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 20일 일요일

한재민의 윤이상 첼로 협주곡

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입니다.


2022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 결선 때 있었던 일입니다. 신동 첼리스트로 유명한 한재민이 크리스티안 바스케스가 지휘하는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와 함께 윤이상 첼로 협주곡을 연주하고 있었습니다. 한재민의 첼로 현 하나가 격렬한 연주를 견디지 못하고 경연 도중에 끊어졌습니다. 새로운 현으로 교체할 때까지 경연은 중단되었지요.

끊어진 현이 첼로 현 가운데 가장 굵은 ’C 현’이라는 점이 특이했지만, 현악기가 연주 도중에 끊어지는 일은 가끔 일어납니다. 그런데 문제는 끊어졌던 현이 얼마 안 가서 또 끊어진 것이었습니다. 한재민은 처음 현이 끊어졌을 때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지만, 두 번째로 끊어졌을 때에는 정말로 당황했다고 인터뷰에서 밝혔습니다. 백스테이지에 있던 동료의 증언에 따르면, 그때 한재민이 당황한 모습이 한눈에 보일 정도였다고 하네요.

저는 당시에 방송 중계차량에서 아주 작은 모니터 화면과 소음 속에서 작게 들리는 소리로 연주를 듣느라 현장 상황을 정확히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현이 세 번째로 끊어졌을 때에는 긴가민가했다가, 연주가 계속되는 것을 보면서 현이 끊어진 게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알고 봤더니 현은 정말로 세 번 끊어졌고, 한재민은 연주를 세 번이나 중단할 수는 없다고 판단해서 끊어진 ‘C 현’ 대신 다른 현으로 연주를 이어갔다고 하네요.

나중에 큰 화면으로 실황 영상을 다시 보면서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재민은 현이 두 번째로 끊어졌을 때에도 남은 현으로 1분 정도 연주를 이어갔더군요. 그러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는지 연주를 중단한 다음 심사위원들을 향해 현을 교체해도 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현이 끊어진 순간은 다시 연주를 이어가기 시작한 지 1분이나 되었을까 싶었던 때였습니다.

윤이상은 첼로 협주곡 중간 부분에서 기타 피크로 현을 튕기는 연주법을 지시하고 있습니다. 마치 거문고 현을 술대로 뜯는 것을 연상시키지요. 현이 실제로 끊어졌던 순간은 ’거문고 피치카토’를 지나서 현을 활로 켜던 때였지만, 이 작품에서 첼로의 가장 굵은 ’C 현’이 여러모로 중요하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한재민이 이 곡을 연습하다가 ’C 현’이 끊어진 일도 한 번 있었다고 하더군요.

윤이상 첼로 협주곡에서 첼로는 윤이상 자신을 상징합니다. 윤이상은 이 곡에서 첼로를 독주 악기로만 사용했을 뿐 오케스트라 악기로 편성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첼로가 오케스트라 전체와 홀로 맞서는 식으로 음악이 흐르고, 그 가운데 홀로 고군분투하는 첼로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기도 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첼로 현이 세 차례 끊어진 해프닝은 의외로 작품과 어울리는 드라마적 효과를 낳았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윤이상 첼로 협주곡에서는 윤이상이 첼로로 전하는 ’독백’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한재민의 ’독백’은 대단했지요. 윤이상의 딸 윤정 선생은 ’영혼이 담긴 연주’라며 한재민을 극찬했습니다. 또 이 작품에는 목탁 소리, 취침나팔 소리, 망자를 태운 배가 저승을 향해 물결을 헤치고 나아가는 듯한 소리 등이 나옵니다. 이와 관련해 윤이상 선생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기도 했지요.

“감방에서의 지리하고 답답한 긴 하루가 지나가면 취침 나팔 소리가 울린다. 슬픈 멜로디의 나팔 소리, 그리고 깊은 정적이 시작된다. 나는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먼 산 속 절간에서 울려오는 목탁 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어느 죄수가 사형될 때 스님이 그 영혼을 인도하기 위하여 염불하며 두드리는 소리라고….”

세 차례 악재에도 불구하고 한재민은 1위에 입상하는 쾌거를 거두었습니다.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 결선에서 윤이상 곡으로 1위 입상자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첫해인 2003년에 고봉인이 윤이상 첼로 협주곡으로 2위에 입상한 일이 있었지만, 보통은 다른 작곡가의 협주곡을 선택한 참가자들이 결선에 오르더군요. 올해는 달랐습니다. 결선 곡으로 윤이상 협주곡을 선택한 참가자가 꽤 많았고, 그 가운데 한재민과 정우찬이 결선에 올라 1위와 2위를 차지했지요. 이런 일이 자주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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