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입니다.
스즈키 마사아키 & 바흐 콜레기움 재팬 / 바흐솔리스텐 서울, 로저 노링턴(취리히 체임버 오케스트라), 아이버 볼튼(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오케스트라), 샹젤리제 오케스트라, 임선혜 & 베를린 고음악 아카데미, 아르테 델 몬도 오케스트라(다니엘 호프), 올리비에 슈느블리 & 베르사유 바로크 음악센터, 줄리아노 카르미뇰라, 크리스티네 쇼른스하임, 카살스 콰르텟.
통영국제음악당에서 공연했던 지휘자 · 연주자 · 악단입니다. '역사주의'라는 공통분모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지요. 한때 '원전'(原典) 또는 '정격'(正格; authentic) 등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기존 주류 연주 방식이 틀렸음을 암시하는 독선적인 뜻이 있음을 경계해 오늘날에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연주(Historically Informed Performance)라는 가치중립적 표현을 사용합니다. 줄여서 역사주의 연주라고 합니다.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연주'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역사주의자들은 새로운 학술적 발견을 연주에 적극적으로 받아들입니다. 20세기 이전부터 연주 관습이 단절 없이 이어지던 음악일수록 역사주의에 대한 음악계의 저항이 심했는데, 그것을 조금씩 누그러뜨려 온 힘은 학자들이 제시하는 객관적인 증거였습니다. 모차르트까지는 역사주의를 인정하더라도 베토벤부터는 도저히 그럴 수 없다던 사람들마저도 이제는 많이들 마음을 돌리고 있지요.
통영국제음악당에서는 그런 시대 변화에 앞장서는 연주자들을 꾸준히 초청해 왔습니다. 올해 예정된 공연 중 헬싱키 바로크 오케스트라와 타펠무지크 바로크 오케스트라 또한 역사주의를 지향하는 악단이고, 이 가운데 헬싱키 바로크 오케스트라는 단원이 6명뿐인 악단입니다. 바로크 시대에는 '오케스트라'를 이런 뜻으로도 썼다네요.
NDR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역사주의를 대표할 만한 스타 바이올리니스트 출신 지휘자 앤드루 맨지를 영입함으로써 역사주의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이 악단은 그 전에는 그냥 독일 하노버를 대표하는 일류 오케스트라였지요. 그래서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옛날 악기를 사용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카라얀'으로 대표되는 옛날 녹음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와는 많이 다를 듯해요.
먼저, 연주자 수를 불필요하게 '뻥튀기'하는 일이 없을 겁니다. 이번 NDR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내한공연 때 연주될 베토벤 교향곡 3번 연주에 필요한 오케스트라 단원 수는 대략 60명 정도입니다. 옛날에는 관악기 수를 두 배로 늘리고 현악기 수 또한 그것에 맞게 늘려서 훨씬 규모가 큰 오케스트라로 웅장한 느낌을 부풀리곤 했지만, 이번 공연에서는 60명 조금 넘는 인원만이 출연할 예정이라고 하네요.
오케스트라 덩치가 줄어들면 그만큼 날렵한 움직임이 가능해집니다. 학자들이 고증한 베토벤 당시 템포는 20세기 연주 관습과 견주면 훨씬 빨랐다고 하지요. 당시에는 현악기에 쓰던 현의 소재나 활의 구조 등도 오늘날과는 달랐기 때문에, 물리적인 조건에 따라 자연스럽게 연주할 수 있는 템포와 연주법이 있었지요. 현대 악기로도 스타카토와 비브라토 등 갖가지 연주법을 그때처럼 해서 비슷한 느낌을 살릴 수 있습니다.
베토벤 교향곡 3번에서는 이를테면 1악장 클라이맥스에서 트럼펫이 주선율을 연주하다 뒤로 빠지고 목관악기가 선율을 이끌어 가는 대목이 있습니다. 베토벤 당시 금관악기로는 낼 수 없는 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고, 악기가 개량된 오늘날에는 그런 음들까지도 선율에 포함하는 것이 작곡가의 의도에도 맞는다는 논리가 20세기에 널리 받아들여졌지요. 요즘에는 이런 곳마저도 악보 그대로 연주하곤 합니다.
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인 요스 판 이메르세일 또한 역사주의를 이끌어온 음악가로 유명합니다. '아니마 에테르나'라는 오케스트라를 창단하고 베토벤 교향곡 전곡을 녹음한 음반 등으로 국내에서도 많이 알려졌지요. 올 12월 초에는 요스 판 이메르세일의 피아노 연주를 통영국제음악당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바리톤 토마스 E. 바우어, 소프라노 서예리 등과 슈베르트 음악을 연주하는 '슈베르티아데' 공연이에요.
마침 이 글을 쓰던 중에 거장 지휘자 네빌 마리너가 향년 92세로 타계했다는 소식이 속보로 전해졌습니다. 넓은 의미에서 역사주의자라 할 수 있는 분이었지요. 고인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