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입니다.
ⓒ부산국제영화제
지난 6월에 있었던 일입니다.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요청하기를, 영화 ’낙동강’의 영화음악을 윤이상 선생이 작곡하셨으니 그 음악을 영화와 관련지어 분석하는 글을 써달라고 하더라고요.
“잘못 아신 듯합니다. ‘낙동강’ 영화음악을 작곡하신 분은 김동진이라는 분이고, 윤이상 선생이 작곡한 ’낙동강’이라는 노래가 영화에 삽입되었다고 알고 있어요.”
“아, 그런가요? 그렇다면 그 노래가 어느 장면에 어떤 식으로 사용되었는지 등에 관한 글을 써주실 수 있을까요? 최근에 영화 필름이 발견되어서 디지털 복원 작업 중입니다.”
그간 유실되어 실체를 알 수 없던 영화 ‘낙동강’을 저는 그렇게 남보다 먼저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깜짝 놀랐습니다. 지난 2017년 자필악보가 발견되어 2018 통영국제음악제에서 세계초연되었던 윤이상 관현악곡 ’낙동강의 시’(詩) 도입부 주제가 영화 시작과 동시에 흘러나왔기 때문입니다!
’낙동강의 시’악보가 발견되었을 때부터 저를 비롯해 여러 사람이 영화와의 관련성을 의심했지만, 영화음악을 맡은 사람이 김동진 선생으로 기록되어 있었던 까닭에 의심을 접어야 했었죠. 그런데 발견된 영화를 보니 그게 아니었던 겁니다. 영화 크레딧에 김동진 선생 이름이 없고 ’음악·작곡: 윤이상’이라고 되어 있던데요!
도입부 주제 선율이 끝난 뒤에 저는 다시 한번 놀랐습니다. 2018년 당시에 진의장 전 통영시장님이 이용민 통영국제음악재단 대표님께 말씀하시기를, ‘낙동강’ 개봉 당시에 영화를 보신 기억을 떠올려 보면 우리가 알던 윤이상의 ’낙동강’이 아닌 윤이상의 또 다른 ’낙동강’이 영화에 나온다고 하셨거든요. 진 시장님께서 윤이상 곡으로 알고 있던 노래는 알고 보니 박태현 선생 곡이었고, 이 노래는 영화가 끝날 때쯤에 나오더군요.
그런데 진 시장님의 오해로부터 흥미로운 결론을 도출할 수 있습니다. 윤이상 작곡 ’낙동강’이 영화 ’낙동강’에 삽입된 사실은 예전부터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어떤 노래인지 영화 개봉 당시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면, 다시 말해 윤이상의 ’낙동강’이 영화 개봉 이전에는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았다면, 어쩌면 윤이상 선생은 애초에 ’낙동강’을 영화를 위해 작곡하셨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난 10월 6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영화 ‘낙동강’ 필름 복원 이후 첫 번째 공개 상영이 있었습니다. 상영 후 ’스페셜 토크’라는 설명회가 있었고, 한국영상자료원 김홍준 원장님과 더불어 제가 행사에 출연했습니다. 저는 윤이상의 영화음악에 관해 설명했지요. 그리고 어쩌면 통영에서도 이 영화를 상영할 기회가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이번에 처음 가본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영화 상영을 위한 장비 설정을 바꾸기가 곤란해서 행사 때 영상 재생 등은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준비했던 시청각 자료 대신에 주로 제가 직접 노래를 하는 식으로 설명하게 되었는데요. 발표가 끝난 뒤에 김홍준 원장님이 이런 농담을 하셨습니다. “여러분께서는 부산국제영화제 역사상 최초로 라이브 퍼포먼스를 감상하셨습니다!”
이날 행사와 별도로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저에게 의뢰해서 웹진 KMDb에 실린 글이 있는데요, 제가 마지막 단락으로 쓴 대목을 인용해 봅니다.
“윤이상은 오늘날 서양음악사에 한 획을 그은 거장 현대음악 작곡가로 평가받는다. 그리고 ‹낙동강의 시›는 현대음악 작곡가 윤이상이 서구적 의미에서 전통적인(conventional) 음악 어법으로 작곡한 마지막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작곡가 생전에 공개되지 않았지만, 윤이상은 3악장에 나오는 민요풍 선율을 훗날 칸타타 ‹나의 땅, 나의 민족이여!›(1987)에 사용한 바 있다. 백기완의 시를 사용한 해당 부분의 가사는”북을 쳐라, 새벽이 온다.” 등이다.”
※ 인용문 원문 링크: https://www.kmdb.or.kr/story/237/7028