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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8월 13일 금요일

피에타리 인키넨의 '바이로이트 사운드'

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글입니다.


피에타리 인키넨은 도이치 방송교향악단 음악감독입니다. 2009년에 서울시향을 객원지휘한 일이 있고, 내년 1월부터 KBS교향악단 음악감독을 겸직할 예정입니다. 지난해에는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바그너 4부작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 전곡을 지휘할 예정이었다가 코로나-19 때문에 페스티벌이 전체 취소되어버려서, 그 대신 지난 7월 개막한 2021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반지’ 4부작 중 ’발퀴레’만을 일단 먼저 공연하게 되었습니다.

실황 중계방송 녹음을 들어보니 인키넨의 ‘발퀴레’는 꽤 훌륭했습니다. 멀티채널 녹음이라 현장감이 특히 좋더군요. 그런데 이날 연주는 호불호가 좀 갈렸던 모양입니다. 한두 명이지만, 관객에게 인사하는 인키넨에게 야유를 퍼붓는 사람이 있었다던데요. 제 지인 중 한 분은 인키넨의 ’지크프리트’ 3막 발췌 음반과 견주며, 아직 인키넨이 바이로이트 페스티벌하우스에 적응하지 못한 듯하다고도 하더군요.

바이로이트에서 처음 지휘하는 사람은 독특한 음향 때문에 헤매기 쉽다고들 하지요. 실제로 공연 중 삐걱거리던 순간이 제법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에는 단지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호불호의 진짜 원인은 오케스트라 편성 때문이었을 거예요.

‘발퀴레’ 실황 음원과 ‘지크프리트’ 음반은 연주 단체와 녹음 장소와 녹음 장비가 다르고, 각각 5채널 오디오와 2채널 오디오로 녹음의 정보량도 달라서 나란히 비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냥 귀로 들리는 소리만으로 판단하자면 ’발퀴레’가 ’지크프리트’보다 오케스트라 규모가 좀 더 작은 듯하더군요. 사실은 ’지크프리트’도 작은 편성인 듯했고, 그래서인지 인키넨 음반을 게오르그 숄티가 지휘한 1960년대 명반과 견주며 소리의 에너지 밀도가 낮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20세기에는 악보에 지시한 것보다 실제 오케스트라 편성을 부풀리는 관습이 있었지요. 게오르그 숄티의 바그너 녹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에는 악보 지시와 작곡 당시의 관습 그대로 연주하는 것이 유행이고, 인키넨의 바그너 해석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작은 편성으로 연주하면 여러 장점이 있고, 이를테면 개별 성부의 매력을 더 잘 살릴 수 있지요. 인키넨은 때로 목관악기 소리가 두드러지는 ’식물성 사운드’를 바그너 음악에서 살려내기도 하더군요. 물론 금관악기가 울부짖을 때는 필요한 만큼 ’근육질’로 변하기도 했습니다.

바이로이트 극장은 바그너 음악에 최적화되어 ’바이로이트 사운드’라고 칭송하는 말이 있는 멋진 곳입니다. 그런데 제가 그곳에 여러 차례 가본 경험으로 말하자면, 다른 오페라 극장과 견주어 음량이 좀 작은 것이 바이로이트 극장의 단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뒷자리에 앉아도 들릴 소리는 다 들리지만, 오케스트라 피트에 ’천장’이 있어서 소리가 무대 벽에 한 번 반사된 다음에야 객석으로 전달되는 구조 때문에 직접음이 거의 들리지 않고 소리가 좀 멀게 느껴지는 점이 장점이자 단점인 듯해요.

문제는 인키넨의 바그너가 실제 바이로이트 극장에서 어떻게 들렸을까 하는 겁니다. 오케스트라 편성을 부풀리는 것은 음량을 키우기 위해서인데, 소리에 ‘기름기’를 빼기 위해 편성을 줄였다면 음량 또한 줄었겠지요. 인키넨에게 야유를 퍼부은 몇몇 사람은 사실 ’음량’에 실망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인키넨은 내년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때 타협을 하게 될까요? 인키넨의 ’바이로이트 사운드는’ 어떤 변화를 맞게 될지 궁금합니다.

피에타리 인키넨이 음악감독으로 있는 도이치 방송교향악단은 옛 이름이 ‘자르브뤼켄 방송교향악단’이었던 단체로 정명훈 지휘자가 음악감독으로 있었던 바로 그곳입니다. 그 시절 정명훈 지휘로 윤이상 교향곡 3번을 세계초연한 악단이기도 하지요. 마침 내한공연이 연말에 예정되어 있어서 그때쯤에는 제발 전염병이 잠잠해지기를 희망해 봅니다. 통영 공연은 12월 19일이고, 프로그램은 브람스 교향곡 1번, 손열음이 협연하는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3번, 그리고 바그너 오페라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중 서곡입니다. (쉿! 앙코르로 바그너 곡을 더 연주할지도 몰라요!)

2009년 7월 5일 일요일

바그네리안 김원철의 바이로이트 여행기 (1)

바이로이트 축전극장, 2006년 8월 27일. (c) 김원철
맨 오른쪽에 있는 사람이 크리스티안 틸레만.

확대 사진. (c) 김원철

2006년에 바이로이트에 갔던 얘기를 바빠서(귀찮아서) 미루다 이제야 씁니다. ;;

볼로냐에서 학회가 있어서 겸사겸사 독일에서 바그너 오페라를 볼 계획을 세웠습니다.
(사실은 처음부터 마음이 콩밭에..;;)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드레스덴 젬퍼오퍼 '반지' 시리즈가 일정에 꼭 맞더군요.

사실은 하루 여유가 있었는데, 처음에는 짧게 바이로이트를 관광하려고 생각했다가 끝내 "Suche Karte"(표 구합니다) 신공(?)을 써서 <신들의 황혼>을 보았습니다.

그 모험 일지(?)를 써봅니다. ^^




▶ 상황 1.

볼로냐에서 있었던 국제음악지각인지학회(ICMPC)가 끝나고
프랑크푸르트로 날아가 하루를 묵었다.
피곤했었는지 조금 늦게 일어나 서둘러 기차역으로 출발했다.
지하철 역 표 파는 기계 앞에서 난감해하다가
아무나 붙잡고 "중앙역 Hauptbahnhof"이라고 한 다음 시키는 대로 했다.
그런데 개찰구도 없고 지하철 안에도 표 검사하는 사람이 없더라.
그렇다고 무임승차하는 사람은 없기를. 갑자기 검사할지도 몰라.

▶ 상황 2.

"Hauptbahnhof"라고 쓰여있는 곳에서 지하철을 탔는데,
어째 갈수록 '시골스러운' 풍경이 되어간다. 서너 정거장 거리랬는데...
그러다가 나오는 역 이름이 웬 다름슈타트?
사람들한테 물어보니 반대쪽이란다. 프랑크푸르트 중앙역까지 10 정거장!
갈아타려는데 왜 이리 안 와. OTL

▶ 상황 3.

중앙역. 표 파는 데서 언제 출발할 거냐고 묻기에 '되도록 빨리' 가겠다고
"as early as possible" 했더니 7시인가 9시인가가 가장 빠른 거란다.
그때 시각이 오전 11시가 넘었으니 그럼 저녁까지 기다리란 얘기잖아?
아놔, 바이로이트 관광은 물 건너갔군.
그런데 드레스덴 가는 표를 사려니 매표소는 여기가 아니고 저쪽으로 가란다.
매표소에서 마찬가지로 "as early as possible" 했더니 당장 출발할 거냔다.
그렇다고 하니 15분 뒤에 출발한다네? 아하, 좀전에 들은 건 내일 아침이구나!
(독일은 24시간제를 쓴다. 아, 헷갈려. 나 군대 갔다 온 거 맞아?)
생각해 보니 그 "early"가 그 "early"였어. "soon"이라 해야 할 것을! OTL
끝내 바이로이트를 거쳐 드레스덴으로 가는 기차표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무시무시한 지뢰밭 하나 통과.

▶ 상황 4.

기차 타는 곳이 어디야! 헤매다 보니 5분밖에 안 남았다.
겨우 찾아갔는데 기차가 왜 안 와.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니 10분쯤 연착된단다. 15분 넘게 연착되었던 것 같다.
이게 왜 중요하냐면 바이로이트 역 도착 시각이 오후 3시 53분이었기 때문이다.
4시에 공연 시작한단 말이다!
나는 표도 없어서 극장 옆 택시 서는 곳에서 '주헤 카르테' 신공을 펼쳐야 한다.
절망적인 상황.

여기서 잠깐! 바이로이트 축전 표 구하는 법 소개:
http://wagnerian.textcube.com/entry/Suche-Karte

▶ 상황 5.

바이로이트 가는 기차로 갈아타려고 먼저 뉘른베르크 가는 기차를 탔다.
"실례합니다. 제 좌석이 어딜까요?"
"일등석인가요 이등석인가요?"
"이등석인데요."
"여기는 일등석 칸이에요. 이등석은 저쪽으로 가세요."
아놔, 어쩐지 시설이 좋더라.
자리를 잡은 다음 마침 배가 고파서 식당칸에 갔더니 하나 빼고 다 그릇에 담긴 것들.
자리에 두고 온 짐도 걱정되고 해서 초코바 비슷한 것과 물(Mineralwasser)을 샀다.
원래 나는 초콜릿, 아이스크림, 커피, 콜라 등 향정신성 식품은 안 먹지만 어쩌랴.
그런데... 자리에 와서 포장을 뜯어보니 초코바가 아니라 아이스바다. 아놔...
그래 뭐, 오늘 점심은 초코 아이스바다.

(c) 롯데삼강 http://www.lottesamkang.co.kr


▶ 상황 6.


마침내 바이로이트 가는 기차를 탔다. 드디어, 드디어...
바이로이트행 표지판 사진도 함 찍고...


역에 도착하면 재빨리 택시를 잡고 극장으로 가는 거야.
걸어서 15분이랬으니까 차로 5분 안쪽, 2분 안에 "Suche Karte" 신공으로 입성한다.
이거 완전 미션 임파서블이군. 그래도 리브리에를 들고 있으면 주목받을 거야.

소니 이북리더 리브리에(Librié)


▶ 상황 7.


맞다, 여기 승객들한테도 주헤 카르테 신공을 펼쳐보자!
음... 이것 참 창피한걸?
모르는 사람은 기차표 구하는 줄 알까 봐 "페스트슈피엘?"이라고 말하면서
리브리에를 들고 기차를 한 바퀴 돌았다. 사람들이 웃다가 쓰러진다.
끝내 헛수고.
자리에 돌아오니 옆에 있던 독일 할머니들이 묻는다. "그래서 표 구했어?"

▶ 상황 8.

어떤 아주머니가 자기 동생이 바이로이트 산다면서
표를 구하는 법을 알아봐 주겠단다.
고맙기는 하지만 별로 기대는 안 되는...
앗, 동생이 차로 극장까지 태워줄 거라고요? 고맙습니다!!
그런데... 극장을 약 100미터 앞에 두고 바리케이트가 처져 있다.
정확하게 알아듣지는 못했으나 택시만 통과할 수 있다는 듯하다.
아무나 극장 앞에 차 세울 수 없다는 얘기겠지.
배낭을 메고, 뛰어, 뛰어! 2분 전!

죠낸 뛰는 거다!
(사진은 디씨클갤에서 돌아다니던 짤방)

아놔, 오르막길... 푸른 언덕(Der Grüne Hügel)이라 이거지? 1분 전!
헉헉헉... 상황 종료. OTL

▶ 상황 9.

그래도 아직 희망은 있다. 1막 끝나고 표를 팔아버리려는 사람이 나타날지도 몰라.
일단 극장 앞에서 사진 한 판 박고,
한 손에는 여전히 'Suche Karte'라고 또렷이 나오는 내 사랑 리브리에를 들고서
매표소 앞을 한 판 더... 어어, 앗!
리브리에를 떨어트려 버렸다!
바닥에는 빗물도 약간 있었는데...ㅠ.ㅠ
건전지는 도대체 어디로 도망간 거야!
뭐... 리브리에는 전자잉크를 쓰기 때문에
전원이 갑자기 꺼져도 마지막 화면이 남아있으니
일단 주헤 카르테 신공 펼치기에는 문제가 없다.



▶ 상황 10.

택시가 서는 곳으로 갔더니 젊은 남녀가 '주헤 카르테' 종이를 들고 있다.
저렇게 펜으로 쓴 걸로는 약해.
"당신들 얼마나 이러고 있었어요?"
"2시간이요."
헉... 갑자기 지각한 게 하나도 속상하지 않다.
아니다, 어쩌면 경쟁자를 물리치려고 거짓말했을지도 몰라.
(속고만 살았냐!)

※ 여기서 보충 설명: 2006년 바이로이트 축전에는 <니벨룽의 반지> 새 프로덕션이 올라왔고, 적어도 독일에서는 명성이 카라얀 못지않은 크리스티안 틸레만이 처음으로 바이로이트에서 <니벨룽의 반지>를 지휘한 해였습니다. 그야말로 표 구하기가 하늘에서 별 따기였지요. 이런 상황에서 제가 '돈키호테 짓'을 했습니다. 미치면 무슨 짓을 못해요. ^^;

여기가 바이로이트 축전극장! 이 건물 왼쪽에 택시가 선다.


▶ 상황 11.

<신들의 황혼> 서막과 1막, 그리고 막간 휴식시간까지 2시간 넘게 걸리겠지?
시간이 있으니 숙소부터 잡자. 숙소가 있기는 할까?
시 안내소가 도대체 어디야? 역에서 지도 하나 얻어서... 물어... 물어...
안내소에 가니 사람은 없고 소책자들만 있다.
종류별로 하나씩 집은 뒤 살펴보니 숙소 연락처를 모아놓은 게 있다.
공중전화로, '방 있어요?'
없어요. 없어요. 없... 아놔. OTL
끝내 이웃마을에 있는 팬션을 하나 찾았다.
창문이 어쩌고 하면서 방에 하자가 있다는 듯이 말했지만 무조건 '괜찮아요!' 했다.
시간이 없으니 택시를 타고 가서 방 열쇠를 받은 다음(밤늦게는 체크인이 안 된단다.)
다시 주헤 카르테 모드.


... 그곳에서 귀인을 만나리니, 순수한 바보여! (다음 편에 계속)


다음 글 읽기:

☞ 바그네리안 김원철의 바이로이트 여행기 (2)
☞ 바그네리안 김원철의 바이로이트 여행기 (3)
☞ 바그네리안 김원철의 바이로이트 여행기 (4)
☞ 바그네리안 김원철의 바이로이트 여행기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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