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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18일 일요일

바그너 3문 3답

방명록과 메일로 누가 질문을 해서 이참에 새 글로 올립니다. 참고로 저한테 연락하려면 트위터가 가장 빠르고 그다음이 블로그입니다. 메일은 하루에 한 번씩은 확인하지만 더 빠르다고 하기는 어려워요. ^^

▶ 바그너 음악은 '아름다운가'

어떤 대상의 아름다움은 그 대상보다는 '아름답다'라는 말 속에 있습니다. 아름다움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말이지요. 베토벤 《교향곡 5번 C 단조》는 아름답습니까? 친구들은 아름답다고 합니까? 부모님은? 13세기 유럽 사람은 어떨까요?

▶ 가사와 음악의 관계

세 가지 정도로 생각할 수 있겠네요.

두운. 당시에는 각운이 '대세'였으나 바그너는 두운을 썼습니다. 《니벨룽의 반지》에서는 시작부터 두운이 나오지요. "바이아 바가 보게 두 벨레~" 자세한 내용은 이 책을 참고하세요: 안인희, 『게르만 신화·바그너·히틀러』 (서울: 민음사 2003)

가사 그리기(word painting). 가사와 음악이 어우러지게 하는 기법은 중세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전통입니다. 이를테면 '지옥'이라는 가사에서 하행 도약 음정이 나오거나 불협화음이 나오는 식이지요.

라이트모티프. 가사 그리기와 나란히 생각할 수 있겠는데, 자세한 내용은 요기를 참고하세요: http://wagnerian.textcube.com/entry/Leitmotiv

▶ 신계 멸망의 의미

작품을 내놓고 나면 작가는 죽어야 한다 했으니 해석하는 사람 마음이겠지요. '살아남은 놈이 강한 놈이다.'라는 명제에 비추면 신보다 인간이 강하다고 해석할 수도 있겠습니다. ;;

발할 성에 대한 가장 흔한 해석은 몰락해 가는 거대 권력입니다. 이를테면 나치 시대 베를린이 함락될 때 '발할 성이 무너졌다!'라고들 했지요. 그날 독일 라디오 방송이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하루 내내 《신들의 황혼》을 틀었다는 말도 있는데 자세한 내용은 ☞바로 아래 글을 참고하세요. 또 9·11 사건 때에도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이 더러 있었습니다.

《신들의 황혼》 오리지널 대본에는 음악에는 쓰이지 않은 브륀힐데의 독백이 더 있습니다. 바그너 자신의 '해설'이라고도 할 수 있겠는데요, 자세한 내용은 『게르만 신화·바그너·히틀러』를 참고하세요.

그밖에 《니벨룽의 반지》 영상물이 여럿 있으니 연출을 어찌했는지를 살펴보면 연출가가 이 대목을 어찌 해석했는지를 알 수 있지요. ☞ 슈투트가르트 극장 프로덕션(Zagrosek 지휘) 같은 엽기 연출도 꼭 참고하세요. ^^

2009년 9월 7일 월요일

《니벨룽의 반지》와 《니벨룽겐의 노래》: 표기 문제

《니벨룽의 반지》, 《니벨룽겐의 반지》, 《니벨룽엔의 반지》 가운데 어느 것이 바른 표기인가에 대한 논란은 심심할 만하면 나오는 주제입니다. 최근에는 《니벨룽의 반지》로 표기가 통일되어 가는 양상을 보이고 있고, 개인적으로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니벨룽겐의 노래》마저 《니벨룽의 노래》가 되어 버리는 부작용을 보고 이 부분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Das Nibelungenlied》는 아시다시피 중세 문학입니다. 여기서 'Nibelungen'은 현대 독일어 문법과는 달리 단수 없는 복수형이며, 따라서 게르만 설화에서 이 단어는 언제나 니벨룽겐 종족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합니다. 《니벨룽겐의 반지》 또는 《니벨룽엔의 반지》가 옳다는 주장의 근거 또한 여기에 있습니다. ☞바그너의 의도가 이것과는 어떤 차이점을 가지는가에 대해서는 시시콜콜 얘기하지 않겠습니다만, 어쨌든 《니벨룽의 반지》는 바른 표기가 될 수 있어도 《니벨룽의 노래》는 좋지 않은 표기라는 것입니다. 《니벨룽겐의 노래》 또는 《니벨룽엔의 노래》라고 해야 합니다. '겐'이냐 '엔'이냐 하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고, 실제 독일어 발음에 더 가까운 것은 '엔'일 것입니다만, 여기서는 표준 맞춤법에 따라 '니벨룽겐'이라고 썼습니다.

결론은? 《니벨룽의 반지》가 바람직한 표기이지만 《니벨룽겐의 반지》 또는 《니벨룽엔의 반지》도 틀린 것만은 아닙니다. 그러나 《니벨룽의 노래》는 좋지 않은 표기입니다. 《니벨룽겐의 노래》 또는 《니벨룽엔의 노래》라고 해야 옳습니다.

일천한 독일어 실력으로 떠들어 봤습니다.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지적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2005년 9월 25일 씀. (원 출처는 김원철 옛 홈페이지.)

정보공유라이선스

김원철. 2005.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2009년 8월 17일 월요일

2005.09.29. 《신들의 황혼》 - 게르기예프 / 마린스키 극장 오페라단

신들의 황혼 Götterdämmerung - 마린스키극장 오케스트라/오페라단
9월 29일(목) 저녁 5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지 휘 : 발레리 게르기예프 Valery Gergiev
연 출 : 발레리 게르기예프 Valery Gergiev
감 독 : 블라디미르 미르조예프 Vladimir Mirzoev
무대 디자인: 조시 티시핀 George Tsypin

브륀힐데 : 올가 세르게예바 Olga Sergeyeva
지크프리트 : 알렉세이 스테블리안코 Alexey Steblianko
군터 : 예뎀 우메로프 Edem Umerov
알베리히 : 빅토르 체르노모르츠예프 Viktor Chernomortsev
하겐 : 알렉세이 탄노비츠키 Alexei Tannovistsky
구트루네 : 발레리아 스텐키나 Valeria Stenkina
발트라우테 : 올가 사보바 Olga Savova
노른 1 : 루드밀라 카누니코바 Liudmila Kanunikova
노른 2 : 스베틀라나 볼코바 Svetlana Volkova
노른 3 : 타티아나 크라브초바 Tatiana Kravtsova
보클린데 : 마르가리타 알라베르디안 Margarita Alaverdian
벨군데 : 리아 셰브초바 Lia Shevtsova
플로스힐데 : 안나 키크나드제 Anna Kiknadze



<신들의 황혼>에서는 앞선 시리즈와는 달리 서막 및 1막부터 연주의 완성도가 높았다. 다른 '반지' 시리즈에 비해 현의 비중이 적은 편이라 다이내믹과 밸런스 사이의 트레이드-오프(trade off) 문제도 덜했다. (현의 음량 부족 문제에 대해서는 <라인의 황금> 편을 참고하라.) 연주자들의 집중력이 <발퀴레> 2막보다는 못했지만 전체적으로는 4부작 가운데 가장 뛰어난 연주였다고 생각한다. 다만, 1막부터 너무 열심히 한 탓인지 3막에서는 끝을 향해 갈수록 연주가 조금씩 불안정해졌던 것은 옥에 티였다.

템포는 빠른 편이었으며, 맹약 장면과 기비히 무사들이 군터를 환영하는 장면 등에서는 깜짝 놀랄 만큼 빠른 템포로 몰아붙였다. 이 부분의 템포를 빠르게 한 것은 나름대로 참신한 해석이었고, 또 러시아 지휘자 및 악단과 어울리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은 동시에 바그너 음악의 주요 특징 가운데 하나를 해치는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했다. 맹약 장면과 군터 환영 장면은 바그너 특유의 제의(祭儀) 장면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바그너의 작품은 그 자체가 제의적이기도 하지만, 작품 속의 제의 장면은 감상자에게 특별한 영적 고양감을 일으키곤 한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을 참고하라: 안인희, <게르만 신화·바그너·히틀러> (서울: 민음사 2003) 202-205쪽.) 음악으로 제의적 효과를 일으키기 위해 템포는 느린 것이 좋으며, 이 점에서 바그너식 제의의 정점에 선 작품은 바그너가 무대신성제전극(Bühnenweihfestspiel)이라고 불렀던 작품인 <파르지팔>이다. (1막에서 성배기사들의 행렬 장면과 성배 의식 장면을 들어보라.) 하겐이 기비히 무사들을 소집하는 장면과 그에 이어지는 합창도 전체적으로 훌륭했지만, 역시 제의적 요소를 살리는 데에는 실패했다. 지크프리트 장송행진곡과 브륀힐데 자살 장면("저기 라인 강가에 강한 장작들을 나를 위해 더미로 쌓아다오! Starke Scheite schichtet mir dort am Rande des Rheins zuhauf!" 이후부터 끝까지)도 마찬가지였다.

서막 전주곡 마디 6과 마디 14에서는 트럼펫의 음정이 엉뚱하게 들렸다. 악보를 완전히 숙지하고 있지는 않아서 무엇이 문제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는데, 지금 생각으로 가장 가능성이 큰 가설은 제1 트럼펫이 여린 음을 내지 않아 돌출되었다는 것이다. 마디 6에서 제1 트럼펫의 A(실음은 C) 음은 E 단조 6도 화음의 소프라노 성부에 중복된 근음(root)이다. 제2, 제3 트럼펫은 각각 화음의 5음과 3음을 연주하며, 베이스 성부의 근음은 제1 트롬본 등이 담당한다. 그런데 마디 6의 주선율은 화음의 5음인 G(실음 기준)에서 C을 거쳐 E이 된다. 결국, 제1 트럼펫의 C(실음)은 비화성음은 아니지만 주선율 차원에서는 마치 비정상적으로 긴 선행음(Anticipation)처럼 기능 했다. 즉, 제1 트럼펫이 두드러지면서 선율 음인 G을 누르고 전체 선율 윤곽을 망가트린 것이다. 마디 14 역시 동형진행이므로 마찬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그림 1. 서막 전주곡 마디 5-9.
New York: G. Schirmer, 1904. Plate 26809. 출처: http://www.dlib.indiana.edu


서막 마디 359에서는 리듬이 이상하게 들렸다. 사실은 연주자가 실수하거나 엉뚱한 루바토를 쓰지 않고 오히려 인템포로 연주했는데 왜 그렇게 들렸을까? 답은 템포에 있다. 다음을 들어보자.


그림 2. 서막 마디 358-361. © 2005 김원철.

© 2005 김원철


이것은 마디 327에 나오는 모티프의 변형이다.


그림 3. 서막 마디 327-329. ©1997-2002 by Fabrizio Calzaretti.

© 2005 김원철


그런데 마디 360의 셋잇단음 스타카토 부분을 강박에 배치하다 보니 원래 모티프와 리듬 윤곽이 다르게 들린다. 이 때문에 리듬이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이며, 마디 359의 변칙적인 리듬은 마치 연주자가 실수라도 한 것처럼 들리게 한다. 그러나 템포를 느리게 하면 덜 어색해진다. 다음은 <그림 2>에서 템포를 ♩= 120에서 ♩= 80으로 고친 것이다.


그림 4. 서막 마디 358-361. © 2005 김원철.

© 2005 김원철


이제 훨씬 자연스럽다. (찬가처럼 크게 부풀린 관현악 총주를 상상하라.) 이날 연주는 ♩= 120 정도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 100 이상으로 들렸다. 개인적으로는 ♩= 90 이하의 템포일 때 리듬이 어색하지 않게 들린다. 그 이상의 템포를 원할 경우 4분음 셋잇단 리듬에 루바토를 쓸 필요가 있다. 음반에서는 대개 템포와 상관 없이 루바토를 쓰고 있으며, 루바토를 쓰지 않은 녹음으로는 불레즈의 1979년 녹음이 있다. (그런데 사실은 이 녹음에서도 연주자가 완벽하게 기계적인 템포를 소화하지는 못했다.)

2막 전주곡은 바이올린과 비올라에 의한 리듬이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데, 그 리듬의 변칙성은 언뜻 들어서는 알아차리기 힘들지만 악보를 들여다 보면 사실은 매우 복잡함을 알 수 있다. 이날 연주에서는 '실수를 하나 안 하나 어디 두고 보자!' 하는 심정으로 특별히 주의 깊게 들었는데, 역시 연주회장의 극악한 음향 환경 때문에 현의 운궁이 또렷하게 전달되지도 않았다. 마지못해 내린 결론은 실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림 5. 2막 전주곡.
New York: G. Schirmer, 1904. Plate 26809. 출처: http://www.dlib.indiana.edu


2막 3장에서 하겐의 "호이호! 호이호호호! 기비히의 대장부들아. 일어들 나시오! Hoiho! Hoihohoho! Ihr Gibichsmannen, machet euch auf!"와 함께 연주되는 스티어호른(Stierhorn) 소리가 빠진 것도 아쉬웠다. (그러고 보니 <발퀴레> 때에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바그너는 하겐이 무대에서 C, 무대 뒤 왼쪽에서 D, 오른쪽에서 D로 불어서 입체적인 효과를 내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요즘 바이로이트에서는 그냥 오케스트라 피트 관악기 위치에서 트롬본이 연주한다고 한다. 스티어호른 두 대가 동시에 소리 낼 때에는 단2도 또는 장2도 음정으로 강력한 불협화음이 되는데, 그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해서는 역시 스티어호른을 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3막에서 지크프리트의 "깨우는 자가 왔소. 그가 입맞춤으로 당신을 깨우고 있소. Der Wecker kam; er küßt dich wach," 대목(마디 891-899)의 목관과 트럼펫에 의한 리듬은 여린 다이내믹 속에서도 죽어가는 지크프리트의 강렬한 흥분 상태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이 부분에서는 피아니시모에서부터 시작하는 섬세한 크레셴도와 데크레셴도가 필요한데, 역시 세종문화회관은 이것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 이 부분은 <지크프리트> 3막과도 링크되는데, 그날 연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림 6. 3막 마디 891-899.
New York: G. Schirmer, 1904. Plate 26809. 출처: http://www.dlib.indiana.edu


유명한 '지크프리트 장송행진곡'에서는 전체적으로 박진감 있게 잘했으나 몇몇 부분은 아쉬웠다. 마디 926에서 마디 927까지 현에 의해 피아노(p)에서 포르티시모(ff)로 세 단계를 거쳐 폭발적으로 일어나는 크레셴도도 약했고, 마디 960-962에서는 현이 호른 및 베이스 트럼펫과 안티폰(antiphon)처럼 주고받는데, 이때 현의 급박한 다이내믹 변화도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물론 일차적으로 연주회장 탓이다.) 마디 953에서 갑자기 터져 나오는 트럼펫의 포르테(f)와 이어지는 크레셴도는 말러의 이른바 '개파(Durchbruch)'를 예견하게 하는 갑작스럽고도 강렬한 국면 전환 효과를 불러오며, 숄티의 녹음에서는 특히 마디 956의 크레셴도를 매우 길게 늘이기도 했다. (라이브로 그렇게 할 수 있는 연주자가 있다면 그는 틀림없이 인간이 아니다.) 이날 연주에서는 그러한 다이내믹의 대비가 크지 않아서 극적 효과가 약했다. (원인은 연주회장의 극악한 음향과 트럼펫 주자의 기력 소진이 반반일 것으로 생각된다.)

마디 957부터는 트라이앵글과 테너 드럼(Rührtrommel) 등의 롤(roll)을 과장하면 현의 음량 부족에 의해 밸런스가 무너질 것을 걱정할 필요 없이 금관이 강력한 포르티시모를 마음껏 낼 수 있기 때문에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예상 밖으로 이날 연주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어쩌면 마디 953의 트럼펫 음량부터 지휘자의 의도가 작용했던 것일까? 이 부분에서 현 소리를 버리지 않은 것은 장단점이 있겠지만 극적인 효과는 어쨌든 부족했다.




그림 7. 3막 마디 935-967.
New York: G. Schirmer, 1904. Plate 26809. 출처: http://www.dlib.indiana.edu


마디 969에서는 서막 마디 359와 같은 템포 문제가 있었다. 마디 969-974에서는 대부분의 음반에서 적당히 루바토를 사용하고 있는 것을 들을 수 있는데, 이날 공연에서는 줄곧 인템포로 연주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림 8. 3막 마디 969-970. © 2005 김원철.

© 2005 김원철


마디 974 셋째 박에서는 일종의 착청(錯聽; '착시'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착청'도 있다.)을 만들어내야 한다. 서막 마디 360 넷째 박에서는 목관에 의해 유도되는 주선율의 옥타브 도약이 있지만, 같은 모티프로 링크되는 3막 마디 974에서는 그렇지 않다.


그림 9. 3막 마디 973-974. © 2005 김원철.

© 2005 김원철


그러나 이것은 다음과 같이 들려야 한다.


그림 10. 3막 마디 973-974에서 착청(錯聽) 효과에 의한 옥타브 도약을 반영한 것. © 2005 김원철.

© 2005 김원철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심벌즈가 팀파니와 테너 드럼(Rührtrommel)의 롤(roll)을 동반하여 일으키는 강력한 차폐 효과(masking effect)와 그에 이어지는 음고 복원 효과(pitch restoration effect)이다. '음고 복원 효과'란 '음소 복원 효과 (phonemic restoration effect)'를 변형시킨 것으로 내가 지어낸 말이다. 음소 복원 효과는 워렌(Richard M. Warren)이 1970년에 사이언스(Science)에 발표한 논문에서 유래한 용어로, 워렌은 피험자에게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녹음된 문장을 들려주었다:


The state governors met with their respective legislatures convening in the capital city.


여기에서 "legislatures"의 가운데 /s/ 소리는 삭제하고 대신에 기침 소리를 넣었다. 그러나 피험자들은 이것을 알아차릴 수 없었으며, 어떤 소리가 하나 빠졌다고 알려주어도 그 위치를 알지 못했다. 사라진 /s/ 음소는 지각 과정에서 '복원'된 것이다. 후속 실험에서는 제거된 음소(*eel) 대신에 복원된 음소가 문장의 맥락에 따라 다른 음소(wheel, heel, peel, meal 등)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마디 974에서 심벌즈 등의 소리가 충분히 크지 않으면 음고 복원 효과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데, 실제로 몇몇 음반에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날 연주에서는 심벌즈 등이 음고 복원 효과를 일으킬 만큼 충분히 컸다.

브륀힐데의 "저기 라인 강가에 강한 장작들을 나를 위해 더미로 쌓아다오! Starke Scheite schichtet mir dort am Rande des Rheins zuhauf!" 이후부터는 긴 호흡으로 피날레를 향해 서서히 나아가며 주술적인 효과를 일으킨다. 이날 연주에서는 다이내믹의 폭이 좁은 것이 역시 아쉬웠다. (원인은 연주회장의 음향 문제와 연주자들이 지친 것이 반반으로 판단된다.) 다만, 마디 1538부터 바이올린에 의해 연주되는 이른바 '구원(redemption; Liebeserlösung)'의 모티프는 연주회장의 음향 환경을 감안하면 매우 좋았다.



그림 11. 구원의 모티프 (<발퀴레> 3막).
출처: http://www.utexas.edu/courses/wagner/148.html


브륀힐데 역의 올가 세르게예바는 이번 '반지' 시리즈 가운데 최고의 브륀힐데였다. 몸매도 브륀힐데 치고는 매우 날씬한 편이었다. <발퀴레>에서의 브륀힐데와 지클린데 등도 그랬지만, 뛰어난 성량에 비해 몸매는 가냘픈 것이 참으로 신기하다. 음색은 귀네스 존스를 닮았다는 의견이 많았다. 극이 후반부로 가면서 고음 처리를 완벽하게 하지 못하고 실제보다 반음 정도 낮은 음을 낸 적이 있었던 것이나, 또는 2막의 이른바 '복수의 3중창'에서 갑작스런 저음 처리를 힘들어했던 것 등은 옥에 티였다. 특히 "그의 피로써 그가 속죄하기를! mit seinem Blut büß' er die Schuld!"에서는 가수와 오케스트라가 완전한 유니즌을 이룰 만큼 대사의 무게가 큰 부분이라 성량이 부족한 것이 몹시 아쉬웠다. <발퀴레>의 브륀힐데를 맡은 적이 있단다.

지크프리트 역의 알렉세이 스테블리안코는 테너 같지 않고 베이스나 바리톤 같았는데, 그것이 원래 목소리인지 이날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덕분에 군터로 변장했을 때에도 베이스-바리톤인 군터의 목소리를 일부러 흉내 낼 필요가 없었던 것이 재미있었다. (오히려 군터 역의 바리톤 예뎀 우메로프보다 낮게 들릴 때도 가끔 있었다.) 새 흉내는 발성은 뛰어났지만 굵은 목소리 때문에 연극적인 측면에서는 낙제점이었다. <신들의 황혼>의 지크프리트는 <지크프리트>의 지크프리트만큼 강력한 헬덴 테너일 필요는 없고 고음처리도 덜 필요하기 때문에 음역이 낮아도 큰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지크프리트>에서의 레오니드 자코자예프와 음색의 차이가 컸던 점은 좋지 않았다. 게다가 2막 후반부에서부터 지친 기색을 보이다가 3막에서는 목소리가 잠겨서 몇 번이나 기침을 했던 것은 애처로울 정도였다. 그런데 프로필을 보면 의외로 주역 가수인 것 같다. (역시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것일까?) 로엔그린 역을 맡은 적이 있단다.

군터 역의 예뎀 우메로프는 <라인의 황금>에서의 알베리히였는데, 알베리히보다는 군터에 어울렸다. (알베리히와 군터를 같은 가수가 소화한다는 것은 사실 넌센스다.) 군터 역할에 역량을 집중했더라면 더욱 뛰어난 가창을 들려줄 수도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니 아쉽다. "그의 피로써 그가 속죄하기를! mit seinem Blut büß' er die Schuld!"에서 브륀힐데와 마찬가지로 저음을 시원하게 처리하지 못했던 점은 옥에 티였다.

하겐 역의 알렉세이 탄노비츠키는 1976년생의 젊은 가수로 주역이 아닌 모양인데, 그 카리스마는 주연들을 압도할 정도였다. 다만, 뛰어난 연기력에 비해 음색의 사악한 맛은 부족했다. 커튼콜 때에는 공연 중의 카리스마를 무색하게 할 만큼 순한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열광적인 박수를 받자 매우 놀라는 것 같았다. 프로필에 따르면, 모스크바 차이코프스키 필하모닉 홀에서 있었던 베르디 레퀴엠 연주회에 대해 한 비평가는 "탄노비츠키의 아름답고 낭랑한 음색, 완벽할 정도로 깔끔하게 표현된 곡, 마치 홀린 듯한 관객들"이라고 평했다 한다. 바그너 경력은 없었던 모양이다.

알베리히 역의 빅토르 체르노모르츠예프는 <지크프리트>에서도 알베리히였는데, <지크프리트>에서 뛰어난 가창을 들려주었던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단역이라서 별다른 인상을 주지는 못했다. 구트루네 역의 발레리아 스텐키나는 훌륭했지만, 단역을 맡은 탓에 특별히 주목받지는 못했다. 쿤드리와 지클린데를 맡았던 적이 있단다. 음색이 지클린데 역에는 잘 어울릴 것 같지만, 쿤드리를 맡기에는 너무 가는 목소리가 아닐까 싶다. 발트라우테 역의 올가 사보바는 <발퀴레>의 브륀힐데였는데, 이번에는 반지를 라인의 처녀들에게 돌려주라며 브륀힐데를 야단치는 역할을 맡은 것이 재미있다. 좀 더 따끔하게 야단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점은 아쉽지만, 전체적으로 썩 잘했다.

첫 번째 노른 역의 루드밀라 카누니코바는 <발퀴레>의 슈베르틀라이테이다. 원래 단역 가수인 듯한데, 단역치고는 꽤 잘했다. 그런데 의외로 오르트루트 역을 맡은 적이 있단다. 두 번째 노른 역의 스베틀라나 볼코바는 <라인의 황금>과 <발퀴레>에서 프리카 역으로 강력한 카리스마를 보여준 가수인데, 이날에는 역할 비중이 좀 축소되어서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세 번째 노른 역의 타티아나 크라브초바는 <발퀴레>의 헬름비게인데, <발퀴레>에서 깔끔하고 강력한 '하이 C'를 들려주었던 것과는 달리 이날에는 좀 얌전해서 불만이었다. 특히 "끊어졌네! Es riß!"에서의 성량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라인 처녀들의 합창은 <라인의 황금> 때보다 별로 나아진 것이 없었고 딕션도 별로였다. 보클린데 역의 마르가리타 알라베르디안은 헬름비게와 <파르지팔>의 꽃처녀 역을 맡은 적이 있단다. 벨군데 역의 리아 셰브초바는 <라인의 황금>에서도 벨군데였으며, <발퀴레>에서는 게르힐데였다. 플로스힐데 역의 안나 키크나드제는 <발퀴레>의 그림게르데이다.

2막에서의 남성 합창은 지난 6월 13일에 있었던 간사이 니키카이 오페라단의 <탄호이저>와 비교하게 된다. 마린스키의 합창 수준은 매우 높았지만, 간사이 니키카이 오페라단에 비하면 한 수 아래였다. 주역 가수들의 기량은 마린스키 쪽이 월등했던 것을 보면 역시 일본은 합창이 강한 모양이다.

뒷얘기. '신비기인'의 좌석 위치를 확인해 두었다가 공연이 끝나고 나서 결국 말을 걸어보았다. 기억을 더듬어 재구성한 대화 내용은 다음과 같다.


김원철: 실례합니다.
신비녀: 안녕하세요?
김원철: 외람된 말씀이지만(과잉 정중 모드), 당신이 그 유명한 바그네리안...
신비녀: (말 끊으며) 맞아요. 당신은 한국인인가요 아니면 공연 보러 한국에 온 건가요?
김원철: 한국인입니다.
신비녀: 나 이곳이 너무 마음에 들어요. 정말 멋진 곳이로군요! 어쩌고저쩌고... (수다 모드로 돌변함.)
김원철: 그렇게 말씀하시니 기쁘군요.
신비녀: 그런데, 연주자 대기실이 어디인지 아세요?
김원철: 모르겠네요. 에, 그러니까, 바그너 공연을 보러 전 세계를 돌아다닌다는?
신비녀: 맞아요.
김원철: 존경합니다!


(...라고 한다는 것이 "I adore you!"라고 해버렸다. 남녀 사이에서 'adore'를 쓰면 사랑한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이런, 나이가 많아 보이던데... 그녀는 그냥 웃더라.)


신비녀: 어쩌고저쩌고... (계속 수다 모드)

김원철: 당신은 유명세에 비해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는데, 이름이라도 알 수 있을까요?
신비녀: 이번 공연에 대해 TV로 방송이 나갔다던데, 못 봤나 보죠?
김원철: 저는 TV를 안 보거든요.
신비녀: 이러쿵저러쿵... (이름은 안 가르쳐주면서 계속 수다)
김원철: 일본 공연에도 갈 건가요?
신비녀: 물론이죠.
김원철: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


이렇게 해서 <니벨룽의 반지> 한국 초연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게르기예프와 마린스키 극장 오케스트라는 연주회장의 열악한 음향 환경에서도 상당히 뛰어난 연주를 들려주었다. 물론 이번 공연에 대해 좋게만 평가할 수는 없다. 연주자들은 최상의 상태로 공연에 임했다 할 수 없으며 가수 기용의 적절함에 대해서도 의문이 남는다. 지휘자는, 저 탁월한 기본기를 빼버리고 작품에 대한 해석만 놓고 본다면, 대체로 악보에 충실하기는 했지만 불레즈처럼 확실한 주관을 가지고 차가운 해석을 한 것이 아니라 나이브(naive)하게 악보를 따라가기만 했다. 그럼에도 독일인이 아닌 러시아인이 바그너의 음악을 이만큼 완성도 있게 연주한 것은 대단하다. 무엇보다 이번 공연은 한국 초연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올해는 바그네리안에게 매우 뜻깊은 해이다. <탄호이저>가 원어로는 사실상 국내 초연되었고, <니벨룽의 반지> 국내 초연도 마침내 이루어졌다. '반지'를 자력으로 무대에 올리려는 움직임도 있다. 10월 20일에는 바이로이트에서 호평받고 있는 베이스 연광철이 <트리스탄과 이졸데> 중 마르케 왕의 모놀로그를 부를 예정이며, 10월 30일에는 왕년의 바그너 가수 귀네스 존스가 온다. 그리고 성배의 그 다음 계시는 12월 15일, <트리스탄과 이졸데> 2막이다.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를 주목하라!

2005년 10월 11일 씀.
2006년 1월 10일 고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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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철. 2005.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2009년 8월 16일 일요일

2005.09.27. 《지크프리트》 - 게르기예프 / 마린스키 극장 오페라단

지크프리트 Siegfried - 마린스키극장 오케스트라/오페라단
9월 27일(화) 저녁 5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지 휘 : 발레리 게르기예프 Valery Gergiev
연 출 : 발레리 게르기예프 Valery Gergiev
감 독 : 블라디미르 미르조예프 Vladimir Mirzoev
무대 디자인: 조시 티시핀 George Tsypin

지크프리트 : 레오니드 자코자예프 Leonid Zakhozhaev
브륀힐데 : 라리사 고골레프스카야 Larissa Gogolevskaya
미메 : 바실리 고르슈코프 Vassily Gorshkov
방랑자 : 예프게니 니키틴 Evgeny Nikitin
알베리히 : 빅토르 체르노모르츠예프 Viktor Chernomortsev
파프너 : 게네디 베주벤코프 Gennady Bezzubenkov
에르다 : 즐라타 불리체바 Zlata Bulycheva
새 : 잔나 돔브로프스카야 Zhanna Dombrovskaia



<지크프리트> 1막 전주곡은 관악기 주자들의 합주력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목관끼리, 또는 금관끼리 여린 음으로 합주를 할 때 국내 오케스트라의 연주에서는 어택(attack)과 밸런스가 어긋나서 듣는 사람의 마음을 졸이게 할 때가 많다. 그런데 지난 2003년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체임버 오케스트라 내한 연주회 때 <지크프리트 목가>의 호른 두 대가 단3도로 나란히 스타카토로 연주하는 부분에서, 어택과 밸런스를 마치 악기 하나가 연주하는 것처럼 정확하게 맞추면서도 호른 주자에게 흔한 미스톤 하나 없이 현 소리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가는 것을 듣고 얼마나 충격을 받았던지! 이것이 독일과 한국의 차이란 말인가...

이날 연주에서는 바순 2대의 7도 하행 부분(마디 4)과 바순 3대의 스타카토 부분(마디 51), 잉글리쉬 호른의 단2도 하행에 바순 3대가 합세하는 부분(마디 79)이 모두 깔끔했고, 약음기를 낀 비올라 등과의 리듬 교환도 자연스러웠다. 다만, 셈여림의 세세한 변화를 공연장이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던 점은 아쉬웠다. 테너 튜바 2대와 베이스 튜바 2대의 크레셴도(마디 72, 마디 79)도 좋았고, 호른과 트롬본, 콘트라바스 트롬본이 가세하는 부분(마디 84)도 좋았다. 금관을 강조하면서 현이 묻혀 버리는 문제는 큰 음량이 꼭 필요한 곳이라 어쩔 수 없었다. (현의 음량 부족 문제에 대해서는 <라인의 황금> 편을 참고하라.)

이날 지휘자의 '임기응변'은 <발퀴레> 때보다 더 나아진 것 같았지만 연주자들의 집중력은 오히려 <발퀴레> 때만 못했고, 특히 1막에서는 작품에 익숙지 않은 사람도 알아챌 만한 금관의 실수가 여러 번 있어서 전체적인 완성도가 높았는데도 많은 사람이 어수선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1막에서 실수가 많았던 가장 큰 이유는 템포가 빨랐기 때문일 텐데, 이 때문에 가수들도 숨가빠 했다. 이번 공연의 특징 중 하나는 단막 작품인 <라인의 황금>까지 포함해서 1막 연주의 완성도가 다른 막에 비해 떨어졌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단원들이 '반지' 시리즈 사이마다 다른 연주회 일정을 소화하는 강행군을 하느라 지친 탓에 2막에서야 몸이 풀린 것이 아니냐는 말이 있었고, 나는 우스갯소리로 '게르기예프가 1막 끝나고 단원들에게 '한바탕' 한 것이 아닐까?'라고도 했다. 2막부터는 매우 좋았고, 3막의 "만세, 태양이여! 만세, 빛이여! 만세! 빛나는 날이여! Heil dir, Sonne! Heil dir, Licht! Heil dir, leuchtender Tag!" 부분부터는 현의 앙상블이 특히 뛰어났다. 다만, 3막 전주곡 등 현의 비중의 큰 곳에서는 (현이 매우 열심히 연주했지만) 다이내믹에 문제가 생기는 점은 어쩔 수 없었다.

지크프리트 역의 레오니드 자코자예프는 <발퀴레>의 지크프리트와는 달리 뛰어난 지구력을 자랑하면서 깔끔한 노래를 들려주었다. 1막까지만 해도 빠른 템포 때문에 약간씩 불안정해지는 목소리를 듣고 '2막부터는 망가지겠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웬걸, 3막이 끝날 때까지 안정된 목소리를 유지하는 것이 아닌가! 큰 성량으로 곧게 뻗어나가는 고음을 들려주었다면 전설의 바그너 가수가 되살아난 것 같았겠지만, 그것까지 바라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리라. <발퀴레> 때의 지크프리트처럼 '아 노퉁!'과 같은 불필요한 선행음(Anticipation)을 사용한 것은 옥에 티였다. 음색은 르네 콜로가 경박함을 벗고 진중한 헬덴 테너가 된 듯했다. 에릭과 로엔그린, 프로(Proh) 등의 역할을 맡은 적이 있고, 말러의 <대지의 노래> 테너 솔로도 했단다. 자코자예프는 외모 또한 뛰어났다. 키도 크고 몸매도 날씬했다. 다만, 어깨와 가슴에는 '공사'를 좀 했다. (시력이 나빠서 처음에는 긴가민가했는데, 다른 사람들이 확인해 주었다.) 연극배우와 록 가수를 했던 경력이 있단다. 사진을 보니 언뜻 페터 호프만을 닮았는데, 더 자세히 보면 매서운 척하는 표정이 록 가수 신해철을 닮았다.

브륀힐데 역의 라리사 고골레프스카야는 <발퀴레>의 브륀힐데를 크게 능가하는 대단한 강성 소프라노였으며, 표현할 수 있는 다이내믹의 폭이 컸던 만큼 크레셴도를 잘했다. 몸매 또한 '현실 세계의 브륀힐데'에 매우 근접했다. 다른 역할은 가수가 바뀌어도 음색이 비슷해서 일관성을 해치는 일이 잘 없었는데, 브륀힐데는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퀴레>의 브륀힐데와는 전혀 다른 목소리였는데다가 지크프리트에 비해 성량이 너무 커서 힘 조절을 하고 있던 지크프리트를 초라하게 만들어 버리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성량은 컸지만 고음 처리가 조금씩 위태로웠고, 마지막 대사인 "lachender Tod! 웃는 죽음이로다!"에서는 대사를 빼먹기도 했다. 다른 가수들도 대사를 빼먹은 적이 있지만(프롬프터가 있기는 하지만 듣자 하니 대가들도 의외로 이런 실수를 곧잘 한단다.) 고골레프스카야가 빼먹은 것은 다가올 파국에 대한 복선 역할을 하는 매우 중요한 대사라는 것이 문제다. "Tod(죽음)" 부분은 '하이 C'인데, 바그너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한 옥타브를 낮추어 지크프리트와 유니즌을 이룰 수도 있도록 이중으로 표시했다. 어쩌면 고골레프스카야는 '하이 C'로만 불러야 하는 줄 알았던 것은 아닐까? 음색은 살짝 비르기트 닐손을 연상시키기도 했지만 힘과 표현력 모두 닐손과는 차이가 컸다. 쿤드리, 젠타, 오르트루트를 맡은 적이 있단다. 쿤드리는 좀 갸우뚱하기도 하고, 젠타는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오르트루트는 모르겠다. 엘자 역과 강렬한 음색 대비를 할 수도 있겠지만, 엘자가 너무 연약하면 오르투르트에게 압도되어 졸지에 조연이 되어 버리지 않을까?

미메 역의 바실리 고르슈코프는 <라인의 황금> 때의 니콜라이 가시예프와 비슷한 음색이었으며 미메에 매우 잘 맞았다. 그러나 성량이 너무 작은 것이 문제였다. 특히 저음은 거의 들리지도 않을 지경이었다. 니콜라이 가시예프와는 달리 바그너 경력도 없단다. 둘이 서로 바꿨으면 좋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크프리트>의 미메는 의외로 음색에 어울리지 않는 저음을 요구하기도 하는데, 어쩌면 가시예프보다는 그래도 고르슈코프가 성역이 낮았던 것일까? 그래도 연기는 참 좋았다. 음반에서도 언제나 엉터리인 망치 리듬은 예상보다 양호했다. 그러나 내가 지휘자라면 차라리 미메나 지크프리트에게는 솜 망치를 들려주고 망치 소리는 오케스트라 타악기 주자에게 맡기겠다.

방랑자 역의 예프게니 니키틴은 <라인의 황금> 때의 보탄이었는데, 그때보다 더 잘했다. 역할의 특성상 호흡이 긴 편이어서 노래하기 편한 점도 있었겠지만, 그것을 고려해도 참 잘했다. 차라리 미하일 키트와 바꿔서 <발퀴레> 보탄을 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니키틴이 부르는 '보탄의 고별'을 상상해보니 왠지 잘할 것 같다.

알베리히 역의 빅토르 체르노모르츠예프는 <라인의 황금>에서의 예뎀 우메로프보다 훨씬 잘했으며 헬덴 바리톤 냄새가 났다. 사악한 표현도 우메로프보다 더 잘했다. 파프너 역의 게네디 베주벤코프는 악보대로 확성기를 사용했고, 전체적으로 잘했지만 비브라토를 일부러 억제한 듯한 발성이 약간씩 흔들리기도 했다. 에르다 역의 즐라타 불리체바는 <라인의 황금> 때와 마찬가지로 훌륭했다. 새 역의 잔나 돔브로프스카야는 새 소리를 흉내 내려는 노력은 좋았으나 목소리가 굵고 비브라토도 깊은 것이 흠이었다. <파르지팔>에서 꽃처녀 역을 맡은 적이 있단다.

뒷얘기. <라인의 황금> 때 봤던 '신비기인'은 역시 C열 오른쪽으로 가는 것을 확인했다. <신들의 황혼> 때에는 위치를 확인해 뒀다가 말을 걸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진 찍히는 줄도 모르고 독보삼매경.


2005년 10월 5일 씀.
2005년 10월 31일 고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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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철. 2005.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2005.09.25. 《발퀴레》 - 게르기예프 / 마린스키 극장 오페라단

발퀴레 Die Walküre - 마린스키극장 오케스트라/오페라단
9월 25일(일) 저녁 6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지 휘 : 발레리 게르기예프 Valery Gergiev
연 출 : 발레리 게르기예프 Valery Gergiev
감 독 : 율리아 페브즈너 Yulia Pevzner
무대 디자인: 조시 티시핀 George Tsypin

보탄 : 미하일 키트 Mikhail Kit
브륀힐데 : 올가 사보바 Olga Savova
지크문트 : 올레그 발라쇼프 Oleg Balashov
지클린데 : 믈라다 후도레이 Mlada Hudoley
훈딩 : 게네디 베주벤코프 Gennady Bezzubenkov
프리카 : 스베틀라나 볼코바 Svetlana Volkova
게르힐데 : 리아 셰브초바 Lia Shevtsova
오르틀린데 : 루드밀라 카시아넨코 Liudmila Kasianenko
발트라우테 : 나덴자다 세르뒤크 Nadezhda Serdiuk
슈베르틀라이테 : 루드밀라 카누니코바 Liudmila Kanunikova
헬름비게 : 타티아나 크라브초바 Tatiana Kravtsova
지크루네 : 나데자다 바실리예바 Nadezhda Vasilieva
그림게르데 : 안나 키크나드제 Anna Kiknadze
로스바이세 : 뤼보브 소콜로바 Liubov Sokolova



솔직히 말해 <라인의 황금> 공연은 약간은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더 솔직해지자면 공연을 보는 동안 온갖 독설이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한국 초연인 점을 생각해 실망스러운 부분은 최대한 잊어 버리고 장점 위주로 본 것이었다. 시차 적응도 덜 된 데다가 낮에 <호두까기 인형>을 공연한 뒤에 <라인의 황금>을 또 공연하는 강행군 때문에 단원들이 지쳤던 것이리라. 그런데 <발퀴레> 때에는 체력을 회복했는지 훨씬 나아진 소리를 들려주었고, 게르기예프는 공연장의 극악한 음향 환경에 더욱 적응을 한 듯했다.

현은 음향적 공백을 더욱 메워주었고, 특히 1막에서 선동적인 리듬을 타고 흐르는 저음 현이 좋았다. '보탄의 고별' 장면에서는 부드럽게 공연장을 휘감는 소노리티가 일품이었다. 다만, 1막 전주곡에서는 공연장 특성상 어쩔 수 없는 다이내믹의 한계를 드러냈다. 이를테면 포르테(f)에서 반 마디 만에 피아노(p)로, 다시 한 마디 반 동안 스타카토로 크레셴도 시켜서 포르테로 이어지는 등의 급박한 다이내믹의 변화는 세종문화회관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것이었다. 어쩌면 오케스트라가 무대 위로 올라가 제대로 된 편성으로 연주해도 시원찮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현의 음량 부족 문제에 대해서는 <라인의 황금> 편을 참고하라.)

1막 전주곡 마디 62부터 나오는 ☞'도너' 모티프에서는 베이스 튜바, 테너 튜바, 트롬본이 차례로 첫 음을 흐릿하게 연주했고, 트럼펫은 좀 나았다가 베이스 트럼펫에서 다시 흐려졌다. 저음 쪽의 악기일수록 이 부분을 못했는데, 아무래도 저음 악기가 완전4도 도약을 재빠르게 하기 힘든 탓이지 싶다. 마디 62에는 다음과 같은 지시가 붙어 있다. "이 주제(도너 모티프)에서 짧은 여린박(Auftakt) 음은 매우 강하고 또렷하게 들리도록 해야 한다. Bei diesem Thema (Donner-Motiv) müssen die kurzen Auftakt noten sehr stark und deutlich hörbar werden." ('도너 모티프'라는 말을 직접 사용하고 있는 점이 수상하기는 하지만, 내 추측에 지시어 자체는 바그너 자신이 붙인 것이며 모티프 이름은 편집자가 첨가한 것 같다. 도버 판(C. F. Peters, Leipzig, n.d. [ca. 1910].) 총보를 참고했다. 더 권위 있는 악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이 부분에 대해 알려주면 고맙겠다. - 나중에 붙임: 펠릭스 모틀이 붙인 지시어란다.) <라인의 황금> 때부터 도너와 관련 있는 부분이 좋지 않은 점은 유감이다. 북유럽 신화에서 도너(토르)가 차지하는 위치를 생각하면 게르기예프는 신화 연구를 게을리했다는 혐의를 벗기 힘들다.

2막 전주곡은 개인적으로 마디 54부터 마디 65까지의 팀파니 소리가 백미라고 생각하는데, 악보 상으로는 포르테(f)와 피아노(p) 사이를 오가고 있지만 다이내믹의 낙차를 더 크게 과장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뵘의 녹음 등을 들어보면 그렇게 연주하기도 한다. 특히 게르기예프에게는 이것이 연주회장의 음향 핸디캡을 메울 수 있는 좋은 방법이었을 것인데, 예상 밖으로 팀파니 주자는 정직한 음량을 고집했다. 오히려 크레셴도가 분명하지 않은 것이 불만이었다.

2막은 이번 '반지' 시리즈를 통틀어 최고였다고 할 만큼 대단했다. 특히 프리카 등장 이후부터는 프리카의 뛰어난 가창에 힘입어 빠른 템포로 극의 흐름을 완전히 움켜쥐고 관객을 몰입하게 하였다. 지루하기로 유명한 <발퀴레> 2막을 이토록 흥미진진하게 만들다니! 물론 실수도 적지 않았지만, 이들의 연주에는 그 모든 것을 사소한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마력이 있었다. 그에 비하면 <라인의 황금>을 듣고 '거장' 운운했던 것은 취소하는 것이 좋겠다. 보라, 여기에 진짜 거장이 있다!

3막도 매우 좋았고, 유명한 3막 전주곡 '발퀴레의 기행'에서는 금관과 타악기만을 앞세우기보다는 목관 악기의 회오리바람을 놓치지 않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보탄의 고별' 장면에서는 템포가 좀 빠르긴 했지만 역시 음반으로는 절대로 느낄 수 없는 현장의 감동이 있었다. 후반부로 갈수록 감정이 격해져서 "내 창 끝을 두려워하는 자는 이 불을 뚫고 들어가지 못하리라! Wer meines Speeres Spitze fürchtet, durchschreite das Feuer nie!" 이후부터는 차분한 감상이 불가능해질 정도였는데, 심지어 막이 내리기 시작하자마자 성급하게 박수가 터져 나올 때(많은 사람이 지적했지만 이것 참 문제다.)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나도 모르게 박수를 따라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 멈추었을 정도였다.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호흡은 거칠어졌으며 가슴은 요동치고 다리는 후들거리는 것을 겨우 수습하고 밖으로 나간 다음, 지인들과 함께 오늘 공연이 얼마나 대단했는지에 대해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듣자 하니 <라인의 황금> 때 실망해서 <지크프리트>와 <신들의 황혼> 표를 팔아버렸거나 또는 처음부터 <발퀴레> 표만 샀던 사람들이 이날 공연이 끝나고 나머지 표를 구하느라고 난리가 났던 모양이다.)

보탄 역의 미하일 키트는 <라인의 황금>에서 보탄을 맡았던 예프게니 니키틴보다 음색이 더 깊이 있었고 특히 여린 음의 표현력이 뛰어났지만, 전체적으로는 오히려 니키틴보다 못했다. 강력한 프리카에게 혼쭐나서 쩔쩔매는 듯한 모습은 오히려 극과 어울리기도 했다. ☞사무엘 윤과 비교하자면 지난 2004년 11월 12일 연주회에서의 사무엘 윤이 훨씬 잘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프로필을 보니 역시 바그너 경력이 없단다. 이런 가수가 대뜸 보탄 같은 큰 역할을 맡은 것이 대단한데, 이 점을 고려하면 사실은 매우 잘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보탄을 물리친 '아줌마'의 모습을 보여준 프리카 역의 스베틀라나 볼코바는 <라인의 황금>에서 프리카를 맡았던 바로 그 사람이다. 전날 공연에서도 심상치 않더니 이날에는 완전히 주연급으로 내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고음과 저음, 포르테와 피아노의 교차가 민첩하고 시원시원했으며, 오케스트라와 상호작용하여 긴장감을 높여나가는 솜씨가 굉장했다. 프로필을 다시 보니 아직 극장 내에서 주역 가수로 완전히 인정받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은데, 앞으로 큰 성장을 기대해도 좋겠다.

지클린데 역의 믈라다 후도레이도 만만치 않았다. 볼코바에 비하면 부드러웠지만 은근히 힘있는 목소리였고, 앞으로 강성 소프라노로 거듭난다면 브륀힐데도 못할 것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소리보다 더 마음에 들었던 것은 외모였는데, 특히 몸매가 매우 뛰어났다. 2막에서 흐트러진 자세로 쓰러져 있을 때에는 옷이 위로 말려 올라가 뛰어난 다리맵시를 자랑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크문트가 괘씸하게도 슬쩍 다가가서 옷자락을 내리더라. 어우, 야아~!) 프로필을 보니 역시 살로메 역을 맡은 적이 있단다. 일곱 베일의 춤을 추면 얼마나 멋질까! (험험... 정신 차리자.) 그밖에 구트루네 역과 젠타 역을 맡은 적이 있단다.

지크문트 역의 올레그 발라쇼프는 주연치고는 약간은 실망스러웠다. 듣자 하니 러시아처럼 햇볕이 부족한 곳에서는 테너가 나오기 힘들고 대신 뛰어난 베이스가 많이 나온다고 한다. 프로필에 따르면 바그너 경력이 없는 모양인데 단번에 이렇게 큰 역할을 맡은 것만 봐도 그렇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사실 대단한 열연을 한 것으로 좋게 봐주는 것이 좋겠다. 실연으로 큰 실수 없이 역할을 해낸 것만으로도 칭찬받아 마땅하다 하겠다. 다만 "벨제! 벨제! Wälse! Wälse!" 부분에서 호흡량이 음반으로 들을 수 있는 것보다 1/3에서 1/5 정도밖에 되지 않았던 것이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아 벨제!,' '아 노퉁!' 등과 같이 불필요한 선행음(Anticipation)을 곧잘 사용한 것인데, 선행음의 남용은 음악을 유치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므로 좋지 않은 습관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버거운 역할을 맡느라 몹시 힘든 마당에 '아' 같은 유성음(voiced sound)으로 발성을 시작하는 것은 좋은 전략이기도 하므로, 이렇게라도 해서 역할을 완수할 수 있다면 오히려 잘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노래하다 지쳐서 쓰러지거나 목이 망가지기라도 했다면 얼마나 큰 망신이겠는가?

브륀힐데 역의 올가 사보바는 <신들의 황혼>의 발트라우테이기도 하다. 프리카나 지클린데 못지않게 잘했지만, 메조소프라노라서 저음이 강한 대신 고음이 약한 것은 약간은 아쉬운 점이기도 했다. '호요토호!'가 그랬고, 특히 옥타브 도약으로 '하이 C'를 내야 하는 부분에서는 포르타멘토를 사용해 억지로 짜내는 것이 흠이었다. 바그너 경력은 없단다.

훈딩 역의 게네디 베주벤코프는 <라인의 황금>과 <지크프리트>의 파프너 역이기도 했다. 역시 강력한 초저역이 대단했으며, 이 점에서는 '반지' 시리즈의 출연진 가운데 최고라고 할 만했다. 발음에 러시아어의 냄새가 유난히 짙은 것은 야만적인 훈딩을 표현하는 데에는 장점으로 작용하기도 했으나, 원론적으로는 단점이라 하겠다. 그런데 이 사람이 하겐 역의 알렉세이 탄노비츠키로 잘못 알려지는 바람에 <신들의 황혼>에서 '진짜 탄노비츠키'를 만나기 전까지 '저 사람이 하겐 역을 잘할까?' 하는 우려가 있었으며, '진짜 탄노비츠키'를 본 사람들은 오히려 대타로 오인하기도 했다.

게르힐데 역의 리아 셰브초바와 헬름비게 역의 타티아나 크라브초바는 힘을 아낄 이유가 없는 만큼 '호요토호!'에서 깔끔하고 힘 있는 고음 처리를 했다. 특히 타티아나 크라브초바는 옥타브 도약 '하이 C'에서도 올가 사보바 같은 포르타멘토 없이 시원하게 내질렀다. 다른 발퀴레도 '올인'(또는 'Now or never!')의 태도로 열심히 불렀다.

<라인의 황금> 때 누워 있던 석상들은 일어서 있고 등에 날개가 달리는 등 위압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다. 나는 이것을 보고 역시 <신세기 에반게리온>에서 에바 1호가 변한 괴물을 연상했는데, 그 원형은 인도 신화에 나오는 파괴와 창조의 신 '시바'라고 한다.

<신세기 에반게리온> © 가이낙스


2005년 10월 4일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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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15일 토요일

2005.09.24. 《라인의 황금》 - 게르기예프 / 마린스키 극장 오페라단

라인의 황금 Das Rheingold - 마린스키극장 오케스트라/오페라단
2005년 9월 24일(토) 저녁 7시 30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지 휘 : 발레리 게르기예프 Valery Gergiev
연 출 : 발레리 게르기예프 Valery Gergiev
감 독 : 율리아 페브즈너 Yulia Pevzner
무대 디자인: 조시 티시핀 George Tsypin

보탄 : 예프게니 니키틴 Evgeny Nikitin
프리카 : 스베틀라나 볼코바 Svetlana Volkova
알베리히 : 예뎀 우메로프 Edem Umerov
로게 : 콘스탄틴 플루즈니코프 Konstantin Pluzhnikov
파졸트 : 바딤 크라베츠 Vadim Kravets
파프너 : 게네디 베주벤코프 Gennady Bezzubenkov
미메 : 니콜라이 가시예프 Nikolai Gassiev
도너 : 에드워드 장 Eduard Tsanga
프로 : 예프게니 아키모프 Evgeny Akimov
보클린데 : 잔나 돔브로브스카야 Zhanna Dombrovskaia
벨군데 : 리아 셰브초바 Lia Shevtsova
플로스힐데 : 나덴자다 세르뒤크 Nadezhda Serdiuk
프라이아 : 타티아나 보로디나 Tatiana Borodina
에르다 : 즐라타 불리체바 Zlata Bulycheva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후 러시아에서 바그너 음악을 처음으로 연주한 사람이다. 그런데 러시아가 나치로부터 입은 피해는 유태인 못지않은 것이라 이 때문에 러시아가 떠들썩했다고 한다. 이것은 우리가 쉽게 상상할 수 있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러시아는 자본주의 국가와는 달리 클래식 공연 문화가 대중 예술로서 확고한 입지를 유지하고 있으며, 심지어 연주회장에 대한 정부의 예산 축소에 따라 입장료를 인상한다는 발표가 나자 (그래 봐야 우리 기준으로는 터무니없이 싼 가격이란다.)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라며 대중 집회가 열린 적도 있다고 한다. 사정이 이러니 게르기예프는 자칫 '인민의 적'으로 몰릴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하고 바그너에 손댄 것이 된다. 이스라엘에서 바그너를 연주한 것이 '깜짝 이벤트'에 불과했던 바렌보임과는 달리 게르기예프는 러시아 악단을 이끌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바그너 공연을 하고 있으니 참으로 대단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2005년 9월, 그는 <니벨룽의 반지> 한국 초연이자 '반지' 4부작 각각의 한국 초연을 지휘한 사람이 되었다. 우려와는 달리 사람들의 반응은 좋았다. 공연 전부터 여러 곳에서 관련 강좌가 열렸고 많은 참여가 있었다. 클래식 관련 인터넷 게시판에서는 바그너와 관련한 문답과 토론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반지'를 쉽게 해설해 놓은 ☞ 박원철씨의 웹사이트는 공연 전후로 트래픽(traffic)이 폭주했다. 무엇보다, 표가 팔렸다. 그리고 마침내 공연 날짜는 다가왔다.

연주에 대한 감상을 쓰기에 앞서 공연장의 음향 환경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은 객석은 크고 오케스트라 피트는 작아서 음량 손실이 매우 크다. 일류 오케스트라도 이것을 극복할 수는 없다. 게르기예프와 마린스키극장 오케스트라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은 이미 예상한 바와도 같다. 지난 6월 11일부터 13일까지 있었던 간사이 니키카이 오페라단-서울시향의 <탄호이저>를 보고 내가 쓴 ☞ 감상문 가운데 일부를 인용한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의 오케스트라 피트는 기대했던 것보다 너무 작았다.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보다는 가로로 조금 더 넓은 것 같았지만 큰 차이는 없어 보였다. 이 때문에 오는 9월에 게르기예프가 마린스키극장 오페라단을 이끌고 와도 압도적인 스케일의 음향을 기대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노들섬에 짓는다는 새 오페라하우스가 유일한 희망이란 말인가. 제발 전시용에 그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오케스트라의 규모가 작을 때 음량 면에서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것은 무엇보다 현일 것이다. 바그너는 <탄호이저>를 오케스트레이션할 때 대규모 현악 파트를 염두에 두었으며, 극장의 현악 주자의 수를 정규인원보다 더 많이 둘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이번 공연에서 서울시향의 현은 부족한 인원을 감안하면 나쁘지 않은 음량을 내주었다. 12일 공연에서는 현이 금관과 합창 등에 묻혀 버리는 때가 종종 있었지만 13일에는 훨씬 나았다. 이것이 단순히 연주자들이 13일에 더욱 분발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극장 1층과 3층의 음향의 요술인지 나로서는 알 수 없다. 다만, 12일 2층에서 들었던 어떤 사람도 "좀 오버하자면 다이나믹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밋밋함의 연속이었"다고 평한 것을 보면 12일보다 13일의 연주가 더 좋았다는 내 느낌이 틀리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역시 소편성으로는 표현할 수 있는 다이내믹의 폭에 한계가 있었다. 이를테면, 서곡 마디 32에서부터 비올라-제2 바이올린-첼로-제1 바이올린-콘트라바스로 연이어 점층하는 셋잇단 리듬의 크레셴도는 그 폭이 충분히 크지 못했으며, 마디 37에서 마침내 트롬본이 이른바 ☞ '순례자의 합창' 모티프를 찬가처럼 크게 부풀려 연주할 때 현과 호른 등은 바이올린의 음량에 제약을 받아 제 힘을 내지 못했다. 2막 4장의 이른바 '입당행진곡' 부분에서는 무대 위에 배치된 12대의 트럼펫이 들려주는 압도적인 소리가 큰 매력이지만, 이번 공연에서는 역시 '절제'를 위해 트럼펫 주자들이 무대 뒤편으로 숨어 버리고는 멀리서 들려오는 듯한 연출을 했다.


2막 4장, 입당행진곡 중 트럼펫 팡파르. 그림을 누르면 미디 음악이 연주됩니다.

© 1997-2002 by Fabrizio Calzaretti.



이번 공연 팜플렛에 나타난 오케스트라 파트별 단원 수와 <라인의 황금> 악보에 명시된 연주자 수를 비교해 보면 문제가 좀 더 명확해진다. 관악기와 타악기는 특수 악기까지 생각하면 필요한 만큼 있는 것 같지만, 현악기 주자들의 수를 보면 제1 바이올린 1명과 제2 바이올린 6명, 비올라 3명, 첼로 3명, 콘트라바스 1명, 모두 14명의 연주자가 부족하다. 공간이 충분하다면 객원 주자를 쓸 수도 있겠지만, 그 좁은 공간에 악보에 지시된 대로 108명(호른 더블링과 프롬프터 등을 고려하면 110명 이상)이 들어갈 수 있을까? 1층에서는 오케스트라 피트를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3층에서 연주자 수를 세어 본 사람의 말에 따르면 80명이 채 안 되는 인원이 피트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고 한다. 오케스트라 피트의 크기 말고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의 객석 수가 바이로이트 축제극장 등의 유수 공연장에 비해 1.5~2배 정도 많다는 점도 문제이겠다. 한편, 객석의 규모와도 상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공연장의 주파수별 소리 전달 특성이 다른 것 같다. 즉 저음이 많이 깎여서 양감이 부족하게 느껴진다. 이런 사정을 모두 감안하면 이번 공연에서 현 소리는 꽤 큰 편이었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 더. 만약 숄티의 녹음을 기준으로 이번 공연에서의 음량에 대해 불만을 토로한다면 당신은 뭘 모르는 사람이다. 그런 과장된 소리는 실제 공연장에서는 들을 수 없다. 기준은 바이로이트 실황으로 해야 설득력이 있다.

어쨌거나 현의 절대적인 음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최대한 다이내믹을 살리기 위해서는 밸런스를 무시하고 금관과 타악기를 내세워 뿜빰거리던가, 또는 다이내믹을 희생시켜 정교하지만 밋밋한 연주를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게르기예프는 절충안을 택했다. 화성적으로 풍부한 울림이 필요한 곳에서는 다이내믹보다는 밸런스를 택했고, 강력한 다이내믹이 필요한 곳에서는 과감히 밸런스를 포기했다. 음악적 맥락에 따라 최적의 선택을 할 수만 있다면 이것이 최선의 책략일 것인데, 공연장의 음향 환경에 적응할 기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을 게르기예프와 단원들에게는 철저하게 임기응변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임기응변이 너무나 놀라운 것이었다. 게르기예프는 진정한 거장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라인의 황금>은 현의 비중이 매우 큰 작품이라 어쩔 수 없는 결점이 꽤 많았다. 전주곡에서는 점층 효과에 의한 유장한 맛이 부족하고 대신 어수선한 느낌을 주었다. 이후로도 1장 내내 이어지는 현에 의한 물살의 표현이나 기타 현의 역할이 두드러지는 곳에서 여지없이 음량의 한계를 드러냈다. 거인들이 등장할 때에는, 다이내믹을 살리는 것이 최대의 목표가 되어야 했기에 어쩔 수 없었겠지만, 베이스 트럼펫과 3대의 트롬본, 콘트라바스 트롬본의 4도 도약(편의상 '안티폰 antiphon'이라고 부르자.)이 주선율로부터 크게 돌출되어 선율 윤곽을 해쳤다. 현 소리는 작은 데다 '안티폰'에 대항할 금관은 콘트라바스 튜바 하나뿐이라 차라리 팀파니가 주선율마저 압도해 버리는 형국이었다.



'거인' 모티프. © 1997-2002 by Fabrizio Calzaretti.

그림 파일을 누르면 음악이 연주됩니다. 음악 출처: 박원철 홈페이지 © Decca


사소한 실수라고 보기에는 음악의 맥락상 비중이 만만치 않았던 곳도 있었다. 2장 첫 마디에서 테너 튜바의 음정 불안이 그랬고, 파졸트가 "당신의 창이 보호를 한다는 약속의 엄숙함이 모두 장난이란 말이오? Die dein Speer birgt, sind sie dir Spiel, des berat'nen Bundes Runen?  (한글 번역은 엄선애 교수의 것을 참고했음)" 할 때 "Speer(창)"와 동시에 나오는 ☞ '창'의 모티프에서 제1, 제3 호른과 제2, 제4 호른이 교차하는 "Spiel"과 "des" 사이(마디 넷째 박)의 음정 불안이 그랬다.


"Die dein Speer birgt, sind sie dir Spiel, des berat'nen Bundes Runen?"

© 1899 by B. Schott's Söhne, Mayence. 출처: http://www.dlib.indiana.edu


가수들의 수준은 기대 이상이었다. 솔직히 '러시아 사람이 독일 음악을 제대로 이해할까?' 하는 생각을 어느 정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가수들에 만족할 수 있었다. 물론 음반이 귀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불만스러운 부분도 많았겠지만, 실제 공연장에서 음반 수준의 연주를 바라는 것은 잘못이다. 전설의 명가수들은 이제는 존재하지 않고, 스튜디오 녹음 같은 최상의 컨디션은 실제 공연장에서는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보탄 역의 예프게니 니키틴은 단단한 목소리를 가진 젊은 신의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한스 호터의 보탄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영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꽤 잘했다고 할 수 있다. 굳이 다른 가수와 비교하자면 토마스 스튜어트나 ☞사무엘 윤과 비슷하다고 하겠는데, 토마스 스튜어트는 그렇다 치고 사무엘 윤이 예프게니 니키틴보다 한 수 위라고 말한다면 한국인을 너무 편애하는 것일까? 니키틴의 노래를 들으면서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의 네덜란드인의 아리아 가운데 "죽은 자들이 모두 일어날 때, 나는 소멸하리라. Wann alle Toten auferstehn, dann werde ich in Nichts vergehn." 하는 대목이 생각났는데, 프로필을 보니 실제로 네덜란드인 역을 맡은 적이 있단다.

알베리히 역의 예뎀 우메로프는 사악한 맛이 부족해서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는데, 개인적으로는 좋게 들었고 사악한 연기도 꽤 열심히 했다고 생각한다. 이번 공연에서 군터 역으로도 나왔다. <로엔그린>의 텔라문트 백작과 전령(팜플렛에는 '헤럴드의 왕'이라고 되어 있다. '왕의 전령(Der Heerrufer des Königs; The King's Herald)'의 오역으로 판단된다.)을 맡은 적이 있단다.

로게 역의 콘스탄틴 플루즈니코프는 실수가 좀 있었지만, 굉장한 열연을 했던 것이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프로필을 보니 로엔그린 역을 맡은 적이 있단다. 어릿광대 같은 연기를 하던 사람이 로엔그린의 나레이션(In fernem Land)을 부르는 것은 상상이 잘 안 된다. 성배의 가호를 받는 성기사가 아니라 촐싹대는 바람둥이가 아닐지?

파졸트 역의 바딤 크라베츠는 사랑을 갈구하는 거인을 매우 잘 표현했다. 그 빛나는 가창은 이날 최고의 가수라 부를 만했고, 마르티 탈벨라를 연상시킨다는 말도 나왔다. 파졸트 말고는 바그너 경력이 없다는데, 하겐 쪽으로 개발해 봐도 괜찮지 싶다. 파프너 역의 게네디 베주벤코프는 저음을 강조하여 파졸트와 음색의 구분을 이룬 것이 마음에 들었다.

도너 역의 에드워드 장(고려의 후예라고 하며 러시아식 발음은 '짱가'에 가깝다고 한다.)은 유명한 '헤다! 헤다! 헤도!' 대목을 잘해야 박수를 많이 받을 텐데, 아쉽게도 천둥과 번개의 신답지 않게 패기가 부족했다. 연출상의 결정적인 실수도 있었는데, 망치를 가지고 나오지 않은 것이다. 창이 보탄을 상징한다면 망치는 도너를 상징한다. 북유럽 신화에서 도너(토르)의 망치 '묠니르(Mjöllnir; '묘르닐'이라고도 하는데, 일본식 발음이 잘못 전해진 것으로 판단된다. 비슷한 예로 '궁니르'를 '궁그닐'이라고도 한다. 일본식 발음으로 고치면 각각 '묘루니루,' '궁구니루'가 된다.)'는 전장에서 수많은 거인족을 물리친 궁극의 병기로, <니벨룽의 반지>에서는 '반지'나 보탄(오딘)의 창 '궁니르(Gunnir)'만한 비중은 없지만 알고 보면 대단한 아이템이라 할 수 있다. 숄티 판에서는 일부러 망치(천둥) 소리를 따로 집어넣기도 했는데, 이날 공연에서는 악보에 표시된 팀파니 소리만으로 해결했고, 그마저 망치의 위력을 보여줄 만큼 음량이 크지는 않았다.

프리카 역의 스베틀라나 볼코바는 극중 비중이 그렇게 높지는 않았는데도 매우 인상깊었다. <발퀴레> 때에는 더욱 강력한 모습을 기대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르지팔>의 꽃처녀 역을 맡은 적이 있단다. 미메 역의 니콜라이 가시예프도 조연이라는 사실이 안타까울 만큼 훌륭했다. 로게를 맡은 적도 있단다. 프로 역의 예프게니 아키모프는 조연으로는 괜찮았지만 주연급은 아니었다. 이 사람이 <발퀴레>의 지크문트라는 잘못된 정보를 접하고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에서 키잡이 역을 맡은 적이 있단다. 프라이아 역의 타티아나 보로디나는 <로엔그린>에서 엘자를 맡은 적이 있단다. 에르다 역의 즐라타 불리체바는 부드럽고 깔끔한 음색이 영락없는 에르다였다. <지크프리트>의 에르다이기도 하다.

라인 처녀들의 합창에서는 화음의 밸런스가 영 안 맞았다. 제일 윗 성부를 맡은 보클린데는 목소리가 너무 컸고, 가운데 성부를 맡은 벨군데는 목소리가 너무 작았다. 보클린데 역의 잔나 돔브로브스카야는 <파르지팔>에서 꽃처녀를 맡은 적이 있단다. 벨군데 역의 리아 셰브초바는 이번 <발퀴레>에서 게르힐데를 맡았고, <파르지팔>의 꽃처녀와 <발퀴레>의 브륀힐데를 한 적도 있단다. (어째 좀 이상하다. 브륀힐데라니. 저 작은 목소리로? 팜플렛의 오류가 아닐까.) 플로스힐데 역의 나덴자다 세르뒤크는 <발퀴레>의 발트라우테이기도 하고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 브랑게네를 맡은 적도 있단다.

니벨룽족은 남자 어른이 여성 또는 어린이와 섞여 있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데, 이날 공연에서는 모두 어린이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이것은 시각적으로는 좋지만 알베리히의 위협에 따른 비명 소리가 이상해지는 단점이 있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김리의 목소리를 떠올려 보면 무슨 말인지 이해될 것이다.

연출 문제는 나에게는 워낙 관심 밖이라 별로 할 말은 없다. 대신 소박한 인상만 기록으로 남겨 두기로 한다. 무대 장식 등 겉으로 보이는 부분을 제외하면 대본에 나타난 지시에 충실한 고전적인 연출이었는데, 연출을 단지 음악을 보조하는 역할 정도로만 여기는 나로서는 이것이 썩 마음에 들었다. 흔히 그렇듯이 연출이 음악의 우위에 자리 잡아 음악 해석을 방해하는 것보다 이게 훨씬 낫지 않은가? 무대 세트는 여러 신화를 짜깁기했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그런 점에서 <신세기 에반게리온>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저 말 많았던 석상이 더더욱 그렇다. 라인 처녀들은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옷차림이 얌전해서 조금은 실망했다. 대신 푸른 빛을 내는 머리카락을 뒤집어 쓴 무용수들의 옷차림이 야했다. 푸른 빛 머리는 마치 해초(海草) 같았는데, 참 마음에 드는 장식이었다. 용을 표현한 아이디어는 대체로 호평을 받은 것 같은데, 나는 어째 부채춤이 생각나서 우습기만 했다. 거대한 '라인의 황금' 속에 프라이아가 들어간 것을 보고는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이 생각났다. 알베리히의 의상은 <날아라 슈퍼보드>에 나오는 사오정을 연상시켜서 좀 우습다고 생각했다.

© KBS 출처: http://www.kbs.co.kr/2tv/superboard/character.shtml


뒷얘기. 공연 시작 직전에 목발을 짚은 금발의 백인 여성과 세종문화회관 직원의 말다툼이 잠시 주의를 끌었는데, 다리 불편을 호소하면서 1층 C열 오른쪽 통로 쪽 빈자리에 앉으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그 여자가 R 등급 티켓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 결국 억지를 부려서 내 자리와 통로를 사이에 둔 자리에 앉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바그너 공연을 찾아 전 세계를 돌아다니기로 유명한 사람이란다. 이름이나 기타 신상 정보가 전혀 알려지지 않은 신비 기인이라고 하니 그런 줄 알았으면 말이라도 걸어볼 걸 그랬다.

2005년 10월 3일 씀.
2006년 1월 10일 고침.
 

정보공유라이선스

김원철. 2005.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2009년 7월 9일 목요일

바그네리안 김원철의 바이로이트 여행기 (4)

지난 글 읽기:

☞ 바그네리안 김원철의 바이로이트 여행기 (1)
☞ 바그네리안 김원철의 바이로이트 여행기 (2)
☞ 바그네리안 김원철의 바이로이트 여행기 (3)



▶ 상황 18.

2막 전주곡이 흐른다. 소리가 생각보다 작다.

그러고 보니 발코니가 많이 높다. 발코니 좌석이 중간 등급인 까닭이 여기에 있나 보다. 그런데 거리를 헤아려도 소리가 작다. 틸레만이 '발작'을 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겠고, 내 생각에는 바이로이트 음향이 원래 이렇지 않을까 싶다.

음반으로만 듣고 꿈꾸던 바이로이트 사운드! 그 실체는 조금은 실망스러웠으나 끝내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직접음이 적어서 자칫 흐리멍덩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싶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리버브' 효과가 알맞게 들어가서 자극적이지 않고 부드럽게 감싸 안아 끌어당기는 야릇한 맛이 있었다. 단지 소리가 작을 뿐. ㅠ.ㅠ

그렇다고 '목욕탕 사운드'였냐면 그것도 아니었다. 작은 소리도 꼼꼼하게 잘 울려주어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보다 200배쯤 또렷했고,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보다 2배쯤 또렷했다. 라인강 처녀들이 호흡이 안 맞았는지 아주 잠깐 멈칫하거나 그밖에 이음매가 자연스럽지 못했던 곳도 똑똑하게 잘 들렸다.

그보다 먼저 전주곡에 나오는 어지럽게 꼬인 리듬이 음반으로 들을 때보다도 훨씬 또렷하게 들려서 깜짝 놀랐다. 도대체 활을 어떻게 쓰기에 저런 소리가 날까. 그리고 저 밑에서 울려나오는 저음 현... 아아, 이것이 바이로이트 사운드!

이 음향으로 <신들의 황혼>이 아니라 <파르지팔>을 들었어야 하는데. 안 되겠다, 바이로이트 다시 가야겠다. 가고야 만다. 불끈!

http://fs.textcube.com/blog/0/2070/attach/XSal6ESP2A.jpg

모르시는 분이 있을까 싶어 잠깐 설명하자면, 바이로이트 축전극장 오케스트라 피트는 객석에서 보이지 않는다. 예술의 전당 오페라하우스나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는 1층에서도 지휘자 머리쯤은 보이지만, 여기서는 오케스트라 피트가 무대 밑으로 들어가서 객석에서는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사진으로 확인하시라. 이거 2층에서 찍은 사진이다.) 이 때문에 오케스트라 소리가 지휘자 뒤에 있는 음향판에서 튕겨난 다음 무대 벽에서 다시 튕겨나 그제야 객석으로 날아온다.


전주곡이 끝나고 하겐과 알베리히가 대화를 나눈다. 그런데 자막이 없다. OTL
자막이 없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준비한 게 바로 이북리더 리브리에였는데...

소니 이북리더 리브리에(Librié)

리브리에는 전자잉크 디스플레이라서 백라이트가 없다. 그래서 다른 사람한테 피해 주지 않고 몰래 대본을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주변에 조금이라도 빛이 있을 때 얘기이고 아주 깜깜한 곳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바이로이트 축전극장이 바로 그랬다. 리브리에에 <니벨룽의 반지> 독일어-한국어 대본과 악보를 잔뜩 담아 왔으나 아무짝에도 쓸모없어졌다. '폐인 정신'이 이런 곳까지 닿았을 줄이야! 예술의 전당 오페라하우스나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생각했다가 이런 낭패를 겪는구나. 아 참, 건전지도 잃어버렸었지! OTL

독일어 대사를 실시간으로 따라가지 못하고 줄거리를 떠올려 가며 공연을 보려니 집중력이 떨어진다. 알베리히와 하겐이 대화를 나누는 2막 1장이나 브륀힐데가 하겐에게 지크프리트 약점을 알려주는 5장은 지루하게 느껴졌으며 무리한 일정에 따른 피로가 몰려오기까지 했다. 다음에 또 오려면 아예 날 잡고 독일어 텍스트를 달달 외워버려야겠다.

3장에서 하겐이 "호이호! 호이호호호! 기비히 사나이들아, 일어나라! Hoiho! Hoihohoho! Ihr Gibichsmannen, machet euch auf!" 하는 대목에 이르니 재미가 되살아난다. 하겐을 맡은 가수가 한스-페터 쾨니히(Hans-Peter König)라는데 카리스마가 대단하다.

이 대목에서는 스티어호른(Stierhorn)이라는 특이한 악기가 쓰이는데, 그야말로 '무식한' 소리를 내는 비상소집용 나팔이다. (독일어 'Stier'는 '소 bull'라는 뜻이다.) 더욱 '무식한' 대목은 화음이다. 바그너는 하겐이 무대에서 C 음을 연주하게 하고 무대 뒤 왼쪽에서 D♭ 음, 오른쪽에서 D 음을 불어서 입체적인 효과를 내는 동시에 반음씩 다른 음이 부딪혀 무시무시한 불협화음을 내도록 했으며, 숄티 판 음반에서 이 소리를 제대로 잡았다. 그러나 요즘에는 스티어호른 대신 좀 더 '음악적인' 트롬본을 오케스트라 피트에서 연주하는 게 대세라더니 이날도 그랬다. 소리가 제법 거칠기는 했으나 틀림없이 트롬본 소리였다. 조금은 아쉬웠으나 이렇게 하는 쪽이 틸레만 스타일과도 더 어울렸다.

이어서 하겐과 기비히 사내들이 떠드는 대목에서는 얄궂은 곳이 있다. 소프라노한테나 시키는 트릴을 베이스한테 시킨 대목이다.

Ⓟ Mainz: B. Schott's Söhne, 1908. Plate 28000.

HAGEN
Einen Eber fällen sollt ihr für Froh;
Einen stämmigen Bock stechen für Donner;
Schafe aber schlachtet für Fricka,
daß gute Ehe sie gebe!

하겐
프로께 바칠 산돼지를 한 마리 잡고
도너께 바칠 힘센 숫염소를 한 마리 잡고
프리카께는 양을 잡아 바쳐서
결혼을 축복해 주십사 빕시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임병수 음반 재킷을 인용하려고 했으나 저작권 문제가 골치 아파서..;;

가사를 보면 양을 잡으라는 대목이니 트릴로 양 흉내를 내라는 뜻이다. 그런데 베이스가 트릴이 되나? 음반을 들어보면 이 대목에서 안 되는 트릴을 해보려고 애쓰는 모습이 더욱 우습다. 이날 하겐이 이 대목을 어찌하나 조금은 짓궂은 마음으로 귀담아들었더니 한스-페터 쾨니히는 그냥 비브라토로 은근슬쩍 넘어가고 말았다. 이럴 때에는 좀 망가지란 말이야!

어찌 보면 이건 연출 탓도 있지 싶다. 연출가는 기비히 사람들을 '문명인'으로 꾸미고 지크프리트를 '야만인 천둥벌거숭이'로 꾸며 놨다. 그래서 기비히 사람들이 즐거워하면서 서로 무기를 마구 부딪치는 대목에서도 유럽 사교모임처럼 점잖게 넘어가더라.

http://fs.textcube.com/blog/0/2070/attach/Xc79KfFFCb.png
누가 지크프리트인지 한눈에 알아보셨는가?

군터와 브륀힐데가 나오면서부터 브륀힐데를 맡은 린다 왓슨(Linda Watson)이 무대를 휘어잡는다. 오옷! 저 여왕님 포스! 다른 가수들도 너무너무 잘해서 그냥 음반을 듣는 듯하다. 한국 초연 때 그 보고 있기 조마조마하던 마린스키 극장 사람들과는 너무나 다르다.


▶ 상황 19.


2막이 끝나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내가 <니벨룽의 반지> 한국 초연 리뷰를 쓴 게 학술지에 실렸다는 얘기를 했더니 '저놈 진짜 환자였군' 하는 반응이다. '반지 음반 뭐 좋아해요?' 하기에 뵘, 바렌보임, 크나퍼츠부슈 등등을 읊어대었다.

"세상에 그걸 다 가지고 있어요? 우리는 카라얀 판을 가지고 있는데 그건 어때요?"
"카라얀 좋죠. 그게 숄티 판과 비교되면서 저평가될 때가 잦은데 알고 보면 어쩌고저쩌고..."
"카라얀 판에서 하겐이 누군지 혹시 알아요?"
"음, 누구더라... 잠깐만요. 제 PDA에 데이터베이스가 있어요. 아, 카를 리더부슈! 이 사람 정말 유명하죠."
"노래 잘해요?"
"그럼요. 엄청난 가수예요. 그거 알아요? 바렌보임 판에는 필립 강이라고 한국인이 하겐인데 어쩌고 저쩌고..."

나는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다음 편에 계속.)


다음 글 읽기:

☞ 바그네리안 김원철의 바이로이트 여행기 (5)


2009년 7월 5일 일요일

바그네리안 김원철의 바이로이트 여행기 (1)

바이로이트 축전극장, 2006년 8월 27일. (c) 김원철
맨 오른쪽에 있는 사람이 크리스티안 틸레만.

확대 사진. (c) 김원철

2006년에 바이로이트에 갔던 얘기를 바빠서(귀찮아서) 미루다 이제야 씁니다. ;;

볼로냐에서 학회가 있어서 겸사겸사 독일에서 바그너 오페라를 볼 계획을 세웠습니다.
(사실은 처음부터 마음이 콩밭에..;;)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드레스덴 젬퍼오퍼 '반지' 시리즈가 일정에 꼭 맞더군요.

사실은 하루 여유가 있었는데, 처음에는 짧게 바이로이트를 관광하려고 생각했다가 끝내 "Suche Karte"(표 구합니다) 신공(?)을 써서 <신들의 황혼>을 보았습니다.

그 모험 일지(?)를 써봅니다. ^^




▶ 상황 1.

볼로냐에서 있었던 국제음악지각인지학회(ICMPC)가 끝나고
프랑크푸르트로 날아가 하루를 묵었다.
피곤했었는지 조금 늦게 일어나 서둘러 기차역으로 출발했다.
지하철 역 표 파는 기계 앞에서 난감해하다가
아무나 붙잡고 "중앙역 Hauptbahnhof"이라고 한 다음 시키는 대로 했다.
그런데 개찰구도 없고 지하철 안에도 표 검사하는 사람이 없더라.
그렇다고 무임승차하는 사람은 없기를. 갑자기 검사할지도 몰라.

▶ 상황 2.

"Hauptbahnhof"라고 쓰여있는 곳에서 지하철을 탔는데,
어째 갈수록 '시골스러운' 풍경이 되어간다. 서너 정거장 거리랬는데...
그러다가 나오는 역 이름이 웬 다름슈타트?
사람들한테 물어보니 반대쪽이란다. 프랑크푸르트 중앙역까지 10 정거장!
갈아타려는데 왜 이리 안 와. OTL

▶ 상황 3.

중앙역. 표 파는 데서 언제 출발할 거냐고 묻기에 '되도록 빨리' 가겠다고
"as early as possible" 했더니 7시인가 9시인가가 가장 빠른 거란다.
그때 시각이 오전 11시가 넘었으니 그럼 저녁까지 기다리란 얘기잖아?
아놔, 바이로이트 관광은 물 건너갔군.
그런데 드레스덴 가는 표를 사려니 매표소는 여기가 아니고 저쪽으로 가란다.
매표소에서 마찬가지로 "as early as possible" 했더니 당장 출발할 거냔다.
그렇다고 하니 15분 뒤에 출발한다네? 아하, 좀전에 들은 건 내일 아침이구나!
(독일은 24시간제를 쓴다. 아, 헷갈려. 나 군대 갔다 온 거 맞아?)
생각해 보니 그 "early"가 그 "early"였어. "soon"이라 해야 할 것을! OTL
끝내 바이로이트를 거쳐 드레스덴으로 가는 기차표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무시무시한 지뢰밭 하나 통과.

▶ 상황 4.

기차 타는 곳이 어디야! 헤매다 보니 5분밖에 안 남았다.
겨우 찾아갔는데 기차가 왜 안 와.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니 10분쯤 연착된단다. 15분 넘게 연착되었던 것 같다.
이게 왜 중요하냐면 바이로이트 역 도착 시각이 오후 3시 53분이었기 때문이다.
4시에 공연 시작한단 말이다!
나는 표도 없어서 극장 옆 택시 서는 곳에서 '주헤 카르테' 신공을 펼쳐야 한다.
절망적인 상황.

여기서 잠깐! 바이로이트 축전 표 구하는 법 소개:
http://wagnerian.textcube.com/entry/Suche-Karte

▶ 상황 5.

바이로이트 가는 기차로 갈아타려고 먼저 뉘른베르크 가는 기차를 탔다.
"실례합니다. 제 좌석이 어딜까요?"
"일등석인가요 이등석인가요?"
"이등석인데요."
"여기는 일등석 칸이에요. 이등석은 저쪽으로 가세요."
아놔, 어쩐지 시설이 좋더라.
자리를 잡은 다음 마침 배가 고파서 식당칸에 갔더니 하나 빼고 다 그릇에 담긴 것들.
자리에 두고 온 짐도 걱정되고 해서 초코바 비슷한 것과 물(Mineralwasser)을 샀다.
원래 나는 초콜릿, 아이스크림, 커피, 콜라 등 향정신성 식품은 안 먹지만 어쩌랴.
그런데... 자리에 와서 포장을 뜯어보니 초코바가 아니라 아이스바다. 아놔...
그래 뭐, 오늘 점심은 초코 아이스바다.

(c) 롯데삼강 http://www.lottesamkang.co.kr


▶ 상황 6.


마침내 바이로이트 가는 기차를 탔다. 드디어, 드디어...
바이로이트행 표지판 사진도 함 찍고...


역에 도착하면 재빨리 택시를 잡고 극장으로 가는 거야.
걸어서 15분이랬으니까 차로 5분 안쪽, 2분 안에 "Suche Karte" 신공으로 입성한다.
이거 완전 미션 임파서블이군. 그래도 리브리에를 들고 있으면 주목받을 거야.

소니 이북리더 리브리에(Librié)


▶ 상황 7.


맞다, 여기 승객들한테도 주헤 카르테 신공을 펼쳐보자!
음... 이것 참 창피한걸?
모르는 사람은 기차표 구하는 줄 알까 봐 "페스트슈피엘?"이라고 말하면서
리브리에를 들고 기차를 한 바퀴 돌았다. 사람들이 웃다가 쓰러진다.
끝내 헛수고.
자리에 돌아오니 옆에 있던 독일 할머니들이 묻는다. "그래서 표 구했어?"

▶ 상황 8.

어떤 아주머니가 자기 동생이 바이로이트 산다면서
표를 구하는 법을 알아봐 주겠단다.
고맙기는 하지만 별로 기대는 안 되는...
앗, 동생이 차로 극장까지 태워줄 거라고요? 고맙습니다!!
그런데... 극장을 약 100미터 앞에 두고 바리케이트가 처져 있다.
정확하게 알아듣지는 못했으나 택시만 통과할 수 있다는 듯하다.
아무나 극장 앞에 차 세울 수 없다는 얘기겠지.
배낭을 메고, 뛰어, 뛰어! 2분 전!

죠낸 뛰는 거다!
(사진은 디씨클갤에서 돌아다니던 짤방)

아놔, 오르막길... 푸른 언덕(Der Grüne Hügel)이라 이거지? 1분 전!
헉헉헉... 상황 종료. OTL

▶ 상황 9.

그래도 아직 희망은 있다. 1막 끝나고 표를 팔아버리려는 사람이 나타날지도 몰라.
일단 극장 앞에서 사진 한 판 박고,
한 손에는 여전히 'Suche Karte'라고 또렷이 나오는 내 사랑 리브리에를 들고서
매표소 앞을 한 판 더... 어어, 앗!
리브리에를 떨어트려 버렸다!
바닥에는 빗물도 약간 있었는데...ㅠ.ㅠ
건전지는 도대체 어디로 도망간 거야!
뭐... 리브리에는 전자잉크를 쓰기 때문에
전원이 갑자기 꺼져도 마지막 화면이 남아있으니
일단 주헤 카르테 신공 펼치기에는 문제가 없다.



▶ 상황 10.

택시가 서는 곳으로 갔더니 젊은 남녀가 '주헤 카르테' 종이를 들고 있다.
저렇게 펜으로 쓴 걸로는 약해.
"당신들 얼마나 이러고 있었어요?"
"2시간이요."
헉... 갑자기 지각한 게 하나도 속상하지 않다.
아니다, 어쩌면 경쟁자를 물리치려고 거짓말했을지도 몰라.
(속고만 살았냐!)

※ 여기서 보충 설명: 2006년 바이로이트 축전에는 <니벨룽의 반지> 새 프로덕션이 올라왔고, 적어도 독일에서는 명성이 카라얀 못지않은 크리스티안 틸레만이 처음으로 바이로이트에서 <니벨룽의 반지>를 지휘한 해였습니다. 그야말로 표 구하기가 하늘에서 별 따기였지요. 이런 상황에서 제가 '돈키호테 짓'을 했습니다. 미치면 무슨 짓을 못해요. ^^;

여기가 바이로이트 축전극장! 이 건물 왼쪽에 택시가 선다.


▶ 상황 11.

<신들의 황혼> 서막과 1막, 그리고 막간 휴식시간까지 2시간 넘게 걸리겠지?
시간이 있으니 숙소부터 잡자. 숙소가 있기는 할까?
시 안내소가 도대체 어디야? 역에서 지도 하나 얻어서... 물어... 물어...
안내소에 가니 사람은 없고 소책자들만 있다.
종류별로 하나씩 집은 뒤 살펴보니 숙소 연락처를 모아놓은 게 있다.
공중전화로, '방 있어요?'
없어요. 없어요. 없... 아놔. OTL
끝내 이웃마을에 있는 팬션을 하나 찾았다.
창문이 어쩌고 하면서 방에 하자가 있다는 듯이 말했지만 무조건 '괜찮아요!' 했다.
시간이 없으니 택시를 타고 가서 방 열쇠를 받은 다음(밤늦게는 체크인이 안 된단다.)
다시 주헤 카르테 모드.


... 그곳에서 귀인을 만나리니, 순수한 바보여! (다음 편에 계속)


다음 글 읽기:

☞ 바그네리안 김원철의 바이로이트 여행기 (2)
☞ 바그네리안 김원철의 바이로이트 여행기 (3)
☞ 바그네리안 김원철의 바이로이트 여행기 (4)
☞ 바그네리안 김원철의 바이로이트 여행기 (5)

2008년 5월 28일 수요일

'라인의 황금' 제목은 어디서 왔나?

"바그너는 항상 기발한 방법으로 돈을 더 받아갔습니다. 어느 여름, 그는 라인강 건너 편 쇼트 가족의 집에 살고 있었죠. 매일 저녁 그는 배를 타고 강을 건넜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아침 다시 프란츠 쇼트 씨에게 돌아 왔죠. 프란츠 쇼트 씨는 저희 회사 설립자의 손자입니다. 그리곤 말했습니다. '돈이 다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러자 쇼트 씨가 물었죠. '도대체 어디로 갔는데요?' 그러자 그는 황금 동전들이 모두 강으로 떨어져 버렸다고 했죠. 이 때문에 반지 연작 1부 제목이 '라인의 황금'이 된 것입니다."

- 크리스티아나 클라우슈틴 (쇼트 뮤직 출판사 중역). EBS 음악기행 클래식 - 라이프치히와 마인츠 중에서

... 바그너, 이 알베리히 같은 넘 -_-;

2008년 5월 21일 수요일

1933년 바이로이트 신들의 황혼 게네랄프로베 중에서 - 프리다 라이더 & 막스 로렌츠

- SiteLink #1 : http://kr.youtube.com/watch?v=1Xmr-8HjWow

말로만 듣던 프리다 라이더 목소리 첨 들어본다. @.@;
노래 진짜 끝내주게 잘한다. ㅠㅠㅠㅠㅠ

2007년 8월 3일 금요일

[펌] 바그너: 반지 전체 드라마 분석 (이하일)

출처는 하이텔 시절 바그네리안 게시판

*

제  목:[해설] 바그너: 반지 전체 드라마 분석            관련자료:없음  [1688]

보낸이:이하일  (laudamus)  1999-12-07 02:20  조회:371  추천:1

바그네리언 소모임 감상회용 참고자료입니다. 졸렬하나마 참조가 될 수

있다고 보아 가필하여 올립니다.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으므로 기존의 정설(???)과

다를 수도 있으니 유념 바랍니다.  

                                    = 이하일 =



- 시각 : 권력과 사랑, 멸망과 구원의 메시지 -



1. 序夜 : 라인의 황금



반지= 권력, 세계지배(only for 사랑을 포기한 자) <=> 사랑



극의 구성: '프롤로그-주요부(기서결)-에필로그' 형식의 단막극

1) 주요부는 하룻 낮동안(시간의 일치)의 단일사건(행위의 일치),

  등장인물 많으나 지나가는 식의 단순진행

2)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는 내용상 좀 별개.

3) 장소의 흐름 : '지상 => 지하 => 지상'으로 간결(단막극임)



멸망을 막기 위한 보탄의 행위

1) 발할라 축조

2) 알베리히의 반지 강탈

3) 반지를 거인에게 줌 (following 에르다의 충고)

4) 프라이아를 빼았기면 老死

(이외에 벨중族 및 발퀴레 생산 件은 발퀴레에 언급됨)



프리카(=결혼의 신)의 히스테리

1) 남자 불신(그리스신화의 헤라(Juno)와 캐릭터상 유사形)

2) 보탄을 '가정'에 묶어두기 위해 발할축조 승낙

3) 발할의 희망 => 프리카: Home(가정), but 보탄: 城(권위와 방어)



로게의갈등과 동상이몽

1) 프라이아 Big Deal을 제안, 대안으로 반지를 제시

2) 멸망 예측후 탈출 궁리( 마지막 대사에 노출)



보탄

1) 애초부터 권력에 미련(=>반지의 저주), 양면성

2) 프리카도 지배자의 힘으로 얻은 것이었음(대사중에 암시)

3) 공인된 힘의 원천은 '계약' ( Runes of honestly concluded covenant)



2. 一夜 : 발퀴레



발퀴레 이전 상황(대사에 언급)

1) 발퀴레 9人 생산 ( with 에르다, for 발할수호용 전사 스카웃)

2) 벨중族 생산 for 반지탈환,100% 능동적 영웅 기대

3) 알베리히도 아들(하겐) 생산 for 반지탈환, 알베:자식사랑無)



발퀴레의 문학적 구성(고금의 최고수준)

: '기/승/전/결'의 완벽한 구성 => 전환국면의 내적 필연 치밀=>인간적 공감대.

  비로서 정상적 인간화(as motal subjects) 등장

  인간심리 통찰 탁월, 등장인물 각각의 상호 관계 복잡/미묘



보탄

1) 계약의 굴레

2) 사랑과 권력을 동시에 추구, 이율배반의 모순적 존재

3) 神(자신)보다 자유로운자 물색

4) 멸망을 막기위한 처절한 노력, 또한편 半 포기상태에 도달



브륀힐데의 불복 : "사랑"의 발견과 실천



3. 二夜 : 지크프리트



문학적 구조 : '기/서/결' <= 기승전결 아님, 중대 전환국면 없음.

             알베리히의 등장 내용상 무관(알베:미메,알베:보탄의 애증상기)



장소적 흐름 : 동굴 => 숲속 => 산꼭데기 (점층적 해방감)

음악적 흐름 : 암울 => 서광 => 광채 (점층적 해방감)



문제점

1) 발퀴레와 물리적 규모 비슷하나 작품성 상대적 미약

2) 오케: 저음 위주의 답답한 느낌

3) 남성聲만의 진행(성부배분 무리), 브륀힐데 단 1/8 남기고 등장.



브륀힐데

1) "사랑"을 통해 잠에서 해방(대사에도 언급됨)

2)신계의 멸망과 발할라의 멸망에 달관(멸망을 인식하기 시작,

   =>최후 대사에 언급됨)



지크프리트 :

1) 神에 대한 자유도 100% => 보탄을 거세시킴

  (동시에 보탄이 기대하던 바, 보탄의 양면적 성격 노출)

2) 사태의 전말 무지 => 훗날 사망, 멸망의 원인

  에르다와 보탄은 이 단계에서 멸망을 기정사실로 자인,노력 포기,수동화



에르다 :

  발퀴레의 母,딸에 대한 애정 노출(발퀴레의 프리카와 대조)



4. 三夜 : 신들의 황혼



문학적 구성 :  '프롤로그-기/승/전/결'의 구조, 내용 복잡.

프롤로그의 역할 : 전편에 언급되고 지크3막에서 기정사실화된 멸망의

                 개념을 재확인.

진행상 지크프리트의 회복과 사망이 고비.(원래대로 제목이 '지크의

죽음'이었다면

     그 부분은 전환점이 아니라 종결이었을 듯)

음악 : 전편의 거의 모든 모티브가 계속 등장, 관현악 변화무쌍

      => 번잡한 느낌. 정서적으로 매우 격렬



노른의 대사(프롤로그)

1) 보탄의 창의 문구는 "계약". 계약의 이행 = 통치의 명분

  계약을 어긴 보탄 => 정당성 상실

2) 보탄의 창은 한쪽눈알의 대가

3) 보탄은 방랑후, 장작을 쌓아 "멸망을 준비"

4) 로게 : 보탄휘하 탈출기도(라인의 황금 대사에 노출) but 불의 형태로 속박



반지 포기 충고 2회

1) to 브륀힐데 from 발트라우테 : 거부 for "사랑"

2) to 지크프리트 from 라인처녀 : 거부 for 두려움無



브륀힐데

: 오로지 사랑, 멸망 신경안씀. 멸망의 순간 보탄을 원망하며 사랑을 갈망



지크프리트

: 두려움無, 권력욕無 => 반지의 저주 불통, but 치명적 無知 => 결국 저주



알베리히/하겐 父子

1) 사태의 전모파악 => 반지의 저주 불통인 지크프리트에 우위

2) 하겐은 알베의 원격조종물



* 총제적 개관



1) 사랑과 권력은 이율배반적, 권력= 황금

2) 사랑을 일찍이 포기한 저주와 절대惡이 결국 생존

3) 권력을 탐하면 멸망, but 사랑만으론 惡을 제압 불가.무지하면 결국 저주?

4) 정보를 소유(알베리히부자)한 惡이 승리 => 정보를 쥔자가 세상을 지배

5) 권선징악적 메시지 없음. 결국 사랑에 대한 아리송한 메아리.

6) 완벽한 영웅 無

7) 멸망의 능동적 요인 : 로게, 브륀힐데, 지크프리트



* 도출된 애매/부정적 결론에 대한 바그너의 사고 추정 (사견)

      => 사랑, 힘 이외에 '인식'이 필요하나, 인식은 대개 욕망으로 발전

      여기서 욕망은 '멸망'의 씨앗.



         인식과 동시에 No욕망이려면 "극기"의 개념 필요.

         인식은 타인으로부터의 "가르침" 또는 "깨달음"에 의해 가능.

         당연히 후자가 더 고차원적.

         "깨달음"과 "극기"의 영웅 => 파르지팔,'영웅으로서의 완결성'



이상입니다. 도움이 될는지요.

2007년 3월 14일 수요일

왜 지크프리트인가? (니벨룽의 반지 플롯에 대해)

왜 지크프리트인가?   | 자유 광장            2007.03.13 12:54
퍼스나콘 김원철(wagnerian97) 카페스탭                 http://cafe.naver.com/wagnerian/475 이 게시물의 주소를 복사합니다
텍스트를 해석하는 방향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보 탄이 원하는 것은 예정된 신계의 멸망을 막는 것입니다. 최초의 예언대로라면 신계는 파졸트 등의 거인족의 공격을 받아 멸망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발할 성을 짓고 발퀴레를 시켜 전사를 발할로 모셔오는 등의 행동이 모두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서입니다. 지크문트는 반지 문제가 아니더라도 발할 성을 지키는 전사로 보탄에게 필요합니다. 발퀴레가 데려오는 전사들만으로는 아무래도 제대로 된 한 방이 부족했던 것이죠. 보탄의 창과 도너의 망치라는 궁극의 병기로도 필패라는 예언이 나왔으니까 말이죠. 신화의 예언이 항상 그렇듯이 예언을 아는 자가 그것을 막으려고 노력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유일한 방법은 제3의 힘이 그들을 구원하는 것이죠.

그런데 지크문트는 신의 의지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애초부터 자격 미달입니다. 보탄도 이것을 알았던 것 같습니다.

보탄
어느 신의 보호도 받지 못하고
어느 신의 계율에도 구속되지 않는 자,
그만이 그 일을 해낼 수 있으리니,
그 일은 신들에게 필요하지만
신들은 할 수 없는 그런 일이라오.

바로 지크프리트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단순히 지크문트의 아들로는 부족합니다. 지클린데와의 금지된 사랑을 통해 태어난 존재,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존재야말로 신들의 질서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것이죠.

프리카
(격하게 계속하면서)
그 역경은 당신이 그를 위해
일부러 만든 것,
칼에게도 같은 운명을 주었던 셈인데,
당신은 저를 속이시렵니까?

여 기서 모순이 생깁니다. 보탄이 기존 질서를 지키려면 지크문트 등을 죽여야 합니다. 내심 얼렁뚱땅 넘어갈 수 있기를 바랐겠지만 프리카는 가차없죠. 브륀힐데의 희생이 필요한 이유가 그 때문입니다. 그러나 보탄이 가장 사랑하는 브륀힐데를 희생시켜 얻은 결과는 공허합니다. 그래서 보탄은 신계의 멸망을 막을 계획을 사실상 포기하고 브륀힐데와 지크프리트에게 모든 것을 물려줄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보탄
너를 신부로 맞을 수 있는 자는
신인 나보다 더 자유로운 용사이리라!
(...)
별들이여, 밝게 빛나
그 행복한 남자를 비추어라.
그리고 이 불행한 신과는
그 눈을 감고 작별을 하자.

그 러나 마지막으로 남은 문제가 있지요. 지크프리트는 신의 의지에 반하는 존재이니 보탄은 지크프리트를 끝까지 막아야 합니다. 그러니 보탄의 선택은 스스로 지크프리트에게 거세되는 것이 될 수밖에 없죠. 이때 보탄의 태도는 마지막으로 보여주는 투정에 가깝습니다. 아버지가 사위에게 느끼는 질투도 있고요.

방랑자
용감한 후예, 네가 나를 알면,
넌 나를 욕하지 않을 걸.
이렇게 네게 친밀하게 대하는데
위협하다니 내 마음을 고통스럽게 만드는구나.
난 예로부터 너의 밝은 성질을 사랑했지만
내 성내는 분노는 그것에도 역시 공포를 낳는단다.
이렇듯 내가 사랑스러워 하는 참으로 고귀한 자야!
오늘은 내게 질투를 일깨우지 말아라.
그것이 너와 나를 무산시키리니!
(...)
가라! 나는 너를 막을 수 없다!

2005년 9월 19일 월요일

[펌] <니벨룽의 반지> vs. <반지의 제왕>

박원철님께 허락 받고 퍼왔습니다.
출처: 고클래식

<니벨룽의 반지> vs. <반지의 제왕>
글쓴이 박원철 (wagner) 날짜 2005년 9월 19일 12시 57분 추천 4 조회 110

오래전부터 이 주제를 가지고 글을 한번 써 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남들이 한 이야기를 베끼고 또 베끼는 모양새가 될 듯해서 못 하고 있었습니다.

<반지>가 곧 공연될 예정이기에, 북구 신화 이야기들을 쭉 한번 ㅎㅜㅀ는 과정중에서

두 작품간의 관계가 다시 떠올라서 지난 며칠 찾아보고 생각해보면서 쓴 글입니다.

결론부터 제시하면 "두 작품은 서로 별 상관없습니다." 괜히 가져다 붙이려는 억지만

쓰지 않는다면, 두 작품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일 정도로 관계가 없는

작품입니다.

첨삭없이 옮기는 조건으로, 다른 곳으로 퍼 가셔도 무방합니다.

(특히 톨킨 팬 여러분의 열화같은 폭격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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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 vs. 톨킨의 <반지의 제왕>

- 그 신화 사용을 중심으로 -

박원철

바 그너가 그의 역작 <니벨룽의 반지>를 처음 초연한 것은 1876년이다. 또 영화로 제작되어 널리 알려진 톨킨의 소설 <반지의 제왕> 초판은 1955년에 출판되었다. 양쪽 모두 제목에 반지가 들어가고, 또한 판타지 장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로 인해 지난 반세기 동안, 이 두 작품간의 관계를 조명해보려는 많은 시도가 있었다. 그리고 톨킨 팬의 입장에서는 억울하지만, 이 모든 시도에서 “톨킨의 반지는 바그너의 반지에서 얼마나 영향을 받았는가?”라는 질문이 항상 논의의 초점이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딜레마가 있다. 만약 “톨킨의 반지는 바그너의 반지와 아무 상관없다”라고 주장한다면, 바그너 팬들이 몹시 섭섭해 할 것이고, 반대로 “톨킨의 반지는 바그너 반지의 (영국식) 아류이다”라고 말한다면, 격분한 톨킨 팬들과 원수가 되기 때문이다.


결 론부터 먼저 제시하고 이야기를 계속하자: 바그너의 반지와 톨킨의 반지는 같은 샘물에서 흘러나온 서로 다른 물줄기와 같다. 즉, 각각 이야기의 시작점은 동일하지만 그 변화 과정과 최종 지향점이 전혀 다른 별개의 작품이다. 개인적으로는 위의 질문 – 영향을 받았는가 안 받았는가? –에 대한 직접적인 답은 “안 받았다”에 가깝다고 본다. 좀 더 정확히는 “톨킨은 주어진 재료를 가지고 가능한 한 상이한 작품을 만들려고 노력했고, 또 성공했다”라는 표현이 가장 적절하다고 하겠다.


바그너의 경우

바 그너의 반지와 톨킨의 반지가 비교 대상이 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양쪽 모두 북구 신화 –특히 운문 엣다와 볼숭가 사가-를 사용하여 작품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두 작품의 제목에 등장하는 “반지”도 바로 이 북구 신화의 유명한 “안드바리의 반지”에서 차용한 것이다.


여 기서 잠깐 난장이 안드바리의 반지와 그 저주 이야기를 보기로 하자. 북구 신화의 주신인 오딘과 말썽꾸러기 신 로키, 그리고 회니르가 세상에 나와 돌아다니다가 어느 강가에서 장난삼아 수달을 한 마리 잡아 죽인다. 그리고 죽은 수달을 들고 근처 어부의 집에서 하룻밤 잠을 청한다. 그러나 집주인은 신들의 손에 들린 수달을 보자마자, 집에 있던 2명의 아들들과 함께 신들을 결박해 버린다. 포박당한 신들에게 집주인은 그들이 잡아 죽인 수달이 자기의 둘째 아들이었다고 이야기하며, 수달의 시체를 가릴 만큼의 황금을 배상금으로 요구한다. 이에 로키만 혼자 풀려 나와, 깊은 폭포 속에 물고기로 변신해 살고 있는 난장이 안드바리에게 가서 그를 그물로 잡아 올리고 안드바리가 소유했던 모든 금을 빼앗는다. 로키가 안드바리의 모든 금을 빼앗고, 마지막으로 안드바리의 손에 끼여 있던 반지까지 요구하자, 그때 안드바리는 이후로 자기의 금을 가지는 모든 사람들이 파멸 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로키는 이에 굴하지 않고 돌아와 안드바리의 황금으로 수달의 시체를 덮는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집주인 흐레이드마르는 죽은 수달의 수염이 보인다며 오딘이 가지고 있던 안드바리의 반지로 수염을 가려줄 것을 요구한다. 신들이 그 말을 따르고 풀려 나자, 그 후 흐레이드마르의 맏아들 파프니르는 자기 아버지를 죽이고 혼자 보물을 독차지한 후 용으로 변해 버린다.


< 니벨룽의 반지>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이야기가 반지 4부작 중 첫번째 라인황금의 이야기와 꼭같지는 않지만 놀랄만큼 유사함을 알아 차렸을 것이다.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달라지지만, 줄거리의 기본 얼개는 안드바리의 반지 그대로이고, 대신 <니벨룽의 반지>의 경우, 바그너는 반지 자체에 몇가지 새롭고 중요한 속성들 – 사랑을 부인한 자만이 만들 수 있다는 점과 세상을 지배할 힘을 얻는다는 점 – 을 부여해서 전혀 새로운 이야기로 만들어 낸다. 안드바리의 반지가 단순히 저주를 지닌 물건에 불과하다면, 바그너의 반지에서는 처음으로 마법적 속성을 가진 (마법) 반지로 만들었다고나 할까?


이 처럼 바그너가 북구 신화를 차용한 것은 <니벨룽의 반지 4부작>에 계속해서 나타나는데, 위에 언급한 안드바리의 반지 이외에도 오누이 시그문트와 시그니의 사랑, 오딘의 명을 거역한 죄로 발키리 신분을 빼앗긴 시그르드리파, 부러진 아버지의 칼을 다시 붙이는 시구르드, 용을 죽이는 이야기, 양 아버지와 싸우고 그를 죽여 버리는 시구르드, 브륀힐드 때문에 영웅 시구르드가 죽임을 당하는 이야기 등, <니벨룽의 반지> 줄거리 거의 대부분을 북구 신화와 그 전설에 기대고 있다고 보아도 좋을 정도로 많은 북구 신화 속의 에피소드들이 등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도 <니벨룽의 반지>가 북구 신화의 오페라 판이라고 이야기하지 않는 이유는 바그너가 북구 신화 속의 여러 에피소드들은 따왔으되 그것을 자기의 필요에 맞게 완전히 각색/ 가공했기 때문이다. 또 그 가공의 정도가 원래 신화의 모습과 전혀 달라지는 것에 개의치 않는 정도로 심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예 를 들어 보자. 운문 엣다에서 오딘의 명을 거역하고 인간 왕을 도와준 벌로 잠이 든 발퀴레의 이름은 시그르드리파이다. 여기에 반지의 지크프리트에 해당하는 시구르드와 사랑을 나누게 되는 발키리는 브륀힐드이다. 서로 다른 발키리이다. 하지만 바그너에게는 발키리가 둘 씩이나 필요 없었다. 따라서 바그너는 이 둘을 하나로 간단하게 합쳐 버리고(!) 자기의 악극을 만들어 나갔다. 즉, 우리가 알고 있는 브륀힐데 하나로 통일시켜 버린 것이다.

또 다른 예를 보도록 하자. 안드바리의 반지를 가지고 용으로 변한 파프니르는 맏아들이었다고 위에서 언급했다. 이 용을 죽이게 되는 시구르드에게 반지 이야기를 해주는 자는 바로 파프니르의 살아남은 셋째 동생 레긴이다. 문제는 볼숭가 사가에서의 레긴은 주인공 시구르드의 양아버지라는 점이다. <니벨룽의 반지>에서는 미메에 해당하는 역할이다. 그러나 <니벨룽의 반지>에서 미메는 황금을 훔쳐서 반지를 만든 알베리히의 동생이지, 용으로 변한 파프너의 동생이 아니다. 반지에서 파프너에게는 엄연히 다른 형제 – 파졸트 –가 있기 때문이다. 가사를 직접 썼던 바그너가 이런 상충되는 상황을 모를 리가 없다. 오히려 자기에게 필요한 내용만 추려서 자기가 원하는 용도로 새로 재단했다고 보아야 한다.


옛 부터 그리스 비극을 오페라로 옮길 때 그 가사를 손보는 경우는 있었지만, 그 기본 줄거리는 손을 대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바그너의 경우, 북구 신화의 많은 에피소드들을 차용하면서 과감하게도 그 내용을 변경시켜 자기의 작품으로 만들어 내는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니벨룽의 반지>를 보면서 느껴지는 과도한 폭력성과 염세성은 분명히 이런 북구 신화의 에피소드들을 사용하면서 생겨난 부수적인 현상이고, 여기에 바그너 자신이 꿈꿔 왔던 사회주의적이고 영웅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인간형의 제시가 더해지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현재의 <니벨룽의 반지>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톨킨의 경우

< 반지의 제왕>이 북구 신화의 영향을 받았고 환타지 문학의 새 장을 열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다시 언급할 필요가 없다. 다만, <반지의 제왕>을 읽은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도대체 어느 부분에서 그가 북구 신화의 영향을 받았는지 찾아 내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영화만 본 사람은 이 논의에서 끼워주지도 않는다. 원본을 읽어라. 아니면 입을 다물라.) 흔히 <반지의 제왕>과 북구신화 사이의 관계를 설명할 때 가장 많이 제시되는 두 가지의 예는, 위에 언급한 저주 받은 안드바리의 반지 이야기와 시구르드의 칼 그람 이야기이다.


반 지 이야기를 잠시 멈추고 이번에는 칼 이야기를 보자. 볼숭가 사가의 주인공 시구르드는 양아버지이자 대장장이인 레긴이 만들어 주는 칼을 번번이 부러 뜨려 버린다. 대신 그는 자기의 생모에게 가서 영웅이었던 아버지 시그문트가 남긴, 부러진 칼 그람을 받아 온다. 그리고 그 칼을 새로 붙여서 자기의 칼로 만들고 자기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 용을 무찌르러 나간다. 여기서의 칼은 분명히 그의 출생 신분과 권위, 그리고 앞으로 이루어 낼 영웅적 업적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아라곤의 나르실이 그것이고, 지크프리트의 노퉁이 그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반지의 제왕>에서 북구 신화 속의 에피소드에 대한 직접적인 관련은 여기서 끝난다. 반지와 칼, 단 두 가지 외에 없다. 북구 신화의 여러 에피소드들을 가지고 자기 마음대로 범벅 해 놓은 바그너의 반지와 달리, 톨킨의 반지에서는 북구 신화와 대응되는 뚜렷한 에피소드들을 찾을 수 없다. 솔직히 말해, 앞서 언급한 반지 이야기나 칼 이야기도 <반지의 제왕> 중심 줄거리 속에서 1:1로 대비되지는 않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혹자는 모든 것을 감시하는 사우론의 눈이 외눈박이 신 오딘과 닮았다거나, 간달프의 백마 섀도우팍스가 발 8개 달린 오딘의 말 슬레이니프를 연상시킨다고 주장하지만, 그 정도의 엷은 연관성이라면, 우리나라의 외눈박이 도깨비들은 사우론의 손자들이어야 하고, 적토마에 올라 탄 관우는 중국판 간달프이어야 한다.


그 렇다면 우리가 해야 되는 진짜 질문은 “이렇듯 유사한 내용도 많지 않다면, <반지의 제왕>은 어떤 의미에서 북구 신화의 영향을 받았는가?” 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 답은 훨씬 교묘한데 숨어져 있다. <반지의 제왕>이 북구 신화에서 보고 배운 것은 각각의 개별 에피소드가 아니라, 북구 신화의 이야기 구조이다.


우 선 지적할 수 있는 것이 길고 긴 족보에 대한 관심이다. 톨킨은 거의 대부분의 주인공을 소개할 때 그의 가족사에 대한 긴 언급을 한다. 이는 단순히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가에서 나온 역사성을 부여하기 위한 장치를 톨킨이 자신의 소설에서도 사용한 것이다. 부록A으로 붙어있는 누메리안 왕가의 아라곤 족보나 부록 C에 붙어 있는 호빗들의 족보 표는 그 좋은 예이다. 이런 것을 보면서 사람들은 마치 (사가에서처럼) 실제로 존재했던 역사를 배우게 되는 듯한 느낌을 받는 것이다.


< 반지의 제왕>에서 보여지는 사가의 두 번째 특징으로 정형화된 인물 묘사를 들 수 있다. 여기서의 정형화란 재미없고 생동감 없는 등장인물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인물의 첫 묘사부터 앞으로 그가 대강 어떤 행동을 보일지 미리 짐작케 할 만한 힌트를 미리 뿌려 놓음을 뜻한다. 예로써 엘론드의 회의에서 첫 등장하는 보로미르의 경우, 톨킨은 보로미르가 “큰 키에, 고상하고 잘 생긴 얼굴, 검은 머리와 잿빛 눈, 자신감이 넘치고 동시에 매서운 눈빛을 가진 사람”이라고 묘사한다. 여기서 묘사한 자신감과 매서운 눈빛이 발전하여 나중에는 반지에 대한 욕망에까지 다다르는 단초가 되는 것이다. 이렇듯 원문을 읽어 보면, 톨킨이 매번 각 등장인물에 대한 요약을 제공하면서 글을 계속 이어나감을 볼 수 있다.


사 가와의 관련을 보여주는 세 번째 재미난 장치는 사건이 진행되어가는 방향에 대한 관심이다. 즉,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동안 서술자의 관심은 사건과 모험, 그리고 영웅적 행동들에 대해서만 집중되어진다. 이는 개인적인 감정이나 사사로운 느낌이 이야기 도중에 끼어 드는 것을 차단하고, 오직 하나, 주어진 이야기의 완성과 관련된 사건들만이 계속 나열되게 함으로써 극적 효과를 높이는 사가 문학의 특징이었다. 이런 연유로 책에서는 - 영화와 전혀 다르게 - 아라곤과 아르웬의 사랑 이야기가 본문에서 빠지고 부록 편에 가서 붙어 있고, 오히려 파라미르와 에오윈의 이야기가 아주 잠깐 언급되는 정도이다. (사가가 교육과 전승에 쓰이기 위한 목적으로 쓰여졌기에 당연히 개인적인 주석이나 관심사는 배제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물 론 이외에도 <반지의 제왕>에 나타난 북구 신화의 영향은 훨씬 많이 찾아 낼 수 있다. 중간계로 번역되는 Middle-earth가 고대 아이슬란드어 미드가르드의 영어식 표현이고, 운문 엣다에서의 Myrkwood가 톨킨에서는 곧바로 Mirkwood로 나오는 등 말이다. 하지만, 앞서 보았듯이 북구 신화를 다루어서 자기 것으로 만드는 작업을 하면서 톨킨은 몹시도 섬세하게 작업을 하였기에 웬만한 눈썰미를 가지고서는 그 원형을 찾아 내기가 쉽지 않다. 톨킨에게 있어서 북구 신화는 이야기를 정하고 끌고 나가는 커다란 무대 장치였지, 바그너처럼 개별 에피소드를 가져다 쓰는 재료가 아니었던 것이다.


바그너 vs. 톨킨

반 지의 경우로 돌아가보자. 바그너가 엣다에서 나온 저주가 담긴 반지를 가져다가 세상을 지배하는 힘을 새로 부여했다면, 톨킨은 이런 반지에 자유 의지를 새로 담아 자기 원주인을 찾아가는 무서움을 더했다. 바그너의 반지가 가진 자를 불행에 빠뜨려 죽게 하는 매개체라면, 톨킨의 반지는 죽음보다 더 끔찍한, 반지 소유자를 반지의 지배하에 놓게 하는 특징을 지녔다. 특히 바그너의 반지가 단순히 저주 받은 물건이었다면, 톨킨의 반지는 반지 그 자체가 살아서 힘을 발휘하는 사악한 존재라고까지 할 수 있다.


이 렇게 볼 때 두 반지가 같은 반지인가? 답은 분명 “아니다”이다. 굳이 따지면 톨킨의 반지가 훨씬 고급스럽고(?) 상위의 개념이다. 그렇다면 톨킨의 반지는 바그너 반지의 업그레이드 판인가? 혹은 맨 처음 질문 – 톨킨의 반지는 바그너의 반지에서 어떻게 영향을 받았는가? – 을 다시 생각해보자.


톨킨은 바그너와 그의 음악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톨킨 자신이 옥스포드의 고대영어 교수이었기에 북구 신화와 사가에는 정통했었고, 따라서 북구 신화를 차용한 바그너의 작품을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또한 그의 절친한 친구였던 C.S. 루이스가 열열한 바그네리안이었으며, 20세기 초의 유럽 문화계의 풍토를 보아도 바그너에 대한 자기만의 관점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상태였었다. 게다가 톨킨은 C.S. 루이스와 함께 종종 바그너 공연을 보러 갔었으며, 한때는 C.S. 루이스와 함께 <니벨룽의 반지>의 두 번째 작품 발퀴레를 영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시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톨킨이 자신의 <반지의 제왕>과 <니벨룽의 반지>의 관계에 대해서만큼은 “두 반지는 모두 둥글고 황금으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둘 사이의 유사성을 그것으로 끝이다”라는 엄청난(?) 내용을 글로 남겼다.


바 그너를 잘 알고 있던 그가 이런 발언을 한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추측하건대 그는 바그너와 바그너 음악이 싫었던 듯 하다. 좀더 정확히 말해, 바그너가 그의 예술을 통해 추구했던 세상의 모습에 거부감을 가졌던 듯 하다. 아마도 톨킨에게 있어서, <반지의 제왕>을 통해서 그가 보여주고자 했던 가치들 – 호빗들이 보여주는 자연과의 조화상태, 아라곤에서 느껴지는 그리스도 이미지의 구원자 등 –은, 결코 바그너가 원했던, 악극을 통한 사회 개혁 – 신들의 세계가 몰락하고 영웅을 통해 새로운 세계가 도래하는 –과 양립할 수 없는 다른 지향점을 가졌다고 톨킨은 느꼈던 듯 하다. 실제로 한 사람은 독일의 민족주의자이자, 사회주의자였고 인간성의 극대화를 주창하던 음악가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이 모든 주장의 덧없음을 이미 눈으로 본, 은둔 생활을 즐기던 영국의 로마 캐톨릭 신자였다. 게다가 톨킨은 나찌즘이 어떻게 바그너를 이용해서 (그리고 그가 아끼던 북구 신화까지 함께 끌고 들어가서) 독일 사회주의라는 괴물을 만들어내고 2차 세계 대전을 만들어 냈는지 보지 않았던가? 이런 연유로, 단순히 자신의 작품이 누구의 아류라는 깍아내리는 발언 때문이 아니더라도, 톨킨은 바그너를 의식적으로 멀리할 만한 충분한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이유가 있었다고 보여진다. 다만 이 모든 부정에도 불구하고 한때 그가 바그너를 즐겨 들었고 또 열심히 연구했다는 것만큼은 역사적 사실이다. 동시에 그것이 톨킨의 작품에서 어떻게 (무의식적으로) 드러났는지는 현재 단계에서 아무도 명확히 말할 수 없다.


글 을 맺도록 하자. 톨킨이 <반지의 제왕>을 쓰면서 바그너에게서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았다는 증거는 없다. 톨킨 자신이 부인하고 또 이를 번복할 반증도 없다. 그저 위에 언급한 “바그너 반지의 업그레이드판 아니냐?”는 정도의 추측이 전부이다. 하지만 이런 추측도 톨킨이 북구 신화를 어떤 식으로 가져다 사용했는가를 고려해볼 때 실제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판단된다. 오히려 맨 처음 밝힌 대로 두 작품은 같은 샘에서 나온 서로 다른 물줄기로 보는 것이 더 현명할 듯이 보인다.

윗글에 다 못 쓴 이야기들
글쓴이 박원철 (wagner) 날짜 2005년 9월 21일 0시 08분 추천 0 조회 38

위 의 글을 쓸때 참고했지만, 글의 진행과 상관이 없어서 뺄 수 밖에 없었던 이야기들이 조금 더 있습니다. 단편적인 지식에 해당하겠지만, 그래도 이미 닫힌 관(棺)위에 못 박는 기분으로 조금 더 써 봅니다. 다 보시고 나시면, 그나마 남아 있던 의구심마저 깨끗하게 사라지시리라 믿습니다.


1. 형식상의 유사성 ?


바 그너에게서 영향을 받았다고 보는 쪽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주장이 <반지의 제왕> 전체의 구성 형식입니다. 즉, 빌보가 반지를 얻게 되는 <호빗>을 전체 이야기의 전편으로 보면, 마치 <니벨룽의 반지>가 4부작으로 이루어져 있듯이, <호빗>-<반지원정대>-<두개의 탑>-<왕의 귀환>의 4권이 바그너 반지의 4부작 형식과 (그리고 옛날 그리스 비극의 형식과도) 멋있게 일치하게 됩니다. 의도적이던 아니던 간에, 눈에 보이는 유사성은 확실히 성립됩니다. 그리고 성급한 바그너 팬들은 이것을 들고 "톨킨이 아류다"라는 주장의 근거로 삼습니다.


그 러나 실제 상황은 조금 달랐습니다. 톨킨이 <반지의 제왕>을 출판하려고 했을 때, 원래 의도는 2권으로 나누어서 내려고 했습니다. 그것을 출판사 쪽에서 3권으로 나누어서 출판하자고 고집했고, 그래서 생겨난 것이 가운데 권 <두개의 탑>입니다. 이런 연유로 지금까지도 톨킨 팬들 사이에서는 <두개의 탑>이라고 붙은 두 탑의 이름이 어느 것과 어느 것인지 긴 논쟁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적어도 톨킨의 원 의도가 3권이 아닌 2권으로 낼 생각이었다면, 형식상의 유사성을 가지고 톨킨이 바그너를 베꼈다고 몰아 붙이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2. 진화하는 반지?


두 번째 주장은 훨씬 설득력있고 그럴 듯 한 발언입니다. "절대반지 The One Ring"가 처음으로 등장하는곳은 <반지의 제왕> 이전 이야기인 <호빗>에서 입니다. 1936년에 출판된 이 책에서 빌보는 골룸이 사는 동굴속에서 우연히 - 반지의 의도에 대한 언급없이 - 절대반지를 줏게 됩니다. 문자 그대로 땅바닥에 굴러 다니는 물건을 주어 올리는데, 그것이 바로 절대 반지 였습니다. 하지만 <호빗>을 읽어 보면, <호빗>에 등장하는 이 반지는 절대로 절대반지가 아닙니다. 반지를 끼고 있는 사람을 투명인간으로 만들어 주는 속성만이 있는, 마법 반지에 해당한다고는 할 수 있지만,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무시무시한 인격을가진 그런 반지가 아닙니다. 절대 반지가 우리가 아는 절대 반지로서의 모습 - 다른 반지 가진 자들을 조정하고, 사우론에게 돌아가고자 하는 힘을 가진 - 을 가지고 나오는 첫 부분은 1954년에 나온 <반지 원정대>에서 였습니다. 크게 보면 같은 작품이라고 보여지는 이야기 속에서, 같은 반지가 이렇게 달라도 될까요? 반지도 진화한 것일까요?


이 질문에 대해, 일부 바그네리안들은 "예"라고 대답하고, 톨킨이 1940년대 말 코벤트 가든에서 공연됐던 바그너 반지를 보고 와서 힌트를 얻어, 단순한 마법 반지에서 세상을 지배하는 절대 반지로 승격시킨 것 아닌가 추측하기도 합니다. 만약 이런 추측이 맞다면, 톨킨의 반지도 여지없이 "바그너 반지의 영향하에" 들어오게 되는 것이지요.

여 기서도 답은 "아니올시다"입니다. 톨킨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톨킨의 반지 초고에는 우리가 아는 반지가 절대반지가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저 사우론이 잃어 버린 반지였고, 그 반지가 마지막 반지였기에 사우론이 그토록 열심히 찾았다는 설정으로 되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후에 이정도의 이유로는 전체 이야기를 이끌어가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하여, 현재 우리가 아는 절대반지의 위치에까지 올라 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미 우리가 아는 바 톨킨이 1930년대 이전에 이미 바그너의 반지와 그 플롯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면, 이처럼 톨킨이 반지의 속성을 바꾸는 것은 오히려 자기 작품의 내적 필요에 의한 것임을 잘 드러내 주는증거이지, 그 반대의 경우라고는 보기 힘들 것입니다.


3. 시의 운율 - 두음(頭音) vs. 각운(脚韻)


위 의 두 가지 증거에도 불구하고 제 개인적으로는 "완고한 바그네리안"의 입장에서, "그래도 혹시"라는 생각으로 이것 저것을 더 찾아 보았었습니다. 만약 아래 서술하는 내용에서 톨킨이 걸렸다면(?), 저도 톨킨이 베꼈다는 주장을 폈을 지 모릅니다.

제 관심은 운문을 표시할 때 그 운율을 어떤 장치로 표시해냈는가의 문제였습니다. 운문 엣다는 그 자체가 시였고, 바그너도 자신의 대본이 시(詩)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톨킨의 경우, 책속에 자기가 지은 많은 노래와 시를 싣고 있습니다. 자, 각각이 어떻게 되어 있을까요?


북구 신화와 바그너 대본의 공통된 특징 중의 하나는 두음법(頭音法)의 사용입니다. 특히 바그너의 경우,그 당시 시대 조류와는 동떨어진 이 두음법의 사용에 지나칠 정도로 집착하고 있었고, 직접 이 주제에 대해서 논문을 써서 발표하기도 하는 등, 나름대로 이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이런 그의 가장 큰 이유는 "두음법이야말로 인간의 원초적인 모습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운율법"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근거중의 하나로 바그너는 북구 신화를 들고 있습니다.
톨킨의 경우는 어떨까요? 만약 톨킨의 원작들이 두음법을 따른다면, 좋던 싫던 그도 이런 바그너의 주장에 동조하는 것이고, 만약 일반적인 영시의 운율인 각운법을 따른다면 - 아마도 무의식적인 레벨에서 - 시대에 동떨어진 바그너식의 주장에 별 관심이 없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톨킨의 원작은 100% 각운법만을 따르고 있습니다. 즉, 바그너식의 주장, 심지어는 북구 신화의 오리지날 포맷에는 별 관심이 없었고, 오히려 책을 읽을 영어 독자들이 "아, 이것은 참 아름다운 詩구나" 라고 느끼도록 하는데에 촛점이 가 있었습니다. 만약 톨킨이 바그너, 혹 북구 신화에 대해 아끼거나 경의를 표하려고 했다면, 이러한 문학적인 장치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두운법에 대해서 모를리 없는 사람이 이를 가볍게 무시하고 널리 퍼져있는 일반적인 각운법만을 사용했을 때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고, 적어도 그 방향성은 "바그너를 ㅉㅗㅈ아가겠다"와는 전혀 상관없을 듯 합니다.

이 런 모든 상황을 종합해 보건대, 톨킨이 바그너의 영향을 받아서 <반지의 제왕>을 썼다는 주장은 도저히 받아 들일 수 없을 듯 합니다. 분명 그가 바그너의 작품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사실이 바그너의 반지와 톨킨의 반지를 억지로 연관짓고자 하는 무모한 시도로 말미암아, 톨킨의 작품을 평가절하되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 박원철

2004년 11월 27일 토요일

발퀴레 중 '보탄의 이별' 음반 추천

제목 : '보탄의 이별' 음반 추천
등록자 : 김원철 등록일 : 2004-11-10 11:16:54 PM
조회 : 67

김문경님의 영상물 소개를 보고 생각나서 한 마디 보탭니다.

요번에 사무엘윤이 부를 발퀴레 중 '보탄의 이별' 장면 음반으로는

크나퍼츠부쉬 판의 한스 호터, 뵘 판의 테오 아담,

카라얀 판의 토마스 스튜어트 등 쟁쟁한 명연들이 많지만

제가 소개해 드릴 음반은 한 장으로 해결되는 판입니다. ^^

음반 자켓에 대한 원철이의 간단평: 키메이커의 지령을 받고 있는 스미스 호터 요원과 살찐 트리시티 닐손 요원 ㅡ,.ㅡ

Wagner - Opera Arias & Duets

LEOPOLD LUDWIG

PHILHARMONIA ORCHESTRA

BIRGIT NILSSON(SOPRANO)

HANS HOTTER(BARITONE)

TESTAMENT 1958 ADD

01. TANNHAUSER: ACT II-DICH,TEURE HALLE,GRUB ICH WIEDER(ELISABETH`S GREETHING)
02. DER FLIEGENDE HOLLANDER: ACT II-JOHOHOE!JOHOHOE!(SENTA`S BALLD)-WITH CHORUS
03. DER FLIEGENDE HOLLANDER: ACT II-WIE AUS DER FERNE
04. LOHENGRIN: ACT I-EINSAM IN TRUBEN TAGEN(ELSA`S DREAM)
05. DIE WALKURE-ACT III,SCENE 3: WAR ES SCHMAHLICH
06. DIE WALKURE-ACT III,SCENE 3: DEINEN LEICHTEN SINN LAB DICH DENN LEITEN
07. DIE WALKURE-ACT III,SCENE 3: DU ZEUGTEST EIN EDLES GESCHLECHT
08. DIE WALKURE-ACT III,SCENE 3: LEB WOHL,DU KUHNES,HERRLICHES KIND!(WOTAN`S FAREWELL)
09. DIE WALKURE-ACT III,SCENE 3: LOGE,HOR!LAUSCHE HIEHER!(MAGIC FIRE MUSIC)

아시는 분은 아시는 유명한 음반이죠? 음질은 생각보다 훨씬 좋습니다. 연주 끝내줍니다. >_<

근데 이 음반 요새 쉽게 구할 수 있는지 모르겠네요. 매장에 없으면 약만 올리는 셈인가요? ㅡ,.ㅡ

- 숙제 하면서 머리 쥐어뜯다 말고 딴 짓 하고 있는 원철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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