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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월 9일 목요일

소프라노 임선혜 2020년 인터뷰

제가 예전에 했던 인터뷰인데 공연이 성사되지 못해서 잊어버리고 있다가 이번에 발견해서 올려 둡니다. 인터뷰에서 말한 공연은 코로나-19로 인해 2020 통영국제음악제 전체가 취소되어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외트뵈시 ‹시크릿 키스›는 2024 통영국제음악제에서 소프라노 소피아 부르고스 협연, 바스 비허르스 지휘 클랑포룸 빈 공연으로 한국초연됐습니다.


Q. 최근에 새 음반을 내시고 서울에서 쇼케이스도 하셨습니다. 음반 자랑 좀 해주세요.

A. 새 음반은 고대의 가장 슬픈 사랑의 운명을 가진 여인이라 할 수 있는 ‘다이도’(Dido, Didone 디도, 디도네)의 노래만으로 엮은 것입니다. 권력에 눈이 먼 남동생이 그녀의 남편을 죽이고 왕의 자리를 차지하자 다른 나라로 피신해 카르타고라는 왕국을 세운 영리하고 기지가 있으며 의기당당한 다이도. 그녀는 이탈리아로 가던 길에 이곳에 당도한 전사 아에네아스와 사랑에 빠지고 행복해하지만 그는 어느 날 자신의 목표를 상기하고는 한마디 말도 없이 배를 타고 떠납니다. 돌아오라는 외침에도 답이 없는 애인의 배신으로 슬픔, 절망, 치욕을 느끼는 사이 그녀의 왕국 카르타고는 불타기 시작하고, 그녀는 자신의 고단했던 운명에 이별을 고하며 불에 뛰어들고 맙니다. ‘버림받은 다이도’는 메타스타지오의 오페라 대본가로서의 데뷔작인데 당시 너무도 인기여서 무려 60편의 음악 작품이 탄생했다지요. 이 중 18세기 이탈리아 스타일로 쓰여진 곡들만 모은 것인데, 한 평론가는 ‘노래 시작 몇 초만에 감전된 듯’ 하다며 ‘전적으로 센세이셔널, 압도적이다’라고 음반에 호평을 했네요. 서독일라디오방송에서는, 덜 유명한 작품들로 이루어졌지만 가치 높은 작품들을 알게 한 이 음반은 노래와 반주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라고 극찬을, 베를린라디오에서는 ‘선혜 임은 음들을 유연하게 파도타는 노련한 비치 서퍼’ 같다며, '15년 전 음반들과 비교했을 때 이제 더 이상 기교로 지저귀는 새가 아니라 서정적이고 내적인 것을 노래하는 새로운 깃털로 갈아입은 것 같다’라는 재밌는 표현을 선물해 주었네요. 20년 만에 털갈이 한 건가요? ^^ ‘비치 서퍼’라는 새로운 별명이 이제 더 맘에 듭니다! ^^

Q. 2015년 베를린 고음악 아카데미 공연, 2017년 뤼벡 합창 아카데미의 바흐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 공연 이후 이번이 세 번째로 통영국제음악당에서 공연하실 예정이신데요, 이번에 다시 한번 협연할 뤼벡 합창 아카데미는 임선혜 선생님께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나요?

A. 통영국제음악당은 명실상부 국내 최고의 음향을 자랑하는, 외국 음악가들에게도 유명해진 공연장입니다. 두 번 다녀간 적이 있지만 페스티벌에 참가하는 것은 처음이어서 또 다르고 특별한 기분인데요. 이제 그 역사와 전통을 조화롭게 이루어낸 이 음악제는 한국을 대표하는 국제 음악제로 외국에서도 유명해졌기 때문입니다.

합창에 열정이 대단한 롤프 백 지휘자님이 이끄는 이 아카데미와의 재회도 반갑습니다. 독일적 합창 전통을 이어가지만 여러 나라의 젊은 성악가들로 이루어진 합창단이어서 그 울림이 더 특별하지요. 더구나 이번 페스티벌에서는, 드라마틱함 뿐 아니라 가사의 유머러스한 표현과 재치 있는 리듬을 선사할 ‘카르미나 부라나’로 함께 하게 되어 그들의 활약이 몹시 기대가 됩니다. 

Q. 뤼벡 합창 아카데미와 협연할 '카르미나 부라나'는 소프라노 입장에서 어떤 곡인가요? 이 곡을 전에 공연하셨던 경험도 궁금합니다. 

A. 늘 기회가 안 맞았다가 마침내 지난해 여름, 크리스토프 포펜(Christoph Poppen)이 음악감독으로 있는 포르투갈의 ‘마르방 페스티벌’에서 역시 폐막 야외 공연을 했습니다. 저의 독일 스승 롤란트 헤르만(Roland Hermann) 선생님은 작곡가 칼 오르프의 많은 작품을 그의 지휘로 노래하고 녹음하고, 초연도 한 분이어서 이 작품에 관한 이야기는 그간 많이 들었습니다.

1936년 작품인 ‹카르미나 부라나›는 칼 오르프의 대표작이자 출세작임이 틀림없죠. 특히 이 작품의 첫 번째 악장인 ‘오 운명의 여신이여 (O Fortuna)’ 는 누구라도 들어본 적이 있을 만큼 영화나 TV 광고에 많이 등장하는데 영국 BBC 방송국에 따르면 2009년 말 기준으로 가장 많이 연주된 클래식 음악으로 꼽혔다는군요. 제목을 해석하면 ‘보이언의 노래’라는 뜻인데, 옛부터 베네딕토 수도원이 있는 곳의 지역 이름이 바로 보이언입니다. 11-13세기에 수도자들이나 음유시인들이 쓴 세속적인 노래를 슈멜러(Johann A. Schmeller)가 1847년에 ‘카르미나 부라나’로 엮었는데, 거기서 발췌해 오르프가 그 음악적으로 세팅을 한 것입니다. 가사는 현대 유럽인들에게도 익숙하지 않는 세속 라틴어, 중세 독일어, 고(옛) 불어로 되어있는데, 그보다 단순한 화성과 큰 다이내믹, 유머러스한 리듬으로 듣는 이로 하여금 그 분위기에 금방 젖게 하는 대중성을 가지고 있지요. 

소프라노는 '사랑의 뜰’이라는 악장부터 등장해서 남녀의 사랑 에피소드를 전하는데 마침내 사랑하는 이에게, ‘사랑스런이여, 아~ 나의 모든 것을 바치리!’ 하며 클라이맥스를 만듭니다. 그 전 넘버가 노래하는 사람도 어깨춤을 추게 될 만큼 유쾌하고 재밌는 곡이기에 갑자기 그 노래를 멈추고 사랑을 고백하는 이 4마디는 분위기상으로도 좀 급작스러운데요, 지금껏 중저음을 주로 노래하다가 '높은 레(high D)’를 내야 하는 소프라노에게도 그러하지요.^^ 그 네 마디 안에 도약이 큰 널뛰기로 올라간 고음에서 페르마타로 머물며 사랑하는 이를 부르고, 기품 있게 또는 빠르게 하강하는 셋잇단음표들, 그리고 스타카토로 조심스럽게 올라 마침내 고음에 도달하여 사랑의 탄성을 완성한 후 ‘내 모든 것을 주겠다’고 강조하면 마침내 그 임무를 완성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스릴 넘치는 4마디라고 해도 될까요! ^^ 물론 임무를 잘 완성한 다음의 카타르시스는 어마어마합니다!^^

Q. 리사이틀 프로그램 중에 윤이상 초기 가곡 중 '그네'와 '달무리'가 있습니다. 어떤 곡이며 이 곡을 부를 때 어떤 발성 원칙이 필요할까요?

A. 1994년 발간된 ‹윤이상 초기 가곡집› 첫 페이지에 윤이상 선생님께서 직접 쓰신 글이 있는데 이 글이 그 무엇보다 좋은 대답이 되지 않을까 싶어 적어봅니다.

“이 책을 내면서 나는 1950년에 부산에서 "달무리” 라는 가곡집을 출판한 바 있다. 책이 몇 군데 서울과 부산의 책방에 배부된 직후에 전쟁이 일어나 종적을 잃어버리고 이 곡들의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았다. 그 뒤에 한두 곡이 종합가곡집에 실린 일도 있으나 40년이 지난 오늘, 나는 이 5개의 가곡을 묶어 원형 그대로 출판하면서 다시 우리 민족 앞에 늦으나마 선보이고자 한다. 이 곡들 은 1945년을 전후하여 작곡되었으며, 우리 민족의 그 시기의 작곡적인 소재지를 모색, 검토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곡들을 다시 냄에 있어서 내가 바라는 것은, 비록 성악가가 서양 발성법을 구사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약간의 우리 전통 음악이나 민요의 선적, 율동적, 색채적인 묘미를 가미해서 불러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1994년 6월 20일 베를린에서

윤이상"

“그네"는 통영 출신 시인 초정 김상억의 ‘추천(그네)’라는 시에 붙인 곡입니다. 동향인 두 분이 20대에 의기투합해 만든 다른 작품으로 ‘봉선화’ (비 오자 장독간에...)가 있는데, 남망산 공원에 그 시비가 있다고 하지요. 윤이상 선생님은 이 시를 “편지”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가곡집에 실었습니다.

시인은 시 “무궁화”를 발표한 후 일본 경찰의 감시를 피해 함북 웅기로 유랑을 떠났다가 귀향해 ‘남원서점’을 경영하였고, 해방 후 김춘수 등과 통영문화협회를 조직하여 예술운동을 했으며, 11월 삼천포문화동지회를 창립, 한글운동, 교가 보급운동을 이끌었습니다.  

“달무리”는 청록파 시인 중 한 분인 박목월의 시로 ‹청록집›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시인 박목월은 정지용 선생이 ‹문장›에서 ‘북에는 소월이 있었으니 남에는 박목월이가 날 만하다’라고 했을 만큼 주목받았다고 합니다. 그의 필명 중 ‘월’도 존경하는 소월에서 따왔다고 하니 그에게 더없는 찬사였겠지요. 윤이상 선생님은 “달무리” 외에도 이 시인의 시 중 역시 ‹청록집›에 수록된 “나그네”에도 곡을 붙였습니다. 이 시는 이번 리사이틀에서 정태봉의 가곡으로 부를 것입니다. 

평소 윤이상 선생님의 초기 가곡을 많이 불렀는데, 이번에는 특별히 이 곡에 클라리넷과 같이 연주해 보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유럽에서 촉망받는 작곡가, 지휘자로 평가받는 윤한결의 편곡으로 클라리네티스트 김한과 같이 이 곡들을 이번 음악제에 선보이게 되어 기쁩니다.

윤한결은 곡 자체에 한국적인 요소가 많아 클라리넷의 유연함을 이용해 대위법적인 추임새를 추가해 보았다고 말합니다. 부디 우리 전통음악과 민요의 선적, 율동적, 색체적인 묘미를 강조하신 윤이상 선생님의 뜻에 후배들이 드리는 좋은 응답이 되기를 바랍니다.

Q. 김순남, 이건우, 나운영 등의 가곡은 어떤 매력이 있나요?

A. 한국 근대 현대음악사에서 1988년 납·월북음악인의 작품규제 해제조치’가 있기까지 작품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이데올로기적인 이유로, 월북 음악인의 작품이라는 이유로 역사적 평가나 연주가 외면당한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간에 예술성을 간과할 수 없는 김순남, 이건우 두 작곡가가 있습니다. 민족주의 정서를 기반으로 하는 이들의 작품은 표현주의적이고 현대적인데, 우리의 전통적 리듬과 선율을 담았다는 면에서 한국 가곡이 예술가곡으로서 갖는 가치를 새롭게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2011년 스위스의 한 가곡 페스티벌에서 윤이상, 김순남, 이건우의 작품을 연주했을 때 청중들은 우리의 전통적 리듬과 정서로 쓰여진 가곡들의 낯선 매력에 큰 관심과 흥미, 호응을 보인 바 있지요. 이번에는  같은 시대 남쪽에서 같은 지향으로, ‘선토착화 후현대화’라는 신념으로 민속음악을 바탕으로 한 독창성을 표현하기 위해 이론 정립과 창작을 병행한 작곡가 나운영의 곡도 같이 연주합니다.   

리사이틀에서는 이외에도 작곡가 정회갑, 전인평, 이영조, 정태봉의 작품을 노래하는데, 저 개인적으로, 현대적인 음악어법에 우리의 것을 한껏 담아내어 한국 가곡의 정체성에 있어서 그 계보를 잇고 있다고 생각하는 작곡가들의 곡들을 뽑아본 것입니다. 머지않아 한국 가곡 음반을 내고픈 소망이 있는데, 그 꿈에 한 걸음 더 다가가는 아주 뜻깊은 작업이 될 것으로 여깁니다. (통영국제음악제의 이번 리사이틀을 위해 특별히 클라리넷, 피아노, 소프라노 곡으로 편곡해 주신 이영조, 정태봉 선생님께 이 자리를 빌어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Q. 페테르 외트뵈시가 지휘하는 '클랑포룸 빈' 공연에서 페테르 외트뵈시 '시크릿 키스'의 내레이션을 맡으실 예정입니다. 악보를 받으셨나요? 이 곡은 어떤 곡인가요?

A. 이번 음악제 덕분에 현존하는 가장 중요한 현대 작곡가 중 한 명인 외트뵈시 선생님과 작업하는 기회가 주어져 좋은 긴장으로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악보도 보지 않고 작곡가 이름과 요염한 작품 이름에 매료되어 얼른 수락을 했는데, 엊그제 악보를 받고는 하기로 한 것이 잘한 일일까... 잠시 고민을 하긴 했습니다. ^^;; 하지만 이 작품이 탄생한 배경들을 공부하며 저로서는 큰 경험이 없는 현대음악에 대한 호기심과 특별히 ‘내레이터’로서의 이 작품 속 역할에 큰 흥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탈리아 작가 알렉산드로 바리코(Alessandro Baricco)의 단편소설에 나오는 한 장면을 17분 음악에 담은 이 작품은 프랑스인 종쿠르(Joncour)가 실크의 재료가 되는 좋은 누에고치를 얻기 위해 일본에 간 것으로 시작합니다. 마침내 누에고치 상인을 만나 차를 대접받은 그는 그 상인의 무릎을 베고 말없이 누워있는 여자를 힐끗 보다가 눈이 마주치자 당황해서 차를 들이키게 되는데, 이때 그녀가 말없이 그의 찻잔을 집어 들더니 정확히 그의 입술이 닿았던 곳에 입을 대고 차를 마신 것이죠. 이에 종쿠르 역시 그 찻잔을 들어 다시 그 자리에 입을 대고 잔을 비웁니다. 그야말로 아주 애틋하고 비밀스러운 입맞춤인 것이죠. 일본의 연극 ‘노’의 유일하다시피 한 여자 배우이자 현대음악과의 협업으로 이름이 난 료코 아오키의 의뢰로 작곡된 곡이라는데, 그 가사는 외트뵈시의 부인이 직접 골랐다고 하네요. 악보는 영어와 일본어로 되어있는데, 물론 지난해 초연은 모두 일본어입니다. 이번 음악제에서는 우리말로 초연이 되는데 가사가 궁금합니다! 유튜브에서 본 그녀의 연극 창법에 견주어 저는 한국말로 된 이 내레이션을 어떻게 생동감 있고 비밀스럽게 하게 될지 저도 그 공부가 기대됩니다. 친분 있는 현대 작곡가들에게 조언을 구하며 잘 준비해 봐야겠습니다.

Q. 안 해본 작품 가운데 해보고 싶은 것이 있나요?

A. 올해로 유럽 국제무대에 데뷔한 지 20년이 되는데, 안 해본 작품을 하는 것은 여전히 제 일상입니다. 올해 상반기만 해도 처음 무대에서 해보게 될 작품이 4편이나 되네요. 제가 주로 하는 고음악은 현대음악을 하는 것과 닮은 점이 있어서, 음반 등 레퍼런스가 많은 음악과는 달리 사람들 귀에 익은 잣대나 정석이 없고 그 해석이 자유롭지요. 그래서 공부하는 데에 시간이 좀 더 걸리기도 하지만 그만큼 그 실험적인 과정은 신기하고 재미있습니다. 여전히 안 해본 곡이 많은데 그중에 그나마 알려진 곡을 말하라 하면 헨델의 ‹줄리오 체사레›를 꼽겠어요. 동양적인 매력을 가진 클레오파트라의 연기와 노래가 꼭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Q. 국내 팬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계획이 있나요?

A. 데뷔 20주년을 기념하는 콘서트와 투어를 가을에 계획하고 있습니다. 데뷔 당시 2년쯤 이러다 말겠지 했던 것이 20년이나 바쁘게 무대에 오를 수 있었음에 감사하는 맘으로 그동안 제 음악을 아껴주신 많은 분들과 함께 잔치를 벌이는 마음으로, 여러 면에서 아주 특별한 음악회가 되도록 준비하고 있으니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

올해 일정 중 콘서트 작품을 극으로 만드는 흥미로운 작업을 두 작품 하게 되는데, 하나는 뉴욕에서 열리는 ‹모스틀리 모차르트 페스티벌›에서 모차르트 레퀴엠을 극화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헨델이 유일하게 독일어로 남긴 작품인 ‹9개의 독일 아리아›를 Songs of Nature 라는 부제로 무대에 올리는 것입니다. 상하이, 베이징 뮤직 페스티벌, 홍콩, 뉴욕, 암스테르담 등 큰 투어를 계획하고 있어 작품이 더 견고해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그리고 그 사이 코로나바이러스의 위협은 사라지기를 바랍니다. 


소프라노 임선혜 2017년 인터뷰

 제가 예전에 인터뷰했던 텍스트를 찾다가 이곳 블로그에 없어서 올려 둡니다. 통영국제음악재단 매거진에 실렸던 글입니다.

* * *

Q. 통영국제음악당 개관 전에 공연하셨던 것을 빼면, 지난 2015년 베를린 고음악 아카데미와 함께 '오르페오'를 주제로 공연한 이후로 이번이 두 번째 통영 공연입니다. 2015년 당시 통영국제음악당이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나요?

A. 벌써 2년 전의 일이지만 저와 당시 함께 했던 베를린 고음악 아카데미 동료들에게도 아직 선명하게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뛰어난 음향을 가진 아름다운 공연장과, 바다가 보이는 대기실은 정말 잊지 못한다며 지난주 함께 베를린 무직페스트에서 연주한 그 동료들이 다시 떠올리더군요. 아마 함부르크 엘프필하모니와 더불어 세상에서 제일 그림같이 멋진 대기실이라고요. 역시 저에게도 그렇답니다. 더불어 엄청나게 맛있게 먹은 음악당 내 이탈리안 레스토랑도 기억에 남네요.

Q. 거장 지휘자들과 함께 여러 음반을 녹음하셨습니다. 그 가운데 시히스발트 카위컨 지휘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도 있는데요, 한 성부에 한 명으로 합창과 독창을 겸하게 한 편성이 독특합니다.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일화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A. 이 녹음을 하기 몇 년 전 바흐의 ‹요한 수난곡›을 카위컨과 연주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적어도 한 성부에 두 명씩이었어요. 프로젝트 플랜에 합창단 언급이 없어서 이번에도 그런 방식일까 했는데, 첫 연습에 도착하니 정말 소프라노라고 나와 있는 부분은 혼자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해야 한다는 말에 속된 말로 ‘멘붕’이 강림했죠. 다행히 그간 연주하며 들은 풍월 덕에 하루 만에 익혀서 차질은 없게 했지만 워낙 양이 많다 보니 노래를 해도 해도 끝이 안 나던 기억이 나요. 하지만 아리아와 듀엣 몇 곡 부르던 때와 달리 정말 '예수 탄생 이야기’에 더 적극적으로 동참하며 동료들과 가사를 맞추고, 또 바흐 특유의 수학 문제 풀이 같은 각 성부 진행을 함께 노래하며 엄청난 희열을 느꼈던 기억이 납니다. 한겨울 벨기에의 한 교회에서 녹음을 했는데, 공사 중이던 옆 건물의 소음 때문에 저녁에 시작해서 자정 넘어까지 손을 호호 불어가며 목도리를 온몸에 칭칭 감고 노래했던 기억도 이제 추억으로 남았네요.

Q. 바흐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를 처음 공연했을 때를 기억하시나요?

A. 그건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네요. 첫 공연은 아니지만 두 번째 세 번째 즈음이었을까요? 오스트리아 빈에서 존 노이마이어의 연출, 안무로 함부르크 발레단과 한 공연이 기억에 아주 많이 남았어요. 베를린 도이체오퍼에서 오페라로 연출된 ‹마태오 수난곡› 프로덕션에 잠깐 참여했을 때와 비슷한 충격이 있었죠. 소설을 읽으며 내 머리로만 상상하던 것이 영화로 구체화되어 나왔을 때와 비교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원래 연출되도록 만들어진 곡들이 아니고, 게다가 교회음악이기에 그 접근이 터부처럼 느껴졌던 것이 일반적 정서라, 뭔가 금지되었던 것의 안을 들여다보는 아찔함이 있었죠. 노이마이어의 발레에서 발레리노 예수가 나중에 십자가 지고 가는 장면들이 자유로의 춤으로 연출될 때 연주되는 바흐의 음악 역시 그를 따라 극장 전체를 일렁이며 춤추고 있었어요. 오페라를 넘은 종합예술의 어떤 완성점을 처음 맛보았다고 할까요? 십여 년 전에 비해 지금은 이런 시도들이 훨씬 많아졌어요. 미국 피츠버그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작년에 ‹요한 수난곡›을 스테이지 프로젝트로 만들기도 했고, 지난봄에는 하이든의 ‹천지창조›를 무대연출해서 엘프필하모니에 올린 작품에 참여하기도 했지요. 한계와 무한한 가능성이 동시에 존재하는 이 새로운 시도에 많은 연출가들이 호기심을 쏟고 있답니다. 

Q. 소프라노 성부를 맡은 솔리스트의 역할과 관련해 바흐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가 독특한 점이 있을까요? 바흐 칸타타와 비교했을 때, 바흐 수난곡과 비교했을 때 어떤 점이 다를지 가수로서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A. 가장 큰 차이는 주제에 따른 마음의 접근이겠지요? 한 곡은 수난을 노래하니 그 의미와 구원의 역사를, 다른 한 곡은 그 계획된 구원의 역사가 시작되는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이니까요. 사실 바흐 오라토리오에서 솔리스트는 잘 차려진 음식 위에 올려지는 고명과 같은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극의 줄거리 설명은 복음사가(Evagelist)가 하고 극은 합창이 이끌어갑니다. 그 줄거리 설명과 드라마 사이사이에 솔리스트들은 격양된 희로애락의 감정을 읊지요. 이 부분들이 잘 읊어지고 진정성을 낳으면 관객들은 다음의 줄거리와 극들을 더 기대하며 공연에 적극적인 참여를 하게 됩니다. 모든 바흐의 오라토리오들이 그런 역할을 솔리스트들에게 요구하고 제안하고 있지요. 다만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는 하루에 모든 곡이 연주되는 것이 목적이 아니기에 약간은 다른 성격이 있어요. 원래는 "크리스마스 기간” 각각 다른 날들에 연주하도록 작곡된 것이라 큰 줄거리는 우리가 아는 그 내용이지만, 6칸타타들을 하나로 만드는 큰 유기적인 결합은 덜합니다. 따라서 수난곡에서는 각 성부 아리아들의 위치와 배정을 어느 정도 계획했다면,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는 그런 큰 그림이 꼭 보이지는 않지요. 1번부터 6번까지를 하루 저녁에 연주하기도 하지만 어떤 공연들은 1, 4, 5, 6만 한다던가, 첫날은 1-3번, 두 번째 날은 3-6번 이렇게 정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에 따라 공연에서 부르는 아리아가 거의 없을 때도 있지요. 그날의 무대 위에서 정자세로 더 많이 앉아 있는 '감상의 날’이죠.

이 곡에서 또 주목할만 것은, 바흐가 자신이 세속칸타타에서 썼던 아리아들을 다시 사용했다는 것인데, 마침 그 세속 칸타타들을 연주해 본 경험이 있어서 제게도 흥미로웠던 부분입니다. 바흐가 자신이 이미 썼던 곡에 가사를 바꾸고 악기에 변화를 주어서 180도 전혀 다른 분위기가 나는 곡으로 둔갑시키는데 아주 큰 능력이 있는 작곡가임을 후대에 음악가들이 감탄해 마지않고 있습니다. 어린 헤라클레스에게 세상의 모든 즐거움을 즐기라고 유혹하는 ‘쾌락’(Wohllust)의 소프라노 아리아 (BWV213)가 이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에서는 아기 예수에게 잘 자라는, 한없이 순수한 자장가로 등장하는데 이때는 알토의 아리아로 바뀝니다. 성부가 가사를 조금 바꿈으로써 '아주 관능적인 아리아'에서 '아주 순결한 아리아'로 바뀌는 마술이 일어난 거죠! 바흐는 알면 알수록 수수께끼 같은 매력이 드러나는 작곡가입니다. 바흐 사후 바흐를 세상에 다시 소개해 그의 작품들이 만개하게 한 멘델스존이 문득문득 참 고맙답니다.

Q. 뤼벡 합창 아카데미(Chorakademie Lübeck)는 2014년에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카르미나 부라나' 공연으로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던 합창단입니다. 뤼벡 합창 아카데미와 전에 협연하신 일이 있나요?

A. 소식은 많이 들었지만 함께하는 것은 처음입니다. 다만 지휘자 롤프 베크 선생님은 십여 년 전, 독일의 대표적 여름 페스티벌인 슐레스비히-홀스타인 페스티벌 디렉터로 계실 때 그 페스티벌 합창단과 함께 바흐의 ‹B단조 미사›를 함께 한 적이 있습니다. 워낙 독일에서 합창 음악에 대가로 알려지셨기에 그분이 가는 곳이면 합창이 늘 특별하고 좋았지요. 오랜만에 뵙게 될 텐데 다시 바흐 음악으로 함께하게 되어 기대됩니다. 

Q. 지난 2014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때, 페이스북으로 소프라노 황수미 • 박혜상 • 바리톤 유한승 씨를 극찬하면서 응원하시던 기억이 납니다. 요즘 눈여겨보고 있는 신인 가수가 있나요?

A. 둘러볼 기회가 없어서 다 응원하지 못할 정도로 엄청나게 실력 좋은 한국인 신인 가수들이 많습니다. 도밍코 콩쿠르에서 우승한 테너 김건욱도 그중 하나인데, 지난해에는 부산에서 ‹사랑의 묘약›을 같이 공연할 기회가 있었지요. 아름답고 진정성 가득한 음성과 음악을 대하는 겸손함 그리고 무대에서의 적극성이 앞으로 더 좋은 무대들을 열어주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친분이 있는, 피츠버그 심포니 음악감독인 마에스트로 만프레드 호넥씨가 찾고 있는 테너 음성인 것 같아서 적극 추천을 했는데 잘 성사되어 서로 기뻐하는 모습에 저도 괜히 뿌듯했답니다. 

Q. 가수로서 느끼는 유럽 고음악계 및 오페라 극장의 최신 경향이나 판도를 국내 애호가 및 음악 전공 학생들에게 소개하자면?

A. 근 20년 전 저의 데뷔 초기에 유럽에서 솔리스트로 활동하는 가수들이 열 분도 채 안 되었다고 하면, 이제는 한국 출신 성악가들을 유럽의 어느 극장에서 만날 수 있는 환경이 되었습니다. 한국 출신 음악가들이 많은 국제 콩쿠르 입상으로 극장 무대에 진출한 덕이기도 하고 더 넓게는 유럽이 자신들의 음악시장을 점차 개방해서 모든 민족들과 나라의 사람들이 함께 경쟁하고 연주할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졌다는 의미이기도 하지요. 어느 나라 가수는, 음악가는 대략 이렇더라 하는 편견도 많이 사라지고 있고요. 그것은 세계 곳곳에서 모여든 새로운 세대의 젊은 음악가들이 관객들로 하여금 테크닉뿐만 아니라 감성의 공감대를 이끌어낼 만큼 열려있고 문화 공부도 많이 한다는 의미가 되기도 합니다. 피부 색깔 등 많은 편견들과 선입견이 사라진 이상 아티스트, 연주자 개개인의 남다른 개성, 그리고 그 개성의 뚜렷함이 호감을 얻게 되면 많은 주목을 얻게 되는 것이죠. 동양인이 수석으로 앉아 있어도 이상하지 않고 동양인이 음악사 최초 서양 오페라에서 주인공이어도 거부감이 없는, 오히려 어떤 다른 색깔을 내어줄까 하는 기대를 사게 만들 수도 있는 시대. 더 이상 동양인이라 절대 안 된다는 말은 듣지 않아도 되는 '열린 세상'에서 자신의 음악을 맘껏 펼쳐볼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 같습니다. 최첨단 테크놀로지로 지구의 많은 나라들이 서로 가깝게 느껴지는 덕이기도 하겠지요. 하지만 오랫동안 열정과 인내로 국제무대를 지켜내시고 좋은 이미지들을 남겨주신 여러 음악가 선배님들의 노고를 기억해야 할 것 같습니다.

Q. 자신만의 발성법을 찾기 전에 흉내 내려 했던 가수가 있었나요? 자신의 목소리를 찾게 된 과정이나 계기가 궁금합니다. 더 나은 발성법을 고민 중인 성악도들에게 조언 한마디 부탁합니다.

A. 미렐라 프레니를 좋아하던 시절, 성악에 입문하고 대학 입시를 치를 때까지는 아주 고음은 잘 안 나지만 제법 굵고 큰 소리가 나는 소프라노였습니다. 상상이 어려우실 수도 있겠지만요.(웃음) 제게 지금의 목소리를 갖도록 길을 닦아주신 분이 서울대 박노경 교수님이셨어요. 자기 몸에 어울리는 소리를 가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국제 무대에 서기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가볍고 날씬해서 고음이 잘 나는 음성이 실제 이 아이의 몸에 맞지 않을까 하고 많이 연구하셨다고 해요. 저는 그 깊은 뜻은 감히 헤아리지 못했고 그저 선생님의 음악성에 늘 감탄하던지라 선생님을 무척 따랐지요. 그래서 2-3학년 때는 하이 C가 겨우 나던 것이 4학년 때는 콩쿠르에서 E♭이 나는 ‹청교도› 의 아리아나, 루치아의 ‹광란의 아리아›들로 1등을 할 수 있었습니다. 유럽 데뷔 후 주로 고음악이 주 레퍼토리가 된 통에 벨칸토 레퍼토리를 할 수 있는 기회는 줄었지만, 바흐, 헨델, 하이든, 모차르트 가수로, 또 각 장르에 유연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은 그때 선생님께서 제 몸에 무리되지 않는 자연스러운 소리를 찾아주신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소리와 노래를 가장 오랫동안 들으셔서 가장 잘 아시는 분이기에 지금도 한국에 가면 레슨을 받고 조언을 구합니다.

또 성악가들은 노래하면서 자신의 소리를 듣기가 힘들기에 연습이든 공연이든 되도록 녹음을 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지요. 자기 목소리를 듣는다는 건 때로 민망하고 쥐구멍으로 숨고 싶게 할 때도 있지만, 내 목소리를 객관적으로 들으며 지향점과 지양점을 스스로 깨닫고 생각하는 꼭 지나야 하는 깜깜한 터널 같은 작업이지요. 덕분에 많은 음악적 아이디어가 생기기도 하고요. 때로는 다른 성악가들의 노래를 들으며 참고할 때도 있는데, 때마다 다르지요. 지금 당장 어떤 부분이 부족하거나 넘친다는 생각이 들면 레퍼런스가 될 수 있는 소프라노들을 듣기도 합니다. 캐슬린 배틀이 될 때도 있고, 엘리 아멜링이나 알린 오거(Arleen Auger) 가 될 때도. 최근에는 마리아 바요의 이태리 레치타티보 리듬에 반해서 많이 참고한 적이 있습니다.

한국 성악도들이 유학을 가면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가, 어린 나이에 무겁게 노래하지 말라는 이야기일 겁니다. 오래 건강하게 그리고 듣기 좋게 노래하기 위한 기본이 되기 때문일 테지요. 내가 잘되길 진심으로 바라는 선생님의 좋은 귀가 한 성악가의 커리어를 함께 한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좋은 선생님을 만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거기에 대해 많은 노력과 투자를 해봐야 한다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Q. 국내 팬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계획이 있나요?

A. 몇몇 새 음반이 곧 출반됩니다. 파비오 비온디가 이끄는 “에우로파 갈란테”와 빈 공연 실황 녹음을 한 헨델의 오페라 ‹실라›, 그리고 B-Five라는 리코더(Blockfloete) 그룹과 지난해 녹음한 윌리엄 버드(William Byrd)의 Songs. 

요절한 유대인 작곡가 에르빈 슐호프(Erwin Schulhoff) 의 가곡 전집을 남독일방송국과 함께 녹음 중인데, 가곡 작곡가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이 작곡가의 다양한 면모를 세계초연 레코딩으로 소개할 수 있어 기쁩니다. 

올해 모차르트 오페라 ‹여자는 다 그래›로 내한해서 세미 스테이지 버전 모차르트 오페라의 진수를 보였던 르네 야콥스와 ‘프라이부르크 바로크오케스트라’가 다시 내년에는 ‘피가로의 결혼’으로 내한합니다. 영악하고 요염한 하녀에서 사랑스럽고 재치 있는 새신부, 수잔나로 함께 공연하게 되어 벌써부터 기쁩니다!


2019년 11월 22일 금요일

피아니스트 니콜라이 루간스키 인터뷰

서울시립교향악단 매거진 『SPO』에 실린 글입니다.
서울시향 블로그 게시글:
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26627279


2019년 10월 7일 월요일, 모스크바 시각 오후 1시. 올 11월에 서울시향과 협연할 피아니스트 니콜라이 루간스키를 전화로 인터뷰했다. 짧지 않은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간단한 인사말 정도를 의도한 마지막 질문을 했을 때, 그가 뜻밖에 길고 진지한 답변을 해서 나는 놀랐다. 이때 인터뷰를 녹음하던 녹음기가 오작동해서 답변의 일부가 소실되었으나, 루간스키가 한 말의 요지는 세월이 흘러도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은 언제나 변함없기를 바란다는 것이었다. 음악에 대한 그의 깊은 애정은 인터뷰를 하는 동안 그가 했던 말 곳곳에서 느껴졌다. 어떤 것에 깊이 몰입하면서 심지어 영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 어쩌면 러시아 사람들의 기질인 것 같다는 생각을 루간스키의 말을 들으면서 해 보았다.


Q. 지난 2005년에 분디트 웅그랑시(Bundit Ungrangsee)가 지휘한 서울시향과 쇼팽 협주곡 2번을 협연했었다.

A. 8월 말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옛날 일이 아닌 듯한데 2005년이라니 놀랍다. 서울시향의 연주가 훌륭했던 기억이 나고, 그래서 이번에 프로코피예프를 협연할 일이 기대된다.

Q.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2번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A. 역사상 가장 위대한 피아노 협주곡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프로코피예프는 20세기 작곡가인데도 이 작품은 매우 낭만주의적이고 비극적이며, 드라마틱하고 힘이 넘친다. 프로코피예프는 페달을 사용한 방식 등이 매우 낭만주의적이면서 한편으로는 피아노를 타악기처럼 다루는 등 새로운 연주법을 도입했고, 이 곡에는 여러모로 현대적인 음악 어법이 19세기 음악 양식 속에 녹아 있다. 때로는 라흐마니노프의 영향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물론 프로코피예프가 이 말을 들었다면 화를 냈을 것 같다(웃음). 그러나 프로코피예프가 이 작품을 쓸 당시에 라흐마니노프 음악 양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은 분명하며, 그 이후에는 좀 더 독자적인 양식을 발전시켰다.

Q. 이 작품과 관련한 개인적인 추억이 있다면?

A. 내가 28살쯤이었을 때 이 곡을 처음 공연했다. 아마도 오스트리아 그라츠(Graz)에서 연주했던 것이 처음이었을 것이다. 이 작품은 지금도 연주할 때마다 내게 큰 도전이 되는 난곡이다. 처음 익힐 때 나는 27살이었는데,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3번이나 브람스 협주곡 2번보다 어렵다고 느꼈지만, 결국 8일 만에 악보를 외우고 ‘가슴으로’ 연주할 수 있었다.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3번은 3일 만에 익혔다.) 처음 공연했을 때 연주를 꽤 잘했던 것 같고, 그래서 지금 생각하면 뿌듯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젊어서 그럴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곡을 한국에서 연주하는 것은 처음이라서 이번 공연이 기대된다.

Q. 이 곡에서 특별히 좋아하는 대목이 있다면?

A. 이 작품의 모든 곳을 좋아해서 한 군데만 꼽기는 어렵다. 시작 부분의 신비롭고 영적인 느낌은 프로코피예프를 제법 아는 사람도 깜짝 놀랄 만큼 뜻밖이며 매우 아름답다. 1악장 카덴차는 아마도 모든 피아노곡을 통틀어 가장 힘 있고 거대한 카덴차일 것이다. 중간 악장과 피날레 악장도 마찬가지로 훌륭하다. 4악장에서 타악기 느낌이 강한 앞부분을 지나 중간 부분에 이르면 전형적인 러시아 민요풍 선율과 그 변형이 참 아름답게 흐른다. 4악장 카덴차는 1악장만큼은 아니지만 매우 드라마틱한 클라이맥스를 이끌어낸다.

Q. 만약 프로코피예프를 실제로 만난다면 어떤 질문을 하고 싶나?

A. 프로코피예프 본인은 정말로 이 곡을 연주할 수 있는지 물어보고 싶다(웃음). 협주곡 2번보다는 가장 어려운 협주곡 4번이 가능한지 특히 궁금하다. 피아노 협주곡 4번은 왼손으로만 연주하게 되어 있는데, 그렇게 하기에는 나에게도 너무나 어려운 곡이다. 인터넷을 검색해 봐야 하겠지만, 아마도 프로코피예프는 생전에 협주곡 4번을 직접 연주한 일이 없을 것이다. 만약 있다면 그 경험에 관해 들어보고 싶다. 그리고 프로코피예프는 체스 실력이 뛰어났으므로 체스에 관한 얘기를 들어보고도 싶다.

Q. 지휘자 안드레이 보레이코(Andrey Boreyko)와 예전에 협연한 적이 있나?

A. 그와는 여러 번 협연했다. 첫 번째는 아마도 콜마르(Colmar)에서 열렸던 스피바코프 페스티벌에서였고 그 뒤로 독일, 이탈리아를 비롯해 유럽 곳곳에서 다시 만났다. 아르메니아 예레반에서는 여러 번 협연했는데, 신기하기도 러시아에서 협연한 일은 없다. 3년 전 브뤼셀에서 벨기에 국립 오케스트라와 브람스 협주곡 1번을 협연했던 일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서울시향과 협연하는 이번 공연은 유럽이 아닌 곳에서 보레이코와 협연하는 첫 번째 공연이다.

Q. 안드레이 보레이코는 어떤 지휘자라고 생각하나?

A. 훌륭한 지휘자다. 매우 열정적이고 감수성이 풍부하다. 음악을 무성의하게 대하는 일이 결코 없고, 인생의 다양한 감정을 음악에 담아내는 능력이 뛰어나다. 지휘 테크닉에 관해서는 내가 지휘자가 아니라서 별로 할 말이 없다.

Q. 세계 여러 공연장에서 공연해 왔다. 그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을 말한다면?

A. 하나만 꼽기는 어렵다.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헤바우, 빈 무지크페라인과 빈 콘체르트하우스, 뉴욕 카네기홀, 모스크바 차이콥스키 음악원 대공연장,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니아 홀, 필하모니 드 파리 등이 특히 훌륭했다.

Q. 차이콥스키 음악원에서 타티아나 니콜라예바를 사사했다. 그는 어떤 선생님이었나?

A. 선생님이기 이전에 위대한 피아니스트였고, 모범이 되는 예술가였으며, 매우 폭넓은 레퍼토리를 가졌고 스스로 작곡을 하기도 했다. 내가 13살, 14살, 또는 15살이었을 때 그분은 몇 주일씩 연주 여행을 다니느라 나를 혼자 내버려 두기 일쑤였고, 그런 점에서 타티아나 니콜라예바는 흔히 생각하는 선생님과는 달랐다. 뭐랄까, 예술가로서 본받아야 할 모범이면서 조언자라 할 수 있는 분이었다. 그런데 그분이 내게 해 준 조언은 몇 년 앞을 내다본 것들이었다.

Q. 니콜라예바에게 어떤 것을 배웠나?

A. 그는 음악에 관한 호기심이 많고 열린 생각을 하는 사람이었다. 언제나 새로운 연주법을 고민하고 새로운 음반을 듣거나 새로운 악보를 공부했다. 그런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보면서 본받은 것이야말로 가장 큰 배움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Q. 현재 차이콥스키 음악원 교수이다. 그곳의 장점은 무엇인가?

A. 나는 세르게이 도렌스키(Sergei Dorensky) 교수님을 보조하는 사람이다. 도렌스키 선생님은 스타니슬라프 부닌, 데니스 마추예프 등을 가르친 훌륭한 분이다. 나는 그분을 도와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도 있지만, 사실 연주 여행을 다니느라 내 제자를 따로 가르치지는 못한다.

Q. 그렇다면 교수 입장에서 학교 자랑을 하기보다 그곳 학생이었을 때를 생각해 본다면?

A. 차이콥스키 음악원은 훌륭한 음악가를 양성하는 데 필요한 총체적인 시스템이 잘 갖추어진 곳이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훌륭한 것은 차이콥스키 음악원 대공연장에서 훌륭한 공연을 자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곳은 러시아에서 가장 훌륭한 공연장이며, 내가 학생이었을 때에는 그곳에서 거의 매일 공연을 봤다.

Q. 한국에서 피아노를 배우는 학생들에게 조언을 해달라.

A. 음악을 사랑하고, 음악을 되도록 많이 듣고, 언제나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라. 가장 중요한 것은 음악에 대한 열정이다.

Q. 취미가 무엇인가?

A. 일이 없을 때 여러 가지를 하지만, 굳이 취미라 할 만한 것들을 꼽아 보자면 우선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3개국어를 하는데(러시아어, 독일어, 영어), 물론 가장 익숙한 언어는 러시아어다. 그 밖에 탁구, 배드민턴, 체스 등을 좋아한다.

Q. 한국 팬들이 관심 가질 만한 앞으로의 일정을 알려달라.

A. 파리, 브뤼셀, 예레반, 몬트리올, 취리히, 워싱턴, 런던, 베를린 등에서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또 아르모니아 문디(Harmonia Mundi) 레이블로 라흐마니노프 전주곡과 베토벤 후기 소나타 등이 음반으로 발매될 예정이다.

Q. 한국 관객들에게 한마디 해달라.

A. 한국에서 공연할 때 객석의 열띤 분위기가 좋았던 기억이 난다. 나는 관객들이 언제나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을 간직하기를 바란다.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서 많은 것이 바뀌지만, 음악은 여러분이 16세일 때도, 40세일 때도, 80세가 되었을 때도 변함없이 인생의 중요한 의미를 간직할 것이다. 여러분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으면 좋겠다.

2019년 9월 3일 화요일

피아니스트 미셸 베로프 인터뷰

통영국제음악재단에서 발간하는 『Grand Wing』에 실린 글입니다.


Q. 피아니스트로서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연주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지난 2016년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 심사위원으로서 통영에 왔었다. 그때 느낀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은 어땠나?

A.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 심사위원으로는 사실 이번이 세 번째 통영 방문인데, 첫 번째였던 2008년 콩쿠르는 통영국제음악당이 아닌 통영시민문화회관에서 열렸다. 2016년에 처음 경험한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은 단순하고 효율적인 설계가 인상 깊었다. 빈에 있는 무지크페라인과 거의 비슷한 소리가 났다.

Q.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다가 오른손에 이상이 생긴 일이 계기가 되어 파리 콘서바토리 교수가 되었다. 그때 이후로 '피아니스트 미셸 베로프'는 어떤 점에서 달라졌나?

A. 근육긴장이상(dystonia) 증세를 일으키는 원인은 여러 가지이지만, 이것을 경험하고 나면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무엇보다 내 몸을 더 '경제적으로' 사용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더 적은 에너지로 더 효율적인 결과를 얻으려 하게 된다. 가르치는 일 또한 큰 도움이 되었고, 나는 피아노 연주에 필요한 모든 변수를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게 됐다. 연주자에게 성장이란 인생 경험의 결과이되, 긍정적인 경험보다 부정적인 경험이 더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힘들었던 이 시기는 한편으로 내게 많은 오케스트라를 지휘할 기회가 되어주었다. 내가 전부터 좋아했던 걸작들을 지휘하는 기쁨을 알게 되었고, 이것이 내 음악 경험을 완성하는 한 가지 방법이 되었다. 지난 시절 거장 지휘자들에게 이런 일은 매우 흔하고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Q. 파리는 베를린, 런던, 뉴욕 등과 견주어 피아니스트에게 어떤 장단점이 있는 도시인가?

A. 내 생각에는 차이가 없다. 모두 훌륭한 오케스트라와 오페라단과 탁월한 미술관이 있는 곳들이고, 수준 높은 콘서바토리 또는 음악대학이 있는 곳들이다. 그러나 차이가 없다는 말이 다양함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젊은 음악인이 저런 도시 두세 군데에서 몇 달 또는 몇 년쯤 지내보는 일은 분명 좋은 경험이 된다.

Q. 핀커스 주커만이 지휘하는 애들레이드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모차르트 협주곡 17번 G장조 K. 453을 협연할 예정이다. 모차르트의 많은 협주곡 가운데 이 곡을 고른 이유는 무엇인가?

A. 모차르트는 훌륭한 협주곡을 매우 많이 썼고, 그중에 하나를 어쨌든 고르기는 해야 한다. 또 연주 시간이나 리허설 시간도 고려해야 한다. 음악적으로는 이 작품이 목관악기를 중요하게 사용한다는 점과(물론 협주곡에서만 그랬던 것은 아니다) 3악장 코다에 나타나는 오페라적 특징을 특별히 좋아한다. 이 두 가지는 모차르트 작품세계의 핵심에 닿아 있다.

Q. 드뷔시, 라벨, 메시앙, 스트라빈스키, 무소륵스키, 프로코피예프, 버르토크 등을 녹음한 여러 음반을 남겼고, 또 여러 작곡가의 작품을 무대에서 연주했다. 당신에게 모차르트의 음악은 어떤 의미인가?

A. 물이 없으면 살 수가 없다. 모차르트는 (다른 점에서도 중요하지만) 그만큼이나 필수적이다.

Q. 모차르트를 연주할 때 악보에 없는 장식음을 덧붙이는 연주자가 요즘에는 제법 흔하다. 연주자에 따라서는 즉흥적인 연결구를 추가하기도 하고, 오블리가토 피아노를 연주하기도 한다. 모차르트 당시의 연주 관습을 오늘날 되살리는 일을 피아니스트로서 어디까지 받아들일 만하다고 생각하나?

A. 나는 어떠한 장식음과 즉흥적 연결구 등에도 완전히 개방적이며, 이때 중요한 것은 취향과 양식이다(이 두 가지는 매우 주관적이다). 그러나 인위적인 소리를 내지 않으려면 모차르트 양식에 오랫동안 빠져들고 난 뒤에 그런 걸 해야 한다.

Q. 이본 로리오는 어떤 스승이었으며 그에게 무엇을 배웠나?

A. 파리 음악원 재학 시절 지도교수는 피에르 상캉이었다. 이본 로리오에게는 몇 번 레슨을 받았고 졸업 후에 메시앙과 함께 자주 만나기는 했지만, 진지하게 뭔가를 말할 정도로 많이 배우지는 못했다. (편집자 주: 이본 로리오는 메시앙의 부인이었으며 위키피디아에는 미셸 베로프가 이본 로리오를 사사했다고 잘못 나와 있다.)

Q. 미셸 베로프라는 이름은 한국에서는 '조성진의 선생님'으로 유명하다. 조성진은 내가 아는 어떤 연주자보다도 악보에 철저하다고 생각하는데, 지난해 당신이 내한했을 때 한 언론사 인터뷰에서 악보에 충실할 것을 강조하는 것을 보고 조성진이 스승의 영향을 받았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조성진은 처음부터 악보에 철저한 제자였나?

A. 조성진은 언제나 텍스트를 중요시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16~17세 때 읽은 것과 60세가 되어 읽은 것은 물론 같을 수 없다. 나는 악보에 있는 리듬, 음색, 분절법 등 기초적인 것들의 중요성을 언제나 강조했다. 그러고도 여전히 해석의 여지는 많이 남아 있다.

Q. 악보에 있는 지시를 어김으로써 결과적으로 더 훌륭한 음악을 연주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길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A. 정말로 그렇게 느낀다면 직접 작곡을 하시라. 그러나 대가의 작품을 함부로 하지는 마시라. 우리는 천재 앞에서 더 겸손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그들과 관객을 잇는 매개자일 뿐이다. 다시 말하자면, 작품을 이루는 요소들이 아무리 주관적일지라도 언제나 텍스트와 그에 관한 당신의 느낌을 결합할 방법은 있다. 잘 안 된다면 더 노력하라!

Q. 한국에서 피아노를 배우는 학생들에게 조언 한 가지만 한다면?

A.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유럽에서도, 아니면 파푸아에서도 나는 같은 것을 말할 것이다. 우선 피아노 없이 악보를 공부하고, 소리에 관한 명확한 그림을 머릿속에 그리고, 그것을 가능한 만큼 다듬어(orchestrate) 보라. 그리고 건반 뚜껑을 열고 눈을 크게 떠라! 그리고 옛 거장의 연주를 듣고, 그대로 베끼려 하지 말고, 전통과 새로움 사이에서 균형을 더 잘 잡으려 노력하라. 그리고 내가 앞서 말한 것들을 모두 명심하라.

Q. 통영 관객에게 한마디 해달라.

A. 통영 관객에게 우선 말하고 싶은 것은 위대한 한국 작곡가 윤이상을 기리는 콩쿠르의 심사위원장이 된 일을 내가 커다란 영광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또 젊은 음악인에게는 당대 작곡가들의 작품을 연주할 의무가 있으며, 그런 점에서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는 매우 특별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그런 점에서 통영은 놓칠 수 없는 기회이다!

2019년 6월 28일 금요일

조성진 인터뷰 (2019년)

통영국제음악당에서 발간하는 『Grand Wing』 2019년 5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2019년 5월 6일, 독일 베를린 현지 시각 오전 10시.

Q. 예전에 통영국제음악당에서 협주곡도 했고 리사이틀도 했다. 편성에 따라서 느껴지는 홀 음향에 차이가 있었나?

A. 2014년에 협주곡을, 2017년에 리사이틀을 했다. 그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고, 그동안 홀을 보는 관점들이 달라졌기 때문에 자신 있게 답하기는 어렵지만, 딱히 차이를 느끼지는 못했고 두 번 다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향이 좋지 않은 공연장에서 협주곡을 하면 오케스트라 소리가 섬세하게 들리지 않아서 협연에 어려움이 있는데, 통영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했을 때에는 그런 문제가 전혀 없었고, 관객이 찼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리사이틀 때에는 음향뿐 아니라 조명 또한 매우 편안하게 느껴졌던 기억이 난다.

Q. 통영 공연 프로그램 중에 알반 베르크 소나타가 있는데, 사람들이 그 이름에 지레 겁을 먹을 것 같다. 이 곡은 어떤 매력이 있는 곡인가?

A. 피아노 소나타 Op. 1은 베르크가 젊었을 때 쓴 곡으로, Op. 1(작품번호 1번)이 이렇게 걸작이라는 것이 신기하고, 내 생각에 모든 Op. 1 가운데 가장 훌륭한 것 같다. 리사이틀 오프닝 곡으로도 좋은 것 같고, 무게감 있는 여러 곡과 궁합이 잘 맞는 것 같다. 이번에 연주할 리스트 소나타와도 어울리고, 조성도 b단조로 같다. 얼핏 무조음악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조성이 있고, 전통적이고 낭만주의적인 면과 현대적인 면이 조화를 이루는 곡이다. 악보를 보면서 들어보면 이 곡이 전통적인 소나타 형식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 더 잘 이해되고, 음악을 들을수록 신비롭고 오묘한 느낌이 든다.

Q. 이 곡의 음반을 들어보면, 악보에 있는 도돌이표를 지키는 연주자가 있고 그냥 생략하는 연주자가 있다.

A. 당연히 지켜야 한다.

Q. 이 곡을 연주할 때 악보를 정확하게 소리로 재현한다는 느낌을 주는 연주자가 있는가 하면, 곳곳에서 악보에 없는 루바토를 사용해서 낭만주의적인 느낌을 좀 더 살리는 연주자가 있다. 어느 쪽이 더 마음에 드나?

A. 베르크는 악보에 세세한 지시를 매우 많이 해놨다. 일단 그걸 모두 살리는 것이 목표다. 그러나 막상 무대 위에 오르면 '내 느낌'을 살리는 일도 중요해지는 것 같다. 미츠코 우치다의 연주가 그런 점에서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Q. 이 곡의 클라이맥스라 할 만한 곳에서, 포르테가 네 겹으로 붙어 있고, 그걸 예비하는 과정에서 크레셴도뿐 아니라 제법 긴 호흡으로 아첼레란도가 붙어 있다. 크레셴도의 다이내믹스를 극대화하는 것과 아첼레란도의 속도감을 극대화하는 것,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A. 브람스 교향곡을 들어보면, 지휘자에 따라서 클라이맥스로 오를 때 템포를 늦춰서 거대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베르크 소나타에서는 반대로 템포를 몰아붙이도록 지시했고, 그래서 조금 신경질적인 느낌을 준다. 클라이맥스의 다이내믹스도 중요하지만, 이 곡에서는 클라이맥스 직전까지 템포를 조이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Q. 2년 전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유튜브 공연 영상을 봤는데, 악보에 있는 아주 작은 지시까지 완벽하게 지키면서 암보로 연주해서 깜짝 놀랐다. 어떻게 하면 악보의 아주 작은 지시까지 싹 다 외울 수 있나?

A. 딱히 비결이 있지는 않다. 다만, 같은 곡을 여러 번 연주하다 보면 루바토를 썼던 곳에서 다음번에는 더한 루바토를 쓰게 되거나 하면서 매너리즘에 빠질 위험이 있는 것 같다. 그럴 때마다 악보를 본다. 무대에 나가기 전에 손가락을 푸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나는 연주할 곡이 처음 접하는 곡이라는 생각으로 악보를 다시 보는 편이다. 첼리비다케가 그렇게 한다는 인터뷰를 본 일이 있는데 본받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공연이 끝나고 악보를 보면서 연주를 되짚기도 한다.

Q. 이제까지 쇼팽을 너무 많이 연주해서, 이제는 다른 곡을 더 많이 하려는 것 같다.

A. 쇼팽 콩쿠르 우승자 출신이다 보니 쇼팽을 연주해 달라는 요청이 계속 있었고 그 그대에 부응해야 했는데, 2019년부터는 그런 요청을 그다지 받지 않게 되었다. 의식적으로 공연 프로그램에 쇼팽을 빼려는 것은 아니지만, 리사이틀에 쇼팽이 들어가면 다른 곡들과 어울리게 프로그램을 짜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빼버리는 편이 프로그램 구성에 더 자유로워지는 장점이 있다. 또 크리스티안 지메르만도 쇼팽 콩쿠르에 입상했지만 딱히 쇼팽 스페셜리스트로 불리지는 않는다.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 또 시마노프스키, 야나체크, 메트너처럼 음악가들 사이에서 유명하지만 대중에게 덜 알려진 곡을 관객에게 들려주고 싶은 마음도 있다.

Q. 모차르트 협주곡 20번 d단조 음반이 작년에 나왔다. 음반 녹음 과정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A. 체력적으로 힘든 녹음이었다. 오케스트라와 스케줄을 조정하다 보니 녹음할 시간이 하루 반나절밖에 안 나와서 종일 녹음을 해야 했다. 장소는 바덴바덴 페스티벌하우스였고, 피아노는 세 가지 선택지 중 오케스트라 음색과 가장 잘 맞는 것을 골랐다. 유럽 체임버 오케스트라는 조금 '고전적인' 소리를 내는 악단이고, 다른 악단이 흔히 A=442Hz로 조율하는 것과 달리 441Hz로 하더라. (편집자주: 현대 오케스트라는 심한 경우 445Hz까지 높이기도 한다.) 그래서 내가 고른 것은 조금 옛날 피아노, 아주 옛날은 아니지만 15년~20년 정도 된 스타인웨이 피아노였던 것 같다. 그런데 낡은 피아노라 피아노의 터치감이 들쑥날쑥해서 원하는 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오케스트라는 매우 훌륭했고, 모차르트 협주곡을 수없이 연주해 봤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휘자 야니크 네제세갱은 1~2년 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인데, 매사에 긍정적이고, 배려심 많고, 내가 원하는 것을 빠르고 정확하게 감지하는 지휘자다. 이번 음반이 내가 이제까지 녹음한 것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든다.

Q. 2011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도 이 곡을 연주했다. 그때는 악보에 있는 음만 연주했는데, 이번 음반에서는 2악장에서 악보에 없는 장식음을 제법 많이 썼고, 2년 전에 통영에서 모차르트 소나타 연주했을 때도 장식음을 썼다. 모차르트 당시의 연주 관습을 고려했다는 얘긴데, 작곡 당시의 관습을 어디까지 살리느냐 하는 건 연주자마다 판단을 내려야 하는 문제인 것 같다. 음반 녹음 때 장식음을 즉흥적으로 연주했나, 아니면 음 하나까지 사전에 계획했나?

A. 미리 계획하지만 연주할 때마다 상황에 맞게 변화를 준다.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은 피아노의 상태이고, 그래서 필라델피아에서 공연했을 때는 음반 녹음 때와는 조금 다른 장식음을 썼다. 예를 들어 스타카토 소리가 예쁘게 나지 않으면 그 대신 스케일이나 트릴을 쓰는 식이다.

Q. 오케스트라 투티가 나올 때는 오블리가토 피아노를 생략하고 솔로만 연주했다. 그게 필요 없다고 생각한 이유가 뭔가? 사용한 악기가 모차르트 시대 피아노가 아니었던 것도 이유가 될까?

A. 그리고리 소콜로프 같은 사람은 오블리가토 피아노까지 다 하던데, 투티에서 오케스트라만 소리내는 게 내 귀에는 더 좋게 들린다. 모차르트 시대 피아노로 협주곡을 연주하는 시도는 아직 한 번도 안 해봤지만, 그건 좀 다를지도 모르겠다.

Q. 통영에서 협주곡을 연주하면서 오케스트라 지휘까지 할 예정이다.

A. 지휘라고 하기는 좀 민망하다. 이번에 처음 해보는 시도인데, 특히 쇼팽 협주곡에서 내가 원하는 오케스트라 소리를 직접 만들어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돈 크레머가 창단한 악단인 '크레메라타 발티카'와 쇼팽 협주곡 1, 2번을 협연했을 때, 내가 지휘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지휘자 없이 공연했었고, 그때 가능성을 처음 생각하게 됐다. 그런데 솔직히 큰 기대는 안 하셨으면 좋겠다.

Q. 본격적으로 지휘자가 될 생각이 있는 건 아닌 건가?

A. 그런 생각은 전혀 없다. 협주곡 할 때 조금 해보는 정도. 아니면 서곡이나 짧은 교향곡 정도는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내가 지휘자로 악단을 맡거나 기획사에서 지휘자로 매니지먼트를 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

Q. 파리에 살다가 베를린으로 옮겼다. 파리와 견주면 베를린은 연주자로 살기에 어떤 장단점이 있나?

A. 파리가 문화 전반적으로 축복받은 곳이라면, 베를린은 음악에 더 집중된 곳인 듯하다.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외에도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베를린 도이체 심포니 오케스트라,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오케스트라, 베를린 방송교향악단 등 명문 악단이 베를린에는 여럿 있고, 연주 여행을 갔다 돌아와서 그날 열리는 공연을 찾아보면 항상 좋은 게 있다. 음악을 빼고 나면 베를린은, 최근에 사람이 늘었다고는 해도 아직 파리보다 더 한적한 곳이다. 공기도 파리보다 좋다. 날씨는 별로라서, 겨울에는 다른 곳으로 연주하러 다니는 게 낫다.

Q. 음반 녹음이나 그밖에 국내 팬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계획이 있다면?

A. 음반은 6월과 10월에 나눠서 알반 베르크 소나타와 슈베르트 방랑자 환상곡, 리스트 소나타를 녹음할 예정이고 내년 봄에 발매될 것 같다. 베르크 곡이 포함된 제안을 도이치그라모폰에서 받아준 것이 놀랍고 기쁘다. 1월에 마티아스 괴르네와 함께 바그너 베젠동크 가곡집과 한스 피츠너 가곡 중 일부를 녹음했고, 7월에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가곡과 한스 피츠너 추가 녹음, 슈베르트 '하프 연주자의 노래' 연작 녹음이 예정되어 있다.

Q. 통영 관객에게 한마디 해달라.

A. 공연 제안을 받아서 기뻤고, 통영에서 거의 일주일을 보낼 수 있어서 기대된다.

2019년 6월 7일 금요일

피아니스트 윤홍천 인터뷰

통영국제음악재단에서 발간하는 『Grand Wing』에 실린 글입니다.


Q. 지난해 소니에서 발매한 음반으로 BBC 뮤직 매거진에서 별 다섯 개를 받았습니다. 그 전에는 모차르트 음반 등으로 에코 음반상을 받는 등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로린 마젤의 발탁으로 뮌헨필과 협연한 일과 음반으로 호평받은 일 가운데 어느 쪽이 커리어에 더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느끼나요?

A. 저는 콩쿠르나 지휘자의 발탁보다는 음반을 통해서 더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2009년부터 꾸준히 음반을 발매하고 있는데 음반이라는 미디어는 라이브 콘서트보다 훨씬 더 편리하고 빠르게 전달될 수 있잖아요. 음반이 많은 곳에 소개되고 좋은 평가를 받게 되면 자연스럽게 연주 기회도 찾아오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의 음악을 소개하고 알리는 데 큰 도움이 되었죠.

Q. 음반 녹음 과정이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이를테면 어디에서 어떤 피아노를 사용했고 엔지니어와 어떤 소통을 했나요?

A. 모차르트 소나타 전곡 녹음 중 마지막 두 개의 음반을 함께 녹음했던 톤마이스터 에카르트 글라우헤(Eckard Glauche)와 함께 작업했습니다. 베를린 반제(Wannsee) 호수에 위치한 안드레아교회(Andreaskirche)라는 곳에서 3일 동안 녹음을 했어요. 저는 몇 년 전부터 벡슈타인 피아노사와 인연을 맺고 있는데 이 녹음에서도 벡슈타인 피아노를 연주했어요.

Q. BBC 뮤직 매거진에서는 연주 못지않게 음반 수록곡 선정을 극찬했습니다. 통영 공연 프로그램 가운데 절반 이상이 그 음반에 있는 곡인데, 그 가운데 슈만의 유모레스크를 고른 의도가 궁금합니다.

A. 이 곡은 꼭 한번 녹음해보고 싶었던 작품이었습니다. 슈만의 걸작 중에서도 가장 안 알려진 곡 중 하나이죠. 이 곡을 공부하는 동안 슈만이 이 작품을 빈에서 보낸 6개월 사이에 작곡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점이 레퍼토리를 선정하는데 영감을 주었어요. 슈만은 28살의 나이로 큰 꿈을 안고 빈을 찾았지만 성공을 얻지 못하고 실망을 안고 떠나야 했죠. 하지만 이 시간이 그에게는 음악적으로는 풍부한 시간이었습니다. 이 시기에 슈베르트의 교향곡 9번의 원본을 우연히 발견하기도 하였죠. 저는 유모레스크가 슈만의 피아노곡 중에서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의 한 챕터를 끝내는 듯한 마지막 부분은 끝남의 아쉬움과 희망의 시작을 둘 다 묘사하죠.

Q. 슈만과 슈베르트는 어떤 점에서 비슷하고 어떤 점에서 다른가요?

A. 아주 어려운 질문 같아요. 슈만과 슈베르트는 둘 다 아주 낭만적이고 섬세하죠. 음악이 슈만에게는 그의 인생 철학을 나타내는 도구로 사용되었다면, 쉽게 말해 “컨셉트”가 더 담겨있는 곡을 썼다면 슈베르트는 좀 더 즉흥적이고 순간에 집중하죠. 슈베르트는 아픔을 응시할 수 있었다면 슈만은 그 안에서 미소를 찾고 있었던 것 같아요.

Q. 2011년에 우아한 왈츠 D. 969를 녹음했었습니다. 연주를 들어보면 반복을 일부 생략했던데, 8년이 지난 현재 생각이 그때와 같은지 궁금합니다. 슈베르트의 반복 지시는 단순한 반복이 아니므로 생략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에 관해 어찌 생각하나요?

A. 저는 되도록 반복 지시를 지키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음반에 있어서는요. 가끔은 반복 표시를 무시할 때가 있는데 어떤 관습에 의해서, 아니면 음악의 흐름을 위해서 그렇게 하기도 하죠. 2011년에는 저도 그렇게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어요.

Q.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D. 664는 어떤 곡인가요?

A. 슈베르트는 D. 664를 마지막으로 몇 년 동안 소나타를 끝까지 완성하지 못했었어요. 이 곡이 어쩌면 그에게는 터닝포인트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이다음 소나타부터는 좀 더 교향악적이고 길이도 긴 소나타를 작곡하게 되죠. 베토벤에게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죠.

Q. 소나타 D. 664 1악장 마지막에는 셈여림 표시가 피아니시모인데 음을 7~8개씩 쌓은 화음이 나오기도 합니다. 이게 어떤 의미라고 생각하나요? 그냥 일반적인 감7화음 느낌으로 충분할까요? 어떻게 해야 효과가 극대화될까요? 이곳에서 저음부와 고음부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중요한가요?

A. 이 악장에는 ppp 부터 ff까지 아주 폭넓은 셈여림 표시가 되어 있는데 슈베르트로서도 특별한 경우죠. 특히 평온하게 들리는 이 소나타의 분위기 때문에 더 놀라워요. 화음을 연습할 때는 탑을 쌓는 것 같이 아래에서 위까지 모든 음을 들으려고 해요. 모든 음들이 그 위치에 있어야 슈베르트가 묘사하려는 어두운 그림자의 느낌이 나죠.

Q. 미국 뉴잉글랜드 콘서바토리, 독일 하노버 음대, 이탈리아 코모 아카데미 등에서 수학하셨습니다. 각 학교의 장단점이 무엇이며 그곳에서 무엇을 배웠나요?

A. 뉴잉글랜드 콘서바토리에서는 변화경 선생님께 배웠는데 선생님을 통해서는 음악 외에도 인간적으로 참 배운 것이 많았어요. 어렸을 때 미국에서 생활했던 것은 저에게 자유롭게 생각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던 것 같아요. 독일로 옮겨 갔을 때는 음악의 전통과 역사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많았죠. 음악에서는 당연히 인간의 감정을 묘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역사와 시대상 분위기, 또 언어를 이해하는 것이 음악을 해석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잖아요. 또 실력 있는 피아니스트들이 많이 있던 하노버 음대서는 그 분위기가 경쟁적이기도 했지만 이로 인해 단련되었던 것도 같습니다. 코모 아카데미에서의 경험도 소중했어요. 학교의 분위기를 떠나서 연주가가 꿈인 피아니스트들이 모여서 서로의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토론할 수 있는 곳이었어요. 제 개성을 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죠.

Q. 통영국제음악당에서 닐스 묑케마이어, 스베틀린 루세브 등과 협연했고, 독주회는 이번이 처음인 것 같습니다. 이전 공연에서 통영국제음악당에 관해 느낀 점은 무엇인가요?

A. 한국은 모든 것이 서울에 집중되어있는 경향이 있어서 늘 지방에 좋은 공연장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통영의 공연장은 참 특별한 곳이에요. 음향도 좋고 체계적으로 잘 준비되어 있어서 연주하는 분들이 편안함을 느끼는 것 같아요. 아름다운 전광은 그 멋을 더하고요. 공연장이 연주자에게 영감을 주는 곳은 흔치 않은데 통영국제음악당이 바로 그런 것 같아요. 닐스와 스베틀린 모두 동감했어요.

Q. 국내 팬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계획이 있다면?

A. 모든 공연이 다 중요하지만 특히 다음 시즌에 잡힌 베를린 불레즈잘과 함부르크에서의 리사이틀이 많이 기대됩니다.

Q. 통영 관객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A. 통영은 10년 전 윤이상 콩쿠르를 위해 처음 방문했었어요. 오래전부터 저에게는 소중한 인연입니다. 그래서 제가 아는 분들께 많이 소개하고 있고 멀리서나마 늘 응원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좋은 공연으로 자주 찾고 싶습니다.

2018년 8월 29일 수요일

피아니스트 김선욱 인터뷰

통영국제음악재단에서 발간하는 『Grand Wing』에 실린 글입니다.


Q. 통영에서 베토벤 협주곡 5번을 협연할 예정이다. 2013년에 서울시향과 협연한 녹음이 도이치그라모폰에서 나왔었는데, 당시 곡 해석의 틀이 지금까지도 유효한가? 바뀌었다면 어떤 부분이 바뀌었는가?

A. 곡에 대한 해석은 항상 유기적으로 변하는 것 같다. 특히나 마지막으로 연주한 지 4-5년이 흘렀을 때 바라보는 곡에 대한 색다른 매력에 큰 재미를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템포 변화와 뉘앙스 차이는 다를 수 있어도 큰 골격과 골조는 비슷한 편이다. 결국 스스로의 음악적 취향과 스타일이 구축되었다는 것인데, 그때부터는 세밀한 표현을 섬세하게 가꾸는 것이 스스로 진화하는 방법이기 때문에 여태껏 찾지 못한 순간들을 발견하려 노력하고 있다.

Q. 이를테면 2악장에서 왼손 음형을 음반에서보다 좀 더 볼륨 있게 쳐주는 편이 더 베토벤답게 들리지 않을까?

A. ‘베토벤답다’라는 정의는 참 위험한 말이다. 베토벤다운 것은 없다. 베토벤의 악보 기호와 주문을 얼마나 자신의 것으로 완성시켜 설득력 있게 전달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Q. 최수열 지휘자와 전에 협연해 본 일이 있나? 최수열은 어떤 지휘자라고 생각하나?

A. 한국예술종합학교 선배님이다. 같이 연습해 본 적은 있으나 공식적인 무대에 서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휘 실력, 즉 테크닉이야 이루 말할 것 없이 훌륭하고 고전, 낭만 음악뿐만 아니라 현대음악에 대한 관심과 애정, 다양한 포맷의 시도 등 앞으로 우리나라 음악계를 잘 견인하실 것이라 믿고 있다.

Q. 2014년에는 정명훈-서울시향과 함께 진은숙 협주곡을 녹음했었다. 이 곡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작곡가로부터 어떤 조언을 받았으며, 자신만의 의견은 무엇인가?

A. 진은숙 작곡가는 이 곡을 통해 피아노와 오케스트라 모두 최대한 비르투오식하게 연주하길 바랐다. 곡이 어렵다고 대충 훑는 것이 아니라 최대치의 노력을 다해 연주되길 바랐고 그 열정과 긴장감으로 곡에 숨을 불어넣길 원했다. 결과적으로 처음 연주할 때 굉장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지만 그만큼 연습량을 늘리며 이 곡이 내 것이 되도록 노력했다. 진은숙이라는 작곡가의 시그니처, 즉 찬란한 색채의 화음과 치밀하게 짜여진 구성과 디테일은 왜 진은숙이 세계 최정상의 작곡가인지 증명한다. 단언컨대, 이 협주곡은 2100년에도 꾸준히 연주될 것이다.

Q. 같은 해 같은 곡으로 함부르크에서 NDR 심포니 오케스트라, 2015년 파리에서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등과 협연했었다. 그때 얘기가 궁금하다.

A. 이 곡으로 여러 지휘자와 협연했다. 정명훈, 일란 볼코프, 크와메 라이언, 티토 체체리니, 안토니 헤르무스랑 같이 연주했고 이 다양한 지휘자들이 생각하는 이 곡에 대한 아이디어를 습득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 협주곡에 대한 경험이 많이 쌓였다. 같이 연주했던 오케스트라들은 모두 다 훌륭했고 열심히 연주했기에 매 순간 기억에 많이 남는다.

Q. 영국 왕립음악원에서 지휘를 전공했고 본머스 심포니 오케스트라 지휘로 '데뷔'를 앞두고 있기도 하다. 영국 왕립음악원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나?

A. 내가 배운 콜린 메터스선생님은 영국 왕립음악원에 30여 년 전 처음으로 지휘과가 신설되었을 때부터 지휘과 교수님이었다. 매일 학교에서 지휘과 학생들과 시간을 보냈고 오케스트라 파트를 피아노로 많이 치면서 다른 친구들의 지휘를 도와주기도 했다. 레퍼토리를 다양하게 배울 수 있었고 피아노와 병행하느라 힘들었지만 좋은 추억이었던 것 같다. 거의 매일 5시에 수업이 끝나면 오후 6시부터 9시까지는 피아노를 연습했다. 2020년에 영국 본머스에서 열리는 연주회는 지휘 ‘데뷔’라고 하면 너무 쑥스럽고 그냥 하나의 이벤트로 생각하고 있다.

Q. 음악인으로서 느끼는 런던의 장단점은 무엇인가?

A. 일단 내가 현악인이고 오케스트라에서 일하고 있다면 런던에서는 엄청난 레퍼토리를 빠른 시간 안에 습득할 수 있다. 2-3년이면 모든 시대의 곡을 다 연주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짧은 리허설 시간 안에서 완성도를 높여야 하기 때문에 기민함이 빠른 속도로 발전할 것이다. 하지만 급여는 다른 나라에 비해 형편없기 때문에 비싼 물가의 런던에서 여유 있는 생활을 유지하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오페라, 클래식 연주회, 뮤지컬, 연극 등 다양한 장르를 트렌디하게 즐길 수 있는 것이 런던의 문화적으로 가장 큰 장점인 것 같다. 지금은 베를린으로 이사해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고 있다.

Q. 윤이상 작품을 연주해본 일이 있는가?

A. ‘피아노를 위한 5개의 소품(1958)’을 2012년 통영국제음악제에 상주음악가로 있었을 때 연주했었다. 가치 있었던 순간이었다.

Q. 어느 분야이든 존경하거나 흥미를 느끼는 예술가가 있다면?

A. 작품에 시간과 정성을 들이고, 디테일에 집착하며, 스스로 만족하지 않는 예술가들은 모두 다 존경한다. 훌륭한 예술가는 개개인의 독특한 자아가 존재하는데 극한으로 자신을 밀어붙일수록 그 예술가만이 고유한 특징을 드러낼 수 있다고 믿는다. 미술가로는 카스파르 프리드리히, 클림트, 안젤름 키퍼, 라킵 쇼를 좋아하고 노먼 포스터, 프랭크 게리의 건축물도 좋아한다.

Q. 국내 팬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계획이 있나?

A. 18-19 시즌에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극장에서 총 5번을 공연한다. 독주회, 듀오 연주 두 번, 그리고 브람스의 실내악 프로젝트 두 번 – 그리고 위그모어에서 내년 1월 독주회를 여는데 한국 작곡가인 신동훈 씨의 신작을 초연할 계획이다.

Q. 마지막으로 통영 관객들에게 한마디 해달라.

A. 오랜만에 통영을 찾아 관객 여러분께 연주를 들려드릴 수 있어 영광으로 생각한다. 6년 만의 방문이고, 또 새로운 홀에서 처음으로 연주한다. 음향, 피아노 등 최상의 조건이라고 많은 동료들이 얘기해주었기 때문에 기대가 무척 크다. 좋은 연주 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2018년 5월 17일 목요일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 인터뷰

통영국제음악재단에서 발간하는 매거진 『Grand Wing』에 실린 글입니다.


Q.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으로 얻은 특전이나 달라진 것들 가운데 어떤 것이 가장 마음에 드나요?

연주 기회를 많이 얻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소중했습니다. 콩쿠르를 하고 나서 계속해서 다른 곳을 다니며 저를 알릴 기회를 갖게 되고 또 그곳에서 만난 많은 분과의 인연도 값진 자산이 되었습니다. 또 항상 어느 곳에서 연주하든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준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쓰게 된 것도 절대 빼놓을 수 없죠.

Q.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으로 '1708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 허긴스' 바이올린을 쓸 수 있게 되었고,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에서는 1774년산 과다니니 바이올린을 후원했습니다. 지금 두 가지 바이올린을 다 쓰시는 건가요, 아니면 둘 중 하나만 사용하고 있나요? 연주자로서 느끼기에 두 가지 바이올린이 어떻게 다른지 궁금합니다.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에서 빌려주셨던 과다니니는 2014년에 오디션을 통해 쓰게 된 악기였습니다. 과다니니를 쓰면서 여러 좋은 일들을 함께했고 특히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때에도 이 악기로 연주했었습니다. 그러던 중 2015년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부상으로 지금 쓰고 있는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쓸 수 있게 되며 과다니니는 바로 반납을 하고 현재 스트라디바리우스로만 연주하고 있습니다.

과다니니는 모나지 않고 부드러우면서 따뜻한 소리가 나는 반면 스트라디바리우스는 볼륨의 레인지가 크고 깊고 화려한 소리가 납니다. 개인적으로 어떤 악기를 써도 연주자 본연의 소리가 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과다니니나 스트라디바리우스 어느 것을 써도 제소리가 나기에 둘 중 무엇이 더 어울린다고 정하는 것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Q.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때 겪어본 지휘자 마린 알솝이 궁금합니다. 어떤 장단점이 있는 지휘자인가요?

여러 지휘자분과 연주하면서 여러 가지 성향의 분들을 만나 뵈면서 크게 두 가지로 분리할 수 있었는데, 솔리스트가 프레이즈 처리 등 상상할 수도 없는 곳에서 루바토를 하건 어떤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도 일일이 맞춰주시는 분이 있는가 하면 오케스트레이션의 범위 내에서 절대 벗어나지 않으시는 분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두 경우 모두 장단점이 있지만 마린 알솝 같은 경우에는 그 전에는 쉽게 접해볼 수 없었던 에너지를 지니신 분이었습니다. 솔리스트의 음악에 끌려가지도 않고 그렇다고 본인의 음악만 고집하지도 않으셔서 적당히 연주자와 지휘자 오케스트라 사이에서 긴장감이 감돌면서 집중력 있는 음악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Q. 콩쿠르 우승 직후 중앙일보 김호정 기자는 근성, 성실함, 무게감, 안정감, 집중력 등의 단어로 임지영 씨를 표현했습니다. 김남윤 선생님도 임지영 씨를 노력파로 설명했습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다른 장점이 또 있을까요?

글쎄요… 특별히 장점인지 모르겠지만 크게 생각한다는 것? 가끔 현실이 촉박하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음악은 정말 끝이 없고 예민하고 무한한 작업이기는 하지만 세상에는 정말 많은 사람이 있고 긴 일생을 살아가야 하는데 너무 순간에 집착하다 보면 자기 자신을 가두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그럴 때 크게 생각하려고 하는데 그게 저 자신한테도 많은 것을 받아들일 여지를 갖게 되고 좋더라고요. 특히나 앞으로 길고 행복하게 음악 하려고 하면요.

Q. 소위 '김남윤 사단' 또는 '김남윤 악파'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 듯합니다. 한국에서 그것이 어떤 의미인가요?

김남윤 선생님께서는 수많은 훌륭한 바이올리니스트를 배출하셨고 항상 선생님의 그런 모습에 존경하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어릴 때 자주 선생님 제자들과 마스터클래스나 캠프를 가면 선생님 제자가 아닌 다른 곳에서 온 학생들도 있는데 그곳에서 다 같이 연주 같은 것을 하면 눈감고도 누가 김남윤 선생님 제자인지 구분할 수 있어요. 그 정도로 선생님 음악은 누가 해도 납득이 가는 음악입니다. 많은 분이 국제 콩쿠르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던 이유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Q. 독일 크론베르크 아카데미에서 무엇을 배웠나요?

훌륭한 친구들 그리고 선생님과 함께 다이얼로그 세션을 하거나 많은 실내악 등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주로 레슨을 받는 형식이었다면 이곳에서는 얘기하고 서로의 연주를 듣고 의견을 나누는 형식이라서 ‘나’ 스스로 하는 음악보다는 같이 생각하고 토론할 수 있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Q. 한 곡을 연주하기 전에 어떻게 준비하시나요?

특별한 루틴이 있지는 않습니다. 전에 연주한 경험이 없는 곡이라면 악보를 공부하고 핑거링이나 보잉 여러 가지를 시도한 후에 제 것으로 소화하려고 합니다. 연주를 자주 했던 곡들은 더 다지는 연습을 하는데 저는 오히려 이 작업이 더 신경을 많이 쓰는데 조금이라도 타성에 젖은 연주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Q.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생각하는 비발디 ‹사계›는 어떤 곡인가요?

바이올리니스트 이전에 특히 한국 사람이라면 거의 가장 쉽게 접하는 음악 중 하나라고 꼽을 정도로 친숙한 음악이죠. 그 정도로 많은 분이 사랑하는 레퍼토리이기 때문에 연주하는 입장에서는 반갑기도 하면서 더 책임감 같은 것을 느끼게 되네요. 개인적으로 비발디의 ‹사계› 는 지극히 인간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봄이 와서 새가 노래하고 여름에 폭풍우가 오고 가을에는 농사를 짓고 겨울에는 겨울바람 이런 요소들 너무나도 인간적이고 자연스러운 토픽이기 때문에 하나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 같습니다.

Q. 이른바 '역사주의 연주'(Historically Informed Performance)가 내놓은 성과 가운데 받아들일 만한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예를 들어 바흐의 무반주 소나타와 파르티타를 10명이 연주한다고 가정했을 때 모두 각기 다른 주법으로 연주를 하는데 그 중 비브라토와 활의 쓰임이 가장 다르다고 볼 수 있는데 어떤 연주자는 거의 비브라토를 사용하지 않고 바로크 활로 연주하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어떤 연주자는 프레이즈 연결을 비브라토와 활을 더 레가토로 써서 연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 또한 바흐나 비발디 같은 바로크 음악에서는 더욱 어떠한 스타일로 연주할 것인가에 관해서 고민을 했었는데 ‘어떠한 것을 더 받아들이느냐’라고 생각하기보다는 더 모든 사람이 수용할 수 있는 연주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바이올린 협주곡 가운데 어떤 곡을 가장 좋아하나요? 독주곡 중에서는요?

저는 매번 달라지는 스타일입니다. 보통은 제가 연주하고 있는 곡을 가장 좋아하는데 저는 제가 그 곡에 빠져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Q. 윤이상 곡을 전에 연주해 본 일이 있나요?

아직 경험은 없지만 기회가 있다면 앞으로 연주해보고 싶은 목표는 있습니다. 특히 얼마 전 윤이상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새로 발견하게 돼서 큰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Q. 한가한 때에는 뭘 하시나요?

집에서 일상적인 것들을 하거나 언어를 배우려고 하고 있습니다. 독일로 이사한 지 1년이 지났는데 1년 동안 너무 바빠서 독어를 배울 시간이 없었거든요. 올해는 시간이 나면 독어를 배우는 것이 목표입니다.

Q. 현재 단기적인 목표는 무엇인가요?

새로운 레퍼토리를 공부하는 것입니다. 실내악곡 또한 연주할 기회가 있다면 가능한 참여해서 공부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Q. 마지막으로 통영 관객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일단 처음으로 통영에서 연주하게 되어 매우 설레고 저의 멘토이신 김남윤 선생님 그리고 많은 훌륭한 음악가분들과 함께하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특히나 많은 분이 사랑하는 ‹사계›로 처음 통영 관객분들께 선보이게 되어서 더욱 기대가 됩니다. 열심히 준비해서 좋은 연주 들려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2018년 1월 31일 수요일

소프라노 황수미 인터뷰

통영국제음악재단에서 발간하는 『Grand Wing』에 실린 글입니다. 출간본과는 사소한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2018년 1월 7일, 독일 현지 시각 오전 11시경 전화 인터뷰.

Q. 통영 공연은 이번이 두 번째다. 2016년 샹젤리제 오케스트라와 협연했을 때를 어떻게 기억하는가?

A. 통영의 아름다움이 우선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고, 통영국제음악당의 음향이 훌륭해서 노래하기 편했었다. 그때가 통영국제음악당 데뷔 무대여서 긴장되기도 했지만, 직원들이 친절하게 챙겨주셨고, 숙소도 마음에 들었고, 아침에 자전거를 빌려서 해안 도로를 다녔던 것도 멋진 추억으로 남아 있다. 심지어 날씨까지 좋아서 모든 것이 완벽했던 것 같다.

Q. 올림픽 개막 공연에 출연하게 되었는데.

A. 영광으로 생각한다. 사실은 연락을 지난달에 받아서 일정을 조정하느라 정신이 없는 상태다. 아테네에서 열렸던 제1회 올림픽 때부터 공식 찬가로 지정된 곡을 원어인 그리스어로 불러 달라는 요청을 받았고, 악보를 받은 지는 일주일밖에 안 됐다. 이걸 잘 해내려면 남은 시간 동안 열심히 준비해야 할 것 같다.

Q. 연주자로서 자신의 장단점을 스스로 가장 잘 알고 있을 것 같다. 장점 위주로 자신을 평가한다면?

A. 무대 위에서 드러나는 것보다 그것을 준비하는 과정을 즐길 수 있는 것이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작품을 준비하는 과정은 지루할 수도 있고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려운 과제를 하나씩 해결하면서 받는 쾌감을 즐기는 편이다.

Q.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때 소프라노 임선혜 선생이 평하기를, 포커스가 확실하고 파워 있는 '고음'에 놀랐다고 했다.

A. 그때 마침 브뤼셀에 공연차 왔다가 콩쿠르를 보셨던 것 같다. 칭찬에 감사한다.

Q. 내 생각에 쇤베르크 ‹구레의 노래› 중 숲비둘기(Waldtaube) 역할을 하면 좋을 것 같다. 오케스트라 편성이 워낙 큰 작품이라 성량이 풍부해야 하지만, '비둘기'에 어울려야 하므로 드라마틱 소프라노여서는 안 되고, 고음이 맑고 단단하고 '포커스가 확실해야' 하는 까닭에 이 역할을 잘할 수 있는 소프라노가 흔치 않은데, 이 역할이 누구보다도 잘 맞을 것 같다.

A. 다음에 기회가 되면 꼭 도전해 보겠다. 통영에서 기회를 만들어 주셔도 좋을 것 같다. (웃음)

Q. 진은숙 ‹퍼즐 & 게임›은 다른 방향으로 난이도가 대단하다. 이번에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와 협연할 이 곡을 전에 들어본 일이 있는가?

A. 오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뮌헨 공연 실황을 봤었다. 오페라를 모음곡으로 재구성한 ‹퍼즐 & 게임›은 아직 악보를 받아보지 못해서 잘 모르겠다.

Q. 작곡가 진은숙에 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A. 여성 작곡가로서, 또 아시아 작곡가로서 베를린필 같은 특급 악단이 공연하는 작품을 여럿 쓰신 점이 대단하다. 개인적인 친분은 없지만, 왜소한 체격에서 느껴지는 아우라나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않는 모습 등이 멋있다고 생각한다. 글라인드본 페스티벌에 출연하면서 알게 된 유명한 오페라 연출가 클라우스 구트 선생이 진은숙 차기작 오페라 ‹거울 나라의 앨리스›를 연출할 예정이라고 말해줬을 때는 같은 한국인으로서 괜히 자부심을 느끼기도 했다.

Q. 크리스티안 요스트 ‹시인의 사랑›은 어떤가?

A. 매니저가 조만간 악보를 챙겨 줄 예정이라 아직 잘 모르겠다. 슈만 원곡은 참 좋아한다.

Q. 여자가 부르는 ‹시인의 사랑›은 흔치 않다.

A. 가사 내용이 남자 가수에게 맞는 곡이기는 하지만, 최근에는 브리기테 파스벤더, 바바라 보니, 크리스티아네 셰퍼 등이 ‹시인의 사랑›으로 호평받았다. 시를 전달하는 일에 남녀를 엄격히 가릴 필요는 없지 않나 싶고, 크리스티안 요스트가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시인의 사랑›이라면 더욱 남녀 구분 없이 도전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Q. 통영국제음악제에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네 개의 마지막 노래›를 보훔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할 예정인데, 마지막 곡 '저녁놀 안에서'(Im Abendrot)를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때 불렀었다.

A. 학생 때부터 언젠가는 오케스트라와 협연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꿈의 레퍼토리'였고, 특히 리사 델라 카사의 음반을 좋아했다. 그래서 콩쿠르 결선 때 이 곡을 마지막 곡으로 불렀다. 음악이 주는 평안함이 좋았고, 잘해야지 하는 생각보다는 마지막 가는 길이 이렇게 평안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Q. 안나 네트렙코의 초기 목소리를 참고했다고 다른 인터뷰에서 밝힌 일이 있다. 자신만의 발성법을 찾기 전에 흉내 내려 했던 가수가 또 있다면?

A. 미렐라 프레니. 입 모양을 보면 소리가 어떻게 나는지 훤히 다 보일 것 같은 사람이다.

Q. 뮌헨 음대를 졸업했다.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나?

A. 도시 자체가 참 좋았고, 수업에서 배운 내용을 실제 오페라 극장 오디션과 연계해 실습할 수 있는 시스템이 좋았다. 또 오페라뿐 아니라 리트 및 오라토리오를 복수전공하면서 시야를 넓히기도 했다.

Q. 본 오페라 극장 주역 가수이다. 극장 자랑을 해달라.

A. 플라시도 도밍고, 문서라트 커벌예(몽셰라 카바예), 에디타 그루베로바 등이 공연했었던 전통 있는 극장이고, '베토벤 오케스트라 본'이라는 훌륭한 악단이 극장 오케스트라로 있다. 개인적으로는 파미나, 돈나 안나, 미미, 수산나, 미카엘라 등 배역을 맡으면서 오페라 가수로 성장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4년차인 이번 시즌을 끝으로 독립할 예정이며, 앞으로는 여러 공연장으로 활동 영역을 넓혀 자유롭게 출연하게 된다.

Q. 국내 팬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계획이 있다면?

A. 피아니스트 헬무트 도이치 선생님과 함께 음반 녹음 건으로 음반사와 의견 조율 중인데, 자세한 내용은 아직 말하면 안 될 것 같다. 또 헨델 오페라 ‹리날도›로 앙상블 마테우스와 함께 파리, 빈, 모스크바 등을 순회공연할 예정이다.

Q. 마지막으로 통영 관객에게 한 말씀 해달라.

A. 아름다운 도시에서 다시 노래하게 되어 기쁘고, 좋아하는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되어 감사하다. 싱그러운 봄에 좋은 음악으로 찾아뵙기를 기대한다.

2017년 11월 17일 금요일

소프라노 임선혜 인터뷰

통영국제음악재단에서 발간하는 『Grand Wing』에 실렸던 인터뷰입니다.


Q. 통영국제음악당 개관 전에 공연하셨던 것을 빼면, 지난 2015년 베를린 고음악 아카데미와 함께 '오르페오'를 주제로 공연한 이후로 이번이 두 번째 통영 공연입니다. 2015년 당시 통영국제음악당이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나요?

벌써 2년 전의 일이지만 저와 당시 함께 했던 베를린 고음악 아카데미 동료들에게도 아직 선명하게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뛰어난 음향을 가진 아름다운 공연장과, 바다가 보이는 대기실은 정말 잊지 못한다며 지난주 함께 베를린 무직페스트에서 연주한 그 동료들이 다시 떠올리더군요. 아마 함부르크 엘프필하모니와 더불어 세상에서 제일 그림같이 멋진 대기실이라고요. 역시 저에게도 그렇답니다. 더불어 엄청나게 맛있게 먹은 음악당 내 이탈리안 레스토랑도 기억에 남네요.

Q. 거장 지휘자들과 함께 여러 음반을 녹음하셨습니다. 그 가운데 시히스발트 카위컨 지휘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도 있는데요, 한 성부에 한 명으로 합창과 독창을 겸하게 한 편성이 독특합니다.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일화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이 녹음을 하기 몇 년 전 바흐의 ‹요한 수난곡›을 카위컨과 연주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적어도 한 성부에 두 명씩이었어요. 프로젝트 플랜에 합창단 언급이 없어서 이번에도 그런 방식일까 했는데, 첫 연습에 도착하니 정말 소프라노라고 나와있는 부분은 혼자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해야 한다는 말에 속된 말로 ‘멘붕’이 강림했죠. 다행히 그간 연주하며 들은 풍월 덕에 하루 만에 익혀서 차질은 없게 했지만 워낙 양이 많다 보니 노래를 해도 해도 끝이 안 나던 기억이 나요. 하지만 아리아와 듀엣 몇 곡 부르던 때와 달리 정말 '예수 탄생 이야기’에 더 적극적으로 동참하며 동료들과 가사를 맞추고, 또 바흐 특유의 수학문제 풀이 같은 각 성부 진행을 함께 노래하며 엄청난 희열을 느꼈던 기억이 납니다. 한겨울 벨기에의 한 교회에서 녹음을 했는데, 공사 중이던 옆 건물의 소음 때문에 저녁에 시작해서 자정 넘어까지 손을 호호 불어가며 목도리를 온몸에 칭칭 감고 노래했던 기억도 이제 추억으로 남았네요.

Q. 바흐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를 처음 공연했을 때를 기억하시나요?

그건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네요. 첫 공연은 아니지만 두 번째 세 번째 즈음이었을까요?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존 노이마이어의 연출, 안무로 함부르크 발레단과 한 공연이 기억에 아주 많이 남았어요. 베를린 도이체오퍼에서 오페라로 연출된 ‹마태오 수난곡› 프로덕션에 잠깐 참여했을 때와 비슷한 충격이 있었죠. 소설을 읽으며 내 머리로만 상상하던 것이 영화로 구체화되어 나왔을 때와 비교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원래 연출되도록 만들어진 곡들이 아니고, 게다가 교회음악이기에 그 접근이 터부처럼 느껴졌던 것이 일반적 정서라, 뭔가 금지되었던 것의 안을 들여다보는 아찔함이 있었죠. 노이마이어의 발레에서 발레리노 예수가 나중에 십자가 지고 가는 장면들이 자유로의 춤으로 연출될 때 연주되는 바흐의 음악 역시 그를 따라 극장 전체를 일렁이며 춤추고 있었어요. 오페라를 넘은 종합예술의 어떤 완성점을 처음 맛보았다고 할까요? 십여 년 전에 비해 지금은 이런 시도들이 훨씬 많아졌어요. 미국 피츠버그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작년에 ‹요한 수난곡›을 스테이지 프로젝트로 만들기도 했고, 지난봄에는 하이든의 ‹천지창조›를 무대연출해서 엘프필하모니에 올린 작품에 참여하기도 했지요. 한계와 무한한 가능성이 동시에 존재하는 이 새로운 시도에 많은 연출가들이 호기심을 쏟고 있답니다.

Q. 소프라노 성부를 맡은 솔리스트의 역할과 관련해 바흐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가 독특한 점이 있을까요? 바흐 칸타타와 비교했을 때, 바흐 수난곡과 비교했을 때 어떤 점이 다를지 가수로서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가장 큰 차이는 주제에 따른 마음의 접근이겠지요? 한 곡은 수난을 노래하니 그 의미와 구원의 역사를, 다른 한 곡은 그 계획된 구원의 역사가 시작되는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이니까요. 사실 바흐 오라토리오에서 솔리스트는 잘 차려진 음식 위에 올려지는 고명과 같은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극의 줄거리 설명은 복음사가(Evagelist)가 하고 극은 합창이 이끌어갑니다. 그 줄거리 설명과 드라마 사이사이에 솔리스트들은 격양된 희로애락의 감정을 읊지요. 이 부분들이 잘 읊어지고 진정성을 낳으면 관객들은 다음의 줄거리와 극들을 더 기대하며 공연에 적극적인 참여를 하게 됩니다. 모든 바흐의 오라토리오들이 그런 역할을 솔리스트들에게 요구하고 제안하고 있지요. 다만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는 하루에 모든 곡이 연주되는 것이 목적이 아니기에 약간은 다른 성격이 있어요. 원래는 "크리스마스 기간” 각각 다른 날들에 연주하도록 작곡된 것이라 큰 줄거리는 우리가 아는 그 내용이지만, 6칸타타들을 하나로 만드는 큰 유기적인 결합은 덜합니다. 따라서 수난곡에서는 각 성부 아리아들의 위치와 배정을 어느 정도 계획했다면,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는 그런 큰 그림이 꼭 보이지는 않지요. 1번부터 6번까지를 하루 저녁에 연주하기도 하지만 어떤 공연들은 1, 4, 5, 6만 한다던가, 첫날은 1-3번, 두 번째날은 3-6번 이렇게 정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에 따라 공연에서 부르는 아리아가 거의 없을 때도 있지요. 그날의 무대 위에서 정자세로 더 많이 앉아있는 '감상의 날’이죠.

이 곡에서 또 주목할만 것은, 바흐가 자신이 세속칸타타에서 썼던 아리아들을 다시 사용했다는 것인데, 마침 그 세속 칸타타들을 연주해본 경험이 있어서 제게도 흥미로웠던 부분입니다. 바흐가 자신이 이미 썼던 곡에 가사를 바꾸고 악기에 변화를 주어서 180도 전혀 다른 분위기가 나는 곡으로 둔갑시키는데 아주 큰 능력이 있는 작곡가임을 후대에 음악가들이 감탄해 마지않고 있습니다. 어린 헤라클레스에게 세상의 모든 즐거움을 즐기라고 유혹하는 ‘쾌락’(Wohllust)의 소프라노 아리아 (BWV213)가 이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에서는 아기 예수에게 잘 자라는, 한없이 순수한 자장가로 등장하는데 이때는 알토의 아리아로 바뀝니다. 성부가 가사를 조금 바꿈으로써 '아주 관능적인 아리아'에서 '아주 순결한 아리아'로 바뀌는 마술이 일어난 거죠! 바흐는 알면 알수록 수수께끼 같은 매력이 드러나는 작곡가입니다. 바흐 사후 바흐를 세상에 다시 소개해 그의 작품들이 만개하게 한 멘델스존이 문득문득 참 고맙답니다.

Q. 뤼벡 합창 아카데미(Chorakademie Lübeck)는 2014년에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카르미나 부라나' 공연으로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던 합창단입니다. 뤼벡 합창 아카데미와 전에 협연하신 일이 있나요?

소식은 많이 들었지만 함께하는 것은 처음입니다. 다만 지휘자 롤프 베크 선생님은 십여 년 전, 독일의 대표적 여름 페스티벌인 슐레스비히-홀스타인 페스티벌 디렉터로 계실 때 그 페스티벌 합창단과 함께 바흐의 ‹B단조 미사›를 함께 한 적이 있습니다. 워낙 독일에서 합창 음악에 대가로 알려지셨기에 그분이 가는 곳이면 합창이 늘 특별하고 좋았지요. 오랜만에 뵙게 될 텐데 다시 바흐 음악으로 함께하게 되어 기대됩니다.

Q. 지난 2014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때, 페이스북으로 소프라노 황수미 · 박혜상 · 바리톤 유한승 씨를 극찬하면서 응원하시던 기억이 납니다. 요즘 눈여겨보고 있는 신인 가수가 있나요?

둘러볼 기회가 없어서 다 응원하지 못할 정도로 엄청나게 실력 좋은 한국인 신인 가수들이 많습니다. 도밍코 콩쿠르에서 우승한 테너 김건욱도 그 중 하나인데, 지난해에는 부산에서 ‹사랑의 묘약›을 같이 공연할 기회가 있었지요. 아름답고 진정성 가득한 음성과 음악을 대하는 겸손함 그리고 무대에서의 적극성이 앞으로 더 좋은 무대들을 열어주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친분이 있는, 피츠버그 심포니 음악감독인 마에스트로 만프레드 호넥씨가 찾고 있는 테너 음성인 것 같아서 적극 추천을 했는데 잘 성사되어 서로 기뻐하는 모습에 저도 괜히 뿌듯했답니다.

Q. 가수로서 느끼는 유럽 고음악계 및 오페라 극장의 최신 경향이나 판도를 국내 애호가 및 음악 전공 학생들에게 소개하자면?

근 20년 전 저의 데뷔 초기에 유럽에서 솔리스트로 활동하는 가수들이 열 분도 채 안 되었다고 하면, 이제는 한국 출신 성악가들을 유럽의 어느 극장에서 만날 수 있는 환경이 되었습니다. 한국 출신 음악가들이 많은 국제 콩쿠르 입상으로 극장 무대에 진출한 덕이기도 하고 더 넓게는 유럽이 자신들의 음악시장을 점차 개방해서 모든 민족들과 나라의 사람들이 함께 경쟁하고 연주할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졌다는 의미이기도 하지요. 어느 나라 가수는, 음악가는 대략 이렇더라 하는 편견도 많이 사라지고 있고요. 그것은 세계 곳곳에서 모여든 새로운 세대의 젊은 음악가들이 관객들로 하여금 테크닉뿐만 아니라 감성의 공감대를 이끌어낼 만큼 열려있고 문화 공부도 많이 한다는 의미가 되기도 합니다. 피부 색깔 등 많은 편견들과 선입견이 사라진 이상 아티스트, 연주자 개개인의 남다른 개성, 그리고 그 개성의 뚜렷함이 호감을 얻게 되면 많은 주목을 얻게 되는 것이죠. 동양인이 수석으로 앉아있어도 이상하지 않고 동양인이 음악사 최초 서양 오페라에서 주인공이어도 거부감이 없는, 오히려 어떤 다른 색깔을 내어줄까 하는 기대를 사게 만들 수도 있는 시대. 더 이상 동양인이라 절대 안 된다는 말은 듣지 않아도 되는 '열린 세상'에서 자신의 음악을 맘껏 펼쳐볼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 같습니다. 최첨단 테크놀로지로 지구의 많은 나라들이 서로 가깝게 느껴지는 덕이기도 하겠지요. 하지만 오랫동안 열정과 인내로 국제무대를 지켜내시고 좋은 이미지들을 남겨주신 여러 음악가 선배님들의 노고를 기억해야 할 것 같습니다.

Q. 자신만의 발성법을 찾기 전에 흉내 내려 했던 가수가 있었나요? 자신의 목소리를 찾게 된 과정이나 계기가 궁금합니다. 더 나은 발성법을 고민 중인 성악도들에게 조언 한 마디 부탁합니다.

미렐라 프레니를 좋아하던 시절, 성악에 입문하고 대학 입시를 치를 때까지는 아주 고음은 잘 안 나지만 제법 굵고 큰 소리가 나는 소프라노였습니다. 상상이 어려우실 수도 있겠지만요.(웃음) 제게 지금의 목소리를 갖도록 길을 닦아주신 분이 서울대 박노경 교수님이셨어요. 자기 몸에 어울리는 소리를 가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국제 무대에 서기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가볍고 날씬해서 고음이 잘 나는 음성이 실제 이 아이의 몸에 맞지 않을까 하고 많이 연구하셨다고 해요. 저는 그 깊은 뜻은 감히 헤아리지 못했고 그저 선생님의 음악성에 늘 감탄하던지라 선생님을 무척 따랐지요. 그래서 2-3학년 때는 하이 C 가 겨우 나던 것이 4학년 때는 콩쿠르에서 Eb 이 나는 ‹청교도› 의 아리아나, 루치아의 ‹광란의 아리아› 들로 1등을 할 수 있었습니다. 유럽 데뷔 후 주로 고음악이 주 레퍼토리가 된 통에 벨칸토 레퍼토리를 할 수 있는 기회는 줄었지만, 바흐, 헨델 하이든, 모차르트 가수로, 또 각 장르에 유연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은 그 때 선생님께서 제 몸에 무리되지 않는 자연스러운 소리를 찾아주신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소리와 노래를 가장 오랫동안 들으셔서 가장 잘 아시는 분이기에 지금도 한국에 가면 레슨을 받고 조언을 구합니다.

또 성악가들은 노래하면서 자신의 소리를 듣기가 힘들기에 연습이든 공연이든 되도록 녹음을 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지요. 자기 목소리를 듣는다는 건 때로 민망하고 쥐구멍으로 숨고 싶게 할 때도 있지만, 내 목소리를 객관적으로 들으며 지향점과 지양점을 스스로 깨닫고 생각하는 꼭 지나야 하는 깜깜한 터널 같은 작업이지요. 덕분에 많은 음악적 아이디어가 생기기도 하고요. 때로는 다른 성악가들의 노래를 들으며 참고할 때도 있는데, 때마다 다르지요. 지금 당장 어떤 부분이 부족하거나 넘친다는 생각이 들면 레퍼런스가 될 수 있는 소프라노들을 듣기도 합니다. 캐슬린 배틀이 될 때도 있고, 엘리 아멜링이나 알린 오거(Arleen Auger) 가 될 때도. 최근에는 마리아 바요의 이태리 레치타티보 리듬에 반해서 많이 참고한 적이 있습니다.

한국 성악도들이 유학을 가면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가, 어린 나이에 무겁게 노래하지 말라는 이야기일 겁니다. 오래 건강하게 그리고 듣기 좋게 노래하기 위한 기본이 되기 때문일 테지요. 내가 잘 되길 진심으로 바라는 선생님의 좋은 귀가 한 성악가의 커리어를 함께 한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좋은 선생님을 만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거기에 대해 많은 노력과 투자를 해봐야 한다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Q. 국내 팬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계획이 있나요?

몇몇 새 음반이 곧 출반됩니다. 파비오 비온디가 이끄는 “에우로파 갈란테”와 비엔나 공연 실황 녹음을 한 헨델의 오페라 ‹실라›, 그리고 B-Five라는 리코더(Blockfloete) 그룹과 지난해 녹음한 윌리엄 버드(William Byrd)의 Songs. 요절한 유태인 작곡가 에르빈 슐호프(Erwin Schulhoff) 의 가곡 전집을 남독일방송국과 함께 녹음 중인데, 가곡 작곡가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이 작곡가의 다양한 면모를 세계초연 레코딩으로 소개할 수 있어 기쁩니다.

올해 모차르트 오페라 ‹여자는 다 그래›로 내한해서 세미 스테이지 버전 모차르트 오페라의 진수를 보였던 르네 야콥스와 ‘프라이부르크 바로크오케스트라’가 다시 내년에는 ‘피가로의 결혼’으로 내한합니다. 영악하고 요염한 하녀에서 사랑스럽고 재치 있는 새신부, 수잔나로 함께 공연하게 되어 벌써부터 기쁩니다!

2017년 5월 31일 수요일

지휘자 성시연 인터뷰

통영국제음악당에서 발간하는 『Grand Wing』에 실린 인터뷰입니다.


Q. 2016년 통영국제음악제, 그리고 통영에서 나란히 열린 ISCM 세계현대음악제에서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를 지휘하셨습니다. 그때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의 음향 특성을 어떻게 느끼셨나요?

저는 통영이 연주자에게 상당한 만족감을 주는 홀이라고 생각합니다. 연주자가 무대로 나갈 때 또 무대에 설 때 주는 중압감 또한 적당한 긴장과 집중을 유발하는 매력을 주는 홀이라고 생각합니다. 대규모의 오케스트라가 무대에 펼쳐 졌을 때 물론 악기군마다 세밀하게 서로 듣는 게 쉽지는 않을 수도 있지만 지휘자의 포디움에서 연주자와의 시차 또 음향이 객석에서 반사되어 돌아오는 시차 또한 좋아서 고도의 집중과 음악적인 표현을 가능하게 하는 훌륭한 홀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객석에서 아직 감상을 못해봐서 올해 국제 음악제에 좋은 공연 감상하러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Q. 경기필이 '무직페스트 베를린'에 초청받아 오는 9월 윤이상 ‘예악’과 ‘무악’ 등을 연주할 예정입니다. 이번 통영 공연 프로그램과 거의(?) 같은 듯한데요, 무직페스트 베를린 초청 경위와 곡 선정 의도가 궁금합니다.

사실 저에게는 무직페스트 베를린에 초청 받았다는 게 기적과도 같은데요, 아시아 오케스트라 최초라는 말이 붙을 정도로 페스티벌이 아시아 오케스트라에 가지는 관심도가 높지 않아 윤이상이라는 이름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고 사실상 세팅이 된 페스티벌 프로그램에 저희 쪽에서 끈질기게 구애해서 이뤄진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의 매니저의 역할이 컸습니다.

프로그램 선정은 페스티벌 측의 요청이 반영이 되었습니다. 독일에서는 예악과 무악을 윤이상의 대표적인 곡으로 보고 있고 윤이상의 동양적 사상과 음악을 서양적 기법으로 표현한 것을 지켜가고 있는 그의 제자 호소카와의 곡과 리게티를 프로그래밍했습니다.

Q. 윤이상 작품 중에는 음악 외적인 '메시지'를 담은 것도 있고, 특정한 심상을 음악으로 표현한 것도 있고, 그냥 추상적인 작품도 있습니다. 그 가운데 추상적인 작품에 더 끌리는 편인가요?

저는 워낙 메시지가 있는 음악에 더 강력하게 끌리는 편입니다. 하지만 윤이상 작품의 경우 심포니를 비롯하여 소규모의 타악기와 절묘한 화음이 어우러진 합창곡들 그리고 한국의 악기를 서양의 기법으로 소규모 편성의 곡들 또한 매력을 느낍니다.

Q. 윤이상 작품 가운데 예전에 지휘하셨던 곡은 어떤 곡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윤이상 작품은 아직 연주해볼 기회가 없었습니다. 베를린에서 공부할 때 학교에서 윤이상 페스티벌이 3일정도 개최됐는데 그때 그의 음악을 듣고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번에 그의 곡을 제대로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Q. ‘예악’과 ‘무악’은 같은 작곡가가 썼지만, 작곡 시기도 다르고 음악 양식도 조금 다른 듯합니다. 그럼에도 두 작품의 감상 포인트는 비슷할까요? 관객들이 각각 어떤 부분에 귀를 기울이면 좋을까요?

1966년 도나우에슁엔 페스티벌 위촉 작품으로 초연된 예악은 윤이상의 커리어에 커다란 성공을 가져왔습니다. 향악에서 영감을 받아 이 곡은 오케스트라의 다섯 그룹을 합쳐 색채감이 짙은 음악을 만들어냅니다. 예악은 윤이상이 Hauptton이라는 작곡 기법을 발전시키고 그것이 빛을 발한 곡이라 이것이 감상 포인트가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Hauptton 기법이라는 것은 중심이 되는 음에서 꾸밈음, 비브라토, 엑센트, 클리산도 등을 이용해 발전시켜 선율 하나 자체가 살아있는 존재가 되는 기법입니다. 이것들이 겹쳐지면 윤이상이 추구하는 유동적이고 영원히 이어지는 음악을 만들어냅니다. 참고로 그는 자신의 작품들을 연이어서 연주할 수 있다고 했고 실제로 그의 심포니 5개를 묶어서 연주하면 마치 하나의 거대한 심포니가 탄생하는 것 같다고 어느 학자가 말하더군요. 100주년에 그런 기획적인 퍼포먼스를 볼 수 있으면 의미가 깊을 것 같습니다.

다시 돌아와서 무악에서는 그 전의 윤이상에게 볼 수 없었던 역동적인 리듬을 곡의 토대로 사용했습니다. 이뿐 아니라 1967년 감옥생활을 2년간 한 그의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정치적이고 휴머니즘적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볼 수 있는데요 추상적으로 단지 궁중의 춤을 표현한 것이 아닌 춤추는 '아시아' 옆에 관망하는 '유럽' 이라는 대상을 집어넣어서 몹시 흥미롭습니다. 역시 그의 작품에 중요하게 등장하는 콘트라스트인데요, 아시아가 춤을 출 때 유럽은 그들의 고유의 춤을 춘다는 설정인데 아시아로 표현된 목관 악기와 유럽으로 표현된 오케스트라가 대치하고 소통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동서양을 음악으로 엮어서 휴머니즘적인 유토피아를 그려간 그의 변화된 세계관을 볼 수 있습니다.

Q. 리게티 ‘론타노’를 윤이상 곡들과 나란히 프로그램에 넣으신 것을 보면, 윤이상의 음악 언어를 1960년대 유럽 아방가르드 음악, 이른바 '클러스터' 기법의 발전과정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듯합니다. 베를린 사람들에게, 그리고 통영 사람들에게 윤이상 음악의 어떤 측면을 강조해 들려주고 싶은지 궁금합니다.

예악의 성공 이후 사람들이 윤이상을 리게티의 후임자로 생각했습니다. 아방가르드 음악 클러스터 기법의 영향을 받은 것을 예악에도 나타나있지요. 하지만 저는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변화하고 더 새로운 것을 찾아 그만의 Hauptton기법을 발전시킨 윤이상을 기법의 현미경으로 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한때 세계 음악계의 중심에 있었던 그러나 지금은 잊혀져 가는 그의 이름을 다시 불리게 하고 싶고 공연을 찾아주시는 분들에게는 한국인이 연주하는 윤이상 음악을 들려주고 싶습니다. 사실 윤이상 곡들을 공연하고 레코딩한 것은 주로 해외 연주자들이었습니다.

저희가 아직 리허설 들어가지 않았고 저 또한 윤이상 곡을 처음 접해 보는 것이라 아직 구체적인 그림은 그려지지 않지만 한국의 음악을 표현한 작곡가를 한국 오케스트라가 한국의 정서로 들려주고 싶다는 데에 저는 의미를 두고 싶습니다.

Q. 작곡가 호소카와 도시오는 윤이상의 제자였다고 알려졌습니다. 호소카와의 음악은 윤이상 음악과는 어떤 점에서 비슷하고 어떤 점에서 다른가요? 이번에 연주하실 ‘탄식’이라는 작품에 대해서도 소개해 주세요.

호소카와의 음악은 동서양을 잇는 가교라고 불리는데 이것은 윤이상에게서 근본적인 영향을 받았습니다. 동양의 사상과 전통의 숨결을 서양의 악기에 불어넣은 것입니다.

그는 가가쿠 음악과(궁중음악) 불교음악을 토대로 하여 오케스트라에 새로운 기법으로 일본의 음색을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윤이상의 음악이 타오이즘을 바탕으로 한 음과 양의 조화 즉 다양한 콘트라스트가 섞여서 다이나믹한 면을 양성하는 흘러가는 음악을 추구했다면 호소카와의 음악에서는 쉼과 침묵 그리고 울리지 않는 잔향들이 중요한 의미를 지닌 자연의 소리를 추구했습니다.

탄식이라는 작품은 작곡가가 2011년 3월 11일에 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쓰나미가 일어난 후 바닷가에서 아이의 시신을 찾는 어머니의 사진을 보고 작곡을 했습니다. 게오르크 트라클(Georg Trakl)의 시를 토대로 2013년에 작곡된 이 곡은 4곡으로 이루어져 있고 운율이나 메트룸(metrum) 등이 아닌 언어 자체의 아름다움과 비탄에 잠긴듯한 어두운 분위기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조명한 작품입니다.

Q.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은 어떤 연주자라고 생각하시나요?

김수연은 테크닉보다 음악을 보게 하는 연주자라고 생각합니다. 본인이 원하는 게 확실하고 깊은 감성을 보여주어 믿고 찾을 수 있는 연주자이지요. 통영에서 같이 베토벤 협주곡을 선보이게 되어 기쁩니다.

Q. 부산 출생이시라고 들었습니다. 부산의 바다와 통영의 바다는 어떻게 다른가요? 부산과 통영의 바다는 음악적으로도 각각 다른 영감을 주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 태종대에 자주 갔습니다. 유명한 자갈밭과 바위가 많은 풍경과 그 바위 위로 높게 부서지는 파도가 아직 선하네요. 은빛으로 잔잔한 통영의 바다와는 조금 다른 느낌인 것 같습니다. 드뷔시의 바다를 연주한다면 두 바다 중에서는 부산 바다를 먼저 상상하겠네요.

Q. 마지막으로 통영 관객들에게 한 말씀 부탁합니다.

통영은 좋은 홀, 훌륭한 기획들의 대명사로 불리고 있습니다. 이번 공연이 대부분 현대 곡으로 이루어져 쉽지 않겠지만 통영을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만든 윤이상 작품을 들을 수 있는 기회이니 많은 관심 부탁 드립니다.

2017년 3월 22일 수요일

피아니스트 조성진 인터뷰

통영국제음악당에서 발간하는 『Grand Wing』 3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지면이 모자라 일부 내용이 삭제되었던 것을 여기에서는 초안 그대로 올립니다.


2017년 3월 6일 월요일, 프랑스 파리 현지시각 오전 10시 15분

Q. 2014년에 통영국제음악당에서 공연했던 일을 기억하는가?

A.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차이콥스키 협주곡 1번을 협연했었다. 공연장 음향이 아주 좋았고, 피아노도 훌륭했고, 분장실 유리창으로 보이는 경치가 아름다웠던 기억이 난다.

Q. 연주회장 음향이 어땠는지 좀 더 말해 달라.

A. 솔직히 국내 공연장 중 음향이 가장 좋은 곳 가운데 하나라 생각한다. 울림이 딱 적당했고, 연주회장 크기도 적당해서 독주회를 하기에도 훌륭할 것으로 기대된다.

Q. 미셸 베로프 선생이 지난해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 심사위원으로 왔었다. 그 얘기를 해주던가?

A. 통영 간다는 얘기 정도만 했었다. 콩쿠르에 참가했던 동창이 입상하지 못해 아쉽기도 했다.

Q. 미셸 베로크 선생님께 주로 토론식으로 수업을 받았다고 말한 일이 일다. 선생님께 배운 것이 있다면?

A. 선생님께 배웠던 곡 가운데 드뷔시와 프로코피예프 작품들이 가장 좋았다. 드뷔시 곡은 선생님께서 시범 연주를 해주시기도 하고, 페달링이나 프레이징에 관해 조언을 많이 들었다. 내가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라 한국에서는 선생님과 대화를 적극적으로 하지 못했지만, 프랑스에 와서 그런 성격이 많이 바뀐 덕분에 선생님께 더 많은 것을 여쭤볼 수 있었다.

Q. 하마마쓰 콩쿠르 우승했을 당시만 해도 때때로 쭈뼛거리는 듯한 성격이 연주에 드러난다고 느꼈는데, 요즘 연주에서는 그런 느낌이 사라졌다. 성격이 바뀐 계기를 미셸 베로프 선생님이 제공한 것인가?

A. 그보다는 프랑스에서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바뀌었던 것 같다.

Q. 통영에서 모차르트 소나타 K. 332와 드뷔시 《영상》, 그리고 쇼팽 발라드 전곡을 연주할 예정이다. 드뷔시와 쇼팽을 고른 이유는 짐작이 되고, 모차르트 곡을 골랐던 이유가 궁금하다. (조성진은 도이체그라모폰에서 드뷔시 곡을 녹음할 계획이며, 그에 앞서 이번 주부터 여러 공연장에서 연주할 예정이다.)

A. 드뷔시와 쇼팽이 잘 어울리는 것처럼, 모차르트와 쇼팽 또한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쇼팽은 모차르트를 매우 존경했었고, '돈 조반니' 주제로 변주곡을 작곡하고 모차르트의 '벨칸토'를 받아들이는 등 음악적으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쇼팽이 음악에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도 어찌 보면 모차르트 오페라를 닮았다.

Q. 모차르트 곡 가운데 소나타 K. 332를 고른 이유는 무엇인가?

A. 특별한 이유가 있다기보다 모차르트 소나타 중에서 하나 골랐을 뿐이다. K. 332는 하마마쓰 콩쿠르 때에도 연주했던 곡인데, 이번에 새로 연주하면서 해석이 어떻게 달라질지 나 자신도 기대된다.

Q. 바흐 곡은 무대에서 거의 연주하지 않는 것 같다. 평소에도 즐겨 연주하지 않는 편인가?

A. 바흐 평균율을 즐겨 연주하고, 프랑스 모음곡이나 파르티타도 가끔 연주한다. 그러나 리사이틀 프로그램에 넣기는 참 까다롭다고 느낀다.

Q. 공연장마다 피아노와 공간의 음향 특성이 다르다. 그때마다 어떻게 적응하는가?

A. 악기가 마음에 안 들면 아무리 연습을 하고 '마인드 컨트롤'을 해도 한계가 있는 것 같다. 피아노 액션을 가지고 다녔으면 싶을 때도 있을 정도다. 그런 점에서 조율사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연주회장 음향도 마찬가지다. 소리가 건조하게 들리는 편이라면 차라리 페달을 많이 쓴다거나 하는 식으로 대응할 수 있고, 템포도 자유롭게 설정할 수 있다. 그 반대가 되면 템포를 빨리하기 곤란해진다.

Q. 프랑스 집에 가와이 피아노가 있고, 한국 집에 야마하 피아노가 있다고 들었다. 연주회장에는 대부분 스타인웨이가 있는데, 그밖에 좋아하는 피아노 브랜드가 있는가?

A. 우선 스타인웨이를 선호하는 편이고, 공연장에 따라서는 스타인웨이보다 파지올리가 더 좋은 소리를 내는 곳도 있었다.

Q. 더 옛날 피아노를 쳐본 일이 있는가? 베히슈타인, 뵈젠도르퍼, 또는 19세기식 포르테피아노는?

A. 베히슈타인을 공연장에서 쳐본 일은 없지만, 옛날식 뵈젠도르퍼를 연주한 일은 있다. 바흐나 하이든을 연주하기에 참 좋은 피아노라고 생각한다. 더 옛날 피아노는 박물관에서 잠깐 만져본 적이 있는 정도다. 19세기식 살롱에서 이를테면 쇼팽 마주르카를 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Q. 얼마 전 서울에서 있었던 독주회 때, 쇼팽 연주는 모든 사람에게 찬사를 들었지만 슈베르트 소나타 D. 958 연주는 호불호가 갈렸었다. 본인 스스로 자신의 연주에 얼마나 만족했는가?

A. 연주회장에 소리의 울림이 많았고, 객석에 관객이 찼을 때도 그다지 달라지지 않아서 썩 만족할 만한 소리가 나지 않았다. 둘째 날에는 다른 피아노로 바꾸고 악기 배치와 연주법도 조금씩 바꿨는데, 둘째 날 연주가 더 마음에 들었다.

Q. 그날 연주를 직접 들어보지 못해서 유튜브에 있는 프랑스 공연 실황을 들었다. 그 연주와 전반적인 해석의 기조가 비슷했는가?

A. 달라졌다. 머리 페라이아에게 레슨을 받은 일이 계기였고, 서울에서 좀 더 드라마틱하게 연주했었다.

Q. 이를테면 2악장 첫째 주제를 여리게 노래하듯 연주했다. 나라면 화음을 좀 더 꾹꾹 눌러 소리를 만들겠다는 생각이 들던데, '칸타빌레'가 되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A. 예를 들어 예상치 못한 C장조 화음이 나오는 곳이라면 그 화음을 강조해야겠고, 중간에 조성이 D♭ 단조가 되는 곳에서는 왼손 화음을 좀 더 볼륨 있게 쳐 줘야 느낌이 살아난다. 그러나 가곡을 닮은 곳은 가곡처럼 연주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슈만 가곡에서 피아노가 때때로 강한 자기주장을 하는 것과 달리, 슈베르트 가곡에서는 피아노가 성악과 같은 화성, 같은 선율의 틀 안에서 주로 움직인다.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에서도 그런 곳이 있다. 또 한편으로는 특정 작곡가에게 편견을 갖지 않는 태도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슈베르트답다는 것은 무엇인가? 모차르트가 '돈 조반니'를 발표했을 때, 그 작품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모차르트답지 않다고 받아들여졌었나? 마찬가지로 슈베르트 곡에서 베토벤이 보일 수도 있고, 슈베르트가 베토벤보다 더 드라마틱하거나 더 관현악적일 수도 있다.

(내가 들었던 프랑스 공연 실황 영상에서 조성진은 악보의 세세한 지시를 깜짝 놀랄 만큼 충실하게 지키고 있었다. 악보의 아주 작은 부분까지 모조리 외우지 않고서는 가능하지 않은 연주였다. 조성진의 슈베르트 해석이 철저하게 악보를 근거로 한다는 점을 시사하는 대목.)

Q. 평소에 연습을 4시간 정도 한다고 예전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 시간에 집중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인가?

A. 딱히 비결은 없고, 자연스럽게 집중이 되는 편이다. 물론 피곤하거나 딴생각이 날 때도 있지만, 그럴 때는 연습을 중단한다.

Q. 도이체그라모폰에서 쇼팽 음반을 녹음했고, 이번에 드뷔시를 녹음할 예정이다. 향후 계획은?

A. 6월에 드뷔시를 녹음할 예정이고, 그 이상은 아직 말하면 안 될 것 같다.

Q. 통영 관객들에게 한 말씀 해달라.

A. 통영에서 독주회 제의가 왔다고 프랑스 매니저에게 연락을 받았을 때 단숨에 승낙했다. 2014년에 통영에서 공연했을 때 너무 좋아서 꼭 다시 가고 싶었고, 그래서 이번 공연이 많이 기대된다.

2016년 11월 10일 목요일

소프라노 서예리 인터뷰

통영국제음악당에서 발간하는 『Grand Wing』에 실린 인터뷰입니다.


Q. 피에르 불레즈와 함께 있는 사진을 페이스북 커버로 자랑스럽게 쓰고 계시네요. 베티나 에르하르트가 감독한 피에르 불레즈 다큐멘터리 주역으로 출연하셨고, 불레즈 작품 중 〈플리 슬롱 플리〉(Pli selon Pli)를 부른 뒤 불레즈에게 극찬을 받은 사연이 국내 언론으로 널리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소프라노 서예리로서 작곡가 불레즈의 음악을 어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불레즈는 처음 접할 때부터 현대음악의 생소함을 전혀 느낄 수가 없었어요. 일반인들에게 불편한 수준의 아방가르드 양식을 선도하는 작곡가가 아니라는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노래를 부르는 사람을 정말 편안하게 해 주는 작곡가입니다. 성악가가 부를 수 있는 음의 높이와 길이, 성량 그리고 호흡을 너무도 정확히 알고 있어요. 이 점은 매우 중요하지요. 일반인들은 작곡가라면 누구나 그 정도는 감안하는 게 아니겠냐고 하시겠지만 결코 그렇지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대편성 오케스트라의 뚜띠와 같이 노래를 하게 해 놓았는데 낮은음으로 계속되면 그야말로 중얼거림처럼만 들리고 음을 들을 수 없게 되지요. 도저히 정상적인 발성으로 부를 수 없는 높이로 점철된 음악도 흔하고요. 불레즈는 그런 무리한 작곡이 전혀 없습니다. 좋은 발성 그대로, 편안한 마음으로 표현을 할 수가 있어요. 기교에 신경 쓰느라 가사를 표현할 겨를이 없는, 그런 음악이 아닙니다. 제가 연주 후에 불레즈에게 “당신의 곡은 정말 편안하게 부를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더니 자기가 정말 듣기 원하는 칭찬이라면서 매우 기뻐했습니다. 제가 불레즈의 다른 음악을 들어보아도 기악을 하는 독주자들에게도 편안히 음악을 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게 느껴져요. 독주자로서 바로 이 면도 불레즈를 대가로 일컫게 하는 또 하나의 덕목인 것 같이 생각됩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불레즈의 음악에서 느껴지는 일종의 동양적 정서 같은 것이에요. 정확한 분절과 음높이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서정과 자연으로부터 음을 빌어와 무리가 없이 진행되도록 하는 것이 마치 동양의 작풍 같습니다. 때로는 동양에서 활용되는 음계만을 고집한 작품도 있고요. 악기만 서양악기일 뿐, 누가 들으면 종묘제례악처럼 느껴지는 부분도 있습니다. 혹시 궁금해하실 분이라면 다른 곡도 많지만 예를 들어 오케스트라 곡인 〈제의 (브루노 마데르나를 추모하며)〉 ‘Rituel in Memoriam Bruno Maderna’를 한 번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성악가도 그런 동양적인 정서를 느끼면서 노래를 하면 더 효과적인 작품을 만들 수가 있어요. 제 생각에는 불레즈도 제가 그와 같은 서정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말년에 저와 작업을 하고 다른 단체에도 자신의 곡 연주자로서 저를 추천하곤 했습니다. 서양의 성악가들에게 말로 일일이 설명해도 도저히 표현해낼 수 없는 그의 곡만의 방식이 있거든요. 저는 그의 음악만 들어도 어떤 방식으로 노래를 해야 하는지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점이 통했던 것 같아요.

인격적으로도 정말 겸손하시고 진지하시면서도 주위를 즐겁게 하실 수도 있는 훌륭한 분이시기에 생각할수록 돌아가신 것이 너무도 안타깝기만 합니다. 지난 세기 서양음악사의 종말을 상징하는 죽음이라고 생각합니다.

Q. 학생 때 피아노를 전공하려고 했다가 성악 전공으로 바꾸셨는데, 그래서인지 다른 가수들에게는 느끼기 어려운 '기악적 감성'이 특히 현대곡을 부를 때 노래에 묻어난다고 느껴집니다. 피아노를 배운 경험 가운데 어떤 부분이 노래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시나요?

어떤 악기든 연주경험이 성악에는 반드시 도움이 됩니다. 바이올린을 했던 사람은 정확한 음높이에 대하여 나름대로의 집착이 있는 것을 보기도 했습니다. 피아노 연주는 수평적인 멜로디 흐름에 치중하지 아니하고 모든 파트의 음을 수직적으로 바라보는 작업을 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것도 거의 직관적으로 계속 진행되어야 하지요. 단순하게 초견으로 악보를 읽는 것에 도움을 받은 것은 물론입니다. 이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전체적인 작품의 흐름과 함께 표현되는 노래로 만드는 데에 결정적인 도움을 받고 있다는 점이라고 생각해요. 말씀하신 기악적 감성이라는 것이 그런 게 아닌가 싶은데, 저는 많은 때에 저의 목소리가 하나의 악기와 같다고 여깁니다. 어떻게 곡 전체에 저의 발성이 악기처럼 스며들 수 있는지를 함께 고민합니다. 현대음악 중에는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반주’로서 배경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성악을 ‘독주’라고 분리해서 튀어 드러나도록 노래를 했다가는 망쳐버리는 작품이 많습니다. 처음 현대음악을 부르는 성악도들이 잊기 쉬운 점이에요. 저는 현대곡 연주가 있을 때 오케스트라 측에서 성악파트만 있는 악보를 보내줄 때마다 오케스트라 악기가 모두 표시된 총보를 보며 노래 공부하는 게 훨씬 편하다고 말하여 굳이 총보를 요청해서 봅니다. 그래야 좋은 작품을 같이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악보의 모든 파트를 동시에 바라보는 관심에는 피아노 전공의 경험이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Q. 자신만의 발성법을 찾기 전에 흉내 내려 했던 가수가 있었나요? 자신의 목소리를 찾게 된 과정이나 계기가 궁금합니다. 더 나은 발성법을 고민 중인 성악도들에게 조언 한 마디 부탁합니다.

좋은 발성법을 몇 마디로 이야기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것은 화가에게 ‘그리는 법’을 짧게 설명해달라는 것과 같지요. 성악을 시작할 때부터 늙어서 연주를 그만둘 때까지 평생을 생각하고 실험하고 연주하고 교정하는 것이 곧 발성입니다. 다 되었다고 생각될 때도 있지만 한 번 불러보면 곧바로 또 교정할 것이 드러나지요. 저만 그런 게 아니라 모든 성악가가 똑같을 거예요. 자신의 발성법이 완성되었다고 자신할 사람은 그 누구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발성은 우리나라에서는 조수미 선생님, 그리고 외국사람으로서는 그루베로바입니다. 자연스럽고 유연하면서도, 강인한 힘이 그 밑바탕을 이루고 있는 정말 좋은 발성이라고 생각해요. 유연하기만 하면 소리가 민들레 홀씨처럼 하늘로 날아가 버리고, 힘과 박력만을 추구하면 굳은살처럼 딱딱하고 경직된 소리로 변질하기 쉽습니다. 그렇게 되지 아니하고 둘을 모두 균형 있게 갖추는 것이 발성의 최종목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좋은 발성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유지하는 것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오랜 시간 동안 건강한 목소리로 무대에 서는 것이 모든 성악가의 목표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결코 무리해서 자신의 영역을 벗어난 곡을 함부로 선택해서는 안 됩니다. 저에게도 유혹은 많았지요. 정중하고도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예를 들어 자신은 새털같이 가뿐한 소리를 가졌는데 바그너 오페라 배역이 들어올 수도 있고, 비브라토의 폭이 크고 메탈릭한 음색을 가진 사람이 몬테베르디의 오페라를 해 달라고 부탁받을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대단한 사람들과 하는 작업이라고 해도 쉽게 응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풀룻 연주자에게 튜바 소리를 내 달라고 하는 것처럼 무리한 것이지요. 물론 자신의 소리가 갖지 못한 면을 보완하려는 노력은 계속 이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자기 소리의 장점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를 살리기보다, 갖지 못한 단점을 숨기려고 또는 단지 단점을 뛰어넘는 시도를 한다는 차원에서 자기 목소리와 맞지 않는 레파토어, 맞지 않는 분야를 전전하는 것은 성악가로서의 생명을 단축시키는 일일 수도 있으므로 극히 조심해야 합니다.

Q. 가수로서 느끼는 유럽 고음악계, 현대음악계, 오페라 극장의 최신 경향이나 판도를 국내 애호가 및 음악 전공 학생들에게 소개하자면?

이것은 모든 문화계에 공통된 현상 같은데, 소위 ‘유행’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1990년대 초에는 말러, 브루크너 등 대편성 교향곡, 1990년대 후반에는 고음악 원전연주 등과 같은 클래식 계의 키워드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게 없다는 거예요. 한 켠에서는 진은숙의 음악을, 동시에 다른 데에서는 힐데가르트 폰 빙엔, 그 옆에서는 베토벤의 운명교향곡이 아무 특별한 시선을 받지 않고 연주됩니다. 문학이나 미술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거의 모든 문화소비자가 인터넷을 통해서 아무 경계가 없는 대상을 계속 접할 수 있다는 것도 이러한 현상을 부추긴 것 같습니다. 모든 이들이 각자 개성과 취향에 따라, 그것도 다른 사람 눈치를 보지 않고 문화를 소비하는 것이지요. 그 자체로서는 아주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지, 인터넷을 돌아다니며 클릭을 반복하는 문화의 소비형태 때문에, 일정 정도의 참을성을 요구하는 분야는 쇠락해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우려는 생깁니다. 곧바로 흥미를 끌 수가 없는 것이라면 이내 다른 것을 클릭함으로써 외면받게 되지요. 현대음악의 경우에 예전에는 거의 소리가 안 들릴 정도의 조용한 음향으로 1분 이상 지속하면서 시작하는 음악이 많았습니다. 요즘 젊은 작곡가들의 곡은 현란한 음색의 타악기 연주나 특이한 음향으로 시작하는 게 상대적으로 많더군요. 같은 현상을 드러내는 게 아닌가 느껴졌습니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예요. 15초 광고와 같이 빨리 흐르는 영상에만 노출되었던 사람이라면 타르코프스키의 ‘구식’ 영화를 도저히 참고 볼 수가 없겠지요.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대중의 성향 변화 때문에 클래식 음악계가 차츰 전반적으로 외면받는 흐름으로 나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습니다.

Q. 요스 판 이메르세일의 '슈베르티아데' 음반 작업에 참여하셨고, 같은 제목으로 열리는 통영 무대에도 서게 되셨습니다. 바리톤 토마스 바우어와도 친하실 텐데요, 이와 관련해 독자들이 흥미로워할 만한 얘기 부탁합니다.

그 사람들 모두 오랜 시간 정말 많은 연주를 같이 다녔기 때문에 가족같이 친한 모임입니다. 음악적으로는 서로를 완전히 믿는 사이라, 리허설 시간이 다른 연주 날과 겹쳐 당신 연주를 미안하지만 못 할 것 같다고 하면 비행기로 곧바로 날아와 리허설 없이 그 상태로 무대에 서라 할 만큼 음악적 신뢰가 두텁습니다. 가는 데마다 반주(?)를 곁들여가며 식사도 자주 함께하고 각자 사는 이야기도 스스럼없이 나누지요. 요스와 토마스는 회와 슈납스(소주)를 너무도 좋아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번에 통영으로 함께 가게 된 것을 너무도 기뻐했습니다.

Q. '슈베르티아데' 음반에서 슈베르트 가곡을 부르신 음반을 듣고 있으면 개인적인 추억이 노래에 묻어나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독자들에게 소개해 주실 만한 사연이 있나요?

슈베르트의 가곡을 부르면서 개인적인 추억에 잠시라도 잠길 수 없는 우리나라 성악가가 있을까요? 저도 마찬가지이지요. 피아노과에서 성악과로 옮긴 뒤부터 사춘기 시절 내내 불렀던 것이 슈베르트의 가곡들입니다. 유럽이라는 데를 전혀 몰랐을 때도 그 가곡들을 들으면 독일, 오스트리아의 쓸쓸한 가을겨울과, 유럽 남부의 화사한 햇살이 상상으로 그려졌습니다. 슈베르트의 비극적인 죽음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의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으려 했던 정서가 반복되어 드러나는 것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이후에도 아무리 놓아주려 해도 일 년에 몇 번은 부르게 돼요. 그때마다 어릴 때의 그런 추억들이 생각나곤 합니다. 그런데 슈베르트의 가곡을 추억만으로 부를 수는 없습니다. 연주할 때마다 새로운 것이 드러납니다. 설명은 쉽지 않지만 기교면에서도 부를수록 어렵기도 하고요. 쉽게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정확한 독일어 딕션이나 가사를 통한 감정처리만으로는 완성해낼 수 없는 요소가 너무도 많습니다.

Q. 국내 팬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계획이 있나요?

자랑이라 하기에는 그렇고, 그냥 제 연주 계획을 말씀드릴게요. 기간으로는 2019년 상반기까지 연주가 잡혀 있습니다. 그냥 생각나는 것만 말씀드리면 슈트라우스 네 개의 마지막 노래 및 가곡들로 씨디 녹음 및 투어가 계획되어 있고, 말러 4번의 연주 및 씨디 녹음도 있습니다.

아주 흥미로운 거슈윈의 노래들로 내년 크리스마스를 장식할 예정이고, 빈 필 단원들과 파리 샹제리제 극장에서 말러 뤼케르트 가곡집, 베르크의 일곱 개의 초기 가곡 등을 부르는 계획도 있어요. 현대음악으로는 앙상블 앵테르콩탕포랭과 안톤 베버른의 곡들로 불레즈 추모 연주회를 하고, 빈 방송교향악단, MDR 합창단과 함께 불레즈의 〈혼례의 얼굴〉 공연도 있습니다. 쾰른에서 진은숙 선생님의 〈말의 유희〉 연주도 있고요. 한국에서는 내년 10월에 예술의 전당 클래식 스타 시리즈에서 독창회가 있습니다.

Q. 2011년 통영국제음악제 레지던스 아티스트였고, 지난해에는 통영국제음악당 기획공연에 출연하셨습니다. 통영국제음악당 개관 전과 후 모두 통영에서 공연하셨던 만큼 통영과 인연이 남다른 음악가이신데요, 이번 '슈베르티아데' 공연을 앞두고 기대되는 점을 말씀해 주세요.

통영국제음악제는 저의 음악 여정에서 도저히 언급하지 않고 넘어갈 수 없는 매우 큰 부분을 차지하는 대상입니다. 2005년 스콜라 하이델베르크와 처음 연주하러 왔었는데, 초기부터 자주 초청되었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쩌면 통영국제음악제가, 곧 저의 현대음악에 대한 식견과 동시에 탄생하였고 또한 발전해왔다고 생각될 정도이니까요. 처음 음악제가 시작되어 제가 참여할 때에는 저 또한 현대음악의 실험을 하고 있었습니다. 음악제의 발전도상에서는 제가 유럽에서 활동 영역을 크게 확장하고 있었고요. 이제는 양쪽 모두 어느 정도 기량이 무르익어 인정받고 있는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아무쪼록 앞으로도 어느 한쪽 힘을 잃지 않고 둘 다 자신의 모든 역량을 다해 청중들을 크게 만족시키는 음악제와 제 자신으로 남아서 계속 굳은 인연을 이어가길 바래봅니다.

2016년 9월 26일 월요일

바이올리니스트 조진주 인터뷰

통영국제음악당 매거진 『Grand Wing』에 실린 인터뷰입니다. 잊어버리고 있다가 뒤늦게 생각 나서 올립니다.


Q. 2011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에서 2위에 입상했다. 무엇을 경험했고 무엇을 배웠는가?

이미 국제 콩쿠르는 많이 경험했던 차여서 많이 특별한 것은 없었다. 다만 한국말로 진행이 되는 점이 어색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던 개인적인 느낌이 기억에 남는다. 윤이상 작곡가의 곡을 처음으로 배우는 과정도 재미있었다.

Q. 그때 결선에서 차이콥스키 협주곡을 연주했는데, 작품에 대한 해석이나 관점이 지금에 와서 달라진 점이 있나? 이번 통영 공연에서 '그때와는 다를 테니 기대하시라' 하고 싶은 대목이 있다면?

곡에 대한 해석은 누구와 연주하는지, 최근의 음악적 경험이 무엇인지에 따라 항상 변화하는 것 같다. 다른 오케스트라, 그리고 다른 지휘자와 연주하게 되니 아마도 다른 느낌의 연주가 나오겠다고 예상할 수 있겠다. 2악장에 대한 생각이 주로 변화하는데, 깨끗하고 순수하게 연주할지, 조금 더 우는 느낌이 강하게 연주할 지가 언제나 헷갈리는 부분이다. 변덕스러운 편이라 어떻게 연주할지는 그때 가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Q. 2014 인디애나폴리스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국제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그때 얻은 특전이나 달라진 것들 가운데 어떤 것이 가장 마음에 드나?

모든 것들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거의 인생이 바뀌었다고 해도 될 정도로 많은 주목과 혜택을 받으며 음악인생을 꾸려나가고 있다는 점이 아직도 황홀하다. 풀 시즌이 꽉 찰 정도로 많아진 연주들, 입상에 힘입어 시작하게 된 비영리 재단과 ‘앙코르 체임버 뮤직’이라는 캠프, 그리고 모교를 비롯한 두 학교로의 패컬티 임명까지… 인디애나폴리스 콩쿠르의 전폭적인 지지가 없었다면 모두 불가능한 일들이었다.

Q. 인디애나폴리스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1683년 'ex-Gingold'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을 4년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는데, 전에 쓰던 과르네리 바이올린과 번갈아 사용하나? 차이콥스키 협주곡에는 어떤 악기가 더 잘 맞는다고 생각하나?

스트라디바리우스는 현재 사용하지 않는다. 나와 음악적 색깔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되어 2위를 입상한 바이올리니스트 테사 라크(Tessa Lark)에게 양보했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악기가 발사믹 소스를 가득 친 스테이크라면 스트라디바리우스는 흰 살 생선요리다. 내 연주를 들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조금 더 소리가 진한 과르네리가 나와 궁합이 더 잘 맞는다. 최근에는 나와 동갑인 델핀 프티장에게 활을 주문했는데, 나를 위해 특별히 맞춤 제작된 것이라 오래 전에 잃은 친구를 만난 듯 손에 착착 감겨서 연주하는 것이 아주 즐겁다.

Q. 커티스 음악원과 클리블랜드 음악원에서 공부해본 경험으로 두 학교의 장단점을 비교하자면?

커티스는 나와 맞는 점이 많지 않았다(웃음). 1년도 안채우고 나왔으니까 말이다. 지식을 조금 더 강조하고, 동시에 연주 스타일이 개방적인 클리블랜드가 나와 훨씬 더 잘 맞았다. 나는 도제식 교육을 거부하는 편이다. 내가 이렇게 했으니까 그대로 따라 해보아, 라는 식의 가르침은 와 닿지 않는다. 되려 영감을 줄 수 있는 단어나 표현방식을 제시해 주면 그것을 해석하며 실험하는 것을 즐기는 편이다. 그런 면에서 클리블랜드에 계시던 폴 칸토르 선생님은 물음을 중시하고, 내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도 진지하게 답변해 주시던 인생의 유일한 선생님이었다.

Q. '선생님'으로서 학생을 지도하면서 자신이 배우는 것도 있을 것 같다. 연주자로서의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있다면?

가르치는 것은 정말이지 학생보다는 나에게 더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기본을 리마인드하고, 새로운 생각을 뽑아내기에 가르치는 것 보다 더 효과적인 방식은 없다고 생각한다.

Q.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이른바 '중2병'에 관해 언급한 일이 있다. '증상'이 어떠했으며 어떤 계기로 극복할 수 있었나?

굳이 말하자면 클래식한 중2병이었다고나 할까. 매일 우울하고 미래가 어둡고 부정적이고 슬픈 음악만 듣는 등 전형적이었다. 부모님으로부터 금전적으로 독립해 보니 내 감상에 빠질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일을 미친 듯이 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다 보니 점점 어른인 척 하는 스킬이 늘었다.

Q. 현재 단기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좀 더 좋은 오케스트라와 하는 연주를 늘리는 것, 비영리 재단과 캠프가 잘 자리잡도록 하는 것, 학생들 인생을 망치지 않는것…. (하아) 어렵다.

Q. 연주자로서 자신의 장단점을 스스로 가장 잘 알고 있을 것 같다. 장점 위주로 자신을 평가하자면?

리듬에 담겨있는 음악적 언어를 잘 이해하는 것 같다. 선율보다는 리듬이 조금 더 원시적인 본능에 가까운 것 같은데, 그런 리듬의 느낌을 살리는 연주를 개인적으로 좋아하고, 좀더 관객과의 소통이 잘 되는 스타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내 연주에도 그런 생각들이 묻어 나오는 것 같다.

Q. 2013년 통영국제음악제에 출연했다. 통영국제음악당은 2014년에 개관했고, 도이치 방송교향악단과 협연하는 이번 공연이 통영국제음악당 데뷔 무대인 셈이다. 현재 자신이 기억하는 통영의 이미지를 말한다면?

사실은 외가 쪽이 모두 통영과 고성 출신이다. 어릴때 부터 많이 와보던 곳이라 편안하다고 느낀다. 통영에 오면 음식들이 다 외할머니가 만드시던 음식들이라 이질감 없이 행복하게 지내다가 돌아가게 된다.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과 바닷가 사람들의 에너지를 좋아하니까, 언제나 즐겁다.

2015년 12월 1일 화요일

노래하는 배우, 생각하는 음유시인 ― 테너 이안 보스트리지 인터뷰

통영국제음악당에서 발간하는 『Grand Wing』에 실린 글입니다. 인터뷰 뒷얘기는 ☞요기를 참고하세요.


2015년 9월 22일, 영국 시각 오전 9시 30분. 영국으로 전화를 걸어 테너 이안 보스트리지를 인터뷰했다.

Q. 기타 반주로 특히 다울랜드를 노래한다는 아이디어는 옛날 음유시인이 류트 반주로 노래했던 일을 연상시킨다. 이런 점에서 '현대 류트'라 할 수 있는 기타의 장단점은 무엇인가?

A. 노래를 원형에 가깝게 되살리는 일에 기타의 친화성(intimacy)이 매우 유용하다. 현대 피아노는 너무 크고, 말하자면 산업화한 악기다. 겉은 나무이지만 기본적으로 쇠로 된 '괴물'이다(웃음). 물론 슈베르트 시대 피아노는 훨씬 섬세했지만, 슈베르트도 기타를 사용했다. 그가 특별히 기타 음악을 쓰지는 않았더라도 슈베르트 곡이 생전에 기타 반주로 불리곤 했다. 또 기타의 휴대성 덕분에 집 밖이나 다른 사람의 집에 기타를 가져가 함께 노래할 수도 있다. 류트는 리듬적으로 복잡하다고 할 수 있겠고, 매우 아름다운 악기이지만, 기타는 리듬과 셈여림을 다루기 더 쉬운 실용성이 있다. 다만, 기타 소리가 류트의 '원형'과는 다르다는 사실은 특히 다울랜드를 부를 때 단점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Q. 슈베르트 시대나 18세기 포르테피아노는 어떤가?

A. 옛날 피아노 소리는 훨씬 부드럽고 다채로웠다. 우리는 현대 피아노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현대 피아노의 큰 음량에 맞추어 그만큼 큰 소리로 노래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잊곤 한다. 한편, 요즘 공연장에는 다들 스타인웨이 피아노가 있으므로 조율이나 관리 등이 표준화되어 있는 점은 장점이다. 그러나 현대 피아노로 페달을 너무 많이 쓰게 되니까 문제다. 그러면 밸런스 문제가 생긴다.

Q. 쉐페이 양을 어떻게 알게 되었나?

A. 음반사(그때는 EMI였고 지금은 워너뮤직)와 런던에 있는 내 기획사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래서 브리튼의 《중국 시인들의 노래》와 한스 베르너 헨체, 슈베르트 등을 녹음했다. 쉐페이 양은 같이 일하기 참 좋은 사람이며 훌륭한 음악가다.

Q. 스티븐 고스가 당신과 쉐페이 양을 위해 쓴 《시경》(詩經; 2014)이라는 작품을 소개한다면? ('The Book of Songs'의 번역을 '시경'으로 나중에 고침.)

A. 요즘 그걸 공부하고 있는데 기막히게 아름다운 작품이다. (현대곡이지만) 어렵지 않고, 어떤 곡은 민요풍이다. 가사로 쓰인 시는 이 곡으로 알게 됐는데, 어떤 점에서는 브리튼의 《중국 시인들의 노래》와 비교할 만하다.

Q. 협연하고 싶은 음악가로는 또 누가 있나?

A. 너무 많은데… 올해 협연하고 있는 음악가로 작곡가 토마스 아데스, 피아니스트는 줄리어스 드레이크, 라르스 포크트, 지휘자로는 대니얼 하딩, 베르나르트 하이팅크, 사이먼 래틀. 이런 최고의 음악가들과 함께할 수 있어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Q. 이안 보스트리지의 가장 탁월한 점은 연극적 생동감이 아닐까 한다. 비결이 무엇인가?

A. 음악의 강도(degree of intensity)에 반응하는 것이다. 내가 즐겨 부르는 노래는 그 자체로 강한 음악, 극적인 요소가 있는 음악, 그래서 주의를 끄는 음악이다.

Q. 발성이나 그밖에 '음악적인' 요소에 집중하는 다른 가수와 달리 당신 노래에는 '드라마'가 있다.

A. 드라마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요즘 성악가는 대부분 오페라를 주업으로 하는데, 가끔 리사이틀을 하면 뭔가 다른 걸 하게 되고, 그래서 '드라마틱'하지 않게 된다. 나는 가곡이 주업이라 그 속의 '드라마'에 언제나 끌리곤 한다.

Q. 오페라 가수들은 이른바 '마스케라'를 쓴다. 당신 목소리는 그와는 다르지만, 정도의 차이일 뿐 마스케라를 쓰기는 할 것 같다. [마스케라(maschera)는 일종의 비강공명법으로 벨칸토 창법에 주로 쓰인다. 본디 이탈리아 말로 '가면'이라는 뜻이며, 발성할 때 가면을 쓴 듯한 느낌이 든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마치 머릿속에서 소리가 울리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므로 '두성'(頭聲)이라고도 한다.]

A. 마이크를 쓰지 않는 이상 공연장에 소리를 전달하려면 '울림통'이 있어야 한다. 그게 '얼굴'(웃음) 또는 '머리'라 할 수 있다.

Q. 그렇다면 다울랜드, 바흐, 슈베르트 등을 부를 때 발성의 원칙은 무엇인가?

A. 그건 가사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Q. 가사? 음악 양식(style)이 아니라?

A. 음악 양식일 수도 있겠지만, 어떤 노래가 그 당시 참모습이 어땠는지 아는 데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결국 양식이란 건 상상을 보태서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작곡가마다 분명 다르지만, 다루는 방식이나 부르는 사람에 따라 공통점도 생긴다.

Q. 당신은 역사학 박사이자 옥스퍼드 대학 인문학 교수이다. 예술이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나, 아니면 그냥 거울처럼 사회를 반영할 뿐이라 생각하나?

A. 상호작용한다고 본다. 예술은 분명 사회에 영향을 끼칠 수 있고, 의제를 설정하거나 정치적 여론 형성에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그러니까 끝없는 상호작용의 연쇄다. 클래식 음악은 지금에 와서는 19세기나 20세기처럼 정치 담론과 특별히 연결된 예술 장르는 아닌 듯하다. 어쩌면 그게 좋을 수도 있는데, 클래식 음악이 딱히 좋은 영향을 끼쳤는지 확신이 안 들기 때문이다. 다만, 클래식 음악, 특히 오페라의 비용이나 위치를 둘러싼 이슈는 유효하다. 즐기는 사람은 적은데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이게 민주사회에서 문제가 된다.

Q. 어느 분야이든 존경하거나 흥미를 느끼는 예술가가 있다면?

A. 시각예술을 감상하거나 책을 읽는 등 다양하게 관심이 많다. 특정한 사람을 꼽기는 어렵고, 그때그때 다르다.

Q. 자신이 녹음한 음반 가운데 어떤 것을 좋아하는가?

A. 음… 사이먼 래틀 지휘, 베를린필과 협연한 브리튼 가곡집을 좋아한다. 몬테베르디 《오르페오》 (에마뉘엘 아임 지휘) 음반과 찰스 매케라스가 지휘한 《이도메네오》도 좋아한다.

Q. 한국이나 한국 관객에 대해 어떤 느낌을 받았나?

A. 젊고 에너지가 넘치는 점이 특별하다. 공연할 때마다 옛날 음악이 아닌 새로운 음악을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점이 멋지다.

Q. 향후 계획이 있다면?

A. 《겨울 나그네》를 한스 첸더가 오케스트라 곡으로 재창작한 작품을 녹음할 예정이다. 말하자면 창작인 동시에 《겨울 나그네》에 대한 해석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이다. 런던에서 공연한 다음 미국과 세계 여러 공연장에서 공연할 생각이다. 몬테베르디 작품을 공연할 계획도 있다.

2015년 9월 24일 목요일

데니스 러셀 데이비스(Dennis Russell Davies) 인터뷰

통영국제음악당에서 발간하는 『Grand Wing』에 실린 인터뷰입니다. 통영국제음악제 기간에 맞춰 나온 거였는데, 이제 보니 이걸 블로그에 안 올리고 있었네요.


2015년 1월 23일, 오스트리아 시간 오전 8시. 이메일 인터뷰에 응할 시간이 없다는 데니스 러셀 데이비스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인터뷰하기로 했다.

Q: 데니스 러셀 데이비스가 지휘하는 오케스트라 소리는 놀랍도록 깔끔하게 정돈된 느낌이 독특하다. 오케스트라 소리를 빚어내는 철학은 무엇인가.

A: 나는 작곡가가 무엇을 의도했는지 알아내려고 노력한다. 내가 작곡가의 대변인이라고 여긴다. 작곡가의 의도를 재현하려 노력한다. 동시에, 오케스트라가 만드는 소리를 듣고, 무엇을 어떻게 연주하는지를 듣는다. 그리고 오케스트라가 최고 수준으로 연주할 수 있도록 돕는다.

[ 너무 모범답안이라 재미가 없다. 좀 더 캐묻기로 했다. ]

Q: 이를테면 브루크너나 바그너를 지휘할 때 마치 현대곡처럼 들리는데?

A: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선 나는 오케스트라가 브루크너나 바그너 또는 윤이상을 연주할 때, 작곡가가 악기마다 어떤 소리를 내도록 지시한 방식 때문에 생기는 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오케스트라는 고유한 특징과 소리가 있다. 모든 피아노가 고유한 소리와 그에 맞는 연주법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피아니스트로서 나는 내가 연주하는 악기에 적응하려 노력한다. 지휘자로서도 나는 악기에 적응하려 노력하는데 그게 오케스트라이다. 그와 동시에, 나는 오케스트라 연주자가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 내도록 긍정적으로 비판하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나는 레퍼토리가 무엇이고 그 작품의 양식이 어떤가에 따라 오케스트라가 다른 소리를 낸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연주자들이 반드시 해야 하는 일 가운데 일부이다.

Q: 성부가 복잡하게 얽혀 있을 때, 주선율을 얼마나 강조하고 부선율을 얼마나 살리는지는 지휘자마다 다르다. 당신은 주선율을 뚜렷하게 살리는 편인데, 이와 관련한 의견은 무엇인가.

A: 지휘자가 중요한 까닭은 실제로 악기를 연주하지 않으면서도 개별 악기 소리를 다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연주자는 대부분 자기 악기 소리만 듣는다. 지휘자가 하는 일은 연주자 사이, 악기 사이, 악기군 사이에 균형을 잡는 일이다. 지휘자가 작곡가의 양식, 그 작곡가가 사용한 음악 언어를 이해한다면, 올바른 균형을 찾아내야 한다. 때로는 부선율이 또렷하게 들리게끔 하면 흥미롭다. 그러나 부선율은 부선율로 남아야 한다. 부선율이 가장 중요한 선율이 될 수는 없다.

Q: 시노폴리가 지휘하는 말러 교향곡을 들어본 적 있는가?

A: 없다.

Q: 시노폴리는 말러 교향곡에서 극단적으로 모든 선율을 동등하게 다루었다.

A: 먼저, 시노폴리 씨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 안타깝다. 그의 연주를 들어본 일은 없지만, 나는 그가 뛰어난 음악가이자 훌륭한 지휘자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그는 그렇게 생각할 자격이 있다. 나는 관객이 결국 나를 생각하기보다 음악을 생각했으면 좋겠다.

Q: 당신은 주선율과 부선율을 확실히 구분한다는 점에서 이를테면 바렌보임과 비슷하지만, 다른 점에서 바렌보임과는 전혀 다르다.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A: 나는 바렌보임을 매우 존경한다. 그러나 나는 그가 뭘 하는지 모른다. 나는 그가 뛰어난 음악가라 알고 있고 피아니스트로나 지휘자로나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그의 연주를 듣지 않는다. 내 연주만 해도 너무 많고, 내 일을 하느라 다른 지휘자와 엮일 일이 없다. 그럴 시간도 없다.

Q: 현대 작곡가들과 두루 교류해 왔는데, 그러한 경험이 자신의 음악 세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A: 나는 운 좋게도 수많은 작곡가와 친분을 쌓았다. 나는 그들의 음악에 감동했기에 그 음악을 연주했고, 그들이 나에게 감사를 표하고 멋진 대화를 나누곤 했다. 살아있는 작곡가와 자주 일해 보니 살아있지 않은 작곡가의 작품을 연주할 때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 이를테면 필립 글래스의 악보를 읽으면서 내가 작곡가와 나눴던 문답과 토론이 베토벤의 악보를 읽으면서도 매우 비슷하게 일어날 법하기 때문이다. 작곡가가 악보에 표기할 수 있는 내용이 매우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작곡가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쓰려고 최선을 다하지만, 의도한 소리를 어떻게 연주할지 정확하게 쓰기란 어렵다. 그래서 연주자가 필요하다. 연주자가 없으면 음악도 없다.

Q: 윤이상 작곡가와도 친분이 있었던 듯하던데?

A: 맞다. 나는 윤이상 씨를 존경했고 1980년대와 1990년대에 그분의 여러 작품을 연주했다. 또 그분의 마지막 3년 동안 자주 만나서 대화를 나누었다.

Q: 윤이상과 관련한 흥미로운 일화가 있다면 소개해 달라.

A: 윤이상 씨는 매우 따듯한 사람, 생각이 매우 시적(詩的)인 사람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그의 음악은 그가 자신의 문화 속에서 들었던 소리와 유럽 문화에 적응하면서 들었던 소리를 반영한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한국 음악과 유럽 음악을 독특하게 결합한 것이다. 그의 음악은 또한 그의 인품을 반영한다. 그는 여러 해 동안 유럽에서 살면서도 고향에 강하게 연결되어 있었고, 다른 문화, 다른 국가의 사람들이 음악을 통해 서로 알아가도록 하고자 마음을 썼다.

Q: 윤이상이 시적(詩的)이라 했는데, 어떤 의미인가?

A: 음악을 들으면 알게 된다. 윤이상은 자신이 느끼고 경험한 것, 주위에서 듣는 소리의 인상 등을 음악으로 표현한 사람이다.

Q: 한국 전통음악, 특히 궁중음악을 들어본 일이 있는가?

A: 그렇다. 듣고 감탄했다. 그 음악에 관해 더 잘 알았으면 좋았겠지만, 매우 아름다웠다고만 말해야겠다.

Q: 제목을 기억하나?

A: 못한다.

Q: 이번 통영국제음악제 개막공연에서 연주할 윤이상 바이올린 협주곡 3번은 어떤 작품인가.

A: 내가 캘리포니아 산타크루즈에서 열리는 카브릴로(Cabrillo) 음악제 음악감독이었을 때, 70세 생일을 맞은 윤이상을 객원작곡가로 초빙했다. 이 음악제에서 바이올린 협주곡 3번이 연주되었다. 내가 지휘하지는 않았지만, 음악을 듣고 매우 감동했다. 통영국제음악제에 초청받으면서 유미 황-윌리엄스에게 이 곡을 협연하자고 제안했더니 기꺼이 승낙했다.

Q: 협연을 맡을 바이올리니스트 유미 황-윌리엄스의 매력은 무엇인가.

A: 훌륭한 연주자다. 악기를 처음 배운 게 9살 때였고, 미국 필라델피아에 와서 학교에서 바이올린을 배울 당시부터 남다른 재능으로 금세 뛰어난 음악가가 되었다. 그런 점이 참 대단하고, 통영에 함께 가게 되어 기쁘다.

Q: 음악가마다 독특한 색깔이 있는데, 바이올리니스트 유미 황-윌리엄스의 색깔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A: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유미 황-윌리엄스는 매우 아름답게 연주하고 매우 다양한 음악에 관심이 있다. 독주자로서 또 훌륭한 오케스트라의 악장으로서 얻은 오랜 경험으로 작품을 해석한다. 그렇게 폭넓은 경험을 가지고 무대에 오른다.

[ 음악가는 보통 음악에 관해 언어로 표현하는 일에 서투르다. 말하기 어려운 것을 음악으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일까. 더 캐묻고 싶었으나 영어 실력이 모자라서 이렇게밖에 못했다. ]

Q: 윤이상 바이올린 협주곡 3번 악보를 보거나 지휘를 할 때 어떤 상상을 하는가?

A: 나는 음악을 그런 식으로 대하지 않는다. 내가 악보에서 읽어내는 것은 어떻게 소리 낼 것인가이다. 음악을 듣고 뭔가를 생각하거나 상상하는 일은 매우 개인적이다. 나는 그런 걸 하지 않는다. 내가 하는 일은 작곡가가 의도한 소리를 재창조하는 것이다.

[ 음악가의 상상은 음악적(추상적)일 수도, 음악 외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데니스 러셀 데이비스는 음악 외적인 요소가 자신의 음악에 끼어드는 것을 경계하는 듯했다. 이와 관련해 두 가지를 더 캐묻기로 했다. ]

Q: 윤이상이 이 작품에서 표현하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A: 내 생각에 윤이상이 의도한 바가 있다면, 그것은 음악을 넘어선 무엇이다. 다른 국가와 국민이 서로 이해하고 화합하는 일은 윤이상의 크나큰 소망이었다. 이 작품은 예컨대 일본인 바이올리니스트를 위해 쓴 곡이다. [주: 아키코 타츠미가 협주곡 1번과 2번을 초연했으며, 베라 베스가 3번을 초연했다. 데이비스가 착각한 것으로 추정]. 윤이상은 한국과 일본이 친밀한 관계를 맺는 일에 많은 관심이 있었다. 윤이상은 음악으로 전 인류의 평화에 이바지하고자 했다.

Q: 최근에 기돈 크레머와 이메일 인터뷰를 했는데, 그가 생각하는 음악이란 ‘메시지’이며 연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도구(carrier)라 했다. 이와 관련해 의견이 있는가?

A: 다시 말하지만, 나는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는다. 누군가 음악을 듣고 어떤 생각을 하게 된다면 멋진 일이다. 그러나 내 의도는 작곡가가 원했던 바대로 연주하는 것이다. 나는 음악이 말하는 바를 찾으려 노력한다. 언어나 그림이나 철학을 찾는 게 아니라 소리를 이끌어내려 한다.

Q: 한국 작곡가 가운데 아는 사람이 또 누가 있나?

A: 최명훈이라는 재능 있는 젊은이가 있다. 대구 MBC 전임작곡가이고, 내가 음악감독으로 있는 오스트리아 린츠 오페라 극장에서 신작을 준비하고 있다.

Q: 작곡가 진은숙을 아는가?

A: 들어본 적 있다.

Q: 또 다른 작곡가의 작품을 연주할 계획이 있는가?

A: 기회가 되면 하고 싶다.

Q: 이번 공연 프로그램은 양식적으로 매우 다양하면서도 어떤 일관된 '메시지'가 느껴진다.

A: 메시지는 없다.

Q: 질문을 바꿔 보자. 이 작품들을 관통하는 일관성은 무엇인가?

A: 세 작품이 매우 달라서 잘 어울리며, 그래서 흥미로운 프로그램이라 생각한다. 마치 식사와 같다. 메인 요리만 먹을 수는 없다. 애피타이저도 먹어야 하고 디저트도 먹어야 한다.

[ 모차르트와 윤이상과 번스타인의 음악에서 굳이 일관성을 찾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냥 다양성을 의도한 것이라는 대답이 신선하다. 하이든과 브루크너와 필립 글래스를 포함하는 방대한 레퍼토리를 자랑하는 이 사람이야말로 다양성을 말할 자격이 있다. ]

Q: 번스타인 교향곡 2번에 관한 의견이 궁금하다.

A: 이 작품은 사실 협주곡이다. 교향곡이지만, 사실은 피아니스트를 위한 작품이다. 오케스트라와 피아노가 대등한 관계라는 점에서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과도 닮았다. W. H. 오든의 걸작 시 “불안의 시대”에서 영감을 받아 쓴 곡이며, 그 시와 연계되는 감성의 흐름이 있다. 관객이 그걸 알면 흥미롭겠지만, 꼭 알 필요는 없다.

Q: 질문은 여기까지다.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A: 통영에 갈 날이 기다려진다. 새로 지은 통영국제음악당이 훌륭하다고 들었고, 또 내가 윤이상을 매우 존경하기 때문에 통영국제음악제에 출연하게 된 일을 영광으로 생각한다.

글: 김원철 (통영국제음악재단 공연기획팀)

2015년 3월 1일 일요일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 인터뷰

통영국제음악재단이 발간하는 잡지 『Grand Wing』에 실린 글입니다.


Q. 시벨리우스 협주곡에 관한 해석이, 이를테면 1982년에 리카르도 무티 ·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음반을 녹음했을 때와 견주어 지금은 어떻게 달라졌나.

A. 이 작품을 두 번 음반으로 녹음했는데, 1977년에 로제스트벤스키, 그리고 나중에 무티와 함께 했다. 나는 내 음반을 들어본 일이 한 번도 없어서 만족스러운 답을 할 수 없다. 차라리 이번에 통영에서 연주할 '라이브' 연주가 두 음반과 어떻게 다를지 여.러.분.이. 발견하는 쪽이 흥미로울 듯하다.

[기돈 크레머는 자신의 음반이건 남의 음반이건 거의 듣지 않는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이 정도이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이 인터뷰는 이메일로 진행되었으며, 기돈 크레머가 답하지 않은 첫 번째 질문은 "나이가 들면서 바이올린 소리가 차분하고 유려하게 바뀐 듯하다.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였다. 위 답변으로 보아 이 질문은 기돈 크레머에게 마치 '당신의 얼굴이 나이가 들면서 이러이러하게 바뀌었는데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와 비슷하게 느껴졌을 듯하다.]

Q. 2012년에 크레메라타 발티카(Kremerata Baltica)를 이끌고 서울에서 공연했을 때, 한 음악평론가는 "왼손 비브라토는 소리를 떠는 것이 아니라 소리를 넓게 공명시키기 위한 것"(박제성)이라는 통찰을 얻었다고 평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바이올린을 배우는 이들에게 조언하자면?

A. 내가 '예쁜 소리'(bella voce)를 위한 '예쁜 소리'라는 개념에 반대한다는 사실을 아마 알 것이다. 나에게 바이올린이란 다른 악기나 목소리와 마찬가지로 어떤 메시지, 때로는 작가(author)의 악보에 (때때로 숨어) 있는 어떤 담화(statement)를 전달하는 '도구'이다.

운지법(fingering)이나 운궁법(bowing)이 다양한 것만큼 비브라토 또한 다양하다.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만드느냐가 아니라, 그것이 음악에 맞느냐이다. 멋지지만 사실은 속 빈 소리를 내는 연주자가 너무나 많다. 비브라토는 단지 수많은 '전달 도구'(carrier)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다양한 '논-비브라토' 또한 마찬가지다.) 연주자가 사용할 수 있는 비브라토가 다양할수록 더욱 흥미로운 연주를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 절대로 비브라토를 위한 비브라토를 하지 말라. 언제나 악보와 음악이 먼저다.

Q. 바이올리니스트로서 레퍼토리가 어마어마하기로 유명하다. 현대곡은 주로 살아있는 작곡가와 교류하면서 레퍼토리를 넓혀온 듯한데, 윤이상이나 진은숙 같은 한국 작곡가와 만난 일이 있나.

A. 두 사람을 당연히 알고 음악을 들어본 일도 있으며, 내가 감독하는 음악 페스티벌 프로그램에 위대한 작가(author)인 윤이상의 작품을 넣기도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국 작품을 직접 연주해 볼 기회는 없었다. [기돈 크레머는 '작곡가'(composer)라는 말보다 '작가'(author)라는 말을 선호하는 듯했다. 음악을 '메시지'나 '담화'로 보는 관점에서 온 표현으로 이해된다.]

언젠가 한국 작품도 연주해 보면 좋겠지만, 흥미로운 작품을 다 연주하기에는 시간이 모자라서 프로그램 성격에 맞는 곡을 고를 수밖에 없다. 현대 작가의 작품을 많이 연주해 왔는데도 다른 많은 작가에게 빚을 진 느낌이다.

요즘 미에치스와프 바인베르크(Mieczysław Weinberg, 1919 – 1996)라는 중요한 작곡가를 발굴하는 중이다. 쇼스타코비치의 절친한 친구이자 동료였던 그를 온 세계에 알리는 일에 열정을 다 바치고 있다. 내 오케스트라인 크레메라타 발티카가 그 일에 도움이 된다.

Q. 음악이 '엔터테인먼트'로 소비되는 일을 싫어한다고 한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로저 노링턴은 모차르트가 '엔터테인먼트'를 부정하지 않았다고 말하며 '음악이 즐겁지 않으면 뭔가 잘못된 것이다'가 요즘 좌우명이라고까지 하는데, 노링턴에게 어떤 반박을 하고 싶나.

A. 그 명제를 살펴보자. '즐거움' 그 자체는 아무 문제 없다. 그러나 음악가로서 주된 임무, 즉 관객의 상상력과 감성을 넓히는 일을 내팽개치고 '연예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즐거움'은 흔히 어떤 일의 표면에 놓여 있고 '즉각적 만족'에 가까운 개념이다. 많은 연주자가 유명세를 좇고 '스타'가 되려 한다. 박수와 감탄을 받는 일이 우선적인 목표가 된다. 작곡가도 마찬가지다. 유명해지기를 바라면서 관객과 광고주와 후원자를 기쁘게 하려 노력한다. 나는 그런 일에 절대로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어떤 종류의 음악을 (재즈이건 팝 음악이건) 즐기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당연히 이런 쪽에도 좋아하는 곡은 있다. 다만, 그 바닥을 잘 알아서 어떤 게 돈이 되고 안 되는지 잘 아는 속물들 틈에 끼고 싶지 않다. 나에게 음악은 살아가는 과정 그 자체다. 올바른 가치를 찾는 모험과 위험이 가득한 길이다. 엔터테인먼트는 마음 편하게 웃고 쉬기에는 좋다. 그래서 나도 농담과 유머 따위를 좋아한다. 그러나 편하게 음악을 듣거나 걸작을 놓고 '파도타기'를 하기는 싫다. 그런 것은 대개 우리를 (연주자이건 감상자이건) 더 먼 곳으로 이끄는 음악과는 관계가 없다. 그러나 우리를 끌어올리는 걸작은 정말로 '즐긴다.'

Q. 예술이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보나, 아니면 예술은 그저 사회를 거울처럼 반영할 뿐이라 생각하나. 최근에 쓴 글을 보면 음악에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고 믿는 듯하기도 한데, 한편으로는 신문 사설이나 안나 폴리트코브스카야 추모 공연 등으로 사회적 메시지를 표현한 일은 음악으로는 그게 안 되기 때문이 아닌가.

A. 음악가들이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이지만) 친구에게, 사회에, 그리고 우리에게 중요한 가치에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가 정치인이 될 필요는 없지만, 불의에 저항하는 선택지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독트린이나 이데올로기에 희생당한 사람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우리는 음악으로 자유를 누리는 만큼 그릇을 키워서 다른 사람과 사회에 영향을 끼치는 소리를 빚어낼 수 있어야 한다. 티켓을 살 수 있는 사람만을 위해 멋진 소리를 내서는 안 된다.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일에 윤리적 책무를 져야 한다. 모두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면, 자기만 아는 제멋대로 연주자를 이렇게까지 자주 만나지는 않게 될 것이다. 훌륭한 인격을 가진 사람은 '표시'가 난다. 더 높은 가치와 공감력으로 일어설 줄 안다. 그래서 잘 '들린다.'

2014년 9월 11일 목요일

지휘자 로저 노링턴 인터뷰

통영국제음악재단 매거진 『Grand Wing』에 실린 인터뷰입니다.


Q. 지난 3년간 취리히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를 맡으셨습니다. 오늘날 이 앙상블의 위치는 어디쯤 있나요?

A. 연주력은 유럽 최고 수준입니다. 프레이징, 다이내믹, 정확성, 음색과 템포 등에서 대단한 음악성과 장인성을 보입니다.

Q. 이른바 '역사주의' 연주를 하는 지휘자로 세계적으로 손꼽히시는데요, 그게 어떤 의미인가요?

A. 역사주의 연주는 저에게 참 소중해요. 역사주의 연주란 시대악기를 사용한 연주와 그에 따른 모든 요건을 '현대' 환경에 되살리는 연주를 말합니다. 연주자 수와 배치, 활놀림, 프레이징, 템포와 아티큘레이션(articulation)까지 역사적 고증에 맞게 하는 것이지요. 가장 중요한 것은 이른바 투명한 소리입니다. 이 말은 지속적인 비브라토를 쓰지 않는다는 뜻으로, 1920년대부터 지난 세기까지 해왔던 바와는 다르지요.

※ 편집자 주: 시대악기란 작곡가가 작품을 쓸 당시에 쓰이던 악기를 뜻하는 말이다. 역사주의 연주라는 표현은 초기에 '원전 연주' 또는 '정격 연주'라 불리던 연주 방법으로, '원전'(原典) 또는 '정격'(正格; authentic)이라는 말에 기존 주류 연주 방식이 틀렸음을 암시하는 독선적인 뜻이 있음을 경계해 오늘날에는 '역사주의 연주'라는 가치중립적 표현을 사용한다. 로저 노링턴이 사용한 원어 표현은 "Die historisch informierte Aufführungspraxis"(역사적인 사실에 근거한 연주)이다.

Q. 왜 비브라토가 문제인가요?

A. 모차르트의 아버지인 레오폴트 모차르트는 비브라토를 자주 쓰면 마치 몸에 열이 있는 것처럼 들린다고 썼어요. 이런 헐리우드스럽고 글래머러스한 소리로 현혹하는 일은, 역사적인 견지에서나 훌륭한 연주를 위해서나 피해야 합니다. 비브라토를 쓰지 않으면 소리가 투명해져서 마치 악기들 사이에 있는 것처럼 들리지요.

Q. 취리히 체임버 오케스트라 2014/2015 시즌 공연에는 어떤 곡들이 연주되나요?

A. 지난 시즌에는 스트라빈스키, 브리튼, 베르디·바그너 탄생 200주년 기념 음악회, C. P. E. 바흐, 글루크, 로카텔리, 라모와 하이든 등을 연주했습니다. 이번 시즌은 매우 '위험한' 도전인데요, 모차르트 작품만으로 시즌 프로그램을 짰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이지요. 제가 드레스덴이나 도쿄에서 모차르트를 연주했을 때만큼은 관객이 차지 않겠어요?

Q. 한 곡을 연주하기 전에 어떻게 준비하시나요?

A. 요즘은 악보만 읽어요(웃음). 제가 지휘자로서 모차르트를 공부한 게 60년이거든요. 구석구석을 다 공부했어요. 처음에는 모차르트의 음악 언어를 신성한 것처럼 대했는데, 지난 세기에 다들 이런 식으로 오류를 범했지요. 그러니까 무슨 교회음악처럼 엄숙하고 고풍스러운 소리가 났단 말이에요. 카라얀을 생각해 보라고요. '음악이 즐겁지 않으면 뭔가 잘못된 것이다'가 요즘 제 좌우명이에요. 모차르트도 아버지한테 이 말을 듣고 곡을 복잡하게 쓰지 않도록 주의했다고 하지요. 궁정에서는 향락이 먼저였거든요. 1780년에 아버지 모차르트가 편지에 쓴 말을 보면, 음악가만을 위해서 곡을 쓰지 말고 '막귀' 관객들도 생각해라, 말하자면 대중적이고 귀에 쏙 들어오는 곡을 쓰라고 했어요.

Q. 음악가와 지휘자로서 본인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A. 작곡가가 제 연주회에 와서 "좋아, 이게 내 음악이지!"라고 말해준다면 참 행복하겠지요. 재창조자로서 예술가는 말 두 마리를 동시에 몰면서 균형을 잡는 사람과 같습니다. 한 마리는 지성과 음악학, 다른 한 마리는 상상력과 감성과 열정이지요.

Q. 한가한 때에는 뭘 하시나요? 음악 할 때와 마찬가지로 균형을 잡나요?

A. 1년에 26주는 지휘자로 일하고 나머지 반은 자유시간으로 가족과 함께 시골에서 지냅니다. 이렇게 한 지 거의 20년이 됐어요. 휴식 삼아 산책을 하고 책을 읽거나 배를 탑니다. 또 말과 개를 돌보고 먹이를 주지요. 벌들이 잘 있는지 확인하면서 정원을 가꾸고요. 마지막으로 스무 살 먹은 아들과 함께 늙은 몸을 굴리는 일도 소홀히 하지 않아요.

(페터 레바이 글 · 김원철 이혜련 옮김)

2011년 11월 16일 수요일

[인터뷰] 지휘자 박은성

(글: 김원철 · 사진: 최종혁)

※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웹매거진에 실린 글입니다.
원본 링크: http://g-phil.kr/?p=476

지휘자 박은성. 말이 필요 없는 한국 지휘계의 거목.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인터뷰 기사를 포함해서 수많은 글이 넘쳐 난다. 그러나 딱히 마음에 드는 것은 없다. 그래서 직접 박은성을 만났다. 2011년 11월 6일 오후 정동극장 안에 있는 카페에서 만났다.


김원철: 먼저, 이번 연주회 프로그램을 고르신 의도가 궁금합니다.
박은성: 아니, 특별한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에요. 그러니까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 물어보니까 연주를 한 번도 안 했다고 하더라고요. 드보르자크를(교향곡 7번). 어떤 의미에서 보면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앞으로 해야 될 큰 과제 중의 하나가, 레퍼토리 개발이라고.
김원철: 그렇죠. 네.

(박은성 지휘자는 본디 '레퍼토리'가 아닌 레퍼투아(répertoire)라는 낱말을 일관되게 사용했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이해를 돕고자 국어사전에 나오는 좀 더 쉬운 말로 바꾸었다.)

▶ 자주 연주되지 않는 명곡을 소개해야

박은성: 어떤… 늘 하는 곡들만 자꾸 하는 것보다도, 이제는, 현대곡이라든지 새로 작곡된 곡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옛날 곡이라도, 그냥 스탠더드(standard) 레퍼토리 중에서도 경기필이 안 한 곡이 좀 많지 않나… 내 생각이 그래서, 이러구 저러구 생각하다 보니까 (드보르자크) '신세계'(교향곡)도 많이 했을 거고, 그 담에 8번 교향곡도 굉장히 많이 했을 거고, 그런데 7번 교향곡을 얼마나 했나… 내가 한 번 (경기필 단원들한테) 물어봤어요… 한 번도 연주해 본 적이 없는데요… 몇 십년 전에 옛날 단원들이 해봤는지 어떤지 모르겠는데, 최근에 연주된 일이 없어가지고, 그걸 한 번 했으면 좋겠다… 나도 옛날부터 차이콥스키나 뭐 이런 거, 잘하는 거 있잖아요? 그거 하면 좋지 나도. 특별히 공부 안 해도 뭐 그냥… 아 그런데, 그거보다는 오케스트라를 위해서라도, 또 내가 힘들더라도 좀 레퍼토리를 하나 개발해야 한다, 이런 뜻이 강했고.

(말솜씨가 대단하다. 인터뷰를 여러 차례 해본 관록이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박은성: 그 담에 두 번째, 월튼 비올라 협주곡을 택한 이유는, 아시겠지만 내가 택한 건 아니거든. 솔리스트(협연자)가 택했지. 그럼 솔리스트는 어떻게 택했느냐? 솔리스트가 아주 젊어요.
김원철: 네.
박은성: 아직 25세가 안 됐다고. 24세? 아직 그 정도일 텐데.

비올리스트 박경민

▲ 협연자 박경민. 1990년생, 만 21세.

박은성: 지금 독일에 있거든? 알죠?
김원철: 네.
박은성: 작년에 동아 콩쿠르 1등 하고, 독일에서 무슨 콩쿠르 1등 하고, 또 하나는, 작년인가? 그것도 작년인데, 영국에서 비올라만 하는 콩쿠르 있다고.
김원철: 네, 라이오넬 테르티스(Lionel Tertis) 콩쿠르 2등 했더라고요.

(라이오넬 테르티스는 이번 공연에 연주될 '월튼 비올라 협주곡'을 세계초연할 뻔한 ― 세계초연했다고 잘못 썼다가 나중에 고침. 월튼이 테르티스를 생각하고 이 곡을 썼으나 테르티스가 거절해 파울 힌데미트가 초연했다 ― 영국 출신 비올라 연주자이다. 라이오넬 테르티스 콩쿠르 입상할 때에도 월튼 곡을 연주했는지를 박경민 씨한테 물어 봤더니, 그건 아니란다. 버르토크 비올라 협주곡이 지정곡이었다고.)

박은성: 뭐, 다 조사를 했네. 그런 정도면 유럽에서 그만큼 인정받은 솔리스트인데, 한국에서는 아.무.도. 몰라요. 아무도 몰라.
김원철: 네에.
박은성: 근데 작년에 동아 콩쿠르 1등 했기 때문에 올해 코리안심포니하고 나하고… 여름인가 언젠가 연주를 한 번 했다고. 하니까, 야아! 아, 이런 솔리스트가 왜 이렇게 안 알려지고 있느냐 이거야. 이왕이면 이거 경기필하고 한 번 붙여 보자. 그래서 그걸 했고.

박은성: 《마탄의 사수》는… 뭐, 계속해서 하면 안 되죠. 어려운 곡을. 세 곡을 갖다 내면. 그럼 《마탄의 사수》 서곡 정도는 경기필이 굉장히 쉽게 소화할 수 있는 곡이라고 생각해서, 레퍼토리는 그렇게 구성이 됐는데, 나 혼자만의 생각인지는 몰라도 레퍼토리는 대단히 훌륭하다고 생각하는데.

김원철: 그러니까 드보르자크를 특별히 더 좋아하신다거나 그런 건 아니로군요?
박은성: 노(No). 그건 아니고, 내가… 모르겠어요, 지휘 생활이 (앞으로) 얼마나 될지. 지금 나이가 들 만큼 들었지만. 에… 알죠? 내가 금년에 (코리안심포니) 오케스트라를 떠난 거. 내가 오케스트라를 가지고 있다면 혹시나, 내가 지금 몇 개를 생각하는 작곡가가 있어서, 작품 전곡을 다 연주할 수 있는 거를 했으면 좋겠어요. 예를 들어서, 브루크너는 수원(시향)하고 거의 다 했다가 몇 곡만, 두 곡인가 세 곡을 남겨 놓고 아직 못 했는데, 그때 내가 수원시향을 떠나서 코리안심포니로 옮기는 바람에 그렇게 됐거든. 근데 코심은, 일단 지휘자가 오케스트라를 옮기면 거기에 정착하고 소리를 만드는 데 몇 년이 걸린단 말이지. 그래서 그거 하느라고 계속 못 했고. 또 내가 학교도 은퇴하고, 저쪽(코리안심포니)에 또 임기도 끝나고.

(객원 지휘자와 상임 지휘자가 결정적으로 다른 대목. 지휘자가 오케스트라 소리에 자기 색깔을 온전히 담아내려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 구자범 지휘자도 몇 해 지나서 비슷한 시도를 하면 좋겠다. 말러 교향곡 전곡, 베토벤 교향곡 전곡, 바그너 오페라 전곡, 푸치니 오페라 전곡 등.)

박은성: 혹시 앞으로 기회가 있어가지고 내가 내 오케스트라를 가질(맡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브루크너도 전곡을 했으면 좋겠고, 드보르자크도 마찬가지고. 그건 이유가 뭐냐면, 조금 전에 얘기했듯이 한국 사람들이 아는 건 드보르자크는 '신세계'(교향곡)밖에 몰라요. 그럼 지휘자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면, '신세계'가 제일 좋아하는 곡이냐? 그렇지 않다고요. '신세계'보다는 오히려 8번을 더 좋아할지도 모르고, 개중에는 7번 교향곡을 더… 금년에도 내가 다른 교향악단이랑 '신세계 교향곡'을 여러 번 했다고.

(드보르자크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는, 무엇보다 4악장은 운동 경기장에서도 곧잘 들을 수 있어서 우스갯소리로 '응원 교향곡'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 대한민국 386세대는 이 곡을 '전대협 팡파르'라고도 하던데…)

▶ 드보르자크 교향곡 7번에 관한 박은성의 해석은?

김원철: 그러면 드보르자크 교향곡 7번에 대해서 조금 더 여쭙겠습니다. 이 곡에서 가장 멋지다고 생각하시는 대목을 한 군데만 말씀해 주세요.
박은성: 어, 그건 굉장히 얘기하기 어려운데. 어느 악장을 얘기하라면 그건 얘기하기가 좀 쉽게 되겠지. 근데…
김원철: 어느 악장을 가장 좋아하세요?
박은성: 근데 그걸 다른 사람들한테 물어보면 인제 1악장의 뭐 어떤… 테마(주제선율) 나오는 데가 좋다고 하고, 또 2악장 느린 걸 좋다고 그러는데… 3악장을 경청해 주시기 바란다고 얘기를 해야겠네요. 그것이 굉장히 경쾌한 리듬이 깔렸으면서도 뒤에 흐르는 선율이 아주 아름답거든. 그러면서도 조용할 때 조용하고, 몰아칠 때 아주 대단히 몰아치는… 그리고 4악장, 다 좋고요. 어느 악장 빼놓을 악장이 없어. 연주를 어떻게, 내가 어느 만큼 하느냐가 문제지, 작품이야 뭐 아주 훌륭하다고 생각해요.

김원철: 그러면 특별히 이 곡 해석과 관련해서 본받고 싶은 지휘자나 레퍼런스(reference)로 삼을 만한 음반이 있다거나, 그런 게 있나요?
박은성: 내가 별로 어… 음반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저건 없는데, 드보르자크에 관한 한 특별히 대가로 치는 몇 사람이 있어요. 에, 그것은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 오래전에 상임지휘자로 있던 바츨라프 노이만(Václav Neumann). 그 사람 리코딩이 아주 좋고. 그 담에… 아주 옛날 거예요. 이슈트반 케르테스(István Kertész)가 한 거, 그거 굉장히 좋다고 생각되고. 그 담에 얼마 전에 또 들어보니까 그… 줄리니(Carlo Maria Guilini)! 영국서 라이브 리코딩 한 거. 그 연주 아주 크게 감동했어요. 실제 연주인데도 아주 그냥… 실제 연주이기 때문에 더 생동감 있고, 그까짓 실수 하나 둘 있으면 어때. 아주 굉장히 좋고. 굳이 하나를 꼭, 나보고 추천하라면 줄리니 거를… 줄리니, 그 담에 또 옛날 사람들이 연주 잘하더라고. 조지 셸(George Szell)! 클리블랜드(오케스트라), 그것도 대단히 좋아요. 뭐, 다 좋아요. 근데 어쨌든, 바츨라프 노이만 거는 한 번 들어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이 되고. 그 외에도 리코딩이 굉장히 많거든.

(음악가는 저마다 추구하는 음악적 개성이 있기 때문에 음반 마니아가 되기는 어렵다. 그래서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여쭈었는데 웬걸, 이름이 줄줄 나온다. 지휘자 박은성이 음반 마니아일 리는 없고, 이런 것도 연륜과 관록 때문일까.)

김원철: 선생님은 지휘자이시니깐요, 좀 더 구체적으로 프레이징(phrasing)에 관해서 한 군데만 여쭙고 싶은데요, 3악장 말씀하셨으니깐, 처음에 어떻게 시작하더라…

(악보를 깜박하고 집에 두고 오는 바람에 노래를 불러 드렸다.)

▲ 라파엘 쿠벨리크 지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DG

김원철: …따단딴 딴! ! 이렇게 약박에 포르찬도(forzando)가 있단 말이에요.

※ 포르찬도: 악보에서, 특히 세게 연주하라는 말. 기호는 ‘fz’ 또는 ‘∨, <’. ≒포르차토. (표준국어대사전)

▲ 3악장 마디 4~5. ©Public Domain

▶ 자연스러움과 참신함 사이

김원철: 거기뿐만이 아니라, 포르찬도가 이 작품에 굉장히 많이 쓰였는데, 드보르자크가 포르찬도를 쓸 때에는 어떤 의도로…
박은성: 아니, 어떤 의도가 아니라 그건 그야말로 악센트라고. 근데 그거 지금 굉장히, 음악 내용도 그렇고 굉장히 많이 아시는데, 뭐 나보다 더 잘 아는데 그걸 물어봐서 뭐해?
김원철: 아, 제가 인터뷰를 하려고 악보를 좀 보고 왔습니다. 하하.
박은성: 드보르자크가 거기뿐만이 아니고, 작품을 보면은, 지휘자가 애먹는 경우가 많아요. 드보르자크는. 예를 들어서 베토벤은 오히려 분석이라던가 이런 게 쉽거든. 네 소절 단위로 나간다든가… 악보 얼마만큼 보셨는지 몰라도 이걸 분석을 해보라고.

(이하 원론적인 말씀이 길게 이어짐. 그래서 좀 더 구체적으로 캐물었다.)

김원철: 그러면 그 바로 앞에 나오는 강박보다 더 세게 해야 할까요?
박은성: 당연히야.

김원철: 어, 그러면 아예 마르카토(marcato)… 그렇게 확실하게 (세게) 가야 할까요, 아니면 너무 튀지는 않게 좀… 메사 디 보체(messa di voce) 그런 식으로… 그러니까 스포르찬도(sforzando)가 아니고 그냥 포르찬도거든요. 그게 스포르찬도에 가까운 포르찬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 마르카토: 악보에서, 음 하나하나를 끊어서 똑똑하게 연주하라는 말. (표준국어대사전)
※ 메사 디 보체: 일정한 음을 길게 끌면서 천천히 음량을 크게 하였다가 다시 음량을 줄여 끝내는 창법. 18세기 벨칸토의 중요한 발성 기법으로 발성 연습에 널리 쓰인다. (표준국어대사전)
※ 스포르찬도: 포르찬도와 비슷하나 좀 더 갑작스럽게 연주하라는 뜻. 수비토 포르찬도(subito forzando).

박은성: 사람들이 스포르찬도하고 지금 말씀하신 거하고 뭐가 다르냐고 그러면, 어디 구별할 수 있어요?
김원철: 결국은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 애매하죠. 사실은.
박은성: 사실은 같은 건데, 지휘과 학생들한테도 그게 큰 숙제라고. 그게 뭐 어떤 차이가 있느냐. 's' 하나 더 들어간 것뿐이거든. 'fz'라고 쓴 거를 뭐라고 발음했어요?
김원철: 포르찬도.
박은성: 포르찬도. 포르찬도라고 얘기해도 틀린 건 아니에요. 그런데, '포르차토'(forzato)…
김원철: 네. 아, 사실은 그게 맞겠죠.
박은성: 그렇게 발음해야 하는 거예요. (원론적인 말씀 끝에 종이에 음향적 윤곽을 그림으로 그려 가면서 설명.)

('포르차토'와 '포르찬도'는 이탈리아어 문법 얘기인데, 자세한 내용은 글쓴이도 잘 모른다. '포르찬도'가 현재진행형이었던가… 그러나 표준국어대사전에는 '포르찬도'가 대표어로 나오므로 이 글에서는 앞으로도 '포르찬도'라 쓰겠다.)

김원철: 그러면 아까 그 대목에서는 이것, 둥근 게 맞다는 얘기죠?

(종합해 보면 위에 인용한 쿠벨리크 녹음을 좀 더 둥글게 다듬은 정도가 될 듯하다.)

김원철: 음반을 들어보면요, 지휘자에 따라 이 대목을 조금씩 다르게 하는데, 아르농쿠르 같은 사람은 (각지게 그린 음향 윤곽 그림을 가리키며) 아예 이렇게 하더라고요. 모나게. 들어보면 참 특이하다… 어떤 사람은 그냥 강박이랑 약박이랑 비슷한 음량으로 가기도 하는데…

▲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 지휘,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 ©Warner

(위 녹음을 들어보면 다섯째 마디에서 '포르찬도' 음을 매우 두드러지게 연주했음을 알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포르찬도'를 강조하고자 바로 앞선 음을 짧게 끊기까지 했다. 아울러 느리게 시작해서 템포를 조금씩 조이기까지. 악보에 있는 작은 지시까지 매우 꼼꼼하게 살린 쿠벨리크-베를린필 녹음과 견주면 큰 차이가 있다.)

박은성: 그 사람은, 지금 얘기한 그 사람(아르농쿠르)은, 굉장히 독특한 어떤 새로운 걸 갖다가 시도를 많이 하고 그런 사람인데, 음악의 분위기를 그렇게, 잇지 않고 그렇게 처리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자극적으로 듣기 때문에, '아! 역시 대가가 다르구나!' 이렇게 들릴 수 있다고. 그렇게 볼 수 있다고. 물론 그래요, 틀림없이… 자기가 그렇게 한다면 그만이지 그걸 누가 뭐라 그래. 그러나 나는 그렇게 안 해. 음악 전체의 분위기를 보구선 그걸 결정을 해야지.

(참신한 해석이라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자연스러움을 일부 희생한 결과다. 그리고 참신함을 좇을수록 자칫 음악이 천박해질 위험이 커진다. 얼마만큼이 적당한가를 판단하는 일은 지휘자 성향에 달렸다고 할 수 있겠는데, 지휘자 박은성은 과연 얼마만큼이 적당하다고 생각하는지를 묻고자 이렇게까지 꼬치꼬치 캐물었다. 인용한 대목에서 활놀림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좋을지까지도 물어봤으나 내용이 너무 전문적으로 흐른다 싶어 생략.)

김원철: 그러면 이 곡 악보를 보면 메트로놈 지시가 일일이 붙어 있는데, 그걸 의식하시는 편인가요 아니면…
박은성: 참고만 하지 내가 의식을 안 해요.
김원철: 네에.
박은성: 처음에 메트로놈, 써있는 것도 별로 마음에 안 들어요. 2악장도 마음에 안 들고. 2악장도 거기 걸로 하면 내 생각보다 조금 느려. 도중에는 그 템포로 갈 수 있는데, 시작부터 그렇게 가면… 나는 못 끌고 나간다고. 꼭 그대로는… 그건 참고사항이지 그대로 갈 수는 없어요.

▶ 박은성이 어렸을 때

김원철: 그러면 까다로운 질문은 다 지나갔고요. (웃음) 어린 시절 얘기를 좀 해주시죠. 1945년생이시죠? 6·25를 겪으셨을 텐데 그게…
박은성: 아니…
최종혁: 신상정보까지…
일동: 하하하…
박은성: 아니, 그게 아니라… 내가 직업상 인터뷰를 얼마나 많이 했겠어.
김원철: 네.
박은성: 이런 사람 처음 보네.
일동: 크하하하하…
박은성: 말씀하세요.

김원철: 어릴 때 고향이 어떤 이미지로 남아 있나요?
박은성: 어릴 때 고향? 고향에 대한 얘기는 이제 두… 가지로 얘기해야 하는데, 나는… 이북에서 태어난 사람이기 때문에 한국식으로 얘기하면 고향이 지금 없다고. 내 고향이 함경북도 회령인데, 사람들이 내가 나이 들고 그러니까, 거기서 태어난 것이 아니고 부모가 거기서 생활하시고 그래서 부모 고향 따라서 함경북도 회령이다, 이렇게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고 나는 출생을 함경북도 회령에서 출생을 해가지고 월남할 사람이라고. 돌 되기 전에. 그러니까 이북에 대한 건 아무것도 모른단 말이지. 그걸 여기 와서 내가 얘기도 안 했거든. 그러니까 아무도, 내가 사투리도 안 쓰니까 함경북도 사람이라는 걸 한국 음악계에서 아무도 몰라요. 재밌는 사실이지.

김원철: 그거 ○○○ 검색하니까 다 나오던데요? (웃음)
박은성: 그걸 누가 그랬는지 알 수가 없는데, 아마 그 이후에 얘기가 됐는지도 몰라요. 평양에 가니까 이북서는 알더라고. 여하튼 함경북도에 대해서는 내가 아는 바가 없으니깐. 그 담에 내가 생활했던 곳은 서울이 아니고 6·25 때 피난을 갔기 때문에 부산서 국민학교(초등학교)를 들어갔단 말이지. 그때 영도에서 살던 그… 대마도. 쓰시마 섬을 바라보면서 꿈을 키우던 그 기억만 있지.

(그러니까 자란 곳은 부산이란다.)

김원철: 그러면 음악은 언제쯤 시작하신 거예요?
박은성: 요즘 학생들 생각하면 (나는) 음악을 엄청 늦게 시작했죠. 그 당시에는 내가 (음악을) 시작한 게 무지하게 빨랐어. 아홉 살 때 시작했으니까. 그 당시에 중학교 들어가서도, 아니면 고등학교 들어가서, 뭐 하다못해 대학 들어가기 직전에 적당히 해서 대학 들어간 사람도 많았던 시절이니까. 아홉 살이면 굉장히… 요즘은 아홉 살에 시작해가지고는 음악가 행세를 못 해요.

(1945년생인데 아홉 살 때부터 음악을 시작했단다. 놀랍다.)

박은성: 그리고 그 당시에 내가 더 (일찍) 할 수도 없었던 것은…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해 봐요. 바로 그때가 6·25 전쟁 중인데 악기를 어디서 사? 선생을 어디서 구해? 그건 불가능하거든. 그래도 내가 음악 시작할 수 있었던 건 정말 행운이고. 그래서 그런 행운을 가졌던 거는, 그 당시에 교향악단이라는 건 없었고, 해군정훈음악대라는 게 있었거든. 해군정훈음악대가 해군교향악단. 그것이 오늘날 서울시립교향악단이 된 거예요. 거기에 악장 선생님이 내 은사님이라고.
김원철: 오오오. 아홉 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하신 거군요?
박은성: 아! 좀 창피한 얘긴데, 바이올린 했지. 바이올린 했는데, 아무튼 죽어라고 하기 싫어했으니까.
김원철: 으허허허허…
박은성: 아니, 그것도 (남 연주를) 들어보면 너무 멋있는 거야. 근데 내가 해보면 '끼익 꽤엑~~'
김원철: 으하하하하…
박은성: 세상에서 제일 듣기 좋은 악기가 바이올린이야. 너무 기가 막혀요. 못하는 사람이 할 경우에는 제일 듣기 싫은 게 또한 바이올린이라고. 그 소리를 어떻게 들어주느냐 이거지. 그래, 난들 그걸 듣고는 참고 (연주)하겠냐고. 애기가. 참 힘들었다고.

(옛날이었으니까 악기가 그리 좋지도 않았겠지. 상상이 간다.)

▶ 지휘자가 된 사연

김원철: 그러면 지휘로 바꾸게 되신 계기는 뭐였을까요?
박은성: 그건 너무 유명한 얘긴데?

(몰라서 물었다기보다는, 모르는 독자가 있을까 봐… 지, 진짜다. 크흠.)

박은성: 대학에 들어가니까, 그 당시는 대학 들어가도 바이올린 잘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던 시절이니까, 내가 들어가 보니까 그냥 학교 내에서는 할 만큼 할 수 있겠더라고. 그래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그러니까 뭐 음악대학에서 정기연주회 솔리스트로 나가기도 했고, 음악대학 오케스트라 악장도 했고 그랬는데, 방학 동안에 한 번 선생님한데, 방학 동안에 학교 레슨(개인지도)이 없으니까, 레슨을 가야 되겠다 생각하고 선생님한테 갔는데, 내 앞에 어떤 쪼~끔한 녀석이, 국민학교(초등학교)야. 그 녀석이 선생님한테 레슨을 받는데,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콘체르토(협주곡)를 하는데, 기가 막히게 잘해서 '누구야? 나는 안 되겠구나.' 그때부터 마음을 접었었죠. 그게 누구냐면 강동석이에요.
김원철: 아! 허허허허허…

강동석

▲ 바이올리니스트 강동석

김원철: 그리고는 빈 국립음대로 가신 거예요?
박은성: 아니, 그리고 한참 있다가… 음악대학 졸업하고… 그다음에 KBS 교향악단. KBS 교향악단이라는 게, 지금 KBS 교향악단 전신이 국립교향악단이고, 국립교향악단의 '또' 전신 KBS 교향악단. 그 KBS 교향악단에 입단해가지고 악단 생활을 몇 년 하다가, 거기 지휘자가 나를 발탁해서 그쪽 (오스트리아) 오케스트라로 데리고 갔다고. 그러고 있으면서 연주 생활을 하는 동안에 내가 거기서 비엔나 국립음대를 입학을 했지.

김원철: 네에. 거기서 오트마 주이트너(Otmar Suitner)를 사사하셨는데, 주이트너 선생님한테 뭘 배웠나요?
박은성: 그걸, 뭘 배웠는지 나도 몰라요.
김원철: 으허허허허…

박은성: 근데, 처음엔 오트마 주이트너한테 갈 생각을 안 했어. 왜 그리로 가게 됐냐면, 날 데려간 선생님이 오스트리아 사람이기 때문에, 또 비엔나 국립음대를 나오시고 그랬으니까 그랬겠지만, 오트마 주이트너라는 사람이 나는 누군지도 몰랐어. 전혀 몰랐는데… 아바도의 스승, 주빈 메타의 스승, 그러니까 다 잘 알 거야, 한스 스바로프스키(Hans Swarowsky)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한테 한 번 배웠으면 좋겠다 해서 내가 비엔나 간 거거든. 비엔나보다, 우선 오스트리아 간 거거든. 도착하자마자 그분한테 누구 도움을 빌려가지고 편지를 썼다고. 나는 한국에서 온 누구누군데, 오래전부터 당신에 대한 명성이랄까 뭐 이런 걸 익히 알고 있다고. 실력이 되는지 안 되는지는 모르겠고, 그러나 아무튼 선생님한테 배우고 싶어가지고 내가 한국에서부터 여기까지 왔는데, 좀 기회가 있으면 찾아뵙고… 얘기를 좀 듣고 싶고, 그럴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선생님 제자가 되고 싶다고, 이렇게 했는데, 뭐 한 달이 돼도, 두 달이 돼도, 소식이 없어요. 그 편지 보낸 지 한 석 달쯤 되니까, 오스트리아 신문에 났어. "한스 스바로프스키 사망."
김원철: 으허허허허…

박은성: 그러니까 내가 편지를 썼을 때, 그분은 병원에… 그래서 굉장히 실망을 하고, 내가 그 사람한테 배우긴 틀렸다, 그래가지고 여름에 모차르테움(Mozarteum), 잘츠부르크에 있는. 거기 여름학교가 있어요. 인터나치오날 좀머 아카데미(Mozarteum International Sommer Akademie), 거기서 지휘 클래스(과정) 들어가서 공부를 하는데, 거기 지도교수가 오트마 주이트너야.
김원철: 아아…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국제 여름학교가 궁금하신 분은: http://www.moz.ac.at/de/kunst/soak.php)

박은성: 그 선생한테 굉장히 인정을 받았다랄까, 그래가지고… (학교 다니면서) 일을 하고 있었으니까… 3년을 계속해서 그 코스에 다녔는데, 마지막 해에 또 신문에 난 게 뭐냐면 한스 스바로프스키 후임으로 오스트리아 대통령이 오트마 주이트너를 국립음대 지휘과 교수로 임명했다고. 친서를 줘 가면서. 그래서 또… 그 선생은 (나를) 잘 아니까, 선생님 제자가 되고 싶다고. 그래, 내가 일을 하고 있으니까 들어갈 저거는 안 되고. 또 지금 내가 음악 이론이다 뭐 등등 공부해 본지… 너무 오래됐기 때문에 나는 입학할 실력이 안 된다고. 그런데 개인 레슨 좀 받을 수 있겠냐고. 근데 그 선생이 아주 단칼에… 자기는 개인 레슨 해줄 시간이 없다고, 니가 배우고 싶으면 시험을 거쳐서 국립 음대… 국립 음악원. 음악대학이 아니야, 그 당시에는. 그렇지, 음악대학이라고 해야지. 호흐슐레(Hochschule; '대학'에 해당하는 독일어). 그전엔 아카데미(Akademie)라고 했거든. 국립 음악원. 음악대학. 거기 시험을 치는데, 그 스토리는 너무너무 길어요. 그거는 얘기 안 해도 되고.

(옛날에 공부했던 이론 책을 모두 한국에 두고 오는 바람에 독일어 책으로 새로 공부해야 했다며, 박은성 지휘자는 그때 일을 '악몽'이라 회상했다. 결국, 10대 1 경쟁률을 뚫고 합격했다고.)

▶ 박은성의 사랑 이야기

박은성: 근데 왜 그렇게 내 라이프 스토리(인생 얘기)를 궁금해해요?
김원철: 그건, 인터뷰에 내러티브(narrative)를 담으려고요. 하하하… 그것 못지않게 궁금한 것은… 선생님 첫사랑 얘깁니다. 으허허허허…
박은성: 나는… 첫사랑… 어떤 게 첫사랑인지 기억을 못 해요. 첫사랑이 누구라고 얘기하면 나, 집에서 내쫓겨난다고.
김원철: 크하하하하…
박은성: 아니, 그게 아니고, 진짜 그걸 기억을 못…

(이하 내용 삭제. 사실은 별 내용 아니지만, 이런 건 삭제해 줘야 더 재미있다.)

김원철: 사모님은 어떻게 만나셨나요?
박은성: 그 사람은 내가… 비엔나에 있는 동안에… 미국서 만났지. 왜 그랬냐면 우리 집이, 아버지도 그 당시에 뉴욕에 계셨고, 뉴욕 한국일보사에 주간, 이랄까… 또 뉴저지에 있는 시튼홀 대학교(Seton Hall University) 교수로 있었기 때문에, 집이 뉴욕에 있었단 말이야. 내가 매년 뉴욕에 방문차 갔었는데, 하루는 서울서부터 잘 알던 어떤 음악가가 나보고, 내가 하도 장가를 못 가고 꿍꿍거리고 앉았으니까, 케네디 공항까지 나와가지고 집에 들어가면서 장가 한 번 안 가보겠냐고. "어유, 왜 안 가봐, 색시가 없어서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못 갔지 내가 왜 안 가. 당연히 가지." 그랬더니, 그럼 왜 없느냐? 그것도 간단해요. 그 당시 비엔나라는 데가 어떤 데냐면, 전체 오스트리아에 한국 사람이 한 300여 명 살았나? 지금은 비엔나만 해도 2000명이 넘어요. 유학생도 많고. 그 당시에는 없어. 그 중에서 또 비엔나 말고 뮌츠, 잘츠부르크, 그라츠, 인스부르크, 이런 데까지 퍼져 있는 이 사람들 빼고 비엔나에만 한 200여 명이 살았나? 200여 명 중에 남자들은 다 빼야지. 할아버지고 애들이고. 여자들 중에… 할머니도 다 빼야지. 애기들 빼야지. 그 담에 처녀들 중에, 몇 사람 안 남더라고, 그중에 못 생긴 여자는 빼야지.
김원철: 으하하하하…

박은성: (웃으며) 뭐 그러니까, 그러니까 없어. 그래서 뭐 그런가 보다, 내 팔자가 이런가 보다 하고, 그냥 이러구 있었는데, 미국서 그 사람이 그런 얘기를 하니까 그게 구세주지 뭐야.

▲ 하느님, 예쁜 애인 하나만… (출처 불명 이미지)

박은성: 근데 내가 뭐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도 아니고… 물론 구라파(유럽) 가기 전에 악단 생활을 임원식 선생님의 배려로 서울예술고등학교 선생도 했었고, 국립교향악단 객원지휘도 했었고, 서울시립교향악단도 지휘했었고… 그야말로 어린 시절에 지휘활동 많이 했지. 했지만, 그것보다도 내가 기본적인 실력이 훌륭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뭘 잘하는 사람을 늘 동경해 왔는데, 미국서 우리 색시를 만나 보니까…

('색시'라는 말에서 사랑이 묻어난다.)

▲ 피아니스트 이귀영의 5·16 민족상 콩쿠르 우승 소식을 전한 1970년 5월 23일 자 대한뉴스.
(사진을 클릭하면 동영상 다시 보기로 이동합니다.)

박은성: …어렸을 때 그 당시 한국에서 최고로 쳐주던 콩쿠르가 5·16 민족상 콩쿠르였단 말이지. 동아콩쿠르보다 훨씬 더 센 콩쿠르야. 박정희 대통령이 만든 콩쿠르. 우리 집사람이 거기 대통령상을… 대상을 받았더라고. 어유, 이건 뭐 난 꿀려서… 엣따 모르겠다, 이왕… 다짜고짜 만나서 나한테 시집오라고 그랬지.
김원철: 으허허… 만나자마자 그러셨어요?

(최, 최고다…)

박은성: 나이도 많지, 나야 아무것도 없지, 그 당시에 아직 학생이니까. 어떤 사람이 자기 딸을 갖다가 아무것도 아닌 사람한테 줘? 아직도 지휘과 다닌다고 그러지, 또 지휘과 졸업했다 치더라도 지휘자로 성공할 수 있을지 없을지 그걸 어떻게 알어? 그건 모험이지. 근데 뭐 딱지 맞고 이러다가 그냥… 그래도 '창~문을 열어다오' 하는 심정으로… 결혼하게 됐어, 그래서. 그 사람의 도움을 받아서 겨우 겨우 결혼을 하게 됐고.

(비결이 궁금했다. 캐묻다 보니 나온 비결은 바로…)

박은성: 그러니까 나는 비엔나에 있고… 오스트리아랑 미국이라는 나라가 대서양을 끼고 있는데 그게 될 리가 없잖아? 또 지금이야 뭐 공짜로도 전화 많이 하지만 그때 전화 한 통에 얼만 줄 알아요? 전화 한 통 걸려면… 뭐 이럴 때라고. 그러니까 편지로. 매일같이 편지 하나씩 쓰는 거지. 편지에 넘어갔어.
김원철: 네에. 오오오! 편지의 위력이…
박은성: 그러니까 요즘 젊은이들은 그걸 알아야 돼. 나는 당신을 사랑해, 어쩌고저쩌고 이거보다도, 글로 한 번 남기면 그게 훨씬 더 위력이 있어.
최종혁: 요즘은 이메일로 하니까…
김원철: 아, 근데 연애편지라는 건 어렵기로 소문난…
최종혁: 첫 줄 쓰기가 정말…
김원철: 쓰다가 구겨서 버리고 막… 으허허…

(사랑을 쓰려거든 ○○로 쓰세요.)

박은성: 연애편지라고 생각지도 않고 그냥…
최종혁: 거의 일기처럼 쓰셨나 보네요?
박은성: 그러니까 소식 전하는 거지. 오늘은 브루크너 하우스에 가서 무슨 교향악단의 연주를 들었는데, 그 교향악단 정말 훌륭하다… 아니면, 저 정도 오케스트라는 우리 악단보다 별로 나은 것 같지 않다… 지휘자도 나보단 낫겠지만 저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어, 뭐 이런 내용도 쓰고. 피아니스트 누가 왔는데… 그런 음악적인 내용, 그리고 뉴욕서 어떻게 지내느냐, 그럼 그쪽에서도 오늘 모스크바 방송교향악단이 왔는데 지휘자는 드미트리 키타옌코였다… 한국에 왔던. 키타옌코가 바로 비엔나 아카데미 출신이거든. 그래서 그런 얘기 하고.

(드미트리 키타옌코. 1999년부터 2004년까지 KBS교향악단 상임지휘자를 맡았던 그 사람이다. 요즘은 베를린필을 객원 지휘하는 등 유럽에서 크게 인정받는 듯하다.)

박은성: 그래서 그런 얘기… 음악적인 뉴스 왔다갔다하고… 그러다가, 우리 심심한데 결혼 한 번 해볼까?
김원철: 으허허허…
최종혁: 편지를 아직 소장하고 계세요?
박은성: 어디 있을 거야. 그거 읽어보면 창피해서…
최종혁: 찢지는 않으셨네요. 으허허…
박은성: 찢지 않았어요.
최종혁: 창피하면 버리거나 그러는데…
박은성: 특히 우리 장모님이… 아직도 그… 나 죽을 때 되면 내놓을 거야.
김원철: 으허허허…
박은성: 부부싸움 할 때, 야 요 녀석아, 니가 요랬잖냐…
일동: 크하하하하~


그 뒤로도 제법 긴 얘기가 오갔지만, 글이 너무 길어지는 듯해서 이만 줄이고자 한다. 그러나 어쨌든 연애 이야기가 이날의 하이라이트. 짧은 지면으로는 다룰 수 없는, 그러나 흥미진진한 얘기를 담아내고자 "이런 사람 처음 보네"라는 말을 들을 만큼 별난 질문을 머리 짜내 생각해 내었다.

지휘자 박은성. 시대 상황을 헤아리면 제법 복 받은 환경에서 자랐고, 오스트리아에서 유학하면서 바닥부터 다시 시작하는 고생을 마다치 않은 끝에 빈 국립음대에서 오트마 주이트너를 사사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연애사에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 한국인다운 저돌성이야말로 인간 박은성을 잘 말해준다.

이런 박은성이 지휘하는 드보르자크 교향곡 7번은 어떨까? 기대된다.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드보르자크 교향곡 7번》 연주회 (지휘: 박은성 · 협연: 박경민)

― 티켓 예매 ―

고양아람누리
http://www.artgy.or.kr/PF/PF0201V.aspx?showid=0000003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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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ticket.interpark.com/Ticket/Goods/GoodsInfo.asp?MN=Y&GoodsCode=11013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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