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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 31일 수요일

류재준 바이올린 협주곡 1번 ― 김소옥 / 피오트르 보르코프스키 / 서울바로크합주단

서울바로크합주단 창단 45주년 기념 특별정기연주회Ⅰ

2010년 3월 16일(화) 저녁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 지휘: 피오트르 보르코프스키 Piotr Borkowski
• 바이올린: 김소옥
• 색소폰: 그렉 바나스작 Greg Banaszak
• 오보에: 사토 키아오야마 Satoki Aoyama
• 클라리넷: 히데미 미카이 Hidemi Mikai
• 호른: 마코토 가나보시 Makoto Kanaboshi
• 바순: 모토코 가와무라 Motoko Kawamur

• A.Vivaldi - Concerto for 2 violins & 2 cellos in G major F.IV/1
• F.Chopin - Suite Chopiniana (이윤국 편곡) 한국초연
• Pierre Max Dubois - Concerto for Alto Saxophone & Orchestra
• W.A.Mozart - Sinfonia Concertante for Winds in E-flat Major, K.297b
• 류재준 - Violin Concerto No.1 Op.10 한국초연


※ 이 글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공연예술창작기금지원사업으로 기획한 국민평가단 평가 자료를 겸하는 글이며, 평가서 항목에 맞추어 썼음을 밝힙니다.

▶ 공연작품의 예술적 수월성

류재준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은 문화예술위원회 평가 대상 공연에서 연주된 다른 창작곡과 견주어 압도적인 예술성을 자랑했다. 서울바로크합주단의 연주는 훌륭했으나 악단이 그동안 쌓아온 역사와 전통에 걸맞은 수준에는 조금 못 미쳤으며, 류재준 바이올린 협주곡에서는 현대음악에 어울리는 음향을 충분히 살려냈다 하기 어려웠다.

▶ 공연계획 실행의 충실성

류재준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은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다원주의(Pluralism) 양식을 보이며, 이러한 대목에서 이날 연주된 곡들과 관련성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을 빼면 다른 곡들과 연결고리가 탄탄하다 하기 어려우며, 이날 전체 공연 구성은 '다양성'이라는 말로 미화하기에는 난잡하다는 느낌을 떨치기 어려웠다.

▶ 공연성과 및 해당분야 발전에의 기여도

류재준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은 이미 낙소스(Naxos)에서 음반으로 발매했을 만큼 뛰어난 곡임이 이미 증명되었으며, 이 곡을 한국 초연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번 공연은 그 가치가 높다.

▶ 총평

※ 공연 관계자와 김원철의 친분 관계 요약

김원철은 공연 관계자와 이렇다 할 친분관계가 없다. 그러나 서울바로크합주단 음악감독 김민은 한국바그너협회를 만든 사람으로 자칭·타칭 바그네리안인 김원철이 김민의 업적과 영향력을 존경해 마지 않음을 밝혀 둔다.

작곡가 류재준이 대표이사로 있는 ㈜오푸스에서 내놓은 보도자료를 보면, 류재준 음악을 두고 "네오 바로크시즘이라는 장르의 시발점으로 볼 수 있는 특별한 성과"라 했다는 마리안 보르코프스키(Marian Borkowski) 폴란드 쇼팽 음악원 교수의 평이 눈길을 끈다. 원문을 확인해 보아야 하겠지만, '네오 바로크시즘'이라는 말은 류재준을 알리는 데 알맞은 말이라 보기 어려우며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첫째, '바로크'(Baroque)라는 말에 '―ism'을 붙이려면 '바로키즘'(Baroquism)이라 해야 옳다. 'Classicism'(고전주의)와 'Romanticism'(낭만주의)를 흉내 내느라 별생각 없이 '바로크시즘'이라는 말을 만들어낸 모양이나, 음운론에 비추어 보면 무지를 드러내는 말일 뿐이다.

둘째, 고전주의 및 낭만주의와는 달리 바로크 양식에는 본디 '주의(―ism)'라는 말을 붙이지 않는다. 고전주의·낭만주의를 '―주의'라고 부르는 까닭은 그것이 계몽주의 및 시민사회 담론과 얽힌 사회 이념 또는 운동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크 양식은 예술 양식일 뿐이므로 이념을 뜻하는 '주의(―ism)'라는 말을 붙일 까닭이 없다. 다만, 20세기 예술사를 헤아린다면 '네오바로키즘'이라는 말을 어떤 예술사조를 뜻하는 말로 쓸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른 문제가 생긴다.

셋째, '네오바로키즘'이라는 말은 바로크 양식에서 무엇인가를 되살렸음을 알려준다. 그러나 20세기 이후 서양음악 작곡가들이 바로크 양식을 끌어다 쓴 일은 드물지 않으며, 그러한 작품을 모두 '네오바로키즘'이라 불러야 하는가 하는 물음이 뒤따른다.

'네오바로키즘'이라는 말은 아마도 류재준 스승인 펜데레츠키 후기 양식을 일컬어 때때로 '신낭만주의'(Neo-Romanticism)라 하는 일과 관련 있는 듯하다. 다시 말해 류재준 음악이 '신낭만주의'와 구분되는 특징을 찾던 마리안 보르코프스키는 류재준 음악이 펜데레츠키보다 바로크 양식과 닮은 곳이 더 많다는 사실에 주목했으리라 짐작된다. 자세한 맥락을 알려면 펜데레츠키 음악 양식 변화를 20세기 음악사에 비추어 살펴보아야 한다.

고전주의와 낭만주의는 인류가 무한히 발전하리라는 믿음을 바탕에 두었으며, 이것이 모더니즘으로까지 이어졌다. 19세기 기능화성이 12음 기법으로 옮겨갔을 때에도 이러한 패러다임은 바뀌지 않았고, 이른바 총열주의(Total Serialism) 음악은 그것이 발전한 끝에 나타난 결과라 할 수 있다. 드뷔시와 스트라빈스키를 비롯한 몇몇 작곡가가 일찍이 이러한 믿음에 의문을 던지기는 했으나 포스트모더니즘이 나타나고 나서야 이것이 뿌리부터 흔들리게 되었다.

1960년대에 이르러 리게티와 펜데레츠키 등이 내놓은 이른바 '음향음악'(Klangkomposition)은 '구조'와 '발전'을 따지던 패러다임을 비틀어 놓았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새롭다는 점에서 아방가르드 음악 전통에서 벗어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펜데레츠키는 1965/66년 《누가 수난곡》에서부터 20세기 작곡가들이 일부러 벗어나고자 했던 전통적 음악 어법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으며, 이른바 '신낭만주의'를 거쳐 다원주의(Pluralism) 양식으로까지 이어졌다.

펜데레츠키는 1982년 『첼로협주곡 2번』으로 신낭만적 음악경향에서 벗어났다. 낭만적 이상과 연결시킴에 따라 때때로 펜데레츠키는 자신의 초기 양식을 부정했어야만 했다면, 여기서 벗어나 자유로운 다원주의를 추구함에 따라 즉 "옛" 펜데레츠키를 다시 새롭게 복원하게 된다. 이 시기부터는 펜데레츠키는 양식의 연속성을 확고히 하고(즉 작곡 양식 발전의 단절을 없애고), 또한 양식의 다원주의를 찾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다원주의 Pluralismus〉는 한편으로 순수한 조성을 사용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초기의 소음적 양식을 연결시키는 것을 가능하게 하였다. 더 나아가 보다 폭 넓은 차원의 양식을 수용할 수 있는 기회도 주었다.

― 오희숙, 『20세기 음악 I: 역사·미학』 (서울: 심설당, 2006). 314쪽.

음악이 발전하리라는 믿음을 펜데레츠키는 이렇게 무너뜨렸다. 류재준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은 이러한 역사를 잇는 작품이며, 많은 곳에서 펜데레츠키 후기 음악 양식이 엿보인다. 펜데레츠키가 즐겨 썼다는 단2도 음형인 이른바 '탄식' 모티프가 작품에 뿌리를 이루고 있으며, 악보 맨 앞에는 이 곡을 펜데레츠키에게 헌정한다는 말이 나온다. 펜데레츠키가 류재준을 후계자로 선언했다고도 한다.

예술 작품이 다른 사람이 쓴 작품과 비슷하다는 말은 으레 칭찬이 아니다. 그러나 베베른과 베르크를 쇤베르크의 아류라 하지 않듯이, 류재준 음악이 펜데레츠키와 닮았다고 해서 류재준 음악을 낮추어 볼 까닭은 없다. 류재준 바이올린 협주곡 1번에는 펜데레츠키 작품에서 곧잘 나타나는 탄식과 절망도 있으나 그 못지않게 싸우고자 하는 의지가 뚜렷하게 나타나며, 힘찬 리듬이 얽히는 대위법과 "말러처럼 강렬한 클라이맥스"(exquisitely scored, almost Mahler-like climaxes; 마리안 보르코프스키), 정교한 관현악법 등에서 독창성을 찾을 수 있다.

펜데레츠키, 루토스와프스키, 구레츠키와 류재준 등을 묶어서 '바르샤바 악파'라 부르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바르샤바' 하면 쇼팽이 먼저 생각나니 '신 바르샤바 악파'라 해도 좋겠다. 신빈악파와 닮은 말이라 더욱 좋다. '신 바르샤바 악파'의 음악은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양식적 다양성을 보이면서 무엇보다 오래 듣기 부담스러울 만큼 진지하고 엄숙하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억지스러운가?

서울바로크합주단의 연주는 그저 무난했으며, 다른 작품을 제법 훌륭하게 연주한 일과 견주어 보면 류재준 바이올린 협주곡에서는 곳곳에서 리듬이 뭉개지거나 현대음악다운 음향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대목에 아쉬움이 남았다. 지휘자 피오트르 보르코프스키는 세계초연 지휘자이자 낙소스(Naxos)에서 발매한 음반에서도 지휘를 맡은 바 있으니, 아무래도 현대음악 전문 앙상블이 연주했다면 좋았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이 곡에서 가장 멋진 곳이 'Misterioso'(마디 428)부터 끝까지라고 생각한다. 바이올린과 비올라가 엇갈린 리듬으로 마치 미니어처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한 텍스처를 만들어 내는 가운데 글록켄슈필이 두 차례 맑게 울린 다음, 팀파니와 탐탐 따위가 갑자기 '빠바밤 빠바밤' 하고 세게 두드려대면서 음악이 끝난다. 그러나 이날 연주에서는 마치 사람들이 웅성거리듯 현이 두루뭉술한 리듬을 만들어낸 데다가 글록켄슈필이 이끌어 내는 음색 대비도 그다지 효과적이지 못했으며, 끝내 타악기가 조금은 뜬금없이 쿵쾅거리다 끝나버리고 말았다. 세계초연자이기도 한 김소옥의 협연은 훌륭했다.

2010년 1월 27일 수요일

2009.12.30. 베토벤 교향곡 9번 ― 정명훈 / 서울시향

2009년 12월 30일(수) 오후 8시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지휘 : 정명훈
독창 : 이명주(소프라노) 김선정(메조소프라노) 김석철(테너) 임채준(베이스)

베토벤, 교향곡 제9번 <합창> d단조, 작품 125
Beethoven, Symphony No. 9 in d minor, Op.125 "Choral"

언제나 그렇듯이, 무삭제판 ㅡ,.ㅡa


정명훈서울시향을 이끈 뒤로 베토벤 교향곡 9번 연주는 정기연주회로는 이번이 세 번째다. 연말에 이 곡을 연주하는 일이 지겹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같은 곡을 해마다 연주하면서 그때마다 눈에 띄게 나아진 모습을 볼 수 있으니 반가운 마음이 훨씬 크다. 지난해와 견주어 수석급 연주자는 거의 바뀌지 않았으나 합주력이 두루 늘었으며, 지난해까지만 해도 지휘자가 뜻한 바를 악단이 따라가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었으나 이날에는 지휘자의 해석이 아닌 그럴싸한 음악이 귀를 사로잡았다.

정명훈이 보여준 해석은 거의 그대로였다. 1악장 코다에 들어서며 고집저음(ostinato)이 나타나는 대목(마디 513)에서 긴 호흡으로 아첼레란도를 썼고, 4악장 처음과 2악장 둘째 주제(마디 97)에서 악보에 없는 트럼펫/호른 선율을 덧붙이는 관례를 따르지 않고 악보 그대로 연주한 일도 마찬가지였다. 3악장 마디 133에서 제2 바이올린이 악보에서 지시한 pp보다 세게 연주한 것도 비슷했는데, 다만 옛날에는 ff로 들렸으나 이날에는 mf쯤으로 들렸다. (객석 위치가 달라진 탓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악기 배치는 제법 달라졌다. 합창단을 합창석이 아닌 무대 위에 두고 팀파니를 오른쪽, 나머지 타악기를 무대 왼쪽 끝으로 몰았으며 트럼펫은 트롬본 오른쪽으로 두었다. 이 모든 일은 바로 합창단과 오케스트라 사이에 있는 독창자를 배려하려는 뜻으로 풀이된다. 오케스트라 및 합창단과 어우러지는 소리를 내려면 독창자를 그 사이에 두어야 옳다. 그러나 타악기와 트럼펫 등이 무대 뒷벽 쪽 음향 고약하기로 소문난 예술의 전당과 만나 독창자를 헷갈리게 하니 문제다. 바로 지난해 그런 일이 일어났으며, 독창자는 뒤에 투명 반사판을 쓰고도 모자라 손을 귀에 대고 노래를 부르기도 했으나 끝내 4중창에서 화음이 자꾸만 어긋나곤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악기 배치를 이처럼 바꾸니 마법이 일어났다. Deine Zauber binden wieder! 글쓴이는 실연을 들을 때면 처음부터 기대를 접곤 하는 4중창에서 뜻하지 않게 균형잡힌 소리를 듣고 온몸에 소름이 돋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때 오케스트라는 음량을 크게 줄이기까지 했으며, 그런 가운데 4중창과 나란히 울리는 플루트 소리가 멋졌다. 다만, 이어지는 마디 305에서는 오케스트라가 좀 더 소리를 키웠으면 싶기도 했다.

테너 김석철은 지난 4월 말러 《대지의 노래》를 TIMF 앙상블 협연으로 멋지게 불러 글쓴이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바 있다. 김석철은 목소리가 크고 시원시원하며, 무엇보다 리듬이 굼뜨지 않고 단단해서 앞날이 크게 기대되는 가수다. 이번 연주회도 매우 훌륭했으며, 빠른 리듬이나 화려한 멜리스마(한 음절에 많은 장식음)도 야무지게 다스렸다. 우리나라에는 훌륭한 베이스나 바리톤은 많아도 훌륭한 테너는 드물어서 새삼 보물이 나타난 듯한 생각이 든다. 여린 소리를 잘 못 내고 음정이 살짝 흔들리곤 하는 단점을 이겨낸다면 세계를 뒤흔드는 가수가 될지도 모르니 기대하시라.

베이스 임채준 또한 단단한 리듬이 돋보였다. 이 곡에서 베이스(바리톤) 독창은 음역도 넓은데다가 긴 호흡으로 멜리스마를 풀어내야 해서 몹시 어려운 곡으로 꼽힌다. 그런데 임채준은 놀랍도록 깔끔한 리듬을 들려주었으며, 굳이 더 욕심을 내자면 목소리가 좀 더 묵직했으면 싶기도 했다. 또 딕션(diction)이 제법 훌륭했으나 이탈리아어 발음이 섞여 있었는데, 이를테면 'Freude'(환희)를 단모음으로 쪼개서 소리 내곤 했다.

소프라노 이명주는 맑게 빛나는 목소리로 4중창 선율을 잘 이끌었으며, 더욱이 여린 소리에서 남다른 솜씨를 뽐냈다. 목소리가 이토록 고우니 말러 교향곡 8번 제2 소프라노(그레첸)를 맡으면 어떨까 싶기도 했는데, 까다로운 멜리스마에서 리듬이 살짝 늘어지는 단점을 이겨내고 고음에서도 여린 소리를 지켜낼 수 있다면 아주 멋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메조소프라노(알토) 김선정은 다른 사람보다 작은 역할이나마 균형잡힌 화음을 깔끔하게 잘 만들었다.

지난 22일 연주회 때 인상 깊었던 트럼펫 수석이 이번에도 멋진 연주를 들려주었고, 악기 특성 탓에 실수가 잦게 마련인 호른도 이날따라 현 소리와 맛깔스럽게 어우러지곤 했다. 더욱이 1악장 마디 139 또는 같은 음형이 나오는 마디 408에서 호른이 딱 알맞은 음량으로 리듬을 살린 대목이 매우 멋졌다.

이날 가장 멋졌던 곳 한 군데만 꼽자면 4악장 마디 92부터 마디 164까지였다. 첼로·콘트라베이스 레치타티보가 막 끝나고 합창 선율을 연주하면서 차근차근 소리를 키워가다가 마침내 금관이 선율을 받는 그 대목까지다. 이곳에서 이토록 긴 호흡으로 자연스러운 크레셴도를 이끌어낸 정명훈도 대단하고, 그 소리를 만들어낸 서울시향도 새삼 대단하다.

2009년 11월 1일 일요일

안인희 ― 『게르만 신화·바그너·히틀러』 (서울: 민음사, 2003).

안인희 ― 『게르만 신화·바그너·히틀러』 (서울: 민음사, 2003).

※ 2003년 민음사 〈올해의 논픽션상〉 수상작 역사와 문화 부문



▶ 글쓴이

안인희.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독문학을 공부했고, 1986~1987년에 독일 밤베르크 대학교에서 수학했다. 1990년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에 출강하고 있다.
― 표지의 저자 소개 중에서.

▶ 목차

I. 게르만 신화와 영웅전설
   1. 보물 이야기
   2. 기사 이야기
   3. 사랑 이야기
   4. 가수들
   5. 북유럽의 신화
   6. 니벨룽겐의 노래
II. 신화를 다루기 위하여
   1. 신화와 원형
   2. 이야기의 구조
III. 바그너의 세계: 신화를 문학과 음악으로
   1. 낭만주의 문학
   2. 바그너의 생애
   3. 음악연극 작품으로 본 바그너 사유의 길
   4. 니체의 바그너 비판
IV. 히틀러: 신화와 예술을 직접 현실로
   1. 시대적 배경
   2. 히틀러의 세계관
   3. 예술과 정치

▶ 서평

이른바 ☞'바그네리안(Wagnerian)'이라는 말은 바그너가 마니아를 끌어들이는 예술가임을 알려준다. 그러나 마니악한 취미일수록 진입 장벽이 높은 법. 바그너 진입 장벽으로는 크게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독일어, 반음계적 화성, 그리고 히틀러. '히틀러의 음악가' 바그너를 올바로 알려면 '히틀러의 나라' 독일을 알아야 한다. 글쓴이는 이런 말로 책을 연다.

독일 사람들은 예전에 자신들의 나라를 "시인과 철학자들의 나라"라고 부르곤 했다. (…) 그러나 이런 모든 자부심은 단 한마디 앞에서 어이없이 스러지고 만다. "히틀러."

'바그너=히틀러'라는 편견은 어쩌면 가장 고약한 바그너 진입 장벽일지 모른다. 그 장벽이 고약한 까닭은 작품 바깥에서만이 아니라 작품 속에서도 찾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바그너의 작품에는 제3제국의 국가 행사를 연상시키는 장면들이 곳곳에 등장한다. 사실은 히틀러가 바그너에게서 차용한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히틀러 시대에 대해 철저히 비판적인 교육을 받고 자란 오늘날의 세대들이 제3제국 시대의 제의를 연상시키는 장면들을 소화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여전히 열렬한 "바그너 숭배자(Wagnerianer)"들이 존재하지만, 상당히 많은 독일인들이 처음부터 바그너의 작품에 거부감을 보인다. 우리는 오히려 미국의 메트로폴리탄 공연에서 정통적인 바그너 공연을 더 쉽게 볼 수 있다. (341쪽)

더군다나 그 편견은 날조된 괴담을 등에 업고 ― 이를테면 아우슈비츠에서 바그너 음악을 연주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고 한다 ― 바그너를 듣는 이를 겨냥해 '파시스트'라는 인종주의적 혐의를 덮어씌우기도 한다. 이러한 편견과 괴담 맞은편에는 '홀로코스트 부인주의'가 있겠으나, 객관성을 좇는 전통적인 바그너 연구가의 입장은 "히틀러가 혼자 미쳐서 바그너 가지고 소란을 떤 것이지, 바그너 자신은 히틀러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라는 정도다(☞박원철 서평에서 인용). 그러나 안인희는 새로운 프레임으로 '편견'과 '편들기'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고자 했다.

이 책은 게르만 신화 → 도이치 낭만주의 → 바그너 → 히틀러로 이어지는 문화사적 흐름을 짚으며 바그너―히틀러 관계를 둘러싼 객관적인 지식을 쌓도록 도와준다. 이 흐름을 꿰뚫는 모티프는 "붕괴와 몰락"이며, 북유럽 신화와 엮어 말하자면 '라그나로크(Ragnarök)'이다. 이 모티프는 책 내용뿐 아니라 디자인으로도 나타나는데, 디자이너 ☞유지원은 한때 ☞바그네리안 동호회 회원이었으며 알 만한 사람은 아는 그 유지원이다.

박원철이 서평에서 지적했듯이, 바그너―히틀러 관계를 둘러싼 안인희의 논리에는 빈틈이 많다. 그러나 대안적 주장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으며, 논리적 완결성은 남은 과제로 여겨야 하지 않을까 싶다. 더군다나 그 빈틈은 책 한 권으로 메울 수 있다고 믿기 어렵다.

그래도 한 가지 아쉬운 곳을 말하자면, 이야기를 '히틀러'에서 끝내며 "그렇다면 과연 오늘날에는 어떤가 하는 것"은 읽는이 몫으로 떠넘긴 대목이다.

도이치 민족은 오랜 세월을 두고 유럽 역사의 피해자였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 어느 날 가해자의 모습으로 역사에 등장했다. 한 민족의 오래 묵은 억울함이 어떤 과정을 거쳐 끔찍한 역사를 만들어냈는지 이 책에서 관찰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남은 질문은, 그렇다면 과연 오늘날에는 어떤가 하는 것으로 넘어간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독자 여러분의 몫으로 남겨두기로 한다. (343쪽)

글쓴이가 읽는이 몫으로 남겼으니 책을 읽은 내가 찾은 '모범답안'을 알려주겠다.

그리고 바그너에게 책임을 묻는 그 행위를 확대해서 이스라엘에 대한 윤리적 책임을 거론하는 지점까지 나아가야한다. 말하자면 나치에게 책임을 묻는 행위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행하는 만행에 대한 책임을 묻는 행위와 함께 이루어져야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책임을 묻는다'는 윤리적 행위를 가능하게 만드는 정당성이다.

☞ 이택광, 〈이스라엘과 바그너〉

이것은 독일에서 독일 문학을 공부하면서 독일 사람에게 정서적 동질감을 키웠을 글쓴이가 감히 하지 못했던 말이라 헤아릴 수 있겠는데, 그 속내는 박노자가 쓴 글에 비추어 엿볼 수 있다.

대부분 ‘근대성’이란 것을 말할 때, 그 특징으로 “의문을 갖고 논리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합리적 사고”를 든다. 이 측면에서 ‘근대의 요람’임을 자랑하는 서구나 미국의 대중적 역사 기억은 과연 근대적일까. ‘합리성’을 내세워 다른 지역의 문화를 평가절하하는 구미에서조차 비판적 분석이나 다른 역사적 사건과 비교할 수 없는 공공(公共)의 역사적 기억의 ‘성역’(聖域)이 있다. 다름이 아닌 홀로코스트(Holocaust), 즉 제2차 세계대전 때 유럽의 약 600만명의 유대인이 파쇼에 의해 대학살된 사건이다.

이는 세계사에서 전대미문의, 미증유의 사건이라는 전제, 인류가 저지른 어떤 가혹행위와도 견줄 수 없다는 테제, 히틀러가 자행한 범죄 가운데서 가장 흉악하다는 주장 등을 업고 아무런 비판 없이 ‘기존 사실’로 받아들인다. 어릴 때부터 교과서와 영화 등의 매체로부터 주입된 홀로코스트에 대한 거의 종교적인 외경(畏敬)도 한몫하지만, 홀로코스트에 대해 그 뜻을 약간이라도 상대화시키는 듯한 기미를 공석에서 보이면 곧장 ‘홀로코스트 부인주의자’(Holocaust-denier)의 딱지를 지닐 수도 있다. 딱지가 붙으면 더 이상 학술·대중 매체에서 발언권을 갖기가 힘들다. 마치 중세 유럽의 지식인들이 형이상학적 문제에 대한 예리한 발언으로 독신죄(瀆神罪; 기독교의 신을 모욕하는 죄목)에 걸려 사회로부터 ‘출척’(黜陟)당한 전근대적인 현실을 방불케 한다.

☞ 박노자, 〈비극의 상업화, 홀로코스트〉. 한겨레21, 2002.11.28.

이 책은 독일·오스트리아 문화사를 바탕으로 한 바그너 입문서라 할 수 있다. 입문서로 이 책에 매길 수 있는 가장 큰 값어치는 번역서가 아니라는 데 있다. 이것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 박원철 서평에서 잘 드러난다.

처음 책을 들었을때, 한참동안 저자가 누군인지 찾고 있었습니다.
안인희라는 이름을 보았지만, 번역자인줄 알았지 설마 우리나라 사람이 "게르만 신화 바그너 히틀러"라는 주제를 감히 건들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던 거지요.

바그너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이 책을 읽어야 한다. 그 뒤에 박준용의 ☞ 『바그너 오딧세이』 (서울: 씨디가이드, 2002)를 읽으면 더욱 좋겠고, 포이어바흐·니체·쇼펜하우어를 아우르는 철학적인 내용을 알려면 브라이언 매기가 쓰고 김병화가 옮긴 ☞ 『트리스탄 코드』 (서울: 심산, 2005)를 읽어도 좋겠다. 미학에 관심 있는 사람에게는 김문환이 쓴 본격 학술서인 ☞ 『총체예술의 원류』 (서울: 느티나무, 1989)―나중에 바뀐 제목은 『바그너의 생애와 예술』―를 추천할 만하다.

2009년 8월 25일 화요일

2007.08.19.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 / 브람스 교향곡 3번 - 김선욱 / 정명훈 / 서울시향

2007년 8월 19일(일) 오후 7시 30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지휘자 : 정명훈
협연자 : 김선욱, pf.

Brahms, Piano Concerto No. 1 in d minor, Op. 15
Brahms, Symphony No. 3 in F major, Op. 90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은 최초 구상이 교향곡이었다고 잘못 알려지곤 하는데, 원래는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였다. 다만, 수차례의 전면적 개정 과정에서 교향곡이 될 뻔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그 흔적이 작품 곳곳에 나타나 있다. 특히 1악장에 그러한 특징이 뚜렷한데, 일반적인 협주곡과는 달리 독주 악기에 대한 배려가 많이 부족해서 피아노 협연자에게는 연주하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다. 테크닉 문제를 떠나 우선 오케스트라의 거대한 음량에 맞서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세부 표현은 그다음 일이다.

피아니스트 김선욱은 강력한 타건으로 협주곡으로는 흔치 않은 대 편성으로 위압하는 서울시향과 팽팽히 맞섰으며, 그러면서도 정교한 테크닉과 섬세한 감성을 놓치지 않아 과연 유명세가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다. 1악장에서 다소 불안정한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의견도 더러 있었으나, 내 생각에는 이 정도면 이제 약관에 이른 연주자라 믿기 어려울 만큼 훌륭했다. 작품이 워낙 까다로우니만큼 이보다 더 잘한다면 차라리 대가라 불러야 할 것이다.

김선욱의 피아노는 단단했으며 확신에 차 있었다. 때때로 살짝 쇼팽을 연상시키면서도 밝은 톤을 잃지 않는 루바토를 드러내기도 했는데, 그러면서도 나이 어린 연주자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의식 과잉으로 유치해지는 일은 결코 없었다. 오케스트라와 교묘하게 줄다리기를 해가며 음악에 긴장감을 더해가는 솜씨가 특히 놀라웠는데, 이것은 혼자 연습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역시! 김선욱은 평소에 실내악 연주를 너무 좋아해서 주위에서 말릴 정도란다. 남다른 '앙상블 내공'을 쌓게 해준 것이 다름 아닌 실내악 연주일 테니 말릴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권장할 일이 아닐까.

서울시향의 연주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1악장 마디 66부터 비올라를 유난히 강조한 것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의 열악한 음향 환경이 뉘앙스를 제대로 살리지는 못했다. 마디 190에 아첼레란도를 쓴 것은 차분한 상태에서 재빨리 긴장감을 끌어올리기에는 좋았으나, 그 폭이 너무 커서 약간은 어색한 감이 있었다. (나중에 라디오로 들었던 22일 연주회에서는 아첼레란도의 폭을 약간 좁혀서 딱 적당했다.) 2악장은 4분 음표의 연속에 따르는 두터운 화성이 피아노와 상승작용을 하는 것이 매력적이지만, 서울시향은 투명한 현의 칸타빌레로 두터운 화성을 희석시키며 피아노와 미묘한 음색 대비를 이룬 것이 내 취향에는 맞지 않았다. 3악장이 특히 훌륭했으며, 기대했던 푸가토(마디 238) 역시 좋았다. 다만, 약간 더 욕심을 부리자면 악센트를 좀 더 분명하게 살렸으면 싶었다.

교향곡 3번은 '자유롭게 그러나 즐겁게(Frei aber Froh)'라는 모토에서 머리글자를 따온 것으로 알려진 F-A♭-F 모티프로 유명하다. 이와 관련한 자세한 사실관계는 학술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일단 이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전체 악곡의 조성 계획 또한 이 모티프와 무관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원 조성은 F 장조이며, 2악장과 3악장은 C 음을 으뜸음으로 하는 장·단조인데 여기서 C 음은 F 음의 딸림음(dominant)에 해당한다. 결국, 전체 악곡은 F-C-F의 구조로 되어 있으며, F-A♭-F라는 F 단조 화음에 생략된 5음인 C가 악곡의 전개에 중요한(dominant) 역할을 하는 것이다. 게다가 4악장에는 F-C-F라는 거시적인 구조가 다시 한 번 축약되어 있기도 해서 전체 악곡이 4악장을 향한 강한 추진력을 가진다.

정명훈의 해석은 이러한 목표지향적 구조를 매우 잘 드러내었으며, 그런 의도는 1악장에서부터 드러난다. 우선 템포가 꽤 빨랐고(시작 부분의 템포는 대략 ♩♩ = 85), 그런데도 1악장의 제시부 반복을 생략했다. 교향곡 1악장의 제시부 반복 생략은 19세기 작품을 연주할 때 흔히 있는 일이지만, 브람스 교향곡 3번과 같은 짤막한 곡에는 그런 경우가 흔치 않다.

2악장은 아기자기한 맛을 잘 살렸으며, 3악장은 감정의 낭비를 자제하여 4악장을 향한 방향성을 분명히 밝혔다. 유명한 3악장은 자칫 신파조가 될 위험이 있는데, 이것은 브람스답지 않을 뿐만 아니라 4악장의 무게감을 줄일 위험이 있어 좋지 않다. 서울시향은 첼로의 부점 리듬을 약간 무디게 연주했으며, 바이올린의 부선율을 적당히 살렸고, 목관 등의 투명한 음색을 놓치지 않아 신파조로 흐르지 않으면서도 지나치게 무표정하지는 않도록 중용의 묘를 보여주었다.

4악장의 재현부에 해당하는 마디 172 이후는 전체 조성 구조가 절정에 이르는 곳이라 할 수 있는데, F-C-F로 이어지는 조성 구조에서 F 장조로 마침내 해결되기 직전에 이제껏 쌓인 긴장이 선명한 f 단조에 의해 폭발하기 때문이다. 서울시향의 집중력 또한 이 부분에서 절정을 이루었으며, 객석에 전달된 긴장감은 연주회장의 열악한 음향으로 상당 부분 무뎌지고도 여전히 강력했다.

이날 연주에서는 모든 악기가 훌륭했지만, 그 가운데서도 강력한 집중력을 보여준 현의 역할이 컸다고 판단된다. 라디오 프랑스 오케스트라의 악장 출신인 스베틀린 루세브(Svetlin Roussev)가 서울시향의 악장을 맡은 것이 효과를 거두고 있기 때문일까.

4악장이 진정한 F 장조를 회복하는 것은 코다에 이르러서인데, 이미 f 단조 부분에서 모든 긴장을 폭발시켰으므로 일반적인 교향곡과는 달리 조용하게 끝난다. 그런데 곡이 차분히 끝나는 만큼 연주가 완전히 멈춘 뒤의 마지막 몇 초의 여운이 중요한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열광적인 '브라보'에 익숙한 관객이 그 몇 초를 견디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이날 연주에서는 고작 3-4초 정도의 여운을 바리톤 음성의 '브라보'가 깨트렸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아직 지휘자가 팔을 내리기 전이었다. 며칠 뒤에 예술의 전당에서 있었던 연주회에서는 아예 연주가 끝나자마자 이른바 '안다 박수'가 터져 나왔다고 한다. 앙코르로 베르디의 <운명의 힘> 서곡을 연주하기 전에 정명훈이 했던 말이 걸작이었다. "한국에서는 음악이 조용히 끝나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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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21일 금요일

2007.02.27.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3번 Op. 108, 현악 오중주 1번 Op. 88, 현악 육중주 1번 Op. 18 - 서울시향

서울시향 브람스 스페샬 실내악 시리즈 1
2007년 2월 27일(화) 오후 7시30분
세종 체임버 홀

Violin Sonata No. 3 in d minor, Op. 108 (21')
String Quintet No. 1 in F Major, Op. 88 (26')
String Sextet No. 1 in Bb Major, Op. 18 (33')

Op. 108: Marko Komonko(vn), Park, Jong-Wha(pf)
Op. 88 : Violin 임가진,유미나 / Viola 진민호, 안톤 강 / Cello 강찬욱
Op. 18: Violin 데니스 김, 김효경 / Viola 헝웨이 황 , 임요섭 / Cello 박은주, 김민경



한국의 음악계에서 오케스트라 단원을 바라보는 '전통적인' 시각은 그들이 독주자로 성공할 능력이 없어서 오케스트라를 한다는 것이다. 스타 시스템과 콩쿠르 위주의 교육제도 때문에 이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기도 하며, 심지어 오케스트라 단원 자신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듯하다. 이것은 물론 한국만의 문제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선진국에서는 유명 오케스트라 단원이 독주자나 실내악 활동을 겸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은 모양이니 오케스트라 단원의 위상이 한국보다는 훨씬 높다 하겠다. 이런 현실에서 서울시향의 브람스 실내악 시리즈가 가지는 의의는 실로 크다. 실내악 연주회는 단순히 시향 단원들의 직업 만족도를 높이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실질적인 연주력 향상을 가져올 것이다. 그것은 첫째로 현재의 열악한 음향 환경에서 수많은 사람이 모였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쾌적한 조건에서 파트별로 호흡을 맞출 기회가 제도적으로 확보되고(세종문화회관 체임버 홀의 음향은 꽤 훌륭했다), 둘째로 지휘자에 의존하던 작품 해석을 스스로 해보는 경험을 바탕으로 지휘자의 의도를 능동적으로 이해하게 될 것이며, 무엇보다 연주자 개개인이 주인공이 될 기회와 연주자 간에 더욱 친밀해진 교감을 통해 단원들 스스로 음악을 진심으로 즐기는 방법을 깨닫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날 연주에서는 아무래도 이들이 실내악 전문 연주자가 아닌 탓인지 다소 미숙함을 보이기도 했다.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3번 Op. 108을 연주한 Marko Komonko는 긴장이 심했는지 특히 초반에 실수가 많았고, 전체적으로 자신감이 부족해 보였다. 곡 해석이 특별히 모난 곳은 없었지만 4악장 마디 104에서 스타카토 음형을 또렷하게 살린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이어지는 레가토 음형과의 구분도 필요하겠지만 이를 위해서는 데타셰로도 충분하다. 문제의 스타카토 음은 내림박이기도 하거니와 다섯 마디에 이르는 딸림화음의 긴장감이 마침내 해결되는 음이기 때문에 종지감(終止感)을 충분히 살리려면 지나치게 짧게 연주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본다. 게다가 레가토 음을 시작하는 E 음은 비화성음은 아니지만 선율 진행상 보조음(neighboring tone)에 가깝기도 하다. 전반적으로 아쉬움이 많았던 연주였지만, 실내악 시리즈는 이제부터 시작이니 앞으로 더 나아진 모습을 보여줄 기회가 또 있을 것이다.

글머리의 논점에 비추어 가장 큰 칭찬과 격려를 보내고 싶은 연주자들은 현악 오중주 1번 Op.88을 연주한 임가진 등이었다. 물론 이들의 앙상블이 썩 훌륭했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으며, 이날 프로그램 가운데 가장 훌륭한 연주를 들려준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들은 때때로 어수선한 앙상블과 다소 밋밋한 곡 해석을 뜨거운 열정으로 보완했다. 이들의 연주에는 실황 연주에서만 느낄 수 있는 현장감이 생생하게 살아있었고, 특히 제1 바이올린과 첼로의 교감이 보기 좋았다. 두터운 화음이 강조되는 부분(이를테면 1악장 마디 20)에서 템포를 일시적으로 늦추곤 했던 것은 갑자기 눈에 띄게 변한 템포가 음악적 긴장감을 떨어뜨렸던 까닭에 그 자체로는 공감하기 어려웠지만, 그것을 기회로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마음을 새로 모으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이들은 진심으로 자신의 연주를 즐기는 듯했고, 얼굴에는 웃음이 걸려 있었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앙상블을 더욱 정교하게 다듬을 기회는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날의 초심을 계속 이어나가는 것이다.

현악 육중주 1번 Op.18을 연주한 데니스 김 등은 각 파트의 수석급 연주자들로 과연 서울시향의 뛰어난 앙상블에 이들의 역할이 컸음을 이날 연주로 새삼 알 수 있었다. 세련된 바이올린과 열정적인 비올라의 대립구도가 흥미진진했으며, 특히 유명한 2악장이 인상적이었다. 다만, 임가진 등보다 열기는 부족했으니 두 팀이 서로 장점을 본받으면 좋겠다. 해석상의 옥에 티 한 가지를 지적하자면, 스타카토 음형의 분절적 느낌을 맥락에 따라 좀 더 다채롭게 표현했더라면 더욱 훌륭한 연주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브람스 작품의 스타카토는 보통은 데타셰 주법으로 부드럽게 넘어가는 것이 좋은 경우가 많은데, 앞서 지적한 바이올린 소나타 3번의 경우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때로는 스타카토를 또렷하게 표현하는 것이 더 어울릴 때도 있다. 이를테면 1악장 발전부 렌틀러(ländler) 주제 직전의 스타카토 음형(마디 190)이 그렇다. 이날 마디 189에서 템포를 살짝 늦추면서 마디 190으로 이어지며 데타셰로 부드럽게 넘어간 것은 앞 마디의 으뜸화음이 이어지면서 화성적 긴장이 해소되는 국면인데다가 데크레셴도까지 동반했다는 점에서 일견 타당하다. 그러나 마디 190의 스타카토가 지나치게 불명확하면 마디 188에서 190에 이르는 동안 음가(音價)가 점점 늘어나면서 자칫 음을 질질 끄는 느낌이 들 수 있다. 또한, 마디 189에서 텍스처가 갑자기 엷어진 것은 오히려 음악적 긴장감을 살짝 높임으로써 전체적인 이완이 지나치지 않도록 조절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음악적 긴장이 극에 달했을 때 갑자기 텍스처를 엷게 함으로써 특별한 효과를 일으키는 것은 19세기 이후의 작품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따라서 마디 190의 스타카토 음형은 데타셰 주법을 사용하더라도 분절적인 느낌을 충분히 살리는 것이 좋으며, 템포 변화도 주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2악장 마디 79는 2악장 전체의 클라이맥스로 볼 수 있으므로 스타카토 음형을 좀 더 날카롭게 처리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4악장에서는 첼로와 바이올린이 같은 모티프를 연주하면서도 첼로(마디 3 등)는 스타카토를 또렷이 처리했지만 바이올린(마디 19 등)은 부드럽게 넘어감으로써 일관성을 잃었던 것이 옥에 티였다.

지난 정기연주회 리뷰를 쓰면서 나는 서울시향이 타성에 젖어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다. 그래서 단원들에게 그들이 연주하는 작품을 진심으로 사랑할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그런데 브람스 실내악 시리즈야말로 현재 서울시향에 가장 훌륭한 처방일지 모른다. 서울시향의 브람스 시리즈에 실내악이 들어간 것은 브람스가 기본적으로 실내악 작곡가이기 때문일 것인데, 어쩌면 시향의 공연기획자는 지금의 상황마저 예견했던 것은 아닐까. 실내악 시리즈의 시작은 성공적이었다. 그리고 시향은 진정한 기본기를 쌓아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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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19일 수요일

2006.02.27.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어》 1막 전주곡, 힌데미트 《화가 마티스》 - 구자범, 서울시향

구자범 / 서울시향의 <화가 마티스>
2006년 2월 27일(수) 저녁 7시 30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바그너,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어> 1막 전주곡
힌데미트, <화가 마티스>
슈만, <교향곡 4번>



내가 구자범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바그너 가수 사무엘 윤을 통해서였다. 다름슈타트에 구자범이라는 뛰어난 지휘자가 있다고 했는데, 그때는 그저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러다가 2003년 8월 30일에 사무엘 윤 등과 함께 내한하여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의 반주로 오페라 갈라 콘서트를 열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오케스트라의 연습 부족 탓인지 별볼일없는 연주를 들려주었다. 사무엘 윤이 노래했던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중 네덜란드인의 아리아 "때가 되었다. 세월은 흘러 또다시 7년이 지났도다. Die Frist ist um, und abermals verstrichen sind sieben Jahr'"에서는 특히 오케스트라가 악보를 따라가는 데 급급해서 지휘자의 해석이 반영될 여지도 없어 보였는데, 유일하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마지막 총주 도중에 수비토 피아노로 잠시 긴장을 늦춘 다음 다시 크레셴도를 사용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사전에 충분한 음악적 긴장감이 뒷받침되지 않은 탓에 공허한 트릭이 되고 말았다. 그날 내가 쓴 감상문에는 "오케스트라의 역량이 확실하게 받쳐주었다면 어떤 대단한 효과를 거두었을지는 모르겠"다고 쓰여 있다. 그 "대단한 효과"는 약 3년이 지나서야 확인할 수 있었다. (원래는 작년 4월 9일 부천 시민회관 대공연장에서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5번과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피아노: 주희성)을 연주했다는데, 그날 연주회에는 가지 못했다. 또 그해 5월 31일 교향악 축제에서 브루크너 교향곡 7번을 연주할 예정이었다는데, 무슨 사정에서인지 지휘자가 바뀌었다. 지난 22일부터 25일까지 예술의 전당에서 있었던 국립오페라단의 <투란도트>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가지 못했다.)

이번 연주회도 사실은 예정에 없던 것으로 정명훈의 입김에 의해 급히 만들어졌다고 한다. 듣자 하니 연주회 프로그램도 구자범이 원한 것이 아니었단다. 결정적으로 연주회장이 저 악명 높은 세종문화회관이다. 단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오케스트라가 최근 개편을 통해 비약적인 연주력 향상을 이룬 서울시향이라는 것이다. 결국 이날 연주는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정교하게 다듬지는 못한 것 같았는데, 그럼에도 많은 부분에서 감탄할 만한 해석을 보여주었으며, (내가 앉았던 자리가 너무 앞쪽이라 부정확한 판단일 수 있지만) 전체적인 밸런스도 매우 뛰어났다. 순간적인 아고긱(Agogik)과 뒤나믹(Dynamik)의 변화들은 3년 전과는 달리 연주의 완성도를 높이는 효과를 거두었다.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어> 1막 전주곡은 선이 가는 편이었다. 지휘자는 리허설 도중 이 작품은 원래 '작은 마을에서의 전국노래자랑' 얘기이므로 지나치게 장엄하게 연주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는데, 그 말을 듣고 개인적으로 상당한 우려를 가졌지만 결과는 이해할 만한 수준의 '현대적' 해석이었다. 다만, 저 주장에 대해서만 굳이 반박을 하자면 이렇다. 바그너는 '작은 마을에서의 전국노래자랑'에 빗대어 독일의 예술과 장인 문화의 전통과 독일 민족을 얘기한 것이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초등학교 교실을 배경으로 한 성장소설이라고만 말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마이스터징어'는 작품 전체를 보면 확실히 그랜드 오페라는 아니다. ('악극' 얘기는 넘어가기로 하자.) 그러나 발터의 우승이 결정되고 한스 작스가 장인 가수들의 전통과 '독일의 진실한 정신'과 '위대한 독일 예술'을 얘기할 때의 음악은 매우 장엄하다. 이것이 1막 전주곡에 링크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무리일까?

기름기를 뺀 해석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대위 선율이 실내악적으로 얽히는 부분의 앙상블이 정교해야 한다. 이날 연주는 과연 내가 이제까지 들어본 국내 오케스트라에 의한 '마이스터징어' 가운데 최고라 할 만큼 좋았다. 파트별로 긴밀하게 교환하는 호흡과 안정된 밸런스가 돋보였고, 목관악기군과 현악기군이 주고받는 부분의 이음매도 자연스러웠다. 이른바 '다비트 왕 모티프'가 재현되는 "Sehr gewichtig."(마디 196)에서 템포가 잠시 느려졌다가 다시 빨라지는 이른바 '왕자병 템포'는 독특한 방식으로 바그너다운 것이었다. 세 번의 C 장조 화음으로 된 콘서트 버전의 통상적인 축제적 끝맺음 대신 마지막 화음을 길게 늘여 이어지는 1막의 교회 오르간을 연상시킨 시도도 참신했다.

한편, 급히 마련된 연주회의 서곡에 불과한 작품에 많은 연습 시간을 투자했을 리는 없으니 뛰어났던 앙상블의 상당 부분은 서울시향 단원들의 기본 테크닉에서 우러나왔을 것으로 추측된다. 지휘자가 작은 부분까지 꼼꼼히 다듬지는 못했음은 마디 178에서 팀파니 주자가 저지른 사소한 실수에서도 짐작할 수 있었다. 여기서 팀파니의 첫 타격이 갑자기 두드러졌다가 급히 음량을 줄이는 모습을 보였는데, 팀파니의 음량이 큰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트럼펫이 그에 대등한 음량을 내지 못했던 것이 문제가 된다. 이것은 트럼펫 또는 팀파니의 단순 실수일 수도 있지만, 정황을 보아 두 연주자 사이에 사전 이견 조율이 부족했던 탓이 아닐까 싶다.

국내 오케스트라가 바그너를 연주할 때 항상 드러나는 문제는 현악기군의 이른바 '안전빵 보잉'이다. 이날 연주에서는 그나마 내가 들어본 중에서는 양호한 수준이었으나 만족할 만한 정도는 아니었다. 바이올린은 특히 곡의 후반부에서 더 강하게 긁어대었으면 좋았을 것이고, 마디 18-25와 마디 [] 등에서는 마르카토의 느낌을 더 살려서 관악기군과 주법상의 동질성을 높였으면 싶었다.

힌데미트의 <화가 마티스>는 이번 연주회에서 시향 단원들에게 가장 큰 도전이었을 것이다. 제한된 시간에 수준 높은 연주를 이끌어내야 했을 지휘자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어쩌면 단원들로 하여금 이 작품을 진심으로 좋아하게 만드는 것은 일개 객원지휘자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일지 모른다. 시향의 연주는 전체적으로 균형잡혀 있었으나 음악적 긴장감이 썩 높지는 않았다. 연습기호 2에서는 글로켄슈필 소리가 너무 크다고 느꼈다. 연습기호 11을 여는 두터운 화음은 앞뒤 부분과의 음량 대비가 약했다. 이 부분은 텍스쳐의 일탈적 변화를 동반한 데다가 메조포르테가 피아니시모에 둘러싸인 형국이라 상대적으로 크게 두드려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2악장은 투명하게 정제된 연주였으며 포르티시모로 치달을 때에도 낭만주의적 과장은 없었다.

3악장 연습기호 1의 "Sehr lebhaft" 직전 32분음표는 악마적인 느낌을 살리기 위해 가능한 한 날카롭게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지만(특히 바이올린과 비올라) 시향은 그냥 부드럽게 처리했다. 이것은 내가 들어본 다섯 종의 음반 가운데서도 썩 만족스러운 것은 없고 그나마 블롬슈테트-샌프란시스코심포니(데카)의 연주가 나은 편이다. 아무래도 앙상블을 맞추기가 힘들기 때문일까? 시향의 연주에서는 대신 바이올린 및 비올라와 나머지 악기군 사이에 주고받는 것이 자연스러웠던 점은 좋았다. "Sehr lebhaft"에서는 트럼펫 소리가 너무 커서 주선율을 침해했으며, 이 때문에 첼로는 바로 앞 마디의 C♮로부터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못했다.

연습기호 13에서는 현악기군이 충분히 강력하지 못한 탓에 상승 음형을 끝맺는 바이올린 트릴의 절정감이 부족했다. 이것은 상당 부분 연주회장 탓이기도 하다고 생각되며, 연습기호 16에서 현에 의한 점층효과가 크지 못했던 것도 마찬가지다.

연습기호 27 "Sehr lebhaft"에서는 템포가 충분히 빠르지 못했다. 푸가토의 정교함을 살릴 목적이었다면 이는 서울시향의 연주력이 부족함을 반증한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호른과 클라리넷이 멈춤 없이 자연스럽게 이어져 나온 것은 썩 좋았다. 연습기호 35에서는 결정적인 순간에 실수가 있었는데, 힌데미트가 단 하나의 악기로 곡의 긴장감을 극에 이르도록 했던 탓에 그 실수는 가히 치명적이었다. 차마 그 악기의 이름을 여기에 쓰기는 미안하지만, 언제든 이런 실수가 일어날 수 있고 그것이 매우 큰 실수인 만큼 반면교사로 삼기 위해서라도 정황을 기록해둘 필요는 있겠다. 바로 뒤에 두 가지 악기에 의해 동형진행처럼 나타나는 부분에서도 실수가 있었다.

슈만 교향곡 4번 (작성중)

이번 연주회 프로그램은 어쩐지 지휘자 콩쿠르에 쓰일 법한 구성이다. 오케스트라의 기능성을 잘 살릴 수 있는 작품, 리듬과 음색에 대한 지휘자의 감각을 시험할 수 있는 작품, 그리고 쉽고도 어려운 낭만주의 작품. 정명훈이 어떤 식으로든 구자범을 시험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어떤 면에서는 박사 학위보다 학사 학위의 권위가 더 큰 대한민국에서 구자범의 특이한 이력은 적어도 한국에서는 지휘자로서의 활동에 커다란 장애가 될 수 있다. (이미 독일에서 성공한 그의 입장에서는 그다지 신경 쓸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는데 어쩌면 가장 큰 도움을 줄 사람이 정명훈이기도 하다. 정명훈은 구자범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렸을까? 내가 정명훈이라면 A 학점에 준하는 평가를 내리겠다.

2006년 2월 28일 씀.
2006년 3월 6일 고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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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18일 화요일

2005.12.15. 《트리스탄과 이졸데》 2막 /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창단 20주년 기념연주회 (제149회 정기연주회)
<트리스탄과 이졸데> 2막
2005년 12월 15일 (목) 저녁 8시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지휘 : 이대욱
트리스탄 : 리차드 데커(Richard Decker)
이졸데 : 프란세스 진저(Frances Ginzer)
브랑게네 : 김여경
마르케 왕 : 양희준
멜롯 : 전태상




<트리스탄과 이졸데> 1막 전주곡과 "사랑의 죽음"이 국내 초연된 것이 1961년이다(KBS 교향악단, 데이비드 샤피로 지휘). 그리고 44년 만에 2막이 초연되었다. 불과 석 달 전에 <니벨룽의 반지> 국내 초연이 있었는데다 6개월 전에는 <탄호이저>가 1979년 국내 초연 이후 처음으로 전 막 공연되기도 한 터라 이번 공연이 상대적으로 빛바랜 감이 있기는 하지만, 바그네리안 입장에서는 어쨌든 역사적인 사건이라 하지 않을 수 없겠다. 한편, 코리안심포니는 여러모로 바그너와 인연이 많은 악단이다. 초대 음악감독이자 상임지휘자였던 고(故) 홍연택 선생은 국내 최초로 바그너 오페라 전 막 공연을 지휘한 분이시기도 하다(1974년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국립오페라단). 또한 한국을 대표하는 바그네리안이신 김민 선생이 코심의 이사장을 거쳐 현재 음악감독을 맡고 계시기도 하다.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개인적으로도 특별한 작품이다. 처음으로 진지한 태도로 대본을 따라가며 전 막을 감상한 바그너 작품이기도 하고, 이러저러한 이유로 바그너 작품 가운데 가장 깊이 파헤친 작품이기도 하기에 이번 공연에 감회가 남달랐다.

마침내 시작된 공연에서는 우선 무대가 어두워진 다음 박수 칠 기회를 주지 않고 지휘자가 조용히 등장하는 바이로이트적(?) 연출이 아주 좋았다. 불이 켜지는 동시에 '낮'의 모티프가 터져 나올 것을 기대했는데, 의외로 1막 전주곡이 시작되는 것이 아닌가? 덕분에 조명의 총체예술적 효과는 반감되었으나 예정에 없던 부분을 덤으로 감상하게 되었으니 한편으로는 반갑기도 했다.

이대욱의 해석은 특별히 모나지 않은 대신 참신함도 없이 무던했다. 이것은 현이 음표를 따라가기에 바빴던 탓이 크다고 생각되는데,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의 역량을 고려하면 현악기 주자들이 사력을 다했다고 말하기는 곤란하지만 연습을 게을리했다고 할 수도 없다. 다른 작품도 아니고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아니던가? 이런 작품은 국내 오케스트라가 연주해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무될 만하다. 현의 음량이 전체적으로 부족한 편이었지만 꼭 필요한 부분에서는 꽤 힘을 내기도 했다.

그래도 아쉬웠던 부분을 몇 가지만 떠올려 보자면, 우선 저 유명한 '오 사랑의 밤이여 우리를 덮어다오 O sink hernieder, Nacht der Liebe' 대목에서 현에 의한 몽환적인 리듬이 전혀 살아나지 않았다. 리듬 처리 자체가 충분히 또렷하지 못했고 보잉이 일치되지도 않았으며, 무엇보다 (피아니시모에 약음기를 사용하라는 지시가 있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모든 현이 같은 리듬을 사용하는 것치고는 음량이 너무 작았다. 결과는 꿈결처럼 붕 뜬 느낌의 리듬 대신에 안개 낀 듯 흐릿한 소리였다.

음악해석학(musical hermeneutics)에 기대어 말하자면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사랑은 바그너 이전의 전통적인 '불'의 심상이 아닌 '물'의 심상을 통해 나타난다고 할 수 있는데, 크래머(Lawrence Kramer)가 이에 대해 상세히 논한 바 있다.


남자와 여자의 결합, 다시 말해 사랑이야말로 (실질적으로든 비유적으로든) 인간을 창조하는 무엇이다. (...) [어느 누구도] 자신을 있게 한 사랑의 행위를 초월할 수 없으며, 단지 되풀이할 수 있을 뿐이다. (...) 그리고 이러한 반복을 통해 사랑은 파도가 밀물과 썰물에 따라 변하고 사라졌다 되살아나는 것을 닮은 특질을 가질 수 있게 된다. (135쪽)

리비도는 요컨대 다름 아닌 액체이며, 실로 프로이트가 즐겨 사용한 비유는 액체, 곧 사람들의 내면과 다른 사람들 사이를 오가는 흐름의 속성을 가진다. 전통적인 욕망의 불은 끊임없이 순환하고 끊임없이 율동 하는 매개체, 즉 물로 교체되었다. (141쪽)

욕망의 액체화로부터의 이상하지만 또한 지속적인 지류(支流)는 이 등장인물[Kate Chopin의 소설 The Awakening (1899)에 나오는 인물]의 성별에 따라 구분된 요구들 사이의 권력투쟁이다. 여자다움에 있어서, 욕망은 무엇보다도 바다, 파도의 밀물과 썰물, 이졸데의 'wogender Schwall'로 표현된다. 이러한 용례는 남녀 예술가 모두에게 일반적이다. (142쪽)

콘서트 버전의 전주곡에 바그너 자신이 붙인 프로그램 노트를 우선 살펴보면,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끊임없이 갈망하고 동경하며 자신을 스스로 갱신하는 밀물과 썰물로서의 욕망을 표현하는 것으로 줄곧 이해되었다. (147쪽),

- Lawrence Kramer., Musical Form and Fin-de-Siecle Sexuality. In Music as Cultural Practice 1800-1900,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90.

2막 2장, 'O sink hernieder, Nacht der Liebe,' mm. 1111-1122.
Ⓟ New York : Broude Brothers, [1900?] 출처: http://www.dlib.indiana.edu


이러한 물의 심상은 '끝없이 영원히, 하나 됨을 자각하리라 endlos ewig, ein-bewusst'에 이르면 거대한 파도로 변한다(마디 1598). 강력하게 몰아치던 음악은 '지고한 사랑의 쾌락이여! höchste Liebeslust!'에서 갑자기 여리게 변한 다음 다시 크레셴도를 부르는데(마디 1619), 이렇게 갑작스러운 음량 변화는 진정한 폭발을 준비하기 위한 것이며 감상자의 주의를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하게 끌어당기는 장치가 된다. ('지고한 사랑의 쾌락이여! höchste Liebeslust!'는 사랑의 2중창 마지막 대사이며, 마르케 왕의 등장과 함께 좌절된 사랑의 완성, 즉 쇼펜하우어적 해탈이 바그너에 의해 변용된 "열광적인 기쁨과 황홀"의 상태이다. 좌절된 사랑이 진정으로 완성되는 것은 작품의 끝 부분이며, 작품 전체의 마지막 대사는 이졸데의 '지고한 쾌락이여! höchste Lust!'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날 연주에서는 이 부분이 정신없는 동형진행(sequence) 속에 얼렁뚱땅 넘어가 버렸다.

1막 전주곡에서 때때로 호른 소리가 거칠 게 돌출되곤 했던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이것은 어쩌면 호른 주자의 실수일지도 모르지만 여기서는 일단 지휘자의 해석으로 간주하기로 하자. 도버 판 총보 첫머리에 있는 지시문에 따르면(펠릭스 모틀이 쓴 것으로 추정됨) 바그너는 부드러운 음색을 만들기 위해 내추럴 호른을 염두에 두고 작곡했다고 하는데, 연주자가 충분히 뛰어나다면 밸브 호른을 써도 무방하다고 한다. 잘은 모르지만 현대의 호른도 이 점에서 당시의 밸브 호른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호른이 지나치게 돌출되는 것은 그다지 좋은 해석이라 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며, 실제 음악적 맥락으로 보아도 이는 마찬가지다. 감정의 기복을 살리려는 의도였다면 이른바 '트리스탄 코드'를 중심으로 하는 세 번의 동형진행에서 다이내믹의 변화를 크게 하며 특히 마디 10과 마디 16의 스포르찬도를 강조하는 것 등이 더 필요하지 않았을까.

2막 전주곡에서는 베이스 클라리넷에 의한 이른바 '☞ 조급한 이졸데의 모티프' 부분에서 악기군 사이의 리듬 충돌에 묘한 매력이 있으며 개인적으로는 이것을 '☞ 이졸데 리듬'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대부분의 음반에서는 이것을 살리지 않고 다양한 방법으로 리듬 충돌을 피해간다. 이날 연주회에서는 현 소리를 아주 작게 함으로써 리듬 충돌의 핵심 원인이 되는 현의 싱코페이션 리듬을 무력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베이스 클라리넷 소리는 내가 알던 악기의 음색에 비해 너무 부드러워서 바순으로 대체한 것으로 오해하고는 깜짝 놀라기도 했다. 덕분에 나는 연주가 끝난 뒤 지휘자가 베이스 클라리넷 주자를 일으켜 세웠을 때 다시 한 번 놀라야 했다.

마르케 왕의 '어떤 불행으로도 씻을 수 없는 이 불명예를 왜 내게 주는가? Die kein Elend sühnt, warum mir diese Schmach?' 직후 베이스 클라리넷 소리를 들을 때면, 지난 2003년 9월 8일에 있었던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체임버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지휘: 로버트 쾨니히, 베이스: 전승현)에서 받았던 강렬한 기억이 떠오른다. 이날 베이스 클라리넷 주자는 크레셴도 폭을 최대로 늘림으로써 비탄에 빠진 마르케 왕의 심리를 압축적으로 표현하는 동시에 이 대목을 마르케왕의 모놀로그 전체의 절정으로 부각시켰다. 지휘자 로버트 쾨니히는 코심과 연주회를 통해 상당한 친분을 쌓고 있기 때문에 이번 연주회에서도 어떤 식으로든 지휘자의 해석에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하고 내심 기대했는데 웬걸, 여느 음반과 비슷하게 폭 좁은 크레셴도로 밋밋하게 넘어가 버렸다.

트리스탄 역의 리차드 데커(Richard Decker)는 음색이 배역에 나름대로 잘 어울리기는 했지만 바그너 가수로서의 힘은 부족해 보였다. 이성이 마비될 만큼 강렬한 파토스를 표현하기에는 목소리가 너무 부드러웠으며, 성량 자체도 충분히 크지 못해서 오케스트라 소리에 묻힐 때가 더러 있었다. 연주회장의 음향 문제를 고려하더라도 예전에 같은 장소에서 들었던 귀네스 존스나 사무엘 윤 등의 목소리를 떠올려 보면 리차드 데커는 바그너 가수의 미덕을 충분히 갖추었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 같다. 그런데 달리 생각하면 한국에서의 공연을 만만히 보고 목소리를 아낀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공연 내내 크게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 그러한 의혹을 뒷받침한다. 만약 그가 한국인이었다면 우리에게도 바그네리안 테너가 있다며 기뻐했겠지만, 많은 돈을 들여 모셔왔을 외국인 가수가 이 정도라면 그 돈이 좀 아깝다. 트리스탄, 에릭(방황하는 네덜란드인) 등의 역할을 맡은 바 있으며 내년에 지크문트 역을 맡을 예정이라고 한다. 내 생각에 지크문트 역이 매우 잘 어울릴 것 같다.

이졸데 역의 프란세스 진저(Frances Ginzer)는 리차드 데커보다 훨씬 더 실망스러웠다. 목소리가 오케스트라 소리에 파묻혀 제대로 들리지도 않을 때가 많았으며, 강세를 받지 못한 음을 속으로 먹어 버린 탓에(독일어 무성음 처리는 열심히 하더라) 레가토나 칸타빌레에 대한 개념이 있기나 할까 싶을 정도로 선율 윤곽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그나마 고음 처리를 곧잘 한 것은 다행이었지만, 이것은 결국 작품의 악명 높은 고음 처리를 위해 목을 지나치게 아낀 덕이 아닐까 싶다. 노래를 하러 나온 것이 아니라 고음 자랑을 하러 나온 것인지? 브륀힐데, 이졸데, 엘자, 젠타 등 바그너 경력은 상당하며 음색이 바그너에 잘 어울리기도 했지만, 이 때문에 오히려 이날 공연을 만만하게 생각했다는 의혹은 더욱 짙다. 평론가로부터 "거대한 성량과 따스함을 가진 최고의 소프라노"라는 극찬을 받은 적이 있단다.

브랑게네 역의 김여경은 성량만 본다면 프란세스 진저와 역할을 바꿨으면 좋았을 것이다. (물론 이졸데 역의 살인적인 고음을 감당할 만한 성역이 아니었겠지만.) 2막 1장 동안 줄곧 이졸데를 압도했으며, 2장에 두 차례 등장하는 아리오소도 매우 뛰어났다. 타게리트(Tagelied)의 전통을 잇는 2막 2장의 아리오소에서 도입 부분의 크레셴도는 마치 영화의 페이드인(fade-in)과도 같은 역할을 하는데, 이 부분을 매끄럽게 처리하는 가수는 음반으로도 흔치 않다. 김여경의 '페이드인' 처리는 꽤 양호했다. 무엇보다 바그너를 이만큼 훌륭히 소화해내는 한국인 여자 가수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몹시 반갑다. 마르케 왕의 등장을 알리는 브랑게네의 비명 소리가 없어서 잠깐 놀랐는데, 이어지는 쿠르베날의 대사가 2막에서는 단 한 마디 뿐이라(위험합니다, 트리스탄님! Rette dich, Tristan!) 캐스팅에서 빠졌다는 점을 생각하니 정황이 이해되었다. 그래도 비명은 있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데, 만약 목소리를 아끼기 위한 것이었다면 바그너 가수가 될 자격은 없다 하겠다. 비명 소리가 빠진 대신 금관이라도 좀 더 크고 거친 소리를 내주었으면 좋았을 뻔했다.

마르케 왕 역의 양희준은 저음의 깊이만으로도 탄복할 만한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저음은 아무나 내는 것이 아니다. 성악이라는 것이 원래 타고난 목소리가 중요하겠지만, 특히 저음은 노력만으로는 만들 수 없는 특별한 것이라고 한다. 해석상의 특이한 점은 없었고 기존 대가들의 장점을 이어받아 정교하게 다듬은 모범적인 해석을 들려주었다. 그가 출연한 <니벨룽의 반지> 전곡 CD가 있다는데, 아마도 귄터 노이홀트의 바덴 가극장 녹음(Brilliant, 1993-95)에 나오는 파졸트(라인의 황금)와 파프너(지크프리트) 역인 것으로 추정된다. 해당 음반에는 'Simon Yang'으로 표기되어 있다. 주목해야 할 새로운 바그너 가수 발견!

멜롯 역의 전태상은 배역의 존재감이 워낙 작아서 별로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 목소리가 빛을 머금은 듯 밝고 단단하다고 느꼈으나 바그너에 어울리는 목소리는 아니라고 판단된다.

이 공연을 끝으로 위대한 바그너의 해는 갔다. 앞으로는 무슨 재미로 사나?

2005년 12월 17일 씀.
2006년 2월 9일 고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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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17일 월요일

2005.10.20. 지휘자 이윤국을 주목하라! (서울바로크 합주단 / 트리스탄과 이졸데 1막 전주곡)

서울바로크합주단 창단 40주년 특별정기연주회
2005년 10월 20일(목) 저녁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 리더: 김 민 / 객원지휘: 이윤국
- 베이스: 연광철 / 바이올린: 김홍준 / 비올라: 윤진원
   W.A.Mozart - Serenade No.6 in D Major K.239
   W.A.Mozart - Aria for Bass, K.612 "Per Questa Bella Amno" (베이스:연광철)
   K.Atterberg - Suite for Violin, Viola and String Orchestra Op.19 No.1
                       (바이올린: 김홍준 / 비올라: 윤진원)
   W.A.Mozart - Aria for Bass, K.541 "Un Bacio di mano" (베이스:연광철)
   W.A.Mozart - Aria of Leporello,"Madaminal, il catalogo e questo" (베이스:연광철)
                      -Intermission-
   R.Wagner - Opera 'Tristan and Isolde' 중 전주곡
   R.Wagner - Konig Markes Klage, "Tatest du's wirklich?" (베이스:연광철)
   A.Piazzolla - Tre Minutos con la Realidad
                       Concierto para Quinteto
                       La Muerte de Angel



내가 이날 연주회에 간 것은 순전히 연광철의 바그너를 듣기 위해서였다. '연광철'과 '바그너' 이 두 단어의 결합이라면 다른 것은 아무래도 좋았고, 관심도 없었다. 그런데 나는 덤으로 이윤국이라는 뛰어난 지휘자를 발견하는 횡재를 했다. 이윤국은 모차르트를 연주할 때부터 크고 명쾌한 비팅으로 작품의 주요 포인트를 매우 잘 살려내더니, 바그너를 할 때에는 소편성으로 바그너를 연주할 때 생기는 난점을 효과적으로 해결하기도 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트리스탄과 이졸데> 1막 전주곡을 연주할 때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긴 호흡으로 거대한 크레셴도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성급하거나 불필요한 아고긱과 뒤나믹의 변화는 자칫 음악의 흐름을 망쳐 버리기 쉽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큰 폭의 크레셴도를 감당할 만큼 큰 편성의 오케스트라가 꼭 필요하다. 이윤국은 서울바로크합주단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위험천만한 모험을 했는데, 표현할 수 있는 셈여림의 한계를 빠른 템포 변화와 거친 호흡 조절로 보충한 것이다. 결국, 지휘자는 전체적인 해석의 틀이 특이하기는 해도 작품 속에서 '드라마'를 살리는 데에는 성공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지휘자의 해석이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성을 유지해서 나름대로 상당한 설득력이 있었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이른바 '트리스탄 코드'를 중심으로 하는 세 번의 동형진행에서는 크레셴도와 디미누엔도의 낙차가 큰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데, 이날 연주에서는 그냥 부드럽게 처리했다. (물론 편성이 따라주지 않기도 했다.) 다만 마디 10에서 스포르찬도를 나름대로 살린 것은 좋았다. 마디 17에서는 첼로의 주선율 연결이 자연스럽지 못했는데, 나의 외람된 의견으로는 지휘자와 악단 사이에 사인이 안 맞아서 첼로의 반응이 살짝 늦은 탓에 일부 악기가 데크레셴도를 과하게 했거나 심지어 소리가 멈추어버린 뒤에야 첼로 소리가 나기 시작한 것이 아닐까 한다.

마디 23부터 45까지 악보에 복잡하게 나타나는 지시들은 주로 템포 및 셈여림과 관련한 것인데, 내가 여기서 받는 느낌은 마치 주저하는 듯한 심리상태다. 그런데 이윤국은 템포의 변화를 매우 빠르고 크게 함으로써 차라리 격렬한 마음을 억제하려고 노력하는 듯한 느낌을 전달했다. 마디 47 이후부터는 불규칙한 아고긱의 변화가 정리되며 리듬 패턴이 고정되는 양상을 보이는데, 지휘자는 상당히 빠른 템포로 밀어붙였다. 그런데 마디 52에서는 '너무 서두르지 말 것(Ohne zu eilen!)'이라는 지시가 있고, 마디 63에서는 '절대 서두르지 말 것(Niemals eilen!)'이라고 되어 있다. 지휘자는 결국 바그너의 지시를 무시한 셈이지만, 편성의 제약을 고려하면 이는 차라리 영리한 해석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마디 47부터 끝까지 지휘자가 악단으로부터 이끌어낸 고양감은 소편성 치고는 대단한 것이었다. 다만, 클라이맥스에서 폭발력이 약했던 것은 어쩔 수 없었으리라.

전주곡의 끝을 2막 브랑게네의 비명 직전으로 연결한 재치는 썩 마음에 들었다. 현의 재빠른 보잉 변화도 좋았다. 거친 리듬과 함께 등장한 연광철의 노래가 끝난 뒤에는 3막 마지막 부분(In dem wogenden Schwall, in dem tönenden Schall, in des Weltatems wehendem All)으로 자연스럽게 건너뛴 아이디어도 좋았다.

연광철의 노래는 과연 명불허전이었다. 독일 음악평론계의 황제라는 요아힘 카이저는 연광철을 일컬어 '바그너가 찾던 바로 그 목소리'라 했던가. 모차르트를 노래하던 담백하고 섬세하면서도 힘차고 단단한 목소리는 바그너를 할 때에는 전혀 다른 목소리가 되어 비탄에 빠진 마르케 왕을 훌륭하게 표현했다.

<니벨룽의 반지> 한국 초연의 대단원이 끝나던 날, 나는 지인과 함께 바그너 자력 연주의 가능성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못해도 좋으니까 <파르지팔> 같은 작품을 무대에 올려만 달란 말이야." 나는 이 말에 대해 바그너를 하겠다고 덤비는 지휘자가 없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윤국이라면 어떨까? 그가 제대로 된 편성으로 바그너를 연주하는 것을 듣고 싶다. 이날처럼 변칙적인 아이디어를 쓰지 않고도 바그너를 잘할 수 있을까? 한국인 바그너 지휘자의 탄생을 기대해도 좋을까? 피아졸라의 탱고를 매우 잘했는데다 앙코르도 피아졸라의 작품으로 한 것을 보면 그의 취향이 그쪽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가 바그너를 본격적으로 지휘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괜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그의 지휘자로서의 능력이 뛰어난 것은 분명하다. 이윤국은 내가 주목해야 할 지휘자 1순위가 되었다.

2005년 10월 30일 씀.

고클래식 댓글:

streicher: 특히 모차르트와 전고전시대의 작품 해석에 능통한 지휘자로 알려져 있죠. 10년 전에 C.P.E.바흐와 W.F.바흐의 신포니아를 녹음한 음반(Naxos)이 그라모폰 에디터스 초이스로 선정된 바도 있습니다. 지난 달에 부천에서 부천필을 두 차례 지휘하여 모차르트의 교향곡과 협주곡을 들려 주었는데, 악단의 규모도 30명 정도로 줄여서 템포도 전체적으로 빠르게 설정하여 연주하였고, 비브라토도 극단적으로 자제한다든가 보잉도 빠르게 짧게 하는 등 시대악기 연주를 연상시키는 절충주의적인 해석을 선보였죠. 악보도 직접 들고 와서 며칠 동안 단원들을 한 명 한 명 코치를 했다는데, 아마도 부천필 단원들로서는 상당히 좋은 경험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자주 초빙한다면 국내 오케스트라 단원들도 여러 가지로 많이 배울 수 있겠지요. 참, 피아졸라를 상당히 좋아하는 것 같았습니다. 부천에서 있었던 두 번의 연주회에서 앙코르 곡으로 모두 피아졸라를 들려 주었고, 편곡도 직접 했다는군요... :-)05/10/31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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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gnerian: 그렇군요..;; 어째 모차르트를 잘하더라니... -_-; 연광철의 모차르트도 정말 좋았고, 특히 "Madaminal, il catalogo e questo"가 끝장이었답니다.05/10/31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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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9.29. 《신들의 황혼》 - 게르기예프 / 마린스키 극장 오페라단

신들의 황혼 Götterdämmerung - 마린스키극장 오케스트라/오페라단
9월 29일(목) 저녁 5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지 휘 : 발레리 게르기예프 Valery Gergiev
연 출 : 발레리 게르기예프 Valery Gergiev
감 독 : 블라디미르 미르조예프 Vladimir Mirzoev
무대 디자인: 조시 티시핀 George Tsypin

브륀힐데 : 올가 세르게예바 Olga Sergeyeva
지크프리트 : 알렉세이 스테블리안코 Alexey Steblianko
군터 : 예뎀 우메로프 Edem Umerov
알베리히 : 빅토르 체르노모르츠예프 Viktor Chernomortsev
하겐 : 알렉세이 탄노비츠키 Alexei Tannovistsky
구트루네 : 발레리아 스텐키나 Valeria Stenkina
발트라우테 : 올가 사보바 Olga Savova
노른 1 : 루드밀라 카누니코바 Liudmila Kanunikova
노른 2 : 스베틀라나 볼코바 Svetlana Volkova
노른 3 : 타티아나 크라브초바 Tatiana Kravtsova
보클린데 : 마르가리타 알라베르디안 Margarita Alaverdian
벨군데 : 리아 셰브초바 Lia Shevtsova
플로스힐데 : 안나 키크나드제 Anna Kiknadze



<신들의 황혼>에서는 앞선 시리즈와는 달리 서막 및 1막부터 연주의 완성도가 높았다. 다른 '반지' 시리즈에 비해 현의 비중이 적은 편이라 다이내믹과 밸런스 사이의 트레이드-오프(trade off) 문제도 덜했다. (현의 음량 부족 문제에 대해서는 <라인의 황금> 편을 참고하라.) 연주자들의 집중력이 <발퀴레> 2막보다는 못했지만 전체적으로는 4부작 가운데 가장 뛰어난 연주였다고 생각한다. 다만, 1막부터 너무 열심히 한 탓인지 3막에서는 끝을 향해 갈수록 연주가 조금씩 불안정해졌던 것은 옥에 티였다.

템포는 빠른 편이었으며, 맹약 장면과 기비히 무사들이 군터를 환영하는 장면 등에서는 깜짝 놀랄 만큼 빠른 템포로 몰아붙였다. 이 부분의 템포를 빠르게 한 것은 나름대로 참신한 해석이었고, 또 러시아 지휘자 및 악단과 어울리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은 동시에 바그너 음악의 주요 특징 가운데 하나를 해치는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했다. 맹약 장면과 군터 환영 장면은 바그너 특유의 제의(祭儀) 장면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바그너의 작품은 그 자체가 제의적이기도 하지만, 작품 속의 제의 장면은 감상자에게 특별한 영적 고양감을 일으키곤 한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을 참고하라: 안인희, <게르만 신화·바그너·히틀러> (서울: 민음사 2003) 202-205쪽.) 음악으로 제의적 효과를 일으키기 위해 템포는 느린 것이 좋으며, 이 점에서 바그너식 제의의 정점에 선 작품은 바그너가 무대신성제전극(Bühnenweihfestspiel)이라고 불렀던 작품인 <파르지팔>이다. (1막에서 성배기사들의 행렬 장면과 성배 의식 장면을 들어보라.) 하겐이 기비히 무사들을 소집하는 장면과 그에 이어지는 합창도 전체적으로 훌륭했지만, 역시 제의적 요소를 살리는 데에는 실패했다. 지크프리트 장송행진곡과 브륀힐데 자살 장면("저기 라인 강가에 강한 장작들을 나를 위해 더미로 쌓아다오! Starke Scheite schichtet mir dort am Rande des Rheins zuhauf!" 이후부터 끝까지)도 마찬가지였다.

서막 전주곡 마디 6과 마디 14에서는 트럼펫의 음정이 엉뚱하게 들렸다. 악보를 완전히 숙지하고 있지는 않아서 무엇이 문제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는데, 지금 생각으로 가장 가능성이 큰 가설은 제1 트럼펫이 여린 음을 내지 않아 돌출되었다는 것이다. 마디 6에서 제1 트럼펫의 A(실음은 C) 음은 E 단조 6도 화음의 소프라노 성부에 중복된 근음(root)이다. 제2, 제3 트럼펫은 각각 화음의 5음과 3음을 연주하며, 베이스 성부의 근음은 제1 트롬본 등이 담당한다. 그런데 마디 6의 주선율은 화음의 5음인 G(실음 기준)에서 C을 거쳐 E이 된다. 결국, 제1 트럼펫의 C(실음)은 비화성음은 아니지만 주선율 차원에서는 마치 비정상적으로 긴 선행음(Anticipation)처럼 기능 했다. 즉, 제1 트럼펫이 두드러지면서 선율 음인 G을 누르고 전체 선율 윤곽을 망가트린 것이다. 마디 14 역시 동형진행이므로 마찬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그림 1. 서막 전주곡 마디 5-9.
New York: G. Schirmer, 1904. Plate 26809. 출처: http://www.dlib.indiana.edu


서막 마디 359에서는 리듬이 이상하게 들렸다. 사실은 연주자가 실수하거나 엉뚱한 루바토를 쓰지 않고 오히려 인템포로 연주했는데 왜 그렇게 들렸을까? 답은 템포에 있다. 다음을 들어보자.


그림 2. 서막 마디 358-361. © 2005 김원철.

© 2005 김원철


이것은 마디 327에 나오는 모티프의 변형이다.


그림 3. 서막 마디 327-329. ©1997-2002 by Fabrizio Calzaretti.

© 2005 김원철


그런데 마디 360의 셋잇단음 스타카토 부분을 강박에 배치하다 보니 원래 모티프와 리듬 윤곽이 다르게 들린다. 이 때문에 리듬이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이며, 마디 359의 변칙적인 리듬은 마치 연주자가 실수라도 한 것처럼 들리게 한다. 그러나 템포를 느리게 하면 덜 어색해진다. 다음은 <그림 2>에서 템포를 ♩= 120에서 ♩= 80으로 고친 것이다.


그림 4. 서막 마디 358-361. © 2005 김원철.

© 2005 김원철


이제 훨씬 자연스럽다. (찬가처럼 크게 부풀린 관현악 총주를 상상하라.) 이날 연주는 ♩= 120 정도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 100 이상으로 들렸다. 개인적으로는 ♩= 90 이하의 템포일 때 리듬이 어색하지 않게 들린다. 그 이상의 템포를 원할 경우 4분음 셋잇단 리듬에 루바토를 쓸 필요가 있다. 음반에서는 대개 템포와 상관 없이 루바토를 쓰고 있으며, 루바토를 쓰지 않은 녹음으로는 불레즈의 1979년 녹음이 있다. (그런데 사실은 이 녹음에서도 연주자가 완벽하게 기계적인 템포를 소화하지는 못했다.)

2막 전주곡은 바이올린과 비올라에 의한 리듬이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데, 그 리듬의 변칙성은 언뜻 들어서는 알아차리기 힘들지만 악보를 들여다 보면 사실은 매우 복잡함을 알 수 있다. 이날 연주에서는 '실수를 하나 안 하나 어디 두고 보자!' 하는 심정으로 특별히 주의 깊게 들었는데, 역시 연주회장의 극악한 음향 환경 때문에 현의 운궁이 또렷하게 전달되지도 않았다. 마지못해 내린 결론은 실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림 5. 2막 전주곡.
New York: G. Schirmer, 1904. Plate 26809. 출처: http://www.dlib.indiana.edu


2막 3장에서 하겐의 "호이호! 호이호호호! 기비히의 대장부들아. 일어들 나시오! Hoiho! Hoihohoho! Ihr Gibichsmannen, machet euch auf!"와 함께 연주되는 스티어호른(Stierhorn) 소리가 빠진 것도 아쉬웠다. (그러고 보니 <발퀴레> 때에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바그너는 하겐이 무대에서 C, 무대 뒤 왼쪽에서 D, 오른쪽에서 D로 불어서 입체적인 효과를 내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요즘 바이로이트에서는 그냥 오케스트라 피트 관악기 위치에서 트롬본이 연주한다고 한다. 스티어호른 두 대가 동시에 소리 낼 때에는 단2도 또는 장2도 음정으로 강력한 불협화음이 되는데, 그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해서는 역시 스티어호른을 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3막에서 지크프리트의 "깨우는 자가 왔소. 그가 입맞춤으로 당신을 깨우고 있소. Der Wecker kam; er küßt dich wach," 대목(마디 891-899)의 목관과 트럼펫에 의한 리듬은 여린 다이내믹 속에서도 죽어가는 지크프리트의 강렬한 흥분 상태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이 부분에서는 피아니시모에서부터 시작하는 섬세한 크레셴도와 데크레셴도가 필요한데, 역시 세종문화회관은 이것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 이 부분은 <지크프리트> 3막과도 링크되는데, 그날 연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림 6. 3막 마디 891-899.
New York: G. Schirmer, 1904. Plate 26809. 출처: http://www.dlib.indiana.edu


유명한 '지크프리트 장송행진곡'에서는 전체적으로 박진감 있게 잘했으나 몇몇 부분은 아쉬웠다. 마디 926에서 마디 927까지 현에 의해 피아노(p)에서 포르티시모(ff)로 세 단계를 거쳐 폭발적으로 일어나는 크레셴도도 약했고, 마디 960-962에서는 현이 호른 및 베이스 트럼펫과 안티폰(antiphon)처럼 주고받는데, 이때 현의 급박한 다이내믹 변화도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물론 일차적으로 연주회장 탓이다.) 마디 953에서 갑자기 터져 나오는 트럼펫의 포르테(f)와 이어지는 크레셴도는 말러의 이른바 '개파(Durchbruch)'를 예견하게 하는 갑작스럽고도 강렬한 국면 전환 효과를 불러오며, 숄티의 녹음에서는 특히 마디 956의 크레셴도를 매우 길게 늘이기도 했다. (라이브로 그렇게 할 수 있는 연주자가 있다면 그는 틀림없이 인간이 아니다.) 이날 연주에서는 그러한 다이내믹의 대비가 크지 않아서 극적 효과가 약했다. (원인은 연주회장의 극악한 음향과 트럼펫 주자의 기력 소진이 반반일 것으로 생각된다.)

마디 957부터는 트라이앵글과 테너 드럼(Rührtrommel) 등의 롤(roll)을 과장하면 현의 음량 부족에 의해 밸런스가 무너질 것을 걱정할 필요 없이 금관이 강력한 포르티시모를 마음껏 낼 수 있기 때문에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예상 밖으로 이날 연주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어쩌면 마디 953의 트럼펫 음량부터 지휘자의 의도가 작용했던 것일까? 이 부분에서 현 소리를 버리지 않은 것은 장단점이 있겠지만 극적인 효과는 어쨌든 부족했다.




그림 7. 3막 마디 935-967.
New York: G. Schirmer, 1904. Plate 26809. 출처: http://www.dlib.indiana.edu


마디 969에서는 서막 마디 359와 같은 템포 문제가 있었다. 마디 969-974에서는 대부분의 음반에서 적당히 루바토를 사용하고 있는 것을 들을 수 있는데, 이날 공연에서는 줄곧 인템포로 연주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림 8. 3막 마디 969-970. © 2005 김원철.

© 2005 김원철


마디 974 셋째 박에서는 일종의 착청(錯聽; '착시'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착청'도 있다.)을 만들어내야 한다. 서막 마디 360 넷째 박에서는 목관에 의해 유도되는 주선율의 옥타브 도약이 있지만, 같은 모티프로 링크되는 3막 마디 974에서는 그렇지 않다.


그림 9. 3막 마디 973-974. © 2005 김원철.

© 2005 김원철


그러나 이것은 다음과 같이 들려야 한다.


그림 10. 3막 마디 973-974에서 착청(錯聽) 효과에 의한 옥타브 도약을 반영한 것. © 2005 김원철.

© 2005 김원철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심벌즈가 팀파니와 테너 드럼(Rührtrommel)의 롤(roll)을 동반하여 일으키는 강력한 차폐 효과(masking effect)와 그에 이어지는 음고 복원 효과(pitch restoration effect)이다. '음고 복원 효과'란 '음소 복원 효과 (phonemic restoration effect)'를 변형시킨 것으로 내가 지어낸 말이다. 음소 복원 효과는 워렌(Richard M. Warren)이 1970년에 사이언스(Science)에 발표한 논문에서 유래한 용어로, 워렌은 피험자에게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녹음된 문장을 들려주었다:


The state governors met with their respective legislatures convening in the capital city.


여기에서 "legislatures"의 가운데 /s/ 소리는 삭제하고 대신에 기침 소리를 넣었다. 그러나 피험자들은 이것을 알아차릴 수 없었으며, 어떤 소리가 하나 빠졌다고 알려주어도 그 위치를 알지 못했다. 사라진 /s/ 음소는 지각 과정에서 '복원'된 것이다. 후속 실험에서는 제거된 음소(*eel) 대신에 복원된 음소가 문장의 맥락에 따라 다른 음소(wheel, heel, peel, meal 등)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마디 974에서 심벌즈 등의 소리가 충분히 크지 않으면 음고 복원 효과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데, 실제로 몇몇 음반에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날 연주에서는 심벌즈 등이 음고 복원 효과를 일으킬 만큼 충분히 컸다.

브륀힐데의 "저기 라인 강가에 강한 장작들을 나를 위해 더미로 쌓아다오! Starke Scheite schichtet mir dort am Rande des Rheins zuhauf!" 이후부터는 긴 호흡으로 피날레를 향해 서서히 나아가며 주술적인 효과를 일으킨다. 이날 연주에서는 다이내믹의 폭이 좁은 것이 역시 아쉬웠다. (원인은 연주회장의 음향 문제와 연주자들이 지친 것이 반반으로 판단된다.) 다만, 마디 1538부터 바이올린에 의해 연주되는 이른바 '구원(redemption; Liebeserlösung)'의 모티프는 연주회장의 음향 환경을 감안하면 매우 좋았다.



그림 11. 구원의 모티프 (<발퀴레> 3막).
출처: http://www.utexas.edu/courses/wagner/148.html


브륀힐데 역의 올가 세르게예바는 이번 '반지' 시리즈 가운데 최고의 브륀힐데였다. 몸매도 브륀힐데 치고는 매우 날씬한 편이었다. <발퀴레>에서의 브륀힐데와 지클린데 등도 그랬지만, 뛰어난 성량에 비해 몸매는 가냘픈 것이 참으로 신기하다. 음색은 귀네스 존스를 닮았다는 의견이 많았다. 극이 후반부로 가면서 고음 처리를 완벽하게 하지 못하고 실제보다 반음 정도 낮은 음을 낸 적이 있었던 것이나, 또는 2막의 이른바 '복수의 3중창'에서 갑작스런 저음 처리를 힘들어했던 것 등은 옥에 티였다. 특히 "그의 피로써 그가 속죄하기를! mit seinem Blut büß' er die Schuld!"에서는 가수와 오케스트라가 완전한 유니즌을 이룰 만큼 대사의 무게가 큰 부분이라 성량이 부족한 것이 몹시 아쉬웠다. <발퀴레>의 브륀힐데를 맡은 적이 있단다.

지크프리트 역의 알렉세이 스테블리안코는 테너 같지 않고 베이스나 바리톤 같았는데, 그것이 원래 목소리인지 이날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덕분에 군터로 변장했을 때에도 베이스-바리톤인 군터의 목소리를 일부러 흉내 낼 필요가 없었던 것이 재미있었다. (오히려 군터 역의 바리톤 예뎀 우메로프보다 낮게 들릴 때도 가끔 있었다.) 새 흉내는 발성은 뛰어났지만 굵은 목소리 때문에 연극적인 측면에서는 낙제점이었다. <신들의 황혼>의 지크프리트는 <지크프리트>의 지크프리트만큼 강력한 헬덴 테너일 필요는 없고 고음처리도 덜 필요하기 때문에 음역이 낮아도 큰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지크프리트>에서의 레오니드 자코자예프와 음색의 차이가 컸던 점은 좋지 않았다. 게다가 2막 후반부에서부터 지친 기색을 보이다가 3막에서는 목소리가 잠겨서 몇 번이나 기침을 했던 것은 애처로울 정도였다. 그런데 프로필을 보면 의외로 주역 가수인 것 같다. (역시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것일까?) 로엔그린 역을 맡은 적이 있단다.

군터 역의 예뎀 우메로프는 <라인의 황금>에서의 알베리히였는데, 알베리히보다는 군터에 어울렸다. (알베리히와 군터를 같은 가수가 소화한다는 것은 사실 넌센스다.) 군터 역할에 역량을 집중했더라면 더욱 뛰어난 가창을 들려줄 수도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니 아쉽다. "그의 피로써 그가 속죄하기를! mit seinem Blut büß' er die Schuld!"에서 브륀힐데와 마찬가지로 저음을 시원하게 처리하지 못했던 점은 옥에 티였다.

하겐 역의 알렉세이 탄노비츠키는 1976년생의 젊은 가수로 주역이 아닌 모양인데, 그 카리스마는 주연들을 압도할 정도였다. 다만, 뛰어난 연기력에 비해 음색의 사악한 맛은 부족했다. 커튼콜 때에는 공연 중의 카리스마를 무색하게 할 만큼 순한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열광적인 박수를 받자 매우 놀라는 것 같았다. 프로필에 따르면, 모스크바 차이코프스키 필하모닉 홀에서 있었던 베르디 레퀴엠 연주회에 대해 한 비평가는 "탄노비츠키의 아름답고 낭랑한 음색, 완벽할 정도로 깔끔하게 표현된 곡, 마치 홀린 듯한 관객들"이라고 평했다 한다. 바그너 경력은 없었던 모양이다.

알베리히 역의 빅토르 체르노모르츠예프는 <지크프리트>에서도 알베리히였는데, <지크프리트>에서 뛰어난 가창을 들려주었던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단역이라서 별다른 인상을 주지는 못했다. 구트루네 역의 발레리아 스텐키나는 훌륭했지만, 단역을 맡은 탓에 특별히 주목받지는 못했다. 쿤드리와 지클린데를 맡았던 적이 있단다. 음색이 지클린데 역에는 잘 어울릴 것 같지만, 쿤드리를 맡기에는 너무 가는 목소리가 아닐까 싶다. 발트라우테 역의 올가 사보바는 <발퀴레>의 브륀힐데였는데, 이번에는 반지를 라인의 처녀들에게 돌려주라며 브륀힐데를 야단치는 역할을 맡은 것이 재미있다. 좀 더 따끔하게 야단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점은 아쉽지만, 전체적으로 썩 잘했다.

첫 번째 노른 역의 루드밀라 카누니코바는 <발퀴레>의 슈베르틀라이테이다. 원래 단역 가수인 듯한데, 단역치고는 꽤 잘했다. 그런데 의외로 오르트루트 역을 맡은 적이 있단다. 두 번째 노른 역의 스베틀라나 볼코바는 <라인의 황금>과 <발퀴레>에서 프리카 역으로 강력한 카리스마를 보여준 가수인데, 이날에는 역할 비중이 좀 축소되어서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세 번째 노른 역의 타티아나 크라브초바는 <발퀴레>의 헬름비게인데, <발퀴레>에서 깔끔하고 강력한 '하이 C'를 들려주었던 것과는 달리 이날에는 좀 얌전해서 불만이었다. 특히 "끊어졌네! Es riß!"에서의 성량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라인 처녀들의 합창은 <라인의 황금> 때보다 별로 나아진 것이 없었고 딕션도 별로였다. 보클린데 역의 마르가리타 알라베르디안은 헬름비게와 <파르지팔>의 꽃처녀 역을 맡은 적이 있단다. 벨군데 역의 리아 셰브초바는 <라인의 황금>에서도 벨군데였으며, <발퀴레>에서는 게르힐데였다. 플로스힐데 역의 안나 키크나드제는 <발퀴레>의 그림게르데이다.

2막에서의 남성 합창은 지난 6월 13일에 있었던 간사이 니키카이 오페라단의 <탄호이저>와 비교하게 된다. 마린스키의 합창 수준은 매우 높았지만, 간사이 니키카이 오페라단에 비하면 한 수 아래였다. 주역 가수들의 기량은 마린스키 쪽이 월등했던 것을 보면 역시 일본은 합창이 강한 모양이다.

뒷얘기. '신비기인'의 좌석 위치를 확인해 두었다가 공연이 끝나고 나서 결국 말을 걸어보았다. 기억을 더듬어 재구성한 대화 내용은 다음과 같다.


김원철: 실례합니다.
신비녀: 안녕하세요?
김원철: 외람된 말씀이지만(과잉 정중 모드), 당신이 그 유명한 바그네리안...
신비녀: (말 끊으며) 맞아요. 당신은 한국인인가요 아니면 공연 보러 한국에 온 건가요?
김원철: 한국인입니다.
신비녀: 나 이곳이 너무 마음에 들어요. 정말 멋진 곳이로군요! 어쩌고저쩌고... (수다 모드로 돌변함.)
김원철: 그렇게 말씀하시니 기쁘군요.
신비녀: 그런데, 연주자 대기실이 어디인지 아세요?
김원철: 모르겠네요. 에, 그러니까, 바그너 공연을 보러 전 세계를 돌아다닌다는?
신비녀: 맞아요.
김원철: 존경합니다!


(...라고 한다는 것이 "I adore you!"라고 해버렸다. 남녀 사이에서 'adore'를 쓰면 사랑한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이런, 나이가 많아 보이던데... 그녀는 그냥 웃더라.)


신비녀: 어쩌고저쩌고... (계속 수다 모드)

김원철: 당신은 유명세에 비해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는데, 이름이라도 알 수 있을까요?
신비녀: 이번 공연에 대해 TV로 방송이 나갔다던데, 못 봤나 보죠?
김원철: 저는 TV를 안 보거든요.
신비녀: 이러쿵저러쿵... (이름은 안 가르쳐주면서 계속 수다)
김원철: 일본 공연에도 갈 건가요?
신비녀: 물론이죠.
김원철: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


이렇게 해서 <니벨룽의 반지> 한국 초연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게르기예프와 마린스키 극장 오케스트라는 연주회장의 열악한 음향 환경에서도 상당히 뛰어난 연주를 들려주었다. 물론 이번 공연에 대해 좋게만 평가할 수는 없다. 연주자들은 최상의 상태로 공연에 임했다 할 수 없으며 가수 기용의 적절함에 대해서도 의문이 남는다. 지휘자는, 저 탁월한 기본기를 빼버리고 작품에 대한 해석만 놓고 본다면, 대체로 악보에 충실하기는 했지만 불레즈처럼 확실한 주관을 가지고 차가운 해석을 한 것이 아니라 나이브(naive)하게 악보를 따라가기만 했다. 그럼에도 독일인이 아닌 러시아인이 바그너의 음악을 이만큼 완성도 있게 연주한 것은 대단하다. 무엇보다 이번 공연은 한국 초연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올해는 바그네리안에게 매우 뜻깊은 해이다. <탄호이저>가 원어로는 사실상 국내 초연되었고, <니벨룽의 반지> 국내 초연도 마침내 이루어졌다. '반지'를 자력으로 무대에 올리려는 움직임도 있다. 10월 20일에는 바이로이트에서 호평받고 있는 베이스 연광철이 <트리스탄과 이졸데> 중 마르케 왕의 모놀로그를 부를 예정이며, 10월 30일에는 왕년의 바그너 가수 귀네스 존스가 온다. 그리고 성배의 그 다음 계시는 12월 15일, <트리스탄과 이졸데> 2막이다.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를 주목하라!

2005년 10월 11일 씀.
2006년 1월 10일 고침.
 

정보공유라이선스

김원철. 2005.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2009년 8월 16일 일요일

2005.09.27. 《지크프리트》 - 게르기예프 / 마린스키 극장 오페라단

지크프리트 Siegfried - 마린스키극장 오케스트라/오페라단
9월 27일(화) 저녁 5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지 휘 : 발레리 게르기예프 Valery Gergiev
연 출 : 발레리 게르기예프 Valery Gergiev
감 독 : 블라디미르 미르조예프 Vladimir Mirzoev
무대 디자인: 조시 티시핀 George Tsypin

지크프리트 : 레오니드 자코자예프 Leonid Zakhozhaev
브륀힐데 : 라리사 고골레프스카야 Larissa Gogolevskaya
미메 : 바실리 고르슈코프 Vassily Gorshkov
방랑자 : 예프게니 니키틴 Evgeny Nikitin
알베리히 : 빅토르 체르노모르츠예프 Viktor Chernomortsev
파프너 : 게네디 베주벤코프 Gennady Bezzubenkov
에르다 : 즐라타 불리체바 Zlata Bulycheva
새 : 잔나 돔브로프스카야 Zhanna Dombrovskaia



<지크프리트> 1막 전주곡은 관악기 주자들의 합주력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목관끼리, 또는 금관끼리 여린 음으로 합주를 할 때 국내 오케스트라의 연주에서는 어택(attack)과 밸런스가 어긋나서 듣는 사람의 마음을 졸이게 할 때가 많다. 그런데 지난 2003년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체임버 오케스트라 내한 연주회 때 <지크프리트 목가>의 호른 두 대가 단3도로 나란히 스타카토로 연주하는 부분에서, 어택과 밸런스를 마치 악기 하나가 연주하는 것처럼 정확하게 맞추면서도 호른 주자에게 흔한 미스톤 하나 없이 현 소리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가는 것을 듣고 얼마나 충격을 받았던지! 이것이 독일과 한국의 차이란 말인가...

이날 연주에서는 바순 2대의 7도 하행 부분(마디 4)과 바순 3대의 스타카토 부분(마디 51), 잉글리쉬 호른의 단2도 하행에 바순 3대가 합세하는 부분(마디 79)이 모두 깔끔했고, 약음기를 낀 비올라 등과의 리듬 교환도 자연스러웠다. 다만, 셈여림의 세세한 변화를 공연장이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던 점은 아쉬웠다. 테너 튜바 2대와 베이스 튜바 2대의 크레셴도(마디 72, 마디 79)도 좋았고, 호른과 트롬본, 콘트라바스 트롬본이 가세하는 부분(마디 84)도 좋았다. 금관을 강조하면서 현이 묻혀 버리는 문제는 큰 음량이 꼭 필요한 곳이라 어쩔 수 없었다. (현의 음량 부족 문제에 대해서는 <라인의 황금> 편을 참고하라.)

이날 지휘자의 '임기응변'은 <발퀴레> 때보다 더 나아진 것 같았지만 연주자들의 집중력은 오히려 <발퀴레> 때만 못했고, 특히 1막에서는 작품에 익숙지 않은 사람도 알아챌 만한 금관의 실수가 여러 번 있어서 전체적인 완성도가 높았는데도 많은 사람이 어수선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1막에서 실수가 많았던 가장 큰 이유는 템포가 빨랐기 때문일 텐데, 이 때문에 가수들도 숨가빠 했다. 이번 공연의 특징 중 하나는 단막 작품인 <라인의 황금>까지 포함해서 1막 연주의 완성도가 다른 막에 비해 떨어졌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단원들이 '반지' 시리즈 사이마다 다른 연주회 일정을 소화하는 강행군을 하느라 지친 탓에 2막에서야 몸이 풀린 것이 아니냐는 말이 있었고, 나는 우스갯소리로 '게르기예프가 1막 끝나고 단원들에게 '한바탕' 한 것이 아닐까?'라고도 했다. 2막부터는 매우 좋았고, 3막의 "만세, 태양이여! 만세, 빛이여! 만세! 빛나는 날이여! Heil dir, Sonne! Heil dir, Licht! Heil dir, leuchtender Tag!" 부분부터는 현의 앙상블이 특히 뛰어났다. 다만, 3막 전주곡 등 현의 비중의 큰 곳에서는 (현이 매우 열심히 연주했지만) 다이내믹에 문제가 생기는 점은 어쩔 수 없었다.

지크프리트 역의 레오니드 자코자예프는 <발퀴레>의 지크프리트와는 달리 뛰어난 지구력을 자랑하면서 깔끔한 노래를 들려주었다. 1막까지만 해도 빠른 템포 때문에 약간씩 불안정해지는 목소리를 듣고 '2막부터는 망가지겠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웬걸, 3막이 끝날 때까지 안정된 목소리를 유지하는 것이 아닌가! 큰 성량으로 곧게 뻗어나가는 고음을 들려주었다면 전설의 바그너 가수가 되살아난 것 같았겠지만, 그것까지 바라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리라. <발퀴레> 때의 지크프리트처럼 '아 노퉁!'과 같은 불필요한 선행음(Anticipation)을 사용한 것은 옥에 티였다. 음색은 르네 콜로가 경박함을 벗고 진중한 헬덴 테너가 된 듯했다. 에릭과 로엔그린, 프로(Proh) 등의 역할을 맡은 적이 있고, 말러의 <대지의 노래> 테너 솔로도 했단다. 자코자예프는 외모 또한 뛰어났다. 키도 크고 몸매도 날씬했다. 다만, 어깨와 가슴에는 '공사'를 좀 했다. (시력이 나빠서 처음에는 긴가민가했는데, 다른 사람들이 확인해 주었다.) 연극배우와 록 가수를 했던 경력이 있단다. 사진을 보니 언뜻 페터 호프만을 닮았는데, 더 자세히 보면 매서운 척하는 표정이 록 가수 신해철을 닮았다.

브륀힐데 역의 라리사 고골레프스카야는 <발퀴레>의 브륀힐데를 크게 능가하는 대단한 강성 소프라노였으며, 표현할 수 있는 다이내믹의 폭이 컸던 만큼 크레셴도를 잘했다. 몸매 또한 '현실 세계의 브륀힐데'에 매우 근접했다. 다른 역할은 가수가 바뀌어도 음색이 비슷해서 일관성을 해치는 일이 잘 없었는데, 브륀힐데는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퀴레>의 브륀힐데와는 전혀 다른 목소리였는데다가 지크프리트에 비해 성량이 너무 커서 힘 조절을 하고 있던 지크프리트를 초라하게 만들어 버리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성량은 컸지만 고음 처리가 조금씩 위태로웠고, 마지막 대사인 "lachender Tod! 웃는 죽음이로다!"에서는 대사를 빼먹기도 했다. 다른 가수들도 대사를 빼먹은 적이 있지만(프롬프터가 있기는 하지만 듣자 하니 대가들도 의외로 이런 실수를 곧잘 한단다.) 고골레프스카야가 빼먹은 것은 다가올 파국에 대한 복선 역할을 하는 매우 중요한 대사라는 것이 문제다. "Tod(죽음)" 부분은 '하이 C'인데, 바그너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한 옥타브를 낮추어 지크프리트와 유니즌을 이룰 수도 있도록 이중으로 표시했다. 어쩌면 고골레프스카야는 '하이 C'로만 불러야 하는 줄 알았던 것은 아닐까? 음색은 살짝 비르기트 닐손을 연상시키기도 했지만 힘과 표현력 모두 닐손과는 차이가 컸다. 쿤드리, 젠타, 오르트루트를 맡은 적이 있단다. 쿤드리는 좀 갸우뚱하기도 하고, 젠타는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오르트루트는 모르겠다. 엘자 역과 강렬한 음색 대비를 할 수도 있겠지만, 엘자가 너무 연약하면 오르투르트에게 압도되어 졸지에 조연이 되어 버리지 않을까?

미메 역의 바실리 고르슈코프는 <라인의 황금> 때의 니콜라이 가시예프와 비슷한 음색이었으며 미메에 매우 잘 맞았다. 그러나 성량이 너무 작은 것이 문제였다. 특히 저음은 거의 들리지도 않을 지경이었다. 니콜라이 가시예프와는 달리 바그너 경력도 없단다. 둘이 서로 바꿨으면 좋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크프리트>의 미메는 의외로 음색에 어울리지 않는 저음을 요구하기도 하는데, 어쩌면 가시예프보다는 그래도 고르슈코프가 성역이 낮았던 것일까? 그래도 연기는 참 좋았다. 음반에서도 언제나 엉터리인 망치 리듬은 예상보다 양호했다. 그러나 내가 지휘자라면 차라리 미메나 지크프리트에게는 솜 망치를 들려주고 망치 소리는 오케스트라 타악기 주자에게 맡기겠다.

방랑자 역의 예프게니 니키틴은 <라인의 황금> 때의 보탄이었는데, 그때보다 더 잘했다. 역할의 특성상 호흡이 긴 편이어서 노래하기 편한 점도 있었겠지만, 그것을 고려해도 참 잘했다. 차라리 미하일 키트와 바꿔서 <발퀴레> 보탄을 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니키틴이 부르는 '보탄의 고별'을 상상해보니 왠지 잘할 것 같다.

알베리히 역의 빅토르 체르노모르츠예프는 <라인의 황금>에서의 예뎀 우메로프보다 훨씬 잘했으며 헬덴 바리톤 냄새가 났다. 사악한 표현도 우메로프보다 더 잘했다. 파프너 역의 게네디 베주벤코프는 악보대로 확성기를 사용했고, 전체적으로 잘했지만 비브라토를 일부러 억제한 듯한 발성이 약간씩 흔들리기도 했다. 에르다 역의 즐라타 불리체바는 <라인의 황금> 때와 마찬가지로 훌륭했다. 새 역의 잔나 돔브로프스카야는 새 소리를 흉내 내려는 노력은 좋았으나 목소리가 굵고 비브라토도 깊은 것이 흠이었다. <파르지팔>에서 꽃처녀 역을 맡은 적이 있단다.

뒷얘기. <라인의 황금> 때 봤던 '신비기인'은 역시 C열 오른쪽으로 가는 것을 확인했다. <신들의 황혼> 때에는 위치를 확인해 뒀다가 말을 걸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진 찍히는 줄도 모르고 독보삼매경.


2005년 10월 5일 씀.
2005년 10월 31일 고침.
 

정보공유라이선스

김원철. 2005.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2005.09.25. 《발퀴레》 - 게르기예프 / 마린스키 극장 오페라단

발퀴레 Die Walküre - 마린스키극장 오케스트라/오페라단
9월 25일(일) 저녁 6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지 휘 : 발레리 게르기예프 Valery Gergiev
연 출 : 발레리 게르기예프 Valery Gergiev
감 독 : 율리아 페브즈너 Yulia Pevzner
무대 디자인: 조시 티시핀 George Tsypin

보탄 : 미하일 키트 Mikhail Kit
브륀힐데 : 올가 사보바 Olga Savova
지크문트 : 올레그 발라쇼프 Oleg Balashov
지클린데 : 믈라다 후도레이 Mlada Hudoley
훈딩 : 게네디 베주벤코프 Gennady Bezzubenkov
프리카 : 스베틀라나 볼코바 Svetlana Volkova
게르힐데 : 리아 셰브초바 Lia Shevtsova
오르틀린데 : 루드밀라 카시아넨코 Liudmila Kasianenko
발트라우테 : 나덴자다 세르뒤크 Nadezhda Serdiuk
슈베르틀라이테 : 루드밀라 카누니코바 Liudmila Kanunikova
헬름비게 : 타티아나 크라브초바 Tatiana Kravtsova
지크루네 : 나데자다 바실리예바 Nadezhda Vasilieva
그림게르데 : 안나 키크나드제 Anna Kiknadze
로스바이세 : 뤼보브 소콜로바 Liubov Sokolova



솔직히 말해 <라인의 황금> 공연은 약간은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더 솔직해지자면 공연을 보는 동안 온갖 독설이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한국 초연인 점을 생각해 실망스러운 부분은 최대한 잊어 버리고 장점 위주로 본 것이었다. 시차 적응도 덜 된 데다가 낮에 <호두까기 인형>을 공연한 뒤에 <라인의 황금>을 또 공연하는 강행군 때문에 단원들이 지쳤던 것이리라. 그런데 <발퀴레> 때에는 체력을 회복했는지 훨씬 나아진 소리를 들려주었고, 게르기예프는 공연장의 극악한 음향 환경에 더욱 적응을 한 듯했다.

현은 음향적 공백을 더욱 메워주었고, 특히 1막에서 선동적인 리듬을 타고 흐르는 저음 현이 좋았다. '보탄의 고별' 장면에서는 부드럽게 공연장을 휘감는 소노리티가 일품이었다. 다만, 1막 전주곡에서는 공연장 특성상 어쩔 수 없는 다이내믹의 한계를 드러냈다. 이를테면 포르테(f)에서 반 마디 만에 피아노(p)로, 다시 한 마디 반 동안 스타카토로 크레셴도 시켜서 포르테로 이어지는 등의 급박한 다이내믹의 변화는 세종문화회관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것이었다. 어쩌면 오케스트라가 무대 위로 올라가 제대로 된 편성으로 연주해도 시원찮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현의 음량 부족 문제에 대해서는 <라인의 황금> 편을 참고하라.)

1막 전주곡 마디 62부터 나오는 ☞'도너' 모티프에서는 베이스 튜바, 테너 튜바, 트롬본이 차례로 첫 음을 흐릿하게 연주했고, 트럼펫은 좀 나았다가 베이스 트럼펫에서 다시 흐려졌다. 저음 쪽의 악기일수록 이 부분을 못했는데, 아무래도 저음 악기가 완전4도 도약을 재빠르게 하기 힘든 탓이지 싶다. 마디 62에는 다음과 같은 지시가 붙어 있다. "이 주제(도너 모티프)에서 짧은 여린박(Auftakt) 음은 매우 강하고 또렷하게 들리도록 해야 한다. Bei diesem Thema (Donner-Motiv) müssen die kurzen Auftakt noten sehr stark und deutlich hörbar werden." ('도너 모티프'라는 말을 직접 사용하고 있는 점이 수상하기는 하지만, 내 추측에 지시어 자체는 바그너 자신이 붙인 것이며 모티프 이름은 편집자가 첨가한 것 같다. 도버 판(C. F. Peters, Leipzig, n.d. [ca. 1910].) 총보를 참고했다. 더 권위 있는 악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이 부분에 대해 알려주면 고맙겠다. - 나중에 붙임: 펠릭스 모틀이 붙인 지시어란다.) <라인의 황금> 때부터 도너와 관련 있는 부분이 좋지 않은 점은 유감이다. 북유럽 신화에서 도너(토르)가 차지하는 위치를 생각하면 게르기예프는 신화 연구를 게을리했다는 혐의를 벗기 힘들다.

2막 전주곡은 개인적으로 마디 54부터 마디 65까지의 팀파니 소리가 백미라고 생각하는데, 악보 상으로는 포르테(f)와 피아노(p) 사이를 오가고 있지만 다이내믹의 낙차를 더 크게 과장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뵘의 녹음 등을 들어보면 그렇게 연주하기도 한다. 특히 게르기예프에게는 이것이 연주회장의 음향 핸디캡을 메울 수 있는 좋은 방법이었을 것인데, 예상 밖으로 팀파니 주자는 정직한 음량을 고집했다. 오히려 크레셴도가 분명하지 않은 것이 불만이었다.

2막은 이번 '반지' 시리즈를 통틀어 최고였다고 할 만큼 대단했다. 특히 프리카 등장 이후부터는 프리카의 뛰어난 가창에 힘입어 빠른 템포로 극의 흐름을 완전히 움켜쥐고 관객을 몰입하게 하였다. 지루하기로 유명한 <발퀴레> 2막을 이토록 흥미진진하게 만들다니! 물론 실수도 적지 않았지만, 이들의 연주에는 그 모든 것을 사소한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마력이 있었다. 그에 비하면 <라인의 황금>을 듣고 '거장' 운운했던 것은 취소하는 것이 좋겠다. 보라, 여기에 진짜 거장이 있다!

3막도 매우 좋았고, 유명한 3막 전주곡 '발퀴레의 기행'에서는 금관과 타악기만을 앞세우기보다는 목관 악기의 회오리바람을 놓치지 않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보탄의 고별' 장면에서는 템포가 좀 빠르긴 했지만 역시 음반으로는 절대로 느낄 수 없는 현장의 감동이 있었다. 후반부로 갈수록 감정이 격해져서 "내 창 끝을 두려워하는 자는 이 불을 뚫고 들어가지 못하리라! Wer meines Speeres Spitze fürchtet, durchschreite das Feuer nie!" 이후부터는 차분한 감상이 불가능해질 정도였는데, 심지어 막이 내리기 시작하자마자 성급하게 박수가 터져 나올 때(많은 사람이 지적했지만 이것 참 문제다.)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나도 모르게 박수를 따라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 멈추었을 정도였다.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호흡은 거칠어졌으며 가슴은 요동치고 다리는 후들거리는 것을 겨우 수습하고 밖으로 나간 다음, 지인들과 함께 오늘 공연이 얼마나 대단했는지에 대해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듣자 하니 <라인의 황금> 때 실망해서 <지크프리트>와 <신들의 황혼> 표를 팔아버렸거나 또는 처음부터 <발퀴레> 표만 샀던 사람들이 이날 공연이 끝나고 나머지 표를 구하느라고 난리가 났던 모양이다.)

보탄 역의 미하일 키트는 <라인의 황금>에서 보탄을 맡았던 예프게니 니키틴보다 음색이 더 깊이 있었고 특히 여린 음의 표현력이 뛰어났지만, 전체적으로는 오히려 니키틴보다 못했다. 강력한 프리카에게 혼쭐나서 쩔쩔매는 듯한 모습은 오히려 극과 어울리기도 했다. ☞사무엘 윤과 비교하자면 지난 2004년 11월 12일 연주회에서의 사무엘 윤이 훨씬 잘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프로필을 보니 역시 바그너 경력이 없단다. 이런 가수가 대뜸 보탄 같은 큰 역할을 맡은 것이 대단한데, 이 점을 고려하면 사실은 매우 잘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보탄을 물리친 '아줌마'의 모습을 보여준 프리카 역의 스베틀라나 볼코바는 <라인의 황금>에서 프리카를 맡았던 바로 그 사람이다. 전날 공연에서도 심상치 않더니 이날에는 완전히 주연급으로 내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고음과 저음, 포르테와 피아노의 교차가 민첩하고 시원시원했으며, 오케스트라와 상호작용하여 긴장감을 높여나가는 솜씨가 굉장했다. 프로필을 다시 보니 아직 극장 내에서 주역 가수로 완전히 인정받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은데, 앞으로 큰 성장을 기대해도 좋겠다.

지클린데 역의 믈라다 후도레이도 만만치 않았다. 볼코바에 비하면 부드러웠지만 은근히 힘있는 목소리였고, 앞으로 강성 소프라노로 거듭난다면 브륀힐데도 못할 것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소리보다 더 마음에 들었던 것은 외모였는데, 특히 몸매가 매우 뛰어났다. 2막에서 흐트러진 자세로 쓰러져 있을 때에는 옷이 위로 말려 올라가 뛰어난 다리맵시를 자랑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크문트가 괘씸하게도 슬쩍 다가가서 옷자락을 내리더라. 어우, 야아~!) 프로필을 보니 역시 살로메 역을 맡은 적이 있단다. 일곱 베일의 춤을 추면 얼마나 멋질까! (험험... 정신 차리자.) 그밖에 구트루네 역과 젠타 역을 맡은 적이 있단다.

지크문트 역의 올레그 발라쇼프는 주연치고는 약간은 실망스러웠다. 듣자 하니 러시아처럼 햇볕이 부족한 곳에서는 테너가 나오기 힘들고 대신 뛰어난 베이스가 많이 나온다고 한다. 프로필에 따르면 바그너 경력이 없는 모양인데 단번에 이렇게 큰 역할을 맡은 것만 봐도 그렇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사실 대단한 열연을 한 것으로 좋게 봐주는 것이 좋겠다. 실연으로 큰 실수 없이 역할을 해낸 것만으로도 칭찬받아 마땅하다 하겠다. 다만 "벨제! 벨제! Wälse! Wälse!" 부분에서 호흡량이 음반으로 들을 수 있는 것보다 1/3에서 1/5 정도밖에 되지 않았던 것이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아 벨제!,' '아 노퉁!' 등과 같이 불필요한 선행음(Anticipation)을 곧잘 사용한 것인데, 선행음의 남용은 음악을 유치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므로 좋지 않은 습관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버거운 역할을 맡느라 몹시 힘든 마당에 '아' 같은 유성음(voiced sound)으로 발성을 시작하는 것은 좋은 전략이기도 하므로, 이렇게라도 해서 역할을 완수할 수 있다면 오히려 잘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노래하다 지쳐서 쓰러지거나 목이 망가지기라도 했다면 얼마나 큰 망신이겠는가?

브륀힐데 역의 올가 사보바는 <신들의 황혼>의 발트라우테이기도 하다. 프리카나 지클린데 못지않게 잘했지만, 메조소프라노라서 저음이 강한 대신 고음이 약한 것은 약간은 아쉬운 점이기도 했다. '호요토호!'가 그랬고, 특히 옥타브 도약으로 '하이 C'를 내야 하는 부분에서는 포르타멘토를 사용해 억지로 짜내는 것이 흠이었다. 바그너 경력은 없단다.

훈딩 역의 게네디 베주벤코프는 <라인의 황금>과 <지크프리트>의 파프너 역이기도 했다. 역시 강력한 초저역이 대단했으며, 이 점에서는 '반지' 시리즈의 출연진 가운데 최고라고 할 만했다. 발음에 러시아어의 냄새가 유난히 짙은 것은 야만적인 훈딩을 표현하는 데에는 장점으로 작용하기도 했으나, 원론적으로는 단점이라 하겠다. 그런데 이 사람이 하겐 역의 알렉세이 탄노비츠키로 잘못 알려지는 바람에 <신들의 황혼>에서 '진짜 탄노비츠키'를 만나기 전까지 '저 사람이 하겐 역을 잘할까?' 하는 우려가 있었으며, '진짜 탄노비츠키'를 본 사람들은 오히려 대타로 오인하기도 했다.

게르힐데 역의 리아 셰브초바와 헬름비게 역의 타티아나 크라브초바는 힘을 아낄 이유가 없는 만큼 '호요토호!'에서 깔끔하고 힘 있는 고음 처리를 했다. 특히 타티아나 크라브초바는 옥타브 도약 '하이 C'에서도 올가 사보바 같은 포르타멘토 없이 시원하게 내질렀다. 다른 발퀴레도 '올인'(또는 'Now or never!')의 태도로 열심히 불렀다.

<라인의 황금> 때 누워 있던 석상들은 일어서 있고 등에 날개가 달리는 등 위압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다. 나는 이것을 보고 역시 <신세기 에반게리온>에서 에바 1호가 변한 괴물을 연상했는데, 그 원형은 인도 신화에 나오는 파괴와 창조의 신 '시바'라고 한다.

<신세기 에반게리온> © 가이낙스


2005년 10월 4일 씀.


정보공유라이선스

김원철. 2005.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2009년 8월 15일 토요일

2005.09.24. 《라인의 황금》 - 게르기예프 / 마린스키 극장 오페라단

라인의 황금 Das Rheingold - 마린스키극장 오케스트라/오페라단
2005년 9월 24일(토) 저녁 7시 30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지 휘 : 발레리 게르기예프 Valery Gergiev
연 출 : 발레리 게르기예프 Valery Gergiev
감 독 : 율리아 페브즈너 Yulia Pevzner
무대 디자인: 조시 티시핀 George Tsypin

보탄 : 예프게니 니키틴 Evgeny Nikitin
프리카 : 스베틀라나 볼코바 Svetlana Volkova
알베리히 : 예뎀 우메로프 Edem Umerov
로게 : 콘스탄틴 플루즈니코프 Konstantin Pluzhnikov
파졸트 : 바딤 크라베츠 Vadim Kravets
파프너 : 게네디 베주벤코프 Gennady Bezzubenkov
미메 : 니콜라이 가시예프 Nikolai Gassiev
도너 : 에드워드 장 Eduard Tsanga
프로 : 예프게니 아키모프 Evgeny Akimov
보클린데 : 잔나 돔브로브스카야 Zhanna Dombrovskaia
벨군데 : 리아 셰브초바 Lia Shevtsova
플로스힐데 : 나덴자다 세르뒤크 Nadezhda Serdiuk
프라이아 : 타티아나 보로디나 Tatiana Borodina
에르다 : 즐라타 불리체바 Zlata Bulycheva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후 러시아에서 바그너 음악을 처음으로 연주한 사람이다. 그런데 러시아가 나치로부터 입은 피해는 유태인 못지않은 것이라 이 때문에 러시아가 떠들썩했다고 한다. 이것은 우리가 쉽게 상상할 수 있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러시아는 자본주의 국가와는 달리 클래식 공연 문화가 대중 예술로서 확고한 입지를 유지하고 있으며, 심지어 연주회장에 대한 정부의 예산 축소에 따라 입장료를 인상한다는 발표가 나자 (그래 봐야 우리 기준으로는 터무니없이 싼 가격이란다.)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라며 대중 집회가 열린 적도 있다고 한다. 사정이 이러니 게르기예프는 자칫 '인민의 적'으로 몰릴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하고 바그너에 손댄 것이 된다. 이스라엘에서 바그너를 연주한 것이 '깜짝 이벤트'에 불과했던 바렌보임과는 달리 게르기예프는 러시아 악단을 이끌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바그너 공연을 하고 있으니 참으로 대단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2005년 9월, 그는 <니벨룽의 반지> 한국 초연이자 '반지' 4부작 각각의 한국 초연을 지휘한 사람이 되었다. 우려와는 달리 사람들의 반응은 좋았다. 공연 전부터 여러 곳에서 관련 강좌가 열렸고 많은 참여가 있었다. 클래식 관련 인터넷 게시판에서는 바그너와 관련한 문답과 토론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반지'를 쉽게 해설해 놓은 ☞ 박원철씨의 웹사이트는 공연 전후로 트래픽(traffic)이 폭주했다. 무엇보다, 표가 팔렸다. 그리고 마침내 공연 날짜는 다가왔다.

연주에 대한 감상을 쓰기에 앞서 공연장의 음향 환경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은 객석은 크고 오케스트라 피트는 작아서 음량 손실이 매우 크다. 일류 오케스트라도 이것을 극복할 수는 없다. 게르기예프와 마린스키극장 오케스트라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은 이미 예상한 바와도 같다. 지난 6월 11일부터 13일까지 있었던 간사이 니키카이 오페라단-서울시향의 <탄호이저>를 보고 내가 쓴 ☞ 감상문 가운데 일부를 인용한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의 오케스트라 피트는 기대했던 것보다 너무 작았다.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보다는 가로로 조금 더 넓은 것 같았지만 큰 차이는 없어 보였다. 이 때문에 오는 9월에 게르기예프가 마린스키극장 오페라단을 이끌고 와도 압도적인 스케일의 음향을 기대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노들섬에 짓는다는 새 오페라하우스가 유일한 희망이란 말인가. 제발 전시용에 그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오케스트라의 규모가 작을 때 음량 면에서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것은 무엇보다 현일 것이다. 바그너는 <탄호이저>를 오케스트레이션할 때 대규모 현악 파트를 염두에 두었으며, 극장의 현악 주자의 수를 정규인원보다 더 많이 둘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이번 공연에서 서울시향의 현은 부족한 인원을 감안하면 나쁘지 않은 음량을 내주었다. 12일 공연에서는 현이 금관과 합창 등에 묻혀 버리는 때가 종종 있었지만 13일에는 훨씬 나았다. 이것이 단순히 연주자들이 13일에 더욱 분발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극장 1층과 3층의 음향의 요술인지 나로서는 알 수 없다. 다만, 12일 2층에서 들었던 어떤 사람도 "좀 오버하자면 다이나믹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밋밋함의 연속이었"다고 평한 것을 보면 12일보다 13일의 연주가 더 좋았다는 내 느낌이 틀리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역시 소편성으로는 표현할 수 있는 다이내믹의 폭에 한계가 있었다. 이를테면, 서곡 마디 32에서부터 비올라-제2 바이올린-첼로-제1 바이올린-콘트라바스로 연이어 점층하는 셋잇단 리듬의 크레셴도는 그 폭이 충분히 크지 못했으며, 마디 37에서 마침내 트롬본이 이른바 ☞ '순례자의 합창' 모티프를 찬가처럼 크게 부풀려 연주할 때 현과 호른 등은 바이올린의 음량에 제약을 받아 제 힘을 내지 못했다. 2막 4장의 이른바 '입당행진곡' 부분에서는 무대 위에 배치된 12대의 트럼펫이 들려주는 압도적인 소리가 큰 매력이지만, 이번 공연에서는 역시 '절제'를 위해 트럼펫 주자들이 무대 뒤편으로 숨어 버리고는 멀리서 들려오는 듯한 연출을 했다.


2막 4장, 입당행진곡 중 트럼펫 팡파르. 그림을 누르면 미디 음악이 연주됩니다.

© 1997-2002 by Fabrizio Calzaretti.



이번 공연 팜플렛에 나타난 오케스트라 파트별 단원 수와 <라인의 황금> 악보에 명시된 연주자 수를 비교해 보면 문제가 좀 더 명확해진다. 관악기와 타악기는 특수 악기까지 생각하면 필요한 만큼 있는 것 같지만, 현악기 주자들의 수를 보면 제1 바이올린 1명과 제2 바이올린 6명, 비올라 3명, 첼로 3명, 콘트라바스 1명, 모두 14명의 연주자가 부족하다. 공간이 충분하다면 객원 주자를 쓸 수도 있겠지만, 그 좁은 공간에 악보에 지시된 대로 108명(호른 더블링과 프롬프터 등을 고려하면 110명 이상)이 들어갈 수 있을까? 1층에서는 오케스트라 피트를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3층에서 연주자 수를 세어 본 사람의 말에 따르면 80명이 채 안 되는 인원이 피트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고 한다. 오케스트라 피트의 크기 말고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의 객석 수가 바이로이트 축제극장 등의 유수 공연장에 비해 1.5~2배 정도 많다는 점도 문제이겠다. 한편, 객석의 규모와도 상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공연장의 주파수별 소리 전달 특성이 다른 것 같다. 즉 저음이 많이 깎여서 양감이 부족하게 느껴진다. 이런 사정을 모두 감안하면 이번 공연에서 현 소리는 꽤 큰 편이었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 더. 만약 숄티의 녹음을 기준으로 이번 공연에서의 음량에 대해 불만을 토로한다면 당신은 뭘 모르는 사람이다. 그런 과장된 소리는 실제 공연장에서는 들을 수 없다. 기준은 바이로이트 실황으로 해야 설득력이 있다.

어쨌거나 현의 절대적인 음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최대한 다이내믹을 살리기 위해서는 밸런스를 무시하고 금관과 타악기를 내세워 뿜빰거리던가, 또는 다이내믹을 희생시켜 정교하지만 밋밋한 연주를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게르기예프는 절충안을 택했다. 화성적으로 풍부한 울림이 필요한 곳에서는 다이내믹보다는 밸런스를 택했고, 강력한 다이내믹이 필요한 곳에서는 과감히 밸런스를 포기했다. 음악적 맥락에 따라 최적의 선택을 할 수만 있다면 이것이 최선의 책략일 것인데, 공연장의 음향 환경에 적응할 기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을 게르기예프와 단원들에게는 철저하게 임기응변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임기응변이 너무나 놀라운 것이었다. 게르기예프는 진정한 거장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라인의 황금>은 현의 비중이 매우 큰 작품이라 어쩔 수 없는 결점이 꽤 많았다. 전주곡에서는 점층 효과에 의한 유장한 맛이 부족하고 대신 어수선한 느낌을 주었다. 이후로도 1장 내내 이어지는 현에 의한 물살의 표현이나 기타 현의 역할이 두드러지는 곳에서 여지없이 음량의 한계를 드러냈다. 거인들이 등장할 때에는, 다이내믹을 살리는 것이 최대의 목표가 되어야 했기에 어쩔 수 없었겠지만, 베이스 트럼펫과 3대의 트롬본, 콘트라바스 트롬본의 4도 도약(편의상 '안티폰 antiphon'이라고 부르자.)이 주선율로부터 크게 돌출되어 선율 윤곽을 해쳤다. 현 소리는 작은 데다 '안티폰'에 대항할 금관은 콘트라바스 튜바 하나뿐이라 차라리 팀파니가 주선율마저 압도해 버리는 형국이었다.



'거인' 모티프. © 1997-2002 by Fabrizio Calzaretti.

그림 파일을 누르면 음악이 연주됩니다. 음악 출처: 박원철 홈페이지 © Decca


사소한 실수라고 보기에는 음악의 맥락상 비중이 만만치 않았던 곳도 있었다. 2장 첫 마디에서 테너 튜바의 음정 불안이 그랬고, 파졸트가 "당신의 창이 보호를 한다는 약속의 엄숙함이 모두 장난이란 말이오? Die dein Speer birgt, sind sie dir Spiel, des berat'nen Bundes Runen?  (한글 번역은 엄선애 교수의 것을 참고했음)" 할 때 "Speer(창)"와 동시에 나오는 ☞ '창'의 모티프에서 제1, 제3 호른과 제2, 제4 호른이 교차하는 "Spiel"과 "des" 사이(마디 넷째 박)의 음정 불안이 그랬다.


"Die dein Speer birgt, sind sie dir Spiel, des berat'nen Bundes Runen?"

© 1899 by B. Schott's Söhne, Mayence. 출처: http://www.dlib.indiana.edu


가수들의 수준은 기대 이상이었다. 솔직히 '러시아 사람이 독일 음악을 제대로 이해할까?' 하는 생각을 어느 정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가수들에 만족할 수 있었다. 물론 음반이 귀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불만스러운 부분도 많았겠지만, 실제 공연장에서 음반 수준의 연주를 바라는 것은 잘못이다. 전설의 명가수들은 이제는 존재하지 않고, 스튜디오 녹음 같은 최상의 컨디션은 실제 공연장에서는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보탄 역의 예프게니 니키틴은 단단한 목소리를 가진 젊은 신의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한스 호터의 보탄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영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꽤 잘했다고 할 수 있다. 굳이 다른 가수와 비교하자면 토마스 스튜어트나 ☞사무엘 윤과 비슷하다고 하겠는데, 토마스 스튜어트는 그렇다 치고 사무엘 윤이 예프게니 니키틴보다 한 수 위라고 말한다면 한국인을 너무 편애하는 것일까? 니키틴의 노래를 들으면서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의 네덜란드인의 아리아 가운데 "죽은 자들이 모두 일어날 때, 나는 소멸하리라. Wann alle Toten auferstehn, dann werde ich in Nichts vergehn." 하는 대목이 생각났는데, 프로필을 보니 실제로 네덜란드인 역을 맡은 적이 있단다.

알베리히 역의 예뎀 우메로프는 사악한 맛이 부족해서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는데, 개인적으로는 좋게 들었고 사악한 연기도 꽤 열심히 했다고 생각한다. 이번 공연에서 군터 역으로도 나왔다. <로엔그린>의 텔라문트 백작과 전령(팜플렛에는 '헤럴드의 왕'이라고 되어 있다. '왕의 전령(Der Heerrufer des Königs; The King's Herald)'의 오역으로 판단된다.)을 맡은 적이 있단다.

로게 역의 콘스탄틴 플루즈니코프는 실수가 좀 있었지만, 굉장한 열연을 했던 것이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프로필을 보니 로엔그린 역을 맡은 적이 있단다. 어릿광대 같은 연기를 하던 사람이 로엔그린의 나레이션(In fernem Land)을 부르는 것은 상상이 잘 안 된다. 성배의 가호를 받는 성기사가 아니라 촐싹대는 바람둥이가 아닐지?

파졸트 역의 바딤 크라베츠는 사랑을 갈구하는 거인을 매우 잘 표현했다. 그 빛나는 가창은 이날 최고의 가수라 부를 만했고, 마르티 탈벨라를 연상시킨다는 말도 나왔다. 파졸트 말고는 바그너 경력이 없다는데, 하겐 쪽으로 개발해 봐도 괜찮지 싶다. 파프너 역의 게네디 베주벤코프는 저음을 강조하여 파졸트와 음색의 구분을 이룬 것이 마음에 들었다.

도너 역의 에드워드 장(고려의 후예라고 하며 러시아식 발음은 '짱가'에 가깝다고 한다.)은 유명한 '헤다! 헤다! 헤도!' 대목을 잘해야 박수를 많이 받을 텐데, 아쉽게도 천둥과 번개의 신답지 않게 패기가 부족했다. 연출상의 결정적인 실수도 있었는데, 망치를 가지고 나오지 않은 것이다. 창이 보탄을 상징한다면 망치는 도너를 상징한다. 북유럽 신화에서 도너(토르)의 망치 '묠니르(Mjöllnir; '묘르닐'이라고도 하는데, 일본식 발음이 잘못 전해진 것으로 판단된다. 비슷한 예로 '궁니르'를 '궁그닐'이라고도 한다. 일본식 발음으로 고치면 각각 '묘루니루,' '궁구니루'가 된다.)'는 전장에서 수많은 거인족을 물리친 궁극의 병기로, <니벨룽의 반지>에서는 '반지'나 보탄(오딘)의 창 '궁니르(Gunnir)'만한 비중은 없지만 알고 보면 대단한 아이템이라 할 수 있다. 숄티 판에서는 일부러 망치(천둥) 소리를 따로 집어넣기도 했는데, 이날 공연에서는 악보에 표시된 팀파니 소리만으로 해결했고, 그마저 망치의 위력을 보여줄 만큼 음량이 크지는 않았다.

프리카 역의 스베틀라나 볼코바는 극중 비중이 그렇게 높지는 않았는데도 매우 인상깊었다. <발퀴레> 때에는 더욱 강력한 모습을 기대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르지팔>의 꽃처녀 역을 맡은 적이 있단다. 미메 역의 니콜라이 가시예프도 조연이라는 사실이 안타까울 만큼 훌륭했다. 로게를 맡은 적도 있단다. 프로 역의 예프게니 아키모프는 조연으로는 괜찮았지만 주연급은 아니었다. 이 사람이 <발퀴레>의 지크문트라는 잘못된 정보를 접하고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에서 키잡이 역을 맡은 적이 있단다. 프라이아 역의 타티아나 보로디나는 <로엔그린>에서 엘자를 맡은 적이 있단다. 에르다 역의 즐라타 불리체바는 부드럽고 깔끔한 음색이 영락없는 에르다였다. <지크프리트>의 에르다이기도 하다.

라인 처녀들의 합창에서는 화음의 밸런스가 영 안 맞았다. 제일 윗 성부를 맡은 보클린데는 목소리가 너무 컸고, 가운데 성부를 맡은 벨군데는 목소리가 너무 작았다. 보클린데 역의 잔나 돔브로브스카야는 <파르지팔>에서 꽃처녀를 맡은 적이 있단다. 벨군데 역의 리아 셰브초바는 이번 <발퀴레>에서 게르힐데를 맡았고, <파르지팔>의 꽃처녀와 <발퀴레>의 브륀힐데를 한 적도 있단다. (어째 좀 이상하다. 브륀힐데라니. 저 작은 목소리로? 팜플렛의 오류가 아닐까.) 플로스힐데 역의 나덴자다 세르뒤크는 <발퀴레>의 발트라우테이기도 하고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 브랑게네를 맡은 적도 있단다.

니벨룽족은 남자 어른이 여성 또는 어린이와 섞여 있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데, 이날 공연에서는 모두 어린이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이것은 시각적으로는 좋지만 알베리히의 위협에 따른 비명 소리가 이상해지는 단점이 있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김리의 목소리를 떠올려 보면 무슨 말인지 이해될 것이다.

연출 문제는 나에게는 워낙 관심 밖이라 별로 할 말은 없다. 대신 소박한 인상만 기록으로 남겨 두기로 한다. 무대 장식 등 겉으로 보이는 부분을 제외하면 대본에 나타난 지시에 충실한 고전적인 연출이었는데, 연출을 단지 음악을 보조하는 역할 정도로만 여기는 나로서는 이것이 썩 마음에 들었다. 흔히 그렇듯이 연출이 음악의 우위에 자리 잡아 음악 해석을 방해하는 것보다 이게 훨씬 낫지 않은가? 무대 세트는 여러 신화를 짜깁기했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그런 점에서 <신세기 에반게리온>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저 말 많았던 석상이 더더욱 그렇다. 라인 처녀들은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옷차림이 얌전해서 조금은 실망했다. 대신 푸른 빛을 내는 머리카락을 뒤집어 쓴 무용수들의 옷차림이 야했다. 푸른 빛 머리는 마치 해초(海草) 같았는데, 참 마음에 드는 장식이었다. 용을 표현한 아이디어는 대체로 호평을 받은 것 같은데, 나는 어째 부채춤이 생각나서 우습기만 했다. 거대한 '라인의 황금' 속에 프라이아가 들어간 것을 보고는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이 생각났다. 알베리히의 의상은 <날아라 슈퍼보드>에 나오는 사오정을 연상시켜서 좀 우습다고 생각했다.

© KBS 출처: http://www.kbs.co.kr/2tv/superboard/character.shtml


뒷얘기. 공연 시작 직전에 목발을 짚은 금발의 백인 여성과 세종문화회관 직원의 말다툼이 잠시 주의를 끌었는데, 다리 불편을 호소하면서 1층 C열 오른쪽 통로 쪽 빈자리에 앉으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그 여자가 R 등급 티켓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 결국 억지를 부려서 내 자리와 통로를 사이에 둔 자리에 앉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바그너 공연을 찾아 전 세계를 돌아다니기로 유명한 사람이란다. 이름이나 기타 신상 정보가 전혀 알려지지 않은 신비 기인이라고 하니 그런 줄 알았으면 말이라도 걸어볼 걸 그랬다.

2005년 10월 3일 씀.
2006년 1월 10일 고침.
 

정보공유라이선스

김원철. 2005.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2005.06.13. 《탄호이저》 - 간사이 니키카이 오페라단 / 서울시향

이 글은 2005년 6월 14일에 쓴 글이며, 누리꾼에게 ☞ '구제불능' 판정을 받았던 서울시향이 재단법인으로 거듭나면서 사실상 재창단되고 나서 처음으로 열렸던 공연을 보고 쓴 리뷰입니다. 당시 개혁안을 밀어붙인 사람은 다름 아닌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이었으며, 그 때문에 이 글에는 무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을 칭찬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익명의 관계자(?)에 따르면 이 글이 보고서에 인용되어 이름을 세 번 쓰려니 손발이 오그라드는 그분께 올라갔다고 합니다. 글을 읽기에 앞서 임산부와 노약자, 심장이나 복장이 약한 사람은 마음을 단단히 먹으시기를 권하지 않는다 하지 않을 수 없다기보다는 있지 않을까 싶다가도 아닌 듯하기도 하다 하기에는 뭣하지는 아니하여 지금 시방 장난치느냐면 바로 그렇습니다.



탄호이저 - 간사이 니키카이 오페라단 / 서울시향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지 휘 : 오카쓰, 슈야 OKATSU, Shuya
연 출 : 스즈끼, 게이스깨 SUZUKI, Keisuk
무대디자이너 : GRASSI, Italo
의상디자이너 : ALMERIGHI, Steve
조명디자이너 : MUROFUSHI, Ikuo
안 무 : 이시이 준 ISHI, Jun
무 대 감 독 : 오오구리, 대쓰야 OGURI, Tetsuya / 고이스미, 고지 KOIZUMI,Koji
총 감 독 : 다까다, 다다시 TAKADA,Tadashi
이 사 장 : 기까와다, 마고도 KIKAWADA,Makoto

6월 11일(토), 13일(월)
Tannhauser (Ten) 나리따, 가쓰미 Narita, Katsumi
Hermann (Bar)   기가와다, 기요시 KIKAWADA, Kiyoshi
Elisabeth (Sop)  기까하나, 유오꼬 KAKIHANA, Youko
Wolfram (Bar)    하지와라, 히로아끼 HAGIWARA, Hiroaki
Venus (Sop)      고니시,준꼬 KONSHI, Junko

6월 12일(일)
Tannhauser (Ten) 네기, 시게루 NEGI, Shigeru
Hermann (Bar)    기가와다, 마고도 KIKAWADA, Makoto
Elisabeth (Sop) 하다다, 히로미 HATADA, Hiromi
Wolfram (Bar)    후지무라, 마사도 FUJIMURA, Masato
Venus (Sop)      고니시,준꼬 KONSHI, Junko



처음이었다. 바그너의 오페라 전곡을 실연으로 감상한 것도 처음이었고, 예술의 전당 오페라하우스가 아닌 세종문화회관에서 오페라를 본 것도 처음이었고, 세종문화회관에서 3층이 아닌 1층에 앉아본 것도 처음이었다. 11일 공연을 보고 싶었지만 학회 날짜와 겹치는 바람에 12일 공연으로 일찌감치 R석을 예매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12일 출연진이 다른 날과 달랐다. 12일에 출연한 가수들은 베누스 역의 고니시 준꼬를 빼고 다들 바그너 경력이 일천한 2진 가수들이었고, 11일과 13일의 가수들이 진짜였던 것이다. 맙소사! 약이 올라 혼자 앓다가 결국 13일 공연을 3층에서 다시 보고 왔다. 원래는 13일에도 시간이 안 되는 것이었는데 운이 좋아서 여유가 생겼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의 오케스트라 피트는 기대했던 것보다 너무 작았다.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보다는 가로로 조금 더 넓은 것 같았지만 큰 차이는 없어 보였다. 이 때문에 오는 9월에 게르기예프가 키로프 오페라를 이끌고 와도 압도적인 스케일의 음향을 기대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노들섬에 짓는다는 새 오페라하우스가 유일한 희망이란 말인가. 제발 전시용에 그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오케스트라의 규모가 작을 때 음량 면에서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것은 무엇보다 현일 것이다. 바그너는 <탄호이저>를 오케스트레이션할 때 대규모 현악 파트를 염두에 두었으며, 극장의 현악 주자의 수를 정규인원보다 더 많이 둘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이번 공연에서 서울시향의 현은 부족한 인원을 감안하면 나쁘지 않은 음량을 내주었다. 12일 공연에서는 현이 금관과 합창 등에 묻혀 버리는 때가 종종 있었지만 13일에는 훨씬 나았다. 이것이 단순히 연주자들이 13일에 더욱 분발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극장 1층과 3층의 음향의 요술인지 나로서는 알 수 없다. 다만, 12일 2층에서 들었던 어떤 사람도 "좀 오버하자면 다이나믹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밋밋함의 연속이었"다고 평한 것을 보면 12일보다 13일의 연주가 더 좋았다는 내 느낌이 틀리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역시 소편성으로는 표현할 수 있는 다이내믹의 폭에 한계가 있었다. 이를테면, 서곡 마디 32에서부터 비올라-제2 바이올린-첼로-제1 바이올린-콘트라바스로 연이어 점층하는 셋잇단 리듬의 크레셴도는 그 폭이 충분히 크지 못했으며, 마디 37에서 마침내 트롬본이 이른바 ☞ '순례자의 합창' 모티프를 찬가처럼 크게 부풀려 연주할 때 현과 같은 리듬으로 힘을 보태는 호른 등은 바이올린의 음량에 제약을 받아 제 힘을 내지 못했다. 2막 4장의 이른바 '입당행진곡' 부분에서는 무대 위에 배치된 12대의 트럼펫이 들려주는 압도적인 소리가 큰 매력이지만, 이번 공연에서는 역시 '절제'를 위해 트럼펫 주자들이 무대 뒤편으로 숨어 버리고는 멀리서 들려오는 듯한 연출을 했다.


2막 4장, 입당행진곡 중 트럼펫 팡파르. 그림을 누르면 미디 음악이 연주됩니다. © 1997-2002 by Fabrizio Calzaretti.

<탄호이저>는 네 개의 판본이 있는데, 이 가운데 '드레스덴 판'이라 불리는 두 번째 개정판과 '파리 판'이라 불리는 네 번째 개정판이 흔히 사용된다. 팜플렛에 따르면 "간사이 니키카이는 1989년에는 드레스덴 판을 사용하였으나[역대 공연 연보에 따르면 이 오페라단은 이때 처음으로 <탄호이저>를 무대에 올렸으며 지난 5월 21일과 22일 공연이 두 번째였다. (팜플렛 43쪽.)] 이번에는 양치기 소년이 나오는 일부분만을 파리 판으로 할 뿐 나머지 부분은 전 공연과 같다." (33쪽.) 이 부분에서 드레스덴 판과의 차이는 파리 판에서 양치기가 노래를 하다 중간에("mein Auge begehrte zu schauen." 직후) 세 마디 동안 뿔피리(대본상으로 샬마이, 악보상으로는 잉글리쉬 호른)를 연주한다는 것이다.

지휘자 오카쓰 슈야는 프레이즈 사이사이를 살짝 늘여주는 등을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악보의 지시에 충실한 해석을 들려주었다. 특히 서곡 마디 145에서 바이올린과 플루트의 A# 음을 8분음이 아닌 16분음으로 대충 넘어가듯이 처리하는 녹음이 많아서 평소에 불만스럽게 생각하던 터였는데, 이번 공연에서는 악보대로 연주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내가 이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까닭은 이 부분의 리듬과 강약을 정확하게 지켜주어야 특유의 선동적인 느낌이 잘 살아나기 때문이다. 마디 145 첫 박 C# 음의 강세 표시는 세게 연주하라는 뜻이지 결코 길게 늘이라는 뜻이 아니다. 음가는 이미 바그너가 충분히 늘여놓았다.


서곡 마디 142-145. 그림을 누르면 미디 음악이 연주됩니다. © 1997-2002 by Fabrizio Calzaretti.

그러나 피날레의 템포는 지나치게 빨랐다. 서곡과 3막 순례자의 귀향 장면("Beglückt darf nun dich"), 그리고 피날레 합창("Der Gnade Heil")은 모두 ☞ '순례자의 합창' 모티프로 링크되어 있고, 그 템포는 메트로놈 템포 50으로 모두 동일하다. 그러나 내가 제대로 들었다면 지휘자는 세 부분 모두에서 바그너가 지시한 것보다 빠른 템포를 선택했다. 앞선 두 곳에서는 그렇다 쳐도 피날레에서만큼은 템포를 정확히 지켜야 제맛이 살아난다. 피날레의 템포 변화를 좀 더 살펴보자. 볼프람이 엘리자베트의 이름을 외치는 부분(리허설 번호 H)의 템포는 50, 탄호이저가 죽은 직후 젊은 순례자들의 합창이 시작되는 부분("Heil! Heil!")의 템포는 88, 마지막으로 다 함께 노래하는 부분("Der Gnade Heil")에서 템포는 다시 50으로 끝난다. 그러나 지휘자가 설정한 템포는 88이 되어야 할 곳에서 120 이상으로 들렸고, 마지막 부분에서도 60 이상으로 들렸다. 갑자기 크게 변한 템포는 단절감을 불러일으켜 피날레의 느낌을 강화시키기는 했지만, 지나치게 빠른 템포는 영적 고양감을 감소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깔끔한 것을 좋아하는 일본인 지휘자라서 바그너 식 왕자병 사운드에 닭살이 돋았던 것일까? 이상하다, 자민당과 나치는 통하지 않던가?

이번 공연에서 보여준 서울시향의 연주력은 깜짝 놀랄 만한 것이었다. 사실 이번 공연을 맡은 오케스트라가 간사이 니키카이 오페라단 전속이 아닌 서울시향이라는 사실 때문에 목돈을 투자하기에 망설여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서울시향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을 버릴 때가 된 것이다. 물론, 대편성일 때에도 마찬가지로 뛰어난 연주를 들려줄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서울시향은 이를 증명하라.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브루크너의 교향곡을 연주하여 입지를 확고히 하라. 마침 브루크너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 또는 옛 오명의 핵이 되어 버린 작품인 말러 교향곡 5번은 어떤가?

서곡 리허설 번호 G(마디 309)에서부터 시작하는, 바이올린이 크게 상행 도약 후 반음계적으로 하행하는 16분음 동형진행(이것이 이후 서곡이 끝나기 직전까지 100마디 이상 고집스럽게 지속된다!)은 바이올린 연주자라면 누구나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바그너에 대한 강한 적개심을 보이는 부분이며, 실제 연주를 들어보면 여기서 음형과 리듬과 강약이 흐트러지면서 전체 연주가 산만해지고 마는 것이 보통이다. (공교롭게도 이것이 리허설 번호 H(마디 379)에 이를 때까지는 텍스쳐의 전면에 노출되는 까닭에 적당히 뒤에 숨지도 못한다.) 그런데 서울시향은 놀랍게도 이것을 상당히 깔끔하게 연주해냈다. 국내 오케스트라가 이 부분을 이토록 훌륭하게 연주하는 것을 듣기는 처음이다. 2막 전주곡 마디 38에서부터 시작하는 바이올린과 비올라의 셋잇단음 스타카토 동형진행에서도 자칫 앙상블이 무너지기 쉬운데, 서울시향은 12일 공연에서는 다소 불안함을 보였지만 13일에는 훨씬 안정된 연주를 들려주었다.


서곡 마디 309-312. 그림을 누르면 미디 음악이 연주됩니다. © 김원철.


작은 실수도 전면에 노출되기 쉬운 트럼펫과 트롬본, 호른 등도 거짓말같이 안정된 소리를 내주었다. 특히 1막 4장 팡파르와 2막 '입당행진곡', 3막 전주곡 등에서 이들의 활약은 대단했다. 12일에는 입당행진곡에서 호른이 불안한 모습을 보였지만(악보대로 내추럴 호른을 썼기 때문인지 궁금하다. 모르기는 해도 그냥 밸브 호른을 써도 될 것 같은데, 이조 문제가 생각보다 까다로운 것일까?) 13일에는 나쁘지 않았다. 다만, 3막 전주곡의 찬가풍 섹션에서는 트럼펫과 트롬본이 좀 더 크게 부풀렸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목관의 치밀한 앙상블이 돋보인 3막 엘리자베트의 기도 장면은 특히 13일 공연 최고의 명장면이라 할 만했다. 탄호이저는 뿜빰거리기만 하는 작품이 아니며 이렇게 섬세한 대목도 있는 것이다.

최근 있었던 서울시향 재창단 과정에서 이명박 서울시장이 시향의 개혁에 큰 역할을 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와 시향 단원들 사이에 심각한 갈등이 생기기도 했고, 모 국회의원은 이 문제를 일반 노동문제로 파악하고 반대 성명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결국 약간의 타협을 거쳐 개혁을 단행했다. 나는 서울시향의 오디션 과정에 대해 자세한 내용을 알지 못한다. 그리고 문화라는 것은 누구 말마따나 건물 짓듯이 밀어붙인다고 육성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시향에 대한 서울시의 개혁이 적어도 껍데기뿐인 전시행정만은 아니었음을 서울시향은 연주로 말해주었다. 나는 정치인으로서의 이명박을 싫어한다. 그리고 그가 속한 정당은 더더욱 싫어한다. 그러나 내가 지지하는 정당에 음악애호가로서의 이해관계에 이토록 부합하는 정치인이 있었던가? 아무래도 나는 다음 대선 때 나의 정치적 이상과 음악 애호가로서의 실리를 놓고 고민하게 될 것 같다. 물론 나는 이상주의자에 가깝기는 하다.

간사이 니키카이 합창단은 과연 일본이 바그너 강국임을 보여주는 본보기라 할 만했다. (일본 바그너협회가 올해로 25주년이란다.) '입당행진곡'과 '순례자의 합창'에서는 전율을 느끼게 하였으며, 2막 노래경연대회 시작부터 탄호이저가 로마행을 외치는 부분까지의 집중력도 대단했다. 1막 3장과 4장에서의 중후한 남성합창도 빼놓을 수 없는 명장면을 이루었다. 옥에 티 하나를 말하자면, 테너 파트의 누군가는 때때로 독창자 수준의 비브라토를 억제하지 못하고 그대로 내버렸다. 그 바람에 주위 사람의 발성이 그에 동화되는 현상이 생기기도 했다. 비브라토는 음색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중 하나이며, 따라서 합창에서는 소리가 한 덩어리로 뭉치도록 하기 위해 가능한 비브라토를 억제하는 것이 기본이라 한다.

솔로 가수들에게는 사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마침 12일 공연 때 옆자리에 앉은 여자가 일본인인 것 같아서 엉터리 영어로 말을 걸었었다. '영어나 한국어 할 줄 아느냐? 일본 가수들이 바그너를 잘하느냐? 바이로이트 무대에 서본 사람은 있나?' 그녀의 대답은 이랬다. '가수들 노래 잘한다. 간사이 니키카이 오페라단 유명하다. 그런데 바이로이트가 뭐냐? 오늘 베누스 역으로 출연한 고니시 준코가 내 동생이다. 너는 음악 하는 사람이냐?' 별로 영양가 있는 대답은 아니었지만, 실제로 확인한 가수들의 수준은 생각보다 매우 높았다.

탄호이저 역의 나리따 가쓰미는 팜플렛에 따르면 탄호이저, 로엔그린, 지크문트, 발터 등 바그너 경력이 화려한 가수이다. 그의 강한 목소리는 과연 바그너 가수다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의 발성에 고음 쪽으로 치우치는 음고 비브라토가 짙게 묻어나오는 점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러한 비브라토는 음정을 흐릿하게 만들어버리며, 때때로는 정확하지 않은 음정을 지저분하게 가리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동양계 테너에게 강한 목소리와 폭이 큰 음고 비브라토는 트레이드-오프(trade off) 관계일까? 이와 유사한 발성을 하는 가수로 귀네스 존스가 있다. 3막 '로마 이야기'에서는 의외로 강렬함과 사악함이 부족한 목소리를 내었다. 딕션은 양호한 편이었으며, /n/ 발음과 /m/ 발음 등을 과장하여 부족한 점을 가린 것이 특징적이었다. 12일 공연에서의 네기 시게루는 나리따 가쓰미와 달리 깔끔하고 담백한 발성이 좋았지만, 바그너 가수가 아니라서 그런지 탄호이저치고는 목소리가 너무 물렀다. 그래도 '로마 이야기'에서 억지로 가장한 사악함은 어색하기는 했어도 나리따 가쓰미보다 차라리 듣기 좋았다. 딕션은 별로였고, 1막에서 베누스를 향해 "Göttin"이라고 외칠 때에는 일본어로 말하는 듯한 발음에 웃음이 나왔다.

헤르만 영주 역의 기카와다 기요시는 당장 바이로이트 무대에 서도 될 것 같은 탁월한 바그너 가수였다. 파프너, 구르네만츠 등의 배역을 맡은 바 있다는데 내가 듣기로 구르네만츠에 딱 어울리는 목소리였다. 어, 그런데 이 사람, 일본 바그너협회 회장이란다! 공연이 끝나고 가수들이 하나씩 무대로 나와 인사할 때 그에게 뭐라고 찬사를 보낼까 생각하다가 '브라보'와 함께 'Gurnemanz, Heil!'이라고 외쳤다. 12일 공연의 기카와다 마코토 역시 훌륭했다. 음색 또한 구르네만츠에 어울렸는데, 이름을 봐도 두 명의 헤르만은 형제 사이가 아닐까 싶다.

베누스 역의 고니시 준코는 바그너 가수가 귀했던 12일 공연에서는 탄호이저를 압도하고 주인공급으로 부각되었으나, 13일에는 다른 쟁쟁한 가수들에 밀려 다소 빛이 바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12일과 13일의 가수들의 수준 차이를 단적으로 느끼게 한 부분이라 하겠다.) 나리타 가쓰미와 유사한 음고 비브라토를 구사했지만 그 폭이 아주 크지는 않아서 양호했다. 고니시 준코는 <라인의 황금>에서 벨군데 역으로 데뷔했고, 쿤드리(팜플렛에는 "<퍼시발>에서 마법의 딸로 출연"했다고 되어있는데, 이것이 한 번에 이해되지 않아 갸우뚱했었다. 정황으로 보아 <파르지팔>의 쿤드리가 맞지 싶다.), <발퀴레> 중 브륀힐데, <살로메> 중 살로메 역을 맡은 바 있다고 한다. 내가 듣기로 쿤드리 역에 잘 어울리는 목소리였다. 드레스덴 판이 아닌 파리 판 <탄호이저>였다면 고니시 준코가 더욱 돋보였을 텐데 아쉽다. (파리 판 <탄호이저>는 1막 베누스의 독창 부분에서 화성적으로나 관현악법으로나 훨씬 두터운 <트리스탄과 이졸데> 이후의 양식이 나타나며, 그래서 파리 판의 베누스는 <파르지팔>의 쿤드리를 예견하게 한다. 그에 비하면 드레스덴 판의 베누스는 평범한 화성과 단출한 반주로 평면적인 성격을 보인다.) 한 가지 안타까웠던 것은, 12일 공연에서는 역시 사람들이 1막을 꽤 지루하게 느꼈던 것인지, 아니면 지각한 사람이 많아서였는지(2, 3층 사정이 어땠는지 모르겠다. 1층은 오히려 1막이 끝나고 이른바 '싸장님' '싸모님'들이 꽤 빠져나가고 없었다.), 그도 아니면 야한 의상 때문에 민망해서 그랬는지, 1막이 끝난 뒤에 객석의 반응이 영 시원찮았다는 것이다. 조연이 하나씩 나와서 인사를 하고 난 뒤에 주인공이랍시고 베누스가 나왔는데, 무대의 분위기는 당연히 '브라바'가 나와야 할 것 같았지만 객석이 워낙 '얌전'해서 내가 감히 '브라바'를 외칠 수가 없었다. 대신 13일 공연에서는 1막과 3막이 끝나고 한 번씩 '브라바'를 외쳐주었다.

엘리자베트 역의 가키하나 요코는 맑고 고운 음색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파르지팔>의 꽃처녀(팜플렛에는 '마법의 을녀1'이라고 되어 있다. '갑남을녀' 할 때 을녀?)를 맡은 적이 있단다. 3막 엘리자베트의 기도 장면에서 목관과 너무나 잘 어울렸던 목소리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2막에서 성난 기사들 앞을 막아서는 장면에서는 상당히 힘있는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객석으로부터 가장 열광적인 환호를 받은 가수가 아닐까 싶다. 12일 공연의 하타다 히로미도 배역에 잘 어울리는 목소리였다.

볼프람 역의 하기와라 히로아키는 경력을 보면 바그너 가수가 아닌 모양이지만, 조금 다듬으면 본격적으로 바그너를 해도 될 것 같다. 힘을 좀 더 키우면 보탄까지도 가능하지 않을까. 12일 공연의 후지무라 마사토는 암포르타스 역을 맡은 적이 있단다. 그래도 하기와라에 비하면 한 수 아래라고 느꼈다.

양치기 소년은 노회한 양치기의 목소리라 영 어색했다. 역시 일본에서도 보이 소프라노가 귀한 모양이다. 오카모토 스미는 팜플렛의 사진을 보면 꽤 귀엽게 생겼지만 목소리는 그다지 맑지 않았고 비브라토는 깊고 둔중했다. 그런데 연기는 또 어린아이 연기를 제대로 하니 민망한 부조화가 느껴졌다. 막이 내리고 인사를 하러 나올 때에도 폴짝 폴짝 뛰어나오는 것이 귀엽다기보다는 부담스러웠다. 네 명의 시동은 단역임에도 썩 훌륭했다. "Wolfram von Eschenbach, beginne!" 하는 대목이 너무나 맛깔스러워 아직까지도 귀에 맴돈다.

<탄호이저>를 국내 초연한 것은 1979년 국립오페라단이며 고(故) 홍연택 선생이 지휘를 맡았다 한다. 1974년에는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을, 1976년에는 <로엔그린>을 초연했으며, 세 작품 모두 한글로 번역해 공연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번이 네 번째로 바그너 오페라 전막을 공연한 것이며, 원어로는 초연인 셈이다. 다음 차례는 오는 9월, <니벨룽의 반지>다. 반지의 권능이 한국을 향했나니!

2005년 6월 14일 씀.
2005년 6월 15일 최종 수정.


정보공유라이선스

김원철. 2005.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2009년 8월 13일 목요일

《트리스탄과 이졸데》 음반 리뷰: 구달-웨일즈 내셔널 오페라 1980-1 DECCA

지난 2003년 ☞프리챌 바그네리안(옛 하이텔 바그네리안, 지금은 ☞네이버 바그네리안) 게시판에 올렸던 글입니다. 2004년에 제 홈페이지로 가져오면서 ☞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를 적용했습니다.

옛날 글 다시 보니 참 부끄럽네요. 그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올립니다. ^^


DECCA
[4 CD] 443682-2

바그너: "트리스탄과 이졸데"
WAGNER: Tristan und Isolde

Tristan - John Mitchinson
Isolde - Linda Esther Gray
Brangaene - Anne Wilkens
Marke - Gwynne Howell
Kurwenal - Phillip Joll
Melot - Nicholas Folwell
Hirt - Arthur Davies
Steuerman - Geoffrey Moses
Stimme eines jungen Seemans - John Harris

Reginald Goodall (conductor)
Welsh National Opera


 녹음: 1980-81 Stereo, Digital
장소: Unknown
 

 
고클래식에서 음반 정보를 퍼왔습니다.



트리스탄과 이졸데

레지널드 구달





1막



전주곡에서 저 유명한 '트리스탄' 화음이 처음으로 등장할 때 오보에가 강조된 것은

좋은데, 다른 악기들보다 살짝 늦게 나오기 때문에 역시 뵘의 연주와 같은 충격은

없습니다. 크레셴도의 폭 역시 좁습니다. 느린 템포로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잘 살리고

있지만, 그 대신에 퇴폐적인 맛은 없습니다.



젊은 선원의 노래는 별로입니다. 전주곡에서부터 듣는 사람의 호흡을 압도하지

못하니까 이 중요한 대목에서 이 모양입니다.



이졸데의 "Brangäne, du? Sag', wo sind wir?" 직후부터 나오는 현의 멜로디와

관련한 상징성에 대해서는 뵘 편에서 제멋대로 규정한 바 있습니다.

구달이 만들어내는 물살은 썩 좋습니다. 비록 뵘이나 푸르트벵글러 등의 깊은

맛을 내기에는 이 영국 출신(아마도) 지휘자로서는 역부족으로 보입니다만,

적어도 특유의 리듬감은 1막 내내 잘 살리고 있습니다.



가수들은 별로라고 생각합니다. 이른바 '딕션'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잘 모르는

저로서도 비독일계 가수들이 바그너를 부를 때 생기는 비극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졸데 역의 린다 에스더 그레이로부터는 닐손이나 플락스타트의 템포 데 루바토의

묘미를 느낄 수 없습니다. 특히 트리스탄 역의 존 미친슨은 제가 무지 싫어하는,

비브라토 심하게 하다가 음정이 마구 흔들리는 발성을 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관현악은 꽤 좋은 편입니다. 구달은 음향적인 역량의 부족을 느릿한 템포와

훌륭한 디테일로 충분히 보상하고 있습니다. 쿠르베날이 마침내 트리스탄을 이졸데

앞으로 데려왔을 때 나오는 분노한 이졸데의 모티프(파 솔 시b 라b -

미b 미b 레  레b 레b 파b)는 얼음장과도 같이 싸늘한 눈빛을 연상시키는데,

구달의 연주는 썩 좋은 편입니다. 바이올린을 좀 더 강조했으면 더욱 좋았겠습니다.

그러나 선원들의 "호! 헤! 하! 헤!"는 두 사람의 심리상태를 반영하지 못하고

촐랑대는 것처럼 들립니다. 직후에 순간적으도 몹시 빨라지는 템포도 불만인데,

제 생각에는 여기서 트리스탄의 심리상태를 반영하는 것보다 도취적인 리듬을 살리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약을 나눠 마시고 서로 쳐다보는 대목에서

현악기들이 만들어내는 트레몰로는 푸르트벵글러 판에 비길 만합니다. 선원들이 국왕

만세를 외치는 부분에서도 음향적인 아쉬움이 있지만 예의 리듬은 잘 살리고 있습니다.





2막



전주곡 시작 부분에서의 신기한 '이졸데 리듬'에 대해서는 뵘 편에서 자세하게 기술한

바 있습니다. 이 리듬에 대한 배신(!)을 제외한다면 다른 부분은 썩 좋습니다.

현악기들의 3연음도 뵘을 제외한 다른 녹음들에 비하면 잘 들리는 편입니다.

특히 목관 악기들의 데크레셴도를 동반한, 마치 바다 속 세계를 보여주는 듯한

음향효과가 현악기들의 디테일에 힘입어 잘 살아나고 있습니다. 구달의 음향효과는

물과 관련한 것들은 뵘의 그것에 꽤 근접하고 있는데, 섬나라 사람의 타고난 감각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수들의 노래는, 1막에서는 독특한 리듬을 타는 것이 뛰어난 관현악에 미치지 못했던

것에 비해 2막에서는 정적인 성격이 강화되어서인지 꽤 괜찮게 들립니다.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만난 직후의 고음처리도 매우 좋습니다. 이졸데를 맡은 린다 에스더 그레이의

날카롭게 질러대는 고음은 다른 가수들이 흉내 내기 힘들어 보입니다.

"O sink hernieder" 대목에서 구달은 역시 뵘과 같은 음향보다는 푸르트벵글러 같은

서정성을 택했습니다. 그러나 디테일이 잘 살아서 푸르트벵글러와는 비교할 수 없는

좋은 음향을 내주기도 합니다. 다른 녹음에서는 잘 안 들리는 소리가 들리기도 합니다.



브랑게네의 두 차례의 아리오소 역시 서정성은 좋지만 시선의 이동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데에는 부족함이 있습니다. 이는 현악기들의 도취적인 음향을 살리는 데에 실패한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가수의 내공 부족으로 인한 오버랩 효과의 실패에 더욱 큰

원인이 있습니다. 여기서 하프 소리는 다른 어떤 녹음보다도 또렷하고 영롱하게 들립니다.

이에 비하면 다른 녹음들에서 하프 소리가 있었나 싶습니다.



마르케 왕 등이 등장하는 대목에서 브랑게네의 비명 소리가 매우 사실적입니다.

음악적인 내공이 부족하면 이런 거라도 잘해야 합니다. 마르케 왕의 등장을 알리는

트럼펫 연주 뒤에 나오는 음향효과는 푸르트벵글러의 것을 그대로 흉내 낸 것 같습니다.

저음군과 고음군이 한 박자씩 주고받기만 하기 때문에 단순하게 들립니다.

푸르트벵글러만큼의 풍성한 저음의 울림을 만들어내지는 못하는 대신 디테일이 잘

살아서 그래도 푸르트벵글러보다는 낫습니다.



마지막 관현악 관현악의 총주는 절반의 성공입니다. 트럼펫 등은 잘했는데, 그 전에

다른 악기들이 굼뜨는 템포로 박력 없이 연주했기 때문에 '카메라 워크'의 효과가

반감되었습니다.





3막



전주곡 별로입니다. 뵘과 비교하면 화음의 밸런스를 잘 살리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묵직한 저음이 없는 것이 용서가 안 됩니다. 잉글리쉬 호른의 솔로는

음색은 좋은데 셋잇단음을 스타카토로 연주하라는 악보 상의 지시를 지키지 않았습니다.

가장 중요한 이것을 빼버린 탓에 뵘이나 푸르트벵글러의 연주에서 느끼수 있는 묘한

정서가 반감되고 그저 유려하기만 합니다. 현악기들은 그나마 스타카토를 제대로 살려서

연주하는군요. 템포도 적당합니다.



뿔피리 소리 바뀔 때, 소리가 매우 멀리서 작게 들립니다. 아티큘레이션이 너무 좋아서

잉글리쉬 호른이 아니라 트럼펫이 아닌가 의심스럽기도 한데, 확실한 것은 모르겠지만

잉글리쉬 호른 맞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이 부분에서 소리가 작은 것은 제 취향에

맞지 않습니다. 이어서 이졸데가 등장할 때까지의 연주는, 물론 제 취향 문제이겠지만,

트리스탄의 광분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합니다. 느긋한 템포 등이 딱 푸르트벵글러입니다.

이것은 쿠르베날의 전투장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린다 에스더 그레이의 사랑의 죽음은 별로입니다. 크레셴도의 묘미도 별로이고,

특유의 리듬과 아첼레란도를 표현하는 데에도 실패했습니다. 관현악도 비슷한

스타일인 푸르트벵글러의 것에 도저히 미치지 못합니다.



2003년 7월 24일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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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철. 2004.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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