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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9월 19일 토요일

베토벤: 교향곡 제5번 c단조

아라비아 숫자 5를 로마 숫자로 바꾸면 ‘V’이고, 이를 모스 부호로 옮기면 ‘• • • ―’가 된다. 이 리듬은 베토벤 교향곡 제5번 c단조의 유명한 시작 리듬과 일치하며, 이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승리의 V’ 캠페인의 일환으로 영국 BBC 방송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승리의 V’는 연합국 전역에서 큰 호응을 얻었고, 윈스턴 처칠이 즐겨 사용한 손가락 제스처와 더불어 오늘날까지도 흔히 쓰이는 상징으로 남았다. 이 과정에서 베토벤 교향곡 제5번은 나치 독일에 닥칠 ‘운명의 문 두드림’이자 연합국의 승리를 상징하는 음악으로 재해석되었다.

베토벤 교향곡 제5번은 클래식 음악사에서 가장 상징적이며 인지도 높은 작품으로 손꼽힌다. 독일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문호 E. T. A. 호프만은 이 음악이 언어의 한계를 초월하여 듣는 이를 “영원한 영적 세계로” 이끈다고 극찬하며, 그 세계의 지배자로서 베토벤을 신격화했다. 음악적으로 이 작품은 19세기 교향곡의 표준적 모델을 제시했고, 후대 작곡가에게는 반드시 넘어야 할 신화적 기준이자 예술적 도전이 되었다.

이 작품의 제1악장은 소나타 형식, 제2악장은 이중변주곡 형식, 제3악장은 스케르초와 트리오로 이루어지며, 멈춤 없이 이어지는 제4악장은 변형된 소나타 형식으로 구성된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더 핵심적인 것은 구조가 아닌 ‘드라마투르기’다. 즉, 고뇌를 이겨내고 환희를 향해 전진하는 투쟁과 승리의 서사, 달리 말해 c단조에서 시작해 C장조로 나아가는 장대한 과정이다. 그러한 서사를 추동하는 힘은 이른바 ‘운명 모티프’, 더 정확히는 그 리듬에서 나온다. 음악학자 카를 달하우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바로 이 리듬이 씨앗처럼 기능하며 집요하게 반복·변형·증식해 작품 전체를 형성하고, 나아가 “숭고한 통일성”을 부여한다.

첫 두 마디에 제시되는 ‘운명 모티프’는 여린박(아우프탁트), 즉 박절구조의 끝자락에서 기습적으로 시작된다. 이것은 지휘자와 연주자 모두에게 현실적인 난점이 된다. 문제는 지휘자가 예비박을 어떻게 제시할 것인가다. 음악이 8분음표로 시작한다는 점을 근거로 그 길이만큼만 예비박을 주면, 비팅(beating)이 지나치게 날카로워져 악단이 이를 첫 박으로 오인하기 쉽다. 실제로 ‘사고’는 드물지 않게 일어난다. 이를테면 마이클 틸슨 토머스가 지휘한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한 연주에서는 바이올린 하나가 반 박자도 아닌 한 박자나 앞서 튀어나오는 돌발 상황이 실황 녹음에 고스란히 담기기도 했다. 지휘자에 따라서는 아예 예비박이 아닌 예비 ‘마디’를 세 마디나 두어 혼란을 피하기도 하지만, 이 경우 실용성에 비해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단점이 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따따따 따안―’의 마지막 긴 음에는 늘임표(fermata)가 붙는다. 그렇다면 그 길이를 얼마만큼으로 해야 할까? ‘늘임표’라는 말에 맞게 적당히 감으로 늘일 수도 있고, 제시부 끝과 코다에서 비슷한 음형이 확장된 방식을 근거로 한 마디를 세 마디로 셈할 수도 있다. 음반을 들어보면 아예 늘임표를 무시한 연주도 있다. ‘운명 모티프’를 어떻게 시작하고 어떻게 호흡하느냐 하는 문제는 이번 공연의 흥미로운 감상 포인트 중 하나다. 물론, 더 본질적인 감상의 핵심은 이 모티프의 발걸음을 따라 투쟁과 승리를 향해 나아가는 여정에 동참하는 데 있다.

2023년 6월 18일 일요일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1·2·3·4·5번

피아노 협주곡 1번 C장조 / 2번 B♭장조

베토벤은 피아노 협주곡을 6곡 작곡했다. 그러나 14살 때 작곡한 첫 번째 협주곡은 미출판 곡으로 오늘날 오케스트라 악보가 남아 있지 않다. 피아노 협주곡 2번 B♭장조는 작곡 시기를 따지자면 협주곡 1번 C장조보다 10년쯤 앞서지만, 복잡한 개작 과정을 거쳐 두 번째로 출판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이 되었다. 세 번째 협주곡인 협주곡 1번 C장조는 베토벤이 빈에서 활동하며 피아니스트로 주목받기 시작한 초기의 작품으로 발표 당시부터 성공을 거두었다.

협주곡 1번과 2번은 모차르트와 하이든의 영향을 드러내면서도 독자적이고 파격적인 아이디어를 담았다는 점에서 베토벤 초기 양식의 전형적인 특징들을 보여준다. 그러나 하이든-모차르트의 아류라고 하기에는 이미 이때부터 작품 속에 번뜩이는 천재성이 대단하며, 기존의 협주곡 양식을 거의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그 속에서 주제를 발전시키는 솜씨가 이미 후기 양식을 내다보게 할 만큼 높은 완성도를 보인다.

두 작품 모두 1악장은 소나타 형식, 2악장은 세도막 형식, 3악장은 론도 형식이다.

피아노 협주곡 3번 c단조

음악학자 리처드 타루스킨에 따르면, 협주곡 양식과 관련해 베토벤이 모차르트를 계승한 것은 무엇보다 형식적 측면이라 할 수 있다. 바로크 시대로부터 이어져 오던 전통적 협주곡이 리토르넬로 형식을 기반으로 했다면, 모차르트는 그것을 “교향곡화”(symphonized)했고, 베토벤이 그것을 확장·완성함으로써 낭만주의로 나아가는 길을 열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소나타 형식에 편입된 협주곡에서 오케스트라가 비교적 정(靜)적인 화성 진행으로 제1 주제를 제시하고, 솔로 악기(피아노)가 더 역동적인 화성 진행으로 주제를 변형·반복하는 등의 짜임새는 베토벤 협주곡 1번 및 2번에서도 초기적 형태로 나타난다. 1악장은 소나타 형식, 2악장은 세도막 형식, 3악장은 론도 형식으로 되어 있다는 점에서 협주곡 3번의 전체 구조 또한 앞선 협주곡과 비슷하다.

그러나 베토벤이 완성한 협주곡 양식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으로 타루스킨은 피아노 협주곡 3번 c단조를 꼽는다. 달리 말하면, 피아노 협주곡 3번이야말로 낭만주의 협주곡의 모범이자 원형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의 1악장에서 베토벤은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4번 c단조 K. 491을 모델로 삼았고, 타루스킨은 모차르트 작품 중 가장 ‘베토벤스러운’ 곡이 c단조 협주곡이라고도 했다.

피아노 협주곡 4번 G장조

피아노 협주곡 3번이 형식적 측면에서 기념비적인 작품이라면, 피아노 협주곡 4번은 내용적 측면에서 기념비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오케스트라가 아닌 피아노 독주로 곡을 시작하는 점, 오케스트라가 등장할 때 G장조가 아닌 엉뚱한 B장조(이어지는 맥락을 고려하면 관계단조의 딸림조[V/vi])로 나오는 것, 그리고 그에 따른 독주악기와 오케스트라의 대조적 성격 등은 당시 기준으로 매우 파격적이었으며, 리처드 타루스킨의 표현을 빌리자면 “낭만주의의 분수령”이라 할 수 있다. 베토벤은 교향곡 3번 ‘에로이카’ 초연을 전후로 이 곡을 작곡했다.

2악장에서는 피아노와 오케스트라의 대조적 성격이 더욱 두드러진다. 이 악장은 아내를 되찾기 위해 지옥에 간 오르페우스가 그리스 신화의 복수와 징벌의 여신들인 에리니에스(또는 로마 신화의 푸리아) 앞에서 간청하는 모습을 피아노(오르페우스)와 에리니에스(현악기)의 대화로 형상화한 것이라는 설이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 오웬 얀더를 비롯한 몇몇 학자들은 협주곡 4번 전체가 오르페우스 이야기에 근거한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1악장과 2악장이 서정적이고 때로는 장중한 느낌이라면, 깔끔한 론도 형식으로 된 3악장에서는 빠르고 리드미컬한 주제를 앞세워 환희를 향해 달려 나가는 짜임새이다.

피아노 협주곡 5번 E♭장조

베토벤은 인류가 예술과 학문으로 신의 광휘에 끝없이 가까워질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교향곡 3번 ’에로이카’에서 E♭장조 화음이 장대한 투쟁을 거쳐 찬란함을 더해 가는 혁신적인 음악 언어를 보여주었고, 전통적으로 거룩한 음악에 곧잘 쓰이던 조성인 E♭장조는 베토벤 이후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E♭장조 교향곡에서 인류가 신에게 다가가는 과정에 파란만장한 투쟁이 필요했던 것과 견주면, E♭장조 협주곡에서는 음악에 갈등이 없다시피 한 것이 특징이다. 이 작품은 E♭장조 화음이 휘황찬란하게 쏟아지는 피아노 카덴차로 시작하며, 서정적이고 사색적인 2악장을 지나 3악장에서는 E♭장조 화음을 날개처럼 달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듯한 음악이 이어진다. 이 협주곡에서 인류는 이미 파르나소스 산에 올라 신의 광휘를 마주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작품에 붙은 ‘황제’라는 표제는 출판업자가 붙였다고 알려졌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황제’라는 표제는 작곡가의 의도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것인가? 널리 알려진 것처럼, 베토벤은 교향곡 3번의 표제를 ’보나파르트’라고 썼다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스스로 황제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뒤 격분해 그 표지를 찢어 버렸다. 그러나 그는 나중에 ‘보나파르트’ 이름을 필사본 악보에 다시 썼으며, 악보를 출판하면서는 제목이 ’보나파르트’가 맞다고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베토벤이 E♭장조 협주곡을 완성할 즈음에 ‘현실의 에로이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프랑스 군대가 빈을 침공해 베토벤을 극한 상황으로 내몰았다. 전쟁의 참상을 경험한 작곡가의 내면에서 나폴레옹을 연상시키는 표제는 어떤 의미였을까? 그가 ’황제’라는 표제를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않은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2023년 5월 8일 월요일

구자범의 베토벤 교향곡 9번 (2023. 5. 7.)

* 작품 구석구석에서 오페라적인 클리셰를 잔뜩 찾아내어 선명하게 드러내 보여 주는 해석이 참신하고, 흥미진진하고, 특히 1악장이 충격적이었음. 클리셰를 경험적으로든 본능적으로든 이해하고 내러티브를 따라갈 수 있느냐, 아니면 이 곡을 그냥 순음악으로만 이해하느냐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는 듯.  


* 구자범 선생은 공연을 앞두고 이 작품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글로 남긴 일이 있음:

https://koojahbom.tistory.com/23


* 링크한 글에 따르면 1악장과 2악장을 합쳐서 오페라 1막, 3악장과 4악장을 합쳐서 오페라 2막에 해당하며 4악장은 오라토리오 형식.


* 내가 연주를 감상하면서 청각적 경험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내러티브는 좀 달랐음. 그냥 4막짜리 오페라 같은 구성에 4막은 오페라로 시작했다가 오라토리오로 승화하는 짜임새. 악장과 악장 사이를 꽤 오래 쉬어 갔는데, 특히 1악장과 2악장 사이, 3악장과 4악장 사이를 좀 더 길게 쉬었음.


* 1악장 제시부는 (구자범의 해석이 들어간) 청각적 텍스처에서 오페라 서곡 느낌이 났음. 그러나 내용적으로는 서곡보다 전주곡에 가깝기도. 발전부부터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느낌이었고, 재현부 시작 부분에서 갈등이 정점을 찍고 이후에는 등장인물들이 악전고투를 겪으며 1막 끝으로 나아가는 느낌. 재현부 시작 부분이 오페라적 맥락에서 특히 멋있었고, 코다도 만만치 않게 멋있었지만 기술적인 아쉬움이 좀 있었음.


* 2악장은 연주의 기술적 문제와 연주 공간의 음향적 문제가 겹쳐서 연주의 디테일이 충분히 전달되지 못하고 좀 손해를 본 듯한 아쉬움이 있었고, 오페라적 클리셰나 내러티브 없이 그냥 순음악으로, 인템포 위주로 연주해도 충분히 절박한 느낌이 잘 살아날텐데 싶어서 안타깝기도 했음. 다만, 충격적인 1악장을 들었으면 2악장이 이런 해석이라야 내적 일관성이 생긴다는 건 잘 알겠음. 폭력에 저항이 나타나지만 지리멸렬함을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진압되는 듯한 느낌.


* 3악장은 클라리넷 솔로부터 제2 바이올린이 주선율을 이어받는 대목까지가(연주가 삐걱거리기 시작하기 전까지가) 특히 멋있었음. 또 멋있었던 곳은 금관이 다이내믹스의 정점을 찍은 직후(정확히는 마디 133부터) 오케스트라 전체가 두터운 화음을 만들면서 포근한 느낌을 만들어 갔던 순간. 정명훈 선생은 이 대목에서 비올라를 강조해서 '피아니시모'를 오히려 '포르티시모'로 만드는 게 참신했는데, 구자범 선생은 그냥 화음만으로 다른 맥락에서 멋짐 작렬.


* 4악장에서는, 2악장에서도 느꼈지만, 대충 카라얀 시대 또는 그 이전 시대에 유행했던 금관악기 가필을 사용했음. 이런 건 요즘 지휘자들은 웬만하면 하지 않는 추세인데, '오페라'라는 새로운 맥락이 생긴 걸 고려하면 이게 또 말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 합창 주제에 의한 관현악 빌드업은 2악장과 비슷한 맥락에서 좀 손해를 보는 느낌이 있었고, 해석의 일관성 측면에서 마찬가지로 이해가 되기도. 바순 솔로가 특히 중간부터 관현악에 묻혀서 잘 안 들리게 처리한 게 특이하면서도 이걸 오페라적인 클리셰로 이해하면 충분히 그럴싸했음.


* 테너 솔로 직후의 관현악은 생각보다 전투적이지 않았고, 이어지는 'Freude' 합창은 템포가 좀 늘어지는 느낌이어서 갸우뚱했다가, 이게 결국 오페라에서 오라토리오로, 현실에서 초현실로 나아가기 위한 빌드업이라는 생각을 뒤늦게 했음. 이 대목에서 오페라적 효과를 좀 더 살리고 "Seid umschlungen, Millionen"부터 깔끔하게 오라토리오로 넘어가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는데, 이렇게 하면 급작스러운 전환에서 오는 이질감을 해결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문제가 있음.


* 국내 합창단은 'Freude' 합창의 "Wo dein sanfter Flügel weilt" 대목에서 남성 합창단 소리가 갑자기 앞으로 튀어나오는 괴상한 '전통'(?) 내지는 종특(...)이 있는데, 음악적으로 어색하고 가사 내용과도 맞지 않아서 웃긴다고 생각함. 이날 공연에서는 그런 문제가 전혀 없었음. 오오 구마에 믿고 있었다고!


* 이중푸가까지 끝난 뒤에는 오라토리오적/초현실적 잔향이 남은 상태에서 오페라/현실로 돌아와서, 이제는 알 수 있는 지향점을 향해 다함께 나아가는 듯한 느낌. 멋있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곳곳에서 기술적인 아쉬움이 느껴지기도.


* 오페라적인 클리셰가 커튼콜까지 이어짐. 연주가 끝나고 지휘자가 합창단의 부분 부분을 차례로 일으켜 세운 것이나, 그 이후 솔리스트들과 지휘자가 손에 손을 잡고 인사한 것 등.


2020년 8월 14일 금요일

조르디 사발의 베토벤 교향곡

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입니다.

“(조르디) 사발의 베토벤을 듣고 있으면 때로는 지척에서 때로는 멀리서 들리는 포성과 총성, 아스라한 연기와 매캐한 화약 냄새, 장병의 비명과 부상자의 신음과 인민의 함성과 군대의 북소리와 나팔 소리가 뒤섞인 19세기 초 유럽의 혈향 어린 전장과 도시 한복판에 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클래식 음악 애호가로 유명한 연합뉴스 임화섭 기자가 페이스북에 쓴 말입니다. 지난 7월 조르디 사발과 ’르 콩세르 데 나시옹’이 베토벤 교향곡 1번부터 5번까지 녹음한 세트 음반이 발매되어 애호가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고 있지요. 옛날에는 새 음반이 나오면 수입, 주문, 배송까지 제법 시일이 걸렸지만, 요즘은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가 있어서 음원이 풀리자마자 파란이 일더군요.

조르디 사발은 그가 창단한 악단인 ’르 콩세르 데 나시옹’과 함께 바로크 음악을 주로 지휘하는 사람입니다. 베토벤 곡은 1994년에 교향곡 3번과 코리올란 서곡을 녹음한 일이 있는 정도였지요. 사발의 베토벤 교향곡 3번이 명반으로 소문나기는 했지만, 저는 교향곡 하나만 녹음한 사람의 베토벤을 진지하게 들어볼 생각을 그동안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새로 나온 음원을 듣고 충격을 받고 말았습니다.

이 음원을 듣고 있으면, 베토벤의 초기작으로 그다지 인기가 없는 교향곡 1번과 2번이 사실은 얼마나 혁신적인 작품이었는지를 깨닫고 깜짝 놀라게 됩니다. 교향곡 3번, 4번, 5번 연주의 탁월함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베토벤 교향곡 다섯 작품에 대한 내 마음속 최고의 연주는 이미 조르디 사발과 르 콩세르 데 나시옹의 녹음으로 바뀌었습니다. 교향곡 6번부터 9번까지 녹음한 음원이 하루빨리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조르디 사발과 그의 악단은 작곡 당시의 악기와 연주 관습 등을 살려 연주하기로 유명합니다. 이번에 나온 녹음에서도 베토벤 시대 현악기에 쓰이던 현의 소재와 활 구조 등에서 오는 ‘식물성 사운드’가 특징적으로 나타납니다. 곡마다 55명에서 60명 정도의 연주자가 녹음에 참여했고, 이 가운데 ’르 콩세르 데 나시옹’ 단원이 35명에 나머지는 객원 연주자였다네요. 이런 소편성으로 베토벤을 연주하면 학자들이 고증한 베토벤 당시의 날렵한 템포가 가능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새로 나온 음원을 들어 보면, 옛 악기를 사용한 다른 베토벤 연주와 견주어 한 가지 남다른 특징이 느껴집니다. ’식물성 사운드’이면서도 깜짝 놀랄 만큼 ’매운맛’이기도 하다는 겁니다. 옛 악기로 베토벤을 연주하면 소리가 자칫 심심하게 들리기 쉽고, 그래서 현대 악기를 사용하면서도 스타카토와 비브라토 등을 옛날 연주법으로 한 절충주의적 베토벤 연주도 유행했지요. 그런데 조르디 사발은 현대 악기를 사용하지 않아 ’기름기’가 쫙 빠져 있으면서도 혀가 얼얼한 ’매운맛’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준 겁니다.

소리가 작은 옛 악기를 작은 편성으로 연주한 탓에, 아마도 녹음된 연주가 아닌 실제 연주에서 느껴지는 음량은 꽤 작을 듯합니다. 음원을 듣다 보면, 이를테면 때때로 목관 악기의 구멍을 마개가 막았다 열었다 하면서 찔꺽거리는 소리가 제법 또렷하게 들리기도 하더군요. 음질이 훌륭한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악기 소리가 워낙 작아서 이런 소리까지 그대로 담긴 것이겠지요.

소리가 작은 대신 현악기는 아찔한 빠르기로 질주하며 박박 긁어댑니다. 관악기는 사납게 울부짖습니다. 팀파니는 곳곳에서 확실한 ’펀치감’을 만들어 냅니다. 듣고 있으면 입이 딱 벌어지는 테크닉이 연주 내내 이어집니다. 그야말로 포탄이 날아다니는 듯한 음향적 스펙터클이 가능했던 비결이 여기에 있을 겁니다.

임화섭 기자는 이런 연주가 스튜디오 녹음이 아닌 실제 연주회에서 가능한지 의문을 제기합니다. 저도 참 궁금합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이들의 베토벤을 들어 봤으면 좋겠습니다. 그 전에 코로나바이러스부터 ’매운맛’을 좀 보여 줬으면 싶기도 합니다.

2020년 7월 17일 금요일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3번 f단조 Op. 57 ‘열정’

유럽 문화에서 ‘열정’이란 ’고통’이 함께 하는 정신 상태다. 이 작품의 원어 제목 ’Appassionata’(아파시오나타)는 그리스도의 수난을 뜻하는 ‘Passion’ 또는 ’고통’을 뜻하는 라틴어 ’pati’와 뿌리가 같다. 출판사에서 붙인 이 제목을 작곡가가 반대하지 않았다지만, 우리말로 번역된 제목 ’열정’은 ’고통’이라는 뉘앙스를 은폐하는 문제가 있다.

’열정 소나타’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를 통틀어 가장 비극적인 작품 가운데 하나다. 이 곡의 파격적인 형식 논리는 학술적으로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감상자 입장에서는 감정의 흐름이 만들어 내는 음악적 ’서사’를 따라가는 것이 더 중요해 보인다. 그 숨 막히는 서사의 힘이 듣는 이를 강렬한 카타르시스로 이끈다.

1악장과 3악장에서는 격정, 분노, 비탄, 절박함 등 격렬한 감정이 휘몰아치고, 2악장에서는 코랄 풍 주제가 변주되며 ‘고통’이 종교적으로 승화한다. 3악장 코다에서는 헝가리 춤곡인 ’차르다시’ 리듬을 사용하고 있는데, 피아니스트 언드라시 시프는 이것을 ’죽음의 춤’이라 했다.

2020년 7월 15일 수요일

멘델스존 팔중주 E♭장조 Op. 20 / 베토벤 칠중주 E♭장조 Op. 20

멘델스존: 현악팔중주 E♭장조 Op. 20

E♭장조는 거룩한 음악에 곧잘 쓰이던 조이다. 베토벤 이후에는 이것이 좀 더 특별한 상징성을 갖게 되었는데, 바로 교향곡 3번 E♭장조 ‘에로이카’ 때문이다. 특히 4악장에서 베토벤은 발레 음악 ‘프로메테우스의 창조물’ 피날레 주제를 재활용했으며, 음악학자 베리 쿠퍼는 원작 발레의 ‘폭풍 → 진흙상 → 생명을 얻음 → 신격을 얻음’ 짜임새가 ‘에로이카’ 4악장에 비슷하게 나타난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베토벤 이후 작곡가들은 E♭장조로 곡을 쓸 때 ’베토벤의 E♭장조’를 의식해야 했다. 멘델스존 또한 마찬가지다. 현악팔중주 E♭장조는 조성 구조, 빛을 향해 나아가는 음악적 서사 구조, 모티프 발전 기법 등 여러 면에서 ’에로이카’를 닮았다. 음악학자 베네딕트 테일러는 멘델스존 팔중주를 분석하면서 헤겔과 괴테로부터 멘델스존이 받은 영향을 지적하기도 했는데, 인류가 무한히 발전해 신의 광휘에 다가갈 수 있다고 믿었던 당시 유럽인의 세계관과 통하는 말이기도 하다.

멘델스존 팔중주는 E♭장조의 틀 속에 g단조와 c단조 등이 ’안티테제’처럼 나타나는 음악적 서사 구조가 특징이다. 1악장 제1주제는 순수하게 밝은 느낌이지만, 제2주제가 나타나기에 앞서 제1주제가 한 번 더 나오면서 f단조를 거쳐 g단조로 바뀌고, B♭장조로 된 제2주제를 지나면 음악이 휘황찬란하게 빛난다. 발전부에서 다시 단조의 어둠이 침투하고 c단조가 승리하는 듯 보이지만, 제2주제가 마치 어둠 속의 탄식처럼 나타나 빛을 회복해 나가고, E♭의 딸림음인 B♭ 음이 길게 이어지면서 마치 태양이 솟아오르듯 밝아진 끝에 재현부로 이어진다.

변종 소나타 형식으로 된 2악장은 c단조이다. 1악장 발전부에 나왔던 c단조이고, 첫머리에 나오는 음형 또한 1악장 발전부에 나오는 음형과 비슷하다. 그러니까 1악장에서 두 번째로 나오는 제1주제가 앞선 제1주제에 대한 안티테제, 발전부는 제시부에 대한 안티테제라면, 2악장은 1악장에 대한 안티테제라 할 수 있겠다. 부잣집 아들로 태어난 멘델스존은 어려서부터 헤겔을 포함한 당대 명사들과 친분이 있었고, 대학에서 헤겔의 강의를 듣기도 했다. 다만, 멘델스존이 헤겔의 예술관에 완전히 동의했던 것은 아니다.

3악장은 g단조다. 악장 제목이 ‘스케르초’이고 내용적으로도 스케르초가 맞지만, 형식상으로는 스케르초와 트리오 형식이 아닌 소나타 형식이다. 말을 타고 달리는 듯한 리듬이 악마적인 선율 및 화성과 만나 마치 공포에 질려 도망치는 듯하다가 악장이 끝나기 조금 전부터 음악이 밝아진다. 멘델스존의 누나인 파니 멘델스존의 증언에 따르면, 특히 마지막 부분은 작곡가가 괴테 “파우스트”에 나오는 ’발푸르기스의 밤’ 마지막 대목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라고 한다.

“파우스트”에서는 귀신이 나온다는 ‘발푸르기스의 밤’에 마녀를 비롯한 온갖 군상들이 나타나 한 마디씩 한다. 그리고 ’오케스트라’ 귀신이 나오는 마지막 부분은 이렇다. “오케스트라: (피아니시모) 흘러가는 구름도 자욱한 안개도 점점 위로부터 밝아오는구나. 나뭇잎에 부는 바람, 갈대 숲에 부는 바람, 모든 것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도다.”

4악장은 다시 E♭장조이다. 말 타고 달리는 듯한 리듬이 3악장과 비슷하지만, 여기서는 마치 아침 햇살을 받은 듯 눈부신 느낌으로 시원하게 속도를 낸다. 그리고 헨델 “메시아” 중 ’할렐루야 합창’에 나오는 선율 한 조각이 나온다. “또한 주께서 영원토록 다스리시리.”(And he shall reign forever and ever.) 이 선율이 반복되며 정교한 푸가로 발전하고, 앞선 악장에 나왔던 음형들이 스쳐 지나간다. E♭장조의 찬란한 빛 속에서 음악이 끝난다.

베토벤: 칠중주 E♭장조 Op. 20

칠중주나 팔중주 등은 본디 디베르티멘토, 즉 파티에서 가볍게 즐기기 위한 음악 형태였다. 베토벤 칠중주 E♭장조 또한 디베르티멘토라 할 수 있는데, 그러나 ’즐거운 음악’의 틀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기법적으로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베토벤은 교향곡 3번 E♭장조 ’에로이카’를 작곡하기 3년 앞선 1800년에 이 작품을 완성했다. 다시 말해 이 작품은 ’베토벤의 E♭장조’가 특별한 의미를 갖기 이전의 작품이다. 다만 굳이 그 의미를 소급해서 생각해 본다면, 칠중주 E♭장조는 인류가 ’파르나소스 산’으로 상징되는 유토피아에 도달한 이후의 평화로운 일상을 음악으로 표현한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1·2·6악장은 소나타 형식, 3악장은 미뉴에트와 트리오 형식, 4악장은 변주곡 형식, 5악장은 스케르초와 트리오 형식으로 되어 있다. 악곡의 형식에 대단한 파격은 없고, 1악장부터 6악장까지 모두 장조로 되어 있으며, 해학적인 맥락에서 짧게 단조로 일탈하는 것을 제외하면 음악에 ’그늘’이 사실상 없는 것이 특징이다.

2019년 8월 21일 수요일

베토벤 현악사중주 Op. 18-3 / 야나체크 현악사중주 1번 '크로이처' / 슈만 현악사중주 3번 Op. 41-3

베토벤: 현악사중주 3번 D장조 Op. 18-3

베토벤이 처음으로 완성한 현악사중주곡이다. 작곡시기는 1798년에서 1800년 사이로, 베토벤 작품세계 중 초기에서 중기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해당한다. 작곡가는 이미 이때부터 고전주의 음악양식에 상당한 파격을 보여주었는데, 이 작품에서 베토벤다운 대담함은 특히 1악장 짜임새에서 두드러진다.

이를테면 A장조로 제시되는 '제2 주제'는 여전히 제1 주제 영역에 속하면서 제1 주제를 마무리하는 역할에 그치고, 일반적인 소나타 형식에서 제2 주제가 해야 할 역할은 C장조로 제시되는 제3 주제가 맡는다. 발전부에서는 제1 주제와 경과구 음형만으로 음악을 이끌어 나가며, 제2 주제와 제3 주제는 모두 힘을 잃는다.

2악장은 간소화된 소나타 형식이고, 3악장은 세도막 형식이며 내용적으로 스케르초에 가깝다. 4악장은 소나타 형식이지만, 꾸준히 되풀이되는 비트(beat)가 주제간 대비를 흐리게 만들며 처음부터 끝까지 신나게 달리는 짜임새이다.

야나체크: 현악사중주 1번 '크로이처 소나타'

"고통받고 망가져 가는 가엾은 한 여성을 떠올렸습니다. 러시아 작가 톨스토이가 ‹크로이체르 소나타›에서 묘사한 그 사람처럼요."

야나체크는 38살이나 어린 유부녀 카밀라 스퇴슬로바(Kamila Stösslová)와 편지를 700통 넘게 주고받았다. 현악사중주 1번을 작곡하던 시기에 야나체크는 카밀라를 짝사랑하고 있었고, 몇 해 지나 관계가 조금 진전되던 때에 현악사중주 2번 '비밀편지'를 작곡했으나 얼마 못 가서 사망했다.

톨스토이 ‹크로이체르 소나타›는 아내가 어떤 바이올리니스트 남자와 함께 베토벤 ‹크로이처 소나타›를 연주하는 것을 보고 질투에 사로잡힌 끝에 아내를 살해하는 남자를 그린 소설이다. 야나체크는 이 작품을 읽고 영감을 받아 현악사중주 1번을 작곡했다.

야나체크 ‹크로이처 소나타›에는 사회 통념상 인정받기 힘든 사랑에 고통받았던 작곡가의 고뇌가 처절하게 흐른다. 인간의 욕망과 갈등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톨스토이의 문제작 못지않은 날것 그대로의 감정이 충격적인 음향 속에서 헐떡인다. 그 심리 변화를 따라가는 것이 이 작품의 감상 포인트라 할 수 있다.

슈만: 현악사중주 3번 A장조 Op. 41-3

슈만 A장조 현악사중주는 낭만주의 시대의 서정이 두드러지는 작품이다. 1악장은 소나타 형식, 2악장은 변주곡 형식, 3악장은 간소화된 소나타 형식, 4악장은 론도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형식 논리만으로 따진다면 네 박씩 규칙적으로 떨어지는 프레이즈와 단순하고 심심한 구조와 같은 단점이 드러나기도 한다.

그래서 이 작품을 감상할 때에는 구조에 집중하기보다 정서의 흐름에 몸을 맡길 필요가 있다. 따사로운 햇살과 싱그러운 바람, 심장을 어루만지는 애수와 눈물이 스며든 한숨, 모습을 바꿔가며 부닥쳐 오는 불행과 그 속에서 소중하게 이어가는 웃음. 마치 이런 것들이 노래의 날갯짓을 타고 환상 속을 너울거리는 듯한 정서의 흐름이 이 작품의 매력이다.

2019년 6월 12일 수요일

베토벤: 현악사중주 1번 F장조 Op. 18-1, 16번 F장조 Op. 135, 8번 e단조 Op. 59-2 "라주몹스키"

현악사중주 1번 F장조 Op. 18-1


베토벤의 첫 번째 현악사중주 연작인 Op. 18 가운데 첫째 곡인 F장조 현악사중주는 작곡 시기로는 Op. 18-3 D장조에 이은 두 번째 곡으로, 베토벤은 Op. 18 연작 6곡을 마무리한 뒤에 1번~3번을 상당 부분 수정했다. 베토벤 초기 양식을 대표하는 이 작품은 주제 선율에서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영향이 뚜렷하지만, 그것을 이끌어 가는 방식은 하이든-모차르트에서 좀 더 나아간 독자성을 보인다.

소나타 형식으로 된 1악장은 제시부 코다에 앞서 제1주제와 제2주제가 점점 짧은 호흡으로 되풀이됨으로써 '예비발전부' 역할을 하는 점이 특이하다. 발전부에 제2주제가 나오지 않는 점은 이 작품의 다른 악장에서도 나타나는 특징이다.

2악장은 오페라 아리아를 소나타 형식에 맞춘 듯한 짜임새이다. 셰익스피어 ‹로미오와 줄리엣›의 무덤 장면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전해지며, 베토벤의 스케치에는 '무덤에 들어감' '절망' '자살' 같은 말이 있다. 3악장은 스케르초와 트리오이고, 4악장은 론도-소나타 형식으로 발전부에 제2주제 대신 새로운 주제가 나오는 것이 특징이다.


현악사중주 16번 F장조 Op. 135


베토벤은 현악사중주 16번 Op. 135를 완성하고 나서 현악사중주 13번 Op. 130의 마지막 악장을 새로 썼다. 그리고 더는 작곡을 하지 않았다. 베토벤의 마지막 현악사중주인 Op. 135는 파격적인 다른 후기 현악사중주와 견주면 오히려 고전적이고 단순명료한 짜임새가 특징이다.

1악장을 시작하는 주제는 텍스처가 엷고 가벼운 느낌이라 '베토벤의 제1주제'치고는 뜻밖이다. 그에 반해 이어지는 경과구가 일반적인 경과구를 넘어 중요한 역할로 발전하며 '제1주제군'을 이룬다. C장조로 된 제2주제는 부점리듬 위주인 것을 제외하면 제1주제와 크게 대조적이지 않고, 제1주제의 후반부 성격을 띄며 유쾌한 우아함을 완성해 코데타로 이어지는 것이 특징이다.

2악장은 스케르초와 트리오이며, 빠른 템포와 엇박자로 톡톡 튀면서 신나게 달리는 짜임새이다. 3악장은 형식적으로는 변주곡이지만 내용적으로 오페라 아리아 같은 악장으로, D플랫 장조로 밝게 억눌린 슬픔이 느리게 흐르다가 절규를 거처 처연한 눈물과 미소로 끝나는 짜임새이다.

4악장에는 "힘들게 내린 결단"(Der schwer gefaßte Entschluß)이라는 소제목이 붙어 있고, "Muß es sein?"(그래야만 하는가?)과 "Es muß sein!"(그래야만 한다!)이라는 문장이 악보 첫머리에 이정표처럼 붙어 있다. 느리고 고통스러운 '그래야만 하는가?' 음형이 도입부를 지배하고, 갑자기 경쾌한 '그래야만 한다!' 음형이 나타나 제1주제가 된다. 나머지는 대체로 깔끔한 소나타 형식이다.


현악사중주 8번 e단조 Op. 59-2 "라주몹스키"


베토벤의 중기 양식을 대표할 만한 이 작품은 '라주몹스키 사중주' 3연작 중 두 번째 작품으로, 비엔나 주재 러시아 대사였던 안드레이 라주몹스키 백작이 위촉했다. 소나타 형식으로 된 1악장은 발전부와 재현부를 묶어 반복하는 것이 특징이다. 재현부에도 상당한 변화가 있어 발전부의 영역에 속하는 것처럼 느껴지고, 코다가 실질적인 재현부 역할을 한다.

2악장은 베토벤다운 애수가 소나타 형식에 녹아 있는 악장으로, 감정의 변화를 기준으로는 애수-비탄-애수-통곡-애수 짜임새이다. 제시부 코데타 음형이 발전부에서 '비탄'의 정서로 변하고, 코다에서 제1주제로 '통곡'한 다음 쓸쓸한 미소로 끝맺는다.

3악장은 단조로 된 스케르초와 장조로 된 트리오가 대비되는 구성이며, 트리오는 러시아 민요 '태양을 찬양해'에서 선율을 따왔다. 론도-소나타 형식으로 된 4악장은 마치 말을 타는 듯한 리듬으로 신나게 달리는 음악이다.

2018년 10월 30일 화요일

베토벤: 현악사중주 4번 c단조 Op. 18-4 / 드보르자크: 현악사중주 12번 F장조 "아메리카" / 멘델스존: 현악사중주 6번 f단조 Op. 80

베토벤: 현악사중주 4번 c단조 Op. 18-4

베토벤은 1798년부터 1800년까지 작곡한 현악사중주 6곡을 'Op. 18'로 묶어 1801년에 발표했다. 작곡 시기는 작품번호와 별개이며, c단조 현악사중주는 작곡 시기가 명확하지 않으나 가장 나중에 작곡했을 가능성이 크다. Op. 18로 묶인 다른 곡들에 하이든과 모차르트 등의 영향이 뚜렷한 것과 견주면, c단조 현악사중주는 베토벤의 초기 양식에서 중기 양식으로 변화하는 과도기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좀 더 특별하다.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1악장에서 제2주제로 나아가는 과정의 복잡함이다. 제1주제에 이어지는 경과구는 '허수아비' 경과구로서 제2주제의 조성인 E플랫 장조를 슬쩍 내비치는 수준에 그치고, E플랫 장조 딸림화음(V₇/IV)으로 시작해 E플랫 장조 으뜸화음으로 나아가는 진짜 조바꿈이 마치 제2주제처럼 등장하는 '제2경과구'에서 일어난다.

제1주제의 변형처럼 등장하는 제2주제는 제2경과구와 그다지 뚜렷하게 대비되지 않을 뿐 아니라 B플랫장조로 변화했다가 다시 E플랫장조로 나아가는 경과구적 성격마저 보인다. 그리고 '이것이 진짜 제2주제'라고 선언하는 듯한 음형이 나타나 자연스럽게 소종결구로 이어진다. 발전부에서는 '두 번째 제2주제'가 아닌 '첫 번째 제2주제'가 나온다. 제시부의 복잡함에 비해 발전부는 단순한 편이다.

'스케르초 같은 안단테'(Andante scherzoso)라는 나타냄말이 붙은 2악장은 간소화된 소나타 형식으로, 스케르초답지 않게 느린 템포와 푸가에 가까운 정교한 대위법이 특징적이다. 3악장은 미뉴에트이면서도 내용은 스케르초에 가깝다. 론도 형식으로 된 4악장은 빠른 음형으로 마구 달리는 가운데 c단조의 어둠에서 C장조의 빛으로 나아가는 짜임새이다.

드보르자크: 현악사중주 12번 F장조 "아메리카"

드보르자크는 뉴욕에 있던 아메리카 국립음악원의 초청으로 그곳 학장이 되었다. 채용 조건으로 미국 오페라 부흥에 힘쓸 것과 특히 롱펠로 서사시 ‹하이아와사의 노래›(The Song of Hiawatha)에 바탕을 둔 작품을 쓸 것 등이 있었다. 드보르자크는 아메리카 토착민의 영웅 '하이아와사'를 주인공으로 하는 이 작품의 체코어 번역판을 읽고 감명받았다고 하며, 이를 바탕으로 오페라를 쓰기에 앞서 실험적인 작품으로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를 작곡했다. (그러나 오페라는 결국 쓰지 못했다.)

그 직후 드보르자크는 '아메리카' 사중주를 작곡하고 악보에 "아메리카에서 작곡한 두 번째 작품"이라 썼다. 이 곡은 '신세계' 교향곡과 달리 ‹하이아와사의 노래›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는 듯하지만, 작곡 시기와 양식 등에서 '신세계' 교향곡과 사실상 쌍둥이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 느껴지는 '아메리카 느낌'은 작곡가가 '신대륙' 문물과 자연에 깊은 인상을 받은 결과라 할 수 있다. 흑인 영가 또는 아메리카 토착민 음악과의 관련성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으나 많은 지지를 받지는 못하며, 작품에 두드러지는 5음 음계는 세계 각국 민요에 흔히 나타나는 특징이다.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귀에 쏙쏙 들어오는 선율과 리듬으로 가득하다. 악곡의 구조를 파악하는 일은 학술적 목적이 아닌 이상 굳이 필요 없고, 감상자에게는 그저 음악에 몸을 맡기는 것으로 충분하다. 19세기 말 미국의 드넓은 자연과 싱그러운 공기가 음악과 공명하며 감동을 더한다.

멘델스존: 현악사중주 6번 f단조 Op. 80

멘델스존 음악에는 대개 그늘이 없다. 모차르트가 밝은 웃음 속에 슬픔을 감추는 것과 달리 멘델스존은 순수하게 해맑다. 그는 부유한 집안에 태어나 남부럽지 않게 자랐고, 천재적인 음악 재능을 타고나 어려서부터 음악가로서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누나의 죽음은 멘델스존에게도 커다란 시련이었던 듯하다. 두 달쯤 뒤에 그가 작곡한 현악사중주 6번 f단조는 슈베르트 '죽음과 소녀'를 연상시키는 염세적인 정서와 악마적인 광기로 가득해 그의 해맑음을 아는 모든 사람을 충격에 빠트렸다. 그리고 과로 등으로 몇 년새 악화하던 건강이 급격히 나빠진 멘델스존은 몇 달 뒤 향년 38세로 요절했다.

1악장은 소나타 형식, 2악장은 스케르초와 트리오 형식, 3악장은 세도막 형식, 4악장은 론도-소나타 형식이다. 1악장에서 빠른 트레몰로 음형으로 박박 긁어대는 현이 악마적인 쾌(快)를 보여준다면, 2악장에서는 기괴한 화성과 리듬 등이 악마적인 냉소를 보여준다. 3악장에서는 느리고 애잔한 선율이 통곡으로 변하고, 4악장에서는 쫓기는 듯 달려가는 음형이 절박함을 더해 가던 끝에 슈베르트 같은 '죽음의 춤'으로 귀결된다.

2018년 9월 11일 화요일

하이든: 현악사중주 f단조 Op. 20-5 / 베토벤: 현악사중주 5번 A장조 Op. 18-5 / 슈만: 피아노 오중주 E♭장조 Op. 44

하이든: 현악사중주 f단조 Op. 20-5

하이든의 Op. 20은 현악사중주 6곡을 모아 출판한 작품집으로, 현악사중주라는 장르가 생겨난 지 얼마 되지 않은 1772년에 작곡한 것이다. 6곡 모두 작곡 연도를 믿기 어려울 만큼 혁신적인 어법으로 가득하고, 그 가운데 f단조 현악사중주는 하이든 자신의 작품목록상으로는 Op. 20 가운데 첫 번째 작품이라는 점에서 음악사적으로 더욱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소나타 형식으로 된 1악장은 한 프레이즈의 끝을 다음 프레이즈의 시작으로 삼거나 주제를 반복할 때 박절 구조에 변형을 주는 등 4마디 단위로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단순함을 피해 가는 기법이 시대를 크게 앞서가고 있다. 미뉴에트와 트리오 형식으로 된 2악장에서도 때때로 박절 구조가 규칙성을 벗어나면서 '미뉴에트'라는 춤곡 이름이 무색해지곤 한다. 3악장은 4개 악장 중 유일하게 장조로 되어 있으며, 시칠리아노 춤곡 리듬으로 된 주제 선율이 규칙적인 리듬 구조에 따라 변주되는 짜임새로 되어 있다.

4악장은 느린 주제와 빠른 주제가 병진행하는 이중푸가이다. 하이든은 자신의 작품목록을 기준으로 Op. 20의 첫 세 곡 모두 마지막 악장에서 푸가를 사용했는데, 아마추어 음악인을 위한 '엔터테인먼트' 성격이 짙었던 초기 현악사중주에 푸가를 사용한 일은 그 자체로 혁신이었다. 현악사중주 역사상 처음으로 첼로가 제대로 된 '선율'을 연주하는 등 4개 악기의 독립적 성격이 특히 4악장에서 극대화되고 있으며, 또한 고전주의 시대에 새롭게 음악적 표현 요소로 떠오른 '셈여림'을 푸가 기법에 녹여냄으로써 바흐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푸가를 처음으로 보여준 작곡가가 다름 아닌 하이든이라는 사실이 이 작품으로 증명된다.

베토벤: 현악사중주 5번 A장조 Op. 18-5

베토벤은 1798년에서 1800년까지 작곡한 현악사중주 6곡을 Op. 18로 묶어 1801년에 발표했다. 6곡 모두 베토벤의 초기 양식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하이든과 모차르트 등의 영향이 뚜렷이 나타난다. 이 가운데 A장조 현악사중주는 작곡 시기가 1799년으로 추정되는데, 비슷한 시기에 작곡한 다른 작품과 견주어도 베토벤답지 않은 단순한 짜임새로 되어 있다. 베토벤이 불과 몇 년 뒤에 템페스트 소나타(1801~2년)와 교향곡 3번(1802~4년)을 작곡한 사실을 헤아리면 그 양식 변화가 놀랍다.

1악장은 소나타 형식으로 되어 있고, 발전부와 재현부를 묶어 되풀이하는 짜임새가 특이하다. 2악장은 미뉴에트와 트리오 짜임새이며 음악에 맞춰 실제로 춤을 출 수 있을 만큼 프레이즈 구조가 규칙적이다. 3악장은 주제와 변주 형식, 4악장은 소나타 형식이다.

이 곡에서 그나마 가장 베토벤다운 과감함이 느껴지는 곳은 4악장 발전부로, 본디 A장조였던 조성이 발전부에서 f♯단조로 변하고, 4마디 단위로 규칙적으로 반복되던 프레이즈가 3마디 단위로 변했다가 돌아오며, 또한 발전부의 전체적인 규모가 크다.

슈만: 피아노 오중주 E♭장조 Op. 44

슈만은 현악사중주 편성에 피아노를 더한 이 작품으로 큰 성공을 거두며 '피아노 오중주'라는 '장르'를 정착시켰다. 이후 브람스, 드보르자크, 포레, 쇼스타코비치 등이 피아노 오중주곡을 남겼고, 슈만에 앞서 바이올린 · 비올라 · 첼로 · 더블베이스에 피아노를 더한 편성으로 슈베르트가 작곡한 '송어' 오중주는 결과적으로 편성이 특이한 작품이 되었다.

1악장은 소나타 형식, 2악장은 c단조 장송행진곡 주제와 서정적인 C장조 주제가 교차하는 짜임새, 3악장은 트리오가 두 번 나오는 스케르초이다. 2악장을 제외한 3개 악장이 모두 E♭장조로 되어 있는 점이 특이하고, 2악장에 c단조 장송행진곡이 나오는 것까지 함께 생각하면 베토벤 교향곡 3번 E♭장조 '영웅'을 의식한 구성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4악장은 자유분방한 소나타 형식이다. 슈만답게 과감한 화성 진행과 더불어 코다에 푸가토와 이중푸가토를 사용하며 악곡을 장대하게 부풀려 나가는 점이 참신하며, 그 와중에도 4마디씩 규칙적으로 나뉘는 프레이즈를 일관되게 되풀이하는 점이 특이하다.

2018년 8월 27일 월요일

베토벤: 피아노 트리오 E♭장조 Op. 70-2 / 라벨: 피아노 트리오 a단조

베토벤: 피아노 트리오 E♭장조 Op. 70-2


E플랫 장조는 전통적으로 거룩한 음악에 곧잘 쓰이던 조성이다. 베토벤은 교향곡 3번 '영웅'에서 눈부시게 빛나는 E플랫 장조 화음으로 신의 광휘를 표현하기도 했다. '영웅 교향곡'에서 인류가 신에게 다가가는 과정에 장대한 투쟁이 필요했던 것과 견주면, 피아노 트리오 E플랫 장조 Op. 70-2에서는 음악에 갈등이 없다시피 한 것이 특이하다. 이 작품에서 인류는 이미 파르나소스 산에 올라 있는 것 같다.

1악장은 c단조로 된 도입부로 시작하지만, '어둠'은 얼마 안 가서 사라진다. E플랫 장조로 된 주제는 세 악기가 주도권을 바꿔 가는 과정에서 '주제군'(thematic group)이 된다. 여전히 E플랫 장조 영역에 속하지만 제2 주제로 착각하기 쉬운 주제가 나오고, B플랫 장조로 된 제2 주제군은 제1 주제군과 딱히 대조적이지 않은 까닭에 마치 1악장 전체가 하나의 주제군으로 된 것처럼 느껴진다. 다만, 제2 주제군에 앞서 나오는 도입부 주제가 음악의 흐름을 살짝 끊으며 변화를 매개한다.

2악장은 C장조 주제와 c단조 주제가 교차하는 이중 변주곡이고, 3악장은 미뉴엣과 트리오 짜임새이다. 4악장에서는 얼핏 짧은 도입부에 이어 주제 선율이 나타나는 듯하지만, 사실은 '도입부' 주제가 실질적으로 음악을 이끌어 가는 역할을 한다. 이 도입부 주제는 마치 자동차의 액셀러레이터 페달을 밟는 듯한, 또는 베토벤 시대에 맞게 말하자면 마차의 속력을 빠르게 높이는 듯한 느낌이며, 그와 견주면 '제1 주제'는 관성 위주로 안정감 있게 달리는 듯한 느낌이다. 제2 주제는 더욱 속도를 높여 마구 달려나가는 듯하고, 그렇게 끝을 향해 달리는 길에 E플랫 장조의 고양감이 함께한다.


라벨: 피아노 트리오 a단조


라벨은 에스파냐와 프랑스 사이에 걸쳐 있는 바스크 지방의 민속 음악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파리에서 작곡에 집중하기 어렵다고 느낄 때마다 바스크의 시골 마을인 생장드뤼에 갔으며, 어머니가 바스크계이기도 했다. 그리고 피아노 트리오 a단조에서 처음부터 나오는 특이한 리듬이 바스크 춤곡 리듬이다.

1악장과 4악장은 바스크풍 리듬, 피아노로 된 저음 반복음형(오스티나토)이 '발전부'를 대신하는 짜임새, 제시부-발전부-재현부의 경계를 일부러 흐려 놓으며 몽환적인 느낌을 더한 기법 등이 닮은꼴이다. 3악장은 파사칼리아이며, 변주되는 주제가 절정을 향해 나아갔다가 조금씩 긴장감을 해소해 나가는 아치(arch)형 짜임새이기도 하다.

2악장 제목으로 쓰인 '판툼'(Pantoum)은 본디 말레이 지방의 정형시를 뜻한다. 4행 1연을 기본으로 하여 앞선 연의 2행과 4행이 다음 연의 1행과 3행으로 되풀이되고, 마지막 연 마지막 행에서 1행 1연을 되풀이하며, 이를테면 'ABCD BEDF EGFH GCHA'와 같은 짜임새이다. 라벨은 두 가지 독립된 악구를 나란하고도 어긋나게 진행함으로써 '판툼'을 음악으로 옮겼다. 그 결과 리듬이 매우 복잡해졌고, 중간 부분에서는 바이올린과 비올라가 3/4박자, 피아노가 4/2박자로 마디 구조마저 독립적으로 움직힌다. 전체적으로는 스케르초와 트리오 짜임새로 되어 있다.

2018년 3월 2일 금요일

베토벤: 삼중 협주곡

베토벤 삼중협주곡의 정식 제목은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 C장조›이다. 협주곡에 독주 악기가 셋이나 나오는 특이한 편성은 바로크 시대 합주협주곡(콘체르토 그로소)과 일견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실제 음악적 내용은 전혀 다르다. 세 가지 악기에 독주 선율을 넉넉하고도 균형 있게 배분하면서도 독주 악기마다 개성을 살려야 하는 까다로운 과제가 작곡가에게 주어졌으며, 베토벤은 '삼중'으로 복잡하고 파격적인 짜임새로 문제를 해결했다.

1악장에서 솔로 악기에 의한 제시부는 관현악 제시부보다 두 배나 길고, 그 성격이 제시부라기보다 차라리 발전부에 가깝다. '진짜' 발전부는 상대적으로 짧으며, 발전부 시작은 그냥 주제를 다시 한 번 되풀이하는 수준이다. 베토벤치고는 충분히 '발전'하지 않는 발전부는 곡 자체가 그나마 덜 복잡해지게끔 하지만, 그런데도 이 작품이 오랫동안 실제보다 낮은 평가를 받게 받게끔 해온 원인이 복잡한 구성에 있기도 하다.

또 새롭게 등장했다가 구조적으로 큰 역할을 하지 않고 사라지는 주제가 여럿 있어서 듣는 이를 더욱 헷갈리게끔 하는데, 이를테면 제시부와 재현부에서 독주 첼로가 강렬한 부점 리듬으로 박박 긁어대는 대목은 첼로에 '스포트라이트'를 집중시키는 효과를 일으킨다. 이런 식으로 세 가지 독주 악기가 처음부터 충분히 균형 있게 돋보이게 되었고, 같은 이유로 재현부 또한 길고 복잡하다. 달리 생각하면 제시부와 재현부의 '유사-발전부'와 더불어 1악장에 발전부가 세 군데 있는 셈이기도 하다.

앞선 악장이 길고 복잡했던 만큼 2악장은 짧고 편안한 유절 가곡 형식이다. 아타카로, 즉 멈춤 없이 이어지는 3악장은 폴로네이즈 풍 론도(Rondo alla Polacca)이다. 경쾌한 리듬으로 꾸준히 달리는 짜임새로 제법 길면서도 1악장만큼 복잡하지는 않다.

2017년 8월 20일 일요일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19세기 협주곡 중에는 차라리 교향곡에 가까운 짜임새를 보이는 작품이 더러 있다. 브람스 협주곡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겠지만,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이야말로 그 효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전통적인 협주곡 형식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특히 1악장을 이루는 주제들이 그물처럼 긴밀하게 얽혀 있으며, 그 긴밀함은 베토벤의 다른 협주곡을 압도하는 수준이다. 그리고 1악장을 시작하는 팀파니의 네 음 음형이 악장 전체의 씨앗이 된다.

독주 바이올린은 교향악적 짜임새의 중심적 역할을 맡는다. 특히 3악장 코다에서 그동안 쌓인 음악적 긴장이 으뜸화음을 만나 폭발하는 대목(마디 329)이 압권인데, 베토벤은 D장조 으뜸화음을 길게 늘인 화성 진행(I-VI-I-ii-V-I)을 되풀이하면서 마치 '승리의 팡파르' 같은 분위기를 내되 그 고양감을 독주 바이올린 선율에 집중시켜 놓았다. 독주 바이올리니스트는 이곳을 작품 전체의 절정으로 설득력 있게 전달해야 하며, 그래서 화려한 음형을 뽐내는 여느 협주곡과 사뭇 다른 음악적 역량이 필요하다.

1악장은 소나타 형식, 2악장은 변주곡 형식, 3악장은 론도 형식이다.

2017년 2월 22일 수요일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통영국제음악제 프로그램북에 사용할 글입니다.


"고난을 뚫고 별들의 나라로!" (Per aspera ad astra)

베토벤 당시의 시대정신을 대변하는 이 말은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의 짜임새와도 그대로 들어맞는다. 사람들은 만인이 신 앞에 평등하다는 '혁명적인' 생각을 나누었고, 인류 문명이 차츰 발전하면서 세상이 유토피아로 나아갈 것이라 믿었다. 그리고 베토벤은 프리드리히 실러의 환희의 송가(An die Freude)를 가사로 하는 희망찬 미래를 이 작품에 담았다.

1악장은 '라'(A)와 '미'(E) 음만으로 여리고 신비롭게, 한편으로는 공허하게 시작해 압도적으로 엄숙하고 숭고한 주제로 이어진다. 이 대목은 우주가 생성되는 모습으로 해석되곤 하며, 이것을 받아들인다면 이 작품은 태초에서 미래까지 시간의 흐름을 조망하는 짜임새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에게 세상은 아직 어둡고, 두렵고, 고통으로 가득하다.

2악장에서는 악마적인 냉소와 절박한 열망이 반복되는 리듬과 더불어 격렬하게 충돌한다. 3악장에서는 마치 상처받은 영혼이 천상을 동경하는 듯 애달픈 선율이 조금씩 모습을 달리하며 되풀이된다. 4악장에서는 무서운 팡파르로 시작해 앞선 악장에서 나왔던 선율 조각들이 마치 세상에 대한 의문, 또는 해결해야 할 과제처럼 제시된다. 그리고 저 유명한 '합창' 선율이 그에 대한 해답처럼 나타나 긴 호흡으로 찬가처럼 부풀어 오른다.

무서운 팡파르가 다시 한 번 나오고, 바리톤의 목소리가 곡의 흐름을 갑자기 바꿔 놓는다. "오 벗이여! 이런 소리가 아니오! 더 즐겁고 환희에 찬 소리를 질러 봅시다!" 바리톤이 저음으로 부르는 노래를 합창이 이어받는다. 노래가 이어지고 환희로 부풀어 오를수록 노랫말은 교향악적 짜임새에 녹아 들어가 악곡을 음향적 · 음악적으로 확장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alle Menschen), 환희(Freude), 형제들(Brüder)과 같은 주요 단어 몇 개만이 승화적으로 전달된다.

오늘날 이 작품을 실제로 연주하려면 20세기 중반 이후 학술적 성과를 바탕으로 나타난 이른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연주'를 어디까지 받아들일 것인지를 고민해야 하고, 지휘자는 특히 몇 군데에서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한다. 이를테면 '무서운 팡파르'는 악보대로라면 주선율을 목관악기가 연주하고 트럼펫 등은 단순한 음형으로 뒤를 받쳐 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그런데 이 곡이 초연될 당시에 쓰이던 트럼펫으로는 낼 수 없던 음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오늘날에는 트럼펫에 주선율을 맡기는 것이 진정한 베토벤의 의도라고 '해석'할 수 있다.

트럼펫이 악보에 없는 주선율을 연주하도록 하는 것이 20세기 전통이었다면, 몇십 년 전부터 악보에 있는 음표 그대로, 악보에 있는 편성 그대로 연주하려는 경향이 조금씩 힘을 얻고 있다. 오늘날에는 '역사주의자'가 아닌 지휘자마저도 역사주의의 성과를 부분적으로 수용하고 있으며, 따라서 지휘자와 악단의 선택이 연주에 미치는 음향적 · 음악적 특성이 듣는이에게도 중요한 감상 포인트가 된다.

2016년 10월 9일 일요일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연주

『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입니다.


스즈키 마사아키 & 바흐 콜레기움 재팬 / 바흐솔리스텐 서울, 로저 노링턴(취리히 체임버 오케스트라), 아이버 볼튼(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오케스트라), 샹젤리제 오케스트라, 임선혜 & 베를린 고음악 아카데미, 아르테 델 몬도 오케스트라(다니엘 호프), 올리비에 슈느블리 & 베르사유 바로크 음악센터, 줄리아노 카르미뇰라, 크리스티네 쇼른스하임, 카살스 콰르텟.

통영국제음악당에서 공연했던 지휘자 · 연주자 · 악단입니다. '역사주의'라는 공통분모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지요. 한때 '원전'(原典) 또는 '정격'(正格; authentic) 등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기존 주류 연주 방식이 틀렸음을 암시하는 독선적인 뜻이 있음을 경계해 오늘날에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연주(Historically Informed Performance)라는 가치중립적 표현을 사용합니다. 줄여서 역사주의 연주라고 합니다.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연주'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역사주의자들은 새로운 학술적 발견을 연주에 적극적으로 받아들입니다. 20세기 이전부터 연주 관습이 단절 없이 이어지던 음악일수록 역사주의에 대한 음악계의 저항이 심했는데, 그것을 조금씩 누그러뜨려 온 힘은 학자들이 제시하는 객관적인 증거였습니다. 모차르트까지는 역사주의를 인정하더라도 베토벤부터는 도저히 그럴 수 없다던 사람들마저도 이제는 많이들 마음을 돌리고 있지요.

통영국제음악당에서는 그런 시대 변화에 앞장서는 연주자들을 꾸준히 초청해 왔습니다. 올해 예정된 공연 중 헬싱키 바로크 오케스트라와 타펠무지크 바로크 오케스트라 또한 역사주의를 지향하는 악단이고, 이 가운데 헬싱키 바로크 오케스트라는 단원이 6명뿐인 악단입니다. 바로크 시대에는 '오케스트라'를 이런 뜻으로도 썼다네요.

NDR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역사주의를 대표할 만한 스타 바이올리니스트 출신 지휘자 앤드루 맨지를 영입함으로써 역사주의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이 악단은 그 전에는 그냥 독일 하노버를 대표하는 일류 오케스트라였지요. 그래서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옛날 악기를 사용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카라얀'으로 대표되는 옛날 녹음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와는 많이 다를 듯해요.

먼저, 연주자 수를 불필요하게 '뻥튀기'하는 일이 없을 겁니다. 이번 NDR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내한공연 때 연주될 베토벤 교향곡 3번 연주에 필요한 오케스트라 단원 수는 대략 60명 정도입니다. 옛날에는 관악기 수를 두 배로 늘리고 현악기 수 또한 그것에 맞게 늘려서 훨씬 규모가 큰 오케스트라로 웅장한 느낌을 부풀리곤 했지만, 이번 공연에서는 60명 조금 넘는 인원만이 출연할 예정이라고 하네요.

오케스트라 덩치가 줄어들면 그만큼 날렵한 움직임이 가능해집니다. 학자들이 고증한 베토벤 당시 템포는 20세기 연주 관습과 견주면 훨씬 빨랐다고 하지요. 당시에는 현악기에 쓰던 현의 소재나 활의 구조 등도 오늘날과는 달랐기 때문에, 물리적인 조건에 따라 자연스럽게 연주할 수 있는 템포와 연주법이 있었지요. 현대 악기로도 스타카토와 비브라토 등 갖가지 연주법을 그때처럼 해서 비슷한 느낌을 살릴 수 있습니다.

베토벤 교향곡 3번에서는 이를테면 1악장 클라이맥스에서 트럼펫이 주선율을 연주하다 뒤로 빠지고 목관악기가 선율을 이끌어 가는 대목이 있습니다. 베토벤 당시 금관악기로는 낼 수 없는 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고, 악기가 개량된 오늘날에는 그런 음들까지도 선율에 포함하는 것이 작곡가의 의도에도 맞는다는 논리가 20세기에 널리 받아들여졌지요. 요즘에는 이런 곳마저도 악보 그대로 연주하곤 합니다.

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인 요스 판 이메르세일 또한 역사주의를 이끌어온 음악가로 유명합니다. '아니마 에테르나'라는 오케스트라를 창단하고 베토벤 교향곡 전곡을 녹음한 음반 등으로 국내에서도 많이 알려졌지요. 올 12월 초에는 요스 판 이메르세일의 피아노 연주를 통영국제음악당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바리톤 토마스 E. 바우어, 소프라노 서예리 등과 슈베르트 음악을 연주하는 '슈베르티아데' 공연이에요.

마침 이 글을 쓰던 중에 거장 지휘자 네빌 마리너가 향년 92세로 타계했다는 소식이 속보로 전해졌습니다. 넓은 의미에서 역사주의자라 할 수 있는 분이었지요. 고인께 명복을 빕니다.

2016년 10월 1일 토요일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 베토벤 교향곡 3번

통영국제음악당 공연 프로그램북에 실릴 글입니다.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Op. 77

브람스는 이 곡을 쓰면서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요아힘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했다고 하지요. 작품에서 때로 느껴지는 즉흥적인 충동이 그 결과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풍부한 감성의 이면에 치밀한 논리가 있는 것이 브람스 음악의 특징인데, 이 작품에서는 논리와 충동의 긴장 관계가 나타난다고요.

브람스는 1악장 제시부에 4가지 주요 주제를 사용했습니다. 소나타 형식에 흔히 나오는 제1주제, 제2주제와 더불어 종결구 주제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오케스트라 제시부에 없던 제3주제를 독주 바이올린이 제시하지요. 그런데 제2주제는 제1주제와 조성 관계로 구분되면서도 얼핏 제1주제와 비슷하게 들리기 때문에 자칫 헷갈릴 수 있습니다. 오히려 격렬한 종결구 주제가 앞선 주제군과 대조됩니다.

독주 바이올린이 처음 나오는 대목은 살짝 카덴차 느낌으로 앞서 말씀드린 즉흥적 충동이 두드러집니다. 격렬한 음형과 극적인 전개가 마치 기악 레치타티보처럼 느껴지기도 하지요. 이 음형은 제1주제를 변형시킨 것이라 할 수 있지만, 좀 더 뒤로 가서야 독주 바이올린이 제1주제를 온전히 제시합니다. 제2주제와 제3주제로 이어지는 과정 또한 제법 복잡합니다.

2악장은 세도막 형식, 3악장은 론도형식으로 1악장과 견주면 나머지 악장은 단순한 편입니다. 2악장에서는 애수 가득한 선율이 매력적이고, 3악장에서는 독주자의 불꽃 튀는 테크닉과 신나게 달리는 오케스트라가 흥미진진한 한판 대결을 펼칩니다.

베토벤: 교향곡 3번 E♭장조 Op. 55 ‘에로이카’

‘에로이카’(영웅)라는 제목의 유래에 관해 오늘날 정설로 인정받고 있는 것은 베토벤의 제자였던 페르디난트 리스가 한 말입니다. 표지 제목에 ‘보나파르트’를 이탈리아식 철자로 쓰고 하단에 자신의 이름 또한 이탈리아식으로 ‘루이지 판 베토벤’이라 쓴 악보를 봤다고요. 그리고 널리 알려진 것처럼,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스스로 황제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베토벤은 격분해서 그 표지를 찢어 버렸다고 하지요.

아마도 베토벤의 자필 악보였을 그 악보는 유실되었습니다. 그 대신 베토벤이 감수한 필사본이 남아 있는데, 표지에는 ‘보나파르트’라고 썼다가 지운 흔적이 있습니다. 얼마나 박박 지웠는지 종이에 구멍이 나 있다지요. 베토벤은 나중에 ‘보나파르트’ 이름을 필사본에 다시 썼고, 악보를 출판하면서는 제목이 ‘보나파르트’가 맞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그 제목에 흥미를 느낄 것이라고도 했고요. 그러나 베토벤은 결국 제목을 ‘에로이카’로 확정했습니다.

이 작품의 짜임새는 제목만큼이나 장대합니다. 1악장만으로도 당시에 연주되던 어지간한 교향곡 전체 길이와 맞먹을 정도이지요. 악상을 전개하는 방식 또한 파격적입니다. 베토벤은 이 작품에서 단순 명료함을 미덕으로 여기던 고전주의 음악 양식에서 벗어나, 화성적 · 조성적 안정성을 계속 뒤로 미루면서 그야말로 ‘영웅의 투쟁’처럼 파란만장한 짜임새를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완전히 새로운 음악에 충격을 받았고, 새로운 작곡 기법은 19세기 서양음악사를 지배하는 패러다임이 되었습니다.

음악학자 베리 쿠퍼는 이 작품의 내러티브를 영웅의 삶(1악장) → 영웅의 죽음(2악장) → 영웅의 부활(3악장) → 신격을 얻는 영웅(4악장)으로 보았습니다. 2악장이 장송행진곡인 까닭을 설명하는 해석으로 참고할 만하지만, 제 생각에 3악장을 ‘부활’로 보는 건 좀 억지스러워요. 이를테면 3악장을 영웅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4악장에서는 발레 음악 《프로메테우스의 창조물》 피날레 주제를 따서 쓰고 있습니다. 프로메테우스가 진흙상을 사람으로 만들어 파르나소스 산으로 데려간다는 줄거리인데, 베리 쿠퍼는 ‘폭풍 → 진흙상 → 생명을 얻음 → 신격을 얻음’ 짜임새가 ‘에로이카’ 4악장에 비슷하게 나타난다고 보았습니다. 여기서는 ‘폭풍’에 이은 ‘프로메테우스의 창조물’ 주제가 베이스 성부만으로 시작해 조금씩 온전한 형태를 갖춘 다음 변화하고 발전하지요.

베토벤은 공화정을 완성할 ‘현실의 프로메테우스’로 나폴레옹을 지목했고, 신화 속에서 프로메테우스의 도움으로 사람이 문명을 깨우친 것처럼 현실의 인류 또한 예술과 학문으로 신의 광휘에 끝없이 가까워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 작품의 조성은 거룩한 음악에 곧잘 쓰이던 E♭ 장조이며, 특히 4악장에서 E♭ 장조 화음이 찬란함을 더해 가는 과정이 백미입니다.

이 작품을 연주할 때 베토벤 당시보다 오케스트라 크기를 늘리고, 당시 금관악기로는 낼 수 없던 음을 덧붙여 연주하는 등 웅장함을 부풀리는 관습이 특히 20세기에 유행했지요. 그러나 요즘에는 되도록 악보 그대로 연주하려는 경향이 우세합니다. 하노버 NDR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지휘할 앤드루 맨지 또한 그런 추세를 이끌어 왔지요. 음악학자들이 새로 밝혀낸 것들이 반영될 이번 연주는 어떨지 기대 됩니다.

2015년 6월 13일 토요일

베토벤 교향곡 7번, 19세기 초반의 '록 스피릿'

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 원고입니다.


2006년 10월, 일본의 한 음악 다운로드 사이트에서는 베토벤 교향곡 7번이 하루 동안 3000여 회, 한 달 동안 3만여 회 다운로드되는 기록이 나왔습니다. 한국에서도 화제가 되었던 TV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에 이 작품이 매우 비중 있게 사용되면서 일어난 일입니다.

같은 제목으로 나온 원작 만화와 애니메이션까지 일본에 클래식 음악 붐을 일으키는데 일조했다지만, 베토벤 교향곡 7번의 인기는 TV 드라마의 힘이 컸다고 생각해요. 우선 드라마 시그널 음악으로 1악장 제시부 제1 주제를 크게 부풀리는 대목이 쓰였고, 남자 주인공 치아키 신이치가 오케스트라를 처음 지휘한 곡이 원작과 달리 이 곡이기도 하지요.

베토벤 교향곡 7번은 마지막 4악장이 워낙 신나는 곡이라 극적인 효과가 더욱 크지 않았나 싶습니다. 악보를 보면 요즘 하는 말로 '록 스피릿'(Rock spirit)이 느껴지는데요, 악보에 익숙지 않은 사람도 리듬 위주로 보면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 특징이 있습니다. 같이 살펴 볼까요?

일단 첫머리에 나오는 셈여림 기호가 ff(매우 세게)입니다. 현악기가 8분 음표 스타카토로 '짠!' 하고 바로 이어 관악기와 팀파니가 '♬♪' 리듬으로 받지요. 그러니까 '짠짜라잔!' 리듬이 됩니다. (예시한 악보에서는 목관악기 부분이 잘려서 보이지 않고, 위에서부터 호른, 트럼펫, 팀파니, 그리고 현악기입니다.)

본격적으로 주제 선율이 나타나면, 2/4박자인데 약박인 둘째 박마다 거꾸로 sf(스포르찬도; 특히 그 음을 세게) 기호가 달려 있지요. 그리고 트럼펫, 호른, 팀파니 등이 같은 음으로 '스포르찬도'에 집중합니다. 첼로와 더블베이스가 같은 음, 같은 리듬으로 힘을 보탭니다. (정확히는 같은 음계음이지요. 일부 악기는 악보에 쓰는 음과 실제 소리 나는 음이 다르기도 한데, 여기서는 모두 E(미)음입니다.)

애초에 셈여림 기호가 '매우 세게'인데 둘째 박마다 '특히 그 음을 더 세게' 연주해야 하고, 음량이 큰 악기를 둘째 박에 집중시켜 놨어요. 그래서 '읏, 따아–! 읏, 따아–!' 하는 강력한 리듬이 만들어지며, 이것이 악곡을 지배합니다. 짧은 도입부에 나왔던 '짜라잔!' 리듬이 살짝 거들지요.

곡이 절정에 이르면 이 음형이 광란으로 치달아, 셈여림 기호는 fff(매우 매우 세게)가 되고 트럼펫이 결정적인 '한 방'을 터트립니다. 그야 말로 듣는 사람 숨 넘어가게 만드는 짜임새예요.

카라얀, 번스타인, 푸르트벵글러, 토스카니니 등 유명 지휘자들이 저마다 막강한 화력으로 퍼부어댄 명연주를 녹음으로 남겼지요. 명반으로 꼽히는 것 가운데 '이단'(?)이 하나 있는데, 카를로스 클라이버가 지휘한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녹음입니다. 위에서 살펴본 악보 지시를 정면으로 배신하고 트럼펫 소리를 들릴락말락하게 다스렸거든요.

그런데 현으로 만들어내는 리듬이 너무나 활기차서, 클라이버는 그것만으로 '광란의 춤'을 이끌어 냅니다. '작품을 내놓고 나면 작가는 죽어야 한다'(움베르토 에코)라는 말이 이만큼 잘 어울리는 연주도 없을 듯해요.

6월 27일 토요일,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에서는 귄터 피흘러(Günter Pichler)가 지휘하는 TIMF앙상블이 베토벤 교향곡 7번을 연주합니다. 귄터 피흘러는 카라얀 시대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악장이었으며 알반 베르크 콰르텟을 이끌었던 세계 정상급 바이올리니스트이지요.

바이올리니스트 출신 지휘자가 이 곡을 지휘하면 카를로스 클라이버처럼 될까요? 그러나 한 가지 생각해야 할 것은, 그런 '이단적인' 해석은 대편성 오케스트라로만 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카라얀-클라이버 시대에는 베토벤 당시와 견주면 두 배 가까이 부풀린 인원으로 연주하는 게 관행이었지요. 베토벤의 진정한 의도를 살리려면 악보 지시를 곧이곧대로 지키는 것보다 '뻥튀기'를 좀 하는 게 낫다는 논리예요.

그러나 이번 연주회는 베토벤 시대와 대략 비슷한 악단 규모가 될 예정입니다. 객원 연주자까지 포함해서 50명이 채 안 될 거예요. 그러니까 역시 금관의 화력이 있어야 '록 스피릿'이 살아날 듯한데요, 이번 연주회는 어떨지 저도 궁금합니다!

2015년 5월 1일 금요일

드보르자크 피아노 트리오 4번 Op. 90 '둠키', 베토벤 피아노 트리오 Op. 97 '대공'

통영국제음악재단 공연 프로그램북에 실릴 작품 해설입니다.

드보르자크: 피아노 트리오 4번 Op. 90 '둠키'

둠키(Dumky)는 둠카(Dumka)의 복수형입니다. 둠카는 폴란드 · 우크라이나 · 체코 등 동유럽에서 나타난 노래로, 탄식하거나 우울하게 사색하는 내용이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박자는 2박자 계통이 흔하고, 많은 경우 유절 형식이지요. 19세기 이후에는 기악 둠카도 많이 나타났고, 쇼팽, 리스트, 야나체크, 그리고 차이콥스키와 무소륵스키 등 동유럽 및 일부 러시아 작곡가가 둠카 양식으로 된 곡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둠카 기악곡을 가장 많이 쓴 작곡가는 드보르자크라 할 수 있어요.

드보르자크의 둠카는 느리고 우울한 대목과 빠르고 활기찬 대목을 엇갈리게 하는 점이 독특합니다. '둠키 트리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악장이 겹세도막 형식 또는 겹두도막 형식으로 되어있고, 느림과 빠름이 엇갈리는 짜임새가 어떤 면에서는 론도 형식과도 통합니다. 이런 특징이 너무나 뚜렷해서 악장 사이 변화가 고만고만하게 느껴질 정도이지요. 그래서 느리고 슬픈 음악과 빠르고 강렬한 음악이 어떻게 엇갈려 이어지고 또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헤아리는 것이 이 곡의 감상 포인트입니다.

베토벤: 피아노 트리오 Op. 97 '대공'

이 작품은 오스트리아의 루돌프 대공에게 헌정된 작품입니다. 루돌프 대공은 베토벤의 가장 큰 후원자이자 베토벤에게 음악을 배운 제자였고, 베토벤은 피아노 협주곡 5번, 함머클라비어 소나타, 장엄미사, 대푸가 등 여러 작품을 그에게 헌정했지요.

귀족적인 분위기가 특징적인 '대공 트리오'는 형식적으로 명쾌하면서도 베토벤다운 예술적 탁월함이 있는 걸작입니다. 1악장은 소나타 형식, 2악장은 스케르초와 트리오 꼴 세도막 형식, 3악장은 변주곡 형식, 4악장은 론도 형식으로, 그나마 형식적으로 독특한 곳이 있다면 스케르초를 3악장이 아닌 2악장에서 사용한 점, 1악장 제1 주제에서 제2 주제로 넘어갈 때 제법 긴 경과구를 거쳐 딸림조가 아닌 6도 관계조로 과감한 조바꿈을 사용했다는 것 정도이지요.

3악장에서는 가슴 뭉클한 선율과 화음이 뒤에 가서 제법 다양하게 변주되므로 조금 주의가 필요합니다. 주제 선율과 분위기를 이어가는 것은 첫 번째 변주까지이고, 두 번째 변주부터는 화음 등에서 원래 주제가 남아 있기는 해도 선율과 리듬은 느낌이 많이 달라지거든요. 살짝 변형된 원래 주제로 돌아와 여운을 남기면서 끝나는 3악장은, 갑자기 바뀐 템포와 함께 곧바로 4악장으로 이어집니다. 4악장은 A-B-A-C-A-B-A 꼴에 마지막에 빠르고 힘찬 종결구가 있는 짜임새입니다.

반말체로 고친 텍스트:

베토벤은 피아노 협주곡 5번, 함머클라비어 소나타, 장엄미사, 대푸가 등 여러 작품을 오스트리아의 루돌프 대공에게 헌정했으며 ‘대공 트리오’ 또한 마찬가지다. 루돌프 대공은 베토벤의 가장 큰 후원자이자 베토벤에게 음악을 배운 제자이기도 했다.

귀족적인 분위기가 특징적인 '대공 트리오'는 형식적으로 명쾌하면서도 베토벤다운 예술적 탁월함이 있는 걸작이다. 1악장은 소나타 형식, 2악장은 스케르초와 트리오 꼴 세도막 형식, 3악장은 변주곡 형식, 4악장은 론도 형식으로 되어 있다. 스케르초를 3악장이 아닌 2악장에 배치한 점, 그리고 1악장 제1주제에서 제2주제로 넘어갈 때 제법 긴 경과구를 거쳐 딸림조가 아닌 버금가온조(6도 관계조)로 과감한 조바꿈을 사용한 것이 특이하다. 그러나 그 이상의 형식적 파격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3악장에서는 가슴 뭉클한 선율과 화음이 변주된다. 주제 선율과 분위기를 이어가는 것은 첫 번째 변주까지이며, 두 번째 변주부터는 화음 등에서 원래 주제가 남아 있으나 선율과 리듬은 느낌이 많이 달라져서 음악에 다채로움을 더한다. 살짝 변형된 원래 주제로 돌아와 여운을 남기면서 끝나는 3악장은, 갑자기 바뀐 템포와 함께 곧바로 4악장으로 이어진다. 4악장은 A-B-A-C-A-B-A 꼴에 마지막에 빠르고 힘찬 종결구가 있는 짜임새다.

2011년 6월 27일 월요일

베토벤 교향곡 5번 /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 ― 넬손 괴르너 / 성시연 / 서울시향

2011-05-19 오후 08:00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 : 성시연
피아노 : 넬손 괴르너

드보르자크, 사육제 서곡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
베토벤, 교향곡 5번

언제나 그렇듯이, 무삭제판 ㅡ,.ㅡa


음악을 들으면서 지휘 흉내를 낸 일이 있는가. 베토벤 교향곡 5번이야말로 '남이 보면 안 되는 지휘 생쇼'를 하기에 가장 신 나는 곡일 터. 그런데 실제로 지휘하려면 '운명 모티프'라 불리는 첫 두 마디부터 만만치 않다. 처음부터 빠른 음형이 그것도 여린박으로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예비박을 어찌 줘야 할까? 8분음표로 시작하므로 8분음표만큼 예비박을 주면, 비팅(beating)이 너무 날카로워서 악단이 첫 박으로 착각하기 딱 좋다. 지휘자에 따라서는 아예 예비박이 아닌 예비 '마디'를 세 마디나 넣어 헷갈리지 않게끔 하기도 하지만, 실용적이기는 해도 모양새가 영 좋지 않다.

지휘자 성시연은 지휘봉을 살짝 올렸다가 멈춘 다음 날카로운 예비박을 주는 모범적인 지휘를 했다. 그런데 아뿔싸! 몇몇 단원이 반 박자 빨리 나오는 바람에 이른바 '만득이 현상'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곡이 워낙 이러니 실연 때 이런 일이 곧잘 일어난다. 마침 이날 프라하 스메타나 홀에서는 마이클 틸슨 토머스가 지휘하는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같은 곡을 연주했는데, 방송 녹음을 들어 보니 바이올린 연주자 하나가 반 박자도 아니고 한 박자나 빨리 튀어나오는 사고 현장이 마이크에 또렷하게 잡혔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따따따 따안―' 할 때 긴 음에는 늘임표(fermata)가 붙어 있다. 얼마만큼 늘여야 할까? '늘임표'라는 말에 맞게 감으로 대충 늘일 수도 있겠고, 제시부 끝과 코다에서 비슷한 음형이 나올 때 늘어난 음 길이를 근거로 한 마디를 세 마디로 늘일 수도 있겠다. 음반을 들어 보면 아예 늘임표를 무시하는 연주도 있다. 성시연은 감으로 대충 늘인 듯했으며, 둘째 마디를 네 마디쯤으로 늘이고 넷째-다섯째 마디를 다섯 마디쯤으로 늘였다. 이처럼 이 곡을 들어보면 처음부터 지휘자가 여러 가지로 고민했을 흔적이 드러난다.

악기 편성도 문제다. 옛날에는 악보에서 지시한 것보다 훨씬 큰 편성으로 연주하는 일이 잦았지만, 요즘은 악보 지시를 그대로 지키는 일이 보통이다. 이날 서울시향은 호른 한 대를 더블링(doubling)한 것을 빼면 악보에서 지시한 2관 편성을 그대로 지켰다. (현악기는 글쓴이가 객석에서 세어 보니 5-5-4-4-3 편성이었다.) 이른바 '역사주의 연주'가 힘을 얻으면서 생긴 유행으로, 정명훈 지휘자도 시향 개편 초기에 베토벤 교향곡 전곡을 연주하면서 9번 교향곡을 뺀 모든 곡을 악보대로 편성했다. 지난해 9월 베토벤 교향곡 3번을 지휘한 로렌스 르네스도 비슷한 시도를 한 바 있다.

관습적으로 금관을 덧붙이는 등 악보대로 연주하지 않던 대목을 악보 그대로 연주한 것 또한 역사주의를 따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를테면 1악장 제시부 제2 주제를 여는 E♭ 장조 호른 음형은 재현부에서 바순이 C 장조로 연주하는데, 이 곡이 나왔을 당시 호른으로 연주할 수 없는 음형이라서 베토벤이 할 수 없이 호른이 아닌 바순에 맡겼다는 주장이 있다. 4악장 마디 132에서는 비슷한 근거로 악보에 없는 금관 음형을 덧붙여 연주하는 관습이 있었다. 작품이 끝날 무렵에 트럼펫이 주선율을 연주하도록 고치기도 한다. 이날 서울시향은 이 대목을 모두 악보대로 연주했다.

이처럼 소편성으로 연주하고 금관을 덧붙이지도 않으면 투명한 음색과 날렵한 리듬을 살리기에 좋다. 그러나 대형 연주회장에서는 음량이 작아서 단점이 따르기도 한다. 연주회장 음향이 그다지 좋지 않으면 더욱 그렇다.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은 음향이 국내 최고 수준이라고들 하지만, 외국에서 이름난 연주회장과 견주면 그다지 좋은 연주회장이라 하기 어렵다. 글쓴이는 이날 1층 뒷자리에 앉은 탓에 이런 단점을 크게 느꼈다. 귀로 들은 것만으로 판단하자면, 이날 연주는 소리가 둥글둥글하고 마이크로다이내믹스(micro-dynamics)에 심각한 문제가 있어서 작품과 어울리지 않는 곳이 많았다. 물론 이것은 글쓴이가 음향적 왜곡을 경험한 것으로 실제 연주는 그렇지 않았음이 틀림없다.

요즘 유행하는 말 가운데 '중2병'이라는 것이 있다. 사춘기 시절 과대망상을 희화화하는 말이며 맥락에 따라 욕설에 가까운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중2병도 예술로 승화하면 걸작이 될 수 있다. 이를테면 시사평론가 한윤형은 타나카 요시키가 쓴 대하소설 『은하영웅전설』을 두고 "가장 탁월한 중2병 텍스트"라 논평하며 『삼국지』와 견주기도 했다. 게다가 어찌 보면 서양 낭만주의 시대에는 중2병이 시대정신이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가장 탁월한 중2병 작곡가는 쇼팽과 바그너다. '자폐형 중2병'과 '민폐형 중2병'으로 성격은 거꾸로지만.

쇼팽 피아노 협주곡을 협연한 넬손 괴르너는 가장 탁월한 '중2병 아티큘레이션'을 들려주었다. 툭 건드리면 울어버릴 듯한 표정이 묻어나는 프레이징, 때때로 너무하다 싶을 만큼 흔들리는 루바토, 그리고 물결에 되비친 햇살처럼 반짝이는 음색이 알맞게 어우러져 그야말로 '중2병스러움'이 예술로 승화했다. '중2병'이라는 말이 마음에 안 든다면 '옴므 파탈'(Homme fatal)이라고 불러도 좋겠다.

2010년 12월 24일 금요일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 브람스 교향곡 1번 ― 다비트 아프캄 / 바이바 스크리데 / 서울시향

2010-11-18 오후 08:00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 : 다비트 아프캄 David Afkham, conductor
협연 : 바이바 스크리데 (바이올린) Baiba Skride, violin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Beethoven, Violin Concerto
브람스, 교향곡 1번 Brahms, Symphony No. 1

언제나 그렇듯이, 무삭제판 ㅡ,.ㅡa

본디 이날 지휘자가 마크 위글스워스였는데, 이 인간이 일정 취소하고 인디애나폴리스 오케스트라로 갈아탔음. 공식 사유는 건강 문제. 잊지 않겠다. -_-^


서양음악에서 셈여림이 음악적 표현 수단으로 본격적으로 주목받은 때는 대략 18세기 중반부터였다. 악기가 크게 개량되고 터키(오스만 튀르크)에서 타악기가 수입되었으며, 여기에 고전주의 음악 양식이 맞물려 나타났다. 오늘날 쓰이는 셈여림 기호는 대부분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등이 만들었다. 그리고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에도 이러한 흐름에 따른 뚜렷한 셈여림 대비가 나타난다.

협연자 바이바 스크리데는 독주 바이올린으로도 뚜렷한 셈여림 대비를 만들었고, 그 중심에 이른바 '소토 보체'(sotto voce)가 있었다. 소토 보체란 본디 성악에서 쓰는 말로 여린 목소리를 뜻한다. 그러나 '피아니시모' 등과는 달리 그저 소리를 작게 내라는 뜻이 아니라 여린 소리로도 음악적 긴장감을 잃지 말고 돋보이게 하라는 뜻이다.

바이올린으로 가장 멋진 소토 보체를 뽐내는 연주자로는 바딤 레핀이 있는데, 윗활을 곧잘 써서 매끄럽게 빛나는 음색에 어찌 들으면 능글맞은 포르타멘토를 곁들이곤 한다. 스크리데는 그와 달리 가냘프게 늘어지는 소리를 들려주었으며, '소토 보체'라는 말 그대로 연주가 아닌 '노래'를 하는 듯했다.

그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1악장에서 발전부를 한참 지나 g단조로 바뀌는 마디 330부터였다. 스크리데는 이곳에서 템포를 뚝 떨어트려 여린 소리를 내다가 오케스트라가 피치카토로 연주하는 마디 361에 이르러서야 아첼레란도 및 크레셴도를 거쳐 재현부로 돌아왔고, 그로써 재현부 으뜸화음이 눈부시게 돋보이기도 했다.

2악장에서는 둘째 변주가 끝날 무렵 쉼표와 셋잇단음이 네 차례 이어지는 대목(마디 27)에서 소토 보체와 함께 디미누엔도, 랄렌탄도, 루바토를 알맞게 섞어서 마치 울먹이는 듯한 효과를 불러온 대목이 가슴 뭉클했다.

3악장에서는 소토 보체를 빼놓더라도 곳곳에서 성악적 감수성이 묻어나는 아티큘레이션(articulation)이 돋보였고, 코다에서 그동안 쌓인 음악적 긴장감이 으뜸화음을 만나 폭발하면서 그 에너지가 독주 바이올린 f# 음에 집중되는 마디 331이 가장 훌륭했다.

카덴차는 크라이슬러 것을 연주했으며, 다만 2악장 카덴차는 첫 마디 아르페지오만 연주하고 넘어갔다.

지휘자 다비트 아프캄은 지난 9월 베토벤 교향곡 3번을 지휘한 로렌스 르네스처럼 현을 6-5-4-3-2로 편성했고, 악기 배치도 유럽식으로 제1 바이올린과 제2 바이올린을 좌우로 나누고 첼로 등을 가운데로 모았다. 로렌스 르네스만큼은 아니더라도 이 또한 역사주의 연주에 영향받은 바 없다고 말하기는 어렵겠다.

브람스 교향곡 1번에서는 현을 7-7-6-5-4로 부풀렸으며, 다만 관악기는 호른을 한 대 더블링(doubling)한 것을 빼면 2관 편성을 지켰다. 저음 현으로 갈수록 가볍게 편성한 탓에 이를테면 1악장에서 때때로 저음 현 음형이 잘 안 들리는 등 단점이 드러나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은 전체적으로는 장점이 되었고, 제1 바이올린과 제2 바이올린이 좌우로 나뉜 배치에서 오는 '스테레오 효과'가 두드러지게끔 했다.

이를테면 3악장 곳곳에서 '스테레오 효과'가 멋졌으며, 4악장 이른바 '알프스 호른' 대목에서는 좌우로 펼쳐진 바이올린 소리가 물결에 반짝이는 아침 햇살처럼 빛났다. 4악장 코다에서 절정을 바로 앞두고 '음 하나하나를 매우 또렷하게'(ben marcato) 지시가 있는 마디 395-406에서는 '스테레오 효과'와 함께 마치 벌판에서 말 달리는 듯한 현 소리가 가장 돋보였다.

템포는 조금 빨랐고, 그 가운데 3악장이 제법 빨랐다. 4악장에서는 '알프스 호른' 대목과 제1 주제를 지나 경과구(transition)로 넘어가기에 앞서 아첼레란도를 주었는데, 그 뒤로 웬만하면 템포를 늦추지 않고 꾸준히 달리면서 음악적 긴장감을 차곡차곡 쌓아 나가다가 마지막에 크게 터트렸다.

호른이 '알프스 호른' 대목을 비롯한 곳곳에서 깔끔한 연주를 들려주었고, 이 곡에서 제법 비중이 높은 악기인 오보에도 훌륭했다. 그 가운데 오보에 수석 이미성은 서울시향이 개편한 뒤로 악단과 함께 꾸준히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니 더욱 칭찬할 만하다. 이미성은 처음부터 직책이 '수석'은 아니었다. 그러나 음악적 표현력이 나날이 좋아져서, 지난해 1월 연주회 리뷰에서 글쓴이는 이미성이 "벽을 넘은 듯한 모습"을 보였다고 썼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미성은 수석 단원이 되었으며, 이날은 더욱 멋진 연주를 들려주었다.

서울시향은 정명훈이 지휘할 때 가장 뛰어남은 말할 나위 없다. 그러나 '젊은 악단'이기 때문일까. 서울시향은 젊고 솜씨 있는 지휘자를 만났을 때 깜짝 놀랄 만한 연주를 들려주기도 한다. 또 요즘은 전 세계적으로 지휘자 세대교체가 일어나고 있어서 젊고 훌륭한 지휘자가 곧잘 눈에 띈다. 그리고 1983년생 다비트 아프캄 또한 이날 연주를 들어 보니 크게 될 사람이 틀림없다. 이름을 기억해 두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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