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입니다.
최근 ’파친코’라는 드라마가 제법 화제가 됐습니다. 한국계 미국인인 이민진 선생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했고, 드라마 각본과 감독을 모두 한국계 미국인이 맡았으며, 미국 자본으로 제작되어 미국의 비디오 스트리밍 서비스인 애플TV+로 방영된 작품이지요. 뉴욕타임스, 가디언, CNN 같은 영미권 메이저 언론에서 호평하는 등 해외에서 꽤 성공한 작품인데, 한국에서는 한국 방송사에서 방영된 것도 아니고 시장점유율 높은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발표된 것도 아니어서 작품의 완성도에 비해 화제성이 그에 미치지 못한다는 느낌이기도 합니다.
이 작품은 재일 조선인들이 겪은 차별과 수난의 역사를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고증을 꽤 잘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던데요. 그런데 배우 권해효 선생이 대표로 있는 인권단체이자 재일조선학교를 알리는 일을 하고 있는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의 김명준 사무총장은 재일 조선인들이 본명과 통명을 구분해 차별을 피하려고 했던 역사를 이 작품이 살리지 못한 점, 재일조선인들의 공동체의식을 보여주지 못하고 조선인끼리 가혹한 모습이 두드러졌던 점, 억지스러운 설정과 연출로 일본에 대한 불필요한 증오를 부추기는 장면이 빈번한 점 등을 비판하기도 하더군요. 저는 그 가운데 한 단락에 특히 공감했습니다.
“드라마에는 원작 소설에는 없는 몇 장면이 창작되었다. 가령 선자와 이삭의 도일 장면에서 어느 이름 모를 가수의 자결 장면이 그렇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그저 늙은 일본 부호의 손이 그 조선인 여가수의 어깨를 만지고 그녀는 무대에 올라 고급 와인과 서양요리를 즐기는 일본인들을 위해 노래하다 갑자기 ’판소리’를 노래하며 저항하는듯 하다. 배 가장 밑바닥의 조선 노동자들은 그 소리에 쿵쿵거리며 박자를 맞추고 (판소리에 어울리지 않는 박자였다) 여가수는 칼을 꺼내 자결한다. 그리고 시즌1이 끝날 때까지 이 장면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우리는 일제의 탄압에 맞서 더 이상 굴욕을 당하기 싫은 어느 여성 가수의 비참한 최후라고 막연히, 강제로 추론해야 한다. 슬퍼하거나 분노하라는 뜻인가? 가장 하지 말아야 할 어설픈 설득이다.”
자살한 가수는 헨델의 ’울게 하소서’를 부르다 말고 갑자기 판소리 춘향전 중 ’갈까부다’를 부름으로써 관객을 도발합니다. 그걸 본 일본인 관객들이 격분하는데, 그 이유는 감히 ’조선 노래’를 불렀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이 대목에서 저는 실소했습니다. 다른 나라의 예술을 배척하는 것은 제국주의 열강의 사고방식이 아니라 그들의 침략을 받은 이들의 사고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일제강점기에 이를테면 수많은 판소리 음반이 일본 자본에 의해 녹음되었고, 국립국악원의 전신인 이왕직아악부는 일본 궁내성 산하기관이었습니다. 서양에서도 제국주의 팽창을 계기로 박물학이 발전했고, 파리만국박람회가 그런 역사적 맥락에서 가능했습니다.
또 한 가지 문제는 여가수가 등장하기에 앞서 연주된 슈베르트 현악오중주 C장조(D.956)입니다. 저는 이 작품에 대해 예전에 이렇게 썼습니다.
“4악장은 헝가리풍 춤곡 선율을 저음 현이 마치 기괴한 왈츠처럼 받아치는 주제가 특징적입니다. 바두라스코다는 이것을 ’목숨을 건 발구름’으로 풀이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고삐 풀린 스케르초 뒤에 달리 무엇이 올 수 있을까?” 이것이 코다에 이르면 자꾸만 빨라지는 템포와 더불어 3악장보다 더한 ’악마의 쾌(快)’가 됩니다. 이쯤 되면 슈베르트야말로 ’헤비메탈의 아버지’라 할 만해요.”
드라마에는 4악장 마지막 부분이 짧게 나오는데, 그러니까 이 음악은 한 마디로 ’죽음의 춤’이라 할 수 있겠고, 각본을 쓰신 분은 여가수의 죽음을 암시하는 복선으로 슈베르트 음악을 사용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드라마에 나온 연주에서는 ’죽음’이 잘 드러나지 않고 우아하게만 들리던데요. 연주보다 녹음 상태가 더 문제인 것 같기는 한데, 어쩌면 연출가가 각본가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일본 지배계급이 클래식 음악을 즐기는 상황 정도를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네요.
아쉬운 점을 잔뜩 써버렸지만, ’파친코’는 참 좋은 작품입니다. 음악적 고증이 잘못된 곳이 더 있지만 연출가의 잘못이겠고, 작품에 사용된 음악은 대체로 훌륭합니다. 유명 작곡가 니코 뮬리가 음악감독을 맡았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