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현악사중주 4번 c단조 Op. 18-4
베토벤은 1798년부터 1800년까지 작곡한 현악사중주 6곡을 'Op. 18'로 묶어 1801년에 발표했다. 작곡 시기는 작품번호와 별개이며, c단조 현악사중주는 작곡 시기가 명확하지 않으나 가장 나중에 작곡했을 가능성이 크다. Op. 18로 묶인 다른 곡들에 하이든과 모차르트 등의 영향이 뚜렷한 것과 견주면, c단조 현악사중주는 베토벤의 초기 양식에서 중기 양식으로 변화하는 과도기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좀 더 특별하다.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1악장에서 제2주제로 나아가는 과정의 복잡함이다. 제1주제에 이어지는 경과구는 '허수아비' 경과구로서 제2주제의 조성인 E플랫 장조를 슬쩍 내비치는 수준에 그치고, E플랫 장조 딸림화음(V₇/IV)으로 시작해 E플랫 장조 으뜸화음으로 나아가는 진짜 조바꿈이 마치 제2주제처럼 등장하는 '제2경과구'에서 일어난다.
제1주제의 변형처럼 등장하는 제2주제는 제2경과구와 그다지 뚜렷하게 대비되지 않을 뿐 아니라 B플랫장조로 변화했다가 다시 E플랫장조로 나아가는 경과구적 성격마저 보인다. 그리고 '이것이 진짜 제2주제'라고 선언하는 듯한 음형이 나타나 자연스럽게 소종결구로 이어진다. 발전부에서는 '두 번째 제2주제'가 아닌 '첫 번째 제2주제'가 나온다. 제시부의 복잡함에 비해 발전부는 단순한 편이다.
'스케르초 같은 안단테'(Andante scherzoso)라는 나타냄말이 붙은 2악장은 간소화된 소나타 형식으로, 스케르초답지 않게 느린 템포와 푸가에 가까운 정교한 대위법이 특징적이다. 3악장은 미뉴에트이면서도 내용은 스케르초에 가깝다. 론도 형식으로 된 4악장은 빠른 음형으로 마구 달리는 가운데 c단조의 어둠에서 C장조의 빛으로 나아가는 짜임새이다.
드보르자크: 현악사중주 12번 F장조 "아메리카"
드보르자크는 뉴욕에 있던 아메리카 국립음악원의 초청으로 그곳 학장이 되었다. 채용 조건으로 미국 오페라 부흥에 힘쓸 것과 특히 롱펠로 서사시 ‹하이아와사의 노래›(The Song of Hiawatha)에 바탕을 둔 작품을 쓸 것 등이 있었다. 드보르자크는 아메리카 토착민의 영웅 '하이아와사'를 주인공으로 하는 이 작품의 체코어 번역판을 읽고 감명받았다고 하며, 이를 바탕으로 오페라를 쓰기에 앞서 실험적인 작품으로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를 작곡했다. (그러나 오페라는 결국 쓰지 못했다.)
그 직후 드보르자크는 '아메리카' 사중주를 작곡하고 악보에 "아메리카에서 작곡한 두 번째 작품"이라 썼다. 이 곡은 '신세계' 교향곡과 달리 ‹하이아와사의 노래›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는 듯하지만, 작곡 시기와 양식 등에서 '신세계' 교향곡과 사실상 쌍둥이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 느껴지는 '아메리카 느낌'은 작곡가가 '신대륙' 문물과 자연에 깊은 인상을 받은 결과라 할 수 있다. 흑인 영가 또는 아메리카 토착민 음악과의 관련성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으나 많은 지지를 받지는 못하며, 작품에 두드러지는 5음 음계는 세계 각국 민요에 흔히 나타나는 특징이다.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귀에 쏙쏙 들어오는 선율과 리듬으로 가득하다. 악곡의 구조를 파악하는 일은 학술적 목적이 아닌 이상 굳이 필요 없고, 감상자에게는 그저 음악에 몸을 맡기는 것으로 충분하다. 19세기 말 미국의 드넓은 자연과 싱그러운 공기가 음악과 공명하며 감동을 더한다.
멘델스존: 현악사중주 6번 f단조 Op. 80
멘델스존 음악에는 대개 그늘이 없다. 모차르트가 밝은 웃음 속에 슬픔을 감추는 것과 달리 멘델스존은 순수하게 해맑다. 그는 부유한 집안에 태어나 남부럽지 않게 자랐고, 천재적인 음악 재능을 타고나 어려서부터 음악가로서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누나의 죽음은 멘델스존에게도 커다란 시련이었던 듯하다. 두 달쯤 뒤에 그가 작곡한 현악사중주 6번 f단조는 슈베르트 '죽음과 소녀'를 연상시키는 염세적인 정서와 악마적인 광기로 가득해 그의 해맑음을 아는 모든 사람을 충격에 빠트렸다. 그리고 과로 등으로 몇 년새 악화하던 건강이 급격히 나빠진 멘델스존은 몇 달 뒤 향년 38세로 요절했다.
1악장은 소나타 형식, 2악장은 스케르초와 트리오 형식, 3악장은 세도막 형식, 4악장은 론도-소나타 형식이다. 1악장에서 빠른 트레몰로 음형으로 박박 긁어대는 현이 악마적인 쾌(快)를 보여준다면, 2악장에서는 기괴한 화성과 리듬 등이 악마적인 냉소를 보여준다. 3악장에서는 느리고 애잔한 선율이 통곡으로 변하고, 4악장에서는 쫓기는 듯 달려가는 음형이 절박함을 더해 가던 끝에 슈베르트 같은 '죽음의 춤'으로 귀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