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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28일 수요일

임윤찬-광주시향의 통영 공연 실황 음반

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입니다.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홍석원 지휘 광주시립교향악단과 협연한 실황 음반이 최근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발매됐습니다. 지난 10월 8일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있었던 공연 실황으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과 윤이상 '광주여 영원히' 등이 실려 있지요.

15살 임윤찬이 2019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에서 우승했을 때, 저는 한산신문에 기고한 칼럼에서 15살 조성진이 하마마쓰 콩쿠르에서 우승했던 일과 견주며 임윤찬의 10년 뒤가 기대된다고 썼습니다. 그런데 임윤찬은 10년은커녕 3년이 채 되지 않아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하고 스타 연주자가 됐습니다. 통영국제음악당 무대에 다시 선 모습을 보니 어찌나 반갑던지요!

저는 사실 2019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 때부터 임윤찬의 연주를 백스테이지 아니면 실황 영상으로만 들어 봤습니다. 임윤찬의 '진짜 연주'를 지난 10월 공연에서 처음 들어본 것이죠. 그 공연 실황이 음반으로 나왔으니 감회가 더욱 새롭습니다.

공연 때 저는 임윤찬이 페달을 적게 쓰는 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베토벤 당시의 피아노 느낌이 살짝 난다고도 느꼈고요. 그런데 음반을 들으면서 했던 생각은 공연장에서 들었던 소리보다 잔향이 조금 더 과장되게 느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객석에 따라서 소리가 다르다는 점까지 헤아리면, 제가 그날 있었던 1층 맨 뒤쪽이 아니라 평소에 2층 객석에서 경험한 소리와 비슷하던데요. 

페달을 적게 써서 음 하나하나가 또랑또랑해진 타건 느낌과 실제보다 풍성해진 잔향이 더해진 결과는 마치 페달을 적게 쓸 때와 많이 쓸 때의 장점이 합쳐진 듯했습니다. 국내 최고의 클래식 음악 톤마이스터로 소문이 자자하신 최진 선생이 녹음을 맡으셨지요. 최신 기술인 돌비 애트모스가 적용된 점 또한 장점입니다.

음반에서 살짝 과장된 잔향은 베토벤 협주곡 5번과 어울리기도 합니다. 임윤찬은 기자간담회에서 "사실 작년까지만 해도 베토벤 협주곡 중 '황제'는 너무 화려하게만 느껴져 애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 그러다 최근 인류에게 코로나라는 큰 시련이 닥치고 저도 매일 방에서 연습하다 보니 베토벤이 꿈꾼 유토피아와 우주가 느껴지며 인식이 달라졌다"라고도 했지요.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은 출판업자가 붙인 표제가 오해를 부르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 곡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표제가 아니라 'E♭'장조라는 조성입니다. 저는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이 교향곡 3번 E♭장조와 쌍을 이루는 '후속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베토벤이 꿈꾼 유토피아와 우주"라는 임윤찬의 말은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지요.

이런 맥락에서 가장 멋졌던 순간은 임윤찬이 눈부신 E♭장조 화음을 날개처럼 달고 하늘을 나는 듯한 3악장이었습니다. 그야말로 휘황찬란하던데요. 그 와중에 (론도-소나타 형식의) '발전부'라 할 만한 곳에서 날짝 난기류를 만나는 순간, 임윤찬의 호쾌한 음악적 활극이 펼쳐진 것도 멋있었습니다.

제가 앞서 임윤찬을 조성진과 견주기도 했는데요. 제 생각에 조성진의 연주가 모든 면에서 완벽에 가깝다면, 임윤찬의 연주는 좀 더 야성적인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호쾌한 음악적 활극'이 그런 뜻에서 한 말이지요. 그러나 즉흥적이고 충동적인 야성이 아니라 정교하게 계산되고 통제된 야성이라는 점에서, 임윤찬의 연주는 또 다른 의미로 완벽에 가깝기도 합니다.

이 음반에서는 윤이상의 1981년 작품 '광주여 영원히' 또한 빼놓을 수 없습니다. '광주여 영원히'는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음반이 아마 김병화 선생 지휘 조선국립교향악단 1987년 녹음(CPO) 정도일 텐데, 북한 녹음 기술이 조악해서 음질은 엉망이지요. 사람들이 잘 모르는 음반으로는 김홍재 지휘 도쿄 심포니 오케스트라 1989년 녹음(신나라)과 임원식 지휘 서울시향 녹음(아마도 1994년, 월간객석) 등이 있지만, 음질은 다들 별로예요. 

그러니까 '광주여 영원히'를 정말로 제대로 된 음질로 녹음해서 정식으로 발매한 음반은 제가 아는 한 이번에 나온 것이 최초입니다. 연주 자체의 완성도 또한 훌륭합니다. 음질과 연주의 완성도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면, 현재까지 나온 '광주여 영원히' 음반 중에서 홍석원 지휘 광주시향 녹음이 가장 훌륭하다고 단언합니다.

2022년 11월 20일 일요일

한재민의 윤이상 첼로 협주곡

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입니다.


2022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 결선 때 있었던 일입니다. 신동 첼리스트로 유명한 한재민이 크리스티안 바스케스가 지휘하는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와 함께 윤이상 첼로 협주곡을 연주하고 있었습니다. 한재민의 첼로 현 하나가 격렬한 연주를 견디지 못하고 경연 도중에 끊어졌습니다. 새로운 현으로 교체할 때까지 경연은 중단되었지요.

끊어진 현이 첼로 현 가운데 가장 굵은 ’C 현’이라는 점이 특이했지만, 현악기가 연주 도중에 끊어지는 일은 가끔 일어납니다. 그런데 문제는 끊어졌던 현이 얼마 안 가서 또 끊어진 것이었습니다. 한재민은 처음 현이 끊어졌을 때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지만, 두 번째로 끊어졌을 때에는 정말로 당황했다고 인터뷰에서 밝혔습니다. 백스테이지에 있던 동료의 증언에 따르면, 그때 한재민이 당황한 모습이 한눈에 보일 정도였다고 하네요.

저는 당시에 방송 중계차량에서 아주 작은 모니터 화면과 소음 속에서 작게 들리는 소리로 연주를 듣느라 현장 상황을 정확히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현이 세 번째로 끊어졌을 때에는 긴가민가했다가, 연주가 계속되는 것을 보면서 현이 끊어진 게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알고 봤더니 현은 정말로 세 번 끊어졌고, 한재민은 연주를 세 번이나 중단할 수는 없다고 판단해서 끊어진 ‘C 현’ 대신 다른 현으로 연주를 이어갔다고 하네요.

나중에 큰 화면으로 실황 영상을 다시 보면서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재민은 현이 두 번째로 끊어졌을 때에도 남은 현으로 1분 정도 연주를 이어갔더군요. 그러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는지 연주를 중단한 다음 심사위원들을 향해 현을 교체해도 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현이 끊어진 순간은 다시 연주를 이어가기 시작한 지 1분이나 되었을까 싶었던 때였습니다.

윤이상은 첼로 협주곡 중간 부분에서 기타 피크로 현을 튕기는 연주법을 지시하고 있습니다. 마치 거문고 현을 술대로 뜯는 것을 연상시키지요. 현이 실제로 끊어졌던 순간은 ’거문고 피치카토’를 지나서 현을 활로 켜던 때였지만, 이 작품에서 첼로의 가장 굵은 ’C 현’이 여러모로 중요하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한재민이 이 곡을 연습하다가 ’C 현’이 끊어진 일도 한 번 있었다고 하더군요.

윤이상 첼로 협주곡에서 첼로는 윤이상 자신을 상징합니다. 윤이상은 이 곡에서 첼로를 독주 악기로만 사용했을 뿐 오케스트라 악기로 편성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첼로가 오케스트라 전체와 홀로 맞서는 식으로 음악이 흐르고, 그 가운데 홀로 고군분투하는 첼로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기도 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첼로 현이 세 차례 끊어진 해프닝은 의외로 작품과 어울리는 드라마적 효과를 낳았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윤이상 첼로 협주곡에서는 윤이상이 첼로로 전하는 ’독백’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한재민의 ’독백’은 대단했지요. 윤이상의 딸 윤정 선생은 ’영혼이 담긴 연주’라며 한재민을 극찬했습니다. 또 이 작품에는 목탁 소리, 취침나팔 소리, 망자를 태운 배가 저승을 향해 물결을 헤치고 나아가는 듯한 소리 등이 나옵니다. 이와 관련해 윤이상 선생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기도 했지요.

“감방에서의 지리하고 답답한 긴 하루가 지나가면 취침 나팔 소리가 울린다. 슬픈 멜로디의 나팔 소리, 그리고 깊은 정적이 시작된다. 나는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먼 산 속 절간에서 울려오는 목탁 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어느 죄수가 사형될 때 스님이 그 영혼을 인도하기 위하여 염불하며 두드리는 소리라고….”

세 차례 악재에도 불구하고 한재민은 1위에 입상하는 쾌거를 거두었습니다.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 결선에서 윤이상 곡으로 1위 입상자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첫해인 2003년에 고봉인이 윤이상 첼로 협주곡으로 2위에 입상한 일이 있었지만, 보통은 다른 작곡가의 협주곡을 선택한 참가자들이 결선에 오르더군요. 올해는 달랐습니다. 결선 곡으로 윤이상 협주곡을 선택한 참가자가 꽤 많았고, 그 가운데 한재민과 정우찬이 결선에 올라 1위와 2위를 차지했지요. 이런 일이 자주 있기를 바랍니다.

2022년 10월 18일 화요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 윤이상의 영화음악

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입니다.



ⓒ부산국제영화제

지난 6월에 있었던 일입니다.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요청하기를, 영화 ’낙동강’의 영화음악을 윤이상 선생이 작곡하셨으니 그 음악을 영화와 관련지어 분석하는 글을 써달라고 하더라고요.

“잘못 아신 듯합니다. ‘낙동강’ 영화음악을 작곡하신 분은 김동진이라는 분이고, 윤이상 선생이 작곡한 ’낙동강’이라는 노래가 영화에 삽입되었다고 알고 있어요.”

“아, 그런가요? 그렇다면 그 노래가 어느 장면에 어떤 식으로 사용되었는지 등에 관한 글을 써주실 수 있을까요? 최근에 영화 필름이 발견되어서 디지털 복원 작업 중입니다.”

그간 유실되어 실체를 알 수 없던 영화 ‘낙동강’을 저는 그렇게 남보다 먼저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깜짝 놀랐습니다. 지난 2017년 자필악보가 발견되어 2018 통영국제음악제에서 세계초연되었던 윤이상 관현악곡 ’낙동강의 시’(詩) 도입부 주제가 영화 시작과 동시에 흘러나왔기 때문입니다!

’낙동강의 시’악보가 발견되었을 때부터 저를 비롯해 여러 사람이 영화와의 관련성을 의심했지만, 영화음악을 맡은 사람이 김동진 선생으로 기록되어 있었던 까닭에 의심을 접어야 했었죠. 그런데 발견된 영화를 보니 그게 아니었던 겁니다. 영화 크레딧에 김동진 선생 이름이 없고 ’음악·작곡: 윤이상’이라고 되어 있던데요!

도입부 주제 선율이 끝난 뒤에 저는 다시 한번 놀랐습니다. 2018년 당시에 진의장 전 통영시장님이 이용민 통영국제음악재단 대표님께 말씀하시기를, ‘낙동강’ 개봉 당시에 영화를 보신 기억을 떠올려 보면 우리가 알던 윤이상의 ’낙동강’이 아닌 윤이상의 또 다른 ’낙동강’이 영화에 나온다고 하셨거든요. 진 시장님께서 윤이상 곡으로 알고 있던 노래는 알고 보니 박태현 선생 곡이었고, 이 노래는 영화가 끝날 때쯤에 나오더군요.

그런데 진 시장님의 오해로부터 흥미로운 결론을 도출할 수 있습니다. 윤이상 작곡 ’낙동강’이 영화 ’낙동강’에 삽입된 사실은 예전부터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어떤 노래인지 영화 개봉 당시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면, 다시 말해 윤이상의 ’낙동강’이 영화 개봉 이전에는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았다면, 어쩌면 윤이상 선생은 애초에 ’낙동강’을 영화를 위해 작곡하셨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난 10월 6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영화 ‘낙동강’ 필름 복원 이후 첫 번째 공개 상영이 있었습니다. 상영 후 ’스페셜 토크’라는 설명회가 있었고, 한국영상자료원 김홍준 원장님과 더불어 제가 행사에 출연했습니다. 저는 윤이상의 영화음악에 관해 설명했지요. 그리고 어쩌면 통영에서도 이 영화를 상영할 기회가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이번에 처음 가본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영화 상영을 위한 장비 설정을 바꾸기가 곤란해서 행사 때 영상 재생 등은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준비했던 시청각 자료 대신에 주로 제가 직접 노래를 하는 식으로 설명하게 되었는데요. 발표가 끝난 뒤에 김홍준 원장님이 이런 농담을 하셨습니다. “여러분께서는 부산국제영화제 역사상 최초로 라이브 퍼포먼스를 감상하셨습니다!”

이날 행사와 별도로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저에게 의뢰해서 웹진 KMDb에 실린 글이 있는데요, 제가 마지막 단락으로 쓴 대목을 인용해 봅니다.

“윤이상은 오늘날 서양음악사에 한 획을 그은 거장 현대음악 작곡가로 평가받는다. 그리고 ‹낙동강의 시›는 현대음악 작곡가 윤이상이 서구적 의미에서 전통적인(conventional) 음악 어법으로 작곡한 마지막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작곡가 생전에 공개되지 않았지만, 윤이상은 3악장에 나오는 민요풍 선율을 훗날 칸타타 ‹나의 땅, 나의 민족이여!›(1987)에 사용한 바 있다. 백기완의 시를 사용한 해당 부분의 가사는”북을 쳐라, 새벽이 온다.” 등이다.”

※ 인용문 원문 링크: https://www.kmdb.or.kr/story/237/7028

2022년 9월 23일 금요일

지휘자, 카펠마이스터, 마에스트로 디 카펠라

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입니다.


카펠라(Cappella)는 새끼 염소를 뜻하는 라틴어입니다. ‘목자의 별’이라 불리던 별 이름이기도 하지요. ’목자’가 종교적인 의미로 이어지면서 카펠라는 ’예배’ 또는 ’예배드리는 곳’을 뜻하게 되었고, 음악과 관련해서는 성가대 음악가를 뜻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근대 시민사회가 형성되고 근대적인 오케스트라가 만들어지면서, 카펠라는 오케스트라를 일컫는 말이 되었습니다. 베를린 슈타츠카펠레와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는 현존하는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이지요.

카펠라를 이끄는 사람을 이탈리아어로 ’마에스트로 디 카펠라’라고 합니다. 지휘자를 높여 부르는 말인 ’마에스트로’가 이 말에서 나왔지요. 독일에서는 카펠마이스터(Kapellmeister)라고 해요.

우리나라에서는 음악을 꽤 잘 아는 사람도 ‘카펠마이스터’ 개념을 올바로 이해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웃지 못할 일화도 있는데요. 독일 대도시의 오페라 극장에서 수석 카펠마이스터를 역임한 어떤 한국인 지휘자는 독일 활동을 접고 국내에서 활동하면서, 프로필에 ’수석객원지휘자’와 구분되는 뜻으로 ’수석상임지휘자’라고 썼다가 마치 극장의 일인자인 듯한 오해를 부른다는 비판과 함께 국내 오케스트라 부지휘자 정도 위치로 폄하 당하는 굴욕을 겪은 일도 있어요.

오늘날 독일 대도시를 대표하는 오페라 극장에서는 보통 한 해에 300회 이상 공연합니다. 시즌 사이의 휴식기를 빼고 나면 사실상 거의 매일 공연을 하는 셈이고, 의상을 입고 연기를 해야 하는 공연 특성상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는 사실까지 헤아리면 무시무시한 일정이지요. 그래서 독일 오페라 극장은 보통 상근직 지휘자를 여럿 고용합니다. 콘서트 오케스트라에서는 대개 카펠마이스터가 악단의 일인자를 뜻하지만, 오페라 극장에서는 음악감독(게네랄무지크디렉토어) 또는 줄여서 GMD(게엠데)가 악단의 일인자입니다. 카펠마이스터는 자신이 맡은 작품(프로젝트)에 한해서 일인자가 되지요. 음악감독은 사실 지휘자가 아닐 수도 있고, 또 극장의 일인자는 아니에요.

오페라 극장에서 국내 오케스트라 부지휘자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사람은 레페티토어(Répétiteur) 또는 코레페티토어(Korrepetitor)라고 합니다. 우리말로는 흔히 ‘음악 코치’ 또는 ’오페라 코치’로 번역하지요. 음악 코치는 사실 가수들의 리허설을 돕는 피아니스트를 말하는데, 전문 피아니스트일 수도 있지만 지휘자가 처음 커리어를 시작할 때 흔히 맡는 역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음악 코치는 많은 경우 지휘자의 리허설을 돕는 보조지휘자 역할을 겸하고, 보조지휘자로 경력이 쌓이면 지휘자로서 일회성 공연을 맡아 한 시즌에 한두 번 정도 무대에 오르기도 하지요.

한국인 지휘자 가운데 유럽 오페라 극장에서 카펠마이스터 급 이상의 경력을 쌓은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정명훈 선생이 파리 국립오페라(당시에는 바스티유 오페라 극장) 음악감독을 지내셨고, 김은선 선생이 현재 미국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음악감독이시죠. 그밖에 구자범, 최희준, 지중배, 홍석원, 송안훈, 정찬민 등이 독일어권 오페라 극장에서 카펠마이스터로 활동하셨거나 현재 활동 중인 지휘자입니다. 이 가운데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분도 있지만, 유럽 오페라 극장에서 카펠마이스터 직책을 얻었다면 실력이 대단한 지휘자라고 믿을 수 있어요.

이 가운데 홍석원 선생이 이끄는 광주시립교향악단이 오는 10월 8일 통영국제음악당에서 공연할 예정입니다. 홍석원 지휘자는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에 있는 티롤 주립 오페라 극장에서 수석 카펠마이스터를 지내셨고, ‘모차르트의 나라’ 오스트리아에서 한국인 최초로 카펠마이스터가 되신 분이지요. 지난해부터 광주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으로 활동 중입니다. 광주시향의 통영 공연은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와 미국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스타로 급부상한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협연할 예정이라서 티켓이 순식간에 매진됐는데요. 임윤찬 못지않게 홍석원 지휘자도 주목받아 마땅하지 않나 싶어서 카펠마이스터에 관해 설명하는 글을 써봤습니다.

2022년 8월 18일 목요일

모든 시민이 악기 하나쯤 연주할 수 있는 통영을 꿈꾸며

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입니다.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에 나오는 ’환희의 송가’는, 일설에 따르면 본디 ’자유의 송가’였다고 하지요. 원작 시를 쓴 프리드리히 실러가 ’자유’(Freiheit)를 ‘환희’(Freude)로 바꾼 까닭은 당시 유럽 사회에서 ‘자유’가 지배계급에 도전하는 불온한 낱말이었기 때문이라고요. 그러고 보면 ’환희’ 대신 ’자유’로 바꾼 노랫말이 더 자연스러운 것 같기도 합니다. “자유여, 아름다운 신의 불꽃이여!”(Freiheit, schöner Götterfunken!)

오늘날 자유는 불온한 낱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보수적 가치를 대표하는 낱말로 여겨지지요. 이를테면 보수 정당에 소속된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사에는 ’자유’가 35번이나 나왔습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의 취임사에는 제가 대학생이었을 때 운동권 선배와 동기들이 쓰던, 뉴스에서는 노동운동가나 좌파 지식인 및 정치인이 흔히 쓰던 낱말도 여섯 번이나 나왔습니다. 그것은 ’연대’입니다.

“어떤 사람의 자유가 유린되거나 자유 시민이 되는데 필요한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다면 모든 자유 시민은 연대해서 도와야 합니다. […] 공권력과 군사력에 의한 불법 행위로 개인의 자유가 침해되고 자유 시민으로서의 존엄한 삶이 유지되지 않는다면 모든 세계 시민이 자유 시민으로서 연대하여 도와야 하는 것입니다.”

윤 대통령과 같은 정당에 소속된 천영기 통영시장이 취임한 뒤로 놀라운 문화사업이 등장했습니다. 시민 ’1인 1악기’를 정책목표로 통영국제음악재단이 추진하고 있는 ’TIMF 음악교실’입니다. 사실 이 사업은 내용상으로는 통영국제음악재단이 출범한 뒤로 8년째 하고 있는 여러 음악 교육사업과 별로 다른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민 ’1인 1악기’라는, 아직은 구호에 가까운 정책목표야말로 정말로 값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형편이 어려운 국민을 선별해서 문화접근성을 높이자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보수 정치인에게 어울리는 정책목표일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한다면 그것은 진보 정치인에게 어울리는 정책목표가 됩니다. 이것은 학교 급식을 전면 무료화할 것인가, 아니면 저소득층 학생에게 선별적으로 무료화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일맥상통합니다. ’모든 국민이 악기 하나쯤은 연주할 수 있는 나라’를 처음 제안한 정치인은 노회찬 전 국회의원입니다.

통영국제음악재단이 그동안 추진해 온 교육사업은 굳이 따지자면 보수적인 정책 방향을 따르는 것들입니다. 제한된 예산으로 성과를 내려면 그것이 현실적이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13만이 넘는다는 통영시민 모두가 정말로 악기 하나쯤 연주할 수 있게 되려면, 또는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 악기 하나쯤 연주할 수 있게 되려면, 정부가 예산을 얼마나 쏟아야 할지 저는 도무지 가늠이 되지 않습니다. 과연 그런 정책목표가 옳은지에 대해서도 사회적 합의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다만, ’모든 시민이 악기 하나쯤은 연주할 수 있는 통영’이 언젠가 먼 훗날에 이루고 싶은 목표가 되는 일은 참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보수 정치인이 진보적 가치에 호응하거나, 반대로 진보 정치인이 보수적 가치에 호응하는 일도 참 멋진 일인 것 같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말한 ’연대’처럼요.

윤이상과 안익태의 업적을 평가하는 일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속한 ’진영’이나 정치 성향에 따라 자칫 ’친북’이나 ’친일’이라는 색안경을 끼고 윤이상과 안익태를 보기 쉽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값진 일은 열린 마음으로 두 사람 모두 한국을 대표하는 예술가로 기리는 일이 아닐까요.

그래서 저는 한때 불온한 말이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은 시구를 되뇌어 봅니다. “자유여, 아름다운 신의 불꽃이여!”

2022년 7월 15일 금요일

리처드 타루스킨, 음악학자의 통과의례였던 음악학자

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입니다.


“오늘 타루스킨이 제 글을 공개 비판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저는 공식적으로 음악학자예요.”

음악학자·음악평론가 윌 로빈이 박사과정 학생이던 10년쯤 전에 소셜미디어로 이렇게 썼습니다. 맥락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을 이상한 말인데요. 리처드 타루스킨이 미국 음악학계를 대표하는 대학자이면서 성격 까칠하기로 악명 높았던 사람이고, 그래서 영미권 음악학자 중에 타루스킨에게 된통 당해보지 않은 사람이 없다시피 하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저 말이 꽤 재치 있는 농담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타루스킨이라는 ’통과의례’를 마친 윌 로빈은 무사히 박사학위를 받았고, 지금은 메릴랜드 대학교 교수입니다. 그리고 지난 7월 1일 ’뉴욕타임스’에 실린 리처드 타루스킨 부고 기사를 다름 아닌 윌 로빈이 썼습니다. 타루스킨이 식도암으로 투병 끝에 향년 77세로 타계한 당일이었지요. “압도적인 음악학자이자 공공의 지성이었으며, 논쟁적 학문과 평론으로 클래식 음악사의 통념을 뒤흔들었던 리처드 타루스킨이 금요일 새벽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에서 타계했다.”

리처드 타루스킨은 제가 음대생 시절 학문적 세계관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영향을 받은 사람이기도 합니다. 한 사람을 더 꼽자면 독일의 카를 달하우스 정도이겠고요. 지금도 저는 글을 쓰면서 학술적인 검증을 꼼꼼히 해야 할 필요를 느끼면 타루스킨이 쓴 다섯 권짜리 책 ’옥스퍼드 서양음악사’를 반드시 확인합니다. 윌 로빈이 뉴욕타임스 부고 기사에서 소개한 바로 그 책이지요.

위대한 음악학자였던 리처드 타루스킨을 추모하는 뜻에서, 제가 예전에 썼던 글 가운데 그를 중요하게 인용한 대목을 소개해 볼까 합니다.

“운율(rhyme)과 보격(meter) 없이도 음악적이며, 영혼의 시적 충동과 몽환 세계의 넘실거림에 어우러질 만큼 유연하면서도 강약이 살아있는 시구(詩句)의 마법을 한때 꿈꿔보지 않은 이가 우리 가운데 누가 있는가?” ― 샤를 보들레르 (1862년)

“내가 추구하는 음악을 말하자면, 나는 그것이 영혼의 시적 충동과 몽환 세계의 자유분방함에 어우러질 만큼 유연하면서도 강약이 살아있는 음악이기를 바란다.” ― 클로드 드뷔시 (1886년)

음악학자 리처드 타루스킨은 보들레르와 드뷔시가 쓴 글을 나란히 인용하면서 1900년대 프랑스 음악을 설명했습니다. 드뷔시가 프랑스 상징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보들레르의 말을 인용해 자신의 예술관을 드러낸 일은 새삼 흥미롭군요. 충동, 자유분방함, 유연함은 드뷔시 음악을 설명하는 키워드라 할 수 있습니다.

[…] 이런 맥락에서 프랑스 파리는 오스트리아 빈과 여러모로 달랐습니다. 드뷔시에 이어 에릭 사티, 모리스 라벨 등이 전혀 다른 패러다임을 만들어 가고 있었고, 한 세대 뒤에 나타난 작곡가들에게 음악학자 리처드 타루스킨은 ’라이프 스타일 모더니즘’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했지요.

– 한산신문 칼럼 “두 가지 아방가르드: 프랑스 파리와 오스트리아 빈” (2016년 1월)

리처드 타루스킨(Richard Taruskin)은 《트리스탄과 이졸데》 이후 바그너 작품에서 화성적 해결이 지연되며 이어지는 것을 “화성의 바다”(The Sea of Harmony)라는 말로 설명했고, […] “화성의 바다”는 바그너 총체예술의 ‘본질’(noumenon)이다.

[…] 타루스킨은 바그너의 라이트모티프 기법이 음악 외적 대상과 연결되므로 ’현상적 세계’에 속한다며 좀 더 엄밀한 입장을 보였다. 다시 말해, 바그너 총체예술의 ’본질’에 해당하는 화성과 리듬 등은 그 자체에 라이트모티프라는 ’현상적 세계’를 포함하고 있으며, 라이트모티프로부터 ’드라마’가 ’발현’된다고 할 수 있다.

[…] 바그너는 쇼펜하우어 사상을 받아들이면서 ’총체예술’로 대표되는 자신의 예술관을 일부 수정했다. 그리고 타루스킨이 ’화성의 바다’라는 말로 요약한 바그너 후기 음악 어법의 핵심이 쇼펜하우어 사상의 핵심으로 연결된다.

– “물결치는 사랑과 바그너식 열반: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이용숙·오희숙 책임편집, 『오페라 속의 미학 I』 (서울: 음악세계, 2017), pp. 77-93.

2022년 6월 19일 일요일

드라마 '파친코'와 슈베르트 현악오중주

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입니다.


최근 ’파친코’라는 드라마가 제법 화제가 됐습니다. 한국계 미국인인 이민진 선생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했고, 드라마 각본과 감독을 모두 한국계 미국인이 맡았으며, 미국 자본으로 제작되어 미국의 비디오 스트리밍 서비스인 애플TV+로 방영된 작품이지요. 뉴욕타임스, 가디언, CNN 같은 영미권 메이저 언론에서 호평하는 등 해외에서 꽤 성공한 작품인데, 한국에서는 한국 방송사에서 방영된 것도 아니고 시장점유율 높은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발표된 것도 아니어서 작품의 완성도에 비해 화제성이 그에 미치지 못한다는 느낌이기도 합니다.

이 작품은 재일 조선인들이 겪은 차별과 수난의 역사를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고증을 꽤 잘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던데요. 그런데 배우 권해효 선생이 대표로 있는 인권단체이자 재일조선학교를 알리는 일을 하고 있는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의 김명준 사무총장은 재일 조선인들이 본명과 통명을 구분해 차별을 피하려고 했던 역사를 이 작품이 살리지 못한 점, 재일조선인들의 공동체의식을 보여주지 못하고 조선인끼리 가혹한 모습이 두드러졌던 점, 억지스러운 설정과 연출로 일본에 대한 불필요한 증오를 부추기는 장면이 빈번한 점 등을 비판하기도 하더군요. 저는 그 가운데 한 단락에 특히 공감했습니다.

“드라마에는 원작 소설에는 없는 몇 장면이 창작되었다. 가령 선자와 이삭의 도일 장면에서 어느 이름 모를 가수의 자결 장면이 그렇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그저 늙은 일본 부호의 손이 그 조선인 여가수의 어깨를 만지고 그녀는 무대에 올라 고급 와인과 서양요리를 즐기는 일본인들을 위해 노래하다 갑자기 ’판소리’를 노래하며 저항하는듯 하다. 배 가장 밑바닥의 조선 노동자들은 그 소리에 쿵쿵거리며 박자를 맞추고 (판소리에 어울리지 않는 박자였다) 여가수는 칼을 꺼내 자결한다. 그리고 시즌1이 끝날 때까지 이 장면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우리는 일제의 탄압에 맞서 더 이상 굴욕을 당하기 싫은 어느 여성 가수의 비참한 최후라고 막연히, 강제로 추론해야 한다. 슬퍼하거나 분노하라는 뜻인가? 가장 하지 말아야 할 어설픈 설득이다.”

자살한 가수는 헨델의 ’울게 하소서’를 부르다 말고 갑자기 판소리 춘향전 중 ’갈까부다’를 부름으로써 관객을 도발합니다. 그걸 본 일본인 관객들이 격분하는데, 그 이유는 감히 ’조선 노래’를 불렀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이 대목에서 저는 실소했습니다. 다른 나라의 예술을 배척하는 것은 제국주의 열강의 사고방식이 아니라 그들의 침략을 받은 이들의 사고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일제강점기에 이를테면 수많은 판소리 음반이 일본 자본에 의해 녹음되었고, 국립국악원의 전신인 이왕직아악부는 일본 궁내성 산하기관이었습니다. 서양에서도 제국주의 팽창을 계기로 박물학이 발전했고, 파리만국박람회가 그런 역사적 맥락에서 가능했습니다.

또 한 가지 문제는 여가수가 등장하기에 앞서 연주된 슈베르트 현악오중주 C장조(D.956)입니다. 저는 이 작품에 대해 예전에 이렇게 썼습니다.

“4악장은 헝가리풍 춤곡 선율을 저음 현이 마치 기괴한 왈츠처럼 받아치는 주제가 특징적입니다. 바두라스코다는 이것을 ’목숨을 건 발구름’으로 풀이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고삐 풀린 스케르초 뒤에 달리 무엇이 올 수 있을까?” 이것이 코다에 이르면 자꾸만 빨라지는 템포와 더불어 3악장보다 더한 ’악마의 쾌(快)’가 됩니다. 이쯤 되면 슈베르트야말로 ’헤비메탈의 아버지’라 할 만해요.”

드라마에는 4악장 마지막 부분이 짧게 나오는데, 그러니까 이 음악은 한 마디로 ’죽음의 춤’이라 할 수 있겠고, 각본을 쓰신 분은 여가수의 죽음을 암시하는 복선으로 슈베르트 음악을 사용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드라마에 나온 연주에서는 ’죽음’이 잘 드러나지 않고 우아하게만 들리던데요. 연주보다 녹음 상태가 더 문제인 것 같기는 한데, 어쩌면 연출가가 각본가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일본 지배계급이 클래식 음악을 즐기는 상황 정도를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네요.

아쉬운 점을 잔뜩 써버렸지만, ’파친코’는 참 좋은 작품입니다. 음악적 고증이 잘못된 곳이 더 있지만 연출가의 잘못이겠고, 작품에 사용된 음악은 대체로 훌륭합니다. 유명 작곡가 니코 뮬리가 음악감독을 맡았다네요.

2022년 5월 24일 화요일

스티븐 스필버그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입니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레너드 번스타인이 작곡하고 스티븐 손드하임이 가사를, 아서 로렌츠가 대본을 쓴 뮤지컬이지요.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가 이걸 영화로 만들어 지난해 12월에 공개했습니다. 한국에는 올해 1월에 나왔고, 3월에는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에 공개되었습니다.

이 영화는 사실 2019년에 촬영이 끝났지만, 편집까지 끝나고도 코로나-19 때문에 1년 동안 개봉하지 못했었다네요. 그러다가 스티븐 손드하임이 지난해 11월에 타계했고, 사흘 뒤에는 스필버그가 연출한 ‘무대용’ 프로덕션이 뉴욕에서 초연되었고, 한 달 뒤에는 영화가 극장에서 상영되었다고 합니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하면 많은 사람이 1961년 영화를 기억하실 듯합니다. 1961년 영화가 사실은 ’녹화된 연극’인 것과 달리 스필버그 영화는 본격 영화로 재창작한 작품이라는 점이 다르고, 거장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의 이름값만큼이나 멋진 연출이 2021년 영화에 담겨 있습니다. 또 두 영화 사이에 무려 60여 년의 기술 격차가 있는 만큼 화질과 음질에 비교 불가능한 차이가 있기도 합니다.

주요 출연진이 1961년의 출연진보다 대체로 노래를 더 잘하는 것도 마음에 들어요. 특히 마리아 역 레이철 제글러와 아니타 역 아리아나 드보즈는 골든 글로브 뮤지컬/코미디 부문을 비롯한 여러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여우조연상, 신인상 등을 휩쓸었더군요. 남자 주연인 앤설 엘고트에 대한 평은 썩 좋지는 않던데, 저는 그마저도 좋게 봤습니다. 영화 평론가 ‘듀나’ 님은 앤설 엘고트가 레이철 제글러, 아리아나 드보즈 등 신인들의 에너지에 눌렸다고도 하네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1957년 뉴욕 빈민가의 푸에르토리코 출신 이민자들과 기존 주민 사이의 갈등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지요. 1961년 영화에서 푸에르토리코 이민자들 역할을 그냥 백인이 맡았던 것과 달리, 스필버그 영화에서는 정말로 라틴계 배우들이 나와서 에스파냐어와 영어를 마구 섞어서 대화합니다. 특히 마리아 역 레이철 제글러가 에스파냐어 발음 섞인 영어로 노래하는 게 참 매력적이에요. 레이철 제글러는 콜롬비아계 미국인입니다.

이 영화에서는 유색인종 역을 백인이 맡는 이른바 ’화이트 워싱’이 없는 것 말고도 오늘날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것들이 꽤 많습니다. 이를테면 영화평론가 듀나 님이 쓰신 글을 인용할게요.

“몇몇 장면들은 20세기 사람들은 주저하며 못 쓰거나 건성으로 넘겼던 것들을 직설적으로 들이대고 있습니다. 가장 눈에 뜨이는 건 이전 작품들에선 50년대 풍의 톰보이였던 애니바디스를 트랜스 남성으로 설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전 후반에서 아니타가 제트 일당들과 마주친 장면의 변경이 좋았습니다. 이전 작품에서 이는 발레화된 강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모든 양식적인 장식들을 지워내고 이게 말 그대로 현실세계의 강간임을 명확하게 하지요. 그리고 같은 자리에 있던 제트 일당들의 여자들이 필사적으로 이에 맞서고 항의하게 합니다. 이 장면은 리나 모레노의 발렌티나가 등장해 아니타를 구하고 남자들이 강간범이라고 선언하면서 완성됩니다.”

스필버그 영화에 담긴 음악은 구스타보 두다멜이 지휘한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일부는 LA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연주했습니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두다멜과 뉴욕필이 만들어내는 음악에 가장 먼저 빠져들게 되더군요. 연주도 훌륭하고, 음질도 탁월합니다. 또 이른바 ‘돌비 애트모스’ 기술로 녹음되어서 음악에 현장감이 훌륭합니다. (돌비 애트모스를 지원하는 재생기기로 감상해야 그 대단함을 제대로 알 수 있어요.) 이 영화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은 음반 또는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로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엘 시스테마’가 낳은 베네수엘라 출신 스타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은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중 ’맘보’를 공연 앙코르로 자주 연주했던 사람이고, 그래서 ’맘보’가 두다멜의 대표곡이나 마찬가지라 할 수 있지요. 그래서 이 영화의 음악을 지휘한 사람이 다른 누구도 아닌 구스타보 두다멜이라는 사실이 그 자체로 강력한 설득력을 가집니다. 두다멜이 남아메리카 출신 스타 지휘자라는 점이 이 작품의 배경과 어울리기도 합니다.

’맘보’가 두다멜 덕분에 더욱 유명해졌다면,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서 예전부터 가장 유명한 대목은 ’발코니 장면’이지요. 뮤지컬을 본 적이 없는 사람도 이 대목을 들어보면 익숙하실 거예요. “투나잇~ 투나잇~!”

2022년 5월 1일 일요일

2022 통영국제음악제 막전막후

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입니다.


“앤드루 노먼 PCR 검사 결과가 ’미결정’이라서 24시간 이내에 재검사받아야 한답니다.”
“8시에 통영으로 출발하는 차량을 10시 출발 보건소행으로 바꾸고 서울 숙박도 1박 연장합시다.”
“오늘 오후 4시에 하기로 했던 강연은 내일로 연기하겠습니다.”
“관할 보건소에 확인해 보니, 최초 확진 후 45일 이내에 검사를 받은 경우 재검사 필요 없대요!”
“서울 숙박 연장하지 마세요. 바로 통영으로 출발합니다.”
“오늘 4시 강연 예정대로 하겠습니다!”

앤드루 노먼은 올해 통영국제음악제 레지던스 작곡가였지요. 그런데 음악제 개막 직전 입국을 앞두고 미국에서 코로나-19 검사를 했더니 양성 판정이 나왔다고 합니다. 일주일이 지나 증상이 사라진 뒤에도 PCR 검사 결과는 양성으로 나오는 바람에 계속 입국이 지연되었다고 하네요. 그리고 드디어 음성 판정을 받아서 입국했더니, 입국 직후에 다시 검사한 결과가 ’미결정’이었던 것이지요.

이번 통영국제음악제 기간 동안 앤드루 노먼 작품 7곡이 아시아초연 또는 한국초연됐습니다. 앤드루 노먼은 6번째 곡이었던 ‘소용돌이’ 공연에 참석해 연주 직후 무대 인사를 할 수 있었고, 마지막 곡인 ’풀려나다’는 리허설부터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작곡 전공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과 작곡 레슨 등 레지던스 작곡가로 뒤늦게나마 활동할 수 있었습니다. 입국이 지연되는 동안 일부 작곡 레슨은 진은숙 예술감독님이 대신하기도 했습니다.

올해 통영국제음악제에는 예년보다 별별 일이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피아니스트 데죄 란키는 코로나-19 확진자가 한국 내에서 급증하는 상황을 우려해 출연을 취소했고, 소프라노 율리야 레즈네바는 폐막공연에서 데죄 란키 대신 협연을 맡기로 했다가 건강 문제가 생겨서 폐막 공연에 출연할 수 없게 되어 소프라노 박혜상이 ‘대타의 대타’로 출연하게 되었지요. 또 킹스 싱어즈 단원 가운데 1명이 입국 직후 실시한 PCR 검사에서 양성 판정을 받아서 공연은 6명 중 5명만으로 하게 되었고 프로그램도 일부 변경됐습니다. 쾰른 체임버 오케스트라는 해외 입국 단체에 대한 격리 면제가 허용되지 않아서 K’ARTS 신포니에타로 교체되었고, ’해리 파치: 플렉트럼과 타악기 춤’ 공연 또한 코로나-19의 여파로 취소되었습니다.

취소된 공연의 대체 공연으로 소프라노 율리야 레즈네바 리사이틀이 결정되면서 프로그램 확정부터 티켓 오픈까지 여러 사람이 바쁘게 움직였던 일, 그리고 ‘대타의 대타’ 프로그램을 위한 오케스트라 악보를 급히 구하느라 여러 사람이 고생했던 일도 기억에 남습니다.

“로시니 아리아 악보가 F장조 말고 E장조가 필요하대요!”
“이미 리허설 직전인데… 이렇게 되면 오페라 전곡 악보에서 해당 부분을 일일이 찾아야 하는데요…”

이미 저작권이 만료된 악보를 인터넷으로 구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2시간 30분짜리 오페라 전곡 악보에서 짧은 아리아 하나만 추리는 일이었습니다. 급한 마음에 아는 오페라 지휘자들에게 연락을 시도했다가 의외로 가장 먼저 연락이 닿은 사람은 아마추어 첼로 연주자이자 오페라 애호가였습니다. 오케스트라 총보에서 해당 부분이 몇 페이지에 나오는지를 금방 찾아내더라고요. 그때 제가 농담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바그너 오페라였으면 직접 찾을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오케스트라 악보를 악기별로 분리한 이른바 ’파트보’에서 해당 부분을 일일이 추리는 일은 또 다른 일이었지만, 총보를 추리고 나니까 파트보 추리는 일은 제가 직접 할 수 있겠더라고요. 악기별로 하나씩 인쇄해서 연주자들에게 전해준 것은 리허설을 시작하기 직전이었습니다. 지휘자 마르쿠스 슈텐츠가 그랬다네요. “기적이에요!”

2022년 1월 14일 금요일

구스타보 두다멜의 말러 교향곡 8번

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입니다.


말러 교향곡 8번은 초연 당시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을 합쳐 1,000명이 조금 넘는 인원이 출연했다고 해서 ’천인교향곡’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지요. 오늘날에는 그렇게까지 하는 일은 잘 없고, 이를테면 지난 2011년 서울시향이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했을 때는 474명이 출연했습니다. 거대편성만큼이나 기술적으로도 까다롭기로 악명 높은 이 작품은 공연장에서 감상할 기회가 흔치 않습니다. 리카르도 샤이가 지휘하는 이 곡을 들으려고 스위스 루체른까지 갔던 얘기를 제가 2016년에 칼럼으로 썼던 생각도 나네요.

지난해 발매된 음반 가운데 구스타보 두다멜이 지휘한 LA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말러 교향곡 8번이 있습니다. 기존 명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훌륭한 연주더군요. 도입부의 파이프 오르간 소리는 하늘에서 무지개 빛이 쏟아지는 듯했고, “Accende lumen sensibus”(우리 감각에 광명을 비추시고)와 “Gloria Patri Domino”(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에서 쏟아지는 음들은 화끈했고, 마지막에 나오는 ’신비의 합창’에서는 거대한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이 음반은 또한 다이내믹 레인지가 생각 이상으로 넓어서 작품의 거대한 규모가 생생하게 느껴졌고, 녹음에 돌비 애트모스 기술이 사용되어 공간감이 탁월했으며, 마침 제가 이용하는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돌비 애트모스 음원을 도입한 시기와 맞물려서 이 연주가 말러 교향곡 8번 음반의 새로운 이정표라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실연으로 듣기 어려운 작품을 이제 이런 음질로 감상할 수 있다니, 기술 발전이 참 놀라워요.

두다멜의 작품 해석과 관련해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작품의 2부에서 테너(마리아를 숭배하는 박사)가 성모 마리아를 절절하게 찬양하고 나면, 하늘에서 영광의 성모(제3소프라노)가 말없이 천천히 내려옵니다. 하프 소리와 더불어 느리고 달콤한 바이올린 선율이 성모와 함께합니다. 이 선율을 특히 달콤하게 연주한 녹음으로 이를테면 리카르도 샤이 지휘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 음반이 있지요. 두다멜은 여기서 템포를 매우 크게 떨어트리며 샤이를 능가하는 달콤한 선율을 빚어냅니다. 달콤함이 지나쳐서 남미 남자의 느끼함이 이런 것인가 싶기도 하던데요!

그리고 성모 마리아 앞에 그레트헨(제2소프라노)과 참회하는 여인들이 나타나 파우스트가 지은 죄를 사면해 달라고 간청하면, 마치 그들의 간절한 기도가 빛으로 둘러싸여 하늘로 올라가는 듯한 음형이 나타납니다. 이때 첼레스타와 하프 등이 마치 ’천상을 향하는 모르스 신호’처럼 들리지요. 이 소리가 다른 악기 소리에 묻히는 음반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이것을 크게 부풀려서 과장된 효과를 담아낸 음반들도 있는데요. 두다멜-LA필 음반에서는 무대 구석에 위치한 첼레스타와 하프 소리가 매우 사실적으로 들려오는 점이 신기합니다.

이 음반에서 한 가지 단점으로 느껴진 것은 테너 사이먼 오닐입니다. 바그너 오페라에서 강력한 목소리를 들려준 바 있는 이 가수의 목소리는 너무 세속적(?)이어서 ’마리아를 숭배하는 박사’라는 캐릭터와는 안 맞는 데가 있었고, 목소리가 너무 커서 시끄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Accende lumen sensibus”(우리 감각에 광명을 비추시고) 직전의 암울한 분위기에서 마치 선지자처럼 “Lumen!”(빛이여!) 하는 대목에서는 불필요한 포르타멘토를 사용해서 간절함이 빛바래더군요.

이 작품은 제1소프라노에게 강력한 목소리와 함께 이른바 ‘하이 C’ 고음을 매우 여리게(!) 불러야 하는 양립하기 어려운 능력을 요구합니다. 음반의 1부 코다에서 전율이 느껴지는 목소리를 들려줬던 강성 소프라노 타마라 윌슨은 2부 피날레에서는 매우 여린 고음을 꽤 훌륭하게 소화했습니다. 이때 가사는 (영원한 여성성이) “우리를 끌어올린다”(zieht uns hinan)인데, 타마라 윌슨의 선율을 이어받은 제2소프라노 레아 크로세토가 그걸 충분히 살리지 못한 것은 살짝 아쉬웠습니다. 메조소프라노 후지무라 미호코, 베이스바리톤 라이언 맥키니, 베이스 모리스 로빈슨 등은 훌륭했습니다.

2021년을 떠나보내며 한 해를 돌이켜 보다가 이 음반이 생각나서 감상을 써 보았습니다. 구원받은 파우스트처럼 복된 일이 올 한 해 여러분에게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2021년 12월 19일 일요일

작곡가 윤한결의 '그랑히팝'

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입니다.


“힙합은 리듬을 위주로 한 언어 음악 예술이며 래퍼라는 연주자/연기자는 복잡한 리듬을 위주로 스토리텔링 및 대개 비판적인 자기주장을 하기도 한다. […] 그러나 이러한 특징은 과거의 오스티나토와 레치타티보와 유사하며, 큰 차이점이라면 문장들과 단어들을 라임 중심으로 빠르게 욱여넣는다는 점이 있다. 또한 정형화되지 않고, 매우 외향적이며 외설적이기까지 한 특징은 힙합을 – 음악적 요소가 단순함에도 불구하고 – 놀랍도록 강렬하며 다양한 음악적인 경험을 하게 해준다.”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윤한결 선생이 ‘그랑히팝’(Grande Hipab)이라는 작품에 관해 이렇게 썼습니다. 현대음악 작곡가가 대중음악 장르인 힙합에 관해 얘기하다니 신기합니다. “힙합 장르의 특징을 패러디와 재해석을 통해 현대적으로 표현”했다는 작품 ’그랑히팝’은 지난 10월 8일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요하네스 칼리츠케가 지휘한 TIMF앙상블이 세계초연했습니다. 세계 최고의 현대음악 전문 연주단체인 앙상블 모데른의 단원들이 객원 연주자로 참여했지요.

통영국제음악당에서는 10월 7일과 8일에 걸쳐 신작 다섯 곡이 세계초연되었고, 두 곡이 아시아초연되었습니다. 작곡 부문으로 열린 2021 TIMF아카데미를 위한 작품 공모를 거쳐 위촉작곡가로 선정된 작곡가들의 작품이었고, 그 가운데 첫날 공연을 제가 지난 글에서 소개했었지요. 이틀간 열린 ’TIMF아카데미 콘서트’에서 연주된 여러 작품 가운데 가장 제 마음에 들었던 곡이 바로 ’그랑히팝’이었습니다.

’그랑히팝’은 그러나 힙합 음악의 장르적 느낌이 나는 곡은 아니었습니다. 힙합과 닮은 점을 굳이 찾으려면 찾을 수는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현대음악의 정체성 안에 대중음악적 요소가 숨어 있는 정도였지요. 음악이 “띠용~” 하는 소리로 시작하는 점, 또 어찌 들으면 사람을 놀리는 듯하고 ’톰과 제리’의 한 장면이 떠오를 것 같은 음형이 변형·반복되는 점이 재미나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다양한 악기와 연주법을 조합해 만들어 내는 음향적 스펙터클과 통통 튀는 리듬 등이 흥미진진했습니다. 작곡가인 동시에 지휘자이기 때문일까요? 윤한결 선생은 현대음악 맥락에서 ’멋진 소리’로 이루어진 자신만의 음향적 ’팔레트’를 매우 다채롭게 가진 작곡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날 세계초연된 곡 중 이승환의 ‘<제사> - 고 윤이상 선생의 묘에서’(Rituel… au tombeau d’Isang Yun)는 일단 제목부터 솔깃한 작품이지요. 이승환 선생은 가톨릭교회의 위령 기도가 한국에서 토착화한 연도(煉禱)를 그간 연구해 왔다며 ’제사’라는 작품을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그즈음, 고 윤이상 선생께서 통영의 바닷가 언덕에 안장되신다는 소식을 접했고, 작품 <제사>가 음악 바깥으로는 떠난 이를 추모하는 성격으로서 선생의 삶을 기리고, 안으로는 우리 상장례음악의 영향과 선생의 작곡기법 등을 응용한 오마주 작품이 될 것임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승환의 ’제사’는 긴 호흡으로 제의적 느낌을 주는 음향적 풍경 사이사이에 드라마틱한 ’장면’이 에피소드처럼 삽입되는 듯한 짜임새였고, 그에 따른 ’드라마투르기’가 꽤 흥미진진했습니다. 마치 고인의 삶을 영화적 상상력으로 돌아보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수빈의 ’옥텟’은 아쉽게도 제가 공연 현장에서 감상하지 못한 작품인데, 그 대신 리허설과 공연 실황 영상을 감상한 소감을 짧게 써보겠습니다.

이 작품은 중세 다성음악에서 정선율(Cantus firmus)을 활용하는 방식을 흉내 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 곡에 나온다는 그레고리안 성가를 귀로 들어서 알아챌 수 없었고, 딱히 이 곡에서 중세음악 느낌이 나지도 않았습니다. 중세 또는 르네상스 시대 작품에 나오는 정선율이 주로 ‘테노르’(tenor) 성부에 숨어 있어서 귀로 듣고 알아채기 쉽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인 것일까요.

작곡가는 이 곡이 “만약 현시대에 중세시대 작곡가가 환생한다면 우선 첫 작품은 이렇게 시작하지 않을까 하는 작곡자의 상상에서 시작한 작품”이라 했습니다. 이 작품의 길게 이어지는 음들에서 저는 차라리 한국 전통음악 느낌을 받기도 했는데, 더 솔직히 말하자면 이 곡은 들어도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대음악은 어려워요.

2021년 11월 19일 금요일

양영광, 양승원, 박선영, 라재혁의 전통과 현대

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입니다.


연주가 어정쩡하게 멈춰버린 순간, 한 연주자가 동전을 던집니다. 무대 위에 떨어진 동전이 적막을 깨트립니다. 객석에 있던 한 남자가 무대로 올라와 동전을 확인한 다음 주머니에 넣습니다. 무대 위 조명이 그 남자를 비추고, 남자는 객석을 등진 채로 종이 가방에서 과자를 꺼내 봉지를 ‘부욱’ 뜯습니다. 과자를 ‘와구와구’ 먹습니다. 캔 음료를 ‘딸깍’ 따서 ‘후후룩’ 마시고 다시 과자를 먹습니다. 남자는 객석을 향해 얼굴을 돌리고는, 씩 웃으면서 과자를 ‘와사삭’ 씹습니다. 조명이 꺼집니다.

라재혁 작곡가의 ‘귀머거리의’(taub) 아시아초연이었습니다. 작품 제목에는 취소선이 그어져야 하는데, 그래서 누가 귀머거리라는 것인지 아니라는 것인지 알쏭달쏭합니다. 깜깜한 무대 위에 얼굴만 흐릿하게 비추는 조명이 연주자들을 유령처럼 보이게끔 했던 점이 특이했고, 더블베이스 상행 음계로 시작했던 음악 또한 심령현상이라도 일어날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의 ’과자 퍼포먼스’가 다른 모든 것을 압도했습니다.

작곡가가 쓴 프로그램 노트는 단 두 문장입니다. “곡이 끝났을 때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나요? 우리는 자극을 받고 그 자극은 다른 자극들로 덮어집니다.” 그런데 우리가 현대음악을 듣고 나면 곧잘 이렇지 않던까요? 어쩌면 라재혁 선생은 새로운 작품이 공연되고 나서 너무 쉽게 잊혀 버리는 것이 속상해서 음악으로 자학 개그를 했던 것일까요?

통영국제음악당에서는 10월 7일과 8일에 걸쳐 신작 다섯 곡이 세계초연, 두 곡이 아시아초연되었습니다. 작곡 부문으로 열린 2021 TIMF아카데미를 위한 작품 공모를 거쳐 위촉작곡가로 선정된 작곡가들의 작품이었지요. 그 일곱 작품이 너무 쉽게 잊힐까 아쉬운 마음에 제 소박한 감상이나마 글로 써봤습니다. 쓰다 보니 길어져서 일단 첫째 날 공연 얘기부터 할게요.

첫째 날인 10월 7일에는 국악기와 서양 악기를 혼용한 작품 위주로 공연되었습니다. 전통과 현대에 관한 작곡가들의 다양한 관점이 흥미롭더군요.

양영광의 소리(Sŏnus)는 객석에서 봤을 때 무대 왼쪽에 장구, 생황, 양금, 대금이 있고 오른쪽에 바이올린, 비올라, 플루트, 호른, 더블베이스가 있고, 무대 뒤에 타악기가 있는 배치가 특이했습니다. 또 한국 전통 악기가 서양 현대음악 어법을 사용했던 것, 귀로 듣기로는 동서양이 딱히 구분되지 않으며 총체적인 덩어리(클러스터)를 형성한 것 등이 기억에 남습니다. 작곡가는 “이 모든 소리에 대한 현상이 나만의 공간 안에서 나의 눈과 귀에 의해서만 존재하게 되는” 환각적 현상으로서 동서양의 융화를 시도했다고 하네요.

양승원의 ‘낙차’(落差)는 여창가객이 현대음악 앙상블과 협연하는 작품으로 여창가곡 우조 이수대엽 ’버들은’을 차용했다고 합니다. 여창가객 박민희 선생이 무대가 아닌 객석 쪽에서 노래하다가, 중간에 무대 위로 올라갔다가, 나중에는 다시 무대 구석으로 물러나 소외되는 과정이 마치 한국 전통문화가 서양 문화에 밀려나는 과정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듯했으며, 그와 맞아떨어지는 음악의 짜임새가 인상 깊었습니다.

작곡가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계절이 변해 봄이 와도 꽃을 피우지 못하고 지속적으로 피륙을 짜내는 화자의 한탄 섞인 독백은 마치 현대에 시대적 격차를 이겨내지 못하고 […] 시간적인 대립의 격차 속에 여창가객은 정체성을 잃어가고, 주기적으로 변하는 맥락 안에 지속적으로 들려지는 원곡의 조각들은 공명되어 잔향으로 남아 끊임없이 메아리친다.”

박선영의 2018년 작품 ’절반의 고요’는 일종의 대금 협주곡이라 할 수 있는 작품으로 이번이 아시아초연이었습니다. 유홍 선생이 협연한 대금이 전통 연주법과 현대음악 어법을 아우르는 모습을 보여준 반면 나머지 서양 악기는 그냥 현대음악 어법을 사용했는데, 다만 곡 처음에 타악기를 사용한 방식에서 수제천이나 영산회상이 떠올랐습니다. 시조시인 유재영의 현대시조 ’절반의 고요’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라네요.

구본우의 ‘보카 키우사와 멜리스마의 노래’(Canti di bocca chiusa e melisma)는 신작이 아닌 기성 작품이었고, 여창가객이 협연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양승원의 신작과 비슷하면서도 느낌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이 작품에서 구본우 선생은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했습니다. “동서양 음악은 원래 이질적이야. 다른 것은 다른 대로 둬도 괜찮아. 보라고! 그래도 상생은 가능해!”

2021년 10월 17일 일요일

영화 '바흐 이전의 침묵'

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입니다.


’바흐 이전의 침묵’은 페레 포르타베야 감독의 2007년 작품입니다. 2009년에 서울에서 상영되면서 음악 애호가에게 제법 알려진 영화이지요. 저는 그동안 제목만 알고 있다가 이제서야 이걸 보게 되었네요. 영화가 기대했던 것과 달라서 처음에는 헛웃음을 지었다가, 영화 내용이 계속 머릿속에 남아서 글로 감상을 남겨 봅니다.

이 영화는 상업영화가 아니라 예술영화입니다. 그냥 편한 마음으로 봐서는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지루해할 수 있는 작품이고, 영화를 보면서 졸았다는 사람도 제법 있었던 모양이더군요. 또 청소년이 보면 곤란할 듯한 장면이 나오기도 하니 ’음악 교육 영화’로 착각해서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셔야 할 듯합니다.

이 작품에는 트럭 운전수, 악기 판매업자, 첼리스트, 라이프치히 토마스 교회의 영화 제작 당시 칸토르(지휘자), 그리고 ’바흐 본인’과 가족, 멘델스존 등이 나옵니다. 이들이 바흐 음악을 대하는 에피소드를 영화는 진지하게, 그러나 불친절하게 툭툭 던지듯 보여줍니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바흐 음악의 대위법에 비유했고, 또 어떤 사람은 발터 벤야민에 견주기도 하더군요.

그런데 어딘가 이상한 것들이 계속 나와서 영화의 진지한 분위기와 자꾸만 충돌합니다. 그래서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헷갈려요. 독일식 농담이 이런 걸까요? 감독은 에스파냐 사람인데, 설마 그 흥 많은 에스파냐 사람들의 농담이 이렇진 않겠죠?

이런 얘기를 하려면 농담을 풀어서 설명하는 촌스러운 짓을 해야 하고, 또 결과적으로 미리니름(스포일링)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심지어 뉴욕타임스에서도 영화를 진지하게만 소개하고 있던데요. ’글자 풍경’을 쓰신 베스트셀러 작가 유지원 선생은 한국어판 포스터의 광고 문구야말로 농담의 절정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몰랐던 위대한 음악가의 비밀” “음악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발견” “올 가을, 격조 넘치는 클래식 선율이 스크린에 펼쳐진다!”

유지원 선생이 쓴 글을 보고서야 알게된 것들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영화에서 바흐가 연주한 파이프오르간은 21세기에 신축된(또는 개축된) 것입니다. 또 바흐는 독일 사람이 아님이 분명해 보이는 독일어를 구사합니다. (영화에서 바흐로 분한 크리스티안 브렘베크는 독일의 건반악기 연주자이자 지휘자입니다.) 그리고 멘델스존 시대 시장에서 왁자지껄한 장면에서는 에스파냐 사람들이 어색한 독일어로 연기합니다.

독일어 실력이 엉터리인 저는 영화가 농담임을 알려주는 이런 깨알같은 단서를 다 놓쳤습니다. 그랬던 저도 뒤늦게 눈치를 챘던 순간이 있었어요. 하인이 사온 고기 포장지에서 멘델스존이 바흐 ’마태수난곡’을 발견하는 장면입니다. 아직도 믿는 사람이 제법 있는 유명한 거짓말이지요. (멘델스존은 사실 할머니한테서 마태수난곡 필사 악보를 받았습니다.)

심지어 이때 어떤 하녀가 빨래를 널면서 멘델스존의 ‘노래의 날개 위에’ 가사를 이렇게 바꿔 노래합니다. “…이 발견을 둘러싸고 항간에선 전설이 만들어졌지 […] 푸줏간 주인은 마태수난곡 악보를 고기를 포장하는 데 쓰고 있었다네.”

유지원 선생은 이 노래를 ’얼레리 꼴레리, 그런 걸 진지하게 믿는 저 역사적 신화화의 우스꽝스러움을 보라지’로 설명하며 “농담임을 너무 티를 낸 바람에 좀 세련되지 못했다”라고도 했습니다. 그런데 저만 해도 이쯤 돼서야 웃기 시작했으니, 너무 티 나는 농담이라는 말에는 동의하기 어렵네요.

영화에는 ’골드베르크 변주곡’에 관한 낭설도 마치 진짜인 것처럼 나옵니다. 작센의 러시아 대사가 불면증을 치유하기 위해 바흐에게 작품을 의뢰했다는 설이지요. 바흐는 편지와 금화를 받고 감사의 말을 (외국인 말씨로!) 전하고, 21세기 엘베 강의 유람선에서는 그 일화를 전하는 안내방송이 들립니다. 그러나 농담에 속으면 안 돼요!

영화에는 마음이 불편해지는 ’농담’도 나옵니다. 첼리스트인 여자에게 아버지로 보이는 사람이 수상한 눈빛을 보내고 지저분한 독백을 한다거나, 카메라의 ’시선’이 어딘가 음흉하다거나 하지요. 바흐를 사랑하는 그 남자와 대화하는 서점 주인은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책을 소개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음악이 항상 자넬 구원한다고 말하지? […] 사령관이 시몽 락스에게 병원에 수용된 여자들을 위해 독일과 폴란드의 캐롤을 연주하라고 명령하지. 폴란드 여자들은 울기 시작해. 그 흐느낌은 곧 음악보다 더 커지고[…] 음악이 고통을 준 거야.”

2021년 9월 15일 수요일

조르디 사발의 베토벤 교향곡 9번

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입니다.


“이 음원을 듣고 있으면, 베토벤의 초기작으로 그다지 인기가 없는 교향곡 1번과 2번이 사실은 얼마나 혁신적인 작품이었는지를 깨닫고 깜짝 놀라게 됩니다. 교향곡 3번, 4번, 5번 연주의 탁월함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베토벤 교향곡 다섯 작품에 대한 내 마음속 최고의 연주는 이미 조르디 사발과 르 콩세르 데 나시옹의 녹음으로 바뀌었습니다. 교향곡 6번부터 9번까지 녹음한 음원이 하루빨리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제가 지난해 이맘때 칼럼에서 이렇게 썼지요. 1년이 지나 조르디 사발과 르 콩세르 데 나시옹은 베토벤 교향곡 9번을 연주했습니다. 독일 본에서 지난 8월 20일부터 9월 10일까지 이어졌던 ’베토벤 페스티벌 본’의 개막 이튿날인 8월 21일에 있었던 공연이었습니다. 이날 공연은 유튜브로 생중계되었는데, 한국 시간으로는 새벽에 있었던 일이었지만 공연이 끝난 뒤에도 실황 영상을 감상할 수 있더군요.

연주 전에 누군지 모르겠는 어떤 남자가 축하 연설을 했습니다. 조금 엉뚱하게도 말러 교향곡 2번 얘기를 하더군요. 독일어 실력이 일천해서 잘 알아듣지 못했지만, 코로나-19로 취소되었던 ’2020 베토벤 페스티벌 본’의 주제가 말러 교향곡 2번에 나오는 유명한 노랫말 “부활하라, 그래 부활하라!”(Aufersteh’n, ja aufersteh’n!)였던 모양이더군요. 페스티벌을 다시 치를 수 있게 된 올해 상황과 어울리는 주제라 할 수 있겠죠. 객석 띄어앉기를 하지 않고 연주회장을 가득 채운 관객을 보니 얼마나 부럽던지요!

이날 연주도 ‘부활’ 모토와 어울렸습니다. 환희(Freude)로 광분하는 연주가 아니라 ‘힐링’(Heilung)에 무게가 실린 연주였지요. 연주를 듣고 난 저는 베토벤 교향곡 9의 유명한 노랫말 ’환희여, 아름다운 신의 불꽃이여’와 ’오 벗이여, 이런 소리 말고’를 패러디해서 페이스북에 이렇게 썼습니다. “Heilung, schöner Götterfunken, nicht diese Freude.”(위안이여, 아름다운 신의 불꽃이여, 환희 말고.)

조르디 사발의 베토벤 교향곡 음반을 듣고 썼던 칼럼에서, 저는 음반에 담긴 ’음향적 스펙터클’이 실제 공연에서도 가능한지 궁금하다고 썼습니다. 이번에 들어본 실황 연주는 음반만큼의 ’매운맛’은 아니었고 자잘한 실수도 제법 있었지만, 그래도 저는 실연에서 꽤 그럴싸한 ’매운맛’이 베토벤 시대 악기로 가능하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날 특히 1악장에서 오케스트라가 불을 뿜었지요. 다만, 2악장에서 어째 ’독기’가 많이 빠져 있다 싶더니, 3악장을 지나 4악장이 되면서 ’환희’보다는 ’치유’와 ’위안’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했습니다.

이번 연주에도 베토벤 시대 현악기에 쓰이던 현의 소재와 활 구조 등에서 오는 ’식물성 사운드’가 특징적으로 나타났습니다. 오케스트라 총주 때에도 현악기 소리가 관악기 등에 묻히지 않아서 평소에 잘 안 들리던 음형이 인지되는 참신함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솔로 가수들은 다들 바로크 음악 전문인 듯했고, 특히 바리톤 마누엘 발저의 맑고 가녀린(!) 목소리와 바로크 음악에 어울릴 법한 장식음 사용에 놀랐습니다.

시대악기 연주가 흔히 가벼운 편성으로 날렵한 템포를 사용하는 것과 달리, 이날 연주는 특히 4악장 템포가 생각보다 빠르지 않았던 점도 특이했습니다. 특히 ‘환희여, 아름다운 신의 불꽃이여’와 ’백만인이여 내게 안겨라’ 두 가지 노랫말이 동시에 진행되는 이른바 ’이중푸가’의 템포가 느려서 낯설게 느껴졌지요. 그런데 악보를 보니 메트로놈 지시가 84 BPM이었고, 이날 연주는 대략 86 BPM으로 오히려 악보 지시보다 살짝 빨랐더군요!

베토벤 교향곡 9번의 마지막 가사는 “Freude, schöner Götterfunken! Götterfunken!”(환희여, 아름다운 신의 불꽃이여! 신의 불꽃이여!)입니다. 이 대목에는 흔히 프레이즈 곳곳에 늘임표(페르마타)를 사용해 ‘환희’ 느낌을 강조하지만, 이날 연주는 음을 전혀 늘이지 않고 담백하게 악보 그대로였던 점이 신기했습니다. 악보에 늘임표가 없는 게 맞나 싶어서 확인해 보니, 정말로 없더라고요!

이쯤에서 새삼 궁금해지는 점이 있습니다. 앞으로 나올 조르디 사발 베토벤 교향곡 9번 음반에 담긴 연주는 이날 공연 실황 연주와 어떻게 다를까요? 기대됩니다!

2021년 8월 13일 금요일

피에타리 인키넨의 '바이로이트 사운드'

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글입니다.


피에타리 인키넨은 도이치 방송교향악단 음악감독입니다. 2009년에 서울시향을 객원지휘한 일이 있고, 내년 1월부터 KBS교향악단 음악감독을 겸직할 예정입니다. 지난해에는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바그너 4부작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 전곡을 지휘할 예정이었다가 코로나-19 때문에 페스티벌이 전체 취소되어버려서, 그 대신 지난 7월 개막한 2021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반지’ 4부작 중 ’발퀴레’만을 일단 먼저 공연하게 되었습니다.

실황 중계방송 녹음을 들어보니 인키넨의 ‘발퀴레’는 꽤 훌륭했습니다. 멀티채널 녹음이라 현장감이 특히 좋더군요. 그런데 이날 연주는 호불호가 좀 갈렸던 모양입니다. 한두 명이지만, 관객에게 인사하는 인키넨에게 야유를 퍼붓는 사람이 있었다던데요. 제 지인 중 한 분은 인키넨의 ’지크프리트’ 3막 발췌 음반과 견주며, 아직 인키넨이 바이로이트 페스티벌하우스에 적응하지 못한 듯하다고도 하더군요.

바이로이트에서 처음 지휘하는 사람은 독특한 음향 때문에 헤매기 쉽다고들 하지요. 실제로 공연 중 삐걱거리던 순간이 제법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에는 단지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호불호의 진짜 원인은 오케스트라 편성 때문이었을 거예요.

‘발퀴레’ 실황 음원과 ‘지크프리트’ 음반은 연주 단체와 녹음 장소와 녹음 장비가 다르고, 각각 5채널 오디오와 2채널 오디오로 녹음의 정보량도 달라서 나란히 비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냥 귀로 들리는 소리만으로 판단하자면 ’발퀴레’가 ’지크프리트’보다 오케스트라 규모가 좀 더 작은 듯하더군요. 사실은 ’지크프리트’도 작은 편성인 듯했고, 그래서인지 인키넨 음반을 게오르그 숄티가 지휘한 1960년대 명반과 견주며 소리의 에너지 밀도가 낮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20세기에는 악보에 지시한 것보다 실제 오케스트라 편성을 부풀리는 관습이 있었지요. 게오르그 숄티의 바그너 녹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에는 악보 지시와 작곡 당시의 관습 그대로 연주하는 것이 유행이고, 인키넨의 바그너 해석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작은 편성으로 연주하면 여러 장점이 있고, 이를테면 개별 성부의 매력을 더 잘 살릴 수 있지요. 인키넨은 때로 목관악기 소리가 두드러지는 ’식물성 사운드’를 바그너 음악에서 살려내기도 하더군요. 물론 금관악기가 울부짖을 때는 필요한 만큼 ’근육질’로 변하기도 했습니다.

바이로이트 극장은 바그너 음악에 최적화되어 ’바이로이트 사운드’라고 칭송하는 말이 있는 멋진 곳입니다. 그런데 제가 그곳에 여러 차례 가본 경험으로 말하자면, 다른 오페라 극장과 견주어 음량이 좀 작은 것이 바이로이트 극장의 단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뒷자리에 앉아도 들릴 소리는 다 들리지만, 오케스트라 피트에 ’천장’이 있어서 소리가 무대 벽에 한 번 반사된 다음에야 객석으로 전달되는 구조 때문에 직접음이 거의 들리지 않고 소리가 좀 멀게 느껴지는 점이 장점이자 단점인 듯해요.

문제는 인키넨의 바그너가 실제 바이로이트 극장에서 어떻게 들렸을까 하는 겁니다. 오케스트라 편성을 부풀리는 것은 음량을 키우기 위해서인데, 소리에 ‘기름기’를 빼기 위해 편성을 줄였다면 음량 또한 줄었겠지요. 인키넨에게 야유를 퍼부은 몇몇 사람은 사실 ’음량’에 실망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인키넨은 내년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때 타협을 하게 될까요? 인키넨의 ’바이로이트 사운드는’ 어떤 변화를 맞게 될지 궁금합니다.

피에타리 인키넨이 음악감독으로 있는 도이치 방송교향악단은 옛 이름이 ‘자르브뤼켄 방송교향악단’이었던 단체로 정명훈 지휘자가 음악감독으로 있었던 바로 그곳입니다. 그 시절 정명훈 지휘로 윤이상 교향곡 3번을 세계초연한 악단이기도 하지요. 마침 내한공연이 연말에 예정되어 있어서 그때쯤에는 제발 전염병이 잠잠해지기를 희망해 봅니다. 통영 공연은 12월 19일이고, 프로그램은 브람스 교향곡 1번, 손열음이 협연하는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3번, 그리고 바그너 오페라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중 서곡입니다. (쉿! 앙코르로 바그너 곡을 더 연주할지도 몰라요!)

2021년 7월 9일 금요일

동양의 사라방드, 서양의 굿거리장단

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글입니다.


윤이상 관현악곡 ‘낙동강의 시(詩)’는 1956년에 완성되었지만 2017년에 자필 악보가 발견되어 2018 통영국제음악제에서 세계초연된 작품입니다. 이 작품의 2악장 ’낙동강의 저녁’에는 뱃노래처럼 들리기도 하고 또 어찌 들으면 상엿소리처럼 들리는 선율이 나옵니다. 또 3악장 ’舞曲’(춤곡)에는 굿거리장단이 느껴지는 민요풍 선율이 나옵니다.

‘낙동강의 시’ 세계초연을 앞둔 리허설 때 있었던 일입니다. 몇몇 프로 연주자를 제외하면 청소년이 다수인 하노버 체임버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특히 2악장의 구슬픈 리듬을 잘 못 살리고 마치 교과서 읽듯이 딱딱하게 연주하는 걸 듣고 있자니 괴롭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연주자들에게 한국의 ’장단’에 관해 설명하고 민요 한 소절을 불러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리듬의 특징을 좀 과장되게 설명해 봤습니다. 그랬더니 ‘뱃노래’ 리듬이 주제선율의 논리적 일관성을 파괴해버리는 괴상한 연주가 되어버리더군요. 저는 결국 제가 했던 말을 모두 취소했습니다. 제가 지휘자가 아니라서 설명을 잘 못 하겠다고 사과하면서요. 독일인 지휘자를 두고 제가 더 나서는 일이 주제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세계 정상급 바이올리니스트·지휘자·교육자인 핀커스 주커만이 최근 온라인 바이올린 마스터클래스에서 인종주의적 편견을 드러낸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습니다. 그것을 온라인 생중계로 본 사람이 자세한 맥락을 재구성한 글을 봤더니 과연 욕먹을 만한 망언을 했더군요.

한 자매의 바이올린 듀오 연주를 들은 주커만은, 그들의 연주가 기술적으로 완벽하지만 너무 딱딱하니 즐기듯 연주해라, 양념을 좀 쳐라, 바이올린은 현악기가 아니라 노래하는 악기다, 등등 처음에는 좋은 얘기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문제가 된 발언이 나왔습니다.

“노래하듯 연주하는 법이 궁금할 수 있겠는데, 내가 알기로 한국인은 노래를 안 해요.”

“한국인 아닌데요.”

“그럼 어느 나라? (미국인인데 부모님 중 한 분이 일본인이라고 대답) 일본인도 노래 안 하기는 마찬가지예요. (아시아인들이 노래하는 걸 흉내) 이건 노래가 아니에요. 바이올린은 기계가 아니에요.” (자매 얼굴 굳음)

질문과 대답 시간에 그 얘기가 다시 나왔을 때, 주커만은 또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한국인은 노래하지 않아요. 디엔에이(DNA)에 없어요.”

이쯤 되면 누가 들어도 망언입니다. 편견을 그대로 뒤집으면 저는 ‘낙동강의 시’를 연주하는 독일인 연주자에게 이렇게 말했어야 할지 모릅니다. ’독일인은 노래하지 않아요. 디엔에이에 없어요.’ 주커만은 이 일로 공개적인 사과문을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주커만의 지적은 표현이 잘못되었을 뿐 사실 일리는 있는 얘기라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에 서양음악을 배우는 아시아인은 춤곡 리듬이 나올 때 마치 교과서 읽듯이 딱딱하게 연주하는 일이 더러 있는 것 같아요. 서양 춤곡 리듬을 몸으로 익히지 못해서 그 요체를 음악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죠. 서양인이 한국적인 리듬을 연주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쉬운 예로, 서양 사람들은 ‘짝짝짝 짝짝, 대~한민국!’ 리듬을 어려워하던데요.

이 문제는 서양 춤을 따로 익히고 그 리듬을 분석한 다음 몸에 익히는 과정을 거치고 나면 해결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서양 언어의 리듬을 몸에 익히는 과정도 필요하겠고요. 이를테면 빈 왈츠의 미묘하게 독특한 리듬은 빈 출신이 아니면 표현하기 어렵다고들 하지만, 다름 아닌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원 가운데 동양인을 포함한 외국인들이 요즘에는 꽤 있거든요. 그 사람들도 빈 왈츠를 얼마든지 잘 연주합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피자에 굴과 멍게, 심지어 김치를 넣는다면 이탈리아 사람들이 그건 피자가 아니라며 괴로워할 겁니다. 반대로 김치에 치즈와 아보카도, 심지어 요거트를 넣는다면(실제 사례) 한국인들이 그건 김치가 아니라며 괴로워할 겁니다. 그런데 그게 꼭 잘못된 일일까요? 그게 피자가 아니라고, 김치가 아니라고 말하는 건 편견이 아닐까요?

2021년 6월 11일 금요일

다차원적 폴리포니와 음악의 공간감, 그리고 돌비 애트모스 오디오

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입니다.


선율이 흐르면서 음색이 계속 바뀌게끔 하는 작곡 기법을 안톤 베베른의 용어로 ’음색선율(Klangfarbenmelodie)’이라고 합니다. 오늘날 전자음악 작곡가들은 컴퓨터 조작으로 간단하게 음색을 바꿀 수 있지요. 그러나 20세기 초에 활동했던 베베른은 ’음색선율’을 위해 일일이 악기와 연주법을 바꾸는 식으로 작곡했습니다. 베베른은 음색을 선율·리듬·화성과 동등한 위치로 끌어올려 음악을 이루는 핵심 요소로 활용한 최초의 작곡가라 할 수 있습니다.

베베른이 1911년부터 1913년에 걸쳐 작곡한 ‘관현악을 위한 5개의 소품 Op.10’은 하프와 약음기 낀 트롬본, 하프와 첼레스타, 하프와 플루트가 차례로 한 음씩 연주하며 음악을 시작하고, 이때 플루트는 혀나 목젖을 떨어 ’아르르’ 하는 소리를 내는 이른바 ‘플러터 텅잉(flutter-tonguing)’ 주법을 씁니다. 이렇게 음이 바뀔 때마다 악기가 달라지지만 선율은 이어지는 식으로 음악이 흐르지요.

이 작품은 이른바 ’12음 기법’을 사용한 무조음악(無調音樂)입니다. 이런 음악은 그냥 편하게 들어서는 음악이 아닌 소음으로 들리기 쉽지요. 또 베베른은 음 하나하나에 음악적 의미를 고농도로 압축하는 음악 어법을 사용했는데, 워낙 고농도로 응축되어 있어서 길이가 짧다는 것이 이 작품의 장점 아닌 장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곡을 처음 익힐 때 그냥 악보를 통째로 외워버렸습니다. 길이가 짧아서 외우는 데 오래 걸리지 않던데요.

그러나 제가 이 작품의 진정한 매력을 깨달은 것은 공연장에서 실연을 들었을 때였습니다. 음이 바뀔 때마다 악기가 달라지면, 그냥 음색만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소리가 나는 ’위치’가 계속 바뀌게 되지요. 집에서 오디오로 들을 때에는 경험하지 못한 3차원 공간 속 소리 알갱이의 ’운동 궤적’을 제가 생생하게 느꼈을 때, 그 음악은 제가 악보로 익힌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 되었습니다. 마치 요정이 빛을 뿌리면서 무대 위를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듯했습니다!

헝가리 작곡가 죄르지 리게티는 윤이상,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 등과 함께 20세기 후반을 대표하는 거장 작곡가로 손꼽히지요. 리게티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같은 대작의 악보를 보면 정교하고 장대한 짜임새에 압도당하게 됩니다. 그런데 리게티 작품세계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은 의외로 메조소프라노와 타악기 앙상블을 위한 14분짜리 작품 ‘피리, 북, 깽깽이로’(Síppal, dobbal, nádihegedüvel)를 최고 걸작으로 꼽더군요.

리게티 후기 양식을 설명하는 말로 ‘다차원적 폴리포니’라는 것이 있습니다. 짧은 글에 설명할 수 있는 개념은 아닌데, 다만 음악학자 이희경 선생의 표현을 짧게 빌리자면 “상이한 리듬층을 상상의 음향 공간 속에 다양하게 배치”하는 기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이올린 협주곡(1993)과 ’피리, 북, 깽깽이로’(2000) 모두 이런 양식으로 되어 있지요.

제가 실연으로 들어본 ’피리, 북, 깽깽이로’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상이한 리듬층’이 타악기 앙상블의 연주로 무대 위에서 실제로 구현되었을 때, ’상상의 음향 공간 속에 다양하게 배치’된 그 리듬층은 무대 위라는 3차원 공간이 초현실적인 음향 공간으로 확장된 마법의 시공간 속에서 저마다의 색깔로 반짝이는 듯했습니다. 그런 초월적인 경험을 하고 나니 어째서 이 작품이 바이올린 협주곡과 같은 대작보다 더 위대한지 알 것 같기도 했습니다.

가정용 2채널(스테레오) 오디오는 기본적으로 좌우로 펼쳐지는 1차원적 공간감을 재현할 수 있고, 좌우 스피커의 음상을 잘 맞추면 무대 앞뒤로도 펼쳐지는 2차원적 공간감을 제한적으로 재현할 수 있지요. 멀티채널 오디오로 구현되는 홈시어터는 2차원적 공간감을 좀 더 본격적으로 재현할 수 있고, 소리를 개별 단위로 객체화해서 위치 및 이동시키는 최신 기술 ‘돌비 애트모스’(Dolby Atmos)는 소리의 공간감을 더욱 정교하게 재현할 수 있게 해줍니다.

어쩌면 언젠가는 리게티 음악의 다차원적 공간감을 정말로 제대로 재생할 수 있는 대중화된 오디오 기술이 나올까요? 돌비 애트모스 오디오로 녹음된 음악을 듣고 깜짝 놀라서 베베른과 리게티를 불러 내 가며 호들갑을 떨어 봅니다.

2021년 5월 14일 금요일

오디오 재생음의 미학과 미신 사이

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입니다.


제가 인터넷으로만 알고 지내는 ‘온라인 이웃’ 가운데 음악감상실을 운영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원래 직업은 대학교수이고 음악감상실은 취미이자 부업으로 하시는 듯하더군요. 오디오에 관한 지식이 풍부하신 모양이고, 그 감상실에는 매우 훌륭한 오디오가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분이 최근에 어떤 분께 요청을 받고 오디오 구매에 관한 상담과 구매 대행까지 하기로 했다가 막판에 거래를 취소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고객’의 가족이 마침 음향학 전공자였다는데, 그분이 ’이웃님’을 사기꾼 취급하면서 왜 값비싼 오디오 케이블을 추천했느냐, 케이블에 따른 음질 차이를 이론적으로 설명하라, 등으로 따지더랍니다.

아마도 그 음향학 전공자가 이해한 ’음질’은 오디오 신호의 신호대잡음비나 디지털 오디오 데이터의 해상도 등 수치로 나타낼 수 있는 개념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음악 좋아하는 일반인이 흔히 생각하는 ’음질’은 소리에 대한, 더 정확히는 음색에 대한 심미적인 판단을 뜻하고, 따라서 수치로 나타낼 수 없는 주관적인 개념이지요. 전혀 다른 개념에 같은 이름이 붙어 있으니 오해와 불신의 원인이 됩니다.

저는 스트라디바리우스 비올라를 한 대 갖고 있습니다. 물론 ’짝퉁’이지요. 이 비올라와 진품 스트라디바리우스 비올라는 아마도 다른 소리를 낼 겁니다. 어떤 소리가 더 좋은지에 대한 판단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고, 어쩌면 두 가지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심미적 판단력을 기르려면 경험과 훈련이 필요하고, 결국 문제는 이웃님의 심미적 판단력을 신뢰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음질이 주관적인 개념이다 보니 오디오 마니아 사이에 실제로 미신이 횡행하기도 하고, 사기꾼을 만나 피해를 보기도 쉽습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오디오와 관련해 제가 직접 음질 차이를 경험했거나, 효과가 있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돈이 들지 않거나, 돈이 들더라도 음질 차이가 크게 난다고 알려진 팁 위주로 몇 가지 소개할까 합니다.

첫째, 대형 스피커가 아닌 ‘북셸프’(bookself) 스피커라 부르는 흔한 가정용 스피커에는 반드시 오디오용 스피커 스탠드를 사용하세요. 좋은 스탠드는 스피커의 진동을 잘 잡아낼 수 있는 스탠드이고, 그래서 물리적으로 안정된 구조로 되어 있으며 스파이크(spike)가 달려 있습니다. 문제는 ’고작 받침대’의 가격이 생각보다 비싸다는 것인데, 스피커 스탠드가 오디오의 액세서리가 아닌 중요한 구성요소라는 인식이 필요합니다.

둘째, 스피커를 벽과 너무 가까이 붙이지 말고, 스피커 주위에 소리의 전달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없도록 하고, 스피커와 스피커 사이를 충분히 띄워 주세요. 더 자세한 내용은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가장 좋은 것은 전문가가 공간과 가구 배치 등을 확인하고 스피커의 최적 위치를 판단하는 것이지만, 기본적인 원칙을 지키는 것 정도는 전문가가 아니라도 할 수 있지요.

셋째, 오디오에 연결된 전원의 접지(grounding) 상태를 확인하세요. 전기 관련 기초 지식이 필요한데, 이 글에서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겠습니다. 저는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를 결정할 때 멀티미터로 두 가지를 확인했습니다. ① 벽 전원의 접지단이 살아있는가 ② 230V 정도로 여유 있는 전압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는가.

넷째, 오디오와 다른 가전제품은 되도록 서로 다른 벽 전원을 사용하시고, 앰프의 전원 케이블은 가능하면 멀티플러그를 거치지 말고 벽 전원에 바로 꽃으세요.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마트에서 파는 멀티플러그 말고 전기용품 도매점에서 판매하는 것을 사용하세요. 광대역 전기신호를 감당할 수 있게끔 설계된 것이면 더욱 좋습니다. 오디오용 멀티플러그가 따로 판매되기도 하지만, 가격이 비싸서 적극적으로 추천하지는 못하겠네요.

이 글에서 소개하지 않은 것들은 돈이 들지 않거나 적게 드는 것부터 하나씩 직접 경험해 보고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소리에 관한 심미적 판단은 주관적이기도 하지만, 좋고 나쁘고는 상대적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상대적인 것은 기준이 필요하지요. ’좋은 소리’에 관한 탁월한 판단 기준이 가까이에 있습니다. 바로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좋은 연주자가 들려주는 소리입니다.

2021년 4월 16일 금요일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 인어공주 사건

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입니다.


ⓒ김시훈=통영국제음악재단

새벽 1시쯤 되었을 때 잠결에 전화를 받았습니다. 긴급 상황이 발생했으니 요즘 하는 말로 ’단톡방’을 확인하라더군요. 전화하신 직장 동료와 저, 그리고 한 외국인 연주자와 그 연주자의 매니저가 있는 대화방이었습니다. 프랑스로 가는 비행기 이륙 시각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코로나-19 검사 결과지를 잃어버려서 출국 수속을 못 하고 있다더군요. 다행히 연주자는 검사 결과의 사본을 받아 무사히 출국할 수 있었지만 출국 게이트가 닫히기 직전이라 마음을 졸여야 했습니다.

그 연주자는 첼리스트 카미유 토마였습니다. 이번 공연에서 파질 사이 첼로 협주곡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를 아시아 초연했고, 피아니스트 박종해 협연으로 리사이틀에도 출연했었지요. 코로나-19로 유럽에 봉쇄령이 떨어졌을 때 집 지붕 위에서 첼로를 연주하는 유튜브 영상으로 화제가 되었던 스타 연주자이기도 합니다. 이번에 통영국제음악제에 출연하게 된 소식이 프랑스의 TV 프로그램에 나왔다고 하네요. 시청자가 5백만 명쯤 된다는 모양입니다.

카미유 토마는 입국 직후 격리 생활부터 시작해 별별 고생을 했습니다. 그 가운데 압권은 값비싼 첼로의 통관 서류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던 일입니다. 그 첼로는 최근 일본음악재단에서 후원한 악기였고 일본 세관에서 통관 서류를 발급했는데, 알고 보니 그 서류는 일본과 프랑스 사이를 오가는 것만 허락된 것이었다나 봅니다. 그래서 원칙대로라면 통영에서 일본으로 가서 필요한 서류를 재발급받고, 그 과정에서 일본 입국에 따른 2주 격리를 거쳐야 했습니다. 문제는 통영 공연 직후에 프랑스에서 다른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다는 겁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통영국제음악재단과 일본음악재단, 독일에 있는 기획사, 그리고 프랑스에 있는 연주자 가족까지 4개국의 여러 사람이 수많은 메시지를 주고받으면서 상황을 공유하고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했습니다. 한국에서 출국할 때 생길 수 있는 문제가 가장 먼저 해결됐고, 일본 세관을 잘 설득한 끝에 긴급 우편으로 추가 통관 서류를 서울의 호텔에서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카미유 토마는 항공 일정을 여러 차례 변경했고, 코로나-19 검사를 며칠 만에 두 차례 받아야 했습니다. 코로나-19 검사 결과는 출국 기준 72시간 이내에 발급된 것이어야 하거든요.

이번 통영국제음악제 때에도 많은 일이 있었고, 무엇보다 요즘 같은 시절에 이런 행사를 안전하게 운영하기 위해 큰 노력과 많은 사람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미 언론에 보도되었으니 이 글에서는 그 와중에 웃겼던 에피소드를 두 개만 더 소개할까 합니다.

카미유 토마는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지정된 격리장소로 이동하는 일부터 시작해 택시를 몇 차례 이용했습니다. 그런데 택시를 예약하신 분이 카미유 토마(Camille Thomas) 이름이 익숙지 않아서 ‘카유미 토마’로 여러 차례 헷갈려 하셨습니다. 그런데 택시 회사에서 ’카유미’ 씨가 일본 사람인 줄 알고 이렇게 자랑하더라네요. “우리 기사님 중에 일본어 잘하시는 분 있어요!”

개막공연 때 있었던 일입니다.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가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을 크리스티안 바스케스가 지휘하는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와 협연하기 위해 분장실에서 나오고 있었습니다. 통영의 에메랄드빛 바다를 닮은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있었지요. 드레스 자락이 그물처럼 되어 있어서 마치 인어의 비늘이 푸른 파도와 더불어 반짝이는 듯했는데요.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 ’그물’에 하이힐 뒷굽이 끼어서 제대로 걷지를 못하더라고요!

다행히 김봄소리는 무대에 입장할 때 발을 앞으로 차듯이 걷는 법을 익혀서 멀쩡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무대 뒤에서는 달랐습니다. 분장실 입구에서 처음 몇 걸음을 걷는 동안에 마치 시트콤처럼 웃기고 당황스러운 상황이 벌어졌지요. 근처에 있던 여성 동료 한 분이 재빨리 달려가 드레스 자락을 걷어 올렸습니다. 그 와중에 드레스 자락이 위로 올라간 모습이 마치 인어 꼬리가 파닥이는 듯했습니다. 나만 그렇게 생각했던 게 아니었던지, 드레스 자락을 움켜잡으신 분이 아주 찰진 농담을 시전했습니다.

“이대로 인어공주처럼 걸으세요!”

2021년 4월 9일 금요일

공연장이 사라지는 나라와 거장 예술가를 잃게 된 나라

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입니다. 2월자 칼럼인데 잊어버리고 있다가 4월이 되어서야 뒷북으로 블로그에 올립니다. 그 와중에 통영국제음악제를 성공적으로 치렀다는 반전이 하하하…


“곧 몇 곳의 공연장들이 더 문을 닫을 것 같다고 한다. 쓸쓸하다 못해 화가 난다. 공연장에서 코로나19가 옮겨졌다는 이야기가 단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조심하고 또 조심할 수밖에 없다지만 방역 기준이 공연장에 대해서만 너무 가혹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대중음악평론가 서정민갑 선생이 최근에 이렇게 한탄했습니다. 제가 소셜미디어로 이 글을 소개했더니 생각보다 훨씬 큰 반향이 일어나더군요. 어떤 음악인은 비행기를 탔더니 좌석 띄어앉기를 하지도 않고 사람이 꽉꽉 차더라며, 공연장에 유독 더 엄격한 방역기준이 적용되는 현실에 대해 항변하기도 했습니다. 얼마 전에는 국내 음악계 여러 단체와 명사들이 모여서 ’코로나 피해대책 마련 문화계연대모임’을 조직하고 벼랑 끝에 몰린 예술인들의 생존을 위해 정부가 나서 줄 것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얼마 전 독일에서는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문화과학부와 도르트문트 콘체르트하우스의 연구 용역으로 공연장 내 비말 및 에어로졸 전파에 관해 실험한 결과가 발표됐습니다. 공연장 내 중앙환기시스템이 작동하고 모든 관객이 마스크를 착용한다면 객석이 꽉 차더라도 그다지 위험하지 않다는 놀라운 결론이 나왔습니다. 다만, 연구진은 공연장 내 관객 이동 경로와 로비에 사람이 몰리는 상황 등을 고려하면 객석 50% 정도에 띄어앉기를 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결론 내렸다네요.

독일은 예술인 구제를 위해 정부가 쓰는 돈이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일 겁니다. 올해 문화예술 분야 국비 예산이 21억 유로, 한화로는 약 2조 8천억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액수이고, 지난해보다 약 7% 늘어난 액수이기도 합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대국민 담화로 현재의 국가 재정 현황과 구제 자금 긴급지원의 필요성, 향후 문제 해결 방안 등을 발표했으며, 발표 내용 중 상당 부분을 할애해 예술의 필요성과 예술인 긴급 지원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전 국민이 문화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나라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예산을 투입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1월 16일 베를린 필하모니에서는 키릴 페트렌코가 지휘한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차이콥스키와 라흐마니노프의 관현악곡을 연주했습니다. 원래는 라흐마니노프 단막 오페라 ’프란체스코 다 리미니’를 공연하려고 했었다가 방역 상황을 고려해 성악과 합창이 있는 오페라 대신 관현악곡으로 프로그램을 바꾸었다네요. 다시 말하면, 요즘 독일에서 꽤 편성이 큰 관현악곡 정도는 공연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키릴 페트렌코 이전에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이끌던 지휘자 사이먼 래틀은 현재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있습니다. 래틀 취임 당시 영국에는 자국 출신 거장 지휘자가 고국으로 돌아왔다며 환호하는 사람이 많았지요. 그런데 래틀이 최근 독일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과 계약했습니다. 내년에 계약이 끝나는 런던 심포니와는 계약 기간을 1년 연장하고, 그마저도 끝나는 2023년에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임기가 시작될 예정입니다.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의 전임 음악감독은 지난 2019년 11월에 타계했던 마리스 얀손스였습니다. 현재 음악감독이 공석인 악단 측에서는 당장이라도 래틀을 데려오고 싶었을 겁니다. 그러나 래틀은 런던에 1년 더 머무르기로 함으로써 런던과 뮌헨을 오가면서 두 악단을 이끌 수도 있는 아주 작은 가능성 정도는 열어 두었습니다. 다만, 현재로서는 2023년에 래틀이 런던을 떠난다는 것이 기정사실인 것 같습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의 문화 전문 논설위원 샬럿 히긴스는 래틀의 예정된 떠남을 한탄하는 글을 썼습니다. 히긴스는 조지 오스본 당시 영국 재무장관이 약속했던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새 공연장 건립 계획이 불투명해진 상황, 브렉시트 이후 음악인들의 출입국에 제약이 많아지면 악단 발전에 심각한 걸림돌이 될 것을 래틀이 우려해온 점, 래틀의 부인이자 유명 메조소프라노인 막달레나 코체나가 체코 출신이며 자녀들은 독일에서 자란 점 등을 들며 영국이 자랑하는 거장 사이먼 래틀에게 런던이 매력적인 도시가 되지 못한다고 분석했습니다.

두서없는 글을 여기서 줄여야겠습니다. 진짜 하고 싶은 말을 참으려니 이상한 글이 되고 말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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