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글입니다.
피에타리 인키넨은 도이치 방송교향악단 음악감독입니다. 2009년에 서울시향을 객원지휘한 일이 있고, 내년 1월부터 KBS교향악단 음악감독을 겸직할 예정입니다. 지난해에는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바그너 4부작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 전곡을 지휘할 예정이었다가 코로나-19 때문에 페스티벌이 전체 취소되어버려서, 그 대신 지난 7월 개막한 2021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반지’ 4부작 중 ’발퀴레’만을 일단 먼저 공연하게 되었습니다.
실황 중계방송 녹음을 들어보니 인키넨의 ‘발퀴레’는 꽤 훌륭했습니다. 멀티채널 녹음이라 현장감이 특히 좋더군요. 그런데 이날 연주는 호불호가 좀 갈렸던 모양입니다. 한두 명이지만, 관객에게 인사하는 인키넨에게 야유를 퍼붓는 사람이 있었다던데요. 제 지인 중 한 분은 인키넨의 ’지크프리트’ 3막 발췌 음반과 견주며, 아직 인키넨이 바이로이트 페스티벌하우스에 적응하지 못한 듯하다고도 하더군요.
바이로이트에서 처음 지휘하는 사람은 독특한 음향 때문에 헤매기 쉽다고들 하지요. 실제로 공연 중 삐걱거리던 순간이 제법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에는 단지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호불호의 진짜 원인은 오케스트라 편성 때문이었을 거예요.
‘발퀴레’ 실황 음원과 ‘지크프리트’ 음반은 연주 단체와 녹음 장소와 녹음 장비가 다르고, 각각 5채널 오디오와 2채널 오디오로 녹음의 정보량도 달라서 나란히 비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냥 귀로 들리는 소리만으로 판단하자면 ’발퀴레’가 ’지크프리트’보다 오케스트라 규모가 좀 더 작은 듯하더군요. 사실은 ’지크프리트’도 작은 편성인 듯했고, 그래서인지 인키넨 음반을 게오르그 숄티가 지휘한 1960년대 명반과 견주며 소리의 에너지 밀도가 낮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20세기에는 악보에 지시한 것보다 실제 오케스트라 편성을 부풀리는 관습이 있었지요. 게오르그 숄티의 바그너 녹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에는 악보 지시와 작곡 당시의 관습 그대로 연주하는 것이 유행이고, 인키넨의 바그너 해석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작은 편성으로 연주하면 여러 장점이 있고, 이를테면 개별 성부의 매력을 더 잘 살릴 수 있지요. 인키넨은 때로 목관악기 소리가 두드러지는 ’식물성 사운드’를 바그너 음악에서 살려내기도 하더군요. 물론 금관악기가 울부짖을 때는 필요한 만큼 ’근육질’로 변하기도 했습니다.
바이로이트 극장은 바그너 음악에 최적화되어 ’바이로이트 사운드’라고 칭송하는 말이 있는 멋진 곳입니다. 그런데 제가 그곳에 여러 차례 가본 경험으로 말하자면, 다른 오페라 극장과 견주어 음량이 좀 작은 것이 바이로이트 극장의 단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뒷자리에 앉아도 들릴 소리는 다 들리지만, 오케스트라 피트에 ’천장’이 있어서 소리가 무대 벽에 한 번 반사된 다음에야 객석으로 전달되는 구조 때문에 직접음이 거의 들리지 않고 소리가 좀 멀게 느껴지는 점이 장점이자 단점인 듯해요.
문제는 인키넨의 바그너가 실제 바이로이트 극장에서 어떻게 들렸을까 하는 겁니다. 오케스트라 편성을 부풀리는 것은 음량을 키우기 위해서인데, 소리에 ‘기름기’를 빼기 위해 편성을 줄였다면 음량 또한 줄었겠지요. 인키넨에게 야유를 퍼부은 몇몇 사람은 사실 ’음량’에 실망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인키넨은 내년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때 타협을 하게 될까요? 인키넨의 ’바이로이트 사운드는’ 어떤 변화를 맞게 될지 궁금합니다.
피에타리 인키넨이 음악감독으로 있는 도이치 방송교향악단은 옛 이름이 ‘자르브뤼켄 방송교향악단’이었던 단체로 정명훈 지휘자가 음악감독으로 있었던 바로 그곳입니다. 그 시절 정명훈 지휘로 윤이상 교향곡 3번을 세계초연한 악단이기도 하지요. 마침 내한공연이 연말에 예정되어 있어서 그때쯤에는 제발 전염병이 잠잠해지기를 희망해 봅니다. 통영 공연은 12월 19일이고, 프로그램은 브람스 교향곡 1번, 손열음이 협연하는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3번, 그리고 바그너 오페라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중 서곡입니다. (쉿! 앙코르로 바그너 곡을 더 연주할지도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