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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6일 월요일

모차르트: 피아노 사중주 제1번 g단조 / 드보르자크: 피아노 사중주 제2번 E♭장조

모차르트: 피아노 사중주 제1번 g단조

음악학자 데이비드 펜튼에 따르면, 피아노와 현악기 셋을 편성한 ’피아노 사중주’는 18세기 중반 이후 건반악기에 반주 악기를 더한 디베르티멘토(가벼운 파티용 음악)에서 유래했다. 또한 초기 형태의 건반악기 협주곡이 흔히 바이올린 두 대와 첼로 등을 사용한 편성으로 출판되던 관행과도 연관되어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피아노 사중주는 18세기의 다른 실내악 장르와 마찬가지로 아마추어 연주자들의 여흥을 위한 장르로 여겨졌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 본격적인 피아노 사중주는 모차르트의 피아노 사중주 제1번 g단조(K. 478)와 제2번 E♭장조(K. 493)가 사실상 최초라 평가된다. 모차르트는 이 두 작품을 아마추어용으로 쉽게만 쓰지는 않았고, 특히 피아니스트에게 당시로서는 고난도 테크닉을 요구했다. 출판업자 호프마이스터는 모차르트에게 피아노 사중주 세 곡을 위촉했으나 g단조 사중주의 연주 난도가 높다는 이유로 결국 출판을 거절했다고 전해진다. 모차르트는 출판 계약이 취소된 이후 피아노 사중주 제2번 E♭장조를 작곡해 아르타리아 출판사를 통해 출판했다.

제1악장은 비장한 주제로 시작해 밝고 어두운 분위기를 오가며, 제2주제가 등장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유쾌한 속임수가 인상적이다. 원조성인 g단조가 제2주제의 조성 영역인 B♭장조로 옮겨간 뒤, 제2주제가 아닌 제1주제의 변형이 먼저 등장해 가짜 제2주제처럼 제시된다. 그 뒤에야 진짜 제2주제가 짧게 나왔다가 곧바로 작은종결구로 이어진다. 재현부에서는 이 가짜 제2주제 대신 속임종지가 등장한 뒤 g단조로 제2주제가 나온다. 발전부에서는 앞선 음소재를 활용하면서도 새로운 주제가 c단조로 나타나 제1주제의 비장함을 심화시킨다. 발전부와 재현부가 통째로 반복되는 구성 또한 주목할 만한 특징이다.

서정적인 제2악장은 소나타 형식을 기초로 하되 발전부를 대신해 제시부를 살짝 변형한 ’중간 부분’이 삽입된다. 제3악장은 론도-소나타 형식으로, 단조 영역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경쾌한 분위기를 유지하다가 발전부적 성격의 중간 부분에서 잠시 단조로 이탈하여 대비를 이룬다.

W. A. Mozart: Piano Quartet No. 1 in G minor, K. 478

According to musicologist David Fenton, the piano quartet — scored for piano and three string instruments — can be traced back to mid-eighteenth-century divertimenti — light social music — in some cases employing a keyboard instrument combined with accompanying strings in this specific instrumentation. It is also related to the contemporary publishing practice whereby early keyboard concertos were frequently issued in arrangements for keyboard with two violins and cello. Against this background, the piano quartet, like many other chamber music genres of the eighteenth century, was generally regarded as music intended for amateur enjoyment.

In the modern sense, however, the piano quartet is widely considered to have truly begun with Mozart’s Piano Quartet No. 1 in G minor, K. 478, and Piano Quartet No. 2 in E-flat major, K. 493. Mozart did not compose these works simply for amateur players; on the contrary, they demand a level of virtuosity — particularly from the pianist — that was exceptional for their time. The publisher F. A. Hoffmeister is said to have commissioned three piano quartets from Mozart, but ultimately declined to publish the G-minor work on account of its technical difficulty. After the contract was canceled, Mozart went on to compose the second quartet in E-flat major, which was subsequently published by Artaria.

The first movement opens with a tragic theme and alternates between light and dark moods, featuring a playful deception in the approach to the secondary theme. After the home key of G minor modulates to B-flat major — the expected key area for the secondary theme — a transformed version of the primary theme appears instead, functioning as a “false” secondary theme. Only then does the genuine secondary theme emerge briefly, followed immediately by a closing section. In the recapitulation, this false secondary theme is replaced by a deceptive cadence, after which the secondary theme finally returns in G minor. In the development, a new theme appears in C minor, derived from earlier motivic material and intensifying the tragic character of the primary theme. Also noteworthy is the large-scale repetition of both the development and the recapitulation in their entirety.

The lyrical second movement is based on sonata form, but instead of a full development section it inserts a lightly varied middle passage derived from the exposition. The third movement adopts a rondo-sonata form, maintaining an overall buoyant character in which the minor mode is scarcely felt, before briefly turning to the minor in a development-like central episode to create contrast.

드보르자크: 피아노 사중주 제2번 E♭장조

19세기 실내악은 18세기와 달리 더 이상 아마추어를 위한 장르가 아니었다. 특히 브람스 파벌과 바그너 파벌이 대립하던 시기에 브람스 진영을 옹호하는 논리로 ’고급 감상자는 실내악을 듣는다’라는 속설이 등장했으며, 이것은 오늘날에도 흔히 인용된다. 브람스를 멘토로 삼았던 드보르자크는 다양한 걸작 실내악을 남겼는데, 그중 피아노 사중주 제2번 E♭장조는 그의 성숙기에 쓰인 작품으로 브람스에 비견할 만한 치밀하고 복합적인 짜임새를 지닌다.

제1악장은 시작 직후부터 E♭장조를 벗어나 예상 밖의 조를 떠돌다가 한참 뒤에야 주조성을 확립하며, 이후에도 이와 유사한 흐름이 반복된다. 음악학자 브루스 아돌프의 분석에 따르면, 작곡가는 이 곡에서 E♭장조의 비화성음인 B와 G♭ 등을 ’돌연변이’이자 해결해야 할 ’문제’로 설정하고, 이를 원조성에서 멀리 떨어진 조로 이행하는 연결 고리로 활용함으로써 작품 전체를 조직한다. 제2주제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엉뚱한 조’인 G장조로 제시된다.

발전부는 마치 제시부가 반복되는 것처럼 시작하며, 반대로 재현부는 발전부가 계속되는 것처럼 출발한다. 발전부 직전에는 연쇄적인 감7화음과 여러 조를 경유하는 준비 과정으로 긴장감이 축적되며, 이어지는 발전부에서 제2주제는 자취를 감춘다. 재현부가 발전부의 연장이라는 인상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지점에서 제2주제는 B장조로 재현되는데, 이때 첼로가 홀로 일탈적인 하행 음형을 연주한다. 브루스 아돌프는 이것을 ’장조 속의 단조’이자 ’제2주제 속의 제1주제’로, 나아가 모차르트 피아노 사중주 제1번 g단조 제1악장의 이른바 ’가짜 제2주제’에 등장하는 비올라 솔로에 대한 오마주로 분석한다.

서정적인 제2악장은 발전부가 생략된 소나타 형식이며, 다채로운 춤의 향연인 제3악장은 스케르초와 트리오 형식, 경쾌하게 질주하는 제4악장은 소나타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세 악장은 모두 단순함과 복잡함 사이의 균형 잡힌 구조를 보여주며, 제1악장의 현란한 짜임새를 경험한 감상자라면 비교적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A. Dvořák: Piano Quartet No. 2 in E-flat major, Op. 87

Unlike in the 18th century, chamber music in the 19th century was no longer a genre intended primarily for amateur performers. During the period marked by rivalry between the Brahms and Wagner camps, chamber music came to be framed as “a genre for discerning audiences,” a notion that functioned as a rhetorical defense of the Brahmsian aesthetic and is still frequently cited today. Dvořák, who regarded Brahms as a mentor, left behind a rich body of chamber music. Among these, the Piano Quartet No. 2 in E-flat major stands as a mature work of remarkable density and complexity, worthy of comparison with Brahms’s own chamber masterpieces.

The first movement departs from E-flat major almost immediately, wandering through unexpected keys before establishing the home tonality only much later — a pattern that recurs throughout the movement. According to musicologist Bruce Adolphe, Dvořák structures the entire work by extensively featuring tones foreign to E-flat major — such as B natural and G-flat — which he treats as “mutations” and “problems to solve,” and further as pivots to remote key areas. In this context, the secondary theme is presented in the seemingly incongruous key of G major.

The development begins as if the exposition were being repeated, while the recapitulation, conversely, sets off as though the development were continuing. Just before the development, tension is carefully accumulated through a preparatory passage featuring chains of diminished-seventh chords and multiple modulations, after which the secondary theme disappears entirely from the development section. When the music finally breaks free from the sense that the recapitulation is merely an extension of the development, the secondary theme reappears in B major, at which point the cello stands out with a wayward gesture. Bruce Adolphe interprets this cello line as “reminding you that you were in minor,” as “bringing the first theme back,” and ultimately as a reference to Mozart — specifically, the viola solo that appears in the so-called “false secondary theme” of the first movement of Mozart’s Piano Quartet No. 1 in G minor.

The lyrical second movement is cast in sonata form without a development. The third movement, a showcase of various dances, is cast in scherzo-and-trio form, while the final movement, driven forward with exuberant energy, returns to sonata form. All three movements strike a fine balance between simplicity and complexity, allowing listeners — having navigated the intricate architecture of the first movement — to enjoy them with a sense of relative ease.

2023년 9월 23일 토요일

모차르트: 교향곡 41번 C장조 '주피터'

모차르트가 마지막으로 작곡한 교향곡으로, ’주피터’라는 표제는 공연주최자(임프레사리오) 요한 페터 살로몬이 붙였다고 전해진다. 이 작품은 표제만큼이나 장대한 짜임새로 되어 있으며, 특히 1악장과 4악장은 고전주의 시대 작품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복잡하다.

도입부 없이 나오는 웅장한 제1주제, 그와 대비되지만 경과구에 불과한 플루트·오보에 선율, 바이올린이 연주하는 제2주제, 웅장한 경과구, ’제3주제’에 가까운 역할을 하는 작은 종결구(codetta) 주제 등으로 1악장의 제시부가 구성되어 있고, 발전부는 작은 종결구 주제를 화려하게 변형시키며 시작된다. 재현부에서는 제시부를 반복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상당한 변형을 동반한다.

2악장도 소나타 형식이지만 짜임새는 1악장만큼 복잡하지 않다. 3악장은 미뉴에트와 트리오 형식, 즉 미뉴에트-트리오-미뉴에트로 이어지는 복합 세도막 형식이다. 2악장과 3악장 모두 귀에 쏙 들어오는 선율을 편하게 따라가는 식으로 감상할 수 있다.

4악장은 변종 소나타 형식으로 되어 있지만, 푸가토(fugato)가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푸가토는 푸가(fugue)와 비슷하되 주제(subject)와 응답(answer) 사이의 규칙을 지키지 않고 자유롭게 이어가는 기법을 말하는데, 여기에서는 ‘도―레―파―미’ 네 음으로 된 주제가 마치 건축물의 ’벽돌’과 같은 역할을 하며 이것이 다양하게 변형되고, 선율 조각들이 꼬리를 물며 서로를 흉내 내고, 그것이 층층이 쌓이며 텍스처의 복잡도와 음악적 에너지를 늘려간다. 정교하게 직조되는 선율들의 ’논리성’에서 오는 아폴론적 쾌감과 선율 자체의 에너지에서 오는 원초적 흥분이 상호작용하며 고양감을 일으킨다. ’그로브 음악 사전’을 편찬한 조지 그로브는 4악장의 푸가토를 극찬하며 “프랑스 대혁명 이전까지 나온 모든 관현악곡을 통틀어 가장 위대한 작품”이라고도 했다.

2023년 9월 17일 일요일

모차르트: 피아노 사중주 2번 E♭장조, K. 493

 음악학자 데이비드 펜튼에 따르면, 피아노와 현악기 셋을 편성한 '피아노 사중주'는 18세기 중반 이후 건반악기에 반주 악기를 더한 디베르티멘토(가벼운 파티용 음악)에서 유래했으며, 또한 초기 형태의 건반악기 협주곡이 흔히 바이올린 두 대와 첼로 등을 사용한 편성으로 출판되던 관행과도 어느 정도 관련이 있다. 

그러나 본격적인 '피아노 사중주' 곡으로는 모차르트의 피아노 사중주 1번 g단조(K. 478)와 2번 E♭장조(K. 493)가 사실상 최초라 할 수 있다. 출판업자 호프마이스터는 모차르트에게 피아노 사중주 세 곡을 위촉하였으나 g단조 사중주곡의 연주 난도가 너무 높다는 이유로 결국 출판을 거절했다고 전해지는데, 모차르트는 출판 계약이 취소된 이후 피아노 사중주 2번 E♭장조를 작곡해 알타리아 출판사에서 출판했다. 두 작품 모두 특히 피아니스트에게 (당시로서는) 고난도 테크닉을 요구한다.

소나타 형식으로 된 1악장은 E♭장조의 딸림조인 B♭장조가 특히 발전부 이후에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점이 특이하다. 서정적인 2악장 또한 소나타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론도 형식으로 된 3악장은 피아노 협주곡의 론도 악장과 견줄 수 있을 만큼 피아노의 역할이 중요하다.

2023년 5월 22일 월요일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15·16·17·18번

피아노 소나타 15번 F장조, K. 533/494

모차르트가 남긴 마지막 네 개의 피아노 소나타는 그가 35세 나이로 요절하기 3~4년 전에 남긴 걸작들이다. 이 작품들은 앞서 작곡한 피아노 소나타들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대위법을 보여주고 있으며, 특히 소나타 15번 F장조의 1악장과 2악장이 그렇다.

1악장에서는 일견 평범한 주제로 시작해서 특히 발전부에서 음악적 긴장을 늘려가는 짜임새라면, 2악장에서는 느리고 서정적인 선율로 조금씩 감정의 진폭을 늘려간다. 피아니스트이자 음악학자인 파울 바두라스코다는 특히 발전부가 끝날 즈음 불협화 계류음(suspension)이 주도하는 파격적인 화성 진행이 19세기 음악학자들을 혼란스럽게 했으며 오늘날 우리에게도 놀라움을 준다며 시대를 앞서간 음악 어법을 극찬한다. 3악장은 론도 형식으로 되어 있고, 밝은 분위기로 앞선 악장과 대비된다.

피아노 소나타 16번 C장조, K. 545

소나타 16번 C장조에 관해 모차르트는 “초보자를 위한 작은 피아노 소나타”라고 불렀다. 소나타 15번과 18번이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통틀어 기술적 난도가 가장 높은 작품이라면, 소나타 16번은 그 반대로 가장 쉬운 작품으로 피아노를 배우는 어린이들이 흔히 연주하는 곡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너무나 유명한 까닭에 전문 연주자가 무대에 올리는 일은 오히려 드물다. 그러나 기술적으로 쉬운 것이 아름답게 연주하기 쉽다는 뜻은 아니며, 단순한 짜임새 속에 담긴 놀라운 감정의 깊이를 발견해 나가는 것이야말로 이 작품의 감상 포인트라 할 수 있다.

피아노 소나타 17번 B♭장조, K. 570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가 보통 활기차게 시작하는 것과 달리, 소나타 17번은 느긋한 템포로 부드럽게 시작한다. 제1주제를 조금 변형해 제2주제로 재활용한 것이 특징이다. 발전부에서는 원조성인 B♭장조와 멀리 떨어진 D♭장조로 옮겨 극적 효과를 준다.

론도 형식으로 된 2악장은 거룩한 음악에 곧잘 쓰이는 E♭장조로 되어 있으며, 파울 바두라스코다는 이 악장이 “지상의 속박에서 벗어난 듯하다”라고도 했다. 모차르트는 웃음 속에 슬픔을 감추는 음악을 곧잘 썼는데, 여기서는 억지웃음 대신 명상적 숭고함으로 슬픔을 견디는 듯한 느낌이다.

3악장은 론도 형식이되 에피소드 위주인 것이 독특하다. 마치 시계가 째깍거리는 듯한 음형으로 시작해 처음부터 끝까지 밝은 분위기를 이어간다.

피아노 소나타 18번 D장조, K. 576

모차르트의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이다. 1악장은 소나타 형식, 2악장은 세도막 형식, 3악장은 론도-소나타 형식으로 되어 있고, 단순한 음 소재로 시작한 것과 달리 대위법적으로 꽤 복잡해서 소나타 15번 F장조와 더불어 기술적 난도가 가장 높은 곡으로 꼽힌다.

곡을 시작하는 주제가 사냥 나팔 소리를 닮았다고 해서 ‘사냥 소나타’ 또는 ’트럼펫 소나타’라고도 한다. 모차르트 작품 가운데 가장 밝은 곡 가운데 하나로, 일부 단조 영역을 제외하면 음악에 그늘이 없다시피 한 것이 다른 작품과 구별되는 점이다.

2020년 6월 22일 월요일

모차르트 클라리넷 퀸텟 A장조 K. 581 / 브람스 클라리넷 퀸텟 b단조 Op. 115

모차르트: 클라리넷 퀸텟 A장조 K. 581

“음악이 즐겁지 않으면 뭔가 잘못된 것이다.” (레오폴트 모차르트)

모차르트 클라리넷 퀸텟은 1789년 작품으로, 작곡가의 삶이 경제적으로나 건강상으로나 개인사로나 본격적인 고난에 시달리던 시기에 작곡되었다. 그러나 모차르트 음악에서 밝은 표정 뒤에 슬픔이 숨어 있거나 때로는 그 슬픔이 제법 겉으로 드러나는 것과 달리, 이 작품은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즐거움으로 가득하고 슬픔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 작품에는 또한 형식상의 파격이나 실험적인 음악 어법이 그다지 나타나지 않고, 때로는 파티용 유흥 음악인 세레나데 또는 디베르티멘토 느낌이 나기까지 한다. 소나타 형식으로 된 1악장에서도 그런 특징이 두드러지며 발전부마저도 가볍다. 발전부부터 1악장 끝까지를 한 차례 되풀이하는 점이 독특하다.

2악장은 클라리넷과 제1바이올린이 마치 깊은 밤 사랑의 대화를 나누는 듯한 짜임새로 되어 있다. 3악장은 미뉴엣과 두 가지 트리오가 론도처럼 엇갈리는 형식이다. 내용적으로는 a단조로 된 첫째 트리오를 A장조로 된 다른 부분이 감싸는 짜임새이며, 클라리넷과 제1바이올린이 춤을 추는 듯한 A장조와 제1바이올린이 홀로 탄식하는 듯한 a단조가 대비된다.

4악장에서는 ‘반짝반짝 작은 별’ 선율을 쏙 빼닮은 해맑고 즐거운 주제가 변주된다. 3번째 변주에서 조성이 a단조로 일탈하는 것을 제외하면 조성은 A장조를 거의 벗어나지 않고, 5번째 변주에서 템포가 갑자기 느려지는 것을 제외하면 템포는 해맑은 ’작은 별’을 거의 벗어나지 않는다.

브람스: 클라리넷 퀸텟 b단조 Op. 115

브람스 클라리넷 퀸텟은 작곡가 만년의 걸작으로 1891년에 작곡되었다. 교향곡을 실내악 편성으로 줄여놓은 듯한 텍스처, 그리고 정교한 형식논리 속에 낭만주의적인 ’드라마투르기’가 녹아 있는 점 등이 브람스답다.

이 작품의 1악장은 장조와 단조의 경계가 불분명하고, 이것이 어떤 ’이야기’를 매개하는 듯한 짜임새가 흥미롭다. 이를테면 b단조로도 D장조로도 볼 수 있는 바이올린 선율이 1악장을 시작했다가 비올라와 첼로가 나타나 b단조를 분명히 한다. 짧은 도입부가 끝나고 클라리넷과 함께 시작되는 제1주제는 D장조이며, 다시 비올라와 첼로가 주선율을 이끌면서 b단조로 되돌아간다. 1악장 전체 조성은 b단조이지만, 마치 비극 속의 작은 희망처럼 제2주제의 조성인 D장조의 영향력이 1악장 시작부터 나타난 듯한 짜임새이다.

2악장은 세도막 형식으로, 행복한 추억을 떠올리는 듯한 아련한 선율이 특징이다. 악보에는 ‘돌체’(부드럽고 달콤하게)라는 나타냄말이 붙어 있다. 가운데 부분에서는 조성이 B장조에서 b단조로 바뀌고, 탄식하는 듯한 클라리넷의 독백이 나온다.

3악장은 간소화된 소나타 형식이며, 내용적으로는 도입부-스케르초-코다 구성에 가깝다. 도입부에서는 D장조로 된 민요풍 선율이 마치 제1주제인 것처럼 제법 길게 이어진다. 조성이 b단조로 바뀌고 템포가 빨라지는 중간 부분은 조성 구조 등의 형식논리상 제시부-발전부-재현부로 구분되지만, 청감상으로는 리듬과 텍스처의 일관성이 유지되며 한 덩어리처럼 느껴진다. 코다에서는 도입부 주제로 짧게 끝맺는다.

4악장은 변주곡 형식으로 되어 있다. 브람스는 변칙적인 리듬, 변칙적인 박절 구조의 대가이지만, 이 악장은 의외로 네 마디 박절 구조가 거의 바뀌지 않으며 그런 점에서 샤콘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조성 또한 몇 마디쯤 장조로 일탈했다가 돌아오거나 제4변주에서 B장조가 되는 것을 빼면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b단조로 유지된다. 코다에서는 1악장 주제로 돌아온다. 조성은 b단조 속에 G장조가 섞여 있다. G장조는 다름 아닌 1악장 재현부 제2주제의 조성으로, 이것은 마치 음악이 비극으로 끝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작은 희망을 미련처럼 부여잡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2024. 4. 19. 영문 번역 추가:

J. Brahms: Clarinet Quintet in B minor, Op. 115

Brahms’ Clarinet Quintet, composed in 1891, stands as a pinnacle of the composer’s later works. With a texture reminiscent of a symphony condensed into a chamber music setting, and a romantic narrative woven into intricate formal logic, the piece showcases Brahms’ distinctive style.

The opening movement of the quintet is marked by its ambiguity in key, blurring the lines between major and minor tonalities. The initial violin melody, initially heard in what could be perceived as either B minor or D major, is confirmed in B minor by the viola and cello. After a short introduction, the primary theme, introduced by the clarinet in D major, is led back to B minor by the viola and cello. While the overall tonality of the first movement is B minor, the influence of D major, the tonality of the secondary theme, persists from the beginning alongside the prevailing B minor tonality, akin to a glimmer of hope amidst tragedy.

In the second movement, structured in ternary form, a tender melody invokes nostalgia, underscored by the indication ‘dolce’. Transitioning from B major to B minor in the central section, the clarinet delivers a lamenting soliloquy.

The third movement adopts a simplified sonata form, but its storyline resembling an introduction-scherzo-coda structure. A folk-like melody in D major unfolds for quite a long time in the introduction, as if it were the primary theme of the sonata form. The tonality shifts to B minor as the tempo accelerates in the middle section, which can be divided into exposition-development-recapitulation in terms of tonal structure and other logic of sonata form, but this middle section feels like a single block in terms of cohesive rhythm and texture. It culminates in a brief return to the introduction theme in the coda.

The fourth movement is in theme and variation form. Although Brahms is a master of irregular rhythmic patterns and bar structures, he departs from it in this movement, opting instead for a consistent four-bar structure reminiscent of a chaconne. Almost the entire movement is predominantly in B minor, with fleeting excursions into major keys and the fourth variation into B major. The movement culminates with a return to the thematic material of the first movement in the Coda, intertwining G major among the predominant B minor. G major is none other than the tonality of the secondary theme in the recapitulation of the first movement, which evokes a sense of fleeting optimism amidst the overarching tragedy.

2020년 1월 30일 목요일

쇤베르크: 정화된 밤 /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오페라 '카프리치오' 중 육중주 / 모차르트: 신포니아 콘체르탄테 E♭장조 K. 364

모차르트: 신포니아 콘체르탄테 E♭장조 K. 364

‘신포니아 콘체르탄테’란 하이든과 모차르트 등 고전주의 시대 작곡가들이 즐겨 쓰던 용어로, 대개 독주 악기가 둘 이상이며 통상적인 협주곡보다 독주 악기의 역할이 작아서 교향곡과 협주곡의 중간적 형태라 할 수 있는 악곡을 말한다.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위한 신포니아 콘체르탄테 E♭장조는 모차르트가 1779년에 쓴 작품으로, 독주악기 2대가 마치 오페라 이중창처럼 대화를 나누는 듯한 짜임새가 두드러진다. 특히 2악장은 쓸쓸한 선율과 더불어 바이올린과 비올라가 서로를 다독이는 듯한 분위기로 당당한 1악장 및 쾌활한 3악장과 대비를 이룬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오페라 ‘카프리치오’ 중 육중주

’카프리치오’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마지막 오페라이다. 백작의 여동생 마들렌을 사모하는 작곡가 플라망과 시인 올리비에가 시와 음악의 우열을 놓고 마들렌을 설득하려 하는 것이 주된 내용으로, 극 중 플라망이 작곡 중인 현악육중주로 오페라가 시작되며 이 현악육중주는 오페라와 별개로 연주되기도 한다. 음악 용어이기도 한 ’카프리치오’는 본디 ’변덕’을 뜻하며 음악(플라망)과 시(올리비에) 사이에서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마들렌의 마음을 상징한다.

쇤베르크: 정화된 밤, Op. 4

‘정화된 밤’은 쇤베르크의 후기 낭만주의 시기를 대표하는 걸작으로, 반음계적 화성에서 오는 탐미적인 정서와 정교한 형식미가 공존하는 것이 특징이다. 쇤베르크는 리하르트 데멜(Richard Dehmel)의 시 ’두 사람’(Zwei Menschen)에서 영감을 받아 실내악 편성의 교향시로 이 곡을 구성했으며, 초연 당시에는 줄거리를 설명하지 않고 순음악으로 평가받고자 했다. 시 전문은 다음과 같다.

두 사람이 황량하고 스산한 숲을 거닐고 있다.
달이 그들을 따라가고, 그들은 달을 쳐다본다.
달은 떡갈나무 위로 높이 나아가고
하늘에는 빛을 가릴 구름 한 점 없이
검고 뾰족한 나뭇가지가 달을 찌른다.
여자의 목소리 들린다:

“나는 아이를 가졌어요. 그대 아이가 아니랍니다.
나는 죄를 짓고 그대 곁을 걸어요.
나는 나에게 끔찍한 일을 저질렀어요.
나는 행복을 바랄 수 없어요.
그래도 나는 갈망했어요
삶의 풍요로움과, 어머니의 기쁨과,
어머니의 의무를요. 그래서 죄를 지었어요,
그래서 떨리는 내 몸을
낯선 사내의 품에 맡기고
복 받았다고 여기기도 했어요.
이제 인생이 복수를 하네요,
내가 그대를, 그대를, 만났네요.”

그녀는 비틀거리며 걸어간다.
그녀는 고개를 든다. 달이 따라온다.
그녀의 어두운 시선이 빛에 잠긴다.
남자의 목소리 들린다:

“그대가 잉태한 아이를
영혼의 짐으로 삼지 말아요.
보세요, 우주가 얼마나 밝게 빛나는지!
광채가 모든 곳에 쏟아지고,
그대와 내가 차가운 바다를 항해해도,
우리 안에서 따사로운 빛이 타올라요
그대에게서 나에게로, 나에게서 그대에게로.
그 열기가 낯선 이의 아이를 정화하고
그대가 잉태한 내 아이가 되리니
그대가 나에게 광채를 비추고,
그대가 내게서 아이를 만들었네요.”

남자는 여자의 굴곡진 허리를 감싸 안는다.
그들의 숨결이 공기 속에서 입 맞춘다.
두 사람이 높고 밝은 밤 속을 걸어간다.

2017년 6월 10일 토요일

영화 '아마데우스' 중 레퀴엠 작곡 장면 대사 번역

영화 '아마데우스'에 나오는 아주 멋진 장면이죠. 누가 이 장면 사운드트랙에 악보를 입힌 영상을 만들었네요. 어릴 때 이 대목 보면서 참 멋지다고 생각했었는데, 머리 굵어서 영어 대사와 음악적인 내용까지 다 이해하니까 더 멋집니다.

그런데 시중에 판매하는 영상물이, 특히 이 장면에서 한글 자막 번역이 엉망이라고 악명 높다지요. 그래서 제가 이참에 삘 받은 김에 직접 번역해 봤습니다. 음악 용어를 그대로 썼으니까 모르는 말 있으면 국어사전을 찾으시거나 구글링을 하시기 바랍니다.



모차르트: 어디까지 했었죠?
살리에리: 레코르다레(Recordare; 기록하소서)까지 끝냈었지. "Statuens in parte dextra(오른편에 세우소서)".

모차르트: 그럼 이제 콘푸타티스. "Confutatis Maledictis." 악인들을 혼란에 빠트리시고. "Flammis acribus addictis." 해석하면 어떻게 되죠?

살리에리: 고통의 불길에 내던지실 때.
모차르트: 그거 믿어요?
살리에리: 뭘?
모차르트: 꺼지지 않는 불. 영원히 태우는 불이요.
살리에리: 어, 그래.
모차르트: …그럴 수도.
살리에리: 자, 시작하자.
모차르트: 앞에 F장조로 끝났죠?
살리에리: 그래.
모차르트: 그럼 이제… a단조.
살리에리: …a단조. 그래. 콘푸타티스. a단조.
모차르트: 어느 성부를 먼저 하냐면… 베이스 먼저. 첫째 마디 둘째 박.
살리에리: 박자는? 박자는?
모차르트: 4/4박자. 첫째 마디 둘째 박. A음부터. 콘푸타티스~. 둘째 마디 둘째 박. 말레딕티스~. 알겠어요?
살리에리: 그래, 그래. G♯?
모차르트: 당연하죠. 셋째 마디 둘째 박. E부터. 플람-미스 아-크리-부스 아-디-티스. 쉼표. 말리딕티스, 플람미스 아크리부스 아딕티스.

살리에리: …아크리부스 아딕티스.
모차르트: 잘 적었어요?
살리에리: 아마도.

모차르트: 보여줘요. (합창소리 들린다) 좋아요. 좋아요. 이제 테너. 첫째 마디 넷째 박. C음. 콘푸타티스~. 둘째 마디 넷째 박. D음. 말레딕티스~. 됐어요?

살리에리: 그래, 그래. 계속해.
모차르트: 넷째 마디 둘째 박. F음. 플람미스 아크리부스 아딕티스 플람미스 아크리부스 아딕티스. 이제 오케스트라. 제2 바순과 베이스 트롬본이 베이스랑 같이 갑니다. 음이랑 리듬이 동일해요. (음악) 제1 바순과 테너 트롬본은 테너랑 같이 가고. (음악)

살리에리: 너무 빨라.
모차르트: 적었어요?
살리에리: 너무 빨라.
모차르트: 적었어요?
살리에리: 제1 바순과 테너 트롬본이 어떻다고?
모차르트: 테너랑 같다고요.
살리에리: 똑같아?
모차르트: 당연하죠! 악기가 성악을 더블링한다고요. 이제 트럼펫과 팀파니.
살리에리: 잠깐…
모차르트: D조 트럼펫.
살리에리: 안돼, 안돼.
모차르트: 잘 들어요.
살리에리: 안돼, 안돼, 못 알아듣겠다고!
모차르트: 들어봐요. D조 트럼펫. 으뜸화음과 딸림화음. 첫째 박과 셋째 박. 화음으로 가요. (음악)

살리에리: 그래, 그래… 그래, 이해했어. 그래, 그래. 이제 다 됐나?
모차르트: 아니요, 아니요. 이제 진짜로 불을 질러야죠. 현악기가 유니즌으로. A음에서 오스티나토. 이렇게. (음악) 다음 마디는 상행. (음악) 잘 적었어요?

살리에리: 그래, 그래. 아마도.
모차르트: 보여 줘요.
살리에리: 빠라밤 빰빰 […] 빰! 빰! 대단해!
모차르트: 예, 예, 예. 계속하죠. "Voca me(나를 부르소서)." 소토 보체. 쓰세요. 소토 보체(Sotto voce). 유니즌.
살리에리: 그래, 그래… 유니즌?
모차르트: 보카 메 쿰 베네딕티스… 예. 축복받은 이들과 더불어 나를 부르소서. C장조. 소프라노와 알토가 3도 음정으로. 알토가 C음, 소프라노가 그 위로. (음악)

살리에리: 소프라노가 두 번째로 "Voca" 할 때 최고음이 F 맞아?
모차르트: 예.
살리에리: 그래, 그래.
모차르트: "딕티스(-dictis)" 할 때요.
살리에리: 그래.
모차르트: 이제 그 밑에. 바이올린. 아르페지오. 따라라~. 8분음표 하행 음계… 이제 오스티나토로 돌아가요. 이게 끝이에요. 적었어요?

살리에리: …너무 빨라.
모차르트: 적었어요?
살리에리: 너무 빨라. 잠시만, 좀! 잠시만. …그래.
모차르트: 좋아요. 보여 줘요. 전부. 처음부터.

(음악)



요건 원래 영상. 악보 입힌 영상이랑 대사 편집이 살짝 다릅니다.

2016년 12월 29일 목요일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K. 304, 윤이상 바이올린 소나타,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2번, 프랑크 바이올린 소나타

통영국제음악당 공연 프로그램북에 실릴 글입니다.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21번 e단조 K. 304

"강요하지 않는 슬픔이 우리 귀를 휘감습니다. 태연한 얼굴로 가슴 아프게 하기, 바로 모차르트의 특기입니다."

이 글을 쓰면서 인용할 만한 문구가 있을까 싶어 검색했더니, 중앙일보 김효은 기자님이 이렇게 쓰셨네요. 모차르트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많이들 공감할 말이지요. 모차르트 음악은 밝으면서 이상하게 슬픈 느낌이 들고, 슬픈 듯하면서 또 밝아요. 때로는 슬프지 않은 척하는 표정이 눈에 보이는 듯해서 더욱 슬프기도 합니다.

모차르트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1778년에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위한 e단조 소나타를 썼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에는 슬픔이 겉으로 제법 드러나는 편이지만, 슬픔을 감추려는 억지웃음 또한 음악에 가득한 점이 역시 모차르트답습니다.

윤이상: 바이올린 소나타

윤이상 음악 양식은 1975/76년부터 큰 변화를 맞이합니다. 이른바 '동베를린 사건'과 그에 따른 후유증이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고들 하지요. 이때부터 작곡가는 추상적인 구조보다는 음악 외적인 '메시지'를 음악에 담고자 했고, 그에 따라 더 자유로운 짜임새로 더 감성적인 음악을 쓰고자 했습니다. 바이올린 소나타는 작곡가가 죽기 4년 앞선 1991년에 남긴 작품입니다.

음악학자 볼프강 슈파러는 이 곡에서 바이올린이 작곡가 자신의 목소리를 대변한다고 분석합니다. 그렇다면 바이올린 소리를 사람 목소리라 생각하고 음악을 들어 보세요. 바이올린이 무언가를 말하고 있어도 가사를 알아들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목소리에 실린 감정만큼은 생생하게 느껴질 거예요. 이 곡에서 바이올린은 울고, 웃고, 고통받고, 절규하고, 탄식하고, 저항합니다.

곡 전체의 클라이맥스라 할 만한 곳에서 바이올린은 자꾸만 높은 음으로 노래하다가 끝내 '해탈'에 이릅니다. 그러나 여기서 느껴지는 감정은 깨달음을 얻은 환희가 아닙니다. 그냥 세상 번뇌를 다 놓아버리는 것이 '해탈'의 실체인 듯해요. 그렇게 슬픈 카타르시스가 가장 높은 음에서 별빛처럼 아름답게 반짝입니다. 그리고 속세에 찌꺼기처럼 남은 먹먹함이 천천히 음악을 끝맺습니다.

2024. 9. 26. 수정 텍스트:

윤이상은 더 한국적인 (또는 동아시아적인) 울림을 담아내는 방향으로 자신의 음악 양식을 꾸준히 변화시켰다. 이른바 '동베를린 사건'을 겪고 그 후유증에 시달리던 1975/76년 이후의 변화는 특히 뚜렷하다. 이때부터 작곡가는 추상적인 구조보다는 음악 외적인 메시지를 작품에 담고자 했고, 음악을 통한 '해탈'을 추구했으며, 그에 따라 더 자유로운 짜임새로 더 감성적인 음악을 쓰고자 했다.

유럽인의 시각으로 본 윤이상은 1970년대 중반 이후 더 많은 '협화음'을 작품에 허용하고 있었고, 이것은 최첨단 현대음악으로부터 이탈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음악에 담긴 동아시아적 요소를 서양인들은 그다지 섬세하게 이해하지 못했고, 일본이나 중국과 다른 한국적 요소에 관한 서양인의 이해는 더욱 얕을 수밖에 없었다. 윤이상의 음악은 더 쉬워지는 동시에 더 어려워졌다. 바이올린 소나타는 작곡가가 죽기 4년 앞선 1991년에 남긴 작품이다.

음악학자 볼프강 슈파러는 이 곡에서 바이올린이 작곡가 자신의 목소리를 대변한다고 분석한다. 그렇다면 바이올린 소리를 사람 목소리라 생각하고 음악을 들어 보면 어떨까. 바이올린이 무언가를 말하고 있어도 가사를 알아들을 수는 없다. 그러나 목소리에 실린 감정만큼은 생생하게 느껴질 것이다. 이 곡에서 바이올린은 울고, 웃고, 고통받고, 절규하고, 탄식하고, 저항한다.

곡 전체의 클라이맥스라 할 만한 곳에서 바이올린은 자꾸만 높은 음으로 노래하다가 끝내 '해탈'에 이른다. 그러나 여기서 느껴지는 감정은 깨달음을 얻은 환희가 아니며, 세상 번뇌를 다 놓아버리는 것이 '해탈'의 실체인 듯하다. 그렇게 슬픈 카타르시스가 가장 높은 음에서 별빛처럼 아름답게 반짝인다. 그리고 속세에 찌꺼기처럼 남은 먹먹함이 천천히 음악을 끝맺는다.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2번 A장조 Op. 100

이 작품은 브람스가 교향곡 4번을 초연한 이듬해인 1886년, 작곡가로서 명성이 정점에 이르렀을 때 남긴 걸작입니다. 브람스는 적어도 형식적인 측면에서 베토벤을 가장 훌륭하게 계승한 19세기 작곡가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베토벤이 음악 유산으로 남긴 작곡 기법이 낭만주의 시대의 '노래하는 선율'과 맞지 않았던 딜레마를 브람스는 정면 돌파해 해결했지요.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2번은 정교한 구조 속에서 주제를 변화 · 발전시키는 일이 노래를 닮은 아름다운 선율로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탁월하게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브람스 작품이 흔히 그렇듯, 이 곡은 그래서 악보를 분석할수록 그 짜임새에 탄복하게 됩니다. 브람스는 실제로 비슷한 시기에 쓴 가곡들을 이 작품에 슬쩍 인용하기도 했는데, 얼핏 들어서는 알아채기가 쉽지 않습니다.

한편, 1악장 첫 세 음과 그에 딸린 화음이 바그너 오페라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어》 중 '발터'가 부르는 노래 "Morgenlich leuchtend im rosigen Schein"(아침 햇살 장밋빛으로 빛나네)과 같다는 사실은 흥미롭습니다. 브람스가 이것을 일부러 인용한 것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제 생각에 브람스가 모르고 그랬다고 믿기는 어려워요. 브람스와 바그너 중 베토벤의 진정한 후계자가 누구인가를 놓고 유럽 음악계 전체가 '패싸움'을 벌인 역사적 사실까지 헤아리면 더욱 재미있죠.

프랑크: 바이올린 소나타 A장조

"[…] 오케스트라 전체를 감싸는 촘촘한 그물을 형성하며 매 순간 그 구조를 결정한다. […] 이러한 그물은 베토벤이 주제를 다루는 방식과 한 가지 근본적인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즉 균형 잡힌 선율적 악절보다는 모티프의 논리에 의해 음악 형식이 이루어진다."

음악학자 카를 달하우스가 바그너의 라이트모티프(Leitmotiv)를 설명한 말입니다. 특정한 음악으로 인물 · 사건 · 감정 등을 떠올리게 하는 기법은 요즘에는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도 곧잘 쓰이지요. 이것을 흔히 '라이트포티프'라고 하는데, 엄밀히 말하면 연상작용만으로 라이트모티프라 할 수는 없어요. 달하우스가 설명한 것은 주제를 발전시키는 방법이고, 결국 베토벤 음악 어법을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엮여 있습니다.

라이트모티프에서 '드라마'를 빼고 나면 세자르 프랑크가 사용한 주제 발전 기법이 됩니다. 주제 선율의 원형을 중심에 놓고 주변 요소를 그물망처럼 엮어 바꿔나가면, 듣는 사람이 인지할 수 있을 만큼 적당히 달라진 선율과 리듬이 자꾸만 되풀이되면서 음악의 뼈대가 형성되지요. 바그너는 사실 리스트가 사용한 기법을 받아들였고, 프랑크는 리스트와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기법을 개발했습니다. 소수 의견이지만 리스트보다 프랑크가 먼저라는 주장도 있어요.

프랑크 바이올린 소나타는 이런 음악 어법이 원숙한 형태로 나타나는 작품입니다. 1악장에 나오는 주제 선율이 다른 악장에서 달라진 모습으로 되풀이되지요. 서늘하고 쓸쓸한 바이올린 소리와 두텁게 쌓인 화음으로 신비롭게 들리는 피아노 소리, 그리고 무엇보다 마지막 악장의 즐거운 돌림노래가 백미입니다.

2016년 6월 8일 수요일

슈베르트 현악사중주 12번 c단조 D. 703 ‘Quartettsatz’ / 모차르트 현악사중 주 C장조 K. 465 ‘불협화음’ / 드뷔시 현악사중주 g단조 Op. 10

통영국제음악당 공연 프로그램북에 실릴 글입니다.


슈베르트: 현악사중주 12번 c단조 D. 703 ‘단악장’

1820년 작품으로 대략 이때부터 작곡가가 완숙기에 들었다고 평가받습니다. 슈베르트는 이 곡을 여러 악장으로 된 현악사중주의 1악장으로 구상했고, 이 곡에 이어 안단테 악장을 41마디까지 쓰다가 말았습니다. 그러나 '미완성 교향곡'이 그렇듯, 이 단악장만으로도 완결성이 있어서 독립된 악곡으로 자주 연주됩니다. 작곡가가 죽은 뒤인 1867년에 초연되었고, 브람스가 나서서 악보를 출판하면서 '현악사중주 12번'으로 명명되었습니다.

곡 처음에 나오는 빠르고 반음계적인 16분음 음형은 얼핏 도입부인 듯하지만, 이어지는 짜임새를 보면 사실 이것이 제1 주제입니다. '미완성 교향곡' 도입부와 비슷하고, 한편으로는 현악사중주 14번 '죽음과 소녀'에 나타나는 악마적인 쾌(快)와도 닮았지요. 경과구 없이 나오는 제2 주제는 어찌 들으면 뜬금없이 느껴지며, 재현부는 제2주제와 함께 엉뚱한 맥락에서 엉뚱한 조성으로 시작합니다. 소나타 형식으로 되어 있기는 해도 정형(定型)을 벗어나 있지요. 그래서 이 곡을 들을 때는 차라리 작곡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상상하시면 좋아요.

굳이 이론적인 얘기를 조금 하자면, 슈베르트 음악의 조성구조는 일반적인 소나타 형식과는 맞지 않을 때가 잦습니다. 이 곡은 원조성이 c단조, 제2주제는 A♭장조, 재현부는 B♭장조, 심층 구조상 '진짜 재현부'라 할 수 있는 곳은 E♭장조입니다. '5도권'(circle of fifths)이라 부르는 조바꿈 원리가 아닌 '3도권'(circle of thirds)으로 슈베르트 음악을 설명하는 학자도 있고, 이 곡에서는 2도와 7도 또한 구조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모차르트: 현악사중주 C장조 K. 465 ‘불협화음’

모차르트가 공손한 편지와 함께 하이든에게 헌정했던 '여섯 아들' 가운데 마지막 곡입니다. '불협화음'이라는 별명은 22마디에 이르는 도입부 내내 반음계적으로 이어지는 불협화음 때문에 붙은 것인데, 이것은 19세기 음악학자들이 오류라고 생각해 고치려고 했을 만큼 당시로써는 매우 파격적인 어법입니다. 다만, 이것은 18세기 양식의 틀 안에서 일탈적으로 나타나는 것인 만큼 19세기에 나타나는 반음계적 화성과는 맥락이 다르지요.

파격적인 도입부 못지않게 제시부 또한 흥미롭습니다. 앞선 불협화음과 대비되어 안락하게 느껴지지만, 시작은 여리고 조심스럽게 나오는 협화음입니다. 찬란하게 빛나며 앞선 불협화음을 한 방에 날려 버리는 화음이 아니에요. 같은 주제가 되풀이되면서 셈여림 기호가 포르테(세게)로 바뀌고, 앞서 나오지 않던 첼로가 가세합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선율이 한 옥타브 뛰어오르고, 제2 바이올린이 제1 바이올린보다 높은음으로 시작했다가 슬쩍 자리바꿈을 합니다.

상상력을 조금 보태 봅시다. 모차르트는 자신에게 익숙한 교통수단인 '마차'가 천천히 출발해 속력을 높이는 과정을 생각하면서 이 곡을 썼다고요. 음악이론가 송무경 선생은 이 곡의 심층 구조를 분석하면서, 제시부가 시작된 뒤에도 '구조적인 불협화'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다가 선율이 한 옥타브 뛰어오르는 그 대목에 이르러서야 완전한 해결에 이른다고 지적합니다. 그러니까 속도가 충분히 붙어서 관성 위주로 달리는 안정된 느낌이 바로 이곳에서 나오는 것이지요.

나머지는 그냥 모차르트답습니다. 때때로 대담한 표현도 있지만 파격까지는 아니에요. 2 · 3 · 4악장도 마찬가지입니다.

드뷔시: 현악사중주 g단조 Op. 10

"내가 추구하는 음악을 말하자면, 나는 그것이 영혼의 시적 충동과 몽환 세계의 자유분방함에 어우러질 만큼 유연하면서도 강약이 살아있는 음악이기를 바란다."

1886년, 드뷔시는 보들레르가 했던 말을 슬쩍 비틀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신의 오후 전주곡》이나 《바다》 같은 작품과 더 잘 어울리는 말일지 모르지만, 조금 다른 맥락에서 드뷔시 현악사중주를 설명하는 말로도 적절하지 않나 싶어요. 표제가 없는 순음악으로서 독일-오스트리아 음악 전통과 프랑스 음악의 자유로움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치열함을 이 작품에서 엿볼 수 있거든요.

현악사중주 g단조는 1893년 작품으로 전통적인 현악사중주를 뼈대로 하고 있으면서도 세부적인 짜임새가 매우 자유롭습니다. 소나타 형식 구조가 모호하게 흐려져 있고, 'g단조'라고 써놓기는 했지만 사실은 교회선법과 5음음계 등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흐려진 조성 사이를 파격적인 화음들이 헤엄쳐 다닙니다. Op. 10이라고 쓴 것은 그냥 젊은 작곡가의 허세입니다. 드뷔시 작품 가운데 작품번호가 붙은 것은 이 곡뿐이지요.

이 작품에서 때로 아라비아 느낌이 나는 까닭은 프리지아 선법 때문입니다. 도리아, 믹소리디아, 에올리아 등 16세기 이전에 널리 쓰이던 다른 교회선법이 쓰이기도 했고, 그래서 묘하게 중세 느낌, 때로는 본 윌리엄스 느낌이 납니다. 5음음계는 동양적인 느낌을 주고, 강력한 불협화음과 함께할 때는 20세기 헤비메탈 느낌도 나지요. '5음음계'를 영어로 하면 록음악에서 말하는 펜타토닉 스케일(pentatonic scale) 바로 그것입니다.

2015년 1월 30일 금요일

모차르트 교향곡 40번 g단조,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b단조 '비창'(Pathétique)

2014년 12월 통영국제음악당 공연 프로그램북에 실렸던 글입니다. 잊어버리고 있다가 생각나서 올립니다.


모차르트 교향곡 40번 g단조

모차르트는 시대를 앞서간 '프리랜서' 음악가였습니다. 예술가를 후원했던 권력자들이 그때만 해도 예술가를 하인 취급했고, 모차르트는 그것을 참지 못했거든요. 심지어 대주교한테 대들고는 "엉덩이를 걷어차여" 쫓겨나기까지 했다지요.

성공한 프리랜서 음악가였던 베토벤과 달리, 모차르트는 헤픈 씀씀이만큼 수입이 따르지 않아 고생했습니다. 겨울에 난방을 못 해서 밤새 아내와 함께 춤을 췄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예요. 모차르트가 겪었던 가난과 관련해 과장도 있지만, 모차르트의 삶이 평탄치 않았던 것만은 분명합니다.

모차르트 작품은 이러한 속사정과 달리 대부분 티 없이 해맑지요. 교향곡 40번은 모차르트가 죽기 약 3년 전에 쓴 곡으로 모차르트 작품치고는 비교적 슬픔이 겉으로 드러나는 편인데, 그러나 그마저도 조금 내비치다 말지요. 고전주의 시대 음악은 베토벤 이전까지 이랬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모차르트를 사랑하는 사람은 알 겁니다. 해맑은 음악 속에 커다란 슬픔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요. 이 말에 고개를 갸우뚱하실 분도 음악을 듣다 보면 깨달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더군다나 이번 공연은 모차르트 교향곡이 차이콥스키 비창 교향곡과 함께 묶였으니, 이번 공연의 숨은 주제는 '슬픔'이라 할 수 있습니다.

1악장, 2악장, 4악장은 소나타 형식이고, 3악장은 세도막 형식의 일종인 '미뉴엣과 트리오' 형식입니다. 고전적인 교향곡 짜임새를 깔끔하게 따르고 있어서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지는 않을 듯합니다. 소나타 형식을 모르시는 분을 위해 아주 간단하게만 설명할게요.

소나타 형식은 크게 보아 제시부―발전부―재현부 세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제시부는 제1 주제, 그와 대비되는 제2 주제, 그리고 경과구 따위로 이루어져 있고, 발전부는 제시부 주제가 자유롭게 '발전'하는 곳입니다. 재현부는 제시부를 그대로 또는 비슷하게 되새기는 곳이고요. 때로는 앞뒤로 서주(intro)와 종결구(coda)가 덧붙을 수도 있습니다.

잘 모르겠으면 다 잊어버리고 그냥 들으셔도 됩니다. 모차르트 음악은 듣기 좋은 선율과 리듬이 계속 이어지니까, 소나타 형식을 모르고 그냥 들어도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을 거예요.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b단조 '비창'(Pathétique)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은 차이콥스키의 마지막 작품으로 작곡가가 죽기 9일 전에 작곡가 자신의 지휘로 초연되었습니다. 그리고 초연 21일 만에 열린 두 번째 연주회는 차이콥스키 추모 공연이 되었지요. 두 번째 공연 이후 차이콥스키 자살설이 나돌았고, 차이콥스키가 사실은 동성애자였으며 명예를 지키라는 강권에 따라 자살했다는 설도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 작품을 차이콥스키의 유서로 보는 시각이 힘을 얻었습니다. 곡 전체에 흐르는 비극적인 정서와 1악장 절정 부분에서 인용한 러시아 정교회 레퀴엠 음형, 그리고 무엇보다 작곡가의 죽음이라는 결정적인 정황 때문이지요. 그러나 리처드 타루스킨을 비롯한 저명한 음악학자들은 이 작품을 유서로 보는 관점에 그다지 동의하지 않습니다. 여러 정황 때문에 사람들이 음악에서 듣고싶은 것을 들었을 뿐이라고요.

'비창'(Pathétique; Патетическая)이라는 표제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 c단조 '비창'에서 따온 듯합니다. 차이콥스키에게 '비창'이라는 표제를 제안한 사람은 작곡가의 동생이자 극작가였던 모데스트였지만, 차이콥스키가 '비창 소나타' 도입부 음형을 살짝 바꾸어 '비창 교향곡' 도입부에서 인용하고 작품의 주요 주제로 사용했다는 사실에서 작곡가 자신이 '비창 소나타'를 어느 정도 의식했음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 c단조 Op. 13 '비창' 1악장 도입부


▲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b단조 '비창' 1악장 도입부 (바순 독주)

차이콥스키의 다른 작품처럼, 이 곡은 구조를 분석하기보다는 작품 속에 숨은 '이야기'에 집중하면 좋습니다. 마음씨 여린 작곡가가 폭력적인 현실 앞에서 괴로워하는 듯한 1악장, 슬픔을 애써 감추고 춤을 추는 듯한 2악장, 거짓 승리에 도취되어 현실에서 눈 돌리는 3악장, 그리고 '죽어가듯이'(morendo)라는 나타냄말과 더불어 절망과 체념 속으로 침잠하는 4악장. 음악을 들으면 슬픈 이야기가 머릿속에 떠오를 듯합니다.

그런데 3악장이 워낙 화려하고 과장되게 뿜빰거리면서 끝나기 때문에, 대개 3악장이 끝나자 마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오곤 합니다. 교향곡이 다 끝난 줄 알고 손뼉을 치는 사람도 있지만, 아닌 줄 알면서 일부러 치는 사람도 있을 정도예요. 개인적으로는 악장 사이에 손뼉을 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관객의 박수가 3악장에 가득한 반어적 음악 어법의 일부라 볼 수도 있을 듯해요.

진짜 문제는 4악장입니다. 흐느끼듯 시작해서 목놓아 울부짖다가, 나중에는 죽어가듯이 천천히 여리게 끝나는 짜임새 때문이지요. 그래서 연주가 끝난 뒤에도 여운을 즐길 수 있게끔 하는 '침묵 악장'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때때로 성급한 박수가 이 '침묵 악장'을 망쳐놓곤 하지요. 지난 2008년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이 곡을 연주했을때, 서울시향 월간지 『SPO』에 기고한 글에서 저는 이렇게 썼습니다:

이날은 잔향이 미처 가시기도 전에 박수가 터져 나오는 '참사'는 일어나지 않아 다행이었으나 잔향이 없어지고 채 5초가 지나지 않아 끝내 성급한 박수가 나왔다. 그때까지 지휘봉을 높이 들고 있던 정명훈은 김 샜다는 듯이 팔을 내리고 말았다. 잔향이 없어지기에 앞서 치는 손뼉을 '안다 박수'라고 하여 비꼬아 말하기도 하는데, 이날 박수는 '안다 박수'는 아니고 '깬다 박수'라고 하더라.

이날 공연은 서울시향 역사에 중요한 이정표로 꼽을 수 있을 만큼 훌륭했습니다. 이후로 '비창 교향곡'은 서울시향이 외국에 나가서도 즐겨 연주할 만큼 서울시향의 대표곡이 되기도 했지요. 정명훈 지휘자의 충격적인 작품 해석으로도 유명한 이 작품을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어떻게 연주할지, 이번 통영 공연을 기대해 주세요!

2014년 11월 22일 토요일

모차르트 교향곡 40번,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

통영국제음악당 공연 책자에 실린 글입니다.

모차르트 교향곡 40번 g단조

모차르트는 시대를 앞서간 '프리랜서' 음악가였습니다. 예술가를 후원했던 권력자들이 그때만 해도 예술가를 하인 취급했고, 모차르트는 그것을 참지 못했거든요. 심지어 대주교한테 대들고는 "엉덩이를 걷어차여" 쫓겨나기까지 했다지요.

성공한 프리랜서 음악가였던 베토벤과 달리, 모차르트는 헤픈 씀씀이만큼 수입이 따르지 않아 고생했습니다. 겨울에 난방을 못 해서 밤새 아내와 함께 춤을 췄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예요. 모차르트가 겪었던 가난과 관련해 과장도 있지만, 모차르트의 삶이 평탄치 않았던 것만은 분명합니다.

모차르트 작품은 이러한 속사정과 달리 대부분 티 없이 해맑지요. 교향곡 40번은 모차르트가 죽기 약 3년 전에 쓴 곡으로 모차르트 작품치고는 비교적 슬픔이 겉으로 드러나는 편인데, 그러나 그마저도 조금 내비치다 말지요. 고전주의 시대 음악은 베토벤 이전까지 이랬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모차르트를 사랑하는 사람은 알 겁니다. 해맑은 음악 속에 커다란 슬픔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요. 이 말에 고개를 갸우뚱하실 분도 음악을 듣다 보면 깨달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더군다나 이번 공연은 모차르트 교향곡이 차이콥스키 비창 교향곡과 함께 묶였으니, 이번 공연의 숨은 주제는 '슬픔'이라 할 수 있습니다.

1악장, 2악장, 4악장은 소나타 형식이고, 3악장은 세도막 형식의 일종인 '미뉴엣과 트리오' 형식입니다. 고전적인 교향곡 짜임새를 깔끔하게 따르고 있어서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지는 않을 듯합니다. 소나타 형식을 모르시는 분을 위해 아주 간단하게만 설명할게요.

소나타 형식은 크게 보아 제시부―발전부―재현부 세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제시부는 제1 주제, 그와 대비되는 제2 주제, 그리고 경과구 따위로 이루어져 있고, 발전부는 제시부 주제가 자유롭게 '발전'하는 곳입니다. 재현부는 제시부를 그대로 또는 비슷하게 되새기는 곳이고요. 때로는 앞뒤로 서주(intro)와 종결구(coda)가 덧붙을 수도 있습니다.

잘 모르겠으면 다 잊어버리고 그냥 들으셔도 됩니다. 모차르트 음악은 듣기 좋은 선율과 리듬이 계속 이어지니까, 소나타 형식을 모르고 그냥 들어도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을 거예요.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b단조 '비창'(Pathétique)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은 차이콥스키의 마지막 작품으로 작곡가가 죽기 9일 전에 작곡가 자신의 지휘로 초연되었습니다. 그리고 초연 21일 만에 열린 두 번째 연주회는 차이콥스키 추모 공연이 되었지요. 두 번째 공연 이후 차이콥스키 자살설이 나돌았고, 차이콥스키가 사실은 동성애자였으며 명예를 지키라는 강권에 따라 자살했다는 설도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 작품을 차이콥스키의 유서로 보는 시각이 힘을 얻었습니다. 곡 전체에 흐르는 비극적인 정서와 1악장 절정 부분에서 인용한 러시아 정교회 레퀴엠 음형, 그리고 무엇보다 작곡가의 죽음이라는 결정적인 정황 때문이지요. 그러나 리처드 타루스킨을 비롯한 저명한 음악학자들은 이 작품을 유서로 보는 관점에 그다지 동의하지 않습니다. 여러 정황 때문에 사람들이 음악에서 듣고싶은 것을 들었을 뿐이라고요.

'비창'(Pathétique; Патетическая)이라는 표제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 c단조 '비창'에서 따온 듯합니다. 차이콥스키에게 '비창'이라는 표제를 제안한 사람은 작곡가의 동생이자 극작가였던 모데스트였지만, 차이콥스키가 '비창 소나타' 도입부 음형을 살짝 바꾸어 '비창 교향곡' 도입부에서 인용하고 작품의 주요 주제로 사용했다는 사실에서 작곡가 자신이 '비창 소나타'를 어느 정도 의식했음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 c단조 Op. 13 '비창' 1악장 도입부


▲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b단조 '비창' 1악장 도입부 (바순 독주)

차이콥스키의 다른 작품처럼, 이 곡은 구조를 분석하기보다는 작품 속에 숨은 '이야기'에 집중하면 좋습니다. 마음씨 여린 작곡가가 폭력적인 현실 앞에서 괴로워하는 듯한 1악장, 슬픔을 애써 감추고 춤을 추는 듯한 2악장, 거짓 승리에 도취되어 현실에서 눈 돌리는 3악장, 그리고 '죽어가듯이'(morendo)라는 나타냄말과 더불어 절망과 체념 속으로 침잠하는 4악장. 음악을 들으면 슬픈 이야기가 머릿속에 떠오를 듯합니다.

그런데 3악장이 워낙 화려하고 과장되게 뿜빰거리면서 끝나기 때문에, 대개 3악장이 끝나자 마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오곤 합니다. 교향곡이 다 끝난 줄 알고 손뼉을 치는 사람도 있지만, 아닌 줄 알면서 일부러 치는 사람도 있을 정도예요. 개인적으로는 악장 사이에 손뼉을 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관객의 박수가 3악장에 가득한 반어적 음악 어법의 일부라 볼 수도 있을 듯해요.

진짜 문제는 4악장입니다. 흐느끼듯 시작해서 목놓아 울부짖다가, 나중에는 죽어가듯이 천천히 여리게 끝나는 짜임새 때문이지요. 그래서 연주가 끝난 뒤에도 여운을 즐길 수 있게끔 하는 '침묵 악장'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때때로 성급한 박수가 이 '침묵 악장'을 망쳐놓곤 하지요. 지난 2008년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이 곡을 연주했을때, 서울시향 월간지 『SPO』에 기고한 글에서 저는 이렇게 썼습니다:

이날은 잔향이 미처 가시기도 전에 박수가 터져 나오는 '참사'는 일어나지 않아 다행이었으나 잔향이 없어지고 채 5초가 지나지 않아 끝내 성급한 박수가 나왔다. 그때까지 지휘봉을 높이 들고 있던 정명훈은 김 샜다는 듯이 팔을 내리고 말았다. 잔향이 없어지기에 앞서 치는 손뼉을 '안다 박수'라고 하여 비꼬아 말하기도 하는데, 이날 박수는 '안다 박수'는 아니고 '깬다 박수'라고 하더라.

이날 공연은 서울시향 역사에 중요한 이정표로 꼽을 수 있을 만큼 훌륭했습니다. 이후로 '비창 교향곡'은 서울시향이 외국에 나가서도 즐겨 연주할 만큼 서울시향의 대표곡이 되기도 했지요. 정명훈 지휘자의 충격적인 작품 해석으로도 유명한 이 작품을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어떻게 연주할지, 이번 통영 공연을 기대해 주세요!

2010년 10월 26일 화요일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7번 / 베토벤 교향곡 3번 ― 김선욱 / 로렌스 르네스 / 서울시향

2010-09-16 오후 08:00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 : 로렌스 르네스 Lawrence Renes, conductor
협연 : 김선욱 (피아노) Sunwook Kim, piano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7번 Mozart, Piano Concerto No. 27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 Beethoven, Symphony No. 3 "Eroica"

언제나 그렇듯이, 무삭제판 ㅡ,.ㅡa


'원전연주' 또는 '정격연주'라는 말이 유행하며 격렬한 찬반 논란이 일어난 지도 제법 오래되었다. 학술적 뿌리를 찾자면 수십 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고, 한국에서만 해도 1985년에 원전연주 첫 시도가 있었다고 한다. 요즘은 '원전'이네 '정격'이네 하는 말이 교조적이라 하여 시대 악기 연주(Period Performance) 또는 역사주의 연주(Historically Informed Performance) 등으로 고쳐 부른다.

그리고 요즘은 굳이 옛 악기와 옛 조율방식을 쓰지 않고도 옛 연주법 등을 현대 악기에 응용하는 연주도 드물지 않다. 아바도, 래틀, 하이팅크 등 역사주의와 관련이 없을 듯한 지휘자가 녹음한 베토벤 교향곡 음반에서도 이러한 유행을 확인할 수 있고, 정명훈서울시향 베토벤 사이클에서 역사주의를 일부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를테면 정명훈-서울시향베토벤 교향곡 9번을 연주할 때 4악장 도입부에서 트럼펫이 악보에 없는 주선율을 연주하는 관행을 따르지 않는 것도 역사주의와 관련이 있다.

이날 서울시향을 지휘해 베토벤 교향곡 3번을 연주한 로렌스 르네스 또한 역사주의 유행을 따랐다. 호른을 한 대 추가한 것을 빼면 악보에서 지시한 2관 편성을 정확히 지켰고 현악기 숫자도 평소보다 줄였다. 현악기는 글쓴이가 객석에서 세어본 바로는 6-5-4-3-2 편성이었는데, 5-5-5-5-4 등 관현악곡을 연주할 때 곧잘 쓰이는 편성과 견주면 새로웠다. 저음 현을 줄여 역사주의에 걸맞은 날렵한 소리를 노리면서도 바이올린은 오히려 더 늘여서 대형 연주회장에서도 음량이 너무 모자라지 않게끔 하려는 뜻으로 풀이되며, 결과는 썩 훌륭했다.

현악기 배치 또한 널리 쓰이는 미국식이 아니라 제1 바이올린과 제2 바이올린을 무대 양쪽에 펼쳐 놓고 첼로 등을 가운데로 모으는 유럽식이었다. 이런 배치는 악단 기량이 모자라면 앙상블이 엉망으로 망가질 수 있다는 단점이 있으나 이날 연주는 제법 훌륭했다. 사실은 지난해 11월에 정명훈이 지휘한 모차르트구도자의 엄숙한 저녁기도》에서도 비슷한 배치를 쓴 바 있지만, 이날 연주에서는 그때보다 큰 편성으로 게다가 객원 지휘자가 지휘해도 훌륭한 앙상블이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는 대목이 뜻깊다.

유럽식 악기 배치는 제1 바이올린과 제2 바이올린이 선율을 주고받으면서 '스테레오' 효과를 내기 좋다는 큰 장점이 있을 뿐만 아니라 작곡가들이 이런 배치를 고려하고 쓴 곡도 많다. 이날 연주에서는 무엇보다 푸가토에서 그 장점이 두드러졌으며, 복잡하게 얽힌 성부 하나하나가 무대 위에 고르게 늘어서서 사방으로 통통 튀어 오르는 듯한 느낌이 매우 멋있었다.

비브라토를 줄여 살짝 거칠지만 산뜻한 음색을 낸 것도 역사주의 연주가 보이는 특징인데, 이날 연주에서는 비브라토가 줄기는 했으나 '기름기'가 조금 덜 빠진 소리를 냈다. 지휘자가 의도한 바일 수도 있고, 올곧은 소편성이 아닌 탓도 있겠고, 어쩌면 서울시향이 아직 이런 연주에 익숙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연주회장 음향을 생각하면 이런 음색도 나쁘지 않았다.

템포는 빨랐다. 베토벤 시대 또는 그 이전 현악기로는 호흡이 긴 프레이즈를 만들기 어려우므로 템포가 빠를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연주법이 결정될 때가 잦다. 그 느낌을 현대 악기로 연주할 때에도 살리려는 태도 또한 역사주의 연주가 보이는 중요한 특징이다. 그밖에 날렵한 리듬과 악센트 등도 이날 연주에서 나타난 역사주의적 특징이었다.

베토벤 교향곡 3번을 시대 악기로 연주할 때와 현대 악기로 연주할 때 차이가 가장 두드러지는 곳을 한 곳만 꼽으라면 1악장 클라이맥스에서 제1 바이올린이 F-F♯-G-A♭-G-F 선율을 연주하는 마디 665~70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폭발하는 듯한 스포르찬도로 음악적 긴장감을 순식간에 끌어올리는 역할을 현악기가 이끌어야 하는데, 이 대목을 날렵한 맛이 떨어지는 현대 악기로 연주하면 제맛을 내기가 쉽지 않아서 호른과 트럼펫을 잔뜩 부풀린 단순한 크레셴도에 그치기 쉽다. 이날 연주는 역사주의적 방향에 힘입어 현대 악기 연주치고는 스포르찬도가 제법 훌륭했다.

김선욱이 협연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7번은 오케스트라가 피아노에 맞춰 준다기보다는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서로 반주를 하는 듯한 기막힌 어울림이 인상 깊었다. 김선욱은 어려서부터 학교 친구들 반주를 도맡아 하기로 이름이 높았다는데 그 덕분일까. 게다가 고전주의 시대 작품은 해석과 관련해 고민할 곳보다는 맛깔스러운 앙상블에 마음 쓸 곳이 많을 때가 잦아서 김선욱의 '반주 본능'이 더욱 빛나는 듯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제 목소리 낼 곳은 다 내는 놀라운 솜씨를 보여 주었으니, 과연 김선욱이었다.

2009년 9월 4일 금요일

2009.03.05.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4번 - 피닌 콜린즈 / 정명훈 / 서울시향

2009년 3월 5일(목) 오후 7시 30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지휘자 : 정명훈
협연자 : Finghin Collins (Pf)

Borodin, Polovtsian Dances
Mozart, Piano Concerto No.24 in C minor, K.491
Stravinsky, The Rite of Spring (Le Sacre du Printemps)



스트라빈스키는 음악에 감정이 드러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으며, 어둠을 뚫고 빛을 찾아가는 '베토벤스러운' 믿음과 그 얼개를 이루는 낭만주의 기능화성을 싫어했다. 스트라빈스키 음악에 조성이 없거나 희미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얼핏 보면 쇤베르크로 대표되는 12음 음악과 닮았으나 바탕에 깔린 마음가짐은 거꾸로다. 쇤베르크 음악은 조성과 화성이 발전 끝에 해체하고서 맺은 열매이지만, 스트라빈스키 음악은 목표를 향해 발전한다는 오랜 가치관을 뿌리째 뽑아낸 자리에서 자라난 새싹이다. 요즘 눈으로 보면 모더니즘이 꽃피기에 앞서 포스트모던한 생각을 한 셈인데, 그 때문에 스트라빈스키는 모더니스트들에게 모진 말을 들어야 했으며, 이를테면 아도르노는 "그는 지붕을 뜯어내 버렸고, 그래서 이제 그의 대머리 위로 빗물이 흐른다."라고 했다.

낭만주의를 물리치면서도 모더니즘과도 거리를 둔 음악은 어떠해야 할까? <봄의 제전>에서는 현대적인 음향과 원시적인 울림이라는 '남남'을 얄궂게 엮어놓은 엉뚱함과 그 안에 담긴 비선형성(non-linearity)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또 스트라빈스키가 직접 지휘한 녹음이 남아 있어 이 작품을 어떻게 연주해야 할지 낱낱이 알 수 있다. 러시아 교회 종소리를 닮아 이곳저곳에서 두서없이 튀어나오는 스트라빈스키 폴리포니, 비브라토를 되도록 쓰지 않아 몹시 메마른 음색, 원시 부족이 멋대로 노래하는 듯 고약한 선율과 화음이 연주에서 잘 살아난다.

그러나 작품을 내놓고 나면 작가는 죽어야 한다고 했다. 많은 지휘자가 스트라빈스키를 배신해 왔으며 그것이 옳지 않다고 함부로 말할 수 없다. 카라얀은 두텁고 기름진 비브라토로 잔뜩 멋을 내어 낭만주의와 닿아 있는 녹음을 남겼고(스트라빈스키는 몹시 화를 냈다고 한다.), 불레즈는 마치 총열주의 음악인 양 차갑고 딱딱한 질서를 연주에 담아냈다. 정명훈은 이럴 때 보통 중용을 지키는데, 카라얀을 '우파'라 하고 불레즈를 '좌파'라 한다면 정명훈은 중도우파이며 아바도와 살로넨 사이 어딘가에 있다.

정명훈이 지휘한 서울시향은 '스트라빈스키 폴리포니'를 날것 그대로 살리기보다는 주선율을 뚜렷이 살려 쏟아지는 선율과 리듬 속에서 관객이 어지럼증을 느끼지 않도록 했다. 현악기는 이를테면 1부 4곡 '봄의 론도'나 2부 2곡 '젊은이의 신비한 모임'에서도 음색이 너무 까슬까슬하지 않도록 비브라토를 알맞게 썼고, 1부 4곡 마디 331에서 비올라가 비브라토를 아낀 일처럼 드물게 메마른 음색을 살렸다. 2부 서곡에서는 제2 바이올린 플래절렛(개방현 하모닉스) 화음이 너무 고약하게 들리지 않게끔 소리를 줄였고, 하모닉스 주법으로 연주하는 독주 바이올린은 글리산도를 되도록 얌전하게 갈무리했다.

타악기는 너무 앞으로 나서지 않고 다른 악기 소리에 감칠맛을 더할 때가 잦았고, 이를테면 살로넨 녹음에서 큰북이 매우 큰 소리를 내는 1부 5곡 '적대관계에 있는 부족들의 의식' 마디 439에서도 악보에서 지시한 '메조포르테'를 넘어서지 않았다. 그러나 꼭 필요한 곳에서는 연주회장이 무너질 듯한 소리를 터트리기도 했다. 1부 마지막 네 마디에서는 큰북이 무시무시한 크레셴도를 들려주었고, 2부 3곡 '선택된 처녀에게 영광을'에 들어서기 바로 앞서 나오는 4분음 11연타 때에는 큰북과 팀파니가 현 소리를 누르고 마구 두드려댔다. 2부 끝 곡 '희생의 춤'에서는 타악기끼리 어질어질한 폴리리듬을 주고받았다.

관악기 연주자들도 저마다 훌륭한 연주를 들려주었으며, 자주 보기 어려운 악기인 알토 플루트와 베이스 클라리넷 따위도 곳곳에서 돋보였다. 베이스 클라리넷은 이 곡에서 은근히 멋있게 나와서 이를테면 1부 서곡에서 좀 더 튀는 연주를 들려주었으면 싶었으나 그냥 다른 악기와 알맞게 어울려서 조금은 아쉬웠다. 바순은 다른 악기와 쉽게 섞여버리는 악기 특성 탓에 좀처럼 눈길을 얻기 어려운데 이날 곡 첫머리부터 곽정선 수석대행이 멋진 독주를 들려주었다. 문득 시향 수석 연주자들만 놓고 보면 이제는 웬만한 유럽 악단과 견주어도 크게 뒤지지 않으리라는 생각도 들었으며, 유럽으로 연주 여행을 가겠다더니 그럴 만도 하다 싶었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4번을 협연한 피닌 콜린스는 모차르트치고는 페달을 제법 많이 쓰는 듯했고, 모차르트보다는 초기 베토벤 같은 느낌이 들었다. 카덴차는 아예 19세기 음악이라 해도 믿길 만했다. 이 작품이 모차르트 작품 가운데서도 파토스를 꽤 겉으로 들어내는 까닭에 이런 연주도 그럴싸하다 싶었다. 그런가 하면 연주자 나이에 어울리는 풋풋한 젊음과 조금 나쁘게 말하면 치기가 이곳저곳에서 느껴지기도 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3악장 세 번째 변주(마디 65)였는데, 첫머리에 나오는 뒤집힌 c단조 화음을 사납게 풀어낼 줄 알았더니 뜻밖에 화음보다 선율선을 살려 여린 느낌으로 가다가 마디 81에 이르면서 좀 더 화음을 살렸다. 앙코르로 슈만 곡을 듣고 나니 모차르트베토벤도 아닌 슈만에 가장 어울리는 연주자라는 생각도 들었다.

정보공유라이선스

김원철. 2009.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2009년 9월 3일 목요일

2009.01.22. 브루크너 교향곡 7번 /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7번 - 알렉산다르 마자르 / 정명훈 / 서울시향

2009년 1월 22일(목)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자 : 정명훈
협연자 : Aleksandar Madzar (Pf)

Mozart, Piano Concerto No.27 in B flat, K.595
Bruckner, Symphony No. 7 in E (Ed. Nowak)



브루크너 교향곡 7번을 연주한 서울시향은 유럽 악단 수준에 조금씩 다가가는 요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었으며 무엇보다 금관악기가 깔끔한 연주를 해주어 반가웠다. 편성은 현악기를 크게 늘여 여섯 짝씩이었고 콘트라베이스도 열두 대를 썼다. 관악기는 호른과 트럼펫을 하나씩 더블링한 것을 빼면 악보 지시를 따랐다.

트럼펫이 가장 인상깊었으며 트럼펫 수석 가레스 플라워스가 이날도 돋보였다. 음량이 튀지 않고 다른 악기와 자연스럽게 어울리면서도 선율선과 부점리듬을 깔끔하게 살려주었다. 3악장 처음에 나오는 독주는 음반을 들으면서도 마음에 안 들 때가 잦아 이날 연주를 귀담아들었는데, 플라워스는 악센트를 또렷이 살리면서도 그 때문에 소리가 뚝뚝 끊어지는 일 없이 딱 알맞은 논레가토를 들려주었다.

바그너튜바는 우리나라에 전문 연주자가 없어서 제대로 된 연주를 듣기가 여간 어렵지 않으며, 이 때문에 음색을 희생해 바그너튜바 대신 호른을 쓰기도 한다. 그러나 이날은 웬일인가 싶을 만큼 큰 실수 없이 깔끔하게 잘해서 놀랐다. 옥에 티를 하나 말하자면 2악장 클라이맥스를 지나 마디 184에서 테너 바그너튜바 둘 가운데 하나가 티 나게 비브라토를 썼다. 이곳은 바그너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애달픈 마음을 나타낸 곳이라 비브라토는 '장송곡' 분위기와 맞지 않았으며 '오르간 소리'와도 어울리지 않았다.

탄탄하게 중심을 잡아준 호른 또한 매우 훌륭했다. 1악장 마디 114부터 트롬본 및 튜바와 함께 부점 리듬을 주고받는 대목에서도 아귀가 딱딱 맞았고, 국내 악단이라면 반드시 실수를 하는 마디 163 호른 합주에서도 어택이 완벽하게 들어맞지는 않았으나 제법 깔끔하게 잘했다. 2악장 마디 190부터 f에서 fff로 가파르게 커졌다가 마지막 울부짖음이 pp로 재빨리 사그라진 대목에서는 브루크너가 목놓아 우는 모습이 눈에 보일 듯했으며, 호른 네 대를 쓰면서도 한 악기처럼 잘 맞았다.

트롬본 또한 큰 소리를 내는 곳에서도 사납게 으르렁거리지 않고 화음을 살려 깊은 울림을 내주었으며, 국내 악단이 마치 관행처럼 얼렁뚱땅 넘어가곤 하는 부점리듬도 잘 살렸다. 4악장에서 트롬본, 호른, 바그너튜바, 콘트라베이스튜바가 유니슨으로 나오는 마디 267에서는 세 겹 부점 리듬이 몹시 까다롭기도 하거니와 대충 2분음표로 연주해도 그다지 티 나지 않는다. 그래서 이날 어떻게 하는지 조금은 짓궂은 마음으로 귀담아들었더니 트롬본은 나무랄 데 없었고, 호른과 바그너튜바는 아리송하고, 콘트라베이스튜바는 트롬본에 슬쩍 묻어가더라. 그래도 주선율은 트롬본에 있었으므로 전체적으로는 썩 좋았다.

이날 주인공은 금관악기였으나 목관악기도 훌륭했다. 무엇보다 2악장 클라이맥스와 장송곡에 이어 나오는 플루트 독주가 마치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듯 너무나 애달팠으며, 말러 교향곡 10번 5악장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작지만 안타까운 실수도 있었는데, 1악장 제2주제 전위형이 나오는 마디 185에서 저음 현이 갑자기 치고 나오도록 지휘자가 첼로 쪽으로 예비박을 세게 주었더니 플루트 연주자가 잘못 알아듣고 마지막에 얼버무리는 바람에 느닷없이 울음이 터지는 듯한 효과가 멋질 뻔하다 말았다.

정명훈은 3, 4악장 템포를 조금 빠르게 잡아 전체적으로 밝고 희망찬 브루크너를 연출했으며 4악장에서 템포를 자연스럽게 조였다 풀었다 하는 대목이 돋보였다. 1악장 마디 391부터 팀파니를 앞세운 크레셴도도 멋졌고 이어지는 코다에서 크레셴도와 아첼레란도를 같이 쓴 대목도 제법 그럴싸했다. 4악장 코다에서는 '처음 빠르기로'와 호른에 붙은 '경건하게'라는 나타냄말이 서로 어울리지 못할까 봐 귀담아들었더니 정명훈은 템포를 살짝 늦추었다가 조금씩 조이며 고양감을 높이는 솜씨를 보여주었다.

1악장 스트레토(마디 233)에서는 금관이 너무 나서지 않고 균형을 잘 맞춘 대목은 참 좋았으나 그 때문에 '마르텔라토'가 죽어버려 안타까웠다. 현이 테누토 지시를 너무 곧이곧대로 지킨 탓이다. 이 테누토는 마르텔라토를 살리느라 소리가 너무 딱딱 끊어지면 안 된다는 뜻일 뿐 금관 텍스처와 따로 놀라는 뜻이라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서울시향은 현이 레가토에 가깝게 연주하면서 금관과 나란히 음악을 이끌어버려 앙상블이 훌륭했는데도 어정쩡한 스트레토가 되고 말았다.

2악장 처음에는 저음 현이 바그너튜바 소리를 묻어버려 아쉬웠고 처음부터 음량이 너무 커서 조금 부담스러웠다. 마디 4에서는 메조포르테가 아니라 포르티시모에 가까웠다. 바이올린 여섯잇단음 오스티나토가 나오는 마디 157부터 긴장감을 쌓아가는 대목이 훌륭했으며 클라이맥스에서도 총주를 뚫고 나오는 바이올린 소리가 매우 멋있었다. 다만, 마디 169와 마디 171 넷째 박 포르타토는 너무 레가토에 가까워서 조금 어색했다.

3악장 마디 52에서는 c단조로 넘어가기에 앞서 스타카티시모 음형이 치고 나오는 대목이 멋지다. 그러나 독일6화음을 살려야 제맛이 나므로 트롬본 등이 너무 큰 소리를 내면 좋지 않은데, 서울시향 금관은 이곳에서 딱 알맞은 소리를 내었으나 현이 좀 더 튀어나오지 않아 살짝 아쉬웠다.

알렉산다르 마자르가 협연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7번은 맑고 부드럽고 달콤한 모차르트였으며 들을수록 마냥 행복해지는 연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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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6. 드뷔시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모음곡 /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 / 림스키-코르사코프 셰에라자드 - 라르스 포크트 / 정명훈 / 서울시향

2009년 1월 16일(금) 오후 7시 30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지휘자 : 정명훈
협연자 : Lars Vogt (Pf)

Debussy, "Pelleas et Melisande" Concert Suite (arranged by Erich Leinsdorf)
Mozart, Piano Concerto No. 21 in C major, K. 467
Rimsky-Korsakov, Symphonic Suite "Scheherazade" Op. 35



드뷔시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는 프랑스 말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도무지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이상한 음악처럼 들리곤 한다. 음악사에서 차지하는 자리가 커서 마니아라면 누구나 한 번쯤 도전해 보지만 이내 음반을 중고 장터에 내놓고, 그 음반이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신세가 되어 이곳저곳을 떠돌기 일쑤다. 그래서 이날 연주된 것과 같은 관현악 발췌곡도 나왔으나 드뷔시다운 어른어른하고 어슴푸레한 소리는 그대로이다. 그런데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음향이 묘하게 그와 어울리는 데가 있었다. 반쯤 잠에 빠진 듯 흐리멍덩한 느낌이 그럴싸했으며, 어찌 보면 지휘자가 원성 자자한 연주회장에서 장점을 이끌어내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저음 현 긁는 소리가 좀 더 살아났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으나 세종문화회관에서는 어렵지 싶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에서도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무려 라르스 포크트가 협연을 맡아도 세종 대극장 음향 한계는 어쩔 수 없는 듯했으나 맑고도 그윽한 소리를 이끌어내는 해석이 그럴싸하기도 했다. 더욱이 2악장에서 페달을 많이 쓰면서도 소리가 뭉치지 않게 잘 다듬은 대목이 매우 훌륭했다.

드뷔시모차르트에서 연주회장에 순응하는 연주를 들었다면 림스키-코르사코프 <셰에라자드>에서는 때때로 연주회장의 한계를 넘어서는 소리가 들려와 놀라웠다. 세종 대극장에서는 여간해서는 소리가 피부로 와 닿지 않아서 프레이징 따위를 머리로만 듣게 될 때가 잦은데 이날 참으로 오랜만에 화끈한 느낌을 받았다. 정명훈의 해석은 음반으로도 나와 있는 바스티유 오페라 연주와 크게 다르지 않았으며, 그 때문에 정명훈보다는 수석 연주자들이 독주 때 보여준 개인기에 더욱 눈길이 갔다.

악장 데니스 김이 들려준 독주는 '셰에라자드'라는 인물이 살아 숨 쉬는 듯해서 매우 인상 깊었다. 셰에라자드는 어떤 사람일까? 무서운 임금님 앞에서도 기죽지 않는 여장부? 임금님을 유혹하는 요녀? 마음 깊은 곳 상처를 달래는 어머니? 데니스 김이 그려낸 셰에라자드는 곳곳에서 두려움을 내비치지만 때로는 허세를 부릴 줄도 아는 순진하고도 용감한 소녀 같았다.

첫 독주는 요염함과 두려움과 허세가 넉넉한 루바토와 에스프레시보로 알맞게 버무려진 연주였고, 마디 94에서는 첫 음과 이어지는 셋잇단음 사이를 포르타토치고는 매우 뚜렷이 나누어 연주해서 마치 선생님 앞에서 두 손 모아 열심히 노래하는 듯했다. 3악장 마디 145에 나오는 스타카토 분산화음은 이야기 속 왕자와 공주를 셰에라자드 부부에 빗대어 말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데 이때 데니스 김은 A 음을 늘이고 나머지는 장식음처럼 휘리릭 재빨리 다루어 마치 마음속에 감춘 두려움이 드러나는 듯했으며, 그래서 이어지는 칸타빌레 선율은 더욱 애달팠다. 4악장 마디 29에서는 힘주어 연주하라는 지시를 매우 잘 살려 어느 때보다 활을 거칠게 썼다. 이때 첼로와 콘트라베이스는 매우 여리게 연주하게 되어 있으나 정명훈은 음반에서 했던 것처럼 매우 세게 연주해서 '짠!' 효과를 내도록 했다. 그런가 하면 마디 641에서는 마치 자장가처럼 매우 여리게 속삭이듯 했다.

목관악기 연주자들도 독주 때마다 눈부신 연주를 뽐냈으며, 그 가운데 오보에 수석 이미성이 가장 돋보였다. 글쓴이가 보기에 이미성은 악보에 있는 지시를 아주 작은 곳까지 꼼꼼하게 지키는 남다른 솜씨를 가졌으나 '모범생 연주'를 넘어서는 '끼'를 보여주지는 못하는 단점 또한 안고 있다. 그런데 이날 드디어 벽을 넘은 듯한 모습을 보여주어 몹시 반가웠으며, 그 때문에 옛날부터 글쓴이 마음을 사로잡은 클라리넷 수석 채재일보다도 더 인상 깊었다. 정명훈은 연주가 끝나고 악장에 이어 두 번째로 이미성을 일으켜 세웠다.

글쓴이가 가장 추겨 세우고 싶은 연주자는 트럼펫 수석 가레스 플라워스(Gareth Flowers)이다. 이 곡에서 트럼펫은 목관악기처럼 눈에 확 띄는 솔로 악구는 없으나 티 안 나게 하는 고생이 만만치 않으며, 그러면서도 작은 실수로도 곧잘 연주를 망쳐버릴 수 있어서 호른 못지않게 까다롭다. 이날 때때로 살짝 불안한 대목이 없지는 않았고 연주가 끝나고 지휘자가 일으켜 세웠을 때 금방 도로 앉아버린 일에 미루어 보면 연주자 자신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듣기에는 매우 야무진 연주였으며, 더욱이 4악장에서 빠른 음형이 계속 나오는 곳에서는 깜짝 놀랄 만큼 훌륭했다. 나는 정명훈이 아찔한 템포로 마구 달릴 때에도 트럼펫이 조금도 뒤처지지 않고 바짝 따라오리라고는 믿지 않았다. 이럴 수가! 이런 연주자가 있으면 베토벤 교향곡 7번을 해줘야 한다. 마침 올 10월 정기연주회 때 베토벤 교향곡 7번을 연주할 모양이니 기대가 된다.

호른과 트롬본 또한 다부진 연주를 들려주었으며 1악장 시작을 비롯해 여러 차례 나오는 부점 리듬을 날카롭게 다스린 대목이 매우 훌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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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 2일 수요일

2008.11.25. 베를리오즈 로마의 사육제 서곡 / 모차르트 플루트 협주곡 2번 K314 / 드보르자크 교향곡 6번 - 샤론 베잘리 / 조앤 팔레타 / 서울시향

2008년 11월 25일(화)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자 : JoAnn Falletta
협연자 : Sharon Bezaly

Berlioz, Le carnaval romain Overture
Mozart, Flute Concerto No. 2 in D, K. 314
Dvorak, Symphony No. 6 in D, Op. 60



콘트라베이스는 다른 악기 뒤에서 묵묵히 제 할 일을 하느라 눈길을 많이 받지 못하는 악기다. 더군다나 옛날에는 제 선율을 갖지도 못하고 첼로 선율을 한 옥타브 밑에서 따라가면서 힘을 보태는 일만 하다가 베토벤이 처음으로 콘트라베이스에 따로 선율을 붙여주었다. 19세기 후반 즈음에는 드물게 콘트라베이스가 '주인공' 노릇을 하는 일도 생겼는데 베를리오즈 <로마의 사육제> 서곡이 바로 그렇다.

선율 구조와 관현악법 따위를 머리 아프게 따지는 대신 원작 오페라 <벤베누토 첼리니>에 기대어 쉽게 살펴보자. 사육제로 떠들썩한 광장에서 "재주꾼 보러 오세요! Venez voir l’habile homme!" 하면서 '나발'을 불며 눈길을 끄는 사람들이 있다. 이 재주꾼들이 묵직한 저음으로 노래하고 구경꾼들은 남녀노소로 재주꾼과는 음색이 뚜렷이 구분된다. 게다가 재주꾼이 "베네 봐, 베네 봐 Venez voir, Venez voir" 하는 말소리가 주는 느낌도 어딘가 묵직하다. <로마의 사육제> 서곡에서는 재주꾼이 부르는 노래가 주로 저음 현으로 나타나고 나머지 악기가 구경꾼 떠드는 소리로 주거니 받거니 한다.

서울시향의 연주는 제법 훌륭했으나 콘트라베이스가 '구경꾼' 떠드는 소리에 살짝 묻힌 점이 아쉬웠다. 그나마 마디 132 등에서 디미누엔도를 뚜렷하게 해주어 뒤이어 터져 나오는 '베네 봐' 하행 선율을 상대적으로 두드러지게 한 것은 좋았다. 그러나 마디 128에서 '쾅!' 할 때부터 다른 악기에 밀리지 않고 앞으로 튀어나오는 게 좋다고 본다. 카라얀은 아예 콘트라베이스를 맨 앞에 내세워 19세기 록 음악(?)처럼 다루지 않았던가!

플루트 연주자는 외모와 상관없이 모두 공주병 환자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사람이 악기를 닮는다는 속설도 있거니와 플루트가 주는 느낌이 어딘가 '공주님스럽기' 때문이다. 모차르트 플루트 협주곡 2번을 협연한 샤론 베잘리는 인형처럼 예뻐서 더욱 공주님 같았으나 막상 연주를 들어보니 어째 말괄량이 같았다. 혀 튕기는 소리가 크고 비브라토 진폭이 커서 플루트다운(?) 맑고 은은한 소리를 해치곤 했다. 그러나 '공주님 환상'에서 깨고 나니 다른 게 보였다. 이 작품에 이렇게 다양한 표정을 담아낼 수 있다니! 실연이라 그런지도 모르지만 프레이즈마다 소리가 이리저리 바뀌는 것이 매우 또렷하게 느껴졌다. 악보에 없는 장식음도 쓰고 1악장 카덴차 앞뒤 트릴은 악보에 있는 음보다 한 옥타브 높게 연주하기도 했다. 카덴차에서는 마치 모차르트 자신이 플루트로 장난을 치는 듯했다. 그런가 하면 2악장 카덴차에서는 얌전 빼는 소리를 못 내는 게 아니라는 듯 은가루 똑똑 떨어지는 듯한 고운 소리를 자랑하기도 했다.

드보르자크 교향곡 6번 연주는 모난 데 없이 깔끔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듣는 이를 홀리는 색다른 맛이 없고 평범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지휘자 조앤 팔레타는 2악장 템포를 느리게 잡은 것 빼고는 대부분 메트로놈 지시를 꼼꼼하게 지켰다. 그러나 현이 마르카토로 두터운 화음을 잇달아 연주하는 마디 498에서는 템포가 꽤 빨라서 화음이 주는 무거운 느낌에 비해 너무 서두른다 싶었으며 4악장을 시작할 때에는 더욱 그랬다.

3악장 시작할 때에는 5도 상행 음형을 되풀이하면서 살짝 아첼레란도를 쓰다가 이어지는 총주에서 원래 템포로 돌아가는 듯했는데, 크레셴도 지시와 맞물려 참신하기는 했지만 베를린필 같은 특급 악단이 아니면 감당하기 어려울 듯싶었으며, 서울시향은 아첼레란도를 썼는지 잠시 템포가 흐트러졌는지 헷갈렸고 살짝 어수선한 느낌도 들었다.

이 작품에서 가장 멋있는 곳을 말하라면 나는 3악장 트리오에 나오는 피콜로 선율(마디 159)을 꼽겠다. 단순한 선율이지만 이보다 더 피콜로를 돋보이게 하는 곡이 또 있을까? 긴장감 넘치는 주요 주제와 뚜렷이 대비되고 가늘고 맑은 피콜로 음색이 더해져 마치 어둠 속에서 한 줄기 환한 빛이 솟아나는 듯하다. 그런데 이날 피콜로 연주는 매우 아름다웠지만 템포가 갑자기 두 배나 느려져서 오히려 반짝반짝하는 느낌을 해치고 조금 유치해져 버려서 아쉬웠다. 눈치를 보아하니 피콜로 연주자가 하는 대로 지휘자가 맞춰준 듯한데, '조금 끌듯이 poco sostenuto'라는 지시어가 갑자기 템포를 두 배나 늦추라는 뜻은 아님을 되새길 일이다.

베를리오즈 <로마의 사육제>를 들으면서 마디 262에서 트럼펫 소리가 좀 더 컸으면 싶었는데, 드보르자크 교향곡 6번을 들어보니 아무래도 트럼펫 파트가 튼튼하지 못한 듯했다. 특히 4악장에서 뒤로 갈수록 더해서 트롬본이 대신 빈자리를 메우느라 밸런스가 깨지곤 했다. 이것은 서울시향 개편 초기에 나타나던 문제인데 가만 보니 지난 정기연주회에서 돋보이던 트럼펫 수석이 자리에 없더라.

요즘 서울시향 객원지휘자로 '나이 어린 여자'와 '휠체어 탄 흑인' 등이 잇달아 나와서 재미있다. 그만큼 차별이 줄어든 탓일 텐데, 언젠가 마린 앨솝이 지휘하는 드보르자크 교향곡 9번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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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 1일 화요일

2008.11.06. 모차르트 구도자의 엄숙한 저녁기도 / 말러 교향곡 4번 - 정명훈 / 서울시향

2008년 11월 6일(목)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자 : 정명훈
협연자 : Kate Royal(소프라노), 서은진(메조소프라노), 김종호(테너), 정록기(바리톤)
서울모테트합창단 (합창지도 : 박치용)

Mozart, Vesperae solennes de Confessore, K. 339
Mahler, Symphony No. 4 in G



요즘은 역사주의 바람이 현대 악기 연주에도 영향을 끼쳐서 베토벤 이전 작품을 연주할 때 악기 수를 줄이고 연주법에도 기름기를 빼는 게 대세다. 정명훈의 모차르트 <구도자의 엄숙한 저녁기도> 해석 또한 마찬가지였다. 서울시향은 투명하고 산뜻한 소리를 들려주었으며 템포는 빨랐다. 독창자들이 만들어낸 앙상블에서도 기름기를 찾아보기 어려웠으며 안정된 화음이 나무랄 데 없었다. 소프라노 케이트 로열이 들려준 '라우다테 도미눔'은 이날 연주회장에 소문난 고음악 마니아들이 말러 마니아 못지않게 눈에 띈 까닭을 알 수 있게 했으며, 마디 63에서 F 음으로 시작하는 멜리스마(melisma)가 참으로 아름다웠다. 합창도 훌륭했으며 연주가 끝나고 정명훈이 합창지휘자 박치용을 무대로 이끌고 나와 인사하게 하는 모습이 보기 흐뭇했다.

말러 교향곡 4번은 실내악을 닮은 짜임새가 돋보이지만 알고 보면 그 안에 우주 삼라만상을 담고 있다. 악기 하나하나가 독주 악기처럼 제 목소리를 내면서도 그것이 모여 대립하고 상생하며 함께(sym) 울리는(phony) 것이 말러 작품 가운데서도 특히 교향곡 4번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징이다. 이것을 소리로 풀어내는 일이 지휘자에게나 오케스트라에나 쉽지 않은 일인데 이번 연주회에서는 정명훈의 중용적인 해석과 서울시향의 뛰어난 앙상블이 만나 훌륭한 연주를 들려주었다.

1악장에서 목관 악기가 아기자기한 음형을 주고받는 마디 58에서 앙상블이 특히 좋았고 호른도 큰 실수 없이 잘했다. 마디 224에 나오는 이른바 '작은 나팔소리'를 연주한 트럼펫이 매우 멋있었는데 누군가 했더니 시향 트럼펫 수석 Gareth Flowers더라. 코다로 넘어가기 바로 앞선 마디 330 이후 현악기가 내는 여리고 투명한 소리가 매우 아름다웠으며 폭이 매우 큰 아첼레란도를 거쳐 마지막 총주로 이어질 때도 훌륭했다. '천상의 삶' 주제가 나타나는 마디 125에서는 악보대로 플루트 네 대가 같은 선율을 연주하는지 조금은 짓궂은 마음으로 따져 봤는데 악보대로 했을 뿐 아니라 마치 악기가 하나인 것처럼 잘 맞았다. 클라리넷 또한 나팔을 위로 들어 올리라는 지시를 꼼꼼히 지켰다. 재현부에서 '천상의 삶' 주제가 나오는 마디 251에서 심벌즈 소리가 너무 커서 트라이앵글 소리가 묻혀버린 일은 조금 아쉬웠다.

2악장에서는 솔로 바이올린을 온음 높게 조율하여 날카로운 소리를 내는 게 재미있으며 이때 마디 7 등에서 F# 음을 개방현으로 연주하기도 한다. 이날 악장을 맡은 데니스 김은 F# 음을 개방현으로 연주하지 않고 오히려 메사디보체(messa di voce)로 부드럽게 연주했는데, 말러가 일부러 듣기 싫으라고 비틀어놓은 음표를 억지로 듣기 좋게 만든 꼴이라 갸우뚱했다. 마디 78에 나오는 오보에 선율은 4악장에 나오는 '아이들은 천국의 음악가라네! (Cäcilia mit ihren) Verwandten sind treffliche Hofmusikanten!' 선율에서 따온 것이다. 여기서 성악과 오보에 느낌 모두를 살리려면 레가토와 스타카토 사이에서 균형을 잘 맞추어야 하는데 이날 연주는 나무랄 데 없었다. 마디 102와 마디 246 등에서는 콘트라베이스가 리듬을 좀 더 뚜렷하게 살렸으면 싶었다. 특히 마디 274에는 '또렷하게 deutlich!'라는 지시어까지 붙어 있지만 이날 연주는 굼뜨게 들렸다.

3악장은 셈여림 기호가 pppp까지 여려지는 마디 338에서 투명한 현 소리가 매우 아름다웠으며 몹시 느린 템포가 어우러져 마치 시간이 멈춘 듯했다. 마디 73-75에서는 ppp에서 ff로 가파르게 치솟는 크레셴도가 제법 훌륭했으나 마디 75로 넘어갈 때 글리산도를 좀 더 또렷하게 살렸으면 싶었고 마지막 E 음에서 활을 살짝 끊어 연주한 점은 옥에 티였다. 이른바 '천국의 문'이 열리기 바로 앞선 마디 303부터 매우 여린 소리로 마치 문을 두드리듯 또는 종을 치듯 하는 부분도 제법 멋졌다. 현악기와 관악기가 두터운 화음으로 균형잡힌 소리를 내면 때때로 합창 소리를 닮은 신비로운 음향이 만들어지기도 하는데 바로 이 부분이 그렇다. 이날 연주에서는 '합창 소리'가 들릴락말락 해서 조금은 아쉬웠고 비올라와 첼로 소리가 아주 조금만 더 컸으면 싶었다.

4악장에서 소프라노 케이트 로열은 음색이 살짝 어둡고 '흐' 하는 헛바람 소리가 섞여 나와서 첫인상이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목소리에 나타나는 표정이 매우 풍부한 점은 마음에 쏙 들었다. 4절에서 여리고 부드럽게 부르는 이른바 소토보체(sotto voce)가 썩 훌륭했으나 그 가운데 절정이라 할 수 있는 "만물이 깨어 기쁨으로 가득하네. Dass Alles für Freuden erwacht."(마디 169)에서는 소리가 살짝 커져서 아쉬웠다. 말러는 pp 표시를 해놓고는 괄호를 씌워놓았는데, 낮은 음역까지 소화하는 가수가 매우 여리게 부르기에는 너무 높은 음이라 쉽지 않은 모양이다.

연주가 조용히 끝나고 여운을 살리는 '침묵 악장' 또한 훌륭했다. 잔향이 모두 사라지고 나서도 지휘자는 20초 가까이 지휘봉을 내리지 않았고 관객 또한 그 '지시'를 매우 잘 지켰다. 브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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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24일 월요일

2007.05.18. 라벨 팡파르 / 모차르트 신포니아 콘체르탄테 K364 / 라벨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 / 드뷔시 바다 - 미코 프랑크 / 서울시향

2007년 5월 18일(금) 오후 7시30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지휘자 : 미코 프랑크 Mikko Franck
협연자 : Gary Graffman(Pf), Roberto Diaz(Va), Elissa lee Koljonen(Vn)

Ravel: Fanfare
Mozart: Sinfonia Concertante, K364 (30')
Ravel: Concerto for Left Hand (19')
Debussy: La Mer (23')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은 연주회장으로는 너무 커서 좋은 소리를 기대하기 어렵다. 특히 모차르트 이전 시대의 소편성 작품은 이 연주회장에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 이날 연주회 첫 곡이 모차르트의 <코지 판 투테> 서곡에서 라벨의 <팡파르>로 갑자기 바뀐 것은 지휘자 미코 프랑크가 연주회장을 둘러보고는 이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 아닐까. 라벨의 <팡파르>는 금관과 타악기 위주의 매우 짧은 작품으로 '급한 불'을 끄기에 더없이 적절한 작품이었다. 지휘자는 영리했다.

그러나 모차르트의 <신포니아 콘체르탄테>의 경우 사전 이견 조율 없이 지휘자 마음대로 프로그램을 바꾸지는 못했을 터. 대신에 울림이 많은 연주회장에 맞게 템포를 느긋하게 잡았다. 독주자들은 음량을 충분히 확보하려고 현과 활의 텐션에 유난히 신경 쓴다는 인상을 받았으며, 그래서인지 미세한 보잉 실수가 잦았다. 엘리사 리 콜조넨은 바이올린의 까랑까랑한 음색을 적극적으로 살려 매우 섹시한 연주를 들려주었고, 비올리스트 로베르토 디아즈는 한발 양보해서 콜조넨을 부각시키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그런가 하면 두 연주자 모두 비슷한 루바토를 구사하여 역시나 이들이 부부 사이임을 자랑하는 듯했다.

라벨의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한 게리 그래프만은 80세를 바라보는 나이로 노익장을 과시했으나, 역시 나이를 속이지는 못하는 듯 음량이 거대한 연주회장을 감당하기에는 힘겨워 보였다. 다만, 음량이 부족한 것과 터치가 날렵하지 못한 것 등을 빼면 커다란 밑그림이나 악상의 자연스러운 흐름, 다양하고 적절한 음색 등은 그의 연륜이 빛을 발하는 부분이었다. 음악성은 거장인데 기술적인 부분이 따라주지 않으니, 얼핏 들으면 엉터리 연주이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대단한 깊이가 묻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피아노의 음량이 부족한 부분은 라벨의 화려한 관현악이 메워주었으며, 특히 스네어 드럼(snare drum)이 필요 이상으로 전면에 나선 것이 주효했다.

드뷔시의 <바다>에서는 앞서 스네어 드럼을 연주했던 타악기 수석 에드워드 최가 이번에는 글록켄슈필(Glockenspiel)을 연주했는데, 역시 딱 밉지 않을 만큼만 튀어서 음악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특히 2악장에서 울림이 지나치게 풍부한 연주회장의 음향 환경과 군데군데 앙상블 난조로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연주에 글록켄슈필의 활약이 유난히 돋보였다. 이것은 음색에 대한 탁월한 상상력과 더불어 뛰어난 밸런스 감각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생각되며, 그런 점에서 에드워드 최의 센스에 경의를 표한다.

지휘자 미코 프랑크는 젊은이다운 패기로 서울시향의 자잘한 실수에 아랑곳하지 않고 뚝심 있게 밀어붙이는 모습이 멋졌다. 연주회장의 음향 환경에 영리하게 적응한 것도 훌륭했다. 그러나 단원들 개개인의 기량을 합주력으로 온전히 이끌어내는 데에는 다소 미숙함을 보였으며, 현대적인 음색을 다채롭게 살리지도 못했다. 서울시향은 외국 유수 악단에 비해 아직은 지휘자의 역량에 따라 연주의 완성도에 커다란 기복을 보이는 연륜이 짧은 악단이다. 젊고 뛰어나지만 경험이 부족한 지휘자는 서울시향에는 그다지 맞지 않음을 이번 연주회로 알 수 있었다.

세종문화회관을 찾을 때마다 대극장의 열악한 음향 때문에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런데 시청 본관 건물을 시향의 연주회장으로 활용한다는 소식이 들리니 이보다 반가운 일이 없다. 아무쪼록 공사 초기부터 음향 전문가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여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부족함 없는 뛰어난 연주회장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나중에 붙임: 원고 보낸지 하루만에 계획 백지화 발표됨. 아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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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철. 2007.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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