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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7월 22일 수요일

프로코피예프: 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

사회가 혼란에 빠져 개인에게 폭력을 행사할 때, 예술가는 그 사회를 거울처럼 비추거나 적극적으로 폭력에 저항하곤 한다. 그러나 어떤 예술가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내면의 동굴 속으로 숨기도 한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이 러시아를 뒤흔들던 시기,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는 캅카스 산맥과 볼가 강 일대를 여행하며 격변으로부터 거리를 둔 채로 이전 작품의 자극적이고 타악기적 성향의 음악 양식에서 점차 벗어나고 있었다. 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은 이러한 맥락 속에서 탄생한 작품이다.

음악평론가 알렉스 로스의 분석에 따르면, 이 작품에 나타나는 불협화음과 그로 인한 긴장감은 쇼스타코비치의 경우와 달리 사회 현실을 반영하는 징후적 장치가 아니다. 그것은 악곡의 정교한 조형적 틀을 수놓는 ‘빛과 그림자의 유희’이며, 그와 동시에 ‘고난 없는 서정성’(untroubled lyricism)이자 ‘서정적 해방’(lyrical release)의 성격을 보인다. 피아니스트 스뱌토슬라프 리흐테르는 이 곡을 두고 “봄날 처음 창문을 열었을 때 거리에서 솟아오르는 소리가 갑자기 밀려드는 듯한 느낌”이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작품의 서정성이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는 음악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작곡가가 몸을 숨긴 내면의 동굴 바깥에서는 러시아의 매서운 바람이 불어닥치며, 그 칼바람이 자꾸만 꿈결 속으로 파고드는 듯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동굴의 꿈결과 현실의 고통 사이에 형성되는 긴장 관계야말로 이 작품의 핵심일지도 모른다.

소나타 형식으로 된 제1악장 제1주제에는 ‘꿈꾸듯이’(sognando)라는 나타냄말이 붙어 있고, 좀 더 격정적인 제2주제에는 ‘내레이션하듯이’(narrante)라는 지시가 있다. 바이올리니스트 다비드 오이스트라흐는 작곡가로부터 “누군가를 설득하듯이 연주하라”는 조언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론도 형식으로 된 제2악장은 그로테스크한 스케르초이며, 느리고 몽환적인 제1악장·제3악장과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음악평론가 마이클 스타인버그는 제2악장이 흉포하고 유쾌하며 무례하고, 때로는 악의적이고, 운동감 넘치고(athletic), 바이올린 기법 측면에서 기발하고 탁월하다고 평했다.

변주곡 풍의 자유로운 형식으로 이루어진 제3악장은 ‘꿈결’과 ‘현실’ 사이의 긴장 관계가 서서히 ‘꿈결’의 승리로 귀결되는 음악적 서사를 보여준다. 코다에 이르면 독주 바이올린이 제1악장 제1주제를 높은 음역에서 재현하고, 이어 목관악기가 제3악장의 주제를 이어받은 뒤, 마지막에는 마치 공기 중에 연기가 흩어지듯 사라진다.

2017년 7월 24일 월요일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1번

통영국제음악당 공연 프로그램북에 실릴 글입니다.


프로코피예프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 재학생 시절에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썼고, 루빈스타인 피아노 콩쿠르에 이 곡을 결선 곡으로 들고 나가서 세계초연했다. 프로코피예프는 우여곡절 끝에 이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 작품은 세 부분으로 된 단악장 곡이다. 짜임새가 특이하고 복잡해서 관점에 따라 여러 가지로 분석할 수 있지만, 이 글에서는 작곡가 자신이 설명한 짜임새를 바탕으로 해설한다.

이 곡은 긴 오케스트라 도입부로 시작하고, 피아노 독주는 오케스트라 도입부와 별다른 주제적 연관성이 없다. 부점 리듬이 두드러지는 제1 주제가 마침내 피아노 독주로 제시되고, 경과구를 지나 그로테스크한 제2 주제가 제시 및 변형된다. 경과구를 지나면 마치 종결구처럼 느껴지는 E장조 주제에 이어 '도입부 주제'가 재현된다.

그리고 발전부가 나와야 할 자리에 뜬금없이 새로운 주제가 마치 2악장처럼 느리게 나타나 변주된다.

템포가 다시 빨라지면서 스케르초 악장처럼 느껴지는 발전부가 시작된다. 앞서 종결구 주제처럼 나왔던 E장조 주제가 전개되고, 이어서 제1 주제가 전개되고, 카덴차로 이어진다.

재현부는 발전부의 연장인 양 슬그머니 나타난다. 오케스트라가 제2 주제를 전개하고, 이때 피아노는 제1 주제와 '리듬만 비슷하게' 나타난다. 경과구를 지나 종결구 느낌 E장조 주제가 재현되고, 도입부 주제가 마치 진정한 재현부의 시작처럼 재현되면서 곡이 끝난다.

2011년 9월 22일 목요일

프로코피예프 《로미오와 쥴리엣》 모음곡 제2번

※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웹매거진에 실린 글입니다. 원본과 내용이 조금 다릅니다.

원본 출처: http://g-phil.kr/?p=237

프로코피예프는 1935년에 작곡한 발레 음악 《로미오와 쥴리엣》을 간추려 조곡(모음곡)을 3곡 만들었다. 이번 청소년 커플을 위한 음악회에서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조곡 제2번 중에서 발췌해 연주한다.

▶ 제1곡 : 몬타규 가(家)와 카풀렛 가(家)

사이 나쁜 두 귀족 집안 기사들이 만난 날. 분위기가 사납다. 짧고 강렬한 도입부가 끝나면, 저음 현이 기사들 발걸음처럼 쿵쾅거린다. 서늘한 긴장감을 담은 바이올린 선율이 이어진다.

▲ "기사들의 춤" 주제.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3.0 - Non-PD US, Non-PD EU

마침내 두 집안 기사들이 만나 으르렁거린다. 사나운 호른 선율이 터져 나오고, 이것이 트롬본, 튜바, 트럼펫 등으로 옮겨가며 긴장감을 높인다.

무릇 싸움 구경은 불구경만큼이나 재미난 법. 이 강렬한 분위기 때문에 '딥 퍼플' 등 록 음악가들도 이 곡을 연주한 일이 있다. 또한 이 곡은 영국 축구팀 '선덜랜드'가 입장할 때 배경음악으로 쓰기도 했으며, NFL 미식축구가 영국에서 방영될 때 주제 음악으로 쓰이기도 했다. 영화 《칼리굴라》 등에서도 이 곡이 쓰였다.

▲ "적개심(antagonism)" 주제. "기사들의 춤" 주제와 겹친다.

그래도 무도회는 열리고, 쥴리엣과 패리스 백작이 춤을 춘다. 패리스 백작은 쥴리엣과 결혼하고 싶어하는데, 쥴리엣은 아직 로미오를 만난 일이 없다. 플루트, 하프, 첼레스타가 이끄는 음악은 아름다운 쥴리엣 모습을 돋보이게끔 한다. 사뿐사뿐한 춤이 끝나면 다시 기사들이 서로 으르렁거린다.

▲ "쥴리엣과 패리스" 주제, 플루트 선율.

▶ 제2곡 : 쥴리엣 아가씨

제목 그대로이며 말이 필요 없다. 쾌활한 쥴리엣, 새침한 쥴리엣, 청순한 쥴리엣이 눈에 보일 듯한 음악이다.

▶ 제5곡 : 이별을 앞둔 로미오와 쥴리엣

쥴리엣의 침실. 달콤한 플루트 선율이 한참 흐른다. 짧은 클라리넷 선율에 이어 첼로와 바이올린 등이 연주하는 이른바 '사랑의 주제'가 나타난다.

▲ 플루트 주제

▲ 사랑의 주제

이제 헤어질 시간. 두 사람은 마지막으로 꼭 껴안는다. 독주 비올라, 클라리넷, 색소폰, 바이올린 등으로 선율이 이어지며 음악이 조금씩 부풀어 오른다. 뒤이어 플루트 주제와 사랑의 주제가 금관으로 찬가처럼 터져 나오며 음악이 절정에 이른다.

▲ '마지막 껴안음' 주제

로미오는 떠나고, 쥴리엣은 프란체스코 수도회 로렌스 수사를 만나 가짜 독약을 얻는다. 쥴리엣의 각오를 나타내는 플루트 선율이 불길하게 흐른다. 뒤이어 튜바와 콘트라베이스로 "죽음의 주제"가 나타난다.

▲ 불길한 플루트 선율

▲ 죽음의 주제. 불길한 플루트 선율과 겹쳐 나온다.

▶ 제7곡: 로미오와 쥴리엣의 무덤

제5곡에 나왔던 죽음의 주제가 바이올린으로 서럽게 이어진다. 금관이 선율을 받아 크게 부풀어 오른다. 뒤이어 '마지막 껴안음' 주제가 애달프게 흐르고 나면, 죽음의 주제가 금관으로 목놓아 울부짖듯 터져 나온다. 쓸쓸한 선율이 이어지면서 음악이 끝난다.

2011년 4월 7일 목요일

시벨리우스 《포흐욜라의 딸》 / 프로코피예프 《로미오와 줄리엣》 모음곡 /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 ― 유카페카 사라스테 / 서울시향

2011-02-24 오후 08:00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 : 유카페카 사라스테

시벨리우스, 포흐욜라의 딸
프로코피예프, 로미오와 줄리엣 (모음곡)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

언제나 그렇듯이, 무삭제판입니다. ㅡ,.ㅡa


역사와 전통이 있는 악단일수록 단원들 자존심도 그만큼 대단해서, 어지간한 지휘자는 말 안 듣는 단원들 때문에 골탕을 먹기 일쑤다. 그런데 서울시향은 그와 달리 지휘자가 무슨 요구를 하든 다 들어준다고 한다. 게다가 요즘 서울시향은 유럽 기준으로도 기본기는 탄탄하므로 일류 지휘자에게도 매력 있는 악단이라는 말을 글쓴이는 언젠가 한 단원에게 들은 일이 있다. 그래서 거장 샤를르 뒤투아가 객원 지휘했을 때 분위기가 그렇게나 좋았다던가.

글쓴이가 객석에서 듣기에도 일리 있는 말이다. 요즘 서울시향은 그만큼 지휘자 솜씨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리고, 거물급 지휘자 유카-페카 사라스테가 서울시향을 지휘했다. 이날 연주는 그 이상 말이 필요 없을 만큼 대단했다.

그런데 사라스테가 보여준 작품 해석은 조금 뜻밖이었다. 핀란드 출신 지휘자가 시벨리우스를 지휘하면 북유럽 서늘한 공기처럼 고음을 부풀릴 듯하지만, 이날 연주에서는 거꾸로 현이건 관이건 저음이 너무 두드러졌다는 불평이 나오기까지 했다. 《포흐욜라의 딸》에서 바이올린 소리가 오케스트라를 눈부시게 뚫고 나올 때에는 역시 핀란드 지휘자라는 감탄을 자아내기도 했으나, 전체적으로는 단단한 저음을 바탕으로 균형 잘 잡힌 소리였다.

'사라스테 사운드'는 프로코피예프 《로미오와 줄리엣》 발췌 모음곡에서 좀 더 또렷하게 드러났다. 단단한 저음, 균형 잡힌 소리, 그리고 조금이라도 균형을 해칠 만한 대목은 빈틈없이 다듬어 더할 나위 없이 세련된 소리가 객석을 압도했다. 정명훈이 큰 틀을 짜고 나머지는 단원들에게 맡기는 식으로 소리를 다스린다면, 사라스테는 작은 소리까지 지휘봉 끝에 휘어잡아 소리를 빚어냈다.

이러한 특징이 잘 드러난 곳으로 이를테면 〈몬타규 가와 카풀렛 가〉에서 '줄리엣' 모티프가 처음으로 나온 대목(마디 63)을 들 수 있다. 플루트가 연주하는 주선율은 아름답지만, 약음기 낀 비올라 음형에 글리산도(음 사이를 미끄러지듯 연주하기)가 있어서 문제다. 플루트 소리와 비올라 소리가 합쳐지면서 옥타브 하행 도약에 음산한 글리산도가 덧입혀져 주선율을 비틀어버리기 때문이다. 음반을 들어보면 지휘자에 따라 일부러 이곳에서 기괴한 느낌을 살리기도 한다.

그런데 사라스테는 글리산도 음형을 들릴 듯 말 듯하게 다스려 플루트가 주선율을 확실하게 이끌고 가게끔 했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비올라 글리산도 음형이 마치 왈츠를 추는 줄리엣처럼 사뿐사뿐 했다는 대목이다. 완벽하게 다듬어진 음색과 셈여림, 악기 간 균형 따위가 상호작용하여 음반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마법이 일어났다.

'사라스테 사운드'가 가장 충격적으로 드러난 곡은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이었다. 글쓴이는 언젠가 이 곡을 두고 '달콤한 절망과 거짓된 승리' '현실을 회피해버린 작곡가의 정신적 마스터베이션' 등으로 풀이한 바 있다. 겉보기에는 법석대며 화려하게 끝나지만 그 이면에 처절하게 궁상맞은 정서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날 연주에서는 병든 광기가 철저하게 억눌린 대신 잘 계산된 세련미가 덧입혀져 마치 브람스가 새로 편곡이라도 한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자칫 유치하게 들릴 수 있는 대목은 대선율이 주선율을 치고 올라오게 하거나 악기 간 균형을 정교하게 다듬어 세련됨을 잃지 않게끔 했고, 곳곳에서 이음매가 자연스럽도록 템포를 다스리기도 했다. 그래서 사납게 몰아치는 대목에서도 절박하게 울부짖는 소리가 아니라 여유를 잃지 않고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내어 마치 차이콥스키가 아닌 말러를 듣는 듯하기도 했다.

'이건 차이콥스키가 아니야!' 누군가는 이렇게 화를 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작품을 내놓고 나면 작가는 죽어야 한다.'(움베르토 에코)라는 말이 있듯 한 가지 해석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더군다나 차이콥스키는 자신이 떠올린 아름다운 선율을 베토벤이나 브람스처럼 정교한 짜임새로 풀어내는 솜씨가 모자람을 곧잘 한탄했다고 하지 않던가. 그가 이날 연주를 들었다면 자신의 약점을 없애준 연주라며 지휘자 손을 덥석 잡고 고마워하지는 않았을까.

이날 첼로 수석을 맡은 객원은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 관현악단 수석인 루이지 피오바노(Luigi Piovano)로 서울시향과는 아마도 두 번째이지 싶다. 그런데 피오바노가 서울시향 객원 수석을 처음 맡았던 날을 글쓴이는 시향 개편 이후 최악의 연주회로 기억한다. 그날 시향이 연주를 망친 까닭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개편 초기 취약점을 거의 털어낸 서울시향이 이날 피오바노를 다시 만나 멋진 연주를 들려주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반갑기 때문이다.

현악 파트는 보통 수석 연주자가 활놀림을 결정한다. 가끔은 악보에 지시가 있거나 지휘자 요구가 반영되기도 하지만, 그런 예외를 빼면 수석 연주자가 누구냐에 따라 파트 음색이 확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이날 피오바노를 만난 서울시향은 평소와는 크게 달라져 고무공처럼 통통 튀면서도 우아함을 잃지 않는 첼로 소리를 뽐냈다. 첼로를 따라 콘트라베이스 소리가 덩달아 달라지기도 했는데, 첼로와 활놀림을 맞춘 탓인 듯했다.

2009년 12월 31일 목요일

2009.11.29. 리아도프 《마법의 호수》 《바바야가》 《키키모라》 / 라벨 《셰에라자드》 / 프로코피예프 교향곡 7번 ― 미샤 브뤼거고스먼 / 루도비크 모를로 / 서울시향

2009년 11월 29일(일) 오후 8시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지휘자 : 루도비크 모를로
협연자 : 미샤 브뤼거고스먼(소프라노)

리아도프, 마법의 호수, 바바야가, 키키모라
A. Liadov, The Enchanted Lake / Baba-Yaga, Kikimora
라벨, 셰에라자드
M. Ravel, Scheherazade
프로코피예프, 교향곡 제7번 c#단조, 작품131
S. Prokofiev, Symphony No. 7 in c#minor, Op.131


프로코피예프 교향곡 7번은 주선율이 은근히 까다롭게 조각나 이 악기 저 악기에 흩어져 있어서, 어찌 들으면 베베른이 썼던 기법인 이른바 '음색선율'(Klangfarbenmelodie)프로코피예프식으로 바꿔놓은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지휘자는 그 선율 조각들을 잘 모아서 하나로 꿰는데 적지 않게 마음을 쏟아야 한다. 음반을 들어보면 일류 지휘자와 일류 악단 녹음에서도 '꿰맨 자국'이 곧잘 드러나기도 하며, 작품 해석 차이는 다른 작품과 견주면 덜 나는 편이다.

다시 말하면 이 곡은 서울시향한테 '위험한'(?) 작품이어서 유럽 악단 수준을 꾸준히 좇아가는 서울시향이 가장 모자란 곳을 숨김없이 드러내 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휘자 루도비크 모를로는 '꿰맨 자국'을 없애고 소리를 예쁘게 다듬는 솜씨가 남달랐다. 객원 지휘자가 악단을 데리고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다. 그런데도 프로코피예프 교향곡 7번을 짧은 시간에 이렇게까지 말끔하게 다듬었다면, 서울시향이 날이 갈수록 연주 솜씨가 좋아진다고는 해도 지휘자 솜씨가 보통이 아니라고 보아야 한다.

소리를 다듬는데 너무 마음을 쏟다 보면 과감한 해석을 하지 못해서 자칫 연주가 맨송맨송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날 연주에서는 작품에 담긴 화끈한 소리와 아기자기한 소리 따위가 제법 그럴싸하게 살아났으며, 이때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은 타악기 연주자들이었다. 그리고 타악기 가운데 하나만 꼽으라면 '큰북'이 이날 가장 멋졌다.

오케스트라용 36인치 큰북이 내는 소리는 웬만큼 세게 두드려대지 않으면 평범한 가정용 오디오로는 잘 들리지 않는다. 글쓴이 방에 있는 중급 오디오로는 큰북 소리가 잘 들리기는 하는데 음색이 연주회장에서 듣던 것과는 좀 다르다. 최고급 오디오 가운데서도 설치가 잘된 놈들만 그럴싸한 소리를 내는데, 글쓴이는 오디오로 제대로 된 36인치 큰북 소리를 딱 한 번 들어보았다. 그런데 이날 연주회에서 큰북이 들려주는 '오디오스러운'(?) 음향적 쾌감이 매우 컸다.

이를테면 2악장에서 가파른 아첼레란도에 이은 마디 18과 마디 239, 또는 크레셴도를 업은 총주에 이어지는 마디 134에서 그랬으며, 이때 큰북이 '쿵쿵' 두드려대는 단단하면서도 묵직한 소리가 그야말로 '악마의 쾌(快)'라 할 만했다. 2악장이 끝날 무렵인 마디 476부터는 2악장 가운데 가장 멋진 곳이어서 조금 앞선 마디 431부터 나중에 앙코르로 연주하기도 했는데, 여기서도 이를테면 마디 484에서 큰북이 '쿵쿵쿵' 하는 소리가 참으로 멋졌다.

3악장에서는 마디 17에서 하프, 피아노, 플루트, 현이 만들어내는 소리가 마치 겨울철 난롯가처럼 따듯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바로 이곳에 들릴락말락 큰북 소리가 얹어지니 첫눈이 내리는 듯한 설렘도 느껴졌다. 또 '난롯가' 음형이 총주로 나오는 마디 39에서는 마디 43부터 나오는 큰북 소리에 맞추어 심장이 덩달아 두근거리는 듯했다. 지휘자는 악보에서 지시한 '느리고 풍부한 표정으로'(Andante expressive)와 견주어 3악장 템포를 제법 빨리 잡았으며, 덕분에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미리 느껴지기까지 했다.

큰북이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는 1악장에서도 마디 84 같은 곳에서 큰북이 멋진 소리를 들려주었고, 작은북과 글록켄슈필 따위가 더욱 두드러지는 4악장에서도 마디 274 또는 마디 387에서 큰북 소리가 음향적인 쾌감을 주었다. 4악장 마지막은 글록켄슈필 등이 앙증맞은 소리를 내면서 끝낼 수도 있고 또는 오케스트라 총주로 법석대며 끝낼 수도 있다. 이날 서울시향은 어찌할까 귀담아들었더니 글록켄슈필 등으로 얌전하게 끝내더라. 겨울에는 이게 낫다.

이날 큰북을 연주한 사람은 Raul Vergara였던 듯하다. 그런데 이날 첫 곡으로 연주한 리아도프 《마법의 호수》, 《바바야가》, 《키키모라》에서는 김미연이 큰북을 연주했다. 이때에도 큰북이 제법 멋져서 《마법의 호수》에서는 저 깊은 곳에서 북받쳐 오르는 땅 울림 같은 소리를 들려주었고, 《바바야가》에서는 프로코피예프 교향곡 7번 2악장 못지않은 '악마의 쾌(快)'를 들려주었다.

라벨 《셰에라자드》를 협연한 소프라노 미샤 브뤼거고스먼은 노랫말에 담긴 퇴폐적인 느낌을 흑인이 아니면 따라 하기도 어려울 듯한 끈적끈적한 목소리로 매우 잘 살렸다. 또 블루스 음악 등에서 금관 악기를 흉내 내거나 할 때 성대를 떨면서 내는 콧소리와 비슷한 발성법을 이따금 쓰기도 했다. 다른 가수가 녹음한 음반을 들어보면 소녀 같거나 너무 정직한(?) 목소리가 노랫말이나 음악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낄 때가 있는데, 미샤 브뤼거고스먼은 그야말로 노래에 딱 맞았다. 목소리에 힘과 '독기'가 좀 더 있었더라면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살로메》에서 '살로메' 역을 하면 좋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2009년 9월 3일 목요일

2009.02.19. 시벨리우스 포흐욜라의 딸 /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2번 / 버르토크 이상한 중국 관리 - 알렉산드르 가브릴뤼크 / 성시연 / 서울시향

2009년 2월 19일(목)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자 : 성시연
협연자 : Alexander Gavryluk (Pf)

Sibelius, Pohjola's Daughter, Op.49
Prokofiev, Piano Concerto No. 2 in g, Op.16
Bartok, The Miraculous Mandarin, Op.19

알렉산드르 가브릴뤼크(x) → 올렉산드르 가브릴류크(o) http://goo.gl/7Lmwm


성시연이 지난해 1월과 9월에 이어 세 번째로 서울시향을 지휘했다. 그가 나라 밖에서 걸어온 놀라운 발자취를 생각하면 그동안 한국에서 보여준 모습은 실망스럽다. '나이 어린 여자'라는 약점 아닌 약점을 생각하면 꽤 훌륭하다고도 말할 수 있겠으나 그뿐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를 그저 '지휘자 성시연'으로 바로 말할 때가 왔다. 이날 연주회에서 드디어 참된 솜씨를 제법 드러내었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솜씨를 펼쳤다 하기는 어려우며 기대에 못 미쳤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더러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볼 때마다 한 걸음 나아간 모습을 놓치지 마시라. 성시연은 젊으며 앞날은 밝다.

지난 연주회보다 나아진 티가 가장 잘 드러난 곡은 시벨리우스 <포흐욜라의 딸>이었다. 첫 곡이라 그만큼 연습이 모자라기도 했겠거니와 때마침 수석 연주자들이 거의 자리에 없었는데도 제법 무난한 연주를 이끌어내었다. 앙상블이 이따금 흔들리다가 '알레그로' 대목에서는 '프레스토'에 가까운 아찔한 템포로 마구 달리는 바람에 더욱 삐걱거렸지만, 그래도 끝까지 큰 줄기를 놓치지 않고 '물량공세'로 뚝심 있게 밀어붙여서 이 곡이 익숙한 사람이 아니라면 실수를 눈치 채기 어렵게 잘 다스렸다. 지난 9월 연주회 첫 곡에 견주면 놀랄 만한 발전이다.

버르토크 <이상한 중국 관리>는 성시연서울시향을 지휘해 어디까지 소리를 뽑아낼 수 있는지를 가장 잘 보여준 작품이었다. 악단을 확 휘어잡지는 못하지만 구석구석 열심히 다듬어 노력파 모범생 같은 연주를 이끌어낸 대목은 지난 연주회에서 보여준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음악 흐름을 탄탄하게 다스리고 템포와 리듬과 음색을 맛깔스럽게 다듬는 솜씨는 더 나아졌다. 때때로 결정적인 '한 방'이 아쉽기는 했으나 수석 연주자들 빈자리가 작지 않았음을 헤아리면 받아들이지 못할 바는 아니며 그 때문에라도 앞날이 더욱 기대된다.

수석 연주자가 자리를 비운 틈에 솜씨를 마음껏 뽐낸 연주자도 있었으니 바로 클라리넷 부수석 임상우다. 채재일 수석이 따듯한 음색, 부드러운 레가토, 그윽한 소토보체를 곧잘 뽐낸다면, 임상우는 겉모습부터 딱 클라리넷 연주자처럼 생겨서는 그 소리 또한 곧고 매끄럽고 빈틈없는 클라리넷 그 자체다. 무엇보다 남자를 꼬드기는 대목에서 빠르고 어지러운 음형을 나무랄 데 없이 잘 다스렸다. 여자가 중국 관리를 처음 보고 두려워하는 대목에서는 지휘자가 중국풍 트롬본 소리를 일부러 줄이고 클라리넷 소리를 크게 하여 마치 카메라가 여자를 가까이 중국 관리를 멀리 잡은 듯한 원근감을 살렸는데, 이때 클라리넷 소리가 몹시 사나워서 마치 무서워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울부짖는 모습이 눈에 보일 듯했다.

이날 가장 돋보인 사람은 타악기 연주자들이었다. 시향 타악기 연주자들은 매우 뛰어난데도 현대 음악이 아니면 좀처럼 솜씨를 뽐낼 때를 만나기 어려운데, 이날 모처럼 오케스트라 음색을 조였다 풀었다 하며 길잡이 노릇을 톡톡히 했다. 중국 관리가 집 안으로 들어서는 대목(Maestoso)이 가장 멋졌고, 쫓고 쫓기는 대목(Sempre vivace)에서는 지휘자가 긴 호흡으로 놀랍도록 폭넓은 크레셴도를 이끌어내는 동안 소리에 탄탄한 뼈대를 이루었다. 이날 연주된 판본은 초연과 출판 과정에서 지워진 대목을 모두 되살린 2000년 개정판으로 판단된다. 중국 관리가 숨 막혀 죽는 대목(Pesante)부터 어딘가 낯설다고 느꼈다면 바로 판본이 달랐던 탓이며, 인기 있는 음반이 대부분 2000년 이전 녹음이라 사정을 아는 사람은 비교하는 재미가 쏠쏠했을 것이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타악기가 가장 훌륭했다.

트롬본은 수석 연주자가 빠졌어도 탄탄한 연주로 오케스트라 무게 중심을 잘 잡았다. 그러나 트럼펫은 소리가 너무 작을 때가 잦아 안타까웠다. 이를테면 중국 관리가 칼 맞는 대목(Ritenuto)에서 트럼펫은 약음기를 꼈어도 포르티시모로 연주해야 하지만 트롬본 메조포르테보다 훨씬 작게 들렸다. 죽지 않는 중국 관리를 여자가 안아준 다음에 나오는 트롬본 마르카토 음형은 뜻밖에 소리가 너무 작아서 갸우뚱했다. 아마도 지휘자가 목관악기 소리를 살리느라 일부러 트롬본 소리를 작게 한 모양인데, 중국 관리가 처음 나타나는 대목도 그렇지만 지휘자는 중국 관리를 조연으로 물리고 여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려 했나 보다. 그래서 성욕에 빠져 죽음마저 물리친 징그러운 중국 관리보다는 불쌍하게 이용당하는 여자에게 관객이 더 마음을 쏟기를 바랐나 보다. 지휘자가 여자이기 때문일까?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협연한 알렉산드르 가브릴뤼크는 큰 힘으로 두드려대면서도 루바토를 꽤 달콤하게 써서 음색이 차갑거나 딱딱하게 느껴지지 않도록 하는 솜씨가 인상 깊었다. 그래서 프로코피예프 음악에서 스크리아빈이나 때로는 쇼팽 같은 느낌마저 우러나왔으며, 힘이 넘쳐도 우락부락하지 않았고 아찔한 테크닉을 드러낼 때에도 음악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내었다. 힘과 테크닉을 음악 속에 갈무리할 줄 아는 훌륭한 연주자가 1984년생이라니, 우리는 이날 거장의 젊었을 적 모습을 보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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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철. 2009.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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