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월 9일 오후7시30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Brahms: Academic Festival Overture in c minor, Op.80(10')
Brahms: Violin Concerto in D Major, Op.77 (38')
Brahms: Symphony No.1 in c minor, Op.68 (45')
정명훈 지휘
Leonidas Kavakos (Vn.)
브람스에 대해 얘기하려면 그에 앞서 언급해야만 하는 작곡가가 있다. 베토벤! 그는 고전주의 양식을 완성한 사람이면서 스스로 그것을 해체하여 낭만주의 시대를 열어젖힌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그의 목표지향적 주제 발전 기법, 리듬과 화성에 담긴 역동적인 에너지, 고난과 역경을 이기고 "어둠에서 광명으로" 나아가려는 영웅적 정신은 후대 작곡가들이 추구해야 할 이상이 되었다. 그러나 그 이상은 넘어설 수 없는 장벽이기도 했다. 그 자체로 완벽한 것에는 새로운 것을 덧붙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낭만주의 음악의 분수령이었던 베토벤의 양식은 본격적인 낭만주의 정서와 맞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음악학자 달하우스(Karl Dahlhaus)에 따르면 이 아이러니를 해결하는 것이야말로 낭만주의 시대 작곡가들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였다. 슈베르트는 <미완성 교향곡>에서 베토벤적인 도입부(intro) 주제를 발전부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멘델스존은 <스코틀랜드 교향곡>에서 리트(Lied)적인 주제를 부분적으로 병치시키면서 대위법적인 효과를 노렸으며, 베를리오즈는 <환상교향곡>에서 온음계적 주제선율의 배경에 반음계적 시퀀스(동형진행)를 사용해 주제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았다. 그러나 이 모든 시도들은 근본적인 해답이 되지 못했으며, 마침내 모범답안을 내놓은 사람은 낭만주의라는 시류와 다소 거리를 두고 베토벤이라는 근본적인 화두로 고민한 브람스였다.
그는 베토벤의 주제 발전 기법을 극한까지 확장하여 단일 음정마저도 모티프(motif) 변형의 단위로 삼았고, 원 주제의 마디 구조와 화성, 리듬 등을 끊임없이 변형시켰으며, 이러한 기법을 전체 악곡의 진행 원리로 삼았다. 이렇게 변형된 모티프의 조각들은 베토벤보다 훨씬 촘촘한 그물망을 이루었으며, 나아가 전체 악곡의 구조를 지탱하는 정교한 논리가 되었다. 20세기 작곡가 쇤베르크가 "발전적 변주(developing variations)"라 부른 이 기법은 베토벤의 후계자를 자처하던 바그너(또는 리스트)의 기법보다도 세련된 것이었으며, 이로써 적어도 음악 형식에는 브람스야말로 베토벤의 진정한 후계자라는 데에 누구도 이의를 달 수 없게 되었다. (사견을 말하자면, 베토벤의 정신적 계승자는 바그너라 할 수 있다. 이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독자도 많겠지만, 이 글의 주제는 바그너가 아니므로 더 자세한 내용은 나중을 기약하기로 하자.)
베토벤과 브람스의 이러한 관계를 살펴볼 때, 기본기부터 확실히 쌓겠다며 작년 한 해 베토벤 교향곡 전곡을 연주한 정명훈과 서울시향이 다음 목표로 브람스를 택한 것은 필연적이라 할 수 있다. 정통 레퍼토리에 도전하는 서울시향의 자세는 베토벤을 정면으로 마주한 끝에 베토벤의 적통이라는 월계관을 거머쥔 브람스와 통하기도 한다.
대학축전 서곡은 폴란드 브로츠와프(Wrocław; 당시는 프로이센의 영토였으며 독일식 이름은 브레슬라우) 대학에서 브람스에게 수여한 명예박사 학위에 대한 답례로 작곡되었으며, 브람스가 괴팅겐(Göttingen)에서 배운 4곡의 학생가를 인용하고 있다. 대학축전 서곡은 브람스의 여느 작품과는 달리 유쾌한 분위기로 가득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브람스 시리즈를 여는 서곡의 역할로 제격이었다. 이날 연주에서는 브람스의 유머를 정명훈 특유의 세련된 감성으로 살려냈다. 마디 24에서 바이올린의 피치카토(현을 손끝으로 튕기는 연주법)를 솔로 바이올린으로 강조한 것도 흥미로웠고, 학생가 가운데 "신입생의 노래 Was kommt dort von der Höhe"가 인용된 마디 157에서 템포를 관습적인 수준보다 더 빠르게 변화시킨 것도 좋았으며, 여기서 목관과 현의 아기자기한 앙상블도 훌륭했다. 가장 좋았던 부분은 "신입생의 노래"와 또 다른 음악적 모티프의 조각들이 섞이면서 거대하게 부풀었다가 갑자기 멈추면서 약음기를 낀 호른이 우스꽝스러운 음색으로 '빼액' 하는 부분(마디 259)이었다. 몇몇 음반에서는 이 부분이 무표정하거나 심지어 화난 듯한 음색이어서 실망하곤 하는데, 이날 연주에서는 천박하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익살스러웠다. 이런 식의 유머는 이를테면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 제2막에서 꼬마가 "나팔이랑 말 사줘! Vo' la tromba, il cavallin!" 하면서 떼쓰는 장면과도 닮았다. 관악기의 리듬이 엇갈리는 부분(이를테면 마디 91 등)은 그 리듬을 기계적으로 살리면 우스꽝스럽게 들리기도 하는데, 다수의 녹음에서는 내림박에 확실한 주도권을 주지만 이날 연주에서는 이것을 그대로 살렸다. "기쁨의 노래 Gaudeamus igitur"가 인용된 부분에서도 마찬가지로 금관의 숨겨진 리듬을 살렸는데(특히 마디 387-390), 대부분의 녹음에서는 "기쁨의 노래"의 고양감을 높이도록 주선율을 강하게 부각시키기 때문에 이날 연주를 낯설게 느끼거나 심지어 서울시향의 금관 앙상블이 엉터리였다고 생각한 관객도 더러 있었을 것이다. 이 리듬을 특히 잘 살린 녹음으로는 아르농쿠르-베를린필의 것이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거대한 연주회장에서 낼 수 있는 음량의 한계를 절실히 드러내어 전용 연주회장의 마련이 시급함을 새삼 일깨우기도 했다. 특히 스타카토(한 음씩 끊음) 음형으로 큰 폭의 크레셴도(점점 세게)를 이루는 마디 41-45는 매우 실망스러웠다. 물론 음반에서 들을 수 있는 과장된 다이내믹에 익숙한 탓도 있겠고, 서울시향 현악기 주자들 실력이 유럽 일류 악단에 비하면 손색이 있기도 하겠지만, 적어도 여기서 힘이 많이 부족했던 것은 아니었다. 만약 그랬다면 "기쁨의 노래"에서 금관이 찬가처럼 부풀렸다가 현과 목관으로 선율을 넘겨주는 순간(마디 383) 전체 앙상블이 어이없이 힘을 잃고 말았을 것이다. 물론 이날 연주에서는 그런 일이 없었다. 이날 악기 편성은 호른을 한 대 추가한 것을 제외하면(호른 수석의 보조 역할) 악보의 지시를 정확하게 지켰다.
... 대략 여기까지 썼을 때 편집장님의 전화를 받았다. 먼저 보낸 베토벤 연주회 리뷰가 너무 길다면서 이번에는 원고지 15장 이내로 해달란다. 그때까지 써놓은 것을 보니 벌써 20장...;; 게다가 연주회 다음날이 원고 마감일이라니... OTL
결국 날림으로 쓴 게 아래 글이다. 정말이지 이따위로 쓰고 싶지는 않았다. 홈페이지에나마 쓰고 싶은 말 다 쓰려고도 생각했다가... 귀찮다. -_-; 다음 연주회나 준비해야겠다. 어, 근데 프로그램이 바뀌었잖아? OTL
결국 날림으로 쓴 게 아래 글이다. 정말이지 이따위로 쓰고 싶지는 않았다. 홈페이지에나마 쓰고 싶은 말 다 쓰려고도 생각했다가... 귀찮다. -_-; 다음 연주회나 준비해야겠다. 어, 근데 프로그램이 바뀌었잖아? OTL
브람스는 베토벤의 음악적 유산을 계승하면서도 시대의 변화에 맞는 새로움을 담아내야 하는 낭만주의 시대 작곡가들의 과제에 대해 일체의 편법을 거부하고 베토벤이라는 근본적인 화두로 고민했다. 그리고 마침내 베토벤의 적통이라는 월계관을 거머쥐었다. 이것은 기본기부터 확실히 쌓겠다며 정통 레퍼토리에 도전하고 있는 서울시향의 태도와도 통하며, 서울시향이 베토벤에 이어 브람스 시리즈를 택한 것은 이러한 음악사적 맥락을 생각할 때 거의 필연적이라 할 수 있다.
대학축전 서곡은 브람스의 여느 작품과는 달리 유쾌한 분위기로 가득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브람스 시리즈를 여는 서곡의 역할로 제격이었다. 이날 연주에서는 브람스의 음악적 유머를 정명훈 특유의 세련된 감성으로 살려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거대한 연주회장에서 낼 수 있는 음량의 한계를 절실히 드러내어 전용 연주회장의 마련이 시급함을 새삼 일깨우기도 했다. 특히 스타카토(한 음씩 끊음) 음형으로 큰 폭의 크레셴도(점점 세게)를 이루는 마디 41-45는 매우 실망스러웠다.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한 카바코스(Leonidas Kavakos)는 매끄럽게 다듬어진 음색과 특별히 모나지 않으면서도 참신한 프레이징(phrasing)을 들려주었다. 비브라토의 속도와 폭은 자연스럽고 적절하여 아름다운 음색을 만들어냈으며 트릴의 속도는 때때로 느린 편이었다. 그러나 힘없이 매끄럽기만 한 것도 아니어서 마르카토(강한 악센트로 끊어 연주함)의 '긁는 맛'을 세련미를 잃지 않는 범위 내에서 충분히 살렸고, 관현악 도입부의 템포가 느린 편이었는데도 독주를 시작하면서 날카로움을 잃지 않았다. 카덴차는 가장 널리 쓰이는 요아힘의 것이었고, 앙코르는 타레가(Francisco Tárrega)의 <알함브라의 추억>이었다. 이 곡은 원래 기타 독주곡으로 카바코스는 활을 현 위에서 여러 번 튕기는 이른바 리코셰(Ricochet; flying spiccato) 주법을 사용하며 정교한 테크닉을 과시했다.
교향곡 1번은 장중한 템포 속에 브람스의 좌절과 분노와 우수와 환희 등을 모두 담아내면서도 정명훈의 특유의 세련된 열정을 잃지 않았다. 템포가 빠른 곳과 느린 곳의 대비를 뚜렷이 살리면서도 이음매를 자연스럽게 처리하는 한편, 프레이즈마다 은근한 템포 변화를 주어 악곡 전체를 조망하는 유려하면서도 정교한 흐름을 만들어내었다.
브람스 교향곡 1번 해석의 가장 큰 지표가 되는 것은 1악장 도입부(intro)와 종결부(coda)의 템포다. 1악장 도입부의 나타냄 말(expression mark)은 "Un poco sostenuto 음을 조금 늘여서"이고, 제1주제가 시작되는 마디 38에서는 "Allegro 빠르게"가 되었다가 종결부 마디 495에서는 "Meno Allegro 덜 빠르게"가 된다. 결국 느림-빠름-느림의 대칭 구조가 되는데, 브람스는 원래 마디 495의 나타냄 말도 도입부와 같은 "Un poco sostenuto"라 했다가 당시 연주 관습으로 도입부의 템포가 너무 느려지곤 했던 탓에 1악장 처음과 끝을 정확히 같은 템포로 설정한 것은 "멍청한 실수"라 하면서 "Meno Allegro"로 고쳤다.
이날 연주에서는 ‘♪ = 75’ 정도의 템포로 시작하여 제1주제(마디 38 이후)에서는 대략 ‘♩. = 90’으로 변하며 오히려 템포가 빠른 편이 되었지만 자연스러운 이음매로 처음의 장중한 이미지를 잃어버리지 않았다. 반음계적 스타카토 하강 음형이 시작되는 마디 160에서는 ‘♩. = 100’ 정도로 더욱 빨라졌다. 1악장 종결부에서 현의 피치카토(현을 튕기는 연주법) 음형이 아르코(활로 긋는 연주법) 음형으로 변하는 마디 478에서 서서히 템포를 늦추어 "Meno Allegro"에서는 대략 ‘♪ = 110’이 되었다. 결국 ‘느림-빠름-느림’의 대칭 구조를 뚜렷이 살리면서도 "Meno Allegro"의 참뜻을 매우 잘 살렸다. 베토벤의 '운명' 리듬과 반음계적 음형이 점차 거대하게 확장되기 시작하는 마디 293에서 템포가 크게 느려졌다가 팀파니의 강력한 타격과 함께 폭발하는 마디 321까지 서서히 가속한 것도 참신했다.
2악장과 3악장의 템포 대비가 컸던 것도 신선했다. 2악장은 상당히 느렸는데, 그 탓에 오보에가 긴 호흡의 독주를 하는 마디 38에서 16분음 음형이 시작되기 전에 숨을 한 번 들이쉰 것은 옥에 티였다. 원래는 끊지 않고 연주해야 하지만, 레가토로 이어지는 부분만 네 마디가 넘고 이후로도 쉼표 없이 한 마디를 더 연주하면서 숨도 들이쉬지 않고 이어지는 소리를 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클라리넷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지만, 길게 늘어지는 F#(실제 음은 E♭) 음 중간에 아주 살짝 숨을 쉬고 다시 이었다가 16분음 음형으로 들어갔다. 이것이 더 자연스럽기는 했지만, 안타깝게도 오보에는 악기의 음색과 음악적 맥락 때문에 이런 트릭을 쓸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오보에 수석은 이날 가장 빛나는 연주를 해준 단원 가운데 하나였다.
3악장 시작은 ‘♩ = 90’ 정도로 상당히 빠른 템포를 사용했으며, 클라리넷의 반음계적 하행에 이어 8분음 대신 16분음이 전체 텍스처를 지배하기 시작하는 마디 45에서는 템포가 살짝 더 빨라지면서 속도감을 준 것이 참신했다.
4악장도 1악장과 마찬가지로 도입부, 특히 4악장 곳곳에 활용되는 이른바 ‘알프스 호른’ 모티프의 느린 템포와 주부(主部)의 비교적 빠른 템포를 뚜렷하게 대비시키면서도 이음매를 자연스럽게 처리하여 장중함 속에 폭발적 추진력을 담아냈다.
한편, 이번 연주회에서도 연주회장의 음향 문제가 심각함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베토벤 교향곡 8번과 9번 연주회 때보다는 소리가 많이 나아졌다고 느꼈다. 그것은 첫째로 베토벤보다는 브람스가 편성이 더 크고, 둘째로 베토벤 교향곡 9번과는 달리 순수 관현악곡이라 성악 파트와의 불균형 문제도 없었고, 셋째로 베토벤 교향곡 9번과는 달리 악보 가필(加筆) 여부에 따른 생소한 음향이 터무니없는 실수로 오해받는 일도 없었으며, 마지막으로 악장을 비롯한 몇몇 수석 단원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한불 수교 120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라디오 프랑스 등의 유수 악단의 단원이 일부 객원으로 이번 연주회에 참여한 모양인데, 그 가운데 팀파니 주자의 실력이 발군이었다.
김원철. 2007.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