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 22일 목요일

힘겨워하는 연인을 위하여 ― 차이콥스키 환상 서곡 《로미오와 쥴리엣》

※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웹매거진에 실린 글입니다.

원본 출처: http://g-phil.kr/?p=224

이 작품은 짜임새를 따지면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가 있는 교향시라 할 수 있고, 소나타 형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 차이콥스키 교향곡 등에서 보이는 비극적 흐름이 이 곡에서도 나타나며, 차이콥스키는 셰익스피어 희곡 줄거리를 그대로 따라가기보다 슬픈 사랑 이야기를 차이콥스키다운 방식으로 풀어냈다고 할 수 있다.

프롤로그는 『로미오와 줄리엣』에 나오는 프란체스코 수도회 로렌스 수사를 나타내는 듯 슬프면서도 경건한 분위기이며, 비극을 들려주는 화자와 같은 역할을 한다.

▲ 프롤로그 주제: A조 클라리넷. ©Public Domain

뒤이어 격렬한 음악이 튀어나온다. 소나타 형식 제1 주제에 해당하며, 심벌즈가 끼어들면 '칼싸움' 느낌이 난다. 이번 청소년 커플을 위한 음악회에서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칼싸움'을 얼마나 실감 나게 하는지 귀담아들어 보자. 차이콥스키는 이 대목에서 사람이 죽고 사는 심각한 싸움을 그렸지만, 너무 어둡고 진지한 음악에 익숙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 대목에서 록 음악 듣듯이 가벼운 '헤드 뱅잉' 정도는 해도 좋지 않을까. (그러나 소리를 내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을 잊지 말자!)

▲ '칼싸움' 주제: 제1 바이올린.

'칼싸움' 주제가 지나가면 소나타 형식 제2 주제에 해당하는 아름다운 선율이 나타나는데, 이것을 '사랑의 주제'라 부른다. 이 대목은 TV 드라마 《세서미스트리트》, 애니메이션 《사우스 파크》, 영화 《재즈 싱어》(1927) 등 TV와 영화에서 곧잘 쓰여서 널리 알려졌다. 영화평론가 '듀나'는 이 음악이 너무나 자주 쓰인 까닭에 빛이 바랜 느낌이 있다며, "두 코믹한 연인들이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그들의 눈에 핑크색 하트를 달아주고 《로미오와 줄리엣》을 틀면 됩니다."라고도 했다.

▲ 사랑의 주제: 잉글리시 호른.

'사랑의 주제' 사이에 나오는, 마치 연인이 속삭이는 듯한 선율도 기억해둘 만하다. 그러나 악보를 인용한 세 주제만 기억해도 좋다. '칼싸움'이 더욱 사나워지고, '사랑의 주제'가 더욱 가슴 아프게 이어지고, '프롤로그' 주제가 곳곳에 나타나며 흘러가는 음악을 따라가 보자.

파국을 지나 '에필로그'에 해당하는 대목에 이르면 팀파니 소리가 마치 거스를 수 없는 운명처럼 무겁게 들려 온다. 장례식 장면에 해당하는 대목이다. 뒤이어 목관악기가 같은 선율을 나란히 연주할 때 눈시울이 뜨거워진다면, 당신은 이미 음악에 흠뻑 빠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어쩌면 당신은 힘겨운 사랑을 해보았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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