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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4월 17일 목요일

윤이상: 서곡 (Ouvertüre, 1973/74)

윤이상: 서곡

윤이상이 1973년에 작곡한 ‹서곡›은 윤이상 음악 양식이 큰 변화를 맞이하기 직전의 과도기적 작품이다. 윤이상은 ‘음향복합체’ 또는 ‘톤 클러스터’(Tone cluster)를 연쇄, 생장, 중첩시키는 과정에 음양의 대비와 조화, 정중동(靜中動), 제행무상(諸行無常) 등의 동아시아적 아이디어를 결합한 작품들로 1960년대에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그는 1967년 동베를린 사건으로 한국에서 옥고를 치르고 1969년 추방되면서 그 경험을 작품에 녹여 내기 시작했으며, ‹첼로 협주곡›(1975/76)을 기점으로 더 한국적인 울림을 담아내는 방향으로 음악 양식을 변화시켜 나갔다.

음악학자 볼프강 슈파러의 분석에 따르면, ‹서곡›은 ‹예악›(1966), ‹낙양›(1962) 등과 연속선상에 있는 음향복합체 시기의 작품이되 내용상으로는 자전적 성격을 보이며 암울한 분위기가 작품을 지배한다. 슈파러는 이 작품의 분위기를 설명하는 주변적 맥락으로 초연 당시 나란히 연주된 베른트 알로이스 침머만의 ‹나는 또 태양 아래에서 자행되는 모든 억압을 보았다›(1970)을 언급하기도 한다. ‹서곡›은 무지크페스트 베를린의 위촉으로 작곡되었으며, 한스 첸더가 지휘한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 의해 1973년에 초연됐다.

윤이상은 1974년 출판에 앞서 이 작품의 상당 부분을 고쳤으며, 로타르 차그로제크가 지휘한 졸링겐 시립오케스트라가 개정판을 초연했다. 이 작품은 네 부분으로 되어 있으며 각 부분이 다시 두 부분으로 나뉘는 짜임새로 되어 있다.

Isang Yun: Ouvertüre (1973/74)

Isang Yun’s ‹Ouvertüre›, composed in 1973, marks a transitional work written before a significant transformation in his musical style. During the 1960s, Yun achieved international recognition with works that combined East Asian concepts – such as the interplay and harmony of yin and yang, motion within stillness (靜中動), and the impermanence of all things (諸行無常) – with processes involving sound planes or tone clusters, characterized by succession, growth, and overlapping. Following his abduction and imprisonment in South Korea due to the East Berlin Incident in 1967 and his release and expulsion in 1969, Yun began to integrate these experiences into his compositions, eventually transitioning to a style more deeply imbued with Korean essence, as epitomized by his ‹Cello Concerto› (1975/76).

According to musicologist Wolfgang Sparrer, ‹Ouvertüre› belongs to Yun’s epoch of “Klangcomposition,” sharing continuity with earlier works such as ‹Réak› (1966) and ‹Loyang› (1962). Sparrer also notes that the piece reveals a more autobiographical dimension, with somber tones dominating the work. As a contextual reference for the work’s atmosphere, Sparrer mentions Bernd Alois Zimmermann’s ‹Ich wandte mich und sah an alles Unrecht, das geschah unter der Sonne› (1970), which was performed at the concert where ‹Ouvertüre› was premiered. The work was commissioned by Musikfest Berlin and premiered in 1973 by the Berlin Philharmonic Orchestra under the baton of Hans Zender.

Yun revised much of the work for its publication in 1974, and the revised version was premiered by the Solingen City Orchestra conducted by Lothar Zagrosek. Structurally, ‹Ouvertüre› is divided into four parts, each further subdivided into two sections.

2023년 9월 18일 월요일

윤이상: 축제 무곡[Festlicher Tanz] (1988)

 윤이상의 ‹축제 무곡›(Festlicher Tanz)은 제목이 시사하는 바와 달리 즐거운 축제 분위기도 아니고 흥겨운 춤곡도 아니다. 명상적인 분위기가 지배하는 이 곡에서 '춤'은 불교의 승무와 같은 깨달음을 위한 몸짓처럼 느껴진다. 

이 시기의 윤이상은 음악으로 정신적 해탈을 추구하는 작품을 다수 남겼고, 특히 '라'(A) 음에 특별한 상징성을 부여하여 도(道)의 세계로 나아가는 과정을 'A'를 향해 상승하는 과정으로 표현하곤 했다. 그러나 ‹축제 무곡›에서는 주요음이 'A'와 'E♭' 사이에서 요동치고 순환할 뿐 'A' 음을 향한 목표지향성이 뚜렷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 예외적이다. 'A'와 'E♭'은 위아래 양쪽 방향이 동일한 증4도(감5도) 간격으로, 한 옥타브의 12음을 동그라미 위에 배열한다면 'A'와 'E♭'은 서로 반대편 극단에 위치한다. 달리 말하면, 'A'와 'E♭'은 거울쌍이다.

음악학자 볼프강 슈파러의 분석에 따르면, 이 곡에서 '춤'을 추는 주인공은 오보에이다. 그리고 플루트, 클라리넷, 바순, 호른이 오보에와 더불어 'A'와 'E♭' 사이를 요동치고 순환한다. 이 곡은 세 부분으로 되어 있으며, 비교적 정(靜)적인 중간 부분에서는 오보에가 주변으로 물러나고 그동안 호른과 클라리넷 등이 음악을 이끌어 간다. 오보에가 다시 주도적 역할로 돌아오면 개별 악기의 '몸짓'이 서로를 좀 더 닮아가며, 마지막에는 주요음이 'E♭'을 중심으로 요동치는 가운데 마치 말을 하다가 만 듯한 찜찜함을 남기며 음악이 끝난다.


2023년 5월 16일 화요일

Isang Yun: Glissées for Solo Cello (1970)

 The title of this piece, Glissées, comes from the French verb "glisser," meaning to glide. In music, it refers to a glissando, but in Isang Yun's ‹Glissées›, it also symbolizes the colorful and ever-changing movements of East Asian music. The cello in this piece sometimes sounds similar to Korean traditional instruments such as the Geomungo, Gayageum, or Haegeum.

In East Asian music, individual tones have vitality and move freely. When Isang Yun translated them into Western notation, he used ornaments, glissando, and other special performance techniques. This is not simply an imitation of East Asian music, but rather, as musicologist Wolfgang Sparrer stated, "in his specific notation and imagination of sounds, they undergo individual alterations and characteristic, pointed emphasis."

Isang Yun wrote ‹Glissées› following his international recognition with ‹Réak› (1966) and other pieces. In those pieces, he built soundscapes by compiling different tones into clusters and giving vitality to individual tones, in order to express the sounds of East Asian music with Western instruments. In contrast, ‹Glissées› focuses on only one instrument, the cello, and explores the microcosmoses that are given birth by the individual tones with vitality.

Korean traditional music, particularly court music, has a fundamental difference from Western music in that the music is segmented by respiration rather than beats. This feature can also be found in ‹Glissées›, and in addition, there are even no bar or time signatures in the score. Therefore, what is important for both the performer and listener is to "breathe" together as a tone is born, grows, rests, and decays.

2022년 12월 6일 화요일

윤이상: 첼로 독주를 위한 7개의 에튀드 (1993)

첼리스트 발터 그리머는 윤이상에게 첼로 협주곡 2번을 의뢰했다. 그러나 건강이 좋지 않았던 윤이상은 그리머의 의뢰를 거절하고 그 대신에 7곡짜리 에튀드를 썼다. 이 작품은 발터 그리머에게 헌정되었으며, 1995년에 이 작품이 초연되고서 약 두 달 뒤 윤이상은 타계했다.

제1곡 '레가토'는 C♯에서 A로 상행하는 단6도 음정으로 시작한다. 1곡에서는 윤이상 음악 양식의 전형적인 특징이 드러나지 않으며, 그 대신 6도 음정이 에튀드 전곡을 발현하는 씨앗으로서 단순하게 정제된 음악 어법으로 제시된다. 음악학자 볼프강 슈파러에 따르면, 윤이상은 이 곡에서 '레가토'의 의미를 "조용하고 우아하게"라고 말했다. 

제2곡부터 제7곡까지는 1곡에서 제시된 '화두'를 조금씩 다른 시각에서 풀어나간다. 제2곡 '레지에로'에 관해 윤이상은 "부드러운 산들바람처럼" 연주하라고 했고, 제3곡 '파를란도'는 "속삭이는 대화처럼" 연주하라고 했다. 제4곡 '부를레스크'는 더블스톱 주법을 사용한 리듬의 변화가 핵심이다. 제5곡 '돌체'는 약음기를 낀 첼로의 섬세한 셈여림의 변화가 특징적이며, 윤이상은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연주하도록 했다. 제6곡 '트릴'과 제7곡 '더블스톱'은 소제목이 지시하는 연주법이 핵심이다.

2022년 12월 4일 일요일

윤이상: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가사' (1963)

노랫말을 뜻하는 가사(歌詞)는 한국 고전시가의 한 형태인 가사(歌辭)를 노래하는 음악 장르를 일컫기도 한다. 작품 제목이 시사하는 것처럼, 윤이상의 ‹가사›에서 바이올린은 노래[唱]를 담당하고, 피아노는 음향효과와 타악기적 추임새를 담당하며, 두 악기의 음악적 몸짓(제스처)은 한국 전통음악을 떠올리게끔 한다.

윤이상은 당시 유럽 아방가르드 음악의 주류 언어였던 12음 기법을 사용하면서도 그 속에 한국적인 아이디어를 담아내는 식으로 자신의 음악 언어를 발전시켜 나갔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작곡한 ‹가락›(1963)과 ‹가곡›(1972)에서 이른바 '주요음 기법'(Hauptton Technik)을 본격적으로 사용하며 한국적 제스처, 음양의 대비와 조화, 정중동(靜中動)이라는 도교적 원리와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는 불교적 원리 등을 12음 음악 속에 담아내는 방법을 정교화했다.

이 작품에 관해 윤이상은 "부분적으로는 세속적인 중국 궁정음악에 영감을 받았고, 또 부분적으로는 교화적인 불사음악에 영감을 받은 음악"이라 했다. 음악학자 홍은미는 윤이상이 음악 장르로서의 가사를 "궁정에서 비의전적으로 흘러나오거나 사원의 종교의식에서 흘러나오는 장중하고 엄격한 음악으로 이해"했다며, 바이올린이 "찬불가처럼 상징적 의미를 지닌 단어들이 길게 이어지거나 반복되는 이미지를 그리도록" 했다고 보았다.

윤이상은 또한 이렇게 말했다. "가사는 우주(Raum) 속에 존재한다. 시간의 제약은 없고, 찰나는 우주이며 그 우주는 무한하다. 그 속에서 극적인 발전이 일어난다."

2022년 11월 24일 목요일

오페라 '심청'의 우주적 음향

’더무브’에 기고한 글입니다.


심학규가 눈을 뜨면, 그를 치유한 연꽃이 다시 기적을 일으켜 궁으로 몰려온 수많은 병자, 장님, 절름발이와 헐벗은 자를 치유한다. 무대 뒷벽이 열리고 ‘하늘의 어머니’ 옥진에게서 후광이 빛난다. 하늘에서 별빛이 쏟아지고, 심학규가 옥진을 향해 천천히 올라간다. 함께 구원받은 사람들이 합창단과 함께 노래한다.

은혜로 구원되었네. 은혜로 해방되었네.
보아라 구원된 이를. 보아라 해방된 이를.
은혜로. 보아라.
Segen erlöst. Segen befreit.
Sehen erlöst. Sehen befreit.
Segen. Sehen.

오페라 ‘심청’ 자필악보 중 마지막 장면(하늘의 어머니 ’옥진’과 합창단)
ⓒBoosey & Hawkes

지난 11월 18일과 19일, 이틀에 걸쳐 대구오페라하우스에서 윤이상 오페라 ’심청’이 공연되었다. ’심청’은 윤이상 오페라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가수에게나 오케스트라에나 기술적 어려움이 있는 까닭에 실연으로 접하기 쉽지 않다. 대구에서 있었던 공연이 매우 기쁘고 반가웠던 건 그래서다. 그리고 내가 본 첫날 공연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이 앞서 말한 마지막 장면이었다.

특히 하늘에서 빛이 쏟아지는 대목에서 오케스트라가 쏟아낸 무시무시한 ’빛’이 놀라웠다. 서양 조성음악 작곡가들은 흔히 찬란하게 빛나는 으뜸화음으로 빛을 표현하곤 한다. 그러나 윤이상의 ’빛’은 으뜸화음과는 다른 음향복합체(클러스터)였고, 찬란하다기보다는 무시무시한 느낌이었다. 그것은 죽음이라는 미지의 공포와 닿아 있는 듯했다.

이때 나는 윤이상의 마지막 작품 중 하나이자 윤이상 자신을 위한 레퀴엠이기도 했던 작품 ‘에필로그’를 떠올렸다. ’화염 속의 천사’(1994)와 쌍을 이루는 ’에필로그’에 관해 윤이상은 “우주적 음향세계”(kosmische Klangwelt)라는 표현을 쓴 일이 있다. 내가 경험한 오페라 ’심청’에서 천상의 소리는 언제나 ’우주적 음향세계’와 닿아 있었고, 특히 마지막 장면이 압권이었다.

“’에필로그’는 완전히 다른 음향세계로, 감정으로 가득했던 앞선 관현악곡과 달리 완전히 무기질적입니다. 죽은 이의 넋이 다른 세계에 간다면 아마도 ’에필로그’에서와 같은 우주적 음향세계의 소리를 들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마지막 장면의 압도적인 음향효과를 살려낸 것은 확 넓어진 오케스트라 피트였다는 생각이 든다. 대구오페라하우스는 최근에 음향 개선 공사를 했다는데, 결과적으로 오케스트라 피트 확장이 그 핵심이었던 것 같다.

외국 유명 오페라 극장에서는 오케스트라 피트에 사람과 악기를 욱여넣으면 그럭저럭 ‘풀 편성’ 오케스트라가 들어가는 것과 달리, 국내 오페라 극장에서는 바그너 같은 대편성 곡은 제대로 연주할 수 없을 만큼 오케스트라 피트가 좁다. 그러나 이제 대구오페라하우스는 국내에서는 예외적으로 넓은 오케스트라 피트를 갖춘 극장이 되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지난달 대구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되었다는 바그너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를 보지 못한 것에 뒤늦게 배 아파하는 중이다.)

난곡을 연주한 디오오케스트라(Daegu International Opera Orchestra)와 최승한 지휘자에게 찬사를 보낸다. 살인적인 고음을 잘 소화해 냈던 심청 역 소프라노 김정아를 비롯한 출연진 또한 훌륭했다. 연출가 정갑균의 “한 편의 수묵화처럼” 표현된 무대 또한 아름다웠다. 다만, 심학규 개인의 구원이 사회 전체의 구원으로 확산되는 것을 연출이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듯해서 아쉬움이 남기도 했다.

하랄트 쿤츠가 대본을 쓴 오페라 ’심청’에서 심청은 옥황상제의 명령을 받아 지상에 파견된 선녀다. 심청의 임무는 눈멀고 정체된 곳에 젊은 기운을 채우는 것, 그리고 세상을 새롭게 바꾸는 것이다. 하랄트 쿤츠는 이것을 다른 말로 의식을 일깨우고(Bewußtseinswandel herbeiführt) 사회환경을 변화시키는(Änderung der Verhältnisse) 것이라고도 했다.

구원과 해방을 말한다는 점에서 오페라 ‘심청’은 괴테 희곡 ’파우스트’ 또는 바그너 오페라 ‘파르지팔’과 통한다. ’하늘의 어머니’(옥진)와 ‘영광의 성모’(Mater Gloriosa)가 비슷하고, ’심청’의 마지막 가사와 ’파르지팔’의 마지막 가사 “구세주께 구원을!”(Erlösung dem Erlöser!) 또한 닮았으며, 심학규가 지식으로 눈이 먼(blind durch Wissen) 사실과 순수한 바보 파르지팔이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며 깨달음을 얻는(Durch Mitleid wissend, der reine Tor) 것이 일맥상통한다.

공연이 끝나고 통영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생각했다. 오페라 ’심청’의 로마자 제목은 ’Sim Tjong’이다. 그리고 윤이상의 딸 윤정의 로마자 이름 표기는 ’Yun Djong’이다. 어쩌면 윤이상은 ’심청’을 작곡하는 동안 딸을 생각하고, 자신을 심학규에 투영하며 구원을 바라지 않았을까. “Segen erlöst. Segen befreit.”

2022년 11월 20일 일요일

한재민의 윤이상 첼로 협주곡

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입니다.


2022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 결선 때 있었던 일입니다. 신동 첼리스트로 유명한 한재민이 크리스티안 바스케스가 지휘하는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와 함께 윤이상 첼로 협주곡을 연주하고 있었습니다. 한재민의 첼로 현 하나가 격렬한 연주를 견디지 못하고 경연 도중에 끊어졌습니다. 새로운 현으로 교체할 때까지 경연은 중단되었지요.

끊어진 현이 첼로 현 가운데 가장 굵은 ’C 현’이라는 점이 특이했지만, 현악기가 연주 도중에 끊어지는 일은 가끔 일어납니다. 그런데 문제는 끊어졌던 현이 얼마 안 가서 또 끊어진 것이었습니다. 한재민은 처음 현이 끊어졌을 때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지만, 두 번째로 끊어졌을 때에는 정말로 당황했다고 인터뷰에서 밝혔습니다. 백스테이지에 있던 동료의 증언에 따르면, 그때 한재민이 당황한 모습이 한눈에 보일 정도였다고 하네요.

저는 당시에 방송 중계차량에서 아주 작은 모니터 화면과 소음 속에서 작게 들리는 소리로 연주를 듣느라 현장 상황을 정확히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현이 세 번째로 끊어졌을 때에는 긴가민가했다가, 연주가 계속되는 것을 보면서 현이 끊어진 게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알고 봤더니 현은 정말로 세 번 끊어졌고, 한재민은 연주를 세 번이나 중단할 수는 없다고 판단해서 끊어진 ‘C 현’ 대신 다른 현으로 연주를 이어갔다고 하네요.

나중에 큰 화면으로 실황 영상을 다시 보면서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재민은 현이 두 번째로 끊어졌을 때에도 남은 현으로 1분 정도 연주를 이어갔더군요. 그러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는지 연주를 중단한 다음 심사위원들을 향해 현을 교체해도 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현이 끊어진 순간은 다시 연주를 이어가기 시작한 지 1분이나 되었을까 싶었던 때였습니다.

윤이상은 첼로 협주곡 중간 부분에서 기타 피크로 현을 튕기는 연주법을 지시하고 있습니다. 마치 거문고 현을 술대로 뜯는 것을 연상시키지요. 현이 실제로 끊어졌던 순간은 ’거문고 피치카토’를 지나서 현을 활로 켜던 때였지만, 이 작품에서 첼로의 가장 굵은 ’C 현’이 여러모로 중요하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한재민이 이 곡을 연습하다가 ’C 현’이 끊어진 일도 한 번 있었다고 하더군요.

윤이상 첼로 협주곡에서 첼로는 윤이상 자신을 상징합니다. 윤이상은 이 곡에서 첼로를 독주 악기로만 사용했을 뿐 오케스트라 악기로 편성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첼로가 오케스트라 전체와 홀로 맞서는 식으로 음악이 흐르고, 그 가운데 홀로 고군분투하는 첼로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기도 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첼로 현이 세 차례 끊어진 해프닝은 의외로 작품과 어울리는 드라마적 효과를 낳았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윤이상 첼로 협주곡에서는 윤이상이 첼로로 전하는 ’독백’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한재민의 ’독백’은 대단했지요. 윤이상의 딸 윤정 선생은 ’영혼이 담긴 연주’라며 한재민을 극찬했습니다. 또 이 작품에는 목탁 소리, 취침나팔 소리, 망자를 태운 배가 저승을 향해 물결을 헤치고 나아가는 듯한 소리 등이 나옵니다. 이와 관련해 윤이상 선생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기도 했지요.

“감방에서의 지리하고 답답한 긴 하루가 지나가면 취침 나팔 소리가 울린다. 슬픈 멜로디의 나팔 소리, 그리고 깊은 정적이 시작된다. 나는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먼 산 속 절간에서 울려오는 목탁 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어느 죄수가 사형될 때 스님이 그 영혼을 인도하기 위하여 염불하며 두드리는 소리라고….”

세 차례 악재에도 불구하고 한재민은 1위에 입상하는 쾌거를 거두었습니다.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 결선에서 윤이상 곡으로 1위 입상자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첫해인 2003년에 고봉인이 윤이상 첼로 협주곡으로 2위에 입상한 일이 있었지만, 보통은 다른 작곡가의 협주곡을 선택한 참가자들이 결선에 오르더군요. 올해는 달랐습니다. 결선 곡으로 윤이상 협주곡을 선택한 참가자가 꽤 많았고, 그 가운데 한재민과 정우찬이 결선에 올라 1위와 2위를 차지했지요. 이런 일이 자주 있기를 바랍니다.

2022년 11월 16일 수요일

윤이상: 클라리넷과 바순, 호른, 현악오중주를 위한 팔중주 (1978)

윤이상은 동아시아 전통음악의 음 조직 원리를 20세기 서양 아방가르드 음악 어법으로 재구성한 음악으로 1960년대에 국제적으로 주목받았다. 이른바 ’동베를린 사건’을 겪고 나서는 자유와 평화 등의 음악 외적인 ’메시지’를 작품에 담거나, 또는 음악으로 도(道)와 해탈을 추구하는 등으로 음악 양식을 꾸준히 변화시켰다.

윤이상의 1978년 작품 ’클라리넷과 바순, 호른, 현악오중주를 위한 팔중주’는 도(道)를 말하는 음악이라 할 수 있다. 동動-정靜-동動 세 부분으로 되어 있고, 각 부분이 마치 도(道)를 추구하는 세상의 세 가지 단면을 보여주는 듯한 짜임새이다.

해탈을 거쳐 다다를 수 있는 이상적 세계, 신의 세계, 도(道)의 세계를 윤이상은 ‘라’(A) 음에 특별한 상징성을 부여함으로써 표현하곤 했다. 이 작품에서 첫째 부분과 셋째 부분은 중심음이 진정으로 ‘라’(A)에 이르지 못한다는 점에서 인간적이다. 다만, ’번뇌’는 그다지 고통스럽지 않으며, 첼로 협주곡(1976)과 같은 처절함은 이 곡에 나타나지 않는다.

반면, 정(靜)에 해당하는 중간 부분에서는 이상적인 세계에서 도(道)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주는 듯하다. 특히 중간 부분의 마지막에 더블베이스를 제외한 모든 현악기가 차례차례 글리산도로 옥타브를 뛰어넘어, 마치 액체가 기체로 상전이(相轉移) 하듯 한순간에 '솔'에서 '라'에 이르는 대목이 압권이다. 이때 더블베이스는 피치카토 음형으로 판소리의 '고수'처럼 타악기적 음향효과를 담당한다.

세 번째 부분에서는 마치 스님들이 도(道)에 관해 토론하는 내용의 연극을 보는 듯하다. 클라리넷과 제1바이올린, 바순과 비올라, 호른과 첼로가 차례로 대화를 나눈다. ’대화’는 결국 난상토론이 된다. 바이올린과 비올라가 트릴-글리산도로 위아래를 오가며 저마다 ’말’을 쏟아내는 가운데, 첼로가 마치 술대로 거문고 현을 뜯듯이 기타 피크로 현을 뜯는다. ’거문고 피치카토’가 끝나면 템포가 점점 빨라지며 난상토론이 절정에 이른다. 그러나 모든 현악기가 ’솔♯’을 외칠 뿐 ’라’에 이르지 못한 채로 음악이 끝난다.

2022년 10월 18일 화요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 윤이상의 영화음악

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입니다.



ⓒ부산국제영화제

지난 6월에 있었던 일입니다.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요청하기를, 영화 ’낙동강’의 영화음악을 윤이상 선생이 작곡하셨으니 그 음악을 영화와 관련지어 분석하는 글을 써달라고 하더라고요.

“잘못 아신 듯합니다. ‘낙동강’ 영화음악을 작곡하신 분은 김동진이라는 분이고, 윤이상 선생이 작곡한 ’낙동강’이라는 노래가 영화에 삽입되었다고 알고 있어요.”

“아, 그런가요? 그렇다면 그 노래가 어느 장면에 어떤 식으로 사용되었는지 등에 관한 글을 써주실 수 있을까요? 최근에 영화 필름이 발견되어서 디지털 복원 작업 중입니다.”

그간 유실되어 실체를 알 수 없던 영화 ‘낙동강’을 저는 그렇게 남보다 먼저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깜짝 놀랐습니다. 지난 2017년 자필악보가 발견되어 2018 통영국제음악제에서 세계초연되었던 윤이상 관현악곡 ’낙동강의 시’(詩) 도입부 주제가 영화 시작과 동시에 흘러나왔기 때문입니다!

’낙동강의 시’악보가 발견되었을 때부터 저를 비롯해 여러 사람이 영화와의 관련성을 의심했지만, 영화음악을 맡은 사람이 김동진 선생으로 기록되어 있었던 까닭에 의심을 접어야 했었죠. 그런데 발견된 영화를 보니 그게 아니었던 겁니다. 영화 크레딧에 김동진 선생 이름이 없고 ’음악·작곡: 윤이상’이라고 되어 있던데요!

도입부 주제 선율이 끝난 뒤에 저는 다시 한번 놀랐습니다. 2018년 당시에 진의장 전 통영시장님이 이용민 통영국제음악재단 대표님께 말씀하시기를, ‘낙동강’ 개봉 당시에 영화를 보신 기억을 떠올려 보면 우리가 알던 윤이상의 ’낙동강’이 아닌 윤이상의 또 다른 ’낙동강’이 영화에 나온다고 하셨거든요. 진 시장님께서 윤이상 곡으로 알고 있던 노래는 알고 보니 박태현 선생 곡이었고, 이 노래는 영화가 끝날 때쯤에 나오더군요.

그런데 진 시장님의 오해로부터 흥미로운 결론을 도출할 수 있습니다. 윤이상 작곡 ’낙동강’이 영화 ’낙동강’에 삽입된 사실은 예전부터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어떤 노래인지 영화 개봉 당시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면, 다시 말해 윤이상의 ’낙동강’이 영화 개봉 이전에는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았다면, 어쩌면 윤이상 선생은 애초에 ’낙동강’을 영화를 위해 작곡하셨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난 10월 6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영화 ‘낙동강’ 필름 복원 이후 첫 번째 공개 상영이 있었습니다. 상영 후 ’스페셜 토크’라는 설명회가 있었고, 한국영상자료원 김홍준 원장님과 더불어 제가 행사에 출연했습니다. 저는 윤이상의 영화음악에 관해 설명했지요. 그리고 어쩌면 통영에서도 이 영화를 상영할 기회가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이번에 처음 가본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영화 상영을 위한 장비 설정을 바꾸기가 곤란해서 행사 때 영상 재생 등은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준비했던 시청각 자료 대신에 주로 제가 직접 노래를 하는 식으로 설명하게 되었는데요. 발표가 끝난 뒤에 김홍준 원장님이 이런 농담을 하셨습니다. “여러분께서는 부산국제영화제 역사상 최초로 라이브 퍼포먼스를 감상하셨습니다!”

이날 행사와 별도로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저에게 의뢰해서 웹진 KMDb에 실린 글이 있는데요, 제가 마지막 단락으로 쓴 대목을 인용해 봅니다.

“윤이상은 오늘날 서양음악사에 한 획을 그은 거장 현대음악 작곡가로 평가받는다. 그리고 ‹낙동강의 시›는 현대음악 작곡가 윤이상이 서구적 의미에서 전통적인(conventional) 음악 어법으로 작곡한 마지막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작곡가 생전에 공개되지 않았지만, 윤이상은 3악장에 나오는 민요풍 선율을 훗날 칸타타 ‹나의 땅, 나의 민족이여!›(1987)에 사용한 바 있다. 백기완의 시를 사용한 해당 부분의 가사는”북을 쳐라, 새벽이 온다.” 등이다.”

※ 인용문 원문 링크: https://www.kmdb.or.kr/story/237/7028

2022년 4월 27일 수요일

윤이상: 교향곡 2번 (1984)

윤이상은 동아시아 전통음악의 음 조직 원리를 20세기 서양 아방가르드 음악 어법으로 재구성한 음악으로 1960년대에 국제적으로 주목받았다. 이른바 ’동베를린 사건’을 겪고 나서는 자유와 평화 등의 음악 외적인 ’메시지’를 작품에 담거나, 또는 음악으로 도(道)와 해탈을 추구하는 등으로 음악 양식을 꾸준히 변화시켰다.

윤이상이 1984년에 작곡한 교향곡 2번은 갈등과 폭력 → 눈물과 고뇌 → 투쟁과 희망으로 이어지는 음악적 서사구조를 따른다는 점에서 ‘광주여 영원히’(1981), ‘실내교향곡 2번’(1989), ‘화염 속의 천사’(1994) 등과 일견 비슷해 보인다. 금관이 폭력을 주도하고 현이 그에 맞서 저항하며, 목관악기가 둘 사이를 매개하고, 타악기는 사건의 ’배경’으로 기능하는 점은 이 시기의 윤이상 음악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 작품이 다른 작품과 다른 점은 음악적 서사의 결말이다. 음악을 이루는 주요음은 C♯으로 시작해 격렬한 투쟁을 거치며 조금씩 상승하는 방향성을 보이는데, 윤이상 작품 세계에서 도(道)의 세계를 상징하는 A(라) 음을 반음 앞두고 희망은 마지막 순간 좌절된다. 트롬본의 폭압적인 5도 하행 음형에 굴복한 현악기가 G♯에서 5도 하행해 처음의 C♯으로 돌아간다. 이에 대해 음악학자 볼프강 슈파러는 작곡가가 세상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변화를 호소했다고 보았다.

Isang Yun: Symphony No.2 (1984)

Isang Yun received international attention in the 1960s for his unique music style. He reconstructed the sound organization principle of East Asian traditional music with the western avant-garde music of the 20th century. After suffering from the so-called the ‘East Berlin Incident,’ he continued to change his style constantly. For example, he included non-musical ‘messages’ such as freedom and peace in his works, or pursuing the Tao and Nirvana through music.

Isang Yun’s second Symphony, which he composed in 1984, consists of a musical narrative structure that leads to conflict and violence, followed by tears and anguish, and then resistence and hope. In that sense, it seems similar to his other works such as Exemplum in Memoriam Kwangju (1981), Chamber Symphony No. 2 (1989), and Engel in Flammen (1994). He shows some important characteristics of his music during this period: the brass leads the violence, while strings resist it. The woodwinds, meanwhile, mediate between the two, and percussion functions as the ‘background’ of the incident.

What sets this symphony apart from other works is the conclusion of the musical narrative. The Hauptton (main tone) that makes up this piece starts with C♯, then the momentum rises little by little through intense struggle. But at the last moment, just ahead of the semitone A, which symbolizes the world of Tao, hope is thwarted. The string instrument, which has yielded to the trombone’s brutal figure of the descending fifth, moves down the fifth from G♯ and returns to the original tone, the C♯. In response to this, musicologist Wolfgang Sparrer suggests that Yun is “pleading against the ways of the world by imitating them.”

WonCheol Kim (translated by Moohyun Cho)

2022년 4월 25일 월요일

윤이상: 협주적 단편(Pièce concertante) (1976)

☞ 2017년에 쓴 글을 조금 고쳤습니다.


윤이상은 동아시아 전통음악의 음 조직 원리를 20세기 서양 아방가르드 음악 어법으로 재구성한 독창적인 음악으로 “동양의 사상과 음악 기법을 서양음악 어법과 결합해 완벽하게 표현한 최초의 작곡가”라는 극찬을 받고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윤이상 음악을 이해하는 일은 따라서 서양음악과 동양음악의 차이를 윤이상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일이 된다.

서양음악에서 개별 음은 고정되어 있어 다른 음과 관계를 맺으면서 음악적 의미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동아시아 음악에서는 음이 그 자체로 생명력을 품고 자유롭게 움직이며, 음 하나만으로도 소우주를 형성한다. 또한 소우주가 모여 대우주를 형성하고, 대우주는 소우주 속에 이미 존재한다. 이렇듯 살아 움직이는 음이 모여 살아 움직이는 화음, 살아 움직이는 ’음향층’을 형성하는 것이 윤이상 음악 어법의 핵심이다.

윤이상의 1976년 작품 ‘협주적 단편’(Pièce concertante)과 관련해 또 한 가지 주목할 만한 것은, 서양음악이 비트(beat)에 의해 분절되는 것과 달리 한국 전통음악, 그중에서도 특히 정악(正樂)은 비트가 아닌 호흡에 의해 분절된다는 것이다. 한국 전통음악에서는 합주에 참여하는 사람마다 음의 시작이 정확히 맞아떨어지지 않더라도 크게 문제 되지 않으며, 중요한 것은 함께 ’숨’을 쉬는 일이다.

‘협주적 단편’은 서양 현대음악의 겉모습을 하는 작품이지만, 살아 움직이는 음향층을 구성하는 음들이 생장하며 쉬는 ’숨’에서 윤이상의 이전 작품인 ’낙양’(1962)이나 ‘예악’(1966)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한국적 조화로움이 느껴진다. 한국인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질 그 숨을 함께 쉬는 일은 연주자에게도 감상자에게도 중요해 보인다.

한편, 윤이상이 첼로 협주곡을 작곡하던 해에 이 작품을 썼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윤이상은 첼로 협주곡에서 처음으로 음악 외적인 ’메시지’를 작품에 담기 시작했으며, 이때를 분기점으로 음악 양식 또한 큰 변화를 맞이한다. 이후 윤이상은 더 한국적인 (또는 동아시아적인) 울림을 담아내는 방향으로 자신의 음악 양식을 꾸준히 변화시켰다.

Isang Yun: Pièce concertante (1976)

By blending the sound organization principles of East Asian traditional music into the 20th century Western avant-garde techniques, Isang Yun created unique music styles. In that aspect, he was praised as “the first composer to perfectly express oriental ideas and musical techniques by combining them with Western music usage.” Isang Yun’s music is therefore a matter of understanding the difference between Western music and Eastern music from his point of view.

In Western music, individual tones are fixed and thus musical meanings are created by establishing relationships with other tones. However, in East Asian music, an individual tone alone have its own vitality and forms a microcosmos. Also, microcosmoses gather to build a grand universe, and the grand universe already exists in each microcosmos. In this way, the key to Isang Yun’s musical language is to organize vitalized tones to form vitalized chords or ‘soundscapes’.

Another noteworthy thing about Isang Yun’s ‹Pièce concertante› (1976) is that Korean traditional music (especially ‘Jeongak’) is segmented by respiration, while Western music is generally divided by beats. In traditional Korean music, it is not always a problem even if the attack of the tones does not match exactly for each person participating in the ensemble. The important thing there is to “breathe” together.

‹Pièce concertante› is a work that may appear to be Western modern music. However, in terms of ‘breath’ that was just mentioned, the tones (which make up the vitalized soundscapes) grow and then rest. In that aspect, I can feel the elegance of Korean style a bit more than Isang yun’s previous works such as ‹Loyang› (1962) and ‹Réak› (1966). It seems important to both the performer and the listener to feel that breath, which Koreans are familiar with (and yet at the same time seem to be unfamiliar).

Meanwhile, it is interesting to note that Isang Yun wrote this piece in the same year as his cello concerto. Yun began to incorporate a non-musical ‘message’ in his work for the first time through that cello concerto. At this point, his musical idioms also underwent a major transition. Since then, he constantly developed his styles further by containing more Korean (or East Asian) soundscapes.

WonCheol Kim (translated by Moohyun Cho)

2021년 10월 15일 금요일

윤이상 '피리' / 슈톡하우젠 '작은 어릿광대' / 메시앙 '시간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

윤이상: ‘피리’ (1971)

윤이상의 ’피리’는 본디 오보에 독주를 위한 작품으로, 한국 전통악기인 피리를 연상시키는 연주법이 작품에 쓰인다. 그러나 ’피리’는 서양 악기로 한국 전통악기를 흉내 내는 수준에서 더 나아가 서양음악과 한국음악의 상호작용과 상호침투를 보여준다. 한 마디로 이 작품은 윤이상류 오보에(클라리넷) 산조 또는 회상(會相; 영산회상)이라 할 수 있다.

음악학자 볼프강 슈파러, 윤이상을 인터뷰한 작가 루이제 린저 등에 따르면, 이 작품에서 피리는 지하 감옥에 갇힌 자의 목소리를 상징한다. 그 목소리는 감옥 속에서 정신적인 자유를 얻고자 투쟁한다. “여러 차례에 걸쳐, 언제나 새롭게 시도하는 상승은 수감자가 스스로를 영적으로 고양하고자 하는 시도이기도 하다. 마치 대기 중으로 날아오르기 위해 끊임없이 애쓰는 새의 몸짓처럼 말이다(루이제 린저).”

이 작품은 기-승-전-결 네 부분이 아치 형식으로 되어 있고 각 부분의 셈여림이 극적으로 변화한다(f–p / p–ff / fff–ppp / p–ppp). ‘솔♯’에서 시작하는 음은 옥타브를 넘어 ’라’에 도달하고자 여러 차례 시도한다. ’라’ 음은 윤이상 작품세계에서 흔히 도(道)의 세계, 해탈을 거쳐 다다를 수 있는 이상적 세계를 상징한다. 윤이상은 자신의 작품에서 인간을 표현하는 악기는 ’라’에 이를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카를하인츠 슈톡하우젠: 클라리넷을 위한 ‘작은 어릿광대’ (1975)

슈톡하우젠의 ‘작은 어릿광대’는 클라리넷을 위한 약 45분짜리 독주곡 ’어릿광대’(1975)의 축약판이다. 연주자는 어릿광대 복장을 하고 춤을 추면서 클라리넷을 연주하게 되는데, 이때 연주자의 발소리가 타악기적 역할을 한다. 연주자가 춤과 연주를 동시에 하기가 여의치 않다면 전문 무용수가 춤을 맡거나 또는 타악기 연주자가 발소리를 대신하는 타악기 연주를 할 수도 있다.

어릿광대는 전통적인 의미의 ‘춤’을 추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시계 방향으로 돌면서 때때로 우스꽝스러운 ’광대놀음’을 하게 된다. 음악 또한 ’춤’과 더불어 돈다. 즉 나선형으로 회전하는 음형에서 곡 전체가 파생한다. 나선운동에 관한 아이디어는 슈톡하우젠의 1968년 작품 ’나선’(Spiral)에서 유래를 찾을 수 있고, 한 음형에서 곡 전체와 세부 요소가 파생하는 짜임새는 만트라(1970), 이노리(1973-4) 등에서 발전한 것으로 동양 사상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점에서 윤이상 음악 어법과도 통하는 바가 있다. 슈톡하우젠은 미국의 클라리네티스트이자 슈톡하우젠의 연인이었던 수전 스티븐스를 위해 이 작품을 썼다.

올리비에 메시앙: 바이올린, 첼로, 클라리넷, 피아노를 위한 ‘시간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 (1940-41)

메시앙은 제2차 세계대전 중 후방의 군병원에서 지원병으로 활동하다가 1940년에 독일군 포로가 되었다. 수용소의 장교는 메시앙에게 종이와 연필을 제공해 작곡을 계속할 수 있도록 배려했고, 이 시기에 ’시간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가 탄생했다.

수용소에서 고통받던 작곡가는 어느 날 천사들의 무지개와 화려한 색채의 소용돌이를 환각으로 보고 요한계시록을 떠올렸다. 작품 제목에 쓰인 ’시간의 종말’은 요한계시록 제10장에서 온 것으로, 예수 재림의 때에 시간이 더는 존재하지 않게 되리라는 계시를 일컫는다. “내가 또 보니 힘센 다른 천사가 구름을 입고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그 머리 위에 무지개가 있고 […] 창조하신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되 시간이 다시 없으리니[…].”

바이올린, 첼로, 클라리넷, 피아노로 된 악기 편성은 수용소에서 구할 수 있는 악기를 사용하고자 그렇게 결정되었다. 그곳에 있던 첼로에는 줄이 세 개뿐이었고, 클라리넷은 일부 구멍이 녹아 없어졌고, 피아노는 건반 몇 개가 작동하지 않았다. 이 작품은 1941년 1월 15일 괴를리츠 포로수용소의 5,000여 명의 포로와 장병 앞에서 메시앙 자신의 피아노와 수용소에 있던 포로들의 연주로 초연되었다. 이날 연주는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고 전해지며, 음악학자 이희경은 이것을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감옥에 울려 퍼진 모차르트 오페라 아리아와 견주기도 했다.

윤이상: 현을 위한 융단 (1987)

서양음악에서 개별음은 고정되어 있어 다른 음과 관계를 맺으면서 음악적 의미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동아시아 음악에서는 개별음이 그 자체로 살아 움직이며 소우주를 형성한다. 윤이상은 이것을 붓글씨와 펜글씨의 차이에 빗대어 설명하기도 했고, 또 도교적인 관점에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동양에서는 사람이 혼자서 음악을 만들지 않으며, 음향이 이미 그곳에 먼저 존재합니다. […] 그러므로 동양 사람들이 말해오기를, 음악이란 작곡하는 것이 아니고 낳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우주에 작은 부분이 탄생하는 것입니다.”

1960년대 유럽에서는 전통적인 화음 개념을 확장한 이른바 음 덩어리(cluster)로 선율·리듬·화성을 사실상 무력화하고 음색 또는 ’음향’을 전면에 내세운 음악이 나타난다. 윤이상은 이것을 받아들이되 음 덩어리를 이루는 개별음을 동아시아적 의미에서 ’살아있는 음’으로 바꿈으로써 헤테로포니를 폴리포니의 틀 속에 담아냈다. 살아있는 음이 모여 살아있는 화음, 살아있는 음향층을 이루는 것이 윤이상 음악 어법의 핵심이며, 이로써 작곡가는 동아시아 음악의 음향을 서양 악기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윤이상이 주목한 동아시아적인 아이디어를 서양음악 어법으로 옮기려면 수많은 장식음과 트릴, 글리산도, 속도가 변하는 비브라토, 셈여림의 복잡한 변화 등이 필요하게 된다. 그리고 윤이상 음악에서 음들이 살아 움직이는 ’양식’은 후기 작품으로 갈수록 더 한국적인 울림을 담아내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1960년대 윤이상 작품과 견주면, 1987년 작품인 ‹융단›(Tapis pour cordes)에서 살아있는 음은 더 활발하게 살아 움직이고 때로는 뚜렷한 선율과 협화음을 앞세우기도 한다.

이 시기에 작곡가는 음악 외적인 ’메시지’를 음악에 담기 시작했고, 때로는 정치적인 신념을 담거나 음악으로 해탈을 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융단›은 음악 외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지 않다. 곡 첫머리에 등장하는 단3도 상행 음형이 되풀이해 나타나고, 그 가운데 현악기가 연주하는 ’살아있는 음’이 다채로운 빛깔로 마치 실뜨기를 하듯 소리를 빚어내는 것이 특징이다.

2021년 7월 13일 화요일

오보이스트 잉고 고리츠키 인터뷰

통영국제음악재단 e-매거진에 실린 글입니다.

플로리안 리임 인터뷰, 김원철 옮김


Q. 스위스에서 있었던 한 공연에서 윤이상을 처음 만났고 이후 30여 년을 교류했다고 들었다. 그때 이야기가 궁금하다. 또 윤이상의 음악적 동반자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에 관해 알려달라.

A. 1974년 10월 16일, ‘라디오 베른’ 방송국에서 윤이상 특집 공연이 열렸고 내가 윤이상의 ‘피리’를 연주하게 되었다. 그 전부터 나는 이 곡에 흥미를 느껴 여러 차례 공연했었고, 이날 공연에서 윤이상을 처음 만났다. 불과 3미터쯤 떨어진 곳에 그가 앉아 있어서 무척 떨렸다. 공연이 끝난 뒤 윤이상이 나에게 내 연주에 관해 덕담해 주었고, 이 작품에 관한 내 주된 관심사였던 셈여림에 관해서도 좋게 평가해 주었다. 그는 또한 이 곡의 마지막 부분인 ’느리고, 신비롭게’(langsam, misterioso)에 관해 중요한 말을 했다. 마지막 부분을 내가 연주했던 것보다 더 여린 ‘피아니시모’로 연주하면 좋겠다는 거였다. 작품 해석에 관해 정말로 중요한 말이었다. 윤이상은 이 작품을 초연한 연주자 게오르크 메르바인에게 마지막 부분의 모든 음에 핑거링을 바꿔서 선율과 음색에 변화를 줄 것을 제안했지만(옮긴이 주: 출판된 악보에는 이 대목에 윤이상의 ’오리지널’과 메르바인이 연주한 판본이 나란히 있다.), 그렇다고 여기서 윤이상의 ’피아니시모’ 아이디어가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그날 이후로 나는 때때로 윤이상이 참석한 공연에서 ’피리’를 연주했고, 그와 함께 독일 국내외에서 투어 공연을 다니기도 했다.

Q. 올해 통영국제음악제에서 윤이상의 ‘피리’(1971)와 ‘영상’(1968)을 연주할 예정이다. 두 작품 모두 당신이 윤이상을 만나기 전에 작곡되었는데, 나중에 이들 작품에 관해 윤이상과 어떤 대화를 했나?

A. 사실 많은 말을 나누지는 않았다. 윤이상은 연주자에게 많은 자유를 주었고, 그의 작품에 관해서는 서로 다른 많은 해석이 존재하며, 특이 ’피리’가 그렇다. 지금에 와서는 내가 작품의 특정 프레이즈나 효과에 관해 더 많이 질문하지 않았던 일을 후회하지만, 윤이상 생전에 우리는 서로를 직관적으로 매우 잘 이해하는 사이였고 악보에 있는 지시는 매우 명확했다. ’피리’의 마지막 부분에 관해서는 앞서 이미 얘기했다. 다른 얘기를 더 하자면, 이 작품의 악보는 4쪽으로 되어 있고, 그래서 연주를 하려면 악보를 두 차례 넘겨야 한다. 윤이상은 그러지 말라고 했다. 악보를 넘기는 순간에 음악의 긴장감을 잃을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래서 나는 페이지를 넘길 필요가 없게끔 악보를 손보았고, 이것을 내 제자들에게도 전수하고 있다.

’영상’에서 윤이상은 비브라토의 형태를 계속 바꿔가면서 연주하게끔 했으며 어떤 지점에서는 모든 성부에 그런 걸 요구한다. 이를테면 논비브라토(non vibrato), 조금 약한 비브라토(poco vibrato), 그냥 비브라토, 조금 센 비브라토(molto vibrato), 조금씩 세지는 비브라토(vibrato poco a poco crescente) 등으로 비브라토의 양상이 변하면서 음색이 매우 다채로워진다. 내가 알기로 윤이상은 이런 기법을 다른 작품에서도 일관되게 사용하지는 않았는데, 내 생각에 이것은 고분 벽화의 압도적인 색채감과 관련 있는 것 같다. 이 곡은 윤이상이 강서고분벽화를 보고 나서 그것을 음악으로 표현한 작품이며, 나 또한 그 벽화를 직접 보았다. 이 작품의 마디 270부터 시작하는 마지막 부분을 리허설할 때 있었던 일을 나는 영원히 잊지 못한다. 이 대목을 작곡할 때 윤이상은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는 것이다. 이 마지막 대목에서 리듬과 선율은 방향성을 잃어버리고, 오보에의 질문하는 글리산도와 함께 작품이 끝난다.

Q. 작품을 어떻게 익혔는지 궁금하다. 당신은 ‘윤이상 솔로이스트 베를린’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고, 그래서 이 작품을 여러 번 연주했을 것 같다. 작품에 대한 이해가 처음과 달라진 점이 있나?

A. ’영상’은 성부 넷이 지극히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매우 복잡한 작품이다. 이 괴물 같은 작품을 어떻게 연주해야 할까. 할 수 있는 일은 이미 정해져 있다. 당연히 모든 연주자는 자신의 파트를 충분히 이해한 뒤에 합주에 들어가야 한다. 연주자 각자에게 기술적으로 도전이 되는 곡이지만, 그것은 아름다운 도전이기도 하다. 그리고 첫 번째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거다. 당신이 외국에 처음 갔다고 생각해 보라. 조금씩 당신은 그 나라와 거기 사는 사람들을 알게 된다. 그리고 때가 되면 연주의 합을 맞춰 보게 된다. 그러나 그 전에 고분 벽화에 그려진 네 마리 신수들의 움직임에 관해 알아야 한다. 그래야 붉은 선 넷이 얽히는 궤적을 발견하고 따라갈 수 있게 된다. 그제야 이 작품을 이해하고 연주할 수 있게 된다. 처음에는 복잡해 보이는 이 작품의 위대한 단순성을 알게 된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Q. 한국 전통악기인 피리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나? 그 소리를 어떻게 느꼈는지 궁금하다. 또 윤이상의 ‘피리’ 악보 첫 페이지에는 ’더블 트릴’을 비롯한 실험적인 연주법에 관한 설명이 있다. 이 작품에서 오보에 연주자에게 요구하는 가장 실험적인 프에이즈나 테크닉에 관해, 그리고 그에 대한 생각을 알려 달라.

A. 물론 피리 소리를 들어 보았고, 악기를 하나 갖고 있기도 하다. 오보에로는 낼 수 없는 깊고 그윽한 소리를 특히 좋아한다. ’피리’는 어쩌면 윤이상의 진심이 가장 잘 담긴 작품 중 하나일 것이다. 그 진심은 무엇보다 동서양 음악이 상생하게끔 하는 것이다. 내 생각에 윤이상은 ’피리’로 그것을 완벽하게 성공했다.

이 곡은 아치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서양음악에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그 형식을 이루는 벽돌들은 동양적인 성격을 보인다. 끝도 없이 길게 이어지는 듯한 음들이 주로 그러하며, 윤이상은 이것을 ‘주요음’이라 불렀다. 윤이상 음악에 관해 토론하는 학술대회에서 있었던 일을 소개하자면, 윤이상 음악의 이런 길게 이어지는 음에는 리듬이 없다고 어떤 사람이 말했다. 그 사람은 리듬의 실제 의미를 전혀 몰랐던 것이 분명하다. 리듬이라는 말의 뿌리를 따져 보면 고대 그리스어가 나온다. 그 당시 리듬은 움직임을 뜻했다.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가 했던 말 ’모든 것은 흐른다’(panta rhei)를 아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이것이 리듬의 어원이다. 그래서 윤이상 음악의 길게 이어지는 음이 그 음을 따라 흐르는 공기의 움직임이라면, 그 음에도 리듬은 있고, 무엇보다 그 움직임 자체가 리듬이다. 내 생각에, 특히 ‘피리’ 시작 부분에서 끝없이 길게 이어지는 음들은 가장 아름답고, 가장 매혹적이며, 작품 전체에서 가장 기본이 된다. 내가 이 얘기를 윤이상에게 했을 때 그의 얼굴에는 희미한 미소가 맺혔다.

’피리’에 나오는 음렬은 명백히 서양음악의 12음기법이며, 이것이 음형을 지배하는 법칙이 된다. 중간 부분의 장식음들은 그 뿌리가 뒤섞여 있다. 가볍게 유동하는 음과 짧은 글리산도는 동양적인 어법이고, 더블 트릴은 현대 서양의 오보에로만 가능한 기법이다. 이 곡의 첫 세 음이 마지막에 가서 음향적 무(無)로 가라앉는 것은 동서양 음악 세계의 통합을 단적으로 보여주며, 윤이상이 말로 설명한 의도와도 맞아떨어진다.

Q. 윤이상의 ‘이마주’(영상)와 드뷔시의 ’이마주’를 같은 공연에서 들어볼 수 있다는 점이 기대된다. 이 두 작품을 나란히 연주함으로써 어떤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생각하나?

A. 두 가지 ’이마주’를 한 공연에서 듣는 일은 그 자체로 참신한 생각이며, 두 작품은 완전히 다른 특징을 보인다. 윤이상은 창작력이 절정에 올랐을 때 고분 벽화의 신수들을 묘사한 작품을 남겼고, 자신의 목숨을 그 대가로 치를 뻔했다. 드뷔시의 ’이마주’는 작곡가의 피아노 작품들이 발전한 과정을 보여준다. 윤이상의 초기 작품, 이를테면 초기 가곡들을 아는 사람은 윤이상이 자신의 음악 어법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드뷔시의 회화적 음악 어법을 최소한 건드리기는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Q. 윤이상은 서양 악기로 한국적 정서를 표현했다. 그렇다면 연주자는 한국적인 정서와 뉘앙스를 더 잘 표현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그런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이와 관련한 경험이 있다면 알려 달라.

A. 이것은 어렵지만 필요한 질문이므로 가상의 예를 들어서 답해 보겠다. 어떤 연주자가, 여기서는 오보이스트가 바흐의 소나타나 파르티타를 연주하고자 한다면, 그 연주자는 바흐가 다른 악기를 위해 쓴 곡들 또한 익혀야 한다. 그 연주자가 윤이상 작품, 아마도 오보에 독주를 위한 ’피리’를 연주하고자 한다면, 그 연주자는 대체로 비슷한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윤이상이 다른 악기를 위해 쓴 곡을 공부하는 것만으로는 안 되며, 윤이상 작품의 뿌리를 발견할 수 있는 한국 전통음악 또한 공부해야 한다. 연주자는 이런 과정을 거쳐서 ’피리’의 악보를 이해할 수 있게 되고, 현대 오보에로 그것을 기술적·정서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된다. 어떤 경우에도 한국의 전통 피리 소리를 그냥 베끼려는 유혹에 빠져서는 안 된다. 이 음악은 작곡 과정을 거치는 동안 이미 다른 차원에 들어섰고, 연주자는 지성과 영성을 다해 노력해야만 그곳에 다다를 수 있다. 이전 단계를 답습해서는 그곳에 다다를 수 없다. 이미 있던 소재로 새로운 차원을 형성하는 일은 매우 신나는 일이며, ’피리’는 어떤 연주자가 어떤 노력을 기울이느냐에 따라 여러 가지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 낼 수 있다.

2021년 1월 29일 금요일

Isang Yun: Fanfare and Memorial (1979)

The word “chusang” in the Korean title means to “look back and reflect past events”, and is not widely used today. Musicologist Wolfgang Sparrer analyzes that “memorial” in the original title has a meaning that encompasses both “memory (Erinnerung)” and “warning (Mahnung),” and further states that the frightening fanfare that initiates the piece serves as a warning of the apocalypse, while also anticipating a similar idea in Yun’s first symphony.

Fanfare and Memorial is a rare piece among Yun’s work in that it declares a theme and develops the music by elaborating on this theme. The individual tones that constitute the fanfare theme are fixed, while the individual tones of the the strings are imbued with life. If the brass fanfare is European, the vitalized tones of the strings are East Asian. Sparrer explains that the “stringency” of the fanfare theme gradually loses power and becomes blended in the East Asian “softness.”

Like many of Yun’s other works, this piece is composed with a three-part structure, movement-stillness-movement, in a single movement. While the disparate tones of East and West clash, reconcile and coexist, the harp plays an instrumental role in the process, especially with a stand out solo part in the “stillness” section.

2020년 9월 24일 목요일

윤이상: 협주적 단편 (Pièce concertante) - 새로 쓴 프로그램 노트

2017년에 썼던 프로그램 노트에 기초적인 맥락을 보충해 새로 쓴 글입니다.


윤이상은 동아시아 전통음악의 음 조직 원리를 20세기 서양 아방가르드 음악 어법으로 재구성한 독창적인 음악으로 “동양의 사상과 음악 기법을 서양음악 어법과 결합해 완벽하게 표현한 최초의 작곡가”라는 극찬을 받고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윤이상 음악을 이해하는 일은 따라서 서양음악과 동양음악의 차이를 윤이상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일이 된다.

서양음악에서 개별 음은 고정되어 있어 다른 음과 관계를 맺으면서 음악적 의미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동아시아 음악에서는 음이 그 자체로 생명력을 품고 자유롭게 움직이며, 음 하나만으로도 소우주를 형성한다. 또한 소우주가 모여 대우주를 형성하고, 대우주는 소우주 속에 이미 존재한다. 이렇듯 살아 움직이는 음이 모여 살아 움직이는 화음, 살아 움직이는 ’음향층’을 형성하는 것이 윤이상 음악 어법의 핵심이다.

윤이상의 1976년 작품 ‹협주적 단편›(Pièce concertante)과 관련해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서양음악이 비트(beat)에 의해 분절되는 것과 달리 한국 전통음악, 그중에서도 특히 정악(正樂)은 비트가 아닌 호흡에 의해 분절된다는 것이다. 한국 전통음악에서는 합주에 참여하는 사람마다 음의 시작이 정확히 맞아떨어지지 않더라도 크게 문제 되지 않으며, 중요한 것은 함께 ‘숨’을 쉬는 일이다.

‹협주적 단편›은 서양 현대음악의 겉모습을 하고 있지만, 살아 움직이는 음향층을 구성하는 음들이 생장하며 쉬는 ‘숨’에서 윤이상의 이전 작품인 ‹낙양›(1962)이나 ‹예악›(1966)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한국적 조화로움이 느껴진다. 한국인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질 그 숨을 함께 쉬는 일은 연주자에게도 감상자에게도 중요해 보인다.

한편, 윤이상이 첼로 협주곡을 작곡하던 해에 이 작품을 썼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윤이상은 첼로 협주곡에서 처음으로 음악 외적인 ’메시지’를 작품에 담기 시작했으며, 이때를 분기점으로 음악 양식 또한 큰 변화를 맞이한다. 이후 윤이상은 더 한국적인 (또는 동아시아적인) 울림을 담아내는 방향으로 자신의 음악 양식을 꾸준히 변화시켰다.


영문 번역 추가: 2025. 2. 13.

Isang Yun: Pièce concertante (1976)

By restructuring the sound organization principles of East Asian traditional music through 20th-century Western avant-garde techniques, Isang Yun developed a unique musical style. He was highly praised as “the first composer to perfectly integrate Eastern philosophical and musical principles with Western musical language,” earning international recognition. Understanding Yun’s music thus requires perceiving the differences between Western and Eastern music from his perspective.

In Western music, individual tones are fixed, and musical meaning emerges through their relationships with other tones. In contrast, in East Asian music, each tone possesses its own vitality, forming a microcosm that is both independent and interconnected. These microcosms unite to create a greater universe, while the greater universe is inherently present within each microcosm. Yun’s musical language revolves around structuring these vitalized tones into vitalized chords or “soundscapes.”

One notable aspect of Isang Yun’s ‹Pièce concertante› (1976) is its reflection of how Korean traditional music, particularly ‘Jeongak,’ is structured around breath, in contrast to Western music, which is primarily organized by beats. In Korean traditional music, slight discrepancies in the timing of tone attacks among ensemble players are not necessarily problematic; rather, what matters is the shared experience of breathing together.

‹Pièce concertante› may appear to be a work of Western modern music. However, in terms of the previously mentioned concept of ‘breath,’ the tones — forming the vitalized soundscapes — expand and then subside. In that aspect, I can feel the elegance of Korean style a bit more than Isang yun’s previous works such as ‹Loyang› (1962) and ‹Réak› (1966). For both the performer and the listener, experiencing this sense of breath — at once familiar yet unfamiliar to Koreans — seems crucial.

Notably, Isang Yun composed this piece in the same year as his cello concerto. With that cello concerto, Yun introduced a non-musical ‘message’ into his work for the first time. At this point, his musical idioms also underwent a major transition. From that point onward, he continuously evolved his style, incorporating more Korean (or East Asian) soundscapes.

2020년 6월 8일 월요일

쿠프랭의 무덤과 고구려의 무덤

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입니다.

“그러나 라벨 음악이 항상 그렇듯이, 아름답게 세공된 표면 아래에서는 감정이 타들어 간다. 각 악장은 전투에서 사망한 벗들에게 헌정되었다. 고풍스러운 양식으로 흘러가는 음악은 마치 유령의 행진처럼 느껴진다. 근육에 대한 암시와 금속의 번뜩임에 대한 암시도 있다. 글렌 왓킨스는 제1차 세계대전 시기의 음악에 관한 연구에서, 라벨이 토카타 악장의 카랑카랑한 음으로 전투기의 곡예비행을 연상시키려 했다고 주장했다. 라벨은 창공을 홀로 비행하는 영웅이 되기를 꿈꿨다.”

음악평론가 알렉스 로스가 쓴 책 “나머지는 소음이다”에 나오는 말입니다. 모리스 라벨의 걸작 ‘쿠프랭의 무덤’ 얘기지요. (제가 가진 책이 번역서가 아니라서 인용문은 그냥 제가 번역했습니다. 그러나 김병화 선생의 훌륭한 번역서도 있어요.) 라벨은 제1차 세계대전 기간에 공군에 자원입대하려다 실패하고는 운전병으로 입대해서 군용 화물 트럭을 운전했습니다. 글렌 왓킨스가 했다는 주장은 그래서였을 겁니다.

라벨이 배치된 곳은 끔찍하기로 유명했던 베르됭 전투의 최전방 바로 뒤에 있는 곳이었습니다. 독일군과 프랑스군을 합쳐 무려 240만 명 가까운 군인들이 동원되었고, 양측의 소모전으로 사상자가 80만 명 가까이 났다는 끔찍한 전투였지요. 한 프랑스 군인은 일기에 이렇게 썼다고 합니다. “지옥도 이보다 더 참혹할 수는 없다. 여기에 있는 우리는 모두 미쳤다.”

어느 날 라벨은 폐허가 된 마을에 버려진 성에서 에라르 피아노를 발견하고는 쇼팽 곡을 연주해 보았다고 합니다. 알렉스 로스는 라벨이 적막한 폐허에서 피아노를 연주했던 경험으로 ’쿠프랭의 무덤’을 작곡하게 되었을 거라고 했습니다. 아름다운 음악이 만들어내는 환상이 폐허로 변한 현실에 덧씌워지는 것은 ’쿠프랭의 무덤’이라는 작품이 주는 느낌 바로 그것이지요.

’쿠프랭의 무덤’이라는 제목은 바로크 시대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곡가 프랑수아 쿠프랭(François Couperin)의 이름에서 따온 것입니다. 이 작품의 선율과 리듬과 화성 등은 바로크 시대의 우아함을 간직하면서도 어딘가 조금씩 비틀려 있고, 때로는 음산한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알렉스 로스가 말한 것처럼, “고풍스러운 양식으로 흘러가는 음악은 마치 유령의 행진처럼 느껴”집니다.

이 작품의 악장 구성은 바로크 시대 모음곡과 비슷하면서도 진짜 바로크 시대의 표준에서는 벗어나 있습니다. 이를테면 바흐 모음곡의 악장 구성이 ① 전주곡 ② 알르망드 ③ 쿠랑트 ④ 사라방드, ⑤ 가보트·미뉴에트·부레 등 ⑥ 지그 순서라면, ’쿠프랭의 무덤’은 ① 전주곡 ② 푸가 ③ 포를랑 ④ 리고동 ⑤ 미뉴에트 ⑥ 토카타 순으로 되어 있습니다.

무덤, 현실과 환상의 병치, 옛 음악 양식의 현대적 비틀림 등에서 떠오르는 음악이 있습니다. 윤이상 선생의 1968년 작품 ‘영상’(Images)입니다. 윤이상은 강서고분, 그러니까 ’무덤’에 있는 벽화 ’사신도’를 보고 영감을 받아 이 곡을 썼다고 하지요. 고구려 무덤을 지키는 청룡, 백호, 주작, 현무는 어둠 속에서 강렬한 색채로 빛났고, 넷이면서 동시에 하나로 어우러져 있었다고 합니다.

윤이상은 강서고분벽화를 보러 평양에 갔다가 그만 간첩 혐의를 받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고, 그곳에서 자살 시도까지 했다가 서울대학병원에 이송되어 그곳에서 ’영상’을 작곡했다고 하지요. 음악학자이자 국제윤이상협회장인 볼프강 슈파러는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캄캄한 방은 감옥이다. 이것이 음악적으로는 저음, 경직됨과 움직임 없음으로 시작해 조금씩 움직임과 활기가 늘어나는 것으로 표현되었다. 음악이 완전히 멈춘 뒤에 모든 성부가 터져 나와 흩어지며 두 번째 부분이 시작되고, 이것이 함께 울리는 명확한 화음으로 합쳐지며 위로 솟아오른다. 조화를 향해 상승하는 움직임은 불안정한 것으로 드러나며 다시 한번 흩어진다. 점점 더 위를 향하는 화음은 감옥 벽을 향해 외치는 절규로 해석되었다.”

통영국제음악당에서는 ‘쿠프랭의 무덤’과 ’영상’ 등을 7월에 공연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상황이 어찌 될지 몰라서 걱정입니다. 7월이 되면 전 세계에 창궐한 바이러스가 잠잠해지기를 희망합니다. 그래서 ’쿠프랭의 무덤’과 ’영상’을 공연장에서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2019년 6월 5일 수요일

윤이상 ‹화염 속의 천사› 외 (최수열·부산시향 2019.5.17.)

부산문화회관 월간지 『예술에의 초대』에 실린 글입니다.


"악보에서 불타는 사람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소음처럼, 극적으로, 거의 있는 그대로 묘사한 그것은 빌딩 꼭대기에서 떨어지는 모습과 그것을 목격하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분명히 깨달은 이들이 경악하고 당황하는 모습입니다. 남은 것은 말을 잃은 무력감입니다."

윤이상이 말한 "불타는 사람"이 부산문화회관에 나타나 무시무시한 온도로 타올랐다. 고음이 격렬하게 부딪치며 "소음처럼, 극적으로" 불탔다. 화염의 뜨거운 온도가 마치 내 몸을 태우는 듯 고통스럽게 느껴졌다. 무려 20여 명이 윤리적·사회적 쇄신을 요구하며 자신의 몸에 불을 붙여 건물에서 뛰어내렸다는 이야기는 1991년의 한국을 살지 않았던 사람에게 역사적 기록으로만 존재한다. 윤이상은 그것을 현재적 기억으로 만들었고, 독일어 작품 제목에 '메멘토'(기억)라는 말을 썼다. 그리고 최수열이 지휘한 부산시향이 그 '메멘토'를 강렬한 음향으로 소환했다.

"이들의 이타적인 행동을 음악으로 기억하고자 했고, 무고한 사람이 사회의 희생자가 됨을 고발하고자 했습니다." 윤이상은 1994년 음악학자 발터-볼프강 슈파러와 나눈 대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정치적 목표를 좇거나 선동적 의도로 이 곡을 쓴 것이 아닙니다. 다만 나는 작곡가로서 제 양심에 거리낌이 없게끔 행동했습니다."

오해와 달리 윤이상 작품 가운데 사회참여적 성격이 짙은 작품은 그리 많지 않으며, 대부분의 작품은 도교적·불교적 깨달음을 추구하거나 순음악적 어법을 탐구하는 것들이다. '화염 속의 천사'와 '광주여 영원히'는 그런 점에서 예외적인 작품으로, 구성상으로도 여러모로 닮은꼴이다. 그리고 내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윤이상이 곡 중간에 '비브라폰'이라는 악기를 활용한 방식이다.

'광주여 영원히'에서 윤이상은 '발포' 장면 직후 믿을 수 없는 사건을 목격한 정신적 충격으로 현실감을 잃은 가운데 환상이 의식으로 침투해 오는 심리상태를 연출했다. 영화에 비유하자면, 이 대목에서 마치 화면이 극단적으로 느려지고 소리는 사라지거나 초자연적인 음향이 들려오는 듯하다. 그런가 하면 '화염 속의 천사'에서 윤이상은 '천사'가 탄생하기에 앞서 화염 속에 자신을 내던지겠다는 결단을 내리기까지의 고뇌와 두려움이 환상으로 이어지는 심리상태를 연출했다.

이처럼 현실의 영역에서 환상의 영역으로, 다시 현실의 영역으로 돌아오는 짜임새와 음악적 연출 방식에서 두 작품은 닮은꼴이다. 그리고 '비브라폰'의 몽환적인 음색이 두 작품에서 효과적으로 사용되었으며, 이것이 '현실의 영역'에서 사용된 글로켄슈필 및 실로폰의 음색과 대비된다.

몇 년 전 최수열이 광주시립교향악단을 지휘해 '광주여 영원히'를 연주했을 때, 비브라폰은 악보에 지시한 것보다 좀 더 큰 음량으로 환상의 영역이 음향적으로 두드러지게끔 했다. 광주시민문화회관이 공간 특성상 작은 소리를 섬세하게 전달하지 못했던 까닭으로 짐작되는데, '화염 속의 천사'가 연주된 부산시민문화회관의 음향은 작은 소리를 온전히 전달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비슷하지만 광주보다는 조금 낫다고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부산에서 최수열이 연출한 비브라폰 소리는 상대적으로 적당한 음량과 분명한 비브라토로 몽환적인 느낌을 알맞게 살렸다.

'에필로그'에서는 서양음악 전문 소프라노 대신에 국악 전문 가수를 기용한 아이디어에 감탄했다. 음악학자 이경분은 '에필로그'를 두고 "죽은 영혼을 위로하는 곡소리의 '윤이상적 버전'"이라 평한 바 있는데, 이번 공연에서 겉소리와 속소리를 오가는 박민희의 창법이 '곡소리'를 더욱 뚜렷이 살리는 결과를 낳았다. 생각해 보면 윤이상은 한국에서 활동하던 시기에 작곡한 초기 가곡에 관해 "내가 바라는 것은 비록 서양 발성법을 구사하는 성악가라 할지라도 약간의 우리 전통음악이나 민요의 선적, 율동적, 색채적인 묘미를 연구해서 불러주었으면 하는 것이다."라 한 일도 있다.

올해 3월 말 통영국제음악제에서는 미하엘 잔덜링이 지휘한 루체른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화염 속의 천사'와 '에필로그'를 연주했었고, 소프라노 서예리가 탁월한 목소리로 감동을 더했다. 그때 이후로 나는 이 곡을 서예리보다 잘할 수 있는 가수가 있을 것이라 믿지 않았다. 그러나 부산에서 박민희의 노래를 듣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다. 이 곡에서만큼은 국악 전문 가수를 기용하는 것이 관습으로 굳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다.

반면 성인 여성 합창단 대신 어린이 합창단을 기용한 아이디어에는 반대한다. 어린이 합창단으로는 "우주적 음향세계"가 제대로 살아나지 않았으며, 앳된 목소리는 망망우주(茫茫宇宙)에서 부유하는 대신 지상으로 내려와 박민희의 '곡소리'를 보조하는 역할을 했다. "'에필로그'는 완전히 다른 음향세계로, 감정으로 가득했던 앞선 관현악곡과 달리 완전히 무기질적입니다. 죽은 이의 넋이 다른 세계에 간다면 아마도 '에필로그'에서와 같은 우주적 음향세계의 소리를 들을 것입니다."

어쩌면 최수열은 부산문화회관의 음향 특성을 고려해 그런 선택을 했던 것일까? 박민희는 마이크를 사용하는 듯했는데 음량이 너무 크다고 느꼈다. 지상의 슬픔을 강조하는 의도를 헤아리면 해석의 일관성은 있다 하겠으나 지상 세계에 너무 초점이 맞춰진 것은 아무래도 불만스러웠다. 음향이 좋기로 유명한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성인 여성 합창단의 우주적 음향 세계와 박민희의 지상의 곡소리를 대등하게 하면 어떨까 상상해 본다. 오케스트라는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 지휘는 최수열이었으면 좋겠다.

오케스트라 편성이 작을수록 부산문화회관의 음향적 단점이 두드려졌던 것은 아쉬웠고, 윤이상 곡에서 부산시향이 자칫 현대음악의 섬세한 음향이 살아나지 못할 위험을 강력한 음량으로 극복한 것과 달리 모차르트 곡에서는 내가 머리로 이해한 아티큘레이션과 몸으로 느낀 소리 사이에 심각한 괴리가 느껴졌다. 부산에도 클래식 음악 전용홀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많은 예산이 필요한 일인 만큼 쉽지 않을 것이다. 다만 통영국제음악당이나 대구콘서트하우스처럼 음향이 뛰어난 공연장이 언젠가는 부산에도 있어야 한다는 필요성은 꾸준히 인식되길 바란다.

차이콥스키 '로코코 주제에 의한 변주곡'은 첼로가 아닌 비올라가 협연한 것이 색다른 느낌을 주었고, 비올리스트 김상진은 비올라의 색다름과 원곡의 익숙함 사이를 줄타기하듯 훌륭하게 연주했다. 김상진과 함께 모차르트 '신포니아 콘체르탄테'를 협연한 바이올리니스트 임홍균은 탱글탱글한 리듬과 윤기 있는 음색으로 모차르트 음악의 맛깔스러움을 잘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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