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김영미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김영미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09년 10월 18일 일요일

2009.10.13. 홍성지 〈귀천〉 / 〈Gloria〉-《Missa 'Lumen de Lumine'》 etc ― 박치용 / 서울모테트합창단 / 강남심포니오케스트라

2009년 10월 13일 오후 8시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

지휘자: 박치용
협연자: 김영미/sop 유소영/sop 박은주/alt 송기창/bar 김현정/org

Mendelssohn - ‘Magnificat(한국초연)’ ‘Psalm42 op.42’ ‘Hör mein Bitten’
홍성지 - 〈귀천〉, 《Missa 'Lumen de Lumine'》 가운데 〈Gloria〉
박성춘 - 〈눈이 오는 밤〉, 〈바람의 시〉


※ 이 글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공연예술창작기금지원사업으로 기획한 국민평가단 평가 자료를 겸하는 글이며, 평가서 항목에 맞추어 썼음을 밝힙니다.

▶ 공연작품의 예술적 수월성

서울모테트합창단은 외국 일류 합창단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합창단이 아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가장 훌륭한 합창단이라 할 수 있고, 열악한 환경까지 생각하면 이런 훌륭한 합창단이 20주년을 맞았다는 사실은 기적에 가깝다. 이날 연주회는 국내 합창단이 보여줄 수 있는 한계 내에서 가장 훌륭한 연주회였으며, 박치용 지휘자의 뛰어난 역량이 돋보였다. 그러나 일부 창작곡의 예술적 가치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 공연계획 실행의 충실성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은 음향이 제법 훌륭한 연주회장이다. 그러나 홍성지 작품은 일반적인 연주회장이 아니라 잔향이 긴 성당에서 연주했더라면 좋았겠다. 멘델스존 작품도 종교곡인 만큼 잔향이 길면 더 좋았으리라 생각하며, 전자오르간 소리는 성당에서 울리는 진짜 파이프 오르간 소리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박성춘 곡은 음악 양식이 다른 작품과 어울린다 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연주회 내내 사진 찍는 소리가 들려서 짜증이 났다. 관객이 그랬으리라 믿기는 어렵고 합창단 또는 연주회장 관계자 아니면 기자였을 터인데, 합창단·연주회장 관계자라면 반성이 필요하겠고 기자였다면 감히 '기자님'을 나무라기는 어려웠을 터이니 합창단 측에 위로를 보낼 일이다.

▶ 공연성과 및 해당분야 발전에의 기여도

합창단이 자생하기 어려운 국내 환경을 고려할 때 더 많은 정부 지원이 절실하다. 서울시향처럼 독립 재단 형태로 지원하는 것이 가장 좋겠으나 예술위원회 차원에서도 서울모테트합창단은 공연창작기금을 지원할 가치가 매우 높다고 판단된다.

▶ 총평

작곡가 홍성지는 서울시향이 7개 악기를 위한 〈Beethoven Frieze〉와 피아노 협주곡 〈Prismatic〉을 연주한 일이 있어서 개인적으로 호감을 느낀다. 홍성지 작품에서는 마치 공기 속에서 빛 알갱이가 떠다니는 듯한 느낌이 들곤 하는데, 마침 프로그램을 보니 인용해 놓은 평들이 모두 '빛'과 관련이 있다. 이날 연주된 〈귀천〉과 제목부터 빛이 나는 듯한 《Missa 'Lumen de Lumine'》 가운데 〈Gloria〉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네 곡 모두 '빛깔'은 제각각이었으며, 〈귀천〉이 무지갯빛 뿌연 알갱이가 구름 위로 떠오르는 듯한 느낌이라면 〈Gloria〉는 교회 스테인드글라스를 뚫고 들어온 빛이 요정처럼 교회 안을 날아다니는 듯했다.

〈귀천〉과 〈Gloria〉는 원래 합창곡이 아니라 각각 여성 4명과 3명이 부르도록 작곡되었으며, 음악 양식을 보면 잔향이 긴 교회 음향에 알맞다고 할 수 있다. 이날 연주회 주체가 서울모테트합창단이므로 합창단이 이 곡을 부른 일은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연주회장이 교회가 아니라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이었던 점은 못내 아쉽다. 이곳은 잔향 시간이 관현악곡에 알맞게 맞춰져 있어서 마치 영화관에 햇볕이 쏟아지는 듯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또 작품이 주는 느낌을 제대로 살리기에는 합창단 기량이 모자라는 듯해서 안타까웠다. 특히 〈귀천〉에서 여린 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한 대목이 답답했다. 나는 국내 합창단이 'pp'(매우 여리게)를 제대로 내는 모습을 본 일이 없는데, 〈귀천〉은 'pp'보다 더 여린 'ppp'를 정교하게 다스리지 못하면 절반은 실패한 연주라 본다.

매우 느린 템포(♪ = 80) 때문에 길어진 호흡을 합창단원들이 견디지 못하는 듯 리타르단도(점점 느리게)는 있는 듯 없는 듯했고, 여린 음을 제대로 내지 못해서인지 모두쉼표(Generalpause)는 무시되었다. 곡을 끝맺는 음에서는 셈여림표가 ppp인 마당에 몇몇 사람이 중간에 숨을 쉬었다 새로 부르는 바람에 '만득이 현상'마저 나타났다.

이런 문제는 일차적으로 합창단원 개개인에게 원인이 있다 하겠으나 더 따지고 보면 결국 돈 문제, 시스템 문제다. 성악 전공자가 실력이 어느 이상 되면 합창을 하건 오페라 가수로 나서건 유럽으로 가려고 할 뿐 한국에 머무르려 하지 않기 때문이며, 그들에게 매력적인 직업이 한국에는 없기 때문이다.

〈Gloria〉에서는 여린 음과 느린 호흡보다는 리듬과 화음이 중요한 까닭에 〈귀천〉과 달리 약점이 드러나지 않고 합창단 솜씨가 돋보였다. 이 곡은 만약 14세기 교회 음악 양식이 새로운 기법을 매우 보수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져 왔다면 이렇지 않을까 싶을 만큼 중세·르네상스 양식에 현대음악 어법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데, 서울모테트합창단은 안정된 화음을 바탕으로 화려하고 복잡하게 얽혀 있는 장식음들을 잘 살렸으며, 이날 연주회를 통틀어 이 곡이 가장 인상 깊었다. 옥에 티 한 가지만 말하자면, 마디 52―66에서 종소리를 흉내 내도록 지시하고 있으나 이날 연주에서는 그냥 두루뭉술하게 넘어갔다.

(나중에 고침: 2010년 4월 26일 최종 수정. 박성춘 작품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썼으나 다음과 같은 사정으로 내용을 지웠습니다. 〈바람의 시〉 등은 서울시구립여성합창단에서 의뢰한 작품으로, 합창단에서는 대중성 있는 조성음악을 의뢰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합창 음악 수요가 매우 적은 현실을 고려할 때 대중이 이해하기 쉬운 창작곡이 필요하다는 인식에는 저 또한 진심으로 공감하며, 그러한 사정을 헤아리고 나면 박성춘 작품은 흥행성 있는 작품이라고 판단됩니다.

제가 비평문을 쓸 때에는 이러한 맥락을 알지 못했으므로 음악사에 비추어 작품을 판단할 때 양식적·기법적·미학적으로 그다지 새로운 것이 없어 예술적 가치가 낮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박성춘 작품과 다른 합창 음악에 대해 판단 기준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으며, 따라서 단락 전체를 지웁니다. 다만,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는 이미 삭제되지 않은 전문을 전달했음을 밝힙니다.)

소프라노 김영미는 발성과 딕션이 매우 뛰어나서 반가웠다. 음색이 깊고 어두우며 이탈리아 오페라에 잘 어울리는 목소리였는데, 요즘 유행하는 역사주의 연주와는 어울리지 않는 목소리라서 개인적으로 조금 아쉬웠고, 목소리에 폭발적인 에너지를 담아낼 수 있다면 바그너를 하면 좋겠으나 그렇지는 않아 보였다.

소프라노 유소영은 김영미 같은 카리스마 있는 목소리가 아니었으나 알토 박은주 목소리가 너무 작고 부드러워서 상대적으로 '강성' 이미지처럼 두드러졌다. 둘이 맡은 성부를 생각할 때 그 반대보다는 훨씬 낫다 하겠으나 좀 더 균형 있는 앙상블이 아쉬웠다.

바리톤 송기창은 묵직하면서도 맑고 단단한 목소리로 멜리스마(melisma; 모음 하나에 장식적인 음형이 길게 이어지는 선율)를 날렵하고 깔끔하게 살려서 매우 인상 깊었다. 소프라노 김영미와 마찬가지로 폭발적인 에너지는 없어서 바그너를 부르기에는 알맞지 않아 개인적으로 아쉬웠으며, 모차르트를 부르면 매우 멋질 듯했다.

강남심포니오케스트라는 이름에서 짐작게 하는 탄탄한 재정 때문인지 연주력이 웬만한 지방 시향보다 나아 보였다. 트럼펫과 팀파니가 매우 돋보였고 다른 관악기도 훌륭했다. 단점 하나만 말하자면 현악기 연주자들이 숫자에 적당히 묻어가려는 이른바 '안전빵 보잉'을 들 수 있겠는데, 이것은 한국 오케스트라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고질적인 문제다.

2009년 8월 27일 목요일

2007.11.28. 브람스 하이든 주제에 의한 변주곡 / 독일 레퀴엠 - 정명훈 / 서울시향

2007년 11월 28일(수) 오후 7시 30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지휘자 : 정명훈
협연자 : 김영미(소프라노), 사무엘 윤(바리톤), 서울시합창단, 서울모테트합창단

Brahms, Variations on a Theme of Joseph Haydn, op. 56a (17')
Brahms, Ein deutsches Requiem (68')



브람스가 <하이든 주제에 의한 변주곡>을 작곡한 것은 교향곡 1번을 완성하기 3년 전인 1873년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작곡가 브람스가 완숙기에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분수령이라 할 수 있으며, 동시에 청년 시절부터 써오던 변주곡 시리즈를 끝맺는 '마지막 습작' 같은 곡이기도 하다. 이 둘 가운데 어느 쪽에 무게를 두느냐에 따라 해석 방향이 갈릴 수 있겠는데, 정명훈은 드물게 '습작'에 적지 않은 무게를 둔 것 같다. 그러한 의도는 첫 번째 변주부터 매우 뚜렷하게 나타났다. 템포를 ♩= 105 정도로 잡아 관습적인 템포(대략 ♩= 88)에 비해 빨라도 너무 빨랐던 것이다. 이에 따라 두텁고 어두운 화음을 강조하기보다는 비교적 가볍고 생기있는 '젊은 브람스'를 내세워 브람스에 대한 굳은 생각을 깨트리도록 관객을 도발하는 듯했다.

두 번째 변주부터는 점점 낯설지 않은 템포가 되었다가 나중에는 오히려 점점 느려져서 거대한 리타르단도(점점 느리게) 효과가 나타났다. 마지막 아홉 번째 변주에서는 다시 살짝 아첼레란도(점점 빠르게)를 사용하여 대칭을 이루도록 했는데, 이것은 마지막 변주가 저음 반복(ostinato)을 바탕으로 또 다른 변주곡 형태인 파사칼리아(passacaglia)를 이룬다는 점에서 설득력 있는 해석이다. 다만, 이러한 특징이 관객에게 얼마나 잘 전해졌는지는 의문이다. 비정상적으로 거대한 연주회장 탓에 소리가 뭉개지기 일쑤였는 데다가 변화무쌍한 템포에 단원들이 미처 충분히 자신감을 느끼지 못한 듯 리듬과 다이내믹이 그다지 또렷하지 못한 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휴식 시간 없이 이어진 <독일 레퀴엠>. 이 작품은 예배용 음악이 아니다. 원어 제목인 "Ein deutsches Requiem"에서도 드러나듯 라틴어가 아닌 독일어를 가사로 했을 뿐 아니라 경외서(The Apocryphia)에 나오는 글귀도 일부 가사로 썼으며, 무엇보다 내용 구성이 미사 전례를 따르지도 않고 예수의 속죄나 심판의 날을 준비하는 종말 신앙을 앞세워 드러내지도 않는다. 또 가사를 성서에서 따왔을 뿐 사실은 특정 종교를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부분도 없다. 요컨대 이 작품은 삶과 죽음에 대한 보편적인 고뇌를 담고 있으며, 죽은 사람보다는 산 사람을 달래는 곡이다. 이날 연주는 대규모 합창단을 앞세워 고통과 환희와 위안을 생생히 그려낸 한 편의 드라마였다. 2악장에서 팀파니가 이끌어내는 땅울림과 저 깊은 곳에서 북받쳐 오르는 합창의 흥분을 지나 6악장의 '죽음(Tod)'과 '지옥(Hölle)' 가사에 맺힌 절규와 사이 사이를 잇는 푸가토가 특히 좋았다. 마지막 7악장을 들으면서는 문득 김종철의 시구(詩句)를 떠올렸다. 느릿한 템포로 이완된 분위기가 '설레이는 神의 겨울, 그 길고 긴 먼 복도를 지내나와' '어머니 나라에 누운 듯' 편안했다.

합창단과 독창진이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훌륭했으며, 그 가운데 바리톤 사무엘 윤이 누구보다도 뛰어났다. 바그너 전문 가수답게 풍부한 성량, 깊고 안정된 음색, 나무랄 데 없는 딕션과 독일인보다 더 독일인다운 '그르릉' 소리, 독일어 무성음을 타악기처럼 활용하는 솜씨, 유럽 오페라 극장에서 잔뼈가 굵은 경험에 힘입은 배우 본능, 연주회장을 압도하는 제왕의 카리스마! 무엇보다 그는 관현악을 멋대로 끌고 가는 대신 음악의 흐름에 맞게 어우러질 줄 알았다. 이것은 오페라 아리아 한 가락 멋지게 부르는 데에만 익숙한 한국 가수들에게서 찾아보기 어려운 값진 능력이다. 이런 가수가 더 많이 나와서 베토벤 교향곡 9번을 연주한다면 그 얼마나 멋지겠는가! 재작년 성남 아트센터에서 있었던 구노의 <파우스트>에서 메피스토펠레로 나와 신들린 연기와 노래를 들려준 가수를 기억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바로 그가 이날 또 한 번 관객을 사로잡은 그 가수다. 사무엘 윤. 장담하건대 열 몇 해 안에 거물이 될 사람이니 그 이름을 꼭 기억해두기 바란다.

소프라노 김영미는 사무엘 윤에게 가려 빛이 바래버렸지만 사실은 나름대로 꽤 훌륭했다. 5악장 독창부는 고음으로 갈수록 음정과 리듬이 잘 맞지 않으면 듣기 싫은 소리가 되기 쉽지만, 김영미는 위험한 부분을 대부분 잘 처리했다. 사무엘 윤과 마찬가지로 '독창'이 아닌 '협연'을 할 줄 아는 가수였다는 점도 반가웠다. 다만, 초반에 고음에서 음정이 살짝 흔들린 것이나 5옥타브 B♭이 나오는 마디 56에서 잠시 템포를 떨어트린 것 등은 옥에 티였다. 목소리가 소녀처럼 맑고 가녀려서 마치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와 노래하는 듯했으나 성량이 좀 작은 듯해서 아쉽기도 했다. 말러의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 Des Knaben Wunderhorn> 중 "천상의 삶 Das himmlische Leben"(교향곡 4번 4악장이기도 함)에 무척 잘 어울릴 듯싶다.

합창단에게는 솔직히 말해 별로 기대하지 않았으나 웬걸, 생각보다 너무 잘해서 깜짝 놀랐다. 1악장 여린 음부터 감탄을 자아냈는데, 흔히 대규모 합창단이 메조포르테보다 여린 소리를 감당하지 못하는 것을 보아 왔기 때문이다. 이날 연주에서는 피아노까지는 꽤 안정적이었고 피아니시모도 나쁘지 않게 소화했다. 푸가에서도 성부 균형이 잘 맞았고, 지휘자의 지시에 반응하는 것도 재빨랐다. 물론 흠 잡으려면 얼마든지 잡을 수 있지만, 우리나라 합창단 사정이 어려운 것은 안 봐도 뻔한데 이렇게까지 해내다니 그저 기운을 북돋워주는 말만 해주고 싶다. 그리고 바라건대 합창단도 서울시향처럼 재단의 든든한 지원을 업고 선진화된 시스템으로 관리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상식 하나. 레퀴엠을 연주할 때에는 박수를 치지 않는 게 관례다. 장례식장에서 웃고 떠들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물론 <독일 레퀴엠>은 정식 미사 레퀴엠도 아닌데다 연주회장에서 연주가 끝났을 때 박수를 치지 않고 멀뚱멀뚱 있는 것도 이상하지만, 적어도 연주가 끝나자마자 요란한 박수가 터져 나오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다. 이날 정명훈은 마지막 잔향이 완전히 사라지고도 10초 이상 지휘봉을 내리지 않고 침묵을 '연주'했다. 이른바 '안다 박수'가 막판에 분위기를 깨는 일이 잦은 우리나라에서 흔치 않은 광경이었다. 연주자에게도 관객에게도 축복을, Selig sind!

정보공유라이선스

김원철. 2007.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글 찾기

글 갈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