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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5월 1일 일요일

2022 통영국제음악제 막전막후

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입니다.


“앤드루 노먼 PCR 검사 결과가 ’미결정’이라서 24시간 이내에 재검사받아야 한답니다.”
“8시에 통영으로 출발하는 차량을 10시 출발 보건소행으로 바꾸고 서울 숙박도 1박 연장합시다.”
“오늘 오후 4시에 하기로 했던 강연은 내일로 연기하겠습니다.”
“관할 보건소에 확인해 보니, 최초 확진 후 45일 이내에 검사를 받은 경우 재검사 필요 없대요!”
“서울 숙박 연장하지 마세요. 바로 통영으로 출발합니다.”
“오늘 4시 강연 예정대로 하겠습니다!”

앤드루 노먼은 올해 통영국제음악제 레지던스 작곡가였지요. 그런데 음악제 개막 직전 입국을 앞두고 미국에서 코로나-19 검사를 했더니 양성 판정이 나왔다고 합니다. 일주일이 지나 증상이 사라진 뒤에도 PCR 검사 결과는 양성으로 나오는 바람에 계속 입국이 지연되었다고 하네요. 그리고 드디어 음성 판정을 받아서 입국했더니, 입국 직후에 다시 검사한 결과가 ’미결정’이었던 것이지요.

이번 통영국제음악제 기간 동안 앤드루 노먼 작품 7곡이 아시아초연 또는 한국초연됐습니다. 앤드루 노먼은 6번째 곡이었던 ‘소용돌이’ 공연에 참석해 연주 직후 무대 인사를 할 수 있었고, 마지막 곡인 ’풀려나다’는 리허설부터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작곡 전공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과 작곡 레슨 등 레지던스 작곡가로 뒤늦게나마 활동할 수 있었습니다. 입국이 지연되는 동안 일부 작곡 레슨은 진은숙 예술감독님이 대신하기도 했습니다.

올해 통영국제음악제에는 예년보다 별별 일이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피아니스트 데죄 란키는 코로나-19 확진자가 한국 내에서 급증하는 상황을 우려해 출연을 취소했고, 소프라노 율리야 레즈네바는 폐막공연에서 데죄 란키 대신 협연을 맡기로 했다가 건강 문제가 생겨서 폐막 공연에 출연할 수 없게 되어 소프라노 박혜상이 ‘대타의 대타’로 출연하게 되었지요. 또 킹스 싱어즈 단원 가운데 1명이 입국 직후 실시한 PCR 검사에서 양성 판정을 받아서 공연은 6명 중 5명만으로 하게 되었고 프로그램도 일부 변경됐습니다. 쾰른 체임버 오케스트라는 해외 입국 단체에 대한 격리 면제가 허용되지 않아서 K’ARTS 신포니에타로 교체되었고, ’해리 파치: 플렉트럼과 타악기 춤’ 공연 또한 코로나-19의 여파로 취소되었습니다.

취소된 공연의 대체 공연으로 소프라노 율리야 레즈네바 리사이틀이 결정되면서 프로그램 확정부터 티켓 오픈까지 여러 사람이 바쁘게 움직였던 일, 그리고 ‘대타의 대타’ 프로그램을 위한 오케스트라 악보를 급히 구하느라 여러 사람이 고생했던 일도 기억에 남습니다.

“로시니 아리아 악보가 F장조 말고 E장조가 필요하대요!”
“이미 리허설 직전인데… 이렇게 되면 오페라 전곡 악보에서 해당 부분을 일일이 찾아야 하는데요…”

이미 저작권이 만료된 악보를 인터넷으로 구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2시간 30분짜리 오페라 전곡 악보에서 짧은 아리아 하나만 추리는 일이었습니다. 급한 마음에 아는 오페라 지휘자들에게 연락을 시도했다가 의외로 가장 먼저 연락이 닿은 사람은 아마추어 첼로 연주자이자 오페라 애호가였습니다. 오케스트라 총보에서 해당 부분이 몇 페이지에 나오는지를 금방 찾아내더라고요. 그때 제가 농담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바그너 오페라였으면 직접 찾을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오케스트라 악보를 악기별로 분리한 이른바 ’파트보’에서 해당 부분을 일일이 추리는 일은 또 다른 일이었지만, 총보를 추리고 나니까 파트보 추리는 일은 제가 직접 할 수 있겠더라고요. 악기별로 하나씩 인쇄해서 연주자들에게 전해준 것은 리허설을 시작하기 직전이었습니다. 지휘자 마르쿠스 슈텐츠가 그랬다네요. “기적이에요!”

2021년 7월 13일 화요일

오보이스트 잉고 고리츠키 인터뷰

통영국제음악재단 e-매거진에 실린 글입니다.

플로리안 리임 인터뷰, 김원철 옮김


Q. 스위스에서 있었던 한 공연에서 윤이상을 처음 만났고 이후 30여 년을 교류했다고 들었다. 그때 이야기가 궁금하다. 또 윤이상의 음악적 동반자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에 관해 알려달라.

A. 1974년 10월 16일, ‘라디오 베른’ 방송국에서 윤이상 특집 공연이 열렸고 내가 윤이상의 ‘피리’를 연주하게 되었다. 그 전부터 나는 이 곡에 흥미를 느껴 여러 차례 공연했었고, 이날 공연에서 윤이상을 처음 만났다. 불과 3미터쯤 떨어진 곳에 그가 앉아 있어서 무척 떨렸다. 공연이 끝난 뒤 윤이상이 나에게 내 연주에 관해 덕담해 주었고, 이 작품에 관한 내 주된 관심사였던 셈여림에 관해서도 좋게 평가해 주었다. 그는 또한 이 곡의 마지막 부분인 ’느리고, 신비롭게’(langsam, misterioso)에 관해 중요한 말을 했다. 마지막 부분을 내가 연주했던 것보다 더 여린 ‘피아니시모’로 연주하면 좋겠다는 거였다. 작품 해석에 관해 정말로 중요한 말이었다. 윤이상은 이 작품을 초연한 연주자 게오르크 메르바인에게 마지막 부분의 모든 음에 핑거링을 바꿔서 선율과 음색에 변화를 줄 것을 제안했지만(옮긴이 주: 출판된 악보에는 이 대목에 윤이상의 ’오리지널’과 메르바인이 연주한 판본이 나란히 있다.), 그렇다고 여기서 윤이상의 ’피아니시모’ 아이디어가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그날 이후로 나는 때때로 윤이상이 참석한 공연에서 ’피리’를 연주했고, 그와 함께 독일 국내외에서 투어 공연을 다니기도 했다.

Q. 올해 통영국제음악제에서 윤이상의 ‘피리’(1971)와 ‘영상’(1968)을 연주할 예정이다. 두 작품 모두 당신이 윤이상을 만나기 전에 작곡되었는데, 나중에 이들 작품에 관해 윤이상과 어떤 대화를 했나?

A. 사실 많은 말을 나누지는 않았다. 윤이상은 연주자에게 많은 자유를 주었고, 그의 작품에 관해서는 서로 다른 많은 해석이 존재하며, 특이 ’피리’가 그렇다. 지금에 와서는 내가 작품의 특정 프레이즈나 효과에 관해 더 많이 질문하지 않았던 일을 후회하지만, 윤이상 생전에 우리는 서로를 직관적으로 매우 잘 이해하는 사이였고 악보에 있는 지시는 매우 명확했다. ’피리’의 마지막 부분에 관해서는 앞서 이미 얘기했다. 다른 얘기를 더 하자면, 이 작품의 악보는 4쪽으로 되어 있고, 그래서 연주를 하려면 악보를 두 차례 넘겨야 한다. 윤이상은 그러지 말라고 했다. 악보를 넘기는 순간에 음악의 긴장감을 잃을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래서 나는 페이지를 넘길 필요가 없게끔 악보를 손보았고, 이것을 내 제자들에게도 전수하고 있다.

’영상’에서 윤이상은 비브라토의 형태를 계속 바꿔가면서 연주하게끔 했으며 어떤 지점에서는 모든 성부에 그런 걸 요구한다. 이를테면 논비브라토(non vibrato), 조금 약한 비브라토(poco vibrato), 그냥 비브라토, 조금 센 비브라토(molto vibrato), 조금씩 세지는 비브라토(vibrato poco a poco crescente) 등으로 비브라토의 양상이 변하면서 음색이 매우 다채로워진다. 내가 알기로 윤이상은 이런 기법을 다른 작품에서도 일관되게 사용하지는 않았는데, 내 생각에 이것은 고분 벽화의 압도적인 색채감과 관련 있는 것 같다. 이 곡은 윤이상이 강서고분벽화를 보고 나서 그것을 음악으로 표현한 작품이며, 나 또한 그 벽화를 직접 보았다. 이 작품의 마디 270부터 시작하는 마지막 부분을 리허설할 때 있었던 일을 나는 영원히 잊지 못한다. 이 대목을 작곡할 때 윤이상은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는 것이다. 이 마지막 대목에서 리듬과 선율은 방향성을 잃어버리고, 오보에의 질문하는 글리산도와 함께 작품이 끝난다.

Q. 작품을 어떻게 익혔는지 궁금하다. 당신은 ‘윤이상 솔로이스트 베를린’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고, 그래서 이 작품을 여러 번 연주했을 것 같다. 작품에 대한 이해가 처음과 달라진 점이 있나?

A. ’영상’은 성부 넷이 지극히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매우 복잡한 작품이다. 이 괴물 같은 작품을 어떻게 연주해야 할까. 할 수 있는 일은 이미 정해져 있다. 당연히 모든 연주자는 자신의 파트를 충분히 이해한 뒤에 합주에 들어가야 한다. 연주자 각자에게 기술적으로 도전이 되는 곡이지만, 그것은 아름다운 도전이기도 하다. 그리고 첫 번째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거다. 당신이 외국에 처음 갔다고 생각해 보라. 조금씩 당신은 그 나라와 거기 사는 사람들을 알게 된다. 그리고 때가 되면 연주의 합을 맞춰 보게 된다. 그러나 그 전에 고분 벽화에 그려진 네 마리 신수들의 움직임에 관해 알아야 한다. 그래야 붉은 선 넷이 얽히는 궤적을 발견하고 따라갈 수 있게 된다. 그제야 이 작품을 이해하고 연주할 수 있게 된다. 처음에는 복잡해 보이는 이 작품의 위대한 단순성을 알게 된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Q. 한국 전통악기인 피리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나? 그 소리를 어떻게 느꼈는지 궁금하다. 또 윤이상의 ‘피리’ 악보 첫 페이지에는 ’더블 트릴’을 비롯한 실험적인 연주법에 관한 설명이 있다. 이 작품에서 오보에 연주자에게 요구하는 가장 실험적인 프에이즈나 테크닉에 관해, 그리고 그에 대한 생각을 알려 달라.

A. 물론 피리 소리를 들어 보았고, 악기를 하나 갖고 있기도 하다. 오보에로는 낼 수 없는 깊고 그윽한 소리를 특히 좋아한다. ’피리’는 어쩌면 윤이상의 진심이 가장 잘 담긴 작품 중 하나일 것이다. 그 진심은 무엇보다 동서양 음악이 상생하게끔 하는 것이다. 내 생각에 윤이상은 ’피리’로 그것을 완벽하게 성공했다.

이 곡은 아치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서양음악에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그 형식을 이루는 벽돌들은 동양적인 성격을 보인다. 끝도 없이 길게 이어지는 듯한 음들이 주로 그러하며, 윤이상은 이것을 ‘주요음’이라 불렀다. 윤이상 음악에 관해 토론하는 학술대회에서 있었던 일을 소개하자면, 윤이상 음악의 이런 길게 이어지는 음에는 리듬이 없다고 어떤 사람이 말했다. 그 사람은 리듬의 실제 의미를 전혀 몰랐던 것이 분명하다. 리듬이라는 말의 뿌리를 따져 보면 고대 그리스어가 나온다. 그 당시 리듬은 움직임을 뜻했다.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가 했던 말 ’모든 것은 흐른다’(panta rhei)를 아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이것이 리듬의 어원이다. 그래서 윤이상 음악의 길게 이어지는 음이 그 음을 따라 흐르는 공기의 움직임이라면, 그 음에도 리듬은 있고, 무엇보다 그 움직임 자체가 리듬이다. 내 생각에, 특히 ‘피리’ 시작 부분에서 끝없이 길게 이어지는 음들은 가장 아름답고, 가장 매혹적이며, 작품 전체에서 가장 기본이 된다. 내가 이 얘기를 윤이상에게 했을 때 그의 얼굴에는 희미한 미소가 맺혔다.

’피리’에 나오는 음렬은 명백히 서양음악의 12음기법이며, 이것이 음형을 지배하는 법칙이 된다. 중간 부분의 장식음들은 그 뿌리가 뒤섞여 있다. 가볍게 유동하는 음과 짧은 글리산도는 동양적인 어법이고, 더블 트릴은 현대 서양의 오보에로만 가능한 기법이다. 이 곡의 첫 세 음이 마지막에 가서 음향적 무(無)로 가라앉는 것은 동서양 음악 세계의 통합을 단적으로 보여주며, 윤이상이 말로 설명한 의도와도 맞아떨어진다.

Q. 윤이상의 ‘이마주’(영상)와 드뷔시의 ’이마주’를 같은 공연에서 들어볼 수 있다는 점이 기대된다. 이 두 작품을 나란히 연주함으로써 어떤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생각하나?

A. 두 가지 ’이마주’를 한 공연에서 듣는 일은 그 자체로 참신한 생각이며, 두 작품은 완전히 다른 특징을 보인다. 윤이상은 창작력이 절정에 올랐을 때 고분 벽화의 신수들을 묘사한 작품을 남겼고, 자신의 목숨을 그 대가로 치를 뻔했다. 드뷔시의 ’이마주’는 작곡가의 피아노 작품들이 발전한 과정을 보여준다. 윤이상의 초기 작품, 이를테면 초기 가곡들을 아는 사람은 윤이상이 자신의 음악 어법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드뷔시의 회화적 음악 어법을 최소한 건드리기는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Q. 윤이상은 서양 악기로 한국적 정서를 표현했다. 그렇다면 연주자는 한국적인 정서와 뉘앙스를 더 잘 표현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그런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이와 관련한 경험이 있다면 알려 달라.

A. 이것은 어렵지만 필요한 질문이므로 가상의 예를 들어서 답해 보겠다. 어떤 연주자가, 여기서는 오보이스트가 바흐의 소나타나 파르티타를 연주하고자 한다면, 그 연주자는 바흐가 다른 악기를 위해 쓴 곡들 또한 익혀야 한다. 그 연주자가 윤이상 작품, 아마도 오보에 독주를 위한 ’피리’를 연주하고자 한다면, 그 연주자는 대체로 비슷한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윤이상이 다른 악기를 위해 쓴 곡을 공부하는 것만으로는 안 되며, 윤이상 작품의 뿌리를 발견할 수 있는 한국 전통음악 또한 공부해야 한다. 연주자는 이런 과정을 거쳐서 ’피리’의 악보를 이해할 수 있게 되고, 현대 오보에로 그것을 기술적·정서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된다. 어떤 경우에도 한국의 전통 피리 소리를 그냥 베끼려는 유혹에 빠져서는 안 된다. 이 음악은 작곡 과정을 거치는 동안 이미 다른 차원에 들어섰고, 연주자는 지성과 영성을 다해 노력해야만 그곳에 다다를 수 있다. 이전 단계를 답습해서는 그곳에 다다를 수 없다. 이미 있던 소재로 새로운 차원을 형성하는 일은 매우 신나는 일이며, ’피리’는 어떤 연주자가 어떤 노력을 기울이느냐에 따라 여러 가지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 낼 수 있다.

2021년 4월 16일 금요일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 인어공주 사건

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입니다.


ⓒ김시훈=통영국제음악재단

새벽 1시쯤 되었을 때 잠결에 전화를 받았습니다. 긴급 상황이 발생했으니 요즘 하는 말로 ’단톡방’을 확인하라더군요. 전화하신 직장 동료와 저, 그리고 한 외국인 연주자와 그 연주자의 매니저가 있는 대화방이었습니다. 프랑스로 가는 비행기 이륙 시각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코로나-19 검사 결과지를 잃어버려서 출국 수속을 못 하고 있다더군요. 다행히 연주자는 검사 결과의 사본을 받아 무사히 출국할 수 있었지만 출국 게이트가 닫히기 직전이라 마음을 졸여야 했습니다.

그 연주자는 첼리스트 카미유 토마였습니다. 이번 공연에서 파질 사이 첼로 협주곡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를 아시아 초연했고, 피아니스트 박종해 협연으로 리사이틀에도 출연했었지요. 코로나-19로 유럽에 봉쇄령이 떨어졌을 때 집 지붕 위에서 첼로를 연주하는 유튜브 영상으로 화제가 되었던 스타 연주자이기도 합니다. 이번에 통영국제음악제에 출연하게 된 소식이 프랑스의 TV 프로그램에 나왔다고 하네요. 시청자가 5백만 명쯤 된다는 모양입니다.

카미유 토마는 입국 직후 격리 생활부터 시작해 별별 고생을 했습니다. 그 가운데 압권은 값비싼 첼로의 통관 서류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던 일입니다. 그 첼로는 최근 일본음악재단에서 후원한 악기였고 일본 세관에서 통관 서류를 발급했는데, 알고 보니 그 서류는 일본과 프랑스 사이를 오가는 것만 허락된 것이었다나 봅니다. 그래서 원칙대로라면 통영에서 일본으로 가서 필요한 서류를 재발급받고, 그 과정에서 일본 입국에 따른 2주 격리를 거쳐야 했습니다. 문제는 통영 공연 직후에 프랑스에서 다른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다는 겁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통영국제음악재단과 일본음악재단, 독일에 있는 기획사, 그리고 프랑스에 있는 연주자 가족까지 4개국의 여러 사람이 수많은 메시지를 주고받으면서 상황을 공유하고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했습니다. 한국에서 출국할 때 생길 수 있는 문제가 가장 먼저 해결됐고, 일본 세관을 잘 설득한 끝에 긴급 우편으로 추가 통관 서류를 서울의 호텔에서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카미유 토마는 항공 일정을 여러 차례 변경했고, 코로나-19 검사를 며칠 만에 두 차례 받아야 했습니다. 코로나-19 검사 결과는 출국 기준 72시간 이내에 발급된 것이어야 하거든요.

이번 통영국제음악제 때에도 많은 일이 있었고, 무엇보다 요즘 같은 시절에 이런 행사를 안전하게 운영하기 위해 큰 노력과 많은 사람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미 언론에 보도되었으니 이 글에서는 그 와중에 웃겼던 에피소드를 두 개만 더 소개할까 합니다.

카미유 토마는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지정된 격리장소로 이동하는 일부터 시작해 택시를 몇 차례 이용했습니다. 그런데 택시를 예약하신 분이 카미유 토마(Camille Thomas) 이름이 익숙지 않아서 ‘카유미 토마’로 여러 차례 헷갈려 하셨습니다. 그런데 택시 회사에서 ’카유미’ 씨가 일본 사람인 줄 알고 이렇게 자랑하더라네요. “우리 기사님 중에 일본어 잘하시는 분 있어요!”

개막공연 때 있었던 일입니다.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가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을 크리스티안 바스케스가 지휘하는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와 협연하기 위해 분장실에서 나오고 있었습니다. 통영의 에메랄드빛 바다를 닮은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있었지요. 드레스 자락이 그물처럼 되어 있어서 마치 인어의 비늘이 푸른 파도와 더불어 반짝이는 듯했는데요.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 ’그물’에 하이힐 뒷굽이 끼어서 제대로 걷지를 못하더라고요!

다행히 김봄소리는 무대에 입장할 때 발을 앞으로 차듯이 걷는 법을 익혀서 멀쩡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무대 뒤에서는 달랐습니다. 분장실 입구에서 처음 몇 걸음을 걷는 동안에 마치 시트콤처럼 웃기고 당황스러운 상황이 벌어졌지요. 근처에 있던 여성 동료 한 분이 재빨리 달려가 드레스 자락을 걷어 올렸습니다. 그 와중에 드레스 자락이 위로 올라간 모습이 마치 인어 꼬리가 파닥이는 듯했습니다. 나만 그렇게 생각했던 게 아니었던지, 드레스 자락을 움켜잡으신 분이 아주 찰진 농담을 시전했습니다.

“이대로 인어공주처럼 걸으세요!”

2020년 1월 13일 월요일

2020 통영국제음악제, 나에게 맞는 공연은?

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입니다.


통영국제음악제 공식 공연 중 자신에게 맞는 것을 찾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글을 올해에도 한 번 써봤습니다. 이런 시도를 하려면 관객과 작품을 ’분류’해야 하므로, 그 과정에서 편견이 섞일 수밖에 없음을 헤아려 주세요.

아래 문항을 읽고 자신에게 해당하는 곳에 표시하세요. 그리고 공연마다 해당 사항이 있는지 확인하시면 자신에게 맞는 공연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가.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을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본 일이 한 번도 없다.
나. 베토벤 교향곡 전집 음반을 2종류 이상 가지고 있다.
다. 가사 대역본을 보면서 외국어 노래 가사를 따라가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라. 소나타 형식에 관해 알고 있다.
마. 하이든-모차르트-베토벤 시대 악기 및 연주법이 현대와 어떻게 다른지 알고 있다.
바. 스트라빈스키 발레 음악이 듣기 좋다.
사. 현대음악에 관심이 있거나 윤이상 음악 감상에 도전해 볼 생각이 있다.

  1. 개막공연 -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 가나라바사
    누구나 아무 편견 없이 듣기를 권하는 공연.
  2. 오페라 ‘사티리콘’: 가나바사
    편하게 영화 한 편 본다고 생각하세요. 현대음악이라고 겁낼 필요 없어요.
  3. 프라하 필하모니아 & 루돌프 부흐빈더: 가나라마사
    거장 피아니스트 루돌프 부흐빈더가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협주곡을 협연 및 지휘합니다.
  4.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 II: 가나바사
    초심자라도 겁내지 말고 도전해 보세요.
  5. 나이트 스튜디오 I - 라인홀트 프리드리히: 가나바
    트럼펫의 거장이 라벨, 거슈윈, 에네스쿠, 셰드린 등을 연주합니다.
  6. 나이트 스튜디오 II - 임선혜 & 김다솔: 가나다
    스타 소프라노 임선혜가 노래하는 20세기 한국 작곡가의 노래
  7. 마티네 콘서트 - 루돌프 부흐빈더 피아노 리사이틀: 가나라마
    거장 피아니스트가 연주하는 베토벤 소나타 ‘템페스트’와 ’발트슈타인’ 등.
  8. 페테르 외트뵈시의 카르트 블랑슈: 바사
    세계 정상급 현대음악 작곡가 겸 지휘자가 이끄는 프라하 필하모니아의 현대음악과 낭만음악
  9. 디 디 브릿지워터: 가
    재즈와 블루스의 거장 디디 브릿지워터의 통연 단독 공연.
  10. 크레메라타 발티카 체임버 오케스트라: 나라바사
    선우예권과 라인홀트 프리드리히가 협연하는 쇼스타코비치 피아노 협주곡 1번 등.
  11. 프라하 필하모니아: 가나라바사
    슈베르트와 윤이상의 갈망이 공명하는 음악. 스타 첼리스트 옌스 페터 마인츠 협연.
  12. 나이트 스튜디오 III - 모딜리아니 콰르텟: 나라바사
    세계 정상급 현악사중주단이 연주하는 베토벤, 라벨, 그리고 윤이상.
  13. 나이트 스튜디오 IV - 스레드: 바사
    베를린필 더블베이스 수석 매슈 맥도널드의 연주와 첨단 테크놀로지가 어우러지는 공연.
  14. 클랑포룸 빈: 사
    현대음악의 거장이 지휘하는 세계 정상급 현대음악 앙상블의 진은숙, 윤이상, 외트뵈시.
  15. 모딜리아니 콰르텟 II: 나라바사
    모딜리아니 콰르텟과 비올리스트 이화윤, 첼리스트 박진영이 협연하는 차이콥스키 현악육중주 ‘피렌체의 추억’
  16. 나이트 스튜디오 V - 낸시 저우 바이올린 리사이틀: 나라바사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 1위 입상자 낸시 저우의 멘델스존, 라벨, 생상스, 윤이상.
  17. 나이트 스튜디오 VI - 김다솔 피아노 리사이틀: 나라
    스타 피아니스트 김다솔이 들려주는 슈베르트 최후의 걸작 피아노 소나타 D. 959와 D. 960
  18. 탄둔의 붓다 수난곡: 가나다바사
    중국을 대표하는 작곡가 탄둔의 대작. 현대곡이지만 겁낼 필요 없어요.
  19. 세종솔로이스츠: 나라바사
    멘델스존 팔중주, 쇤베르크 초기 조성음악의 걸작 ‘정화된 밤’, 그리고 윤이상의 영상(Images)
  20. 아시아 작곡가 쇼케이스: 사
    본격 현대음악을 들어보고 싶은 분이라면 누구나 환영!
  21. 야노스카 앙상블: 가
    집시 음악, 탱고, 재즈를 넘나드는 음악을 엄청난 명인기로 즐길 수 있는 공연. 흥이 있는 분들은 오세요!
  22. 와이너리 콘서트 - 모차르트 나이트: 가나라
    와인과 함께 편한 마음으로 즐기는 모차르트.
  23. 폐막공연 - 카르미나 부라나: 가나다바
    ’카르미나 부라나’를 모르시는 분은 ’오 포르투나’를 찾아서 들어보세요. 이미 아는 곡입니다!

2019년 4월 16일 화요일

2019 통영국제음악제 막전막후

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입니다.

"바그너 날씨네!"(It's Wagner weather!)

플로리안 리임 통영국제음악재단 대표님 말씀입니다. 통영국제음악제 폐막공연이 열리기 한 시간쯤 전부터 천둥 번개가 쳤지요. 콘서트 형식으로 연주된 바그너 오페라 '발퀴레' 1막에 걸맞은 날씨였고, 꽤 가까운 곳에서 들려오는 천둥소리가 무시무시했습니다. 2019 통영국제음악제 주제였던 '운명'과 어울리기도 했지요. 공연을 끝내고 돌아가시는 테너 김석철 선생은 안개 자욱한 통영의 해돋이 사진을 보내왔습니다. "(바그너 오페라)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분위기 통영 아침이네요. 어제는 완벽한 발퀴레 날씨였는데 ㅎㅎ"

언제나 그렇듯이, 올해 통영국제음악제도 많은 사연을 남기고 끝났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큰 일은 '로스 로메로스' 기타 콰르텟 가운데 셀린 로메로가 갑자기 쓰러졌던 일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아르디티 콰르텟의 리허설을 챙기느라 현장의 급박함을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스마트폰 메시지로 전해지는 내용이 심상치 않더군요. 플로리안 리임 대표님이 관객들에게 알린 것처럼, 환자는 병원에서 뇌졸중 진단을 받았다고 합니다.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는 병명에 비하면 실제 증상은 그나마 가벼운 편이었던 모양이라 천만다행이었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환자는 장시간 비행이 가능할 만큼 치료를 잘 받고 공항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로스 로메로스' 공연에서는 결국 셀린 로메로가 빠진 채 3명만 출연하게 되었지요. 가장 유명한 기타리스트 페페 로메로가 전설적인 명인의 솜씨를 똑똑히 보여준 공연이었습니다.

제가 담당한 공연 중에서는 '바흐와 룸바'와 관련해 황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베이시스트 에딕손 루이스가 공연 마지막 곡이었던 'J.S.를 위한 룸바흐'의 음원을 전해 주며 악보에 없는 휘파람이 있으니 타악기 연주자가 듣고 '연주'할 수 있게 해달라더군요.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니었습니다.

베이시스트 에딕손 루이스에게 받아서 타악기 연주자 채형봉 선생에게 전달한 악보는 5악장까지였는데, 음원은 6악장까지 있었습니다. 공연 이틀 전이었지요. 부랴부랴 6악장 악보를 받아서 전달했더니, 6악장에 악기 표기가 명확하지 않은 곳이 있다더군요. 저도 악보를 확인해 봤더니, 6악장 제목이 '콩가'인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콩가는 그냥 악장 제목이고 실제로 콩가라는 악기가 나오는 건 아니에요."
"다른 악기가 또 새로 나오지 않는 게 맞나요?"
"음… 아마도?"
"작곡가한테 확인해 주세요. 통영은 서울이 아니에요. 갑자기 없는 악기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요."

다행히 추가 악기가 필요하지는 않았습니다. 휘파람은 작곡을 전공한 분께 부탁해서 악보로 옮겼는데, 그에 앞서 음원의 몇 분 몇 초쯤에 휘파람이 나오는지 정확히 확인하려고 악보를 보면서 음악을 들어 봤더니, 귀로 듣기로는 마냥 신나는 악곡의 리듬이 실제로는 얼마나 기상천외하게 꼬여 있는지 머리가 어질어질하더군요.

타악기 연주자 채형봉 선생도 어렵다며 혀를 내두를 정도였고, 막판에 6악장을 새로 익히기도 벅차서 휘파람까지는 안 되겠다고 하시더군요. 결국 휘파람은 에딕손 루이스가 불었습니다. 사실은 작곡가가 에딕손 루이스한테 휘파람을 불게 했었다가 베이스 연주와 동시에 전혀 다른 리듬으로 휘파람을 불기가 어려워서, 세계초연 때에는 작곡가이자 타악기 연주자인 곤살로 그라우가 직접 휘파람을 불었었다고 하더군요.

이날 에딕손 루이스가 세계초연한 호소카와 도시오 신작 '작은 에세이'도 기억에 남습니다. 작곡가와 연주자가 같은 공간에 있다 보니 작곡가가 영감을 받아서 곡을 써주기로 한 모양인데, 처음에는 호소카와 선생이 예술감독으로 있는 다케후 국제음악제에서 초연하기로 했다가 통영 공연 직전에 곡이 완성되어서 그냥 통영에서 세계초연하기로 했다네요. 곡을 들어 보니 윤이상 선생을 오마주한 의도가 뚜렷이 느껴지는 작품이었습니다. 통영이라는 공간이 작품의 탄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이겠지요!

바쁘게 일하는 중에 강원도에 불이 났다는 소식을 얼핏 들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하마터면 큰 재난이 될 뻔했던 모양이더군요. 빠른 진압에 성공했다니 천만다행입니다.

2019년 3월 21일 목요일

바그너 오페라 '발퀴레'

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입니다.


오페라 '발퀴레'는 '니벨룽의 반지' 4부작 가운데 2번째 작품입니다. '발퀴레' 하나만으로도 4시간 또는 때로 5시간 이상 걸리기도 하는 대작이고, 4부작을 모두 공연하려면 중간에 쉬어 가는 날까지 반드시 포함해 일주일 정도가 필요합니다. 통영에서 이걸 다 공연해 봤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만 쉽지 않네요.

그래도 2019 통영국제음악제 폐막공연으로 '발퀴레' 1막을 하게 됐습니다. 통영국제음악제를 아껴주시는 여러분께 익숙하실 지휘자 알렉산더 리브라이히가 5년 만에 통영에 돌아와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를 지휘할 예정이지요. 그리고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등 국제무대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한국인 가수들이 출연합니다.

'지크문트' 역을 맡은 테너 김석철은 한국인으로는 보기 드문 강력한 목소리를 가진 테너입니다. 제가 이분을 처음 봤을 때부터 바그너를 해야 할 목소리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지난 2016년에 바그너 가수들에게 꿈의 무대라 할 수 있는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 출연하는 등 바그너 가수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강병운, 연광철, 사무엘 윤, 전승현 등 음역이 낮은 분들이 그동안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 여러 차례 출연했지만, 테너로는 국내 최초예요.

'지클린데' 역을 맡은 소프라노 서선영 또한 한국인답지 않게 묵직한 고음을 낼 수 있는 가수라서 역시 바그너를 해야 할 목소리라고 생각해 왔던 분입니다. 지난 2016년 국립오페라단이 '로엔그린'을 공연했을 때 로엔그린 역 김석철의 상대역인 '엘자'로 출연하는 등 바그너 오페라에 도전하고 있지요. 제 생각에 '트리스탄과 이졸데' 중 이졸데에 잘 어울릴 것 같은데, 발퀴레 중 지클린데 역에도 잘 어울릴 것으로 기대됩니다.

'훈딩' 역을 맡은 베이스 전승현은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등에서 바그너 오페라를 여러 차례 하셨던 분입니다. 특히 '신들의 황혼'의 빌런(악당)인 '하겐' 역으로 유명하신 분이지요. 그뿐만 아니라 독일-오스트리아 가수가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영예인 '캄머젱어'(Kammersänger) 칭호를 지난 2011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받았던 분이기도 합니다. 이 칭호는 노래 실력뿐 아니라 독일 시(詩)를 올바로 이해하고 언어로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인정받아야 받을 수 있다고 하지요. 말하자면 독일인이 판소리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격입니다.

바그너 오페라에서는 가수들의 노래가 아닌 오케스트라가 음악을 이끌어가곤 합니다. 노래 가사가 사건의 외면을 알려주는 동안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진실을 관현악이 알려주는 식이고, 그런 점에서 고대 그리스 비극에서 합창이 하는 역할을 바그너 오페라에서는 오케스트라가 하는 셈입니다. 이 말을 달리하면 노래 선율만 따라가서는 바그너 음악의 진수를 맛볼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발퀴레'의 깊은 내용을 이해하려면 가사와 음악의 상호작용을 실시간으로 파악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독일어 가사를 따라가면서, 필요하다면 독한대역을 보면서 가사의 의미를 이해하고, 귀로는 관현악에 집중하는 식으로 주의자원을 효과적으로 배분해야 하지요. 가사에 숨겨진 진실을 오케스트라가 알려주는 순간 전율을 느끼고 나면, 그 뒤로는 자연스럽게 바그너 음악에 빠져들게 됩니다. 그러나 이렇게 높은 진입장벽이 국내에 바그너 애호가가 많지 않은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합니다.

사실 '발퀴레'는 바그너 작품치고는 '노래'의 비중이 높은 편입니다. 그래서 그냥 가사만 따라가더라도 제법 재미있을 거예요. 다만, '훈딩'이 말할 때마다 사납게 으르렁거리는 오케스트라, '지클린데'와 '지크문트' 사이에 말로는 전하지 못할 눈빛이 오갈 때마다 애절한 마음을 전하는 오케스트라, 두 사람에게 기적이 일어났을 때 마치 빛이 무대를 압도하는 듯 눈부시게 빛나는 오케스트라 등을 놓치지 않는다면 더 큰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발퀴레 1막 전주곡에서, 이를테면 선동적인 리듬을 타고 흐르는 저음 현의 '다크 포스'에 집중해 보세요. 그 위에서 폭풍처럼 몰아치는 현의 움직임, 포르테(세게)와 피아노(여리게)를 순식간에 오가는 급박한 셈여림 변화, 무시무시하게 암울한 음색, 악마적인 화음 등에도 주의를 기울이면 좋습니다.

2018년 4월 20일 금요일

2018 통영국제음악제 막전막후

해마다 통영국제음악제 기간이면 무대 뒤에서 많은 사연이 생겨나지요. 올해 겪은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개막공연에 출연해야 할 보훔 심포니 오케스트라 단원 두 명이 공연 당일 아파서 제가 병원에 데려갔던 일입니다. 한 명은 밤늦게 김밥을 먹고 배탈이 난 첼리스트였는데, 다른 한 명이 문제였습니다. 허리가 아파서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는 상태였거든요. 현악기 연주자였더라면 그 한 사람쯤 빠져도 공연에 큰 지장이 없었겠지만, 하필 그 사람은 타악기 연주자였습니다.

요통 환자가 들것에 실려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이송되는 동안, 저는 복통 환자와 오케스트라 매니저를 제 차에 태우고 병원으로 따라갔습니다. 요통 환자는 응급실에서 증상을 확인하고, 엑스레이를 찍고, 스테로이드와 진통제 등을 처방받았습니다. 환자는 만성 요통으로 독일에서 치료를 받아온 이력이 있었고, 그날 하필 침대에서 굴러떨어져서 증세가 악화한 상태였습니다. 엑스레이 영상을 판독한 의사는 디스크 탈장을 의심하면서도 엑스레이만으로는 확신할 수 없으니 독일에서 엠알아이(MRI) 검사를 해보라고 권유하더군요.

요통 환자가 치료를 받는 동안 저와 오케스트라 매니저, 그리고 사무실에 있는 동료들은 두 가지를 걱정했습니다. 환자가 이 상태로 오늘 밤 공연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공연이 끝난 뒤에 독일까지 장시간 비행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대타 연주자는 무엇보다 윤이상 ‹광주여 영원히›를 당장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마침 지난해 광주시립교향악단이 이 작품을 연주한 일이 있어서, 사무실에서는 그곳 타악기 연주자에게 연락을 시도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병원에서는 치료가 효과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오전 내내 누워 있던 환자가 힘겹게 일어나 물리치료를 받았고, 그 뒤에 밥을 먹더니, 퇴원해서 그날 저녁에 무대에 올랐습니다! 다음 날 공연 때에는 상태가 훨씬 좋아 보였습니다. 공연이 끝난 뒤에는 독일까지 무사히 돌아갔고요. 현대 의료기술이 참 대단하지요! 병원 의료진들이 모두 친절하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공연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으니 참 감사한 일입니다.

환자가 치료를 받을 때 제가 통역을 했고, 의학 용어가 라틴어 또는 영어로 되어 있는 만큼 때로는 의료진이 직접 환자와 소통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몰랐던 의학용어를 익히기도 했는데요, 급성(acute), 만성(cronic), 설사(diarrhea) 등이었지요. 디스크 탈장(Slipped Disc)은 영국의 유명 음악평론가가 말장난처럼 쓰고 있는 웹사이트 이름 때문에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만약을 대비해 주요 병명을 익혀두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위염(gastritis), 장염(enteritis), 편도선염(tonsillitis), 맹장염(appendicitis), 골절(fracture). 또 뭐가 있을까요? 아, 공연장에서 지휘자에게 심근경색(heart attack)이 일어나 심폐소생술(CPR)을 했다는 얘기가 화제가 된 일이 있지요!

그밖에 음악극 ‹귀향›에 소품으로 사용할 활을 구하느라 동료가 백방으로 수소문하던 일, 그 와중에 알게 된 활 판매 업체 '활○당' 이름 때문에 다 같이 웃었던 일, 구하기 힘든 악기 때문에 여러 사람이 골머리를 앓았던 일, 독일인 지휘자에게 굿거리장단을 설명하면서 '태평가'를 불러줬던 일, 올해도 어김없이 새벽에 공항으로 출발하는 연주자를 배웅했던 일, 피곤한 몸으로 연주회장 구석 자리에 앉아 음악을 들으려 노력하며 정신없이 졸았던 일 등이 생각납니다. 지면이 짧으니 더 자세한 사연은 생략할게요.

마지막으로 이번 통영국제음악제에서 세계초연된 음악극 ‹귀향›으로 화제가 되었던, 여창가곡 우조 이수대엽 '동짓달'의 절절한 노랫말과 그것을 기막히게 노래한 박민희 선생이 특별히 기억에 남습니다. ‹귀향›의 진정한 주인공은 율리시스도 페넬로페도 아닌 박민희 선생이 아니었나 싶어요!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둘에(베어) 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룬 님 오신 날 밤이어든 구비구비 펴리라

시를 쓴 사람이 황진이라네요.

2018년 3월 15일 목요일

Isang Yun: Poems of the Nakdong River

Isang Yun wrote a song ‹Nakdong River› while in Korea, and it is quite well-known through Isang Yun Children’s Song Festival. However, there is another ‹Nakdong River› by Yun himself that elderly persons in Gyeongnam Province still remember. Euy-Jang Jin, the former mayor of Tongyeong City, mentioned that the latter was also called “The song of Gyeognam citizens.” Seung-gi Lee, a film expert who served as the head of the Masan Culture Bureau, remarked that it was sung at every morning gathering in Gyeongnam area schools. He also added that it was inserted into the movie ‹Nakdong River›, released in 1952 but lost, probably during the Korean War.

There seems to be an indirect relationship between the two songs of ‹Nakdong River› along with the movie of the same title, and Yun’s symphonic poem titled ‹Poems of the Nakdong River›. In a letter dated November 30, 1956, to his wife Sooja Lee, Yun stated that he had begun composing that symphonic poem in Korea, then concluded the first two movements in Paris, where he also completed the final third movement in the evening of November 29. In April that same year, Yun received the Seoul City Culture Award with his first string quartet. In June, he left Korea to study abroad, and learned composition at the Paris Conservatory, where he also encountered European modern music.

In other letters to his wife during his days in Paris, Yun occasionally reveals anxiety over the progress of his learning. In regards to ‹Poems of the Nakdong River›, he did not seem to feel confident, saying “I cannot expect much because I have put in too many conventional elements.” In this regard (and in some other as well), and in view of the fact that the work was based on traditional functional harmonies, we can guess why ‹Poems of the Nakdong River› has not come into light until now. However, when we treat this piece from the perspective of modern Korean people, we can understand that Yun had already been shining as a composer since the time it was written.

Yun originally appears to have designed it as a six-movement scheme before modifying it to three movements in the process. In the manuscript, the first movement was to be a prologue, followed by five movements, respectively titled Twilight, Hangawi (Korean Thanksgiving), Field of Reeds, Song of Bumper Years, and Epilogue. However, the completed composition consists of three movements: Prologue, An Evening of the Nakdong River, and Dances.

In the early 1950s, the Korean Peninsula was swallowed up in a civil war, which, at least partially, was a proxy war in behalf of the United States, China, and Russia. The Nakdong River was the battlefield where South Korea turned the tide and defeated North Korea. During this period, Yun was a music teacher in Busan, one of the major cities in the Nakdong River Basin. After the war, he went to Seoul with his family, where he spent about three years as a composer and a part-time lecturer at Seoul National University and Duksung Women's University. As can be seen from the historical background, and unlike what the initial conception based on 6 movements might suggest, the first two movements of this work are full of dark sentiment.

It is the “dramaturgy” that leads this piece; the second movement is in an arch form, but the outer movements do not follow the traditional formal structure. The first movement commences with a grand fanfare, and the ascending figure in the interval of fourths becomes the seed of the entire movement. That sustains the formal coherence and consistency of the entire composition. The sudden texture contrast between this fanfare and the subsequent melody reminds us of a movie scene transition from the signal (that indicates an opening of a movie) to the actual movie. That's why we need to reconsider its relation to the film ‹Nakdong River›.

In the first movement, sorrow flows like a river, and sobs turn into wailing. When that wailing has trailed away, an anxious beat appears, which sounds like the last beating of the heart. The movement ends with two sharp squeaks. The second movement is mainly led by the oboe melody, which sounds like a melancholic barcarolle, or in some sense, Korean pallbearers' dirge. In the third movement, an exciting rhythm appears like a manifesto, driving out the tragedy.

In the middle of the third movement, a melody, distinctly in the Korean folk song style, makes appearance. Its interval structure is identical to that of a melodic fragment in the Korean folk song ‹Miryang Arirang›. In contrast to ‹Miryang Arirang›, which consists of Semachi Rhythms, or Semachi Jangdan in Korean traditional terminology, the melody here resembles the Gutgeori Jandan of ‹Taepyunga›. As a result of combining ‹Miryang Arirang› and Gutgeori Jangdan, the melody sounds similar to the ‹Korean Barcarolle›.

WonCheol Kim
translated by Moohyun Cho

World Premiere:

Scheduled on April 5, 2018
Tongyeong Concert Hall
Kammerorchester Hannover
Hans-Christian Euler, conductor

2018년 2월 28일 수요일

윤이상: 낙동강의 시(詩)

2022년 10월 8일 붙임:
이 글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정보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한 글 참고:

☞ 「영화 <낙동강>과 윤이상의 영화음악」


윤이상이 한국에서 쓴 ‹낙동강›이라는 노래는 윤이상동요제 등으로 비교적 잘 알려졌다. 그런데 경남 지역 장년층이 기억하는 윤이상의 또 다른 ‹낙동강›도 있다. 진의장 전 통영시장은 이 노래가 '경남도민의 노래'처럼 불렸다고 증언하며, 마산문화원장을 역임한 영화전문가 이승기 선생은 경남 지역 학교에서 조례 때마다 이 노래를 불렀고 또한 1952년에 개봉한 영화 ‹낙동강›에 삽입됐다고 증언한다.

두 곡의 ‹낙동강› 및 영화 ‹낙동강›과 교향시 ‹낙동강의 시(詩)› 사이에는 간접적인 관련성 정도가 의심된다. 윤이상이 1956년 11월 30일 아내 이수자에게 보낸 편지에 따르면, 윤이상은 한국에서 ‹낙동강의 시›를 작곡하다가 1악장과 2악장을 파리에서 완성했고 그곳에서 3악장을 써서 11월 29일 저녁에 전곡을 완성했다. 윤이상은 같은 해 4월 현악사중주 1번으로 서울시문화상을 받고 6월에 유학길에 올랐으며, 파리국립고등음악원에서 작곡을 배우면서 유럽 현대음악을 경험하게 되었다.

파리 시절 이수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윤이상은 때때로 배움에 대한 조급함을 드러내고 있다. ‹낙동강의 시›에 관해서는 "너무 통속성을 집어넣었기 때문에 큰 기대는 할 수 없는 것"이라며 자신 없는 태도를 보였다. 이런저런 맥락과 함께 이 곡이 전통적인 기능화성에 바탕을 둔 작품임을 헤아리면 ‹낙동강의 시›가 이제서야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까닭 또한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 한국인의 시각으로 작품을 대하면 알게 될 것이다. 윤이상은 이미 이때부터 빛났다.

작곡가는 처음에 이 작품을 6악장으로 구상했다가 작곡 도중 3악장 구성으로 수정한 것으로 보인다. 자필악보의 목차를 보면, ‹낙동강의 시›는 1악장 프롤로그, 2악장 黃昏(황혼)이 물들 때, 3악장 嘉俳節(가배절; 한가위), 4악장 갈대밭, 5악장 豐年歌(풍년가), 6악장 에필로그로 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로 완성된 작품은 3악장 짜임새로 1악장 프롤로그, 2악장 洛東江(낙동강)의 저녁, 3악장 舞曲(춤곡)으로 되어 있다.

남북이 상잔을 일으키고 미중러 등의 열강이 한반도에서 대리전을 벌일 때, 낙동강은 남한이 전세를 뒤집어 북한을 패퇴시킨 격전지였다. 이 무렵 윤이상은 낙동강 유역 주요 도시 중 하나인 부산에서 음악 교사로 지냈고, 전쟁이 끝난 뒤에 가족과 함께 서울로 가서 약 3년간 생활하며 서울대학교와 덕성여자대학교 등에 출강하는 한편 작곡가로서 활동했다. 시대적 배경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그리고 6악장으로 된 최초 구상이 시사하는 바와 달리, 이 작품의 2악장까지는 어두운 정서로 가득하다.

이 작품을 이끌어가는 것은 '드라마투르기'이며, 아치(arch) 형식으로 된 2악장을 빼면 나머지 악장은 전통적 형식구조를 따르고 있지 않다. 1악장은 웅장한 팡파르로 시작하고, 핵심이 되는 4도 상행 음형이 악곡 전체의 씨앗이 됨으로써 작품을 지탱하는 형식적 일관성을 확보한다. 이 팡파르와 그에 이어지는 선율 사이의 급격한 텍스처 대비는 마치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시그널에서 실제 영화로 이어지는 장면전환을 연상시킨다. 이 작품이 과연 영화 ‹낙동강›과 무관한지 의심해볼 만한 대목이다.

1악장에서는 슬픔이 강물처럼 흐르고, 흐느낌이 통곡으로 변한다. 통곡이 잦아들면 마치 심장의 마지막 박동처럼 들리는 불안한 음형이 나타나고, 날카로운 두 차례 비명과 함께 1악장이 끝난다. 2악장은 오보에 선율이 이끌어 가는데, 이 선율은 음울한 뱃노래처럼 들리기도 하고 또 어찌 들으면 상엿소리 같기도 하다. 3악장에서는 흥겨운 리듬이 마치 선언처럼 나타나 비극을 몰아낸다.

3악장 중간에는 뚜렷한 민요풍 선율이 나온다. 이것은 ‹밀양아리랑›의 "동지섣달" 가사에 해당하는 선율과 음정관계가 일치하는데, 세마치장단으로 된 밀양아리랑과 달리 이 음형은 굿거리장단으로 된 ‹태평가›와 리듬이 비슷하다. 그리고 밀양아리랑과 굿거리장단이 결합한 결과는 ‹뱃노래›와 비슷하다.

2019년 11월 23일 붙임: 3악장 민요풍 선율은 1987년에 작곡한 칸타타 ‹나의 땅, 나의 민족이여!›에 사용되었음. 해당 부분의 가사는 "북을 쳐라, 새벽이 온다." 등.

2018년 1월 31일 수요일

소프라노 황수미 인터뷰

통영국제음악재단에서 발간하는 『Grand Wing』에 실린 글입니다. 출간본과는 사소한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2018년 1월 7일, 독일 현지 시각 오전 11시경 전화 인터뷰.

Q. 통영 공연은 이번이 두 번째다. 2016년 샹젤리제 오케스트라와 협연했을 때를 어떻게 기억하는가?

A. 통영의 아름다움이 우선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고, 통영국제음악당의 음향이 훌륭해서 노래하기 편했었다. 그때가 통영국제음악당 데뷔 무대여서 긴장되기도 했지만, 직원들이 친절하게 챙겨주셨고, 숙소도 마음에 들었고, 아침에 자전거를 빌려서 해안 도로를 다녔던 것도 멋진 추억으로 남아 있다. 심지어 날씨까지 좋아서 모든 것이 완벽했던 것 같다.

Q. 올림픽 개막 공연에 출연하게 되었는데.

A. 영광으로 생각한다. 사실은 연락을 지난달에 받아서 일정을 조정하느라 정신이 없는 상태다. 아테네에서 열렸던 제1회 올림픽 때부터 공식 찬가로 지정된 곡을 원어인 그리스어로 불러 달라는 요청을 받았고, 악보를 받은 지는 일주일밖에 안 됐다. 이걸 잘 해내려면 남은 시간 동안 열심히 준비해야 할 것 같다.

Q. 연주자로서 자신의 장단점을 스스로 가장 잘 알고 있을 것 같다. 장점 위주로 자신을 평가한다면?

A. 무대 위에서 드러나는 것보다 그것을 준비하는 과정을 즐길 수 있는 것이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작품을 준비하는 과정은 지루할 수도 있고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려운 과제를 하나씩 해결하면서 받는 쾌감을 즐기는 편이다.

Q.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때 소프라노 임선혜 선생이 평하기를, 포커스가 확실하고 파워 있는 '고음'에 놀랐다고 했다.

A. 그때 마침 브뤼셀에 공연차 왔다가 콩쿠르를 보셨던 것 같다. 칭찬에 감사한다.

Q. 내 생각에 쇤베르크 ‹구레의 노래› 중 숲비둘기(Waldtaube) 역할을 하면 좋을 것 같다. 오케스트라 편성이 워낙 큰 작품이라 성량이 풍부해야 하지만, '비둘기'에 어울려야 하므로 드라마틱 소프라노여서는 안 되고, 고음이 맑고 단단하고 '포커스가 확실해야' 하는 까닭에 이 역할을 잘할 수 있는 소프라노가 흔치 않은데, 이 역할이 누구보다도 잘 맞을 것 같다.

A. 다음에 기회가 되면 꼭 도전해 보겠다. 통영에서 기회를 만들어 주셔도 좋을 것 같다. (웃음)

Q. 진은숙 ‹퍼즐 & 게임›은 다른 방향으로 난이도가 대단하다. 이번에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와 협연할 이 곡을 전에 들어본 일이 있는가?

A. 오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뮌헨 공연 실황을 봤었다. 오페라를 모음곡으로 재구성한 ‹퍼즐 & 게임›은 아직 악보를 받아보지 못해서 잘 모르겠다.

Q. 작곡가 진은숙에 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A. 여성 작곡가로서, 또 아시아 작곡가로서 베를린필 같은 특급 악단이 공연하는 작품을 여럿 쓰신 점이 대단하다. 개인적인 친분은 없지만, 왜소한 체격에서 느껴지는 아우라나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않는 모습 등이 멋있다고 생각한다. 글라인드본 페스티벌에 출연하면서 알게 된 유명한 오페라 연출가 클라우스 구트 선생이 진은숙 차기작 오페라 ‹거울 나라의 앨리스›를 연출할 예정이라고 말해줬을 때는 같은 한국인으로서 괜히 자부심을 느끼기도 했다.

Q. 크리스티안 요스트 ‹시인의 사랑›은 어떤가?

A. 매니저가 조만간 악보를 챙겨 줄 예정이라 아직 잘 모르겠다. 슈만 원곡은 참 좋아한다.

Q. 여자가 부르는 ‹시인의 사랑›은 흔치 않다.

A. 가사 내용이 남자 가수에게 맞는 곡이기는 하지만, 최근에는 브리기테 파스벤더, 바바라 보니, 크리스티아네 셰퍼 등이 ‹시인의 사랑›으로 호평받았다. 시를 전달하는 일에 남녀를 엄격히 가릴 필요는 없지 않나 싶고, 크리스티안 요스트가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시인의 사랑›이라면 더욱 남녀 구분 없이 도전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Q. 통영국제음악제에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네 개의 마지막 노래›를 보훔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할 예정인데, 마지막 곡 '저녁놀 안에서'(Im Abendrot)를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때 불렀었다.

A. 학생 때부터 언젠가는 오케스트라와 협연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꿈의 레퍼토리'였고, 특히 리사 델라 카사의 음반을 좋아했다. 그래서 콩쿠르 결선 때 이 곡을 마지막 곡으로 불렀다. 음악이 주는 평안함이 좋았고, 잘해야지 하는 생각보다는 마지막 가는 길이 이렇게 평안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Q. 안나 네트렙코의 초기 목소리를 참고했다고 다른 인터뷰에서 밝힌 일이 있다. 자신만의 발성법을 찾기 전에 흉내 내려 했던 가수가 또 있다면?

A. 미렐라 프레니. 입 모양을 보면 소리가 어떻게 나는지 훤히 다 보일 것 같은 사람이다.

Q. 뮌헨 음대를 졸업했다.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나?

A. 도시 자체가 참 좋았고, 수업에서 배운 내용을 실제 오페라 극장 오디션과 연계해 실습할 수 있는 시스템이 좋았다. 또 오페라뿐 아니라 리트 및 오라토리오를 복수전공하면서 시야를 넓히기도 했다.

Q. 본 오페라 극장 주역 가수이다. 극장 자랑을 해달라.

A. 플라시도 도밍고, 문서라트 커벌예(몽셰라 카바예), 에디타 그루베로바 등이 공연했었던 전통 있는 극장이고, '베토벤 오케스트라 본'이라는 훌륭한 악단이 극장 오케스트라로 있다. 개인적으로는 파미나, 돈나 안나, 미미, 수산나, 미카엘라 등 배역을 맡으면서 오페라 가수로 성장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4년차인 이번 시즌을 끝으로 독립할 예정이며, 앞으로는 여러 공연장으로 활동 영역을 넓혀 자유롭게 출연하게 된다.

Q. 국내 팬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계획이 있다면?

A. 피아니스트 헬무트 도이치 선생님과 함께 음반 녹음 건으로 음반사와 의견 조율 중인데, 자세한 내용은 아직 말하면 안 될 것 같다. 또 헨델 오페라 ‹리날도›로 앙상블 마테우스와 함께 파리, 빈, 모스크바 등을 순회공연할 예정이다.

Q. 마지막으로 통영 관객에게 한 말씀 해달라.

A. 아름다운 도시에서 다시 노래하게 되어 기쁘고, 좋아하는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되어 감사하다. 싱그러운 봄에 좋은 음악으로 찾아뵙기를 기대한다.

2018년 1월 30일 화요일

크리스토프 에셴바흐: 나의 삶

통영국제음악재단에서 발간하는 매거진 『Grand Wing』에 실린 글입니다. 인터뷰 대신으로 이런 글을 받았는데, 더 긴 글을 요약한 듯한 느낌이네요.


"음악은 사람의 감정 표현이다. 그 감정은 사실 매우 단순한 기쁨과 슬픔과 격정이며, 그 안에 많은 스펙트럼이 있다. 그것이 모두를 포괄한다. 일본인도, 에스키모도, 미국인도, 러시아인도. 이것이 음악의 커다란 장점이다."

모든 공연은 나에게 삶의 하이라이트다. 모든 공연이.

내 음악은 아직도 내 안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이유는 몰라도 나는 그 사실을 안다. 처음부터, 내가 의붓어머니 집에서 생전 처음으로 음악을 들었던 그때부터 음악은 나에게 탐험이었다. 나 자신을 표현하기 위한 탐험이었다. 오늘날까지 변함없다. 음악은 나를 표현하려는 불타는 갈망이다.

왜 그렇게 많은 여행을 해가면서까지 지휘를 자주 하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여행이 참 성가신 일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나는 공연을 해야 한다. 내 몸짓으로, 내 연주자들로 음악을 말해야 한다. 나는 그것을 그만두지 않을 것이다...

어머니 없는 세상은 다른 세상이다. 아버지 없는 세상도 마찬가지다…

어머니는 나를 낳다가 돌아가셨고, 오랜 죄책감에 시달려온 내 인생의 영원한 의문이 되었다. 브레슬라우(브로츠와프) 음대 교수였던 아버지는 나치에 의해 시골로 강제이주했다가 전쟁터로 끌려가셨다. 그리고 수형자 부대에서 작전 중에 돌아가셨다. 나는 할머니와 함께 살다가 1945년 1월 23일 공습을 피해 피난을 가야 했다. 할머니는 1년간의 피난 생활 끝에 돌아가셨다.

열두 달이 지난 1946년 1월 31일, 나의 변함없는 동반자인 질병과 죽음으로 얼룩진 나를 생후 5년간의 암울한 유년기로부터 구한 사람은 어머니의 사촌이었으며 훗날 내 양어머니가 되어주신 발리도레 에셴바흐였다. 내가 겪은 참혹한 일들로 나는 실어증에 빠졌고, 약 1년간의 치료 기간에 생전 처음으로 음악을 들었다. 피아니스트이자 가수, 음악 교사였던 발리도레 에셴바흐는 베토벤, 슈베르트, 쇼팽, 라흐마니노프, 바흐를 밤늦게까지 연주했다. 직접 연주해 보겠느냐는 말에 "예"라고 대답함으로써 나는 다시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오케스트라 연주를 처음 들은 것은 11살 때로, 푸르크벵글러가 지휘한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였다. 오늘날까지 나는 그들이 연주했던 거의 모든 음을 떠올릴 수 있고, 저 엄청난 마법사 푸르트벵글러의 멋들어진 모습을 눈앞에 떠올릴 수 있다. 푸르트벵글러는 오케스트라 단원 모두를 불타오르게 해서 엑스터시 상태로 보내버릴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내가 치른 유일한 '오디션'은 1964년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앞에서였다. 흔치 않게도 카라얀은 내 연주를 한 시간이나 들어 줬다. 이후 그는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진행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1번 녹음에 나를 섭외했다. 그렇게 해서 대단한 친분이 생겼고, 나의 발전에 커다란 도움을 준 배움의 과정이 시작됐다.

나에게 도움을 준 또 다른 위대한 마에스트로는 조지 셸이다. 그는 악보 분석에 관한 획기적이며 또한 상호보완적인 통찰을 나에게 전해 주었다. 그는 내 미국 데뷔를 주선하여 1969년 그가 지휘한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도록 해줬고, 나는 그와 함께 매우 열심히 연습할 필요가 있었다. 피아노 리허설이 업무상 신뢰 관계로 발전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가는 모든 도시, 모든 오케스트라 리허설, 리허설에 이은 모든 토론에 그가 나를 초대했다. 나는 그에게 딕션을 배웠고, 프레이징, 명료함, 투명함을 배웠다. 카라얀에게는 색채, 뉘앙스, 분위기 전환을 배웠다. 셸이 그렸다면 카라얀은 칠했다. 안타깝게도 셸은 너무나 이른 1970년에 타계했다.

나는 지휘에 관해 점점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1964년에 치른 시험 이후 오랫동안 묵혀두었던 생각이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도전하려는 열망이 생겨났다. 그러나 내 몸동작이 지휘에 적절한가? 내가 오케스트라와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가? 내가 생각을 올바르게 전달할 수 있는가?

내 50번째 생일이 계시였다. 또 다른 내 위대한 멘토 레너드 번스타인이 구약성서에 나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현자가 말하기를 모든 생애 주기는 숫자 7에 기초하며, 7년이 7번 지나면 안식 기간을 가지면서 삶을 돌아보고 열린 생각과 변화를 받아들일 자유를 찾아야 한다 했다. 그래서 나는 충분히 오랜 시간 동안 삶을 돌아보고, 그 의미를 찾고, 마지막 남은 공포와 집착과 걱정을 없애 나갔다. 내 인생의 지평선이 멀리서 손짓하고 있었다...

1980년대에 나는 슐레스비히홀슈타인 페스티벌 국제 청소년 오케스트라 및 오케스트라 아카데미를 창립하는 일에 큰 역할을 했다. 더 최근에는 마이클 틸슨 토머스와 함께 삿포로 퍼시픽 뮤직 페스티벌 및 유스 오케스트라의 공동 예술감독이 되었다.

젊은 음악가를 모아 오케스트라를 만들거나 솔로 연주자로서 국제적인 경력을 쌓게끔 하는 일은 모두 한 가지로 귀결된다. 그들에게 용기를 주고 힘을 모아서 느리게 변하는 세상에 맞서게끔 돕는 일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일상의 지루함과 싸울 수 있게 돕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 청춘의 심장에 있는 의기와 결의가 불가능을 이겨낼 것이다. 내가 그들에게 엔진이 될 수 있다면, 바로 여기 내가 있다! 나는 내가 100살이 되어서도 여전히 지휘를 하고 있기를 바란다. 내가 99살일 때에도 여전히 새로운 발견에 열려 있을 것이며, 어쩌면 지금보다도 더욱 그러할 것이기에.

2018년 1월 29일 월요일

낙동강의 시(詩)

한산신문 및 『Grand Wing』에 실린 칼럼입니다. 한산신문 판본에서 일부 내용이 수정됐습니다.


지난해 봄에 있었던 일입니다. 윤이상 선생이 영화 ‹낙동강›의 음악을 맡았던 모양이니 조사하라는 지시를, 아마도 저희 대표님한테 받았습니다. ‹낙동강›은 1952년 작품으로 영화 자체는 현재 유실되어 스틸 사진 등 일부 자료만 남아있는 모양이더군요. 공교롭게도 현 통영시장님과 이름이 같은 김동진이라는 분이 전반적인 음악 작업을 한 듯했고, 윤이상 선생은 테마 음악을 작곡한 듯한 정황을 알아냈지요.

다시 한 달쯤 지나, 대표님께서 이번에는 빛바랜 악보 하나를 주시며 인쇄용 악보로 옮기라고 지시하셨습니다. 표지에는 ‹Orchestral Suite "Poems of the Nak-tong River"›(관현악 모음곡 "낙동강의 시"), 그 아래에 'Composed by Yoon Ie Sang'(윤이상 작곡)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제목부터 모든 것이 손글씨더군요. 윤이상 선생의 자필 악보가 틀림없어 보였습니다. 존재 자체가 알려지지 않았던 작품이었지요. 가슴이 떨려 왔습니다.

순간 저는 이 악보를 이렇게 다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다른 생각을 떠올렸습니다. 충렬초등학교에서 발견된 윤이상 작곡 교가 악보 원본을 지난 2014년에 기증받았을 때, 그 악보를 전문가에게 맡겨 조심스럽게 사본을 만드느라 예산이 얼마나 들었고 또 어떤 우여곡절이 있었던가 하는 생각이었지요. 윤이상 탄생 100주년을 맞이한 이때, 자필 악보 보존에 최선을 다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을 당장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어졌습니다.

손을 깨끗이 씻고, 손에 남은 물기가 없는지 꼼꼼히 확인한 다음, 악보를 펼쳐 과감하게 복사기에 넣고 한 장씩 복사했습니다. 모든 음표와 작은 지시어 하나까지 잘려나간 곳이나 흐리게 복사된 곳은 없는지 꼼꼼히 확인했습니다. 연필로 썼다 지운 흔적과 새로 쓴 자국이 겹친 곳, 세월이 흘러 흐릿해진 곳 등은 음악적인 맥락을 따져 판단할 수 있겠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복사한 악보를 디지털 스캔해서 따로 보관하고, 종이로 된 사본은 컴퓨터 사보 작업을 맡길 전문가에게 보냈습니다.

그리고 2018년 4월 5일, 수십 년간 잊혔던 이 작품이 통영국제음악제 공식 공연에서 연주됩니다. 한스-크리스티안 오일러(Hans-Christian Euler)가 지휘하는 하노버 체임버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맡습니다. 이날 윤이상 선생의 1989년 작품인 실내교향곡 2번 '자유에의 헌정'(Den Opfern der Freiheit)이 베토벤 삼중협주곡과 함께 연주될 예정이기도 하지요.

‹낙동강의 시(詩)› 자필 악보 목차를 보면 6개 악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1악장 프롤로그, 2악장 黃昏(황혼)이 물들 때, 3악장 嘉俳節(가배절; 한가위), 4악장 갈대밭, 5악장 豐年歌(풍년가), 6악장 에필로그. 영남의 옛 모습을 기억하시는 분께 각별하게 느껴질 듯한 소제목이지요. 그런데 윤이상은 작곡 도중에 간추린 구성으로 바꾼 듯합니다. 1악장 프롤로그, 洛東江(낙동강)의 저녁, 3악장 舞曲(춤곡), 이렇게 3악장으로 되어 있어요. 어쩌면 곡 길이가 너무 길어진다고 생각한 탓일까요?

이 작품의 작곡 시기로 추정되는 1952년경은 전쟁이 한창일 때였지요. 이 무렵에 윤이상 선생은 부산고등학교에서 음악 교사로 지냈습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뒤에 가족과 함께 서울로 가서 약 3년간 생활하게 됩니다. 서울대학교와 덕성여자대학교 등에 출강하는 한편 작곡가로서 활발히 활동하고, 1956년 서울시문화상 수상에 힘입어 유럽으로 유학을 떠납니다. 그리고 다시는 고향 통영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윤이상 공식 작품목록 중 첫 번째 작품은 1958년 베를린에서 작곡해 네덜란드 빌토번에서 초연된 ‹피아노를 위한 다섯 개의 소품›입니다. 그 이전 작품들은 작곡가 스스로 목록에서 삭제했지요. 그런 만큼 윤이상 선생이 한국에서 쓴 작품들은 유학 이후에 작곡한 본격 현대음악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낙동강의 시(詩)›가 듣기에 그리 어렵지 않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낙동강에는 '녹조라떼'라는 불명예스러운 별칭이 따라다닙니다. 환경정책의 대실패를 입증하는 그 이름을 들을 때마다 누구를 원망해야 할지 헷갈리기도 합니다. 잊힌 지 수십 년만에 사실상 세계초연되는 ‹낙동강의 시(詩)›가 어쩌면 사람들에게 그 옛날 맑은 낙동강을 추억하게 하지는 않을까 상상해 봅니다.

2017년 4월 25일 화요일

윤이상 솔로이스츠 베를린

『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입니다.


"이 사람들 독합니다… 독해요… 무슨 연습을 하루 웬종일…"

공연 리허설을 마치기로 했던 시각보다 두 시간이 훌쩍 지났을 때, 그걸 보다 지친 제가 업무용 단체 메시지 창에 쓴 말입니다. '윤이상 솔로이스츠 베를린'은 국제윤이상협회 회원들과 지금은 해체된 '윤이상 앙상블 베를린' 단원들이 모여서 만든 단체입니다. 이번에 새로 만든 악단이라 연습 욕심을 내는 것도 이해는 됩니다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지독하게 연습하는 것을 보고는 혀를 내둘렀지요. 단체 연습이 없을 때에도 혼자서, 또는 둘이서 하루 종일 연습하는 연주자도 있었습니다.

윤이상 솔로이스츠 베를린 단원 중에는 윤이상 선생과 동시대를 살아가면서 윤이상 음악 언어를 익혔던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분들일수록 연습 욕심을 많이 내더군요. 작곡가와 친분을 맺고 교류했던 연주자들이 한 사람씩 사라질수록 그 작곡가가 잊힐 위험이 커지는 것이 특히 20세기 이후 작곡가들의 운명이고, 20세기 중후반에 활동했던 대작곡가들이 조금씩 잊히기 시작하는 요즘 추세에 윤이상 선생도 예외일 수 없지요. 그래서 이분들이 자꾸만 욕심을 냈던 까닭이 이해되기도 합니다.

음악학자 볼프강 슈파러는 윤이상 곡을 연주할 때 필요한 기술적인 문제에 관해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연주자에게 엄청난 기량을 요구한다. 여러 음향층이 때로 동시에 울리며, 연주자들의 상호관계 속에서 그 음향층이 형성되어야 한다. 특히 세부 지시와 장식음들의 차별점 때문에 ‘얼마나’에 관한 정보가 필요하다. 얼마나 크게, 얼마나 세게, 얼마나 빠르게, 얼마나 길고 짧게, 얼마나 극단적인 대비를 사용해 연주해야 할까? 필요한 것은 악보 속의 계층에 관한 이해, 주선율과 부선율, 특별히 여리거나 센 음 덩어리, 능동적이거나 수동적인 음향층, 공격하거나 반응하거나 중립적인 음향층에 관해 전체적으로 조망하면서 소리를 구조화하기이다."

윤이상 음악 언어의 뿌리 중 절반은 베를린/유럽에, 나머지 절반은 통영/한국에 있다는 점을 생각할 때, 통영국제음악재단이 해야 할 일은 독일의 '원류'를 조금이라도 더 한국에 가져오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윤이상 솔로이스츠 베를린을 통영국제음악제에 초청했고, 또 윤이상 음악 언어에 조예가 깊은 리코딩 엔지니어 볼프강 피베크(Wolfgang Vieweg) 선생을 통영에 초청해 공연 실황을 녹음하기도 했습니다.

윤이상 솔로이스츠 베를린이 이번에 통영에서 연주한 곡들은 편성이 제각각이었지요. 볼프강 슈파러 선생이 프로그램을 짰는데, 아마도 편성에 맞는 곡을 편의에 따라 선택하기보다 윤이상 음악의 정수를 보여줄 수 있는 방향에 집중하다 보니 이렇게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런데 연주자들이 한꺼번에 움직이지 않게 되다 보니, 복잡하게 꼬여 있는 편성만큼이나 정해진 시간에 리허설을 할 수 있게끔 하는 일이 만만치 않더군요. 공식 리허설이 없을 때 개인 연습을 하겠다는 연주자까지 헤아리니 복잡도는 더 높았습니다. 지면이 짧으니 자세한 얘기는 생략할게요.

통영국제음악제 얘기를 쓰려다가 윤이상 솔로이스츠 베를린 얘기를 잔뜩 하고 말았네요. 올해 통영국제음악제에서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일들이 있었고, 기상 악화로 취소되는 항공편들 때문에 동료들이 비상 체제로 움직이는 일이 올해에도 있었습니다. 가장 사연이 많았던 공연은 아마도 윤이상 오페라 '류퉁의 꿈'이었을 겁니다. 제가 그 많은 사연을 다 알지는 못하지만, 담당자가 때때로 사무실에서 불을 뿜는(?) 모습을 보았던 기억은 선명합니다.

마지막으로 흥미로운 얘기 두 가지만 할게요. 첼리스트 옌스 페터 마인츠는 종이 악보 대신에 태블릿 컴퓨터를 사용했습니다. 블루투스 페달로 악보를 넘기고, 태블릿 전용 펜으로 메모를 했지요. 지난해 통영국제음악제에 출연했던 카잘스 콰르텟과 같은 기종, 같은 악보 앱을 사용하더군요. 백스테이지에서 우연히 만나 인사를 나눴던 피아니스트 장이브 티보데는 참 유쾌한 사람이었는데, 의외로 한국 음식을 도통 먹지를 못해서 음악당에 있는 레스토랑 '아르테'에 하루 종일 죽치고 있었다고 하네요.

2017년 3월 28일 화요일

윤이상과 한국 전통 (볼프강 슈파러)

통영국제음악제 프로그램북에 실린 글입니다.


아시아 출신 작곡가로서 서양에서 국제적 명성을 얻으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같은 문제를 마주하게 된다. 그들의 작품은 공연장의 여러 여건과 맞아야 할 뿐 아니라 자신만의 고유한 양식을 되도록 명확하게 보여 주어야만 한다.

한편, 소리에 대한 인식과 음악적 사고가 서양과는 반대인 전통문화권 출신 작곡가가 필연적으로 마주해야 하는 질문은 제 나라의 문화적 전통을 수용함으로써 자신의 음악 색깔과 내용을 살찌울 것인가, 아니면 일부러 그러한 담론을 무시할 것인가이다. 개인적인 차원을 떠나, 심지어 아시아 작곡가 연맹(ACL) 같은 모임에서도 아시아 사람의 정체성을 음악에서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서구적'이라는 말과 반대되는 뜻으로서 '아시아적'이라는 말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와 같은 질문이 끝없이 제기되곤 했다. '아시아 음악'에 관한 주장은 아직도 여전히 논쟁거리이며, 적지 않은 작곡가가 그러한 어법을 되도록 피하곤 한다.

일본에서부터, 또한 다케미쓰 도루의 영향으로, 1960년대 중반 이후 작곡가들이 현대적이고 서구지향적이면서도 제 나라 전통 악기를 사용함으로써 민족적이거나 아시아적인 작품을 쓰는 일이 잦아졌다.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전통음악적 요소나 '민족적' 또는 '아시아적' 색채를 수용해야 할 필요는 없다. 이를테면 1958년생인 구본우는 가야금과 현악삼중주를 위한 '원근'(1998)에서 결과적으로 미니멀리즘적인 음향 패턴을 사용했다.

윤이상은 1960년대 독일에서 아시아 작곡가 최초로 (그리고 가장 중요한) 국제적 명성을 얻었지만, 그는 전통악기를 위한 곡을 쓰지 않고 서양악기만으로 작곡했다.¹⁾ 그런데도 그가 유럽에서 작곡한 곡들은 명백히 한국적이다. 윤이상 작곡 기법에서 다른 작곡가, 특히 아시아 작곡가의 영향을 찾을 수 있는지를 이 글에서 묻는 일은 적절하지 않다. 또 한국 전통음악이 어떻게 윤이상 음악 양식의 일부가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일도 적절하지 않다. 이 글에서는 그 대신 한국 전통음악과 윤이상 작품과의 관계를 조명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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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부 타악기는 예외이며, 이를테면 '예악'(1966) 등의 관현악곡에서 나무 채의 일종인 박(拍)이 사용되었고, '나모'(1971)에서 좌고가 사용되었다.

한국 전통음악과 동아시아/한국 문화가 윤이상 작품에 끼친 영향은 다양한 수준에서 나타난다:

  1. 길게 이어지는 주요음(Hauptton). 붓글씨를 닮은 기보법 자체가 이미 동아시아 미학을 표현한 것이며, 서양 기보법으로 표현한 주요음은 양(陽)의 획(劃)과 맞아떨어진다.

  2. 장식음, 이웃음, 즉 음(陰), 또 상행과 하행, 멜리스마, 용 모양과 다른 꼬리 모양 등이 주요음, 즉 양(陽)과 더불어 형성되는 음악적 제스처. 윤이상이 마치 화수분에서 무한히 뽑아 쓰듯 했던 장식음은 한국 전통음악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윤이상의 기보법과 음향적 상상력에 따라 고유한 변화와 개성, 특징적 억양을 갖게 된다.

  3. 윤이상은 특정 악기의 개성을 재창조한다. 이때 그는 한국 전통 악기를 대신하는 서양 오케스트라 악기를 찾았다(대금-플루트, 피리-오보에, 해금-바이올린, 가야금-첼로 등).

  4. 윤이상은 화성과 선율을 만들 때 (특히 후기에 남긴 교향곡들에서) 한국의 온음으로 된 5음음계를 분명히 의식했다

  5. 윤이상 작품에서 한국적/동아시아적 연관성은 음양의 대비로 뚜렷이 나타난다. 윤이상 미학의 바탕은 그의 도교적 · 불교적 태도에서 찾을 수 있으며, 이를테면 '정중동'이라는 도교적 원리와 제행무상이라는 불교적 원리가 그것이다.

  6. 윤이상은 때로 특정 음악 형식을 사용하기도 했는데, 그 예로는 가사(歌詞)나 무악(舞樂) 등 한국 고전 예술형식과 현악사중주, 협주곡, 교향곡 등 유럽 음악 장르가 두루 있다.

  7. 윤이상의 많은 작품에서 한국적 요소가 겉으로 드러나지만, 모든 작품이 그렇지는 않다. 한국적 요소는 한국적 제목, 한국적 주제, 표제, 작품에 드러나는 휴머니즘적 견해 등에서 찾을 수 있다.

  8. 윤이상의 삶은 한국 근대사와 밀접한 관계이며, 이것이 또한 그의 작품에 반영되어 있다.

윤이상의 많은 작품이 한국 및 한국 정권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특히 윤이상이 서울의 감옥에서 쓴 두 곡은 그의 결백을 드러낸다. 클라리넷과 피아노를 위한 '율'(1968)과 플루트 오보에, 바이올린, 첼로를 위한 '영상'(1968)이 그것이다. 윤이상에 따르면, '율'(律)은 법률을 뜻하기도 하고 음률을 뜻하기도 한다. '영상'은 윤이상이 1963년 북한에서 보았던 '도교적인' 벽화(강서고분벽화 중 사신도 - 옮긴이 주)를 참고해 쓴 작품이다. (이때 북한에 갔던 일이 한국 정부로서는 윤이상을 법정에 세울 이유로 충분했던 모양이다.)

그가 기소 및 수감됨으로써 생긴 트라우마가 몇몇 작품의 창작 동기가 되었는데, 이를테면 자전적 작품인 첼로 협주곡(1975/76)과 솔로 칸타타 '밤이여 나뉘어라'가 있다.

한국 독재정권에 대한 저항으로 윤이상은 '광주여 영원히'(1981)를 썼으며, 이것은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을 잔인하게 진압한 일에 대한 작곡가의 반응이다. '나의 땅 나의 민족이여'에서 윤이상은 분단된 조국의 통일을 호소한다. 이 오라토리오는 남한의 시인들과 민주화 운동가들의 글을 가사로 하지만, 평양에서 초연되었고 남한에서는 오랫동안 연주가 금지되었다. 소프라노, 여성합창과 다섯 악기를 위한 '화염 속의 천사 - 에필로그'는 1991년 사회적 고통과 억압과 폭력에 저항하며 분신했던 남한의 젊은이들을 위한 레퀴엠이다. 윤이상이 '에필로그'를 자신을 위한 레퀴엠으로도 썼던 일은 우연이 아니다.

"나는 서양음악을 배우고자 애썼습니다. 그러나 내가 사실 동양에서 태어났음을 나는 되새겨야 했습니다. 그제야 나는 동양인의 자아를 서양음악 어법으로 표현하는 법을 익힐 수 있었습니다."

아시아인으로서 윤이상은 먼저 외국 문화를 꿰고 유럽에서 또는 독일에서 자리를 잡아야 했다. 그 이후 윤이상은 동서양 음악 양식을 '현대음악' 또는 '아방가르드'의 일부로 의미 있게 녹여낼 수 있었고, 이것이 오늘날까지 가치를 인정받는다. 그보다 더 주목할 만한 것은 윤이상의 삶이 이룬 화합의 성과이다.


이 글은 다음 글에서 발췌한 내용을 포함한다: Walter-Wolfgang Sparrer: Isang Yun und koreanische Tradition, Ssi-ol. Almanach 1998/99, published by the Intl. Isang Yun Society, Berlin (1999).

글: 발터-볼프강 슈파러 (Walter-Wolfgang Sparrer)
옮김: 김원철

2017년 3월 10일 금요일

윤이상: 첼로 에튀드 (1993-94) – 제1곡, 제2곡, 제5곡

통영국제음악제 프로그램북에 사용할 글입니다.


윤이상은 1993년에서 1994년에 걸쳐 첼로 에튀드를 작곡했다. 첼리스트 발터 그리머는 본디 두 번째 첼로 협주곡을 의뢰했지만, 윤이상은 건강이 좋지 않아 거절하고 그 대신에 7곡짜리 에튀드를 썼다고 한다. 이 작품은 발터 그리머에게 헌정되었고, 1995년에 이 작품이 초연되고서 약 두 달 뒤 윤이상은 타계했다.

제1곡 '레가토'는 C♯에서 A로 상행하는 단6도 음정으로 시작한다. 1곡에서는 윤이상 음악 양식의 전형적인 특징이 드러나지 않으며, 그 대신 6도 음정이 에튀드 전곡을 발현하는 씨앗으로서 단순하게 정제된 음악 어법으로 제시된다. 음악학자 볼프강 슈파러에 따르면, 윤이상은 이 곡에서 '레가토'의 의미를 "조용하고 우아하게"라고 말했다.

제2곡부터 제7곡까지는 1곡에서 제시된 '화두'를 조금씩 다른 시각에서 풀어나간다. 제1곡과 더불어 오늘 연주될 제2곡, 제5곡은 윤이상의 전형적인 음악 양식이 그다지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 편이며, 따라서 윤이상 음악 어법을 잘 모르는 사람도 감상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제6곡이나 제7곡처럼 연주자에게 무시무시한 테크닉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2017년 3월 8일 수요일

호소카와: 말 없는 꽃들 (Silent Flowers)

이 작품은 1998년 4월에서 8월 사이에 작곡되었다. 도나우싱엔 음악제의 위촉을 받았고, 아르디티 콰르텟에게 헌정되었다.

'말 없는 꽃들'이라는 제목은 일본 전통 예술에서 따왔다. 첫 번째는 '이케바나'라는 일본 전통 꽃꽂이다. 이케바나를 위해 꽃은 실내 꽃꽂이용으로 잘린다. 잘린 까닭에 꽃은 오랫동안 피어있지 못하고, 그렇게 죽음을 붙잡아 배경으로 삼는다. 꽃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죽는다.

서양 예술이 시간의 흐름에 대항하며 '내면성'을 창조하려 노력해 왔다면, 이케바나 꽃은 시간과 함께 죽는 아름다움, 짧은 삶의 서러움, 개화의 섬세함과 아름다움, 무(無)에서 왔다가 무로 돌아감을 담아낸다.

소리 또한 고요에서 왔다가 돌아간다. 나는 새로 태어나 매우 짧은 삶을 사는 소리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했다. 시간을 견디거나 거스르게끔 건축된 소리가 아니라 일시적으로 지나가는 소리를 표현하는 음악도 있어야 한다. 나는 일본 철학자 니시타니 켄지가 이케바나에 관해 쓴 글을 읽고 이런 아이디어를 얻었다.

두 번째로는 노(能)라는 무대예술을 만든 제아미 모토키요가 쓴 책 『가덴쇼』(花伝書)에서 영감을 얻었다. 노(能) 연기자에게 최고의 찬사는 꽃을 닮았다는 말이다. 제아미는 노를 익히는 연기자의 수준에 따라 꽃 이름을 달리 붙였다. 노 공연에서 음악은 힘차고 활기 있는 연주와 더불어 마치 수직적인 소리가 시간 자체를 잘라내듯 움직인다. 여기서 고요는 매우 중요한 요인이며, 소리는 마치 꽃이 고요 속에 개화하듯 존재한다. 그것은 진공 속에서 피어나는 꽃이다. 좋은 공연에서 노 연기자는 어둠 속에서 꽃이 피어나는 것처럼 보인다.

나의 세 번째 현악사중주곡 "말 없는 꽃들"은 일본 전통 예술의 시공간에 관한 이러한 생각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한편, 나는 안톤 베베른의 《6개의 바가텔》과 루이지 노노의 《디오티마의 고요한 파편》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나는 예술적 토양이 다른 두 세계에서 창작된 음악의 세세한 차이를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두 예술 형식의 뿌리에서는 찾을 수 없는 공통 요인을 드러내고자 했다. 나는 베베른이나 노노의 소리에서 고요의 화원에서 피어나는 꽃을 듣는다.

내 음악은 텅 빈 시공간에 쓴 붓글씨다. 그 음악을 이루는 소리는 붓글씨의 획 또는 점 모양을 한다. 그 획들은 고요의 종이에 그은 것이다. 종이의 여백은 획이나 점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 작품의 양식은 노(能) 공연에서 완급 조절을 뜻하는 '조하큐'(序破急)를 바탕으로 한다.

글: 호소카와 도시오
옮김: 김원철

2017년 3월 7일 화요일

탄둔: 여덟 가지 빛깔 (Eight Colors)

현악사중주를 위한 '여덟 가지 빛깔'은 내가 1986년 뉴욕에 와서 쓴 첫 작품이다. 어둡고 제의적인 노래, 극적인 구조, 음색과 셈여림에 집중했다는 점에서 이 곡은 나의 이전 작품, 이를테면 (오케스트라, 성악, 베이스클라리넷과 콘트라바순을 위한) 《도교에 관하여》(On Taoism)와 비슷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매우 다르다. 《멀리서》(In Distance) 및 《실크로드》와 더불어, 이 작품은 서양의 농축되고 서정적인 무조음악 어법을 내가 처음으로 접했던 시기를 대표한다. 나는 반복하는 법을 배웠고, 한편으로는 제2 빈 악파를 따르는 대신 내가 속한 문화에서 나온 내 방식으로 반응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익숙한 중국 색채와 경극 테크닉에 이끌렸다. 이 작품은 매우 짧은 여덟 부분으로 되어 있고, 마치 같은 소재를 달리 발전시켜 그린 수묵화 연작을 닮았다. 서로 연관된 제목 여덟 개가 각각의 주제를 묘사하고, 일종의 제례 구조로 극(drama)을 형성한다. 나는 음색뿐 아니라 현악기 테크닉 또한 경극에서 가져왔고, 여성 배우의 발성과 불교적인 창(唱)을 도입했다. 이 작품의 어떤 대목에는 무조적인 음 조직의 그림자가 남아 있지만, 나는 내 문화에서 온 옛 소재를 새 소재와 섞음으로써 서양의 무조성 아이디어에 무언가 이바지하고 새롭게 하는 법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후기 무조음악에서 나는 음악이 아닌 것이 되어버리기 너무 쉽다는 위험성을 발견했다. 나는 내 문화에 열려 있고, 나 자신에게 열려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법을 찾고자 했다.

글: 탄둔
옮김: 김원철

2017년 3월 6일 월요일

다케미쓰: 한 길 한 외로운 (A Way A Lone)

태어난 지역도 다르고 예술적 영역도 다르지만, 작가 제임스 조이스와 작곡가 다케미쓰 도루 사이에는 의외로 부정할 수 없는 유사성이 있다. 두 사람 다 선형적으로 발전하는 관습적 틀 안에서 창작했으며, 이를테면 낱말이나 음표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고, 위에서 아래로 읽고, 시간 순서에 따라 배열되고 지각된다. 또한 조이스와 다케미쓰는 모두 그러한 선형성에 저항하는 방식으로 창작했다. 조이스 소설은 삐딱하고 일그러진 서사 궤적과 시간적 연속성의 비틀림으로 유명하고, 다케미쓰 작품은 일본식 정원에서 눈이나 몸을 자유롭고 구불구불하게 이동하면서 세심하게 배열된 물건과 공간을 둘러보는 방식에 비교되곤 한다. 사실은 다케미쓰 스스로 조이스와의 유사성을 드러낸 바 있는데, 그의 몇몇 작품은 조이스의 수수께끼 같은 명작 『피네간의 경야』(Finnegans Wake)에서 소재를 따왔거나 영감을 받았다.

'한 길 한 외로운'(A Way a Lone)이 그런 작품으로, 결성 10주년을 맞은 도쿄 현악사중주단의 위촉으로 1980년에 작곡되었다. 작곡가는 문학사를 통틀어 가장 독특하고 흥미로운 글귀 중 하나인 『피네간의 경야』 마지막 문장에서 제목을 따왔다. "열쇠. 주어버린 채! 한 길 한 외로운 한 마지막 한 사랑 받는 한 기다란 그"(김종건 옮김. 원문: The keys to. Given! A way a lone a last a loved a long the). 완결되지 않은 문장과 분절된 낱말들이 주는 아득하고 불안정한 느낌은 다케미쓰 현악사중주의 느슨하게 스러져가는 구조에 반영되어 있다. 어슬렁거리는 화성과 과장된 몸짓 사이에는 멈춤에 의한 공백과 계산된 얼룩이 있다. 독주 바이올린이 한순간 랩소디 풍 선율로 놀아나다가도 다음 순간 경악한 숨을 들이켜고, 초현실적으로 높은 하모닉스 음으로 둥둥 떠다니거나 글리산도와 포르타멘토로 흐느적거리며 멜로드라마처럼 너스레를 떤다. 대위법적 역량과 색채 감각이 역동적으로 혼합되어 각도가 다양한 선과 얽히고설킨 패턴과 상상을 벗어난 색채가 뒤섞인 현란한 텍스처로 나타난다. 조이스의 낱말들이 소용돌이쳐 흘러 순수한 음향적 오브제로 변하며 음악에 가까워지는 것처럼, 다케미쓰의 음악 또한 그렇게 자연스럽게 펼쳐지며 초현실적인 대화로 변한다.

이 곡의 음악적 표면에서 『피네간의 경야』와의 일반적인 유사성을 읽어내는 일은 어렵지 않지만, 작곡가는 좀 더 기술적인 수준에서 조이스의 영향을 드러낸다. 음 소재 가운데 다수는 단2도 상행과 완전4도 도약으로 된 3음 음형을 바탕으로 구성되며, 다케미쓰는 이것을 "SEA 음정"이라 부른다. 여기서 다케미쓰는 음악 외적인 것을 교묘하게 음표로 바꾼다: 독일식 음이름으로 E♭은 "Es" 또는 그냥 "S"로 표현되고, 다케미쓰의 E♭에서 반음 높은 음은 E이며 그보다 4도 높은 음은 A이다. 다케미쓰가 널리 사용한 3음 음형은 따라서 음이름으로 "SEA"가 된다.

글: 제레미 그림쇼
옮김: 김원철

2017년 2월 26일 일요일

윤이상: 현악사중주 3번 & 현악사중주 4번

통영국제음악제 프로그램북에 사용할 글입니다.

윤이상: 현악사중주 3번

윤이상은 베를린 유학 시절인 1959년 졸업 작품으로 현악사중주를 위한 느린 악장을 썼다. 시험이 끝난 뒤에 두 개 악장을 더 작곡해 ISCM 세계현대음악제에 출품했고, 입선 후 초연을 준비하던 중 느린 2악장을 회수해 1악장과 3악장만을 초연했다. 윤이상은 졸업시험을 심사할 교수들의 보수성을 고려해 작곡했던 2악장이 결국 너무 관습적이라 생각했고, 1961년에 이것을 완전히 새로 쓴 다음 1악장과 3악장을 조금 고쳐서 1962년에 초판 악보를 출판했다.

이렇게 탄생한 현악사중주 3번은 윤이상 초기 작품답게 12음 기법을 적극적으로, 그러나 엄격하지 않게 사용한 곡이다. 윤이상은 부분 속에 전체가 있고 전체 속에 부분이 있다는 동양적인 사고방식에 따라 12음 기법을 받아들였다고 하며, 이 작품에서 때로 동양적인 울림이 느껴지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이 작품을 이루는 개별 음은 특히 3악장에서 초기적인 방식으로나마 동아시아 음악의 생동 원리에 따라 살아 움직이고, 그에 따라 나타나는 살아있는 음향층은 후기 작품들을 예견하게 한다.

윤이상: 현악사중주 4번

윤이상은 현악사중주 3번을 쓰던 때로부터 거의 30년이 지나서 현악사중주 4번을 작곡했다. 윤이상은 그동안 작곡가로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고, 이른바 '동베를린' 사건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이르는 경험을 했고, 조국의 민주화를 독일에서 지켜보았으며, 더 한국적인 울림을 담아내는 방향으로 자신의 음악 양식을 변화시키고 있었다. 그렇게 70대에 접어든 작곡가가 평생을 일구어 온 음악 언어의 정수가 이 작품에 녹아 있다.

이 작품은 2개 악장으로 되어 있는데, 작곡가는 1악장이 "길고 현재적인, 일종의 인생사"를 그린 것이라면 그와 대조되는 2악장은 "매우 인간적인" 악장이라 했다. 음악으로 해탈을 추구해 온 윤이상의 다른 작품과 연속선상에서 이 작품을 해석한다면, 1악장과 2악장은 각각 외부 세계의 갈등과 내면세계의 번민을 다루고 있다고 이해할 수도 있겠다.

1악장과 2악장은 모두 개별 음이 고정된 유럽적인 텍스처로 시작한다. 그리고 음악이 흐를수록 음들은 한국적인 생명력을 얻어 살아 움직이고, 더 높은 곳에 이르려 애쓴다. 1악장에서 그 음들은 특히 고음부와 저음부가 이질적인 음형으로 갈등하던 끝에 상생을 추구하고, 2악장에서는 동질적인 몸짓을 보이는 음들이 번민을 이겨내고자 노력한다.

음악학자 볼프강 슈파러가 "짧은 재현부 같은 에필로그"라 표현한 마지막 부분에서는 음들이 마침내 '정상'에 올라 평화를 찾은 듯 보인다. 그에 바로 앞서 제1 바이올린은 작곡가가 해탈을 상징하는 음으로 즐겨 사용하던 '라'(A) 음에 이르고, 강렬한 트릴로 소리친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다다른 곳이 진정한 도(道)의 세계일까?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2017년 2월 25일 토요일

윤이상: 클라리넷 협주곡

통영국제음악제 프로그램북에 사용할 글입니다.

윤이상은 1981년에 《광주여 영원히》, 바이올린 협주곡 1번 등 무겁고 격렬한 감정과 음악 외적인 메시지를 담은 작품을 잇달아 썼다. 같은 해에 작곡된 클라리넷 협주곡은 예외적인데, 윤이상은 이와 관련해 "작곡가에게 때로는 그런 정신상태도 필요하기 때문"이라 했다.

다만, 이 작품에서도 음악 외적인 요소를 찾을 수는 있다. 독주 클라리넷의 '몸짓'은 윤이상의 다른 작품에서 도(道)의 세계를 갈구하는 모습과 비슷하고, '미'(E) 음에서 시작해 '라'(A) 음으로 상승하려는 클라리넷의 움직임에서 그것이 두드러진다.

이 작품은 동動-정靜-동動 세 부분으로 된 단악장 짜임새이며, 독주 클라리넷이 '라'에 근접했다가 실패를 경험한 뒤에 내면으로 침잠하고, 다시 시도한 끝에 목표한 음에 이르는 과정이 그러한 짜임새와 맞아떨어진다. 명상적인 중간 부분에서는 독주 악기가 베이스클라리넷으로 바뀌었다가 세 번째 부분에서 다시 클라리넷으로 돌아온다.

세 번째 부분에서 독주 클라리넷이 마지막 '독백'에 이어 끝내 '라' 음에 이르는 모습은 통쾌하다. 클라리넷은 마지막 순간 '미' 음에서 빠른 음형으로 순식간에 세 옥타브를 솟구쳐 올라 '라'에 이르고, 짧게 숨을 들이켜면서 단6도 낮은 '도♯' 음으로 매우 여리게 다시 시작했다가 단숨에 '라'로 뛰어올라 어마어마한 크레셴도로 '승리'를 선언한다.

이 곡은 당대 최고의 클라리네티스트였던 에두아르트 브루너가 윤이상에게 개인적으로 위촉한 작품이다. 윤이상은 협연자가 극한의 기교를 자랑할 수 있도록 작곡했으며, 그래서 이 곡이 연주될 때마다 관객은 작품 자체보다 협연자의 테크닉에 먼저 환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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