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입니다.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에 나오는 ’환희의 송가’는, 일설에 따르면 본디 ’자유의 송가’였다고 하지요. 원작 시를 쓴 프리드리히 실러가 ’자유’(Freiheit)를 ‘환희’(Freude)로 바꾼 까닭은 당시 유럽 사회에서 ‘자유’가 지배계급에 도전하는 불온한 낱말이었기 때문이라고요. 그러고 보면 ’환희’ 대신 ’자유’로 바꾼 노랫말이 더 자연스러운 것 같기도 합니다. “자유여, 아름다운 신의 불꽃이여!”(Freiheit, schöner Götterfunken!)
오늘날 자유는 불온한 낱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보수적 가치를 대표하는 낱말로 여겨지지요. 이를테면 보수 정당에 소속된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사에는 ’자유’가 35번이나 나왔습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의 취임사에는 제가 대학생이었을 때 운동권 선배와 동기들이 쓰던, 뉴스에서는 노동운동가나 좌파 지식인 및 정치인이 흔히 쓰던 낱말도 여섯 번이나 나왔습니다. 그것은 ’연대’입니다.
“어떤 사람의 자유가 유린되거나 자유 시민이 되는데 필요한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다면 모든 자유 시민은 연대해서 도와야 합니다. […] 공권력과 군사력에 의한 불법 행위로 개인의 자유가 침해되고 자유 시민으로서의 존엄한 삶이 유지되지 않는다면 모든 세계 시민이 자유 시민으로서 연대하여 도와야 하는 것입니다.”
윤 대통령과 같은 정당에 소속된 천영기 통영시장이 취임한 뒤로 놀라운 문화사업이 등장했습니다. 시민 ’1인 1악기’를 정책목표로 통영국제음악재단이 추진하고 있는 ’TIMF 음악교실’입니다. 사실 이 사업은 내용상으로는 통영국제음악재단이 출범한 뒤로 8년째 하고 있는 여러 음악 교육사업과 별로 다른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민 ’1인 1악기’라는, 아직은 구호에 가까운 정책목표야말로 정말로 값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형편이 어려운 국민을 선별해서 문화접근성을 높이자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보수 정치인에게 어울리는 정책목표일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한다면 그것은 진보 정치인에게 어울리는 정책목표가 됩니다. 이것은 학교 급식을 전면 무료화할 것인가, 아니면 저소득층 학생에게 선별적으로 무료화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일맥상통합니다. ’모든 국민이 악기 하나쯤은 연주할 수 있는 나라’를 처음 제안한 정치인은 노회찬 전 국회의원입니다.
통영국제음악재단이 그동안 추진해 온 교육사업은 굳이 따지자면 보수적인 정책 방향을 따르는 것들입니다. 제한된 예산으로 성과를 내려면 그것이 현실적이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13만이 넘는다는 통영시민 모두가 정말로 악기 하나쯤 연주할 수 있게 되려면, 또는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 악기 하나쯤 연주할 수 있게 되려면, 정부가 예산을 얼마나 쏟아야 할지 저는 도무지 가늠이 되지 않습니다. 과연 그런 정책목표가 옳은지에 대해서도 사회적 합의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다만, ’모든 시민이 악기 하나쯤은 연주할 수 있는 통영’이 언젠가 먼 훗날에 이루고 싶은 목표가 되는 일은 참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보수 정치인이 진보적 가치에 호응하거나, 반대로 진보 정치인이 보수적 가치에 호응하는 일도 참 멋진 일인 것 같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말한 ’연대’처럼요.
윤이상과 안익태의 업적을 평가하는 일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속한 ’진영’이나 정치 성향에 따라 자칫 ’친북’이나 ’친일’이라는 색안경을 끼고 윤이상과 안익태를 보기 쉽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값진 일은 열린 마음으로 두 사람 모두 한국을 대표하는 예술가로 기리는 일이 아닐까요.
그래서 저는 한때 불온한 말이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은 시구를 되뇌어 봅니다. “자유여, 아름다운 신의 불꽃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