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든: 현악사중주 f단조 Op. 20-5
하이든의 Op. 20은 현악사중주 6곡을 모아 출판한 작품집으로, 현악사중주라는 장르가 생겨난 지 얼마 되지 않은 1772년에 작곡한 것이다. 6곡 모두 작곡 연도를 믿기 어려울 만큼 혁신적인 어법으로 가득하고, 그 가운데 f단조 현악사중주는 하이든 자신의 작품목록상으로는 Op. 20 가운데 첫 번째 작품이라는 점에서 음악사적으로 더욱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소나타 형식으로 된 1악장은 한 프레이즈의 끝을 다음 프레이즈의 시작으로 삼거나 주제를 반복할 때 박절 구조에 변형을 주는 등 4마디 단위로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단순함을 피해 가는 기법이 시대를 크게 앞서가고 있다. 미뉴에트와 트리오 형식으로 된 2악장에서도 때때로 박절 구조가 규칙성을 벗어나면서 '미뉴에트'라는 춤곡 이름이 무색해지곤 한다. 3악장은 4개 악장 중 유일하게 장조로 되어 있으며, 시칠리아노 춤곡 리듬으로 된 주제 선율이 규칙적인 리듬 구조에 따라 변주되는 짜임새로 되어 있다.
4악장은 느린 주제와 빠른 주제가 병진행하는 이중푸가이다. 하이든은 자신의 작품목록을 기준으로 Op. 20의 첫 세 곡 모두 마지막 악장에서 푸가를 사용했는데, 아마추어 음악인을 위한 '엔터테인먼트' 성격이 짙었던 초기 현악사중주에 푸가를 사용한 일은 그 자체로 혁신이었다. 현악사중주 역사상 처음으로 첼로가 제대로 된 '선율'을 연주하는 등 4개 악기의 독립적 성격이 특히 4악장에서 극대화되고 있으며, 또한 고전주의 시대에 새롭게 음악적 표현 요소로 떠오른 '셈여림'을 푸가 기법에 녹여냄으로써 바흐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푸가를 처음으로 보여준 작곡가가 다름 아닌 하이든이라는 사실이 이 작품으로 증명된다.
베토벤: 현악사중주 5번 A장조 Op. 18-5
베토벤은 1798년에서 1800년까지 작곡한 현악사중주 6곡을 Op. 18로 묶어 1801년에 발표했다. 6곡 모두 베토벤의 초기 양식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하이든과 모차르트 등의 영향이 뚜렷이 나타난다. 이 가운데 A장조 현악사중주는 작곡 시기가 1799년으로 추정되는데, 비슷한 시기에 작곡한 다른 작품과 견주어도 베토벤답지 않은 단순한 짜임새로 되어 있다. 베토벤이 불과 몇 년 뒤에 템페스트 소나타(1801~2년)와 교향곡 3번(1802~4년)을 작곡한 사실을 헤아리면 그 양식 변화가 놀랍다.
1악장은 소나타 형식으로 되어 있고, 발전부와 재현부를 묶어 되풀이하는 짜임새가 특이하다. 2악장은 미뉴에트와 트리오 짜임새이며 음악에 맞춰 실제로 춤을 출 수 있을 만큼 프레이즈 구조가 규칙적이다. 3악장은 주제와 변주 형식, 4악장은 소나타 형식이다.
이 곡에서 그나마 가장 베토벤다운 과감함이 느껴지는 곳은 4악장 발전부로, 본디 A장조였던 조성이 발전부에서 f♯단조로 변하고, 4마디 단위로 규칙적으로 반복되던 프레이즈가 3마디 단위로 변했다가 돌아오며, 또한 발전부의 전체적인 규모가 크다.
슈만: 피아노 오중주 E♭장조 Op. 44
슈만은 현악사중주 편성에 피아노를 더한 이 작품으로 큰 성공을 거두며 '피아노 오중주'라는 '장르'를 정착시켰다. 이후 브람스, 드보르자크, 포레, 쇼스타코비치 등이 피아노 오중주곡을 남겼고, 슈만에 앞서 바이올린 · 비올라 · 첼로 · 더블베이스에 피아노를 더한 편성으로 슈베르트가 작곡한 '송어' 오중주는 결과적으로 편성이 특이한 작품이 되었다.
1악장은 소나타 형식, 2악장은 c단조 장송행진곡 주제와 서정적인 C장조 주제가 교차하는 짜임새, 3악장은 트리오가 두 번 나오는 스케르초이다. 2악장을 제외한 3개 악장이 모두 E♭장조로 되어 있는 점이 특이하고, 2악장에 c단조 장송행진곡이 나오는 것까지 함께 생각하면 베토벤 교향곡 3번 E♭장조 '영웅'을 의식한 구성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4악장은 자유분방한 소나타 형식이다. 슈만답게 과감한 화성 진행과 더불어 코다에 푸가토와 이중푸가토를 사용하며 악곡을 장대하게 부풀려 나가는 점이 참신하며, 그 와중에도 4마디씩 규칙적으로 나뉘는 프레이즈를 일관되게 되풀이하는 점이 특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