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22일 수요일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통영국제음악제 프로그램북에 사용할 글입니다.


"고난을 뚫고 별들의 나라로!" (Per aspera ad astra)

베토벤 당시의 시대정신을 대변하는 이 말은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의 짜임새와도 그대로 들어맞는다. 사람들은 만인이 신 앞에 평등하다는 '혁명적인' 생각을 나누었고, 인류 문명이 차츰 발전하면서 세상이 유토피아로 나아갈 것이라 믿었다. 그리고 베토벤은 프리드리히 실러의 환희의 송가(An die Freude)를 가사로 하는 희망찬 미래를 이 작품에 담았다.

1악장은 '라'(A)와 '미'(E) 음만으로 여리고 신비롭게, 한편으로는 공허하게 시작해 압도적으로 엄숙하고 숭고한 주제로 이어진다. 이 대목은 우주가 생성되는 모습으로 해석되곤 하며, 이것을 받아들인다면 이 작품은 태초에서 미래까지 시간의 흐름을 조망하는 짜임새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에게 세상은 아직 어둡고, 두렵고, 고통으로 가득하다.

2악장에서는 악마적인 냉소와 절박한 열망이 반복되는 리듬과 더불어 격렬하게 충돌한다. 3악장에서는 마치 상처받은 영혼이 천상을 동경하는 듯 애달픈 선율이 조금씩 모습을 달리하며 되풀이된다. 4악장에서는 무서운 팡파르로 시작해 앞선 악장에서 나왔던 선율 조각들이 마치 세상에 대한 의문, 또는 해결해야 할 과제처럼 제시된다. 그리고 저 유명한 '합창' 선율이 그에 대한 해답처럼 나타나 긴 호흡으로 찬가처럼 부풀어 오른다.

무서운 팡파르가 다시 한 번 나오고, 바리톤의 목소리가 곡의 흐름을 갑자기 바꿔 놓는다. "오 벗이여! 이런 소리가 아니오! 더 즐겁고 환희에 찬 소리를 질러 봅시다!" 바리톤이 저음으로 부르는 노래를 합창이 이어받는다. 노래가 이어지고 환희로 부풀어 오를수록 노랫말은 교향악적 짜임새에 녹아 들어가 악곡을 음향적 · 음악적으로 확장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alle Menschen), 환희(Freude), 형제들(Brüder)과 같은 주요 단어 몇 개만이 승화적으로 전달된다.

오늘날 이 작품을 실제로 연주하려면 20세기 중반 이후 학술적 성과를 바탕으로 나타난 이른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연주'를 어디까지 받아들일 것인지를 고민해야 하고, 지휘자는 특히 몇 군데에서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한다. 이를테면 '무서운 팡파르'는 악보대로라면 주선율을 목관악기가 연주하고 트럼펫 등은 단순한 음형으로 뒤를 받쳐 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그런데 이 곡이 초연될 당시에 쓰이던 트럼펫으로는 낼 수 없던 음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오늘날에는 트럼펫에 주선율을 맡기는 것이 진정한 베토벤의 의도라고 '해석'할 수 있다.

트럼펫이 악보에 없는 주선율을 연주하도록 하는 것이 20세기 전통이었다면, 몇십 년 전부터 악보에 있는 음표 그대로, 악보에 있는 편성 그대로 연주하려는 경향이 조금씩 힘을 얻고 있다. 오늘날에는 '역사주의자'가 아닌 지휘자마저도 역사주의의 성과를 부분적으로 수용하고 있으며, 따라서 지휘자와 악단의 선택이 연주에 미치는 음향적 · 음악적 특성이 듣는이에게도 중요한 감상 포인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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