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 27일 월요일

베토벤 교향곡 5번 /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 ― 넬손 괴르너 / 성시연 / 서울시향

2011-05-19 오후 08:00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 : 성시연
피아노 : 넬손 괴르너

드보르자크, 사육제 서곡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
베토벤, 교향곡 5번

언제나 그렇듯이, 무삭제판 ㅡ,.ㅡa


음악을 들으면서 지휘 흉내를 낸 일이 있는가. 베토벤 교향곡 5번이야말로 '남이 보면 안 되는 지휘 생쇼'를 하기에 가장 신 나는 곡일 터. 그런데 실제로 지휘하려면 '운명 모티프'라 불리는 첫 두 마디부터 만만치 않다. 처음부터 빠른 음형이 그것도 여린박으로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예비박을 어찌 줘야 할까? 8분음표로 시작하므로 8분음표만큼 예비박을 주면, 비팅(beating)이 너무 날카로워서 악단이 첫 박으로 착각하기 딱 좋다. 지휘자에 따라서는 아예 예비박이 아닌 예비 '마디'를 세 마디나 넣어 헷갈리지 않게끔 하기도 하지만, 실용적이기는 해도 모양새가 영 좋지 않다.

지휘자 성시연은 지휘봉을 살짝 올렸다가 멈춘 다음 날카로운 예비박을 주는 모범적인 지휘를 했다. 그런데 아뿔싸! 몇몇 단원이 반 박자 빨리 나오는 바람에 이른바 '만득이 현상'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곡이 워낙 이러니 실연 때 이런 일이 곧잘 일어난다. 마침 이날 프라하 스메타나 홀에서는 마이클 틸슨 토머스가 지휘하는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같은 곡을 연주했는데, 방송 녹음을 들어 보니 바이올린 연주자 하나가 반 박자도 아니고 한 박자나 빨리 튀어나오는 사고 현장이 마이크에 또렷하게 잡혔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따따따 따안―' 할 때 긴 음에는 늘임표(fermata)가 붙어 있다. 얼마만큼 늘여야 할까? '늘임표'라는 말에 맞게 감으로 대충 늘일 수도 있겠고, 제시부 끝과 코다에서 비슷한 음형이 나올 때 늘어난 음 길이를 근거로 한 마디를 세 마디로 늘일 수도 있겠다. 음반을 들어 보면 아예 늘임표를 무시하는 연주도 있다. 성시연은 감으로 대충 늘인 듯했으며, 둘째 마디를 네 마디쯤으로 늘이고 넷째-다섯째 마디를 다섯 마디쯤으로 늘였다. 이처럼 이 곡을 들어보면 처음부터 지휘자가 여러 가지로 고민했을 흔적이 드러난다.

악기 편성도 문제다. 옛날에는 악보에서 지시한 것보다 훨씬 큰 편성으로 연주하는 일이 잦았지만, 요즘은 악보 지시를 그대로 지키는 일이 보통이다. 이날 서울시향은 호른 한 대를 더블링(doubling)한 것을 빼면 악보에서 지시한 2관 편성을 그대로 지켰다. (현악기는 글쓴이가 객석에서 세어 보니 5-5-4-4-3 편성이었다.) 이른바 '역사주의 연주'가 힘을 얻으면서 생긴 유행으로, 정명훈 지휘자도 시향 개편 초기에 베토벤 교향곡 전곡을 연주하면서 9번 교향곡을 뺀 모든 곡을 악보대로 편성했다. 지난해 9월 베토벤 교향곡 3번을 지휘한 로렌스 르네스도 비슷한 시도를 한 바 있다.

관습적으로 금관을 덧붙이는 등 악보대로 연주하지 않던 대목을 악보 그대로 연주한 것 또한 역사주의를 따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를테면 1악장 제시부 제2 주제를 여는 E♭ 장조 호른 음형은 재현부에서 바순이 C 장조로 연주하는데, 이 곡이 나왔을 당시 호른으로 연주할 수 없는 음형이라서 베토벤이 할 수 없이 호른이 아닌 바순에 맡겼다는 주장이 있다. 4악장 마디 132에서는 비슷한 근거로 악보에 없는 금관 음형을 덧붙여 연주하는 관습이 있었다. 작품이 끝날 무렵에 트럼펫이 주선율을 연주하도록 고치기도 한다. 이날 서울시향은 이 대목을 모두 악보대로 연주했다.

이처럼 소편성으로 연주하고 금관을 덧붙이지도 않으면 투명한 음색과 날렵한 리듬을 살리기에 좋다. 그러나 대형 연주회장에서는 음량이 작아서 단점이 따르기도 한다. 연주회장 음향이 그다지 좋지 않으면 더욱 그렇다.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은 음향이 국내 최고 수준이라고들 하지만, 외국에서 이름난 연주회장과 견주면 그다지 좋은 연주회장이라 하기 어렵다. 글쓴이는 이날 1층 뒷자리에 앉은 탓에 이런 단점을 크게 느꼈다. 귀로 들은 것만으로 판단하자면, 이날 연주는 소리가 둥글둥글하고 마이크로다이내믹스(micro-dynamics)에 심각한 문제가 있어서 작품과 어울리지 않는 곳이 많았다. 물론 이것은 글쓴이가 음향적 왜곡을 경험한 것으로 실제 연주는 그렇지 않았음이 틀림없다.

요즘 유행하는 말 가운데 '중2병'이라는 것이 있다. 사춘기 시절 과대망상을 희화화하는 말이며 맥락에 따라 욕설에 가까운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중2병도 예술로 승화하면 걸작이 될 수 있다. 이를테면 시사평론가 한윤형은 타나카 요시키가 쓴 대하소설 『은하영웅전설』을 두고 "가장 탁월한 중2병 텍스트"라 논평하며 『삼국지』와 견주기도 했다. 게다가 어찌 보면 서양 낭만주의 시대에는 중2병이 시대정신이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가장 탁월한 중2병 작곡가는 쇼팽바그너다. '자폐형 중2병'과 '민폐형 중2병'으로 성격은 거꾸로지만.

쇼팽 피아노 협주곡을 협연한 넬손 괴르너는 가장 탁월한 '중2병 아티큘레이션'을 들려주었다. 툭 건드리면 울어버릴 듯한 표정이 묻어나는 프레이징, 때때로 너무하다 싶을 만큼 흔들리는 루바토, 그리고 물결에 되비친 햇살처럼 반짝이는 음색이 알맞게 어우러져 그야말로 '중2병스러움'이 예술로 승화했다. '중2병'이라는 말이 마음에 안 든다면 '옴므 파탈'(Homme fatal)이라고 불러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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