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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15일 토요일

2005.09.24. 《라인의 황금》 - 게르기예프 / 마린스키 극장 오페라단

라인의 황금 Das Rheingold - 마린스키극장 오케스트라/오페라단
2005년 9월 24일(토) 저녁 7시 30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지 휘 : 발레리 게르기예프 Valery Gergiev
연 출 : 발레리 게르기예프 Valery Gergiev
감 독 : 율리아 페브즈너 Yulia Pevzner
무대 디자인: 조시 티시핀 George Tsypin

보탄 : 예프게니 니키틴 Evgeny Nikitin
프리카 : 스베틀라나 볼코바 Svetlana Volkova
알베리히 : 예뎀 우메로프 Edem Umerov
로게 : 콘스탄틴 플루즈니코프 Konstantin Pluzhnikov
파졸트 : 바딤 크라베츠 Vadim Kravets
파프너 : 게네디 베주벤코프 Gennady Bezzubenkov
미메 : 니콜라이 가시예프 Nikolai Gassiev
도너 : 에드워드 장 Eduard Tsanga
프로 : 예프게니 아키모프 Evgeny Akimov
보클린데 : 잔나 돔브로브스카야 Zhanna Dombrovskaia
벨군데 : 리아 셰브초바 Lia Shevtsova
플로스힐데 : 나덴자다 세르뒤크 Nadezhda Serdiuk
프라이아 : 타티아나 보로디나 Tatiana Borodina
에르다 : 즐라타 불리체바 Zlata Bulycheva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후 러시아에서 바그너 음악을 처음으로 연주한 사람이다. 그런데 러시아가 나치로부터 입은 피해는 유태인 못지않은 것이라 이 때문에 러시아가 떠들썩했다고 한다. 이것은 우리가 쉽게 상상할 수 있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러시아는 자본주의 국가와는 달리 클래식 공연 문화가 대중 예술로서 확고한 입지를 유지하고 있으며, 심지어 연주회장에 대한 정부의 예산 축소에 따라 입장료를 인상한다는 발표가 나자 (그래 봐야 우리 기준으로는 터무니없이 싼 가격이란다.)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라며 대중 집회가 열린 적도 있다고 한다. 사정이 이러니 게르기예프는 자칫 '인민의 적'으로 몰릴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하고 바그너에 손댄 것이 된다. 이스라엘에서 바그너를 연주한 것이 '깜짝 이벤트'에 불과했던 바렌보임과는 달리 게르기예프는 러시아 악단을 이끌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바그너 공연을 하고 있으니 참으로 대단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2005년 9월, 그는 <니벨룽의 반지> 한국 초연이자 '반지' 4부작 각각의 한국 초연을 지휘한 사람이 되었다. 우려와는 달리 사람들의 반응은 좋았다. 공연 전부터 여러 곳에서 관련 강좌가 열렸고 많은 참여가 있었다. 클래식 관련 인터넷 게시판에서는 바그너와 관련한 문답과 토론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반지'를 쉽게 해설해 놓은 ☞ 박원철씨의 웹사이트는 공연 전후로 트래픽(traffic)이 폭주했다. 무엇보다, 표가 팔렸다. 그리고 마침내 공연 날짜는 다가왔다.

연주에 대한 감상을 쓰기에 앞서 공연장의 음향 환경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은 객석은 크고 오케스트라 피트는 작아서 음량 손실이 매우 크다. 일류 오케스트라도 이것을 극복할 수는 없다. 게르기예프와 마린스키극장 오케스트라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은 이미 예상한 바와도 같다. 지난 6월 11일부터 13일까지 있었던 간사이 니키카이 오페라단-서울시향의 <탄호이저>를 보고 내가 쓴 ☞ 감상문 가운데 일부를 인용한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의 오케스트라 피트는 기대했던 것보다 너무 작았다.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보다는 가로로 조금 더 넓은 것 같았지만 큰 차이는 없어 보였다. 이 때문에 오는 9월에 게르기예프가 마린스키극장 오페라단을 이끌고 와도 압도적인 스케일의 음향을 기대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노들섬에 짓는다는 새 오페라하우스가 유일한 희망이란 말인가. 제발 전시용에 그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오케스트라의 규모가 작을 때 음량 면에서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것은 무엇보다 현일 것이다. 바그너는 <탄호이저>를 오케스트레이션할 때 대규모 현악 파트를 염두에 두었으며, 극장의 현악 주자의 수를 정규인원보다 더 많이 둘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이번 공연에서 서울시향의 현은 부족한 인원을 감안하면 나쁘지 않은 음량을 내주었다. 12일 공연에서는 현이 금관과 합창 등에 묻혀 버리는 때가 종종 있었지만 13일에는 훨씬 나았다. 이것이 단순히 연주자들이 13일에 더욱 분발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극장 1층과 3층의 음향의 요술인지 나로서는 알 수 없다. 다만, 12일 2층에서 들었던 어떤 사람도 "좀 오버하자면 다이나믹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밋밋함의 연속이었"다고 평한 것을 보면 12일보다 13일의 연주가 더 좋았다는 내 느낌이 틀리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역시 소편성으로는 표현할 수 있는 다이내믹의 폭에 한계가 있었다. 이를테면, 서곡 마디 32에서부터 비올라-제2 바이올린-첼로-제1 바이올린-콘트라바스로 연이어 점층하는 셋잇단 리듬의 크레셴도는 그 폭이 충분히 크지 못했으며, 마디 37에서 마침내 트롬본이 이른바 ☞ '순례자의 합창' 모티프를 찬가처럼 크게 부풀려 연주할 때 현과 호른 등은 바이올린의 음량에 제약을 받아 제 힘을 내지 못했다. 2막 4장의 이른바 '입당행진곡' 부분에서는 무대 위에 배치된 12대의 트럼펫이 들려주는 압도적인 소리가 큰 매력이지만, 이번 공연에서는 역시 '절제'를 위해 트럼펫 주자들이 무대 뒤편으로 숨어 버리고는 멀리서 들려오는 듯한 연출을 했다.


2막 4장, 입당행진곡 중 트럼펫 팡파르. 그림을 누르면 미디 음악이 연주됩니다.

© 1997-2002 by Fabrizio Calzaretti.



이번 공연 팜플렛에 나타난 오케스트라 파트별 단원 수와 <라인의 황금> 악보에 명시된 연주자 수를 비교해 보면 문제가 좀 더 명확해진다. 관악기와 타악기는 특수 악기까지 생각하면 필요한 만큼 있는 것 같지만, 현악기 주자들의 수를 보면 제1 바이올린 1명과 제2 바이올린 6명, 비올라 3명, 첼로 3명, 콘트라바스 1명, 모두 14명의 연주자가 부족하다. 공간이 충분하다면 객원 주자를 쓸 수도 있겠지만, 그 좁은 공간에 악보에 지시된 대로 108명(호른 더블링과 프롬프터 등을 고려하면 110명 이상)이 들어갈 수 있을까? 1층에서는 오케스트라 피트를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3층에서 연주자 수를 세어 본 사람의 말에 따르면 80명이 채 안 되는 인원이 피트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고 한다. 오케스트라 피트의 크기 말고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의 객석 수가 바이로이트 축제극장 등의 유수 공연장에 비해 1.5~2배 정도 많다는 점도 문제이겠다. 한편, 객석의 규모와도 상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공연장의 주파수별 소리 전달 특성이 다른 것 같다. 즉 저음이 많이 깎여서 양감이 부족하게 느껴진다. 이런 사정을 모두 감안하면 이번 공연에서 현 소리는 꽤 큰 편이었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 더. 만약 숄티의 녹음을 기준으로 이번 공연에서의 음량에 대해 불만을 토로한다면 당신은 뭘 모르는 사람이다. 그런 과장된 소리는 실제 공연장에서는 들을 수 없다. 기준은 바이로이트 실황으로 해야 설득력이 있다.

어쨌거나 현의 절대적인 음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최대한 다이내믹을 살리기 위해서는 밸런스를 무시하고 금관과 타악기를 내세워 뿜빰거리던가, 또는 다이내믹을 희생시켜 정교하지만 밋밋한 연주를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게르기예프는 절충안을 택했다. 화성적으로 풍부한 울림이 필요한 곳에서는 다이내믹보다는 밸런스를 택했고, 강력한 다이내믹이 필요한 곳에서는 과감히 밸런스를 포기했다. 음악적 맥락에 따라 최적의 선택을 할 수만 있다면 이것이 최선의 책략일 것인데, 공연장의 음향 환경에 적응할 기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을 게르기예프와 단원들에게는 철저하게 임기응변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임기응변이 너무나 놀라운 것이었다. 게르기예프는 진정한 거장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라인의 황금>은 현의 비중이 매우 큰 작품이라 어쩔 수 없는 결점이 꽤 많았다. 전주곡에서는 점층 효과에 의한 유장한 맛이 부족하고 대신 어수선한 느낌을 주었다. 이후로도 1장 내내 이어지는 현에 의한 물살의 표현이나 기타 현의 역할이 두드러지는 곳에서 여지없이 음량의 한계를 드러냈다. 거인들이 등장할 때에는, 다이내믹을 살리는 것이 최대의 목표가 되어야 했기에 어쩔 수 없었겠지만, 베이스 트럼펫과 3대의 트롬본, 콘트라바스 트롬본의 4도 도약(편의상 '안티폰 antiphon'이라고 부르자.)이 주선율로부터 크게 돌출되어 선율 윤곽을 해쳤다. 현 소리는 작은 데다 '안티폰'에 대항할 금관은 콘트라바스 튜바 하나뿐이라 차라리 팀파니가 주선율마저 압도해 버리는 형국이었다.



'거인' 모티프. © 1997-2002 by Fabrizio Calzaretti.

그림 파일을 누르면 음악이 연주됩니다. 음악 출처: 박원철 홈페이지 © Decca


사소한 실수라고 보기에는 음악의 맥락상 비중이 만만치 않았던 곳도 있었다. 2장 첫 마디에서 테너 튜바의 음정 불안이 그랬고, 파졸트가 "당신의 창이 보호를 한다는 약속의 엄숙함이 모두 장난이란 말이오? Die dein Speer birgt, sind sie dir Spiel, des berat'nen Bundes Runen?  (한글 번역은 엄선애 교수의 것을 참고했음)" 할 때 "Speer(창)"와 동시에 나오는 ☞ '창'의 모티프에서 제1, 제3 호른과 제2, 제4 호른이 교차하는 "Spiel"과 "des" 사이(마디 넷째 박)의 음정 불안이 그랬다.


"Die dein Speer birgt, sind sie dir Spiel, des berat'nen Bundes Runen?"

© 1899 by B. Schott's Söhne, Mayence. 출처: http://www.dlib.indiana.edu


가수들의 수준은 기대 이상이었다. 솔직히 '러시아 사람이 독일 음악을 제대로 이해할까?' 하는 생각을 어느 정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가수들에 만족할 수 있었다. 물론 음반이 귀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불만스러운 부분도 많았겠지만, 실제 공연장에서 음반 수준의 연주를 바라는 것은 잘못이다. 전설의 명가수들은 이제는 존재하지 않고, 스튜디오 녹음 같은 최상의 컨디션은 실제 공연장에서는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보탄 역의 예프게니 니키틴은 단단한 목소리를 가진 젊은 신의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한스 호터의 보탄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영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꽤 잘했다고 할 수 있다. 굳이 다른 가수와 비교하자면 토마스 스튜어트나 ☞사무엘 윤과 비슷하다고 하겠는데, 토마스 스튜어트는 그렇다 치고 사무엘 윤이 예프게니 니키틴보다 한 수 위라고 말한다면 한국인을 너무 편애하는 것일까? 니키틴의 노래를 들으면서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의 네덜란드인의 아리아 가운데 "죽은 자들이 모두 일어날 때, 나는 소멸하리라. Wann alle Toten auferstehn, dann werde ich in Nichts vergehn." 하는 대목이 생각났는데, 프로필을 보니 실제로 네덜란드인 역을 맡은 적이 있단다.

알베리히 역의 예뎀 우메로프는 사악한 맛이 부족해서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는데, 개인적으로는 좋게 들었고 사악한 연기도 꽤 열심히 했다고 생각한다. 이번 공연에서 군터 역으로도 나왔다. <로엔그린>의 텔라문트 백작과 전령(팜플렛에는 '헤럴드의 왕'이라고 되어 있다. '왕의 전령(Der Heerrufer des Königs; The King's Herald)'의 오역으로 판단된다.)을 맡은 적이 있단다.

로게 역의 콘스탄틴 플루즈니코프는 실수가 좀 있었지만, 굉장한 열연을 했던 것이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프로필을 보니 로엔그린 역을 맡은 적이 있단다. 어릿광대 같은 연기를 하던 사람이 로엔그린의 나레이션(In fernem Land)을 부르는 것은 상상이 잘 안 된다. 성배의 가호를 받는 성기사가 아니라 촐싹대는 바람둥이가 아닐지?

파졸트 역의 바딤 크라베츠는 사랑을 갈구하는 거인을 매우 잘 표현했다. 그 빛나는 가창은 이날 최고의 가수라 부를 만했고, 마르티 탈벨라를 연상시킨다는 말도 나왔다. 파졸트 말고는 바그너 경력이 없다는데, 하겐 쪽으로 개발해 봐도 괜찮지 싶다. 파프너 역의 게네디 베주벤코프는 저음을 강조하여 파졸트와 음색의 구분을 이룬 것이 마음에 들었다.

도너 역의 에드워드 장(고려의 후예라고 하며 러시아식 발음은 '짱가'에 가깝다고 한다.)은 유명한 '헤다! 헤다! 헤도!' 대목을 잘해야 박수를 많이 받을 텐데, 아쉽게도 천둥과 번개의 신답지 않게 패기가 부족했다. 연출상의 결정적인 실수도 있었는데, 망치를 가지고 나오지 않은 것이다. 창이 보탄을 상징한다면 망치는 도너를 상징한다. 북유럽 신화에서 도너(토르)의 망치 '묠니르(Mjöllnir; '묘르닐'이라고도 하는데, 일본식 발음이 잘못 전해진 것으로 판단된다. 비슷한 예로 '궁니르'를 '궁그닐'이라고도 한다. 일본식 발음으로 고치면 각각 '묘루니루,' '궁구니루'가 된다.)'는 전장에서 수많은 거인족을 물리친 궁극의 병기로, <니벨룽의 반지>에서는 '반지'나 보탄(오딘)의 창 '궁니르(Gunnir)'만한 비중은 없지만 알고 보면 대단한 아이템이라 할 수 있다. 숄티 판에서는 일부러 망치(천둥) 소리를 따로 집어넣기도 했는데, 이날 공연에서는 악보에 표시된 팀파니 소리만으로 해결했고, 그마저 망치의 위력을 보여줄 만큼 음량이 크지는 않았다.

프리카 역의 스베틀라나 볼코바는 극중 비중이 그렇게 높지는 않았는데도 매우 인상깊었다. <발퀴레> 때에는 더욱 강력한 모습을 기대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르지팔>의 꽃처녀 역을 맡은 적이 있단다. 미메 역의 니콜라이 가시예프도 조연이라는 사실이 안타까울 만큼 훌륭했다. 로게를 맡은 적도 있단다. 프로 역의 예프게니 아키모프는 조연으로는 괜찮았지만 주연급은 아니었다. 이 사람이 <발퀴레>의 지크문트라는 잘못된 정보를 접하고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에서 키잡이 역을 맡은 적이 있단다. 프라이아 역의 타티아나 보로디나는 <로엔그린>에서 엘자를 맡은 적이 있단다. 에르다 역의 즐라타 불리체바는 부드럽고 깔끔한 음색이 영락없는 에르다였다. <지크프리트>의 에르다이기도 하다.

라인 처녀들의 합창에서는 화음의 밸런스가 영 안 맞았다. 제일 윗 성부를 맡은 보클린데는 목소리가 너무 컸고, 가운데 성부를 맡은 벨군데는 목소리가 너무 작았다. 보클린데 역의 잔나 돔브로브스카야는 <파르지팔>에서 꽃처녀를 맡은 적이 있단다. 벨군데 역의 리아 셰브초바는 이번 <발퀴레>에서 게르힐데를 맡았고, <파르지팔>의 꽃처녀와 <발퀴레>의 브륀힐데를 한 적도 있단다. (어째 좀 이상하다. 브륀힐데라니. 저 작은 목소리로? 팜플렛의 오류가 아닐까.) 플로스힐데 역의 나덴자다 세르뒤크는 <발퀴레>의 발트라우테이기도 하고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 브랑게네를 맡은 적도 있단다.

니벨룽족은 남자 어른이 여성 또는 어린이와 섞여 있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데, 이날 공연에서는 모두 어린이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이것은 시각적으로는 좋지만 알베리히의 위협에 따른 비명 소리가 이상해지는 단점이 있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김리의 목소리를 떠올려 보면 무슨 말인지 이해될 것이다.

연출 문제는 나에게는 워낙 관심 밖이라 별로 할 말은 없다. 대신 소박한 인상만 기록으로 남겨 두기로 한다. 무대 장식 등 겉으로 보이는 부분을 제외하면 대본에 나타난 지시에 충실한 고전적인 연출이었는데, 연출을 단지 음악을 보조하는 역할 정도로만 여기는 나로서는 이것이 썩 마음에 들었다. 흔히 그렇듯이 연출이 음악의 우위에 자리 잡아 음악 해석을 방해하는 것보다 이게 훨씬 낫지 않은가? 무대 세트는 여러 신화를 짜깁기했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그런 점에서 <신세기 에반게리온>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저 말 많았던 석상이 더더욱 그렇다. 라인 처녀들은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옷차림이 얌전해서 조금은 실망했다. 대신 푸른 빛을 내는 머리카락을 뒤집어 쓴 무용수들의 옷차림이 야했다. 푸른 빛 머리는 마치 해초(海草) 같았는데, 참 마음에 드는 장식이었다. 용을 표현한 아이디어는 대체로 호평을 받은 것 같은데, 나는 어째 부채춤이 생각나서 우습기만 했다. 거대한 '라인의 황금' 속에 프라이아가 들어간 것을 보고는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이 생각났다. 알베리히의 의상은 <날아라 슈퍼보드>에 나오는 사오정을 연상시켜서 좀 우습다고 생각했다.

© KBS 출처: http://www.kbs.co.kr/2tv/superboard/character.shtml


뒷얘기. 공연 시작 직전에 목발을 짚은 금발의 백인 여성과 세종문화회관 직원의 말다툼이 잠시 주의를 끌었는데, 다리 불편을 호소하면서 1층 C열 오른쪽 통로 쪽 빈자리에 앉으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그 여자가 R 등급 티켓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 결국 억지를 부려서 내 자리와 통로를 사이에 둔 자리에 앉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바그너 공연을 찾아 전 세계를 돌아다니기로 유명한 사람이란다. 이름이나 기타 신상 정보가 전혀 알려지지 않은 신비 기인이라고 하니 그런 줄 알았으면 말이라도 걸어볼 걸 그랬다.

2005년 10월 3일 씀.
2006년 1월 10일 고침.
 

정보공유라이선스

김원철. 2005.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2009년 8월 7일 금요일

악극(Musikdrama)

악극(Musikdrama)이란 ☞《라인의 황금》 이후 ☞바그너 작품을 그 이전 작품이나 다른 작곡가가 쓴 오페라와 구분해 쓰는 말이며[1], 때때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쓴 몇몇 오페라를 아울러 일컫기도 한다. ☞바그너는 극(drama)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내면과 외면이 있다고 했으며 대사(노래 가사)가 외면을 나타내는 동안 관현악으로 내면을 나타내고자 했다. 이에 따라 성악이 아닌 관현악이 '음악'을 이끌어 나가게 되는데, 김문환은 "성악 부분은 반주를 동반한 아리아가 아니라, ☞다성음악적 구조의 일부를 이루는 것이다."라고 했다. (바그너를 인용한 말인지 김문환 생각인지 확인 필요.) 그런가 하면 김원철은 ☞바그너 '음악'이 '악극' 또는 ☞총체예술이라는 ☞'폴리포니'(비유적인 뜻으로)를 이루는 '성부'(voice)가 된다고 생각한다.

바그너가 「오페라와 드라마」에서 극, 즉 드라마는 표현의 목적이고, 음악은 표현의 매체라고 한 것도 이와 연관된다. 이러한 도발적 진술은 음악극에서 대본은 기본요소들 중의 하나에 불과한 것이지 전체 내용이 아니라는 바그너의 기본전제로부터 이해되지 않으면 음악이 대본에 종속되어야 한다라는 주장으로만 생각되기 쉽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서 극은 단순한 대본을 의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바그너는 음악만이 오래된 기원들을 회상할 만한 힘을 가졌고, 따라서 그것은 현대의 평범한 사회에서 왜곡되고 또한 거의 인지하기 힘든 원초적인 인간성의 회복에서 결정적인 구실을 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 김문환, 『총체예술의 원류』 (서울: 느티나무, 1989). 229쪽.

▶ "Musikdrama"라는 말은 누가 처음으로 썼나?

1848년 이전에 저널리스트였던 테오도르 문트(Theodor Mundt)가 <오페라, 드라마, 멜로드라마 사이에 얽힌 관계 및 극장과 얽힌 관계에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크리티셰 벨더』(Kritische Wälder) (1833)라는 모음집에 발표한 논문에서 쓴 말이다.[2] ☞바그너는 "Musikdrama"라는 말을 싫어했는데, 왜냐면 음악은 예술이며 극(drama)은 '예술적 행위 artistic act'인데 "Musikdrama"라는 말은 서로 다른 두 가지를 뒤섞어버리려 하기 때문이다. ☞바그너는 나중에 "musikalisches Drama"라는 말을 쓰기도 했으나 "Musikdrama"라는 말 때문에 오염되었다고 했다.[1]

▶ '무대축전극'과 '무대신성제전극'

☞바그너는 ☞《니벨룽의 반지》를 '무대축전극'(Bühnenfestspiel)이라 했고, ☞《파르지팔》을 '무대신성제전극'(Bühnenweihfestspiel)이라 했으며,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극'(Handlung)이라 했다. 그런가 하면 ☞《트리스탄과 이졸데》와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어》를 그냥 '오페라'라고도 했다.

또 '악극'이라는 말 대신 '미래의 드라마,' '미래의 완성된 예술작품'(das vollendete Kunstwerk der Zukunft), '보편화한(universal) 드라마'(das allgemeinsame Drama), ☞총체예술(Gesamtkunstwerk)이라는 말을 쓰기도 했다.

▶ '악극'과 '음악극'

☞바그너가 "Musikdrama"라는 말을 싫어한 까닭을 헤아리면, 김원철은 '음악극'보다는 '악극'이 주는 말맛이 더 극(drama) 쪽에 쏠려 있어 알맞다고 생각한다.

[1] Barry Millington, "Music Drama," The New Grove Dictionary of Music and Musicians, 2nd Edition.
[2] Carl Dahlhaus, 『바그너의 미학』 (Edition Musica Bayreuth, 1972). 재인용: 김문환, 『총체예술의 원류』(서울: 느티나무, 1989). 297쪽.

2009년 6월 29일 월요일

바그너를 제법 들어보았으나 재미가 없다고 느끼는 분들께

아래 글 보고 씁니다:

http://blog.goclassic.co.kr/oppera/1246240003

이미 바그너 음반을 제법 들어보신 듯하니 맞춤 도움말 하나만 드릴게요.

이탈리아 오페라 듣듯이 선율을 따라가려고 하지 마시고 가사와 음악이 어떻게 맞물려 돌아가는지를 살펴보세요. 그러려면 반드시 독일어 텍스트를 실시간으로 따라가셔야 합니다. 독일어를 못하더라도 독한 대본을 보면서 독일어 음운을 따라가고 한글 해석은 곁눈질로 보셔야 합니다. 그리고 이때 귀로는 반드시 '음악'을 들으셔야 합니다. 음악과 가사가 어우러지며 몰랐던 사실을 문득 깨닫고 전율해본 경험을 하고 나면 그때부터는 환자의 길로 돌아서게 되지요.

또 처음부터 '반지' 같은 후기 작품을 들으려고 하지 마시고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이나 <로엔그린> 같은 초기-중기 작품을 먼저 들어보세요.

그래도 재미가 없으면 그냥 내 취향이 아닌가 보다 하시고 나중을 기약하세요. 바그너 말고도 세상에는 재미난 음악 참 많습니다.

바그너 대본 자료실
http://wagnerian.textcube.com/entry/libretti

바그너 길라잡이
http://wagnerian.textcube.com/entry/wagner

2009년 3월 20일 금요일

트리스탄과 이졸데 마지막 대사 번역 김원철 판본

In dem wogenden Schwall,
in dem tönenden Schall,
in des Welt-Atems
wehendem All ---
ertrinken,
versinken ---
unbewußt ---
höchste Lust!

파도치는 물결 속에,
소리치는 울림 속에,
세상 숨결 불어오는
우주 속에
빠져들어,
가라앉아
나를 잊으리라
더없는 기쁨이여!

2009년 3월 18일 수요일

바그너와 프리메이슨

프리메이슨 공인 회원 명단에 리스트(Liszt)가 있어서 바그너도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받았으리라 생각했는데, 구체적인 근거를 찾았다.

리스트는 1841년 프랑크푸르트 "Zur Einigkeit" 지부에 가입, 1870년 부다페스트 "Zur Einigkeit" 지부에서 3도 회원(Master)이 되었다.
바그너는 프리메이슨 입회 및 연금술과 관련한 생각을 일부러 <파르지팔>에 담았던 것으로 추측되며, 1872년 베를린에서 프리메이슨 가입 신청을 했으나 은근한 압력(discreet pressure)을 받고 포기했다.
- Cecil Hill/Roger J.V. Cotte, "Masonic music.", NGD2

김원철 주: 연금술은 현자의 돌(elixir) 제작이 최종 목표였으며, 성배 및 프리메이슨과 깊은 관련이 있었다고 한다.

참고:
http://blog.naver.com/patomusic/120007969434
http://blog.naver.com/patomusic/120007970578

2008년 9월 17일 수요일

쿤드리, 릴리쓰, 성배, 그리고 템플기사단

아래 글을 읽고 씀:
http://blog.goclassic.co.kr/conrad30/1221630807

잘 읽었습니다. 제 의견을 몇 가지 말씀드릴게요.

1. 쿤드리를 막달라 마리아에 대입하니 좀 어색하다고 느낍니다. 구르네만츠를 세례 요한에 비유하면 더 어색해집니다. 클링조르는 쿤드리를 헤로디아스라 했거든요.

클링조르
오라! 오라! 내게로!
네 주인이 부르노라 이름 없는 이여,
태초의 마녀여, 지옥의 장미여!
너는 헤로디아스였고, 또 무엇이었느냐?
거기서는 군드리기아스였고, 여기서는 쿤드리이니!
오라, 이리 오라, 쿤드리!
네 주인이 부르노라. 명을 받들라!
(번역: 김원철)

제가 생각하는 쿤드리의 정체는 릴리쓰(Lilith), 태초의 악이자 아담과 이브를 꾀어낸 뱀입니다.
참고:
http://en.wikipedia.org/wiki/Lilith

2. 바그너는 성배(San(ct) Gral)가 '왕의 피'(Sang Réal)에서 온 말이라 했습니다. 이 점에서는 <다빈치 코드>와 같습니다. 다만, 바그너가 '왕의 피'를 메로빙거 왕조 혈통이라 생각했다는 증거는 못 봤습니다. 저는 바그너가 '왕의 피'를 상징적인 뜻에서 이스라엘 왕, 즉 예수 그리스도가 흘린 피라 보았다고 생각합니다. <파르지팔>에서는 암포르타스가 흘린 피이기도 하지요.
참고:
http://wagnerian.textcube.com/137

3. <파르지팔>은 볼프람 폰 에셴바흐의 <파르치팔>이 중요한 모티프가 되었지요. 그레이엄 핸콕에 따르면 볼프람은 템플기사단원이었습니다. 템플기사단은 성전으로 가는 길목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십자군 전쟁에 참전했는데, 그때 단원 수는 명분과는 어울리지 않게도 9명뿐이었고, 실제로는 솔로몬 성전 터에 천막을 치고 10년 넘게 발굴/탐사 작업을 벌였다고 합니다. 거기서 뭘 찾아내거나 배웠는지는 알 수 없지만 복귀하고 나서 갑자기 왕이나 교황과 대등한 돈과 권력을 거머쥐었습니다. 그리고 볼프람이 <파르치팔>을 쓰기 시작한 때는 십자군이 살라딘 군대에 패하여 예루살렘 왕국이 함락된 직후이며, <파르치팔>에 묘사된 배경은 아서 왕 시대가 아닌 십자군 원정 당시와 맞아떨어진다고 합니다. 이와 관련해 그레이엄 핸콕은 <파르치팔>에 묘사된 지리는 성궤가 숨겨진 위치와 관련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바그너는 <파르지팔>에 나오는 성배기사단이 템플기사단과 복장이 비슷하다고 했습니다.

템플기사단원이었던 볼프람은 성배가 돌(石)이라 했고, 요즘에는 돌과 관련한 비전 지식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템플기사단이 이단으로 몰려 숙청당한 다음 생존자가 영국으로 도망가 새로 만든 비밀 결사가 '자유 석공 조합' 즉 프리메이슨이라고 하지요. 프리메이슨이 템플기사단을 이었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지만 거의 공공연한 비밀인 것 같더군요. 바그너가 프리메이슨 회원이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바그너의 장인이었던 리스트는 공인된 프리메이슨 회원이었습니다. (나중에 붙임: 바그너는 프리메이슨 가입신청했다가 사실상 거부당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쓴 게 <파르지팔>이지요.)

참고:
http://blog.naver.com/patomusic/120007969434
http://blog.naver.com/patomusic/120007970578

2008년 9월 10일 수요일

바그너 비평판 악보 전집의 액기스

바그너 비평판 악보 전집의 액기스 | 자유 광장

2006.09.21 21:42

드레스덴 공대 도서관에 가서 바그너 비평판 악보 전집 중 비평보고서 부분을 복사해왔습니다.
악보가 원래 A3 사이즈인데 A4 사이즈로 축소 복사했습니다. 복사기가 참 좋더군요.
지크프리트는 아직 출판이 안 된 것 같고, 리엔치는 양이 너무 많아서 서문만 복사했는데도
모두 합하니 책 한 권이 되었습니다.


트리스탄과 이졸데 비평보고서 부분


부분 확대


원본!
A3 사이즈임을 생각하면 책 두께가 결코 얇지 않다는 것이 느껴지나요?
괴물같은 두께를 보이는 것은 파리 판 탄호이저 1막입니다. 빈 판이 같이 들어있어서 저렇습니다.

우리가 흔히 '파리 판'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은 '빈 판'입니다.
1861년 파리 초연 때의 미출판 악보를 바탕으로
1875년 빈 공연 때 바그너의 감수를 거쳐 1888년 출판된 것이죠.
흔히 말하는 '드레스덴 판'도 사실은 1860년 Meser에서 출판된 것이라 합니다.
그러니까 탄호이저는 판본이 네 개인 것이죠. 1845년, 1860년, 1861년, 1888년.


제본된 것을 보고 기뻐서 주절거려 봤습니다.
나중에 시간이 나면 자세한 내용과 좌충우돌 모험담을 올릴게요.

2008년 7월 20일 일요일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어>는 왜 오페라로 회귀했는가

- SiteLink #1 : http://cafe340.daum.net/_c21_/bbs_read?grpid=wQe&mgrpid=&fldid=F6v&page=1&prev_page=0&firstbbsdepth=&lastbbsdepth=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contentval=000Lgzzzzzzzzzzzzzzzzzzzzzzzzz&datanum=1344

다음 카페 <바그네리안>에 갔다가 옛날에 제가 쓴 글이 보여서 퍼왔습니다. 조서연님과 주고받은 글인데 함부로 퍼오기 뭣해서 제가 쓴 글만 발췌했습니다.

*

Re:알려 주세요!! <마이스터징거>는 왜 오페라로 회귀했는가 아시는 분

   * 글쓴이: 김원철
   *
   * 조회수 : 14
   *
   * 07.07.04 09:24

http://cafe.daum.net/saintchwajin/F6v/1345주소 복사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1) 바그너의 후기 작품, 특히 트리스탄 이후의 음악 어법(특히 화성 진행)은 다크 포스가 너무 강하므로 희극에 맞지 않습니다. 마이스터징어에서는 이것을 '순화'시킬 필요까 있었을 겁니다.

2) 마이스터징어는 바그너의 예술관을 피력한 작품이라 할 수 있죠. 메시지의 효과적인 전달을 위해서는 작품이 난해해서는 안 됩니다.

3) 이 작품에 나타난 예술관의 요체는 '온고지신'이랄 수 있겠죠. 발터가 성공하기 위해서 작스라는 이름의 전통을 받아들여야만 했던 것처럼 <마이스터징어> 자체도 전통에 어느 정도 무게를 두어야 했을 겁니다. 비교적 덜 급진적인 화성을 사용한 것이나 바(bar) 형식 등의 전통적인 악식(musical form)을 사용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을 테고요.

Re:Re:Re:알려 주세요!! <마이스터징거>는 왜 오페라로 회귀했는가 아시는 분

   * 글쓴이: 김원철
   *
   * 조회수 : 14
   *
   * 07.07.05 02:01

http://cafe.daum.net/saintchwajin/F6v/1347주소 복사

그 말씀도 일리가 있네요. 방어를 해보자면,

2. 표리부동에 대해 말씀하신다면 바그너야말로 표리부동한 인간이 아닙니까. 으허허...^^;;;

작스는 '고(故)'를 대표하고 발터는 '신(新)'을 대표하니 작스는 물러나는 게 맞지요. 그것을 바그너의 사생활과 직접 연결시키면 당연히 모순이 됩니다. ^^;

3. 오페라는 근본을 따지자면 이탈리아가 아닌 그리스의 것이고, 따라서 바그너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곳과 맞닿아 있습니다. 바그너가 비판하고자 했던 것은 스타 가수의 요구에 지나치게 충성하는 '이탈리아' 오페라였죠. 또 마이어베어 등을 비난한 것은 사실은 그보다 마이어베어 등이 자신의 출세길을 막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정설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따지자면 바그너가 마이어베어에게 영향 받은 부분도 무시 못하죠.

<마이스터징어>는 이탈리아 오페라와는 많이 다릅니다. 닮은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그리스 비극의 재현으로 바그너 자신도 납득할 만한 부분이었다고 생각되고요.

징슈필은 연극 중심적인 사고를 담고 있으므로 총체예술의 이념과 맞지 않습니다. "바그너는 음악만이 오래된 기원들을 회상할 만한 힘을 가졌고, 따라서 그것은 현대의 평범한 사회에서 왜곡되고 또한 거의 인지하기 힘든 원초적인 인간성의 회복에서 결정적인 구실을 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김문환)

독일적인 요소라면 무엇보다 베토벤의 유산(특히 모티프를 다루는 방식)을 계승하는 것이 핵심이겠고, <마이스터징어>는 그 점에서 충분히 독일적(베토벤적)입니다.

그리고 음악 형식에서 독일적인 요소를 찾자면 바(Bar) 형식이 전체 악곡을 지배한다는 점을 들 수 있겠죠. 바 형식은 Gesang-Gesang-Abgesang 꼴의 음악 형식으로 1막에서 코트너가 노래의 규칙을 설명하는 대목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 대목 자체를 비롯해서 작품의 주요 장면이 바 형식으로 되어 있고, 전체 막 구성도 거대한 바 형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3막은 1, 2막에 대한 거대한 Abgesang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 형식은 엄밀히 말하면 독일 고유의 음악 유산이 아니고 중세 남부 프랑스의 투르바두르의 음악 등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교가 중국만의 문화유산이 아닌 것처럼 바 형식 또한 독일의 민네징어와 마이스터징어의 중요한 음악 유산이라 할 수 있습니다.

Re:Re:Re:Re:Re:알려 주세요!! <마이스터징거>는 왜 오페라로 회귀했는가 아시는 분

   * 글쓴이: 김원철
   *
   * 조회수 : 11
   *
   * 07.07.05 23:36

http://cafe.daum.net/saintchwajin/F6v/1349주소 복사

저는 한자에 대해서는 무식합니다만, 국어사전에 "溫故知新"이라고 나오는군요.

http://www.korean.go.kr/06_new/dic/search.jsp?sourceid=Mozilla-search&att1=%EC%98%A8%EA%B3%A0%EC%A7%80%EC%8B%A0

모르기는 해도 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지피지기 백전불태'가 '백전불패'로 바뀐 것처럼 '온고지신'도 좀 더 쉬운 한자로 바뀐 게 아닐까 싶네요.

오페라 얘기는 그러니까, 애초에 오페라는 그리스 비극을 살리자는 의도에서 출발했으나 스타 시스템에 영합하는 등의 폐단이 나타났고, 바그너는 그것을 비판했던 것이죠.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바로잡으면 되지 오페라라는 장르 자체를 부정할 필요는 없는 겁니다.

마이어베어 얘기는, 으음, 저도 정확한 출처가 기억 안 나네요. 쿨럭..;; 하여간, 말씀하신 <음악에 있어서의 유대성>이라는 글("음악 속의 유대성" 정도가 어법에 맞습니다. '있어서의' 같은 말은 일본어의 흔적이라 좋지 않아요. ^^)이 바그너의 인종적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멘델스존과 마이어베어 등을 끌어내리려는 목적에서 쓴 것이라는 얘기였습니다. 마이어베어가 바그너의 출세길을 막는다는 말이 마이어베어가 악의적으로 바그너를 방해했다는 말이 아니라, 마이어베어가 그보다 앞서 성공한 음악가이기 때문에 그의 위치 자체가 바그너의 성공을 방해하는 걸림돌이 되었다는 것이죠. 바그너의 됨됨이를 생각할 때 실제로 바그너가 그렇게 생각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고요. 인종주의 얘기 좀 더 하자면, 당시 바그너 주변에 유대인 친구가 많았다고 하죠. <파르지팔>을 초연한 지휘자도 유대인이었고요.

탄호이저 얘기는 왜 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탄호이저>의 개작은 바그너가 성공을 위해서 현실적인 요구와 타협하기도 했다는 점을 알 수 있는 또 다른 사례가 되겠군요. (뭐 결과적으로는 바그너의 후기 음악 양식을 적용한 측면이 더 강했지만요.) <마이스터징어>에서도 마찬가지로 반대 세력과 부동층(?)을 설득하려면 베르디 등의 기법을 일부 수용할 필요도 있었지 않았을까 싶네요.

김문환 선생님의 글은 229쪽의 글을 인용했습니다. 좀 더 인용해 볼까요?

"바그너가 「오페라와 드라마」에서 극, 즉 드라마는 표현의 목적이고, 음악은 표현의 매체라고 한 것도 이와 연관된다. 이러한 도발적 진술은 음악극에서 대본은 기본요소들 중의 하나에 불과한 것이지 전체 내용이 아니라는 바그너의 기본전제로부터 이해되지 않으면 음악이 대본에 종속되어야 한다라는 주장으로만 생각되기 쉽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서 극은 단순한 대본을 의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바그너는 음악만이 오래된 기원들을 회상할 만한 힘을 가졌고, 따라서 그것은 현대의 평범한 사회에서 왜곡되고 또한 거의 인지하기 힘든 원초적인 인간성의 회복에서 결정적인 구실을 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Re:김원철님, 혹시 달하우스의 <바그너의 음악미학>에서 한 수 가르쳐줄 수 없을까요

   * 글쓴이: 김원철
   *
   * 조회수 : 19
   *
   * 07.07.07 20:17

http://cafe.daum.net/saintchwajin/F6v/1351주소 복사

마이스터징어의 가창법에 관한 문헌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물결 모양은 비브라토를 표시한 것인가요? ^^; 벨칸토 창법은 18세기에 나온 것이고, 특히 강력한 성량과 진폭이 큰 비브라토는 19세기에나 나온 것이니, 모르기는 해도 그 이전에는 비브라토가 그리 흔히 쓰이지는 않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실제로 한스 작스를 비롯한 마이스터징어의 작품이나 다른 여러 고음악 녹음을 들어보면 비브라토를 잘 쓰지 않고 그냥 맑고 담백한 목소리로 노래하더군요. 벨칸토 창법에서는 마스케라(Maschera)라고 해서 일종의 비강 공명법을 쓰는데, 16세기 이전의 음악에서 마스케라를 쓰는 경우는 못 본 것 같습니다.

달 하우스의 바그너 분석 문헌이 있으면 저도 읽고 싶네요. ^^; 우리나라는 특히 문헌 쪽으로는 완전히 바그너 불모지인데다, 바그너 분석 하면 흔히 볼조겐이나 쿡 등의 라이트모티프 분석 정도로 끝나기 때문에 바그너 분석 문헌은 거의 못 봤어요. 조서연님 일본어 실력이 되신다면 일본어 문헌 좀 소개해 주세요. ^^;

제가 예전에 학교 도서관에서 바그너 관련 도서를 꼼꼼히 뒤져 봤는데, 바그너의 음악을 분석한 책이 딱 하나 나오더군요. (바그너의 생애나 미학 등을 소개한 책은 꽤 있었습니다.) 달하우스의 분석은 안 나오지만, 대신 달하우스의 바그너 분석에 관한 견해가 소개되었더군요. 그걸 네 줄로 요약한 게 아래 링크입니다. ㅡ,.ㅡ

http://wagnerian.new21.org/wagner/tristan/2_1_retornello.html

그러니까 모티프 이름 붙이기 식 분석은 음악 외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화성이나 리듬 등의 전체적인 짜임새를 따지는 데에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으므로 바그너 학자가 아닌 '음악학자'의 시각으로는 쓸데없는 짓입니다.

하 인리히 셴커의 분석 이론은 오늘날 음악 분석에 매우 널리 사용되는데, 바그너 분석에도 종종 사용되더군요. 알프레드 로렌츠는 바그너의 작품을 그래프 등을 사용해 분석했는데, 추상적인 분석법이라는 점에서 셴커식 분석과 통합니다. 자세한 얘기를 하자면 음악대학의 일 년짜리 강의로도 부족한데다 사실은 저도 잘 모르므로 무책임하지만 링크 몇 개만 달아놓고 도망갑니다. ^^

http://blog.daum.net/ssuayah/4316335
http://blog.daum.net/flutegirl/4396841
http://en.wikipedia.org/wiki/Schenkerian_analysis
http://www.schenkerguide.com/

마 지막으로 그로브 사전에 소개된 <마이스터징어> 관련 논문을 소개할게요. 이 가운데 하나라도 구할 수 있으면 성공한 겁니다. 저작권이 지난 논문은 인터넷에 공개되어 있을지도 모르지만 전부 독일어이므로 좌절. 그냥 그림의 떡으로 소개해 드리는 거예요. ㅡ,.ㅡa

Wagner, (1): Richard Wagner, Bibliography, analysis and criticism: individual studies, Die Meistersinger von Nürnberg
n: analysis and criticism: individual studies
Die Meistersinger von Nürnberg
J. Tiersot Etude sur les Maîtres-chanteurs de Nuremberg de Richard Wagner (Paris, 1899)
R. Sternfeld ‘Hans Sachsens Schusterlied’, Die Musik, i (1901–2), 1869–75
K. Grunsky ‘Reim und musikalische Form in den Meistersingern’, Richard Wagner-Jb, v (1913), 138–87
O. Strobel ‘“Morgenlich leuchtend in rosigem Schein”: wie Walthers “Preislied” entstand’, Bayreuther Festspielführer 1933, 148–60
R.W. Stock Richard Wagner und die Stadt der Meistersinger (Nuremberg and Berlin, 1938)
R.M. Rayner Wagner and ‘Die Meistersinger’ (London, 1940)
W.E. McDonald ‘Words, Music, and Dramatic Development in “Die Meistersinger”’, 19CM, i (1977–8), 246–60
R. Brinkmann ‘Über das Kern- und Schlusswort der “Meistersinger”’, Bayerische Staatsoper: Meistersinger Programmheft zur Neuinszenierung (Munich, 1979), 82–91
E. Voss ‘Gedanken über “Meistersinger”-Dokumente’, Bayerische Staatsoper: Meistersinger Programmheft zur Neuinszenierung (Munich, 1979), 76–81
A. Csampai and D. Holland, eds. Rororo Opernbücher: Die Meistersinger von Nürnberg (Reinbek bei Hamburg, 1981) [incl. E. Voss: ‘Wagners “Meistersinger” als Oper des deutschen Bürgertums’, 9–31; Eng. trans., Wagner, xi (1990), 39–62]
R. Turner ‘“Die Meistersinger von Nürnberg”: the Conceptual Growth of an Opera’, Wagner, iii (1982), 2–16
J. Wildgruber ‘Das Geheimnis der “Barform” in R. Wagners Die Meistersinger von Nürnberg: Plädoyer für eine neue Art der Formbetrachtung’, Festschrift Heinz Becker, ed. J. Schläder and R. Quandt (Laaber, 1982), 205–13
N. John, ed. The Mastersingers of Nuremberg (London, 1983) [ENO opera guide]
E. Voss ‘Die Entstehung der Meistersinger von Nürnberg: Geschichten und Geschichte’ (Mainz, 1983), 7–19 [facs. edn of 1862 lib.]
L’avant-scène opéra, nos.116–17 (1989) [Die Meistersinger issue]
B. Millington ‘Nuremberg Trial: is there Anti-Semitism in Die Meistersinger?’, COJ, iii (1991), 247–60
S. Spencer ‘Wagner’s Nuremberg’, COJ, iv (1992), 21–41
A. Groos ‘Constructing Nuremberg: Typological and Proleptic Communities in Die Meistersinger’, 19CM, xvi (1992–3), 18–34
J. Warrack, ed. Richard Wagner: ‘Die Meistersinger von Nürnberg’ (Cambridge, 1994)
© Oxford University Press 2007
BARRY MILLINGTON (1, work-list with JOHNDEATHRIDGE, CARL DAHLHAUS, ROBERT BAILEY,bibliography), ELIZABETH FORBES (2), CHRISTA JOST (3), PAULSHEREN (4, 5): 'Wagner, (1): Richard Wagner, Bibliography, analysis and criticism: individual studies, Die Meistersinger von Nürnberg', Grove Music Online (Accessed 07 July 2007), <http://www.grovemusic.com/shared/views/article.html?section=music.29769.1.18.14.4>


붙임. 제 리뷰를 읽으신다니 영광이네요. 근데 그거 데스크에서 멋대로 고쳐서 이상하게 만들어서 출간하더라고요. OTL

2008년 5월 28일 수요일

'라인의 황금' 제목은 어디서 왔나?

"바그너는 항상 기발한 방법으로 돈을 더 받아갔습니다. 어느 여름, 그는 라인강 건너 편 쇼트 가족의 집에 살고 있었죠. 매일 저녁 그는 배를 타고 강을 건넜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아침 다시 프란츠 쇼트 씨에게 돌아 왔죠. 프란츠 쇼트 씨는 저희 회사 설립자의 손자입니다. 그리곤 말했습니다. '돈이 다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러자 쇼트 씨가 물었죠. '도대체 어디로 갔는데요?' 그러자 그는 황금 동전들이 모두 강으로 떨어져 버렸다고 했죠. 이 때문에 반지 연작 1부 제목이 '라인의 황금'이 된 것입니다."

- 크리스티아나 클라우슈틴 (쇼트 뮤직 출판사 중역). EBS 음악기행 클래식 - 라이프치히와 마인츠 중에서

... 바그너, 이 알베리히 같은 넘 -_-;

2007년 8월 26일 일요일

2007년 8월 20일 월요일

<탄호이저>와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의 판본 문제 요약

- 탄호이저

1845년 초판
1860년 판: "드레스덴 판." Meser에서 출판.
1861년 판: 파리 초연을 위해 개정.
1888년 판: "파리 판." 빈(Wien) 공연을 위해 1861년 판을 바탕으로 바그너의 감수를 거쳐 빈에서 출판.


-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1841년 초판: 자필보. 노르웨이가 아닌 스코틀랜드가 배경이며, 달란트와 에릭 대신 도널드와 조지가 나옴.
1844년 판: 초연을 위한 1843년 개정판. 젠타의 발라드가 A단조에서 G단조로 낮추어져 있음(가수가 소화를 못해서)
1852년 판: 오케스트레이션을 대대적으로 뜯어고침. 특히 금관을 많이 고쳤음.
1860년 판: 서곡의 끝과 피날레 등을 고침. "트리스탄 결말 Tristan-Schluß" 또는 "구원 결말 Erlösungsschluß" (마지막에 구원의 모티프가 나옴)


참고: 바그너 비평판 악보 전집의 서문

2007년 2월 12일 월요일

Barry Millington, 바그너 학술지 만든다

- SiteLink #1 : http://www.thewagnerjournal.co.uk

Barry Millington은 그로브 사전의 '바그너' 항목을 집필한 음악학자입니다. Stewart Spencer와 함께 올 3월부터 연 3회 발간하는 학술지를 만들 모양입니다. 대중적 성격도 강해보이지만, 기본적으로 편집위원이 유명한 음악학자들입니다:

Roger Allen (Oxford)
Mike Ashman (Hertford)
Tim Blanning (Cambridge)
Werner Breig (Erlangen)
John Deathridge (London)
Laurence Dreyfus (Oxford)
Peter Franklin (Oxford)
Tom Grey (Stanford)
Linda Hutcheon (Toronto)
Egon Voss (Munich)
Arnold Whittall (London)
Simon Williams (Santa Barbara, California)

근데 로렌스 드레이퓌스 저 사람은 바로크 음악 쪽 사람 아니던가? 혹시 바그너도 원전 연주의 관점으로? -_-a

Current issue

The launch issue of March 2007 includes:

• An intriguing unpublished Wagner letter to a Milanese milliner

• Arnold Whittall on A Tale of Two Sisters, Brünnhilde and Waltraute

• A new translation, with annotation and illustrations, of a review by Wagner of Bellini’s Norma. The review, which expresses Wagner’s enthusiasm for the opera in hyperbolic terms, was not published until 1973 and therefore not included in any edition of Wagner’s writings.

• Reviews of :

Mark Berry: Treacherous Bonds and Laughing Fire: Politics and Religion in Wagner's 'Ring'

Raymond Holden: The Virtuoso Conductors: The Central European Tradition from Wagner to Karajan

Norbert Heinel: Richard Wagner als Dirigent

Susan Webb: Variants in Wagner's Vocal Lines

John Hunt: Wagner im Festspielhaus: The Bayreuth Recordings

CDs of Parsifal under Thielemann, Sawallisch and Ötvös and the Keilberth and Knappertsbusch Rings from the Bayreuth Festival

DVDs of the Audi and Kupfer Ring productions and of the Bayreuth Festival's 1967 visit to the Osaka Festival with Wieland Wagner's production of Die Walküre

Live reviews of the Kirov and Toronto Rings, together with an interview with Michael Levine, the designer of the Canadian Opera Company production

2006년 3월 27일 월요일

성배는 "왕의 피 Sang Réal"

" 중세 문헌에는 "Grales'을 '잔'이라고 하는 것 외에, 에센바하 처럼 '돌'이라고 하는 說도 있다(글쎄, 여기서는 '돌(石)'이라고 했네요!) 바그너는, 메카의 카바신전에 있는 기적의 검정돌 이야기에 촉발된 크리스찬이, 이것을 아리마타야의 요셉전설과 결합해서 이야기 형태로 전하다가, 어느듯 '왕의 피 Sang Real(e 위에 点 있음)'이 '聖스러운 그랄 San Gral'로 사투리화 했다고 해석하고 있다 (M.메젠동크에게 보낸 편지 1859.5.29). 오늘날은 그리스어의 '그라텔(杯)을 어원이라 하는 설이 설이 유력하다."

일본바그너협회 감수 <파르지팔> 白水社 2000년 발행

- 다음카페 바그네리안, 조서연님의 글에서 퍼옴.


원문을 찾아보니 1859년 5월 30일자 편지임. 29일자 편지와 30일자 편지가 붙어있어 착각한 것으로 보임.

Daher denn auch die Sage, dass der Gral (Sang Réal) (daraus San(ct) Gral) die fromme Ritterschaft einzig ernähre, und zu den Mahlzeiten er Speise und Trank gewähre.

[Sämtliche Briefe: Bd. 11: Briefe von April bis Dezember 1859, S. 167. Digitale Bibliothek Band 107: Richard Wagner: Werke, Schriften und Briefe, S. 14763 (vgl. Wagner-SB Bd. 11, S. 107)]

http://www.8ung.at/fzmw/2000/2000T1-Dateien/2000T1-5.htm

2005년 11월 3일 목요일

<탄호이저> 한국 초연 기록

▲「탄호이저」 1979년 11월 12일∼17일(6회)

지휘 : 홍연택

연출 : 한스 하르트레프 (Hans Hartleb)

출연

Tannhauser=홍춘선·박성원

Walther=김선일

Elisabeth =김영자·김은경

Biterolf=이병두

Wolfram =윤치호·박수길

Heinrioh=구상림

Hermann=오현명·진용섭

Reinmar=전평화

Venus=박영수·김학남

Skephe며=김금희

합창 ; 국립합창단

반주 : 국립교향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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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가 한스 하르트레프는 연출을 마치지 않고 돌연 귀국함.

자료 출처: 문예연감 1979, 한국문화예술진흥원.

2005년 11월 2일 수요일

<로엔그린> 한국 초연 기록

<로엔그린> 한국 초연 기록

국립합창단
제21회 공연
1976.10.16~18 · 21~23
국립극장

지휘: 쿠르트
뵈스
연출: 베르너 뵈스
관현악: 국립교향악단
합창: 국립합창단
합창지휘:
나영수

로엔그린: 김금환 · 홍춘선
엘자: 김영자 · 이규도
텔라문트:
윤치오 · 김성길
오르트루트: 정영자 · 박영수
하인리히 왕:
오현명 · 전평화
전령: 오세종
귀족과 시동: 홍선호 · 정학수
· 송진태 · 강영중 · 정연순 · 최명희 · 홍영애
· 홍정혜
고트프리트: 최민호

스텝:
미술 김동진, 조명 구길웅,
의상 최성학, 소품 이상익, 무대감독 김관규, 피아노 지명신 · 남유현, 조연출
문호근, 음향 박석봉, 장치제작 조성인, 분장 최효성

자료 출처: 문예연감
1976, 한국문화예술진흥원.


2005년 7월 25일 월요일

연출 유감

흥미있는 연출을 하면 감상에 재미를 더하기는 하겠습니다만, 한편으로는 연출자와
지휘자 사이의 협력 또는 갈등관계가 참 골치 아프겠지요. 제 생각에는 지휘자가
연출자에게 끌려가는 측면이 무시 못할 정도로 큰 것 같습니다. 몬살바트 성을 아프리카
원시부족 마을로 꾸미든 불교 사원으로 꾸미든 영생교 비밀 집회장으로 꾸미든 전체적인
틀이야 연출자 마음이겠지만, 세부적인 움직임 등이 음악의 흐름까지도 지배해버리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연출자에게 더 큰 피해(!)를 당하는 것은 지휘자보다는
가수 쪽인 것 같습니다. 자신의 음악적 해석의 타당성을 조리 있게 말할 수 있는
가수가 드물 것이고, 또 가수의 프레이징에 감 놔라 배 놔라 할 수 있는 '거장' 지휘자도
요즘에는 흔치 않을 것이니 눈치 볼 것 많은 신인 가수일수록 그저 연출자에게 끌려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메타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1막 도입부에서
젊은 선원은 노래를 하는 동안 이졸데와 브랑게네에게 음료수 '서빙'을 하고 있습니다.
가수가 걸어다니면서 노래해야 하는 탓에 발성이 종종 불안하게 흔들리고 목소리가
전체적으로 들떠 있어서 특유의 페이드인(fade-in) 효과를 전혀 살리지 못합니다.
뿐만 아니라, 사견으로 작품의 핵심이 되는 리듬이 담긴 모티프가 나오는 부분도
리듬이 별로 좋지 않습니다.

Frisch weht der Wind
상쾌한
바람이
der Heimat zu 고향
쪽으로 부네.
mein irisch Kind 아일랜드의
내 님아
wo weilest du? 어디서
나를 기다려주는지?
(독한 대역: 허정윤)

이상
'그 바닥' 사정을 잘 몰라 적당히 추측해 가면서 간단히 얘기해 봤습니다.


2005년 2월 13일 일요일

로엔그린의 나레이션(In fernem Land) 끝 부분의 관현악 판본 문제

2005년 2월 바그네리안 감상회에 다녀와서 생각을 정리한 글.

어제 감상회에서 로엔그린의 나레이션(In fernem Land)을 듣다 보니 끝 부분이 로엔그린의 모티프가 아닌 성배의 모티프로 끝나는 음반들이 더러 있더군요. 신기하게 생각해서 이것저것 조사해 봤습니다.

로엔그린의 나레이션은 원래 두 부분으로 되어 있던 것을 바그너가 초연 때 뒷부분이 군더더기라 해서(즉, "anti-climactic effect"가 있다고 해서) 없앴다 합니다. 라인스도르프의 음반에서는 이것을 되살려 연주했다고 하네요. 문제가 되는 "ich bin Lohengrin gennant." 바로 뒷부분에 두 가지 버전이 있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만, 인터넷을 잠깐 뒤진 것으로는 자세한 내용을 알 수는 없었습니다. (라인스도르프 판을 들어보신 분 있으세요?)

대본과 라이트모티프 사이의 의미적 일관성을 중심으로 생각하면 이 대목은 성배의 모티프로 끝나는 것이 낫습니다. '로엔그린'이라는 대사에 성배의 모티프가 이어지면 로엔그린의 고귀한 신분을 부각시킬 수 있습니다. 반면, 로엔그린의 모티프는 로엔그린의 신분이 밝혀지기 전인 1막부터 자주 나오던 모티프이므로, 모티프의 의미를 따지자면 그 효과가 성배의 모티프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한편, 라이트모티프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그저 음악과 드라마만을 생각하면 역시 로엔그린의 모티프로 끝나는 것이 낫습니다. 마침내 신분을 밝히는 순간의 충격을 포르티시모의 총주가 뒷받침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성배의 모티프가 나오면 차라리 잘난 척이 되어버립니다. 인디아나 대학 웹사이트에 공개되어 있는 Breitkopf & Hartel (Leipzig: 1887) 판 악보를 보니 로엔그린의 나레이션은 로엔그린의 모티프로 끝납니다. 개인적으로도 이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악보를 보면 "ich bin Lohengrin gennant."에서 "gennant"의 마지막 음절과 관현악 총주의 '쾅'이 마디 첫 박으로 겹칩니다. 그러나 이것을 악보대로 처리하면 로엔그린의 목소리가 묻히게 되므로 관현악 총주가 살짝 늦게 나오는 것이 좋습니다. 그 타이밍은 "gennant"의 첫째 음절과 둘째 음절의 시간차인 16분음표 만큼 늦추는 것이 좋다고 생각됩니다. 실제로 대부분이 그렇게 연주하더군요. 카라얀은 16분음보다 아주 살짝 더 짧게 늦추었습니다. 이것도 좋게 들었습니다. 그런데 몇몇 연주에서는 관현악 총주가 동시에 나오거나 또는 살짝 늦추더라도 그 타이밍이 좋지 않아서 어색하게 들렸습니다.

2004년 12월 28일 화요일

리엔치 대본을 읽고

작성자 김원철 (wagnerian)  홈피  메일  쪽지  문자  선물  추가  

번호 2036  조회수 33  소스   크게

작성일 2004-10-06 오후 7: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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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평화와 자유와 정의가

무릎을 꿇나니

가족의 이데올로기는 이토록 견고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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