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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 9일 수요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표 구하는 법

1. 개인 자격으로 표를 신청하는 방법


독일 바그너 협회에 우편으로 신청해야 한다더군요. 인터넷이나 전화 따위로는 절대로! 안 된답니다. (나중에 고침: 2011년부터, 그러니까 2012년 축제 표부터는 인터넷으로도 신청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신청하고 한 10년쯤 기다리면 차례가 돌아온다는데, 저는 정말 11년 기다려 표 구했다는 사람 바이로이트에서 봤습니다. 진짜인지 구라인지...;;

2. 한국 바그너 협회에 가입하고 표를 신청한다 ― 2012년부터 무효


독일 바그너 협회나 한국 바그너 협회나 표 때문에 생긴 단체라더군요. 독일 바그너 협회에서 각국 협회에 표를 나눠주기 때문에 바그너 협회에 신청하는 게 가장 좋습니다. 그러나 다들 바이로이트에 가고 싶어해서 그 해 바로 표를 구하기는 쉽지 않다고 합니다. 운 좋으면 다른 회원들이 시간 안 맞아서 못 가는 표를 쉽게 얻을 수도 있겠지만요. 바그너 협회 가입 절차는 저도 회원이 아니라 잘 모르겠습니다.

※ 나중에 붙임: 2012년부터는 각국 바그너 협회에 표를 할당하지 않기로 했다는군요. 지난 2011년 6월에 독일 하원이 공짜표를 줄이고 표값을 낮추라고 요구한 일과 관련 있는 듯합니다. 이번 일은 공짜표 줄이는 일이나 표값을 낮추는 일과는 관련이 없지만, 바이로이트에 대한 색안경을 줄이는 효과는 있겠네요.

3. 바이로이트 극장 출연진에게 부탁하는 방법


출연진에게 표가 몇 장씩 나온다고 합니다. 말만 잘하면 그거 한 장쯤 얻을 수도 있지 싶네요. 연광철 선생과 사무엘 윤 선생이 요즘도 바이로이트에 꾸준히 출연하고 계시니 친분이 없더라도 용기를 내어 연락해 보세요. 잘만 하면 본 공연이 아니더라도 게네랄프로베(Generalprobe)라고 해서 실제 공연과 똑같이 하는 최종 연습을 참관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사무엘 윤 페이스북: http://www.facebook.com/profile.php?id=100000626343969
사무엘 윤 홈페이지: http://cafe.daum.net/samuelyoun  (사무엘 윤 아이디는 samy입니다.)

4. 암표상을 이용하는 방법


저는 이쪽으로는 잘 모르겠지만, 독일 eBay 등을 통해 비싸게 매매된다더군요. 돈 많으신 분께 추천. 단, 이것도 위험 부담이 있습니다. 표에 원래 주인 이름이 버젓이 쓰여있어서 암표라는 사실을 들킬 수도 있다고 합니다.

5. "Suche Karte" 신공


마지막 방법은 축전 기간에 바이로이트에 죽치고 있으면서 "Suche Karte"(표 구함) 종이를 열심히 들고 서 있는 겁니다. 극장이 있는 언덕을 올라가면 왼쪽에 택시가 서는데, 차에서 내리지 않고 창문으로 표를 팔고 바로 집에 가는 사람들 더러 있습니다. 운이 좋아야 표를 구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지만, 성공 사례가 분명히 있고 저 또한 이걸로 성공했습니다. 틸레만이 지휘하는 새 반지 프로덕션이라 표 구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었는데도 이런 수가 생겼단 말이죠.

저는 학회 때문에 이탈리아에 갔다가 끝나고 무작정 바이로이트로 직행해서 바이로이트로 가는 기차 안에서부터 "Suche Karte" 피켓 들고 한 바퀴 돌았습니다. 사람들이 웃다가 쓰러지더군요. 모르는 사람은 기차표 구하는 줄 알기도 하더라는...;; 그 때 저를 본 귀인-_-이 자기 엄마한테 그 얘기를 했나 봅니다. 그 아주머니가 극장 앞에서 저를 발견하고는 표를 싸게 넘기더군요.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참고하세요:


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img/b/R29vZ2xl/AVvXsEgsRdBVI_VmarZlNyfrM1xXe5rD92D0YzLdXNHc27j3-wSr5WT8bg0mpPL8-ieLV_sHUA3irzaoc0ilo3v5J7KFb6f91OJVGsCZMmE8qNQGPRciAA_24TEWPimYpa4wfv38F-Lyno9dKK8/w600/

김원철이 그때 들고 있었던 전자잉크 이북리더. 일단 튀니까 표 구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대신 튀는 만큼 쪽팔린다. -_-;


6. 2011년부터 인터넷 신청을 받습니다!


2011년 9월 15일부터 2012년 축제 표 신청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온라인 신청 가능한 공연이 1회뿐이지만, 그나마 바이로이트 역사상 처음입니다. 다만, 온라인 결제는 안 되고, 그냥 신청만 받습니다. 우편으로 신청하는 절차가 조금 편리해졌다는 대목에서 그냥 만족하기로 합시다. (…)

나중에 붙임: 2013년 10월에 2014년 공연 티켓 일부를 결제까지 온라인으로 진행했습니다. 표는 90분만에 매진됐다고 합니다.


※ 주의!!!

표 구하기 못지않게 숙소 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되도록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그날 고생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무작정 가볼 작정이라면 여행자 안내소에서 숙소 안내 책자를 받아서 한 군데씩 전화 해보세요. 극장에서 제법 떨어진 곳을 공략해야 그나마 가능성이 있습니다.

2011년 12월 31일 고침.
바이로이트 또 가고 싶다!

정보공유라이선스 김원철. 2008.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2009년 8월 10일 월요일

《트리스탄과 이졸데》 음반 리뷰: 뵘-바이로이트 1966 DG

지난 2003년 ☞프리챌 바그네리안(옛 하이텔 바그네리안, 지금은 ☞네이버 바그네리안) 게시판에 올렸던 글입니다. 2004년에 제 홈페이지로 가져오면서 ☞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를 적용했습니다.

옛날 글 다시 보니 참 부끄럽네요. 그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올립니다. ^^

앗, 이제 보니 제가 ☞'이졸데 리듬'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지어내 쓴 글이 바로 이 글이네요. ^^y


DG
[3 CD] 449772-2

바그너: "트리스탄과 이졸데"
WAGNER: Tristan und Isolde

Wolfgang Windgassen(Tristan)
Birgit Nilsson(Isolde)
Martti Talvela(Konig Marke)
Eberhard Waechter(Kurwenal)
Christa Ludwig(Brangane)

Karl Bohm (conductor)
Chor und Orchester der Bayreuther Festspiele


 녹음: 1966/08 Stereo, Analog
장소: Bayreuther Festspielhaus, Germany
 

 
총 리뷰 갯수: 1

평점:

 


고클래식에서 음반 정보를 퍼왔습니다.




트리스탄과 이졸데

칼 뵘



음악을 듣는 것은 다른 일을 하면서 배경음악으로만 즐기지 않고 집중감상을 한다면

참으로 시간을 많이 들여야 하는 일종의 호사 취미인 것 같습니다.

특히나 바그너는 음악 이외의 텍스트를 이해하지 않으면 그 맛을 충분히 알기

어렵기 때문에 더더욱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동안 공부 욕심을 내느라 음악 감상에 투자할 여유가 많지 않아서

바그너는 그 음향만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자연히 바그너보다는 말러의 교향곡을

더 많이 듣게 되었지요. 이제 대학 생활의 마지막 학기가 끝나고 백수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이 한가한 시절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겠지만 이 기회를 빌어서

바그너를 집중 감상해보기로 했습니다. 원철이의 바그너 집중감상 시리즈 그 첫 번째는

트리스탄과 이졸데입니다. 바그너 최고의 문제작이자 퇴폐성의 정점인 이 작품은

수많은 마에스트로들로 하여금 저마다 명반을 낳게 하였고, 또 수많은 사람이

훌륭한 음반 평들을 남겼을 것입니다. 저의 감상 초점은 객관성에 대한 강박을 지양하고

제가 좋아하는 부분들 위주로 지극히 주관적이고 편파적으로 듣는 것입니다.

제가 다루는 연주들은 아래의 다섯 종입니다.



Bohm / Nilsson, Windgassen / Bayreuth 1966 (DG)

Furtwangler / Flagstad, Suthaus / Philharmonia Orchestra London 1952 (EMI)

Kleiber / Price, Kollo / Staatskapelle Dresden 1982 (DG)

Goodall / Gray, Mitchinson / Welsh National Opera 1981 (DECCA)

Metha / Meier, West / Bayerische Staatsoper 1998 (스펙트럼 DVD)



가장 먼저 뵘의 연주에 대해 쓰겠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이제까지 들어본

어떤 연주보다도 이 연주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1막



처음 세 개의 음을 첼로가 연주할 때 크레셴도의 폭이 매우 큽니다. 여기서부터

뵘의 스타일이 나타나는데, 음악에 의해 유발되는 감정의 동요가 크레셴도의

폭만큼 큽니다. 이어서 다소 성급하게 터져 나오는(사실은 이것도 음향효과가

주는 착각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저 유명한 '트리스탄 화음'은 제가 이제까지

들어본 어떤 연주보다도 훌륭합니다. 다른 연주에 비해 목관이 약간 '오바'를 해서

확 터져 나오는 것이 특이한데, 충분한 크레셴도에 이은 신기한 음향이 매우

좋습니다. 비슷한 멜로디가 서서히 커지면서 반복되다가 마침내 터져 나오는

'트리스탄의 번민' 모티프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게 합니다. 이후로 서서히 진행되는

크레셴도와 클라이맥스에서의 오케스트라 총주는 몸서리 치도록 강렬합니다.

말러를 좋아하는 저로서는 뵘의 연주 스타일에 대해 잘 모르는데(뵘이 말러 녹음을

좀 남겼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죠), 이 연주를 듣고 나니까 뵘이 진정한 거장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전주곡에 이어지는 젊은 선원의 노래는 무심하게 물살을 헤치고 나아가는

배를 떠올리게 합니다. 갈매기 한 마리가 끼룩끼룩 날아다니는 것 같습니다.

마침내는 꼬꼬마 시절 포항의 바닷가 방파제에서 놀던 기억을 떠올리고야

맙니다. 거기서 가사 뜻도 모르고 부르던 노래가 생각납니다.



    저 머나먼 바다 건너서,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수가 누군가 했더니 페터 슈라이어네요.



이졸데의 "Brangäne, du? Sag', wo sind wir?" 직후부터 나오는 현의 멜로디는

흡사 파도를 헤치고 나아가는 배의 느낌을 실감나게 전해주는데, 사실은

젊은 선원의 노래에서부터 나오는 이 멜로디를 저는 1막에서 특히 중요한 요소로

생각합니다. 거대한 바다에 일렁이는 물결과 바람에 몸을 맡기고 떠밀려가는

배의 양상은 흡사 운명의 물살에 떠밀려가는 등장인물의 처지와도 같습니다.

꼭 이 멜로디가 아니더라도 뵘의 연주에서는 1막 전체가 물결이 일렁이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특유의 리듬은 묘하게 도취적인 느낌을 주는데, 2막과 3막에서는

이것이 또 다르게 변형되어 나타납니다.



"Hort meinen Willen, zagende Winde!"에서부터는 이졸데의 무시무시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비르기트 닐손의 노래가 매우 훌륭합니다.

닐손에 비하면 브랑게네 역의 크리스타 루트비히는 목소리가 좀 가늘군요. ^^

브랑게네의 하이라이트는 2막에서 있을 것이지만, 1막에서도 잘합니다.



쿠르베날이 마침내 트리스탄을 이졸데 앞으로 데려왔을 때 나오는 분노한 이졸데의

모티프(파 솔 시b 라b - 미b 미b 레  레b 레b 파b)는 얼음장과도 같이 싸늘한 눈빛을

연상시키는데, 바이올린의 고음을 좀 더 강조했으면 더욱 좋았겠습니다.



트리스탄이 약을 마시는 장면에서, 이졸데의 "Verrater! Ich trink' sie dir"

부분에서 관현악이 발작적으로 울부짖습니다. 이것은 뵘이 진정한 괴력을 발휘하기

시작함을 예고하는 것으로, 전주곡의 재현에 이어 점점 빠르게 몰아치는

극의 진행이 엄청납니다. 서서히 힘을 더해간 '운명의 물살'은 국왕 만세를 외치는

대목에서는 거대한 파도로 변해있습니다.





2막



1막 전주곡에 이어 우리는 바그너의 위대한 음향효과를 또 한 번 체험하게 됩니다.

1막에서의 충격이 그 화성에 있었다면, 2막에서 놀라운 효과를 내게 하는 것은

그 리듬입니다. 베이스 클라리넷이 상승하는 멜로디를 연주할 때(조급한 이졸데의

동기) 제2 바이올린과 비올라는 오르락내리락하는 8분음의 셋잇단음을 연주하는데,

이때 셋잇단음 가운데 첫 음은 쉼표입니다. 이 신기한 현은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에서 볼 수 있는 음향효과과 흡사합니다. 그러나 제가 들어본 다섯 개의

음반 가운데 뵘의 것을 빼고는 모두 이것이 들릴듯 말듯 합니다. 이것이 정말로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은 베이스 클라리넷의 길게 늘어지는 '라b'와 그 직전의 리듬

때문입니다. 즉 현의 셋잇단음이 문제의 '라b' 직전에 멈추기 때문에 문제의 두 음

사이에 묘한 리듬의 불일치가 생깁니다. 베이스 클라리넷이 분명히 정상적인 리듬으로

연주했는데도 현악기들의 '방해'로 인해 반 박자 빠르게 연주해버린 것처럼 들리는데,

이것이야말로 1막 전주곡에서의 놀라운 '트리스탄 화음'에 비길 만한

'이졸데 리듬'이라 할 만합니다. 그러나 뵘을 제외한 네 명의 마에스트로들은 현 소리를

잔뜩 죽여놓음으로써 그 신비함을 거세시켜 놓았습니다. 저는 처음에 뵘이 음표 사이의

의미를 읽고 아이디어를 내어서 연주한 것이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석연치 않아

악보를 꼼꼼히 들여다보면서, 손바닥으로 박자를 쳐가면서(머리는 쥐어뜯어 가면서)

연구한 결과 뵘은 분명히 악보에 있는 그대로 연주한 것이었습니다.



전주곡에서의 신비로운 음향은 목관 악기에 의한 몽환적인 울림으로 이어집니다.

이미 제정신이 아닌 이졸데의 심리상태를 이토록 훌륭하게 표현한 것도 역시

뵘을 능가하는 녹음이 없어 보입니다. 게다가 신경질적으로 긁어대는 현은

이졸데의 심리상태의 변화에 집중하는데 최적의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이졸데와 브랑게네 역시 감각적인 관현악 반주에 걸맞게 훌륭한 노래를 들려줍니다.

"... Nacht, Zur Warte du: dort wache treu!"로 시작하는 이졸데가 불 끄는 대목에서는

1막에서 본 것과 같은 마녀(?) 이졸데의 가슴 사무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트리스탄 등장하기 직전 전주곡과 링크되는 부분에서 '이졸데 리듬'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트리스탄이 등장할 때까지 점점 빠르게 휘몰아칩니다.

마침내 트리스탄이 등장하고 두 사람의 무지막지한 고음을 확실하게 받쳐주는 뵘의

발작적인 관현악을 속이 후련하도록 즐길 수 있습니다.



"O sink hernieder"부터의 달콤한 사랑노래에서도 오케스트라는 넘실거리는 음향으로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어가면서 통상적인 사랑놀음 대신에 어둠의 그림자를 확실히

드리워 놓습니다. 어둠의 이미지는 자꾸만 높아지는 두 사람의 음계에서 섬뜩해질

정도가 됩니다.



여기에다 브랑게네의 두 차례의 아리오소는 가슴이 저리도록 아름답습니다.

바그너는 이 부분에서 영화에서나 가능할 것 같은 장면의 오버랩과 시선의 이동을

음악으로 보여주는데, 관현악은 자연스럽게 서정성을 더합니다.



드디어 '사랑의 죽음'과 링크되는 부분(So stürben wir)이 시작되면서 비독일계

지휘자가 흉내 내기 힘들 것 같은 호흡이 긴 크레셴도의 진수를 느낄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의 가수와 오케스트라가 어우러져 점점 긴장감을 더해가다가 마침내

두 사람은 자신의 존재감을 잊고 영원함(죽음)을 찬양하기에 이릅니다.



    이름도 필요 없고,

    헤어질 필요도 없으며,

    새로운 느낌과

    새로운 정열이

    끝없이 영원히,

    계속되고 느껴지며,

    우리의 가슴속에는

    불타는 사랑의 기쁨만이 계속되리라!

    (번역: 허정윤, 출처: 고클래식)


이때 현악기들의 자꾸만 높아지는 음계와 자꾸만 빨라지는 리듬은 감정의 동요를

극대화시키는 결정적인 요소입니다. 이 부분을 이토록 감각적으로 표현해낸 녹음

역시 뵘이 유일합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나타나는 마르케 왕 일당! 트럼펫이 마르케 왕의 등장을

알리고 이어 나오는 혼란스러운 리듬은 전주곡에 이은 2막의 또 하나의 묘미입니다.

뵘은 첼로와 콘트라바스의 저음을 확실히 강조하여 바그너식 음향을 배반하지

않으면서도 바이올린, 비올라와도 마치 하나의 악기처럼 일체화되어서 그 리듬의

혼란스러움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마르티 탈벨라가 부르는 마르케 왕의 모놀로그는 울먹이듯 떨리는 목소리가

조금 감동적입니다. 그러나 역시 이 부분은 약간의 감동을 대가로 긴 지루함을

참아야 합니다. -_-;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마지막 대화도 참 슬픕니다. "dem König, den ich verriet!"

부분에서 빈트가센은 감정 표현을 매우 격하게 했습니다. 이 부분은 이렇게 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오케스트라가 사정없이 휘몰아치다가 일시적으로 가라앉으면서

트럼펫 등에 의해 잠시 시선의 이동이 일어난 다음 다시 쾅! 하고 끝납니다.

사랑의 이중창 중에 나타나는 브랑게네의 아리오소와 비교할 만한 명장면입니다.

이 부분을 듣고 있으면 관객이 꽉 들어찬 오페라 무대보다는 차라리 카메라 워크가

역동적인 영화의 한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집니다.





3막



전주곡 시작 부분의 모티프는 1막 전주곡에 나타나는 사랑의 동경 모티프를 단조로

바꾼 것으로, 처음 들었을 때 1막 전주곡 못지않은 충격을 준 신기한 화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나타나는 지독한 절망의 정서를 뼈 속 깊이 스며들게 하는 데에는

극의 흐름을 이해할 필요도 없고 단지 뵘이 만들어내는 음향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뿔피리(잉글리쉬 호른) 솔로는 과거로 끝없이 침잠하여 마침내 모든 것이 정지한

듯한 느낌을 주는데, 크게 앓아 누워본 경험이 있는 사람만이 이해할 만한 정서입니다.

지독하게 가라앉은 분위기는 빈트가센의 트리스탄에서도 이어지며, 쿠르베날의

힘찬 목소리와 대조를 이룹니다.



뿔피리 소리가 바뀌는 대목에서는 악기가 트럼펫으로 바뀌어 있고, 이 때문에 멀리서

들려오는 뿔피리 소리치고는 꽤 큰 편입니다. 원래는 잉글리쉬 호른이 연주하도록

되어 있는 이 부분을 트럼펫으로 연주하기도 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사연이 있다고

합니다. 잉글리쉬 호른이라는 악기는 원래 이렇게 다이내믹한 연주를 하는 것이 여간

어렵지 않다고 합니다. 흔히 잉글리쉬 호른 하면 드보르작 교향곡 9번 "신세계"

2악장에 나오는 느릿한 민요 선율이지요. 원래의 속성이 이러한 악기로부터 팡파르와

같은 소리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바그너는 연주자에게 '트럼펫처럼 연주하라'라고

했다는군요. 그래서 경우에 따라서는 아예 악기를 트럼펫으로 바꾸기도 한답니다.

뵘과 같이 발작적인 심리의 표현에 주력하는 해석이라면 트럼펫의 큰 음량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무대 밖에서 연주할 것도 없이 오케스트라 피트에서 연주하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그렇게 되면 사실성이 너무 떨어지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뵘은

적당히 타협된 음량을 선택했습니다. 부족한 음량의 문제는 이어지는 오케스트라의

총주가 확실하게 메워줍니다. 쿠르베날의 '하이야! 하이 하하하하!'는 반전된 극의

분위기를 절정으로 끌어올리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이봐 디트리히, 자네는

나보다 한 수 아래라구!). 누군가 했더니 에버하르트 베히터랍니다. (이 사람 유명한

사람인가요? -,.-a) 뿔피리 소리가 바뀔 때부터 이졸데 등장 직전까지의 광분을

표현하는 데에는 역시 뵘에 필적할 만한 연주는 없습니다. 이것은 쿠르베날의 전투

장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졸데의 마지막 사랑의 죽음! 말이 필요 없습니다. 절묘한 템포와 도취적인 리듬,

긴 호흡의 크레셴도와 함께 자꾸만 상승하는 멜로디는 제가 이제까지 들어본 다른

어떤 연주보다도 감동적이며, 비르기트 닐손의 엄청난 독기는 한여름에도 몸에 소름이

돋게 합니다.


2003년 7월 24일 씀.

정보공유라이선스

김원철. 2004.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2009년 7월 26일 일요일

바그네리안 김원철의 바이로이트 여행기 (5)

지난 글 읽기:

☞ 바그네리안 김원철의 바이로이트 여행기 (1)
☞ 바그네리안 김원철의 바이로이트 여행기 (2)
☞ 바그네리안 김원철의 바이로이트 여행기 (3)
☞ 바그네리안 김원철의 바이로이트 여행기 (4)



▶ 상황 20.

3막.

라인 처녀들이 노래하는 대목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아름답다. 한국 초연 때 삐걱거리던 라인 처녀들과는 차마 견줄 수 없다. 게다가 이 대목에서 하프 소리가 이토록 아름다웠던가. 어쩌면 하프 소리가 가장 아름답게 들리는 극장이 바로 이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라인 처녀들이 지크프리트와 말을 나누는 대목 또한 훌륭하다. 그러나 2막과 마찬가지로 자막이 없어서 독일어 가사를 실시간으로 따라가지 못하니 조금씩 지루해진다. 하겐과 군터가 나오면서 조금 나아지다가 하겐이 혼란을 이끌어내려고 지크프리트에게 기억이 돌아오는 약을 먹이는 대목부터 집중력이 돌아왔다.

마침내 지크프리트가 브륀힐데를 만나던 기억을 떠올리는 대목에서는 소름이 돋고야 말았다. 끝내 지크프리트는 죽고 장송 행진곡이 흐른다. 그런데 '칼' 모티프가 나오는 대목에서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 대목을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던가!


▲ <신들의 황혼> 3막 마디 950-958. © Dover.

▲ '칼(Sword)' 모티프. © Decca
(인용된 악보에 나오는 모티프와는 살짝 다르다.)


악보에서 주황색으로 동그라미 친 대목이 '칼' 모티프다. 그 앞서 나오는 셈여림표를 살펴보자. 인용한 악보에는 빠졌으나 마디 448부터 '매우 여리게'(pp)로 시작하여 조금씩 소리가 커진다. 보탄을 상징하는 '창' 모티프가 베이스클라리넷과 튜바 따위로 마치 울먹이듯 나오고 뒤이어 지크프리트를 상징하는 '칼' 모티프가 트럼펫으로 사납게 터져 나온다.

이 대목을 제대로 살피려면 마디 942에 나오는 모티프를 알아야 한다.

▲ 마디 937-944. © Dover.

잉글리시호른, 클라리넷, 오보에가 차례로 연주하는 저 모티프 이름을 아시겠는가? 바로 지클린데 모티프다. (故 박원철님 홈페이지에 보니 숄티 판 2분 54초부터 나온단다.)

▲ 지클린데 모티프. © Decca


바로 앞선 마디 938에는 매우 중요한 무대 지시가 나온다.
(Der Mond bricht durch die Wolken und beleuchtet immer heller den die Berghöhe erreichenden Trauerzug.)

(달이 구름 사이로 뚫고 나와 산 언덕에 이르른 장례 행렬을 차츰차츰 더 밝게 비춘다.)

지클린데는 지크프리트를 낳다가 죽은 어머니이며, 지크프리트가 죽은 일을 누구보다도 슬퍼할 사람이다. '어머니'가 죽은 아들을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있으며 그 얼굴이 구름을 헤치고 나온 둥근 달과 겹친다. 바그너는 바로 이 모습을 마디 942에서 잉글리시호른 따위로 나타냈다. '다크 포스'가 넘쳐나는 지크프리트 장송 행진곡에서 이 대목만이 맑고 아름다운 소리를 내고 있으며, 이 소리가 뒤이어 나타나는 '다크 포스'를 더욱 애닲게 만들고 있다.

여기까지 알았다면, 눈치가 빠른 사람은 '장송 행진곡' 첫머리에 나오며 그 뒤로 이곳저곳에서 되풀이해 나오는 이른바 '고통(Suffering)' 모티프가 지클린데 모티프에서 왔음을 또한 알아차렸을지도 모른다.

▲ 마디 911-918. © Dover.

지크프리트가 마지막 대사를 끝내고 마디 913에서 팀파니(Pk.)가 리듬을 연주한 다음 마디 915에서 비올라(Br.)와 첼로(Vc.)가 연주하는 셋잇단음 음형이 바로 '고통' 모티프이다. (숄티 판 00:15초) 바로 이 모티프가 '지클린데' 모티프에 이어 또 한 차례 나오는데, 이곳에도 중요한 무대 지시가 있다.

▲ 마디 948-949. © Dover.

(Aus dem Rheine sind Nebel aufgestiegen und erfüllen allmählich die ganze Bühne, auf welcher der Trauerzug bereits unsichtbar geworden ist, bis nach vornen, so daß diese, während des Zwischenspieles, gänzlich verhüllt bleibt.)

(라인강에서 안개가 피어올라 무대를 조금씩 메운다. 장례 행렬은 이미 보이지 않으며, 마침내 안개가 무대 앞쪽까지 꽉 채워 막이 바뀔 동안 무대는 완전히 감춰져 있다.)

이때 '고통' 모티프와 저 깊은 곳에서 피어오르는 저음이 어우러진 '다크 포스'가 안개처럼 뭉게뭉게 피어올라 극장을 가득 메운다. 그리고 마침내 '칼' 모티프가 사납게 터져 나온다. 보탄이 울부짖고, 군터가 울부짖고, 기비훙 사내들이 울부짖고, 우리 모두 울부짖는 듯한 이 소리를 트럼펫이 홀로 연주한다. (숄티 판 4분 7초)

'칼' 모티프가 나오기에 앞서 트럼펫은 쉬고 있으며, 크레셴도가 있었다 하더라도 트럼펫이 갑자기 포르테(f)로 터져 나오는 대목은 여러모로 갑작스럽다. 따라서 이 대목은 말러 교향곡에서 곧잘 나오는 ☞ 개파(Durchbruch)를 내다보게 한다.

이 대목에서 '깜짝 효과'를 가장 잘 살린 녹음은 숄티-빈필 녹음이다.


© Decca

'칼' 모티프가 터져 나올 때부터 소리가 매우 크고, 마디 956에 나오는 온음표를 두 배로 늘여 연주하며, 이때 끝도 없이 크레셴도를 하여 듣는 사람이 숨 넘어가게 하며, 끝내 이 트럼펫 연주자는 인간이 아니라는 생각마저 들게끔 한다.


▲ 게오르그 숄티 지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 © Decca

(음반 찾기 귀찮아서 故 박원철님 홈페이지에서 wma 파일을 받아 편집한 다음 MP3 파일로 만들었다. 가뜩이나 옛날 녹음을 두 차례 손실 인코딩했더니 음질이 대략 좋지 않다.)

그런데 이날 연주는 마디 448부터 '매우 여리게'(pp)가 아닌 '조금 여리게'(mp)쯤으로 시작해 소리를 잔뜩 키우는 바람에 '칼' 모티프가 주는 '깜짝 효과'가 빛바래 버렸다. 그러나 나는 뜻밖에 틸레만의 해석에 설득당하고 말았다. 사나운 트럼펫이 뒤로 물러났으나 그 앞서 나오는 잔뜩 부풀어 오른 '다크 포스'가 너무나 멋졌기 때문이다.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 내가 가진 음반 수십 가지를 모조리 들어보았다. 트럼펫을 사납게 다스린 녹음이 있는가 하면 그에 앞선 '다크 포스'를 잘 살린 녹음도 있었다. 그러나 이날 들은 연주와 견줄 수 있는 녹음은 없었으며, 그나마 바렌보임-바이로이트 1992년 녹음이 비슷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바이로이트 녹음이 대체로 '다크 포스'를 잘 살린 듯하다. 어쩌면 틸레만이 이 대목을 이렇게 다스린 까닭이 '바이로이트 사운드'에 있지는 않았을까. 바이로이트가 아니라면 '다크 포스'를 이렇게까지 부풀리기는 어려우며, 또 바이로이트에서는 둥글둥글한 음향 때문에 트럼펫 한 대로 '깜짝 효과'를 내기는 어려워서 이렇게 해야 자연스럽지 않을까. 어쩌면 '바이로이트 사운드'를 가장 잘 알려주는 대목이 바로 이 대목인지도 모른다.

3막 3장에 이르러 하겐, 군터, 구트루네가 주거니 받거니 하는 대목도 훌륭하다. 그러나 브륀힐데가 나타나니 그 카리스마가 다른 사람을 모조리 눌러버린다. 린다 웟슨(Linda Watson)이 뿜어주시는 저 여왕님 포스! 마침 반지를 '득템' 하려던 하겐마저도 '버로우'시킬 만하다. 이른바 '구원(Liebeserlösung)' 모티프가 나오면서부터 나는 조금 울었다.


▲ <발퀴레> 3막, '구원' 모티프. © Decca
('브륀힐데 신격화' 모티프라고도 하며, 故 박원철님 홈페이지에는 '구속(Redemption)' 모티프라고 나온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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