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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25일 화요일

2007.08.19.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 / 브람스 교향곡 3번 - 김선욱 / 정명훈 / 서울시향

2007년 8월 19일(일) 오후 7시 30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지휘자 : 정명훈
협연자 : 김선욱, pf.

Brahms, Piano Concerto No. 1 in d minor, Op. 15
Brahms, Symphony No. 3 in F major, Op. 90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은 최초 구상이 교향곡이었다고 잘못 알려지곤 하는데, 원래는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였다. 다만, 수차례의 전면적 개정 과정에서 교향곡이 될 뻔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그 흔적이 작품 곳곳에 나타나 있다. 특히 1악장에 그러한 특징이 뚜렷한데, 일반적인 협주곡과는 달리 독주 악기에 대한 배려가 많이 부족해서 피아노 협연자에게는 연주하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다. 테크닉 문제를 떠나 우선 오케스트라의 거대한 음량에 맞서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세부 표현은 그다음 일이다.

피아니스트 김선욱은 강력한 타건으로 협주곡으로는 흔치 않은 대 편성으로 위압하는 서울시향과 팽팽히 맞섰으며, 그러면서도 정교한 테크닉과 섬세한 감성을 놓치지 않아 과연 유명세가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다. 1악장에서 다소 불안정한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의견도 더러 있었으나, 내 생각에는 이 정도면 이제 약관에 이른 연주자라 믿기 어려울 만큼 훌륭했다. 작품이 워낙 까다로우니만큼 이보다 더 잘한다면 차라리 대가라 불러야 할 것이다.

김선욱의 피아노는 단단했으며 확신에 차 있었다. 때때로 살짝 쇼팽을 연상시키면서도 밝은 톤을 잃지 않는 루바토를 드러내기도 했는데, 그러면서도 나이 어린 연주자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의식 과잉으로 유치해지는 일은 결코 없었다. 오케스트라와 교묘하게 줄다리기를 해가며 음악에 긴장감을 더해가는 솜씨가 특히 놀라웠는데, 이것은 혼자 연습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역시! 김선욱은 평소에 실내악 연주를 너무 좋아해서 주위에서 말릴 정도란다. 남다른 '앙상블 내공'을 쌓게 해준 것이 다름 아닌 실내악 연주일 테니 말릴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권장할 일이 아닐까.

서울시향의 연주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1악장 마디 66부터 비올라를 유난히 강조한 것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의 열악한 음향 환경이 뉘앙스를 제대로 살리지는 못했다. 마디 190에 아첼레란도를 쓴 것은 차분한 상태에서 재빨리 긴장감을 끌어올리기에는 좋았으나, 그 폭이 너무 커서 약간은 어색한 감이 있었다. (나중에 라디오로 들었던 22일 연주회에서는 아첼레란도의 폭을 약간 좁혀서 딱 적당했다.) 2악장은 4분 음표의 연속에 따르는 두터운 화성이 피아노와 상승작용을 하는 것이 매력적이지만, 서울시향은 투명한 현의 칸타빌레로 두터운 화성을 희석시키며 피아노와 미묘한 음색 대비를 이룬 것이 내 취향에는 맞지 않았다. 3악장이 특히 훌륭했으며, 기대했던 푸가토(마디 238) 역시 좋았다. 다만, 약간 더 욕심을 부리자면 악센트를 좀 더 분명하게 살렸으면 싶었다.

교향곡 3번은 '자유롭게 그러나 즐겁게(Frei aber Froh)'라는 모토에서 머리글자를 따온 것으로 알려진 F-A♭-F 모티프로 유명하다. 이와 관련한 자세한 사실관계는 학술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일단 이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전체 악곡의 조성 계획 또한 이 모티프와 무관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원 조성은 F 장조이며, 2악장과 3악장은 C 음을 으뜸음으로 하는 장·단조인데 여기서 C 음은 F 음의 딸림음(dominant)에 해당한다. 결국, 전체 악곡은 F-C-F의 구조로 되어 있으며, F-A♭-F라는 F 단조 화음에 생략된 5음인 C가 악곡의 전개에 중요한(dominant) 역할을 하는 것이다. 게다가 4악장에는 F-C-F라는 거시적인 구조가 다시 한 번 축약되어 있기도 해서 전체 악곡이 4악장을 향한 강한 추진력을 가진다.

정명훈의 해석은 이러한 목표지향적 구조를 매우 잘 드러내었으며, 그런 의도는 1악장에서부터 드러난다. 우선 템포가 꽤 빨랐고(시작 부분의 템포는 대략 ♩♩ = 85), 그런데도 1악장의 제시부 반복을 생략했다. 교향곡 1악장의 제시부 반복 생략은 19세기 작품을 연주할 때 흔히 있는 일이지만, 브람스 교향곡 3번과 같은 짤막한 곡에는 그런 경우가 흔치 않다.

2악장은 아기자기한 맛을 잘 살렸으며, 3악장은 감정의 낭비를 자제하여 4악장을 향한 방향성을 분명히 밝혔다. 유명한 3악장은 자칫 신파조가 될 위험이 있는데, 이것은 브람스답지 않을 뿐만 아니라 4악장의 무게감을 줄일 위험이 있어 좋지 않다. 서울시향은 첼로의 부점 리듬을 약간 무디게 연주했으며, 바이올린의 부선율을 적당히 살렸고, 목관 등의 투명한 음색을 놓치지 않아 신파조로 흐르지 않으면서도 지나치게 무표정하지는 않도록 중용의 묘를 보여주었다.

4악장의 재현부에 해당하는 마디 172 이후는 전체 조성 구조가 절정에 이르는 곳이라 할 수 있는데, F-C-F로 이어지는 조성 구조에서 F 장조로 마침내 해결되기 직전에 이제껏 쌓인 긴장이 선명한 f 단조에 의해 폭발하기 때문이다. 서울시향의 집중력 또한 이 부분에서 절정을 이루었으며, 객석에 전달된 긴장감은 연주회장의 열악한 음향으로 상당 부분 무뎌지고도 여전히 강력했다.

이날 연주에서는 모든 악기가 훌륭했지만, 그 가운데서도 강력한 집중력을 보여준 현의 역할이 컸다고 판단된다. 라디오 프랑스 오케스트라의 악장 출신인 스베틀린 루세브(Svetlin Roussev)가 서울시향의 악장을 맡은 것이 효과를 거두고 있기 때문일까.

4악장이 진정한 F 장조를 회복하는 것은 코다에 이르러서인데, 이미 f 단조 부분에서 모든 긴장을 폭발시켰으므로 일반적인 교향곡과는 달리 조용하게 끝난다. 그런데 곡이 차분히 끝나는 만큼 연주가 완전히 멈춘 뒤의 마지막 몇 초의 여운이 중요한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열광적인 '브라보'에 익숙한 관객이 그 몇 초를 견디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이날 연주에서는 고작 3-4초 정도의 여운을 바리톤 음성의 '브라보'가 깨트렸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아직 지휘자가 팔을 내리기 전이었다. 며칠 뒤에 예술의 전당에서 있었던 연주회에서는 아예 연주가 끝나자마자 이른바 '안다 박수'가 터져 나왔다고 한다. 앙코르로 베르디의 <운명의 힘> 서곡을 연주하기 전에 정명훈이 했던 말이 걸작이었다. "한국에서는 음악이 조용히 끝나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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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철. 2007.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2009년 8월 24일 월요일

2007.06.27. 브람스 이중협주곡 / 교향곡 2번 - 김수빈 / 지안 왕 / 정명훈 / 서울시향

2007년 6월 27일(수) 오후 8시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지휘자 : 정명훈
협연자 : 김수빈(vn), Jian Wang(vc)

Brahms: Double Concerto in a minor, Op. 102 (32')
Brahms: Symphony No. 2 in D major, Op. 73 (40')



정명훈이 지휘를 맡는 연주회에 대해 내가 개인적으로 품은 불만 한 가지는 대부분 연주회장이 세종문화회관이라는 것이다. 객석이 많은 만큼 수익성이 높다는 장점을 무시하기는 어렵겠지만, 연주회장의 음향이 열악한 만큼 마니아들의 반응도 차가운 법이라 세종문화회관에 너무 의존하는 것은 장기적으로는 수익에도 악영향을 끼치리라는 점 또한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이번 연주회가 드물게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것이 반갑다. 과연 소리 자체가 주는 감동의 깊이가 달랐다.

오케스트라의 전체적인 음량 또한 기대 이상으로 컸다. 이는 연주회장의 음향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정명훈 표 브람스'라서 더욱 그랬지 싶다. 이것은 협연자로서는 그다지 반가운 일만은 아닐 것인데, 지안 왕과 김수빈은 특히 1악장에서 오케스트라의 육중한 소리에 대적하려고 현과 활의 강력한 텐션을 만들어 내느라 고생하는 듯했다. 김수빈은 이 때문인지 아니면 평소 습관인지 유난히 풀 보잉(full bowing)을 자주 사용했고, 지켜보기에 불안할 만큼 뻣뻣한 자세를 자주 보였다. 그러나 겉보기와는 달리 연주는 상당히 훌륭했으며, 뒤로 갈수록 나아지는 모습을 보였다. 2악장에서의 서정미도 뛰어났고, 3악장에서는 바이올린과 첼로가 얽히고설키는 스타카토 음형에서 보여준 두 협연자의 정교한 앙상블이 백미였다.

3악장 첫머리에서 나는 지안 왕의 운지법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였는데, 레가토로 연주하면서 무려 5도 도약을 해야 하는 난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보기 위해서였다. 그는 무리한 '손가락 찢기' 대신에 현을 바꾸어 연주하는 속 편한 방법을 택했으며, 결과적으로 5도 도약은 논 레가토(non legato)가 되었다. 김수빈 역시 마찬가지로 논 레가토로 처리했다. 외람된 의견이지만 이 음형의 도발적인 매력을 살리려면 포르타멘토를 써서라도 현을 바꾸지 않고 최대한 레가토의 느낌을 살리는 것이 좋다고 본다. (이 경우 L-포르타멘토, 즉 도약을 먼저 한 다음 미끄러지는 방법이 적당하다.)

브람스 교향곡 2번에서는 국내 오케스트라의 고질적인 문제 가운데 하나인 악기군 간의 앙상블 문제가 상당히 해결된 듯해 보였다는 점이 놀라웠다. 서울시향은 특히 개인적으로 앙상블 난조를 예상했던 2악장 푸가토(마디 17) 부분에서 매우 깔끔한 연주를 들려주었으며, 그 가운데 호른의 역할이 유난히 돋보였다. 1악장 마디 137의 D조 호른과 마디 144의 E조 호른 역시 적당한 밸런스에 호른끼리 꼬이는 일도 없이 안정된 연주를 들려주었다. 이날따라 금관이 전반적으로 훌륭했으며, 객원으로 보이던 팀파니 주자의 깔끔한 연주도 기억에 남는다.

악기군 간의 앙상블이 좋으니 이제는 악기군 내의 앙상블에 더 욕심을 부릴 만하다. 특히 현악기군의 앙상블이 유럽 수준으로 발전하기를 희망해 본다. 이날 연주에서 아쉬웠던 부분으로는, 이를테면 3악장 트리오 부분에서 악센트가 두드러지지 않아 심심한 연주가 되어버렸다.

정명훈의 해석에서 인상적이었던 점은 1악장의 템포를 상당히 느리게 잡았다가 2악장부터 차츰 빠르게 함으로써 거대한 아첼레란도를 구현한 것이었다. 게다가 4악장 코다에서는 이음매마다 가속하여 곡이 끝날 무렵에는 ♩♩= 120 정도의 아찔한 템포로 광란의 토카타를 연출했다. 4악장 마디 118에서 E조 호른의 포르테를 제대로 살린 것도 색달랐다.

관객의 반응 또한 대단했다. 예전에는 정명훈의 이름값에 혹해 과장된 환호를 보내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으나, 이날 연주회에서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정명훈이 아닌 '음악'에 진심으로 감동한 듯한 우렁찬 박수가 연주회장을 뒤흔들었으며, 기립박수 등 과시적인 행동을 보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정명훈에게는 그것이 불만이었나 보다. 몇 번의 커튼콜에 화답하던 그가 갑자기 객석을 향해 기립 사인을 보냈던 것이다. 정명훈의 연주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관객 전원 기립 사태가 발생했다. 물론 나는 정명훈의 '정치적인' 제스처와 그 바탕의 자신감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는 그런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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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21일 금요일

2007.02.27.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3번 Op. 108, 현악 오중주 1번 Op. 88, 현악 육중주 1번 Op. 18 - 서울시향

서울시향 브람스 스페샬 실내악 시리즈 1
2007년 2월 27일(화) 오후 7시30분
세종 체임버 홀

Violin Sonata No. 3 in d minor, Op. 108 (21')
String Quintet No. 1 in F Major, Op. 88 (26')
String Sextet No. 1 in Bb Major, Op. 18 (33')

Op. 108: Marko Komonko(vn), Park, Jong-Wha(pf)
Op. 88 : Violin 임가진,유미나 / Viola 진민호, 안톤 강 / Cello 강찬욱
Op. 18: Violin 데니스 김, 김효경 / Viola 헝웨이 황 , 임요섭 / Cello 박은주, 김민경



한국의 음악계에서 오케스트라 단원을 바라보는 '전통적인' 시각은 그들이 독주자로 성공할 능력이 없어서 오케스트라를 한다는 것이다. 스타 시스템과 콩쿠르 위주의 교육제도 때문에 이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기도 하며, 심지어 오케스트라 단원 자신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듯하다. 이것은 물론 한국만의 문제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선진국에서는 유명 오케스트라 단원이 독주자나 실내악 활동을 겸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은 모양이니 오케스트라 단원의 위상이 한국보다는 훨씬 높다 하겠다. 이런 현실에서 서울시향의 브람스 실내악 시리즈가 가지는 의의는 실로 크다. 실내악 연주회는 단순히 시향 단원들의 직업 만족도를 높이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실질적인 연주력 향상을 가져올 것이다. 그것은 첫째로 현재의 열악한 음향 환경에서 수많은 사람이 모였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쾌적한 조건에서 파트별로 호흡을 맞출 기회가 제도적으로 확보되고(세종문화회관 체임버 홀의 음향은 꽤 훌륭했다), 둘째로 지휘자에 의존하던 작품 해석을 스스로 해보는 경험을 바탕으로 지휘자의 의도를 능동적으로 이해하게 될 것이며, 무엇보다 연주자 개개인이 주인공이 될 기회와 연주자 간에 더욱 친밀해진 교감을 통해 단원들 스스로 음악을 진심으로 즐기는 방법을 깨닫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날 연주에서는 아무래도 이들이 실내악 전문 연주자가 아닌 탓인지 다소 미숙함을 보이기도 했다.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3번 Op. 108을 연주한 Marko Komonko는 긴장이 심했는지 특히 초반에 실수가 많았고, 전체적으로 자신감이 부족해 보였다. 곡 해석이 특별히 모난 곳은 없었지만 4악장 마디 104에서 스타카토 음형을 또렷하게 살린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이어지는 레가토 음형과의 구분도 필요하겠지만 이를 위해서는 데타셰로도 충분하다. 문제의 스타카토 음은 내림박이기도 하거니와 다섯 마디에 이르는 딸림화음의 긴장감이 마침내 해결되는 음이기 때문에 종지감(終止感)을 충분히 살리려면 지나치게 짧게 연주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본다. 게다가 레가토 음을 시작하는 E 음은 비화성음은 아니지만 선율 진행상 보조음(neighboring tone)에 가깝기도 하다. 전반적으로 아쉬움이 많았던 연주였지만, 실내악 시리즈는 이제부터 시작이니 앞으로 더 나아진 모습을 보여줄 기회가 또 있을 것이다.

글머리의 논점에 비추어 가장 큰 칭찬과 격려를 보내고 싶은 연주자들은 현악 오중주 1번 Op.88을 연주한 임가진 등이었다. 물론 이들의 앙상블이 썩 훌륭했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으며, 이날 프로그램 가운데 가장 훌륭한 연주를 들려준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들은 때때로 어수선한 앙상블과 다소 밋밋한 곡 해석을 뜨거운 열정으로 보완했다. 이들의 연주에는 실황 연주에서만 느낄 수 있는 현장감이 생생하게 살아있었고, 특히 제1 바이올린과 첼로의 교감이 보기 좋았다. 두터운 화음이 강조되는 부분(이를테면 1악장 마디 20)에서 템포를 일시적으로 늦추곤 했던 것은 갑자기 눈에 띄게 변한 템포가 음악적 긴장감을 떨어뜨렸던 까닭에 그 자체로는 공감하기 어려웠지만, 그것을 기회로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마음을 새로 모으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이들은 진심으로 자신의 연주를 즐기는 듯했고, 얼굴에는 웃음이 걸려 있었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앙상블을 더욱 정교하게 다듬을 기회는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날의 초심을 계속 이어나가는 것이다.

현악 육중주 1번 Op.18을 연주한 데니스 김 등은 각 파트의 수석급 연주자들로 과연 서울시향의 뛰어난 앙상블에 이들의 역할이 컸음을 이날 연주로 새삼 알 수 있었다. 세련된 바이올린과 열정적인 비올라의 대립구도가 흥미진진했으며, 특히 유명한 2악장이 인상적이었다. 다만, 임가진 등보다 열기는 부족했으니 두 팀이 서로 장점을 본받으면 좋겠다. 해석상의 옥에 티 한 가지를 지적하자면, 스타카토 음형의 분절적 느낌을 맥락에 따라 좀 더 다채롭게 표현했더라면 더욱 훌륭한 연주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브람스 작품의 스타카토는 보통은 데타셰 주법으로 부드럽게 넘어가는 것이 좋은 경우가 많은데, 앞서 지적한 바이올린 소나타 3번의 경우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때로는 스타카토를 또렷하게 표현하는 것이 더 어울릴 때도 있다. 이를테면 1악장 발전부 렌틀러(ländler) 주제 직전의 스타카토 음형(마디 190)이 그렇다. 이날 마디 189에서 템포를 살짝 늦추면서 마디 190으로 이어지며 데타셰로 부드럽게 넘어간 것은 앞 마디의 으뜸화음이 이어지면서 화성적 긴장이 해소되는 국면인데다가 데크레셴도까지 동반했다는 점에서 일견 타당하다. 그러나 마디 190의 스타카토가 지나치게 불명확하면 마디 188에서 190에 이르는 동안 음가(音價)가 점점 늘어나면서 자칫 음을 질질 끄는 느낌이 들 수 있다. 또한, 마디 189에서 텍스처가 갑자기 엷어진 것은 오히려 음악적 긴장감을 살짝 높임으로써 전체적인 이완이 지나치지 않도록 조절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음악적 긴장이 극에 달했을 때 갑자기 텍스처를 엷게 함으로써 특별한 효과를 일으키는 것은 19세기 이후의 작품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따라서 마디 190의 스타카토 음형은 데타셰 주법을 사용하더라도 분절적인 느낌을 충분히 살리는 것이 좋으며, 템포 변화도 주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2악장 마디 79는 2악장 전체의 클라이맥스로 볼 수 있으므로 스타카토 음형을 좀 더 날카롭게 처리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4악장에서는 첼로와 바이올린이 같은 모티프를 연주하면서도 첼로(마디 3 등)는 스타카토를 또렷이 처리했지만 바이올린(마디 19 등)은 부드럽게 넘어감으로써 일관성을 잃었던 것이 옥에 티였다.

지난 정기연주회 리뷰를 쓰면서 나는 서울시향이 타성에 젖어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다. 그래서 단원들에게 그들이 연주하는 작품을 진심으로 사랑할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그런데 브람스 실내악 시리즈야말로 현재 서울시향에 가장 훌륭한 처방일지 모른다. 서울시향의 브람스 시리즈에 실내악이 들어간 것은 브람스가 기본적으로 실내악 작곡가이기 때문일 것인데, 어쩌면 시향의 공연기획자는 지금의 상황마저 예견했던 것은 아닐까. 실내악 시리즈의 시작은 성공적이었다. 그리고 시향은 진정한 기본기를 쌓아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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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4월 20일 월요일

말러는 브람스와 바그너를 모두 계승한 진테제

옛날에 고클래식에 썼던 글 발췌 인용:

브람스와 대척점을 이루는 작곡가로 흔히 바그너를 꼽습니다. 브람스가 논리와 이성의 세계에 속한다면 바그너는 신화와 마법의 세계에 속합니다. 말러는 처음에는 바그너 중력권에 있었다가 후기 작품으로 갈수록 브람스적 요소를 받아들인 케이스죠. 베토벤은 이들 작곡가 모두를 잉태한 아버지(어머니)에 해당하고요. 사견입니다만, 그래서 저는 "베토벤의 적자"를 가리기 위한 '투쟁 구도'를 이렇게 봅니다. 베토벤의 정신을 계승한 것은 바그너, 베토벤의 형식을 계승한 것은 브람스, 바그너에 대한 안티테제로서의 브람스를 수용하여 진정한 계승 구도를 완성한 것이 말러. 베토벤이 고전주의를 완성하고 낭만주의로 가는 문을 열어젖힌 사람이라면, 말러는 낭만주의에서 20세기 음악으로 가는 다리가 된 사람입니다. 다소 무리가 있는 주장이지만 조만간에 의견을 정리할 기회가 있을 겁니다. ^^

wagnerian: 제 주장을 오해하실 분 있으실까 봐 굳이 덧붙입니다. 브람스가 이성과 논리의 세계에 속한 작곡가라는 말은 브람스의 음악이 머리로 듣는 음악이며 감성과는 담을 쌓은 작곡가라는 말과는 전혀 다릅니다. 브람스의 음악도 훌륭한 감성을 담고 있지요. 단지 그 감성의 이면에는 치밀한 논리가 받쳐주고 있는 겁니다. 앞뒤 가리지 않는 마스터베이션보다 잘 정제된 감성이 훨씬 강력한 호소력을 발휘할 수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바그너류의 음악도 얼핏 보기에는 중구난방처럼 보이지만 나름대로 치밀하게 다듬어진 것입니다.

- http://blog.goclassic.co.kr/wagnerian/11660748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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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 7일 금요일

'실내악 종착역론'이 나오게 된 역사적 맥락

옛날에 썼던 글인데 퍼옴:
http://blog.goclassic.co.kr/wagnerian/1210300499

그런 '낭설'이 나오게 된 역사적 맥락이 있습니다.

브람스파와 바그너파의 패싸움(?) 구도가 가열되는 가운데 어느 음악학자가 리스트, 바그너, 베를리오즈를 묶어 '이 시대의 진보적인 음악가' 운운했습니다.

진보 대 보수 대결 양상이 되어 논리가 궁해진 브람스파는 실내악이야말로 고수가 듣는 고급 음악이며, 실내악 작곡가인 브람스야말로 '본좌' 작곡가라는 논리를 폅니다. 브람스 중력권에 있던 '보수적인' 작곡가들이 모두 실내악을 많이 쓰기도 했지요.

사실 여기에는 베토벤 이후에 교향곡을 쓰기 두려워진 상황 있었던 거 많이들 아실 거라 봅니다. 베토벤이 해먹을 거 다 해먹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베토벤이 남긴 유산이 낭만주의 시대정신과 맞지 않는다는 아이러니도 큽니다. '노래의 날개 위에'로 대표되는 '낭만적'이고 소품적인 선율이 베토벤식 주제 발전 기법과 맞지 않는다 이거죠. 이 아이러니를 해결하려고 19세기 작곡가들은 저마다 꼼수를 부렸는데, 그 가운데 특히 슈만 같은 사람은 참 다양한 꼼수를 눈물 겹게 부렸지요. 그런데 꼼수 부리기를 거부하고 베토벤의 유산을 극한까지 발전시켜버린 사람이 바로 브람스입니다. 덕분에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기는 했는데, 그 대신 '보수파' 딱지가 붙어버렸습니다.

이때 '브람스가 왜 보수파냐, 브람스야말로 진보주의자(Brahms the Progressive)다'라는 주장을 내놓으며 패싸움 구도를 새로운 국면으로 바꿔놓은 사람이 바로 쇤베르크입니다. 브람스의 '발전적 변주(developing variations)' 개념을 처음 내놓은 사람도 쇤베르크지요. 브람스가 왜 진보주의자인지를 얘기하려면 발전적 변주 개념과 더불어 베토벤에서 쇤베르크로 이어지는 진보주의적 역사관, 계몽주의와 모더니즘 등을 이해할 필요가 있는데, 얘기가 길어지므로 여기서 대략 생략합니다. ㅡ,.ㅡa

나중에 붙임.
사람 이름 뒤에 'the 형용사' 꼴은 왕 이름을 꾸미는 말입니다. 태양왕, 용맹왕 이런 식이지요. 그러니까 "Brahms the Progressive"는 '진보왕 브람스'라고 풀이할 수 있습니다.

"반세기가 지난 1910년 즈음에 판이 바뀌었다. 실내악에 혁신이 일어나 무조성으로 옮겨갔으며 쇤베르크는 음악사학자들의 도발과 멸시에 맞서 "진보왕 브람스"라는 구호를 앞세울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참으로 변증법에 걸맞은 반전이며 1860년 즈음에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보수주의자들에게 실내악은 가장 뛰어난 음악 장르였고 (..) 그들은 역사의식보다는 미학 규범을 중요하게 생각했으며 그들이 두려워하고 꺼렸던 진보는 상대편에 넘겨버렸다. 그러나 1900년 즈음에는 (...) 교향시는 진부해질 수밖에 없었으며 이는 슈트라우스나 시벨리우스가 아니었더라도 마찬가지다. 슈트라우스가 전통으로 돌아서고 나서 진보라는 횃불을 받아든 쇤베르크는 (...)"
- Carl Dahlhaus, Nineteenth-Century Music.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pp.254-255. 김원철 옮김.

2006년 5월 24일 수요일

브람스 <네 개의 엄숙한 노래> (Vier ernste Gesange), Op. 121 제4곡에 대한 단상

서양음악학회 제39차 학술 포럼에 갔다 와서

이번 학회는 시작 시각이 이른 아침으로 바뀌고 나서 참석자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수차례 있었던 공지가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했을 수도 있고(실제로 학회가 끝난 뒤에 학회장을 찾는 사람을 보았다), 어쩌면 학생들이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을 힘들어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만약 후자의 경우라면 학문에 대한 의욕이 그 정도라는 얘기가 되니 안타까워할 일이다.

이번 학회의 주제는 브람스의 <네 개의 엄숙한 노래> (Vier ernste Gesänge), Op. 121이었다. 지난 학회의 경험을 살려 가사 번역과 주해 악보를 보면서 음악을 감상하는 시간을 가졌던 것은 참으로 유익했다. 그런데 4곡을 듣는 도중 음악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텍스트와 너무 동떨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강한 의문이 들었다. 하나의 텍스트를 받아들이는 방식에는 저마다 차이가 있고 모두 나름의 타당성이 있겠지만 이것은 정도가 심하지 않은가. 브람스와 나 가운데 누군가 틀린 것인가? 아니면 피셔-디스카우의 해석이 엉터리인가?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와 천사의 언어로 말한다 하여도 (...)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고 / 모든 신비와 모든 지식을 깨닫고 / 산을 옮길 수 있는 / 큰 믿음이 있다 하여도 /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는 기독교인이 아니라서 신학적인 해석은 모른다. 그러나 때로는 디아스포라의 시선이 진리를 꿰뚫어보는 힘이 될 수도 있으니 모든 맥락을 버리고 텍스트를 그대로 들여다보자. 믿음을 통해 “모든 신비와 모든 지식을 깨닫고” “산을 옮길 수 있는” 경천동지할 능력을 얻을 수 있단다. 여기서는 “믿음”의 진정한 의미보다는 그 결과로 얻을 수 있는 힘이 더욱 중요해 보인다. 과학기술이 인간에게 준 힘을 생각해보자. 어떤 면에서는 성경 등에 묘사된 신의 능력을 넘어서는 힘을 가진 것이 현대인이다. 그러나 그 힘이 과연 인간을 행복하게 하고 있는가? 오히려 가진 힘만큼의 탐욕에 사로잡혀 서로 총부리를 겨누느라 고통받고 있지 않은가? 성경이 전하는 답은 바로 사랑이다. 니벨룽의 반지에 내린 죽음의 저주를 이겨낸 것도 두려움을 모르는 지크프리트의 신력(神力)이 아니라 브륀힐데가 희생을 통해 실천한 사랑이었다. 이렇게 깊고도 넓은 가르침을 담은 가사에 비하면 브람스가 붙인 음악은 너무 가볍지 않은가. 차라리 말러 교향곡 3번 6악장 “사랑이 내게 말하는 것”이 가사에 더 어울린다.

이날 발표된 두 편의 논문은 나의 의문에 대한 답이 되지는 못했지만 한 가지 아이디어를 주기는 했다. 브람스는 적어도 음악을 다루는 기법에서는 대가임이 틀림없고, 그가 모티프를 다루는 방식(김미영)이나 화성/조성을 다루는 방식(송무경·안소영)은 나름대로 가사와의 유기성을 드러낸다.


브람스가 전도서의 핵심용어인 “헤벨”을 음형화한 이 동기를 전 사이클의 모토 동기로 하고 있다는 것은 제 4곡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제 4곡의 주제는 진실한 사랑은 인간을 원초적 허무로부터 구원하는 신의 선물이라는 것이다. 이 음형은 제 4곡에서 성악성부가 “사랑(Liebe)”의 가사를 길게 노래할 때 밑의 반주성부에서 매번 울려져, 성악 성부가 흡사 허무한 세상을 감싸는 상성의 지속음과 같이 처리되어 있다. (38쪽)


‘헤벨(hebel)’ 모티프와 “사랑(Liebe)”의 관계에 대해 김원철식으로 이해하자면, 헤벨 또는 불교식으로 말해 무(無)나 공(空)의 의미를 깨달은 뒤에는 사랑의 가르침을 실천하라는 뜻이겠고, 이는 제1곡부터 제4곡까지 이어지는 가사의 내용과도 맞아떨어진다. 그리고 브람스는 ‘헤벨’ 모티프가 전달하는 다소 부정적인 심상이 “사랑(Liebe)”이라는 가사와 직접적으로 충돌하지 않게끔 모티프를 음악적 맥락에 따라 적당히 변형시켜 놓았다.

쉔커식 분석 이론의 교조성이 가지는 문제점과 그 해결 방안에 관한 정경영과 송무경의 문답은 쉔커식 이론에 비판적인 나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었고(칼 샥터(Carl Schachter)의 이름이 자연스럽게 연상되었다), 송무경이 제2곡의 음도 4를 선택한 과정 또한 같은 맥락에서 수긍할 수 있었다. 그러나 네오리만 변형이론은 짧은 소개만으로는 도저히 자세한 내용을 이해할 수가 없고 다만 화성/조성의 대칭구조가 있다는 내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2005년 7월 12일 화요일

브람스와 말러: 논리력과 상상력

고클래식에 있는 어떤 글을 읽고 드는 생각이 있어 씁니다. 글에 나타난 세 개의 논점을 대변하는 문장을 그대로 인용했습니다. 말꼬리 잡는 방식과 비슷해 보여서 썩 마음에 들지는 않군요. 원문을 읽지 않으신 분은 꼭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브루크너의 문제는'방법론'에 있어서의 다양성이 베토벤이나 브람스에 비해 현격히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 브루크너의 음악이 형식 논리로 보면 좀 엉성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음악을 판단하려는 태도는 좋지 않습니다.


서울과 의정부시가 맞붙은 곳에
자리잡은 이 집은 가난한 집이다
그래도 뜰은 볼 만하다
감나무와
버드나무와
무궁화꽃이 피며
이름도 모를 잡나무가 있다

장모님과
여고 삼 년인 영진과
마누라 그리고 셋방 든 홍씨와
합해서 일곱 명이 살고 있는 이 집은
뜰로서 부끄럽지 않다.

언제나 푸르고 녹색인 뜰
맑고 곱고 아담한 뜰

나는 생각나면
이 뜰에서 쉰다
그 포근함이며
깨끗한 공기여


이 시 어떻습니까? 뭔가 좀 엉성하다고요? 맞습니다. 제 집 뜰이 "언제나 푸르고 녹색"이라는데, 언제부터 감나무, 버드나무, 무궁화 따위가 상록수였습니까? 그리고 버드나무까지 있는 뜰이 아담하기는 뭐가 아담합니까? 그리고 시에 나타난 인물은 주인공까지 합해 다섯 명인데 엉뚱하게도 일곱 명이라고 우깁니다. 시를 쓴 사람은 간단한 산수도 할 줄 모른답니까? 뭐 이따위 엉터리 시를 인용했느냐고요? 네, 이야기 형태의 시에서 앞뒤 매무새가 맞지 않다면 문제가 됩니다. 그런데 약간의 상상력을 보태볼까요?


"(…) 시인은 실제 뜰을 말하고 있는 게 아니다! 2연을 보면 그것은 더욱 분명해진다. 감나무는 장모님과 대응되고(감나무의 이미지, 특히 노인의 피부와 감나무 껍질의 질감의 유사성을 생각해 보라), 버드나무와 여고 삼 년생인 영진이 대응되고(버드나무는 옛부터 나긋나긋한 젊은 여자에 대한 비유로 흔히 사용된다), 무궁화꽃과 마누라가 대응되고(시인에게 꽃의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식구는 마누라뿐이다. 그리고 나이든 마누라는 무궁화처럼 오래 된 꽃이다), 이름도 모를 잡나무는 셋방 식구들과 대응된다(셋방 식구들의 이름은 잘 모른다).

이러한 대응을 잘 살펴볼 때, 시인이 정말로 자랑하고자 하는 것은 꽃나무로 이루어진 정원이 아니라 사랑스런 가족들로 이루어진 가정의 뜰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시인은 셋방 식구들까지 잘 어울려 사는 훈훈한 가정을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3연에서 언제나 푸르고 밝고 곱고 아담한 집안의 분위기가 다시 한 번 강조되고, 시인은 삶에 지치면 가족의 포근한 품안에서 쉰다고 말한다. 마지막 구절 "그 포근함이여 / 깨끗한 공기여"에서는 실제 포근함과 깨끗함에 언어의 껍질을 깨고 독자의 마음에까지 그대로 전달되는 것 같다. 변두리의 가난한 집이지만 그 집안의 분위기는 천금으로도 바꿀 수 없는 포근함과 아름다움이 가득하다. (…)" (이남호)

- 오탁번., "둥근 과일과 떠오르는 달", [현대시의 이해]. 서울: 나남신서 (1998). 40-41쪽.

참고로 위 시는 천상병의 <우리집 뜰>입니다. <귀천>은 다들 아시죠?

음악의 아름다움을 말할 때 형식논리를 잣대로 삼을 수도 있지만 상상력도 훌륭한 잣대가 될 수 있습니다. 둘 가운데 어느 것을 중요시할 것인지는 각자의 가치판단에 따를 일입니다만, 한 가지만을 절대시하려는 태도는 곤란하겠지요? 그런데 우리나라의 음악 전공자들이 기교는 뛰어나지만 음악적 상상력이 부족하다는 말을 곧잘 듣습니다.

*

"말러의 가장 큰 문제는 역시 '구성력'입니다. 쉽게 말해 그의 곡은 '웅장하고 멋지게 쓰여진 여러 조각조각들의 모임'이죠."

--> 브루크너와는 달리 말러의 '구성력'과 관련해서는 위 주장에 쉽게 동의하기 힘듭니다. 말러의 음악을 악식론적으로 분석하려면 곤란한 점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분석의 기준이 베토벤과 브람스가 되기 때문입니다. (브루크너는 너무 단순해서 탈이고 말러는 너무 변화가 커서 탈이니 적당한 것이 좋겠다면, 그 '적당함'의 기준은?) 왜 그래야 할까요? 바흐를 기준으로 하면 안 될까요? 옳거니, 바흐를 기준으로 하면 베토벤도 브람스도 뛰어난 작곡가입니다만, 말러를 그보다 못한 작곡가라 말하기는 힘들어집니다. 말러는 특히 교향곡 9번 3악장을 작곡하면서 말러의 작곡기법을 깔보는 사람을 조롱하려는 의도를 담았다고 합니다. 대위법으로 말러 교향곡 9번 3악장과 견줄 작품은 과연?

베토벤을 절대 기준으로 놓고 보더라도 여전히 논란거리는 남습니다. 악식론적으로 따져서 곤란한 것은 말러 뿐 아니라 베토벤도 마찬가지거든요. 이를테면 "템페스트" 소나타 1악장에서 제시부의 경계는 어디일까요? 이에 대해 학자들이 일치된 의견을 내는 것을 저는 본 적이 없습니다. 수업시간에 있었던 일화 하나:

김원철: 마디 20까지가 인트로(intro)이면서 그 속에 제시부에 사용된 주제가 다 들어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선생님: 나름대로 그럴 듯하기는 한데, 참 파격적인 악식론이로구나. 그렇다면 이것을 소나타 형식이라고 할 수 있을까?
김원철: 모르겠네요. ㅡ,.ㅡ (까짓 거 소나타 형식이 아니라고 해도 그만이죠, 뭐. ㅡㅡ;)

"템페스트" 소나타 악보 보기

*

"즉, 필요한 최소한의 소리를 쓰는게 아니라 그의 곡 특유의 '표현력'을 위한다는 목적 아래 가급적 많은 악기(쓸데없지 않은 이상인 부분이 더 많긴 하지만..)가 매 순간 사용되죠."

--> 역시 기준점의 문제입니다. 말러의 관현악법에 낭비가 있다면 그 기준은? (아아, 여기서 말러의 초기 교향곡을 예로 들지는 마세요. 젊은 작곡가는 누구나 허영심이 있기 마련입니다. 허영심을 따지자면 바그너의 <리엔치>야 말로.. ^^;)

*

마지막으로 한 가지 근본적인 문제제기. 서양음악의 형식론은 음악에 유기성이 필요하다는 전제를 깔고 있습니다. 그런데 꼭 그래야만 할까요? 길게 쓰기 귀찮으니 예전에 썼던 글 하나만 링크 걸고 도망갑니다. 음악의 눈 (樂眼)


정보공유라이선스

김원철. 2005.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덧글 모음:

pheidias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고클의 그 글을 봤었는데, 교향곡이라는 측면에서만 본다면 교향곡이 내포하는 것이 어떤것이던 결국 형식과 구조라는 것과 씨름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고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교향곡을 기준으로 바라본다면 브루크너와 말러에 대해서 그런 결론에 도달하는것도 어느정도 일리 있는 주장이라고 생각은 됩니다... 물론 그런 측면에서 그들의 작품의 우열을 평가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생각됩니다만... 교향곡이라는 음악을 담는 그릇에대해 가지고 있는 각 작곡가의 생각자체가 다르다고 할수 있으니..

특 히 그 글에서 말러의 관현악법의 낭비라는 것과 말러의 구성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동의할수 없군요...^^ 님의 말대로 말러의 초기작이야 그렇다해도 후기 교향곡의 스코어를 보고도 그런 말을 할수 있을지... 그리고 말러의 대위법적 자질을 접어두고라도 3번 교향곡 1악장 같은곡을, 정말 중구난방의 음악조각들을 소나타 형식(?)에 담아낸 능력은 어찌 보는지...

간만에 좋은 글을 읽어 쓸데없는 말 남긴것 같습니다...^^
2005/07/12 19:04


김원철 앗, 블로그질 사흘 만에 첫 덧글입니다! 고맙습니다~~ >_< 2005/07/12 20:25
schnittke: 글을 참 맛나게 쓰셨네요.
^ㅡ^
05/07/13 08:04
tpch3: 상당히 깊은 생각을 하고 계시는 군요^^ 제가 나름대로 짧게 간단한 반박을 다시 해보자면 일단 저는 브루크너와 말러의 '교향곡'을 재료로 해서 말을 한 것입니다. 이는 앞글의 내용을 보시면 잘 알것입니다. 최소한 '교향곡'이란 장르의 특성과 그것이 '절대음악'이란 것을 생각한다면 과연 상상력과 논리력 중 어느것이 선택되어야 할지는 금방 분명해 질 것입니다. 반대로 '판타지'를 쓰는데 논리력을 논할 사람은 거의 없겠지요. 가곡 등 기타 양식을 논할때 말러와 브람스의의 가곡 중 누가 더 뛰어나냐는 정말로 힘든 논쟁거리가 될 것입니다. 또하나, 형식의 명확성을 말하고 계시는데 저는 그 명확성을 논한것이 아닙니다^^ 작곡가라면 그 의도에 따라 각 부분부분의 구분을 명확히 할 수도,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도록 오버랩해서 다소 모호하도록 할 수도 있습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 부분부분관의 논리적인 관계가 잘 설명되지 않는다, 또는 앞과 뒤에 있어서 그 이유가 불분명하다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관현악법 낭비에 대한 문제는 저도 사실 매우 조심스러운 것인데 실은 님처럼 후기보단 초기의 곡을 노린 것이 더 크다고 고백합니다. 그 분야의 최고자(?)는 역시 님의 말씀처럼 바그너가 되겠지요^^ 05/07/13 11:25
김원철 (wagnerian): 제가 원래 글에서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곽태평님께서 말씀하시는 '교향곡'이라는 개념 자체가 베토벤 등의 음악적 유산에 종속되어 있음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그러한 '전통적' 교향곡 개념을 고수한다면 말러의 교향곡은 더 이상 '교향곡'일 수 없습니다. 말러는 단지 'Symphonie'라는 말의 어원적 개념을 빌어 자신의 작품을 '교향곡(Symphonie)'이라고 했을 뿐이지요. 그리고 '절대음악'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습니다만(저는 바그네리안입니다. 한슬릭 즐~ ^^), '전통적' 교향곡의 개념을 버리고 나면 꼭 그것이 '절대음악'이어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참고로 저는 순수한 의미의 '절대음악'은 하나의 지향점이 될 수는 있을지라도 실재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05/07/13 15:09
김원철 (wagnerian): 또한, '판타지'의 세계에서도 내부적인 논리는 필요합니다. 제가 예로 든 천상병의 시를 보더라도 상상력을 보태고 난 뒤에는 앞뒤가 잘 맞아떨어집니다. 즉, 객관성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나면(그 '객관성'의 기준 자체가 베토벤-브람스인 것이 불만이라는 것은 이미 얘기했지요?) 언뜻 모호해 보이는 부분 부분의 관계가 분명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물론 감상자(또는 해석자)의 상상력입니다. (사실은 '판타지'를 끌어들이지 않고도 기존의 틀에서 자유로워지면 이론적 분석이 가능해질 수도 있습니다.) 지휘자는 자신의 판타지를 다른 사람에게 잘 전달할 수 있거나 또는 각자의 판타지를 이끌어내어 하나로 융합해내기를 잘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카를로스 클라이버가 이러한 점에서 천재적이라는 얘기를 모 연주자에게서 들은 적이 있습니다.05/07/13 15:09
tpch3: 유감스럽게도 저 개인적인 견해로는 '교향곡'이란 개념 자체를 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베토벤의 것에 종속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는 음악사적으로봐도 분명히 드러나거니와 '하이든'이 틀을 형성하고 '베토벤'에 의하여 일단 완성된 것이기 때문에 그 뒤에 나오는 '브루크너'나 '말러' 내지는 '브람스'는 이에 대한 변형 등으로 볼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정말 한정시켜 말을 한다면 말씀처럼 말러의 것은 '교향곡'이라 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음악에 있어서 '형식' 내지는 '악식'에 관한 문제는 그렇게 쉽게 왈가왈부 할 만한것도, 쉽게 여러 본질중 몇 개를 제외하고 폭넓게 받아들일 만한 것이 못됩니다. '절대음악'의 개념을 싫어하시는 듯 한데 이는 님의 취향이지 일반적인 정의나 통용되는 생각은 아닌 듯 합니다. 저는 가급적 객관적으로 보기를 원하기 때문에 역시 한쪽이 명백히 맞다고 생각하기를 원치는 않으나 이 부분에 대해선 별 수 없다 생각할 정도로 저 주변과의 논의에서도 결정이 났고 스스로도 그렇게 '느끼고' 있습니다. '판타지'의 예를 든 것은 그곳에 논리가 없다는 게 아니라 '교향곡'과의 비교를 위한 것입니다. '객관성'에 대한 집착을 버린다 하셨는데05/07/13 17:05
tpch3: 그렇다면 이 세상에 모든 음악이 표제 음악이 되어버리겠군요^^ 음악사상 가장 완벽한 형식이라 하는 '소나타'와 '푸가'를 생각해보십시요. 어느 범주에 들어가는지 판단은 쉽게 내리실 수 있으리라 봅니다. 05/07/13 17:41
김원철 (wagnerian): '교향곡'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개념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했으니 대충 상황정리가 된 것이지요? ^^05/07/13 18:05
김원철 (wagnerian): 저는 '절대음악'을 싫어한다고 한 적은 없습니다. (오히려 말러의 음악을 최대한 절대음악의 시각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논지는 절대음악-표제음악 이분법은 낡은 흑백논리라는 것입니다. 제가 '한슬릭 즐~'이라는 우스갯소리를 했습니다만, 사실 한슬릭의 논리는 당시에 꼭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편의상 좌익-우익의 비유를 하자면, 당시에는 극우파가 판치는 세상이었기 때문에 추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극좌파의 이데올로기가 필요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좌우의 이념 대립이 언제까지나 흑아니면 백 식의 일차원적인 대결 양상이 되면 곤란합니다. '객관성'에 대한 집착을 버린다고 모든 음악이 표제음악이 된다는 생각은 마치 우파가 정권을 잃으니 한반도가 빨갱이 천지가 된다는 발상과도 같습니다. (어째 정치 얘기를 하자니 뉘앙스가 좀 이상해지는 것도 같습니다. 그냥 편의상 비유로만 받아들여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결국 하고싶은 주장은 절대음악-표제음악 이분법은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근본적인 문제제기: 세상에 절대적인 객관 또는 절대적인 주관이 있을 수 있습니까? 어떤 수학자는 수학 논리 체계 또한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합니다. (누구더라..--a)05/07/13 18:07
ashkenazy7: 제가 괜히 끼는 것인지 모르겠네요. 어떤 잣대에서 보는가에 따라 상당히 달라질 수 있다고 봅니다. 제가 아는 미국에서 음악학으로 박사를 하신 분 이야기 들어보면 우리가 요즘 그렇게 흥분하며 연주가 많이 되고 있는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은 사실 서구의 음악학에서는 그리 비중을 차지 못하고 그냥 슬쩍 언급만하는 정도라네요. 그리고 작곡을 전공하시는 분도 형식을 중요시하는 서구, 특히 독일 음악 쪽에서 관점에서 보자면 그리 높이 평가될 수 없으며, 러시아 음악의 특징인 서사적인 흐름 안에서 평가된다면 달라질 수 있지 않겠냐고 말씀하시더군요. 사실 러시아에서는 쇼스타코비치가 러시아의 베토벤 아닙니까?
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현재 교향곡은 소멸되고 있는 장르라고 알고 있습니다. 20세기 초.중반에도 하르트만 같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교향곡을 작곡하신 분들은 대체로 보수적인 경향의 작곡가였고요.
그래서 해체되기 일보직전의 후기 낭만주의 교향곡을 브람스나 베토벤 교향곡의 잣대에서 평가하기보다는 그 시대의 관점에 맞추어 평가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나 싶네요
05/07/13 20:20
tpch3: 두 분의 의견 잘 읽었습니다. 자꾸만 저의 의견이 넓게 확대 해석되는 것 같아 조금 안타까운데 저는 최소한 같은 '장르'의 곡들에 비해서 시대를 초월하여 비교를 할 수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곡이쓰여질 때 단순히 그 곡뿐만 아니라 그 시대상황, 작곡가의 상태 등이 곡의 여러 중요 요소가 되겠지만 곡 자체의 완성도 등을 논할 때 분명 시대와 상관없는 '음악적 절대성'이 있다고 봅니다. 따라서 저는 '곡 그 자체'만을 상대로 하였으며 그 밖의 시대관점이랄지 작곡가만의 특색은 가능한 배제하고자 하였습니다. 절대음악에 관한 이야기는 원 글과 상관없이 확대되어 나온 이야기 같으므로 더이상 논하지 않겠습니다. 김원철님의 말씀도 제가 읽기에도 일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뜻하지 않게 제 글이 논란의 대상이 된 것을 매우 아쉽게 생각하며 이쯤에서 논의를 마치고자 합니다. 저도 더이상 제 생각을 끝까지 맞는 것이라 주장할 뜻도 없고(애초에 그걸 원한 것이 아니였으니까요) 같이 음악을 사랑하는 입장에서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서로 왈가왈부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봅니다. 어쨋든 서로의 입장과 생각을 확인했으니 그것으로 족하다고 봅니다. 저 뿐만 아니라 모든 고클인들이 자신의 생각을 재정리하며05/07/14 01:33
tpch3: 또한 다른 많은 의견들을 수용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저도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많은 생각을 해 보겠습니다. 이만 ㅡ05/07/14 01:33
scherzo: 역사성을 배제한 '음악적 절대성'이란 게 과연 존재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부터 생각해 보아야 것 같은데요? 가능한 한 객관적으로 작품의 완성도를 평가하고 싶어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만하고 그런 시도도 어느 정도는 확실히 가치 있는 것일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때의 '객관성'이라는 개념조차 이미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밖에 없는 개념이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를 테면, '교향곡'이라는 장르의 의미가 이미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변한 개념인데, 그것에 절대적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은 애시당초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베토벤의 교향곡과 말러의 교향곡은 같은 장르이면서도 같은 장르가 아닌 것이죠. 그리고 '곡 그 자체' 안에도 이미 많은 역사성이 숨어 있습니다. 그것을 배제하는 순간 그 음악은 절름발이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영원히 통용되는 예술사도, '객관적' 음악사도 존재하지 않는다. 음악사는 새로운 것, 살아있는 감수성, 시대의 정신적 요구에 따라 끊임없이 움직이고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언젠가 객관적 음악사라는 것이 있게 된다면, 그때는 음악 자체가 죽었다고 추측해도 된다." (알프레드 아인슈타인)
05/07/14 19:21
김원철 (wagnerian): 역사성을 배제한 '음악적 절대성'이 존재한다고 굳게 믿고 있는 음악학자를 본 적이 있기는 합니다. 그러한 전제는 음악사적 발전에 대한 믿음으로 이어지더군요. 즉 바흐-모차르트-베토벤-브람스로 이어지는 조성 시대가 서양음악의 황금기였고, 그 이전의 음악은 미개하며, 그 이후의 음악은 사양길이라는 식입니다. 미국의 꽤 유명한 학자인데, 내한 강연회에서 그 말을 듣고 황당해 했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가 훗날 수업시간에 그에 대한 저의 의견을 말한 적이 있습니다. "아아, 저놈이 미친놈이구나!" (일동 쓰러짐)05/07/14 21:50
김원철 (wagnerian): 역사성을 배제한 '음악적 절대성'이 있는지 없는지 저는 모르겠습니다만, 만약 있다면 그것을 함부로 정의하려는 태도는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도를 도라 하면 이미 도가 아니라 했던가요?05/07/14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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