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3일 목요일

2009.01.16. 드뷔시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모음곡 /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 / 림스키-코르사코프 셰에라자드 - 라르스 포크트 / 정명훈 / 서울시향

2009년 1월 16일(금) 오후 7시 30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지휘자 : 정명훈
협연자 : Lars Vogt (Pf)

Debussy, "Pelleas et Melisande" Concert Suite (arranged by Erich Leinsdorf)
Mozart, Piano Concerto No. 21 in C major, K. 467
Rimsky-Korsakov, Symphonic Suite "Scheherazade" Op. 35



드뷔시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는 프랑스 말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도무지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이상한 음악처럼 들리곤 한다. 음악사에서 차지하는 자리가 커서 마니아라면 누구나 한 번쯤 도전해 보지만 이내 음반을 중고 장터에 내놓고, 그 음반이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신세가 되어 이곳저곳을 떠돌기 일쑤다. 그래서 이날 연주된 것과 같은 관현악 발췌곡도 나왔으나 드뷔시다운 어른어른하고 어슴푸레한 소리는 그대로이다. 그런데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음향이 묘하게 그와 어울리는 데가 있었다. 반쯤 잠에 빠진 듯 흐리멍덩한 느낌이 그럴싸했으며, 어찌 보면 지휘자가 원성 자자한 연주회장에서 장점을 이끌어내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저음 현 긁는 소리가 좀 더 살아났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으나 세종문화회관에서는 어렵지 싶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에서도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무려 라르스 포크트가 협연을 맡아도 세종 대극장 음향 한계는 어쩔 수 없는 듯했으나 맑고도 그윽한 소리를 이끌어내는 해석이 그럴싸하기도 했다. 더욱이 2악장에서 페달을 많이 쓰면서도 소리가 뭉치지 않게 잘 다듬은 대목이 매우 훌륭했다.

드뷔시모차르트에서 연주회장에 순응하는 연주를 들었다면 림스키-코르사코프 <셰에라자드>에서는 때때로 연주회장의 한계를 넘어서는 소리가 들려와 놀라웠다. 세종 대극장에서는 여간해서는 소리가 피부로 와 닿지 않아서 프레이징 따위를 머리로만 듣게 될 때가 잦은데 이날 참으로 오랜만에 화끈한 느낌을 받았다. 정명훈의 해석은 음반으로도 나와 있는 바스티유 오페라 연주와 크게 다르지 않았으며, 그 때문에 정명훈보다는 수석 연주자들이 독주 때 보여준 개인기에 더욱 눈길이 갔다.

악장 데니스 김이 들려준 독주는 '셰에라자드'라는 인물이 살아 숨 쉬는 듯해서 매우 인상 깊었다. 셰에라자드는 어떤 사람일까? 무서운 임금님 앞에서도 기죽지 않는 여장부? 임금님을 유혹하는 요녀? 마음 깊은 곳 상처를 달래는 어머니? 데니스 김이 그려낸 셰에라자드는 곳곳에서 두려움을 내비치지만 때로는 허세를 부릴 줄도 아는 순진하고도 용감한 소녀 같았다.

첫 독주는 요염함과 두려움과 허세가 넉넉한 루바토와 에스프레시보로 알맞게 버무려진 연주였고, 마디 94에서는 첫 음과 이어지는 셋잇단음 사이를 포르타토치고는 매우 뚜렷이 나누어 연주해서 마치 선생님 앞에서 두 손 모아 열심히 노래하는 듯했다. 3악장 마디 145에 나오는 스타카토 분산화음은 이야기 속 왕자와 공주를 셰에라자드 부부에 빗대어 말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데 이때 데니스 김은 A 음을 늘이고 나머지는 장식음처럼 휘리릭 재빨리 다루어 마치 마음속에 감춘 두려움이 드러나는 듯했으며, 그래서 이어지는 칸타빌레 선율은 더욱 애달팠다. 4악장 마디 29에서는 힘주어 연주하라는 지시를 매우 잘 살려 어느 때보다 활을 거칠게 썼다. 이때 첼로와 콘트라베이스는 매우 여리게 연주하게 되어 있으나 정명훈은 음반에서 했던 것처럼 매우 세게 연주해서 '짠!' 효과를 내도록 했다. 그런가 하면 마디 641에서는 마치 자장가처럼 매우 여리게 속삭이듯 했다.

목관악기 연주자들도 독주 때마다 눈부신 연주를 뽐냈으며, 그 가운데 오보에 수석 이미성이 가장 돋보였다. 글쓴이가 보기에 이미성은 악보에 있는 지시를 아주 작은 곳까지 꼼꼼하게 지키는 남다른 솜씨를 가졌으나 '모범생 연주'를 넘어서는 '끼'를 보여주지는 못하는 단점 또한 안고 있다. 그런데 이날 드디어 벽을 넘은 듯한 모습을 보여주어 몹시 반가웠으며, 그 때문에 옛날부터 글쓴이 마음을 사로잡은 클라리넷 수석 채재일보다도 더 인상 깊었다. 정명훈은 연주가 끝나고 악장에 이어 두 번째로 이미성을 일으켜 세웠다.

글쓴이가 가장 추겨 세우고 싶은 연주자는 트럼펫 수석 가레스 플라워스(Gareth Flowers)이다. 이 곡에서 트럼펫은 목관악기처럼 눈에 확 띄는 솔로 악구는 없으나 티 안 나게 하는 고생이 만만치 않으며, 그러면서도 작은 실수로도 곧잘 연주를 망쳐버릴 수 있어서 호른 못지않게 까다롭다. 이날 때때로 살짝 불안한 대목이 없지는 않았고 연주가 끝나고 지휘자가 일으켜 세웠을 때 금방 도로 앉아버린 일에 미루어 보면 연주자 자신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듣기에는 매우 야무진 연주였으며, 더욱이 4악장에서 빠른 음형이 계속 나오는 곳에서는 깜짝 놀랄 만큼 훌륭했다. 나는 정명훈이 아찔한 템포로 마구 달릴 때에도 트럼펫이 조금도 뒤처지지 않고 바짝 따라오리라고는 믿지 않았다. 이럴 수가! 이런 연주자가 있으면 베토벤 교향곡 7번을 해줘야 한다. 마침 올 10월 정기연주회 때 베토벤 교향곡 7번을 연주할 모양이니 기대가 된다.

호른과 트롬본 또한 다부진 연주를 들려주었으며 1악장 시작을 비롯해 여러 차례 나오는 부점 리듬을 날카롭게 다스린 대목이 매우 훌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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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철. 2009.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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