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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4월 23일 수요일

드뷔시: 어린이 차지 (한스 아브라함센 편곡)

드뷔시: 어린이 차지 (한스 아브라함센 편곡)

‹어린이 차지›는 드뷔시가 3살짜리 딸 클로드-에마 드뷔시, 애칭으로는 ‘슈슈’(Chouchou)를 위해 작곡한 피아노 모음곡이다. 악보에는 ’소중하고 귀여운 슈슈에게, 이어지는 내용에 대한 아빠의 다정한 사과의 마음을 담아’라는 머리말이 있다. 한스 아브라함센의 ‹어린이 차지›는 드뷔시 피아노곡을 관현악곡으로 재창작한 것으로, 드뷔시 탄생 150주년을 기념하여 네덜란드 라디오 체임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위촉으로 작곡되었다.

이 작품은 여섯 개의 소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곡 ’그라두스 아드 파르나숨 박사’는 딸이 피아노를 익히는 모습을 담고 있다. ’그라두스 아드 파르나숨’은 ’파르나소스 산으로 오르는 한 걸음’이라는 뜻으로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속담과 통하는 바가 있다. 18세기 작곡가이자 음악이론가 J. J. 푹스는 같은 제목으로 음악이론서를 남겼고, 클레멘티와 체르니 등의 작곡가는 같은 제목의 피아노 연습곡을 썼다.

제2곡 ’짐보의 자장가’는 슈슈의 코끼리 인형 이름에서 따온 제목이며, 제3곡 ’인형을 위한 세레나데’는 슈슈가 아끼던 다른 인형을 소재로 한다. 제2곡이 코끼리의 묵직한 발걸음으로 묘사되는 것에 반해, 제3곡의 인형은 도자기 인형의 반짝이는 질감을 표현한다.

제4곡 ’눈송이가 춤춘다’는 창밖의 눈 내리는 풍경을 묘사하고, 제5곡 ’어린 양치기’는 양치기가 뿔피리 부는 모습을 목가적으로 표현한다. 제6곡 ’골리워그의 케이크워크’는 춤추는 인형을 묘사하며 래그타임 리듬이 두드러진다. 골리워그는 빨간 바지와 빨간 나비넥타이를 맨 흑인 인형이고, 케이크워크는 19세기 말 미국 남부 흑인 노예들의 해학적인 춤이다.

C. Debussy: Children’s Corner (arr. by H. Abrahamsen for orchestra, 2011)

‹Children’s Corner› is a piano suite composed by Debussy for his three-year-old daughter, Claude-Emma Debussy, affectionately known as “Chouchou.” The sheet music bears the dedication: “To my dear little Chouchou, with tender apologies from her father for what follows.” Hans Abrahamsen’s ‹Children’s Corner› is a reimagining of Debussy’s piano pieces as an orchestral work, commissioned by Radio Kamer Filharmonie to celebrate Claude Debussy at 150 in 2012.

This work consists of six pieces. The first piece, “Doctor Gradus ad Parnassum”, depicts the daughter practicing the piano. “Gradus ad Parnassum” means “A Step to Parnassus,” symbolizing steady progress. The 18th-century composer and music theorist J. J. Fux wrote a seminal textbook with the same title, and composers such as Clementi and Czerny also wrote piano pieces under this name.

The second piece, “Jimbo’s Lullaby”, is named after Chouchou’s toy elephant, while the third piece, “Serenade for the Doll”, is inspired by another doll she cherished. While the second piece evokes the heavy footsteps of an elephant, the third captures the delicate, shimmering texture of a porcelain doll.

The fourth piece, “The Snow is Dancing”, depicts a snowy landscape outside the window, while the fifth, “The Little Shepherd”, presents a pastoral image of a shepherd playing a flute. The sixth piece, “Golliwogg’s Cakewalk”, portrays a dancing doll and is characterized by a lively ragtime rhythm. The Golliwogg was a Black caricature doll typically dressed in red trousers and a red bow tie, while the cakewalk was a dance that originated among enslaved African Americans in the Southern United States in the late 19th century.

2024년 4월 17일 수요일

드뷔시: 바다

예전에 썼던 글의 문체를 바꿔서 새로 쓰고 영문 번역을 추가함.


고전주의와 낭만주의로 대표되는 전통적인 서양음악은, 마치 극(drama)이 기승전결 구조를 따르는 것처럼 어떤 ‘방향성’을 따라 ’발전’하는 짜임새를 갖는다. 그 바탕이 되는 화성 진행 원리를 작곡가이자 이론가 장필리프 라모는 뉴턴의 중력이론에 빗대기도 했다. 여기에 계몽주의 사상이 결합하면, 베토벤 교향곡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어둠에서 광명으로’ 짜임새가 된다.

드뷔시 음악은 이러한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있다. 드뷔시 음악은 목표를 향해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방향성 없이 그저 흘러간다. 이것은 드뷔시 음악을 설명할 때 흔히 거론되는 ’인상주의’의 일면으로, 특히 교향시 ‹바다›에서는 마치 그림을 보는 듯 음악이 정지해 있는 느낌이 든다. 음악학자 리처드 타루스킨이 했던 말을 빌리자면, 이것은 시간예술과 공간예술의 차이점을 메우는 장치라 할 수 있다.

1악장 ‘바다의 새벽부터 정오까지’를 들어보면, 새벽에 해가 떠서 수평선을 붉게 물들이고, 마침내 해가 높이 떠올라 눈부신 한낮의 햇살을 쏟아내는 모습이 환상적으로 느껴진다. 음악이 너무나 멋있어서 자세한 설명은 차라리 군더더기가 될 것이다. 그런데 2악장 ’파도의 희롱’과 3악장 ’바람과 바다의 대화’를 들으면서는 고개를 갸우뚱할 수도 있다. 이 음악이 어딘가 안정감이 없어서 불편한 느낌이 든다면, 그것은 ’발전하는’ 음악에 너무 익숙한 탓일지도 모른다.

드뷔시 음악을 듣고 갸우뚱하게 하는 또 다른 원인은 모네, 르누아르 등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화가들의 작품이다. 드뷔시 음악이 오해와 달리 모네 등의 그림과 그다지 닮은꼴이 아닌 까닭이다. 이것은 음악과 미술의 차이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사실은 드뷔시가 대표적인 인상파 화가들에게서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리처드 타루스킨이 지적한 것처럼, 드뷔시 음악에 진정 큰 영향을 끼쳤던 사람들은 인상파 화가 중에서도 빛을 묘사하는 획기적인 표현 기법을 개발한 영국 화가 조지프 말러드 윌리엄 터너(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그리고 전체적인 ’분위기’를 어른어른한 색채로 그림에 담았던 미국 화가 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James Abbott McNeill Whistler) 등이다.

▲ 가쓰시카 호쿠사이(葛飾 北斎), 가나가와 앞바다 파도 뒤(冨嶽三十六景 神奈川沖浪裏)

드뷔시는 또한 일본 에도시대 풍속화에서 영감을 얻기도 했다. 우키요에(浮世絵)라 불리는 이것은 인상주의 미술 사조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드뷔시는 그 가운데 호쿠사이의 판화 ‹가나가와 앞바다 파도 뒤›를 보고 ‹바다›를 작곡했고, 이 판화가 ‹바다› 초판 악보 표지로도 쓰였다. ‹바다›에서 어딘가 동아시아 느낌을 받는다면 그것은 이 판화의 영향 때문일 수도 있다.

C. Debussy: La mer

Classical Western music, represented by classicism and romanticism, has a structure that follows a “direction” and “development” akin to the plot structure of a drama. The underlying principles of harmonic progression, as explained by composer and theorist Jean-Philippe Rameau, have been likened to Newton’s theory of gravity. When combined with the Enlightenment philosophy, it becomes a structure that can be commonly seen in Beethoven’s symphonies, where there is a transition “Per Aspera, Ad Astra” (through hardships to the stars).

Debussy’s music, however, deviates from this paradigm. His compositions do not progress towards a specific goal; instead, they flow without a distinct direction. This aspect is often referred to as an aspect of Impressionism when describing Debussy’s music. Particularly in the symphonic poem ‹La mer›, it feels like the music is standing still, as if looking at a painting. To quote musicologist Richard Taruskin, this can be seen as a device that bridges the difference between time-based art and space-based art.

The first movement of ‹La mer›, titled “From Dawn to Noon on the Sea,” creates a fantastic sensation of the sunrise, with the sun gradually illuminating the horizon. It’s an experience that may be better felt than described in detail. But listening to the second movement, “Play of the Waves,” and the third movement, “Dialogue of the Wind and the Sea,” one might find it perplexing. If the music feels unsettling or lacks a sense of stability, it could be due to being too accustomed to music that follows a developmental structure.

Another reason why Debussy’s music can be confusing is because of the works of Impressionist painters such as Monet and Renoir. Debussy’s music is not very similar to Monet’s paintings, contrary to popular misunderstanding. This may be due to the difference between music and art, but in fact, it is also because Debussy was not particularly influenced by the typical Impressionist painters.

As Richard Taruskin pointed out, those who truly influenced Debussy’s music include British painter 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known for his groundbreaking portrayal of light, and American painter James Abbott McNeill Whistler, who depicted overall atmospheres with subtle coloration.

▲ Hokusai Katsushika, The Great Wave off Kanagawa

Debussy also found inspiration in Japanese Ukiyo-e woodblock prints from the Edo period, a movement that profoundly influenced Impressionist art. Influenced by Hokusai’s print ‹The Great Wave off Kanagawa›, Debussy composed ‹La mer›, with the same print gracing the cover of the initial score edition. If you perceive an East Asian undertone in ‹La mer›, it could be traced back to the impact of this particular woodblock print.

2017년 2월 24일 금요일

드뷔시: 작은 모음곡 (Petite Suite)

“말하자면 두 가지 아방가르드가 나란히 형성되고 있었다. 파리 사람들은 밝은 일상의 세계로 옮겨갔다. 빈 사람들은 반대 방향으로 가면서, 성스러운 횃불로 무시무시한 심연을 밝혀 나갔다.”

음악평론가 알렉스 로스는 1900년대 유럽 음악계를 이렇게 묘사했다. 여기서 “빈 사람들”은 쇤베르크, 베베른, 베르크 등을 가리키고, “파리 사람들”은 드뷔시, 사티 등을 일컫는다. ‹작은 모음곡›은 클로드 드뷔시가 1886년에서 1889년에 걸쳐 작곡한 비교적 초기 작품이지만, 이후 본격적으로 나타날 ’파리 아방가르드’를 예견케 하는 씨앗들이 이 작품에 이미 내재해 있음을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다.

드뷔시는 이 작품을 쓰던 당시에 폴 베를렌의 시에 매혹되었다고 전해지며, ‹작은 모음곡›의 제1곡과 제2곡에 붙은 제목은 그의 시 제목과 일치한다.

제1곡 ‘쪽배’(En bateau)는 달밤의 뱃놀이를 그린 곡으로 베를렌의 시적 정서와도 잘 어우러진다. “그동안 달이 떠오르고 / 쪽배는 짧은 길을 따라 / 즐거이 나아가네 꿈꾸는 물 위를.”

제2곡 ‘행렬’(Cortège)은 경쾌한 리듬으로 거리 행진을 해학적으로 묘사한다. 베를렌 시에서는 원숭이와 소년이 깡총거리는 모습, 그리고 여인의 토르소를 보고 앙큼한 상상을 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우아하고 신비로운 제3곡 ’미뉴에트’와 축제 분위기의 제4곡 ’발레’는 동화적인 분위기로 앞선 두 곡과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이 곡은 본디 피아노 연탄곡으로 쓰였으며, 앙리 뷔세르가 편곡한 관현악 또한 널리 연주된다.

(2026. 5. 12. 최종 수정.)

2017년 2월 2일 목요일

드뷔시: 플루트, 비올라, 하프를 위한 소나타 (1915) - 윤이상의 관점

통영국제음악제 프로그램북에 사용할 글입니다.


윤이상은 자신의 음악에 영향을 끼친 서양 작곡가를 한 사람만 꼽는다면 드뷔시라 밝힌 일이 있다. 18세기 이래 서양음악 작곡가들은 어떤 목표를 향해 발전해 나가는 짜임새를 추구하며 그 진행 과정의 논리성을 중시했는데, 이러한 관점에서 쇤베르크의 12음 음악은 흔한 오해와 달리 전통과 단절한 것이 아니라 거꾸로 전통을 완성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드뷔시는 이와 달리 흐르고, 자라고, 순환하는 음악을 추구했다. 이런 특징은 동아시아 음악과 비슷하며, 일본 에도시대 풍속화인 우키요에(浮世絵)가 드뷔시 음악에 영향을 끼쳤음을 헤아릴 때 윤이상이 드뷔시를 참고한 일은 우연이 아니다. 윤이상은 훗날 자신의 음악에 목표지향적인 요소를 담기도 했으나, 이것은 발전이 아닌 해탈을 위한 것으로 서양음악 전통과는 맥락이 다르다.

드뷔시의 플루트, 비올라, 하프를 위한 소나타 (1915)는 윤이상 1986년에 있었던 강연에서 자신의 음악과 비교하며 예로 들었던 작품이다. 윤이상이 이 음악에서 발견한 것은 발전하지 않고 순환하는 형식, "빛과 그림자가 어우러지는 관계" 그리고 동아시아인에게 익숙한 개념인 정중동(靜中動)이다.

2016년 6월 8일 수요일

슈베르트 현악사중주 12번 c단조 D. 703 ‘Quartettsatz’ / 모차르트 현악사중 주 C장조 K. 465 ‘불협화음’ / 드뷔시 현악사중주 g단조 Op. 10

통영국제음악당 공연 프로그램북에 실릴 글입니다.


슈베르트: 현악사중주 12번 c단조 D. 703 ‘단악장’

1820년 작품으로 대략 이때부터 작곡가가 완숙기에 들었다고 평가받습니다. 슈베르트는 이 곡을 여러 악장으로 된 현악사중주의 1악장으로 구상했고, 이 곡에 이어 안단테 악장을 41마디까지 쓰다가 말았습니다. 그러나 '미완성 교향곡'이 그렇듯, 이 단악장만으로도 완결성이 있어서 독립된 악곡으로 자주 연주됩니다. 작곡가가 죽은 뒤인 1867년에 초연되었고, 브람스가 나서서 악보를 출판하면서 '현악사중주 12번'으로 명명되었습니다.

곡 처음에 나오는 빠르고 반음계적인 16분음 음형은 얼핏 도입부인 듯하지만, 이어지는 짜임새를 보면 사실 이것이 제1 주제입니다. '미완성 교향곡' 도입부와 비슷하고, 한편으로는 현악사중주 14번 '죽음과 소녀'에 나타나는 악마적인 쾌(快)와도 닮았지요. 경과구 없이 나오는 제2 주제는 어찌 들으면 뜬금없이 느껴지며, 재현부는 제2주제와 함께 엉뚱한 맥락에서 엉뚱한 조성으로 시작합니다. 소나타 형식으로 되어 있기는 해도 정형(定型)을 벗어나 있지요. 그래서 이 곡을 들을 때는 차라리 작곡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상상하시면 좋아요.

굳이 이론적인 얘기를 조금 하자면, 슈베르트 음악의 조성구조는 일반적인 소나타 형식과는 맞지 않을 때가 잦습니다. 이 곡은 원조성이 c단조, 제2주제는 A♭장조, 재현부는 B♭장조, 심층 구조상 '진짜 재현부'라 할 수 있는 곳은 E♭장조입니다. '5도권'(circle of fifths)이라 부르는 조바꿈 원리가 아닌 '3도권'(circle of thirds)으로 슈베르트 음악을 설명하는 학자도 있고, 이 곡에서는 2도와 7도 또한 구조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모차르트: 현악사중주 C장조 K. 465 ‘불협화음’

모차르트가 공손한 편지와 함께 하이든에게 헌정했던 '여섯 아들' 가운데 마지막 곡입니다. '불협화음'이라는 별명은 22마디에 이르는 도입부 내내 반음계적으로 이어지는 불협화음 때문에 붙은 것인데, 이것은 19세기 음악학자들이 오류라고 생각해 고치려고 했을 만큼 당시로써는 매우 파격적인 어법입니다. 다만, 이것은 18세기 양식의 틀 안에서 일탈적으로 나타나는 것인 만큼 19세기에 나타나는 반음계적 화성과는 맥락이 다르지요.

파격적인 도입부 못지않게 제시부 또한 흥미롭습니다. 앞선 불협화음과 대비되어 안락하게 느껴지지만, 시작은 여리고 조심스럽게 나오는 협화음입니다. 찬란하게 빛나며 앞선 불협화음을 한 방에 날려 버리는 화음이 아니에요. 같은 주제가 되풀이되면서 셈여림 기호가 포르테(세게)로 바뀌고, 앞서 나오지 않던 첼로가 가세합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선율이 한 옥타브 뛰어오르고, 제2 바이올린이 제1 바이올린보다 높은음으로 시작했다가 슬쩍 자리바꿈을 합니다.

상상력을 조금 보태 봅시다. 모차르트는 자신에게 익숙한 교통수단인 '마차'가 천천히 출발해 속력을 높이는 과정을 생각하면서 이 곡을 썼다고요. 음악이론가 송무경 선생은 이 곡의 심층 구조를 분석하면서, 제시부가 시작된 뒤에도 '구조적인 불협화'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다가 선율이 한 옥타브 뛰어오르는 그 대목에 이르러서야 완전한 해결에 이른다고 지적합니다. 그러니까 속도가 충분히 붙어서 관성 위주로 달리는 안정된 느낌이 바로 이곳에서 나오는 것이지요.

나머지는 그냥 모차르트답습니다. 때때로 대담한 표현도 있지만 파격까지는 아니에요. 2 · 3 · 4악장도 마찬가지입니다.

드뷔시: 현악사중주 g단조 Op. 10

"내가 추구하는 음악을 말하자면, 나는 그것이 영혼의 시적 충동과 몽환 세계의 자유분방함에 어우러질 만큼 유연하면서도 강약이 살아있는 음악이기를 바란다."

1886년, 드뷔시는 보들레르가 했던 말을 슬쩍 비틀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신의 오후 전주곡》이나 《바다》 같은 작품과 더 잘 어울리는 말일지 모르지만, 조금 다른 맥락에서 드뷔시 현악사중주를 설명하는 말로도 적절하지 않나 싶어요. 표제가 없는 순음악으로서 독일-오스트리아 음악 전통과 프랑스 음악의 자유로움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치열함을 이 작품에서 엿볼 수 있거든요.

현악사중주 g단조는 1893년 작품으로 전통적인 현악사중주를 뼈대로 하고 있으면서도 세부적인 짜임새가 매우 자유롭습니다. 소나타 형식 구조가 모호하게 흐려져 있고, 'g단조'라고 써놓기는 했지만 사실은 교회선법과 5음음계 등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흐려진 조성 사이를 파격적인 화음들이 헤엄쳐 다닙니다. Op. 10이라고 쓴 것은 그냥 젊은 작곡가의 허세입니다. 드뷔시 작품 가운데 작품번호가 붙은 것은 이 곡뿐이지요.

이 작품에서 때로 아라비아 느낌이 나는 까닭은 프리지아 선법 때문입니다. 도리아, 믹소리디아, 에올리아 등 16세기 이전에 널리 쓰이던 다른 교회선법이 쓰이기도 했고, 그래서 묘하게 중세 느낌, 때로는 본 윌리엄스 느낌이 납니다. 5음음계는 동양적인 느낌을 주고, 강력한 불협화음과 함께할 때는 20세기 헤비메탈 느낌도 나지요. '5음음계'를 영어로 하면 록음악에서 말하는 펜타토닉 스케일(pentatonic scale) 바로 그것입니다.

2015년 11월 20일 금요일

드뷔시 피아노 트리오 G장조, 윤이상 피아노 트리오, 슈베르트 피아노 트리오 E♭장조 D. 929

통영국제음악당 공연 프로그램북에 실릴 글입니다.


드뷔시: 피아노 트리오 G장조

"말하자면 두 가지 아방가르드가 나란히 형성되고 있었다. 파리 사람들은 밝은 일상의 세계로 옮겨갔다. 빈 사람들은 반대 방향으로 가면서, 성스러운 횃불로 무시무시한 심연을 밝혀 나갔다."

음악평론가 알렉스 로스는 1900년대 유럽 음악계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여기서 "빈 사람들"은 쇤베르크, 베베른, 베르크 등을 가리키고, "파리 사람들"은 드뷔시, 사티 등을 가리키지요. 그런데 드뷔시 G장조 트리오는 사실 '파리 아방가르드'의 떡잎 정도만 알아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18살 청년 드뷔시가 독자적인 음악 어법을 확립하기 전인 1880년에 쓴 수작으로, 100여 년이 지난 1982년에 악보가 발견되어 세상에 알려졌지요.

이 작품은 낭만주의 시대에 탄생했지만, 짧은 선율 조각을 변형 · 발전시키면서 음악적 '논리'를 구축하는 베토벤-브람스 음악어법과는 조금 다릅니다. 호흡이 긴 선율이 음악을 이어간다는 점에서 차라리 바로크 시대 프랑스 음악에 후기 낭만주의 화성을 입힌 듯해요. 때로는 주제 하나가 아닌 주제군(thematic group)이 음악을 이끌어 가기도 하는데, 특히 1악장 제1 주제군이 매우 길지요.

1악장은 단순화된 소나타 형식입니다. 발전부라고 할 만한 대목이 '제시부'를 반복하는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고, 대신 선율이 물처럼 흐르면서 변화하는 모습이 십여 년 뒤에 본격적으로 나타날 드뷔시 음악 어법을 내다보게 합니다. 2악장은 스케르초로 이 곡에서 가장 드뷔시답게 들리는 악장이고, 3악장은 단일 주제군이 음악을 이끌어가는 가요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4악장은 소나타 형식이되 다양한 음악적 재료가 1악장처럼 자유롭게 흘러가는 짜임새입니다.

윤이상: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를 위한 3중주 (1972/75)

서양음악에서는 음과 음이 모여 이루는 관계가 중요하고, 음을 하나씩 따지면 그냥 고정되어 있지요. 그러나 한국 전통음악에서 음은 살아서 움직입니다. 윤이상은 이 차이를 펜글씨와 붓글씨의 차이에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윤이상은 음을 고정된 채로 두지 않고 트릴, 장식음, 글리산도 등을 덧붙여 서양음악 속에서도 살아 움직이도록 하는 작곡 기법을 만들었지요.

그런데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를 위한 3중주'는 특이하게도 죽은 화음으로 시작합니다. 작곡가는 첫 음에 아예 비브라토를 쓰지 말다가 조금씩 여린 음으로 바뀌고 나면 비브라토를 조금만 쓰라고까지 악보에 지시해 놓았지요. 그 음향이 어찌 들으면 생황 소리와 비슷하다는 점을 빼고 나면, 이 작품의 앞부분은 완전한 서양 12음 음악입니다.

그렇게 죽어 있던 음들이 음악이 흐를수록 조금씩 깨어납니다. 그리고 갑자기 완전히 살아나서는, 튀어 오르고, 뛰어다니고, 날아다니고, 빙글빙글 돌기도 하지요. 그러다가 다시 얌전해진 음들이 마치 연기처럼 하늘로 올라가는 짜임새입니다. 윤이상은 스승이었던 작곡가 보리스 블라허의 70세 생일을 기념하고자 이 곡을 쓰다가 절반만 완성했는데, 몇 해 지나지 않아 블라허 선생이 타계한 뒤에 나머지 반을 완성했다고 하네요.

슈베르트: 피아노 트리오 D. 929

슈베르트가 31살로 요절하기 한 해 앞서 남긴 작품으로, 슈베르트의 '노래하는' 선율이 치밀한 음악적 '논리'와 결합해 베토벤으로 대표되는 독일-오스트리아 음악 전통을 훌륭하게 계승한 걸작입니다.

1악장은 주제가 셋 있는 소나타 형식이지만, 경과구 등을 별개로 쳐서 주제가 여섯 개라고 보는 관점도 있습니다. 여섯째 주제 또는 소종결구에 해당하는 주제는 첫 번째 주제에서 온 것이며, 이것이 발전부를 이끌어 나갑니다. 슈베르트는 제시부의 중심에서 벗어난 음 소재로 발전부를 이끌어 가는 수법을 곧잘 썼지요. 베토벤이 남긴 음악적 유산이 낭만주의 시대정신과 맞지 않았던 딜레마를 슈베르트는 이렇게 해결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2악장은 영화와 방송 등에 자주 쓰여서 친숙하게 느껴지지요. 4개 주제가 있는 겹세도막 형식이지만, 마치 둘째 · 셋째 · 넷째 주제를 '제2 주제군'으로 하는 소나타 형식처럼 주제가 발전하는 짜임새입니다. 3악장은 스케르초와 트리오로 형식입니다. 세 가지 악기가 서로를 흉내 내는 '돌림노래'가 재미있습니다.

4악장은 론도-소나타 형식으로 다양한 재료가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그러나 그냥 두 가지 주제군으로 나누어 생각하면서 따라가면 쉬울 듯해요. 두 번째 주제는 2악장을 연상시키는 음 소재로 되어 있는데, 나중에 진짜 2악장 주제가 나타나기도 하지요. 이것이 첫 번째 주제와 대비되면서 음악이 흥미진진하게 흘러갑니다.

2013년 3월 12일 화요일

요산요수(樂山樂水) ― 산과 바다의 음악적 빛깔에 관하여 : 드뷔시 《바다》, R. 슈트라우스 《알프스 교향곡》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웹매거진에 실은 글입니다.
원문 링크: http://g-phil.kr/?p=1446

▶ 소리의 빛깔에 관하여

선율과 리듬과 화성은 전통적으로 서양음악을 이루는 3요소로 꼽혀 왔지요. 그런데 20세기 들어서 '음색'이 그 못지않게 중요해 졌습니다. 음색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작곡 기법은 관현악법(orchestration)이고, 음악학자 달하우스는 현대적인 관현악법의 가능성을 제시한 말러 교향곡 1번과 R. 슈트라우스 《돈 쥬앙》을 가리켜 음악적 모더니즘의 뿌리라고도 했습니다. 오늘 감상하실 드뷔시 《바다》와 R. 슈트라우스 《알프스 교향곡》은 '음색'이 가장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 바다의 빛깔에 관하여 ― 드뷔시 교향시 《바다》

드뷔시는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작곡가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미술 사조에서 빌어온 이 말로 드뷔시를 온전히 설명하기에는 곤란한 점이 많지만, 적어도 교향시 《바다》에 관해 얘기하려면 '인상주의'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어요.

1악장 : 바다의 새벽부터 정오까지 (De l'aube à midi sur la mer)
2악장 : 파도의 희롱 (Jeux de vagues)
3악장 : 바람과 바다의 대화 (Dialogue du vent et de la mer)

1악장은 새벽에 해가 떠서 수평선을 붉게 물들이고, 마침내 해가 높이 떠올라 눈부신 한낮의 햇살을 쏟아내는 모습이 환상적으로 느껴집니다. 음악이 너무나 멋있어서 자세한 설명은 차라리 군더더기가 될 듯해요. 그런데 2악장과 3악장을 들으면서는 고개를 갸우뚱할 수 있습니다. 이 음악을 들으면서 어딘가 안정감이 없어서 불편한 느낌이 든다면, '발전하는' 음악에 너무 익숙한 탓일지도 모릅니다.

고전주의와 낭만주의로 대표되는 전통적인 서양음악은, 마치 극(drama)이 기승전결 구조를 따르는 것처럼 어떤 '방향성'을 따라 '발전'하는 짜임새를 갖습니다. 그 바탕이 되는 화성 진행 원리를 작곡가이자 이론가 장필리프 라모는 뉴턴의 중력이론에 빗대기도 했지요. 여기에 계몽주의 사상이 결합하면, 베토벤 교향곡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어둠에서 광명으로' 짜임새가 됩니다.

드뷔시 음악은 이러한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이 사실은 음악사적으로 매우 중요하지만, 이 글에서는 배보다 배꼽이 커질 수 있으니 '인상주의' 얘기만 할게요. 음악이 '발전'하지 않고 '방향성' 없이 그저 흘러가니까, 마치 그림을 보는 듯 음악이 정지해 있는 느낌이 들지요. 음악학자 리처드 타루스킨이 했던 말을 빌리자면, 이것은 시간예술과 공간예술의 차이점을 메우는 장치라 할 수 있습니다.

드뷔시 음악을 듣고 갸우뚱하게 하는 또 다른 원인은 모네, 르누아르 등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화가들의 작품입니다. 드뷔시 음악이 모네 등의 그림과 그렇게까지 닮은꼴은 아니잖아요? 이것은 음악과 미술의 차이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사실은 드뷔시가 대표적인 인상파 화가들에게서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인상파 화가 중에서도 빛을 묘사하는 획기적인 표현 기법을 개발한 영국 화가 조지프 말러드 윌리엄 터너(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그리고 전체적인 '분위기'를 어른어른한 색채로 그림에 담았던 미국 화가 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James Abbott McNeill Whistler) 등이 드뷔시 음악에 큰 영향을 끼쳤던 사람들입니다.

▲ 가쓰시카 호쿠사이(葛飾 北斎), 가나가와 앞바다 파도 뒤(冨嶽三十六景 神奈川沖浪裏)

우키요에(浮世絵)라는 일본 에도시대 풍속화는 인상주의 미술 사조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하지요. 드뷔시는 그 가운데 호쿠사이의 판화 《가나가와 앞바다 파도 뒤》를 보고 《바다》를 작곡했고, 이 판화가 초판 악보 표지로도 쓰였습니다. 음악을 들어보면 어딘가 동아시아 느낌이 나지요?

▶ 산의 빛깔에 관하여 ―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알프스 교향곡》

음색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작곡기법이 관현악법이라고 앞서 말씀드렸지요. 관현악법과 관련해 중요한 작곡가로 드뷔시, 라벨, 말러, 림스키코르사코프 등을 꼽을 수 있지만, 20세기 관현악법 문헌들이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작곡가를 한 사람만 꼽으라면 바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일 겁니다.

《알프스 교향곡》에서는 밤-일출-저녁노을-일몰-밤으로 이어지는 '빛' 음형이 다양한 빛깔로 변주됩니다. 그리고 시냇물과 폭포, 풀잎, 꽃잎 등과 더불어 반짝이는 빛도 참 멋지지요. 이 작품에는 표제가 자세하게 나와 있으니 이야기 한 편을 머릿속에서 그려볼 수도 있어요. 알프스 산 빛깔은 바다 빛깔과는 어떻게 다른지 살펴볼까요?

1. 밤 (Nacht) : 파곳과 몇몇 악기가 '밤' 음형을 연주할 동안 다른 악기들이 촘촘한 간격으로 음을 쌓아서 화음이라기보다는 '덩어리'(cluster)를 이루며 무겁고 으스스한 분위기를 풍깁니다. 트롬본과 튜바가 마치 여명처럼 흐릿하게 빛나는 음형을 연주합니다. 조금씩 날이 밝아옵니다.

2. 일출 (Sonnenaufgang) : '밤' 음형이 눈 부신 햇살로 바뀌어 마구 쏟아집니다. 이토록 찬란한 소리가 '밤'과 음악적 뿌리가 같다는 사실이 믿어지십니까? 잘 들어 보세요. 찬란한 햇빛 속에 낯은 음으로 자꾸만 내려가는 '밤' 음형이 들어 있습니다!

3. 등산 (Der Anstieg) : 힘찬 리듬으로 자꾸만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잘 들어보면 '밤'에 나왔던 음형들과 음악적 뿌리가 같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쯤 되면 어째서 이 작품 제목에 '교향곡'이라는 말이 들어 있는지 알 듯합니다. 말하자면 '밤'과 '일출'이 교향곡의 '도입부'라면, 이 대목이 바로 '제1 주제'라 할 수 있겠습니다.

4. 숲의 입구 (Eintritt in den Wald) : 교향곡의 '제2 주제'라 할 만한 대목이지만, 여기서부터는 '산'에 집중하기로 하지요. 형식 분석에 매달리기에는 '경치'가 너무 아름답습니다. 야생의 위험을 무릅쓰고 숲으로 들어서면 눈앞에 신기한 나무가 가득합니다. 산새가 울고, 꽃이 아름답게 피었습니다.

5. 개울가에서 거닐다 (Wanderung neben dem Bache) : 그리고 시냇물이 보입니다. 물이 차갑습니다. 물고기가 헤엄쳐 다닙니다. 물길을 따라 걸어가면…

6. 폭포에서 (Am Wasserfall) : 폭포가 나옵니다. 커다란 물소리, 물방울이 이리저리 튀기는 모양, 그리고 그 물방울이 햇빛을 만나면…

7. 환영 (Erscheinung) : 폭포에 걸린 무지개, 그리고 물방울마다 반짝이며 너울거리는 빛 알갱이가 꿈결처럼 아름답습니다!

8. 꽃으로 덮인 풀밭에서 (Auf blumigen Wiesen) : 폭포를 지나 더 올라갑니다. 길가에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습니다. 싱그러운 바람이 불어 옵니다.

9. 알프스 목장에서 (Auf der Alm) : 뿔피리 소리, 방울 소리, 소와 양이 우는 소리가 들립니다. '알프스 소녀 하이디'가 들판을 뛰노는 모습이 눈에 보일 듯합니다.

10. 길을 잃고 수풀과 덤불 속에서 헤매다(Durch Dickicht und Gestrüpp auf Irrwegen) : 소와 양이 풀을 뜯던 평화로운 산이 길을 잃는 순간 목숨을 위협합니다. 수풀과 덤불이 팔다리를 물어뜯으려고 달려듭니다.

11. 얼음산에서 (Auf dem Gletscher) : 겨우 빠져나오니 눈앞에 얼음산이 보입니다. 만년설이 세월의 무게로 얼어붙은, 알프스 산맥이나 히말라야 산맥 등에서 볼 수 있는 산악 빙하입니다.

12. 위험한 순간들 (Gefahrvolle Augenblicke) : 산꼭대기로 가려면 위험한 곳을 올라야 합니다. 한 발 잘못 디디면 목숨이 위태롭습니다. 돌 굴러떨어지는 소리 들리나요? 자, 겁내지 말고, 숨을 크게 쉬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13. 정상에서 (Auf dem Gipfel) : 드디어 정상입니다! 너무 힘들게 올라왔습니다. 주저앉아서 조금만 쉬자고요. 산꼭대기를 휘돌며 불어오는 바람은 싱그럽기도 하지요!

14. 전망 (Vision) : 이곳이 바로 알프스 산입니다. 아찔한 높이와 거대한 크기에 몸이 떨려 옵니다. 이 산과 견주면 인간이란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입니까?

15. 안개가 올라오다 (Nebel steigen auf) : 표제 그대로입니다. 덧붙일 말이 없군요.

16. 해가 서서히 지다 (Die Sonne verdüstert sich allmählich) : '밤'이었다가 '일출'이었던 그 음형이 이제는 '저녁노을'로 바뀌었네요.

17. 애가 (Elegie) : 날은 차츰 어두워지고 안개는 올라오는데, 문득 쓸쓸한 기분이 듭니다.

18. 폭풍전의 고요 (Stille vor dem Sturm) : 해 지는 알프스 정상은 참 고요합니다. 그러나 폭풍이 몰려올 듯하니 더 늦기 전에 내려가야 합니다. 바람 소리를 내는 특수악기(wind machine)가 이 대목에 사용되었습니다.

19. 번개와 폭풍, 하산 (Gewitter und Sturm, Abstieg) : 경기필이 제작한 천둥소리를 내는 악기(thunder machine), 바람 소리를 내는 악기(wind machine), 그리고 오르간과 더불어 오케스트라 전체가 폭풍우처럼 쏟아집니다.

20. 일몰 (Sonnenuntergang) : '밤'과 '일출'과 '저녁노을'이었던 그 음형입니다. 폭풍을 뚫고 산에서 내려오는 사이에 해가 집니다.

21. 여운 (Ausklang) : 오르간 소리가 들립니다. 사실은 폭풍이 몰아칠 때부터 들리던 오르간 소리이지만, 이곳에서는 오르간이 음악을 지배하면서 경건한 분위기를 만듭니다. 현이 주선율을 이어받아 찬가처럼 부풀렸다가 조금씩 '밤'으로 옮겨갑니다.

22. 밤 (Nacht) : 다시 밤입니다. 처음에 그랬듯이, 어둡고 고요한 밤…

▶ 산과 바다 ― 대자연의 음악에 관하여

지자요수 인자요산(知者樂水 仁者樂山). 지혜로운 이는 물을 좋아하고 어진 이는 산을 좋아한다. 논어에 나오는 공자님 말씀입니다. 요산요수(樂山樂水)라고도 하지요. 이번 경기필 연주회 제목 "音樂山音樂水 ― 산과 바다"는 이 말에서 따왔습니다.

그런데 《바다》와 《알프스 교향곡》처럼 자연을 그린 작품도 멋지지만, 자연이 들려주는 '음악'도 참 멋지지요. 물소리, 새 소리, 바람 소리… 도시를 조금만 벗어나도 전혀 다르게 들리는 이런 소리를 찾아 떠나 보면 어떨까요? 봄나들이 가기 좋은 계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 티켓 예매

https://www.sacticket.co.kr/home/play/play_view.jsp?seq=14328

2013년 1월 21일 월요일

드뷔시 《야상곡》과 홀스트 《행성》, 밤과 우주의 음악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웹진에 실은 글입니다.
☞ 원문 링크 : http://g-phil.kr/?p=1358

▶ 드뷔시, 홀스트, 그리고 어떤 모더니즘

"말하자면 두 가지 아방가르드가 나란히 형성되고 있었다. 파리 사람들은 밝은 일상의 세계로 옮겨갔다. 빈 사람들은 반대 방향으로 가면서, 성스러운 횃불로 무시무시한 심연을 밝혀 나갔다."

음악평론가 알렉스 로스(Alex Ross)는 1900년대 유럽 음악계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여기서 "빈 사람들"은 쇤베르크, 베베른, 베르크 등을 가리키고, "파리 사람들"은 드뷔시, 사티 등을 가리키지요. 쇤베르크가 무조음악으로 나아갈 때, 드뷔시는 전통적인 기능화성과 장·단조 체계를 살짝 비켜가면서 재즈나 각국의 민속 음악 등 이국적인 요소를 자신의 음악에 녹여 내는 식으로 새로움을 추구했습니다.

드뷔시 음악에서 찾을 수 있는 또 다른 '모더니티'(modernity)는 현대적인 관현악법에서 오는 현대적인 음색입니다. 음악학자 달하우스(Carl Dahlhaus)는 말러 교향곡 1번과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돈 후안》이 초연된 1890년을 음악적 모더니즘의 시초로 보았지요. 바로 두 작품에서 나타나는 현대적인 관현악법 때문입니다. 그리고 드뷔시가 빚어낸 음색은 때때로 '인상주의'라 불리는 음악 어법과 결합해 프랑스 모더니즘 음악 전통을 만들어 나갔습니다.

영국 작곡가 구스타프 홀스트(Gustav Holst)도 어찌 보면 드뷔시와 비슷한 길을 갔습니다. 영국 민요 선율을 음악에 녹여내고자 했고, 인도 음악에 영향을 받았으며, 복조성(polytonality)이나 교회선법 등으로 전통적인 조성음악 어법을 살짝 비켜가는 동시에 현대적인 관현악법으로 나름의 현대성을 좇았습니다.

▶ 드뷔시 《야상곡》

야상곡(Nocturne)이라 하면 쇼팽이나 존 필드 등이 작곡한 서정적인 피아노곡을 곧잘 떠올리게 됩니다. 그러나 드뷔시 《야상곡》은 미국 화가 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James Abbott McNeill Whistler)의 《야상곡》 연작을 보고 영감을 얻어 작곡한 3악장 관현악곡으로, 작곡가가 한 말을 빌자면 "야상곡의 흔한 형식이 아니라 낱말이 암시하는 여러 가지 인상과 빛이 만드는 특별한 효과"를 낸 작품입니다.

작곡가는 '구름'(Nuages) 악장을 이렇게 설명했지요. "하늘의 변함없는 정경과 구름의 느리고 장엄한 움직임이 잿빛에 살짝 흰 빛깔을 더하여 사라지는 모습을 나타낸다."

'구름' 악장에서는 목관악기와 바이올린이 음악을 끌고 가면서 중간 음역이 비어 있을 때가 잦습니다. 그래서 음악이 붕 떠있는 느낌을 주지요. 화성 진행도 전통적인 방식과 달리 음악 속을 둥둥 떠다닙니다. 음악학자 타루스킨(Richard Taruskin)은 음색과 음역 등의 요인이 악곡을 지배하면서 전통적인 조성·화성 체계를 회피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축제'(Fêtes) 악장은 파리에 있는 볼로뉴 숲(Bois de Boulogne)에서 열리는 축제를 묘사한 음악입니다. 드뷔시는 이렇게 설명했지요. "공기가 떨리고 춤추는 리듬과 갑자기 터져 나오는 빛을 떠올리게끔 한다. 여기에 행진 에피소드(현란하고 비현실적인 환상)가 나타나 축제 장면을 지나며 합쳐지기도 한다. 그러나 배경은 꿋꿋하게 변함없이 이어지는데, 음악과 반짝이는 가루가 우주적인 리듬 속에서 뒤섞이는 축제 분위기이다."

'인어'(Sirènes) 악장에는 여성 합창단이 가사 없이 부르는 '인어의 노래'가 나오지요. 드뷔시는 이와 관련해 "바다의 모습과 끊임없는 리듬을 그렸으며, 달빛을 받은 은빛 물결 속에서 인어가 웃으며 지나갈 때 부르는 신비로운 노래가 들린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인어'와 '세이렌'은 조금 다르지만, 때때로 두 낱말이 같은 뜻으로 쓰이기도 하므로 이 글에서는 그냥 '인어'라고 쓰겠습니다.)

드뷔시 《야상곡》은 1900년 12월 9일 파리에서 1·2악장이 초연되었고, 1901년 10월 27일 전곡이 초연되었습니다.

▶ 홀스트 《행성》

홀스트 《행성》은 7악장으로 된 관현악곡으로 1918년 9월 29일 영국에서 초연되었습니다. 홀스트는 본디 점성술에 영감을 받아 이 곡을 썼다고 해요. 생각해 보면 그때 기술로는 태양계 행성을 자세히 관찰하기 어려웠을 테니까, 과학적 사실보다 점성술에서 더 큰 영감을 받는 게 자연스러웠겠지요.

그런데 음악을 들어 보면, 마치 천체망원경으로 촬영한 고해상도 사진을 보는 듯합니다. 아니, 아예 우주선을 타고 가까이에서 행성들을 구경하는 느낌마저 들어요. 참 신기하지요. 현대적인 관현악법에서 오는 현대적인 음색이 가장 큰 비결이라 할 수 있을 거예요.

화성, 전쟁을 가져오는 자 : 화성을 뜻하는 ‘마르스’(Mars)는 로마 신화에서 전쟁의 신 이름이지요. 이 곡은 워낙 강렬해서, 그냥 블록버스터 SF 영화 한 편 보듯이 감상하면 됩니다. 이 곡을 듣고 영화 《스타워즈》를 떠올리는 분도 있을 텐데요, 사실은 작곡가 존 윌리엄스가 《스타워즈》 주제곡에서 이 음악을 흉내 냈습니다. 특히 관현악법이 비슷해요.

금성, 평화를 가져오는 자 : 금성을 뜻하는 ‘비너스’(Venus)는 사랑의 여신이자 평화와 화합을 부르는 여신이기도 하지요. 음악이 참 우아하지만, 악보를 들여다보면 화성과 리듬, 템포 등이 잔뜩 꼬여 있습니다. 드뷔시 음악에 영향받은 홀스트의 '영국식 모더니즘'이 이렇게도 나타나는군요. 어찌 생각하면 이 곡에서 금관은 호른만 나오고 저음역 악기가 거의 안 나오는 점 등이 드뷔시 《야상곡》의 '구름' 악장과 닮은꼴입니다.

수성, 날개 달린 전령 : 수성을 뜻하는 ‘머큐리’(Mercury)는 로마 신화에서 상업과 교역의 신인 메르쿠리우스(Mercurius)의 영어 이름이지요. 날개 달린 모자를 쓰고 날개 달린 신발을 신은 모습으로 그려지는데, 음악을 들어 보면 재빠르게 날아다니는 듯한 음형이 나타납니다.

목성, 쾌락을 가져오는 자 : 목성을 뜻하는 ‘주피터’(Jupiter)는 로마 신화의 최고신이며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와 동일시되는 ‘유피테르’(Iuppiter)의 영어 이름이지요. 16분음표로 소나기처럼 후두두 시원하게 쏟아지는 현악기 소리가 마치 휘산제나 박하사탕을 입에 넣은 듯이 상쾌합니다. 곧이어 호른이 호쾌한 선율을 노래합니다. 이 대목은 1980년대 MBC 뉴스 시그널 음악으로 사용되어 국내에 널리 알려졌지요. 중간에 찬가처럼 나오는 영국 민요풍 선율도 유명합니다.

토성, 황혼을 가져오는 자 : 토성을 뜻하는 ‘새턴’(Saturn)은 시간과 농업의 신이자 그리스 신화의 ‘크로노스’와 동일시되는 '사투르누스(Saturnus)'의 영어 이름이지요. 음악에서 느껴지는 몸서리 쳐지는 황량함은 마치 우주 전쟁으로 폐허가 된 별을 보는 듯합니다.

천왕성, 마법사 : 천왕성을 뜻하는 ‘우라누스’(Uranus)는 가이아의 아들이자 남편이며, 주피터(제우스)와 대립하는 하늘의 신 이름이지요. 바순이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듯한 음형이 어찌 들으면 뒤카(Paul Dukas)의 명곡 《마법사의 제자》와 닮았습니다. 장난꾸러기 마법사가 우주적인 규모로 분탕질을 치는 모습이 떠오른달까요. 그런데 처음 나오는 '솔-미♭-라-시' 음형에는 비밀이 있습니다. 이것을 독일어식 음계로 바꾸면 'G-Es-A-H'가 되지요. 'Es'는 'S'를 영어식으로 읽은 발음과 같고, 여기에 알파벳 몇 개만 채워 넣으면 GuStAv-Holst, 그러니까 작곡가의 이름이 됩니다. 장난꾸러기 마법사의 정체는 작곡가 자신이로군요!

해왕성, 신비로운 자 : 해왕성을 뜻하는 '넵튠'(Neptune)은 로마 신화에서 바다의 신이자 그리스 신화의 '포세이돈'과 동일시되는 넵투누스(Neptūnus)의 영어 이름이지요. 인어의 노래를 연상시키는 여성 합창이 음악에 나타난다는 점에서 드뷔시 《야상곡》의 '인어' 악장과 닮은꼴입니다. 여성 합창뿐 아니라 여러 층위에서 나타나는 음악 어법이 드뷔시와 비슷하기도 합니다.

▶ 망망대해와 망망우주(茫茫宇宙)

일상의 풍경을 그린 드뷔시 《야상곡》과 우주를 신화적 상상력으로 그린 홀스트 《행성》이 '바다'라는 공통분모로 만나는 대목이 흥미롭습니다. 홀스트가 드뷔시 음악에서 영향받기도 했지만, 바다와 우주가 닮았기 때문이기도 할 겁니다. '망망대해'라는 말을 우주에 관해서도 쓸 수 있으니까요. 인공위성도 레이더도, 무선통신 기술도 없이 지도와 나침반만으로 바다를 헤매야 했던 시절에는 더하지 않았을까요.

그러고 보면 우주선(宇宙船 · Starship)이라는 말은 우주를 항해하는 '배'라는 뜻이죠. 《스타트렉》이라는 유명한 SF 드라마를 보면, 우주를 탐사하는 군대 이름이 '우주해군'(Starfleet)이고 계급 체계가 미국 해군 계급과 일치합니다. 'USS 엔터프라이즈'라는 우주 전함은 미국 해군에서 현재 운용하고 있는 항공모함 이름이기도 하고요. 전함에 탑재된 무기 이름은 '광자 어뢰'(photon torpedo)입니다.

끝없이 넓게 펼쳐진 바다, 그리고 끝을 알 수 없는 우주를 헤쳐나가는 인간이 느낄 외로움에는, 그래서 '인어의 노래'라는 판타지가 필요합니다. 드뷔시의 '인어'와 홀스트의 '인어'가 이렇게 만났습니다.

천지현황 우주홍황(天地玄黃 宇宙洪荒).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며, 우주는 넓고도 거칠다. 천자문이 이렇게 시작하지요. 우리 조상은 어려서 글을 익힐 때부터 우주에 대해 배웠다고 생각하니 새삼 신기합니다. 경기필이 연주하는 밤과 우주를 듣고 돌아가는 길에 밤하늘을 한 번 찬찬히 눈에 담아 보면 어떨까요?

※ 티켓 예매 : http://ticket.interpark.com/Ticket/Goods/GoodsInfo.asp?GoodsCode=12020805

2013년 1월 24일 일부 표기법 수정

2011년 5월 16일 월요일

드뷔시 《목신의 오후 전주곡》 /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 스트라빈스키 《불새 모음곡》 ― 스베틀린 루세브 / 리오 후세인 / 서울시향

2011-03-24 오후 08:00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 리오 후세인
협연: 스베틀린 루세브

드뷔시, 목신의 오후 전주곡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스트라빈스키, 불새 모음곡 (1945년판)

언제나 그렇듯이, 무삭제판 ㅡ,.ㅡa
어라? 그런데 이번에는 잘린 곳이 없는 듯? 으허허허! >_<


예술 사조를 구분 짓는 잣대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 들이대는 오류를 무릅쓴다면, 드뷔시스트라빈스키모더니즘이 미처 꽃피기에 앞서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씨앗을 뿌린 작곡가라 할 수 있다. 이 말을 설명하려면 20세기 모더니즘 음악을 대표할 만한 이른바 '12음 음악'의 뿌리를 캐 봐야 한다.

18세기 화성 이론을 세운 작곡가이자 이론가 장필리프 라모는 화성 진행 원리를 뉴턴 중력 이론에 빗대어 설명하며 음악이 어떤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는 생각을 퍼트렸다. 이에 따라 음악 이론과 계몽주의 사상이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이것이 베토벤에 이르러 "고난을 거쳐 별들의 나라로"(per aspera ad astra)라는 말과 더불어 인류가 끝없이 발전하고 진보하리라는 믿음으로 발전했다.

12음 음악 또한 이러한 음악관에서 벗어나지 않았으며, 서양음악이 '발전'하던 방향으로 미루어 볼 때 12음 음악이 나타난 일은 필연이라는 주장에 수많은 음악학자가 동의한다. 따라서 12음 음악은 오해와 달리 전통과 단절한 것이 아니라 거꾸로 전통을 완성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드뷔시스트라빈스키야말로 뿌리 깊은 전통을 거부한 혁명가이다. 조성을 버리지는 않았으나 기능 화성 작법에서 벗어나 음악이 '발전'하지 않고 그저 흐르고 자라고 되돌아오게끔 했기 때문이다. 드뷔시는 이단아 취급을 받은 정도였지만, 스트라빈스키모더니즘이 힘을 얻던 때를 만나 모진 비난을 견뎌야 했다. 이를테면 아도르노는 스트라빈스키가 "지붕을 뜯어내 버렸고, 그래서 이제 그의 대머리 위로 빗물이 흐른다"라며 비꼬았다.

모더니즘이 절정에 이르며 조금씩 한계를 드러내던 때에 불레즈는 「쇤베르크는 죽었다」라는 악명 높은 글을 내놓았다. 이 글에서 불레즈는 19세기 음악을 확장·완성했을 뿐인 쇤베르크가 아니라 음색을 현대적으로 다루는 법을 알려준 베베른을 작곡가들이 모범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음색이 중요해지면서 드뷔시스트라빈스키말러 등과 함께 재조명 받았다.

오늘날 드뷔시스트라빈스키 곡을 연주하려면 어디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까? 무엇보다 《불새》는 스트라빈스키 자신이 지휘해 남긴 음반이 있어서 작품을 어찌 해석해야 할지 낱낱이 알 수 있는데, 이 작품을 새로 연주하려면 그것을 그대로 따라야 할까? 스트라빈스키가 의도한 바를 멋지게 '배신'하려면 어찌해야 할까?

불레즈는 음 하나하나가 낭비 없이 드러나도록 하며 베베른 음악에서 볼 수 있는 이른바 '음색선율'(Klangfarbenmelodie)을 《불새》에서도 연상하게끔 했다. 리카르도 샤이는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라는 특급 악단의 기능성을 살리며 세련되고 균형 잘 잡힌 음색을 뽑아냈다.

서울시향을 지휘한 리오 후세인은 조금 느린 템포로 소리를 꼼꼼하게 풀어냈으며, 때때로 연주가 너무 차분해서 긴장감이 떨어진 대목은 옥에 티였다. 현 소리에 비브라토로 멋을 내어 낭만주의 냄새를 풍긴 대목은 음악에 감정이 드러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스트라빈스키가 들었다면 싫어했을 법하다. 그러나 예술의 전당이라는 대형 연주회장과 그에 걸맞은 대편성 악단이 연주할 때 이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닌데다가 스트라빈스키가 뜻한 바를 곧이곧대로 살리는 일이 반드시 옳지도 않다.

지휘자가 보인 작품 해석은 무난했으며, 서울시향 실력에 걸맞은 깔끔한 앙상블과 다채로운 음색을 이끌어낸 대목은 칭찬할 만했다. 도입부가 끝날 무렵 나오는 변주에서 플루트와 피콜로가 새 소리를 흉내 내고 다른 악기가 그것을 따라 하는 대목이 가장 훌륭했고, 신 나게 두드려 대는 〈코시체이 왕의 사악한 춤〉도 멋졌다. 크게 부풀어 오르며 '브라보'를 부르는 〈피날레〉도 좋았다.

첫 곡으로 연주한 드뷔시 《목신의 오후 전주곡》에서도 모범적인 해석에 깔끔한 앙상블이 돋보였으며, 무엇보다 목관악기 연주자들이 아름다운 음색을 뽐냈다.

드뷔시는 프랑스 작곡가이고, 스트라빈스키는 러시아 작곡가이나 《불새》는 목관악기 비중을 높이는 등 프랑스 청중을 고려해 작곡했다. 멘델스존은 독일 작곡가이지만, 이날 협연자가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악장인 스베틀린 루세브였다. 서울시향 악장이기도 한 스베틀린 루세브는 사실 국적은 불가리아이나 연주에서 프랑스 느낌이 많이 묻어났다. 다른 연주자가 끊어 연주하는 곳도 웬만하면 매끄럽게 이어 연주했으며, 반드시 스타카토로 연주해야 하는 곳만 너무 거칠지 않게 끊어 연주했다. 포르타멘토는 프랑스식 포르타멘토라 불리는 B-포르타멘토를 썼다.

스베틀린 루세브는 지난 2008년 12월에 베토벤 협주곡을 협연하기도 했는데, 그때와 견주면 연주법은 비슷했으나 베토벤보다는 멘델스존이 루세브와 더 잘 맞는 듯했다. 서울시향과 함께한 시간이 더 쌓인 만큼 오케스트라와 더욱 한 몸처럼 어우러진 탓도 있겠다.

2009년 9월 3일 목요일

2009.01.16. 드뷔시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모음곡 /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 / 림스키-코르사코프 셰에라자드 - 라르스 포크트 / 정명훈 / 서울시향

2009년 1월 16일(금) 오후 7시 30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지휘자 : 정명훈
협연자 : Lars Vogt (Pf)

Debussy, "Pelleas et Melisande" Concert Suite (arranged by Erich Leinsdorf)
Mozart, Piano Concerto No. 21 in C major, K. 467
Rimsky-Korsakov, Symphonic Suite "Scheherazade" Op. 35



드뷔시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는 프랑스 말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도무지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이상한 음악처럼 들리곤 한다. 음악사에서 차지하는 자리가 커서 마니아라면 누구나 한 번쯤 도전해 보지만 이내 음반을 중고 장터에 내놓고, 그 음반이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신세가 되어 이곳저곳을 떠돌기 일쑤다. 그래서 이날 연주된 것과 같은 관현악 발췌곡도 나왔으나 드뷔시다운 어른어른하고 어슴푸레한 소리는 그대로이다. 그런데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음향이 묘하게 그와 어울리는 데가 있었다. 반쯤 잠에 빠진 듯 흐리멍덩한 느낌이 그럴싸했으며, 어찌 보면 지휘자가 원성 자자한 연주회장에서 장점을 이끌어내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저음 현 긁는 소리가 좀 더 살아났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으나 세종문화회관에서는 어렵지 싶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에서도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무려 라르스 포크트가 협연을 맡아도 세종 대극장 음향 한계는 어쩔 수 없는 듯했으나 맑고도 그윽한 소리를 이끌어내는 해석이 그럴싸하기도 했다. 더욱이 2악장에서 페달을 많이 쓰면서도 소리가 뭉치지 않게 잘 다듬은 대목이 매우 훌륭했다.

드뷔시모차르트에서 연주회장에 순응하는 연주를 들었다면 림스키-코르사코프 <셰에라자드>에서는 때때로 연주회장의 한계를 넘어서는 소리가 들려와 놀라웠다. 세종 대극장에서는 여간해서는 소리가 피부로 와 닿지 않아서 프레이징 따위를 머리로만 듣게 될 때가 잦은데 이날 참으로 오랜만에 화끈한 느낌을 받았다. 정명훈의 해석은 음반으로도 나와 있는 바스티유 오페라 연주와 크게 다르지 않았으며, 그 때문에 정명훈보다는 수석 연주자들이 독주 때 보여준 개인기에 더욱 눈길이 갔다.

악장 데니스 김이 들려준 독주는 '셰에라자드'라는 인물이 살아 숨 쉬는 듯해서 매우 인상 깊었다. 셰에라자드는 어떤 사람일까? 무서운 임금님 앞에서도 기죽지 않는 여장부? 임금님을 유혹하는 요녀? 마음 깊은 곳 상처를 달래는 어머니? 데니스 김이 그려낸 셰에라자드는 곳곳에서 두려움을 내비치지만 때로는 허세를 부릴 줄도 아는 순진하고도 용감한 소녀 같았다.

첫 독주는 요염함과 두려움과 허세가 넉넉한 루바토와 에스프레시보로 알맞게 버무려진 연주였고, 마디 94에서는 첫 음과 이어지는 셋잇단음 사이를 포르타토치고는 매우 뚜렷이 나누어 연주해서 마치 선생님 앞에서 두 손 모아 열심히 노래하는 듯했다. 3악장 마디 145에 나오는 스타카토 분산화음은 이야기 속 왕자와 공주를 셰에라자드 부부에 빗대어 말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데 이때 데니스 김은 A 음을 늘이고 나머지는 장식음처럼 휘리릭 재빨리 다루어 마치 마음속에 감춘 두려움이 드러나는 듯했으며, 그래서 이어지는 칸타빌레 선율은 더욱 애달팠다. 4악장 마디 29에서는 힘주어 연주하라는 지시를 매우 잘 살려 어느 때보다 활을 거칠게 썼다. 이때 첼로와 콘트라베이스는 매우 여리게 연주하게 되어 있으나 정명훈은 음반에서 했던 것처럼 매우 세게 연주해서 '짠!' 효과를 내도록 했다. 그런가 하면 마디 641에서는 마치 자장가처럼 매우 여리게 속삭이듯 했다.

목관악기 연주자들도 독주 때마다 눈부신 연주를 뽐냈으며, 그 가운데 오보에 수석 이미성이 가장 돋보였다. 글쓴이가 보기에 이미성은 악보에 있는 지시를 아주 작은 곳까지 꼼꼼하게 지키는 남다른 솜씨를 가졌으나 '모범생 연주'를 넘어서는 '끼'를 보여주지는 못하는 단점 또한 안고 있다. 그런데 이날 드디어 벽을 넘은 듯한 모습을 보여주어 몹시 반가웠으며, 그 때문에 옛날부터 글쓴이 마음을 사로잡은 클라리넷 수석 채재일보다도 더 인상 깊었다. 정명훈은 연주가 끝나고 악장에 이어 두 번째로 이미성을 일으켜 세웠다.

글쓴이가 가장 추겨 세우고 싶은 연주자는 트럼펫 수석 가레스 플라워스(Gareth Flowers)이다. 이 곡에서 트럼펫은 목관악기처럼 눈에 확 띄는 솔로 악구는 없으나 티 안 나게 하는 고생이 만만치 않으며, 그러면서도 작은 실수로도 곧잘 연주를 망쳐버릴 수 있어서 호른 못지않게 까다롭다. 이날 때때로 살짝 불안한 대목이 없지는 않았고 연주가 끝나고 지휘자가 일으켜 세웠을 때 금방 도로 앉아버린 일에 미루어 보면 연주자 자신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듣기에는 매우 야무진 연주였으며, 더욱이 4악장에서 빠른 음형이 계속 나오는 곳에서는 깜짝 놀랄 만큼 훌륭했다. 나는 정명훈이 아찔한 템포로 마구 달릴 때에도 트럼펫이 조금도 뒤처지지 않고 바짝 따라오리라고는 믿지 않았다. 이럴 수가! 이런 연주자가 있으면 베토벤 교향곡 7번을 해줘야 한다. 마침 올 10월 정기연주회 때 베토벤 교향곡 7번을 연주할 모양이니 기대가 된다.

호른과 트롬본 또한 다부진 연주를 들려주었으며 1악장 시작을 비롯해 여러 차례 나오는 부점 리듬을 날카롭게 다스린 대목이 매우 훌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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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철. 2009.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2009년 8월 24일 월요일

2007.05.18. 라벨 팡파르 / 모차르트 신포니아 콘체르탄테 K364 / 라벨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 / 드뷔시 바다 - 미코 프랑크 / 서울시향

2007년 5월 18일(금) 오후 7시30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지휘자 : 미코 프랑크 Mikko Franck
협연자 : Gary Graffman(Pf), Roberto Diaz(Va), Elissa lee Koljonen(Vn)

Ravel: Fanfare
Mozart: Sinfonia Concertante, K364 (30')
Ravel: Concerto for Left Hand (19')
Debussy: La Mer (23')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은 연주회장으로는 너무 커서 좋은 소리를 기대하기 어렵다. 특히 모차르트 이전 시대의 소편성 작품은 이 연주회장에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 이날 연주회 첫 곡이 모차르트의 <코지 판 투테> 서곡에서 라벨의 <팡파르>로 갑자기 바뀐 것은 지휘자 미코 프랑크가 연주회장을 둘러보고는 이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 아닐까. 라벨의 <팡파르>는 금관과 타악기 위주의 매우 짧은 작품으로 '급한 불'을 끄기에 더없이 적절한 작품이었다. 지휘자는 영리했다.

그러나 모차르트의 <신포니아 콘체르탄테>의 경우 사전 이견 조율 없이 지휘자 마음대로 프로그램을 바꾸지는 못했을 터. 대신에 울림이 많은 연주회장에 맞게 템포를 느긋하게 잡았다. 독주자들은 음량을 충분히 확보하려고 현과 활의 텐션에 유난히 신경 쓴다는 인상을 받았으며, 그래서인지 미세한 보잉 실수가 잦았다. 엘리사 리 콜조넨은 바이올린의 까랑까랑한 음색을 적극적으로 살려 매우 섹시한 연주를 들려주었고, 비올리스트 로베르토 디아즈는 한발 양보해서 콜조넨을 부각시키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그런가 하면 두 연주자 모두 비슷한 루바토를 구사하여 역시나 이들이 부부 사이임을 자랑하는 듯했다.

라벨의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한 게리 그래프만은 80세를 바라보는 나이로 노익장을 과시했으나, 역시 나이를 속이지는 못하는 듯 음량이 거대한 연주회장을 감당하기에는 힘겨워 보였다. 다만, 음량이 부족한 것과 터치가 날렵하지 못한 것 등을 빼면 커다란 밑그림이나 악상의 자연스러운 흐름, 다양하고 적절한 음색 등은 그의 연륜이 빛을 발하는 부분이었다. 음악성은 거장인데 기술적인 부분이 따라주지 않으니, 얼핏 들으면 엉터리 연주이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대단한 깊이가 묻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피아노의 음량이 부족한 부분은 라벨의 화려한 관현악이 메워주었으며, 특히 스네어 드럼(snare drum)이 필요 이상으로 전면에 나선 것이 주효했다.

드뷔시의 <바다>에서는 앞서 스네어 드럼을 연주했던 타악기 수석 에드워드 최가 이번에는 글록켄슈필(Glockenspiel)을 연주했는데, 역시 딱 밉지 않을 만큼만 튀어서 음악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특히 2악장에서 울림이 지나치게 풍부한 연주회장의 음향 환경과 군데군데 앙상블 난조로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연주에 글록켄슈필의 활약이 유난히 돋보였다. 이것은 음색에 대한 탁월한 상상력과 더불어 뛰어난 밸런스 감각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생각되며, 그런 점에서 에드워드 최의 센스에 경의를 표한다.

지휘자 미코 프랑크는 젊은이다운 패기로 서울시향의 자잘한 실수에 아랑곳하지 않고 뚝심 있게 밀어붙이는 모습이 멋졌다. 연주회장의 음향 환경에 영리하게 적응한 것도 훌륭했다. 그러나 단원들 개개인의 기량을 합주력으로 온전히 이끌어내는 데에는 다소 미숙함을 보였으며, 현대적인 음색을 다채롭게 살리지도 못했다. 서울시향은 외국 유수 악단에 비해 아직은 지휘자의 역량에 따라 연주의 완성도에 커다란 기복을 보이는 연륜이 짧은 악단이다. 젊고 뛰어나지만 경험이 부족한 지휘자는 서울시향에는 그다지 맞지 않음을 이번 연주회로 알 수 있었다.

세종문화회관을 찾을 때마다 대극장의 열악한 음향 때문에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런데 시청 본관 건물을 시향의 연주회장으로 활용한다는 소식이 들리니 이보다 반가운 일이 없다. 아무쪼록 공사 초기부터 음향 전문가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여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부족함 없는 뛰어난 연주회장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나중에 붙임: 원고 보낸지 하루만에 계획 백지화 발표됨. 아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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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22일 토요일

2007.03.22, 25. 진은숙의 아르스 노바 - 리게티 추모 연주회

진은숙의 Ars Nova 1
2007년 3월 22일(목) 오후 8시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지휘자 : Pascal Rophé
협연자 : 강혜선(바이올린)

Unsuk Chin: Allegro ma non troppo for percussion and tape (13')
György Ligeti: Atmosphères (9')
Conlon Nancarrow (1912-1997) Tango
Claude Debussy (1862-1918) Le matin d’un jour de fête [The morning of the festival day] (from: Ibéria; 1905-1908)
Igor Stravinsky (1882-1971) Quatre Etudes
György Ligeti (1923-2006) Violin Concerto
 
진은숙의 Ars Nova 2
2007년 3월 25일(일) 오후 6시
세종 체임버 홀
    
지휘자 : Pascal Rophé
 
Conlon Nancarrow : Toccata for xylophone, marimba, piano and violin (1935)
György Ligeti: Chamber Concerto (19'15")
Hans Abrahamsen: Märchenbilder (Fairy Tale Pictures) (14')
Chris Paul Harman: Theme and Variations for eight musicians (18')
György Ligeti: Poème symphonique for 100 metronomes (20')



리게티(Ligeti György Sándor, 1923-2006)는 20세기 후반 서양음악을 대표하는 거장이다. 그가 작년에 타계했으니 추모의 물결이 이는 것이 마땅하지만, 사실 진은숙이 서울시향의 상임작곡가가 되지 않았다면 이번 추모 음악회는 아마 없었을 것이다. 한국 음악계의 역량이 아직 현대음악 작곡가를 추모할 정도가 되지 못하는 까닭이다. 여러 가지 의미로 '진은숙의 아르스 노바' 시리즈는 한국 음악계에 복이다.

'현대음악'이라는 말은 대중에게 '이해불가'와 같은 뜻으로 받아들여지곤 한다. 그 뿌리깊은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진은숙의 아르스 노바' 시리즈에서 사용하는 장치는 일종의 당의정(糖衣錠)이다. 드뷔시, 스트라빈스키 등 대중에게 비교적 익숙한 작곡가들의 작품으로 현대음악의 뿌리를 엿볼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리고 이날 첫 곡으로 연주된 진은숙의 타악기 주자와 테이프를 위한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 Allegro ma non troppo>는 한발 더 나아가 대중이 가진 고정관념의 근본을 뒤흔들어줄 한 수로 적절했다. 이 작품은 구체음악(musique concrète)으로 분류되는데, 그 원류는 1948년 셰퍼(Pierre Schaeffer)에서 찾을 수 있지만 소음도 음악이 될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1913년 루솔로(Luigi Russolo)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이미 100년 가까이 지난 낡은 생각이고 대중음악에서도 종종 '새로운 시도'로 소개되어온 아이디어이지만, 현대음악에 익숙지 않은 사람에게 이것은 여전히 새롭다. 그러나 고정관념을 한 꺼풀 벗겨내고 나면 사실은 새로울 것도 없다. 우리는 물소리, 바람소리, 새 소리 등을 가리켜 '자연의 음악'이라 말하곤 한다. 작곡가는 이런 소리를 입맛에 맞게 모아놓고 '음악'이라고 부를 수 있으며, 그것이 작곡가의 의도대로 조직되었다면 피아노 등의 '보통' 악기를 사용한 음악과 다를 것도 없다. 음악 별거 있나.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는 '빠르지만 지나치지 않게'라는 뜻으로 고전-낭만주의 시대 교향곡 등에서 즐겨 쓰이던 나타냄 말이다. 진은숙은 왜 이 작품에 이런 엉뚱한 제목을 붙였을까? 각종 타악기와 소음이 어우러진 이 작품도 알고 보면 '보통' 교향곡과 다를 것도 없다는 뜻은 아닐까? 아닌 게 아니라 이 작품은 종이를 바스락거리는 등의 퍼포먼스에 의해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으니 이것을 그대로 소나타 형식에 대입시켜 생각할 수도 있겠다. '발전부'에 해당하는 가운데 부분에서는 특히 동굴에 들어온 듯한 음향과 그에 어울리는 탐탐(tam-tam) 소리 등이 매우 인상적이었는데, 각종 타악기가 한꺼번에 '쾅' 하고 바로 이어 들리는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특히 짜릿했다.

리게티의 <아트모스페르 Atmosphères>는 '대기(大氣)'와 '분위기'의 이중적인 의미가 있으며, 이른바 클러스터(cluster) 기법을 사용한 '미크로폴리포니(micropolyphony)'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클러스터 기법은 12 음 음악이 청자에게 지각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비판에 기초하면서 선율, 화성, 리듬의 구조를 모두 해체하여 순수한 음향으로 이루어진 음악을 작곡할 수 있는 기법으로 '소음의 해방'과 비슷한 시기에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아트모스페르>를 이루는 선율과 리듬과 화성은 미립자(微粒子)처럼 존재하며 실제로 귀에 들리는 소리는 각각이 덩어리, 즉 클러스터가 되어 '얼어붙은 시간'(리게티의 용어) 속에서 정지한 듯 흘러간다. 지휘자 파르칼 로페(Pascal Rophé)는 '나무'와 '숲' 가운데 나무를 살리는 데 좀 더 치중하는 듯했으며, 미시적인 움직임 속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음색을 전율할 만큼 섬세하게 살려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미세한 소리는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이 감당하기 어려워 보였으며, 뒷자리에 앉은 수많은 청중에게는 단지 흐리멍덩하게 뭉쳐진 지루한 음향의 연속일 따름이었을 것이다.

낸캐로우(Conlon Nancarrow)의 작품은 복잡하고 비주기적인 박절과 리듬 구조를 사용하는 이른바 '폴리리듬(polyrhythm)'과 '폴리템포(polytempo)' 등을 특징으로 한다. 이것은 '미크로폴리포니' 이후에 리게티가 추구하던 '다차원적 폴리포니'(이희경)와도 통하며, 리게티는 낸캐로우의 양식이 "베베른과 아이브스 이후의 가장 위대한 발견"이라 했다. <탱고?>는 낸캐로우가 리게티에 의해 유명해진 이후인 1983년 작품인데, 그의 다른 작품보다 텍스처가 상당히 엷으면서도 폴리리듬적 특징이 살아있는 것이 흥미롭다. 이 곡은 원래 자동 피아노를 위한 작품으로 이날 연주된 것은 Yvar Mikhashoff의 앙상블 편곡 작품이었는데, 작품 제목의 물음표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얼핏 들으면 탱고라기보다는 래그타임(ragtime)처럼 들렸으며, 폴리리듬적 반주 음형 속에 탱고 음악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드뷔시와 스트라빈스키가 리게티의 선배 작곡가로서 가지는 공통점은 계몽주의 사상과 기능화성 작법에 기초한 음악 구성의 목표지향적인 발전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생장하지만 발전하지 않는 유동적인 짜임새(드뷔시)와 순환을 통한 갱신, "선(線)적인 시간이 아니라, 순환하는 그리고 무(無)시간적이고 신화적인 시간 안에서 선조의 음악을 생생하게 그려내는 것"(스트라빈스키; C. Kaden의 표현)은 "고난을 거쳐 별들의 나라로 per aspera ad astra"라는 경구로 대변되는 베토벤적 가치관에 반대되는 특징이다. 이 부동의 가치는 20세기 초 쇤베르크 등에 의해 "일종의 역사의 완성이라 할 수 있는 비약적인 발전"(C. Kaden)을 맞았는데, 그 때문에 특히 스트라빈스키가 사회 각계로부터 받은 비난은 격렬했다. "그는 지붕을 뜯어내 버렸고, 그래서 이제 그의 대머리 위로 빗물이 흐른다"(아도르노), "진실성 없는 음악" "속이 비어 있는 것으로는 피리를 불기 쉽다"(E. 블로흐), "근심이 없는 작곡가"(A. 베르크) 등이 당시의 상황을 알 수 있게 하는 말이다. 그러나 포스트모던 시대 작곡가이자 영원한 타자(他者)였던 리게티에게는 오히려 이런 점이 창조적 자극이 되었으니 드뷔시와 스트라빈스키는 얼마나 시대를 앞서간 것인가.

음악학자 이희경에 따르면 리게티는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에서 특히 관현악법에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파스칼 로페는 이날 연주에서 <아트모스페르>에서와 마찬가지로 작품 곳곳에 숨어있는 다양한 음색을 생생하게 살려내어 작년 10월에 뤼디거 본이 들려준 모더니즘의 무기질적 특징과는 또 다른 현대성을 보여주었다. 드뷔시의 "축젯날 아침 Le matin d'un jour de fête"은 악보의 지시(♩= 112)보다 훨씬 느린 템포(대략♩= 85)를 사용하여 마디 11 이후의 아첼레란도 등의 템포 변화의 폭을 크게 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그 때문인지 가끔 앙상블이 어긋나곤 했던 것은 옥에 티였다.

리게티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1989년에서 1993년 사이에 작곡되었으며, 낸캐로우의 음악과 중앙아프리카 음악, 14세기 말의 다성음악(Ars subtilior) 등 다양한 양식의 영향을 받아 생겨난 '다차원적 폴리포니'의 정수가 담긴 작품이다. 여전히 클러스터 기법을 응용하면서도 <아트모스페르>에서 나타난 미크로폴리포니와는 달리 선율과 리듬의 윤곽이 뚜렷하게 존재하며, "상이한 리듬층을 상상의 음향 공간 속에 다양하게 배치"(이희경)한 결과 "리듬적으로 얽매이지 않는 진정한 폴리포니"(신인선)가 되었다. 현란한 기교를 보여준 강혜선의 연주는 훌륭했지만, 다채로운 음색을 연주회장이 감당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은 아쉬웠다. 특히 1악장에서 피아니시모 또는 그보다 여린 소리를 낼 때에는 앞자리에 앉았는데도 소리가 너무 작아서 심심한 연주로 둔갑해버렸다. 2악장 이후부터는 조금 나아졌으며, 특히 호케투스(Hoquetus) 부분에서 셋잇단음 리듬으로 텍스처를 치고 나오는 바이올린 소리(마디 84 이후)가 짜릿했다. 카덴차는 이 곡의 초연자인 가브릴로프(Saschko Gawriloff)의 것을 사용했으며, 앙코르로 3악장을 다시 한 번 연주했다.

세종문화회관 체임버 홀에서 연주된 리게티의 <실내 협주곡>은 1969년에서 1970년 사이에 작곡되었으며, 그의 작품세계에서 60년대의 미크로폴리포니가 80년대 이후의 다차원적 폴리포니로 변화해가는 과정을 이 작품에서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론적인 설명들은 이제 잊어버려도 좋다. 아니, 음악에 대한 일체의 편견을 버리고 낯설지만 신비로운 소리 그 자체를 즐길 준비가 되어있다면 이런 것은 애초에 몰랐어도 좋다. 리게티의 음악은 엄격한 구성과는 별개로 감성과 직관에 호소하는 음악이며, 이론적 설명보다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 더 중요하다. 서울시향의 연주는 편하게 들어도 귀가 즐거웠으며, 특히 모든 악기가 스타카토 및 피치카토 음형으로 타악기 같은 소리를 내는 3악장에서는 전율을 느꼈다. 5악장에서는 화학반응으로 미립자들이 활발히 움직이듯 촘촘하고도 빠르게, 또 다양한 방향성을 가지고 움직이는 음형이 오묘했다. 2악장에서 목관악기의 절규하는 듯한 마르카토 음형(마디 40)은 악기별 어택(attack)이 잘 맞아떨어졌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낸캐로우의 <토카타>는 1935년 작품으로 낸캐로우 음악의 일반적인 특징인 빠르고 기계적인 리듬이 잘 살아있는 작품이다. 바이올린을 연주한 박제희는 기술적으로는 나무랄 데 없었지만, 특유의 점잖은 '양반 보잉'은 <토카타>처럼 신나고 어떤 면에서는 경박한(?) 곡에는 단점이 되는 것 같다. 무엇보다 음량이 너무 작았으며, 그에 비하면 마림바와 실로폰 소리는 너무 컸다.

아브라함센(Hans Abrahamsen)의 <동화 그림 Märchenbilder>은 슈만의 <동화 그림>에서 소재를 빌렸다는데, 슈만의 작품이 19세기 동화를 그린 회화 같다면 아브라함센의 작품은 차라리 3D 컴퓨터 그래픽이 난무하는 SF 또는 판타지 영화처럼 느껴졌다. 또한, 다차원적이면서도 그물망같이 연결된 성부 진행에서는 리게티의 영향을 찾을 수 있었다.

하만(Chris Paul Harman)의 <행렬 풍자극 Procession Burlesque>은 4종 대위법(fourth species counterpoint)을 연상시키는 피아노 음의 배음(harmonics)이 만들어내는 야릇한 음향과 그것을 오케스트라가 흉내 내는 것이 신선했는데, 이것은 마치 악보에는 존재하지 않는 배음끼리의 클러스터 같았다. 그리고 이것이 나중에는 여러 층위를 이루면서 폴리포니 아닌 폴리포니를 이루는 것이 리게티와 닮았으면서도 또 달랐다. 변화무쌍하면서도 뒤로 갈수록 묘하게 선동적인 리듬과 다이내믹 또한 흥미진진했다.

리게티의 <100개의 메트로놈을 위한 교향시>는 '해프닝' 성격이 강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연주 그 자체는 그다지 큰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으며, 폴리리듬과 폴리템포에 대한 리게티의 화두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를 가진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다만, 이날 벌어진 고유한 사건들은 그 나름의 가치가 있겠다. 그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것은 마지막까지 작동을 멈추지 않고 남아있던 두어 개의 메트로놈이 도무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진은숙이 그 끈질긴 녀석들을 손으로 멈춘 다음 태엽을 4번 감아야 할 것을 한 번 더 감았던 모양이라며 사과의 말씀을 전했다. '연주자'들은 예닐곱 명의 어린이들이었으며, 아마도 역사상 최연소 리게티 연주자가 아니었을까 싶다.

새로움에 대한 화두는 예술가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겠지만, 리게티에게는 이것이 다양한 문화 양태가 "접속과 횡단"(이희경)을 통해 전혀 새로운 속성을 획득하는 식으로 구현되었다. 그는 평생 어느 한 곳에 소속되기를 거부하고 항상 외부를 향해 열려있었으며, 이방인의 시선을 대상의 새로운 측면을 조명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삼았다. 이것이 단순한 '혼혈'과는 다른 까닭은 "손에 잡히는 듯한 섬세한 음향 감각과 자신이 원하는 소리를 아주 명료하게 형상화하는 탁월한 형식 감각"(이희경)을 바탕으로 철저한 자기비판을 거쳐 탄생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장은 죽어서 숙제를 남겼다. 이제 음악은 어떤 식으로 변해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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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철. 2007.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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