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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8월 13일 금요일

피에타리 인키넨의 '바이로이트 사운드'

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글입니다.


피에타리 인키넨은 도이치 방송교향악단 음악감독입니다. 2009년에 서울시향을 객원지휘한 일이 있고, 내년 1월부터 KBS교향악단 음악감독을 겸직할 예정입니다. 지난해에는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바그너 4부작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 전곡을 지휘할 예정이었다가 코로나-19 때문에 페스티벌이 전체 취소되어버려서, 그 대신 지난 7월 개막한 2021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반지’ 4부작 중 ’발퀴레’만을 일단 먼저 공연하게 되었습니다.

실황 중계방송 녹음을 들어보니 인키넨의 ‘발퀴레’는 꽤 훌륭했습니다. 멀티채널 녹음이라 현장감이 특히 좋더군요. 그런데 이날 연주는 호불호가 좀 갈렸던 모양입니다. 한두 명이지만, 관객에게 인사하는 인키넨에게 야유를 퍼붓는 사람이 있었다던데요. 제 지인 중 한 분은 인키넨의 ’지크프리트’ 3막 발췌 음반과 견주며, 아직 인키넨이 바이로이트 페스티벌하우스에 적응하지 못한 듯하다고도 하더군요.

바이로이트에서 처음 지휘하는 사람은 독특한 음향 때문에 헤매기 쉽다고들 하지요. 실제로 공연 중 삐걱거리던 순간이 제법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에는 단지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호불호의 진짜 원인은 오케스트라 편성 때문이었을 거예요.

‘발퀴레’ 실황 음원과 ‘지크프리트’ 음반은 연주 단체와 녹음 장소와 녹음 장비가 다르고, 각각 5채널 오디오와 2채널 오디오로 녹음의 정보량도 달라서 나란히 비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냥 귀로 들리는 소리만으로 판단하자면 ’발퀴레’가 ’지크프리트’보다 오케스트라 규모가 좀 더 작은 듯하더군요. 사실은 ’지크프리트’도 작은 편성인 듯했고, 그래서인지 인키넨 음반을 게오르그 숄티가 지휘한 1960년대 명반과 견주며 소리의 에너지 밀도가 낮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20세기에는 악보에 지시한 것보다 실제 오케스트라 편성을 부풀리는 관습이 있었지요. 게오르그 숄티의 바그너 녹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에는 악보 지시와 작곡 당시의 관습 그대로 연주하는 것이 유행이고, 인키넨의 바그너 해석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작은 편성으로 연주하면 여러 장점이 있고, 이를테면 개별 성부의 매력을 더 잘 살릴 수 있지요. 인키넨은 때로 목관악기 소리가 두드러지는 ’식물성 사운드’를 바그너 음악에서 살려내기도 하더군요. 물론 금관악기가 울부짖을 때는 필요한 만큼 ’근육질’로 변하기도 했습니다.

바이로이트 극장은 바그너 음악에 최적화되어 ’바이로이트 사운드’라고 칭송하는 말이 있는 멋진 곳입니다. 그런데 제가 그곳에 여러 차례 가본 경험으로 말하자면, 다른 오페라 극장과 견주어 음량이 좀 작은 것이 바이로이트 극장의 단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뒷자리에 앉아도 들릴 소리는 다 들리지만, 오케스트라 피트에 ’천장’이 있어서 소리가 무대 벽에 한 번 반사된 다음에야 객석으로 전달되는 구조 때문에 직접음이 거의 들리지 않고 소리가 좀 멀게 느껴지는 점이 장점이자 단점인 듯해요.

문제는 인키넨의 바그너가 실제 바이로이트 극장에서 어떻게 들렸을까 하는 겁니다. 오케스트라 편성을 부풀리는 것은 음량을 키우기 위해서인데, 소리에 ‘기름기’를 빼기 위해 편성을 줄였다면 음량 또한 줄었겠지요. 인키넨에게 야유를 퍼부은 몇몇 사람은 사실 ’음량’에 실망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인키넨은 내년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때 타협을 하게 될까요? 인키넨의 ’바이로이트 사운드는’ 어떤 변화를 맞게 될지 궁금합니다.

피에타리 인키넨이 음악감독으로 있는 도이치 방송교향악단은 옛 이름이 ‘자르브뤼켄 방송교향악단’이었던 단체로 정명훈 지휘자가 음악감독으로 있었던 바로 그곳입니다. 그 시절 정명훈 지휘로 윤이상 교향곡 3번을 세계초연한 악단이기도 하지요. 마침 내한공연이 연말에 예정되어 있어서 그때쯤에는 제발 전염병이 잠잠해지기를 희망해 봅니다. 통영 공연은 12월 19일이고, 프로그램은 브람스 교향곡 1번, 손열음이 협연하는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3번, 그리고 바그너 오페라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중 서곡입니다. (쉿! 앙코르로 바그너 곡을 더 연주할지도 몰라요!)

2011년 5월 7일 토요일

제임스 레바인, 사실상 은퇴 준비… 파비오 루이지가 후계자 자리 노린다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음악감독 제임스 레바인이 올해 탱글우드 페스티벌에서 지휘를 맡을 예정이었으나 건강 문제로 일정을 모두 취소한다고 밝혔습니다. 대타 지휘자는 아직 결정되지 않은 듯합니다. (☞ 『보스턴 글로브』 기사 보기)

제임스 레바인은 지난 3월 초 보스턴 심포니 음악감독에서 물러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9월에 공식 사임할 예정이지만, 남은 일정을 모두 취소했으므로 그때부터 사실상 사임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 탱글우드 페스티벌 일정을 취소한 일 또한 예상되던 바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참고하세요:

지휘자 제임스 레바인, 보스턴 심포니 음악감독직 사임

때맞춰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도 음악감독 제임스 레바인이 일정 대부분을 취소한다고 밝혔습니다. 레바인은 10월까지 예정된 공연 가운데 5월 9일과 14일에 예정된 바그너 《발퀴레》 공연을 제외한 모든 일정에서 물러나며, 수석 객원 지휘자인 파비오 루이지가 일정 대부분을 대신 맡는다고 합니다. (☞ 『워싱턴 포스트』 기사 보기)

이에 대해 음악 평론가 팀 스미스는 트위터(@clefnotes)로 "사실상 루이지 시대로 매끄럽게 넘어가기 시작한 것일까?"라고 논평했습니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관계자는 파비오 루이지가 유력한 후계자 후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 『뉴욕 타임스』 기사 보기)

지휘자 파비오 루이지는 지난 3월 말 제임스 레바인이 취소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공연에서 막판 대타를 맡으려고 코벤트가든 일정을 갑자기 취소하여 '메트 후계자설'에 불을 지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참고하세요:

제임스 레바인, 보스턴에 이어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도 암운

2011년 3월 26일 토요일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 vs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총감독 피터 겔브 ― 갈등 점입가경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는 지난 3월 3일부터 22일까지 공연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줄리엣 역을 맡기로 했다가 건강 문제로 취소했습니다. 대타는 홍혜경이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측에서는 다음 시즌까지 게오르규를 출연시키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예술적인 이유"(artistic reasons) 때문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총감독(General Manager) 피터 겔브(Peter Gelb)와 게오르규 사이에 갈등이 있는 듯합니다. (☞ 3월 7일 자 『뉴욕 타임스』 기사 참고)

그리고 피터 겔브는 3월 25일 자 『뉴욕 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 원문 보기)

우리 극장 스타 소프라노는 자신이 중독됐다면서 《로미오와 줄리엣》에 출연 취소했는데, 줄리엣이 부르는 "독약" 아리아를 연습한 다음 날 그랬다.

Our star soprano, thinking she might have been poisoned, withdrew from the cast — one day after marking her way through Juliette’s “poison” aria during a rehearsal.

▲ 구노 《로미오와 줄리엣》 마지막 장면. 게오르규 ♥ 알라냐

이에 대해 오페라 전문 블로그 '인터메조'에 이런 댓글이 달렸습니다. (☞ 원문 보기)

John : 마늘?
amac : 흠… 혀 깨물었는지도. 앗 말해버렸다!
Chris : 오, 무슨 사연이 많은 모양이네요.

오페라 전문 블로거 '라 치에카'(La Cieca)는 다음과 같이 논평했습니다. (☞ 원문 보기)

메트 총감독은 평론가들에 대한 ☞반응으로 질 낮은 험담꾼 수준의 카더라 통신(blind item)을 이용해 가장 순수한 알랑방귀를 뀌었습니다. "우리 극장 스타 소프라노는 자신이 중독됐다면서 《로미오와 줄리엣》에 출연 취소했는데"라는 말이 누구를 가리키는지를 알고 나면 ☞프리랜서가 쓴 참신한 글을 겔브스터(Gelbster)가 반박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즐길 수 있습니다.

이 글에 댓글로 긴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원문을 읽어 보세요.

2011년 3월 25일 금요일

베이스 전승현(Attila Jun), 슈투트가르트에서 '캄머젱거' 칭호 획득!

바그너발퀴레》 1막에서 훈딩 역을 맡은 베이스 전승현

캄머젱거(Kammersänger)는 마이스터징거(Meistersinger)와 비슷한 명예 호칭입니다. (한글 표기는 국립국어원에서 정한 외래어표기법을 따랐습니다.) 마이스터징거가 14~16세기 조합(길드)에서 주던 것이라면 캄머젱거는 왕이나 왕자가 주던 것으로 당시 이름은 호프캄머젱거(Hofkammersänger)였습니다. 본디 어마어마한 상금이 뒤따랐는데, 요즘은 상금이 없는 명예 호칭으로 바뀌었고 정부 기관에서 준다고 합니다. 현대 독일-오스트리아 가수가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영예라 할 수 있습니다.

캄머젱거 호칭은 단순히 노래를 잘하거나 인기가 많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독일 시(詩)를 올바로 이해하고 언어로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인정받아야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런 칭호를 독일 사람이 아닌 한국 사람이 받았다는 사실은 대단한 쾌거가 아닐 수 없습니다.

바그너 가수로 이름난 베이스 전승현(Attila Jun)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전승현 씨는 얼마 전에 슈투트가르트 《파르지팔》에서 구르네만츠 역을 맡기도 했습니다. 오페라 전문 블로거로 이름난 'La Cieca'라는 사람이 쓴 리뷰에서 전승현 씨 평이 그다지 좋지 않아서 안타까웠던 기억이 납니다. (☞ 영어 원문 보기) 그런데 아래 기사를 보니 연습을 아예 못하고 바로 무대에 올랐던 모양입니다. 오히려 전승현 씨가 언제나 준비된 바그너 가수였음이 이 사건으로 증명되었다 하겠군요.

『슈투트가르트 차이퉁』 기사 보기

위 기사를 소프라노 임선혜가 우리말로 옮겨서 싸이월드에 올린 것을 퍼왔습니다. (☞ 임선혜 싸이월드)

임선혜 씨는 전승현 씨의 독일어 이름 'Attila Jun'을 독일식 발음을 살려 '아틸라 윤'이라 옮겼네요.

베이스 전승현-나는 자신에게 만족하지 않았다.

작성자 임선혜
작성일 2011.03.25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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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tila Jun, 아띨라 윤으로 불리우는 베이스 전승현.

그가 99년부터 상임단원으로 몸 담고있는 독일 슈투트가르트 국립극장에 그는 KAMMERSAENGER(캄머쟁어)라는 명예로운 타이틀을 37세라는 젊은 나이에 얻었다.

우연히 리허설에서 그 일에 알게 되었고, 사람들 말대로 인터넷을 찾아보니 3월21일자로 Stuttgarter Zeitung(슈투트가르터 짜이퉁)에 대문짝만한 기사가 났었다.

전승현 선배를 리허설할 때 만나기도 했고, 그 집에 초대받아 밥도 함께 먹었으며, 나와 성악가 동기인 그 와이프와 요즘 자주 전화를 했었는데 '캄머쟁어'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더랬다.

그의 과묵한 성격과 꼭 필요한 말이 아니면 입에 담지않는 신중함 그리고 세계 무대로 노랠하러 다니면서도 자랑이나 잘난 척과 거리가 아주 먼 그의 지금까지의 그의 행보에의 일관성이 읽혀졌다.

외국에서의 활동에 비해 정작 고국에서는 음악 전문가에게도 자세히 알려지지 않은 그. 여기도 마찬가지지만 거리가 먼 고국에서는 아무리 인터넷 시대라해도 스스로 PR하지 않는 이는 잘 알아보지 못하는 아쉬움이 늘 있던 차, 나의 변변찮은 독일어 실력을 빌어 그의 기사를 번역해보려한다.


Stuttgarter Zeitung 3월 22일

나는 내 자신에게 아직 한 번도 만족해본 적이 없다.

슈투트가르트- 이미 1999년에 파멜라 로젠베륵(주:당시 캐스팅다이렉터)은 당시25살이던 한국인 베이스 아띨라 윤을 슈투트가르트국립오페라에 앙상블로 데리고왔다. 그러나 윤은 다른 모든 것에 앞서 바그너 역할에 있어서도 세계적으로 러브콜을 받는 게스트다. 대화 중에 우리는 이 친절한 베이스가 말하듯 왜 '한국인이 늘 배우는지'를 알게된다.

"우리에겐", 아띨라는 말한다.- 그리고 그의 우리란 그가 거의12년을 몸담아온 슈투트가르트 국립오페라극장도 아니고, 지금 그가 자신의 가족과 살고있는 오스트필던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그는 한국을 말할 때 "우리"라고 말한다. 자신의 고국인. 윤의 뿌리는 깊다. 우리도 역시 그걸 느끼는데 - 예를 들면 그가 부드러운 B를 강한 P를 내는 입모양으로 만들거나 어두운 모음을 길고 더 검은빛으로 만들거나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그너의 두운들을 그는 아주 명확하고 완벽하게 말한다. 그는 아무도 길거리에서 말하지않는 "그것을 배우는 것은 재밌다" 라고 말한다. 그건 극이니까.

아띨라는 바그너의 말을 그보다 훨씬 더 아름답게 노래할 수 있다. "이 음악은 내 마음 깊은 곳까지 파고든다"라고 말할 정도로 그는 바그너 음악을 사랑한다. 아직 그가 전설적인 바그너 베이스인 한스 소틴 제자로 쾰른에서 공부하는 학생일 적에 이미 그는 바이로이트에서 작은 역할들을 해왔었다. 그러나 그는 구르네만츠, 하겐, 왕 마르크 같은 역할도 이제 그 초원(바이로이트)에서 노래하고싶다 (2013년 새로 시작되는 '링'시리즈에 아직 하겐 역할은 비어있는 상태다. )

바그너의 베이스역할들을 윤은 모차르트 자라스트로나, 코멘다토레나, 베르디의 뿌름, 페란도,그로서인쿠이지토어, 스파라푸칠레, 아니면 차이쿠프스키의 그레민- 그가 이미 슈투트가르트에서 노래한- 역할들보다 사랑한다. 오페라극장 로비에서 인터뷰를하는 동안도 그는 바그너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나쁜 알베야, 나 너를 듣고있다" 하며 자신만의 어둡고, 폭넓으며 음량이 풍성한 화가난 하겐의 대사를 읊고, "그 곳으로부터 이 신음이 나온다!" 하며 구르네만츠를 연이어 소리쳐본다.

이 역할의 그를 지금 여기 국립극장에서 들을 수 있다. 2010년 이 파르지팔 프로덕션의 프레미어와 그 시리즈는 슈테판 밀링이 게스트로 초대되어 불렀었다. "보아하니 나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것 같다." 고 아띨라는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유감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그 반대로: 다른 이들의 그 "못 믿음"이 내겐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건 나를 열심히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게되면 나는 내가 그걸 잘 노래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해보이고싶게된다. 오히려 남들이 다들 칭찬을 할 때, 그 때가 훨씬 더 어렵다. (밑줄: 역자, 왜? 넘 멋진 맞는 말이니까!! ^^)

윤은 배우는 것을 좋아하고, 많이 배우고, 계속 배운다!

윤은 기꺼이 배우고, 더 많이 계속해서 배운다. "공연이 끝나고 늘": 분명 한국인들이 그렇게 대대로 해왔 듯 그는 그렇게 배운다. "한국은 수많은 사람들이 사는 자연자원이 없는 작은 나라이다. 우리는 둘러쌓인 산 밖에는 가진 것이 없다. 그래서 한국인들을 많이 배워야한다" - 한국의 부모에게는 자녀들의 교육에 관한 것들이 늘 최고 우선이라고 윤은 말한다.

한국인은 늘 배운다: 그리고 아띨라 윤은 이렇게도 말한다.-자신의 유수한 한국동료들이 "좋은 소리" 를 더불어, 늘 배우는 자세에 있는 것이 독일 극장들에서 그들이 활약하는 이유라고 확신했다.

그 다음 요소는 분명 그들의 융화능력에 있을 것이다. 그건 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독일의 상점이 닫는 시간대에도 그는 적응이 되었다. "처음엔 대부분의 휴일들에는 집에 먹을게 없었어요."(주: 10 여년전 독일 상점은 평일엔 저녁 6시 이전에, 토요일엔 2시에 문을 닫았고 일요일은 여는 곳이 없었다. ) 그리고 한국적으로 생겨난 배움에의 욕심, 점점 증가되는 자기 맘 안에서의 불안함이 있는 것을 그는 기본적으로 긍정적으로 본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아주 비판적이다. 그리고 아직 한번도 제대로 내 자신에 만족해 본 적이 없다.아직 100 %를 해낸 적이 없다. 공연이 끝나고는 늘 몇시간 동안이고 잠을 못 들고 깨어서 분석을 해본다. 어떤 걸 더 잘 할 수 있어야했는지."

슈투트가르트의 '파르지팔' 공연을 미룬 것은 득이된 면도 있었다: 슈투트가르트에서 파르지팔 프레미에레가 올라가는 동안, 윤은 바르셀로나에 저명한 떼어뜨로 리세우에서 마르케랑 역으로 초대받은 것에 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트리스탄' 에서의 성공으로 그는 이 스페인의 저명하고 거대한 극장에서 곧 바로 5개의 계약서를 주머니 속에 넣어오는 쾌거를 올렸다.

슈투트가르트 '파르지팔' 리바이벌 공연의 리허설 기간은 말도 안 되게(문제가 될 정도로) 짧았다: 실제로 첫 번째 공연에서 그는 처음으로 오케스트라 반주에 노래를 한 것이었다 - "그것도, 무대에서 쏜 안개로 앞의 지휘자를 거의 볼 수 없는 상황에서!" 라고 그는 말했다. 다행히도 이제 그에게는 씬들과 거의 맞춰볼 수도 없었던 음악적으로 난해한 부분들을 매스터할 정도로 몸에 배어진 많은 경험이 쌓여있었다. 이제 그는 정확히 안다. 처음엔 그를 "미쳐버리게 만들었던" 무대 작업의 어려움들을 잘 운전해내는 방법을. 그리고 그는 음악감독 만프레드 호넥을 좋게 평가한다. "그는 내가 부드러운 부분들을 피아노로 잘 표현하는 것을 좋아하며 그럴 때 오케스트라를 아주 조용하게 만들어 배려한다".

언젠가 그가 그의 고국으로 돌아갈 것인지? "내가 더 이상 소리를 못 낸다면", 그렇다면 yes. 그 전에 아띨라 윤은 계속 노래를 할 것이다. - 아직 그의 바그너 레파토리에서 빠져있는 마이스터싱어의 포그너를 젤 노래하고싶다. 또 그 전에, 크레모나에서 바이올린을 제작하는 그의 남동생은, 이제 다섯살 된 윤의 아들에게 바이올린을 만들어줄 것이다. 그리고 그 전에 사람들은 그를 캄머쟁어라 부를 것이다. 벌써 다음 달이면 이제 그렇게 된다. "나에게 이것은 하나의 큰 영예이다." 라고 윤은 말한다. "지금까지 한국인으로서는 함부루크의 헬렌 권이 유일했기에 아주 큰 영예다." 그것은 아띨라 윤에게 긍지를 가져다주었다.

www3.stuttgarter-zeitung.de/inhalt.attila-jun-ich-war-noch-nie-mit-mir-zufrieden.e42c4075-dae8-4c10-a0d8-8a6a2a9a2bdf.html?page=0

위이 페이지에서 원본을 볼 수 있음.. 더 좋은 문장으로 고쳐주셔서 아주 감사하게 여기겠음! ^^

칼릭스토 비에토 연출의 파르지팔에서 구르네만츠를 연기하는 전승현 (아띨라 윤). 슈투트가르트 국립극장


선배가 전씨라 JUN 이라 쓰는데, 독일 사람들이 이것을 '윤'으로 읽어버리고만다. 이제 너무 유명해져서, 이거 '전'이라고 읽는 거야해도 고쳐지려면 백년 걸릴 듯. ^^

암튼.. 너무 조용히, 신중히, 열심히 하고있는 나의 자랑스런 선배이자 친한 친구의 남편인 베이스 전승현의 영광스런 캄머쟁어 타이틀, 너무 축하하는 바이다!

극장에서 추천을 받아야하고, 극장장이 수락해야하며 그 다음에 시로 넘어가 평가가 들어가고 그 복잡한 절차를 거쳐 이 타이틀이 적합하다고 여겨질 경우에만 수여되는 얻기 어려운 타이틀인데,

아무리 한 극장에서 오래 노래를 했어도 이 타이틀을 얻고 떠나기 쉽지 않은 법인데 선배는 약관 서른일곱에 이 영광스런 명예를 얻었다. 자기 커리어를 접으며 내조에 힘쓰는 디보의 아내 김성미의 수고에도 그 좋은 열매가 있었음을 함께 감축드리는 바이다. ^^

2011년 3월 22일 화요일

제임스 레바인, 보스턴에 이어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도 암운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는 지휘자 제임스 레바인이 지휘할 예정이었던 바그너라인의 황금》과 베르디 《일 트로바토레》를 각각 파비오 루이지와 마르코 아르밀리아토(Marco Armiliato)가 대신 지휘한다고 밝혔습니다.

제임스 레바인은 지난 3월 2일 건강 문제로 보스턴 심포니 음악감독직에서 물러난 바 있습니다.

「지휘자 제임스 레바인, 보스턴 심포니 음악감독직 사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는 제임스 레바인이 알반 베르크 《보체크》와 바그너발퀴레》는 예정대로 지휘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이 말 또한 얼마 안 가서 뒤집히리라는 예측이 나돌고 있습니다. 레바인 건강 문제가 심상치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라인의 황금》 공연이 예정된 3월 30일과 4월 2일은 파비오 루이지가 코벤트 가든에서 베르디 《아이다》를 지휘하기로 한 날입니다. 루이지가 일정 취소한 코벤트 가든 공연은 다니엘레 루스티오니(Daniele Rustioni)가 대신 지휘할 예정입니다.

오페라 전문 블로거 '인터메조'(intermezzo)는 바그너 지휘자도 아니고 일정이 비지도 않았던 루이지가 막판 대타가 되었다는 사실은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관계자들이 루이지를 레바인 후계자 후보로 높이 평가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논평했습니다. (☞ 원문 보기)

파비오 루이지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수석 객원 지휘자로 베르디 《리골레토》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낙소스 섬의 아리아드네》를 지휘할 예정이기도 합니다.

Luisi

▲ 지휘자 파비오 루이지. CCL by Yuyu

베르디 《일 트로바토레》 대타 지휘를 맡은 마르코 아르밀리아토(Marco Armiliato)는 1950년생 이탈리아 출신 오페라 전문 지휘자입니다.

아르밀리아토 고클 디스코그래피

기획사 IMG 웹사이트에 있는 아르밀리아토 소개 페이지

2011년 2월 18일 금요일

『플레이보이』 모델을 소재로 삼은 오페라 《안나 니콜》 초연 소식

마크-앤서니 터니지(Mark-Antony Turnage)가 작곡한 오페라 《안나 니콜》(Anna Nicole)이 어제 17일 영국 코벤트 가든(로열 오페라 하우스)에서 초연되었습니다.

『연합 뉴스』 기사 참고

이 공연을 두고 음악평론가 노먼 레브레히트는 다음과 같이 논평했습니다. (☞ 원문 보기)

오늘 밤 오페라 초연에 무슨 옷을 입어야 좋겠느냐는 순진한 물음이 트위터에 올라와 큰 웃음과 조금은 진지한 고민을 불러왔다.

[…] 알몸(bare-butt), 립스틱과 지미추(Jimmy Choo) 구두, 왕가슴 정장(double-breasted (law) suit)과 넥타이 등 다양한 제안이 들어왔다. 한 시간 안에 결정해야 한다.

그러나 이 행사를 그토록 재미있게 만든 것은 로열오페라하우스가 평소 딱딱하던 분위기를 몰아내는 데 성공해서 굵은 글씨로 세계 초연을 무슨 다 함께 부르는 《사운드 오브 뮤직》처럼 만들어서 관객들을 나치 또는 수녀로 돌변하게끔 했던 대목이다.

오페라에서 이런 걸 더 보고 싶다. 《카르멘》에서는 집시들이 더 많이 왔으면 좋겠고, 《나비부인》에는 게이샤 아가씨들이 더 많이 왔으면 좋겠고, 《니벨룽의 반지》에는 나치주의자가 더 많이 왔으면 좋겠다. 다른 의견 또 있으면 알려주시라.

그러니까 이날 공연에 연예인들이 잔뜩 왔다네요. 그러나 이날 핵심은 역시 '안나 니콜' 역을 맡은 소프라노 에바-마리아 웨스트브뤼크(Eva-Maria Westbroek)입니다. 아랫글 제목에서부터 나타나듯이, 참… 건강하네요. ^^;

Anna Nicole the Opera ( . Y . ) in photos

지금부터는 사진 위주로 갑니다.

아래 사진은 ☞이곳에서 퍼왔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리승환님의 ☞명언(?)을 인용하고픈 욕망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무젖유죄 유젖무죄"

나중에 붙임: 동영상도 나왔네요!

2011년 2월 7일 월요일

소프라노 캐슬린 김,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닉슨 인 차이나》에서 장칭(江青) 역으로 호평

존 애덤스(John Adams)가 가 쓴 오페라 《닉슨 인 차이나》(Nixon in China)는 이른바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널리 알려진 리처드 닉슨 미국 제37대 대통령이 1972년 미국 대통령 최초로 중국을 방문한 사건을 다룬 오페라입니다. 이 오페라는 1987년 휴스턴 오페라에서 존 드메인(John DeMain) 지휘로 세계초연되었고,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는 지난 2월 2일에 초연되었습니다.

이번 공연에서 한국인 소프라노 캐슬린 김(Kathleen Kim)은 마오쩌둥(毛澤東) 셋째 부인 장칭(江青, 1914~1991) 역을 맡았습니다. 음악평론가 앤서니 토마시니(Anthony Tommasini)는 『뉴욕 타임스』 리뷰에서 캐슬린 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캐슬린 김은 악의에 찬 마오 부인의 신경질적이고 앙칼진 노랫가락에 미친 듯한 사나움을 담아냈다. (The coloratura soprano Kathleen Kim delivered the skittish, shrieking vocal lines of the malevolent Madame Mao with maniacal intensity.)

http://www.nytimes.com/2011/02/04/arts/music/04nixon.html

『나머지는 소음이다』를 쓴 음악 평론가 알렉스 로스(Alex Ross)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가 공개한 동영상 가운데 캐슬린 김이 부른 아리아 "나는 마오쩌둥의 아내"(I am the wife of Mao Tse-tung)를 ☞블로그에 따로 소개했습니다.


▲ 장칭. (캐슬린 김은 그러니까 코스프레;;)

캐슬린 김은 서울예고, 맨해튼 음대와 대학원에서 공부했으며, 홍혜경, 조수미, 신영옥에 이어 한국인으로는 4번째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주역을 맡은 소프라노입니다. 공식 홈페이지: http://www.kathleenkim.com

아래 동영상은 오펜바흐 《호프만 이야기》(Les Contes d'Hoffmann) 가운데 인형 올림피아가 부르는 "나무 숲속의 새들"(Les oiseaux dans la charmille)입니다.

2010년 11월 7일 일요일

푸치니 《라 보엠》 해설

초연

1896년 2월 1일 토리노 레조 극장(Teatro Regio)에서 아르투로 토스카니니(Arturo Toscanini) 지휘로 초연되었다.

원작

《라 보엠》은 앙리 뮈르제(Henri Murger)가 쓴 소설 《보헤미안이 사는 모습》(Scènes de la vie de Bohème)을 바탕으로 주세페 자코사(Giuseppe Giacosa)와 루이지 일리카(Luigi Illica)가 대본을 썼다. 뮈르제는 같은 작품을 테오도르 바리에르(Théodore Barrière)와 함께 연극 대본으로도 썼으나, 돈 많은 로돌포 삼촌이 미미를 싫어하는 내용이 베르디 《라 트라비아타》와 닮은꼴이라 작곡가들이 관심을 두지 않았다.

푸치니는 처음에 주세페 자코사에게 대본을 맡겼는데, 처음 구성은 1막과 2막이 한 막으로 이루어지고 무제타 집 정원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미미가 로돌포를 버리고 자작가로 떠나는 장면 등 최종본에는 없는 내용이 있었다. 푸치니는 플롯을 입맛에 맞게 바꾸고자 자코사와 격렬한 의견 대립을 벌였고, 루이지 일리카가 타협안을 내놓으면서 대본 작업에 참여하였다.

원작 소설은 실존 인물을 모델로 삼았으며, 로돌프(Rodolphe)는 앙리 뮈르제 자신이었다고 한다. 콜리네는 철학자 장 왈롱(Jean Wallon)과 마르크 트라파두(Marc Trapadoux)를 합친 인물로, 학구적인 성격은 장 왈롱을 본떴고 외투 주머니에 책과 논문 따위를 잔뜩 넣고 다니는 모습은 트라파두를 본떴다.

마르첼로는 소설 속에서 마르셀(Marcel)인데, 라자르(Lazare)와 타바르(Tabar)라는 화가를 참고했다. 타바르는 실제로 《홍해》를 그렸으며, 이 그림 제목을 《헤브라이 사람이 건너는 홍해 길》이라 했다가 전시회 응모에 여러 차례 실패하면서 《루비콘 강 건너기》라고 바꾸기도 했다.

쇼나르는 알렉상드르 샨(Alexandre Schanne)이었는데, 뮈르제는 샤나르(Shannard)로 고쳐 썼으나 소설을 신문에 연재할 때 인쇄 오류로 쇼나르(Schaunard)가 되었다. 샨은 본디 화가였으나 나중에 음악을 공부해 합창단에서 활동하다가 비올라 연주자가 되었다.

미미는 루시유(Lucille)라는 아가씨 이름과 별명을 땄다. 그러나 열쇠를 잃어버리는 사건과 병 들어 죽은 얘기는 조각가 자크(Jacques)의 아내 프랑신(Francine)을 모델로 삼았다. 프랑신은 안타까운 죽음을 맞았다. 프랑신이 입원한 다음 날 남편 자크는 병원에 갔다가 아내가 벌써 죽었다는 말을 듣는다. 일주일 뒤 같은 병원 간호사로부터 사실은 착오가 있었으며 프랑신은 다른 병실로 옮겼을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나 급히 찾아간 병원에서 프랑신이 이미 하루 앞서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무제타는 소설 속 마르셀 부인으로 나오는 뮈제트(Musette)이며, 《라 보엠》에 나오는 무제타를 쏙 빼닮은 인물이다. '뮈제트'는 노래를 좋아한다는 뜻으로 붙인 장난스러운 이름으로 프랑스어로 '아코디언 음악'을 가리킨다. 실존 인물은 이름이 마리에트(Mariette)였고, 남편 몰래 돈을 훔쳐 다른 남자와 함께 배 타고 달아나다가 배가 가라앉는 바람에 죽었다.

배경

《라 보엠》을 감상할 때 몇 가지 배경 지식을 알아두면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콜리네가 들먹이는 그리스·로마 시대 인물들은 자막으로 짧게 다루었으나 좀 더 긴 설명이 필요한 것들이 있다.

카르티에 라탱 (Quartier Latin)
소르본 대학 등 교육기관이 모여 있는 동네이다. 라틴 지구, 라탱 지구, 라틴 쿼터(Latin Quarter)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외국에서 온 유학생과 예술가들이 많아서 당시 이곳에서는 라틴어가 공용어처럼 쓰였다. 2막에서도 로돌포 친구들이 라틴어로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20세기 몽마르트처럼 화가 빈센트 반 고흐를 비롯한 예술가들이 모여 살았다.

카페 모뮈스 (Café Momus)
카르티에 라탱에 실제로 있던 찻집 겸 식당 이름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모모스(μῶμος) 신 이름을 따왔으나 프랑스식 발음은 '모뮈'에 가깝다. 원작 소설을 쓴 앙리 뮈르제가 자주 드나들었다고 한다. 《라 보엠》에서 묘사된 바와는 달리 모뮈스 카페 앞은 실제로는 광장이 아닌 좁은 골목길이었다.

지마라 (Zimarra)
크고 낡고 허름한 남성용 외투를 이르는 말이며 콜리네가 입고 다닌다. 원작자 뮈르제는 이 외투에 매우 큰 주머니가 있어서 책과 논문 따위를 잔뜩 넣어 다녔다고 썼다. 콜리네가 4막에서 이 외투를 팔기에 앞서 그토록 안타까워하는 까닭은 이 외투가 단순한 옷이 아니라 '이동식 책장'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2막에서는 콜리네가 이 옷을 몹시 아끼면서 수선 맡기는 모습도 나온다.

루이 필리프(Louis-Philippe d'Orléans)
1830년 '7월 혁명'으로 시민의 지지를 받아 '프랑스 시민의 왕'이 되었다. 루이 필리프 정권은 초기에는 프랑스 혁명 정신을 잊지 않았으나 나중에 왕정주의와 보수주의 정권으로 바뀌어 갔다. 영국 정치제도를 도입하고 금융업과 수공업을 장려하였으며, 이때 부르주아들이 빠르게 자본을 쌓아갔으나 노동자들은 비참하게 살았다. 루이 필리프는 1848년 '2월 혁명' 때 왕위를 잃고 영국으로 망명하였다.

프랑수아 기조(François Pierre Guillaume Guizot)
역사학자이자 정치가로 7월 혁명 때 부르봉 왕가를 무너뜨리는 데 힘썼고, 1847년 9월부터 이듬해 2월 혁명이 일어날 때까지 프랑스 수상으로 지냈다. 콜리네가 기조 수상을 들먹이는 대목으로 미루어 《라 보엠》은 1847년 12월 24일부터 1848년 3월 8일(재의 수요일)까지를 시간적 배경으로 삼았음을 알 수 있다. 2월 혁명은 22일부터 24일까지 일어났다.

푸른 수염 (Il Barbablù; La Barbe-Bleue)
샤를 페로(Charles Perrault, 1628~1703)가 쓴 동화 제목으로 중세 귀족이자 연쇄 살인마로부터 비롯한 이야기라고도 한다. 푸른 수염을 기른 돈 많은 귀족이 새 아내를 맞았는데, 잠시 집을 떠나면서 아내에게 지하에 있는 작은 방에는 절대로 들어가지 말라고 말한다. 아내가 호기심에 그 방에 들어가 보았더니 옛 아내들이 토막 난 시체가 되어 있었다. 《라 보엠》에서는 2막에서 무제타가 알친도로에게 '푸른 수염처럼 말하지 마!'라고 소리치는데, 냉혈한처럼 매정하게 말하지 말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버르토크가 《푸른 수염》 동화를 바탕으로 오페라를 쓰기도 했다.

베리스모 오페라

《라 보엠》은 '베리스모 오페라'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꼽힌다. 베리스모(Verismo)라는 말은 본디 '사실주의'(realism)라는 뜻으로, 대략 1875년에서 1895년 사이에 일어난 이탈리아 문학 운동을 가리킨다. 사실주의는 자연주의(naturalism)와는 조금 다르나 명확히 구분되지 않으며, 베리스모 문학에는 프랑스 자연주의가 큰 영향을 끼쳤다.

자연주의 철학은 과학적인 연구 방법을 중시하며 초자연적인 현상과 가설마저도 실체를 규명할 수 있는 자연 현상으로 파악하려는 사상이자 운동이다.

자연주의 문학은 낭만주의 문학에 반대하며 현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려 했던 사실주의 문학에서 파생했다. 진화론에 영향을 받아 환경이나 유전이 인물에 끼치는 영향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성적 욕망, 질병, 가난, 인종 차별 등 전통적인 아름다움이나 고상함과는 거리가 있는 것들을 그대로 작품에 담았다.

자연주의 연극은 서민 계층을 중심으로 하는 인물 구성, 구어체 대사, 초자연적·신화적인 존재와 이국적인 요소를 배제하려는 경향, 3차원적 무대 장치, 실제 상황에 가까운 사건 전개 등을 특징으로 한다.

그러나 베리스모 오페라는 베리스모 문학 등과는 다르다. '베리스모'라는 말을 널리 퍼트린 작품은 마스카니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인데, 이 작품은 베리스모 문학을 이끌었던 조반니 베르가(Giovanni Verga, 1840~1922)가 쓴 소설을 바탕으로 했으나 오페라로 거듭나면서 사실주의적 성격이 크게 옅어졌다. 마스카니와 함께 대표적인 베리스모 오페라 작곡가로 꼽히는 푸치니와 레온카발로 등이 남긴 작품도 사실주의 또는 자연주의 문학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

음악학자 달하우스(Karl Dahlhaus, 1928~1989)가 한 말을 빌자면, 베리스모 오페라는 베리스모 문학과 달리 그 본질은 베르디 등으로부터 이어지는 '멜로드라마'가 발전한 형태이며, 자연주의 연극과 달리 이국적인 배경과 풍물을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한다.

달하우스는 베리스모 오페라 작곡가들이 이국적인 요소를 사용하여 두 가지 효과를 누렸다고 지적했다. 첫째로 다른 나라, 다른 시대 음악 양식을 써서 손쉽게 다채로운 짜임새를 노릴 수 있었다. 둘째로 바그너 《트리스탄과 이졸데》부터 베르크 《보체크》, 《룰루》까지 현대음악으로 나아가는 큰 흐름을 마냥 무시할 수는 없던 마당에 이국적인 요소가 구식 작곡가라는 인상을 피할 수 있게끔 해주는 장치가 되어 주었다.

《라 보엠》은 《나비 부인》이나 《투란도트》 등과 견주면 지역색이 옅다. 그러나 이 작품 또한 이국적이라 할 수 있다. 이탈리아 오페라이면서도 이탈리아가 아닌 국제도시 파리, 그것도 라틴어를 공용어로 쓰던 대학가를, 그리고 작품이 발표된 1896년 당시가 아니라 1847~8년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이다. (1960년대 홍콩을 배경으로 하는 한국 영화가 새로 나온다고 생각해 보라.) 달하우스는 2막에 나오는 무제타의 왈츠와 크리스마스 이브를 맞은 '카르티에 라탱'을 중요한 이국적 요소로 꼽았고, 드뷔시는 3막 도입부를 두고 19세기 중반 파리 겨울 풍경을 가장 사실적으로 묘사했다고 평했다.

베리스모 오페라는 베리스모 문학 등과는 맥락이 다르지만 사실주의·자연주의적 성격을 찾을 수는 있다. 무엇보다 《라 보엠》은 베리스모 오페라 가운데서도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대사가 주는 생생한 현장감이 매우 뛰어난 작품이다. 음악과 관련해 베리스모 오페라에 영향을 준 작곡가로는 마스네와 바그너 등을 꼽을 수 있으며, 벨칸토 콜로라투라를 앞세우는 전통적인 오페라와 달리 성악과 관현악이 플롯 전개에 긴밀하게 얽히게 하고 아리아와 레치타티보를 가르는 경계를 흐리는 등 극적 현장감을 높이는 기법이 이와 관련이 있다.

당신의 사랑은 88만원보다 비싼가?

'88만원 세대'라는 말이 이미 일상어처럼 자리 잡았다. 그리고 어느 신문에는 "사랑은 88만원보다 비싸다"라는 제목으로 돈이 없어 연애를 포기한 사연들을 소개하는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88만원 세대』 저자인 우석훈은 "한국전쟁 직후에도 서울의 청춘남녀가 남대문부터 동대문까지 거닐며 연애하는 재건 데이트가 유행했다"며 "지금이 경제적으로 당시보다 더 어렵진 않을 텐데, 무엇이 청춘의 열정마저 메마르게 하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라 보엠》을 보라. 한겨울 옥탑방에서 불도 못 때고 살면서도 사랑과 예술과 학문을 얘기하는 젊은이들이 있다. 이 사람들은 왜 이렇게 살까? 어째서 가난하게 살면서도 즐거워 보일까? 자유롭기 때문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영혼을 뒤흔드는" (Fremon già nell'anima) 감동을 누리기 때문이다.

'보엠'(Bohème)이란 '보헤미안'에서 온 말로 자유분방하게 살아가는 예술가를 일컫는 말이다. 보헤미안을 자유롭게 하는 것은 사랑과 예술과 학문이지 돈이나 '스펙'이 아니다. 우리는 보헤미안이 될 필요는 없고 일부러 가난하게 살 필요도 없다. 다만, 스스로 물어보자. 당신은 '돈'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가? 당신의 사랑은 88만원보다 비싼가?

그래도 공감하기 어렵다면 구자범과 광주시립교향악단이 들려주는 《라 보엠》에 빠져 보자. 로돌포, 미미와 함께 보헤미안이 되어 사랑에 빠져 보자. 그리고 사람이건 예술이건 학문이건 사랑하며 살자. 비록 《라 보엠》은 비극으로 끝날지라도 그것이 인생의 끝은 아니다.

2010년 10월 24일 일요일

2010년 3월 17일 수요일

사무엘 윤 의혹?

사무엘 윤

사무엘 윤. 출처는 사무엘 윤 페이스북.

베이스 바리톤 사무엘 윤. 오페라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이름이고, ☞바그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사람이다. 그래도 모르겠는 사람은 김원철이 옛날에 썼던 연주회 리뷰를 보시라:

합창단과 독창진이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훌륭했으며, 그 가운데 바리톤 사무엘 윤이 누구보다도 뛰어났다. 바그너 전문 가수답게 풍부한 성량, 깊고 안정된 음색, 나무랄 데 없는 딕션과 독일인보다 더 독일인다운 '그르릉' 소리, 독일어 무성음을 타악기처럼 활용하는 솜씨, 유럽 오페라 극장에서 잔뼈가 굵은 경험에 힘입은 배우 본능, 연주회장을 압도하는 제왕의 카리스마! 무엇보다 그는 관현악을 멋대로 끌고 가는 대신 음악의 흐름에 맞게 어우러질 줄 알았다. 이것은 오페라 아리아 한 가락 멋지게 부르는 데에만 익숙한 한국 가수들에게서 찾아보기 어려운 값진 능력이다. 이런 가수가 더 많이 나와서 베토벤 교향곡 9번을 연주한다면 그 얼마나 멋지겠는가! 재작년 성남 아트센터에서 있었던 구노의 〈파우스트〉에서 메피스토펠레로 나와 신들린 연기와 노래를 들려준 가수를 기억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바로 그가 이날 또 한 번 관객을 사로잡은 그 가수다. 사무엘 윤. 장담하건대 열 몇 해 안에 거물이 될 사람이니 그 이름을 꼭 기억해두기 바란다.

☞ 브람스 《독일 레퀴엠》 연주회 리뷰. 정명훈―서울시향 연주, 2007년 11월 28일. http://wagnerian.textcube.com/538

▲ 로시니 《세비야의 이발사》 가운데 〈La Calunnia 험담은 미풍처럼〉. 제 228회 하우스 콘서트, 2009년 8월 7일. 출처: http://freepiano.net/bbs/zboard.php?id=HC_review&no=247

▶ 발단

그런데 언젠가 이 블로그에 사무엘 윤한테 무슨 의혹이 있다는 댓글이 달린 일이 있었다. 김원철은 남 뒤에서 헐뜯는 말을 싫어해서 그냥 잊어버리고 말았는데, 그것을 읽은 어떤 사람이 사무엘 윤한테 얘기해 주었나 보다. 그런데 그 '의혹'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지 사무엘 윤이 궁금했는지 나한테 이메일로 연락해 왔더라. 김원철은 댓글을 쓴 ㄱ 씨와 사무엘 윤 모두와 조금씩 친분이 있어서 두 사람이 얼굴 붉히는 일이 없도록 나서게 되었다.

▶ 의혹을 알려주마

그 의혹은 뜻밖에 정치적으로 민감할지도 모르는 일과 얽혀 있었다. 글타… 자세히 알려고 하면 다친다.

… 아, 이게 아니고. (" )( ")

짧게 쓰자면 ㄱ 씨 직장이 특정 기업에 특혜를 주었다는 의혹을 받았고, 지난해 4월 국정감사 때 모 국회의원이 다른 많은 의혹과 함께 그것을 들추었다. 결론이 어떻게 났는지 자세히는 모르겠으나, ㄱ 씨는 아마도 그 의혹이 어느 정도 사실이라 믿으며, 이에 대해 비판적인 듯하다.

그런데 그 특정 기업이 사무엘 윤이 소속한 매니지먼트(Management) 회사더라. 이건 숨길 것도 없다. MCM이라는 유럽 회사이고, 유럽에서 잘나가는 한국인 오페라 가수 가운데 다수가 이곳 소속이라 보면 된다. 그리고 정황을 보면 MCM 잘못이라기보다는 특혜를 주었다고 의혹을 받은 곳 책임자 잘못이다. 다른 것을 다 떠나서, 사무엘 윤이 MCM 소속이라는 이유만으로 덤터기 쓸 까닭은 없어 보인다.

ㄱ 씨는 그 '의혹'이라는 말이 "지금에서는 정확하게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단다. ㄱ 씨 처지에서 문제가 된 댓글을 다시 읽어보면, 사실은 사무엘 윤이 그 의혹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볼 근거는 없다. 다만, 맥락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오해할 만하므로 ㄱ 씨한테 어느 정도 잘못이 있다고 판단된다.

김원철이 알아낸 사건 요지는 이렇다.

사무엘 윤 2004 Bayreuth

▲ 《파르지팔》에서 성배 기사로 분한 사무엘 윤. 2004년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크리스토프 슐링엔지프 연출. © Bayreuther Festspiele GmbH. http://www.bayreuther-festspiele.de/fsdb_en/personen/13818/index.htm

따, 딱히 웃기려고 이 사진을 고른 건 아니다. 진짜라능. (" )( ")

사무엘 윤 facebook

▲ 이거슨 멀쩡한 사진. 출처는 사무엘 윤 페이스북.

2009년 10월 18일 일요일

바그너 3문 3답

방명록과 메일로 누가 질문을 해서 이참에 새 글로 올립니다. 참고로 저한테 연락하려면 트위터가 가장 빠르고 그다음이 블로그입니다. 메일은 하루에 한 번씩은 확인하지만 더 빠르다고 하기는 어려워요. ^^

▶ 바그너 음악은 '아름다운가'

어떤 대상의 아름다움은 그 대상보다는 '아름답다'라는 말 속에 있습니다. 아름다움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말이지요. 베토벤 《교향곡 5번 C 단조》는 아름답습니까? 친구들은 아름답다고 합니까? 부모님은? 13세기 유럽 사람은 어떨까요?

▶ 가사와 음악의 관계

세 가지 정도로 생각할 수 있겠네요.

두운. 당시에는 각운이 '대세'였으나 바그너는 두운을 썼습니다. 《니벨룽의 반지》에서는 시작부터 두운이 나오지요. "바이아 바가 보게 두 벨레~" 자세한 내용은 이 책을 참고하세요: 안인희, 『게르만 신화·바그너·히틀러』 (서울: 민음사 2003)

가사 그리기(word painting). 가사와 음악이 어우러지게 하는 기법은 중세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전통입니다. 이를테면 '지옥'이라는 가사에서 하행 도약 음정이 나오거나 불협화음이 나오는 식이지요.

라이트모티프. 가사 그리기와 나란히 생각할 수 있겠는데, 자세한 내용은 요기를 참고하세요: http://wagnerian.textcube.com/entry/Leitmotiv

▶ 신계 멸망의 의미

작품을 내놓고 나면 작가는 죽어야 한다 했으니 해석하는 사람 마음이겠지요. '살아남은 놈이 강한 놈이다.'라는 명제에 비추면 신보다 인간이 강하다고 해석할 수도 있겠습니다. ;;

발할 성에 대한 가장 흔한 해석은 몰락해 가는 거대 권력입니다. 이를테면 나치 시대 베를린이 함락될 때 '발할 성이 무너졌다!'라고들 했지요. 그날 독일 라디오 방송이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하루 내내 《신들의 황혼》을 틀었다는 말도 있는데 자세한 내용은 ☞바로 아래 글을 참고하세요. 또 9·11 사건 때에도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이 더러 있었습니다.

《신들의 황혼》 오리지널 대본에는 음악에는 쓰이지 않은 브륀힐데의 독백이 더 있습니다. 바그너 자신의 '해설'이라고도 할 수 있겠는데요, 자세한 내용은 『게르만 신화·바그너·히틀러』를 참고하세요.

그밖에 《니벨룽의 반지》 영상물이 여럿 있으니 연출을 어찌했는지를 살펴보면 연출가가 이 대목을 어찌 해석했는지를 알 수 있지요. ☞ 슈투트가르트 극장 프로덕션(Zagrosek 지휘) 같은 엽기 연출도 꼭 참고하세요. ^^

2009년 9월 26일 토요일

《니벨룽의 반지》 음반을 처음 사실 분께 추천하는 음반 모음

☞바그너 ☞《니벨룽의 반지》를 처음 접하시는 분이 관심 두실 만한 음반들 특징을 간단히 정리해 봤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곳곳에 있는 리뷰를 참고하세요. 그리고 선택된 음반 말고도 훌륭한 음반이 많으니 오해 없으시기 바라며, ☞《니벨룽의 반지》 전곡 음반을 이미 두 가지 이상 가지고 계신 분은 그냥 재미로만 보시기 바랍니다.

개인적인 선호도 순으로 음반을 나열했고, 항목별 판단은 조금 즉흥적으로 내렸습니다. 기억이 가물가물하거나 제가 가지고 있지 않은 음반도 있으니 다른 분들께서 의견을 주시면 정리한 내용을 새로 올리겠습니다. ^^;

최종 수정: 2009년 9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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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6-67 - Böhm - Adam, Nilsson, Windgassen, Neidlinger - Bayreuth

음질: ★★★
오케스트라: ★★★★★
가수: ★★★★
총평: 처음 접하시는 분께 추천함. 버짓 판에는 ☞대본이 없으므로 인터넷으로 따로 구해야 함.


☞ 1991-92 - Barenboim - Tomlinson, Evans, Jerusalem, von Kannen - Bayreuth

음질: ★★★★★
오케스트라: ★★★★
가수: ★★★☆
총평: 음질만으로도 최고의 선택으로 꼽힐 만한 음반. 같은 음원으로 DVD가 나왔음.


☞ 1966-70 - Karajan - Stewart, Dernesch, Thomas, Kelemen - Berlin

음질: ★★★★
오케스트라: ★★★★
가수: ★★★☆
총평: 화끈한 것을 원하시는 분께 비추, 최고의 차선


☞ 1958-65 - Solti - Hotter, Nilsson, Windgassen, Neidlinger - Wien

음질: ★★★★
오케스트라: ★★★☆
가수: ★★★★
총평: 화끈하게 깨부수는 연주를 찾는 분을 위한 궁극의 아이템


☞ 1956 - Knappertsbusch - Hotter, Varnay, Windgassen, Neidlinger - Bayreuth
☞ 1957 - Knappertsbusch - Hotter, Varnay, Windgassen, Neidlinger - Bayreuth
☞ 1958 - Knappertsbusch - Hotter, Varnay, Windgassen, Andersson - Bayreuth

음질: ★
오케스트라: ★★★☆
가수: ★★★★★
총평: 처음 접하는 분께는 말리고 싶은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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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1-92 - Barenboim - Tomlinson, Evans, Jerusalem, von Kannen - Bayreuth

음질: ★★★★★
오케스트라: ★★★★
가수: ★★★☆
연출: Harry Kupfer. 저 유명한 '레이저 쇼!' ^^;
총평: CD와 같은 음원. 무조건 최고의 선택.


☞ 1979-80 - Boulez - McIntyre, Jones, Jung, Becht - Bayreuth

음질: ★★★☆
오케스트라: ★★★☆
가수: ★★★
연출: Patrice Chéreau. 당시에는 파격적이었으나 요즘 시각으로는 얌전함
총평: 간결하고 투명하게(?) 정제된 해석. 누가 불레즈 아니랄까 봐.


☞ 2002-03 - Zagrosek - Rootering, DeVol, West, Ruuttunen - Stuttgart

음질: ★★★★
오케스트라: ★★★
가수: ★★★
연출: Joachim Schlomer, Christof Nel, Jossi Wieler, Sergio Morabito & Peter Konwitschny
총평: 연주는 좋으나 엽기 연출 때문에 웃느라 집중이 잘 안 됨.


☞ 1989-90 - Levine - Morris, Behrens, Jerusalem, Wlaschiha - New York

음질: ★★
오케스트라: ★★★
가수: ★★☆
연출: Otto Schenk. 고전적 연출을 찾는 분께는 이 판 외에 마땅한 대안이 없음.
총평: 연주는 좋지만 톤 마스터링의 결함이 치명적. 바이로이트에서 한물간 가수들(특히 베렌스).


☞ 1989 - Sawallisch - Hale, Behrens, Kollo, Wlaschiha - München

음질: ★★★★
오케스트라: ★★★★
가수: ★★★
총평: 제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만, CD와 같은 음원 맞죠? 연주는 참 좋은데, 돈이 많으신 분께 추천 ㅡㅡ;




문득 항목별 별 개수를 합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결과는,

1위: 바렌보임 (12.5)
2위: 뵘 (12)
3위: 카라얀, 숄티 (11.5)
5위: 자발리슈 (11)
6위: 불레즈 (10.5)
7위: 차그로제크 (10)
8위: 크나퍼츠부슈 (9.5)
9위: 레바인 (8)

개인적인 선호도와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군요.
음질을 무시하고 연주에 대한 평가만 종합하면 이렇습니다.

1위: 뵘 (9)
2위: 크나퍼츠부슈 (8.5)
3위: 카라얀, 바렌보임, 숄티 (7.5)
6위: 자발리슈 (7)
7위: 불레즈 (6.5)
8위: 차그로제크 (6)
9위: 레바인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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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철. 2004.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2009년 9월 23일 수요일

바그너 주요 작품과 추천 음반

※ 추천 음반은 순전히 저의 당파적 주관에 따라 선정하였습니다. 작품을 처음 접하시는 분들을 위해 음질이 나쁜 것들은 되도록 뺐습니다.


- 초기 -

《요정》 (Die Feen)
《연애금지》 (Das Liebesverbot)
《리엔치》 (Rienzi)

- 중기 -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Der fliegende Holländer)
☞ 추천 음반: Karl Böhm (conductor) Bayreuther Festspiele 1971 DG
《탄호이저》 (Tannhäuser (und der Sängerkrieg auf Wartburg))
☞ 추천 음반: Wolfgang Sawallisch (conductor) Bayreuther Festspiele 1962 DECCA
《로엔그린》 (Lohengrin)
☞ 추천 음반: Georg Solti (conductor) Wiener Philharmonker 1986 DECCA


- 후기 -

《니벨룽의 반지》 (Der Ring des Nibelungen)
《라인의 황금》 (Das Rheingold)
《발퀴레》 (Die Walküre)
《지크프리트》 (Siegfried)
《신들의 황혼》 (Götterdämmerung)
☞ 추천 음반: Daniel Barenboim (conductor) Bayreuther Festspiele 1991-92 Teldec
☞ DVD: 《라인의 황금》 / 《발퀴레》 / 《지크프리트》 / 《신들의 황혼》
《트리스탄과 이졸데》 (Tristan und Isolde)
☞ 추천 음반: Karl Böhm (conductor) Bayreuther Festspiele 1966 DG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어》 (Die Meistersinger von Nürnberg)
☞ 추천 음반: Silvio Varviso (conductor) Bayreuther Festspiele 1974 Philips
《파르지팔》 (Parsifal)
☞ 추천 음반: Herbert von Karajan (conductor) Berliner Philharmoniker 1980 DG

최종 수정: 2008년 7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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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철. 2004.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2009년 9월 9일 수요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표 구하는 법

1. 개인 자격으로 표를 신청하는 방법


독일 바그너 협회에 우편으로 신청해야 한다더군요. 인터넷이나 전화 따위로는 절대로! 안 된답니다. (나중에 고침: 2011년부터, 그러니까 2012년 축제 표부터는 인터넷으로도 신청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신청하고 한 10년쯤 기다리면 차례가 돌아온다는데, 저는 정말 11년 기다려 표 구했다는 사람 바이로이트에서 봤습니다. 진짜인지 구라인지...;;

2. 한국 바그너 협회에 가입하고 표를 신청한다 ― 2012년부터 무효


독일 바그너 협회나 한국 바그너 협회나 표 때문에 생긴 단체라더군요. 독일 바그너 협회에서 각국 협회에 표를 나눠주기 때문에 바그너 협회에 신청하는 게 가장 좋습니다. 그러나 다들 바이로이트에 가고 싶어해서 그 해 바로 표를 구하기는 쉽지 않다고 합니다. 운 좋으면 다른 회원들이 시간 안 맞아서 못 가는 표를 쉽게 얻을 수도 있겠지만요. 바그너 협회 가입 절차는 저도 회원이 아니라 잘 모르겠습니다.

※ 나중에 붙임: 2012년부터는 각국 바그너 협회에 표를 할당하지 않기로 했다는군요. 지난 2011년 6월에 독일 하원이 공짜표를 줄이고 표값을 낮추라고 요구한 일과 관련 있는 듯합니다. 이번 일은 공짜표 줄이는 일이나 표값을 낮추는 일과는 관련이 없지만, 바이로이트에 대한 색안경을 줄이는 효과는 있겠네요.

3. 바이로이트 극장 출연진에게 부탁하는 방법


출연진에게 표가 몇 장씩 나온다고 합니다. 말만 잘하면 그거 한 장쯤 얻을 수도 있지 싶네요. 연광철 선생과 사무엘 윤 선생이 요즘도 바이로이트에 꾸준히 출연하고 계시니 친분이 없더라도 용기를 내어 연락해 보세요. 잘만 하면 본 공연이 아니더라도 게네랄프로베(Generalprobe)라고 해서 실제 공연과 똑같이 하는 최종 연습을 참관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사무엘 윤 페이스북: http://www.facebook.com/profile.php?id=100000626343969
사무엘 윤 홈페이지: http://cafe.daum.net/samuelyoun  (사무엘 윤 아이디는 samy입니다.)

4. 암표상을 이용하는 방법


저는 이쪽으로는 잘 모르겠지만, 독일 eBay 등을 통해 비싸게 매매된다더군요. 돈 많으신 분께 추천. 단, 이것도 위험 부담이 있습니다. 표에 원래 주인 이름이 버젓이 쓰여있어서 암표라는 사실을 들킬 수도 있다고 합니다.

5. "Suche Karte" 신공


마지막 방법은 축전 기간에 바이로이트에 죽치고 있으면서 "Suche Karte"(표 구함) 종이를 열심히 들고 서 있는 겁니다. 극장이 있는 언덕을 올라가면 왼쪽에 택시가 서는데, 차에서 내리지 않고 창문으로 표를 팔고 바로 집에 가는 사람들 더러 있습니다. 운이 좋아야 표를 구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지만, 성공 사례가 분명히 있고 저 또한 이걸로 성공했습니다. 틸레만이 지휘하는 새 반지 프로덕션이라 표 구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었는데도 이런 수가 생겼단 말이죠.

저는 학회 때문에 이탈리아에 갔다가 끝나고 무작정 바이로이트로 직행해서 바이로이트로 가는 기차 안에서부터 "Suche Karte" 피켓 들고 한 바퀴 돌았습니다. 사람들이 웃다가 쓰러지더군요. 모르는 사람은 기차표 구하는 줄 알기도 하더라는...;; 그 때 저를 본 귀인-_-이 자기 엄마한테 그 얘기를 했나 봅니다. 그 아주머니가 극장 앞에서 저를 발견하고는 표를 싸게 넘기더군요.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참고하세요:


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img/b/R29vZ2xl/AVvXsEgsRdBVI_VmarZlNyfrM1xXe5rD92D0YzLdXNHc27j3-wSr5WT8bg0mpPL8-ieLV_sHUA3irzaoc0ilo3v5J7KFb6f91OJVGsCZMmE8qNQGPRciAA_24TEWPimYpa4wfv38F-Lyno9dKK8/w600/

김원철이 그때 들고 있었던 전자잉크 이북리더. 일단 튀니까 표 구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대신 튀는 만큼 쪽팔린다. -_-;


6. 2011년부터 인터넷 신청을 받습니다!


2011년 9월 15일부터 2012년 축제 표 신청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온라인 신청 가능한 공연이 1회뿐이지만, 그나마 바이로이트 역사상 처음입니다. 다만, 온라인 결제는 안 되고, 그냥 신청만 받습니다. 우편으로 신청하는 절차가 조금 편리해졌다는 대목에서 그냥 만족하기로 합시다. (…)

나중에 붙임: 2013년 10월에 2014년 공연 티켓 일부를 결제까지 온라인으로 진행했습니다. 표는 90분만에 매진됐다고 합니다.


※ 주의!!!

표 구하기 못지않게 숙소 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되도록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그날 고생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무작정 가볼 작정이라면 여행자 안내소에서 숙소 안내 책자를 받아서 한 군데씩 전화 해보세요. 극장에서 제법 떨어진 곳을 공략해야 그나마 가능성이 있습니다.

2011년 12월 31일 고침.
바이로이트 또 가고 싶다!

정보공유라이선스 김원철. 2008.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2009년 9월 8일 화요일

이졸데는 왜 죽었을까?

1. 바그너스러운(?) 논리

   "바그너 작품에서 여자가 죽는 데에는 이유가 없다."
    - 어느 바그너 환자의 우스갯소리.

 

2. 산업재해(?) 논리

   "노래가 너무 힘들어서 부른 뒤 죽었다."
    - 고클래식 guity00님 의견. (2009년 9월 9일)



3. 쇼펜하우어스러운 논리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쇼펜하우어의 사상으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았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트리스탄과 이졸데》에는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궁극적 의지 부정의 상태'가 바그너 식으로 변용(?)되어 나타나며, '사랑을 통해 의지의 완전한 진정에 이르는 구원의 길'은 곧 죽음에 이르는 길이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을 참고 하라: ☞엄선애, "사랑의 죽음"을 통한 구원 - 리하르트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小考, 뷔히너와 현대문학 제 21호.)

다음은 이졸데의 마지막 대사이다.

In dem wogenden Schwall,
in dem tönenden Schall,
in des Welt-Atems
wehendem All ---
ertrinken,
versinken ---
unbewußt ---
höchste Lust!


(Isolde sinkt, wie verklärt, in Brangänes Armen sanft auf Tristans Leiche. Rührung und Entrücktheit unter den Umstehenden. Marke segnet die Leichen. Der Vorhang fällt langsam.)


파도치는 물결 속에,
소리치는 울림 속에,
세상 숨결 불어오는
우주 속에
빠져들어,
가라앉아
나를 잊으리라
더없는 기쁨이여!


(이졸데는 변용된 듯 브랑게네 품에서 트리스탄 몸 위로 부드럽게 쓰러진다. 곁에 있는 사람들은 넋을 잃고 바라본다. 마르케는 주검에 축복을 내린다. 막이 천천히 내린다.)


(김원철 옮김.)

여기서 변용(verklärt; transfiguration)은 곧 '궁극적 의지 부정'을 통한 열반의 상태로 이해할 수 있다.

 

4. 실증주의적(?) 논리

김원철의 망상 속에서 탄생한 가설이다. 형이상학적 사유, 또는 불교적 해탈에 대한 강변으로부터 벗어나 구체적인 이졸데의 사망 원인을 찾자면 무엇인가 석연치 않다. 그런데 텍스트를 잘 살펴보면 한 가지 확실한 자살 수단을 연상해 낼 수 있다. 그것은 1막에 등장했던 독약이다. 이졸데가 가지고 있던 독약은 브랑게네의 개김(?) 덕분에 아직 사용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었고, 3막에서 이졸데가 트리스탄을 찾아 오기 앞서 '수 틀리면 죽자!'라는 심정으로 그것을 품 속에 챙겨 두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음악적인 맥락에서 보면 '궁극적 의지 부정의 상태'가 마침내 시작되는 지점, 노골적으로 말해 성애의 육체적 쾌락이 정점에 이르는 지점은 "Welt-Atems" 부터이다. 이어지는 가사를 보라.

ertrinken,
versinken ---
unbewußt ---
höchste Lust!

빠져들어,
가라앉아
나를 잊으리라
더없는 기쁨이여!


독일어 실력이 뛰어나거나 또는 독일어 실력이 형편없더라도 독일어 텍스트를 열심히 따라가며 작품을 감상했던 사람이라면 여기서 낱말 두 개를 떠올리는 데에 어려움이 없을 줄로 믿는다. 바로 'trinken'(마시다)과 'Trank'(음료, 약)이다. 독약을 마시고? 옳거니. 그리고? 'unbewußt'는 몰아(沒我)로 풀이할 수 있겠으나 더 따지자면 의식을 잃는다는 뜻이다. 죽었군.

(최종 수정: 2009년 9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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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 7일 월요일

《니벨룽의 반지》와 《니벨룽겐의 노래》: 표기 문제

《니벨룽의 반지》, 《니벨룽겐의 반지》, 《니벨룽엔의 반지》 가운데 어느 것이 바른 표기인가에 대한 논란은 심심할 만하면 나오는 주제입니다. 최근에는 《니벨룽의 반지》로 표기가 통일되어 가는 양상을 보이고 있고, 개인적으로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니벨룽겐의 노래》마저 《니벨룽의 노래》가 되어 버리는 부작용을 보고 이 부분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Das Nibelungenlied》는 아시다시피 중세 문학입니다. 여기서 'Nibelungen'은 현대 독일어 문법과는 달리 단수 없는 복수형이며, 따라서 게르만 설화에서 이 단어는 언제나 니벨룽겐 종족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합니다. 《니벨룽겐의 반지》 또는 《니벨룽엔의 반지》가 옳다는 주장의 근거 또한 여기에 있습니다. ☞바그너의 의도가 이것과는 어떤 차이점을 가지는가에 대해서는 시시콜콜 얘기하지 않겠습니다만, 어쨌든 《니벨룽의 반지》는 바른 표기가 될 수 있어도 《니벨룽의 노래》는 좋지 않은 표기라는 것입니다. 《니벨룽겐의 노래》 또는 《니벨룽엔의 노래》라고 해야 합니다. '겐'이냐 '엔'이냐 하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고, 실제 독일어 발음에 더 가까운 것은 '엔'일 것입니다만, 여기서는 표준 맞춤법에 따라 '니벨룽겐'이라고 썼습니다.

결론은? 《니벨룽의 반지》가 바람직한 표기이지만 《니벨룽겐의 반지》 또는 《니벨룽엔의 반지》도 틀린 것만은 아닙니다. 그러나 《니벨룽의 노래》는 좋지 않은 표기입니다. 《니벨룽겐의 노래》 또는 《니벨룽엔의 노래》라고 해야 옳습니다.

일천한 독일어 실력으로 떠들어 봤습니다.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지적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2005년 9월 25일 씀. (원 출처는 김원철 옛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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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18일 화요일

2005.12.15. 《트리스탄과 이졸데》 2막 /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창단 20주년 기념연주회 (제149회 정기연주회)
<트리스탄과 이졸데> 2막
2005년 12월 15일 (목) 저녁 8시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지휘 : 이대욱
트리스탄 : 리차드 데커(Richard Decker)
이졸데 : 프란세스 진저(Frances Ginzer)
브랑게네 : 김여경
마르케 왕 : 양희준
멜롯 : 전태상




<트리스탄과 이졸데> 1막 전주곡과 "사랑의 죽음"이 국내 초연된 것이 1961년이다(KBS 교향악단, 데이비드 샤피로 지휘). 그리고 44년 만에 2막이 초연되었다. 불과 석 달 전에 <니벨룽의 반지> 국내 초연이 있었는데다 6개월 전에는 <탄호이저>가 1979년 국내 초연 이후 처음으로 전 막 공연되기도 한 터라 이번 공연이 상대적으로 빛바랜 감이 있기는 하지만, 바그네리안 입장에서는 어쨌든 역사적인 사건이라 하지 않을 수 없겠다. 한편, 코리안심포니는 여러모로 바그너와 인연이 많은 악단이다. 초대 음악감독이자 상임지휘자였던 고(故) 홍연택 선생은 국내 최초로 바그너 오페라 전 막 공연을 지휘한 분이시기도 하다(1974년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국립오페라단). 또한 한국을 대표하는 바그네리안이신 김민 선생이 코심의 이사장을 거쳐 현재 음악감독을 맡고 계시기도 하다.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개인적으로도 특별한 작품이다. 처음으로 진지한 태도로 대본을 따라가며 전 막을 감상한 바그너 작품이기도 하고, 이러저러한 이유로 바그너 작품 가운데 가장 깊이 파헤친 작품이기도 하기에 이번 공연에 감회가 남달랐다.

마침내 시작된 공연에서는 우선 무대가 어두워진 다음 박수 칠 기회를 주지 않고 지휘자가 조용히 등장하는 바이로이트적(?) 연출이 아주 좋았다. 불이 켜지는 동시에 '낮'의 모티프가 터져 나올 것을 기대했는데, 의외로 1막 전주곡이 시작되는 것이 아닌가? 덕분에 조명의 총체예술적 효과는 반감되었으나 예정에 없던 부분을 덤으로 감상하게 되었으니 한편으로는 반갑기도 했다.

이대욱의 해석은 특별히 모나지 않은 대신 참신함도 없이 무던했다. 이것은 현이 음표를 따라가기에 바빴던 탓이 크다고 생각되는데,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의 역량을 고려하면 현악기 주자들이 사력을 다했다고 말하기는 곤란하지만 연습을 게을리했다고 할 수도 없다. 다른 작품도 아니고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아니던가? 이런 작품은 국내 오케스트라가 연주해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무될 만하다. 현의 음량이 전체적으로 부족한 편이었지만 꼭 필요한 부분에서는 꽤 힘을 내기도 했다.

그래도 아쉬웠던 부분을 몇 가지만 떠올려 보자면, 우선 저 유명한 '오 사랑의 밤이여 우리를 덮어다오 O sink hernieder, Nacht der Liebe' 대목에서 현에 의한 몽환적인 리듬이 전혀 살아나지 않았다. 리듬 처리 자체가 충분히 또렷하지 못했고 보잉이 일치되지도 않았으며, 무엇보다 (피아니시모에 약음기를 사용하라는 지시가 있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모든 현이 같은 리듬을 사용하는 것치고는 음량이 너무 작았다. 결과는 꿈결처럼 붕 뜬 느낌의 리듬 대신에 안개 낀 듯 흐릿한 소리였다.

음악해석학(musical hermeneutics)에 기대어 말하자면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사랑은 바그너 이전의 전통적인 '불'의 심상이 아닌 '물'의 심상을 통해 나타난다고 할 수 있는데, 크래머(Lawrence Kramer)가 이에 대해 상세히 논한 바 있다.


남자와 여자의 결합, 다시 말해 사랑이야말로 (실질적으로든 비유적으로든) 인간을 창조하는 무엇이다. (...) [어느 누구도] 자신을 있게 한 사랑의 행위를 초월할 수 없으며, 단지 되풀이할 수 있을 뿐이다. (...) 그리고 이러한 반복을 통해 사랑은 파도가 밀물과 썰물에 따라 변하고 사라졌다 되살아나는 것을 닮은 특질을 가질 수 있게 된다. (135쪽)

리비도는 요컨대 다름 아닌 액체이며, 실로 프로이트가 즐겨 사용한 비유는 액체, 곧 사람들의 내면과 다른 사람들 사이를 오가는 흐름의 속성을 가진다. 전통적인 욕망의 불은 끊임없이 순환하고 끊임없이 율동 하는 매개체, 즉 물로 교체되었다. (141쪽)

욕망의 액체화로부터의 이상하지만 또한 지속적인 지류(支流)는 이 등장인물[Kate Chopin의 소설 The Awakening (1899)에 나오는 인물]의 성별에 따라 구분된 요구들 사이의 권력투쟁이다. 여자다움에 있어서, 욕망은 무엇보다도 바다, 파도의 밀물과 썰물, 이졸데의 'wogender Schwall'로 표현된다. 이러한 용례는 남녀 예술가 모두에게 일반적이다. (142쪽)

콘서트 버전의 전주곡에 바그너 자신이 붙인 프로그램 노트를 우선 살펴보면,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끊임없이 갈망하고 동경하며 자신을 스스로 갱신하는 밀물과 썰물로서의 욕망을 표현하는 것으로 줄곧 이해되었다. (147쪽),

- Lawrence Kramer., Musical Form and Fin-de-Siecle Sexuality. In Music as Cultural Practice 1800-1900,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90.

2막 2장, 'O sink hernieder, Nacht der Liebe,' mm. 1111-1122.
Ⓟ New York : Broude Brothers, [1900?] 출처: http://www.dlib.indiana.edu


이러한 물의 심상은 '끝없이 영원히, 하나 됨을 자각하리라 endlos ewig, ein-bewusst'에 이르면 거대한 파도로 변한다(마디 1598). 강력하게 몰아치던 음악은 '지고한 사랑의 쾌락이여! höchste Liebeslust!'에서 갑자기 여리게 변한 다음 다시 크레셴도를 부르는데(마디 1619), 이렇게 갑작스러운 음량 변화는 진정한 폭발을 준비하기 위한 것이며 감상자의 주의를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하게 끌어당기는 장치가 된다. ('지고한 사랑의 쾌락이여! höchste Liebeslust!'는 사랑의 2중창 마지막 대사이며, 마르케 왕의 등장과 함께 좌절된 사랑의 완성, 즉 쇼펜하우어적 해탈이 바그너에 의해 변용된 "열광적인 기쁨과 황홀"의 상태이다. 좌절된 사랑이 진정으로 완성되는 것은 작품의 끝 부분이며, 작품 전체의 마지막 대사는 이졸데의 '지고한 쾌락이여! höchste Lust!'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날 연주에서는 이 부분이 정신없는 동형진행(sequence) 속에 얼렁뚱땅 넘어가 버렸다.

1막 전주곡에서 때때로 호른 소리가 거칠 게 돌출되곤 했던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이것은 어쩌면 호른 주자의 실수일지도 모르지만 여기서는 일단 지휘자의 해석으로 간주하기로 하자. 도버 판 총보 첫머리에 있는 지시문에 따르면(펠릭스 모틀이 쓴 것으로 추정됨) 바그너는 부드러운 음색을 만들기 위해 내추럴 호른을 염두에 두고 작곡했다고 하는데, 연주자가 충분히 뛰어나다면 밸브 호른을 써도 무방하다고 한다. 잘은 모르지만 현대의 호른도 이 점에서 당시의 밸브 호른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호른이 지나치게 돌출되는 것은 그다지 좋은 해석이라 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며, 실제 음악적 맥락으로 보아도 이는 마찬가지다. 감정의 기복을 살리려는 의도였다면 이른바 '트리스탄 코드'를 중심으로 하는 세 번의 동형진행에서 다이내믹의 변화를 크게 하며 특히 마디 10과 마디 16의 스포르찬도를 강조하는 것 등이 더 필요하지 않았을까.

2막 전주곡에서는 베이스 클라리넷에 의한 이른바 '☞ 조급한 이졸데의 모티프' 부분에서 악기군 사이의 리듬 충돌에 묘한 매력이 있으며 개인적으로는 이것을 '☞ 이졸데 리듬'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대부분의 음반에서는 이것을 살리지 않고 다양한 방법으로 리듬 충돌을 피해간다. 이날 연주회에서는 현 소리를 아주 작게 함으로써 리듬 충돌의 핵심 원인이 되는 현의 싱코페이션 리듬을 무력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베이스 클라리넷 소리는 내가 알던 악기의 음색에 비해 너무 부드러워서 바순으로 대체한 것으로 오해하고는 깜짝 놀라기도 했다. 덕분에 나는 연주가 끝난 뒤 지휘자가 베이스 클라리넷 주자를 일으켜 세웠을 때 다시 한 번 놀라야 했다.

마르케 왕의 '어떤 불행으로도 씻을 수 없는 이 불명예를 왜 내게 주는가? Die kein Elend sühnt, warum mir diese Schmach?' 직후 베이스 클라리넷 소리를 들을 때면, 지난 2003년 9월 8일에 있었던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체임버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지휘: 로버트 쾨니히, 베이스: 전승현)에서 받았던 강렬한 기억이 떠오른다. 이날 베이스 클라리넷 주자는 크레셴도 폭을 최대로 늘림으로써 비탄에 빠진 마르케 왕의 심리를 압축적으로 표현하는 동시에 이 대목을 마르케왕의 모놀로그 전체의 절정으로 부각시켰다. 지휘자 로버트 쾨니히는 코심과 연주회를 통해 상당한 친분을 쌓고 있기 때문에 이번 연주회에서도 어떤 식으로든 지휘자의 해석에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하고 내심 기대했는데 웬걸, 여느 음반과 비슷하게 폭 좁은 크레셴도로 밋밋하게 넘어가 버렸다.

트리스탄 역의 리차드 데커(Richard Decker)는 음색이 배역에 나름대로 잘 어울리기는 했지만 바그너 가수로서의 힘은 부족해 보였다. 이성이 마비될 만큼 강렬한 파토스를 표현하기에는 목소리가 너무 부드러웠으며, 성량 자체도 충분히 크지 못해서 오케스트라 소리에 묻힐 때가 더러 있었다. 연주회장의 음향 문제를 고려하더라도 예전에 같은 장소에서 들었던 귀네스 존스나 사무엘 윤 등의 목소리를 떠올려 보면 리차드 데커는 바그너 가수의 미덕을 충분히 갖추었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 같다. 그런데 달리 생각하면 한국에서의 공연을 만만히 보고 목소리를 아낀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공연 내내 크게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 그러한 의혹을 뒷받침한다. 만약 그가 한국인이었다면 우리에게도 바그네리안 테너가 있다며 기뻐했겠지만, 많은 돈을 들여 모셔왔을 외국인 가수가 이 정도라면 그 돈이 좀 아깝다. 트리스탄, 에릭(방황하는 네덜란드인) 등의 역할을 맡은 바 있으며 내년에 지크문트 역을 맡을 예정이라고 한다. 내 생각에 지크문트 역이 매우 잘 어울릴 것 같다.

이졸데 역의 프란세스 진저(Frances Ginzer)는 리차드 데커보다 훨씬 더 실망스러웠다. 목소리가 오케스트라 소리에 파묻혀 제대로 들리지도 않을 때가 많았으며, 강세를 받지 못한 음을 속으로 먹어 버린 탓에(독일어 무성음 처리는 열심히 하더라) 레가토나 칸타빌레에 대한 개념이 있기나 할까 싶을 정도로 선율 윤곽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그나마 고음 처리를 곧잘 한 것은 다행이었지만, 이것은 결국 작품의 악명 높은 고음 처리를 위해 목을 지나치게 아낀 덕이 아닐까 싶다. 노래를 하러 나온 것이 아니라 고음 자랑을 하러 나온 것인지? 브륀힐데, 이졸데, 엘자, 젠타 등 바그너 경력은 상당하며 음색이 바그너에 잘 어울리기도 했지만, 이 때문에 오히려 이날 공연을 만만하게 생각했다는 의혹은 더욱 짙다. 평론가로부터 "거대한 성량과 따스함을 가진 최고의 소프라노"라는 극찬을 받은 적이 있단다.

브랑게네 역의 김여경은 성량만 본다면 프란세스 진저와 역할을 바꿨으면 좋았을 것이다. (물론 이졸데 역의 살인적인 고음을 감당할 만한 성역이 아니었겠지만.) 2막 1장 동안 줄곧 이졸데를 압도했으며, 2장에 두 차례 등장하는 아리오소도 매우 뛰어났다. 타게리트(Tagelied)의 전통을 잇는 2막 2장의 아리오소에서 도입 부분의 크레셴도는 마치 영화의 페이드인(fade-in)과도 같은 역할을 하는데, 이 부분을 매끄럽게 처리하는 가수는 음반으로도 흔치 않다. 김여경의 '페이드인' 처리는 꽤 양호했다. 무엇보다 바그너를 이만큼 훌륭히 소화해내는 한국인 여자 가수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몹시 반갑다. 마르케 왕의 등장을 알리는 브랑게네의 비명 소리가 없어서 잠깐 놀랐는데, 이어지는 쿠르베날의 대사가 2막에서는 단 한 마디 뿐이라(위험합니다, 트리스탄님! Rette dich, Tristan!) 캐스팅에서 빠졌다는 점을 생각하니 정황이 이해되었다. 그래도 비명은 있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데, 만약 목소리를 아끼기 위한 것이었다면 바그너 가수가 될 자격은 없다 하겠다. 비명 소리가 빠진 대신 금관이라도 좀 더 크고 거친 소리를 내주었으면 좋았을 뻔했다.

마르케 왕 역의 양희준은 저음의 깊이만으로도 탄복할 만한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저음은 아무나 내는 것이 아니다. 성악이라는 것이 원래 타고난 목소리가 중요하겠지만, 특히 저음은 노력만으로는 만들 수 없는 특별한 것이라고 한다. 해석상의 특이한 점은 없었고 기존 대가들의 장점을 이어받아 정교하게 다듬은 모범적인 해석을 들려주었다. 그가 출연한 <니벨룽의 반지> 전곡 CD가 있다는데, 아마도 귄터 노이홀트의 바덴 가극장 녹음(Brilliant, 1993-95)에 나오는 파졸트(라인의 황금)와 파프너(지크프리트) 역인 것으로 추정된다. 해당 음반에는 'Simon Yang'으로 표기되어 있다. 주목해야 할 새로운 바그너 가수 발견!

멜롯 역의 전태상은 배역의 존재감이 워낙 작아서 별로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 목소리가 빛을 머금은 듯 밝고 단단하다고 느꼈으나 바그너에 어울리는 목소리는 아니라고 판단된다.

이 공연을 끝으로 위대한 바그너의 해는 갔다. 앞으로는 무슨 재미로 사나?

2005년 12월 17일 씀.
2006년 2월 9일 고침.


정보공유라이선스

김원철. 2006.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2009년 8월 17일 월요일

2005.09.29. 《신들의 황혼》 - 게르기예프 / 마린스키 극장 오페라단

신들의 황혼 Götterdämmerung - 마린스키극장 오케스트라/오페라단
9월 29일(목) 저녁 5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지 휘 : 발레리 게르기예프 Valery Gergiev
연 출 : 발레리 게르기예프 Valery Gergiev
감 독 : 블라디미르 미르조예프 Vladimir Mirzoev
무대 디자인: 조시 티시핀 George Tsypin

브륀힐데 : 올가 세르게예바 Olga Sergeyeva
지크프리트 : 알렉세이 스테블리안코 Alexey Steblianko
군터 : 예뎀 우메로프 Edem Umerov
알베리히 : 빅토르 체르노모르츠예프 Viktor Chernomortsev
하겐 : 알렉세이 탄노비츠키 Alexei Tannovistsky
구트루네 : 발레리아 스텐키나 Valeria Stenkina
발트라우테 : 올가 사보바 Olga Savova
노른 1 : 루드밀라 카누니코바 Liudmila Kanunikova
노른 2 : 스베틀라나 볼코바 Svetlana Volkova
노른 3 : 타티아나 크라브초바 Tatiana Kravtsova
보클린데 : 마르가리타 알라베르디안 Margarita Alaverdian
벨군데 : 리아 셰브초바 Lia Shevtsova
플로스힐데 : 안나 키크나드제 Anna Kiknadze



<신들의 황혼>에서는 앞선 시리즈와는 달리 서막 및 1막부터 연주의 완성도가 높았다. 다른 '반지' 시리즈에 비해 현의 비중이 적은 편이라 다이내믹과 밸런스 사이의 트레이드-오프(trade off) 문제도 덜했다. (현의 음량 부족 문제에 대해서는 <라인의 황금> 편을 참고하라.) 연주자들의 집중력이 <발퀴레> 2막보다는 못했지만 전체적으로는 4부작 가운데 가장 뛰어난 연주였다고 생각한다. 다만, 1막부터 너무 열심히 한 탓인지 3막에서는 끝을 향해 갈수록 연주가 조금씩 불안정해졌던 것은 옥에 티였다.

템포는 빠른 편이었으며, 맹약 장면과 기비히 무사들이 군터를 환영하는 장면 등에서는 깜짝 놀랄 만큼 빠른 템포로 몰아붙였다. 이 부분의 템포를 빠르게 한 것은 나름대로 참신한 해석이었고, 또 러시아 지휘자 및 악단과 어울리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은 동시에 바그너 음악의 주요 특징 가운데 하나를 해치는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했다. 맹약 장면과 군터 환영 장면은 바그너 특유의 제의(祭儀) 장면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바그너의 작품은 그 자체가 제의적이기도 하지만, 작품 속의 제의 장면은 감상자에게 특별한 영적 고양감을 일으키곤 한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을 참고하라: 안인희, <게르만 신화·바그너·히틀러> (서울: 민음사 2003) 202-205쪽.) 음악으로 제의적 효과를 일으키기 위해 템포는 느린 것이 좋으며, 이 점에서 바그너식 제의의 정점에 선 작품은 바그너가 무대신성제전극(Bühnenweihfestspiel)이라고 불렀던 작품인 <파르지팔>이다. (1막에서 성배기사들의 행렬 장면과 성배 의식 장면을 들어보라.) 하겐이 기비히 무사들을 소집하는 장면과 그에 이어지는 합창도 전체적으로 훌륭했지만, 역시 제의적 요소를 살리는 데에는 실패했다. 지크프리트 장송행진곡과 브륀힐데 자살 장면("저기 라인 강가에 강한 장작들을 나를 위해 더미로 쌓아다오! Starke Scheite schichtet mir dort am Rande des Rheins zuhauf!" 이후부터 끝까지)도 마찬가지였다.

서막 전주곡 마디 6과 마디 14에서는 트럼펫의 음정이 엉뚱하게 들렸다. 악보를 완전히 숙지하고 있지는 않아서 무엇이 문제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는데, 지금 생각으로 가장 가능성이 큰 가설은 제1 트럼펫이 여린 음을 내지 않아 돌출되었다는 것이다. 마디 6에서 제1 트럼펫의 A(실음은 C) 음은 E 단조 6도 화음의 소프라노 성부에 중복된 근음(root)이다. 제2, 제3 트럼펫은 각각 화음의 5음과 3음을 연주하며, 베이스 성부의 근음은 제1 트롬본 등이 담당한다. 그런데 마디 6의 주선율은 화음의 5음인 G(실음 기준)에서 C을 거쳐 E이 된다. 결국, 제1 트럼펫의 C(실음)은 비화성음은 아니지만 주선율 차원에서는 마치 비정상적으로 긴 선행음(Anticipation)처럼 기능 했다. 즉, 제1 트럼펫이 두드러지면서 선율 음인 G을 누르고 전체 선율 윤곽을 망가트린 것이다. 마디 14 역시 동형진행이므로 마찬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그림 1. 서막 전주곡 마디 5-9.
New York: G. Schirmer, 1904. Plate 26809. 출처: http://www.dlib.indiana.edu


서막 마디 359에서는 리듬이 이상하게 들렸다. 사실은 연주자가 실수하거나 엉뚱한 루바토를 쓰지 않고 오히려 인템포로 연주했는데 왜 그렇게 들렸을까? 답은 템포에 있다. 다음을 들어보자.


그림 2. 서막 마디 358-361. © 2005 김원철.

© 2005 김원철


이것은 마디 327에 나오는 모티프의 변형이다.


그림 3. 서막 마디 327-329. ©1997-2002 by Fabrizio Calzaretti.

© 2005 김원철


그런데 마디 360의 셋잇단음 스타카토 부분을 강박에 배치하다 보니 원래 모티프와 리듬 윤곽이 다르게 들린다. 이 때문에 리듬이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이며, 마디 359의 변칙적인 리듬은 마치 연주자가 실수라도 한 것처럼 들리게 한다. 그러나 템포를 느리게 하면 덜 어색해진다. 다음은 <그림 2>에서 템포를 ♩= 120에서 ♩= 80으로 고친 것이다.


그림 4. 서막 마디 358-361. © 2005 김원철.

© 2005 김원철


이제 훨씬 자연스럽다. (찬가처럼 크게 부풀린 관현악 총주를 상상하라.) 이날 연주는 ♩= 120 정도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 100 이상으로 들렸다. 개인적으로는 ♩= 90 이하의 템포일 때 리듬이 어색하지 않게 들린다. 그 이상의 템포를 원할 경우 4분음 셋잇단 리듬에 루바토를 쓸 필요가 있다. 음반에서는 대개 템포와 상관 없이 루바토를 쓰고 있으며, 루바토를 쓰지 않은 녹음으로는 불레즈의 1979년 녹음이 있다. (그런데 사실은 이 녹음에서도 연주자가 완벽하게 기계적인 템포를 소화하지는 못했다.)

2막 전주곡은 바이올린과 비올라에 의한 리듬이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데, 그 리듬의 변칙성은 언뜻 들어서는 알아차리기 힘들지만 악보를 들여다 보면 사실은 매우 복잡함을 알 수 있다. 이날 연주에서는 '실수를 하나 안 하나 어디 두고 보자!' 하는 심정으로 특별히 주의 깊게 들었는데, 역시 연주회장의 극악한 음향 환경 때문에 현의 운궁이 또렷하게 전달되지도 않았다. 마지못해 내린 결론은 실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림 5. 2막 전주곡.
New York: G. Schirmer, 1904. Plate 26809. 출처: http://www.dlib.indiana.edu


2막 3장에서 하겐의 "호이호! 호이호호호! 기비히의 대장부들아. 일어들 나시오! Hoiho! Hoihohoho! Ihr Gibichsmannen, machet euch auf!"와 함께 연주되는 스티어호른(Stierhorn) 소리가 빠진 것도 아쉬웠다. (그러고 보니 <발퀴레> 때에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바그너는 하겐이 무대에서 C, 무대 뒤 왼쪽에서 D, 오른쪽에서 D로 불어서 입체적인 효과를 내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요즘 바이로이트에서는 그냥 오케스트라 피트 관악기 위치에서 트롬본이 연주한다고 한다. 스티어호른 두 대가 동시에 소리 낼 때에는 단2도 또는 장2도 음정으로 강력한 불협화음이 되는데, 그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해서는 역시 스티어호른을 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3막에서 지크프리트의 "깨우는 자가 왔소. 그가 입맞춤으로 당신을 깨우고 있소. Der Wecker kam; er küßt dich wach," 대목(마디 891-899)의 목관과 트럼펫에 의한 리듬은 여린 다이내믹 속에서도 죽어가는 지크프리트의 강렬한 흥분 상태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이 부분에서는 피아니시모에서부터 시작하는 섬세한 크레셴도와 데크레셴도가 필요한데, 역시 세종문화회관은 이것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 이 부분은 <지크프리트> 3막과도 링크되는데, 그날 연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림 6. 3막 마디 891-899.
New York: G. Schirmer, 1904. Plate 26809. 출처: http://www.dlib.indiana.edu


유명한 '지크프리트 장송행진곡'에서는 전체적으로 박진감 있게 잘했으나 몇몇 부분은 아쉬웠다. 마디 926에서 마디 927까지 현에 의해 피아노(p)에서 포르티시모(ff)로 세 단계를 거쳐 폭발적으로 일어나는 크레셴도도 약했고, 마디 960-962에서는 현이 호른 및 베이스 트럼펫과 안티폰(antiphon)처럼 주고받는데, 이때 현의 급박한 다이내믹 변화도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물론 일차적으로 연주회장 탓이다.) 마디 953에서 갑자기 터져 나오는 트럼펫의 포르테(f)와 이어지는 크레셴도는 말러의 이른바 '개파(Durchbruch)'를 예견하게 하는 갑작스럽고도 강렬한 국면 전환 효과를 불러오며, 숄티의 녹음에서는 특히 마디 956의 크레셴도를 매우 길게 늘이기도 했다. (라이브로 그렇게 할 수 있는 연주자가 있다면 그는 틀림없이 인간이 아니다.) 이날 연주에서는 그러한 다이내믹의 대비가 크지 않아서 극적 효과가 약했다. (원인은 연주회장의 극악한 음향과 트럼펫 주자의 기력 소진이 반반일 것으로 생각된다.)

마디 957부터는 트라이앵글과 테너 드럼(Rührtrommel) 등의 롤(roll)을 과장하면 현의 음량 부족에 의해 밸런스가 무너질 것을 걱정할 필요 없이 금관이 강력한 포르티시모를 마음껏 낼 수 있기 때문에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예상 밖으로 이날 연주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어쩌면 마디 953의 트럼펫 음량부터 지휘자의 의도가 작용했던 것일까? 이 부분에서 현 소리를 버리지 않은 것은 장단점이 있겠지만 극적인 효과는 어쨌든 부족했다.




그림 7. 3막 마디 935-967.
New York: G. Schirmer, 1904. Plate 26809. 출처: http://www.dlib.indiana.edu


마디 969에서는 서막 마디 359와 같은 템포 문제가 있었다. 마디 969-974에서는 대부분의 음반에서 적당히 루바토를 사용하고 있는 것을 들을 수 있는데, 이날 공연에서는 줄곧 인템포로 연주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림 8. 3막 마디 969-970. © 2005 김원철.

© 2005 김원철


마디 974 셋째 박에서는 일종의 착청(錯聽; '착시'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착청'도 있다.)을 만들어내야 한다. 서막 마디 360 넷째 박에서는 목관에 의해 유도되는 주선율의 옥타브 도약이 있지만, 같은 모티프로 링크되는 3막 마디 974에서는 그렇지 않다.


그림 9. 3막 마디 973-974. © 2005 김원철.

© 2005 김원철


그러나 이것은 다음과 같이 들려야 한다.


그림 10. 3막 마디 973-974에서 착청(錯聽) 효과에 의한 옥타브 도약을 반영한 것. © 2005 김원철.

© 2005 김원철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심벌즈가 팀파니와 테너 드럼(Rührtrommel)의 롤(roll)을 동반하여 일으키는 강력한 차폐 효과(masking effect)와 그에 이어지는 음고 복원 효과(pitch restoration effect)이다. '음고 복원 효과'란 '음소 복원 효과 (phonemic restoration effect)'를 변형시킨 것으로 내가 지어낸 말이다. 음소 복원 효과는 워렌(Richard M. Warren)이 1970년에 사이언스(Science)에 발표한 논문에서 유래한 용어로, 워렌은 피험자에게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녹음된 문장을 들려주었다:


The state governors met with their respective legislatures convening in the capital city.


여기에서 "legislatures"의 가운데 /s/ 소리는 삭제하고 대신에 기침 소리를 넣었다. 그러나 피험자들은 이것을 알아차릴 수 없었으며, 어떤 소리가 하나 빠졌다고 알려주어도 그 위치를 알지 못했다. 사라진 /s/ 음소는 지각 과정에서 '복원'된 것이다. 후속 실험에서는 제거된 음소(*eel) 대신에 복원된 음소가 문장의 맥락에 따라 다른 음소(wheel, heel, peel, meal 등)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마디 974에서 심벌즈 등의 소리가 충분히 크지 않으면 음고 복원 효과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데, 실제로 몇몇 음반에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날 연주에서는 심벌즈 등이 음고 복원 효과를 일으킬 만큼 충분히 컸다.

브륀힐데의 "저기 라인 강가에 강한 장작들을 나를 위해 더미로 쌓아다오! Starke Scheite schichtet mir dort am Rande des Rheins zuhauf!" 이후부터는 긴 호흡으로 피날레를 향해 서서히 나아가며 주술적인 효과를 일으킨다. 이날 연주에서는 다이내믹의 폭이 좁은 것이 역시 아쉬웠다. (원인은 연주회장의 음향 문제와 연주자들이 지친 것이 반반으로 판단된다.) 다만, 마디 1538부터 바이올린에 의해 연주되는 이른바 '구원(redemption; Liebeserlösung)'의 모티프는 연주회장의 음향 환경을 감안하면 매우 좋았다.



그림 11. 구원의 모티프 (<발퀴레> 3막).
출처: http://www.utexas.edu/courses/wagner/148.html


브륀힐데 역의 올가 세르게예바는 이번 '반지' 시리즈 가운데 최고의 브륀힐데였다. 몸매도 브륀힐데 치고는 매우 날씬한 편이었다. <발퀴레>에서의 브륀힐데와 지클린데 등도 그랬지만, 뛰어난 성량에 비해 몸매는 가냘픈 것이 참으로 신기하다. 음색은 귀네스 존스를 닮았다는 의견이 많았다. 극이 후반부로 가면서 고음 처리를 완벽하게 하지 못하고 실제보다 반음 정도 낮은 음을 낸 적이 있었던 것이나, 또는 2막의 이른바 '복수의 3중창'에서 갑작스런 저음 처리를 힘들어했던 것 등은 옥에 티였다. 특히 "그의 피로써 그가 속죄하기를! mit seinem Blut büß' er die Schuld!"에서는 가수와 오케스트라가 완전한 유니즌을 이룰 만큼 대사의 무게가 큰 부분이라 성량이 부족한 것이 몹시 아쉬웠다. <발퀴레>의 브륀힐데를 맡은 적이 있단다.

지크프리트 역의 알렉세이 스테블리안코는 테너 같지 않고 베이스나 바리톤 같았는데, 그것이 원래 목소리인지 이날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덕분에 군터로 변장했을 때에도 베이스-바리톤인 군터의 목소리를 일부러 흉내 낼 필요가 없었던 것이 재미있었다. (오히려 군터 역의 바리톤 예뎀 우메로프보다 낮게 들릴 때도 가끔 있었다.) 새 흉내는 발성은 뛰어났지만 굵은 목소리 때문에 연극적인 측면에서는 낙제점이었다. <신들의 황혼>의 지크프리트는 <지크프리트>의 지크프리트만큼 강력한 헬덴 테너일 필요는 없고 고음처리도 덜 필요하기 때문에 음역이 낮아도 큰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지크프리트>에서의 레오니드 자코자예프와 음색의 차이가 컸던 점은 좋지 않았다. 게다가 2막 후반부에서부터 지친 기색을 보이다가 3막에서는 목소리가 잠겨서 몇 번이나 기침을 했던 것은 애처로울 정도였다. 그런데 프로필을 보면 의외로 주역 가수인 것 같다. (역시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것일까?) 로엔그린 역을 맡은 적이 있단다.

군터 역의 예뎀 우메로프는 <라인의 황금>에서의 알베리히였는데, 알베리히보다는 군터에 어울렸다. (알베리히와 군터를 같은 가수가 소화한다는 것은 사실 넌센스다.) 군터 역할에 역량을 집중했더라면 더욱 뛰어난 가창을 들려줄 수도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니 아쉽다. "그의 피로써 그가 속죄하기를! mit seinem Blut büß' er die Schuld!"에서 브륀힐데와 마찬가지로 저음을 시원하게 처리하지 못했던 점은 옥에 티였다.

하겐 역의 알렉세이 탄노비츠키는 1976년생의 젊은 가수로 주역이 아닌 모양인데, 그 카리스마는 주연들을 압도할 정도였다. 다만, 뛰어난 연기력에 비해 음색의 사악한 맛은 부족했다. 커튼콜 때에는 공연 중의 카리스마를 무색하게 할 만큼 순한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열광적인 박수를 받자 매우 놀라는 것 같았다. 프로필에 따르면, 모스크바 차이코프스키 필하모닉 홀에서 있었던 베르디 레퀴엠 연주회에 대해 한 비평가는 "탄노비츠키의 아름답고 낭랑한 음색, 완벽할 정도로 깔끔하게 표현된 곡, 마치 홀린 듯한 관객들"이라고 평했다 한다. 바그너 경력은 없었던 모양이다.

알베리히 역의 빅토르 체르노모르츠예프는 <지크프리트>에서도 알베리히였는데, <지크프리트>에서 뛰어난 가창을 들려주었던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단역이라서 별다른 인상을 주지는 못했다. 구트루네 역의 발레리아 스텐키나는 훌륭했지만, 단역을 맡은 탓에 특별히 주목받지는 못했다. 쿤드리와 지클린데를 맡았던 적이 있단다. 음색이 지클린데 역에는 잘 어울릴 것 같지만, 쿤드리를 맡기에는 너무 가는 목소리가 아닐까 싶다. 발트라우테 역의 올가 사보바는 <발퀴레>의 브륀힐데였는데, 이번에는 반지를 라인의 처녀들에게 돌려주라며 브륀힐데를 야단치는 역할을 맡은 것이 재미있다. 좀 더 따끔하게 야단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점은 아쉽지만, 전체적으로 썩 잘했다.

첫 번째 노른 역의 루드밀라 카누니코바는 <발퀴레>의 슈베르틀라이테이다. 원래 단역 가수인 듯한데, 단역치고는 꽤 잘했다. 그런데 의외로 오르트루트 역을 맡은 적이 있단다. 두 번째 노른 역의 스베틀라나 볼코바는 <라인의 황금>과 <발퀴레>에서 프리카 역으로 강력한 카리스마를 보여준 가수인데, 이날에는 역할 비중이 좀 축소되어서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세 번째 노른 역의 타티아나 크라브초바는 <발퀴레>의 헬름비게인데, <발퀴레>에서 깔끔하고 강력한 '하이 C'를 들려주었던 것과는 달리 이날에는 좀 얌전해서 불만이었다. 특히 "끊어졌네! Es riß!"에서의 성량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라인 처녀들의 합창은 <라인의 황금> 때보다 별로 나아진 것이 없었고 딕션도 별로였다. 보클린데 역의 마르가리타 알라베르디안은 헬름비게와 <파르지팔>의 꽃처녀 역을 맡은 적이 있단다. 벨군데 역의 리아 셰브초바는 <라인의 황금>에서도 벨군데였으며, <발퀴레>에서는 게르힐데였다. 플로스힐데 역의 안나 키크나드제는 <발퀴레>의 그림게르데이다.

2막에서의 남성 합창은 지난 6월 13일에 있었던 간사이 니키카이 오페라단의 <탄호이저>와 비교하게 된다. 마린스키의 합창 수준은 매우 높았지만, 간사이 니키카이 오페라단에 비하면 한 수 아래였다. 주역 가수들의 기량은 마린스키 쪽이 월등했던 것을 보면 역시 일본은 합창이 강한 모양이다.

뒷얘기. '신비기인'의 좌석 위치를 확인해 두었다가 공연이 끝나고 나서 결국 말을 걸어보았다. 기억을 더듬어 재구성한 대화 내용은 다음과 같다.


김원철: 실례합니다.
신비녀: 안녕하세요?
김원철: 외람된 말씀이지만(과잉 정중 모드), 당신이 그 유명한 바그네리안...
신비녀: (말 끊으며) 맞아요. 당신은 한국인인가요 아니면 공연 보러 한국에 온 건가요?
김원철: 한국인입니다.
신비녀: 나 이곳이 너무 마음에 들어요. 정말 멋진 곳이로군요! 어쩌고저쩌고... (수다 모드로 돌변함.)
김원철: 그렇게 말씀하시니 기쁘군요.
신비녀: 그런데, 연주자 대기실이 어디인지 아세요?
김원철: 모르겠네요. 에, 그러니까, 바그너 공연을 보러 전 세계를 돌아다닌다는?
신비녀: 맞아요.
김원철: 존경합니다!


(...라고 한다는 것이 "I adore you!"라고 해버렸다. 남녀 사이에서 'adore'를 쓰면 사랑한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이런, 나이가 많아 보이던데... 그녀는 그냥 웃더라.)


신비녀: 어쩌고저쩌고... (계속 수다 모드)

김원철: 당신은 유명세에 비해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는데, 이름이라도 알 수 있을까요?
신비녀: 이번 공연에 대해 TV로 방송이 나갔다던데, 못 봤나 보죠?
김원철: 저는 TV를 안 보거든요.
신비녀: 이러쿵저러쿵... (이름은 안 가르쳐주면서 계속 수다)
김원철: 일본 공연에도 갈 건가요?
신비녀: 물론이죠.
김원철: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


이렇게 해서 <니벨룽의 반지> 한국 초연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게르기예프와 마린스키 극장 오케스트라는 연주회장의 열악한 음향 환경에서도 상당히 뛰어난 연주를 들려주었다. 물론 이번 공연에 대해 좋게만 평가할 수는 없다. 연주자들은 최상의 상태로 공연에 임했다 할 수 없으며 가수 기용의 적절함에 대해서도 의문이 남는다. 지휘자는, 저 탁월한 기본기를 빼버리고 작품에 대한 해석만 놓고 본다면, 대체로 악보에 충실하기는 했지만 불레즈처럼 확실한 주관을 가지고 차가운 해석을 한 것이 아니라 나이브(naive)하게 악보를 따라가기만 했다. 그럼에도 독일인이 아닌 러시아인이 바그너의 음악을 이만큼 완성도 있게 연주한 것은 대단하다. 무엇보다 이번 공연은 한국 초연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올해는 바그네리안에게 매우 뜻깊은 해이다. <탄호이저>가 원어로는 사실상 국내 초연되었고, <니벨룽의 반지> 국내 초연도 마침내 이루어졌다. '반지'를 자력으로 무대에 올리려는 움직임도 있다. 10월 20일에는 바이로이트에서 호평받고 있는 베이스 연광철이 <트리스탄과 이졸데> 중 마르케 왕의 모놀로그를 부를 예정이며, 10월 30일에는 왕년의 바그너 가수 귀네스 존스가 온다. 그리고 성배의 그 다음 계시는 12월 15일, <트리스탄과 이졸데> 2막이다.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를 주목하라!

2005년 10월 11일 씀.
2006년 1월 10일 고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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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철. 2005.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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