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 24일 금요일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 브람스 교향곡 1번 ― 다비트 아프캄 / 바이바 스크리데 / 서울시향

2010-11-18 오후 08:00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 : 다비트 아프캄 David Afkham, conductor
협연 : 바이바 스크리데 (바이올린) Baiba Skride, violin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Beethoven, Violin Concerto
브람스, 교향곡 1번 Brahms, Symphony No. 1

언제나 그렇듯이, 무삭제판 ㅡ,.ㅡa

본디 이날 지휘자가 마크 위글스워스였는데, 이 인간이 일정 취소하고 인디애나폴리스 오케스트라로 갈아탔음. 공식 사유는 건강 문제. 잊지 않겠다. -_-^


서양음악에서 셈여림이 음악적 표현 수단으로 본격적으로 주목받은 때는 대략 18세기 중반부터였다. 악기가 크게 개량되고 터키(오스만 튀르크)에서 타악기가 수입되었으며, 여기에 고전주의 음악 양식이 맞물려 나타났다. 오늘날 쓰이는 셈여림 기호는 대부분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등이 만들었다. 그리고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에도 이러한 흐름에 따른 뚜렷한 셈여림 대비가 나타난다.

협연자 바이바 스크리데는 독주 바이올린으로도 뚜렷한 셈여림 대비를 만들었고, 그 중심에 이른바 '소토 보체'(sotto voce)가 있었다. 소토 보체란 본디 성악에서 쓰는 말로 여린 목소리를 뜻한다. 그러나 '피아니시모' 등과는 달리 그저 소리를 작게 내라는 뜻이 아니라 여린 소리로도 음악적 긴장감을 잃지 말고 돋보이게 하라는 뜻이다.

바이올린으로 가장 멋진 소토 보체를 뽐내는 연주자로는 바딤 레핀이 있는데, 윗활을 곧잘 써서 매끄럽게 빛나는 음색에 어찌 들으면 능글맞은 포르타멘토를 곁들이곤 한다. 스크리데는 그와 달리 가냘프게 늘어지는 소리를 들려주었으며, '소토 보체'라는 말 그대로 연주가 아닌 '노래'를 하는 듯했다.

그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1악장에서 발전부를 한참 지나 g단조로 바뀌는 마디 330부터였다. 스크리데는 이곳에서 템포를 뚝 떨어트려 여린 소리를 내다가 오케스트라가 피치카토로 연주하는 마디 361에 이르러서야 아첼레란도 및 크레셴도를 거쳐 재현부로 돌아왔고, 그로써 재현부 으뜸화음이 눈부시게 돋보이기도 했다.

2악장에서는 둘째 변주가 끝날 무렵 쉼표와 셋잇단음이 네 차례 이어지는 대목(마디 27)에서 소토 보체와 함께 디미누엔도, 랄렌탄도, 루바토를 알맞게 섞어서 마치 울먹이는 듯한 효과를 불러온 대목이 가슴 뭉클했다.

3악장에서는 소토 보체를 빼놓더라도 곳곳에서 성악적 감수성이 묻어나는 아티큘레이션(articulation)이 돋보였고, 코다에서 그동안 쌓인 음악적 긴장감이 으뜸화음을 만나 폭발하면서 그 에너지가 독주 바이올린 f# 음에 집중되는 마디 331이 가장 훌륭했다.

카덴차는 크라이슬러 것을 연주했으며, 다만 2악장 카덴차는 첫 마디 아르페지오만 연주하고 넘어갔다.

지휘자 다비트 아프캄은 지난 9월 베토벤 교향곡 3번을 지휘한 로렌스 르네스처럼 현을 6-5-4-3-2로 편성했고, 악기 배치도 유럽식으로 제1 바이올린과 제2 바이올린을 좌우로 나누고 첼로 등을 가운데로 모았다. 로렌스 르네스만큼은 아니더라도 이 또한 역사주의 연주에 영향받은 바 없다고 말하기는 어렵겠다.

브람스 교향곡 1번에서는 현을 7-7-6-5-4로 부풀렸으며, 다만 관악기는 호른을 한 대 더블링(doubling)한 것을 빼면 2관 편성을 지켰다. 저음 현으로 갈수록 가볍게 편성한 탓에 이를테면 1악장에서 때때로 저음 현 음형이 잘 안 들리는 등 단점이 드러나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은 전체적으로는 장점이 되었고, 제1 바이올린과 제2 바이올린이 좌우로 나뉜 배치에서 오는 '스테레오 효과'가 두드러지게끔 했다.

이를테면 3악장 곳곳에서 '스테레오 효과'가 멋졌으며, 4악장 이른바 '알프스 호른' 대목에서는 좌우로 펼쳐진 바이올린 소리가 물결에 반짝이는 아침 햇살처럼 빛났다. 4악장 코다에서 절정을 바로 앞두고 '음 하나하나를 매우 또렷하게'(ben marcato) 지시가 있는 마디 395-406에서는 '스테레오 효과'와 함께 마치 벌판에서 말 달리는 듯한 현 소리가 가장 돋보였다.

템포는 조금 빨랐고, 그 가운데 3악장이 제법 빨랐다. 4악장에서는 '알프스 호른' 대목과 제1 주제를 지나 경과구(transition)로 넘어가기에 앞서 아첼레란도를 주었는데, 그 뒤로 웬만하면 템포를 늦추지 않고 꾸준히 달리면서 음악적 긴장감을 차곡차곡 쌓아 나가다가 마지막에 크게 터트렸다.

호른이 '알프스 호른' 대목을 비롯한 곳곳에서 깔끔한 연주를 들려주었고, 이 곡에서 제법 비중이 높은 악기인 오보에도 훌륭했다. 그 가운데 오보에 수석 이미성서울시향이 개편한 뒤로 악단과 함께 꾸준히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니 더욱 칭찬할 만하다. 이미성은 처음부터 직책이 '수석'은 아니었다. 그러나 음악적 표현력이 나날이 좋아져서, 지난해 1월 연주회 리뷰에서 글쓴이는 이미성이 "벽을 넘은 듯한 모습"을 보였다고 썼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미성은 수석 단원이 되었으며, 이날은 더욱 멋진 연주를 들려주었다.

서울시향정명훈이 지휘할 때 가장 뛰어남은 말할 나위 없다. 그러나 '젊은 악단'이기 때문일까. 서울시향은 젊고 솜씨 있는 지휘자를 만났을 때 깜짝 놀랄 만한 연주를 들려주기도 한다. 또 요즘은 전 세계적으로 지휘자 세대교체가 일어나고 있어서 젊고 훌륭한 지휘자가 곧잘 눈에 띈다. 그리고 1983년생 다비트 아프캄 또한 이날 연주를 들어 보니 크게 될 사람이 틀림없다. 이름을 기억해 두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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