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썼던 글을 내용을 보충해 완전히 새로 씀.
세자르 프랑크는 독일 음악의 영향에서 벗어나 프랑스 음악의 자부심을 되찾으려는 ‘아르스 갈리카’(Ars gallica) 운동을 이끈 작곡가다. 프랑스가 보불전쟁에서 패한 뒤 독일 문화에 저항감이 높아진 현실이 배경이었다. 그러나 프랑크가 독일 음악 전통을 무조건 배격하려 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바흐와 베토벤의 음악 유산을 계승하려 했고, 오페라가 지배하던 당시 프랑스 음악계에서 관현악과 실내악의 지위를 격상시켜 독일을 넘어서는 프랑스 기악 전통을 확립하고자 했다.
그러나 음악학자 리처드 타루스킨은 프랑크가 ‘아르스 갈리카’의 큰 스승으로 존경받으면서도 바그너 음악에 “무력하게 예속된” 작곡가였다고 분석한다. 프랑크가 프랑스 기악의 독자성을 추구했으나, 바그너라는 동시대 현실을 극복하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바그너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에 특히 매혹된 프랑크는 무의식적으로 그를 표절하지 않도록 몹시 경계했다. 그럼에도 ‘바그너 전염병’의 일부라며 공격당하는 수모를 피하지 못했다. 타루스킨은 특히 프랑크 음악의 화성 진행이 바그너적(Tristanesque)이라고 평가했다.
프랑크가 겪은 ‘바그너 딜레마’는 사실 ‘베토벤 딜레마’이기도 했다. 음악학자 카를 달하우스는 19세기 서양음악의 중심에 “베토벤이라는 압도적인 신화”가 있었으며, 그 신화 자체가 역사의 일부가 되었다고 통찰한다. 베토벤은 고전주의 음악 양식을 확장, 완성하고 그 한계를 깨트려 낭만주의로 가는 길을 열었으나, 문제는 그 유산이 낭만주의 시대정신과 맞지 않았다는 점이다. 핵심 문제는 베토벤의 모티프 발전 기법을 낭만주의 음악 어법 안에서 어떻게 녹여낼 것인가였다.
“[…] 오케스트라 전체를 감싸는 촘촘한 그물을 형성하며 매 순간 그 구조를 결정한다. […] 이러한 그물은 베토벤이 주제를 다루는 방식과 한 가지 근본적인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즉 균형 잡힌 선율적 악절보다는 모티프의 논리에 의해 음악 형식이 이루어진다.”
이것은 달하우스가 바그너의 라이트모티프(Leitmotiv)를 설명한 말이다. 라이트모티프는 특정 음악으로 인물·사건·감정 등을 떠올리게 하는 기법을 뜻한다. 달하우스는 이 기법의 표상적 기능 이면에 자리한 구조적 원리, 즉 모티프를 지속적으로 변형 및 재배치하는 기능을 설명했다.
이러한 구조적 기능은 프랑크에게도 중요했다. 사실 프랑크와 바그너 모두 프란츠 리스트가 내놓은 ‘베토벤 딜레마’ 해답에 의존했다. 주제 선율의 원형을 중심에 놓고 주변 요소를 그물망처럼 엮어 바꿔나가면, 듣는 사람이 인지할 만큼 적당히 달라진 선율과 리듬이 되풀이되면서 음악의 뼈대를 형성한다. 이것이 리스트가 내놓은 해답이었다.
바그너와 프랑크는 이를 받아들여 각자의 음악 언어를 개발했다. 바그너의 ‘라이트모티프’에 대응하는 프랑크의 해답은 ‘순환형식’(Cyclic Form)이라 부르는데, 이는 사실 라이트모티프에서 ‘드라마’를 뺀 것이나 다름없다. 다만, 프랑크 초기 작품에 나타나는 ‘해답’이 오히려 리스트보다 앞선다는 소수 의견도 있다.
프랑크가 순환형식 작곡 원리를 가장 원숙하게 구현한 작품이 바로 ‹바이올린 소나타 A장조›다. 서늘하고 쓸쓸한 바이올린의 독백이 피아노의 반음계적 화성과 어우러지고, 이것이 리듬과 화성, 음색을 달리하며 새로운 맥락 속에 새로워진 표정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이 반복과 변형이 작품 전체를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골격을 이룬다. 제1악장은 환상곡풍 소나타 형식, 제2악장은 소나타 형식, 제3악장은 환상곡풍 자유 형식이며, 마지막 제4악장은 론도 형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