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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9월 19일 화요일

바그너: 탄호이저 서곡

 탄호이저(Tannhäuser)는 13세기 독일의 기사이자 음유시인(민네징어)이었다. 실존 인물인 그의 행적은 허무맹랑한 설화와 뒤섞여 있는데, 오페라 ‹탄호이저›는 이 설화를 바탕으로 한다. 작품의 줄거리 중 서곡에 해당하는 부분은 다음과 같다. 

독일 튀링겐에 있는 회르젤베르크 산에는 중세 유럽의 시각에서 '이교도'의 신인 베누스(비너스)가 살고 있다. 베누스의 곁에는 그가 거느리는 미(美)의 여신들과 요정들, 큐피드들, 그리고 베누스의 총애를 받았던 탄호이저가 있다. 근처에는 젊은이들이 술을 마시고 있으며 요정들이 그들을 희롱한다. 바쿠스 신의 여사제들이 나타나 그들을 광란의 쾌락에 빠트린다. 사티로스와 판이 나타나 광란에 가세한다. 보다 못한 미의 여신들이 잠자고 있던 큐피드들을 깨운다. 큐피드들이 전투 대형으로 날아올라 '정신 차려' 화살을 날리며 사태를 진압한다.

탄호이저 서곡은 3막에서 순례자들이 부르는 찬가풍 합창 선율, 탄호이저가 베누스를 찬양하는 행진곡풍 선율, 바쿠스의 사제들이 일으키는 광란('바카날') 선율 등을 음 소재로 한다. 바카날 대목은 바그너가 파리 초연을 앞두고 발레를 추가하면서 사실상 새로 작곡한 것으로, 1845년 드레스덴에서 초연된 ‹탄호이저›가 바그너의 초기 오페라 양식에서 중기 양식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작품이라면, 1861년 '파리 판본'의 ‹탄호이저›는 바그너 후기 양식이 반영되어 있으며 서곡 이후로도 화성 진행과 관현악법 등에 많은 수정이 이루어졌다.

2021년 8월 13일 금요일

피에타리 인키넨의 '바이로이트 사운드'

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글입니다.


피에타리 인키넨은 도이치 방송교향악단 음악감독입니다. 2009년에 서울시향을 객원지휘한 일이 있고, 내년 1월부터 KBS교향악단 음악감독을 겸직할 예정입니다. 지난해에는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바그너 4부작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 전곡을 지휘할 예정이었다가 코로나-19 때문에 페스티벌이 전체 취소되어버려서, 그 대신 지난 7월 개막한 2021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반지’ 4부작 중 ’발퀴레’만을 일단 먼저 공연하게 되었습니다.

실황 중계방송 녹음을 들어보니 인키넨의 ‘발퀴레’는 꽤 훌륭했습니다. 멀티채널 녹음이라 현장감이 특히 좋더군요. 그런데 이날 연주는 호불호가 좀 갈렸던 모양입니다. 한두 명이지만, 관객에게 인사하는 인키넨에게 야유를 퍼붓는 사람이 있었다던데요. 제 지인 중 한 분은 인키넨의 ’지크프리트’ 3막 발췌 음반과 견주며, 아직 인키넨이 바이로이트 페스티벌하우스에 적응하지 못한 듯하다고도 하더군요.

바이로이트에서 처음 지휘하는 사람은 독특한 음향 때문에 헤매기 쉽다고들 하지요. 실제로 공연 중 삐걱거리던 순간이 제법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에는 단지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호불호의 진짜 원인은 오케스트라 편성 때문이었을 거예요.

‘발퀴레’ 실황 음원과 ‘지크프리트’ 음반은 연주 단체와 녹음 장소와 녹음 장비가 다르고, 각각 5채널 오디오와 2채널 오디오로 녹음의 정보량도 달라서 나란히 비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냥 귀로 들리는 소리만으로 판단하자면 ’발퀴레’가 ’지크프리트’보다 오케스트라 규모가 좀 더 작은 듯하더군요. 사실은 ’지크프리트’도 작은 편성인 듯했고, 그래서인지 인키넨 음반을 게오르그 숄티가 지휘한 1960년대 명반과 견주며 소리의 에너지 밀도가 낮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20세기에는 악보에 지시한 것보다 실제 오케스트라 편성을 부풀리는 관습이 있었지요. 게오르그 숄티의 바그너 녹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에는 악보 지시와 작곡 당시의 관습 그대로 연주하는 것이 유행이고, 인키넨의 바그너 해석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작은 편성으로 연주하면 여러 장점이 있고, 이를테면 개별 성부의 매력을 더 잘 살릴 수 있지요. 인키넨은 때로 목관악기 소리가 두드러지는 ’식물성 사운드’를 바그너 음악에서 살려내기도 하더군요. 물론 금관악기가 울부짖을 때는 필요한 만큼 ’근육질’로 변하기도 했습니다.

바이로이트 극장은 바그너 음악에 최적화되어 ’바이로이트 사운드’라고 칭송하는 말이 있는 멋진 곳입니다. 그런데 제가 그곳에 여러 차례 가본 경험으로 말하자면, 다른 오페라 극장과 견주어 음량이 좀 작은 것이 바이로이트 극장의 단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뒷자리에 앉아도 들릴 소리는 다 들리지만, 오케스트라 피트에 ’천장’이 있어서 소리가 무대 벽에 한 번 반사된 다음에야 객석으로 전달되는 구조 때문에 직접음이 거의 들리지 않고 소리가 좀 멀게 느껴지는 점이 장점이자 단점인 듯해요.

문제는 인키넨의 바그너가 실제 바이로이트 극장에서 어떻게 들렸을까 하는 겁니다. 오케스트라 편성을 부풀리는 것은 음량을 키우기 위해서인데, 소리에 ‘기름기’를 빼기 위해 편성을 줄였다면 음량 또한 줄었겠지요. 인키넨에게 야유를 퍼부은 몇몇 사람은 사실 ’음량’에 실망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인키넨은 내년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때 타협을 하게 될까요? 인키넨의 ’바이로이트 사운드는’ 어떤 변화를 맞게 될지 궁금합니다.

피에타리 인키넨이 음악감독으로 있는 도이치 방송교향악단은 옛 이름이 ‘자르브뤼켄 방송교향악단’이었던 단체로 정명훈 지휘자가 음악감독으로 있었던 바로 그곳입니다. 그 시절 정명훈 지휘로 윤이상 교향곡 3번을 세계초연한 악단이기도 하지요. 마침 내한공연이 연말에 예정되어 있어서 그때쯤에는 제발 전염병이 잠잠해지기를 희망해 봅니다. 통영 공연은 12월 19일이고, 프로그램은 브람스 교향곡 1번, 손열음이 협연하는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3번, 그리고 바그너 오페라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중 서곡입니다. (쉿! 앙코르로 바그너 곡을 더 연주할지도 몰라요!)

2012년 9월 22일 토요일

안토니 비트, 서울시향, 바그너 《로엔그린》 1막 전주곡

연주회 있는 날에는 웬만하면 휴가를 냅니다. 그런데 어제는 직장 일정이 메롱이라 휴가를 못 냈어요. 늦지 않게 퇴근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는데다가, 온종일 일 때문에 시달리느라 너무 피곤해서, 그냥 포기하고 집에서 쉬어야겠다고도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예술의전당까지 부랴부랴 달려간 까닭은 안토니 비트가 이끌어내는 음악을 현장에서 듣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연주회 시작할 때쯤에 갑자기 생각했습니다. 오늘 프로그램이 뭐였더라?

첫 화음이 들려올 때 '아!' 했습니다. 바그너 《로엔그린》 1막 전주곡.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와 달리 현악기만 16성부쯤 될 만큼 몹시 복잡한 곡입니다. (정확히 몇 성부였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악보 확인하기는 귀찮아요. ^^) 그래서 저는 이 곡을 실연으로 제대로 연주하는 꼴을 본 일이 없어요. 웅성웅성하다가 갑자기 우르릉 쾅! 하고는 다시 웅성웅성하다 말고 흐지부지 끝나기 일쑤죠. 연주회 첫 곡으로 '대충 때우는 곡'쯤으로 취급받으니 연습을 많이 하지도 않겠죠.

그런데 이날 연주를 들으면서 전율이 일었습니다. 성부 하나하나가 마치 햇빛을 받아 일렁이는 물결처럼 반짝반짝합니다. 클라이맥스를 지나서도 곧바로 김이 빠져버리지 않고, 어찌 들으면 처연한 화음을 집요하게 살려냅니다. 흠잡을 곳을 찾자면 제법 있었지만, 실연으로 이만큼 연주했으면 다 용서됩니다. 그런데 뒤이어서 3막 전주곡이 나오니 오히려 좋은 분위기가 깨지더군요. 3막 전주곡도 잘하기는 했지만, 1막 전주곡에서 여운을 남기며 끝나 줘야 할 것 같았습니다.

《베젠동크 가곡》을 협연한 예카테리나 구바노바는 지난번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 브랑게네 역을 맡았던 사람이죠. 대단한 실력을 그때 충분히 확인했으니 어제는 딱 기대한 만큼 듣고 왔습니다. 러시아 사람인데 독일어 딕션이 참 좋아요. 그래서 제 엉터리 독일어 실력으로도 원어 가사를 제법 곱씹게 되었는데, 《트리스탄과 이졸데》에도 나오는 중요한 단어들이 음악과 함께 머릿속에서 조각 맞추기가 되면서, 특히 제2곡 〈Stehe still!〉(멈추어라)가 제가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야한 곡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를테면 (er)trinken, versinken, erkennt, 뭐 이런 단어들이 맥락을 알고 보면 참 야한 말들이죠.

안토니 비트, 우리나라에도 제법 널리 알려졌지만, 그래도 명성이 실력에 한참 못 미치는 지휘자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분이 동유럽 출신이라서 차별받는 게 아닌지 의심합니다. 실력만 보면 베를린필 음악감독으로 가도 이상할 게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이날 연주는 솔직히 그 정도는 아니었어요. 《베젠동크 가곡》에서나 《영웅의 생애》에서나 서울시향의 기본 실력 이상을 끌어내지는 못하는 느낌. 서울시향이 연습을 많이 못 했다고 하던데 그 때문인지, 아니면 안토니 비트 실력이 결국 그만큼이었는지는 좀 두고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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