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 9일 금요일

공연장이 사라지는 나라와 거장 예술가를 잃게 된 나라

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입니다. 2월자 칼럼인데 잊어버리고 있다가 4월이 되어서야 뒷북으로 블로그에 올립니다. 그 와중에 통영국제음악제를 성공적으로 치렀다는 반전이 하하하…


“곧 몇 곳의 공연장들이 더 문을 닫을 것 같다고 한다. 쓸쓸하다 못해 화가 난다. 공연장에서 코로나19가 옮겨졌다는 이야기가 단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조심하고 또 조심할 수밖에 없다지만 방역 기준이 공연장에 대해서만 너무 가혹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대중음악평론가 서정민갑 선생이 최근에 이렇게 한탄했습니다. 제가 소셜미디어로 이 글을 소개했더니 생각보다 훨씬 큰 반향이 일어나더군요. 어떤 음악인은 비행기를 탔더니 좌석 띄어앉기를 하지도 않고 사람이 꽉꽉 차더라며, 공연장에 유독 더 엄격한 방역기준이 적용되는 현실에 대해 항변하기도 했습니다. 얼마 전에는 국내 음악계 여러 단체와 명사들이 모여서 ’코로나 피해대책 마련 문화계연대모임’을 조직하고 벼랑 끝에 몰린 예술인들의 생존을 위해 정부가 나서 줄 것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얼마 전 독일에서는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문화과학부와 도르트문트 콘체르트하우스의 연구 용역으로 공연장 내 비말 및 에어로졸 전파에 관해 실험한 결과가 발표됐습니다. 공연장 내 중앙환기시스템이 작동하고 모든 관객이 마스크를 착용한다면 객석이 꽉 차더라도 그다지 위험하지 않다는 놀라운 결론이 나왔습니다. 다만, 연구진은 공연장 내 관객 이동 경로와 로비에 사람이 몰리는 상황 등을 고려하면 객석 50% 정도에 띄어앉기를 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결론 내렸다네요.

독일은 예술인 구제를 위해 정부가 쓰는 돈이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일 겁니다. 올해 문화예술 분야 국비 예산이 21억 유로, 한화로는 약 2조 8천억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액수이고, 지난해보다 약 7% 늘어난 액수이기도 합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대국민 담화로 현재의 국가 재정 현황과 구제 자금 긴급지원의 필요성, 향후 문제 해결 방안 등을 발표했으며, 발표 내용 중 상당 부분을 할애해 예술의 필요성과 예술인 긴급 지원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전 국민이 문화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나라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예산을 투입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1월 16일 베를린 필하모니에서는 키릴 페트렌코가 지휘한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차이콥스키와 라흐마니노프의 관현악곡을 연주했습니다. 원래는 라흐마니노프 단막 오페라 ’프란체스코 다 리미니’를 공연하려고 했었다가 방역 상황을 고려해 성악과 합창이 있는 오페라 대신 관현악곡으로 프로그램을 바꾸었다네요. 다시 말하면, 요즘 독일에서 꽤 편성이 큰 관현악곡 정도는 공연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키릴 페트렌코 이전에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이끌던 지휘자 사이먼 래틀은 현재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있습니다. 래틀 취임 당시 영국에는 자국 출신 거장 지휘자가 고국으로 돌아왔다며 환호하는 사람이 많았지요. 그런데 래틀이 최근 독일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과 계약했습니다. 내년에 계약이 끝나는 런던 심포니와는 계약 기간을 1년 연장하고, 그마저도 끝나는 2023년에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임기가 시작될 예정입니다.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의 전임 음악감독은 지난 2019년 11월에 타계했던 마리스 얀손스였습니다. 현재 음악감독이 공석인 악단 측에서는 당장이라도 래틀을 데려오고 싶었을 겁니다. 그러나 래틀은 런던에 1년 더 머무르기로 함으로써 런던과 뮌헨을 오가면서 두 악단을 이끌 수도 있는 아주 작은 가능성 정도는 열어 두었습니다. 다만, 현재로서는 2023년에 래틀이 런던을 떠난다는 것이 기정사실인 것 같습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의 문화 전문 논설위원 샬럿 히긴스는 래틀의 예정된 떠남을 한탄하는 글을 썼습니다. 히긴스는 조지 오스본 당시 영국 재무장관이 약속했던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새 공연장 건립 계획이 불투명해진 상황, 브렉시트 이후 음악인들의 출입국에 제약이 많아지면 악단 발전에 심각한 걸림돌이 될 것을 래틀이 우려해온 점, 래틀의 부인이자 유명 메조소프라노인 막달레나 코체나가 체코 출신이며 자녀들은 독일에서 자란 점 등을 들며 영국이 자랑하는 거장 사이먼 래틀에게 런던이 매력적인 도시가 되지 못한다고 분석했습니다.

두서없는 글을 여기서 줄여야겠습니다. 진짜 하고 싶은 말을 참으려니 이상한 글이 되고 말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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