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16일 금요일

말러 교향곡 3번, 세계를 바라보는 여러 에피소드

※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웹매거진과 프로그램북에 실린 글입니다.


1896년 7월 17일, 교향곡 3번을 쓰던 말러에게 지휘자 브루노 발터가 찾아왔습니다. 슈타인바흐에 있던 집 주위에는 산과 호수가 있었는데, 경치를 구경하던 발터에게 말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그건 볼 필요 없어. 내 음악 속에 모두 담았거든."

이 말을 그저 허세 섞인 농담이라고만 여길 수는 없습니다. 말러는 실제로 교향곡 3번에 세계를 담고자 했고, '교향곡(Symphony)'이 가리키는 전통적인 의미를 해체하여 '함께'(Sym―) '울린다'(―phonos)라는 말뿌리만을 받아들였지요. 말러는 이런 말도 했습니다. "이 곡은 전통에 전혀 맞지 않기에 교향곡이라 부르는 일은 알맞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에게 교향곡이란 모든 기술적인 수단을 써서 세계를 이루는 것을 뜻한다."

1악장을 분석해 보면 전통적인 소나타 형식에 도무지 맞지 않는 짜임새 때문에 당황하게 됩니다. 도대체 어디까지가 제시부이고, 어디까지가 발전부일까요? 학자마다 제각각인 분석 내용을 이 글에서 굳이 인용하지는 않겠습니다. 감상자는 그저 음악에 담긴 세계를 듣고 느끼면 됩니다. 문제는 음악이 몹시 복잡하다는 것인데요. 세상이 본디 복잡하기는 하지만, 그 세상을 담은 음악은 상상력을 조금 보태면 더 쉽게 들을 수 있습니다.

1악장에는 "목신 판(Pan)이 깨어나고, 여름이 행진해온다"라는 표제가 붙어 있습니다. 말러는 자필악보 곳곳에 "선전포고!" "전령!" "폭도!" "전투 개시!" 등 전투와 관련된 말을 썼다가 출판하면서 지우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목신 판(Pan)이 군대를 이끌고 겨울을 물리친다는 이야기가 1악장에 들어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호른이 연주하는 도입 주제나 한참 지나서 나오는 행진곡 대목 등이 이런 설명과 어울립니다.

말러는 처음에 "바위산이 내게 말하는 것"이라는 표제를 붙였다가 없애기도 했는데, 이렇게 보면 이어지는 악장과 더불어 창세기에 나오는 천지창조 순서와 맞아떨어지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말러 스스로 1악장을 "생명과 영혼이 없는 무시무시한 단계"라고도 했습니다. 구자범 지휘자 선생님은 천지창조와는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세요. 다만 세계를 날것 그대로 보여주는 음악이지요. "바위산이 내게 말하는 것"이라는 말은 바위산이 바라보는 세계라 할 수 있겠고요. 바위산이 보기에 세상은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은 듯해요. 이를테면, 호른 도입부에 이어 나오는 음악은 장송행진곡입니다.

여기까지가 1부입니다. 2부에서는 꽃(2악장), 동물(3악장), 사람(4악장), 천사(5악장), 사랑(6악장)이 바라보는 세계를 에피소드처럼 들려줍니다. 들판의 꽃들이 바라보는 세계도 그리 평화롭지 않아요. 중간에 폭풍이 몰아치기도 하거든요. 숲 속 동물들은 (말러가 한 말처럼) 사람을 두려워합니다. 사람이 보는 세계에는 아주 심각한 노랫말이 있고요.

4악장 '인류가 내게 이야기하는 것'은 니체가 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가사를 따왔습니다. 그런데 여자 가수가 노래를 불러요. 이 가수는 5악장 '천사들이 내게 이야기하는 것'에서 '베드로'로 나오기도 하지요. 왜 남자가 아니라 여자가 노래할까요? 음악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남자냐 여자냐는 애초에 중요하지 않은 듯합니다. 구자범 지휘자 선생님은 이 작품에서 유일하게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는 이가 바로 이 여자 가수, 즉 차라투스트라와 베드로라고 하세요.

세계는 고통으로 가득하고, 쾌락은 큰 고통보다 깊은 곳에 있습니다(Lust—tiefer noch als Herzeleid). 구자범 선생님은 쾌락을 얻으려면 먼저 고통을 이겨야 한다는 뜻이라고 생각하세요. 고통을 이기고 행복을 얻으려면 '사랑'에서 답을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6악장 '사랑이 내게 이야기하는 것'이 이어집니다. 여기서 '사랑'이란 '에로스'가 아니라 '아가페'입니다. 그래서 이제까지 나온 에피소드가 아니라 '사랑이 바라보는 세계'가 진짜라 할 수 있지요.

말러는 본디 '어린이가 내게 이야기하는 것'을 7악장으로 삼으려고도 했습니다. 이것이 나중에 교향곡 4번 4악장 '천상의 삶'이 되었고요. 이걸 왜 빼버렸을까요? 그렇지 않아도 긴 곡이 너무 길어져서? 철학도 출신인 구자범 지휘자 선생님은 이렇게 생각하세요. 말러는 '어린이'가 '에로스'의 결과로 탄생한 것처럼 보일까 걱정했을 수도 있겠고, 이 작품이 니체 사상을 담은 것으로 오해받을까 걱정했을 수도 있어요. 어린이와 니체가 무슨 관계냐고요?

지난해 경기필이 연주했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기억나세요? 이 곡은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말한 정신 발전의 3단계를 음악으로 훌륭하게 나타낸 작품이지요. 그 3단계란 이렇습니다.

① 낙타의 단계: "권위와 주인에 의존하는" 단계
② 사자의 단계: "모든 의존적인 요소로부터 해방되는 단계" "자유를 얻기 위해서 싸우는 소극적 자유의 단계"
③ 어린아이의 단계: "어린아이처럼 자기 자신의 고유한 가치와 목표를 향해 몰입하는 단계" "적극적 자유의 단계"

그러니까 구자범 선생님은 차라투스트라가 말했던 깨달음의 단계인 '어린아이의 단계'를 말러가 이때 생각했을 거라고 하세요. 이와 관련해 더 자세한 내용은 경기필 웹매거진(g-phil.kr)을 참고하세요.

철학 얘기가 나오니까 좀 어렵나요? 니체 얘기는 여기까지만 할게요. 말러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결국 '사랑'입니다. 이게 가장 중요해요. 그리고 6악장 '사랑이 내게 이야기하는 것'은 말로 떠들기보다 그냥 가슴으로 느끼면 되는 음악입니다. 듣고 있으면 그야말로 사랑이 느껴지지요. 그런데 이렇게만 써놓으면 섭섭하니, 마음이 따듯해지는 시 한 수 인용할까 합니다.

이 시는 사실 말러 교향곡 3번과는 계절 감각도 안 맞고, 구자범 선생님 해석과도 안 맞아요. 그래도 저는 이 시가 6악장 '사랑이 내게 이야기하는 것'과 분위기가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한 가지만 생각하고 읽으면 내용도 제법 어울릴지 몰라요. 여기서 '사랑'이란 '신의 사랑'도 아니고, '어머니의 사랑'도 아닙니다. 그냥 숭고한 사랑, 아가페입니다. 이 시를 그렇게 읽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사시사철 눈오는 겨울의 은은한 베틀 소리가 들리는
아내의 나라에는
집집마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마을의 하늘과 아이들이 쉬고 있다.
마른가지의 난동(暖冬)의 빨간 열매가 수(繡)실로 뜨이는
눈 나린 이 겨울날
나무들은 신의 아내들이 짠 은빛의 털옷을 입고
저마다 깊은 내부의 겨울바다로 한없이 잦아들고
아내가 뜨는 바늘귀의 고요의 가봉(假縫)
털실을 잣는 아내의 손은
천사에게 주문 받은 아이들의 전생애의 옷을 짜고 있다.
설레이는 신의 겨울,
그 길고 먼 복도를 지내나와
사시사철 눈오는 겨울의 은은한 베틀 소리가 들리는
아내의 나라,
아내가 소요하는 회잉(懷孕)의 고요 안에
아직 풀지 않은 올의 하늘을 안고
눈부신 장미의 알몸의 아이들이 노래하고 있다.
아직 우리가 눈뜨지 않고 지내며
어머니의 나라에서 누워 듣던 우뢰(雨雷)가
지금 새로 우리를 설레게 하고 있다.
눈이 와서 나무들마저 의식의 옷을 입고
축복받는 날.
아이들이 지껄이는 미래의 낱말들이
살아서 부활하는 직조(織造)의 방에 누워
내 동상(凍傷)의 귀는 영원한 꿈의 재단(裁斷),
이 겨울날 조요로운 아내의 재봉일을 엿듣고 있다.

― 김종철, 「재봉」

― 티켓 예매 ―

인터파크
http://ticket.interpark.com/Ticket/Goods/GoodsInfo.asp?GoodsCode=1200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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