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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 8일 화요일

이졸데는 왜 죽었을까?

1. 바그너스러운(?) 논리

   "바그너 작품에서 여자가 죽는 데에는 이유가 없다."
    - 어느 바그너 환자의 우스갯소리.

 

2. 산업재해(?) 논리

   "노래가 너무 힘들어서 부른 뒤 죽었다."
    - 고클래식 guity00님 의견. (2009년 9월 9일)



3. 쇼펜하우어스러운 논리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쇼펜하우어의 사상으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았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트리스탄과 이졸데》에는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궁극적 의지 부정의 상태'가 바그너 식으로 변용(?)되어 나타나며, '사랑을 통해 의지의 완전한 진정에 이르는 구원의 길'은 곧 죽음에 이르는 길이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을 참고 하라: ☞엄선애, "사랑의 죽음"을 통한 구원 - 리하르트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小考, 뷔히너와 현대문학 제 21호.)

다음은 이졸데의 마지막 대사이다.

In dem wogenden Schwall,
in dem tönenden Schall,
in des Welt-Atems
wehendem All ---
ertrinken,
versinken ---
unbewußt ---
höchste Lust!


(Isolde sinkt, wie verklärt, in Brangänes Armen sanft auf Tristans Leiche. Rührung und Entrücktheit unter den Umstehenden. Marke segnet die Leichen. Der Vorhang fällt langsam.)


파도치는 물결 속에,
소리치는 울림 속에,
세상 숨결 불어오는
우주 속에
빠져들어,
가라앉아
나를 잊으리라
더없는 기쁨이여!


(이졸데는 변용된 듯 브랑게네 품에서 트리스탄 몸 위로 부드럽게 쓰러진다. 곁에 있는 사람들은 넋을 잃고 바라본다. 마르케는 주검에 축복을 내린다. 막이 천천히 내린다.)


(김원철 옮김.)

여기서 변용(verklärt; transfiguration)은 곧 '궁극적 의지 부정'을 통한 열반의 상태로 이해할 수 있다.

 

4. 실증주의적(?) 논리

김원철의 망상 속에서 탄생한 가설이다. 형이상학적 사유, 또는 불교적 해탈에 대한 강변으로부터 벗어나 구체적인 이졸데의 사망 원인을 찾자면 무엇인가 석연치 않다. 그런데 텍스트를 잘 살펴보면 한 가지 확실한 자살 수단을 연상해 낼 수 있다. 그것은 1막에 등장했던 독약이다. 이졸데가 가지고 있던 독약은 브랑게네의 개김(?) 덕분에 아직 사용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었고, 3막에서 이졸데가 트리스탄을 찾아 오기 앞서 '수 틀리면 죽자!'라는 심정으로 그것을 품 속에 챙겨 두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음악적인 맥락에서 보면 '궁극적 의지 부정의 상태'가 마침내 시작되는 지점, 노골적으로 말해 성애의 육체적 쾌락이 정점에 이르는 지점은 "Welt-Atems" 부터이다. 이어지는 가사를 보라.

ertrinken,
versinken ---
unbewußt ---
höchste Lust!

빠져들어,
가라앉아
나를 잊으리라
더없는 기쁨이여!


독일어 실력이 뛰어나거나 또는 독일어 실력이 형편없더라도 독일어 텍스트를 열심히 따라가며 작품을 감상했던 사람이라면 여기서 낱말 두 개를 떠올리는 데에 어려움이 없을 줄로 믿는다. 바로 'trinken'(마시다)과 'Trank'(음료, 약)이다. 독약을 마시고? 옳거니. 그리고? 'unbewußt'는 몰아(沒我)로 풀이할 수 있겠으나 더 따지자면 의식을 잃는다는 뜻이다. 죽었군.

(최종 수정: 2009년 9월 10일)

정보공유라이선스

김원철. 2004.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2009년 8월 18일 화요일

2005.12.15. 《트리스탄과 이졸데》 2막 /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창단 20주년 기념연주회 (제149회 정기연주회)
<트리스탄과 이졸데> 2막
2005년 12월 15일 (목) 저녁 8시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지휘 : 이대욱
트리스탄 : 리차드 데커(Richard Decker)
이졸데 : 프란세스 진저(Frances Ginzer)
브랑게네 : 김여경
마르케 왕 : 양희준
멜롯 : 전태상




<트리스탄과 이졸데> 1막 전주곡과 "사랑의 죽음"이 국내 초연된 것이 1961년이다(KBS 교향악단, 데이비드 샤피로 지휘). 그리고 44년 만에 2막이 초연되었다. 불과 석 달 전에 <니벨룽의 반지> 국내 초연이 있었는데다 6개월 전에는 <탄호이저>가 1979년 국내 초연 이후 처음으로 전 막 공연되기도 한 터라 이번 공연이 상대적으로 빛바랜 감이 있기는 하지만, 바그네리안 입장에서는 어쨌든 역사적인 사건이라 하지 않을 수 없겠다. 한편, 코리안심포니는 여러모로 바그너와 인연이 많은 악단이다. 초대 음악감독이자 상임지휘자였던 고(故) 홍연택 선생은 국내 최초로 바그너 오페라 전 막 공연을 지휘한 분이시기도 하다(1974년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국립오페라단). 또한 한국을 대표하는 바그네리안이신 김민 선생이 코심의 이사장을 거쳐 현재 음악감독을 맡고 계시기도 하다.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개인적으로도 특별한 작품이다. 처음으로 진지한 태도로 대본을 따라가며 전 막을 감상한 바그너 작품이기도 하고, 이러저러한 이유로 바그너 작품 가운데 가장 깊이 파헤친 작품이기도 하기에 이번 공연에 감회가 남달랐다.

마침내 시작된 공연에서는 우선 무대가 어두워진 다음 박수 칠 기회를 주지 않고 지휘자가 조용히 등장하는 바이로이트적(?) 연출이 아주 좋았다. 불이 켜지는 동시에 '낮'의 모티프가 터져 나올 것을 기대했는데, 의외로 1막 전주곡이 시작되는 것이 아닌가? 덕분에 조명의 총체예술적 효과는 반감되었으나 예정에 없던 부분을 덤으로 감상하게 되었으니 한편으로는 반갑기도 했다.

이대욱의 해석은 특별히 모나지 않은 대신 참신함도 없이 무던했다. 이것은 현이 음표를 따라가기에 바빴던 탓이 크다고 생각되는데,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의 역량을 고려하면 현악기 주자들이 사력을 다했다고 말하기는 곤란하지만 연습을 게을리했다고 할 수도 없다. 다른 작품도 아니고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아니던가? 이런 작품은 국내 오케스트라가 연주해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무될 만하다. 현의 음량이 전체적으로 부족한 편이었지만 꼭 필요한 부분에서는 꽤 힘을 내기도 했다.

그래도 아쉬웠던 부분을 몇 가지만 떠올려 보자면, 우선 저 유명한 '오 사랑의 밤이여 우리를 덮어다오 O sink hernieder, Nacht der Liebe' 대목에서 현에 의한 몽환적인 리듬이 전혀 살아나지 않았다. 리듬 처리 자체가 충분히 또렷하지 못했고 보잉이 일치되지도 않았으며, 무엇보다 (피아니시모에 약음기를 사용하라는 지시가 있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모든 현이 같은 리듬을 사용하는 것치고는 음량이 너무 작았다. 결과는 꿈결처럼 붕 뜬 느낌의 리듬 대신에 안개 낀 듯 흐릿한 소리였다.

음악해석학(musical hermeneutics)에 기대어 말하자면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사랑은 바그너 이전의 전통적인 '불'의 심상이 아닌 '물'의 심상을 통해 나타난다고 할 수 있는데, 크래머(Lawrence Kramer)가 이에 대해 상세히 논한 바 있다.


남자와 여자의 결합, 다시 말해 사랑이야말로 (실질적으로든 비유적으로든) 인간을 창조하는 무엇이다. (...) [어느 누구도] 자신을 있게 한 사랑의 행위를 초월할 수 없으며, 단지 되풀이할 수 있을 뿐이다. (...) 그리고 이러한 반복을 통해 사랑은 파도가 밀물과 썰물에 따라 변하고 사라졌다 되살아나는 것을 닮은 특질을 가질 수 있게 된다. (135쪽)

리비도는 요컨대 다름 아닌 액체이며, 실로 프로이트가 즐겨 사용한 비유는 액체, 곧 사람들의 내면과 다른 사람들 사이를 오가는 흐름의 속성을 가진다. 전통적인 욕망의 불은 끊임없이 순환하고 끊임없이 율동 하는 매개체, 즉 물로 교체되었다. (141쪽)

욕망의 액체화로부터의 이상하지만 또한 지속적인 지류(支流)는 이 등장인물[Kate Chopin의 소설 The Awakening (1899)에 나오는 인물]의 성별에 따라 구분된 요구들 사이의 권력투쟁이다. 여자다움에 있어서, 욕망은 무엇보다도 바다, 파도의 밀물과 썰물, 이졸데의 'wogender Schwall'로 표현된다. 이러한 용례는 남녀 예술가 모두에게 일반적이다. (142쪽)

콘서트 버전의 전주곡에 바그너 자신이 붙인 프로그램 노트를 우선 살펴보면,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끊임없이 갈망하고 동경하며 자신을 스스로 갱신하는 밀물과 썰물로서의 욕망을 표현하는 것으로 줄곧 이해되었다. (147쪽),

- Lawrence Kramer., Musical Form and Fin-de-Siecle Sexuality. In Music as Cultural Practice 1800-1900,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90.

2막 2장, 'O sink hernieder, Nacht der Liebe,' mm. 1111-1122.
Ⓟ New York : Broude Brothers, [1900?] 출처: http://www.dlib.indiana.edu


이러한 물의 심상은 '끝없이 영원히, 하나 됨을 자각하리라 endlos ewig, ein-bewusst'에 이르면 거대한 파도로 변한다(마디 1598). 강력하게 몰아치던 음악은 '지고한 사랑의 쾌락이여! höchste Liebeslust!'에서 갑자기 여리게 변한 다음 다시 크레셴도를 부르는데(마디 1619), 이렇게 갑작스러운 음량 변화는 진정한 폭발을 준비하기 위한 것이며 감상자의 주의를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하게 끌어당기는 장치가 된다. ('지고한 사랑의 쾌락이여! höchste Liebeslust!'는 사랑의 2중창 마지막 대사이며, 마르케 왕의 등장과 함께 좌절된 사랑의 완성, 즉 쇼펜하우어적 해탈이 바그너에 의해 변용된 "열광적인 기쁨과 황홀"의 상태이다. 좌절된 사랑이 진정으로 완성되는 것은 작품의 끝 부분이며, 작품 전체의 마지막 대사는 이졸데의 '지고한 쾌락이여! höchste Lust!'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날 연주에서는 이 부분이 정신없는 동형진행(sequence) 속에 얼렁뚱땅 넘어가 버렸다.

1막 전주곡에서 때때로 호른 소리가 거칠 게 돌출되곤 했던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이것은 어쩌면 호른 주자의 실수일지도 모르지만 여기서는 일단 지휘자의 해석으로 간주하기로 하자. 도버 판 총보 첫머리에 있는 지시문에 따르면(펠릭스 모틀이 쓴 것으로 추정됨) 바그너는 부드러운 음색을 만들기 위해 내추럴 호른을 염두에 두고 작곡했다고 하는데, 연주자가 충분히 뛰어나다면 밸브 호른을 써도 무방하다고 한다. 잘은 모르지만 현대의 호른도 이 점에서 당시의 밸브 호른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호른이 지나치게 돌출되는 것은 그다지 좋은 해석이라 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며, 실제 음악적 맥락으로 보아도 이는 마찬가지다. 감정의 기복을 살리려는 의도였다면 이른바 '트리스탄 코드'를 중심으로 하는 세 번의 동형진행에서 다이내믹의 변화를 크게 하며 특히 마디 10과 마디 16의 스포르찬도를 강조하는 것 등이 더 필요하지 않았을까.

2막 전주곡에서는 베이스 클라리넷에 의한 이른바 '☞ 조급한 이졸데의 모티프' 부분에서 악기군 사이의 리듬 충돌에 묘한 매력이 있으며 개인적으로는 이것을 '☞ 이졸데 리듬'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대부분의 음반에서는 이것을 살리지 않고 다양한 방법으로 리듬 충돌을 피해간다. 이날 연주회에서는 현 소리를 아주 작게 함으로써 리듬 충돌의 핵심 원인이 되는 현의 싱코페이션 리듬을 무력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베이스 클라리넷 소리는 내가 알던 악기의 음색에 비해 너무 부드러워서 바순으로 대체한 것으로 오해하고는 깜짝 놀라기도 했다. 덕분에 나는 연주가 끝난 뒤 지휘자가 베이스 클라리넷 주자를 일으켜 세웠을 때 다시 한 번 놀라야 했다.

마르케 왕의 '어떤 불행으로도 씻을 수 없는 이 불명예를 왜 내게 주는가? Die kein Elend sühnt, warum mir diese Schmach?' 직후 베이스 클라리넷 소리를 들을 때면, 지난 2003년 9월 8일에 있었던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체임버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지휘: 로버트 쾨니히, 베이스: 전승현)에서 받았던 강렬한 기억이 떠오른다. 이날 베이스 클라리넷 주자는 크레셴도 폭을 최대로 늘림으로써 비탄에 빠진 마르케 왕의 심리를 압축적으로 표현하는 동시에 이 대목을 마르케왕의 모놀로그 전체의 절정으로 부각시켰다. 지휘자 로버트 쾨니히는 코심과 연주회를 통해 상당한 친분을 쌓고 있기 때문에 이번 연주회에서도 어떤 식으로든 지휘자의 해석에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하고 내심 기대했는데 웬걸, 여느 음반과 비슷하게 폭 좁은 크레셴도로 밋밋하게 넘어가 버렸다.

트리스탄 역의 리차드 데커(Richard Decker)는 음색이 배역에 나름대로 잘 어울리기는 했지만 바그너 가수로서의 힘은 부족해 보였다. 이성이 마비될 만큼 강렬한 파토스를 표현하기에는 목소리가 너무 부드러웠으며, 성량 자체도 충분히 크지 못해서 오케스트라 소리에 묻힐 때가 더러 있었다. 연주회장의 음향 문제를 고려하더라도 예전에 같은 장소에서 들었던 귀네스 존스나 사무엘 윤 등의 목소리를 떠올려 보면 리차드 데커는 바그너 가수의 미덕을 충분히 갖추었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 같다. 그런데 달리 생각하면 한국에서의 공연을 만만히 보고 목소리를 아낀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공연 내내 크게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 그러한 의혹을 뒷받침한다. 만약 그가 한국인이었다면 우리에게도 바그네리안 테너가 있다며 기뻐했겠지만, 많은 돈을 들여 모셔왔을 외국인 가수가 이 정도라면 그 돈이 좀 아깝다. 트리스탄, 에릭(방황하는 네덜란드인) 등의 역할을 맡은 바 있으며 내년에 지크문트 역을 맡을 예정이라고 한다. 내 생각에 지크문트 역이 매우 잘 어울릴 것 같다.

이졸데 역의 프란세스 진저(Frances Ginzer)는 리차드 데커보다 훨씬 더 실망스러웠다. 목소리가 오케스트라 소리에 파묻혀 제대로 들리지도 않을 때가 많았으며, 강세를 받지 못한 음을 속으로 먹어 버린 탓에(독일어 무성음 처리는 열심히 하더라) 레가토나 칸타빌레에 대한 개념이 있기나 할까 싶을 정도로 선율 윤곽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그나마 고음 처리를 곧잘 한 것은 다행이었지만, 이것은 결국 작품의 악명 높은 고음 처리를 위해 목을 지나치게 아낀 덕이 아닐까 싶다. 노래를 하러 나온 것이 아니라 고음 자랑을 하러 나온 것인지? 브륀힐데, 이졸데, 엘자, 젠타 등 바그너 경력은 상당하며 음색이 바그너에 잘 어울리기도 했지만, 이 때문에 오히려 이날 공연을 만만하게 생각했다는 의혹은 더욱 짙다. 평론가로부터 "거대한 성량과 따스함을 가진 최고의 소프라노"라는 극찬을 받은 적이 있단다.

브랑게네 역의 김여경은 성량만 본다면 프란세스 진저와 역할을 바꿨으면 좋았을 것이다. (물론 이졸데 역의 살인적인 고음을 감당할 만한 성역이 아니었겠지만.) 2막 1장 동안 줄곧 이졸데를 압도했으며, 2장에 두 차례 등장하는 아리오소도 매우 뛰어났다. 타게리트(Tagelied)의 전통을 잇는 2막 2장의 아리오소에서 도입 부분의 크레셴도는 마치 영화의 페이드인(fade-in)과도 같은 역할을 하는데, 이 부분을 매끄럽게 처리하는 가수는 음반으로도 흔치 않다. 김여경의 '페이드인' 처리는 꽤 양호했다. 무엇보다 바그너를 이만큼 훌륭히 소화해내는 한국인 여자 가수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몹시 반갑다. 마르케 왕의 등장을 알리는 브랑게네의 비명 소리가 없어서 잠깐 놀랐는데, 이어지는 쿠르베날의 대사가 2막에서는 단 한 마디 뿐이라(위험합니다, 트리스탄님! Rette dich, Tristan!) 캐스팅에서 빠졌다는 점을 생각하니 정황이 이해되었다. 그래도 비명은 있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데, 만약 목소리를 아끼기 위한 것이었다면 바그너 가수가 될 자격은 없다 하겠다. 비명 소리가 빠진 대신 금관이라도 좀 더 크고 거친 소리를 내주었으면 좋았을 뻔했다.

마르케 왕 역의 양희준은 저음의 깊이만으로도 탄복할 만한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저음은 아무나 내는 것이 아니다. 성악이라는 것이 원래 타고난 목소리가 중요하겠지만, 특히 저음은 노력만으로는 만들 수 없는 특별한 것이라고 한다. 해석상의 특이한 점은 없었고 기존 대가들의 장점을 이어받아 정교하게 다듬은 모범적인 해석을 들려주었다. 그가 출연한 <니벨룽의 반지> 전곡 CD가 있다는데, 아마도 귄터 노이홀트의 바덴 가극장 녹음(Brilliant, 1993-95)에 나오는 파졸트(라인의 황금)와 파프너(지크프리트) 역인 것으로 추정된다. 해당 음반에는 'Simon Yang'으로 표기되어 있다. 주목해야 할 새로운 바그너 가수 발견!

멜롯 역의 전태상은 배역의 존재감이 워낙 작아서 별로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 목소리가 빛을 머금은 듯 밝고 단단하다고 느꼈으나 바그너에 어울리는 목소리는 아니라고 판단된다.

이 공연을 끝으로 위대한 바그너의 해는 갔다. 앞으로는 무슨 재미로 사나?

2005년 12월 17일 씀.
2006년 2월 9일 고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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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철. 2006.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2009년 8월 17일 월요일

2005.10.20. 지휘자 이윤국을 주목하라! (서울바로크 합주단 / 트리스탄과 이졸데 1막 전주곡)

서울바로크합주단 창단 40주년 특별정기연주회
2005년 10월 20일(목) 저녁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 리더: 김 민 / 객원지휘: 이윤국
- 베이스: 연광철 / 바이올린: 김홍준 / 비올라: 윤진원
   W.A.Mozart - Serenade No.6 in D Major K.239
   W.A.Mozart - Aria for Bass, K.612 "Per Questa Bella Amno" (베이스:연광철)
   K.Atterberg - Suite for Violin, Viola and String Orchestra Op.19 No.1
                       (바이올린: 김홍준 / 비올라: 윤진원)
   W.A.Mozart - Aria for Bass, K.541 "Un Bacio di mano" (베이스:연광철)
   W.A.Mozart - Aria of Leporello,"Madaminal, il catalogo e questo" (베이스:연광철)
                      -Intermission-
   R.Wagner - Opera 'Tristan and Isolde' 중 전주곡
   R.Wagner - Konig Markes Klage, "Tatest du's wirklich?" (베이스:연광철)
   A.Piazzolla - Tre Minutos con la Realidad
                       Concierto para Quinteto
                       La Muerte de Angel



내가 이날 연주회에 간 것은 순전히 연광철의 바그너를 듣기 위해서였다. '연광철'과 '바그너' 이 두 단어의 결합이라면 다른 것은 아무래도 좋았고, 관심도 없었다. 그런데 나는 덤으로 이윤국이라는 뛰어난 지휘자를 발견하는 횡재를 했다. 이윤국은 모차르트를 연주할 때부터 크고 명쾌한 비팅으로 작품의 주요 포인트를 매우 잘 살려내더니, 바그너를 할 때에는 소편성으로 바그너를 연주할 때 생기는 난점을 효과적으로 해결하기도 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트리스탄과 이졸데> 1막 전주곡을 연주할 때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긴 호흡으로 거대한 크레셴도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성급하거나 불필요한 아고긱과 뒤나믹의 변화는 자칫 음악의 흐름을 망쳐 버리기 쉽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큰 폭의 크레셴도를 감당할 만큼 큰 편성의 오케스트라가 꼭 필요하다. 이윤국은 서울바로크합주단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위험천만한 모험을 했는데, 표현할 수 있는 셈여림의 한계를 빠른 템포 변화와 거친 호흡 조절로 보충한 것이다. 결국, 지휘자는 전체적인 해석의 틀이 특이하기는 해도 작품 속에서 '드라마'를 살리는 데에는 성공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지휘자의 해석이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성을 유지해서 나름대로 상당한 설득력이 있었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이른바 '트리스탄 코드'를 중심으로 하는 세 번의 동형진행에서는 크레셴도와 디미누엔도의 낙차가 큰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데, 이날 연주에서는 그냥 부드럽게 처리했다. (물론 편성이 따라주지 않기도 했다.) 다만 마디 10에서 스포르찬도를 나름대로 살린 것은 좋았다. 마디 17에서는 첼로의 주선율 연결이 자연스럽지 못했는데, 나의 외람된 의견으로는 지휘자와 악단 사이에 사인이 안 맞아서 첼로의 반응이 살짝 늦은 탓에 일부 악기가 데크레셴도를 과하게 했거나 심지어 소리가 멈추어버린 뒤에야 첼로 소리가 나기 시작한 것이 아닐까 한다.

마디 23부터 45까지 악보에 복잡하게 나타나는 지시들은 주로 템포 및 셈여림과 관련한 것인데, 내가 여기서 받는 느낌은 마치 주저하는 듯한 심리상태다. 그런데 이윤국은 템포의 변화를 매우 빠르고 크게 함으로써 차라리 격렬한 마음을 억제하려고 노력하는 듯한 느낌을 전달했다. 마디 47 이후부터는 불규칙한 아고긱의 변화가 정리되며 리듬 패턴이 고정되는 양상을 보이는데, 지휘자는 상당히 빠른 템포로 밀어붙였다. 그런데 마디 52에서는 '너무 서두르지 말 것(Ohne zu eilen!)'이라는 지시가 있고, 마디 63에서는 '절대 서두르지 말 것(Niemals eilen!)'이라고 되어 있다. 지휘자는 결국 바그너의 지시를 무시한 셈이지만, 편성의 제약을 고려하면 이는 차라리 영리한 해석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마디 47부터 끝까지 지휘자가 악단으로부터 이끌어낸 고양감은 소편성 치고는 대단한 것이었다. 다만, 클라이맥스에서 폭발력이 약했던 것은 어쩔 수 없었으리라.

전주곡의 끝을 2막 브랑게네의 비명 직전으로 연결한 재치는 썩 마음에 들었다. 현의 재빠른 보잉 변화도 좋았다. 거친 리듬과 함께 등장한 연광철의 노래가 끝난 뒤에는 3막 마지막 부분(In dem wogenden Schwall, in dem tönenden Schall, in des Weltatems wehendem All)으로 자연스럽게 건너뛴 아이디어도 좋았다.

연광철의 노래는 과연 명불허전이었다. 독일 음악평론계의 황제라는 요아힘 카이저는 연광철을 일컬어 '바그너가 찾던 바로 그 목소리'라 했던가. 모차르트를 노래하던 담백하고 섬세하면서도 힘차고 단단한 목소리는 바그너를 할 때에는 전혀 다른 목소리가 되어 비탄에 빠진 마르케 왕을 훌륭하게 표현했다.

<니벨룽의 반지> 한국 초연의 대단원이 끝나던 날, 나는 지인과 함께 바그너 자력 연주의 가능성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못해도 좋으니까 <파르지팔> 같은 작품을 무대에 올려만 달란 말이야." 나는 이 말에 대해 바그너를 하겠다고 덤비는 지휘자가 없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윤국이라면 어떨까? 그가 제대로 된 편성으로 바그너를 연주하는 것을 듣고 싶다. 이날처럼 변칙적인 아이디어를 쓰지 않고도 바그너를 잘할 수 있을까? 한국인 바그너 지휘자의 탄생을 기대해도 좋을까? 피아졸라의 탱고를 매우 잘했는데다 앙코르도 피아졸라의 작품으로 한 것을 보면 그의 취향이 그쪽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가 바그너를 본격적으로 지휘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괜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그의 지휘자로서의 능력이 뛰어난 것은 분명하다. 이윤국은 내가 주목해야 할 지휘자 1순위가 되었다.

2005년 10월 30일 씀.

고클래식 댓글:

streicher: 특히 모차르트와 전고전시대의 작품 해석에 능통한 지휘자로 알려져 있죠. 10년 전에 C.P.E.바흐와 W.F.바흐의 신포니아를 녹음한 음반(Naxos)이 그라모폰 에디터스 초이스로 선정된 바도 있습니다. 지난 달에 부천에서 부천필을 두 차례 지휘하여 모차르트의 교향곡과 협주곡을 들려 주었는데, 악단의 규모도 30명 정도로 줄여서 템포도 전체적으로 빠르게 설정하여 연주하였고, 비브라토도 극단적으로 자제한다든가 보잉도 빠르게 짧게 하는 등 시대악기 연주를 연상시키는 절충주의적인 해석을 선보였죠. 악보도 직접 들고 와서 며칠 동안 단원들을 한 명 한 명 코치를 했다는데, 아마도 부천필 단원들로서는 상당히 좋은 경험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자주 초빙한다면 국내 오케스트라 단원들도 여러 가지로 많이 배울 수 있겠지요. 참, 피아졸라를 상당히 좋아하는 것 같았습니다. 부천에서 있었던 두 번의 연주회에서 앙코르 곡으로 모두 피아졸라를 들려 주었고, 편곡도 직접 했다는군요... :-)05/10/31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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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gnerian: 그렇군요..;; 어째 모차르트를 잘하더라니... -_-; 연광철의 모차르트도 정말 좋았고, 특히 "Madaminal, il catalogo e questo"가 끝장이었답니다.05/10/31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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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공유라이선스

김원철. 2005.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2009년 8월 13일 목요일

《트리스탄과 이졸데》 음반 리뷰: 구달-웨일즈 내셔널 오페라 1980-1 DECCA

지난 2003년 ☞프리챌 바그네리안(옛 하이텔 바그네리안, 지금은 ☞네이버 바그네리안) 게시판에 올렸던 글입니다. 2004년에 제 홈페이지로 가져오면서 ☞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를 적용했습니다.

옛날 글 다시 보니 참 부끄럽네요. 그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올립니다. ^^


DECCA
[4 CD] 443682-2

바그너: "트리스탄과 이졸데"
WAGNER: Tristan und Isolde

Tristan - John Mitchinson
Isolde - Linda Esther Gray
Brangaene - Anne Wilkens
Marke - Gwynne Howell
Kurwenal - Phillip Joll
Melot - Nicholas Folwell
Hirt - Arthur Davies
Steuerman - Geoffrey Moses
Stimme eines jungen Seemans - John Harris

Reginald Goodall (conductor)
Welsh National Opera


 녹음: 1980-81 Stereo, Digital
장소: Unknown
 

 
고클래식에서 음반 정보를 퍼왔습니다.



트리스탄과 이졸데

레지널드 구달





1막



전주곡에서 저 유명한 '트리스탄' 화음이 처음으로 등장할 때 오보에가 강조된 것은

좋은데, 다른 악기들보다 살짝 늦게 나오기 때문에 역시 뵘의 연주와 같은 충격은

없습니다. 크레셴도의 폭 역시 좁습니다. 느린 템포로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잘 살리고

있지만, 그 대신에 퇴폐적인 맛은 없습니다.



젊은 선원의 노래는 별로입니다. 전주곡에서부터 듣는 사람의 호흡을 압도하지

못하니까 이 중요한 대목에서 이 모양입니다.



이졸데의 "Brangäne, du? Sag', wo sind wir?" 직후부터 나오는 현의 멜로디와

관련한 상징성에 대해서는 뵘 편에서 제멋대로 규정한 바 있습니다.

구달이 만들어내는 물살은 썩 좋습니다. 비록 뵘이나 푸르트벵글러 등의 깊은

맛을 내기에는 이 영국 출신(아마도) 지휘자로서는 역부족으로 보입니다만,

적어도 특유의 리듬감은 1막 내내 잘 살리고 있습니다.



가수들은 별로라고 생각합니다. 이른바 '딕션'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잘 모르는

저로서도 비독일계 가수들이 바그너를 부를 때 생기는 비극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졸데 역의 린다 에스더 그레이로부터는 닐손이나 플락스타트의 템포 데 루바토의

묘미를 느낄 수 없습니다. 특히 트리스탄 역의 존 미친슨은 제가 무지 싫어하는,

비브라토 심하게 하다가 음정이 마구 흔들리는 발성을 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관현악은 꽤 좋은 편입니다. 구달은 음향적인 역량의 부족을 느릿한 템포와

훌륭한 디테일로 충분히 보상하고 있습니다. 쿠르베날이 마침내 트리스탄을 이졸데

앞으로 데려왔을 때 나오는 분노한 이졸데의 모티프(파 솔 시b 라b -

미b 미b 레  레b 레b 파b)는 얼음장과도 같이 싸늘한 눈빛을 연상시키는데,

구달의 연주는 썩 좋은 편입니다. 바이올린을 좀 더 강조했으면 더욱 좋았겠습니다.

그러나 선원들의 "호! 헤! 하! 헤!"는 두 사람의 심리상태를 반영하지 못하고

촐랑대는 것처럼 들립니다. 직후에 순간적으도 몹시 빨라지는 템포도 불만인데,

제 생각에는 여기서 트리스탄의 심리상태를 반영하는 것보다 도취적인 리듬을 살리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약을 나눠 마시고 서로 쳐다보는 대목에서

현악기들이 만들어내는 트레몰로는 푸르트벵글러 판에 비길 만합니다. 선원들이 국왕

만세를 외치는 부분에서도 음향적인 아쉬움이 있지만 예의 리듬은 잘 살리고 있습니다.





2막



전주곡 시작 부분에서의 신기한 '이졸데 리듬'에 대해서는 뵘 편에서 자세하게 기술한

바 있습니다. 이 리듬에 대한 배신(!)을 제외한다면 다른 부분은 썩 좋습니다.

현악기들의 3연음도 뵘을 제외한 다른 녹음들에 비하면 잘 들리는 편입니다.

특히 목관 악기들의 데크레셴도를 동반한, 마치 바다 속 세계를 보여주는 듯한

음향효과가 현악기들의 디테일에 힘입어 잘 살아나고 있습니다. 구달의 음향효과는

물과 관련한 것들은 뵘의 그것에 꽤 근접하고 있는데, 섬나라 사람의 타고난 감각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수들의 노래는, 1막에서는 독특한 리듬을 타는 것이 뛰어난 관현악에 미치지 못했던

것에 비해 2막에서는 정적인 성격이 강화되어서인지 꽤 괜찮게 들립니다.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만난 직후의 고음처리도 매우 좋습니다. 이졸데를 맡은 린다 에스더 그레이의

날카롭게 질러대는 고음은 다른 가수들이 흉내 내기 힘들어 보입니다.

"O sink hernieder" 대목에서 구달은 역시 뵘과 같은 음향보다는 푸르트벵글러 같은

서정성을 택했습니다. 그러나 디테일이 잘 살아서 푸르트벵글러와는 비교할 수 없는

좋은 음향을 내주기도 합니다. 다른 녹음에서는 잘 안 들리는 소리가 들리기도 합니다.



브랑게네의 두 차례의 아리오소 역시 서정성은 좋지만 시선의 이동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데에는 부족함이 있습니다. 이는 현악기들의 도취적인 음향을 살리는 데에 실패한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가수의 내공 부족으로 인한 오버랩 효과의 실패에 더욱 큰

원인이 있습니다. 여기서 하프 소리는 다른 어떤 녹음보다도 또렷하고 영롱하게 들립니다.

이에 비하면 다른 녹음들에서 하프 소리가 있었나 싶습니다.



마르케 왕 등이 등장하는 대목에서 브랑게네의 비명 소리가 매우 사실적입니다.

음악적인 내공이 부족하면 이런 거라도 잘해야 합니다. 마르케 왕의 등장을 알리는

트럼펫 연주 뒤에 나오는 음향효과는 푸르트벵글러의 것을 그대로 흉내 낸 것 같습니다.

저음군과 고음군이 한 박자씩 주고받기만 하기 때문에 단순하게 들립니다.

푸르트벵글러만큼의 풍성한 저음의 울림을 만들어내지는 못하는 대신 디테일이 잘

살아서 그래도 푸르트벵글러보다는 낫습니다.



마지막 관현악 관현악의 총주는 절반의 성공입니다. 트럼펫 등은 잘했는데, 그 전에

다른 악기들이 굼뜨는 템포로 박력 없이 연주했기 때문에 '카메라 워크'의 효과가

반감되었습니다.





3막



전주곡 별로입니다. 뵘과 비교하면 화음의 밸런스를 잘 살리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묵직한 저음이 없는 것이 용서가 안 됩니다. 잉글리쉬 호른의 솔로는

음색은 좋은데 셋잇단음을 스타카토로 연주하라는 악보 상의 지시를 지키지 않았습니다.

가장 중요한 이것을 빼버린 탓에 뵘이나 푸르트벵글러의 연주에서 느끼수 있는 묘한

정서가 반감되고 그저 유려하기만 합니다. 현악기들은 그나마 스타카토를 제대로 살려서

연주하는군요. 템포도 적당합니다.



뿔피리 소리 바뀔 때, 소리가 매우 멀리서 작게 들립니다. 아티큘레이션이 너무 좋아서

잉글리쉬 호른이 아니라 트럼펫이 아닌가 의심스럽기도 한데, 확실한 것은 모르겠지만

잉글리쉬 호른 맞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이 부분에서 소리가 작은 것은 제 취향에

맞지 않습니다. 이어서 이졸데가 등장할 때까지의 연주는, 물론 제 취향 문제이겠지만,

트리스탄의 광분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합니다. 느긋한 템포 등이 딱 푸르트벵글러입니다.

이것은 쿠르베날의 전투장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린다 에스더 그레이의 사랑의 죽음은 별로입니다. 크레셴도의 묘미도 별로이고,

특유의 리듬과 아첼레란도를 표현하는 데에도 실패했습니다. 관현악도 비슷한

스타일인 푸르트벵글러의 것에 도저히 미치지 못합니다.



2003년 7월 24일 씀.

정보공유라이선스

김원철. 2004.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2009년 8월 12일 수요일

《트리스탄과 이졸데》 음반 리뷰: 푸르트벵글러-필하모니아 1952 EMI

지난 2003년 ☞프리챌 바그네리안(옛 하이텔 바그네리안, 지금은 ☞네이버 바그네리안) 게시판에 올렸던 글입니다. 2004년에 제 홈페이지로 가져오면서 ☞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를 적용했습니다.

옛날 글 다시 보니 참 부끄럽네요. 그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올립니다. ^^


EMI
[4 CD] 724356762121

바그너: "트리스탄과 이졸데"
WAGNER: Tristan und Isolde

Ludwing Suthaus (Tristan)
Kirsten Flagstad (Isolde)
Blanche Thebom (Brangäne)
Josef Greindl (König Marke)
Dietrich Fischer-Dieskau (Kurwenal)
Rudolf Schock (Sailor, Shepherd)
Edgar Evans (Melot)
Rhoderick Davies (Helmsman)

Wilhelm Furtwangler (conductor)
Chorus of the Royal Opera House, Covent Garden, Philharmonia Orchestra


 녹음: 1952/06/10-21, 23 Mono
장소: Kingsway Hall, London
 


고클래식에서 음반 정보를 퍼왔습니다.



트리스탄과 이졸데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1막



첼로의 세 음에 의해 유도되는 '트리스탄 화음'은 음향효과만으로 보면 뵘보다 못합니다.

크레셴도와 데크레셴도의 폭도 좁아서, 작품에 대한 해석의 관점이 여기에서부터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물론 음향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독특한 호흡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어떤 분은 '뭉게뭉게 피어오른다'라는 표현을 쓰시던데, 저는 '뭉게뭉게'까지는

모르겠고 아무튼 대단히 완만한 곡선으로 서서히 진행되는 크레셴도는 푸르트벵글러의

트리스탄 연주에서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주곡에 이어지는 젊은 선원의 노래도 분위기를 잘 살렸습니다. 비브라토를 조금만

더 느리게 했으면 더 좋았겠습니다. 시작할 때 약간 삑사리를 내는 것이 옥의 티입니다.



이졸데의 "Brangäne, du? Sag', wo sind wir?" 직후부터 나오는 현의 멜로디와

관련한 상징성에 대해서는 뵘 편에서 제멋대로 규정한 바 있습니다.

푸르트벵글러가 만들어내는 물살은 전주곡에서부터 예고한 바와 같이 아직은 완만합니다.

템포마저 완만하니 더욱 좋습니다. 부드러운 물살에 감춰진 거대한 심해가 느껴집니다.



키르스텐 플라그스타드의 이졸데는 그야말로 명불허전입니다. "Hort meinen Willen,

zagende Winde!"에서부터는 녹음 당시의 나이에 걸맞은 마녀(?)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루드비히 주트하우스의 트리스탄도 잘 어울립니다.

쿠르베날은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 훌륭합니다. 블랑셰 테봄의 브랑게네도 좋습니다.



쿠르베날이 마침내 트리스탄을 이졸데 앞으로 데려왔을 때 나오는 분노한 이졸데의

모티프(파 솔 시b 라b - 미b 미b 레  레b 레b 파b)는 얼음장과도 같이 싸늘한 눈빛을

연상시키는데, 여기서는 좀 약하군요. '뭉게뭉게'도 좋지만 이렇게 물러서야...



둘이서 사랑의 묘약을 마신 직후 길게 늘어지는 현악기들의 트레몰로는 기가 막힙니다.

배가 도착하고 국왕 만세를 외치면서 끝날 때까지도 매우 좋습니다. 전주곡에서 나타난

바와 같은 긴 호흡의 크레셴도는 1막 전체에 걸쳐서 계속 나타납니다.





2막



전주곡 시작 부분에서의 신기한 '이졸데 리듬'에 대해서는 뵘 편에서 자세하게 기술한

바 있습니다. 푸르트벵글러의 연주에서는 역시 뵘과 같은 음향효과는 없습니다.

느긋한 출발이라고 좋게 봐줄 수도 있겠습니다만, 역시 '약하다'고 하는 게 좋겠습니다.



플락스타트와 주트하우스, 노래 정말 잘합니다! 주트하우스는 감정표현 등을 제외하면

뵘 판에서의 빈트가센보다 낫습니다. 플락스타트도 '하이 C'와 관련한 구설수를

무시하고 귀에 들리는 소리만으로 판단한다면, 50이 넘은 나이를 무색하게 할 만큼

아름답습니다. 제 취향은 그래도 비르기트 닐손이지만, 목소리의 톤만큼은 그 어떤

이졸데보다도 훌륭합니다. 관현악은 이 두 사람의 명연을 위해 뒤로 살짝 물러나

'반주'에 충실한데, 이는 뵘 판에서 관현악이 중심적인 위치에 서서 등장인물의

심리상태를 절묘하게 표현해내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이토록 탐미적인 서정성은

뵘의 감각적인 연주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마르케 왕 일당(?)이 등장할 때의 음향효과는, 무거운 저음은 뵘보다 더 긁어대지만

첼로+콘트라바스의 저음군과 바이올린+비올라의 고음군이 그저 한 박자씩 주고받기만

하기 때문에 리듬이 단순하게 들립니다. 요제프 그라인들이 부르는 마르케 왕의

모놀로그는 훌륭하기는 하지만 역시 지루합니다. -_-;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마지막

대화는 아름답기 그지없습니다. 마지막 관현악은 약합니다.





3막



전주곡에서 역시 푸르트벵글러는 배신을 하지 않습니다. 저음이 이 정도는 되어야 합니다.

뿔피리(잉글리쉬 호른) 솔로는 발군입니다.



주트하우스와 피셔-디스카우가 엄청난 노래 대결을 펼칩니다. 착 가라앉은 관현악도

매우 좋습니다.



뿔피리 소리가 바뀌는 대목에서 잉글리쉬 호른은 멀리서 자그마하게 들립니다.

더군다나 (테크닉 문제겠지만) 덤덤한 표정으로 연주합니다. 이것은 제 취향은 아닙니다.

사실감보다는 큰 음량으로 심리상태를 반영하는 것이 저는 좋습니다. 점점 고조되는

관현악도 뵘 판에서와 같은 발작 없이 완만한 곡선을 유지한 채로 점차 상승합니다.

대단히 깊이 있는 연주이기 때문에 밋밋하게 들리지는 않지만 그래도 뵘 보다는 못하다고

느낍니다.



트리스탄이 죽은 직후에 부르는 이졸데의 아리오소에서 관현악의 은은한 울림이

인상적입니다. 가사를 따라가느라 바빠서 처음에는 안 들리던 부분이 들리니

신기합니다. "Gebrochen der Blick!" 직전부터 시작되어 "Nur einmal, ach!

nur einmal noch!"에서 꺼질듯 꺼질듯 가늘게 그리고 점점 느리게 연주되는

오보에 등의 소리는 의식이 꺼진 트리스탄의 생명의 마지막 에너지가 소진된 듯한

느낌을 줍니다. 이것을 제대로 표현한 것은 푸르트벵글러가 유일하며, 뵘 판에서조차

별로입니다. 악보에는 분명히 "Immer langsamer(점점 느리게)"라고 쓰여있습니다.

(New York : Broude Brothers)



쿠르베날의 전투 장면에서 관현악은 너무 싱겁습니다. '뭉게뭉게' 다 좋은데,

지금은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상황입니다.



플락스타트의 마지막 '사랑의 죽음'은 매우 훌륭합니다. 비르기트 닐손과 같은 독기는

없지만, 절묘한 템포로 리듬을 타면서 서서히 고조시키는 능력은 닐손 못지않습니다.

'사랑의 죽음'에서 닐손을 제외한 다른 가수들이 감히 넘보지 못할 명연입니다.

제가 들어본 다른 가수들은 이에 비하면 너무나 가소롭습니다. 그나마 발트라우테

마이어 정도가 플락스타트에 근접해 있습니다.



2003년 7월 24일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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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철. 2004.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2009년 8월 8일 토요일

이졸데 리듬

1막에서 서로 사랑을 확인한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밀회를 즐기기 위해 밤이 깊어지기를 기다린다. 이졸데는 멜롯의 간계를 간파한 브랑게네의 만류를 뿌리치고 횃불을 땅에 던져 끔으로써 트리스탄에게 신호를 보낸다. 그리고 초조한 마음으로 트리스탄을 기다린다. 이때의 관현악은 2막 전주곡에 거의 그대로 링크되어 있다.

마디 3의 첫째 박까지 이어지는 모티프는 흔히 ‘낮’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쇼펜하우어의 용어로는 외부로 드러나는 물질세계에서의 현상으로, 이는 ‘밤’으로 대변되는 내적 의식세계의 실체와 반대되는 개념이다. (Barry Millington, "Tristan und Isolde," NGD2.)

Ⓟ New York : G. Schirmer, c1934. 출처: http://www.dlib.indiana.edu

횃불이 서서히 꺼지며 ‘밤’의 세계가 펼쳐지고(마디 3 ∼ 마디 8), 트리스탄을 기다리는 이졸데의 초조한 마음이 베이스 클라리넷의 마치 발을 동동 구르는 듯한 모티프로 나타난다(마디 9 ∼ 마디 11).

이때, 마디 10에서 나타나는 음향적 충격에 주목하라. (나중에 고침: 이곳에 나오는 화음은 '변종 트리스탄 화음'이라 할 수 있겠으나 화성 진행은 이 글의 주된 관심사가 아니다.)

2막 전주곡 m.9-10.
Ⓟ New York : G. Schirmer, c1934. 출처: http://www.dlib.indiana.edu

2막 전주곡 m.1-13.
Ⓟ New York : Broude Brothers, [1900?] 출처: http://www.dlib.indiana.edu

마디 10에서의 진정한 충격은 리듬에서 나타난다. 마디 9에서부터 나타나는 현에 의한 빠른 싱코페이션 리듬은 베이스 클라리넷에 의한 주선율과 충돌하며, 마디 10의 둘째 박에서 클라리넷과 호른이 같은 리듬 분할로 현의 음형을 이어받으면서도 싱코페이션은 갑자기 단절되어 그 리듬에 묘한 충돌이 일어난다. 이것은 또한 베이스 클라리넷의 A(실제 음은 G) 음에도 영향을 준다. 즉 클라리넷과 호른의 ‘방해’로 인하여 베이스 클라리넷의 A 음이 실제보다 (현악기에 의한 관성이 남아 있는 가상의 쉼표만큼) 먼저 연주된 것처럼 들리는 것이다. 이것은 이졸데의 조급한 심정을 직접적으로, 또 감각적으로 느끼게 한다. 1막 전주곡에서의 음향적 충격이 '트리스탄 코드'로 대표된다면, 2막 전주곡에서 음향적 충격을 주는 이 리듬은 '이졸데 리듬'이라 부를 만하다.

그러나 이것을 연주자들이 ‘오류’로 보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수많은 음반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현악기의 음량을 마디 10에서 갑자기 줄이거나, 또는 처음부터 현악기의 음량을 아주 작게 하기도 한다. 악보에서는 모든 악기를 여리게(p) 연주하도록 하고 있다. 베이스 클라리넷은 악기의 특성상 강한 소리를 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거의 듣지 못할 정도로 여린 피아니시모를 내는데에도 오히려 다른 악기보다 뛰어나다. (Hans Kunitz, Die Instrumentation: Clarinette, Breitkopf & Hartel (Leipzig, 1983). 이만방 역, 키다라 악기론 시리즈: 클라리넷, ARTSOURCE (서울: 1989).) 따라서 현악기의 음량을 아주 작게 하는 것은 주선율을 지나치게 부각시키고자 하는 자의적 해석으로 볼 수 있으며, 한편으로는 리듬의 불일치 문제를 비켜가기 위한 편법으로 의심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현악기의 리듬 분할을 바꾸어 쉼표를 길게, 싱코페이션 리듬을 짧게 한 또 다른 ‘책략’도 있다. 여기에 템포마저 느리게 잡으면 리듬의 충돌을 크게 희석시킬 수 있다. 그러나 느긋한 템포는 주인공의 조급한 심리상태를 표현하는 데에는 실패 요인으로 작용한다. 악보에서는 템포를 빠르게 할 것을 지시하고 있다(Sehr lebhaft; Molto vivace).

클라리넷과 호른의 어택(attack)이 베이스 클라리넷의 A보다 살짝 늦게 나오는 연주도 있다. 토마스 비첨의 1937년 녹음(1951년, 나치의 패망 이후 6년간의 침묵 끝에 새로운 바이로이트의 역사가 시작되기 이전 녹음은 바그너 시대의 원형에 가깝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가치가 있다.)에서는 템포를 몹시 빠르게 함으로써 잘못된 리듬에도 불구하고 양호한 수준의 음향적 충격을 유지하고 있다. 사실 이 녹음에서 클라리넷과 호른의 어택이 늦어진 것은 지휘자의 의도라기보다는 연주자의 실수로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한 측면이 있는데, 마디 10에서는 꽤 정확한 리듬 처리를 보이다가 마디 14에서 그러한 ‘실수’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정보공유라이선스

김원철. 2004.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2009년 3월 20일 금요일

트리스탄과 이졸데 마지막 대사 번역 김원철 판본

In dem wogenden Schwall,
in dem tönenden Schall,
in des Welt-Atems
wehendem All ---
ertrinken,
versinken ---
unbewußt ---
höchste Lust!

파도치는 물결 속에,
소리치는 울림 속에,
세상 숨결 불어오는
우주 속에
빠져들어,
가라앉아
나를 잊으리라
더없는 기쁨이여!

2006년 9월 13일 수요일

볼조겐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해설 독일어 원문

- SiteLink #1 : http://www.erzabtei.de/antiquariat/online_bibliothek/wagner/parsifal/parsifal_test.html



Wolzogen, Hans ¬von¬:
Thematischer Leitfaden durch die Musik zu Richard Wagnerss Tristan und Isolde, nebst einem Vorworte über den Sagenstoff des Wagner'schen Dramas. - 3. unveränd. Aufl. - Leipzig : Reinboth, 1888. - 47 S. : mit Notenbeispielen


2005년 4월 16일 토요일

"트리스탄"의 synesthesia

제목 없음

최근 모 동호회에서 메시앙에 대한 얘기가 synesthesia라는 현상에 대한 논의로 이어졌다. 그에 대해 실제로 synesthesia를 경험하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이 댓글을 달았는데, 흥미롭게도 자신이 특이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뚜렷이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글쓴이의 요청에 따라 실명이 드러나지 않도록 편집했다.

궁금해서 그러는데..

글쓴이

amina (amina)

날짜

2005년 4월 8일 13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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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해서 그러는데,

소리를 색깔로 느끼는 능력이 유전적인것이 맞나요?

저는 늘 그러는데 별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요.

만일 뭔가 별다른 능력이라면, 그럼 다른 분들은 음악을 들으면서 그 소리의 색깔이 안느껴지신다는 건지..

그리고 이상한 점은 엘렌 그뤼모가 말하던 그 음악들과 그녀가 느낀 색깔들이

제가 느낀 색깔과는 많이 다르더군요. 예를 들어 그녀가 검은색이라고 말한 곡이

저는 황금색으로 느꼈거든요?

따라서 이런 것은 어떤 능력이라기 보다는

어디까지나 단순히 주관적인 생각에 그치는게 아닌가 싶은데요..

이런 건 있습니다.

전 쇼팽의 곡을 들으면 언제나 연보라색이 느껴지는데 그 채도는 곡마다 다릅니다.

왈츠를 들을 때와 소나타를 들을 때, 그리고 협주곡을 들을 때가 다르다는 거죠..

하지만 색깔의 느낌은 늘 연보라색- 혹은 보라색입니다.

* 참고로 메시앙의 음악도 제 의견과는 다르네요..

전 오팔 보석색 혹은 푸른색-녹색 쪽이던데..

synesthesia, synesthete (수정)

글쓴이

김원철 (wagnerian)

날짜

2005년 4월 12일 1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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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 synesthesia를 지각하는 사람은 'synesthete'라고 합니다. 실수인 것 같습니다만, 철자가 틀렸기에 괜히 딴지 걸어 봤습니다.

* 예전에 관련 논문들을 읽어본 기억이 있는데, Cytowic이라는 사람이 많은 연구를 했습니다. 생각나는 대로 써보겠습니다. 기억이 잘못되었을 수 있으니 참고만 하세요.

1. synesthesia는 원론적으로 오감 가운데 하나가 다른 감각을 한 가지 이상 수반하는 현상입니다. 청각 표상이 시각 표상을 수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음악을 듣고 간지럼을 탄다거나 달콤한 냄새를 맡지 말라는 법도 없지요. (나중에 추가함: synesthesia의 유형은 매우 다양하며, 사람에 따라 같은 음악을 듣고도 서로 다른 시각적 경험을 한다고 합니다.)

2. 한아루미님 말씀대로 synesthesia는 정신장애에 의해 유발될 수도 있지만, 많은 경우 선천적이라고 합니다. "유전적인 성향이 있다는 것은 증명된 바가 없"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기억하기로는 적어도 선천성인 경우 유전적 요인을 의심할 만한 정황이 충분한 것 같습니다. 아, 생각해 보니 색맹처럼 X 염색체를 통해 유전된다는 주장도 본 것 같습니다. 그밖에 정상인 가운데서도 LSD 등의 환각성 약물에 의해 일시적으로 synesthesia를 경험할 수 있다고 하고, 생후 4개월 이전의 유아들이 synesthesia를 경험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3. 음악가 중에서는 스크리아빈이 synesthete였다고 합니다. (정신분열증 환자였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스크리아빈은 '프로메테우스'인가에서 소리 대신 빛이 나는 건반악기를 사용하기도 했지요. 칸딘스키도 비슷한 경우였다고 합니다. 또 약 2만 5천 명 가운데 한 명 정도가 synesthete라고도 합니다. (수치를 너무 크게 잡은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서 얻은 수치인지 제가 읽은 논문에서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저는 믿지 않습니다.)

4. 선천적인 synesthete는 지능이 현저히 높거나 낮은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 사람 이름이 뭐였더라? 초록색 이름이었는데...'

5. synesthete의 뇌는 thalamus인가 hippocampus인가, 아무튼 그 비슷한 동네(?)의 기능이 정상인과 다르다고 합니다.


김원철
http://wagnerian.textcube.com

amina님께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글쓴이

김원철 (wagnerian)

날짜

2005년 4월 12일 17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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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ina님께서는 제가 논문을 통해서만 알고 있던 'synesthete'이신 모양이네요.

실례가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신기한 마음에 한 가지 여쭙겠습니다.

바그너를 들을 때에는 어떠세요?

죄송합니다. 정말로 궁금하거든요!

re: amina님께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글쓴이

amina (amina)

날짜

2005년 4월 16일 12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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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이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1. 바그너를 들을 때

바그너를 제대로 들어본 적이 별로 없어서 잘 기억은 안납니다만

짙은 남색과 황금색이 섞인 느낌이었던 것 같군요.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경우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가사가 담긴 음악과 그렇지 않은 음악의 경우 가사가 없는 쪽이

색채는 더 잘 느껴집니다. 저는 오페라를 매우 좋아하지만 아무래도 가곡이나 오페라를

듣게 되면 내용에 집중을 하게 되기 때문이 아닐까요. 하지만 가사에 집중을 할 수 없는

경우 (아예 못알아 들을 때, 내용에 대해서 전혀 모를 때)엔 색깔에 대해서 느낄 수 있습니다.

2. synesthetia

위에 언급하신 논문이나, 음악사적으로 유명한 작곡가의 발언이나, 두뇌 신경학적으로

말씀하신 것 모두 흥미롭습니다.

제 단순하고도 짧은 생각을 말해보자면,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tone colour에 대한 개념을 압니다.

주로 음악을 오랜 시간을 공부하면서 (그것이 악기이든 성악이든 작곡이든 간에)

이것에 대한 개념을 발전시키고 실기 또한 연마하지요.

전 그것이 확장된 경우 혹은 많이 발달한 경우가 아닐까 싶군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 몇가지를 말씀드려볼까요.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쓴 일기 중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리히터 연주)를 듣고는

'... 강렬한 빨간 색과 초록 색이 아른거린다..' 라고 썼더군요

그리고 초등학교 3학년 때 쇼팽의 왈츠 C#을 배우면서

'이 음악은 연보라 색이네'라고 한 기억이 있습니다.

그보다 더 이전인 초등학교 1,2학년경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를 듣고

'희고 동글동글한' 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군요

이 때엔 분명 tone colour라는 개념을 배우기 전이거든요..

저도 음악은 '색채'다 라고 생각합니다. 메시앙과 같이요.

거꾸로 그림을 보면 음악을 떠올리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지요.

음색과 음고색

글쓴이

김원철 (wagnerian)

날짜

2005년 4월 16일 15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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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고맙습니다. 참고가 될까 해서 amina님과 다른 감각세계를 경험하는 사람으로서의 저의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소리에 대한 어휘는 대부분 시각이나 기타 감각으로부터의 유추 또는 은유로부터 파생한 것들입니다. 소리가 높다/낮다, 크다/작다, 밝다/어둡다, 부드럽다/거칠다, 감미롭다, 선율이 상행 도약한다, 화성 진행이 크로마틱(chromatic)하다...

음색(音色, timber, klangfarbe)이라는 말 또한 소리의 어떤 특징을 색채와의 유추로 나타낸 것이고요. "tone color"라는 말은 "klangfarbe"라는 독일어를 번역한 것입니다(Webster's Third New International Dictionary of English).

amina님께서는 "tone color"를 특정 음고(pitch)가 주는 고유한 느낌을 뜻하는 말로 사용하신 것으로 판단됩니다. 이것을 가리키는 용어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pitch color" 정도로 말할 수 있겠군요. 절대음감(absolute pitch)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당연히 이것을 알고 있고, 저처럼 절대음감이 없으면서도 음감이 좋은 편인 사람도 어렴풋이 이것을 느낍니다. 그도 아니면 특정 조성 및 화성적 맥락에서 음계음(절대적 음고가 아닌)이 주는 특징 정도는 음치가 아닌 다음에야 대부분이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청각적 경험을 기술하는 어휘가 빈약함에서 비롯하는 단어의 의미확장으로 볼 수는 있어도, 실제의 감각과 지각이 그에 직접적으로 반영되었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찬란한 트럼펫 소리를 들을 때 '금가루가 똑똑 떨어진다.'라는 은유적 표현을 쓸 수 있을지언정 실제로 황금색을 지각하지는 않는다는 것이죠. 물론 amina님 같은 특수한 경우도 있겠지만요.

synesthesia는 감각(sensation) 또는 지각(perception)의 차원으로 보입니다. 이것은 마치 절대음감을 가진 사람이 음고를 듣고 손쉽게 음이름을 알아맞히는 것처럼, 또는 색맹/색약이 아닌 사람이 빨간색을 보고 빨간색이라고 알아보는 것처럼 즉각적이고 자동적이며 일관된 능력입니다.

반면, 대부분의 사람이 경험하는 '공감각(cross-modality)'은 인지(cognition)의 차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절대음감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만, 특정 음고를 듣고 그 음이름을 썩 잘 알아맞힐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즉각적이지도 자동적이지도 일관되지도 않습니다.

다만, synesthesia를 경험하지 못하는 대부분의 사람에게도 그 공감각적 비유 체계에 어느 정도 일관성은 있습니다. 이를테면, 사람들은 높은 소리를 '밝은' 소리로, 낮은 소리를 '어두운' 소리로 느끼는 경향이 있습니다. (실험심리학적 증거도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바그너의 "트리스탄"이나 쇼팽, 모차르트 등의 음악에 대한 amina님의 색채 묘사에 대해 그것이 음악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트리스탄"에 샛노란 색은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지요? 메타/바이에른 국립극장의 트리스탄 DVD에서 콘비츠니가 연출에 사용한 샛노란 소파를 보고 많은 사람이 그것을 '엽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밖에도 그 연출에 사용된 천연색 색채 디자인이 차라리 변태적(?)이라고 느낍니다. ^^;)

마지막으로, 저의 학사학위논문을 소개합니다. 구상부터 완성까지 보름 만에 졸속 작성했는데다가 실험 디자인에 치명적인 결함도 있습니다만, 적어도 흥밋거리 정도는 될 것 같습니다. (논문 받기)

도움이 되었기를.

김원철
http://wagnerian.textcub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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