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27일 목요일

2007.11.28. 브람스 하이든 주제에 의한 변주곡 / 독일 레퀴엠 - 정명훈 / 서울시향

2007년 11월 28일(수) 오후 7시 30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지휘자 : 정명훈
협연자 : 김영미(소프라노), 사무엘 윤(바리톤), 서울시합창단, 서울모테트합창단

Brahms, Variations on a Theme of Joseph Haydn, op. 56a (17')
Brahms, Ein deutsches Requiem (68')



브람스가 <하이든 주제에 의한 변주곡>을 작곡한 것은 교향곡 1번을 완성하기 3년 전인 1873년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작곡가 브람스가 완숙기에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분수령이라 할 수 있으며, 동시에 청년 시절부터 써오던 변주곡 시리즈를 끝맺는 '마지막 습작' 같은 곡이기도 하다. 이 둘 가운데 어느 쪽에 무게를 두느냐에 따라 해석 방향이 갈릴 수 있겠는데, 정명훈은 드물게 '습작'에 적지 않은 무게를 둔 것 같다. 그러한 의도는 첫 번째 변주부터 매우 뚜렷하게 나타났다. 템포를 ♩= 105 정도로 잡아 관습적인 템포(대략 ♩= 88)에 비해 빨라도 너무 빨랐던 것이다. 이에 따라 두텁고 어두운 화음을 강조하기보다는 비교적 가볍고 생기있는 '젊은 브람스'를 내세워 브람스에 대한 굳은 생각을 깨트리도록 관객을 도발하는 듯했다.

두 번째 변주부터는 점점 낯설지 않은 템포가 되었다가 나중에는 오히려 점점 느려져서 거대한 리타르단도(점점 느리게) 효과가 나타났다. 마지막 아홉 번째 변주에서는 다시 살짝 아첼레란도(점점 빠르게)를 사용하여 대칭을 이루도록 했는데, 이것은 마지막 변주가 저음 반복(ostinato)을 바탕으로 또 다른 변주곡 형태인 파사칼리아(passacaglia)를 이룬다는 점에서 설득력 있는 해석이다. 다만, 이러한 특징이 관객에게 얼마나 잘 전해졌는지는 의문이다. 비정상적으로 거대한 연주회장 탓에 소리가 뭉개지기 일쑤였는 데다가 변화무쌍한 템포에 단원들이 미처 충분히 자신감을 느끼지 못한 듯 리듬과 다이내믹이 그다지 또렷하지 못한 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휴식 시간 없이 이어진 <독일 레퀴엠>. 이 작품은 예배용 음악이 아니다. 원어 제목인 "Ein deutsches Requiem"에서도 드러나듯 라틴어가 아닌 독일어를 가사로 했을 뿐 아니라 경외서(The Apocryphia)에 나오는 글귀도 일부 가사로 썼으며, 무엇보다 내용 구성이 미사 전례를 따르지도 않고 예수의 속죄나 심판의 날을 준비하는 종말 신앙을 앞세워 드러내지도 않는다. 또 가사를 성서에서 따왔을 뿐 사실은 특정 종교를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부분도 없다. 요컨대 이 작품은 삶과 죽음에 대한 보편적인 고뇌를 담고 있으며, 죽은 사람보다는 산 사람을 달래는 곡이다. 이날 연주는 대규모 합창단을 앞세워 고통과 환희와 위안을 생생히 그려낸 한 편의 드라마였다. 2악장에서 팀파니가 이끌어내는 땅울림과 저 깊은 곳에서 북받쳐 오르는 합창의 흥분을 지나 6악장의 '죽음(Tod)'과 '지옥(Hölle)' 가사에 맺힌 절규와 사이 사이를 잇는 푸가토가 특히 좋았다. 마지막 7악장을 들으면서는 문득 김종철의 시구(詩句)를 떠올렸다. 느릿한 템포로 이완된 분위기가 '설레이는 神의 겨울, 그 길고 긴 먼 복도를 지내나와' '어머니 나라에 누운 듯' 편안했다.

합창단과 독창진이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훌륭했으며, 그 가운데 바리톤 사무엘 윤이 누구보다도 뛰어났다. 바그너 전문 가수답게 풍부한 성량, 깊고 안정된 음색, 나무랄 데 없는 딕션과 독일인보다 더 독일인다운 '그르릉' 소리, 독일어 무성음을 타악기처럼 활용하는 솜씨, 유럽 오페라 극장에서 잔뼈가 굵은 경험에 힘입은 배우 본능, 연주회장을 압도하는 제왕의 카리스마! 무엇보다 그는 관현악을 멋대로 끌고 가는 대신 음악의 흐름에 맞게 어우러질 줄 알았다. 이것은 오페라 아리아 한 가락 멋지게 부르는 데에만 익숙한 한국 가수들에게서 찾아보기 어려운 값진 능력이다. 이런 가수가 더 많이 나와서 베토벤 교향곡 9번을 연주한다면 그 얼마나 멋지겠는가! 재작년 성남 아트센터에서 있었던 구노의 <파우스트>에서 메피스토펠레로 나와 신들린 연기와 노래를 들려준 가수를 기억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바로 그가 이날 또 한 번 관객을 사로잡은 그 가수다. 사무엘 윤. 장담하건대 열 몇 해 안에 거물이 될 사람이니 그 이름을 꼭 기억해두기 바란다.

소프라노 김영미는 사무엘 윤에게 가려 빛이 바래버렸지만 사실은 나름대로 꽤 훌륭했다. 5악장 독창부는 고음으로 갈수록 음정과 리듬이 잘 맞지 않으면 듣기 싫은 소리가 되기 쉽지만, 김영미는 위험한 부분을 대부분 잘 처리했다. 사무엘 윤과 마찬가지로 '독창'이 아닌 '협연'을 할 줄 아는 가수였다는 점도 반가웠다. 다만, 초반에 고음에서 음정이 살짝 흔들린 것이나 5옥타브 B♭이 나오는 마디 56에서 잠시 템포를 떨어트린 것 등은 옥에 티였다. 목소리가 소녀처럼 맑고 가녀려서 마치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와 노래하는 듯했으나 성량이 좀 작은 듯해서 아쉽기도 했다. 말러의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 Des Knaben Wunderhorn> 중 "천상의 삶 Das himmlische Leben"(교향곡 4번 4악장이기도 함)에 무척 잘 어울릴 듯싶다.

합창단에게는 솔직히 말해 별로 기대하지 않았으나 웬걸, 생각보다 너무 잘해서 깜짝 놀랐다. 1악장 여린 음부터 감탄을 자아냈는데, 흔히 대규모 합창단이 메조포르테보다 여린 소리를 감당하지 못하는 것을 보아 왔기 때문이다. 이날 연주에서는 피아노까지는 꽤 안정적이었고 피아니시모도 나쁘지 않게 소화했다. 푸가에서도 성부 균형이 잘 맞았고, 지휘자의 지시에 반응하는 것도 재빨랐다. 물론 흠 잡으려면 얼마든지 잡을 수 있지만, 우리나라 합창단 사정이 어려운 것은 안 봐도 뻔한데 이렇게까지 해내다니 그저 기운을 북돋워주는 말만 해주고 싶다. 그리고 바라건대 합창단도 서울시향처럼 재단의 든든한 지원을 업고 선진화된 시스템으로 관리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상식 하나. 레퀴엠을 연주할 때에는 박수를 치지 않는 게 관례다. 장례식장에서 웃고 떠들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물론 <독일 레퀴엠>은 정식 미사 레퀴엠도 아닌데다 연주회장에서 연주가 끝났을 때 박수를 치지 않고 멀뚱멀뚱 있는 것도 이상하지만, 적어도 연주가 끝나자마자 요란한 박수가 터져 나오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다. 이날 정명훈은 마지막 잔향이 완전히 사라지고도 10초 이상 지휘봉을 내리지 않고 침묵을 '연주'했다. 이른바 '안다 박수'가 막판에 분위기를 깨는 일이 잦은 우리나라에서 흔치 않은 광경이었다. 연주자에게도 관객에게도 축복을, Selig s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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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철. 2007.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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