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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 26일 화요일

파야 《삼각모자 모음곡 2번》 차이콥스키 《로코코 주제에 의한 변주곡》 슈만 교향곡 1번 ― 알반 게르하르트 / 헤수스 로페스-코보스 / 서울시향

2010-09-10 오후 08:00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 : 헤수스 로페스 코보스 Jesus Lopez-Cobos, conductor
협연 : 알반 게르하르트 (첼로) Alban Gerhardt, cello

파야, 삼각모자 모음곡 2번 Falla, El sombrero de Tres Picos: Suite No. 2
차이콥스키, 로코코 주제에 의한 변주곡 Tchaikovsky, Variations on a Rococo Theme
슈만, 교향곡 1번 "봄“ Schumann, Symphony No. 1 "Spring"

언제나 그렇듯이, 무삭제판. ㅡ,.ㅡa


지휘자 헤수스 로페스-코보스는 마드리드 테아트로 레알 음악감독이다. '레알 마드리드'의 그 레알, 축구 규칙도 잘 모르는 글쓴이도 익숙한 그 이름 탓일까. 글쓴이는 이날 서울시향 연주를 들으면서 로페스-코보스가 이끌어내는 음악이 어쩌면 축구 평론가들이 말하는 스페인 축구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파야 《삼각 모자 모음곡》 2번을 들을 때만 해도 그저 스페인 지휘자라서 스페인 음악을 잘하나 보다 싶었다. 게다가 지휘자가 쌓아온 경력이 만만치 않은 만큼 이날 연주는 객원 지휘자가 짧은 시간에 만들어낸 소리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훌륭했으며, 정명훈라벨을 지휘할 때에나 들을 수 있는 정교하면서도 생기 넘치는 앙상블이 돋보였다.

그러나 슈만 교향곡 1번 연주는 그 단점까지도 스페인 축구와 닮아 있었다. 축구 얘기를 조금만 하자. 스페인에는 "멍청한 선수는 열심히 뛴다."라는 속담이 있다고 한다. 뜨거운 햇볕이 쏟아지는 곳이 스페인이다 보니 열심히 뛰기보다 효율적으로 조금만 움직여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스페인 팀은 곧잘 상대편 체력을 갉아먹으며 경기를 지배하지만, 거꾸로 결정적인 순간에는 생각이 많아져서 골로 연결하지 못할 때가 잦다고 한다.

이날 슈만 교향곡 1번이 그랬다. 대체로 앙상블이 깔끔하기는 했으나 결정적인 '한 방'이 빠져서 밋밋한 느낌. 이름값이 대단한 지휘자가 다스린 소리가 기대에 못 미친 까닭으로는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 서울시향과 상성이 맞지 않았다. 로페스-코보스는 중요한 곳에서 악단을 확 잡아끌기보다는 단원들 스스로 알아서 움직이게끔 하는 듯했으나, 서울시향은 유럽 일류 악단과는 달리 아직 그렇게까지 하지는 못하며 지휘자가 잘 이끌어줄 때에만 유럽 수준에 근접한 연주를 들려준다. 정명훈이 더없이 소중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둘째, 슈만 교향곡 1번은 연주할 때 자칫 맨송맨송해지기 쉬우며, 로페스-코보스와 서울시향 조합이라면 더욱 그렇다. 이것을 올바로 이해하려면 베토벤 이후 낭만주의 교향곡 역사를 알아야 한다.

베토벤고전주의를 넘어서 낭만주의 시대를 열어젖혔지만, 한편으로는 낭만주의적 선율과는 맞지 않는 모티프 변형 기법을 유산으로 남겼다. '베토벤 딜레마'를 어찌할까. 슈베르트베토벤을 닮은 도입부 선율을 발전부에서 앞세워 전개시키며 베토벤을 흉내 냈다. 멘델스존은 달콤한 가락을 대위법으로 겹쳐 베토벤을 이으려 했다. 리스트와 프랑크는 모티프 원형을 중심에 놓고 주변 요소를 네트워크로 묶어 바꿔나가는 기법을 개발했고, 바그너는 리스트를 흉내 냈다.

'모범답안'을 내놓은 사람은 브람스였으나, 슈만 교향곡 1번에는 그에 앞서 온갖 아이디어로 '사투'를 벌인 눈물겨운 흔적이 담겨 있다. 베토벤과 낭만주의가 어우러지게 하는 일에 슈만이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반복되는 리듬인데, 슈만이 작품 곳곳에 심어 놓은 '아이디어'를 잘 살리지 않으면 이 리듬 때문에 음악이 지루해지기 쉽다. 로페스-코보스와 서울시향은 바로 이 덫에 빠졌다. 지휘자가 '너무 조금 움직인' 탓이다. 금관 등이 몇 차례 실수도 했다.

음악에서 '로코코'라 하면 뜻이 그다지 명확하지 않지만, 보통 바로크 양식이 고전주의 양식으로 바뀌어 가던 18세기 초·중반 양식을 가리킨다. 대위법을 바탕으로 하는 바로크 양식을 벗어나 라모(Jean-Philippe Rameau, 1683-1764)의 화성 이론을 바탕으로 하는 간결하면서도 밝고 우아한 양식으로 갈랑(galant) 양식이라고도 한다. 차이콥스키 《로코코 주제에 의한 변주곡》은 로코코 양식을 따르는 주제를 바탕으로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19세기 양식이며, 이러한 대목은 브람스하이든 주제에 의한 변주곡》과 닮은꼴이다.

협연자 알반 게르하르트는 '로코코' 양식보다는 낭만주의 느낌을 한껏 살려 연주했으며, 곳곳에서 루바토를 두드러지게 쓰거나 때때로 매우 거친 활놀림을 보이기도 했다. 변덕스러운 날씨 탓인지 'A' 현 상태가 좋지 않은 듯 때때로 삐끗하는 소리를 내기도 한 대목은 옥에 티였다. 앙코르로 연주한 두 곡이 모두 저음이 많아서 'A' 현을 쓰지 않았던 것은 그 때문이었을까. 그러나 이것을 빼면 연주는 매우 훌륭했다.

아티큘레이션(articulation)이 특이했던 곳으로 이를테면 마디 32~33에는 하행 음형을 중심으로 '점점 세게―세게―점점 여리게―매우 여리게' 연주하라는 지시가 있는데, 게르하르트는 도돌이표를 타고 두 번째로 연주하면서는 셈여림 지시를 무시하고 여리게(소토 보체) 루바토 섞어 연주했다.

처음에는 글쓴이도 몰랐던 사실 하나. 슈만 교향곡 1번을 연주할 때 알반 게르하르트가 슬쩍 들어와 뒷자리에 앉아 일개 객원 단원으로 연주했다고 한다. 오케스트라 연주는 독주와는 달라서 수석 연주자가 정하거나 지휘자가 특별히 요구한 활놀림을 따라야 하는데, 그렇다면 게르하르트가 연습 때부터 이렇게 참여했다는 뜻이 된다. 참 성실한 연주자다.

2010년 2월 22일 월요일

2010.01.28 김도윤 《디베르티멘토》 / 김정길 《올래, 오름, 그리고 백록담》 / 리게티 《라미피카시옹》 ― 이병욱 / TIMF앙상블

TIMF앙상블 ‘사통팔달[四通八達] 시리즈 1’ 《메타모르포젠》

2010년 1월 28일(목) 오후 8시 00분
호암아트홀

이병욱 지휘
TIMF 앙상블

김도윤 Doyun Kim, 《디베르티멘토》 Divertimento for 13 strings
펜데레츠키 K. Penderecki, 《샤콘느》 Chaconne
김정길 Chung-Gil Kim, 현악합주를 위한 《올래, 오름, 그리고 백록담》, TIMF앙상블 위촉
- 휴식 -
리게티 G. Ligeti, 《라미피카시옹》 Ramification (version for 12 solo strings)
R. 슈트라우스 R. Strauss, 《메타모르포젠》 Metamorphosen for 23 strings


※ 이 글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공연예술창작기금지원사업으로 기획한 국민평가단 평가 자료를 겸하는 글이며, 평가서 항목에 맞추어 썼음을 밝힙니다.

▶ 공연작품의 예술적 수월성

TIMF 앙상블은 다른 악단과 견주어 압도적인 실력을 자랑했으며 연주회 프로그램도 매우 훌륭했다. 창작곡 또한 다른 공연에서 연주된 작품보다 예술적으로 훨씬 뛰어났다.

▶ 공연계획 실행의 충실성

호암아트홀이 현대음악과 어울리는 연주회장인지는 의심스러우나, 이날 프로그램은 호암아트홀 실내음향과 썩 잘 어울리는 작품으로 이루어졌다. 다만, 김도윤 작품은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처럼 잔향이 좀 더 짧은 곳에서 연주되었다면 느낌이 사뭇 다르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창작곡은 전체 공연과 조화를 이루는 본격 현대음악이었다.

공연 시작에 앞서 TIMF 앙상블 예술감독 최우정이 연주회 해설 강연을 열었는데, 내용은 훌륭했으나 사전 공지가 없었고 연주회장 밖에서 어수선한 분위기로 진행되어 아쉬움을 남겼다.

▶ 공연성과 및 해당분야 발전에의 기여도

TIMF 앙상블은 본격 현대음악 전문 연주 단체로, 그것만으로도 예술위원회가 공연창작기금을 지원할 가치가 높다. 연주 실력 또한 매우 뛰어나고 창작곡 또한 훌륭하므로 지원 가치는 더욱 높다.

▶ 총평


※ 공연 관계자와 김원철의 친분 관계 요약

작곡가 김정길은 서울대학교 작곡과 교수였다가 퇴임했고, TIMF 앙상블 예술감독 최우정은 현재 같은 과 교수이며, 작곡가 김도윤은 같은 과 학생이다. 김원철은 같은 과 이론 전공 석사이나 이들과 개인적인 친분은 없으며, 이론 전공은 작곡 전공과는 사실상 학과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김도윤은 이날 처음 알았고, 최우정은 서로 얼굴 알아보고 인사할 만한 친분은 있으며 서울시향이 최우정에게 위촉한 첼로 협주곡 초연 리뷰를 김원철이 서울시향 월간지 『SPO』에 기고한 일도 있다. 김정길은 작곡과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컸으므로 그 사실만으로 김원철이 완벽하게 객관적인 평을 하지 못하리라 의심하더라도 반박하기 어렵다.

김도윤 《디베르티멘토》는 팸플릿에 있는 작품 설명이 어렵다. 그러나 음 소재를 조각내고 비틀어 음악을 이끌어 간다는 아이디어는 그다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멀리는 브람스나 베토벤까지도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갈 수 있고, 요즘 작곡가 가운데에는 크리스 폴 하르만(Chris Paul Harman) 같은 사람도 김도윤과 닮은꼴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어떤 맥락에서 어떤 짜임새로 나타나는가이며, 무엇보다 이론적인 장난질에 그치지 않고 감상자에게 듣는 재미를 주느냐이다.

김도윤 《디베르티멘토》는 '듣기 좋은' 작품이었다. 현대음악인 만큼 아름다운 선율이 귀에 쏙쏙 들어왔다는 뜻은 아니다. 현대음악치고 그다지 어렵지 않고 뭔가 엉뚱한 연주법을 쓰지도 않으면서도 어딘가 귀를 즐겁게 하는 곳이 있었는데, 좁은 공간에서 진동하는 듯한 화음 또는 음 덩어리(Cluster)가 조성감을 얼핏 드러내면서도 현대적인 긴장감을 이룬 대목이나 콘트라베이스가 피치카토 음형으로 복잡하지 않으면서도 흥미로운 (악보를 보면 생각보다 머리를 쥐어뜯게끔 하는) 리듬을 이끌어가며 만들어 내는 박진감 따위가 멋졌다. 무엇보다 작곡가가 '변주곡의 원리'를 말한 만큼 음 소재를 짜임새 있게 이끌어 가는 솜씨가 훌륭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작곡가가 1984년생이란다. 이 '어린놈'이 이토록 멋진 곡을 썼다니, 나는 질투가 나서 견딜 수가 없어 이렇게 외쳐주었다. "브라보!"

고백하건대 나는 김정길 작품을 이날 처음 들었다. 현대음악에 거부감은 없으나 국내 작곡가 작품을 일부러 찾아 들을 정도는 아니다 보니 이름은 익히 들어온 작곡가라도 작품은 모르는 일이 더러 있다. 이날 연주된 《올래, 오름, 그리고 백록담》을 들어보니 김정길이 윤이상 제자였다는 사실이 곧바로 떠올랐다. 윤이상 수제자로 보통 호소카와 도시오(細川俊夫)를 꼽는데, 이제 보니 음악 양식만 따지자면 김정길이야말로 윤이상에게서 가장 많은 것을 물려받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슈파러(Walter-Wolfgang Sparrer)를 비롯한 음악학자들은 윤이상 음악을 가리켜 "동양의 사상과 음악 기법을 서양음악 어법과 결합시켜 완벽하게 표현한 최초의 작곡가"이며 "동아시아적인 것을 서구적인 것과, 국제적인 것을 자국적 전통과 융합시키면서 그 본질에 있어서는 한국적"이라 했다. 그러나 윤신향은 윤이상 음악이 동서양 음악의 융화가 아니라 "이주민 고유의 전통적 특색들이 서구 사회에 동화해가는 과정 속에서 변화하고 상실되는 원리가 윤이상에게도 적용"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두 세계 사이의 진정한 융화는 작곡자의 삶이 음악어휘를 결정할 때마다 그늘처럼 은폐되는 한국적 정신유산을 간직하고 있는 그곳에서만 가능하다." (윤신향, 『윤이상, 경계선상의 음악』 파주: 한길사, 2005.)

윤이상 음악이 동서양 '융화'가 아니라 '동화'인 까닭은 음악을 이루는 두 세계가 대등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정길 《올래, 오름, 그리고 백록담》은 화음과 장식음 따위가 윤이상과 닮은꼴이면서도 음계와 리듬 등에 한국적인 요소가 조금 늘어서 '두 세계' 사이가 좀 더 균형 잡힌 음악이었다. 20세기 서양음악사와 온몸으로 부대껴야 했던 윤이상과는 여러모로 처지가 달랐으리라.

리게티는 《라미피카시옹》(Ramification)에서 악단을 둘로 나누어 첫째 그룹이 표준 조율법보다 4분음 높게 연주하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또한 둘이 섞여 있어서 안개처럼 흐릿한 소리가 되게끔 했는데, 리게티는 두 그룹이 따로 연습한 다음 마지막 연습 때에는 무대에서 따로 앉아 연주하고, 실제 공연에서는 섞여 앉도록 제안했다. 그런데 이날 TIMF 앙상블은 지휘자를 중심으로 두 그룹이 나뉘어 있어 아쉬움을 남겼다. 섞여 앉았다면 연주자끼리 서로 영향을 주면서 오히려 소리가 엉망이 될까 걱정한 탓이 아닐까 싶은데, 어쨌거나 '안개' 음향은 제법 그럴싸하게 살아나서 다행이었다.

전체적으로 연주는 매우 훌륭했으며, 딱 한 군데 아쉬웠던 곳을 말하자면 마디 101에서 콘트라베이스가 악보에서 지시한 만큼 '위협적이고 잔인하게'(minaccioso brutale) 연주하지 못한 대목이었다. 이곳에서 콘트라베이스는 활을 지판 쪽에서 매우 여리고 부드럽게 연주하다가 갑자기 매우 세게 ― ffff에서 ffffff로 크레셴도 ― 폭발하듯 박박 긁어대야 한다. 곧이어 활이 줄받침(bridge)과 지판을 오가며 꾸준히 음색을 바꾸면서 길게 연주해야 하는데, 마디 106에서 바이올린 하모닉스 음형이 더해질 때까지 다른 모든 악기는 침묵하면서 이 대목이 자연스럽게 곡 전체의 클라이맥스가 된다. 그러나 이날은 콘트라베이스 한 대로 이 대목을 연주하느라 음량이 크게 모자랐고, 그 한 사람이 온 힘을 다해 긁어대지도 않았다.

2009년 8월 27일 목요일

2007.11.28. 브람스 하이든 주제에 의한 변주곡 / 독일 레퀴엠 - 정명훈 / 서울시향

2007년 11월 28일(수) 오후 7시 30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지휘자 : 정명훈
협연자 : 김영미(소프라노), 사무엘 윤(바리톤), 서울시합창단, 서울모테트합창단

Brahms, Variations on a Theme of Joseph Haydn, op. 56a (17')
Brahms, Ein deutsches Requiem (68')



브람스가 <하이든 주제에 의한 변주곡>을 작곡한 것은 교향곡 1번을 완성하기 3년 전인 1873년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작곡가 브람스가 완숙기에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분수령이라 할 수 있으며, 동시에 청년 시절부터 써오던 변주곡 시리즈를 끝맺는 '마지막 습작' 같은 곡이기도 하다. 이 둘 가운데 어느 쪽에 무게를 두느냐에 따라 해석 방향이 갈릴 수 있겠는데, 정명훈은 드물게 '습작'에 적지 않은 무게를 둔 것 같다. 그러한 의도는 첫 번째 변주부터 매우 뚜렷하게 나타났다. 템포를 ♩= 105 정도로 잡아 관습적인 템포(대략 ♩= 88)에 비해 빨라도 너무 빨랐던 것이다. 이에 따라 두텁고 어두운 화음을 강조하기보다는 비교적 가볍고 생기있는 '젊은 브람스'를 내세워 브람스에 대한 굳은 생각을 깨트리도록 관객을 도발하는 듯했다.

두 번째 변주부터는 점점 낯설지 않은 템포가 되었다가 나중에는 오히려 점점 느려져서 거대한 리타르단도(점점 느리게) 효과가 나타났다. 마지막 아홉 번째 변주에서는 다시 살짝 아첼레란도(점점 빠르게)를 사용하여 대칭을 이루도록 했는데, 이것은 마지막 변주가 저음 반복(ostinato)을 바탕으로 또 다른 변주곡 형태인 파사칼리아(passacaglia)를 이룬다는 점에서 설득력 있는 해석이다. 다만, 이러한 특징이 관객에게 얼마나 잘 전해졌는지는 의문이다. 비정상적으로 거대한 연주회장 탓에 소리가 뭉개지기 일쑤였는 데다가 변화무쌍한 템포에 단원들이 미처 충분히 자신감을 느끼지 못한 듯 리듬과 다이내믹이 그다지 또렷하지 못한 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휴식 시간 없이 이어진 <독일 레퀴엠>. 이 작품은 예배용 음악이 아니다. 원어 제목인 "Ein deutsches Requiem"에서도 드러나듯 라틴어가 아닌 독일어를 가사로 했을 뿐 아니라 경외서(The Apocryphia)에 나오는 글귀도 일부 가사로 썼으며, 무엇보다 내용 구성이 미사 전례를 따르지도 않고 예수의 속죄나 심판의 날을 준비하는 종말 신앙을 앞세워 드러내지도 않는다. 또 가사를 성서에서 따왔을 뿐 사실은 특정 종교를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부분도 없다. 요컨대 이 작품은 삶과 죽음에 대한 보편적인 고뇌를 담고 있으며, 죽은 사람보다는 산 사람을 달래는 곡이다. 이날 연주는 대규모 합창단을 앞세워 고통과 환희와 위안을 생생히 그려낸 한 편의 드라마였다. 2악장에서 팀파니가 이끌어내는 땅울림과 저 깊은 곳에서 북받쳐 오르는 합창의 흥분을 지나 6악장의 '죽음(Tod)'과 '지옥(Hölle)' 가사에 맺힌 절규와 사이 사이를 잇는 푸가토가 특히 좋았다. 마지막 7악장을 들으면서는 문득 김종철의 시구(詩句)를 떠올렸다. 느릿한 템포로 이완된 분위기가 '설레이는 神의 겨울, 그 길고 긴 먼 복도를 지내나와' '어머니 나라에 누운 듯' 편안했다.

합창단과 독창진이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훌륭했으며, 그 가운데 바리톤 사무엘 윤이 누구보다도 뛰어났다. 바그너 전문 가수답게 풍부한 성량, 깊고 안정된 음색, 나무랄 데 없는 딕션과 독일인보다 더 독일인다운 '그르릉' 소리, 독일어 무성음을 타악기처럼 활용하는 솜씨, 유럽 오페라 극장에서 잔뼈가 굵은 경험에 힘입은 배우 본능, 연주회장을 압도하는 제왕의 카리스마! 무엇보다 그는 관현악을 멋대로 끌고 가는 대신 음악의 흐름에 맞게 어우러질 줄 알았다. 이것은 오페라 아리아 한 가락 멋지게 부르는 데에만 익숙한 한국 가수들에게서 찾아보기 어려운 값진 능력이다. 이런 가수가 더 많이 나와서 베토벤 교향곡 9번을 연주한다면 그 얼마나 멋지겠는가! 재작년 성남 아트센터에서 있었던 구노의 <파우스트>에서 메피스토펠레로 나와 신들린 연기와 노래를 들려준 가수를 기억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바로 그가 이날 또 한 번 관객을 사로잡은 그 가수다. 사무엘 윤. 장담하건대 열 몇 해 안에 거물이 될 사람이니 그 이름을 꼭 기억해두기 바란다.

소프라노 김영미는 사무엘 윤에게 가려 빛이 바래버렸지만 사실은 나름대로 꽤 훌륭했다. 5악장 독창부는 고음으로 갈수록 음정과 리듬이 잘 맞지 않으면 듣기 싫은 소리가 되기 쉽지만, 김영미는 위험한 부분을 대부분 잘 처리했다. 사무엘 윤과 마찬가지로 '독창'이 아닌 '협연'을 할 줄 아는 가수였다는 점도 반가웠다. 다만, 초반에 고음에서 음정이 살짝 흔들린 것이나 5옥타브 B♭이 나오는 마디 56에서 잠시 템포를 떨어트린 것 등은 옥에 티였다. 목소리가 소녀처럼 맑고 가녀려서 마치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와 노래하는 듯했으나 성량이 좀 작은 듯해서 아쉽기도 했다. 말러의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 Des Knaben Wunderhorn> 중 "천상의 삶 Das himmlische Leben"(교향곡 4번 4악장이기도 함)에 무척 잘 어울릴 듯싶다.

합창단에게는 솔직히 말해 별로 기대하지 않았으나 웬걸, 생각보다 너무 잘해서 깜짝 놀랐다. 1악장 여린 음부터 감탄을 자아냈는데, 흔히 대규모 합창단이 메조포르테보다 여린 소리를 감당하지 못하는 것을 보아 왔기 때문이다. 이날 연주에서는 피아노까지는 꽤 안정적이었고 피아니시모도 나쁘지 않게 소화했다. 푸가에서도 성부 균형이 잘 맞았고, 지휘자의 지시에 반응하는 것도 재빨랐다. 물론 흠 잡으려면 얼마든지 잡을 수 있지만, 우리나라 합창단 사정이 어려운 것은 안 봐도 뻔한데 이렇게까지 해내다니 그저 기운을 북돋워주는 말만 해주고 싶다. 그리고 바라건대 합창단도 서울시향처럼 재단의 든든한 지원을 업고 선진화된 시스템으로 관리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상식 하나. 레퀴엠을 연주할 때에는 박수를 치지 않는 게 관례다. 장례식장에서 웃고 떠들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물론 <독일 레퀴엠>은 정식 미사 레퀴엠도 아닌데다 연주회장에서 연주가 끝났을 때 박수를 치지 않고 멀뚱멀뚱 있는 것도 이상하지만, 적어도 연주가 끝나자마자 요란한 박수가 터져 나오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다. 이날 정명훈은 마지막 잔향이 완전히 사라지고도 10초 이상 지휘봉을 내리지 않고 침묵을 '연주'했다. 이른바 '안다 박수'가 막판에 분위기를 깨는 일이 잦은 우리나라에서 흔치 않은 광경이었다. 연주자에게도 관객에게도 축복을, Selig s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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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철. 2007.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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