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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5월 1일 일요일

2022 통영국제음악제 막전막후

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입니다.


“앤드루 노먼 PCR 검사 결과가 ’미결정’이라서 24시간 이내에 재검사받아야 한답니다.”
“8시에 통영으로 출발하는 차량을 10시 출발 보건소행으로 바꾸고 서울 숙박도 1박 연장합시다.”
“오늘 오후 4시에 하기로 했던 강연은 내일로 연기하겠습니다.”
“관할 보건소에 확인해 보니, 최초 확진 후 45일 이내에 검사를 받은 경우 재검사 필요 없대요!”
“서울 숙박 연장하지 마세요. 바로 통영으로 출발합니다.”
“오늘 4시 강연 예정대로 하겠습니다!”

앤드루 노먼은 올해 통영국제음악제 레지던스 작곡가였지요. 그런데 음악제 개막 직전 입국을 앞두고 미국에서 코로나-19 검사를 했더니 양성 판정이 나왔다고 합니다. 일주일이 지나 증상이 사라진 뒤에도 PCR 검사 결과는 양성으로 나오는 바람에 계속 입국이 지연되었다고 하네요. 그리고 드디어 음성 판정을 받아서 입국했더니, 입국 직후에 다시 검사한 결과가 ’미결정’이었던 것이지요.

이번 통영국제음악제 기간 동안 앤드루 노먼 작품 7곡이 아시아초연 또는 한국초연됐습니다. 앤드루 노먼은 6번째 곡이었던 ‘소용돌이’ 공연에 참석해 연주 직후 무대 인사를 할 수 있었고, 마지막 곡인 ’풀려나다’는 리허설부터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작곡 전공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과 작곡 레슨 등 레지던스 작곡가로 뒤늦게나마 활동할 수 있었습니다. 입국이 지연되는 동안 일부 작곡 레슨은 진은숙 예술감독님이 대신하기도 했습니다.

올해 통영국제음악제에는 예년보다 별별 일이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피아니스트 데죄 란키는 코로나-19 확진자가 한국 내에서 급증하는 상황을 우려해 출연을 취소했고, 소프라노 율리야 레즈네바는 폐막공연에서 데죄 란키 대신 협연을 맡기로 했다가 건강 문제가 생겨서 폐막 공연에 출연할 수 없게 되어 소프라노 박혜상이 ‘대타의 대타’로 출연하게 되었지요. 또 킹스 싱어즈 단원 가운데 1명이 입국 직후 실시한 PCR 검사에서 양성 판정을 받아서 공연은 6명 중 5명만으로 하게 되었고 프로그램도 일부 변경됐습니다. 쾰른 체임버 오케스트라는 해외 입국 단체에 대한 격리 면제가 허용되지 않아서 K’ARTS 신포니에타로 교체되었고, ’해리 파치: 플렉트럼과 타악기 춤’ 공연 또한 코로나-19의 여파로 취소되었습니다.

취소된 공연의 대체 공연으로 소프라노 율리야 레즈네바 리사이틀이 결정되면서 프로그램 확정부터 티켓 오픈까지 여러 사람이 바쁘게 움직였던 일, 그리고 ‘대타의 대타’ 프로그램을 위한 오케스트라 악보를 급히 구하느라 여러 사람이 고생했던 일도 기억에 남습니다.

“로시니 아리아 악보가 F장조 말고 E장조가 필요하대요!”
“이미 리허설 직전인데… 이렇게 되면 오페라 전곡 악보에서 해당 부분을 일일이 찾아야 하는데요…”

이미 저작권이 만료된 악보를 인터넷으로 구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2시간 30분짜리 오페라 전곡 악보에서 짧은 아리아 하나만 추리는 일이었습니다. 급한 마음에 아는 오페라 지휘자들에게 연락을 시도했다가 의외로 가장 먼저 연락이 닿은 사람은 아마추어 첼로 연주자이자 오페라 애호가였습니다. 오케스트라 총보에서 해당 부분이 몇 페이지에 나오는지를 금방 찾아내더라고요. 그때 제가 농담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바그너 오페라였으면 직접 찾을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오케스트라 악보를 악기별로 분리한 이른바 ’파트보’에서 해당 부분을 일일이 추리는 일은 또 다른 일이었지만, 총보를 추리고 나니까 파트보 추리는 일은 제가 직접 할 수 있겠더라고요. 악기별로 하나씩 인쇄해서 연주자들에게 전해준 것은 리허설을 시작하기 직전이었습니다. 지휘자 마르쿠스 슈텐츠가 그랬다네요. “기적이에요!”

2021년 4월 16일 금요일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 인어공주 사건

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입니다.


ⓒ김시훈=통영국제음악재단

새벽 1시쯤 되었을 때 잠결에 전화를 받았습니다. 긴급 상황이 발생했으니 요즘 하는 말로 ’단톡방’을 확인하라더군요. 전화하신 직장 동료와 저, 그리고 한 외국인 연주자와 그 연주자의 매니저가 있는 대화방이었습니다. 프랑스로 가는 비행기 이륙 시각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코로나-19 검사 결과지를 잃어버려서 출국 수속을 못 하고 있다더군요. 다행히 연주자는 검사 결과의 사본을 받아 무사히 출국할 수 있었지만 출국 게이트가 닫히기 직전이라 마음을 졸여야 했습니다.

그 연주자는 첼리스트 카미유 토마였습니다. 이번 공연에서 파질 사이 첼로 협주곡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를 아시아 초연했고, 피아니스트 박종해 협연으로 리사이틀에도 출연했었지요. 코로나-19로 유럽에 봉쇄령이 떨어졌을 때 집 지붕 위에서 첼로를 연주하는 유튜브 영상으로 화제가 되었던 스타 연주자이기도 합니다. 이번에 통영국제음악제에 출연하게 된 소식이 프랑스의 TV 프로그램에 나왔다고 하네요. 시청자가 5백만 명쯤 된다는 모양입니다.

카미유 토마는 입국 직후 격리 생활부터 시작해 별별 고생을 했습니다. 그 가운데 압권은 값비싼 첼로의 통관 서류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던 일입니다. 그 첼로는 최근 일본음악재단에서 후원한 악기였고 일본 세관에서 통관 서류를 발급했는데, 알고 보니 그 서류는 일본과 프랑스 사이를 오가는 것만 허락된 것이었다나 봅니다. 그래서 원칙대로라면 통영에서 일본으로 가서 필요한 서류를 재발급받고, 그 과정에서 일본 입국에 따른 2주 격리를 거쳐야 했습니다. 문제는 통영 공연 직후에 프랑스에서 다른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다는 겁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통영국제음악재단과 일본음악재단, 독일에 있는 기획사, 그리고 프랑스에 있는 연주자 가족까지 4개국의 여러 사람이 수많은 메시지를 주고받으면서 상황을 공유하고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했습니다. 한국에서 출국할 때 생길 수 있는 문제가 가장 먼저 해결됐고, 일본 세관을 잘 설득한 끝에 긴급 우편으로 추가 통관 서류를 서울의 호텔에서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카미유 토마는 항공 일정을 여러 차례 변경했고, 코로나-19 검사를 며칠 만에 두 차례 받아야 했습니다. 코로나-19 검사 결과는 출국 기준 72시간 이내에 발급된 것이어야 하거든요.

이번 통영국제음악제 때에도 많은 일이 있었고, 무엇보다 요즘 같은 시절에 이런 행사를 안전하게 운영하기 위해 큰 노력과 많은 사람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미 언론에 보도되었으니 이 글에서는 그 와중에 웃겼던 에피소드를 두 개만 더 소개할까 합니다.

카미유 토마는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지정된 격리장소로 이동하는 일부터 시작해 택시를 몇 차례 이용했습니다. 그런데 택시를 예약하신 분이 카미유 토마(Camille Thomas) 이름이 익숙지 않아서 ‘카유미 토마’로 여러 차례 헷갈려 하셨습니다. 그런데 택시 회사에서 ’카유미’ 씨가 일본 사람인 줄 알고 이렇게 자랑하더라네요. “우리 기사님 중에 일본어 잘하시는 분 있어요!”

개막공연 때 있었던 일입니다.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가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을 크리스티안 바스케스가 지휘하는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와 협연하기 위해 분장실에서 나오고 있었습니다. 통영의 에메랄드빛 바다를 닮은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있었지요. 드레스 자락이 그물처럼 되어 있어서 마치 인어의 비늘이 푸른 파도와 더불어 반짝이는 듯했는데요.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 ’그물’에 하이힐 뒷굽이 끼어서 제대로 걷지를 못하더라고요!

다행히 김봄소리는 무대에 입장할 때 발을 앞으로 차듯이 걷는 법을 익혀서 멀쩡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무대 뒤에서는 달랐습니다. 분장실 입구에서 처음 몇 걸음을 걷는 동안에 마치 시트콤처럼 웃기고 당황스러운 상황이 벌어졌지요. 근처에 있던 여성 동료 한 분이 재빨리 달려가 드레스 자락을 걷어 올렸습니다. 그 와중에 드레스 자락이 위로 올라간 모습이 마치 인어 꼬리가 파닥이는 듯했습니다. 나만 그렇게 생각했던 게 아니었던지, 드레스 자락을 움켜잡으신 분이 아주 찰진 농담을 시전했습니다.

“이대로 인어공주처럼 걸으세요!”

2019년 6월 28일 금요일

조성진 인터뷰 (2019년)

통영국제음악당에서 발간하는 『Grand Wing』 2019년 5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2019년 5월 6일, 독일 베를린 현지 시각 오전 10시.

Q. 예전에 통영국제음악당에서 협주곡도 했고 리사이틀도 했다. 편성에 따라서 느껴지는 홀 음향에 차이가 있었나?

A. 2014년에 협주곡을, 2017년에 리사이틀을 했다. 그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고, 그동안 홀을 보는 관점들이 달라졌기 때문에 자신 있게 답하기는 어렵지만, 딱히 차이를 느끼지는 못했고 두 번 다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향이 좋지 않은 공연장에서 협주곡을 하면 오케스트라 소리가 섬세하게 들리지 않아서 협연에 어려움이 있는데, 통영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했을 때에는 그런 문제가 전혀 없었고, 관객이 찼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리사이틀 때에는 음향뿐 아니라 조명 또한 매우 편안하게 느껴졌던 기억이 난다.

Q. 통영 공연 프로그램 중에 알반 베르크 소나타가 있는데, 사람들이 그 이름에 지레 겁을 먹을 것 같다. 이 곡은 어떤 매력이 있는 곡인가?

A. 피아노 소나타 Op. 1은 베르크가 젊었을 때 쓴 곡으로, Op. 1(작품번호 1번)이 이렇게 걸작이라는 것이 신기하고, 내 생각에 모든 Op. 1 가운데 가장 훌륭한 것 같다. 리사이틀 오프닝 곡으로도 좋은 것 같고, 무게감 있는 여러 곡과 궁합이 잘 맞는 것 같다. 이번에 연주할 리스트 소나타와도 어울리고, 조성도 b단조로 같다. 얼핏 무조음악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조성이 있고, 전통적이고 낭만주의적인 면과 현대적인 면이 조화를 이루는 곡이다. 악보를 보면서 들어보면 이 곡이 전통적인 소나타 형식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 더 잘 이해되고, 음악을 들을수록 신비롭고 오묘한 느낌이 든다.

Q. 이 곡의 음반을 들어보면, 악보에 있는 도돌이표를 지키는 연주자가 있고 그냥 생략하는 연주자가 있다.

A. 당연히 지켜야 한다.

Q. 이 곡을 연주할 때 악보를 정확하게 소리로 재현한다는 느낌을 주는 연주자가 있는가 하면, 곳곳에서 악보에 없는 루바토를 사용해서 낭만주의적인 느낌을 좀 더 살리는 연주자가 있다. 어느 쪽이 더 마음에 드나?

A. 베르크는 악보에 세세한 지시를 매우 많이 해놨다. 일단 그걸 모두 살리는 것이 목표다. 그러나 막상 무대 위에 오르면 '내 느낌'을 살리는 일도 중요해지는 것 같다. 미츠코 우치다의 연주가 그런 점에서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Q. 이 곡의 클라이맥스라 할 만한 곳에서, 포르테가 네 겹으로 붙어 있고, 그걸 예비하는 과정에서 크레셴도뿐 아니라 제법 긴 호흡으로 아첼레란도가 붙어 있다. 크레셴도의 다이내믹스를 극대화하는 것과 아첼레란도의 속도감을 극대화하는 것,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A. 브람스 교향곡을 들어보면, 지휘자에 따라서 클라이맥스로 오를 때 템포를 늦춰서 거대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베르크 소나타에서는 반대로 템포를 몰아붙이도록 지시했고, 그래서 조금 신경질적인 느낌을 준다. 클라이맥스의 다이내믹스도 중요하지만, 이 곡에서는 클라이맥스 직전까지 템포를 조이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Q. 2년 전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유튜브 공연 영상을 봤는데, 악보에 있는 아주 작은 지시까지 완벽하게 지키면서 암보로 연주해서 깜짝 놀랐다. 어떻게 하면 악보의 아주 작은 지시까지 싹 다 외울 수 있나?

A. 딱히 비결이 있지는 않다. 다만, 같은 곡을 여러 번 연주하다 보면 루바토를 썼던 곳에서 다음번에는 더한 루바토를 쓰게 되거나 하면서 매너리즘에 빠질 위험이 있는 것 같다. 그럴 때마다 악보를 본다. 무대에 나가기 전에 손가락을 푸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나는 연주할 곡이 처음 접하는 곡이라는 생각으로 악보를 다시 보는 편이다. 첼리비다케가 그렇게 한다는 인터뷰를 본 일이 있는데 본받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공연이 끝나고 악보를 보면서 연주를 되짚기도 한다.

Q. 이제까지 쇼팽을 너무 많이 연주해서, 이제는 다른 곡을 더 많이 하려는 것 같다.

A. 쇼팽 콩쿠르 우승자 출신이다 보니 쇼팽을 연주해 달라는 요청이 계속 있었고 그 그대에 부응해야 했는데, 2019년부터는 그런 요청을 그다지 받지 않게 되었다. 의식적으로 공연 프로그램에 쇼팽을 빼려는 것은 아니지만, 리사이틀에 쇼팽이 들어가면 다른 곡들과 어울리게 프로그램을 짜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빼버리는 편이 프로그램 구성에 더 자유로워지는 장점이 있다. 또 크리스티안 지메르만도 쇼팽 콩쿠르에 입상했지만 딱히 쇼팽 스페셜리스트로 불리지는 않는다.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 또 시마노프스키, 야나체크, 메트너처럼 음악가들 사이에서 유명하지만 대중에게 덜 알려진 곡을 관객에게 들려주고 싶은 마음도 있다.

Q. 모차르트 협주곡 20번 d단조 음반이 작년에 나왔다. 음반 녹음 과정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A. 체력적으로 힘든 녹음이었다. 오케스트라와 스케줄을 조정하다 보니 녹음할 시간이 하루 반나절밖에 안 나와서 종일 녹음을 해야 했다. 장소는 바덴바덴 페스티벌하우스였고, 피아노는 세 가지 선택지 중 오케스트라 음색과 가장 잘 맞는 것을 골랐다. 유럽 체임버 오케스트라는 조금 '고전적인' 소리를 내는 악단이고, 다른 악단이 흔히 A=442Hz로 조율하는 것과 달리 441Hz로 하더라. (편집자주: 현대 오케스트라는 심한 경우 445Hz까지 높이기도 한다.) 그래서 내가 고른 것은 조금 옛날 피아노, 아주 옛날은 아니지만 15년~20년 정도 된 스타인웨이 피아노였던 것 같다. 그런데 낡은 피아노라 피아노의 터치감이 들쑥날쑥해서 원하는 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오케스트라는 매우 훌륭했고, 모차르트 협주곡을 수없이 연주해 봤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휘자 야니크 네제세갱은 1~2년 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인데, 매사에 긍정적이고, 배려심 많고, 내가 원하는 것을 빠르고 정확하게 감지하는 지휘자다. 이번 음반이 내가 이제까지 녹음한 것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든다.

Q. 2011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도 이 곡을 연주했다. 그때는 악보에 있는 음만 연주했는데, 이번 음반에서는 2악장에서 악보에 없는 장식음을 제법 많이 썼고, 2년 전에 통영에서 모차르트 소나타 연주했을 때도 장식음을 썼다. 모차르트 당시의 연주 관습을 고려했다는 얘긴데, 작곡 당시의 관습을 어디까지 살리느냐 하는 건 연주자마다 판단을 내려야 하는 문제인 것 같다. 음반 녹음 때 장식음을 즉흥적으로 연주했나, 아니면 음 하나까지 사전에 계획했나?

A. 미리 계획하지만 연주할 때마다 상황에 맞게 변화를 준다.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은 피아노의 상태이고, 그래서 필라델피아에서 공연했을 때는 음반 녹음 때와는 조금 다른 장식음을 썼다. 예를 들어 스타카토 소리가 예쁘게 나지 않으면 그 대신 스케일이나 트릴을 쓰는 식이다.

Q. 오케스트라 투티가 나올 때는 오블리가토 피아노를 생략하고 솔로만 연주했다. 그게 필요 없다고 생각한 이유가 뭔가? 사용한 악기가 모차르트 시대 피아노가 아니었던 것도 이유가 될까?

A. 그리고리 소콜로프 같은 사람은 오블리가토 피아노까지 다 하던데, 투티에서 오케스트라만 소리내는 게 내 귀에는 더 좋게 들린다. 모차르트 시대 피아노로 협주곡을 연주하는 시도는 아직 한 번도 안 해봤지만, 그건 좀 다를지도 모르겠다.

Q. 통영에서 협주곡을 연주하면서 오케스트라 지휘까지 할 예정이다.

A. 지휘라고 하기는 좀 민망하다. 이번에 처음 해보는 시도인데, 특히 쇼팽 협주곡에서 내가 원하는 오케스트라 소리를 직접 만들어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돈 크레머가 창단한 악단인 '크레메라타 발티카'와 쇼팽 협주곡 1, 2번을 협연했을 때, 내가 지휘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지휘자 없이 공연했었고, 그때 가능성을 처음 생각하게 됐다. 그런데 솔직히 큰 기대는 안 하셨으면 좋겠다.

Q. 본격적으로 지휘자가 될 생각이 있는 건 아닌 건가?

A. 그런 생각은 전혀 없다. 협주곡 할 때 조금 해보는 정도. 아니면 서곡이나 짧은 교향곡 정도는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내가 지휘자로 악단을 맡거나 기획사에서 지휘자로 매니지먼트를 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

Q. 파리에 살다가 베를린으로 옮겼다. 파리와 견주면 베를린은 연주자로 살기에 어떤 장단점이 있나?

A. 파리가 문화 전반적으로 축복받은 곳이라면, 베를린은 음악에 더 집중된 곳인 듯하다.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외에도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베를린 도이체 심포니 오케스트라,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오케스트라, 베를린 방송교향악단 등 명문 악단이 베를린에는 여럿 있고, 연주 여행을 갔다 돌아와서 그날 열리는 공연을 찾아보면 항상 좋은 게 있다. 음악을 빼고 나면 베를린은, 최근에 사람이 늘었다고는 해도 아직 파리보다 더 한적한 곳이다. 공기도 파리보다 좋다. 날씨는 별로라서, 겨울에는 다른 곳으로 연주하러 다니는 게 낫다.

Q. 음반 녹음이나 그밖에 국내 팬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계획이 있다면?

A. 음반은 6월과 10월에 나눠서 알반 베르크 소나타와 슈베르트 방랑자 환상곡, 리스트 소나타를 녹음할 예정이고 내년 봄에 발매될 것 같다. 베르크 곡이 포함된 제안을 도이치그라모폰에서 받아준 것이 놀랍고 기쁘다. 1월에 마티아스 괴르네와 함께 바그너 베젠동크 가곡집과 한스 피츠너 가곡 중 일부를 녹음했고, 7월에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가곡과 한스 피츠너 추가 녹음, 슈베르트 '하프 연주자의 노래' 연작 녹음이 예정되어 있다.

Q. 통영 관객에게 한마디 해달라.

A. 공연 제안을 받아서 기뻤고, 통영에서 거의 일주일을 보낼 수 있어서 기대된다.

2019년 6월 7일 금요일

피아니스트 윤홍천 인터뷰

통영국제음악재단에서 발간하는 『Grand Wing』에 실린 글입니다.


Q. 지난해 소니에서 발매한 음반으로 BBC 뮤직 매거진에서 별 다섯 개를 받았습니다. 그 전에는 모차르트 음반 등으로 에코 음반상을 받는 등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로린 마젤의 발탁으로 뮌헨필과 협연한 일과 음반으로 호평받은 일 가운데 어느 쪽이 커리어에 더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느끼나요?

A. 저는 콩쿠르나 지휘자의 발탁보다는 음반을 통해서 더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2009년부터 꾸준히 음반을 발매하고 있는데 음반이라는 미디어는 라이브 콘서트보다 훨씬 더 편리하고 빠르게 전달될 수 있잖아요. 음반이 많은 곳에 소개되고 좋은 평가를 받게 되면 자연스럽게 연주 기회도 찾아오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의 음악을 소개하고 알리는 데 큰 도움이 되었죠.

Q. 음반 녹음 과정이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이를테면 어디에서 어떤 피아노를 사용했고 엔지니어와 어떤 소통을 했나요?

A. 모차르트 소나타 전곡 녹음 중 마지막 두 개의 음반을 함께 녹음했던 톤마이스터 에카르트 글라우헤(Eckard Glauche)와 함께 작업했습니다. 베를린 반제(Wannsee) 호수에 위치한 안드레아교회(Andreaskirche)라는 곳에서 3일 동안 녹음을 했어요. 저는 몇 년 전부터 벡슈타인 피아노사와 인연을 맺고 있는데 이 녹음에서도 벡슈타인 피아노를 연주했어요.

Q. BBC 뮤직 매거진에서는 연주 못지않게 음반 수록곡 선정을 극찬했습니다. 통영 공연 프로그램 가운데 절반 이상이 그 음반에 있는 곡인데, 그 가운데 슈만의 유모레스크를 고른 의도가 궁금합니다.

A. 이 곡은 꼭 한번 녹음해보고 싶었던 작품이었습니다. 슈만의 걸작 중에서도 가장 안 알려진 곡 중 하나이죠. 이 곡을 공부하는 동안 슈만이 이 작품을 빈에서 보낸 6개월 사이에 작곡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점이 레퍼토리를 선정하는데 영감을 주었어요. 슈만은 28살의 나이로 큰 꿈을 안고 빈을 찾았지만 성공을 얻지 못하고 실망을 안고 떠나야 했죠. 하지만 이 시간이 그에게는 음악적으로는 풍부한 시간이었습니다. 이 시기에 슈베르트의 교향곡 9번의 원본을 우연히 발견하기도 하였죠. 저는 유모레스크가 슈만의 피아노곡 중에서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의 한 챕터를 끝내는 듯한 마지막 부분은 끝남의 아쉬움과 희망의 시작을 둘 다 묘사하죠.

Q. 슈만과 슈베르트는 어떤 점에서 비슷하고 어떤 점에서 다른가요?

A. 아주 어려운 질문 같아요. 슈만과 슈베르트는 둘 다 아주 낭만적이고 섬세하죠. 음악이 슈만에게는 그의 인생 철학을 나타내는 도구로 사용되었다면, 쉽게 말해 “컨셉트”가 더 담겨있는 곡을 썼다면 슈베르트는 좀 더 즉흥적이고 순간에 집중하죠. 슈베르트는 아픔을 응시할 수 있었다면 슈만은 그 안에서 미소를 찾고 있었던 것 같아요.

Q. 2011년에 우아한 왈츠 D. 969를 녹음했었습니다. 연주를 들어보면 반복을 일부 생략했던데, 8년이 지난 현재 생각이 그때와 같은지 궁금합니다. 슈베르트의 반복 지시는 단순한 반복이 아니므로 생략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에 관해 어찌 생각하나요?

A. 저는 되도록 반복 지시를 지키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음반에 있어서는요. 가끔은 반복 표시를 무시할 때가 있는데 어떤 관습에 의해서, 아니면 음악의 흐름을 위해서 그렇게 하기도 하죠. 2011년에는 저도 그렇게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어요.

Q.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D. 664는 어떤 곡인가요?

A. 슈베르트는 D. 664를 마지막으로 몇 년 동안 소나타를 끝까지 완성하지 못했었어요. 이 곡이 어쩌면 그에게는 터닝포인트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이다음 소나타부터는 좀 더 교향악적이고 길이도 긴 소나타를 작곡하게 되죠. 베토벤에게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죠.

Q. 소나타 D. 664 1악장 마지막에는 셈여림 표시가 피아니시모인데 음을 7~8개씩 쌓은 화음이 나오기도 합니다. 이게 어떤 의미라고 생각하나요? 그냥 일반적인 감7화음 느낌으로 충분할까요? 어떻게 해야 효과가 극대화될까요? 이곳에서 저음부와 고음부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중요한가요?

A. 이 악장에는 ppp 부터 ff까지 아주 폭넓은 셈여림 표시가 되어 있는데 슈베르트로서도 특별한 경우죠. 특히 평온하게 들리는 이 소나타의 분위기 때문에 더 놀라워요. 화음을 연습할 때는 탑을 쌓는 것 같이 아래에서 위까지 모든 음을 들으려고 해요. 모든 음들이 그 위치에 있어야 슈베르트가 묘사하려는 어두운 그림자의 느낌이 나죠.

Q. 미국 뉴잉글랜드 콘서바토리, 독일 하노버 음대, 이탈리아 코모 아카데미 등에서 수학하셨습니다. 각 학교의 장단점이 무엇이며 그곳에서 무엇을 배웠나요?

A. 뉴잉글랜드 콘서바토리에서는 변화경 선생님께 배웠는데 선생님을 통해서는 음악 외에도 인간적으로 참 배운 것이 많았어요. 어렸을 때 미국에서 생활했던 것은 저에게 자유롭게 생각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던 것 같아요. 독일로 옮겨 갔을 때는 음악의 전통과 역사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많았죠. 음악에서는 당연히 인간의 감정을 묘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역사와 시대상 분위기, 또 언어를 이해하는 것이 음악을 해석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잖아요. 또 실력 있는 피아니스트들이 많이 있던 하노버 음대서는 그 분위기가 경쟁적이기도 했지만 이로 인해 단련되었던 것도 같습니다. 코모 아카데미에서의 경험도 소중했어요. 학교의 분위기를 떠나서 연주가가 꿈인 피아니스트들이 모여서 서로의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토론할 수 있는 곳이었어요. 제 개성을 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죠.

Q. 통영국제음악당에서 닐스 묑케마이어, 스베틀린 루세브 등과 협연했고, 독주회는 이번이 처음인 것 같습니다. 이전 공연에서 통영국제음악당에 관해 느낀 점은 무엇인가요?

A. 한국은 모든 것이 서울에 집중되어있는 경향이 있어서 늘 지방에 좋은 공연장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통영의 공연장은 참 특별한 곳이에요. 음향도 좋고 체계적으로 잘 준비되어 있어서 연주하는 분들이 편안함을 느끼는 것 같아요. 아름다운 전광은 그 멋을 더하고요. 공연장이 연주자에게 영감을 주는 곳은 흔치 않은데 통영국제음악당이 바로 그런 것 같아요. 닐스와 스베틀린 모두 동감했어요.

Q. 국내 팬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계획이 있다면?

A. 모든 공연이 다 중요하지만 특히 다음 시즌에 잡힌 베를린 불레즈잘과 함부르크에서의 리사이틀이 많이 기대됩니다.

Q. 통영 관객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A. 통영은 10년 전 윤이상 콩쿠르를 위해 처음 방문했었어요. 오래전부터 저에게는 소중한 인연입니다. 그래서 제가 아는 분들께 많이 소개하고 있고 멀리서나마 늘 응원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좋은 공연으로 자주 찾고 싶습니다.

2019년 4월 26일 금요일

기돈 크레머의 잃어버린 시간을 위한 전주곡

미에치스와프 바인베르크는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훌륭한 동료이자 벗이었으며,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작곡가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바인베르크가 첼로 곡으로 썼던 24개의 전주곡을 바이올린곡으로 편곡하는 일을 해오면서, 나는 이 전주곡들에 사진을 결합할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2017년 6월, 나는 리투아니아의 탁월한 사진가 안타나스 수트쿠스의 작품에 마음을 빼앗겼다. 우리는 빌뉴스에서 만났고, 기쁘게도 쓰는 말이 같았다. 우리는 함께 일하기 시작했다.

바인베르크와 수트쿠스라는 두 인물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둘을 엮을 때 나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위대한 예술작품은 물론 시간을 초월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바인베르크의 음악(여기서는 첼로를 위한 24개의 전주곡)과 수트쿠스의 강력한 이미지들은 같은 시기, 즉 1960년대에 창작되었다.

두 예술가 사이에 직접적인 연결고리는 없지만, 이 프로젝트는 두 가지 예술이 한 가지 인생 경험을 공유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드러낸다. 그들의 소리와 영상은 소비에트 연방 시대를 살았던 모두에게 어떤 '유토피아' 관념이 있던 세계를 반영한다.

나는 미에치스와프 바인베르크 음악을 나이 들어서야 알게 되어 곧바로 열렬한 지지자가 되었다. 그의 전주곡들은 정서적 감동이 있는 '소리 그림'처럼 느껴지고, 안타나스 수트쿠스의 표현력 넘치는 사진들은 이 프로젝트에 독특한 역동성을 불러온다.

이것은 다층적 이야기의 영역이다. 나의 바이올린 소리를 더한 의도는 시청자들이 '잃어버린 세계'에 진입하게끔 하고, 그래서 살아있는 인류의 관점을 늘리는 것이다.

기돈 크레머 글 · 김원철 옮김.

원문 출처:
https://www.bozar.be/en/magazine/135364-preludes-to-a-lost-time

2019년 4월 16일 화요일

2019 통영국제음악제 막전막후

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입니다.

"바그너 날씨네!"(It's Wagner weather!)

플로리안 리임 통영국제음악재단 대표님 말씀입니다. 통영국제음악제 폐막공연이 열리기 한 시간쯤 전부터 천둥 번개가 쳤지요. 콘서트 형식으로 연주된 바그너 오페라 '발퀴레' 1막에 걸맞은 날씨였고, 꽤 가까운 곳에서 들려오는 천둥소리가 무시무시했습니다. 2019 통영국제음악제 주제였던 '운명'과 어울리기도 했지요. 공연을 끝내고 돌아가시는 테너 김석철 선생은 안개 자욱한 통영의 해돋이 사진을 보내왔습니다. "(바그너 오페라)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분위기 통영 아침이네요. 어제는 완벽한 발퀴레 날씨였는데 ㅎㅎ"

언제나 그렇듯이, 올해 통영국제음악제도 많은 사연을 남기고 끝났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큰 일은 '로스 로메로스' 기타 콰르텟 가운데 셀린 로메로가 갑자기 쓰러졌던 일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아르디티 콰르텟의 리허설을 챙기느라 현장의 급박함을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스마트폰 메시지로 전해지는 내용이 심상치 않더군요. 플로리안 리임 대표님이 관객들에게 알린 것처럼, 환자는 병원에서 뇌졸중 진단을 받았다고 합니다.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는 병명에 비하면 실제 증상은 그나마 가벼운 편이었던 모양이라 천만다행이었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환자는 장시간 비행이 가능할 만큼 치료를 잘 받고 공항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로스 로메로스' 공연에서는 결국 셀린 로메로가 빠진 채 3명만 출연하게 되었지요. 가장 유명한 기타리스트 페페 로메로가 전설적인 명인의 솜씨를 똑똑히 보여준 공연이었습니다.

제가 담당한 공연 중에서는 '바흐와 룸바'와 관련해 황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베이시스트 에딕손 루이스가 공연 마지막 곡이었던 'J.S.를 위한 룸바흐'의 음원을 전해 주며 악보에 없는 휘파람이 있으니 타악기 연주자가 듣고 '연주'할 수 있게 해달라더군요.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니었습니다.

베이시스트 에딕손 루이스에게 받아서 타악기 연주자 채형봉 선생에게 전달한 악보는 5악장까지였는데, 음원은 6악장까지 있었습니다. 공연 이틀 전이었지요. 부랴부랴 6악장 악보를 받아서 전달했더니, 6악장에 악기 표기가 명확하지 않은 곳이 있다더군요. 저도 악보를 확인해 봤더니, 6악장 제목이 '콩가'인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콩가는 그냥 악장 제목이고 실제로 콩가라는 악기가 나오는 건 아니에요."
"다른 악기가 또 새로 나오지 않는 게 맞나요?"
"음… 아마도?"
"작곡가한테 확인해 주세요. 통영은 서울이 아니에요. 갑자기 없는 악기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요."

다행히 추가 악기가 필요하지는 않았습니다. 휘파람은 작곡을 전공한 분께 부탁해서 악보로 옮겼는데, 그에 앞서 음원의 몇 분 몇 초쯤에 휘파람이 나오는지 정확히 확인하려고 악보를 보면서 음악을 들어 봤더니, 귀로 듣기로는 마냥 신나는 악곡의 리듬이 실제로는 얼마나 기상천외하게 꼬여 있는지 머리가 어질어질하더군요.

타악기 연주자 채형봉 선생도 어렵다며 혀를 내두를 정도였고, 막판에 6악장을 새로 익히기도 벅차서 휘파람까지는 안 되겠다고 하시더군요. 결국 휘파람은 에딕손 루이스가 불었습니다. 사실은 작곡가가 에딕손 루이스한테 휘파람을 불게 했었다가 베이스 연주와 동시에 전혀 다른 리듬으로 휘파람을 불기가 어려워서, 세계초연 때에는 작곡가이자 타악기 연주자인 곤살로 그라우가 직접 휘파람을 불었었다고 하더군요.

이날 에딕손 루이스가 세계초연한 호소카와 도시오 신작 '작은 에세이'도 기억에 남습니다. 작곡가와 연주자가 같은 공간에 있다 보니 작곡가가 영감을 받아서 곡을 써주기로 한 모양인데, 처음에는 호소카와 선생이 예술감독으로 있는 다케후 국제음악제에서 초연하기로 했다가 통영 공연 직전에 곡이 완성되어서 그냥 통영에서 세계초연하기로 했다네요. 곡을 들어 보니 윤이상 선생을 오마주한 의도가 뚜렷이 느껴지는 작품이었습니다. 통영이라는 공간이 작품의 탄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이겠지요!

바쁘게 일하는 중에 강원도에 불이 났다는 소식을 얼핏 들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하마터면 큰 재난이 될 뻔했던 모양이더군요. 빠른 진압에 성공했다니 천만다행입니다.

2019년 3월 21일 목요일

바그너 오페라 '발퀴레'

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입니다.


오페라 '발퀴레'는 '니벨룽의 반지' 4부작 가운데 2번째 작품입니다. '발퀴레' 하나만으로도 4시간 또는 때로 5시간 이상 걸리기도 하는 대작이고, 4부작을 모두 공연하려면 중간에 쉬어 가는 날까지 반드시 포함해 일주일 정도가 필요합니다. 통영에서 이걸 다 공연해 봤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만 쉽지 않네요.

그래도 2019 통영국제음악제 폐막공연으로 '발퀴레' 1막을 하게 됐습니다. 통영국제음악제를 아껴주시는 여러분께 익숙하실 지휘자 알렉산더 리브라이히가 5년 만에 통영에 돌아와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를 지휘할 예정이지요. 그리고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등 국제무대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한국인 가수들이 출연합니다.

'지크문트' 역을 맡은 테너 김석철은 한국인으로는 보기 드문 강력한 목소리를 가진 테너입니다. 제가 이분을 처음 봤을 때부터 바그너를 해야 할 목소리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지난 2016년에 바그너 가수들에게 꿈의 무대라 할 수 있는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 출연하는 등 바그너 가수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강병운, 연광철, 사무엘 윤, 전승현 등 음역이 낮은 분들이 그동안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 여러 차례 출연했지만, 테너로는 국내 최초예요.

'지클린데' 역을 맡은 소프라노 서선영 또한 한국인답지 않게 묵직한 고음을 낼 수 있는 가수라서 역시 바그너를 해야 할 목소리라고 생각해 왔던 분입니다. 지난 2016년 국립오페라단이 '로엔그린'을 공연했을 때 로엔그린 역 김석철의 상대역인 '엘자'로 출연하는 등 바그너 오페라에 도전하고 있지요. 제 생각에 '트리스탄과 이졸데' 중 이졸데에 잘 어울릴 것 같은데, 발퀴레 중 지클린데 역에도 잘 어울릴 것으로 기대됩니다.

'훈딩' 역을 맡은 베이스 전승현은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등에서 바그너 오페라를 여러 차례 하셨던 분입니다. 특히 '신들의 황혼'의 빌런(악당)인 '하겐' 역으로 유명하신 분이지요. 그뿐만 아니라 독일-오스트리아 가수가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영예인 '캄머젱어'(Kammersänger) 칭호를 지난 2011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받았던 분이기도 합니다. 이 칭호는 노래 실력뿐 아니라 독일 시(詩)를 올바로 이해하고 언어로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인정받아야 받을 수 있다고 하지요. 말하자면 독일인이 판소리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격입니다.

바그너 오페라에서는 가수들의 노래가 아닌 오케스트라가 음악을 이끌어가곤 합니다. 노래 가사가 사건의 외면을 알려주는 동안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진실을 관현악이 알려주는 식이고, 그런 점에서 고대 그리스 비극에서 합창이 하는 역할을 바그너 오페라에서는 오케스트라가 하는 셈입니다. 이 말을 달리하면 노래 선율만 따라가서는 바그너 음악의 진수를 맛볼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발퀴레'의 깊은 내용을 이해하려면 가사와 음악의 상호작용을 실시간으로 파악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독일어 가사를 따라가면서, 필요하다면 독한대역을 보면서 가사의 의미를 이해하고, 귀로는 관현악에 집중하는 식으로 주의자원을 효과적으로 배분해야 하지요. 가사에 숨겨진 진실을 오케스트라가 알려주는 순간 전율을 느끼고 나면, 그 뒤로는 자연스럽게 바그너 음악에 빠져들게 됩니다. 그러나 이렇게 높은 진입장벽이 국내에 바그너 애호가가 많지 않은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합니다.

사실 '발퀴레'는 바그너 작품치고는 '노래'의 비중이 높은 편입니다. 그래서 그냥 가사만 따라가더라도 제법 재미있을 거예요. 다만, '훈딩'이 말할 때마다 사납게 으르렁거리는 오케스트라, '지클린데'와 '지크문트' 사이에 말로는 전하지 못할 눈빛이 오갈 때마다 애절한 마음을 전하는 오케스트라, 두 사람에게 기적이 일어났을 때 마치 빛이 무대를 압도하는 듯 눈부시게 빛나는 오케스트라 등을 놓치지 않는다면 더 큰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발퀴레 1막 전주곡에서, 이를테면 선동적인 리듬을 타고 흐르는 저음 현의 '다크 포스'에 집중해 보세요. 그 위에서 폭풍처럼 몰아치는 현의 움직임, 포르테(세게)와 피아노(여리게)를 순식간에 오가는 급박한 셈여림 변화, 무시무시하게 암울한 음색, 악마적인 화음 등에도 주의를 기울이면 좋습니다.

2018년 5월 17일 목요일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 인터뷰

통영국제음악재단에서 발간하는 매거진 『Grand Wing』에 실린 글입니다.


Q.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으로 얻은 특전이나 달라진 것들 가운데 어떤 것이 가장 마음에 드나요?

연주 기회를 많이 얻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소중했습니다. 콩쿠르를 하고 나서 계속해서 다른 곳을 다니며 저를 알릴 기회를 갖게 되고 또 그곳에서 만난 많은 분과의 인연도 값진 자산이 되었습니다. 또 항상 어느 곳에서 연주하든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준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쓰게 된 것도 절대 빼놓을 수 없죠.

Q.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으로 '1708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 허긴스' 바이올린을 쓸 수 있게 되었고,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에서는 1774년산 과다니니 바이올린을 후원했습니다. 지금 두 가지 바이올린을 다 쓰시는 건가요, 아니면 둘 중 하나만 사용하고 있나요? 연주자로서 느끼기에 두 가지 바이올린이 어떻게 다른지 궁금합니다.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에서 빌려주셨던 과다니니는 2014년에 오디션을 통해 쓰게 된 악기였습니다. 과다니니를 쓰면서 여러 좋은 일들을 함께했고 특히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때에도 이 악기로 연주했었습니다. 그러던 중 2015년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부상으로 지금 쓰고 있는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쓸 수 있게 되며 과다니니는 바로 반납을 하고 현재 스트라디바리우스로만 연주하고 있습니다.

과다니니는 모나지 않고 부드러우면서 따뜻한 소리가 나는 반면 스트라디바리우스는 볼륨의 레인지가 크고 깊고 화려한 소리가 납니다. 개인적으로 어떤 악기를 써도 연주자 본연의 소리가 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과다니니나 스트라디바리우스 어느 것을 써도 제소리가 나기에 둘 중 무엇이 더 어울린다고 정하는 것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Q.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때 겪어본 지휘자 마린 알솝이 궁금합니다. 어떤 장단점이 있는 지휘자인가요?

여러 지휘자분과 연주하면서 여러 가지 성향의 분들을 만나 뵈면서 크게 두 가지로 분리할 수 있었는데, 솔리스트가 프레이즈 처리 등 상상할 수도 없는 곳에서 루바토를 하건 어떤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도 일일이 맞춰주시는 분이 있는가 하면 오케스트레이션의 범위 내에서 절대 벗어나지 않으시는 분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두 경우 모두 장단점이 있지만 마린 알솝 같은 경우에는 그 전에는 쉽게 접해볼 수 없었던 에너지를 지니신 분이었습니다. 솔리스트의 음악에 끌려가지도 않고 그렇다고 본인의 음악만 고집하지도 않으셔서 적당히 연주자와 지휘자 오케스트라 사이에서 긴장감이 감돌면서 집중력 있는 음악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Q. 콩쿠르 우승 직후 중앙일보 김호정 기자는 근성, 성실함, 무게감, 안정감, 집중력 등의 단어로 임지영 씨를 표현했습니다. 김남윤 선생님도 임지영 씨를 노력파로 설명했습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다른 장점이 또 있을까요?

글쎄요… 특별히 장점인지 모르겠지만 크게 생각한다는 것? 가끔 현실이 촉박하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음악은 정말 끝이 없고 예민하고 무한한 작업이기는 하지만 세상에는 정말 많은 사람이 있고 긴 일생을 살아가야 하는데 너무 순간에 집착하다 보면 자기 자신을 가두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그럴 때 크게 생각하려고 하는데 그게 저 자신한테도 많은 것을 받아들일 여지를 갖게 되고 좋더라고요. 특히나 앞으로 길고 행복하게 음악 하려고 하면요.

Q. 소위 '김남윤 사단' 또는 '김남윤 악파'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 듯합니다. 한국에서 그것이 어떤 의미인가요?

김남윤 선생님께서는 수많은 훌륭한 바이올리니스트를 배출하셨고 항상 선생님의 그런 모습에 존경하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어릴 때 자주 선생님 제자들과 마스터클래스나 캠프를 가면 선생님 제자가 아닌 다른 곳에서 온 학생들도 있는데 그곳에서 다 같이 연주 같은 것을 하면 눈감고도 누가 김남윤 선생님 제자인지 구분할 수 있어요. 그 정도로 선생님 음악은 누가 해도 납득이 가는 음악입니다. 많은 분이 국제 콩쿠르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던 이유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Q. 독일 크론베르크 아카데미에서 무엇을 배웠나요?

훌륭한 친구들 그리고 선생님과 함께 다이얼로그 세션을 하거나 많은 실내악 등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주로 레슨을 받는 형식이었다면 이곳에서는 얘기하고 서로의 연주를 듣고 의견을 나누는 형식이라서 ‘나’ 스스로 하는 음악보다는 같이 생각하고 토론할 수 있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Q. 한 곡을 연주하기 전에 어떻게 준비하시나요?

특별한 루틴이 있지는 않습니다. 전에 연주한 경험이 없는 곡이라면 악보를 공부하고 핑거링이나 보잉 여러 가지를 시도한 후에 제 것으로 소화하려고 합니다. 연주를 자주 했던 곡들은 더 다지는 연습을 하는데 저는 오히려 이 작업이 더 신경을 많이 쓰는데 조금이라도 타성에 젖은 연주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Q.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생각하는 비발디 ‹사계›는 어떤 곡인가요?

바이올리니스트 이전에 특히 한국 사람이라면 거의 가장 쉽게 접하는 음악 중 하나라고 꼽을 정도로 친숙한 음악이죠. 그 정도로 많은 분이 사랑하는 레퍼토리이기 때문에 연주하는 입장에서는 반갑기도 하면서 더 책임감 같은 것을 느끼게 되네요. 개인적으로 비발디의 ‹사계› 는 지극히 인간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봄이 와서 새가 노래하고 여름에 폭풍우가 오고 가을에는 농사를 짓고 겨울에는 겨울바람 이런 요소들 너무나도 인간적이고 자연스러운 토픽이기 때문에 하나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 같습니다.

Q. 이른바 '역사주의 연주'(Historically Informed Performance)가 내놓은 성과 가운데 받아들일 만한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예를 들어 바흐의 무반주 소나타와 파르티타를 10명이 연주한다고 가정했을 때 모두 각기 다른 주법으로 연주를 하는데 그 중 비브라토와 활의 쓰임이 가장 다르다고 볼 수 있는데 어떤 연주자는 거의 비브라토를 사용하지 않고 바로크 활로 연주하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어떤 연주자는 프레이즈 연결을 비브라토와 활을 더 레가토로 써서 연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 또한 바흐나 비발디 같은 바로크 음악에서는 더욱 어떠한 스타일로 연주할 것인가에 관해서 고민을 했었는데 ‘어떠한 것을 더 받아들이느냐’라고 생각하기보다는 더 모든 사람이 수용할 수 있는 연주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바이올린 협주곡 가운데 어떤 곡을 가장 좋아하나요? 독주곡 중에서는요?

저는 매번 달라지는 스타일입니다. 보통은 제가 연주하고 있는 곡을 가장 좋아하는데 저는 제가 그 곡에 빠져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Q. 윤이상 곡을 전에 연주해 본 일이 있나요?

아직 경험은 없지만 기회가 있다면 앞으로 연주해보고 싶은 목표는 있습니다. 특히 얼마 전 윤이상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새로 발견하게 돼서 큰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Q. 한가한 때에는 뭘 하시나요?

집에서 일상적인 것들을 하거나 언어를 배우려고 하고 있습니다. 독일로 이사한 지 1년이 지났는데 1년 동안 너무 바빠서 독어를 배울 시간이 없었거든요. 올해는 시간이 나면 독어를 배우는 것이 목표입니다.

Q. 현재 단기적인 목표는 무엇인가요?

새로운 레퍼토리를 공부하는 것입니다. 실내악곡 또한 연주할 기회가 있다면 가능한 참여해서 공부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Q. 마지막으로 통영 관객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일단 처음으로 통영에서 연주하게 되어 매우 설레고 저의 멘토이신 김남윤 선생님 그리고 많은 훌륭한 음악가분들과 함께하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특히나 많은 분이 사랑하는 ‹사계›로 처음 통영 관객분들께 선보이게 되어서 더욱 기대가 됩니다. 열심히 준비해서 좋은 연주 들려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2018년 4월 20일 금요일

2018 통영국제음악제 막전막후

해마다 통영국제음악제 기간이면 무대 뒤에서 많은 사연이 생겨나지요. 올해 겪은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개막공연에 출연해야 할 보훔 심포니 오케스트라 단원 두 명이 공연 당일 아파서 제가 병원에 데려갔던 일입니다. 한 명은 밤늦게 김밥을 먹고 배탈이 난 첼리스트였는데, 다른 한 명이 문제였습니다. 허리가 아파서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는 상태였거든요. 현악기 연주자였더라면 그 한 사람쯤 빠져도 공연에 큰 지장이 없었겠지만, 하필 그 사람은 타악기 연주자였습니다.

요통 환자가 들것에 실려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이송되는 동안, 저는 복통 환자와 오케스트라 매니저를 제 차에 태우고 병원으로 따라갔습니다. 요통 환자는 응급실에서 증상을 확인하고, 엑스레이를 찍고, 스테로이드와 진통제 등을 처방받았습니다. 환자는 만성 요통으로 독일에서 치료를 받아온 이력이 있었고, 그날 하필 침대에서 굴러떨어져서 증세가 악화한 상태였습니다. 엑스레이 영상을 판독한 의사는 디스크 탈장을 의심하면서도 엑스레이만으로는 확신할 수 없으니 독일에서 엠알아이(MRI) 검사를 해보라고 권유하더군요.

요통 환자가 치료를 받는 동안 저와 오케스트라 매니저, 그리고 사무실에 있는 동료들은 두 가지를 걱정했습니다. 환자가 이 상태로 오늘 밤 공연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공연이 끝난 뒤에 독일까지 장시간 비행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대타 연주자는 무엇보다 윤이상 ‹광주여 영원히›를 당장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마침 지난해 광주시립교향악단이 이 작품을 연주한 일이 있어서, 사무실에서는 그곳 타악기 연주자에게 연락을 시도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병원에서는 치료가 효과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오전 내내 누워 있던 환자가 힘겹게 일어나 물리치료를 받았고, 그 뒤에 밥을 먹더니, 퇴원해서 그날 저녁에 무대에 올랐습니다! 다음 날 공연 때에는 상태가 훨씬 좋아 보였습니다. 공연이 끝난 뒤에는 독일까지 무사히 돌아갔고요. 현대 의료기술이 참 대단하지요! 병원 의료진들이 모두 친절하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공연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으니 참 감사한 일입니다.

환자가 치료를 받을 때 제가 통역을 했고, 의학 용어가 라틴어 또는 영어로 되어 있는 만큼 때로는 의료진이 직접 환자와 소통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몰랐던 의학용어를 익히기도 했는데요, 급성(acute), 만성(cronic), 설사(diarrhea) 등이었지요. 디스크 탈장(Slipped Disc)은 영국의 유명 음악평론가가 말장난처럼 쓰고 있는 웹사이트 이름 때문에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만약을 대비해 주요 병명을 익혀두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위염(gastritis), 장염(enteritis), 편도선염(tonsillitis), 맹장염(appendicitis), 골절(fracture). 또 뭐가 있을까요? 아, 공연장에서 지휘자에게 심근경색(heart attack)이 일어나 심폐소생술(CPR)을 했다는 얘기가 화제가 된 일이 있지요!

그밖에 음악극 ‹귀향›에 소품으로 사용할 활을 구하느라 동료가 백방으로 수소문하던 일, 그 와중에 알게 된 활 판매 업체 '활○당' 이름 때문에 다 같이 웃었던 일, 구하기 힘든 악기 때문에 여러 사람이 골머리를 앓았던 일, 독일인 지휘자에게 굿거리장단을 설명하면서 '태평가'를 불러줬던 일, 올해도 어김없이 새벽에 공항으로 출발하는 연주자를 배웅했던 일, 피곤한 몸으로 연주회장 구석 자리에 앉아 음악을 들으려 노력하며 정신없이 졸았던 일 등이 생각납니다. 지면이 짧으니 더 자세한 사연은 생략할게요.

마지막으로 이번 통영국제음악제에서 세계초연된 음악극 ‹귀향›으로 화제가 되었던, 여창가곡 우조 이수대엽 '동짓달'의 절절한 노랫말과 그것을 기막히게 노래한 박민희 선생이 특별히 기억에 남습니다. ‹귀향›의 진정한 주인공은 율리시스도 페넬로페도 아닌 박민희 선생이 아니었나 싶어요!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둘에(베어) 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룬 님 오신 날 밤이어든 구비구비 펴리라

시를 쓴 사람이 황진이라네요.

2018년 3월 15일 목요일

Isang Yun: Poems of the Nakdong River

Isang Yun wrote a song ‹Nakdong River› while in Korea, and it is quite well-known through Isang Yun Children’s Song Festival. However, there is another ‹Nakdong River› by Yun himself that elderly persons in Gyeongnam Province still remember. Euy-Jang Jin, the former mayor of Tongyeong City, mentioned that the latter was also called “The song of Gyeognam citizens.” Seung-gi Lee, a film expert who served as the head of the Masan Culture Bureau, remarked that it was sung at every morning gathering in Gyeongnam area schools. He also added that it was inserted into the movie ‹Nakdong River›, released in 1952 but lost, probably during the Korean War.

There seems to be an indirect relationship between the two songs of ‹Nakdong River› along with the movie of the same title, and Yun’s symphonic poem titled ‹Poems of the Nakdong River›. In a letter dated November 30, 1956, to his wife Sooja Lee, Yun stated that he had begun composing that symphonic poem in Korea, then concluded the first two movements in Paris, where he also completed the final third movement in the evening of November 29. In April that same year, Yun received the Seoul City Culture Award with his first string quartet. In June, he left Korea to study abroad, and learned composition at the Paris Conservatory, where he also encountered European modern music.

In other letters to his wife during his days in Paris, Yun occasionally reveals anxiety over the progress of his learning. In regards to ‹Poems of the Nakdong River›, he did not seem to feel confident, saying “I cannot expect much because I have put in too many conventional elements.” In this regard (and in some other as well), and in view of the fact that the work was based on traditional functional harmonies, we can guess why ‹Poems of the Nakdong River› has not come into light until now. However, when we treat this piece from the perspective of modern Korean people, we can understand that Yun had already been shining as a composer since the time it was written.

Yun originally appears to have designed it as a six-movement scheme before modifying it to three movements in the process. In the manuscript, the first movement was to be a prologue, followed by five movements, respectively titled Twilight, Hangawi (Korean Thanksgiving), Field of Reeds, Song of Bumper Years, and Epilogue. However, the completed composition consists of three movements: Prologue, An Evening of the Nakdong River, and Dances.

In the early 1950s, the Korean Peninsula was swallowed up in a civil war, which, at least partially, was a proxy war in behalf of the United States, China, and Russia. The Nakdong River was the battlefield where South Korea turned the tide and defeated North Korea. During this period, Yun was a music teacher in Busan, one of the major cities in the Nakdong River Basin. After the war, he went to Seoul with his family, where he spent about three years as a composer and a part-time lecturer at Seoul National University and Duksung Women's University. As can be seen from the historical background, and unlike what the initial conception based on 6 movements might suggest, the first two movements of this work are full of dark sentiment.

It is the “dramaturgy” that leads this piece; the second movement is in an arch form, but the outer movements do not follow the traditional formal structure. The first movement commences with a grand fanfare, and the ascending figure in the interval of fourths becomes the seed of the entire movement. That sustains the formal coherence and consistency of the entire composition. The sudden texture contrast between this fanfare and the subsequent melody reminds us of a movie scene transition from the signal (that indicates an opening of a movie) to the actual movie. That's why we need to reconsider its relation to the film ‹Nakdong River›.

In the first movement, sorrow flows like a river, and sobs turn into wailing. When that wailing has trailed away, an anxious beat appears, which sounds like the last beating of the heart. The movement ends with two sharp squeaks. The second movement is mainly led by the oboe melody, which sounds like a melancholic barcarolle, or in some sense, Korean pallbearers' dirge. In the third movement, an exciting rhythm appears like a manifesto, driving out the tragedy.

In the middle of the third movement, a melody, distinctly in the Korean folk song style, makes appearance. Its interval structure is identical to that of a melodic fragment in the Korean folk song ‹Miryang Arirang›. In contrast to ‹Miryang Arirang›, which consists of Semachi Rhythms, or Semachi Jangdan in Korean traditional terminology, the melody here resembles the Gutgeori Jandan of ‹Taepyunga›. As a result of combining ‹Miryang Arirang› and Gutgeori Jangdan, the melody sounds similar to the ‹Korean Barcarolle›.

WonCheol Kim
translated by Moohyun Cho

World Premiere:

Scheduled on April 5, 2018
Tongyeong Concert Hall
Kammerorchester Hannover
Hans-Christian Euler, conductor

2018년 1월 31일 수요일

소프라노 황수미 인터뷰

통영국제음악재단에서 발간하는 『Grand Wing』에 실린 글입니다. 출간본과는 사소한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2018년 1월 7일, 독일 현지 시각 오전 11시경 전화 인터뷰.

Q. 통영 공연은 이번이 두 번째다. 2016년 샹젤리제 오케스트라와 협연했을 때를 어떻게 기억하는가?

A. 통영의 아름다움이 우선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고, 통영국제음악당의 음향이 훌륭해서 노래하기 편했었다. 그때가 통영국제음악당 데뷔 무대여서 긴장되기도 했지만, 직원들이 친절하게 챙겨주셨고, 숙소도 마음에 들었고, 아침에 자전거를 빌려서 해안 도로를 다녔던 것도 멋진 추억으로 남아 있다. 심지어 날씨까지 좋아서 모든 것이 완벽했던 것 같다.

Q. 올림픽 개막 공연에 출연하게 되었는데.

A. 영광으로 생각한다. 사실은 연락을 지난달에 받아서 일정을 조정하느라 정신이 없는 상태다. 아테네에서 열렸던 제1회 올림픽 때부터 공식 찬가로 지정된 곡을 원어인 그리스어로 불러 달라는 요청을 받았고, 악보를 받은 지는 일주일밖에 안 됐다. 이걸 잘 해내려면 남은 시간 동안 열심히 준비해야 할 것 같다.

Q. 연주자로서 자신의 장단점을 스스로 가장 잘 알고 있을 것 같다. 장점 위주로 자신을 평가한다면?

A. 무대 위에서 드러나는 것보다 그것을 준비하는 과정을 즐길 수 있는 것이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작품을 준비하는 과정은 지루할 수도 있고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려운 과제를 하나씩 해결하면서 받는 쾌감을 즐기는 편이다.

Q.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때 소프라노 임선혜 선생이 평하기를, 포커스가 확실하고 파워 있는 '고음'에 놀랐다고 했다.

A. 그때 마침 브뤼셀에 공연차 왔다가 콩쿠르를 보셨던 것 같다. 칭찬에 감사한다.

Q. 내 생각에 쇤베르크 ‹구레의 노래› 중 숲비둘기(Waldtaube) 역할을 하면 좋을 것 같다. 오케스트라 편성이 워낙 큰 작품이라 성량이 풍부해야 하지만, '비둘기'에 어울려야 하므로 드라마틱 소프라노여서는 안 되고, 고음이 맑고 단단하고 '포커스가 확실해야' 하는 까닭에 이 역할을 잘할 수 있는 소프라노가 흔치 않은데, 이 역할이 누구보다도 잘 맞을 것 같다.

A. 다음에 기회가 되면 꼭 도전해 보겠다. 통영에서 기회를 만들어 주셔도 좋을 것 같다. (웃음)

Q. 진은숙 ‹퍼즐 & 게임›은 다른 방향으로 난이도가 대단하다. 이번에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와 협연할 이 곡을 전에 들어본 일이 있는가?

A. 오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뮌헨 공연 실황을 봤었다. 오페라를 모음곡으로 재구성한 ‹퍼즐 & 게임›은 아직 악보를 받아보지 못해서 잘 모르겠다.

Q. 작곡가 진은숙에 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A. 여성 작곡가로서, 또 아시아 작곡가로서 베를린필 같은 특급 악단이 공연하는 작품을 여럿 쓰신 점이 대단하다. 개인적인 친분은 없지만, 왜소한 체격에서 느껴지는 아우라나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않는 모습 등이 멋있다고 생각한다. 글라인드본 페스티벌에 출연하면서 알게 된 유명한 오페라 연출가 클라우스 구트 선생이 진은숙 차기작 오페라 ‹거울 나라의 앨리스›를 연출할 예정이라고 말해줬을 때는 같은 한국인으로서 괜히 자부심을 느끼기도 했다.

Q. 크리스티안 요스트 ‹시인의 사랑›은 어떤가?

A. 매니저가 조만간 악보를 챙겨 줄 예정이라 아직 잘 모르겠다. 슈만 원곡은 참 좋아한다.

Q. 여자가 부르는 ‹시인의 사랑›은 흔치 않다.

A. 가사 내용이 남자 가수에게 맞는 곡이기는 하지만, 최근에는 브리기테 파스벤더, 바바라 보니, 크리스티아네 셰퍼 등이 ‹시인의 사랑›으로 호평받았다. 시를 전달하는 일에 남녀를 엄격히 가릴 필요는 없지 않나 싶고, 크리스티안 요스트가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시인의 사랑›이라면 더욱 남녀 구분 없이 도전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Q. 통영국제음악제에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네 개의 마지막 노래›를 보훔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할 예정인데, 마지막 곡 '저녁놀 안에서'(Im Abendrot)를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때 불렀었다.

A. 학생 때부터 언젠가는 오케스트라와 협연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꿈의 레퍼토리'였고, 특히 리사 델라 카사의 음반을 좋아했다. 그래서 콩쿠르 결선 때 이 곡을 마지막 곡으로 불렀다. 음악이 주는 평안함이 좋았고, 잘해야지 하는 생각보다는 마지막 가는 길이 이렇게 평안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Q. 안나 네트렙코의 초기 목소리를 참고했다고 다른 인터뷰에서 밝힌 일이 있다. 자신만의 발성법을 찾기 전에 흉내 내려 했던 가수가 또 있다면?

A. 미렐라 프레니. 입 모양을 보면 소리가 어떻게 나는지 훤히 다 보일 것 같은 사람이다.

Q. 뮌헨 음대를 졸업했다.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나?

A. 도시 자체가 참 좋았고, 수업에서 배운 내용을 실제 오페라 극장 오디션과 연계해 실습할 수 있는 시스템이 좋았다. 또 오페라뿐 아니라 리트 및 오라토리오를 복수전공하면서 시야를 넓히기도 했다.

Q. 본 오페라 극장 주역 가수이다. 극장 자랑을 해달라.

A. 플라시도 도밍고, 문서라트 커벌예(몽셰라 카바예), 에디타 그루베로바 등이 공연했었던 전통 있는 극장이고, '베토벤 오케스트라 본'이라는 훌륭한 악단이 극장 오케스트라로 있다. 개인적으로는 파미나, 돈나 안나, 미미, 수산나, 미카엘라 등 배역을 맡으면서 오페라 가수로 성장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4년차인 이번 시즌을 끝으로 독립할 예정이며, 앞으로는 여러 공연장으로 활동 영역을 넓혀 자유롭게 출연하게 된다.

Q. 국내 팬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계획이 있다면?

A. 피아니스트 헬무트 도이치 선생님과 함께 음반 녹음 건으로 음반사와 의견 조율 중인데, 자세한 내용은 아직 말하면 안 될 것 같다. 또 헨델 오페라 ‹리날도›로 앙상블 마테우스와 함께 파리, 빈, 모스크바 등을 순회공연할 예정이다.

Q. 마지막으로 통영 관객에게 한 말씀 해달라.

A. 아름다운 도시에서 다시 노래하게 되어 기쁘고, 좋아하는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되어 감사하다. 싱그러운 봄에 좋은 음악으로 찾아뵙기를 기대한다.

2017년 11월 17일 금요일

소프라노 임선혜 인터뷰

통영국제음악재단에서 발간하는 『Grand Wing』에 실렸던 인터뷰입니다.


Q. 통영국제음악당 개관 전에 공연하셨던 것을 빼면, 지난 2015년 베를린 고음악 아카데미와 함께 '오르페오'를 주제로 공연한 이후로 이번이 두 번째 통영 공연입니다. 2015년 당시 통영국제음악당이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나요?

벌써 2년 전의 일이지만 저와 당시 함께 했던 베를린 고음악 아카데미 동료들에게도 아직 선명하게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뛰어난 음향을 가진 아름다운 공연장과, 바다가 보이는 대기실은 정말 잊지 못한다며 지난주 함께 베를린 무직페스트에서 연주한 그 동료들이 다시 떠올리더군요. 아마 함부르크 엘프필하모니와 더불어 세상에서 제일 그림같이 멋진 대기실이라고요. 역시 저에게도 그렇답니다. 더불어 엄청나게 맛있게 먹은 음악당 내 이탈리안 레스토랑도 기억에 남네요.

Q. 거장 지휘자들과 함께 여러 음반을 녹음하셨습니다. 그 가운데 시히스발트 카위컨 지휘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도 있는데요, 한 성부에 한 명으로 합창과 독창을 겸하게 한 편성이 독특합니다.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일화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이 녹음을 하기 몇 년 전 바흐의 ‹요한 수난곡›을 카위컨과 연주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적어도 한 성부에 두 명씩이었어요. 프로젝트 플랜에 합창단 언급이 없어서 이번에도 그런 방식일까 했는데, 첫 연습에 도착하니 정말 소프라노라고 나와있는 부분은 혼자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해야 한다는 말에 속된 말로 ‘멘붕’이 강림했죠. 다행히 그간 연주하며 들은 풍월 덕에 하루 만에 익혀서 차질은 없게 했지만 워낙 양이 많다 보니 노래를 해도 해도 끝이 안 나던 기억이 나요. 하지만 아리아와 듀엣 몇 곡 부르던 때와 달리 정말 '예수 탄생 이야기’에 더 적극적으로 동참하며 동료들과 가사를 맞추고, 또 바흐 특유의 수학문제 풀이 같은 각 성부 진행을 함께 노래하며 엄청난 희열을 느꼈던 기억이 납니다. 한겨울 벨기에의 한 교회에서 녹음을 했는데, 공사 중이던 옆 건물의 소음 때문에 저녁에 시작해서 자정 넘어까지 손을 호호 불어가며 목도리를 온몸에 칭칭 감고 노래했던 기억도 이제 추억으로 남았네요.

Q. 바흐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를 처음 공연했을 때를 기억하시나요?

그건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네요. 첫 공연은 아니지만 두 번째 세 번째 즈음이었을까요?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존 노이마이어의 연출, 안무로 함부르크 발레단과 한 공연이 기억에 아주 많이 남았어요. 베를린 도이체오퍼에서 오페라로 연출된 ‹마태오 수난곡› 프로덕션에 잠깐 참여했을 때와 비슷한 충격이 있었죠. 소설을 읽으며 내 머리로만 상상하던 것이 영화로 구체화되어 나왔을 때와 비교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원래 연출되도록 만들어진 곡들이 아니고, 게다가 교회음악이기에 그 접근이 터부처럼 느껴졌던 것이 일반적 정서라, 뭔가 금지되었던 것의 안을 들여다보는 아찔함이 있었죠. 노이마이어의 발레에서 발레리노 예수가 나중에 십자가 지고 가는 장면들이 자유로의 춤으로 연출될 때 연주되는 바흐의 음악 역시 그를 따라 극장 전체를 일렁이며 춤추고 있었어요. 오페라를 넘은 종합예술의 어떤 완성점을 처음 맛보았다고 할까요? 십여 년 전에 비해 지금은 이런 시도들이 훨씬 많아졌어요. 미국 피츠버그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작년에 ‹요한 수난곡›을 스테이지 프로젝트로 만들기도 했고, 지난봄에는 하이든의 ‹천지창조›를 무대연출해서 엘프필하모니에 올린 작품에 참여하기도 했지요. 한계와 무한한 가능성이 동시에 존재하는 이 새로운 시도에 많은 연출가들이 호기심을 쏟고 있답니다.

Q. 소프라노 성부를 맡은 솔리스트의 역할과 관련해 바흐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가 독특한 점이 있을까요? 바흐 칸타타와 비교했을 때, 바흐 수난곡과 비교했을 때 어떤 점이 다를지 가수로서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가장 큰 차이는 주제에 따른 마음의 접근이겠지요? 한 곡은 수난을 노래하니 그 의미와 구원의 역사를, 다른 한 곡은 그 계획된 구원의 역사가 시작되는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이니까요. 사실 바흐 오라토리오에서 솔리스트는 잘 차려진 음식 위에 올려지는 고명과 같은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극의 줄거리 설명은 복음사가(Evagelist)가 하고 극은 합창이 이끌어갑니다. 그 줄거리 설명과 드라마 사이사이에 솔리스트들은 격양된 희로애락의 감정을 읊지요. 이 부분들이 잘 읊어지고 진정성을 낳으면 관객들은 다음의 줄거리와 극들을 더 기대하며 공연에 적극적인 참여를 하게 됩니다. 모든 바흐의 오라토리오들이 그런 역할을 솔리스트들에게 요구하고 제안하고 있지요. 다만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는 하루에 모든 곡이 연주되는 것이 목적이 아니기에 약간은 다른 성격이 있어요. 원래는 "크리스마스 기간” 각각 다른 날들에 연주하도록 작곡된 것이라 큰 줄거리는 우리가 아는 그 내용이지만, 6칸타타들을 하나로 만드는 큰 유기적인 결합은 덜합니다. 따라서 수난곡에서는 각 성부 아리아들의 위치와 배정을 어느 정도 계획했다면,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는 그런 큰 그림이 꼭 보이지는 않지요. 1번부터 6번까지를 하루 저녁에 연주하기도 하지만 어떤 공연들은 1, 4, 5, 6만 한다던가, 첫날은 1-3번, 두 번째날은 3-6번 이렇게 정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에 따라 공연에서 부르는 아리아가 거의 없을 때도 있지요. 그날의 무대 위에서 정자세로 더 많이 앉아있는 '감상의 날’이죠.

이 곡에서 또 주목할만 것은, 바흐가 자신이 세속칸타타에서 썼던 아리아들을 다시 사용했다는 것인데, 마침 그 세속 칸타타들을 연주해본 경험이 있어서 제게도 흥미로웠던 부분입니다. 바흐가 자신이 이미 썼던 곡에 가사를 바꾸고 악기에 변화를 주어서 180도 전혀 다른 분위기가 나는 곡으로 둔갑시키는데 아주 큰 능력이 있는 작곡가임을 후대에 음악가들이 감탄해 마지않고 있습니다. 어린 헤라클레스에게 세상의 모든 즐거움을 즐기라고 유혹하는 ‘쾌락’(Wohllust)의 소프라노 아리아 (BWV213)가 이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에서는 아기 예수에게 잘 자라는, 한없이 순수한 자장가로 등장하는데 이때는 알토의 아리아로 바뀝니다. 성부가 가사를 조금 바꿈으로써 '아주 관능적인 아리아'에서 '아주 순결한 아리아'로 바뀌는 마술이 일어난 거죠! 바흐는 알면 알수록 수수께끼 같은 매력이 드러나는 작곡가입니다. 바흐 사후 바흐를 세상에 다시 소개해 그의 작품들이 만개하게 한 멘델스존이 문득문득 참 고맙답니다.

Q. 뤼벡 합창 아카데미(Chorakademie Lübeck)는 2014년에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카르미나 부라나' 공연으로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던 합창단입니다. 뤼벡 합창 아카데미와 전에 협연하신 일이 있나요?

소식은 많이 들었지만 함께하는 것은 처음입니다. 다만 지휘자 롤프 베크 선생님은 십여 년 전, 독일의 대표적 여름 페스티벌인 슐레스비히-홀스타인 페스티벌 디렉터로 계실 때 그 페스티벌 합창단과 함께 바흐의 ‹B단조 미사›를 함께 한 적이 있습니다. 워낙 독일에서 합창 음악에 대가로 알려지셨기에 그분이 가는 곳이면 합창이 늘 특별하고 좋았지요. 오랜만에 뵙게 될 텐데 다시 바흐 음악으로 함께하게 되어 기대됩니다.

Q. 지난 2014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때, 페이스북으로 소프라노 황수미 · 박혜상 · 바리톤 유한승 씨를 극찬하면서 응원하시던 기억이 납니다. 요즘 눈여겨보고 있는 신인 가수가 있나요?

둘러볼 기회가 없어서 다 응원하지 못할 정도로 엄청나게 실력 좋은 한국인 신인 가수들이 많습니다. 도밍코 콩쿠르에서 우승한 테너 김건욱도 그 중 하나인데, 지난해에는 부산에서 ‹사랑의 묘약›을 같이 공연할 기회가 있었지요. 아름답고 진정성 가득한 음성과 음악을 대하는 겸손함 그리고 무대에서의 적극성이 앞으로 더 좋은 무대들을 열어주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친분이 있는, 피츠버그 심포니 음악감독인 마에스트로 만프레드 호넥씨가 찾고 있는 테너 음성인 것 같아서 적극 추천을 했는데 잘 성사되어 서로 기뻐하는 모습에 저도 괜히 뿌듯했답니다.

Q. 가수로서 느끼는 유럽 고음악계 및 오페라 극장의 최신 경향이나 판도를 국내 애호가 및 음악 전공 학생들에게 소개하자면?

근 20년 전 저의 데뷔 초기에 유럽에서 솔리스트로 활동하는 가수들이 열 분도 채 안 되었다고 하면, 이제는 한국 출신 성악가들을 유럽의 어느 극장에서 만날 수 있는 환경이 되었습니다. 한국 출신 음악가들이 많은 국제 콩쿠르 입상으로 극장 무대에 진출한 덕이기도 하고 더 넓게는 유럽이 자신들의 음악시장을 점차 개방해서 모든 민족들과 나라의 사람들이 함께 경쟁하고 연주할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졌다는 의미이기도 하지요. 어느 나라 가수는, 음악가는 대략 이렇더라 하는 편견도 많이 사라지고 있고요. 그것은 세계 곳곳에서 모여든 새로운 세대의 젊은 음악가들이 관객들로 하여금 테크닉뿐만 아니라 감성의 공감대를 이끌어낼 만큼 열려있고 문화 공부도 많이 한다는 의미가 되기도 합니다. 피부 색깔 등 많은 편견들과 선입견이 사라진 이상 아티스트, 연주자 개개인의 남다른 개성, 그리고 그 개성의 뚜렷함이 호감을 얻게 되면 많은 주목을 얻게 되는 것이죠. 동양인이 수석으로 앉아있어도 이상하지 않고 동양인이 음악사 최초 서양 오페라에서 주인공이어도 거부감이 없는, 오히려 어떤 다른 색깔을 내어줄까 하는 기대를 사게 만들 수도 있는 시대. 더 이상 동양인이라 절대 안 된다는 말은 듣지 않아도 되는 '열린 세상'에서 자신의 음악을 맘껏 펼쳐볼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 같습니다. 최첨단 테크놀로지로 지구의 많은 나라들이 서로 가깝게 느껴지는 덕이기도 하겠지요. 하지만 오랫동안 열정과 인내로 국제무대를 지켜내시고 좋은 이미지들을 남겨주신 여러 음악가 선배님들의 노고를 기억해야 할 것 같습니다.

Q. 자신만의 발성법을 찾기 전에 흉내 내려 했던 가수가 있었나요? 자신의 목소리를 찾게 된 과정이나 계기가 궁금합니다. 더 나은 발성법을 고민 중인 성악도들에게 조언 한 마디 부탁합니다.

미렐라 프레니를 좋아하던 시절, 성악에 입문하고 대학 입시를 치를 때까지는 아주 고음은 잘 안 나지만 제법 굵고 큰 소리가 나는 소프라노였습니다. 상상이 어려우실 수도 있겠지만요.(웃음) 제게 지금의 목소리를 갖도록 길을 닦아주신 분이 서울대 박노경 교수님이셨어요. 자기 몸에 어울리는 소리를 가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국제 무대에 서기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가볍고 날씬해서 고음이 잘 나는 음성이 실제 이 아이의 몸에 맞지 않을까 하고 많이 연구하셨다고 해요. 저는 그 깊은 뜻은 감히 헤아리지 못했고 그저 선생님의 음악성에 늘 감탄하던지라 선생님을 무척 따랐지요. 그래서 2-3학년 때는 하이 C 가 겨우 나던 것이 4학년 때는 콩쿠르에서 Eb 이 나는 ‹청교도› 의 아리아나, 루치아의 ‹광란의 아리아› 들로 1등을 할 수 있었습니다. 유럽 데뷔 후 주로 고음악이 주 레퍼토리가 된 통에 벨칸토 레퍼토리를 할 수 있는 기회는 줄었지만, 바흐, 헨델 하이든, 모차르트 가수로, 또 각 장르에 유연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은 그 때 선생님께서 제 몸에 무리되지 않는 자연스러운 소리를 찾아주신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소리와 노래를 가장 오랫동안 들으셔서 가장 잘 아시는 분이기에 지금도 한국에 가면 레슨을 받고 조언을 구합니다.

또 성악가들은 노래하면서 자신의 소리를 듣기가 힘들기에 연습이든 공연이든 되도록 녹음을 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지요. 자기 목소리를 듣는다는 건 때로 민망하고 쥐구멍으로 숨고 싶게 할 때도 있지만, 내 목소리를 객관적으로 들으며 지향점과 지양점을 스스로 깨닫고 생각하는 꼭 지나야 하는 깜깜한 터널 같은 작업이지요. 덕분에 많은 음악적 아이디어가 생기기도 하고요. 때로는 다른 성악가들의 노래를 들으며 참고할 때도 있는데, 때마다 다르지요. 지금 당장 어떤 부분이 부족하거나 넘친다는 생각이 들면 레퍼런스가 될 수 있는 소프라노들을 듣기도 합니다. 캐슬린 배틀이 될 때도 있고, 엘리 아멜링이나 알린 오거(Arleen Auger) 가 될 때도. 최근에는 마리아 바요의 이태리 레치타티보 리듬에 반해서 많이 참고한 적이 있습니다.

한국 성악도들이 유학을 가면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가, 어린 나이에 무겁게 노래하지 말라는 이야기일 겁니다. 오래 건강하게 그리고 듣기 좋게 노래하기 위한 기본이 되기 때문일 테지요. 내가 잘 되길 진심으로 바라는 선생님의 좋은 귀가 한 성악가의 커리어를 함께 한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좋은 선생님을 만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거기에 대해 많은 노력과 투자를 해봐야 한다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Q. 국내 팬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계획이 있나요?

몇몇 새 음반이 곧 출반됩니다. 파비오 비온디가 이끄는 “에우로파 갈란테”와 비엔나 공연 실황 녹음을 한 헨델의 오페라 ‹실라›, 그리고 B-Five라는 리코더(Blockfloete) 그룹과 지난해 녹음한 윌리엄 버드(William Byrd)의 Songs. 요절한 유태인 작곡가 에르빈 슐호프(Erwin Schulhoff) 의 가곡 전집을 남독일방송국과 함께 녹음 중인데, 가곡 작곡가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이 작곡가의 다양한 면모를 세계초연 레코딩으로 소개할 수 있어 기쁩니다.

올해 모차르트 오페라 ‹여자는 다 그래›로 내한해서 세미 스테이지 버전 모차르트 오페라의 진수를 보였던 르네 야콥스와 ‘프라이부르크 바로크오케스트라’가 다시 내년에는 ‘피가로의 결혼’으로 내한합니다. 영악하고 요염한 하녀에서 사랑스럽고 재치 있는 새신부, 수잔나로 함께 공연하게 되어 벌써부터 기쁩니다!

2017년 10월 9일 월요일

윤이상: 첼로를 위한 ‹활주› (1970)

이 작품의 원어 제목인 'Glissées'(글리세)는 '미끄러지다' 또는 음악 용어 '글리산도'를 뜻하는 프랑스어로 동사 원형은 'glisser'이다. 그러나 윤이상의 '글리세'는 서양음악의 단순한 글리산도가 아닌 동아시아 음악의 다채롭고 변화무쌍한 움직임을 대표하는 말이다. 이 작품에서 첼로 소리는 때로 거문고, 가야금, 또는 해금처럼 들린다.

동아시아 음악에서 개별음은 생명력을 품고 자유롭게 움직이며, 윤이상은 그것을 서양 기보법으로 옮기면서 장식음, 글리산도, 그 밖에 여러 특수한 연주법 따위를 사용했다. 이것은 동아시아 음악을 단순히 모방한 것이 아니다. 음악학자 볼프강 슈파러가 한 말을 빌리자면, 이것은 "윤이상의 기보법과 음향적 상상력에 따라 고유한 변화와 개성, 특징적 억양을 갖게 된다."

첼로를 위한 ‹활주›는 윤이상이 ‹예악› 등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뒤에 쓴 작품이다. ‹예악›에서 음을 덩어리로 쌓아 음향복합체를 만들되 그것을 이루는 개별음에 생명력을 부여함으로써 동아시아 음악의 음향을 서양악기로 표현했다면, ‹활주›에서는 첼로라는 악기 하나에 집중하면서 개별음이 생동하며 만들어내는 소우주를 탐구한다.

한편, 한국 전통음악, 그중에서도 특히 정악(正樂)은 비트(beat)가 아닌 호흡으로 음악이 분절된다는 점에서 서양음악과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윤이상의 ‹활주› 또한 마찬가지로, 이 곡의 악보에는 심지어 마디줄이나 박자표도 없다. 그래서 연주자에게나 감상자에게나 중요한 것은 음 하나가 생장하며 쉬는 '숨'을 따라 쉬는 일이다.

2017년 10월 8일 일요일

코다이: 첼로 독주를 위한 소나타 Op. 8

"다른 어떤 작곡가도 이 작품과 비슷한 곡을 쓴 일이 없다. […] 목소리를 닮은 놀라운 효과로 독창적이고 독특한 양식을 창조[…] 그런 효과가 아니더라도 이 작품의 가치는 눈부실 만큼 명백하다." (벨러 버르토크)

오페라의 레치타티보를 기악에 응용한 사례는 드물지 않다. 파를란도(parlando), 즉 말하듯이 연주하라는 나타냄말 또한 기악 음악에 때때로 나온다. 그러나 코다이의 첼로 독주를 위한 소나타에서는 '말소리'가 음악에 극적 효과를 더하는 '양념'으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말소리'가 그 자체로 음악을 지배한다. 3악장을 빼고 나면 이 곡에서 리듬의 규칙성은 없다시피 하고, 첼로는 마치 배우가 독백하듯 말한다. 말하자면 이 작품은 첼로라는 배우가 출연하는 일인극이다.

첼로가 하는 말을 사람이 알아들을 수는 없다. 이때 관객에게 필요한 것은 '목소리'에 실린 감정에 귀 기울이는 일이다. 1악장에서 때때로 음산한 음형이 마치 효과음향처럼 반복되는 가운데 첼로는 분노하고 절규하며 통곡한다. 2악장에서는 탄식하고 흐느낀다. 3악장에서는 뜬금없이 헝가리 민속 음악을 닮은 음형이 나온다. 반복되는 신나는 리듬과 함께 관객은 처음으로 '말소리'가 아닌 '음악'을 듣게 된다. 그러나 처음 나온 음형이 변형되면서 음악에 다시금 말소리가 끼어든다. 웃음을 잃지 않는 저항을 말하는 것일까?

쿠르타그: ‹기호 II›, ‹필린스키 야노시: 제라르 드 네르발›, ‹믿음›, ‹그림자›

1989년부터 1997년 사이에 쿠르타그는 예전에 쓴 소품들을 모으고 고쳐서 ‹기호, 유희 그리고 메시지›(Jelek, játékok és üzenetek)라는 작품집을 발표했다.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베이스, 그리고 네 악기를 다양하게 조합한 소품으로 된 이 작품집 가운데 오늘 연주될 다섯 곡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작곡되었다.

쿠르타그는 버르토크와 베베른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기호›는 특히 고도로 압축된 표현이 베베른과 닮은꼴이며, 리듬과 세세한 표현은 버르토크를 닮았다.
‹필린스키 야노시: 제라르 드 네르발›은 20세기 헝가리 시인 필린스키 야노시의 ‹제라르 드 네르발›을 바탕으로 한 곡이다(헝가리에서는 동아시아처럼 성을 이름 앞에 쓴다). 제라르 드 네르발은 19세기 프랑스 시인으로 불행한 삶을 자살로 마감했다.

강변이 아닌 강변.
해돋이가 되지 못한 기억,
해자(垓字)의 어떤 것
머릿속 뾰족한 바늘.

‹믿음›은 소프라노와 피아노를 위한 ‹보르네미서 페테르의 말씀›을 첼로 독주곡으로 편곡하여 읆조리듯 노래하는 첼로 소리로 가사를 대신한 작품이다. 보르네미서 페테르는 16세기 헝가리 루터파 주교였고, 쿠르타그의 원곡은 보르네미서의 설교 중 믿음에 관한 내용을 가사로 한다.

‹그림자›는 하행하는 음형을 중심으로 하는 흐릿한 텍스처가 특징적인 작품으로, 첼리스트 스티븐 이설리스는 이 곡에서 셰익스피어 «햄릿»에서 유령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대목을 떠올리기도 했다. "여기다!—여기다!—사라졌어!"(’Tis here!—’Tis here!—’Tis gone!)

2017년 7월 25일 화요일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

통영국제음악당 공연 프로그램북에 실릴 글입니다.


"이 교향곡은 너무나 화려하고, 거창하고, 가식적이고, 장황하며, 전체적으로 매몰찹니다. 저는 참말로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실력을 잃었을까요? 그렇다면 끔찍한 일입니다."

차이콥스키는 자신의 후견인 나데즈다 폰 메크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다. 교향곡 5번을 발표한 뒤에 전문가들의 반응이 좋지 않아 자학하는 말이다. 교향곡의 종주국인 독일-오스트리아에서는 작은 음악적 씨앗으로 논리를 구축하고 발전시키는 것을 미덕으로 삼아 왔지만, 차이콥스키는 그러한 전통을 일정 부분 수용하면서도 논리와 구조에 매달리는 일이 자신의 '체질'에 맞지 않아 괴로워했다.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에는 딱히 표제나 음악 외적인 내용 설명이 없다. 1악장과 4악장은 소나타 형식, 2악장과 3악장은 세도막 형식으로 19세기 작품치고는 깔끔하게 분석된다. 그러나 이것은 표면에 불과하며, 음악을 듣고 있으면 어떤 이야기의 흐름이 느껴진다. 음악학자 리처드 타루스킨의 말을 빌리자면, 차이콥스키 교향곡에서 중요한 것은 '구조'가 아니라 '드라마투르기'이고, 작곡 방식이 교향곡보다는 오페라를 닮았다.

1악장은 고통을 이야기한다. 2악장에서는 억눌린 슬픔이 달콤한 절망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3악장에서는 고독이 우아한 왈츠 속에서 질식한다. 4악장에서는 승리의 팡파르가 요란하게 울리지만, 그 승리는 작곡가 자신의 말처럼 너무나 화려하고, 거창하고, 가식적이고, 장황하다. 그래서 팡파르가 찬란할수록 작곡가의 자존감이 바닥을 기고 있음이 느껴진다. '승리'는 거짓이다. 정신적 마스터베이션이다.

이 곡을 감상하려면 작곡가의 불안정한 정신세계에 휩쓸릴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작곡가와 함께 고통에 몸부림쳐야 한다. 그러나 음악이 끝나고 나면 달콤한 절망에 너무 취해 있지도 말고 거짓 승리에 속지도 말자. 이 곡은 위험하다.

영문 번역 추가: 2024. 4. 23.

P. I. Tchaikovsky: Symphony No. 5 in E minor, Op. 64

“This symphony is too brilliant, grandiose, pretentious, verbose, and overall suffocating. Have I really lost my talent as they say? That would be terrible.”

This is what Tchaikovsky wrote in a letter to his benefactress, Nadezhda von Meck, following the premiere of Symphony No. 5, which received unfavorable reactions from experts. In the homeland of symphonies, Germany-Austria, it has been deemed virtuous to construct and develop logic from a small musical seed. However, Tchaikovsky, while partially embracing such tradition, agonized over adhering to logic and structure, which did not align with his ‘nature’.

There is no title or extra-musical explanation for Tchaikovsky’s Symphony No. 5. The first and fourth movements follow a sonata form, while the second and third movements adhere to a ternary form, which is neatly analyzed for a 19th-century work. However, this is merely surface-level, and upon listening to the music, one can discern the flow of a narrative. To borrow the words of musicologist Richard Taruskin, the significance of Tchaikovsky’s symphony lies not in its ‘structure’ but in its ‘dramaturgy’, with the compositional style resembling opera more than a symphony.

The first movement depicts pain. In the second movement, suppressed sorrow sways within sweet despair, and in the third movement, loneliness suffocates amidst an elegant waltz. In the fourth movement, the fanfare of victory rings loudly, yet the victory is overly brilliant, grandiose, pretentious, and verbose, as the composer himself stated. Thus, the more the fanfare shines, the more it reveals a palpable erosion of the composer’s self-esteem. The ‘victory’ is a falsehood. It is mental indulgence.

To appreciate this piece, one must be prepared to be swept away by the composer’s unstable psyche. One must endure the pain alongside the composer. However, after the music concludes, do not become too intoxicated by the sweet despair, nor be deceived by the false victory. This piece is perilous.

2017년 7월 24일 월요일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1번

통영국제음악당 공연 프로그램북에 실릴 글입니다.


프로코피예프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 재학생 시절에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썼고, 루빈스타인 피아노 콩쿠르에 이 곡을 결선 곡으로 들고 나가서 세계초연했다. 프로코피예프는 우여곡절 끝에 이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 작품은 세 부분으로 된 단악장 곡이다. 짜임새가 특이하고 복잡해서 관점에 따라 여러 가지로 분석할 수 있지만, 이 글에서는 작곡가 자신이 설명한 짜임새를 바탕으로 해설한다.

이 곡은 긴 오케스트라 도입부로 시작하고, 피아노 독주는 오케스트라 도입부와 별다른 주제적 연관성이 없다. 부점 리듬이 두드러지는 제1 주제가 마침내 피아노 독주로 제시되고, 경과구를 지나 그로테스크한 제2 주제가 제시 및 변형된다. 경과구를 지나면 마치 종결구처럼 느껴지는 E장조 주제에 이어 '도입부 주제'가 재현된다.

그리고 발전부가 나와야 할 자리에 뜬금없이 새로운 주제가 마치 2악장처럼 느리게 나타나 변주된다.

템포가 다시 빨라지면서 스케르초 악장처럼 느껴지는 발전부가 시작된다. 앞서 종결구 주제처럼 나왔던 E장조 주제가 전개되고, 이어서 제1 주제가 전개되고, 카덴차로 이어진다.

재현부는 발전부의 연장인 양 슬그머니 나타난다. 오케스트라가 제2 주제를 전개하고, 이때 피아노는 제1 주제와 '리듬만 비슷하게' 나타난다. 경과구를 지나 종결구 느낌 E장조 주제가 재현되고, 도입부 주제가 마치 진정한 재현부의 시작처럼 재현되면서 곡이 끝난다.

2017년 7월 4일 화요일

발레리 게르기예프, 마에스트로 아드 리비툼

『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입니다.


"‘호세 쿠라’라고 하는 매우 유명한 테너가 있다. 하노버 극장에선 축제 때 이 사람을 불러 베르디의 〈오텔로〉를 공연했다. 그는 공연 전날 밤늦게 비행기를 타고 와서 […] 그런데 웬걸, 어느 순간부터 혼자서 속도를 내어 마구 달리기 시작한다. […] 어제 그가 엄지를 치켜세우던 ‘딱 좋은 템포’는 이미 사라졌다. 이제 나는 결정해야 한다. […] 무대 위에선 서양 거인 한명이 미쳐 날뛰고, 무대 밑에선 조그마한 동양인이 지휘봉을 미친 듯이 휘두른다. 오케스트라는 곧 눈치를 채고 의자 등받이에서 몸을 떼고 같이 달릴 준비를 한다. […] 모두들 극도의 집중으로 인해 다들 탈진했지만 정말 즐거웠던 것이다."

지휘자 구자범 선생이 예전에 한겨레신문에 썼던 칼럼에서 소개한 일화입니다. 유럽에서도 상급으로 쳐주는 오페라 극장에서는 즉흥적으로 이러기도 하나 봐요. 음악이라는 게 듣는 사람이나 연주하는 사람이나 그때그때 느낌이 다를 수 있으니까, 그 순간의 느낌에 집중하는 것이 미리 계산한 대로 하는 것보다 나을 수도 있을 겁니다. 작가들은 글을 쓰다 보면 때로 자신이 글에 끌려가는 듯한, 의도치 않은 내용을 그저 받아적기만 하는 듯한 경험을 할 때가 있다고 하지요. 어쩌면 어느 예술 장르나 마찬가지일 겁니다. '애드립'은 라틴어 'ad libitum'(아드 리비툼)을 줄인 말로 본디 음악 용어인데, 다른 곳에서도 이 말을 흔히 쓰잖아요?

그런 즉흥성을 극대화한 음악 장르가 재즈이겠지만, 클래식 음악가 중에서도 정해진 틀 안에서 (때로는 그 틀을 아주 살짝 허물기도 하면서) 즉흥적인 영감을 살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실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미리 계획한 대로만 연주하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더욱이 공연 중에는 돌발상황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고, 특히 오페라 공연 때에는 돌발상황이 일상사라 할 수 있죠. 거장 지휘자들이 예외 없이 오페라 지휘자인 까닭이 거기에 있기도 합니다.

발레리 게르기예프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즉흥적인 에너지를 가장 극단적으로 살리는 지휘자일 겁니다. 리허설은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공연 중에는 단원들에게 보내는 지시가 분명치 않아서 연주자가 스스로 판단해야 할 때도 있다지요. 게르기예프는 때때로 '이쑤시개'를 지휘봉 대신 사용하기로 유명한데요,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음악적 관성을 가장 효과적으로 무력화하고 그 순간의 영감과 에너지를 끌어내 분출시킬 수 있는 도구가 어쩌면 바로 그 '이쑤시개'일지도 모르겠네요.

게르기예프가 지휘한 음반 가운데, 이를테면 1998년 잘츠부르크에서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 실황 녹음은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미친 듯이 쏟아내는 명연주로 유명합니다. 단원들 콧대가 워낙 높아서 지휘자가 마음에 안 들면 '지휘자가 지시한 것보다 더 아름답게' 연주해 버리기로 유명한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이지만, 그 천하의 '빈필'도 게르기예프가 지휘하니 오스트리아 소리가 아닌 러시아 소리를 내더라며 놀라워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조금 딴 얘기지만, 게르기예프는 피아니스트 조성진과의 인연으로도 유명합니다. 조성진은 2009년 고작 만 열다섯 나이로 하마마쓰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천재 피아니스트로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다음 해에 쇼팽 콩쿠르가 있었지만 연령 미달로 참가하지 못했고, 그다음 해에 열리는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도 마찬가지로 연령 미달이었습니다. 그런데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차이콥스키 콩쿠르 조직위원장 권한으로 조성진을 위해 참가 제한 연령을 기존 18세에서 16세로 낮췄습니다. 조성진은 그 덕분에 3위에 입상했고, 아시다시피 4년 뒤에 다시 열린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했지요.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이끄는 마린스키 오케스트라가 오는 8월 2일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에서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과 프로코피예프 교향곡 1번,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1번 등을 공연합니다. 피아니스트는 발레리 게르기예프의 아들인 아비살 게르기예프예요. 마린스키 오케스트라는 러시아를 대표하는 오페라 극장인 '마린스키 극장'에 소속된 오케스트라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악단입니다. 러시아 명문 오케스트라가 들려주는 러시아 음악, 거기에 러시아 거장 지휘자가 순간의 에너지를 모아 폭발시키는 것을 현장에서 경험하는 건 얼마나 멋진 일일까요?

2017년 5월 31일 수요일

지휘자 성시연 인터뷰

통영국제음악당에서 발간하는 『Grand Wing』에 실린 인터뷰입니다.


Q. 2016년 통영국제음악제, 그리고 통영에서 나란히 열린 ISCM 세계현대음악제에서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를 지휘하셨습니다. 그때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의 음향 특성을 어떻게 느끼셨나요?

저는 통영이 연주자에게 상당한 만족감을 주는 홀이라고 생각합니다. 연주자가 무대로 나갈 때 또 무대에 설 때 주는 중압감 또한 적당한 긴장과 집중을 유발하는 매력을 주는 홀이라고 생각합니다. 대규모의 오케스트라가 무대에 펼쳐 졌을 때 물론 악기군마다 세밀하게 서로 듣는 게 쉽지는 않을 수도 있지만 지휘자의 포디움에서 연주자와의 시차 또 음향이 객석에서 반사되어 돌아오는 시차 또한 좋아서 고도의 집중과 음악적인 표현을 가능하게 하는 훌륭한 홀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객석에서 아직 감상을 못해봐서 올해 국제 음악제에 좋은 공연 감상하러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Q. 경기필이 '무직페스트 베를린'에 초청받아 오는 9월 윤이상 ‘예악’과 ‘무악’ 등을 연주할 예정입니다. 이번 통영 공연 프로그램과 거의(?) 같은 듯한데요, 무직페스트 베를린 초청 경위와 곡 선정 의도가 궁금합니다.

사실 저에게는 무직페스트 베를린에 초청 받았다는 게 기적과도 같은데요, 아시아 오케스트라 최초라는 말이 붙을 정도로 페스티벌이 아시아 오케스트라에 가지는 관심도가 높지 않아 윤이상이라는 이름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고 사실상 세팅이 된 페스티벌 프로그램에 저희 쪽에서 끈질기게 구애해서 이뤄진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의 매니저의 역할이 컸습니다.

프로그램 선정은 페스티벌 측의 요청이 반영이 되었습니다. 독일에서는 예악과 무악을 윤이상의 대표적인 곡으로 보고 있고 윤이상의 동양적 사상과 음악을 서양적 기법으로 표현한 것을 지켜가고 있는 그의 제자 호소카와의 곡과 리게티를 프로그래밍했습니다.

Q. 윤이상 작품 중에는 음악 외적인 '메시지'를 담은 것도 있고, 특정한 심상을 음악으로 표현한 것도 있고, 그냥 추상적인 작품도 있습니다. 그 가운데 추상적인 작품에 더 끌리는 편인가요?

저는 워낙 메시지가 있는 음악에 더 강력하게 끌리는 편입니다. 하지만 윤이상 작품의 경우 심포니를 비롯하여 소규모의 타악기와 절묘한 화음이 어우러진 합창곡들 그리고 한국의 악기를 서양의 기법으로 소규모 편성의 곡들 또한 매력을 느낍니다.

Q. 윤이상 작품 가운데 예전에 지휘하셨던 곡은 어떤 곡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윤이상 작품은 아직 연주해볼 기회가 없었습니다. 베를린에서 공부할 때 학교에서 윤이상 페스티벌이 3일정도 개최됐는데 그때 그의 음악을 듣고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번에 그의 곡을 제대로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Q. ‘예악’과 ‘무악’은 같은 작곡가가 썼지만, 작곡 시기도 다르고 음악 양식도 조금 다른 듯합니다. 그럼에도 두 작품의 감상 포인트는 비슷할까요? 관객들이 각각 어떤 부분에 귀를 기울이면 좋을까요?

1966년 도나우에슁엔 페스티벌 위촉 작품으로 초연된 예악은 윤이상의 커리어에 커다란 성공을 가져왔습니다. 향악에서 영감을 받아 이 곡은 오케스트라의 다섯 그룹을 합쳐 색채감이 짙은 음악을 만들어냅니다. 예악은 윤이상이 Hauptton이라는 작곡 기법을 발전시키고 그것이 빛을 발한 곡이라 이것이 감상 포인트가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Hauptton 기법이라는 것은 중심이 되는 음에서 꾸밈음, 비브라토, 엑센트, 클리산도 등을 이용해 발전시켜 선율 하나 자체가 살아있는 존재가 되는 기법입니다. 이것들이 겹쳐지면 윤이상이 추구하는 유동적이고 영원히 이어지는 음악을 만들어냅니다. 참고로 그는 자신의 작품들을 연이어서 연주할 수 있다고 했고 실제로 그의 심포니 5개를 묶어서 연주하면 마치 하나의 거대한 심포니가 탄생하는 것 같다고 어느 학자가 말하더군요. 100주년에 그런 기획적인 퍼포먼스를 볼 수 있으면 의미가 깊을 것 같습니다.

다시 돌아와서 무악에서는 그 전의 윤이상에게 볼 수 없었던 역동적인 리듬을 곡의 토대로 사용했습니다. 이뿐 아니라 1967년 감옥생활을 2년간 한 그의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정치적이고 휴머니즘적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볼 수 있는데요 추상적으로 단지 궁중의 춤을 표현한 것이 아닌 춤추는 '아시아' 옆에 관망하는 '유럽' 이라는 대상을 집어넣어서 몹시 흥미롭습니다. 역시 그의 작품에 중요하게 등장하는 콘트라스트인데요, 아시아가 춤을 출 때 유럽은 그들의 고유의 춤을 춘다는 설정인데 아시아로 표현된 목관 악기와 유럽으로 표현된 오케스트라가 대치하고 소통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동서양을 음악으로 엮어서 휴머니즘적인 유토피아를 그려간 그의 변화된 세계관을 볼 수 있습니다.

Q. 리게티 ‘론타노’를 윤이상 곡들과 나란히 프로그램에 넣으신 것을 보면, 윤이상의 음악 언어를 1960년대 유럽 아방가르드 음악, 이른바 '클러스터' 기법의 발전과정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듯합니다. 베를린 사람들에게, 그리고 통영 사람들에게 윤이상 음악의 어떤 측면을 강조해 들려주고 싶은지 궁금합니다.

예악의 성공 이후 사람들이 윤이상을 리게티의 후임자로 생각했습니다. 아방가르드 음악 클러스터 기법의 영향을 받은 것을 예악에도 나타나있지요. 하지만 저는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변화하고 더 새로운 것을 찾아 그만의 Hauptton기법을 발전시킨 윤이상을 기법의 현미경으로 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한때 세계 음악계의 중심에 있었던 그러나 지금은 잊혀져 가는 그의 이름을 다시 불리게 하고 싶고 공연을 찾아주시는 분들에게는 한국인이 연주하는 윤이상 음악을 들려주고 싶습니다. 사실 윤이상 곡들을 공연하고 레코딩한 것은 주로 해외 연주자들이었습니다.

저희가 아직 리허설 들어가지 않았고 저 또한 윤이상 곡을 처음 접해 보는 것이라 아직 구체적인 그림은 그려지지 않지만 한국의 음악을 표현한 작곡가를 한국 오케스트라가 한국의 정서로 들려주고 싶다는 데에 저는 의미를 두고 싶습니다.

Q. 작곡가 호소카와 도시오는 윤이상의 제자였다고 알려졌습니다. 호소카와의 음악은 윤이상 음악과는 어떤 점에서 비슷하고 어떤 점에서 다른가요? 이번에 연주하실 ‘탄식’이라는 작품에 대해서도 소개해 주세요.

호소카와의 음악은 동서양을 잇는 가교라고 불리는데 이것은 윤이상에게서 근본적인 영향을 받았습니다. 동양의 사상과 전통의 숨결을 서양의 악기에 불어넣은 것입니다.

그는 가가쿠 음악과(궁중음악) 불교음악을 토대로 하여 오케스트라에 새로운 기법으로 일본의 음색을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윤이상의 음악이 타오이즘을 바탕으로 한 음과 양의 조화 즉 다양한 콘트라스트가 섞여서 다이나믹한 면을 양성하는 흘러가는 음악을 추구했다면 호소카와의 음악에서는 쉼과 침묵 그리고 울리지 않는 잔향들이 중요한 의미를 지닌 자연의 소리를 추구했습니다.

탄식이라는 작품은 작곡가가 2011년 3월 11일에 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쓰나미가 일어난 후 바닷가에서 아이의 시신을 찾는 어머니의 사진을 보고 작곡을 했습니다. 게오르크 트라클(Georg Trakl)의 시를 토대로 2013년에 작곡된 이 곡은 4곡으로 이루어져 있고 운율이나 메트룸(metrum) 등이 아닌 언어 자체의 아름다움과 비탄에 잠긴듯한 어두운 분위기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조명한 작품입니다.

Q.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은 어떤 연주자라고 생각하시나요?

김수연은 테크닉보다 음악을 보게 하는 연주자라고 생각합니다. 본인이 원하는 게 확실하고 깊은 감성을 보여주어 믿고 찾을 수 있는 연주자이지요. 통영에서 같이 베토벤 협주곡을 선보이게 되어 기쁩니다.

Q. 부산 출생이시라고 들었습니다. 부산의 바다와 통영의 바다는 어떻게 다른가요? 부산과 통영의 바다는 음악적으로도 각각 다른 영감을 주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 태종대에 자주 갔습니다. 유명한 자갈밭과 바위가 많은 풍경과 그 바위 위로 높게 부서지는 파도가 아직 선하네요. 은빛으로 잔잔한 통영의 바다와는 조금 다른 느낌인 것 같습니다. 드뷔시의 바다를 연주한다면 두 바다 중에서는 부산 바다를 먼저 상상하겠네요.

Q. 마지막으로 통영 관객들에게 한 말씀 부탁합니다.

통영은 좋은 홀, 훌륭한 기획들의 대명사로 불리고 있습니다. 이번 공연이 대부분 현대 곡으로 이루어져 쉽지 않겠지만 통영을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만든 윤이상 작품을 들을 수 있는 기회이니 많은 관심 부탁 드립니다.

2017년 5월 18일 목요일

하얀 장미

『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입니다.


"발언의 자유, 종교의 자유, 그리고 범죄적인 폭압 정부의 횡포로부터 시민을 보호하는 것, 이것이 새로운 유럽의 기초가 될 것입니다. 저항 운동을 도와주십시오, 전단을 돌리십시오!"

나치 정권을 비판하던 저항조직 '하얀 장미'(Die Weiße Rose)가 배포한 전단의 마지막 문장입니다. 1941년부터 1943년까지 활동했던 이들은 뮌헨 대학에서 이 마지막 전단을 돌리다가 체포되었고, 재판 끝에 사형당했습니다.

'하얀 장미'라는 이름은 소설 제목에서 따온 것이라고 합니다. '하얀 장미' 핵심 인물인 한스 숄, 소피 숄 남매는 나치 정권의 비밀경찰 '게슈타포'의 심문을 받으면서 소설 '하얀 장미'에 나오는 등장인물 이름을 가명으로 둘러대기도 했다네요.

작곡가 카를 오르프는 종전 직후 나치에 부역한 혐의로 체포되었다가 자신이 '하얀 장미' 창단에 참여했다고 주장해 풀려났습니다. '하얀 장미' 단원으로서 사형당한 쿠르트 후버 교수가 마침 오르프의 친구였다지요. 오늘날 학계에서는 대개 오르프의 주장을 거짓으로 보고 있습니다.

숄 집안의 맡딸 잉에 숄은 부모님과 함께 연좌제로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가 끝내 살아남았습니다. 그리고 종전 후 한스 숄, 소피 숄 남매의 활동을 책으로 엮었습니다. 제목은 '하얀 장미'(Die Weiße Rose)였지요. 한국에서는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하얀 장미'는 이후 유럽 사회에서 시대의 양심을 상징하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하얀 장미를 소재로 하는 영화, 연극, 다큐멘터리, 소설, 심지어 일본에서는 만화까지 나왔다네요. 이 가운데 2005년에 개봉된 영화 '소피 숄의 마지막 날들'은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 영화에 관해 김혜리 평론가가 『씨네21』에 쓴 글이 멋져서 조금만 인용할게요.

"아무도 감히 눈물을 보이지 않는 이별 의식이 끝나고 형리가 다가온다. 소피 숄은, 그녀의 이념을 하얀 강보에 싼 아기처럼 자랑스레 품에 안고 단두대를 향한다. 관객이 마지막으로 소피와 눈을 맞추는 순간 스크린 속 세계의 불이 꺼지고 어둠 뒤에서 칼날이 곡한다. 생에 대한 주체의 완전한 지배와 결단력을 증명하는 그녀의 죽음에 서린 아름다움은, 자살의 매혹과 닮은 데가 있다. 하지만 그것은 소피 숄의 이야기에 드리운 가장 눅진한 슬픔이기도 하다. 그녀의 삶은, 더럽혀질 시간조차 갖지 못했다."

작곡가 한스 베르너 헨체는 체임버 오케스트라를 위한 '하얀 장미를 추모하며'(1965)를 썼고, 한국 출신으로 독일에서 활동하는 작곡가 박-파안 영희 선생은 '하얀 장미'가 돌린 유인물과 그들이 재판소에서 남긴 변론 등을 가사로 하는 성악곡 〈봉화〉(Flammenzeichen)를 썼습니다. 박-파안 영희 선생은 올해 통영국제음악제에서 자신의 신작 현악사중주곡 〈크고 높은 바다 위의 수평선〉의 아시아 초연을 참관하고 윤이상 작곡가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심포지엄에 참여하기도 하셨지요.

작곡가 우도 침머만은 1967년 오페라 '화이트 로즈'를 발표했다가 1986년에 이 작품을 개작해서 국제적인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 오페라가 오는 6월 16~17일, 통영국제음악당에서 한스 요아힘 프라이 연출, 토마스 케르블 지휘, TIMF앙상블 연주로 공연됩니다. 한스 숄과 소피 숄 남매의 고뇌와 용기를 작곡가 우도 침머만은, 그리고 연출가 한스 요아힘 프라이는 어떻게 표현했을까요? 이번 공연을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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