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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18일 월요일

해설: 레스피기 《로마의 소나무》, 보로딘 《이고르 공》 중 ‘폴로베츠인의 춤’ 등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웹매거진에 실린 글입니다: http://g-phil.kr/?p=978


보로딘 《이고르 공》 중 ‘폴로베츠인의 춤’은 지난해 3월 24일 의왕시 서울소년원에서 있었던 구자범 지휘자 취임 후 첫 음악회에서 연주했던 곡입니다. 오페라 《이고르 공》은 외국에 잡혀 온 임금님 이야기입니다. 이고르 공이 이끄는 러시아 군대가 튀르크계 민족인 폴로베츠인과 전쟁을 하는데, 이고르 공이 크게 지고 포로로 사로잡히고 말아요. 그런데 폴로베츠의 '칸'은 이고르 공이 적장인데도 손님 대접을 하고 잔치를 열어서 위로해 주지요. ‘폴로베츠인의 춤’은 이때 나오는 음악입니다. 화려한 춤이 멋진 장면이고, 음악도 그만큼 화려합니다.

레스피기 《로마의 소나무》는 지난해 6월 24~25일 수원과 고양에서 있었던 정기공연 때 연주한 곡입니다. 이날 경기필은 《로마의 축제》, 《로마의 분수》와 더불어 '로마 3부작'을 국내 최초로 한자리에서 연주했지요. 《로마의 소나무》는 로마 시대 모습을 담은 곡으로, 소나무의 '눈'으로 바라본 로마라고 할 수 있습니다. 4개 악장으로 되어 있는데요, 레스피기는 각 악장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① 보르게제 저택의 소나무 (I pini di Villa Borghese) : 보르게제 저택에 있는 소나무 숲에서 아이들이 뛰논다. 둥글게 돌면서 춤추고, 병정놀이하며 행진하고, 싸우고, 저녁 제비처럼 흥분해 소리치고, 떼 지어 돌아다닌다.

② 카타콤 부근의 소나무 (Pini presso una catacomba) : 소나무 그림자가 카타콤 입구에 드리운다. 깊은 곳에서 시편을 노래하는 구슬픈 소리가 솟아올라 장엄한 찬가처럼 공기 중에 떠다니다가 조금씩 신비롭게 사그라진다.

③ 쟈니콜로의 소나무 (I pini del Gianicolo) : 공기가 떨린다. 쟈니콜로에 소나무가 보름달 밝은 빛을 받고 서 있다. 나이팅게일이 노래한다.

④ 아피아 가도의 소나무 (I pini della Via Appia) : 어스름한 동틀 무렵 아피아 가도. 소나무 한 그루가 마법의 풍경을 지켜본다. 어렴풋하고 끊임없는 발소리. 시인인 소나무는 지나간 영광의 환상을 본다. 트럼펫 소리가 들리고, 새로 뜬 태양의 눈부심 속에서 집정관의 군대가 나타나 '신성한 길'(Via Sacra)을 따라 신전으로 개선행진을 한다.

바그너 《파르지팔》 1막 간주곡과 《로엔그린》 3막 전주곡은 올해 5월 8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있었던 정기공연 때 연주한 곡입니다. 《파르지팔》과 《로엔그린》은 성배 수호 기사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파르지팔》은 주인공 파르지팔이 성창(롱기누스의 창)을 찾아 나서면서 깨달음을 얻는 내용입니다. "자비심으로 깨달으리라, 순수한 바보여"라는 계시와 더불어 깨달음에 대한 철학적인 생각이 담긴 작품이지요. 이번에 경기필이 연주할 1막 간주곡은 파르지팔과 성배 기사 구르네만츠가 성배 의식에 참석하고자 몬살바트 성으로 이동하는 장면에 나오는 음악이며, '장면전환 음악'이라고도 합니다. "이곳에서 시간은 공간으로 변한다"라는 수수께끼 같은 대사에 이어지는 신비로운 음악이지요.

《로엔그린》은 《파르지팔》 이후에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로엔그린은 파르지팔의 뒤를 이어 성배 수호 기사들을 이끌게 되는데, 바그너 오페라 《로엔그린》은 로엔그린이 몬살바트 성을 떠나 활동하는 이야기입니다. 로엔그린은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쓴 '엘자'를 대신에 결투에 나섰다가 엘자와 결혼하지요. 3막 전주곡은 결혼식 장면을 이끄는 화려한 음악입니다.

말러 교향곡 3번은 올해 3월 17일 수원에서 있었던 정기공연 때 연주한 곡입니다. 말러는 교향곡 3번에 세계를 담고자 했고, 바위(1악장), 꽃(2악장), 동물(3악장), 사람(4악장), 천사(5악장), 사랑(6악장)의 관점에서 보는 세계를 에피소드처럼 들려주는 짜임새로 작품을 썼습니다. 이번에 경기필이 연주할 6악장에는 '사랑이 내게 이야기하는 것'이라는 표제가 붙어 있는데, 고통으로 가득한 세계를 사랑의 관점에서 보는 음악입니다. 6악장이 말러가 보고 싶어한 세계이고, 사랑의 관점에서 세계를 바라보면 우리는 모두 하나입니다.

2012년 4월 19일 목요일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합창과 함께하는
바그너 갈라 콘서트》 (지휘: 구자범)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합창과 함께하는 바그너 갈라 콘서트》

  • 2012년 5월 8일 화요일 / 오후 8시
  •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 초등학생 이상 입장가 (고등학생 이상 관람 권장)
  • 입장권: A석 3만원 / B석 2만원

프로그램

  •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Die Meistersinger von Nürnberg)
    • 1막 전주곡
    • 1막 1장: 성당 미사 장면
    • 3막 피날레: 발터가 노래경연에서 우승하고 작스가 독일 예술을 찬양함
  • 《로엔그린》 (Lohengrin)
    • 3막 전주곡과 결혼식 합창
    • 3막 간주곡: 사열식 나팔
    • 1막 3장: 결투에서 승리한 로엔그린
  • 《파르지팔》 (Parsifal)
    • 1막 전주곡
    • 1막 간주곡: 성배기사들이 몬살바트로 가서 의식을 진행함
    • 3막 피날레: 파르지팔이 일으킨 기적을 사람들이 찬양함
  • 《탄호이저》 (Tannhäuser)
    • 2막 입당행진곡: 기사들과 귀부인들이 노래의 전당에 입장함
    • 3막 전주곡: 순례자 행렬을 기다리는 엘리자베트
    • 3막 순례자의 합창과 피날레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예술감독: 구자범)는 《합창과 함께하는 바그너 갈라 콘서트》를 5월 8일 화요일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개최한다.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이번에 연주할 곡들은 《탄호이저》(Tannhäuser), 《로엔그린》(Lohengrin), 《뉘른베르크의 명가수》(Die Meistersinger von Nürnberg), 《파르지팔》(Parsifal)에서 발췌한 합창과 관현악곡이다. 약 200명에 이르는 대규모 합창단이 이번 공연에 동원되며, 경기필은 단순히 인원수를 늘려 규모만 키운 합창단이 아닌 프로 합창단만을 섭외하여 예술적 완성도를 높일 예정이다. 합창은 보통 '소프라노-알토-테너-베이스'로 이루어지는 4성부가 표준이지만, 바그너 합창 음악에서는 많게는 20성부 안팎으로 확장되기도 한다. 대규모 합창단이 필요한 까닭이 여기에 있고, 그에 따라 매우 커지는 음량에 맞는 대규모 오케스트라가 필요하기도 하다. 바그너는 금관악기 여러 대를 효과적으로 쓰는 능력이 뛰어난 작곡가이며, 그에 따른 고양감은 어지간한 교향곡을 압도한다. 바그너 작품 가운데 가장 멋진 대목을 모은 이번 공연은 바그너 음악의 진수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구자범 지휘자가 취임한 뒤로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그동안 국내에서 자주 연주되지 못했던 명곡들을 소개하는 일을 중요한 과제로 삼고 있다. 바그너 또한 서양음악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나 외국에서 공연되는 빈도에 견주어 국내에서는 그다지 자주 무대에 오르지 못하는 작곡가이다. 《탄호이저》 서곡 등 귀에 쏙 들어오는 관현악 발췌곡에 이끌려 바그너 음악에 관심을 두는 애호가는 제법 많지만, 이런 이들도 가사가 나오는 대목을 들어보고는 언어 장벽과 낯선 음악 양식에 적응하지 못하고 흥미를 잃곤 한다.

그런데 바그너 오페라에 나오는 합창이 바그너에 익숙지 않은 사람이 듣기에도 매우 좋다는 사실은 그다지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바그너 발췌 음반은 대부분 관현악 위주이며, 전막 연주가 아닌 발췌 연주를 하면서 대규모 합창단을 섭외하기 쉽지 않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번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회는 공연장에서 쉽게 만날 수 없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바그너 합창 음악에서 나타나는 중요한 특징으로 제의(祭儀; 제사 의식)적 성격을 꼽을 수 있다. 바그너 작품은 그 자체가 제의적이기도 하지만, 작품 속의 제의 장면은 감상자에게 특별한 영적 고양감을 일으키곤 한다. 『게르만 신화·바그너·히틀러』를 쓴 안인희는 "우리는 누구나 마음속에 제의를 향한 원형적(原型的) 갈망을 감추고 있다. 시간이 흘러도 결혼식, 장례식, 졸업식 등의 의식(儀式)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 장엄한 무대 연출을 통해 등장하는 제의적인 몸짓은 마치 원시 시대 종교 의식과 같이 예리하게 우리의 의식(意識)을 사로잡는다"라고도 했다.

바그너 합창 음악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곡은 결혼식장에서 자주 연주되는 이른바 '결혼 행진곡'이다. 너무나 유명하면서도 작곡가가 바그너라는 사실은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이 곡은 본디 《로엔그린》 3막 전주곡에 이어지는 오르간 반주가 있는 합창이다. 이 곡은 원곡 그대로 연주했을 때 훨씬 큰 감동을 느낄 수 있으며,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다른 곡과 더불어 관객에게 큰 감동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된다.

지휘 : 구자범

연세대학교 철학과 졸업 후 동 대학원 철학과 재학 중 도독
독일 만하임 음대 대학원 지휘과 졸업
독일 하겐 시립 오페라 극장, 다름슈타트 국립 오페라 극장 지휘자
하노버 국립 오페라 극장 수석 지휘자
광주 시립교향악단 지휘자
현,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자

합창단 : 수원시립합창단, 안양시립합창단, 의정부시립합창단, 인천오페라합창단, 그란데오페라합창단

― 티켓 예매 ―

예술의 전당 SACTicket
http://www.sacticket.co.kr/home/play/play_view.jsp?seq=12176

인터파크
http://ticket.interpark.com/Ticket/Goods/GoodsInfo.asp?GoodsCode=S0001888

예스24
http://ticket.yes24.com/Home/Perf/PerfDetailInfo.aspx?IdPerf=11960

옥션티켓
http://ticket.auction.co.kr/Home/Perf/PerfDetailInfo.aspx?IdPerf=15320

2012년 3월 16일 금요일

말러 교향곡 3번, 세계를 바라보는 여러 에피소드

※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웹매거진과 프로그램북에 실린 글입니다.


1896년 7월 17일, 교향곡 3번을 쓰던 말러에게 지휘자 브루노 발터가 찾아왔습니다. 슈타인바흐에 있던 집 주위에는 산과 호수가 있었는데, 경치를 구경하던 발터에게 말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그건 볼 필요 없어. 내 음악 속에 모두 담았거든."

이 말을 그저 허세 섞인 농담이라고만 여길 수는 없습니다. 말러는 실제로 교향곡 3번에 세계를 담고자 했고, '교향곡(Symphony)'이 가리키는 전통적인 의미를 해체하여 '함께'(Sym―) '울린다'(―phonos)라는 말뿌리만을 받아들였지요. 말러는 이런 말도 했습니다. "이 곡은 전통에 전혀 맞지 않기에 교향곡이라 부르는 일은 알맞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에게 교향곡이란 모든 기술적인 수단을 써서 세계를 이루는 것을 뜻한다."

1악장을 분석해 보면 전통적인 소나타 형식에 도무지 맞지 않는 짜임새 때문에 당황하게 됩니다. 도대체 어디까지가 제시부이고, 어디까지가 발전부일까요? 학자마다 제각각인 분석 내용을 이 글에서 굳이 인용하지는 않겠습니다. 감상자는 그저 음악에 담긴 세계를 듣고 느끼면 됩니다. 문제는 음악이 몹시 복잡하다는 것인데요. 세상이 본디 복잡하기는 하지만, 그 세상을 담은 음악은 상상력을 조금 보태면 더 쉽게 들을 수 있습니다.

1악장에는 "목신 판(Pan)이 깨어나고, 여름이 행진해온다"라는 표제가 붙어 있습니다. 말러는 자필악보 곳곳에 "선전포고!" "전령!" "폭도!" "전투 개시!" 등 전투와 관련된 말을 썼다가 출판하면서 지우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목신 판(Pan)이 군대를 이끌고 겨울을 물리친다는 이야기가 1악장에 들어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호른이 연주하는 도입 주제나 한참 지나서 나오는 행진곡 대목 등이 이런 설명과 어울립니다.

말러는 처음에 "바위산이 내게 말하는 것"이라는 표제를 붙였다가 없애기도 했는데, 이렇게 보면 이어지는 악장과 더불어 창세기에 나오는 천지창조 순서와 맞아떨어지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말러 스스로 1악장을 "생명과 영혼이 없는 무시무시한 단계"라고도 했습니다. 구자범 지휘자 선생님은 천지창조와는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세요. 다만 세계를 날것 그대로 보여주는 음악이지요. "바위산이 내게 말하는 것"이라는 말은 바위산이 바라보는 세계라 할 수 있겠고요. 바위산이 보기에 세상은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은 듯해요. 이를테면, 호른 도입부에 이어 나오는 음악은 장송행진곡입니다.

여기까지가 1부입니다. 2부에서는 꽃(2악장), 동물(3악장), 사람(4악장), 천사(5악장), 사랑(6악장)이 바라보는 세계를 에피소드처럼 들려줍니다. 들판의 꽃들이 바라보는 세계도 그리 평화롭지 않아요. 중간에 폭풍이 몰아치기도 하거든요. 숲 속 동물들은 (말러가 한 말처럼) 사람을 두려워합니다. 사람이 보는 세계에는 아주 심각한 노랫말이 있고요.

4악장 '인류가 내게 이야기하는 것'은 니체가 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가사를 따왔습니다. 그런데 여자 가수가 노래를 불러요. 이 가수는 5악장 '천사들이 내게 이야기하는 것'에서 '베드로'로 나오기도 하지요. 왜 남자가 아니라 여자가 노래할까요? 음악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남자냐 여자냐는 애초에 중요하지 않은 듯합니다. 구자범 지휘자 선생님은 이 작품에서 유일하게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는 이가 바로 이 여자 가수, 즉 차라투스트라와 베드로라고 하세요.

세계는 고통으로 가득하고, 쾌락은 큰 고통보다 깊은 곳에 있습니다(Lust—tiefer noch als Herzeleid). 구자범 선생님은 쾌락을 얻으려면 먼저 고통을 이겨야 한다는 뜻이라고 생각하세요. 고통을 이기고 행복을 얻으려면 '사랑'에서 답을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6악장 '사랑이 내게 이야기하는 것'이 이어집니다. 여기서 '사랑'이란 '에로스'가 아니라 '아가페'입니다. 그래서 이제까지 나온 에피소드가 아니라 '사랑이 바라보는 세계'가 진짜라 할 수 있지요.

말러는 본디 '어린이가 내게 이야기하는 것'을 7악장으로 삼으려고도 했습니다. 이것이 나중에 교향곡 4번 4악장 '천상의 삶'이 되었고요. 이걸 왜 빼버렸을까요? 그렇지 않아도 긴 곡이 너무 길어져서? 철학도 출신인 구자범 지휘자 선생님은 이렇게 생각하세요. 말러는 '어린이'가 '에로스'의 결과로 탄생한 것처럼 보일까 걱정했을 수도 있겠고, 이 작품이 니체 사상을 담은 것으로 오해받을까 걱정했을 수도 있어요. 어린이와 니체가 무슨 관계냐고요?

지난해 경기필이 연주했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기억나세요? 이 곡은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말한 정신 발전의 3단계를 음악으로 훌륭하게 나타낸 작품이지요. 그 3단계란 이렇습니다.

① 낙타의 단계: "권위와 주인에 의존하는" 단계
② 사자의 단계: "모든 의존적인 요소로부터 해방되는 단계" "자유를 얻기 위해서 싸우는 소극적 자유의 단계"
③ 어린아이의 단계: "어린아이처럼 자기 자신의 고유한 가치와 목표를 향해 몰입하는 단계" "적극적 자유의 단계"

그러니까 구자범 선생님은 차라투스트라가 말했던 깨달음의 단계인 '어린아이의 단계'를 말러가 이때 생각했을 거라고 하세요. 이와 관련해 더 자세한 내용은 경기필 웹매거진(g-phil.kr)을 참고하세요.

철학 얘기가 나오니까 좀 어렵나요? 니체 얘기는 여기까지만 할게요. 말러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결국 '사랑'입니다. 이게 가장 중요해요. 그리고 6악장 '사랑이 내게 이야기하는 것'은 말로 떠들기보다 그냥 가슴으로 느끼면 되는 음악입니다. 듣고 있으면 그야말로 사랑이 느껴지지요. 그런데 이렇게만 써놓으면 섭섭하니, 마음이 따듯해지는 시 한 수 인용할까 합니다.

이 시는 사실 말러 교향곡 3번과는 계절 감각도 안 맞고, 구자범 선생님 해석과도 안 맞아요. 그래도 저는 이 시가 6악장 '사랑이 내게 이야기하는 것'과 분위기가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한 가지만 생각하고 읽으면 내용도 제법 어울릴지 몰라요. 여기서 '사랑'이란 '신의 사랑'도 아니고, '어머니의 사랑'도 아닙니다. 그냥 숭고한 사랑, 아가페입니다. 이 시를 그렇게 읽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사시사철 눈오는 겨울의 은은한 베틀 소리가 들리는
아내의 나라에는
집집마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마을의 하늘과 아이들이 쉬고 있다.
마른가지의 난동(暖冬)의 빨간 열매가 수(繡)실로 뜨이는
눈 나린 이 겨울날
나무들은 신의 아내들이 짠 은빛의 털옷을 입고
저마다 깊은 내부의 겨울바다로 한없이 잦아들고
아내가 뜨는 바늘귀의 고요의 가봉(假縫)
털실을 잣는 아내의 손은
천사에게 주문 받은 아이들의 전생애의 옷을 짜고 있다.
설레이는 신의 겨울,
그 길고 먼 복도를 지내나와
사시사철 눈오는 겨울의 은은한 베틀 소리가 들리는
아내의 나라,
아내가 소요하는 회잉(懷孕)의 고요 안에
아직 풀지 않은 올의 하늘을 안고
눈부신 장미의 알몸의 아이들이 노래하고 있다.
아직 우리가 눈뜨지 않고 지내며
어머니의 나라에서 누워 듣던 우뢰(雨雷)가
지금 새로 우리를 설레게 하고 있다.
눈이 와서 나무들마저 의식의 옷을 입고
축복받는 날.
아이들이 지껄이는 미래의 낱말들이
살아서 부활하는 직조(織造)의 방에 누워
내 동상(凍傷)의 귀는 영원한 꿈의 재단(裁斷),
이 겨울날 조요로운 아내의 재봉일을 엿듣고 있다.

― 김종철, 「재봉」

― 티켓 예매 ―

인터파크
http://ticket.interpark.com/Ticket/Goods/GoodsInfo.asp?GoodsCode=12001311

2012년 2월 20일 월요일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바그너의 후예들이 들려주는 어른을 위한 동화》 리뷰

※ 경기도문화의전당이 발간하는 월간지 『예술과 만남』에 보낸 원고입니다.
※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웹매거진: http://g-phil.kr/?p=797

'이야기'가 있는 연주회… 극적 효과와 심리적 표현 돋보여

구자범 지휘자는 '바그너의 후예들이 들려주는 어른을 위한 동화'라는 연주회 제목에 걸맞은 '이야기'를 준비했다. 바로 음악과 어우러지는 자막이다. 그 가운데 《인어공주》는 이 곡을 처음 듣는 사람도 쉽게 음악을 즐길 수 있게끔 자막을 더욱 자세하게 만들었다. 쳄린스키는 이 작품에 표제를 사용하지 않았으며, 이날 연주회 때 상영된 자막은 구자범 지휘자가 작품을 꼼꼼하게 분석해서 자신의 해석을 전달하고자 한 것이다.

자막은 악보 이곳저곳에서 찾을 수 있는 단서를 바탕으로 만들었으므로 작위적으로 말을 갖다 붙였다고 하기는 어렵다. 이를테면 악보에는 "구조 요청하듯이"(wie hilferufend)라는 지시어가 나온다(1악장 마디 303). 왕자가 '사람 살려'라고 외치는 대목이라는 뜻이다. 물론, 배가 통째로 가라앉은 마당에 왕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 구조 요청할 수도 있지 않으냐고 반론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악보를 좀 더 살펴보면 의심할 수 없는 증거가 몇 가지 있다.

첫째, '사람 살려' 음형이 나오고 바로 이어서 인어공주가 헤엄쳐 가는 듯한 음형이 이어진다. 둘째, '사람 살려' 음형은 두 번 나오며, 두 번째 나올 때는 소리가 좀 더 가까워진다. 인어공주가 다가갔다는 뜻이다. 셋째, '사람 살려' 음형이 두 번 나온 뒤에는 조금씩 음악이 조용해지다가 얼마 안 가서 '사랑 노래'가 이어진다.

이때 '사람 살려' 음형에는 이른바 '음색 원근법'이 사용되었다. 이것은 비슷한 음량으로 음색만을 바꾸어 거리가 가까워지거나 멀어지는 듯한 느낌을 주는 작곡 기법으로, 말러가 교향곡 5번 1악장 마지막에 사용한 바 있다. 쳄린스키는 '사람 살려' 음형을 처음에는 오보에로, 나중에는 클라리넷으로 써서 점점 가까워지는 듯한 효과를 주었다. 그리고 구자범 지휘자는 여기에 극적 효과를 하나 더했다. 두 번째 '사람 살려'를 좀 더 느리고 여리게 다스려 왕자가 지쳐서 정신을 잃는 모습을 생생하게 그린 것이다.

서스펜스 영화 같은 심리 표현 담아낸 구자범 지휘자의 탁월한 해석

구자범과 경기필이 들려준 '이야기'가 가장 멋졌던 곳은 아무래도 '폭풍' 등 긴장감이 높아지는 대목이겠지만, 구자범이 보여준 해석이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3악장에서 자막이 '슬픔'이라고 나갔던 대목, 마디 51이었다. 이곳에 나오는 선율(모티프)은 앞서 여러 차례 나왔던 것이고, 기악 음악을 이루는 일반적인 원리를 생각하면 이곳에서도 앞서와 비슷한 템포로 구조적 통일성을 주어야 할 듯하다. 실제로 내가 여태껏 들어본 연주에서 지휘자 리카르도 샤이, 제임스 저드, 안드레이 보레이코 등이 모두 그렇게 했다.

그러나 구자범은 달랐다. 템포를 갑자기 뚝 떨어트리고 부드럽고 가녀리게 다스려 순음악적인 '구조'와 '통일성'보다는 심리적 표현을 강조했다. 나는 구자범이 옳다고 생각한다. 악보를 보면 이 대목에 "매우 부드럽게, 회한을 담아"(sehr zart, wehmütig)라는 지시어가 있고, 3악장 첫머리에는 연주에 고통을 가득 담으라는 지시어(Sehr gedehnt, mit schmerzvollem Ausdruck)가 있어 '슬픔' 대목과는 성격이 달라야 함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뜻을 구자범-경기필만큼 잘 살린 연주를 나는 들어본 일이 없다.

심리적 표현을 말하자면 자막이 '칼을 들고 주저하는 인어공주'라고 나갔던 대목(3악장 마디 138)을 빼놓을 수 없다. 반음계적 선율과 불안하게 흐르는 화음으로 긴장감을 쌓아 가는 동안 앞서 나왔던 선율이 주마등처럼 스쳐 가고, 마침내 긴장감이 폭발하는 듯하다가 멈추고 다시 이어지는 극적 연출은 히치콕 감독이 만든 서스펜스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이날 경기필이 들려준 연주는 그야말로 손에 땀을 쥐게끔 했다.

첫 곡으로 연주된 훔퍼딩크 《헨젤과 그레텔》 모음곡 또한 말이 필요 없을 만큼 훌륭했다. 구자범은 본디 오페라 지휘자이며, 오페라를 바탕으로 한 이 작품에서 그 솜씨가 매우 잘 드러났다. 곳곳에서 단원들 얼굴에 웃음이 번졌고, 지휘자는 행복해하는 듯했다. 그 분위기가 객석으로 퍼졌음은 말할 나위 없다.

마녀의 오븐이 폭발하는 대목에 쓰인 악기가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을 듯하여 설명을 덧붙인다. 이것은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특별 제작한 악기이다. 악보에는 선더머신(Donnermaschine; 독일어)이라고 나와 있는데, 이것은 악기 이름이라기보다 천둥소리를 내는 기계장치를 통칭하는 말이다. 경기필이 만든 이 악기와 가장 비슷한 것은 선더시트(thunder sheet)라는 악기로, 경기필은 천둥소리가 아닌 폭발음을 내고자 재질과 구조를 조금 달리 했다. 물론, 폭발하는 대목에는 큰북 등 다른 타악기가 힘을 합쳐 크게 '한 방'을 터트린다.

2012년 1월 7일 토요일

굽시니스트 본격 음악만화 《바그너의 후예들이 들려주는 어른을 위한 동화》

※ 2016년 11월 16일. 이미지 링크가 깨진 것을 보고, 이참에 당시 항의를 받았던 표현을 수정하기 전의 원본으로 복원했습니다. 이 만화에는 읽는 사람이 불편하게 느낄 수 있는 표현이 나옵니다. 만화적인 표현을 그 자체로 즐기되 그에 대한 비판에도 열린 태도를 가질 것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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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1월 16일 수요일

[인터뷰] 지휘자 박은성

(글: 김원철 · 사진: 최종혁)

※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웹매거진에 실린 글입니다.
원본 링크: http://g-phil.kr/?p=476

지휘자 박은성. 말이 필요 없는 한국 지휘계의 거목.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인터뷰 기사를 포함해서 수많은 글이 넘쳐 난다. 그러나 딱히 마음에 드는 것은 없다. 그래서 직접 박은성을 만났다. 2011년 11월 6일 오후 정동극장 안에 있는 카페에서 만났다.


김원철: 먼저, 이번 연주회 프로그램을 고르신 의도가 궁금합니다.
박은성: 아니, 특별한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에요. 그러니까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 물어보니까 연주를 한 번도 안 했다고 하더라고요. 드보르자크를(교향곡 7번). 어떤 의미에서 보면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앞으로 해야 될 큰 과제 중의 하나가, 레퍼토리 개발이라고.
김원철: 그렇죠. 네.

(박은성 지휘자는 본디 '레퍼토리'가 아닌 레퍼투아(répertoire)라는 낱말을 일관되게 사용했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이해를 돕고자 국어사전에 나오는 좀 더 쉬운 말로 바꾸었다.)

▶ 자주 연주되지 않는 명곡을 소개해야

박은성: 어떤… 늘 하는 곡들만 자꾸 하는 것보다도, 이제는, 현대곡이라든지 새로 작곡된 곡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옛날 곡이라도, 그냥 스탠더드(standard) 레퍼토리 중에서도 경기필이 안 한 곡이 좀 많지 않나… 내 생각이 그래서, 이러구 저러구 생각하다 보니까 (드보르자크) '신세계'(교향곡)도 많이 했을 거고, 그 담에 8번 교향곡도 굉장히 많이 했을 거고, 그런데 7번 교향곡을 얼마나 했나… 내가 한 번 (경기필 단원들한테) 물어봤어요… 한 번도 연주해 본 적이 없는데요… 몇 십년 전에 옛날 단원들이 해봤는지 어떤지 모르겠는데, 최근에 연주된 일이 없어가지고, 그걸 한 번 했으면 좋겠다… 나도 옛날부터 차이콥스키나 뭐 이런 거, 잘하는 거 있잖아요? 그거 하면 좋지 나도. 특별히 공부 안 해도 뭐 그냥… 아 그런데, 그거보다는 오케스트라를 위해서라도, 또 내가 힘들더라도 좀 레퍼토리를 하나 개발해야 한다, 이런 뜻이 강했고.

(말솜씨가 대단하다. 인터뷰를 여러 차례 해본 관록이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박은성: 그 담에 두 번째, 월튼 비올라 협주곡을 택한 이유는, 아시겠지만 내가 택한 건 아니거든. 솔리스트(협연자)가 택했지. 그럼 솔리스트는 어떻게 택했느냐? 솔리스트가 아주 젊어요.
김원철: 네.
박은성: 아직 25세가 안 됐다고. 24세? 아직 그 정도일 텐데.

비올리스트 박경민

▲ 협연자 박경민. 1990년생, 만 21세.

박은성: 지금 독일에 있거든? 알죠?
김원철: 네.
박은성: 작년에 동아 콩쿠르 1등 하고, 독일에서 무슨 콩쿠르 1등 하고, 또 하나는, 작년인가? 그것도 작년인데, 영국에서 비올라만 하는 콩쿠르 있다고.
김원철: 네, 라이오넬 테르티스(Lionel Tertis) 콩쿠르 2등 했더라고요.

(라이오넬 테르티스는 이번 공연에 연주될 '월튼 비올라 협주곡'을 세계초연할 뻔한 ― 세계초연했다고 잘못 썼다가 나중에 고침. 월튼이 테르티스를 생각하고 이 곡을 썼으나 테르티스가 거절해 파울 힌데미트가 초연했다 ― 영국 출신 비올라 연주자이다. 라이오넬 테르티스 콩쿠르 입상할 때에도 월튼 곡을 연주했는지를 박경민 씨한테 물어 봤더니, 그건 아니란다. 버르토크 비올라 협주곡이 지정곡이었다고.)

박은성: 뭐, 다 조사를 했네. 그런 정도면 유럽에서 그만큼 인정받은 솔리스트인데, 한국에서는 아.무.도. 몰라요. 아무도 몰라.
김원철: 네에.
박은성: 근데 작년에 동아 콩쿠르 1등 했기 때문에 올해 코리안심포니하고 나하고… 여름인가 언젠가 연주를 한 번 했다고. 하니까, 야아! 아, 이런 솔리스트가 왜 이렇게 안 알려지고 있느냐 이거야. 이왕이면 이거 경기필하고 한 번 붙여 보자. 그래서 그걸 했고.

박은성: 《마탄의 사수》는… 뭐, 계속해서 하면 안 되죠. 어려운 곡을. 세 곡을 갖다 내면. 그럼 《마탄의 사수》 서곡 정도는 경기필이 굉장히 쉽게 소화할 수 있는 곡이라고 생각해서, 레퍼토리는 그렇게 구성이 됐는데, 나 혼자만의 생각인지는 몰라도 레퍼토리는 대단히 훌륭하다고 생각하는데.

김원철: 그러니까 드보르자크를 특별히 더 좋아하신다거나 그런 건 아니로군요?
박은성: 노(No). 그건 아니고, 내가… 모르겠어요, 지휘 생활이 (앞으로) 얼마나 될지. 지금 나이가 들 만큼 들었지만. 에… 알죠? 내가 금년에 (코리안심포니) 오케스트라를 떠난 거. 내가 오케스트라를 가지고 있다면 혹시나, 내가 지금 몇 개를 생각하는 작곡가가 있어서, 작품 전곡을 다 연주할 수 있는 거를 했으면 좋겠어요. 예를 들어서, 브루크너는 수원(시향)하고 거의 다 했다가 몇 곡만, 두 곡인가 세 곡을 남겨 놓고 아직 못 했는데, 그때 내가 수원시향을 떠나서 코리안심포니로 옮기는 바람에 그렇게 됐거든. 근데 코심은, 일단 지휘자가 오케스트라를 옮기면 거기에 정착하고 소리를 만드는 데 몇 년이 걸린단 말이지. 그래서 그거 하느라고 계속 못 했고. 또 내가 학교도 은퇴하고, 저쪽(코리안심포니)에 또 임기도 끝나고.

(객원 지휘자와 상임 지휘자가 결정적으로 다른 대목. 지휘자가 오케스트라 소리에 자기 색깔을 온전히 담아내려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 구자범 지휘자도 몇 해 지나서 비슷한 시도를 하면 좋겠다. 말러 교향곡 전곡, 베토벤 교향곡 전곡, 바그너 오페라 전곡, 푸치니 오페라 전곡 등.)

박은성: 혹시 앞으로 기회가 있어가지고 내가 내 오케스트라를 가질(맡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브루크너도 전곡을 했으면 좋겠고, 드보르자크도 마찬가지고. 그건 이유가 뭐냐면, 조금 전에 얘기했듯이 한국 사람들이 아는 건 드보르자크는 '신세계'(교향곡)밖에 몰라요. 그럼 지휘자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면, '신세계'가 제일 좋아하는 곡이냐? 그렇지 않다고요. '신세계'보다는 오히려 8번을 더 좋아할지도 모르고, 개중에는 7번 교향곡을 더… 금년에도 내가 다른 교향악단이랑 '신세계 교향곡'을 여러 번 했다고.

(드보르자크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는, 무엇보다 4악장은 운동 경기장에서도 곧잘 들을 수 있어서 우스갯소리로 '응원 교향곡'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 대한민국 386세대는 이 곡을 '전대협 팡파르'라고도 하던데…)

▶ 드보르자크 교향곡 7번에 관한 박은성의 해석은?

김원철: 그러면 드보르자크 교향곡 7번에 대해서 조금 더 여쭙겠습니다. 이 곡에서 가장 멋지다고 생각하시는 대목을 한 군데만 말씀해 주세요.
박은성: 어, 그건 굉장히 얘기하기 어려운데. 어느 악장을 얘기하라면 그건 얘기하기가 좀 쉽게 되겠지. 근데…
김원철: 어느 악장을 가장 좋아하세요?
박은성: 근데 그걸 다른 사람들한테 물어보면 인제 1악장의 뭐 어떤… 테마(주제선율) 나오는 데가 좋다고 하고, 또 2악장 느린 걸 좋다고 그러는데… 3악장을 경청해 주시기 바란다고 얘기를 해야겠네요. 그것이 굉장히 경쾌한 리듬이 깔렸으면서도 뒤에 흐르는 선율이 아주 아름답거든. 그러면서도 조용할 때 조용하고, 몰아칠 때 아주 대단히 몰아치는… 그리고 4악장, 다 좋고요. 어느 악장 빼놓을 악장이 없어. 연주를 어떻게, 내가 어느 만큼 하느냐가 문제지, 작품이야 뭐 아주 훌륭하다고 생각해요.

김원철: 그러면 특별히 이 곡 해석과 관련해서 본받고 싶은 지휘자나 레퍼런스(reference)로 삼을 만한 음반이 있다거나, 그런 게 있나요?
박은성: 내가 별로 어… 음반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저건 없는데, 드보르자크에 관한 한 특별히 대가로 치는 몇 사람이 있어요. 에, 그것은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 오래전에 상임지휘자로 있던 바츨라프 노이만(Václav Neumann). 그 사람 리코딩이 아주 좋고. 그 담에… 아주 옛날 거예요. 이슈트반 케르테스(István Kertész)가 한 거, 그거 굉장히 좋다고 생각되고. 그 담에 얼마 전에 또 들어보니까 그… 줄리니(Carlo Maria Guilini)! 영국서 라이브 리코딩 한 거. 그 연주 아주 크게 감동했어요. 실제 연주인데도 아주 그냥… 실제 연주이기 때문에 더 생동감 있고, 그까짓 실수 하나 둘 있으면 어때. 아주 굉장히 좋고. 굳이 하나를 꼭, 나보고 추천하라면 줄리니 거를… 줄리니, 그 담에 또 옛날 사람들이 연주 잘하더라고. 조지 셸(George Szell)! 클리블랜드(오케스트라), 그것도 대단히 좋아요. 뭐, 다 좋아요. 근데 어쨌든, 바츨라프 노이만 거는 한 번 들어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이 되고. 그 외에도 리코딩이 굉장히 많거든.

(음악가는 저마다 추구하는 음악적 개성이 있기 때문에 음반 마니아가 되기는 어렵다. 그래서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여쭈었는데 웬걸, 이름이 줄줄 나온다. 지휘자 박은성이 음반 마니아일 리는 없고, 이런 것도 연륜과 관록 때문일까.)

김원철: 선생님은 지휘자이시니깐요, 좀 더 구체적으로 프레이징(phrasing)에 관해서 한 군데만 여쭙고 싶은데요, 3악장 말씀하셨으니깐, 처음에 어떻게 시작하더라…

(악보를 깜박하고 집에 두고 오는 바람에 노래를 불러 드렸다.)

▲ 라파엘 쿠벨리크 지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DG

김원철: …따단딴 딴! 딴! 이렇게 약박에 포르찬도(forzando)가 있단 말이에요.

※ 포르찬도: 악보에서, 특히 세게 연주하라는 말. 기호는 ‘fz’ 또는 ‘∨, <’. ≒포르차토. (표준국어대사전)

▲ 3악장 마디 4~5. ©Public Domain

▶ 자연스러움과 참신함 사이

김원철: 거기뿐만이 아니라, 포르찬도가 이 작품에 굉장히 많이 쓰였는데, 드보르자크가 포르찬도를 쓸 때에는 어떤 의도로…
박은성: 아니, 어떤 의도가 아니라 그건 그야말로 악센트라고. 근데 그거 지금 굉장히, 음악 내용도 그렇고 굉장히 많이 아시는데, 뭐 나보다 더 잘 아는데 그걸 물어봐서 뭐해?
김원철: 아, 제가 인터뷰를 하려고 악보를 좀 보고 왔습니다. 하하.
박은성: 드보르자크가 거기뿐만이 아니고, 작품을 보면은, 지휘자가 애먹는 경우가 많아요. 드보르자크는. 예를 들어서 베토벤은 오히려 분석이라던가 이런 게 쉽거든. 네 소절 단위로 나간다든가… 악보 얼마만큼 보셨는지 몰라도 이걸 분석을 해보라고.

(이하 원론적인 말씀이 길게 이어짐. 그래서 좀 더 구체적으로 캐물었다.)

김원철: 그러면 그 바로 앞에 나오는 강박보다 더 세게 해야 할까요?
박은성: 당연히야.

김원철: 어, 그러면 아예 마르카토(marcato)… 그렇게 확실하게 (세게) 가야 할까요, 아니면 너무 튀지는 않게 좀… 메사 디 보체(messa di voce) 그런 식으로… 그러니까 스포르찬도(sforzando)가 아니고 그냥 포르찬도거든요. 그게 스포르찬도에 가까운 포르찬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 마르카토: 악보에서, 음 하나하나를 끊어서 똑똑하게 연주하라는 말. (표준국어대사전)
※ 메사 디 보체: 일정한 음을 길게 끌면서 천천히 음량을 크게 하였다가 다시 음량을 줄여 끝내는 창법. 18세기 벨칸토의 중요한 발성 기법으로 발성 연습에 널리 쓰인다. (표준국어대사전)
※ 스포르찬도: 포르찬도와 비슷하나 좀 더 갑작스럽게 연주하라는 뜻. 수비토 포르찬도(subito forzando).

박은성: 사람들이 스포르찬도하고 지금 말씀하신 거하고 뭐가 다르냐고 그러면, 어디 구별할 수 있어요?
김원철: 결국은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 애매하죠. 사실은.
박은성: 사실은 같은 건데, 지휘과 학생들한테도 그게 큰 숙제라고. 그게 뭐 어떤 차이가 있느냐. 's' 하나 더 들어간 것뿐이거든. 'fz'라고 쓴 거를 뭐라고 발음했어요?
김원철: 포르찬도.
박은성: 포르찬도. 포르찬도라고 얘기해도 틀린 건 아니에요. 그런데, '포르차토'(forzato)…
김원철: 네. 아, 사실은 그게 맞겠죠.
박은성: 그렇게 발음해야 하는 거예요. (원론적인 말씀 끝에 종이에 음향적 윤곽을 그림으로 그려 가면서 설명.)

('포르차토'와 '포르찬도'는 이탈리아어 문법 얘기인데, 자세한 내용은 글쓴이도 잘 모른다. '포르찬도'가 현재진행형이었던가… 그러나 표준국어대사전에는 '포르찬도'가 대표어로 나오므로 이 글에서는 앞으로도 '포르찬도'라 쓰겠다.)

김원철: 그러면 아까 그 대목에서는 이것, 둥근 게 맞다는 얘기죠?

(종합해 보면 위에 인용한 쿠벨리크 녹음을 좀 더 둥글게 다듬은 정도가 될 듯하다.)

김원철: 음반을 들어보면요, 지휘자에 따라 이 대목을 조금씩 다르게 하는데, 아르농쿠르 같은 사람은 (각지게 그린 음향 윤곽 그림을 가리키며) 아예 이렇게 하더라고요. 모나게. 들어보면 참 특이하다… 어떤 사람은 그냥 강박이랑 약박이랑 비슷한 음량으로 가기도 하는데…

▲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 지휘,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 ©Warner

(위 녹음을 들어보면 다섯째 마디에서 '포르찬도' 음을 매우 두드러지게 연주했음을 알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포르찬도'를 강조하고자 바로 앞선 음을 짧게 끊기까지 했다. 아울러 느리게 시작해서 템포를 조금씩 조이기까지. 악보에 있는 작은 지시까지 매우 꼼꼼하게 살린 쿠벨리크-베를린필 녹음과 견주면 큰 차이가 있다.)

박은성: 그 사람은, 지금 얘기한 그 사람(아르농쿠르)은, 굉장히 독특한 어떤 새로운 걸 갖다가 시도를 많이 하고 그런 사람인데, 음악의 분위기를 그렇게, 잇지 않고 그렇게 처리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자극적으로 듣기 때문에, '아! 역시 대가가 다르구나!' 이렇게 들릴 수 있다고. 그렇게 볼 수 있다고. 물론 그래요, 틀림없이… 자기가 그렇게 한다면 그만이지 그걸 누가 뭐라 그래. 그러나 나는 그렇게 안 해. 음악 전체의 분위기를 보구선 그걸 결정을 해야지.

(참신한 해석이라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자연스러움을 일부 희생한 결과다. 그리고 참신함을 좇을수록 자칫 음악이 천박해질 위험이 커진다. 얼마만큼이 적당한가를 판단하는 일은 지휘자 성향에 달렸다고 할 수 있겠는데, 지휘자 박은성은 과연 얼마만큼이 적당하다고 생각하는지를 묻고자 이렇게까지 꼬치꼬치 캐물었다. 인용한 대목에서 활놀림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좋을지까지도 물어봤으나 내용이 너무 전문적으로 흐른다 싶어 생략.)

김원철: 그러면 이 곡 악보를 보면 메트로놈 지시가 일일이 붙어 있는데, 그걸 의식하시는 편인가요 아니면…
박은성: 참고만 하지 내가 의식을 안 해요.
김원철: 네에.
박은성: 처음에 메트로놈, 써있는 것도 별로 마음에 안 들어요. 2악장도 마음에 안 들고. 2악장도 거기 걸로 하면 내 생각보다 조금 느려. 도중에는 그 템포로 갈 수 있는데, 시작부터 그렇게 가면… 나는 못 끌고 나간다고. 꼭 그대로는… 그건 참고사항이지 그대로 갈 수는 없어요.

▶ 박은성이 어렸을 때

김원철: 그러면 까다로운 질문은 다 지나갔고요. (웃음) 어린 시절 얘기를 좀 해주시죠. 1945년생이시죠? 6·25를 겪으셨을 텐데 그게…
박은성: 아니…
최종혁: 신상정보까지…
일동: 하하하…
박은성: 아니, 그게 아니라… 내가 직업상 인터뷰를 얼마나 많이 했겠어.
김원철: 네.
박은성: 이런 사람 처음 보네.
일동: 크하하하하…
박은성: 말씀하세요.

김원철: 어릴 때 고향이 어떤 이미지로 남아 있나요?
박은성: 어릴 때 고향? 고향에 대한 얘기는 이제 두… 가지로 얘기해야 하는데, 나는… 이북에서 태어난 사람이기 때문에 한국식으로 얘기하면 고향이 지금 없다고. 내 고향이 함경북도 회령인데, 사람들이 내가 나이 들고 그러니까, 거기서 태어난 것이 아니고 부모가 거기서 생활하시고 그래서 부모 고향 따라서 함경북도 회령이다, 이렇게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고 나는 출생을 함경북도 회령에서 출생을 해가지고 월남할 사람이라고. 돌 되기 전에. 그러니까 이북에 대한 건 아무것도 모른단 말이지. 그걸 여기 와서 내가 얘기도 안 했거든. 그러니까 아무도, 내가 사투리도 안 쓰니까 함경북도 사람이라는 걸 한국 음악계에서 아무도 몰라요. 재밌는 사실이지.

김원철: 그거 ○○○ 검색하니까 다 나오던데요? (웃음)
박은성: 그걸 누가 그랬는지 알 수가 없는데, 아마 그 이후에 얘기가 됐는지도 몰라요. 평양에 가니까 이북서는 알더라고. 여하튼 함경북도에 대해서는 내가 아는 바가 없으니깐. 그 담에 내가 생활했던 곳은 서울이 아니고 6·25 때 피난을 갔기 때문에 부산서 국민학교(초등학교)를 들어갔단 말이지. 그때 영도에서 살던 그… 대마도. 쓰시마 섬을 바라보면서 꿈을 키우던 그 기억만 있지.

(그러니까 자란 곳은 부산이란다.)

김원철: 그러면 음악은 언제쯤 시작하신 거예요?
박은성: 요즘 학생들 생각하면 (나는) 음악을 엄청 늦게 시작했죠. 그 당시에는 내가 (음악을) 시작한 게 무지하게 빨랐어. 아홉 살 때 시작했으니까. 그 당시에 중학교 들어가서도, 아니면 고등학교 들어가서, 뭐 하다못해 대학 들어가기 직전에 적당히 해서 대학 들어간 사람도 많았던 시절이니까. 아홉 살이면 굉장히… 요즘은 아홉 살에 시작해가지고는 음악가 행세를 못 해요.

(1945년생인데 아홉 살 때부터 음악을 시작했단다. 놀랍다.)

박은성: 그리고 그 당시에 내가 더 (일찍) 할 수도 없었던 것은…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해 봐요. 바로 그때가 6·25 전쟁 중인데 악기를 어디서 사? 선생을 어디서 구해? 그건 불가능하거든. 그래도 내가 음악 시작할 수 있었던 건 정말 행운이고. 그래서 그런 행운을 가졌던 거는, 그 당시에 교향악단이라는 건 없었고, 해군정훈음악대라는 게 있었거든. 해군정훈음악대가 해군교향악단. 그것이 오늘날 서울시립교향악단이 된 거예요. 거기에 악장 선생님이 내 은사님이라고.
김원철: 오오오. 아홉 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하신 거군요?
박은성: 아! 좀 창피한 얘긴데, 바이올린 했지. 바이올린 했는데, 아무튼 죽어라고 하기 싫어했으니까.
김원철: 으허허허허…
박은성: 아니, 그것도 (남 연주를) 들어보면 너무 멋있는 거야. 근데 내가 해보면 '끼익 꽤엑~~'
김원철: 으하하하하…
박은성: 세상에서 제일 듣기 좋은 악기가 바이올린이야. 너무 기가 막혀요. 못하는 사람이 할 경우에는 제일 듣기 싫은 게 또한 바이올린이라고. 그 소리를 어떻게 들어주느냐 이거지. 그래, 난들 그걸 듣고는 참고 (연주)하겠냐고. 애기가. 참 힘들었다고.

(옛날이었으니까 악기가 그리 좋지도 않았겠지. 상상이 간다.)

▶ 지휘자가 된 사연

김원철: 그러면 지휘로 바꾸게 되신 계기는 뭐였을까요?
박은성: 그건 너무 유명한 얘긴데?

(몰라서 물었다기보다는, 모르는 독자가 있을까 봐… 지, 진짜다. 크흠.)

박은성: 대학에 들어가니까, 그 당시는 대학 들어가도 바이올린 잘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던 시절이니까, 내가 들어가 보니까 그냥 학교 내에서는 할 만큼 할 수 있겠더라고. 그래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그러니까 뭐 음악대학에서 정기연주회 솔리스트로 나가기도 했고, 음악대학 오케스트라 악장도 했고 그랬는데, 방학 동안에 한 번 선생님한데, 방학 동안에 학교 레슨(개인지도)이 없으니까, 레슨을 가야 되겠다 생각하고 선생님한테 갔는데, 내 앞에 어떤 쪼~끔한 녀석이, 국민학교(초등학교)야. 그 녀석이 선생님한테 레슨을 받는데,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콘체르토(협주곡)를 하는데, 기가 막히게 잘해서 '누구야? 나는 안 되겠구나.' 그때부터 마음을 접었었죠. 그게 누구냐면 강동석이에요.
김원철: 아! 허허허허허…

강동석

▲ 바이올리니스트 강동석

김원철: 그리고는 빈 국립음대로 가신 거예요?
박은성: 아니, 그리고 한참 있다가… 음악대학 졸업하고… 그다음에 KBS 교향악단. KBS 교향악단이라는 게, 지금 KBS 교향악단 전신이 국립교향악단이고, 국립교향악단의 '또' 전신 KBS 교향악단. 그 KBS 교향악단에 입단해가지고 악단 생활을 몇 년 하다가, 거기 지휘자가 나를 발탁해서 그쪽 (오스트리아) 오케스트라로 데리고 갔다고. 그러고 있으면서 연주 생활을 하는 동안에 내가 거기서 비엔나 국립음대를 입학을 했지.

김원철: 네에. 거기서 오트마 주이트너(Otmar Suitner)를 사사하셨는데, 주이트너 선생님한테 뭘 배웠나요?
박은성: 그걸, 뭘 배웠는지 나도 몰라요.
김원철: 으허허허허…

박은성: 근데, 처음엔 오트마 주이트너한테 갈 생각을 안 했어. 왜 그리로 가게 됐냐면, 날 데려간 선생님이 오스트리아 사람이기 때문에, 또 비엔나 국립음대를 나오시고 그랬으니까 그랬겠지만, 오트마 주이트너라는 사람이 나는 누군지도 몰랐어. 전혀 몰랐는데… 아바도의 스승, 주빈 메타의 스승, 그러니까 다 잘 알 거야, 한스 스바로프스키(Hans Swarowsky)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한테 한 번 배웠으면 좋겠다 해서 내가 비엔나 간 거거든. 비엔나보다, 우선 오스트리아 간 거거든. 도착하자마자 그분한테 누구 도움을 빌려가지고 편지를 썼다고. 나는 한국에서 온 누구누군데, 오래전부터 당신에 대한 명성이랄까 뭐 이런 걸 익히 알고 있다고. 실력이 되는지 안 되는지는 모르겠고, 그러나 아무튼 선생님한테 배우고 싶어가지고 내가 한국에서부터 여기까지 왔는데, 좀 기회가 있으면 찾아뵙고… 얘기를 좀 듣고 싶고, 그럴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선생님 제자가 되고 싶다고, 이렇게 했는데, 뭐 한 달이 돼도, 두 달이 돼도, 소식이 없어요. 그 편지 보낸 지 한 석 달쯤 되니까, 오스트리아 신문에 났어. "한스 스바로프스키 사망."
김원철: 으허허허허…

박은성: 그러니까 내가 편지를 썼을 때, 그분은 병원에… 그래서 굉장히 실망을 하고, 내가 그 사람한테 배우긴 틀렸다, 그래가지고 여름에 모차르테움(Mozarteum), 잘츠부르크에 있는. 거기 여름학교가 있어요. 인터나치오날 좀머 아카데미(Mozarteum International Sommer Akademie), 거기서 지휘 클래스(과정) 들어가서 공부를 하는데, 거기 지도교수가 오트마 주이트너야.
김원철: 아아…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국제 여름학교가 궁금하신 분은: http://www.moz.ac.at/de/kunst/soak.php)

박은성: 그 선생한테 굉장히 인정을 받았다랄까, 그래가지고… (학교 다니면서) 일을 하고 있었으니까… 3년을 계속해서 그 코스에 다녔는데, 마지막 해에 또 신문에 난 게 뭐냐면 한스 스바로프스키 후임으로 오스트리아 대통령이 오트마 주이트너를 국립음대 지휘과 교수로 임명했다고. 친서를 줘 가면서. 그래서 또… 그 선생은 (나를) 잘 아니까, 선생님 제자가 되고 싶다고. 그래, 내가 일을 하고 있으니까 들어갈 저거는 안 되고. 또 지금 내가 음악 이론이다 뭐 등등 공부해 본지… 너무 오래됐기 때문에 나는 입학할 실력이 안 된다고. 그런데 개인 레슨 좀 받을 수 있겠냐고. 근데 그 선생이 아주 단칼에… 자기는 개인 레슨 해줄 시간이 없다고, 니가 배우고 싶으면 시험을 거쳐서 국립 음대… 국립 음악원. 음악대학이 아니야, 그 당시에는. 그렇지, 음악대학이라고 해야지. 호흐슐레(Hochschule; '대학'에 해당하는 독일어). 그전엔 아카데미(Akademie)라고 했거든. 국립 음악원. 음악대학. 거기 시험을 치는데, 그 스토리는 너무너무 길어요. 그거는 얘기 안 해도 되고.

(옛날에 공부했던 이론 책을 모두 한국에 두고 오는 바람에 독일어 책으로 새로 공부해야 했다며, 박은성 지휘자는 그때 일을 '악몽'이라 회상했다. 결국, 10대 1 경쟁률을 뚫고 합격했다고.)

▶ 박은성의 사랑 이야기

박은성: 근데 왜 그렇게 내 라이프 스토리(인생 얘기)를 궁금해해요?
김원철: 그건, 인터뷰에 내러티브(narrative)를 담으려고요. 하하하… 그것 못지않게 궁금한 것은… 선생님 첫사랑 얘깁니다. 으허허허허…
박은성: 나는… 첫사랑… 어떤 게 첫사랑인지 기억을 못 해요. 첫사랑이 누구라고 얘기하면 나, 집에서 내쫓겨난다고.
김원철: 크하하하하…
박은성: 아니, 그게 아니고, 진짜 그걸 기억을 못…

(이하 내용 삭제. 사실은 별 내용 아니지만, 이런 건 삭제해 줘야 더 재미있다.)

김원철: 사모님은 어떻게 만나셨나요?
박은성: 그 사람은 내가… 비엔나에 있는 동안에… 미국서 만났지. 왜 그랬냐면 우리 집이, 아버지도 그 당시에 뉴욕에 계셨고, 뉴욕 한국일보사에 주간, 이랄까… 또 뉴저지에 있는 시튼홀 대학교(Seton Hall University) 교수로 있었기 때문에, 집이 뉴욕에 있었단 말이야. 내가 매년 뉴욕에 방문차 갔었는데, 하루는 서울서부터 잘 알던 어떤 음악가가 나보고, 내가 하도 장가를 못 가고 꿍꿍거리고 앉았으니까, 케네디 공항까지 나와가지고 집에 들어가면서 장가 한 번 안 가보겠냐고. "어유, 왜 안 가봐, 색시가 없어서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못 갔지 내가 왜 안 가. 당연히 가지." 그랬더니, 그럼 왜 없느냐? 그것도 간단해요. 그 당시 비엔나라는 데가 어떤 데냐면, 전체 오스트리아에 한국 사람이 한 300여 명 살았나? 지금은 비엔나만 해도 2000명이 넘어요. 유학생도 많고. 그 당시에는 없어. 그 중에서 또 비엔나 말고 뮌츠, 잘츠부르크, 그라츠, 인스부르크, 이런 데까지 퍼져 있는 이 사람들 빼고 비엔나에만 한 200여 명이 살았나? 200여 명 중에 남자들은 다 빼야지. 할아버지고 애들이고. 여자들 중에… 할머니도 다 빼야지. 애기들 빼야지. 그 담에 처녀들 중에, 몇 사람 안 남더라고, 그중에 못 생긴 여자는 빼야지.
김원철: 으하하하하…

박은성: (웃으며) 뭐 그러니까, 그러니까 없어. 그래서 뭐 그런가 보다, 내 팔자가 이런가 보다 하고, 그냥 이러구 있었는데, 미국서 그 사람이 그런 얘기를 하니까 그게 구세주지 뭐야.

▲ 하느님, 예쁜 애인 하나만… (출처 불명 이미지)

박은성: 근데 내가 뭐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도 아니고… 물론 구라파(유럽) 가기 전에 악단 생활을 임원식 선생님의 배려로 서울예술고등학교 선생도 했었고, 국립교향악단 객원지휘도 했었고, 서울시립교향악단도 지휘했었고… 그야말로 어린 시절에 지휘활동 많이 했지. 했지만, 그것보다도 내가 기본적인 실력이 훌륭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뭘 잘하는 사람을 늘 동경해 왔는데, 미국서 우리 색시를 만나 보니까…

('색시'라는 말에서 사랑이 묻어난다.)

▲ 피아니스트 이귀영의 5·16 민족상 콩쿠르 우승 소식을 전한 1970년 5월 23일 자 대한뉴스.
(사진을 클릭하면 동영상 다시 보기로 이동합니다.)

박은성: …어렸을 때 그 당시 한국에서 최고로 쳐주던 콩쿠르가 5·16 민족상 콩쿠르였단 말이지. 동아콩쿠르보다 훨씬 더 센 콩쿠르야. 박정희 대통령이 만든 콩쿠르. 우리 집사람이 거기 대통령상을… 대상을 받았더라고. 어유, 이건 뭐 난 꿀려서… 엣따 모르겠다, 이왕… 다짜고짜 만나서 나한테 시집오라고 그랬지.
김원철: 으허허… 만나자마자 그러셨어요?

(최, 최고다…)

박은성: 나이도 많지, 나야 아무것도 없지, 그 당시에 아직 학생이니까. 어떤 사람이 자기 딸을 갖다가 아무것도 아닌 사람한테 줘? 아직도 지휘과 다닌다고 그러지, 또 지휘과 졸업했다 치더라도 지휘자로 성공할 수 있을지 없을지 그걸 어떻게 알어? 그건 모험이지. 근데 뭐 딱지 맞고 이러다가 그냥… 그래도 '창~문을 열어다오' 하는 심정으로… 결혼하게 됐어, 그래서. 그 사람의 도움을 받아서 겨우 겨우 결혼을 하게 됐고.

(비결이 궁금했다. 캐묻다 보니 나온 비결은 바로…)

박은성: 그러니까 나는 비엔나에 있고… 오스트리아랑 미국이라는 나라가 대서양을 끼고 있는데 그게 될 리가 없잖아? 또 지금이야 뭐 공짜로도 전화 많이 하지만 그때 전화 한 통에 얼만 줄 알아요? 전화 한 통 걸려면… 뭐 이럴 때라고. 그러니까 편지로. 매일같이 편지 하나씩 쓰는 거지. 편지에 넘어갔어.
김원철: 네에. 오오오! 편지의 위력이…
박은성: 그러니까 요즘 젊은이들은 그걸 알아야 돼. 나는 당신을 사랑해, 어쩌고저쩌고 이거보다도, 글로 한 번 남기면 그게 훨씬 더 위력이 있어.
최종혁: 요즘은 이메일로 하니까…
김원철: 아, 근데 연애편지라는 건 어렵기로 소문난…
최종혁: 첫 줄 쓰기가 정말…
김원철: 쓰다가 구겨서 버리고 막… 으허허…

(사랑을 쓰려거든 ○○로 쓰세요.)

박은성: 연애편지라고 생각지도 않고 그냥…
최종혁: 거의 일기처럼 쓰셨나 보네요?
박은성: 그러니까 소식 전하는 거지. 오늘은 브루크너 하우스에 가서 무슨 교향악단의 연주를 들었는데, 그 교향악단 정말 훌륭하다… 아니면, 저 정도 오케스트라는 우리 악단보다 별로 나은 것 같지 않다… 지휘자도 나보단 낫겠지만 저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어, 뭐 이런 내용도 쓰고. 피아니스트 누가 왔는데… 그런 음악적인 내용, 그리고 뉴욕서 어떻게 지내느냐, 그럼 그쪽에서도 오늘 모스크바 방송교향악단이 왔는데 지휘자는 드미트리 키타옌코였다… 한국에 왔던. 키타옌코가 바로 비엔나 아카데미 출신이거든. 그래서 그런 얘기 하고.

(드미트리 키타옌코. 1999년부터 2004년까지 KBS교향악단 상임지휘자를 맡았던 그 사람이다. 요즘은 베를린필을 객원 지휘하는 등 유럽에서 크게 인정받는 듯하다.)

박은성: 그래서 그런 얘기… 음악적인 뉴스 왔다갔다하고… 그러다가, 우리 심심한데 결혼 한 번 해볼까?
김원철: 으허허허…
최종혁: 편지를 아직 소장하고 계세요?
박은성: 어디 있을 거야. 그거 읽어보면 창피해서…
최종혁: 찢지는 않으셨네요. 으허허…
박은성: 찢지 않았어요.
최종혁: 창피하면 버리거나 그러는데…
박은성: 특히 우리 장모님이… 아직도 그… 나 죽을 때 되면 내놓을 거야.
김원철: 으허허허…
박은성: 부부싸움 할 때, 야 요 녀석아, 니가 요랬잖냐…
일동: 크하하하하~


그 뒤로도 제법 긴 얘기가 오갔지만, 글이 너무 길어지는 듯해서 이만 줄이고자 한다. 그러나 어쨌든 연애 이야기가 이날의 하이라이트. 짧은 지면으로는 다룰 수 없는, 그러나 흥미진진한 얘기를 담아내고자 "이런 사람 처음 보네"라는 말을 들을 만큼 별난 질문을 머리 짜내 생각해 내었다.

지휘자 박은성. 시대 상황을 헤아리면 제법 복 받은 환경에서 자랐고, 오스트리아에서 유학하면서 바닥부터 다시 시작하는 고생을 마다치 않은 끝에 빈 국립음대에서 오트마 주이트너를 사사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연애사에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 한국인다운 저돌성이야말로 인간 박은성을 잘 말해준다.

이런 박은성이 지휘하는 드보르자크 교향곡 7번은 어떨까? 기대된다.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드보르자크 교향곡 7번》 연주회 (지휘: 박은성 · 협연: 박경민)

― 티켓 예매 ―

고양아람누리
http://www.artgy.or.kr/PF/PF0201V.aspx?showid=0000003396

인터파크
http://ticket.interpark.com/Ticket/Goods/GoodsInfo.asp?MN=Y&GoodsCode=11013625

2011년 11월 15일 화요일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드보르자크 교향곡 7번》 (지휘: 박은성 · 협연: 박경민)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드보르자크 교향곡 7번》 연주회 (지휘: 박은성 · 협연: 박경민)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드보르자크 교향곡 7번》

  • 2011년 11월 19일 토요일 저녁 8시
  •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 (하이든홀)
  • 초등학생 이상 입장가
  • 입장권: A석 3만원 / B석 2만원

프로그램

  • 베버 ― 《마탄의 사수》 서곡
  • 월튼 ― 비올라 협주곡 (협연: 박경민)
  • 드보르자크 ― 교향곡 7번 d단조

한국 지휘계의 거목이 떠오르는 별을 만나다

경기도(도지사: 김문수)와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예술감독: 구자범)는 《드보르자크 교향곡 7번》 연주회를 11월 19일 토요일 8시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에서 개최한다.

이번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회에서는 박은성 지휘자가 객원 지휘하며, 베버 《마탄의 사수》 서곡과 월튼 비올라 협주곡, 드보르자크 교향곡 7번을 연주한다.

협연자 박경민 씨는 예원학교에 입학한 해에 어린 나이로 오스트리아에서 유학하고 현재 독일에서 활동 중인 젊은 비올라 연주자이다. 2008년부터 사이먼 래틀, 클라우디오 아바도, 다니엘 바렌보임, 크리스토프 폰 도흐나니 등 거장 지휘자들과 함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최연소 객원 연주자로 활동한 경력이 있고, 레오니다스 카바코스(Leonidas Kavakos), 콜야 블라허(Kolja Blacher) 등 세계 정상급 연주자들과 함께 실내악을 연주하기도 했다.

박경민 씨는 지난해 영국 라이오넬 테르티스(Lionel Tertis) 국제 비올라 콩쿠르에서 2등 수상한 바 있는데, 라이오넬 테르티스는 이번 연주회에서 박경민 씨가 협연할 월튼 비올라 협주곡과 인연이 있는 연주자이기도 하다. 월튼은 본디 테르티스를 위해 이 곡을 썼다. 그러나 테르티스는 이 작품을 그다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아 초연 제의를 거절했고, 파울 힌데미트가 대신 초연했다. 테르티스는 나중에 월튼의 작품세계를 이해하지 못했음을 부끄러워하고 뉘우쳤으며, 이 작품을 걸작으로 평가했다.

라이오넬 테르티스 국제 비올라 콩루르 2등 수상!
레오니다스 카바코스 등 거장 연주자들과 협연 경력!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젊고 재능 있는 음악인에게 무대를 경험할 기회를 주고자 인포머티브 오디션(Informative Audition)을 시행하고 있으며, 학력 등을 따지지 않고 실력만으로 평가하여 숨은 인재들에게 등용문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

[※ 인포머티브 오디션이란 공연 시스템이 잘 확립된 선진국에서 널리 시행하는 제도로, 이미 정해진 공연을 앞두고 연주자를 구하는 오디션이 아니라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수시로 이루어지는 오디션을 말한다. 평소 인포머티브 오디션으로 얻어낸 연주자들의 실력 및 기타 정보는 나중에 열릴 연주회에 함께 할 연주자를 뽑는데 사용된다. 인포머티브 오디션은 관록만을 내세우는 연주자가 아니라 실력 있는 신인 연주자들을 발굴해 연주 기회를 주고 관객에게 소개하는 기회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이번 공연은 이와 비슷한 취지에서 유럽에서는 이미 재능을 인정받아 활동하고 있으나 국내에서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박경민 씨를 한국 지휘계의 거목 박은성이 소개하는 자리로 기획되었다. 대한민국 지휘계의 계보를 이어온 관록 있는 지휘자 박은성이 대한민국 음악계에 새로 떠오르는 별 박경민과 어떻게 하모니를 이룰지 기대된다.

카를 마리아 폰 베버 ― 《마탄의 사수》 서곡

Carl Maria von Weber ― Ouvertüre zur Oper »Der Freischütz«

오페라 《마탄의 사수》는 카를 마리아 폰 베버(Carl Maria von Weber)가 『요괴담』(Das Gespensterbuch)이라는 책을 읽고 영감을 받아 작곡한 오페라이다. 독일어 제목인 “Der Freischütz”는 영어로 풀어 쓰면 “The Free Shooter”에 해당하는데, 우리말로는 자유자재로 원하는 목표물을 맞출 수 있는 마술 탄환이라는 뜻을 살려 보통 《마탄의 사수》(魔彈의 射手)로 옮긴다. 이 오페라는 독일 오페라 양식의 뿌리라고도 할 수 있는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바그너 작품 세계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이번 연주회에서는 오페라 전곡 가운데 서곡이 연주된다.

윌리엄 월튼 ― 비올라 협주곡 (협연: 박경민)

William Walton ― Viola Concerto

월튼 비올라 협주곡은 1929년 작품으로 월튼이 프로코피예프 바이올린 협주곡 1번에 영향받아 쓴 곡이다. 때때로 조성이 흐려지거나 복조성이 사용되기도 하지만 조성 체계를 완전히 벗어나지 않으며 3악장은 조성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날카롭고 변칙적인 리듬과 냉소적인 우울함이 돋보이며, 악곡 형식은 변형된 소나타 형식과 론도 형식을 따른다.

비올라는 거칠고 어두운 음색 때문에 예로부터 독주 악기로 큰 주목을 받지 못한 악기다. 그러나 20세기에 와서 여러 작곡가가 비올라 음색에 가능성을 발견하여 훌륭한 비올라 곡을 남겼고, 그 가운데 협주곡으로는 월튼과 더불어 버르토크, 힌데미트 등이 쓴 작품이 특히 높은 평가를 받는다.

이번 연주회에서는 예원학교에 입학한 해에 어린 나이로 오스트리아에서 유학하고 현재 독일에서 활동 중인 젊은 비올리스트 박경민 씨가 협연을 맡는다.

안토닌 드보르자크 ― 교향곡 7번 d단조

Antonín Dvořák ― Symphony No. 7 in d minor

드보르자크 교향곡 7번은 작곡자가 브람스 교향곡 3번을 듣고 자극받아 쓴 곡으로, 때마침 런던 필하모닉 협회 명예 회원이 되면서 작품을 위촉받았다. 이 작품은 앞선 교향곡과 견주면 브람스 음악에 영향받아 체코 음악 양식이 옅어진 편이다. 그러나 작품에 담긴 민족주의적 자의식은 뚜렷하며, 이 곡을 쓸 당시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는 “내 마음속에는 사랑과 하느님과 내 조국이 있다”라고 썼다. 그런가 하면 느린 2악장 악보에는 “슬픈 나날로부터”라는 글귀가 있는데, 이것은 어머니의 죽음 및 첫 아이의 죽음과도 관련이 있다고 알려졌다.

협연자 : 비올리스트 박경민

비올리스트 박경민

2008년부터 사이먼 래틀, 클라우디오 아바도, 다니엘 바렌보임, 크리스토프 폰 도흐나니 등 거장 지휘자들과 함께 베를린 필 오케스트라 최연소 객원 연주
레오니다스 카바코스(Leonidas Kavakos), 콜야 블라허(Kolja Blacher), 슈테판 피카르트(Stephan Picard), 라르스 아네르스 톰테르(Lars Anders Tomter) 등과 함께 실내악 연주

비올리스트 노부코 이마이(Nobuko Imai), 하르트무트 로데(Hartmut Rohde), 바바라 베스트팔(Barbara Westphal), 폴커 야콥센(Volker Jacobsen), 빌프리트 슈트렐레(Wilfried Strehle; 베를린필 수석) 등에게 마스터클래스 참가

2006 빈 국립음대 비올라 전공 최연소 입학, 볼프강 클로스(Wolfgang Klos), 울리히 쇤아우어(Ulrich Schönauer) 사사
2008 빈 국립음대 재학 중 도독, 베를린 한스 아이슬러 국립음대 입학, 발터 퀴스너(Walter Küssner) 사사
2011 현재 베를린 한스 아이슬러 국립음대 디플롬 과정 중. 타베아 침머만(Tabea Zimmermann) 사사

2010 영국 라이오넬 테르티스(Lionel Tertis) 국제 비올라 콩쿠르 2등
2010 독일 알리스 잠터슈티프퉁(Alice Samter-Stiftung) 국제 실내악 콩쿠르 2등
2010 동아음악콩쿠르 1등
2008 슬로베니아 블레드 음악제(Festival Bled) 국제 콩쿠르 1등

지휘 : 박은성

1945년 10월 12일 함경북도 회령 출생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 수원시립교향악단 · 서울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 KBS교향악단 수색객원지휘자, 한양대학교 교수 등 역임
빈국립음악대학 지휘 석사, 오트마 주이트너 사사
1970년 국립교향악단 정기 연주회 지휘
음악비평가협회 제13회 음악대상 수상
한국음악상 수상

― 티켓 예매 ―

고양아람누리
http://www.artgy.or.kr/PF/PF0201V.aspx?showid=0000003396

인터파크
http://ticket.interpark.com/Ticket/Goods/GoodsInfo.asp?MN=Y&GoodsCode=11013625

2011년 10월 14일 금요일

본 윌리엄스 《탈리스 주제에 의한 환상곡》 해설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웹매거진과 연주회 소책자에 실린 글입니다.
원문: http://g-phil.kr/?p=409

레이프 본 윌리엄스(Ralph Vaughan Williams, 1872-1958)는 이름 표기를 주의해야 할 음악가이다. 영어 이름 "Ralph"는 '랄프' 또는 '레이프'라고 읽는데, 본 윌리엄스의 둘째 아내 우르술라가 쓴 전기에 따르면 그의 이름은 '레이프'[Rayf]로 읽어야 한다.

《탈리스 주제에 의한 환상곡》은 16세기 영국 작곡가 토머스 탈리스(Thomas Tallis)가 쓴 찬송가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16세기는 근대적인 조성과 화성 체계가 없을 때였고, 당시 작곡가들은 조성의 원형에 해당하는 교회선법(mode)과 16세기식 대위법 등을 바탕으로 작품을 썼다.

16세기 음악 양식은 조성음악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낯설고 새롭게 들린다. 이것은 조성 체계가 붕괴하던 20세기 초 작곡가들에게 돌파구가 되었으며, 《탈리스 주제에 의한 환상곡》 또한 그러한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본 윌리엄스가 이 곡을 쓴 1910년은 쇤베르크가 현악사중주 2번으로 무조음악 시대를 열어젖힌 뒤로 두 해째를 맞은 때였다. 무조음악에 찬성하지 않았던 본 윌리엄스는 차라리 16세기 음악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 탈리스 주제. ©Boosey & Hawkes

본 윌리엄스는 '탈리스 주제'를 곡 중간에 거의 그대로 쓰기도 했지만, 곳곳에서 선율을 조각내고 변형시키며 16세기 음악을 현대적인 음악 어법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 냈다. 화성과 조성 구조는 후기 낭만주의의 반음계적 어법과 통하며, 불균등하고 불규칙한 리듬과 악구(phrase) 구조는 영국 음악 전통에서 유래했으면서도 20세기 초 음악사적 흐름과도 맞닿는다. 그에 따라 영화 《반지의 제왕》에 배경음악으로 써도 어울릴 듯한 영국 분위기가 예스럽고도 현대적으로 살아난다.

이를테면 곡 첫머리에는 파이프 오르간 소리를 흉내 낸 듯한 화음이 나오고, 뒤이어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가 현을 손으로 뜯어 연주하는 이른바 '피치카토' 주법으로 '탈리스 주제' 첫머리 음형이 나온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활로 그어서 연주하는 이른바 '아르코' 주법으로 8분음표 음형이 뒤따른다.

'피치카토' 음형과 '아르코' 음형은 선율, 리듬, 화성, 음색 모두 차이가 뚜렷하다. '피치카토' 음형은 탈리스 주제에서 따왔고, '아르코' 음형은 본 윌리엄스가 덧붙인 것이다. 이것은 마치 묻고 답하는 식으로 대화를 나누는 듯하다. 이때 '아르코' 음형은 이른바 '안티폰'(antiphon)을 흉내 낸 것이라 하겠는데, 우리말로 '응답송'이라고도 하는 이것은 엄밀하게 설명하자면 길어질 테니 대충 비슷한 예를 들어 보겠다. "하늘 높은 데서는 하느님께 영광 / 땅에서는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 "주 예수 그리스도께 기도드리옵나이다. / 아멘." 《탈리스 주제에 의한 환상곡》에서는 16세기와 20세기가 이처럼 대화를 나눈다.

©Boosey & Hawkes

그런가 하면 작곡가가 교회 오르간 연주자였던 만큼 16~17세기 영국 오르간 소리를 흉내 낸 대목이 작품에 나타나기도 한다. 이 작품은 현악 사중주단과 현악 오케스트라, 그리고 현악 연주자 2-2-2-2-1명으로 이루어진 제2 오케스트라로 편성되어 있고, 음악학자 에드윈 에반스(Edwin Evans)를 좇자면 이것은 영국 오르간을 이루는 서로 다른 건반들(Solo, Great, Choir)에 각각 해당한다. 본 윌리엄스는 제2 오케스트라를 제1 오케스트라와 되도록 떨어트려 놓으라고 지시했는데, 이것이 오르간 음향 효과를 얼마만큼 재현할지는 연주회장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곡 중간에 나오는 비올라 독주와 바이올린-비올라 이중주에서 '탈리스 주제'가 어찌 변형되어 나타나는지 살펴보는 일도 재미있다. 그냥 들어도 너무나 아름다운 대목이니 악보에 익숙지 않은 사람도 기대하시라.


©Boosey & Hawkes

poster

― 티켓 예매 ―

인터파크
http://ticket.interpark.com/Ticket/Goods/GoodsInfo.asp?MN=Y&GoodsCode=11012294

2011년 10월 5일 수요일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브람스 교향곡 1번》 연주회 (지휘: 구자범 · 협연: 장성)

poster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브람스 교향곡 1번》 연주회

  • 2011년 10월 14일 금요일
  • 경기도문화의전당 행복한대극장
  • 중학생 이상 입장가
  • 입장권: A석 3만원 / B석 2만원

프로그램

  • 본 윌리엄스 ― 《탈리스 주제에 의한 환상곡》
  • 라벨 ― 피아노 협주곡 G장조 (협연: 장성)
  • 브람스 ― 교향곡 1번 c단조

본 윌리엄스 ― 《탈리스 주제에 의한 환상곡》

레이프 본 윌리엄스(Ralph Vaughan Williams, 1872-1958)는 이름 표기를 주의해야 할 음악가이다. 영어 이름 "Ralph"는 '랄프' 또는 '레이프'라고 읽는데, 본 윌리엄스의 둘째 아내 우르술라가 쓴 전기에 따르면 그의 이름은 '레이프'[Rayf]로 읽어야 한다.

《탈리스 주제에 의한 환상곡》은 16세기 영국 작곡가 토머스 탈리스(Thomas Tallis)가 쓴 찬송가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교회선법을 따르는 정선율(cantus firmus)과 16세기식 대위법, 아멘 종지(plagal cadence) 등으로 나타나는 고음악 양식에 영화 《반지의 제왕》에 배경음악으로 써도 어울릴 듯한 영국풍 선율이 더해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이 모든 것이 현대적인 음악 어법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본 윌리엄스 음악 양식을 이룬다. 화성과 조성 구조는 후기 낭만주의의 반음계적 어법과 통하며, 불균등하고 불규칙한 악구(phrase) 구조는 영국 음악 전통에서 유래했으면서도 20세기 초 음악사적 흐름과도 맞닿는다.

그런가 하면 작곡가가 교회 오르간 연주자였던 만큼 16~17세기 영국 오르간 소리를 흉내 낸 대목이 작품에 나타나기도 한다. 이 작품은 현악 사중주단과 현악 오케스트라, 그리고 현악 연주자 2-2-2-2-1명으로 이루어진 제2 오케스트라로 편성되어 있고, 음악학자 에드윈 에반스(Edwin Evans)를 좇자면 이것은 영국 오르간을 이루는 서로 다른 건반들(Solo, Great, Choir)에 각각 해당한다. 본 윌리엄스는 제2 오케스트라를 제1 오케스트라와 되도록 떨어트려 놓으라고 지시했는데, 이것이 오르간 음향 효과를 얼마만큼 재현할지는 연주회장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라벨 ― 피아노 협주곡 G장조

라벨 피아노 협주곡 G장조는 라벨이 1929~31년 사이에 쓴 곡으로 작곡가의 후기 음악 양식이 잘 드러나 있으며, 밝고 즐거운 선율과 재즈 리듬, 화려한 음색, 바스크 지방의 민속음악적 요소 등이 특징적이다. 바스크는 스페인과 프랑스 사이에 걸쳐 있는 지방이며, 라벨은 바스크계 어머니에게서 음악적인 영감을 받은 듯하다. 음악학자 이내선은 이 작품을 두고 "그 음악적인 성격으로 보아서 바스크 광시곡[rhapsody]이라 해도 무방하다"라고 논평했다.

라벨은 관현악법의 대가로 화려한 색채를 음악에 담아내는 능력이 탁월한 작곡가였다. 이 곡에서는 프랑스 음악 양식과 스페인 음악 양식이 어우러진 음 소재가 화려한 관현악법을 만나 더욱 빛나며, 채찍과 우드블록(Wood Block), 탐탐, 트라이앵글 등 다양한 타악기가 쓰이기도 했다. 이 곡은 또한 화려한 색채가 돋보이는 만큼 악기 하나하나에 까다로운 기교를 요구한다.

라벨이 이 작품에 재즈 리듬을 사용한 일은 재즈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미국에서는 그때까지만 해도 그리 흔치 않은 일이었으며, 이것을 두고 라벨은 “재즈는 현대 작곡가에게 매우 풍부하고 생생한 영감의 원천이며 재즈에 영향 받은 미국 작곡가들이 너무도 적다는 사실이 놀랍다”라고도 했다.

이번 연주회에서는 한국에서 영재 교육을 착실히 밟고 현재 독일에서 활동 중인 젊은 피아니스트 장성 씨가 협연을 맡는다. 지휘자 구자범이 이끄는 젊은 오케스트라 경기필이 어떤 해석으로 보여주게 될지 기대 된다.

라벨 피아노 협주곡 G장조는 음악 만화·드라마로 국내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던 『노다메 칸타빌레』 (니노미야 토모코 원작, TV 드라마와 애니메이션 등으로도 알려짐) 전체 이야기에서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곡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브람스 ― 교향곡 1번 c단조 작품 68

브람스 교향곡 1번은 양식적·미학적으로 베토벤 교향곡을 계승한 작품이다. 당시에 이름난 지휘자였던 한스 폰 뷜로우는 이 작품을 두고 '베토벤 교향곡 10번'이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이 말은 베토벤의 아류라는 뜻이 아니라 베토벤의 진정한 계승자라는 극찬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의 피날레 주요 주제는 베토벤 교향곡 9번 피날레 주요 주제와 닮은꼴이며, 도입부는 베토벤 교향곡 5번 제1 주제와 닮은꼴이다.

베토벤은 고전주의를 완성하고 낭만주의 시대를 열어젖힌 작곡가이며, 그 뒤로 베토벤은 후대 작곡가에게 넘을 수 없는 벽이 되었다. 따라서 베토벤을 창조적으로 계승하여 베토벤의 '후계자'라는 호칭을 얻는 일이 당시 작곡가에게 매우 중요한 과제였다. 브람스―한슬리크 진영과 바그너 진영이 파벌 싸움을 벌인 일은 널리 알려졌으며, 오늘날까지도 이와 관련한 논쟁이 일어나기도 한다.

베토벤은 고전주의를 넘어서 낭만주의 시대를 열었지만, 한편으로는 낭만주의적 선율과는 맞지 않는 모티프 변형 기법을 유산으로 남겼다. '베토벤 딜레마'를 해결하고자 작곡가마다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슈베르트는 베토벤을 닮은 도입부 선율을 발전부에서 앞세워 펼쳐 나가며 베토벤을 흉내 냈다. 멘델스존은 달콤한 가락을 대위법으로 겹쳐 베토벤을 이으려 했다. 리스트와 프랑크는 모티프 원형을 중심에 놓고 주변 요소를 네트워크로 묶어 바꿔나가는 기법을 개발했고, 바그너는 리스트를 흉내 냈다. 슈만은 짧게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아이디어로 '사투'를 벌였다.

브람스는 '편법'에 매달리지 않고 정공법을 썼다. 베토벤의 모티프 변형 기법을 극한으로 발전시킨 것이 그것이며, 쇤베르크는 이것을 '발전적 변주'(developing variation)라 이름 붙였다. '모범답안'을 내놓은 브람스는 작곡 기법만 따진다면 누구나 인정할 만한 베토벤의 후계자가 되었다.

협연자 : 피아니스트 장성

1986년생, 현재 하노버 국립음대 실내악 석사, 피아노 최고 연주자 과정 중
독일 하노버 국립음대 피아노 전문 연주자 과정 졸업 (블라디미르 크라이네프 사사)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사 졸업 (임종필 사사)
한국예술종합학교 16세 영재 입학
예원학교 수석 입학

Chopin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2011(Germany) 1등, 청중상
Valsesia Musica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Italy) 1등
KIMF Competition (U.S.A) 1등
Schubert International Piano Duo Competition (Czech) 1등, 슈베르트 특별상
Nagoya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Japan)최연소 1등, 일본 엑스포협회상, 실내악상
중앙일보콩쿠르, 난파음악콩쿠르, KBS신인음악콩쿠르 1등

KBS교향악단,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대전시향, KNUA 심포니오케스트라 등 협연

지휘자 : 구자범

연세대학교 철학과 졸업 후 동 대학원 철학과 재학 중 도독
독일 만하임 음대 대학원 지휘과 졸업
독일 하겐 시립 오페라 극장, 다름슈타트 국립 오페라 극장 지휘자
하노버 국립 오페라 극장 수석 지휘자
광주 시립교향악단 지휘자
현,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자

― 티켓 예매 ―

인터파크
http://ticket.interpark.com/Ticket/Goods/GoodsInfo.asp?MN=Y&GoodsCode=11012294

2011년 9월 23일 금요일

아르프, »Mémoire (추억)« für Flöte und Orchester

※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웹매거진에 실린 글입니다.

원본 출처: http://g-phil.kr/?p=342


글: 에마뉘엘 제라르 (김원철 옮김)

이 작품은 클라우스 아르프가 플루트 연주자 장클로드 제라르(Jean-Claude Jérard)를 위해 작곡한 네 번째 곡이다. 앞서 작곡한 곡으로는 플루트 독주와 녹음기 두 대를 위한 《토마토 샐러드》(Tomatensalat), 플루트, 하프, 타악기와 무용수를 위한 《사중주》(Quartett), 플루트 여섯 대를 위한 《현미경》(Mikroskopie)이 있다.

음악은 세 음짜리 세포가 플루트로 나타난 뒤에 악기를 옮겨 가며 진화한다. 이 모티프는 《토마토 샐러드》에서 되풀이되던 가락을 따온 것이며, 이것은 마치 기억이 떠오르고, 재빨리 잡아채이고, 넘겨져 회상되는 듯하다. 이러한 에코 현상, 다시 말해 자꾸만 서두르는 듯한 리듬은 조금씩 소리의 겉면을 이루어 악기군을 옮겨 다닌다.

두 번째 모티프인 짤막한 16분음 상행 음형이 현악기로 나타나고, 뒤이어 바순과 호른이 응답한다. 플루트가 앙상블 위로 솟아오르고, 모티프 사이를 옮겨 다니고, 압도하고, 앞을 예고한다. 절정에 이르면 새로운 모티프가 나타난다. 점8분음표―16분음표 하행 음형이 호른으로 나오고, 현악기 리듬은 그동안 조금씩 늘어나고 느려진다. 목관악기가 천천히 죽어가고, 플루트는 이러한 변형이 일어날 동안 조용하다. 플루트 가락이 되살아나자마자 리듬은 다시 느슨해진다.

플루트를 반주하는 현악기군과 클라리넷 두 대 소리가 시적인 긴 악구가 끝날 때까지 들린다. 이 소리마저 사그라지면 오보에 둘과 클라리넷 하나가 해결되지 못한 a단조 화음으로 남는다. 플루트 독주는 처음 두 마디를 뒤집은 음형과 함께 끝난다. 마치 기억이 작업하고, 유지되고, 저장되고, 진화하고, 쇠퇴했다가 때때로 다시 깨어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곡은 갑자기 멈춘다. 죽음이 어루만지는 순간 생각의 끈이 끊어지는 것처럼.

작곡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작품 속 기억은 개인적인 회상이 아닙니다. 이것은 추억을 일깨우도록 의도한 자극이며, 이 자극은 플루트가 일으키고 다른 악기로 옮겨가며 더욱 발전합니다." 클라우스 아르프는 함부르크 주립 오페라단에서 있었던 (장클로드 제라르와 아르프 자신의) 공통된 옛일을 암시하며 윙크와 함께 덧붙였다. "알려진 주제선율들이 가리키는 것이 있다면 모두 일부러 그렇게 한 것입니다." 잘 들어보고, 기억해 보자…

※ 옮긴이 주: 이 글은 음반 속지에 있는 글을 우리말로 옮긴 것입니다. 본디 문단 구분이 없는 글이었으나 옮긴이가 멋대로 문단을 나누었음을 밝힙니다.

☞ 미니멀리즘 음악에 대하여 (글: 서의석)

― 티켓 예매 ―

고양아람누리
http://www.artgy.or.kr/PF/PF0201V.aspx?showid=0000003323

인터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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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9월 22일 목요일

로미오와 쥴리엣 ― 순수한 사랑 이야기

※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웹매거진에 실린 글입니다.

원본 출처: http://g-phil.kr/?p=240

▲ 온라인 게임 《마비노기》 ©넥슨

위 그림은 ㈜넥슨에서 만든 온라인 게임 《마비노기》에 나오는 장면이다. 셰익스피어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을 바탕으로 했으되, 대사는 셰익스피어 희곡과 다르다. 이를테면 "밤의 망토"는 로미오 대사에 나오는 말이고, 위 자막에 해당하는 줄리엣 대사는 "밤의 가면이 내 얼굴을 가리지 않았다면 붉게 물든 내 뺨이 드러나고 말았겠죠"이다. 무엇보다 셰익스피어 희곡에서는 해골 괴물이 줄리엣을 공격한다거나 하지 않는다.

원작을 고치는 일이 잘못은 아니다. 사실은 셰익스피어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 또한 원작이 따로 있다. 아서 브룩(Arthur Brook)이 1562년에 발표한 서사시가 원작이며, 셰익스피어 작품과는 내용이 또 다르다. 셰익스피어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이 널리 알려지면서 오페라, 발레, 교향시, 영화 등으로 고친 작품이 곳곳에서 나왔고, 내용은 제각각이다. 이 가운데 오페라만 꼽아도 24개 작품 또는 그 이상이다.

왜 『로미오와 줄리엣』은 이토록 다양한 판본을 낳은 고전이 되었을까? 비극적인 반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위대한 작가 셰익스피어의 아름다운 글 등을 생각할 수 있겠다. 구자범 지휘자는 이와 관련해 재미있는 말을 했다. "어른들은 싸우는데, 아이들은 사랑을 나눈다. 아이들이야말로 세속적인 이해관계를 떠나 가장 순수한 사랑을 한다."

이번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음악회에서 연주될 네 가지 순수한 사랑 이야기를 살펴보자.

프로코피예프 《로미오와 쥴리엣》 조곡 2번에서는 이야기의 처음과 끝에 해당하는 두 곡이 연주된다.

구노 오페라 《로미오와 쥴리엣》과 번스타인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서는 이야기 중간에 해당하는 대목, 로미오와 쥴리엣이 만나서 사랑을 키워 가는 장면이 연주된다. 구노와 번스타인이 같은 장면을 어찌 달리 표현했는지 견주어 보자.

차이콥스키 환상 서곡 《로미오와 쥴리엣》은 이야기 전체를 관현악곡에 담은 작품이다.

이제, 로미오와 쥴리엣의 순수한 사랑 이야기를 가슴에 담고, 사랑하며 살자. 이것저것 따지고 드는 어른들은 본받지 말고, 자유롭게 사랑하며 살자. 행복한 로미오와 쥴리엣이 되자.

마지막으로 한 가지. 이번 음악회 제목은 〈로미오와 쥴리엣〉이다. 그러나 국립국어원에서 정한 표준외래어표기법을 좇자면 〈로미오와 줄리엣〉이라 써야 옳다. 이번 음악회에서 경기필하모닉은 이 사실을 알면서도 일부러 틀리게 썼다. 쥴리엣이라 쓰면 더 예쁘기 때문이다. 다만, 셰익스피어 희곡 제목을 쓸 때만큼은 외래어표기법에 맞게 썼다.

프로코피예프 《로미오와 쥴리엣》 모음곡 제2번

※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웹매거진에 실린 글입니다. 원본과 내용이 조금 다릅니다.

원본 출처: http://g-phil.kr/?p=237

프로코피예프는 1935년에 작곡한 발레 음악 《로미오와 쥴리엣》을 간추려 조곡(모음곡)을 3곡 만들었다. 이번 청소년 커플을 위한 음악회에서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조곡 제2번 중에서 발췌해 연주한다.

▶ 제1곡 : 몬타규 가(家)와 카풀렛 가(家)

사이 나쁜 두 귀족 집안 기사들이 만난 날. 분위기가 사납다. 짧고 강렬한 도입부가 끝나면, 저음 현이 기사들 발걸음처럼 쿵쾅거린다. 서늘한 긴장감을 담은 바이올린 선율이 이어진다.

▲ "기사들의 춤" 주제.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3.0 - Non-PD US, Non-PD EU

마침내 두 집안 기사들이 만나 으르렁거린다. 사나운 호른 선율이 터져 나오고, 이것이 트롬본, 튜바, 트럼펫 등으로 옮겨가며 긴장감을 높인다.

무릇 싸움 구경은 불구경만큼이나 재미난 법. 이 강렬한 분위기 때문에 '딥 퍼플' 등 록 음악가들도 이 곡을 연주한 일이 있다. 또한 이 곡은 영국 축구팀 '선덜랜드'가 입장할 때 배경음악으로 쓰기도 했으며, NFL 미식축구가 영국에서 방영될 때 주제 음악으로 쓰이기도 했다. 영화 《칼리굴라》 등에서도 이 곡이 쓰였다.

▲ "적개심(antagonism)" 주제. "기사들의 춤" 주제와 겹친다.

그래도 무도회는 열리고, 쥴리엣과 패리스 백작이 춤을 춘다. 패리스 백작은 쥴리엣과 결혼하고 싶어하는데, 쥴리엣은 아직 로미오를 만난 일이 없다. 플루트, 하프, 첼레스타가 이끄는 음악은 아름다운 쥴리엣 모습을 돋보이게끔 한다. 사뿐사뿐한 춤이 끝나면 다시 기사들이 서로 으르렁거린다.

▲ "쥴리엣과 패리스" 주제, 플루트 선율.

▶ 제2곡 : 쥴리엣 아가씨

제목 그대로이며 말이 필요 없다. 쾌활한 쥴리엣, 새침한 쥴리엣, 청순한 쥴리엣이 눈에 보일 듯한 음악이다.

▶ 제5곡 : 이별을 앞둔 로미오와 쥴리엣

쥴리엣의 침실. 달콤한 플루트 선율이 한참 흐른다. 짧은 클라리넷 선율에 이어 첼로와 바이올린 등이 연주하는 이른바 '사랑의 주제'가 나타난다.

▲ 플루트 주제

▲ 사랑의 주제

이제 헤어질 시간. 두 사람은 마지막으로 꼭 껴안는다. 독주 비올라, 클라리넷, 색소폰, 바이올린 등으로 선율이 이어지며 음악이 조금씩 부풀어 오른다. 뒤이어 플루트 주제와 사랑의 주제가 금관으로 찬가처럼 터져 나오며 음악이 절정에 이른다.

▲ '마지막 껴안음' 주제

로미오는 떠나고, 쥴리엣은 프란체스코 수도회 로렌스 수사를 만나 가짜 독약을 얻는다. 쥴리엣의 각오를 나타내는 플루트 선율이 불길하게 흐른다. 뒤이어 튜바와 콘트라베이스로 "죽음의 주제"가 나타난다.

▲ 불길한 플루트 선율

▲ 죽음의 주제. 불길한 플루트 선율과 겹쳐 나온다.

▶ 제7곡: 로미오와 쥴리엣의 무덤

제5곡에 나왔던 죽음의 주제가 바이올린으로 서럽게 이어진다. 금관이 선율을 받아 크게 부풀어 오른다. 뒤이어 '마지막 껴안음' 주제가 애달프게 흐르고 나면, 죽음의 주제가 금관으로 목놓아 울부짖듯 터져 나온다. 쓸쓸한 선율이 이어지면서 음악이 끝난다.

로미오와 쥴리엣 ― 구노 vs. 번스타인

※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웹매거진에 실린 글입니다.

원본 출처: http://g-phil.kr/?p=227

구노 《로미오와 쥴리엣》은 셰익스피어 희곡에서 줄거리를 가져왔으되 노랫말은 새로 쓴 오페라이다. 번스타인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배경이 뉴욕 슬럼가로 바뀌었고, 주인공 이름도 '토니'와 '마리아'이다. 이 두 작품에서 같은 장면이 어떻게 달리 나타날까? 먼저 로미오가 줄리엣을 처음 봤을 때, 줄리엣이 노래하는 장면을 살펴보자.

▶ 청순가련 쥴리엣 vs 공주병 쥴리엣

구노 오페라에서는 19세기 유럽 남자들이 좋아했을 법한 청순가련형 쥴리엣이 나온다.

Ah!
Je veux vivre
Dans ce rêve qui m'enivre;
Ce jour encor,
Douce flamme,
Je te garde dans mon âme
Comme un trésor!


아!
나 살고파라
이 꿈속에 취해서.
난 오늘도
달콤한 불꽃을
내 영혼에 간직하네
소중한 보물처럼!

Cette ivresse
De jeunesse
Ne dure, hélas! qu'un jour!
Puis vient l'heure
Où l'on pleure,
Le cœur cède à l'amour,
Et le bonheur fuit sans retour.


이 몽롱함
이 청춘을
누릴 날은, 아! 하루뿐!
그리고 때가 오면
눈물 흘리리,
사랑에 가슴이 무너지리,
행복은 영원히 떠나가리.

je veux vivre, etc.
Loin de l'hiver morose
Laisse-moi sommeiller
Et respirer la rose
Avant de l'effeuiller.


나 살고파라
우울한 겨울에서 벗어나.
나 잠자리
또 맡으리 장미 내음
꽃잎을 따기 전에.

Ah!
Douce flamme,
Reste dans mon âme
Comme un doux trésor
Longtemps encore!


아!
달콤한 불꽃이여,
머물러라 내 영혼에
소중한 보물처럼
오래오래!

번스타인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서는 20세기 미국 분위기에 맞는 말괄량이 공주병 쥴리엣이 나온다.

I feel pretty
Oh so pretty
I feel pretty and witty and gay
And I pity
Any girl who isn't me today


난 예쁘지
참 예쁘지
난 예쁘지 똑똑해 깜찍해
난 슬프지
너희는 나만큼 예쁘지 않네

I feel charming
Oh so charming
It's alarming how charming I feel
And so pretty
That I hardly can believe I'm real


난 귀엽지
참 귀엽지
놀라워 내가 이렇게 귀엽다니
참 예쁘지
말도 안 돼 이렇게 예쁘다니

See the pretty girl in that mirror there?
Who can that attractive girl be?
Such a pretty face
Such a pretty dress
Such a pretty smile
Such a pretty me!


보이니 저 거울 속 예쁜 애?
누가 저리도 아름다울까?
예뻐라 그 얼굴
예뻐라 그 드레스
예뻐라 그 웃음
예뻐라 그게 나!

I feel stunning
And entrancing
Feel like running
And dancing for joy
For I'm loved
By a pretty wonderful boy


눈부시지
빠져들지
난 달려가
춤추고 싶지
내게 반한
참 멋진 남자가 있지

I feel pretty
Oh so pretty
That the city should give me its key
A committee
Should be organized to honor me


난 예쁘지
참 예쁘지
온 도시가 날 맞아야지
위원회가 생겨야지
날 받들어야지

I feel dizzy
I feel sunny
I feel fizzy and funny and fine
And so pretty
Miss America can just resign
See the pretty girl in that mirror there
Who can that attractive girl be?
Such a pretty face
Such a pretty dress
Such a pretty smile
Such a pretty me!


어지럽지
눈부시지
톡톡 튀지 신 나지 기쁘지
참 예쁘지
미스 아메리카는 물러나야지.
보라지 저 거울 속 예쁜 애.
누가 저리도 아름다울까?
예뻐라 그 얼굴
예뻐라 그 드레스
예뻐라 그 웃음
예뻐라 그게 나!

I feel stunning
And entrancing
Feel like running and dancing for joy
For I'm loved
By a pretty wonderful boy


눈부시지
빠져들지
난 달려가
춤추고 싶지
내게 반한
참 멋진 남자가 있지

▶ 음유시인 로미오 vs. 네-이름을-부르리 로미오

로미오가 쥴리엣의 방 창가에서 부르는 세레나데를 견주어 보자. 구노 오페라에 나오는 19세기 로미오는 창문 앞에서 쥴리엣을 훔쳐 보는 모습이, 요즘 눈으로 보면 좀 궁상맞다.

L'amour! l'amour!
oui, son ardeur a troublé tout mon être!
Mais quelle soudaine clarté replendit
a cette fenêtre?
C'est là que dans la nuit rayonne sa beauté!


사랑! 사랑!
오, 정열이 나를 뒤흔드네!
그런데 왜 갑자기 밝은 빛이
창문에 비치는가?
여기가 밤이 아름다움을 뿜는 곳인가!

Ah! lève-toi, soleil!
fais palir les étoiles
Qui dans l'azur sans voiles,
Brillent au firmament!
Ah! lève-toi! parais!
Astre pur et charmant!


아! 떠올라라, 태양아!
별빛을 흐려라
푸른 하늘을 뒤덮어라
밝게 빛나라!
아! 떠올라라! 나타나라!
맑고 아름다운 별아!

Elle rêve! Elle denoue une boucle de cheveux,
Qui vient caresser sa joue!
Amour! amour!
porte lui mes vœux!
elle parle! qu'elle est belle! ah! je n'ai rien entendu!
Mais ses yeux parlent pour elle,
et mon cœur a répondu!
Ah! lève-toi, soleil!


그녀가 꿈꾼다! 땋은 머리를 풀었다,
뺨을 간질인다!
사랑! 사랑!
내 바람을 전해다오!
그녀가 말한다! 아름답구나! 아! 들리지 않아!
하지만 그녀 눈이 말하니,
내 가슴이 답했다!
아! 떠올라라, 태양아!

번스타인 뮤지컬에 나오는 20세기 로미오(토니)는 '마리아' 이름만 불러도 좋단다.

The most beautiful sound I ever heard:
Maria, Maria, Maria, Maria…


내가 들어본 가장 아름다운 소리
마리아, 마리아, 마리아, 마리아…

All the beautiful sounds of the world in a single word…
Maria, Maria, Maria, Maria…


세상 모든 아름다운 소리 한 낱말에 들어 있어
마리아, 마리아, 마리아, 마리아…

Maria!
I've just met a girl named Maria,
And suddenly that name
Will never be the same
To me.


마리아!
한 아가씨를 만났네 그 이름 마리아,
그 순간 그 이름
전과 같지 않으리
내겐.

Maria!
I've just kissed a girl named Maria,
And suddenly I've found
How wonderful a sound
Can be!


마리아!
한 아가씨와 키스했네 그 이름 마리아,
그 순간 알았네
소리가 얼마나 아름다워질 수
있는지.

Maria!
Say it loud and there's music playing,
Say it soft and it's almost like praying.


마리아!
소리치면 음악이 들리네,
속삭이면 기도처럼 들리네.

Maria,
I'll never stop saying Maria!


마리아,
나 끝없이 부르리 마리아!

Maria, Maria, Maria, Maria . . .


마리아, 마리아, 마리아, 마리아…

Maria!
Say it loud and there's music playing,
Say it soft and it's almost like praying.


마리아!
소리치면 음악이 들리네,
속삭이면 기도처럼 들리네.

Maria,
I'll never stop saying Maria!


마리아,
나 끝없이 부르리 마리아!

The most beautiful sound I ever heard.
Maria.


내가 들어본 가장 아름다운 소리.
마리아.

▶ 오 신성한 밤이여 vs. 잘자 내 꿈 꿔

이제 로미오와 쥴리엣이 사랑을 속삭이는 장면을 견주어 보자. 구노 오페라에서는 들키면 큰일 난다는 긴장감과 더불어 19세기식 '밀고 당기기' 연애 기술이 나온다.

ROMÉO
O nuit divine! Je t'implore,
Laisse mon coeur à ce rêve enchanté!
Je crains de m'éveiller
Et n'ose croire encore à sa réalité!


〈로미오〉
오 신성한 밤이여! 나 비나이다,
내 가슴 이 황홀한 꿈속에 두소서!
나 깨어나기 두렵나이다
이것이 사실이라 믿기지 않사오니.

JULIETTE
Roméo!


〈쥴리엣〉
로미오!

ROMÉO
Douce amie!


〈로미오〉
상냥한 벗이여!

JULIETTE
Un seul mot...puis adieu!
Quelqu'un ira demain te trouver!


〈쥴리엣〉 (현관에서 멈춰서며)
한마디만...그럼 잘 가세요!
내일 누가 그대를 찾으러 갈 거예요!

Sur ton âme,
Si tu me veux pour femme
Fais-moi dire quel jour,
À quelle heure, en quel lieu,
Sous le regard de Dieu
Notre union sera bénie!
Alors, O mon seigneur,
Soi mon unique loi!
Je te livre ma vie entière.
Je te livre ma vie entière.
Et je renie tout ce qui n'est pas toi!
Mais!...si ta tendresse ne veut de moi
Que de folles amours...
Ah! Je t'en conjure alors,
Par cette heure d'ivresse,
Ne me revois plus!
Ne me revois plus!
Et me laisse à la douleur
Qui remplira mes jours.


그대 영혼이
나를 아내로 맞고자 한다면
말해주어요 그날이 언제인지
어느 때, 어느 곳인지
하느님이 지켜보시어
우리 결혼 축복받으리!
그리고, 오 나의 주인이시여,
하나뿐인 율법이 돼 주어요!
내 모든 삶을 바치리.
내 모든 삶을 바치리.
그대가 아닌 모든 것을 버리리!
하지만!... 그대 내게 다정히 바라는 것이
오로지 사랑의 욕정뿐이라면…
아! 나 그대에게 간청하오니,
이 황홀한 시간을 끝으로,
이제 나를 보지 말아요!
이제 나를 보지 말아요!
그리고 나를 내버려 두어요
나 고통 속에 살아가리.

ROMÉO
Ah! je te l'ai dit,
je t'adore!
Dissipe ma nuit!
Sois l'aurore! Sois l'aurore!
Où va mon coeur, où vont mes yeux!
Dispose en reine,
dispose de ma vie.
Verse à mon âme inassouvie,
Verse à mon âme inassouvie,
Toute la lumière des cieux!


〈로미오〉 (쥴리엣 앞에 무릎을 꿇고)
아, 나 이미 그대에게 말했다오,
그대를 사랑한다고!
지나가라 밤이여!
오라 새벽이여! 오라 새벽이여!
내 가슴 가는 곳, 내 눈 가는 곳!
마음대로 하라, 여왕처럼
마음대로 하라, 내 삶을.
부어라, 채워지지 않는 내 영혼에
부어라, 채워지지 않는 내 영혼에
하늘의 모든 빛을 쏟아 부어라!

GERTRUDE (offstage)
Juliette!


〈제르트뤼드〉 (무대밖에서)
쥴리엣!

JULIETTE
On m'appelle!


〈쥴리엣〉
누가 저를 불러요!

ROMÉO
Ah! déjà!


〈로미오〉 (일어나 쥴리엣의 손을 잡으며)
아! 벌써!

JULIETTE
Ah, je tremble
Que l'on nous vois ensemble!


〈쥴리엣〉
아, 두려워요
우리 들키면 어쩌죠!

GERTRUDE
Juliette!


〈제르트뤼드〉 (말하며)
쥴리엣!

JULIETTE
Je viens...


〈쥴리엣〉
가고 있어요...

ROMÉO
Écoute-moi!


〈로미오〉
내 말 들어요!

JULIETTE
Ah!


〈쥴리엣〉
아!

ROMÉO
Non, non,
on ne t'appelle pas!


〈로미오〉 (그녀를 앞으로 끌어당기며)
아니에요, 아니에요!
그대를 부르는 게 아니에요!

JULIETTE
Plus bas! plus bas! parle plus bas!


〈쥴리엣〉
조용히! 조용히! 더 조용히 말해요!

ROMÉO
Ah! ne fuis pas encore!
Ah! ne fuis pas encore!
Laisse, laisse ma main
S'oublier en ta main -


〈로미오〉
아! 아직 가지 말아요!
아! 아직 가지 말아요!
내 손, 내 손이
그대 손안에서 잠들게 해요.

JULIETTE
Ah! l'on peut nous surprendre!
Ah! l'on peut nous surprendre!
Laisse, laisse ma main
S' échapper de ta main! Adieu!


〈쥴리엣〉
아! 누가 보면 어떡해요!
아! 누가 보면 어떡해요!
내 손, 내 손이
그대 손에서 벗어나게 해요! 안녕히!

ROMÉO
Adieu!


〈로미오〉
안녕히!

JULIETTE
Adieu!


〈쥴리엣〉
안녕히!

ROMÉO et JULIETTE
Adieu!
De cet adieu si douce est la tristesse
Que je voudrais te dire adieu
Jusqu'a demain!
De cet adieu, etc.


〈로미오와 쥴리엣〉
안녕히! 이제 헤어지리, 달콤하여라 슬픔마저도
나 그대에게 말하노라, 안녕히
내일이 올 때까지!
이제 헤어지리.

JULIETTE
Adieu mille fois!


〈쥴리엣〉
안녕히, 백만 번!

번스타인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서는 마리아(쥴리엣)를 아버지가 자꾸만 부른다. "가요! 간다고요!" 하고 말해 놓고서는, 둘이서 사랑을 속삭인다. 들키면 어쩌나 걱정도 안 되는지, 그저 세상에 둘 뿐이란다.

MARIA
Only you, you're the only thing I'll see forever
In my eyes in my words and in everything I do
Nothing else but you
Ever


〈마리아〉
오직 너, 너만을 바라볼게 언제까지나
내 눈에, 내 말에, 내 모든 행동에
너만이 있으리
언제나

TONY
And there's nothing for me but Maria
Every sight that I see is Maria


〈토니〉
나에겐 너뿐이야 마리아
내 눈엔 너만 보여 마리아

MARIA
Tony, Tony


〈마리아〉
토니, 토니

TONY
Always you, every thought I'll ever know
Everywhere I go you'll be


〈토니〉
언제나 너만 생각해
어디든 너와 함께해

TONY & MARIA
All the world is only you and me


〈토니 & 마리아〉
온 세상이 너와 나뿐이야

MARIA
Tonight, tonight
It all began tonight
I saw you and the world went away


〈마리아〉
오늘 밤, 오늘 밤
오늘 밤 모든 일이 시작됐어
너를 본 순간 세상이 사라졌어

Tonight, tonight
There's only you tonight
What you are, what you do, what you say


오늘 밤, 오늘 밤
오늘 밤 너밖에 없어
네 모습, 네 행동, 네 말밖에 없어

TONY
Today, all day I had the feeling
A miracle would happen
I know now I was right


〈토니〉
오늘, 온종일 난 느꼈지
기적이 일어나리란 걸
난 알아 그 느낌이 맞았어

TONY & MARIA
For here you are
And what was just a world is a star
Tonight


〈토니 & 마리아〉
왜냐면 여기 네가 있으니
또 세상은 별이 되었으니
오늘 밤

Tonight, tonight
The world is full of light
With suns and moons all over the place


오늘 밤, 오늘 밤
세상은 빛으로 가득해
해와 달이 모든 곳을 비추네

Tonight, tonight
The world is wild and bright
Going mad
Shooting sparks into space


오늘 밤, 오늘 밤
세상은 밝게 타올라
세차게 휘몰아치는
불꽃을 튀기네

Today, the world was just an address
A place for me to live in
No better than all right


오늘, 세상은 주소였을 뿐
내가 그곳에 살았을 뿐
그저 그뿐이었지

But here you are
And what was just a world is a star
Tonight


하지만 여기 네가 있으니
또 세상은 별이 되었으니
오늘 밤

Good night, good night
Sleep well and when you dream
Dream of me
Tonight


잘자, 잘자
편안히 잠자고
내 꿈 꿔
오늘 밤

※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대본을 쓴 작가 아서 로렌츠(Arthur Laurents)는 지난 5월 5일 향년 93세로 타계했다. 고인께 명복을.

힘겨워하는 연인을 위하여 ― 차이콥스키 환상 서곡 《로미오와 쥴리엣》

※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웹매거진에 실린 글입니다.

원본 출처: http://g-phil.kr/?p=224

이 작품은 짜임새를 따지면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가 있는 교향시라 할 수 있고, 소나타 형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 차이콥스키 교향곡 등에서 보이는 비극적 흐름이 이 곡에서도 나타나며, 차이콥스키는 셰익스피어 희곡 줄거리를 그대로 따라가기보다 슬픈 사랑 이야기를 차이콥스키다운 방식으로 풀어냈다고 할 수 있다.

프롤로그는 『로미오와 줄리엣』에 나오는 프란체스코 수도회 로렌스 수사를 나타내는 듯 슬프면서도 경건한 분위기이며, 비극을 들려주는 화자와 같은 역할을 한다.

▲ 프롤로그 주제: A조 클라리넷. ©Public Domain

뒤이어 격렬한 음악이 튀어나온다. 소나타 형식 제1 주제에 해당하며, 심벌즈가 끼어들면 '칼싸움' 느낌이 난다. 이번 청소년 커플을 위한 음악회에서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칼싸움'을 얼마나 실감 나게 하는지 귀담아들어 보자. 차이콥스키는 이 대목에서 사람이 죽고 사는 심각한 싸움을 그렸지만, 너무 어둡고 진지한 음악에 익숙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 대목에서 록 음악 듣듯이 가벼운 '헤드 뱅잉' 정도는 해도 좋지 않을까. (그러나 소리를 내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을 잊지 말자!)

▲ '칼싸움' 주제: 제1 바이올린.

'칼싸움' 주제가 지나가면 소나타 형식 제2 주제에 해당하는 아름다운 선율이 나타나는데, 이것을 '사랑의 주제'라 부른다. 이 대목은 TV 드라마 《세서미스트리트》, 애니메이션 《사우스 파크》, 영화 《재즈 싱어》(1927) 등 TV와 영화에서 곧잘 쓰여서 널리 알려졌다. 영화평론가 '듀나'는 이 음악이 너무나 자주 쓰인 까닭에 빛이 바랜 느낌이 있다며, "두 코믹한 연인들이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그들의 눈에 핑크색 하트를 달아주고 《로미오와 줄리엣》을 틀면 됩니다."라고도 했다.

▲ 사랑의 주제: 잉글리시 호른.

'사랑의 주제' 사이에 나오는, 마치 연인이 속삭이는 듯한 선율도 기억해둘 만하다. 그러나 악보를 인용한 세 주제만 기억해도 좋다. '칼싸움'이 더욱 사나워지고, '사랑의 주제'가 더욱 가슴 아프게 이어지고, '프롤로그' 주제가 곳곳에 나타나며 흘러가는 음악을 따라가 보자.

파국을 지나 '에필로그'에 해당하는 대목에 이르면 팀파니 소리가 마치 거스를 수 없는 운명처럼 무겁게 들려 온다. 장례식 장면에 해당하는 대목이다. 뒤이어 목관악기가 같은 선율을 나란히 연주할 때 눈시울이 뜨거워진다면, 당신은 이미 음악에 흠뻑 빠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어쩌면 당신은 힘겨운 사랑을 해보았을지도 모른다.

2011년 9월 16일 금요일

[인터뷰] 피아니스트 박종훈 ― ⑤

글: 김원철 · 정리: 박희은


※ 앞선 글 보기:

☞ [인터뷰] 피아니스트 박종훈 ― ①

☞ [인터뷰] 피아니스트 박종훈 ― ②

☞ [인터뷰] 피아니스트 박종훈 ― ③

☞ [인터뷰] 피아니스트 박종훈 ― ④


음반 프로듀서 박종훈

김원철: (음반) 프로듀서로서도 활동을 하셨다고 했는데, 그 이전에 어떤 학교를 다녔다거나, 그런 게 있나요?
박종훈: 아뇨. 저는 학교에서… 작곡도 그렇고 연주도 그렇고, 뭐 프로듀싱이나 녹음도… 녹음도 다 직접 제가 하거든요 지금? 근데 물론 학교를 다니면 좋지만, 정말 중요한 건 학교에서 배우는 게 아닌 거 같아요. 거기에 대한 열정이 있고 좋아하면, 파고들다보면 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김원철: 그럼 녹음에 대해서 어떻게 배우셨어요?
박종훈: 저는 어렸을 때부터 제가 치는 걸 녹음하고 싶어서… 처음에는 카세트로 시작을 했죠. 그러다 어떻게 하면 더 잘할까, 정말 조금씩 조금씩 알게 되다보니까 많이 알게 됐어요.
김원철: 특별히 누구한테 배운 건 아니군요?
박종훈: 그런건 없어요. 그래서 항상 녹음하러 가면 얘기 많이 하고 물어보고, 그게 반복이 되다 보니까 알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직접 장비 사서 해보고, 하면서 또 배우고. 실패도 많이 했지만 뭐 하여튼… 그런 식으로 곡쓰는 것도 그렇고, 녹음하는 것도 그렇고, 프로듀싱도 그렇고, 조금씩 조금씩 된 것 같아요.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겠지만, 음반 프로듀서 (레코딩 엔지니어) 일도 이론과 실제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들 한다. 박종훈은 장비를 사서 이것 저것 해보면서 실기 공부를 했고, 모자란 이론은 주위에 있는 전문가에게 물어볼 수 있었다. 어떤 레코딩 엔지니어는 학교에서 이론으로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어도 현장에서 악기 소리 하나 제대로 못 잡는다고 한탄하기도 하던데, 그와 견주면 박종훈은 어지간한 레코딩 전문 학교를 나온 것보다도 낫다고도 할 수 있겠다.)

김원철: 녹음할 때 어떤 마이크를 주로 즐겨 쓰시나요?
박종훈: 마이크요?
김원철: 네.
박종훈: 어… 글쎄, 뭐 악기마다 다르겠죠?
김원철: 피아노로 녹음할 때.
박종훈: 피아노는 노이만(Neumann)…
김원철: 제일 만만한게 노이만… 근데 가격은 절대 만만하지 않은… 으허허허…
박종훈: 맞아요. (웃음)


▲ 노이만 마이크의 위용

라디오 진행자 박종훈

김원철: FM 가정음악을 진행하셨는데, 그전에 방송을 해보신 적이 있었나요?
박종훈: 방송에 게스트로 나간 적은 많이 있지만 진행은 해본 적 없어요.
김원철: 방송을 하면은 무대랑은 또 달라서 떨렸을 것 같은데…
박종훈: 어휴, 엄청 떨려요 진짜.
김원철: 청심환 드시고 그러셨나요?
박종훈: 청심환까진 아니고 어쨌든 첫 한 서너 달은 엄청난 스트레스였어요. 제가 게스트로 나가서 얘기할때는 전혀 안 떨고 얘기를 굉장히 잘했는데, 이걸 내가 진행을 하면서 내가 진행하는 소리를 전국의 청취자들이 듣고 있다고 생각을 하면… 정말 이게… 엄청나게 떨려요.

김원철: 무대에서 사람이 눈 앞에 보이고 이런 거랑, 거기는 스튜디오엔 아무도 없는데, 꽉 막혀있고 그런 게 또 다르잖아요?
박종훈: 예. 그니깐. 그런데 대화를 하는 것처럼 해야 되니까… 아우 힘들었어요. 피디한테 쿠사리도 되게 많이 먹고… 그게 실시간으로 인터넷으로 반응이 올라오잖아요? 좋은 얘기도 있지만 나쁜 얘기도 많아요. 그거 보면 진짜 완전히… 숨고 싶고 막 죽고 싶고 그런… 그런 거 처음 느꼈어요. 진짜 태어나서…

김원철: 어우, 악플을 근절해야 됩니다. 으허허허…

(이 말, 농담이었지만, 해 놓고 나니 마음에 안 든다. '악플 근절'이란 말은 곧잘 '인터넷 실명제'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정부가 내놓은 해법이 인터넷 실명제(제한적 본인확인제)였지만, 실효성은 없고 오히려 부작용만 크다는 사실이 입증되고 있다. 무엇보다 인터넷 사이트가 해킹 당해서 내 주민등록번호가 털렸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넌더리가 난다.)

박종훈: 어떤 사람은… 하여튼 별의별게 다 많아요. 목소리 정말 깬다, 이게 무슨 DJ냐…
박희은: 어머!
김원철: 크하하하하…
박종훈: 이런 게 그것도 약한 편인데, 엄청 많이 올라왔어요.
박희은: 아, 약한 편이에요?
박종훈: 좋아하는 사람은 엄청나게 칭찬을 하고… 좀 시간이 지나니까, 익숙해지니까 괜찮은데, 잠을 못잤어요 처음엔. 근데 역시 연주가가 할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웃음)
김원철: 방송을 하면서 기억나는 에피소드같은 거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박종훈: 에피소드 엄청 많죠 어후… 제가 한번은 늦었어요. 생방송이잖아요, 아침에 1초라도 늦으면 안되는데. 그래서 KBS에 가는데 또 차가 막혀가지구 한 300미터 남겨놓고 차에서 내려서 전속력으로 뛰었어요. 전속력으로 뛰어가지고 스튜디오에 시그널 나갈 때 앉아가지고 끝나고 바로 멘트 시작하는데, 숨이 차가지고 말이 안 나오는 거예요. 막 헐떡헐떡하면서…

다함께: 큭큭큭큭…
박종훈: 오프닝 멘트를 겨우 끝냈어요. 그리고 나서 첫 음악이 나오는데, 메시지가 올라오는데… 박종훈 선생님 집에 무슨 일이 있으신거 아니냐고, 왜 울먹이면서 방송을 하시냐고, 혹시 나쁜 일 있을까봐 걱정이 된다… 그런 것들이 막 올라오는 거예요. (웃음) 늦었다고 어떻게 얘기를 해야되는데. (웃음) 그래가지고 뭐 그런… 시간 땜에 그런 일이 되게 많았던 거 같아요.

박희은: 매일매일 안 쉬고 하시는거죠.
박종훈: 매일 했었죠. 주말엔 녹음… 그래서 이탈리아 갔다올 때는 미리 녹음을 해요. 미리 녹음을 하면 9시부터 10시까지 생방을 하고, 잠깐 쉬고 한 프로그램 녹음하고 잠깐 쉬고, 또 한 프로그램 녹음해요. 그럼 하루가 다가요. 연습이고 음악이고 작곡이고, 뭐 아무것도 할 시간이 없어요. 그러다보니까 너무 소모가 많은 것 같아서 그만뒀죠.

김원철: 음…
박희은: 역시 연주가 본업이시니까.
박종훈: 예, 그런 거 같아요.

음악가가 되지 않았다면

박희은: 선생님은 이력이나 이런 걸 들어보면 보통 잘치는 클래식 피아니스트들이라고 해도 갖지 못한 재능을 많이 가지고 계시잖아요? 뭐 곡도 편하게 그냥 쓰실 수 있으시고, 녹음도 하다보니 됐어요. 이런 것들을 가지고 계신데, 만약에 음악가가 되지 않았을 그런 미래도 한번 상상을 해보신 적이 있나요? 만약에 안됐다면 뭐가 됐을까 이런…

박종훈: 어, 그럼요. 저는 어쨌든 뭔가를 만드는 걸 했을 것 같아요.
박희은: 창작을 하는 걸요?
박종훈: 창작을 하거나 보여주거나 그런걸… 요리, 되게 하고 싶었어요.
박희은: 요리요?
박종훈: 예.
김원철: 잘하세요?
박종훈: 요리에 한번 미쳤던 적이 있어요. 딱 그때, 피아노 그만두고 싶었을 때. (웃음)
박희은: 아. (웃음)
박종훈: 뉴욕에 방송이 있는데, 24시간 요리 프로그램만 하는 거예요. 하루종일 아침에 일어나면 틀어놓고 항~상 보고 있었어요.
박희은: 따라서 만들어보기도 하시고요?
박종훈: 예. 만들어보기도 하고.
김원철: 어떤 요리를 좋아하시나요?
박종훈: 제가 하는거요?
김원철: 예.
박종훈: 하는 거는, 그때는 되게 퓨전, 프렌치 퓨전 많이 따라해 보고 했었어요. 한국요리는 그렇게 잘은 못해요.
김원철: 자신있게 할 수 있는 요리는 퓨전 쪽인 거예요?
박종훈: 그때는 퓨전 프렌치 많이 했었고, 자신있는 거는 몇 개가 있는데… (웃음) 몇개가 있어요. 그거는 정말 제가 최고라고 생각해요.
김원철: 어떤 걸 그렇게 생각하실까요?
박종훈: 어… 이태리 요리 중에 아마트리치아나 그런 거… 서울에 어느 레스토랑보다도 맛있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박희은: 오오. (웃음)
김원철: 오! 한번 얻어먹어보고 싶은… (웃음)
박종훈: 이태리에선 모르겠어요. 이태리에선 모르겠는데, 서울에서는 제가 먹고 만족을 한적이 없어요. 단 한 번도 없어요.
박희은: 부인분도 되게 좋아하시겠어요.
박종훈: 아, 쟤가 좀 짠 걸 안 좋아해가지고. (웃음) 제가 좀 짜게 하거든요. 고기를 그렇게 별로 많이 안 넣어요.

박희은: 음악가로서 성공할려면 어떤 게 가장 중요할까요?
박종훈: 제가 지나고 나서 느낀건데요, 포기하면 안 돼요. 될 때까지 해야… 근데 물론 음악이 어렸을때 안 하면 안 되는 것들이 많이 있어가지고, 좀 무모하게 나이 들어가지고 하는건 좀 아니긴 한데, 어쨌든… 일단 포기하지 말고 하고 좀더 음악적으로 생각한다면, 음악을 진짜 음악으로 느끼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고.

박희은: 약간 비슷한 질문인데, 입장을 바꿔서, 음악가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최소조건 같은 게 있다면 어떤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박종훈: 어… 재능이 있어야죠. 그니까 몰라도 자기가 모르는데도 할 수 있는 재능.

루비스폴카, 강아지가 팔짝!

김원철: 루비스폴카, 라는 음반 레이블이기도 하고 기획사 역할도 하고, 이걸 직접 세우셨어요. 그런데 보니까는 '루비'가 박종훈 선생님의 어떤 별명같은 거예요?
박종훈: 아뇨. 저희 기르는 강아지에요.
김원철: 아~ 그래서 루비구나!
박종훈: 제가 보여드릴께요. (음반을 가지고 온다.)
박종훈: 음반이 지금 몇 장 없어가지고… 뜯어 드릴께요. 뜯어 봐야지 이게…
박희은: 종이 뭐에요?
박종훈: 코커스파니엘.
박희은: 아!

다함께: 오오오옷!
박종훈: 이건 와이프가 그렸어요.
박희은: 오오! 우왕!
박종훈: 정말 이런 모습이 많이 있었거든요. 항상.
박희은: 그림만 봐도 따뜻한 감성을 가지신 분이라는 게 딱 보이네요. 우와!
박종훈: (웃음)
김원철: 아, 직접 그리신 거예요?
박종훈: 네.
박희은: 귀여워! (웃음)
김원철: 폴카는 그러고보니 강아지랑 잘 어울리는…
박종훈: 예. 강아지 팔짝 뛰는…
김원철: 특별히 폴카를 더 좋아하신다던가 그런 건…
박종훈: 아뇨, 그건 없었어요. 저는 곡이 그냥 강아지보고 생각나는 거를 만든건데 그냥 그 곡 이름이 회사이름이 되고…

김원철: 그게 기획사 역할도 하는 거는 좀 의외라고 생각했거든요. 국내에서 좀 잘나가려면 대형기획사, 이런데 좀 묻어가면 편할텐데, 직접 하시면은…
박종훈: 그래서 제가 루비스폴카 만들기 전에 ○○○에 4년 동안 있었는데, 거기서 프로듀싱 일도 많이 시작을 하고… 어쨌든 제 맘대로 못하는…
김원철: 아, 맘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거군요.
박종훈: 예.
김원철: 그런 점에서 대형 기획사는 되게 안 좋죠.
박종훈: 안 좋은 거죠.
김원철: 하기 싫은 곡도 막 연주해야되고.
박종훈: 그것도 그렇고, 하여튼 모든 게… 굉장히 복잡해요. 그 관계라는 게. 신경쓰고 싶지 않은 걸 신경쓸 일이 너무 많아서… 하여튼 회사를 만드니까 다른 문제들이 있더라고요. 운영을 해야되니까. (웃음)

박희은: 전혀 다른 분야잖아요.
박종훈: 전혀 다르죠.
김원철: 경영에 직접 뛰어들어보니까 어떤 어려움이 있던가요?
박종훈: 돈 벌기 힘들다.
다함께: 으하하하…
박희은: 힘든 거 말고, 이제 본인만의 레이블이 있어서 편한 거는 아무래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음악을 할 수 있다는?
박종훈: 음악에 간섭을 하는 사람이 없죠. 옛날에 유니버설에서 만들었을 때도, ○○○에서 만들었을 때도 간섭을 해요.
박희은: 연주에 대해서도 그렇게 참견을 하나요?
박종훈: 연주까진 아닌데…
박희은: 예.
박종훈: 곡.
박희은: 선곡?
박종훈: 특히 선곡. 그리고 작곡했을 때는 곡의 스타일, 그리고 가장 민감한 게 곡의 길이.
박희은: 아… 그럼 그 길이를 맞추기 위해서 만드신 곡을 짤라내라 뭐 이런 요구도 하고…
박종훈: 옛날에 ○○○에서 한 번 곡을 20분짜리를 만든 적이 있어요. 재즈 곡인데…
박희은: 음.
박종훈: 그때 사장이 저한테 다시는 이런 거 만들지 말라고 부탁을, 신신당부를 하더라고요. 근데 제가 사장이 되고 나니까 긴 곡 안만들어요.
다함께: 으하하하…
박종훈: 안팔리니까. (웃음)
김원철: 루비스폴카 레이블은 클래식 음악이랑 크로스오버랑 다 하는거 같은데, 어느 쪽에 좀 더 치중하고 있나요?
박종훈: 수익을 내는 거는 역시 크로스오버, 이지리스닝(easy-listening) 쪽이죠. 클래식 음반은 뭐, 다 적자예요. 음반이란 게 다 적자죠. 박칼린 얼굴 나오거나 이런 게 아니면.

김원철: 루비스폴카 소속 음악가들이랑, 꼭 그쪽 소속 아니더라도, 좀 키워줬으면 좋겠다, 재능있다 이 친구, 이런 음악가들은 누가 있을까요?
박종훈: 많이 있죠. 저는 키우는 건 다 키우고 싶죠. 어… 일단 저희 비올리스트 가영, 되게 열심히 하고 있고요, 되게 잘해요. 그담에… 저희 반도네오니스트가… 반도네온 있잖아요? 첫 앨범 준비하고 있거든요. 앞으로 중요한 뮤지션이 될 겁니다.

(※ 반도네온(bandoneón): 아코디언과 비슷한 악기로 탱고 음악 등에 곧잘 쓰인다.)

박희은: 발굴해서 키워주실 때 어떤 점을 가장 중요하게 보시나요?
박종훈: 음악적인 재능.
김원철: 정통 클래식 연주자 중에서 키워주고 싶은 사람은?
박종훈: 정통 클래식은 좀 힘들어요. 왜냐면 일단은 유학을 가야 되잖아요. 우리나라에서 아무리 콩쿠르 1등을 한다지만, 결국은 우리나라 음악이 아니고, 또 외국에서 성공을 해야 되기 때문에, 안 건드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박종훈: 정말 죄송한데요, 제가 11시반에 미팅이 있는데 그 전에 준비할 게 있어가지구.

(지금부터는 시간 끌기 작전.)

김원철: 11시… 그러면 몇가지만 더 물어볼게요. 음… 연주자들의 이름을 막 댈테니까, 간단하게 20자평을 생각나는대로 마구마구 말씀해 주세요.
박종훈: 다른사람이요?
김원철: 네. 손열음! 손열음은 어떤 음악가다?
박종훈: 아, 그런 거는 제가 좀…

(국내 연주자라서 부담스러웠을까. 일단 충격 요법으로 딴지일보에서 슬쩍한 깜짝 질문.)

김원철: 음, 그러면은 사각팬티를 즐겨입으십니까, 삼각팬티를 즐겨입으십니까?
박종훈: 나오나요 그게?!
김원철: (웃음) 아 맘에 안들면 지울 수도 있는데, 솔직하게 말씀해 주세요.
박종훈: 사각을 입어본 적이 없어요. (웃음);;
김원철: 아 삼각? 아, 사각을 안입는다고요?
박종훈: 입어본 적이 없어요.
김원철: 삼각파이시로군요.
다함께: 으하하하…
김원철: 사람이 작두를 탈 수 있을까요?
박종훈: 타지말란 법은 없죠.
김원철: 음, 직접 타는 걸 직접 본적이 있다거나 그런…
박종훈: 없어요.
김원철: UFO가 있을까요?
박종훈: UFO라는, 그 접시는 모르겠지만 외계인은 있다고 생각해요.
김원철: 음, 종교가 있으세요?
박종훈: 어, 저는 원래는… 원래는 천주교였는데, 거의 안나가니까 성당… 있다고 말씀드리기가 좀 그렇네요.
김원철: 특별히 그 종교를 버렸다 이런건 아니고 그냥…
박종훈: 아뇨, 신의 존재를 안믿는건 아닌데.
김원철: 그럼 좀, 나이롱 신자 뭐 이런?
다함께: 으하하하…
박종훈: 매주 뭘 하는 건 잘 못하겠더라고요.

(러시아 쪽 음악을 좋아하는 듯해서 러시아 피아니스트에 대해서 좀 더 물었다.)

김원철: 그러면, 어… 러시아 피아니스트 타티아나 니콜라예바, 이런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박종훈: 아, 니콜라예바는 제가 옛날에 쇼스타코비치 준비하면서 레코드를 엄청 많이 들었어요. 악보에 적혀있는 메트로놈 빠르기 있잖아요? 두 배는 느리게 쳐요.
김원철: 그렇죠.
박종훈: 그래서 제가 베르만 선생님한테 물어 봤어요. 그랬더니, 니콜라예바가 쇼스타코비치한테 가서 연주를 했대요 그렇게. 그랬더니 쇼스타코비치가 너~무 좋다고 칭찬했대요. 그래서 안 바꾸고 그렇게 친 거래요. 근데 쇼스타코비치란 사람이 원래 그렇게 친절한 사람이기도 하지만, 니콜라예바라는 피아니스트는 작곡가 앞에서, 작곡가가 이렇게 써놨는데, 자기는 이렇게 하고 싶다고 딱… 완전히 자아가 엄청나게 센 사람이에요. 연주에서 들리잖아요. 듣고 있으면 굉장히 압도를 당하고 멍하게 되는데, 그렇게는 안 치죠, 저는.

(답변이 길다. 시간 끌기 작전 성공.)

김원철: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테르.
박종훈: 어… 존경스러워요. 예.
김원철: 존경스럽다, 이런 거보다는 연주가 뭐 어떻더라…
박종훈: 어… 그, 제가 되게 추구하는 거를 완벽하게 구현하시는 거 같아요. 부러워요.
김원철: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박종훈: 호로비츠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피아니스트. 왜냐하면 연주가 완벽하지도 않고 해석이 완벽하지도 않고 헛점 투성이인데, 무대가 완벽해요.
김원철: 에밀 길렐스.
박종훈: (웃음) 글쎄… 대단한 거 같은데 좋아하진 않아요.

김원철: 하하, 네. 요기까지 하겠습니다.

박종훈은 장인 예술가다. 자신이 일구어 놓은 예술 세계에 대해 대단한 고집이 있어서, 생각한 바대로 밀어붙이려고 아예 음반사 겸 기획사를 차리기까지 했다.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에 대해 전문가가 될 때까지 매달린다. 그래서 클래식 음악 연주자로만 만족하지 못하고 재즈와 크로스오버 음악도 연주하고, 직접 편곡도 하고, 녹음까지 스스로 한다. 거기에 대단한 요리 실력까지.

이렇게 다재다능하고 자기 주장이 뚜렷한 박종훈이 연주하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은 어떨까? 기대 된다.

― 티켓 예매 ―

고양아람누리
http://www.artgy.or.kr/PF/PF0201V.aspx?showid=0000003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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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ticket.interpark.com/Ticket/Goods/GoodsInfo.asp?MN=Y&GoodsCode=110100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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