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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8월 14일 금요일

조르디 사발의 베토벤 교향곡

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입니다.

“(조르디) 사발의 베토벤을 듣고 있으면 때로는 지척에서 때로는 멀리서 들리는 포성과 총성, 아스라한 연기와 매캐한 화약 냄새, 장병의 비명과 부상자의 신음과 인민의 함성과 군대의 북소리와 나팔 소리가 뒤섞인 19세기 초 유럽의 혈향 어린 전장과 도시 한복판에 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클래식 음악 애호가로 유명한 연합뉴스 임화섭 기자가 페이스북에 쓴 말입니다. 지난 7월 조르디 사발과 ’르 콩세르 데 나시옹’이 베토벤 교향곡 1번부터 5번까지 녹음한 세트 음반이 발매되어 애호가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고 있지요. 옛날에는 새 음반이 나오면 수입, 주문, 배송까지 제법 시일이 걸렸지만, 요즘은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가 있어서 음원이 풀리자마자 파란이 일더군요.

조르디 사발은 그가 창단한 악단인 ’르 콩세르 데 나시옹’과 함께 바로크 음악을 주로 지휘하는 사람입니다. 베토벤 곡은 1994년에 교향곡 3번과 코리올란 서곡을 녹음한 일이 있는 정도였지요. 사발의 베토벤 교향곡 3번이 명반으로 소문나기는 했지만, 저는 교향곡 하나만 녹음한 사람의 베토벤을 진지하게 들어볼 생각을 그동안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새로 나온 음원을 듣고 충격을 받고 말았습니다.

이 음원을 듣고 있으면, 베토벤의 초기작으로 그다지 인기가 없는 교향곡 1번과 2번이 사실은 얼마나 혁신적인 작품이었는지를 깨닫고 깜짝 놀라게 됩니다. 교향곡 3번, 4번, 5번 연주의 탁월함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베토벤 교향곡 다섯 작품에 대한 내 마음속 최고의 연주는 이미 조르디 사발과 르 콩세르 데 나시옹의 녹음으로 바뀌었습니다. 교향곡 6번부터 9번까지 녹음한 음원이 하루빨리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조르디 사발과 그의 악단은 작곡 당시의 악기와 연주 관습 등을 살려 연주하기로 유명합니다. 이번에 나온 녹음에서도 베토벤 시대 현악기에 쓰이던 현의 소재와 활 구조 등에서 오는 ‘식물성 사운드’가 특징적으로 나타납니다. 곡마다 55명에서 60명 정도의 연주자가 녹음에 참여했고, 이 가운데 ’르 콩세르 데 나시옹’ 단원이 35명에 나머지는 객원 연주자였다네요. 이런 소편성으로 베토벤을 연주하면 학자들이 고증한 베토벤 당시의 날렵한 템포가 가능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새로 나온 음원을 들어 보면, 옛 악기를 사용한 다른 베토벤 연주와 견주어 한 가지 남다른 특징이 느껴집니다. ’식물성 사운드’이면서도 깜짝 놀랄 만큼 ’매운맛’이기도 하다는 겁니다. 옛 악기로 베토벤을 연주하면 소리가 자칫 심심하게 들리기 쉽고, 그래서 현대 악기를 사용하면서도 스타카토와 비브라토 등을 옛날 연주법으로 한 절충주의적 베토벤 연주도 유행했지요. 그런데 조르디 사발은 현대 악기를 사용하지 않아 ’기름기’가 쫙 빠져 있으면서도 혀가 얼얼한 ’매운맛’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준 겁니다.

소리가 작은 옛 악기를 작은 편성으로 연주한 탓에, 아마도 녹음된 연주가 아닌 실제 연주에서 느껴지는 음량은 꽤 작을 듯합니다. 음원을 듣다 보면, 이를테면 때때로 목관 악기의 구멍을 마개가 막았다 열었다 하면서 찔꺽거리는 소리가 제법 또렷하게 들리기도 하더군요. 음질이 훌륭한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악기 소리가 워낙 작아서 이런 소리까지 그대로 담긴 것이겠지요.

소리가 작은 대신 현악기는 아찔한 빠르기로 질주하며 박박 긁어댑니다. 관악기는 사납게 울부짖습니다. 팀파니는 곳곳에서 확실한 ’펀치감’을 만들어 냅니다. 듣고 있으면 입이 딱 벌어지는 테크닉이 연주 내내 이어집니다. 그야말로 포탄이 날아다니는 듯한 음향적 스펙터클이 가능했던 비결이 여기에 있을 겁니다.

임화섭 기자는 이런 연주가 스튜디오 녹음이 아닌 실제 연주회에서 가능한지 의문을 제기합니다. 저도 참 궁금합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이들의 베토벤을 들어 봤으면 좋겠습니다. 그 전에 코로나바이러스부터 ’매운맛’을 좀 보여 줬으면 싶기도 합니다.

2016년 10월 9일 일요일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연주

『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입니다.


스즈키 마사아키 & 바흐 콜레기움 재팬 / 바흐솔리스텐 서울, 로저 노링턴(취리히 체임버 오케스트라), 아이버 볼튼(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오케스트라), 샹젤리제 오케스트라, 임선혜 & 베를린 고음악 아카데미, 아르테 델 몬도 오케스트라(다니엘 호프), 올리비에 슈느블리 & 베르사유 바로크 음악센터, 줄리아노 카르미뇰라, 크리스티네 쇼른스하임, 카살스 콰르텟.

통영국제음악당에서 공연했던 지휘자 · 연주자 · 악단입니다. '역사주의'라는 공통분모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지요. 한때 '원전'(原典) 또는 '정격'(正格; authentic) 등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기존 주류 연주 방식이 틀렸음을 암시하는 독선적인 뜻이 있음을 경계해 오늘날에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연주(Historically Informed Performance)라는 가치중립적 표현을 사용합니다. 줄여서 역사주의 연주라고 합니다.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연주'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역사주의자들은 새로운 학술적 발견을 연주에 적극적으로 받아들입니다. 20세기 이전부터 연주 관습이 단절 없이 이어지던 음악일수록 역사주의에 대한 음악계의 저항이 심했는데, 그것을 조금씩 누그러뜨려 온 힘은 학자들이 제시하는 객관적인 증거였습니다. 모차르트까지는 역사주의를 인정하더라도 베토벤부터는 도저히 그럴 수 없다던 사람들마저도 이제는 많이들 마음을 돌리고 있지요.

통영국제음악당에서는 그런 시대 변화에 앞장서는 연주자들을 꾸준히 초청해 왔습니다. 올해 예정된 공연 중 헬싱키 바로크 오케스트라와 타펠무지크 바로크 오케스트라 또한 역사주의를 지향하는 악단이고, 이 가운데 헬싱키 바로크 오케스트라는 단원이 6명뿐인 악단입니다. 바로크 시대에는 '오케스트라'를 이런 뜻으로도 썼다네요.

NDR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역사주의를 대표할 만한 스타 바이올리니스트 출신 지휘자 앤드루 맨지를 영입함으로써 역사주의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이 악단은 그 전에는 그냥 독일 하노버를 대표하는 일류 오케스트라였지요. 그래서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옛날 악기를 사용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카라얀'으로 대표되는 옛날 녹음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와는 많이 다를 듯해요.

먼저, 연주자 수를 불필요하게 '뻥튀기'하는 일이 없을 겁니다. 이번 NDR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내한공연 때 연주될 베토벤 교향곡 3번 연주에 필요한 오케스트라 단원 수는 대략 60명 정도입니다. 옛날에는 관악기 수를 두 배로 늘리고 현악기 수 또한 그것에 맞게 늘려서 훨씬 규모가 큰 오케스트라로 웅장한 느낌을 부풀리곤 했지만, 이번 공연에서는 60명 조금 넘는 인원만이 출연할 예정이라고 하네요.

오케스트라 덩치가 줄어들면 그만큼 날렵한 움직임이 가능해집니다. 학자들이 고증한 베토벤 당시 템포는 20세기 연주 관습과 견주면 훨씬 빨랐다고 하지요. 당시에는 현악기에 쓰던 현의 소재나 활의 구조 등도 오늘날과는 달랐기 때문에, 물리적인 조건에 따라 자연스럽게 연주할 수 있는 템포와 연주법이 있었지요. 현대 악기로도 스타카토와 비브라토 등 갖가지 연주법을 그때처럼 해서 비슷한 느낌을 살릴 수 있습니다.

베토벤 교향곡 3번에서는 이를테면 1악장 클라이맥스에서 트럼펫이 주선율을 연주하다 뒤로 빠지고 목관악기가 선율을 이끌어 가는 대목이 있습니다. 베토벤 당시 금관악기로는 낼 수 없는 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고, 악기가 개량된 오늘날에는 그런 음들까지도 선율에 포함하는 것이 작곡가의 의도에도 맞는다는 논리가 20세기에 널리 받아들여졌지요. 요즘에는 이런 곳마저도 악보 그대로 연주하곤 합니다.

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인 요스 판 이메르세일 또한 역사주의를 이끌어온 음악가로 유명합니다. '아니마 에테르나'라는 오케스트라를 창단하고 베토벤 교향곡 전곡을 녹음한 음반 등으로 국내에서도 많이 알려졌지요. 올 12월 초에는 요스 판 이메르세일의 피아노 연주를 통영국제음악당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바리톤 토마스 E. 바우어, 소프라노 서예리 등과 슈베르트 음악을 연주하는 '슈베르티아데' 공연이에요.

마침 이 글을 쓰던 중에 거장 지휘자 네빌 마리너가 향년 92세로 타계했다는 소식이 속보로 전해졌습니다. 넓은 의미에서 역사주의자라 할 수 있는 분이었지요. 고인께 명복을 빕니다.

2014년 9월 22일 월요일

열린 텍스트와 열린 해석, 역사주의 연주에 관하여

『한산신문』에 칼럼을 연재하게 되었습니다. 통영에서 열독률이 매우 높은 매체라고 하네요.

원문 링크: http://www.hansan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42875

베토벤 교향곡 9번 d단조 '합창.' 폭풍처럼 몰아치는 1악장과 광란의 스케르초 악장, 그리고 애달픈 아다지오 악장을 지나 마지막 악장에 들어서면, 이른바 '공포의 팡파르'가 마치 지옥문이 열린 듯이 터져 나옵니다.

이 대목은 사실 악보대로라면 주선율을 목관악기가 연주하고 트럼펫 등은 단순한 음형으로 뒤를 받쳐 주는 역할을 할 뿐이에요. 그런데 이 곡이 초연될 당시에 쓰이던 트럼펫으로는 낼 수 없던 음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오늘날에는 트럼펫에 주선율을 맡기는 것이 진정한 베토벤의 의도라고 '해석'할 수 있지요. 이왕이면 트럼펫의 강력한 음량에 맞게 악기 편성을 악보 지시보다 '뻥튀기'해 주고요.

몇십 년 전부터 좀 다른 해석이 힘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악보에 있는 음표 그대로, 악보에 있는 편성 그대로 연주하자고요. 더 나아가 작품이 발표될 당시 악기로 연주하고 악기 조율법까지 그때 관습대로 하며, 악보에 나오는 작은 나타냄말까지 당시 관습과 작곡가의 버릇 등을 고려해 '해석'하고자 하면 본격적인 학술 연구가 됩니다.

이런 해석은 초기에 '원전 연주' 또는 '정격 연주'라 불리면서 많은 논란을 불러왔습니다. 무엇보다 낯선 악기와 낯선 조율법 등에서 오는 낯선 음향 때문에 격렬한 저항이 일어나곤 했지요. 음악학자 로렌스 드레이퍼스는 이러한 강한 반감을 쇤베르크의 무조음악에 대한 동시대 사람들의 반감과 견주기도 했습니다.

오늘날에는 '원전'(原典) 또는 '정격'(正格; authentic)이라는 말에 기존 주류 연주 방식이 틀렸음을 암시하는 독선적인 뜻이 있음을 경계해 '역사주의 연주' 또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연주(Historically Informed Performance)라는 가치중립적 표현을 사용합니다. 시대악기(period instruments) 또는 역사적 악기(historical instruments)라는 용어도 있어요. 작품이 쓰일 당시 악기를 일컫는 말이지요.

그리고 음악학자들이 내놓은 객관적인 증거 앞에서 역사주의 연주는 조금씩 힘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요즘에는 심지어 하이팅크나 정명훈 같은 전통적인 거장 지휘자들도 역사주의를 일부 수용할 정도이지요. 이를테면 정명훈이 지휘한 서울시향 연주회에서, 이 글 첫머리에 말씀드린 바로 그 대목을 사람들이 낯설어하면서 연주자들이 치명적인 실수를 한 것으로 오해하기도 하더군요. 정명훈 지휘자는 베토벤 교향곡을 연주할 때 다른 많은 곳에서도 마찬가지로 기존 관습과 달리 악보 그대로 연주한 바 있습니다.

작곡가의 의도를 가장 잘 살린 연주가 가장 훌륭한 연주라는 명제가 참이라면, 작곡가의 진정한 의도는 과연 무엇일까요? 작곡가의 마음속에 들어가 보지 않는 다음에야 알 수 없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작품이 이미 발표된 이상 작곡가의 의도가 절대적이라 하기도 어렵습니다. 움베르토 에코는 '작품을 내놓고 나면 작가는 죽어야 한다'라고도 했지요. 작품이라는 '텍스트'를 어떻게 '해석'하고, 그 해석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지휘자 로저 노링턴은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제가 지휘자로서 모차르트를 공부한 게 60년이거든요. 구석구석을 다 공부했어요. 처음에는 모차르트의 음악 언어를 신성한 것처럼 대했는데, 지난 세기에 다들 이런 식으로 오류를 범했지요. 그러니까 무슨 교회음악처럼 엄숙하고 고풍스러운 소리가 났단 말이에요. 카라얀을 생각해 보라고요. '음악이 즐겁지 않으면 뭔가 잘못된 것이다'가 요즘 제 좌우명이에요. 모차르트도 아버지한테 이 말을 듣고 곡을 복잡하게 쓰지 않도록 주의했다고 하지요. 궁정에서는 향락이 먼저였거든요."

오는 10월 1일, 역사주의 연주를 대표하는 우리 시대의 거장 지휘자 로저 노링턴이 취리히 체임버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통영국제음악당을 찾습니다. 역사주의 연주에 익숙지 않은 사람은 이들의 연주를 듣고 낯설다고 느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학술적 연구 성과를 어디까지 수용하고 작품 해석에 반영하느냐 하는 문제에 정답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열린 텍스트와 열린 마음이겠지요.

2014년 9월 11일 목요일

지휘자 로저 노링턴 인터뷰

통영국제음악재단 매거진 『Grand Wing』에 실린 인터뷰입니다.


Q. 지난 3년간 취리히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를 맡으셨습니다. 오늘날 이 앙상블의 위치는 어디쯤 있나요?

A. 연주력은 유럽 최고 수준입니다. 프레이징, 다이내믹, 정확성, 음색과 템포 등에서 대단한 음악성과 장인성을 보입니다.

Q. 이른바 '역사주의' 연주를 하는 지휘자로 세계적으로 손꼽히시는데요, 그게 어떤 의미인가요?

A. 역사주의 연주는 저에게 참 소중해요. 역사주의 연주란 시대악기를 사용한 연주와 그에 따른 모든 요건을 '현대' 환경에 되살리는 연주를 말합니다. 연주자 수와 배치, 활놀림, 프레이징, 템포와 아티큘레이션(articulation)까지 역사적 고증에 맞게 하는 것이지요. 가장 중요한 것은 이른바 투명한 소리입니다. 이 말은 지속적인 비브라토를 쓰지 않는다는 뜻으로, 1920년대부터 지난 세기까지 해왔던 바와는 다르지요.

※ 편집자 주: 시대악기란 작곡가가 작품을 쓸 당시에 쓰이던 악기를 뜻하는 말이다. 역사주의 연주라는 표현은 초기에 '원전 연주' 또는 '정격 연주'라 불리던 연주 방법으로, '원전'(原典) 또는 '정격'(正格; authentic)이라는 말에 기존 주류 연주 방식이 틀렸음을 암시하는 독선적인 뜻이 있음을 경계해 오늘날에는 '역사주의 연주'라는 가치중립적 표현을 사용한다. 로저 노링턴이 사용한 원어 표현은 "Die historisch informierte Aufführungspraxis"(역사적인 사실에 근거한 연주)이다.

Q. 왜 비브라토가 문제인가요?

A. 모차르트의 아버지인 레오폴트 모차르트는 비브라토를 자주 쓰면 마치 몸에 열이 있는 것처럼 들린다고 썼어요. 이런 헐리우드스럽고 글래머러스한 소리로 현혹하는 일은, 역사적인 견지에서나 훌륭한 연주를 위해서나 피해야 합니다. 비브라토를 쓰지 않으면 소리가 투명해져서 마치 악기들 사이에 있는 것처럼 들리지요.

Q. 취리히 체임버 오케스트라 2014/2015 시즌 공연에는 어떤 곡들이 연주되나요?

A. 지난 시즌에는 스트라빈스키, 브리튼, 베르디·바그너 탄생 200주년 기념 음악회, C. P. E. 바흐, 글루크, 로카텔리, 라모와 하이든 등을 연주했습니다. 이번 시즌은 매우 '위험한' 도전인데요, 모차르트 작품만으로 시즌 프로그램을 짰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이지요. 제가 드레스덴이나 도쿄에서 모차르트를 연주했을 때만큼은 관객이 차지 않겠어요?

Q. 한 곡을 연주하기 전에 어떻게 준비하시나요?

A. 요즘은 악보만 읽어요(웃음). 제가 지휘자로서 모차르트를 공부한 게 60년이거든요. 구석구석을 다 공부했어요. 처음에는 모차르트의 음악 언어를 신성한 것처럼 대했는데, 지난 세기에 다들 이런 식으로 오류를 범했지요. 그러니까 무슨 교회음악처럼 엄숙하고 고풍스러운 소리가 났단 말이에요. 카라얀을 생각해 보라고요. '음악이 즐겁지 않으면 뭔가 잘못된 것이다'가 요즘 제 좌우명이에요. 모차르트도 아버지한테 이 말을 듣고 곡을 복잡하게 쓰지 않도록 주의했다고 하지요. 궁정에서는 향락이 먼저였거든요. 1780년에 아버지 모차르트가 편지에 쓴 말을 보면, 음악가만을 위해서 곡을 쓰지 말고 '막귀' 관객들도 생각해라, 말하자면 대중적이고 귀에 쏙 들어오는 곡을 쓰라고 했어요.

Q. 음악가와 지휘자로서 본인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A. 작곡가가 제 연주회에 와서 "좋아, 이게 내 음악이지!"라고 말해준다면 참 행복하겠지요. 재창조자로서 예술가는 말 두 마리를 동시에 몰면서 균형을 잡는 사람과 같습니다. 한 마리는 지성과 음악학, 다른 한 마리는 상상력과 감성과 열정이지요.

Q. 한가한 때에는 뭘 하시나요? 음악 할 때와 마찬가지로 균형을 잡나요?

A. 1년에 26주는 지휘자로 일하고 나머지 반은 자유시간으로 가족과 함께 시골에서 지냅니다. 이렇게 한 지 거의 20년이 됐어요. 휴식 삼아 산책을 하고 책을 읽거나 배를 탑니다. 또 말과 개를 돌보고 먹이를 주지요. 벌들이 잘 있는지 확인하면서 정원을 가꾸고요. 마지막으로 스무 살 먹은 아들과 함께 늙은 몸을 굴리는 일도 소홀히 하지 않아요.

(페터 레바이 글 · 김원철 이혜련 옮김)

2011년 6월 27일 월요일

베토벤 교향곡 5번 /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 ― 넬손 괴르너 / 성시연 / 서울시향

2011-05-19 오후 08:00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 : 성시연
피아노 : 넬손 괴르너

드보르자크, 사육제 서곡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
베토벤, 교향곡 5번

언제나 그렇듯이, 무삭제판 ㅡ,.ㅡa


음악을 들으면서 지휘 흉내를 낸 일이 있는가. 베토벤 교향곡 5번이야말로 '남이 보면 안 되는 지휘 생쇼'를 하기에 가장 신 나는 곡일 터. 그런데 실제로 지휘하려면 '운명 모티프'라 불리는 첫 두 마디부터 만만치 않다. 처음부터 빠른 음형이 그것도 여린박으로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예비박을 어찌 줘야 할까? 8분음표로 시작하므로 8분음표만큼 예비박을 주면, 비팅(beating)이 너무 날카로워서 악단이 첫 박으로 착각하기 딱 좋다. 지휘자에 따라서는 아예 예비박이 아닌 예비 '마디'를 세 마디나 넣어 헷갈리지 않게끔 하기도 하지만, 실용적이기는 해도 모양새가 영 좋지 않다.

지휘자 성시연은 지휘봉을 살짝 올렸다가 멈춘 다음 날카로운 예비박을 주는 모범적인 지휘를 했다. 그런데 아뿔싸! 몇몇 단원이 반 박자 빨리 나오는 바람에 이른바 '만득이 현상'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곡이 워낙 이러니 실연 때 이런 일이 곧잘 일어난다. 마침 이날 프라하 스메타나 홀에서는 마이클 틸슨 토머스가 지휘하는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같은 곡을 연주했는데, 방송 녹음을 들어 보니 바이올린 연주자 하나가 반 박자도 아니고 한 박자나 빨리 튀어나오는 사고 현장이 마이크에 또렷하게 잡혔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따따따 따안―' 할 때 긴 음에는 늘임표(fermata)가 붙어 있다. 얼마만큼 늘여야 할까? '늘임표'라는 말에 맞게 감으로 대충 늘일 수도 있겠고, 제시부 끝과 코다에서 비슷한 음형이 나올 때 늘어난 음 길이를 근거로 한 마디를 세 마디로 늘일 수도 있겠다. 음반을 들어 보면 아예 늘임표를 무시하는 연주도 있다. 성시연은 감으로 대충 늘인 듯했으며, 둘째 마디를 네 마디쯤으로 늘이고 넷째-다섯째 마디를 다섯 마디쯤으로 늘였다. 이처럼 이 곡을 들어보면 처음부터 지휘자가 여러 가지로 고민했을 흔적이 드러난다.

악기 편성도 문제다. 옛날에는 악보에서 지시한 것보다 훨씬 큰 편성으로 연주하는 일이 잦았지만, 요즘은 악보 지시를 그대로 지키는 일이 보통이다. 이날 서울시향은 호른 한 대를 더블링(doubling)한 것을 빼면 악보에서 지시한 2관 편성을 그대로 지켰다. (현악기는 글쓴이가 객석에서 세어 보니 5-5-4-4-3 편성이었다.) 이른바 '역사주의 연주'가 힘을 얻으면서 생긴 유행으로, 정명훈 지휘자도 시향 개편 초기에 베토벤 교향곡 전곡을 연주하면서 9번 교향곡을 뺀 모든 곡을 악보대로 편성했다. 지난해 9월 베토벤 교향곡 3번을 지휘한 로렌스 르네스도 비슷한 시도를 한 바 있다.

관습적으로 금관을 덧붙이는 등 악보대로 연주하지 않던 대목을 악보 그대로 연주한 것 또한 역사주의를 따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를테면 1악장 제시부 제2 주제를 여는 E♭ 장조 호른 음형은 재현부에서 바순이 C 장조로 연주하는데, 이 곡이 나왔을 당시 호른으로 연주할 수 없는 음형이라서 베토벤이 할 수 없이 호른이 아닌 바순에 맡겼다는 주장이 있다. 4악장 마디 132에서는 비슷한 근거로 악보에 없는 금관 음형을 덧붙여 연주하는 관습이 있었다. 작품이 끝날 무렵에 트럼펫이 주선율을 연주하도록 고치기도 한다. 이날 서울시향은 이 대목을 모두 악보대로 연주했다.

이처럼 소편성으로 연주하고 금관을 덧붙이지도 않으면 투명한 음색과 날렵한 리듬을 살리기에 좋다. 그러나 대형 연주회장에서는 음량이 작아서 단점이 따르기도 한다. 연주회장 음향이 그다지 좋지 않으면 더욱 그렇다.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은 음향이 국내 최고 수준이라고들 하지만, 외국에서 이름난 연주회장과 견주면 그다지 좋은 연주회장이라 하기 어렵다. 글쓴이는 이날 1층 뒷자리에 앉은 탓에 이런 단점을 크게 느꼈다. 귀로 들은 것만으로 판단하자면, 이날 연주는 소리가 둥글둥글하고 마이크로다이내믹스(micro-dynamics)에 심각한 문제가 있어서 작품과 어울리지 않는 곳이 많았다. 물론 이것은 글쓴이가 음향적 왜곡을 경험한 것으로 실제 연주는 그렇지 않았음이 틀림없다.

요즘 유행하는 말 가운데 '중2병'이라는 것이 있다. 사춘기 시절 과대망상을 희화화하는 말이며 맥락에 따라 욕설에 가까운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중2병도 예술로 승화하면 걸작이 될 수 있다. 이를테면 시사평론가 한윤형은 타나카 요시키가 쓴 대하소설 『은하영웅전설』을 두고 "가장 탁월한 중2병 텍스트"라 논평하며 『삼국지』와 견주기도 했다. 게다가 어찌 보면 서양 낭만주의 시대에는 중2병이 시대정신이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가장 탁월한 중2병 작곡가는 쇼팽과 바그너다. '자폐형 중2병'과 '민폐형 중2병'으로 성격은 거꾸로지만.

쇼팽 피아노 협주곡을 협연한 넬손 괴르너는 가장 탁월한 '중2병 아티큘레이션'을 들려주었다. 툭 건드리면 울어버릴 듯한 표정이 묻어나는 프레이징, 때때로 너무하다 싶을 만큼 흔들리는 루바토, 그리고 물결에 되비친 햇살처럼 반짝이는 음색이 알맞게 어우러져 그야말로 '중2병스러움'이 예술로 승화했다. '중2병'이라는 말이 마음에 안 든다면 '옴므 파탈'(Homme fatal)이라고 불러도 좋겠다.

2010년 10월 26일 화요일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7번 / 베토벤 교향곡 3번 ― 김선욱 / 로렌스 르네스 / 서울시향

2010-09-16 오후 08:00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 : 로렌스 르네스 Lawrence Renes, conductor
협연 : 김선욱 (피아노) Sunwook Kim, piano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7번 Mozart, Piano Concerto No. 27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 Beethoven, Symphony No. 3 "Eroica"

언제나 그렇듯이, 무삭제판 ㅡ,.ㅡa


'원전연주' 또는 '정격연주'라는 말이 유행하며 격렬한 찬반 논란이 일어난 지도 제법 오래되었다. 학술적 뿌리를 찾자면 수십 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고, 한국에서만 해도 1985년에 원전연주 첫 시도가 있었다고 한다. 요즘은 '원전'이네 '정격'이네 하는 말이 교조적이라 하여 시대 악기 연주(Period Performance) 또는 역사주의 연주(Historically Informed Performance) 등으로 고쳐 부른다.

그리고 요즘은 굳이 옛 악기와 옛 조율방식을 쓰지 않고도 옛 연주법 등을 현대 악기에 응용하는 연주도 드물지 않다. 아바도, 래틀, 하이팅크 등 역사주의와 관련이 없을 듯한 지휘자가 녹음한 베토벤 교향곡 음반에서도 이러한 유행을 확인할 수 있고, 정명훈도 서울시향 베토벤 사이클에서 역사주의를 일부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를테면 정명훈-서울시향이 베토벤 교향곡 9번을 연주할 때 4악장 도입부에서 트럼펫이 악보에 없는 주선율을 연주하는 관행을 따르지 않는 것도 역사주의와 관련이 있다.

이날 서울시향을 지휘해 베토벤 교향곡 3번을 연주한 로렌스 르네스 또한 역사주의 유행을 따랐다. 호른을 한 대 추가한 것을 빼면 악보에서 지시한 2관 편성을 정확히 지켰고 현악기 숫자도 평소보다 줄였다. 현악기는 글쓴이가 객석에서 세어본 바로는 6-5-4-3-2 편성이었는데, 5-5-5-5-4 등 관현악곡을 연주할 때 곧잘 쓰이는 편성과 견주면 새로웠다. 저음 현을 줄여 역사주의에 걸맞은 날렵한 소리를 노리면서도 바이올린은 오히려 더 늘여서 대형 연주회장에서도 음량이 너무 모자라지 않게끔 하려는 뜻으로 풀이되며, 결과는 썩 훌륭했다.

현악기 배치 또한 널리 쓰이는 미국식이 아니라 제1 바이올린과 제2 바이올린을 무대 양쪽에 펼쳐 놓고 첼로 등을 가운데로 모으는 유럽식이었다. 이런 배치는 악단 기량이 모자라면 앙상블이 엉망으로 망가질 수 있다는 단점이 있으나 이날 연주는 제법 훌륭했다. 사실은 지난해 11월에 정명훈이 지휘한 모차르트 《구도자의 엄숙한 저녁기도》에서도 비슷한 배치를 쓴 바 있지만, 이날 연주에서는 그때보다 큰 편성으로 게다가 객원 지휘자가 지휘해도 훌륭한 앙상블이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는 대목이 뜻깊다.

유럽식 악기 배치는 제1 바이올린과 제2 바이올린이 선율을 주고받으면서 '스테레오' 효과를 내기 좋다는 큰 장점이 있을 뿐만 아니라 작곡가들이 이런 배치를 고려하고 쓴 곡도 많다. 이날 연주에서는 무엇보다 푸가토에서 그 장점이 두드러졌으며, 복잡하게 얽힌 성부 하나하나가 무대 위에 고르게 늘어서서 사방으로 통통 튀어 오르는 듯한 느낌이 매우 멋있었다.

비브라토를 줄여 살짝 거칠지만 산뜻한 음색을 낸 것도 역사주의 연주가 보이는 특징인데, 이날 연주에서는 비브라토가 줄기는 했으나 '기름기'가 조금 덜 빠진 소리를 냈다. 지휘자가 의도한 바일 수도 있고, 올곧은 소편성이 아닌 탓도 있겠고, 어쩌면 서울시향이 아직 이런 연주에 익숙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연주회장 음향을 생각하면 이런 음색도 나쁘지 않았다.

템포는 빨랐다. 베토벤 시대 또는 그 이전 현악기로는 호흡이 긴 프레이즈를 만들기 어려우므로 템포가 빠를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연주법이 결정될 때가 잦다. 그 느낌을 현대 악기로 연주할 때에도 살리려는 태도 또한 역사주의 연주가 보이는 중요한 특징이다. 그밖에 날렵한 리듬과 악센트 등도 이날 연주에서 나타난 역사주의적 특징이었다.

베토벤 교향곡 3번을 시대 악기로 연주할 때와 현대 악기로 연주할 때 차이가 가장 두드러지는 곳을 한 곳만 꼽으라면 1악장 클라이맥스에서 제1 바이올린이 F-F♯-G-A♭-G-F 선율을 연주하는 마디 665~70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폭발하는 듯한 스포르찬도로 음악적 긴장감을 순식간에 끌어올리는 역할을 현악기가 이끌어야 하는데, 이 대목을 날렵한 맛이 떨어지는 현대 악기로 연주하면 제맛을 내기가 쉽지 않아서 호른과 트럼펫을 잔뜩 부풀린 단순한 크레셴도에 그치기 쉽다. 이날 연주는 역사주의적 방향에 힘입어 현대 악기 연주치고는 스포르찬도가 제법 훌륭했다.

김선욱이 협연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7번은 오케스트라가 피아노에 맞춰 준다기보다는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서로 반주를 하는 듯한 기막힌 어울림이 인상 깊었다. 김선욱은 어려서부터 학교 친구들 반주를 도맡아 하기로 이름이 높았다는데 그 덕분일까. 게다가 고전주의 시대 작품은 해석과 관련해 고민할 곳보다는 맛깔스러운 앙상블에 마음 쓸 곳이 많을 때가 잦아서 김선욱의 '반주 본능'이 더욱 빛나는 듯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제 목소리 낼 곳은 다 내는 놀라운 솜씨를 보여 주었으니, 과연 김선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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