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입니다.
ⓒ김시훈=통영국제음악재단
새벽 1시쯤 되었을 때 잠결에 전화를 받았습니다. 긴급 상황이 발생했으니 요즘 하는 말로 ’단톡방’을 확인하라더군요. 전화하신 직장 동료와 저, 그리고 한 외국인 연주자와 그 연주자의 매니저가 있는 대화방이었습니다. 프랑스로 가는 비행기 이륙 시각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코로나-19 검사 결과지를 잃어버려서 출국 수속을 못 하고 있다더군요. 다행히 연주자는 검사 결과의 사본을 받아 무사히 출국할 수 있었지만 출국 게이트가 닫히기 직전이라 마음을 졸여야 했습니다.
그 연주자는 첼리스트 카미유 토마였습니다. 이번 공연에서 파질 사이 첼로 협주곡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를 아시아 초연했고, 피아니스트 박종해 협연으로 리사이틀에도 출연했었지요. 코로나-19로 유럽에 봉쇄령이 떨어졌을 때 집 지붕 위에서 첼로를 연주하는 유튜브 영상으로 화제가 되었던 스타 연주자이기도 합니다. 이번에 통영국제음악제에 출연하게 된 소식이 프랑스의 TV 프로그램에 나왔다고 하네요. 시청자가 5백만 명쯤 된다는 모양입니다.
카미유 토마는 입국 직후 격리 생활부터 시작해 별별 고생을 했습니다. 그 가운데 압권은 값비싼 첼로의 통관 서류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던 일입니다. 그 첼로는 최근 일본음악재단에서 후원한 악기였고 일본 세관에서 통관 서류를 발급했는데, 알고 보니 그 서류는 일본과 프랑스 사이를 오가는 것만 허락된 것이었다나 봅니다. 그래서 원칙대로라면 통영에서 일본으로 가서 필요한 서류를 재발급받고, 그 과정에서 일본 입국에 따른 2주 격리를 거쳐야 했습니다. 문제는 통영 공연 직후에 프랑스에서 다른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다는 겁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통영국제음악재단과 일본음악재단, 독일에 있는 기획사, 그리고 프랑스에 있는 연주자 가족까지 4개국의 여러 사람이 수많은 메시지를 주고받으면서 상황을 공유하고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했습니다. 한국에서 출국할 때 생길 수 있는 문제가 가장 먼저 해결됐고, 일본 세관을 잘 설득한 끝에 긴급 우편으로 추가 통관 서류를 서울의 호텔에서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카미유 토마는 항공 일정을 여러 차례 변경했고, 코로나-19 검사를 며칠 만에 두 차례 받아야 했습니다. 코로나-19 검사 결과는 출국 기준 72시간 이내에 발급된 것이어야 하거든요.
이번 통영국제음악제 때에도 많은 일이 있었고, 무엇보다 요즘 같은 시절에 이런 행사를 안전하게 운영하기 위해 큰 노력과 많은 사람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미 언론에 보도되었으니 이 글에서는 그 와중에 웃겼던 에피소드를 두 개만 더 소개할까 합니다.
카미유 토마는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지정된 격리장소로 이동하는 일부터 시작해 택시를 몇 차례 이용했습니다. 그런데 택시를 예약하신 분이 카미유 토마(Camille Thomas) 이름이 익숙지 않아서 ‘카유미 토마’로 여러 차례 헷갈려 하셨습니다. 그런데 택시 회사에서 ’카유미’ 씨가 일본 사람인 줄 알고 이렇게 자랑하더라네요. “우리 기사님 중에 일본어 잘하시는 분 있어요!”
개막공연 때 있었던 일입니다.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가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을 크리스티안 바스케스가 지휘하는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와 협연하기 위해 분장실에서 나오고 있었습니다. 통영의 에메랄드빛 바다를 닮은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있었지요. 드레스 자락이 그물처럼 되어 있어서 마치 인어의 비늘이 푸른 파도와 더불어 반짝이는 듯했는데요.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 ’그물’에 하이힐 뒷굽이 끼어서 제대로 걷지를 못하더라고요!
다행히 김봄소리는 무대에 입장할 때 발을 앞으로 차듯이 걷는 법을 익혀서 멀쩡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무대 뒤에서는 달랐습니다. 분장실 입구에서 처음 몇 걸음을 걷는 동안에 마치 시트콤처럼 웃기고 당황스러운 상황이 벌어졌지요. 근처에 있던 여성 동료 한 분이 재빨리 달려가 드레스 자락을 걷어 올렸습니다. 그 와중에 드레스 자락이 위로 올라간 모습이 마치 인어 꼬리가 파닥이는 듯했습니다. 나만 그렇게 생각했던 게 아니었던지, 드레스 자락을 움켜잡으신 분이 아주 찰진 농담을 시전했습니다.
“이대로 인어공주처럼 걸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