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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21일 목요일

바그너 오페라 '발퀴레'

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입니다.


오페라 '발퀴레'는 '니벨룽의 반지' 4부작 가운데 2번째 작품입니다. '발퀴레' 하나만으로도 4시간 또는 때로 5시간 이상 걸리기도 하는 대작이고, 4부작을 모두 공연하려면 중간에 쉬어 가는 날까지 반드시 포함해 일주일 정도가 필요합니다. 통영에서 이걸 다 공연해 봤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만 쉽지 않네요.

그래도 2019 통영국제음악제 폐막공연으로 '발퀴레' 1막을 하게 됐습니다. 통영국제음악제를 아껴주시는 여러분께 익숙하실 지휘자 알렉산더 리브라이히가 5년 만에 통영에 돌아와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를 지휘할 예정이지요. 그리고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등 국제무대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한국인 가수들이 출연합니다.

'지크문트' 역을 맡은 테너 김석철은 한국인으로는 보기 드문 강력한 목소리를 가진 테너입니다. 제가 이분을 처음 봤을 때부터 바그너를 해야 할 목소리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지난 2016년에 바그너 가수들에게 꿈의 무대라 할 수 있는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 출연하는 등 바그너 가수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강병운, 연광철, 사무엘 윤, 전승현 등 음역이 낮은 분들이 그동안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 여러 차례 출연했지만, 테너로는 국내 최초예요.

'지클린데' 역을 맡은 소프라노 서선영 또한 한국인답지 않게 묵직한 고음을 낼 수 있는 가수라서 역시 바그너를 해야 할 목소리라고 생각해 왔던 분입니다. 지난 2016년 국립오페라단이 '로엔그린'을 공연했을 때 로엔그린 역 김석철의 상대역인 '엘자'로 출연하는 등 바그너 오페라에 도전하고 있지요. 제 생각에 '트리스탄과 이졸데' 중 이졸데에 잘 어울릴 것 같은데, 발퀴레 중 지클린데 역에도 잘 어울릴 것으로 기대됩니다.

'훈딩' 역을 맡은 베이스 전승현은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등에서 바그너 오페라를 여러 차례 하셨던 분입니다. 특히 '신들의 황혼'의 빌런(악당)인 '하겐' 역으로 유명하신 분이지요. 그뿐만 아니라 독일-오스트리아 가수가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영예인 '캄머젱어'(Kammersänger) 칭호를 지난 2011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받았던 분이기도 합니다. 이 칭호는 노래 실력뿐 아니라 독일 시(詩)를 올바로 이해하고 언어로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인정받아야 받을 수 있다고 하지요. 말하자면 독일인이 판소리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격입니다.

바그너 오페라에서는 가수들의 노래가 아닌 오케스트라가 음악을 이끌어가곤 합니다. 노래 가사가 사건의 외면을 알려주는 동안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진실을 관현악이 알려주는 식이고, 그런 점에서 고대 그리스 비극에서 합창이 하는 역할을 바그너 오페라에서는 오케스트라가 하는 셈입니다. 이 말을 달리하면 노래 선율만 따라가서는 바그너 음악의 진수를 맛볼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발퀴레'의 깊은 내용을 이해하려면 가사와 음악의 상호작용을 실시간으로 파악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독일어 가사를 따라가면서, 필요하다면 독한대역을 보면서 가사의 의미를 이해하고, 귀로는 관현악에 집중하는 식으로 주의자원을 효과적으로 배분해야 하지요. 가사에 숨겨진 진실을 오케스트라가 알려주는 순간 전율을 느끼고 나면, 그 뒤로는 자연스럽게 바그너 음악에 빠져들게 됩니다. 그러나 이렇게 높은 진입장벽이 국내에 바그너 애호가가 많지 않은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합니다.

사실 '발퀴레'는 바그너 작품치고는 '노래'의 비중이 높은 편입니다. 그래서 그냥 가사만 따라가더라도 제법 재미있을 거예요. 다만, '훈딩'이 말할 때마다 사납게 으르렁거리는 오케스트라, '지클린데'와 '지크문트' 사이에 말로는 전하지 못할 눈빛이 오갈 때마다 애절한 마음을 전하는 오케스트라, 두 사람에게 기적이 일어났을 때 마치 빛이 무대를 압도하는 듯 눈부시게 빛나는 오케스트라 등을 놓치지 않는다면 더 큰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발퀴레 1막 전주곡에서, 이를테면 선동적인 리듬을 타고 흐르는 저음 현의 '다크 포스'에 집중해 보세요. 그 위에서 폭풍처럼 몰아치는 현의 움직임, 포르테(세게)와 피아노(여리게)를 순식간에 오가는 급박한 셈여림 변화, 무시무시하게 암울한 음색, 악마적인 화음 등에도 주의를 기울이면 좋습니다.

2011년 5월 26일 목요일

《발퀴레》 3막 '구원'(Redemption) 모티프: "Herrliche"냐 "Herrlichste"냐

음악평론가 알렉스 로스(Alex Ross)가 ☞블로그에 쓴 글을 요약해 봤습니다. 며칠 전에 올라온 글인데, 제가 요즘 바빠서 이제야 올립니다.

▲ © 서울대학교 서양음악연구소

《발퀴레》 3막, '구원'(Redemption) 모티프. © Decca
(아이폰으로 음악이 나오나요? HTML5 코드를 썼는데 아이폰이 없어서…)

《발퀴레》 3막에서 지클린데가 브륀힐데를 찬양하는 대목입니다. "오 가장 고귀한 기적이여! 빛나는 여신이여!"(O hehrstes Wunder! Herrliche Maid!)

그런데 "Herrliche"(빛나는)이 아닌 "Herrlichste"(가장 빛나는)이라고 된 악보나 문헌이 드물지 않습니다. 음반을 들어 봐도 제각각이고요. 위 악보나 인용한 숄티 판 음반에서도 그렇네요. 바그너 작품에서 이런 것들 더러 있지요.

알렉스 로스가 ☞바이로이트 아카이브를 비롯한 여러 권위 있는 곳에 물어보고 나서 결론을 내렸는데, "Herrliche"가 옳다네요.

1853년에 개인적으로 출판한 대본에는 "Herrliche"라고 썼다가, 최초 자필악보에서는 알 수 없는 이유로 "Herrlichste"라고 썼고, 카를 클린트보르트(Karl Klindworth)가 이것을 바탕으로 보컬 스코어(vocal score)를 출판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총보(full score)를 출판할 때 바그너가 감수하면서 "Herrliche"로 되돌렸고, 바그너 비평판 악보(critical edition)에도 "Herrliche"라고 되어 있습니다. (비평판이란 짧게 말해 음악학자가 학술적 검증 작업을 거친 판본을 말합니다.)

"Herrliche"나 "Herrlichste" 사실 큰 차이 없지요. 다만, 알렉스 로스는 가수가 노래 부르기에는 "Herrliche"가 낫다고 논평했습니다.

2009년 8월 16일 일요일

2005.09.25. 《발퀴레》 - 게르기예프 / 마린스키 극장 오페라단

발퀴레 Die Walküre - 마린스키극장 오케스트라/오페라단
9월 25일(일) 저녁 6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지 휘 : 발레리 게르기예프 Valery Gergiev
연 출 : 발레리 게르기예프 Valery Gergiev
감 독 : 율리아 페브즈너 Yulia Pevzner
무대 디자인: 조시 티시핀 George Tsypin

보탄 : 미하일 키트 Mikhail Kit
브륀힐데 : 올가 사보바 Olga Savova
지크문트 : 올레그 발라쇼프 Oleg Balashov
지클린데 : 믈라다 후도레이 Mlada Hudoley
훈딩 : 게네디 베주벤코프 Gennady Bezzubenkov
프리카 : 스베틀라나 볼코바 Svetlana Volkova
게르힐데 : 리아 셰브초바 Lia Shevtsova
오르틀린데 : 루드밀라 카시아넨코 Liudmila Kasianenko
발트라우테 : 나덴자다 세르뒤크 Nadezhda Serdiuk
슈베르틀라이테 : 루드밀라 카누니코바 Liudmila Kanunikova
헬름비게 : 타티아나 크라브초바 Tatiana Kravtsova
지크루네 : 나데자다 바실리예바 Nadezhda Vasilieva
그림게르데 : 안나 키크나드제 Anna Kiknadze
로스바이세 : 뤼보브 소콜로바 Liubov Sokolova



솔직히 말해 <라인의 황금> 공연은 약간은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더 솔직해지자면 공연을 보는 동안 온갖 독설이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한국 초연인 점을 생각해 실망스러운 부분은 최대한 잊어 버리고 장점 위주로 본 것이었다. 시차 적응도 덜 된 데다가 낮에 <호두까기 인형>을 공연한 뒤에 <라인의 황금>을 또 공연하는 강행군 때문에 단원들이 지쳤던 것이리라. 그런데 <발퀴레> 때에는 체력을 회복했는지 훨씬 나아진 소리를 들려주었고, 게르기예프는 공연장의 극악한 음향 환경에 더욱 적응을 한 듯했다.

현은 음향적 공백을 더욱 메워주었고, 특히 1막에서 선동적인 리듬을 타고 흐르는 저음 현이 좋았다. '보탄의 고별' 장면에서는 부드럽게 공연장을 휘감는 소노리티가 일품이었다. 다만, 1막 전주곡에서는 공연장 특성상 어쩔 수 없는 다이내믹의 한계를 드러냈다. 이를테면 포르테(f)에서 반 마디 만에 피아노(p)로, 다시 한 마디 반 동안 스타카토로 크레셴도 시켜서 포르테로 이어지는 등의 급박한 다이내믹의 변화는 세종문화회관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것이었다. 어쩌면 오케스트라가 무대 위로 올라가 제대로 된 편성으로 연주해도 시원찮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현의 음량 부족 문제에 대해서는 <라인의 황금> 편을 참고하라.)

1막 전주곡 마디 62부터 나오는 ☞'도너' 모티프에서는 베이스 튜바, 테너 튜바, 트롬본이 차례로 첫 음을 흐릿하게 연주했고, 트럼펫은 좀 나았다가 베이스 트럼펫에서 다시 흐려졌다. 저음 쪽의 악기일수록 이 부분을 못했는데, 아무래도 저음 악기가 완전4도 도약을 재빠르게 하기 힘든 탓이지 싶다. 마디 62에는 다음과 같은 지시가 붙어 있다. "이 주제(도너 모티프)에서 짧은 여린박(Auftakt) 음은 매우 강하고 또렷하게 들리도록 해야 한다. Bei diesem Thema (Donner-Motiv) müssen die kurzen Auftakt noten sehr stark und deutlich hörbar werden." ('도너 모티프'라는 말을 직접 사용하고 있는 점이 수상하기는 하지만, 내 추측에 지시어 자체는 바그너 자신이 붙인 것이며 모티프 이름은 편집자가 첨가한 것 같다. 도버 판(C. F. Peters, Leipzig, n.d. [ca. 1910].) 총보를 참고했다. 더 권위 있는 악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이 부분에 대해 알려주면 고맙겠다. - 나중에 붙임: 펠릭스 모틀이 붙인 지시어란다.) <라인의 황금> 때부터 도너와 관련 있는 부분이 좋지 않은 점은 유감이다. 북유럽 신화에서 도너(토르)가 차지하는 위치를 생각하면 게르기예프는 신화 연구를 게을리했다는 혐의를 벗기 힘들다.

2막 전주곡은 개인적으로 마디 54부터 마디 65까지의 팀파니 소리가 백미라고 생각하는데, 악보 상으로는 포르테(f)와 피아노(p) 사이를 오가고 있지만 다이내믹의 낙차를 더 크게 과장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뵘의 녹음 등을 들어보면 그렇게 연주하기도 한다. 특히 게르기예프에게는 이것이 연주회장의 음향 핸디캡을 메울 수 있는 좋은 방법이었을 것인데, 예상 밖으로 팀파니 주자는 정직한 음량을 고집했다. 오히려 크레셴도가 분명하지 않은 것이 불만이었다.

2막은 이번 '반지' 시리즈를 통틀어 최고였다고 할 만큼 대단했다. 특히 프리카 등장 이후부터는 프리카의 뛰어난 가창에 힘입어 빠른 템포로 극의 흐름을 완전히 움켜쥐고 관객을 몰입하게 하였다. 지루하기로 유명한 <발퀴레> 2막을 이토록 흥미진진하게 만들다니! 물론 실수도 적지 않았지만, 이들의 연주에는 그 모든 것을 사소한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마력이 있었다. 그에 비하면 <라인의 황금>을 듣고 '거장' 운운했던 것은 취소하는 것이 좋겠다. 보라, 여기에 진짜 거장이 있다!

3막도 매우 좋았고, 유명한 3막 전주곡 '발퀴레의 기행'에서는 금관과 타악기만을 앞세우기보다는 목관 악기의 회오리바람을 놓치지 않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보탄의 고별' 장면에서는 템포가 좀 빠르긴 했지만 역시 음반으로는 절대로 느낄 수 없는 현장의 감동이 있었다. 후반부로 갈수록 감정이 격해져서 "내 창 끝을 두려워하는 자는 이 불을 뚫고 들어가지 못하리라! Wer meines Speeres Spitze fürchtet, durchschreite das Feuer nie!" 이후부터는 차분한 감상이 불가능해질 정도였는데, 심지어 막이 내리기 시작하자마자 성급하게 박수가 터져 나올 때(많은 사람이 지적했지만 이것 참 문제다.)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나도 모르게 박수를 따라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 멈추었을 정도였다.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호흡은 거칠어졌으며 가슴은 요동치고 다리는 후들거리는 것을 겨우 수습하고 밖으로 나간 다음, 지인들과 함께 오늘 공연이 얼마나 대단했는지에 대해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듣자 하니 <라인의 황금> 때 실망해서 <지크프리트>와 <신들의 황혼> 표를 팔아버렸거나 또는 처음부터 <발퀴레> 표만 샀던 사람들이 이날 공연이 끝나고 나머지 표를 구하느라고 난리가 났던 모양이다.)

보탄 역의 미하일 키트는 <라인의 황금>에서 보탄을 맡았던 예프게니 니키틴보다 음색이 더 깊이 있었고 특히 여린 음의 표현력이 뛰어났지만, 전체적으로는 오히려 니키틴보다 못했다. 강력한 프리카에게 혼쭐나서 쩔쩔매는 듯한 모습은 오히려 극과 어울리기도 했다. ☞사무엘 윤과 비교하자면 지난 2004년 11월 12일 연주회에서의 사무엘 윤이 훨씬 잘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프로필을 보니 역시 바그너 경력이 없단다. 이런 가수가 대뜸 보탄 같은 큰 역할을 맡은 것이 대단한데, 이 점을 고려하면 사실은 매우 잘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보탄을 물리친 '아줌마'의 모습을 보여준 프리카 역의 스베틀라나 볼코바는 <라인의 황금>에서 프리카를 맡았던 바로 그 사람이다. 전날 공연에서도 심상치 않더니 이날에는 완전히 주연급으로 내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고음과 저음, 포르테와 피아노의 교차가 민첩하고 시원시원했으며, 오케스트라와 상호작용하여 긴장감을 높여나가는 솜씨가 굉장했다. 프로필을 다시 보니 아직 극장 내에서 주역 가수로 완전히 인정받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은데, 앞으로 큰 성장을 기대해도 좋겠다.

지클린데 역의 믈라다 후도레이도 만만치 않았다. 볼코바에 비하면 부드러웠지만 은근히 힘있는 목소리였고, 앞으로 강성 소프라노로 거듭난다면 브륀힐데도 못할 것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소리보다 더 마음에 들었던 것은 외모였는데, 특히 몸매가 매우 뛰어났다. 2막에서 흐트러진 자세로 쓰러져 있을 때에는 옷이 위로 말려 올라가 뛰어난 다리맵시를 자랑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크문트가 괘씸하게도 슬쩍 다가가서 옷자락을 내리더라. 어우, 야아~!) 프로필을 보니 역시 살로메 역을 맡은 적이 있단다. 일곱 베일의 춤을 추면 얼마나 멋질까! (험험... 정신 차리자.) 그밖에 구트루네 역과 젠타 역을 맡은 적이 있단다.

지크문트 역의 올레그 발라쇼프는 주연치고는 약간은 실망스러웠다. 듣자 하니 러시아처럼 햇볕이 부족한 곳에서는 테너가 나오기 힘들고 대신 뛰어난 베이스가 많이 나온다고 한다. 프로필에 따르면 바그너 경력이 없는 모양인데 단번에 이렇게 큰 역할을 맡은 것만 봐도 그렇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사실 대단한 열연을 한 것으로 좋게 봐주는 것이 좋겠다. 실연으로 큰 실수 없이 역할을 해낸 것만으로도 칭찬받아 마땅하다 하겠다. 다만 "벨제! 벨제! Wälse! Wälse!" 부분에서 호흡량이 음반으로 들을 수 있는 것보다 1/3에서 1/5 정도밖에 되지 않았던 것이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아 벨제!,' '아 노퉁!' 등과 같이 불필요한 선행음(Anticipation)을 곧잘 사용한 것인데, 선행음의 남용은 음악을 유치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므로 좋지 않은 습관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버거운 역할을 맡느라 몹시 힘든 마당에 '아' 같은 유성음(voiced sound)으로 발성을 시작하는 것은 좋은 전략이기도 하므로, 이렇게라도 해서 역할을 완수할 수 있다면 오히려 잘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노래하다 지쳐서 쓰러지거나 목이 망가지기라도 했다면 얼마나 큰 망신이겠는가?

브륀힐데 역의 올가 사보바는 <신들의 황혼>의 발트라우테이기도 하다. 프리카나 지클린데 못지않게 잘했지만, 메조소프라노라서 저음이 강한 대신 고음이 약한 것은 약간은 아쉬운 점이기도 했다. '호요토호!'가 그랬고, 특히 옥타브 도약으로 '하이 C'를 내야 하는 부분에서는 포르타멘토를 사용해 억지로 짜내는 것이 흠이었다. 바그너 경력은 없단다.

훈딩 역의 게네디 베주벤코프는 <라인의 황금>과 <지크프리트>의 파프너 역이기도 했다. 역시 강력한 초저역이 대단했으며, 이 점에서는 '반지' 시리즈의 출연진 가운데 최고라고 할 만했다. 발음에 러시아어의 냄새가 유난히 짙은 것은 야만적인 훈딩을 표현하는 데에는 장점으로 작용하기도 했으나, 원론적으로는 단점이라 하겠다. 그런데 이 사람이 하겐 역의 알렉세이 탄노비츠키로 잘못 알려지는 바람에 <신들의 황혼>에서 '진짜 탄노비츠키'를 만나기 전까지 '저 사람이 하겐 역을 잘할까?' 하는 우려가 있었으며, '진짜 탄노비츠키'를 본 사람들은 오히려 대타로 오인하기도 했다.

게르힐데 역의 리아 셰브초바와 헬름비게 역의 타티아나 크라브초바는 힘을 아낄 이유가 없는 만큼 '호요토호!'에서 깔끔하고 힘 있는 고음 처리를 했다. 특히 타티아나 크라브초바는 옥타브 도약 '하이 C'에서도 올가 사보바 같은 포르타멘토 없이 시원하게 내질렀다. 다른 발퀴레도 '올인'(또는 'Now or never!')의 태도로 열심히 불렀다.

<라인의 황금> 때 누워 있던 석상들은 일어서 있고 등에 날개가 달리는 등 위압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다. 나는 이것을 보고 역시 <신세기 에반게리온>에서 에바 1호가 변한 괴물을 연상했는데, 그 원형은 인도 신화에 나오는 파괴와 창조의 신 '시바'라고 한다.

<신세기 에반게리온> © 가이낙스


2005년 10월 4일 씀.


정보공유라이선스

김원철. 2005.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2009년 8월 10일 월요일

바그너 한글 대본 모음

《연애금지》 (Das Liebesverbot) 한글 대본 (번역: 류지선, 출처: 바그네리안)
《리엔치》 (Rienzi) 한글 대본 (번역: 류지선, 출처: 바그네리안)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Der fliegende Holländer) 독한 대본
    (번역: 구훈, 출처: 고클래식)
《탄호이저》 (Tannhäuser und der Sängerkrieg auf Wartburg) 독한 대본
    (번역자 미상,  출처: 고클래식)
《로엔그린》 (Lohengrin) 독한 대본 (번역: 구훈,  출처: 고클래식)
☞ 《니벨룽의 반지》 (Der Ring des Nibelungen) 독한 대본
    (번역자 미상, 출처: 고클래식)
    - 《라인의 황금》 (Das Rheingold)
    - 《발퀴레》 (Die Walküre) 1막, 《발퀴레》 2-3막
    - 《지크프리트》 (Siegfried) 1막, 《지크프리트》 2-3막
    - 《신들의 황혼》 (Götterdämmerung) 서막-1막, 《신들의 황혼》 2-3막
※ 《니벨룽의 반지》 대본은 엄선애가 번역한 단행본을 추천합니다. ☞ 故 박원철님 서평
《베젠동크 가곡》 (Wesendonck Lieder) 독한 대역본
    (번역: 유지원,  출처: 바그네리안)
《트리스탄과 이졸데》 (Tristan und Isolde) 독한 대본
    (번역: 허정윤,  출처: 고클래식)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어》 (Die Meistersinger von Nürnberg) 독한 대본
    (번역: 김보근,  출처: 고클래식)
《파르지팔》 (Parsifal) 독한 대본 (번역자 미상,  출처: 고클래식)

※ 저작권은 번역자에게 있습니다. 번역자가 확실한 파일은 김원철이 번역자에게 허락을 받고 퍼왔으며, PDF 파일로 바꾸어 올렸습니다. 번역자를 알 수 없는 파일은 외부 링크만 걸어두었습니다.

2009년 8월 6일 목요일

바그너 길라잡이

리하르트 바그너
(Wilhelm) Richard Wagner (1813. 5. 22 라이프치히 - 1883. 2. 13 베네치아)
 

▶  개요: 위키피디아 검색 결과
▶  바그너 관련 용어

▶  서평: 안인희, 『게르만 신화·바그너·히틀러』 (서울: 민음사 2003)
▶  바그너 색깔론
▶  바그너를 처음 접하는 분께
▶  바그너를 제법 들어보았으나 재미가 없다고 느끼는 분께
▶  바그너 대본 자료실
▶  바그너 주요 작품과 추천 음반
▶  바그너 디스코그래피 (고클래식)
▶  바그너 디스코그래피 (http://www.wagnerdiscography.com/)
▶  바이로이트 사운드
▶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표 구하는 법
▶  바그네리안 김원철의 바이로이트 여행기
▶  바그너 주요 작품 연구

☞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Der fliegende Holländer)

☞ 《탄호이저》 (Tannhäuser (und der Sängerkrieg auf Wartburg))

☞ 《로엔그린》 (Lohengrin)

+ 《트리스탄과 이졸데》 (Tristan und Isolde)

+ 《니벨룽의 반지》 (Der Ring des Nibelungen)

☞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어》 (Die Meistersinger von Nürnberg)

+ 《파르지팔》 (Parsifal)

바깥 고리

2006년 12월 11일 월요일

발퀴레 1막 전주곡의 '바람소리'


© Dover

첼로와 콘트라베이스가 스타카토 음형을 연주하는 동안 제2 바이올린과 비올라가
열심히 긁어대면서 피아노에서 포르테로 급박한 크레셴도를 준 다음 다시 피아노로
재빨리 돌아가는 식의 음향이 마치 바람소리처럼 들린다.

사진은 도버 판
악보. Egon Voss와 Hartmut Fladt의 비평보고서(비평판 악보 전집에 있다)에 따르면
마디 3과 이후의 크레셴도 표시는 p 기호 바로 다음에 오면 안 된단다. 마디
1처럼 뜸을 좀 들였다가 크레셴도를 시작하라는 얘기 같은데,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그래야 할 것 같다. 혹시 엉터리 독일어 실력으로 잘못 이해했을까 봐 원문을 적어둠:

Crescendo-Gabel
in St aus Versehen unmittelbar nach p gesetzt; nachträgliche Korrektur
nicht ausgeführt und damit die Differenzierung zwischen dem hier nach p
verzögerten Anschwellen gegenüber dem unmittelbaren in den T. lf,
3f in PE vernachlässigt; siehe auch T. 17f, T. 19f


2004년 11월 27일 토요일

발퀴레 중 '보탄의 이별' 음반 추천

제목 : '보탄의 이별' 음반 추천
등록자 : 김원철 등록일 : 2004-11-10 11:16:54 PM
조회 : 67

김문경님의 영상물 소개를 보고 생각나서 한 마디 보탭니다.

요번에 사무엘윤이 부를 발퀴레 중 '보탄의 이별' 장면 음반으로는

크나퍼츠부쉬 판의 한스 호터, 뵘 판의 테오 아담,

카라얀 판의 토마스 스튜어트 등 쟁쟁한 명연들이 많지만

제가 소개해 드릴 음반은 한 장으로 해결되는 판입니다. ^^

음반 자켓에 대한 원철이의 간단평: 키메이커의 지령을 받고 있는 스미스 호터 요원과 살찐 트리시티 닐손 요원 ㅡ,.ㅡ

Wagner - Opera Arias & Duets

LEOPOLD LUDWIG

PHILHARMONIA ORCHESTRA

BIRGIT NILSSON(SOPRANO)

HANS HOTTER(BARITONE)

TESTAMENT 1958 ADD

01. TANNHAUSER: ACT II-DICH,TEURE HALLE,GRUB ICH WIEDER(ELISABETH`S GREETHING)
02. DER FLIEGENDE HOLLANDER: ACT II-JOHOHOE!JOHOHOE!(SENTA`S BALLD)-WITH CHORUS
03. DER FLIEGENDE HOLLANDER: ACT II-WIE AUS DER FERNE
04. LOHENGRIN: ACT I-EINSAM IN TRUBEN TAGEN(ELSA`S DREAM)
05. DIE WALKURE-ACT III,SCENE 3: WAR ES SCHMAHLICH
06. DIE WALKURE-ACT III,SCENE 3: DEINEN LEICHTEN SINN LAB DICH DENN LEITEN
07. DIE WALKURE-ACT III,SCENE 3: DU ZEUGTEST EIN EDLES GESCHLECHT
08. DIE WALKURE-ACT III,SCENE 3: LEB WOHL,DU KUHNES,HERRLICHES KIND!(WOTAN`S FAREWELL)
09. DIE WALKURE-ACT III,SCENE 3: LOGE,HOR!LAUSCHE HIEHER!(MAGIC FIRE MUSIC)

아시는 분은 아시는 유명한 음반이죠? 음질은 생각보다 훨씬 좋습니다. 연주 끝내줍니다. >_<

근데 이 음반 요새 쉽게 구할 수 있는지 모르겠네요. 매장에 없으면 약만 올리는 셈인가요? ㅡ,.ㅡ

- 숙제 하면서 머리 쥐어뜯다 말고 딴 짓 하고 있는 원철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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