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 15일 수요일

멘델스존 팔중주 E♭장조 Op. 20 / 베토벤 칠중주 E♭장조 Op. 20

멘델스존: 현악팔중주 E♭장조 Op. 20

E♭장조는 거룩한 음악에 곧잘 쓰이던 조이다. 베토벤 이후에는 이것이 좀 더 특별한 상징성을 갖게 되었는데, 바로 교향곡 3번 E♭장조 ‘에로이카’ 때문이다. 특히 4악장에서 베토벤은 발레 음악 ‘프로메테우스의 창조물’ 피날레 주제를 재활용했으며, 음악학자 베리 쿠퍼는 원작 발레의 ‘폭풍 → 진흙상 → 생명을 얻음 → 신격을 얻음’ 짜임새가 ‘에로이카’ 4악장에 비슷하게 나타난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베토벤 이후 작곡가들은 E♭장조로 곡을 쓸 때 ’베토벤의 E♭장조’를 의식해야 했다. 멘델스존 또한 마찬가지다. 현악팔중주 E♭장조는 조성 구조, 빛을 향해 나아가는 음악적 서사 구조, 모티프 발전 기법 등 여러 면에서 ’에로이카’를 닮았다. 음악학자 베네딕트 테일러는 멘델스존 팔중주를 분석하면서 헤겔과 괴테로부터 멘델스존이 받은 영향을 지적하기도 했는데, 인류가 무한히 발전해 신의 광휘에 다가갈 수 있다고 믿었던 당시 유럽인의 세계관과 통하는 말이기도 하다.

멘델스존 팔중주는 E♭장조의 틀 속에 g단조와 c단조 등이 ’안티테제’처럼 나타나는 음악적 서사 구조가 특징이다. 1악장 제1주제는 순수하게 밝은 느낌이지만, 제2주제가 나타나기에 앞서 제1주제가 한 번 더 나오면서 f단조를 거쳐 g단조로 바뀌고, B♭장조로 된 제2주제를 지나면 음악이 휘황찬란하게 빛난다. 발전부에서 다시 단조의 어둠이 침투하고 c단조가 승리하는 듯 보이지만, 제2주제가 마치 어둠 속의 탄식처럼 나타나 빛을 회복해 나가고, E♭의 딸림음인 B♭ 음이 길게 이어지면서 마치 태양이 솟아오르듯 밝아진 끝에 재현부로 이어진다.

변종 소나타 형식으로 된 2악장은 c단조이다. 1악장 발전부에 나왔던 c단조이고, 첫머리에 나오는 음형 또한 1악장 발전부에 나오는 음형과 비슷하다. 그러니까 1악장에서 두 번째로 나오는 제1주제가 앞선 제1주제에 대한 안티테제, 발전부는 제시부에 대한 안티테제라면, 2악장은 1악장에 대한 안티테제라 할 수 있겠다. 부잣집 아들로 태어난 멘델스존은 어려서부터 헤겔을 포함한 당대 명사들과 친분이 있었고, 대학에서 헤겔의 강의를 듣기도 했다. 다만, 멘델스존이 헤겔의 예술관에 완전히 동의했던 것은 아니다.

3악장은 g단조다. 악장 제목이 ‘스케르초’이고 내용적으로도 스케르초가 맞지만, 형식상으로는 스케르초와 트리오 형식이 아닌 소나타 형식이다. 말을 타고 달리는 듯한 리듬이 악마적인 선율 및 화성과 만나 마치 공포에 질려 도망치는 듯하다가 악장이 끝나기 조금 전부터 음악이 밝아진다. 멘델스존의 누나인 파니 멘델스존의 증언에 따르면, 특히 마지막 부분은 작곡가가 괴테 “파우스트”에 나오는 ’발푸르기스의 밤’ 마지막 대목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라고 한다.

“파우스트”에서는 귀신이 나온다는 ‘발푸르기스의 밤’에 마녀를 비롯한 온갖 군상들이 나타나 한 마디씩 한다. 그리고 ’오케스트라’ 귀신이 나오는 마지막 부분은 이렇다. “오케스트라: (피아니시모) 흘러가는 구름도 자욱한 안개도 점점 위로부터 밝아오는구나. 나뭇잎에 부는 바람, 갈대 숲에 부는 바람, 모든 것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도다.”

4악장은 다시 E♭장조이다. 말 타고 달리는 듯한 리듬이 3악장과 비슷하지만, 여기서는 마치 아침 햇살을 받은 듯 눈부신 느낌으로 시원하게 속도를 낸다. 그리고 헨델 “메시아” 중 ’할렐루야 합창’에 나오는 선율 한 조각이 나온다. “또한 주께서 영원토록 다스리시리.”(And he shall reign forever and ever.) 이 선율이 반복되며 정교한 푸가로 발전하고, 앞선 악장에 나왔던 음형들이 스쳐 지나간다. E♭장조의 찬란한 빛 속에서 음악이 끝난다.

베토벤: 칠중주 E♭장조 Op. 20

칠중주나 팔중주 등은 본디 디베르티멘토, 즉 파티에서 가볍게 즐기기 위한 음악 형태였다. 베토벤 칠중주 E♭장조 또한 디베르티멘토라 할 수 있는데, 그러나 ’즐거운 음악’의 틀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기법적으로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베토벤은 교향곡 3번 E♭장조 ’에로이카’를 작곡하기 3년 앞선 1800년에 이 작품을 완성했다. 다시 말해 이 작품은 ’베토벤의 E♭장조’가 특별한 의미를 갖기 이전의 작품이다. 다만 굳이 그 의미를 소급해서 생각해 본다면, 칠중주 E♭장조는 인류가 ’파르나소스 산’으로 상징되는 유토피아에 도달한 이후의 평화로운 일상을 음악으로 표현한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1·2·6악장은 소나타 형식, 3악장은 미뉴에트와 트리오 형식, 4악장은 변주곡 형식, 5악장은 스케르초와 트리오 형식으로 되어 있다. 악곡의 형식에 대단한 파격은 없고, 1악장부터 6악장까지 모두 장조로 되어 있으며, 해학적인 맥락에서 짧게 단조로 일탈하는 것을 제외하면 음악에 ’그늘’이 사실상 없는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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