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 원고입니다.
2006년 10월, 일본의 한 음악 다운로드 사이트에서는 베토벤 교향곡 7번이 하루 동안 3000여 회, 한 달 동안 3만여 회 다운로드되는 기록이 나왔습니다. 한국에서도 화제가 되었던 TV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에 이 작품이 매우 비중 있게 사용되면서 일어난 일입니다.
같은 제목으로 나온 원작 만화와 애니메이션까지 일본에 클래식 음악 붐을 일으키는데 일조했다지만, 베토벤 교향곡 7번의 인기는 TV 드라마의 힘이 컸다고 생각해요. 우선 드라마 시그널 음악으로 1악장 제시부 제1 주제를 크게 부풀리는 대목이 쓰였고, 남자 주인공 치아키 신이치가 오케스트라를 처음 지휘한 곡이 원작과 달리 이 곡이기도 하지요.
베토벤 교향곡 7번은 마지막 4악장이 워낙 신나는 곡이라 극적인 효과가 더욱 크지 않았나 싶습니다. 악보를 보면 요즘 하는 말로 '록 스피릿'(Rock spirit)이 느껴지는데요, 악보에 익숙지 않은 사람도 리듬 위주로 보면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 특징이 있습니다. 같이 살펴 볼까요?
일단 첫머리에 나오는 셈여림 기호가 ff(매우 세게)입니다. 현악기가 8분 음표 스타카토로 '짠!' 하고 바로 이어 관악기와 팀파니가 '♬♪' 리듬으로 받지요. 그러니까 '짠짜라잔!' 리듬이 됩니다. (예시한 악보에서는 목관악기 부분이 잘려서 보이지 않고, 위에서부터 호른, 트럼펫, 팀파니, 그리고 현악기입니다.)
본격적으로 주제 선율이 나타나면, 2/4박자인데 약박인 둘째 박마다 거꾸로 sf(스포르찬도; 특히 그 음을 세게) 기호가 달려 있지요. 그리고 트럼펫, 호른, 팀파니 등이 같은 음으로 '스포르찬도'에 집중합니다. 첼로와 더블베이스가 같은 음, 같은 리듬으로 힘을 보탭니다. (정확히는 같은 음계음이지요. 일부 악기는 악보에 쓰는 음과 실제 소리 나는 음이 다르기도 한데, 여기서는 모두 E(미)음입니다.)
애초에 셈여림 기호가 '매우 세게'인데 둘째 박마다 '특히 그 음을 더 세게' 연주해야 하고, 음량이 큰 악기를 둘째 박에 집중시켜 놨어요. 그래서 '읏, 따아–! 읏, 따아–!' 하는 강력한 리듬이 만들어지며, 이것이 악곡을 지배합니다. 짧은 도입부에 나왔던 '짜라잔!' 리듬이 살짝 거들지요.
곡이 절정에 이르면 이 음형이 광란으로 치달아, 셈여림 기호는 fff(매우 매우 세게)가 되고 트럼펫이 결정적인 '한 방'을 터트립니다. 그야 말로 듣는 사람 숨 넘어가게 만드는 짜임새예요.
카라얀, 번스타인, 푸르트벵글러, 토스카니니 등 유명 지휘자들이 저마다 막강한 화력으로 퍼부어댄 명연주를 녹음으로 남겼지요. 명반으로 꼽히는 것 가운데 '이단'(?)이 하나 있는데, 카를로스 클라이버가 지휘한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녹음입니다. 위에서 살펴본 악보 지시를 정면으로 배신하고 트럼펫 소리를 들릴락말락하게 다스렸거든요.
그런데 현으로 만들어내는 리듬이 너무나 활기차서, 클라이버는 그것만으로 '광란의 춤'을 이끌어 냅니다. '작품을 내놓고 나면 작가는 죽어야 한다'(움베르토 에코)라는 말이 이만큼 잘 어울리는 연주도 없을 듯해요.
6월 27일 토요일,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에서는 귄터 피흘러(Günter Pichler)가 지휘하는 TIMF앙상블이 베토벤 교향곡 7번을 연주합니다. 귄터 피흘러는 카라얀 시대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악장이었으며 알반 베르크 콰르텟을 이끌었던 세계 정상급 바이올리니스트이지요.
바이올리니스트 출신 지휘자가 이 곡을 지휘하면 카를로스 클라이버처럼 될까요? 그러나 한 가지 생각해야 할 것은, 그런 '이단적인' 해석은 대편성 오케스트라로만 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카라얀-클라이버 시대에는 베토벤 당시와 견주면 두 배 가까이 부풀린 인원으로 연주하는 게 관행이었지요. 베토벤의 진정한 의도를 살리려면 악보 지시를 곧이곧대로 지키는 것보다 '뻥튀기'를 좀 하는 게 낫다는 논리예요.
그러나 이번 연주회는 베토벤 시대와 대략 비슷한 악단 규모가 될 예정입니다. 객원 연주자까지 포함해서 50명이 채 안 될 거예요. 그러니까 역시 금관의 화력이 있어야 '록 스피릿'이 살아날 듯한데요, 이번 연주회는 어떨지 저도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