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14일 금요일

칼리니코프: 교향곡 제1번 g단조

바실리 칼리니코프(1866–1901)는 35세 생일을 이틀 앞두고 요절한 비운의 작곡가다. 모스크바 음악원에 입학했으나 학비를 감당하지 못해 4개월 만에 그만두었고, 이후 모스크바 필하모닉 소사이어티 스쿨(현 러시아 공연예술학교 - GITIS)에서 수학했다. 차이콥스키 추천으로 모스크바 말리 극장 지휘자가 됐지만, 지병인 결핵이 악화해 2년 만에 활동을 접고 작곡과 투병으로 생의 나머지 시기를 보냈다.

칼리니코프는 차이콥스키로 대표되는 내면적 서정성과 러시아 5인조의 민족적 서사성을 결합한 ‘모스크바 서정-서사 작곡가’(Moscow lyrico-epic composers)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음악학자 알프레트 스반은 칼리니코프 음악의 외형적 틀이 보로딘, 글라주노프, 글린카 등의 영향으로 형성됐다고 분석한다. 또한 유려한 선율미와 관현악적 질감 등은 차이콥스키로부터 이어받았다고 본다. 다시 말해 그의 작풍은 차이콥스키의 서정성과 보로딘의 서사성이 교차하는 지점에 있다.

‹교향곡 제1번 g단조›는 칼리니코프의 대표작으로 러시아와 유럽에서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스반에 따르면 이 작품은 러시아적 감성과 민족적 색채를 유지하면서도, 유럽 청중들이 공감할 수 있는 탄탄한 교향적 구성과 내밀한 감정 표현 등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다만, 스반이 말하는 탄탄한 교향적 구성이 베토벤과 브람스로 대표되는 서유럽 음악과 비슷하다는 뜻으로 오해해선 안 된다. 이 곡에서 칼리니코프는 주요 음 소재를 모자이크처럼 직조하는데, 그 기반은 러시아적 미학이며 서유럽 음악의 유기적 논리성과는 엄연히 다르다.

스반은 칼리니코프가 주제 선율을 다루는 방식이 ‘포드골로스키’(подголоски) 전통을 잇는다고 분석한다. 포드골로스키는 노래하는 듯한 주선율 주위에 다채로운 선율 변형을 모자이크처럼 배치하는 기법으로 글린카 음악에서 유래해 러시아 5인조가 확립했다.

리처드 타루스킨은 ‘드로브노스티’(дробность; 파편성) 개념을 빌려 러시아 음악의 형식적 특징을 설명했고, 같은 맥락에서 글린카와 글라주노프 등의 음악을 분석하며 주제 선율의 골격을 유지한 채로 음색, 화성, 리듬 등의 ‘배경’을 변화시키는 기법을 규명했다.

칼리니코프 교향곡 제1번은 음 소재를 파편적으로 변형하고 재배치하며 장대한 서사적 흐름을 구축하는 민족주의적 형식 감각과 차이콥스키적 서정성을 결합한 대표적 사례다.

제1악장은 소나타 형식의 표준적 조성 계획을 따르지 않는 점을 제외하면 깔끔한 소나타 형식을 취한다. 제1주제는 어딘가 비장한 민요풍 선율과 숙연한 호른 음형이 어우러지며, 호른 음형이 조성 변화를 주도한다. 제2주제는 차이콥스키를 떠올리게 하는 달콤한 선율이다. 발전부에서 사용한 푸가토는 앞서 설명한 모자이크적 직조 방식을 푸가에 적용한 것으로 서유럽의 논리적 대위법과 차이가 있다.

제2악장은 세도막 형식이다. 하프와 바이올린의 서늘하고 몽환적인 반복 음형으로 시작해 잉글리시 호른 등의 애수 어린 선율이 이어지고, 절정을 지나 처음으로 돌아가는 짜임새를 이룬다. 차이콥스키적인 서정이 가장 두드러지는 악장이다.

제3악장은 스케르초와 트리오 구성이다. 러시아 민속 춤곡 분위기의 활기찬 주제와 트리오 부분의 애수 띤 선율이 대비를 이룬다. 트리오 중간에는 슬픔을 애써 떨치는 듯한 해학이 나타난다.

제4악장은 제1악장 제1주제로 시작해 짧은 호흡으로 선율 변형을 거듭한 끝에 떠들썩한 축제 분위기로 순식간에 변모한다. 이후 이전 악장들의 주요 주제를 변형된 형태로 잇달아 소환한다. 축제 분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앞선 음 소재들은 민족주의적 감성을 끓어오르게 하는 찬가풍 팡파르로 모습을 바꾸며, 끝을 향해 달려갈수록 도취적 흥분이 극에 달한다.

마지막 악장에서 이전 악장 주제를 순환적으로 활용하는 기법은 드로브노스티와 포드골로스키로 설명할 수 있는 형식 감각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순환적 구성 자체는 리스트와 프랑크 작품에서 선례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칼리니코프는 이를 글린카에서 보로딘으로 이어지는 러시아적 미학 속에 녹여냄으로써 차이콥스키적 서정성과 보로딘적 서사성이 결합한 독자적인 교향적 세계를 창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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