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8월 27일 월요일

베토벤: 피아노 트리오 E♭장조 Op. 70-2 / 라벨: 피아노 트리오 a단조

베토벤: 피아노 트리오 E♭장조 Op. 70-2


E플랫 장조는 전통적으로 거룩한 음악에 곧잘 쓰이던 조성이다. 베토벤은 교향곡 3번 '영웅'에서 눈부시게 빛나는 E플랫 장조 화음으로 신의 광휘를 표현하기도 했다. '영웅 교향곡'에서 인류가 신에게 다가가는 과정에 장대한 투쟁이 필요했던 것과 견주면, 피아노 트리오 E플랫 장조 Op. 70-2에서는 음악에 갈등이 없다시피 한 것이 특이하다. 이 작품에서 인류는 이미 파르나소스 산에 올라 있는 것 같다.

1악장은 c단조로 된 도입부로 시작하지만, '어둠'은 얼마 안 가서 사라진다. E플랫 장조로 된 주제는 세 악기가 주도권을 바꿔 가는 과정에서 '주제군'(thematic group)이 된다. 여전히 E플랫 장조 영역에 속하지만 제2 주제로 착각하기 쉬운 주제가 나오고, B플랫 장조로 된 제2 주제군은 제1 주제군과 딱히 대조적이지 않은 까닭에 마치 1악장 전체가 하나의 주제군으로 된 것처럼 느껴진다. 다만, 제2 주제군에 앞서 나오는 도입부 주제가 음악의 흐름을 살짝 끊으며 변화를 매개한다.

2악장은 C장조 주제와 c단조 주제가 교차하는 이중 변주곡이고, 3악장은 미뉴엣과 트리오 짜임새이다. 4악장에서는 얼핏 짧은 도입부에 이어 주제 선율이 나타나는 듯하지만, 사실은 '도입부' 주제가 실질적으로 음악을 이끌어 가는 역할을 한다. 이 도입부 주제는 마치 자동차의 액셀러레이터 페달을 밟는 듯한, 또는 베토벤 시대에 맞게 말하자면 마차의 속력을 빠르게 높이는 듯한 느낌이며, 그와 견주면 '제1 주제'는 관성 위주로 안정감 있게 달리는 듯한 느낌이다. 제2 주제는 더욱 속도를 높여 마구 달려나가는 듯하고, 그렇게 끝을 향해 달리는 길에 E플랫 장조의 고양감이 함께한다.


라벨: 피아노 트리오 a단조


라벨은 에스파냐와 프랑스 사이에 걸쳐 있는 바스크 지방의 민속 음악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파리에서 작곡에 집중하기 어렵다고 느낄 때마다 바스크의 시골 마을인 생장드뤼에 갔으며, 어머니가 바스크계이기도 했다. 그리고 피아노 트리오 a단조에서 처음부터 나오는 특이한 리듬이 바스크 춤곡 리듬이다.

1악장과 4악장은 바스크풍 리듬, 피아노로 된 저음 반복음형(오스티나토)이 '발전부'를 대신하는 짜임새, 제시부-발전부-재현부의 경계를 일부러 흐려 놓으며 몽환적인 느낌을 더한 기법 등이 닮은꼴이다. 3악장은 파사칼리아이며, 변주되는 주제가 절정을 향해 나아갔다가 조금씩 긴장감을 해소해 나가는 아치(arch)형 짜임새이기도 하다.

2악장 제목으로 쓰인 '판툼'(Pantoum)은 본디 말레이 지방의 정형시를 뜻한다. 4행 1연을 기본으로 하여 앞선 연의 2행과 4행이 다음 연의 1행과 3행으로 되풀이되고, 마지막 연 마지막 행에서 1행 1연을 되풀이하며, 이를테면 'ABCD BEDF EGFH GCHA'와 같은 짜임새이다. 라벨은 두 가지 독립된 악구를 나란하고도 어긋나게 진행함으로써 '판툼'을 음악으로 옮겼다. 그 결과 리듬이 매우 복잡해졌고, 중간 부분에서는 바이올린과 비올라가 3/4박자, 피아노가 4/2박자로 마디 구조마저 독립적으로 움직힌다. 전체적으로는 스케르초와 트리오 짜임새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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