가 관악기에 묻혀버리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자꾸만 일어났다. 타악기 소리가 아니더라도 음악에 '펀치력'이 없어서 밋밋하고 지루하게 느껴졌다. 밸런스도 곧잘 어긋나서 음악에 담긴 뉘앙스가 자꾸만 어그러졌다.

우리나라 방송국 음향 엔지니어는 왜 이토록 무능한가? 이 말은 참 어리석다. 질문을 이렇게 바꿔보자. 우리나라 오케스트라는 왜 유럽이나 일본 오케스트라보다 연주를 못하는가? 솜씨 있는 연주자들이 국내 오케스트라에서 푸대접받으며 일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 음향 엔지니어도 다르지 않으리라. 오케스트라 전문 음향 엔지니어가 있는지도 의심스럽거니와 연봉이 얼마나 될지는 뻔하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될까? 나보다는 음향 엔지니어들한테 직접 물어보라. 다만, 서울시향처럼 돈 많은 오케스트라는 당장 편법을 쓸 수 있다. 솜씨 좋은 음향 엔지니어를 외국에서라도 서울시향 전속으로 모셔오면 된다. 공연 기획을 마이클 파인에게 맡길 만큼 눈 높은 곳이니 음향 엔지니어 또한 그리 못할 까닭이 없다.

나중에 붙임.

다른 곳에 링크를 걸었더니 방송국은 연주회장으로부터 2채널 신호를 그냥 받아올 뿐이라는 댓글이 달렸다. 따라서,

(1) 방송국 탓이 아니라 연주회장 탓이다.

(2) 내가 KBS 1FM 라디오와 MBC TV가 다르다고 느낀 일은 착각이라는 얘기가 된다. (글 쓰면서 그럴 가능성을 어렴풋이 생각해서 도망갈 구멍을 만들어 놓기는 했는데..;; 어쩌면 단순 볼륨 차이를 그렇게 느꼈을지도..;;)

(3) 또 생중계가 아닌 녹화를 하더라도 '원본'이 2채널이므로 마스터링을 해 봐야 크게 달라지지 않는 이른바 '원판 불변의 법칙'이 적용된다.

그리고 댓글 가운데 믹싱이 아니라도 변수가 매우 많다는 말씀도 있었으나 자세한 설명은 없더라. 전문가 눈으로 깊이 파고들면 당연히 변수가 많을 게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오케스트라 전문 음향 엔지니어를 키워야 한다는 논지는 그대로다. 키워야 할 주체가 방송국이 아니라 연주회장으로 바뀌었을 뿐.

또 붙임. 댓글은 이곳에 달아주심 안 될까여?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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