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7월 25일 화요일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

통영국제음악당 공연 프로그램북에 실릴 글입니다.


"이 교향곡은 너무나 화려하고, 거창하고, 가식적이고, 장황하며, 전체적으로 매몰찹니다. 저는 참말로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실력을 잃었을까요? 그렇다면 끔찍한 일입니다."

차이콥스키는 자신의 후견인 나데즈다 폰 메크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다. 교향곡 5번을 발표한 뒤에 전문가들의 반응이 좋지 않아 자학하는 말이다. 교향곡의 종주국인 독일-오스트리아에서는 작은 음악적 씨앗으로 논리를 구축하고 발전시키는 것을 미덕으로 삼아 왔지만, 차이콥스키는 그러한 전통을 일정 부분 수용하면서도 논리와 구조에 매달리는 일이 자신의 '체질'에 맞지 않아 괴로워했다.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에는 딱히 표제나 음악 외적인 내용 설명이 없다. 1악장과 4악장은 소나타 형식, 2악장과 3악장은 세도막 형식으로 19세기 작품치고는 깔끔하게 분석된다. 그러나 이것은 표면에 불과하며, 음악을 듣고 있으면 어떤 이야기의 흐름이 느껴진다. 음악학자 리처드 타루스킨의 말을 빌리자면, 차이콥스키 교향곡에서 중요한 것은 '구조'가 아니라 '드라마투르기'이고, 작곡 방식이 교향곡보다는 오페라를 닮았다.

1악장은 고통을 이야기한다. 2악장에서는 억눌린 슬픔이 달콤한 절망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3악장에서는 고독이 우아한 왈츠 속에서 질식한다. 4악장에서는 승리의 팡파르가 요란하게 울리지만, 그 승리는 작곡가 자신의 말처럼 너무나 화려하고, 거창하고, 가식적이고, 장황하다. 그래서 팡파르가 찬란할수록 작곡가의 자존감이 바닥을 기고 있음이 느껴진다. '승리'는 거짓이다. 정신적 마스터베이션이다.

이 곡을 감상하려면 작곡가의 불안정한 정신세계에 휩쓸릴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작곡가와 함께 고통에 몸부림쳐야 한다. 그러나 음악이 끝나고 나면 달콤한 절망에 너무 취해 있지도 말고 거짓 승리에 속지도 말자. 이 곡은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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