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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5월 19일 일요일

하이든 현악사중주 29번 Op. 33-5 Hob. III:41, 보로딘 현악사중주 2번, 차이콥스키: 현악사중주 1번

하이든: 현악사중주 29번 G장조 Op. 33-5 Hob. III:41

하이든은 1781년에 작곡한 현악사중주 6곡을 작품번호 33번으로 묶어 파벨 페트로비치 러시아 대공에게 헌정했다. 이에 따라 흔히 '러시아 사중주'라 불리는 Op. 33 연작 가운데 G장조로 된 제5번 사중주는 'How Do You Do'(반갑습니다) 사중주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 별명은 1악장 시작 부분이 마치 당시 귀족들이 한쪽 발을 내밀고 다른 쪽 발을 뒤로하여 무릎을 굽히는 정중한 인사법을 연상시키는 것에서 유래했다. 음악적으로 이 음형은 곡을 끝맺을 때나 나올 법한 것이라는 점에서 18세기식 유머라 할 수 있는데, 현대 한국인이 약 250년 전 서양 유머에 굳이 웃을 필요는 없으며 그저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노래 시작했다, 노래 끝났다' 같은 낡은 유머와 통한다고 이해하면 된다.

1악장은 소나타 형식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가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따라갈 수 있다. 제1주제와 제2주제의 구분이 명확하고 발전부에서 주제가 확장된다. 다만, 재현부에서 제시부를 단순 반복하기보다 추가적인 '발전'이 있는 점이 특이하다.

2악장은 느리고 우울한 단조 선율이 음악을 이끌어가며 마치 오페라 아리아 같은 구성으로 되어 있다. 음악학자 도널드 토비 등은 글루크 오페라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에 나오는 아리아를 인용 또는 표절한 것으로 본다. 3악장은 흔히 미뉴엣이 올 자리에 스케르초를 쓴 선구적인 사례라 할 수 있고, 4악장은 복잡하지 않은 변주곡 짜임새로 시칠리아풍 선율이 음악을 이끌어간다.

보로딘: 현악사중주 2번 D장조

보로딘이 아내에게 헌정한 곡으로, 일설에 따르면 아내와 만난 지 20년이 되는 해를 기념하며 아내와의 추억을 음악에 담았다고 한다. 베토벤의 영향이 뚜렷한 현악사중주 1번과 달리 이 작품은 1악장부터 매우 서정적인 분위기가 특징이다. 소나타 형식으로 되어 있으나 발전부가 제시부의 반복에 가깝고, 그 대신 제2주제가 세 도막으로 확장된 것이 독특하다. 조성구조상 제2주제의 시작에 해당하는 선율은 제1주제와 그다지 뚜렷한 대조를 보이지 않고 오히려 제2주제 둘째 도막이 '진짜 제2주제'처럼 들린다.

2악장은 간소화된 소나타 형식으로, 발전부는 1악장과 마찬가지로 제시부의 반복에 가깝다. 가장 유명한 3악장은 달콤한 선율이 변주되던 끝에 '사랑의 2중창'을 연상시키는 돌림노래로 변하는 대목이 백미라 할 수 있다. 소나타 형식으로 된 4악장은 바이올린이 묻고 비올라와 첼로가 답하는 듯한 짧은 도입부에 이어 빠른 음형으로 신나게 달리며 흥분을 더해 나가는 짜임새이다.

차이콥스키: 현악사중주 1번 D장조

차이콥스키는 서양음악 역사상 가장 탁월한 멜로디 메이커로 손꼽힌다. 문제는 이전 시대의 거인이었던 베토벤이 남긴 음악 유산이 차이콥스키의 체질에 맞지 않았다는 것이다. 작은 음악적 씨앗으로 논리를 구축하고 발전시켰던 베토벤과 달리, 차이콥스키에게 중요했던 것은 (음악학자 리처드 타루스킨의 말을 빌리자면) '구조'가 아니라 '드라마투르기'다. 그래서 베토벤을 잣대로 비판받을 때면 차이콥스키는 심하게 자학하기도 했다.

현악사중주 1번은 차이콥스키를 비판한 사람마저도 인정했을 만큼 뛰어난 형식 논리를 보여주는 예외적인 작품으로, 특히 유려한 선율 뒤에서 현란하게 변화하는 박절 구조는 규칙적인 네 박자의 단조로움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 이 작품은 젊은 차이콥스키에게 출세의 발판이 되어 주었는데, 다만 후기 걸작들과 견주면 단점이 사라진 만큼 장점이 함께 억눌려 있다고 느껴지는 아쉬움이 있다.

그러나 이 곡에도 차이콥스키의 탁월한 선율이 위력을 보이는 대목이 제법 있으며, 특히 2악장은 초연 당시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가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는 일화로 유명하다. 이 선율은 우크라이나 민요를 인용한 것이라고 전해지며 중간 부분의 선율은 차이콥스키가 새로 작곡한 것이다. 2악장뿐 아니라 다른 악장 또한 그냥 선율을 귀로 듣고 따라가는 것으로 충분하지만, 굳이 형식을 따지자면 1악장과 4악장은 소나타 형식, 2악장은 세도막 형식, 3악장은 스케르초와 트리오 형식이다.

2012년 6월 18일 월요일

해설: 레스피기 《로마의 소나무》, 보로딘 《이고르 공》 중 ‘폴로베츠인의 춤’ 등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웹매거진에 실린 글입니다: http://g-phil.kr/?p=978


보로딘 《이고르 공》 중 ‘폴로베츠인의 춤’은 지난해 3월 24일 의왕시 서울소년원에서 있었던 구자범 지휘자 취임 후 첫 음악회에서 연주했던 곡입니다. 오페라 《이고르 공》은 외국에 잡혀 온 임금님 이야기입니다. 이고르 공이 이끄는 러시아 군대가 튀르크계 민족인 폴로베츠인과 전쟁을 하는데, 이고르 공이 크게 지고 포로로 사로잡히고 말아요. 그런데 폴로베츠의 '칸'은 이고르 공이 적장인데도 손님 대접을 하고 잔치를 열어서 위로해 주지요. ‘폴로베츠인의 춤’은 이때 나오는 음악입니다. 화려한 춤이 멋진 장면이고, 음악도 그만큼 화려합니다.

레스피기 《로마의 소나무》는 지난해 6월 24~25일 수원과 고양에서 있었던 정기공연 때 연주한 곡입니다. 이날 경기필은 《로마의 축제》, 《로마의 분수》와 더불어 '로마 3부작'을 국내 최초로 한자리에서 연주했지요. 《로마의 소나무》는 로마 시대 모습을 담은 곡으로, 소나무의 '눈'으로 바라본 로마라고 할 수 있습니다. 4개 악장으로 되어 있는데요, 레스피기는 각 악장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① 보르게제 저택의 소나무 (I pini di Villa Borghese) : 보르게제 저택에 있는 소나무 숲에서 아이들이 뛰논다. 둥글게 돌면서 춤추고, 병정놀이하며 행진하고, 싸우고, 저녁 제비처럼 흥분해 소리치고, 떼 지어 돌아다닌다.

② 카타콤 부근의 소나무 (Pini presso una catacomba) : 소나무 그림자가 카타콤 입구에 드리운다. 깊은 곳에서 시편을 노래하는 구슬픈 소리가 솟아올라 장엄한 찬가처럼 공기 중에 떠다니다가 조금씩 신비롭게 사그라진다.

③ 쟈니콜로의 소나무 (I pini del Gianicolo) : 공기가 떨린다. 쟈니콜로에 소나무가 보름달 밝은 빛을 받고 서 있다. 나이팅게일이 노래한다.

④ 아피아 가도의 소나무 (I pini della Via Appia) : 어스름한 동틀 무렵 아피아 가도. 소나무 한 그루가 마법의 풍경을 지켜본다. 어렴풋하고 끊임없는 발소리. 시인인 소나무는 지나간 영광의 환상을 본다. 트럼펫 소리가 들리고, 새로 뜬 태양의 눈부심 속에서 집정관의 군대가 나타나 '신성한 길'(Via Sacra)을 따라 신전으로 개선행진을 한다.

바그너 《파르지팔》 1막 간주곡과 《로엔그린》 3막 전주곡은 올해 5월 8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있었던 정기공연 때 연주한 곡입니다. 《파르지팔》과 《로엔그린》은 성배 수호 기사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파르지팔》은 주인공 파르지팔이 성창(롱기누스의 창)을 찾아 나서면서 깨달음을 얻는 내용입니다. "자비심으로 깨달으리라, 순수한 바보여"라는 계시와 더불어 깨달음에 대한 철학적인 생각이 담긴 작품이지요. 이번에 경기필이 연주할 1막 간주곡은 파르지팔과 성배 기사 구르네만츠가 성배 의식에 참석하고자 몬살바트 성으로 이동하는 장면에 나오는 음악이며, '장면전환 음악'이라고도 합니다. "이곳에서 시간은 공간으로 변한다"라는 수수께끼 같은 대사에 이어지는 신비로운 음악이지요.

《로엔그린》은 《파르지팔》 이후에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로엔그린은 파르지팔의 뒤를 이어 성배 수호 기사들을 이끌게 되는데, 바그너 오페라 《로엔그린》은 로엔그린이 몬살바트 성을 떠나 활동하는 이야기입니다. 로엔그린은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쓴 '엘자'를 대신에 결투에 나섰다가 엘자와 결혼하지요. 3막 전주곡은 결혼식 장면을 이끄는 화려한 음악입니다.

말러 교향곡 3번은 올해 3월 17일 수원에서 있었던 정기공연 때 연주한 곡입니다. 말러는 교향곡 3번에 세계를 담고자 했고, 바위(1악장), 꽃(2악장), 동물(3악장), 사람(4악장), 천사(5악장), 사랑(6악장)의 관점에서 보는 세계를 에피소드처럼 들려주는 짜임새로 작품을 썼습니다. 이번에 경기필이 연주할 6악장에는 '사랑이 내게 이야기하는 것'이라는 표제가 붙어 있는데, 고통으로 가득한 세계를 사랑의 관점에서 보는 음악입니다. 6악장이 말러가 보고 싶어한 세계이고, 사랑의 관점에서 세계를 바라보면 우리는 모두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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