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지휘자 : 정명훈
협연자 : 김수빈(vn), Jian Wang(vc)
Brahms: Double Concerto in a minor, Op. 102 (32')
Brahms: Symphony No. 2 in D major, Op. 73 (40')
정명훈이 지휘를 맡는 연주회에 대해 내가 개인적으로 품은 불만 한 가지는 대부분 연주회장이 세종문화회관이라는 것이다. 객석이 많은 만큼 수익성이 높다는 장점을 무시하기는 어렵겠지만, 연주회장의 음향이 열악한 만큼 마니아들의 반응도 차가운 법이라 세종문화회관에 너무 의존하는 것은 장기적으로는 수익에도 악영향을 끼치리라는 점 또한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이번 연주회가 드물게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것이 반갑다. 과연 소리 자체가 주는 감동의 깊이가 달랐다.
오케스트라의 전체적인 음량 또한 기대 이상으로 컸다. 이는 연주회장의 음향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정명훈 표 브람스'라서 더욱 그랬지 싶다. 이것은 협연자로서는 그다지 반가운 일만은 아닐 것인데, 지안 왕과 김수빈은 특히 1악장에서 오케스트라의 육중한 소리에 대적하려고 현과 활의 강력한 텐션을 만들어 내느라 고생하는 듯했다. 김수빈은 이 때문인지 아니면 평소 습관인지 유난히 풀 보잉(full bowing)을 자주 사용했고, 지켜보기에 불안할 만큼 뻣뻣한 자세를 자주 보였다. 그러나 겉보기와는 달리 연주는 상당히 훌륭했으며, 뒤로 갈수록 나아지는 모습을 보였다. 2악장에서의 서정미도 뛰어났고, 3악장에서는 바이올린과 첼로가 얽히고설키는 스타카토 음형에서 보여준 두 협연자의 정교한 앙상블이 백미였다.
3악장 첫머리에서 나는 지안 왕의 운지법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였는데, 레가토로 연주하면서 무려 5도 도약을 해야 하는 난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보기 위해서였다. 그는 무리한 '손가락 찢기' 대신에 현을 바꾸어 연주하는 속 편한 방법을 택했으며, 결과적으로 5도 도약은 논 레가토(non legato)가 되었다. 김수빈 역시 마찬가지로 논 레가토로 처리했다. 외람된 의견이지만 이 음형의 도발적인 매력을 살리려면 포르타멘토를 써서라도 현을 바꾸지 않고 최대한 레가토의 느낌을 살리는 것이 좋다고 본다. (이 경우 L-포르타멘토, 즉 도약을 먼저 한 다음 미끄러지는 방법이 적당하다.)
브람스 교향곡 2번에서는 국내 오케스트라의 고질적인 문제 가운데 하나인 악기군 간의 앙상블 문제가 상당히 해결된 듯해 보였다는 점이 놀라웠다. 서울시향은 특히 개인적으로 앙상블 난조를 예상했던 2악장 푸가토(마디 17) 부분에서 매우 깔끔한 연주를 들려주었으며, 그 가운데 호른의 역할이 유난히 돋보였다. 1악장 마디 137의 D조 호른과 마디 144의 E조 호른 역시 적당한 밸런스에 호른끼리 꼬이는 일도 없이 안정된 연주를 들려주었다. 이날따라 금관이 전반적으로 훌륭했으며, 객원으로 보이던 팀파니 주자의 깔끔한 연주도 기억에 남는다.
악기군 간의 앙상블이 좋으니 이제는 악기군 내의 앙상블에 더 욕심을 부릴 만하다. 특히 현악기군의 앙상블이 유럽 수준으로 발전하기를 희망해 본다. 이날 연주에서 아쉬웠던 부분으로는, 이를테면 3악장 트리오 부분에서 악센트가 두드러지지 않아 심심한 연주가 되어버렸다.
정명훈의 해석에서 인상적이었던 점은 1악장의 템포를 상당히 느리게 잡았다가 2악장부터 차츰 빠르게 함으로써 거대한 아첼레란도를 구현한 것이었다. 게다가 4악장 코다에서는 이음매마다 가속하여 곡이 끝날 무렵에는 ♩♩= 120 정도의 아찔한 템포로 광란의 토카타를 연출했다. 4악장 마디 118에서 E조 호른의 포르테를 제대로 살린 것도 색달랐다.
관객의 반응 또한 대단했다. 예전에는 정명훈의 이름값에 혹해 과장된 환호를 보내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으나, 이날 연주회에서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정명훈이 아닌 '음악'에 진심으로 감동한 듯한 우렁찬 박수가 연주회장을 뒤흔들었으며, 기립박수 등 과시적인 행동을 보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정명훈에게는 그것이 불만이었나 보다. 몇 번의 커튼콜에 화답하던 그가 갑자기 객석을 향해 기립 사인을 보냈던 것이다. 정명훈의 연주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관객 전원 기립 사태가 발생했다. 물론 나는 정명훈의 '정치적인' 제스처와 그 바탕의 자신감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는 그런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
김원철. 2007.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