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20일 목요일

2006.12.27. 베토벤 교향곡 8번, 9번 - 정명훈 / 서울시향

정명훈과 서울시향, 베토벤 심포니 싸이클4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베토벤 교향곡 제8, 9번
 
소프라노 유현아, 메조소프라노 양송미, 테너 정의근, 베이스 양희준, 연합합창단



※ 음악 용어는 국어사전에 나오는 것들은 필요하다고 판단한 부분만 원어 표기했습니다. 또 아스키 텍스트만으로는 점 4분 음표와 점 2분 음표의 표현이 불가능해서 편법을 썼습니다.
♩. = 점 4분 음표
♩♩. = 점 2분 음표
 


"오로지 예술과 학문만이 인간을 신의 경지로 들어올린다." "우리에게는 도덕규범이 그리고 우리 위에는 별이 빛나는 하늘이! 칸트!!"
- 베토벤
 
베토벤은 만인이 신 앞에 평등함을 굳게 믿었으며, 인류의 발전과 진보를 무한히 신뢰하는 당대의 가치관에 누구보다도 강한 영향을 받고 음악을 통해 그것을 실현하고자 노력했다. "고난을 거쳐 별들의 나라로 per aspera ad astra"라는 경구로 흔히 대변되는 이러한 정신은 베토벤에게 거인의 이미지를 부여하였고, 그 이미지는 19세기 후반부터 악기들이 현대적으로 개량되면서 더욱 거대하게 부풀려졌다. 악기 편성은 베토벤이 지시한 것보다 훨씬 큰 규모로 늘어났고, 템포는 느리고 장중해졌다.
 
그러나 그동안의 학술적 성과에 힘입어 작곡 당시의 악기와 관습을 되살리려는 이른바 '원전 연주'가 유행하면서 베토벤 해석의 패러다임도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베토벤이 지시한 악기 편성과 템포를 최대한 지키려는 노력이 나타났으며, 현대 악기를 사용하더라도 베토벤 당시 악기의 장점을 살리는 연주법이 시도되었다. 특히 1997년 베렌라이터(Bärenreiter) 출판사에서 이른바 "원전판" (Urtextausgabe; 이하 베렌라이터 판) 악보를 출판한 이후 이것은 새로운 대세로 굳어지는 추세이다. 원전판 악보란 무엇인가. 음악학자 홍정수의 설명을 빌리자면 원전, 즉 "작곡가가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관여한 기록물이나 출판물"을 바탕으로 "한 음악이 여러 악보들을 통해 전해 내려오면서 변질되는 과정을 밝혀내고 원래의 음악을 재구성"한 학술적 성과물인 이른바 "비평판(Kritische Ausgabe) 악보를 실용적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또한, 원전판은 "원 작곡가가 쓰지 않은, 후에 다른 사람들에 의해 첨가된 부분들을 원칙적으로 피한다. 그리고 원전과 다른 내용을 기록해야 할 경우에는 학술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 부분들만을 첨가한다."
 
정명훈과 서울시향의 베토벤 시리즈도 이러한 추세를 부분적으로 수용했다. 즉, 악보의 지시를 따라 소규모 오케스트라를 사용해 베토벤 시대의 투명하고 아기자기한 앙상블의 장점을 살리려 했다. 객석에서 관찰한 바에 따르면 교향곡 8번에서는 악보가 지시한 관악기 수를 정확하게 지켰고, 현악기 수도 그에 맞게 줄였다. 교향곡 9번에서는 목관 악기와 호른을 두 배로 늘인 듯하다. 그밖에 몇몇 부분에서 베렌라이터 판 이전 시대와는 달라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신 전통적인 베토벤 연주에 익숙한 관객이 낯설어할 만한 템포는 피했다. 반복 기호도 정확히 지키지는 않았는데, 교향곡 8번에서는 3악장 두 번째 미뉴에트에서 반복을 생략했고, 교향곡 9번에서는 2악장 트리오 직전의 반복을 생략했다.
 
그러나, 아아! 정명훈의 중용적인 해석과 서울시향의 잘 다듬어진 앙상블을 망쳐놓은 걸림돌이 있었으니, 바로 터무니없이 거대한 연주회장이었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은 외국 연주자들이 왔다가 다들 깜짝 놀랄 정도로 연주회장으로는 비정상적으로 크다. 어떤 가수는 세종문화회관을 보고서 목 상하겠다며 공연을 취소해버리기도 했단다. 세종문화회관 홈페이지에 따르면 대극장의 객석 수는 3,075석으로 외국 유수 공연장의 약 1.5배에서 2배 정도다. 이런 곳에서는 어지간한 대편성 오케스트라도 제 기능을 못하는데 19세기 초 규모의 소편성 오케스트라로 연주를 했으니, 그 결과는 원래 의도했을 "투명하고 아기자기한 앙상블"이 아니라 저 멀리서 아련하게 들려오는 '목욕탕 사운드'였다. 특히 여러 성부가 복잡하게 얽히는 부분, 이를테면 교향곡 9번 1악장 발전부 이중 푸가(double fugue; 마디 218 이후)는 모든 성부가 흐리멍덩하게 하나로 뭉쳐져서 듣고 있기 괴로울 지경이었다. 대편성을 사용하면 되지 않느냐고? 내가 정명훈이라면 낡은 해석을 고집하는 수구파 지휘자의 낙인을 찍히느니 다 관두고 서울시향을 떠나고 말겠다.
 
지금 서울시향에 가장 시급한 것은 제대로 된 전용 연주회장을 마련하는 것이다. '남의 집 살이'로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연주회 프로그램을 짤 수도 없고, 연습 때와는 전혀 다른 음향 환경에서 본 실력을 발휘할 수도 없다. 무엇보다 음향적으로 열악한 현재의 연습실에서 연습한다고 제대로 된 실력이 쌓일 리가 없다. (서울시향의 리허설을 참관해보고 하는 얘기다.) 서울시향은 개편 이후 비약적인 연주력 향상을 이루어내었고 지금도 꾸준히 발전하고 있지만, 장담하건대 그리 머지않아 정체가 온다. 세계 최고 수준의 악단을 만들겠다고? 미안하지만 제대로 된 전용 홀을 지을 때까지는 어림도 없다! 정명훈이 아니라 카라얀이 살아 돌아와 서울시향을 이끌어도 절대로 불가능하다. 축구 선수들이 잔디 구장은커녕 바닷가에서 연습하고 있는데 히딩크만 데려온다고 유럽 수준의 강팀이 되나?
 
사정이 이러니 이날 연주회는 솔직히 말해 별로 가슴에 와 닿지 않았다. 그러나 적어도 머리로는 정명훈의 해석과 서울시향의 앙상블이 뛰어남을 수긍할 수 있었다. 교향곡 8번에 대한 정명훈의 해석의 키워드는 우아함과 세련됨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은 주로 느긋한 템포 때문인데, 특히 미뉴에트(Menuet) 악장이 그랬다. 악보에 나타난 메트로놈 지시는 '♩= 126'인데, 이 템포는 실제로 미뉴에트 리듬에 맞춰 춤을 추기에는 너무 빠른 감이 있다. 베토벤은 작품 전체에 걸쳐 나타나는 음악적 유머의 하나로 이런 템포를 사용했을 수도 있고, 어쩌면 단지 교향곡 악장 구성의 관습을 따라 미뉴에트 악장을 넣었을 뿐일 수도 있다. 정명훈은 '♩= 100' 정도의 템포로 충분히 춤을 출 수 있을 만한 음악을 만들어내었다. 다른 악장도 마찬가지로 템포를 느리게 잡았고, 작품 속의 여러 가지 유머는 우아함을 잃지 않는 범위 내로 통제되었다. (여기서 음악적 유머란 이를테면 1악장 시작부터 종지형(終止形)을 사용했다는 것(노래 시작했다, 노래 끝났다!) 등이 있겠는데, 19세기 초 유럽의 유머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크게 문제 될 것은 없고 단지 작품의 밝고 즐거운 분위기를 느끼는 정도면 충분하다.) 정명훈의 템포 설정이 진부하다는 의견도 더러 있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도 교향곡 8번은 템포가 더 빠른 연주를 좋아한다. 그러나 만약 연주회장의 음향이 소편성 오케스트라의 장점과 서울시향의 세련된 프레이징을 뚜렷하게 살려주었더라면 누구나 이날 연주의 참맛을 알 수 있었으리라.
 
베토벤 교향곡 8번은 바이올린의 활 사용과 관련해서 특히 첫째 마디에 난점이 있다. 바이올린은 첫 세 음을 레가토, 즉 부드럽게 이어서 연주하고 다음 두 음을 스타카토, 즉 짧게 끊어서 연주하여 둘째 마디로 넘어간다. (여기서 '스타카토'는 바이올린 주법의 일종이 아닌 일반적인 의미로 사용했으며, 베렌라이터 판 악보에서는 스타카티시모, 즉 아주 짧게 연주하도록 고쳐졌다.) 그런데 셈여림 등의 음악적 맥락을 고려하면 활을 현 위에서 가볍게 튕기는 이른바 스피카토 등의 주법을 쓰기에 마땅치 않다. 내가 여러 음반을 확인해본 결과 모두 활을 현에서 떼지 않은 상태로 분절적인 느낌을 주는 이른바 데타셰 주법을 사용했지만 스타카토의 분절적 느낌은 모두 달랐다. (활을 현에서 떼는 특수한 데타셰도 있지만 얘기가 너무 복잡해지므로 넘어가자.) 여기서 결국 중요한 것은 보잉(bowing)의 방향 설정인데, 서울시향은 레가토 부분에 내림활을 쓰고 스타카토 부분에서 방향을 바꿔주는(내림-올림-내림) 무난한 보잉을 택했고 스타카토의 분절적인 느낌도 잘 살렸다. 그러나 이렇게 하면 한 가지 문제가 생기는데, 둘째 마디 첫 음이 올림활이 되는 것이다. 마디 첫 음은 내림활을 쓰는 것이 여러모로 유리하며, 특히 둘째 마디 첫 음은 앞서 말한 바 있는 음악적 유머로서의 종지형이므로 더더욱 내림활이 좋다. 어떤 음반에서는 여기서 올림활 특유의 소리가 커지는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서울시향은 둘째 마디 첫 음을 충분한 음가로 연주하지 않고 중간에 살짝 끊음으로써 난점을 교묘하게 피했다. 같은 패턴의 리듬이 사용된 마디 162와 1악장 끝인 마디 372에서도 같은 보잉을 사용했다. 이 부분의 보잉이 특이한 영상물로는 번스타인-빈필과 아바도-베를린필의 것이 있다.
 
교향곡 9번은 종악장 도입부의 이른바 '공포의 팡파르'가 음반으로 듣던 것과 너무 달라 당황한 관객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서울시향이 특별히 큰 실수를 한 것은 아니고 사실은 악보에 적힌 그대로 연주하면 그렇게 된다. 베토벤 당시의 트럼펫은 현대의 트럼펫과는 달라서 구조적으로 낼 수 없는 음이 많은데, 그 때문에 베토벤은 주요 선율을 목관 악기에 맡기고 트럼펫 등의 금관 악기는 단지 보조적인 역할만 하도록 했다. 이 때문에 목관 악기의 작은 음량을 금관 악기가 가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며, 결국 '공포의 팡파르'라 부르기에는 다소 밋밋한 소리가 된다. 악기가 현대적으로 개량된 뒤에는 트럼펫 파트를 가필(加筆)하는 것이 관행이 되었고, 금관 악기의 압도적인 음량을 앞세운 진정한 '공포의 팡파르'가 가능해졌다. 그러나 베렌라이터 판 악보의 영향으로 요즘은 이 부분을 원래대로 가필 없이 연주하는 경우가 많으며, 정명훈 역시 그렇게 했다. 사견으로는 다른 곳도 아닌 세종문화회관에서 가필 없이 연주한 것은 득보다 실이 많았다. 그나마 팀파니의 활약이 아니었으면 정말 심심한 연주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터키 행진곡 부분과 이어지는 테너의 독창도 베렌라이터 판 악보의 영향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곳의 메트로놈 지시는 원래 '♩. = 84'였다. 그러나 이것은 첫째로 행진곡이라기에는 지나치게 느린 템포이며, 둘째로 갑자기 느려진 템포가 4악장을 크게 양분해버림으로써 음악의 구조에 큰 결함을 가져온다는 점에서 심각한 오류라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대개는 악보의 지시보다 더 빠른 템포로 시작한 다음 가속을 하여 문제를 해결해 왔다. 초기 원전연주 음반에는 악보의 템포 지시를 그대로 지킴으로써 시행착오를 보이기도 했는데, 베렌라이터 판 악보에서는 '♩. = 84'를 '♩♩. = 84'의 오기로 보아 수정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했다. 한편, '♩♩. = 84'의 템포는 행진곡으로는 적당하지만 테너 독창으로는 너무 낯설게 들려서 이것을 충실히 지킨 가디너(Gardiner) 지휘의 연주는 논란이 되기도 한다. 이날 연주에서는 '♩♩. = 65' 정도의 템포를 사용했는데, 전반적인 템포 설정을 악보의 지시보다 느리게 잡았으므로 여기서 템포가 갑자기 크게 느려진 것도 아니었고, 행진곡으로도 무리가 없었으며, 이어지는 테너의 독창이 너무 빠르지도 않아 모든 면에서 중용을 지킨 템포였다. 이중 푸가(마디 655 이후)에서도 같은 템포를 사용하여 해석의 일관성을 유지했다. (이 부분의 메트로놈 지시는 '♩♩. = 84'로 베렌라이터 판 악보의 행진곡 부분에서 수정된 지시와 정확히 같다.)
 
이날 연주에서 해석이 가장 참신했던 부분은 3악장 마디 133에서 제2 바이올린을 강조한 것이었다. 이 부분은 원래 피아니시모(매우 여리게)로 연주해야 하지만 반대로 포르티시모(매우 세게)로 연주했다. 활의 사용도 상당히 거칠어서 눈을 감고 들으면 비올라 소리로 착각할 정도였다. 나는 교향곡 9번 3악장에서 베토벤에 대한 일반적인 이미지와는 차이가 있는 상처받은 가녀린 영혼을 느끼곤 하는데, 정명훈은 여기서도 비탄에 잠긴 영웅 베토벤의 모습을 발견한 듯하다. 1악장 종결구(코다)의 저음 오스티나토(basso ostinato)가 시작되는 마디 513에서 템포를 크게 늦춘 다음 1악장이 끝날 때까지 가속한 것도 좋은 아이디어였다.
 
베토벤 교향곡 9번은 교향곡에 합창을 도입한 최초의 작품이며, 바그너는 이것을 콜럼버스에 비유했다. 쉴러의 <환희의 송가 Ode „An die Freude“>가 가사로 사용된 이 작품이 오페라나 가곡이 아니라 교향곡이라는 사실은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려준다. 이 작품이 단순히 성악을 위한 작품이 아니라 교향곡을 형식적, 음향적으로 확장하고 음악적 표현력을 높이도록 가사가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근거로 음악학자 주대창은 (1) 음악의 전개와 시의 진행이 불일치하고, (2) 가사 내용을 충실하게 전달하기보다는 특정 단어, 이를테면 모든 사람들(alle Menschen), 환희(Freude), 형제들(Brüder) 등을 반복하거나 독립적 제창으로 사용하여 또렷하게 들리도록 함으로써 전체적인 의미를 승화적으로 전달하려 했으며, (3) 이러한 가사의 성격적 사용이 선율 주제의 음악적 처방과 맞물려 있는 등 성악을 기악적으로 사용했음을 지적한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전통적인 성악에 익숙한 한국의 가수들은 베토벤 교향곡 9번의 이러한 특성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연주회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좋은 발성을 위해 자의적으로 고쳐진 리듬과 템포, 흔들리는 음정 등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탈리아 오페라 등에서는 관현악이 가수들에게 맞춰줄 수 있기 때문에 이것이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베토벤의 "교향곡" 9번에서는 가수들이 주인공이 아니라 하나의 '악기'인 것이다. 특히 나는 베이스 양희준에게서 많은 아쉬움을 느꼈다. 그가 타고난 목소리만큼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부족함이 없을 만큼 탁월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번 연주회에서는 정명훈의 수완이 좋았는지 예전에 흔히 봐왔던 것보다는 꽤 나아지기는 했다는 것이 다행스러웠다. 독창자들이 무대 앞으로 나오지 않고 오케스트라와 섞여서 노래한 것도 음향적으로나 음악적으로나 훌륭한 선택이었다. 독창자들이 '주인공' 의식을 가지고 앞으로 나오겠다고 우기느라 정명훈과 갈등이 생기지는 않았는지 모르겠다. 독창진이 연주 도중에 입장하느라 오케스트라를 방해한 어처구니없는 모습을 보고 나니 정명훈과 독창진 사이에 일종의 타협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든다. 만약 정명훈이 모든 것을 양보했다면 4악장 전체가 망했을 것이다. 정명훈 선생님,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습니까. 차라리 공개 오디션으로 학생들에게 등용의 기회를 주었더라면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합창단은 소리가 우렁찬 것은 참 좋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좋았던 것은 그것뿐이었다. 음량 조절을 못해서 오케스트라 소리를 묻어버리기 일쑤였고, 피아니시모(매우 여리게)는 메조 포르테(약간 세게)가 되어버렸다. 화음이 썩 잘 맞지도 않았다. 한 마디로 서울시향과 같이 연주하기에는 수준이 맞지 않았다. 그리고 사실은 이것이 국내 합창단의 현주소인 것 같다. 아직은 먼 훗날의 일일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서울시향과 마찬가지로 재단 차원에서 합창단을 관리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우수한 합창 지휘자를 영입해야 함은 물론이다.
 
관객의 수준은 꽤 높았다. 다만, 교향곡 8번 1악장 종결구 직전 모든 악기가 여리고 부드럽게 가는 부분에서 누군가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벨 소리가 아니라 진동이어서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혹시나 진동 소리가 다른 사람에게 들리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렇지 않을 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에게 심각한 방해가 됨을 일깨워주고 싶다. 미국의 어느 연주회장에서는 연주회 시작 직전 방송으로 전화 벨 소리를 크게 들려주면서 전원을 끄기를 부탁하여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니 공연장 관계자 분들은 참고 바란다.
 
정명훈의 베토벤 해석은 전통과 새로운 패러다임 사이에서 중용을 보였고, 서울시향의 뛰어난 앙상블이 그것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연주회장의 음향은 이들에게 걸림돌이 되었으며 전용 연주회장의 마련이 시급함을 역설적으로 알려주었다. 성악진에도 많은 아쉬움이 있었다. 정명훈과 함께한 서울시향은 지난 일 년간 베토벤이라는 정통 레퍼토리로 악단의 기초를 다져왔다. 이제 베토벤에 이어 브람스로 그간 다져온 기초를 공고히 할 때다. 2007년에도 서울시향의 지속적인 발전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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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철. 2007.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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