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지휘자 : 성시연
협연자 : 세르히오 티엠포 Sergio Tiempo, 피아노
Kurtag, Stele
Schumann, Piano Concerto in a, Op. 54
Shostakovich, Symphony No. 5 in d, Op. 47
쿠르타그(Kurtág György; 1926-)의 <스틸리 Stele>는 버르토크와 베베른과 리게티를 합쳐놓은 듯한 텍스처와 낯설고 신비롭고 꿈처럼 몽롱한 음향이 인상깊은 작품이다. 서울시향의 연주를 들으면서 나는 마치 크게 앓다가 혼이 잠시 몸을 벗어나 흐느적거리며 떠돌아다니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높은 곳에 떠서 제 몸을 내려다보는 것처럼 끈적끈적하고 찝찝한 느낌에 몸서리치다 집 밖으로 나오면 떠들썩하게 돌아가는 세상과 그로부터 동떨어진 자신이 이상의 소설 <날개>의 한 장면처럼 어지럽다. "이때 뚜우 하고 정오 사이렌이 울었다. 사람들은 모두 네 활개를 펴고 닭처럼 푸드덕거리는 것 같고 온갖 유리와 강철과 대리석과 지폐와 잉크가 부글부글 끓고 수선을 떨고 하는 것 같은 찰나! 그야말로 현란을 극한 정오다." 마침내 뒤죽박죽 세상으로부터 눈과 귀를 닫아버리면 물속 깊은 곳을 천천히 흘러다니는 듯한 느낌에 편안해진다. 서울시향의 연주에서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곡 끝머리에서 되풀이되는 다섯잇단음의 물결 치는 듯한 느낌이 좀 자연스럽지 못했다는 것인데, 사실 그런 섬세한 음향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의 음향 환경에서는 기대하기 어렵기도 하다.
세르히오 티엠포가 협연한 슈만 피아노 협주곡은 처음부터 끝까지 파격 또 파격이었다. 첫 타건부터 톡톡 튀는 것이 심상치 않더니, 이어지는 독주에서는 셈여림 표시가 p인데 아예 ppp로 터무니 없이 여리게 연주하는 것을 듣고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 뒤로도 오케스트라가 나서지 않을 때마다 마치 연인이 속삭이듯 여리게 여리게 연주하는 솜씨가 남달랐다. 그냥 여린 소리와 여리면서도 멀리 퍼져 나가는 소리는 하늘과 땅 차이인데, 여리고 멀리 퍼지는 소리를 내려면 손가락을 오히려 크게 움직여야 한다더니 과연…. 그런데 티엠포는 큰 소리를 낼 때에도 비슷한 손놀림을 한다. 피아노 소리가 빠르고 가볍게 통통통 튀어오른다! 화음을 쿵쿵 두드려댈 때에는 갑자기 아찔한 빠르기로 달린다. 세상에, 이건 슈만이 아냐! 장난꾸러기처럼 종잡을 수 없는 다이내믹과 '제비 본색'으로 어르고 달래는 루바토는 차라리 감정 과잉 슈만을 놀리는 듯하다. 오케스트라는 피아노에 정신없이 끌려다니기만 한다. 제멋대로도 이런 제멋대로가 없으니 화를 내야 할지도 모르겠다. 만약 학생이 이렇게 연주했다면 틀림없이 선생님께 크게 꾸지람을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속 슈만 망령을 날려버리고 나니 티엠포의 연주에 설득당하고 만다. 그래, 슈만은 없었다. 오직 티엠포, 티엠포! 나 그대에게 불타는 팬심(fan心)을 바칠 테야요!
지휘자 성시연의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 해석은 특별히 모난 데 없이 무난했다. 템포는 대부분 악보의 메트로놈 지시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고, 악기 간 밸런스에도 무리가 없었다. 므라빈스키의 과장된 해석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답답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겠지만, 듣자 하니 이날 연주된 작품 모두 처음 지휘해본 것이라 악보에 충실한 것이 당연하다. 나는 앞서 티엠포의 장난질에 열광하고 말았지만 편법으로 정공법을 이기기는 어렵다.
다만, 4악장 시작 부분의 템포는 ♩= 115 정도로 악보에서 지시한 ♩= 88에 비해 너무 빨랐고, 아첼레란도를 거쳐 마디 11에 이르렀을 때에는 악보에서 지시한 ♩= 104가 아니라 거의 ♩= 140 가까이 되었다. 어떻게 보면 당장에라도 폭발할 듯한 분위기에 비해 악보에서 지시한 템포가 너무 느리다고 느낄 수 있으므로 성시연의 해석이 틀렸다고 볼 수만은 없다. 그러나 템포가 빨라진 만큼 앙상블이 흐트러졌으며, 특히 트럼펫이 힘들어했다는 점은 생각해볼 문제다. 3악장 마디 129와 마디 130 사이의 짧은 게네랄파우제(Generalpause)를 무시하고 넘어간 것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서울시향의 앙상블은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특히 1악장 앞부분에서 템포와 리듬이 흔들리면서 음악이 지루해지곤 했는데, 템포가 느리다고 풀어질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집중해서 얼음장 같은 긴장감을 내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그러나 피아노의 묵직한 스타카토 음형을 업고 호른이 전면에 나서면서 조금씩 분위기가 바뀌었다. 앙상블이 흐트러지는 것은 여전했지만 연주자들 사이에 묘한 열기가 생겨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마디 188에서는 심벌즈의 제대로 된 '한 방'과 함께 팀파니와 작은북이 신나게 두드려댔고, 트럼펫은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2악장에서는 단조로운 템포에 힘입어 앙상블도 꽤 좋았으며, 3악장에서 목놓아 울부짖는 듯한 현도 훌륭했다. 4악장에서는 앙상블은 가장 나빴지만 그것을 덮을 만한 열기로 연주회장을 압도했다. 곡을 끝맺는 큰북의 무시무시한 타격 일곱 번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북받쳐 오르는 흥분을 이끌어내었다.
나는 서울시향이 이토록 미쳐 날뛰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정명훈이 지휘할 때에는 집중력은 높아도 오히려 단원들이 너무 긴장한 듯한 느낌을 받곤 했지만, 성시연이 지휘하는 서울시향은 군데군데 삐걱거리기는 했어도 단원들이 뿜어내는 열기만큼은 정명훈 때보다 더했다. 물론 작품 특성 탓도 있을 것이다. 특히 마지막 코랄 팡파르는 '브라보'를 이끌어내는 보증수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지휘자의 역할이 작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성시연은 여자이고 나이도 어리다. 그가 주로 활동해온 유럽에서는 유색인종이다. 얕잡아 보이기 딱 좋은 처지에서 악단을 이끌어야 하는 어려움이 오죽할까. 그러나 그는 한 발 잘못 디디면 엉망진창이 되어버릴 위험을 살살 헤치고 단원들 스스로 음악에 몰입하게 하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줬다. 넓은 시야를 가지고 뼈대를 탄탄하게 살리는 솜씨도 돋보였다. 화려한 콩쿠르 입상 경력이 어떤 바탕에서 나왔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웃지 못할 일화 하나. 성시연이 국내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구스타프 말러 지휘 콩쿠르에서 1위 없는 2위에 입상하면서부터다. 그런데 이미 그보다 한 해 앞서 그가 게오르그 솔티 국제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했던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다. 마침 김선욱이 리즈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음악계가 온통 김선욱 소식으로 달아올랐기 때문이다. 김선욱은 뜻하지 않은 피해자 성시연에게 협주곡 협연으로 보상해야 한다. 아님 말고.
김원철. 2008.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